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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발음을 따라 하고 꼼꼼하게 필기하는 모습을 담은 수업 영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학생들이 “워 시환 쉐 중원(나는 중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24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서일국제경영고. 재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시간에 ‘늦깎이 학생’ 20여 명이 설레는 표정으로 등교했다. 3월부터 9개월간 평일 저녁에 중국어와 컴퓨터 수업을 들은 40∼70대 학생을 위한 수료식이 열렸다. 이 학교는 동대문시장에서 가까운 창신동에 자리 잡고 있다. 서일대 중국어과 교수로 강단에 서다 지난해 11월 부임한 이화영 교장(58)이 올해 동대문시장 상인들을 위해 중국어 수업을 마련했다. 이 교장은 동대문시장 상인들이 주요 고객인 중국인 관광객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게 하겠다며 ‘상용 중국어 회화’ 수업을 기획하고 화, 목요일 저녁마다 직접 강의했다. ‘유커 중국어(遊客漢語)’라는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 중국어와 함께 상인들이 꼭 배우고 싶다는 스마트폰, 컴퓨터 활용 수업도 금요일 저녁에 진행했다. 30여 명이 수강한 중국어 수업은 ‘손님맞이 인사’ ‘감사와 사과’ ‘손님 안내’ ‘입어보기’처럼 장사를 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에 맞춘 커리큘럼 덕분에 효과가 컸다. 동평화시장에서 33년 동안 의류 도소매를 해온 김수옥 씨(52·여)는 “아직 마음대로 중국어를 하진 못해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를 제법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중국인 손님이 서툰 한국말로 “안 예쁘다”고 하면서도 자기들끼리는 “사자, 예쁘다”고 얘기하는 것을 알아들을 때면 좀 더 적극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업을 녹음해 일할 때나 설거지할 때 틈틈이 복습한 결과다. 가게에 온 중국인 관광객에게 “중국어 좀 알려 달라”고 했다가 옆 가게 물건을 팔아준 적도 있다는 김 씨처럼 학생들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얘기가 드문드문 들릴 때마다 반갑고 신기하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학교에 와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했다는 학생도 있다. 40년 동안 여성 의류 도매업을 해 온 윤병문 씨는 올해 일흔 다섯이다. 중국어와 컴퓨터 수업을 모두 들은 그는 “이제 사람이 된 느낌”이라며 활짝 웃었다. 윤 씨는 “e메일을 쓰고 카카오톡을 하고 인터넷을 뒤적여 보니 경이롭다는 생각뿐”이라며 “내년에는 포토샵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잘 배워서 꼭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교사보다 학생의 나이가 더 많은 수업. 학생들의 열정 때문에 교장 연수를 받는 기간에도 수업을 거를 수 없었다는 이 교장은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활용하면서 정말 즐거워하고 고맙다고 아낌없이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많았다”고 했다. 서일국제경영고는 다음 달 17일부터 다시 중국어 수업을 시작한다. 수업은 무료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최근 연세대가 교수들이 갖고 있던 총장후보 인준투표 권한을 없애기로 하면서 불거진 내부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학 운영의 중심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김석수 학교법인 연세대 이사장은 16일 연세대 교수들에게 “교수평의회가 독자적으로 마련한 ‘사전 인준투표’는 총장 선임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이사회는 내년 2월 취임할 18대 총장 선임을 앞두고 교수들이 진행하던 인준투표를 없애기로 결정한 바 있다. 연세대 교수평의회가 반발하고 있지만 이사회가 결정한 방식대로 총장 선임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교수평의회는 11일 교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 총장을 선임할 때 직선제를 없애면서 인준투표 권한을 인정했던 이사회가 교묘한 방식으로 교수들의 의견을 배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7일에는 4명의 총장후보 사전 인준투표를 교수평의회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내며 정면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대학가에서는 연세대 사태가 최근 대학에서 연구 성과와 취업률처럼 계량화된 실적 압박이 커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이사장은 16일 발송한 e메일에서 “연세대가 보다 큰 시각을 가지고 세계 속의 명문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속의 명문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투표에 좌우되지 않는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반면 교수평의회는 이사회가 대학 운영의 전권을 독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평의회 이혜연 부의장(의과대 교수)은 “130년 역사의 연세대는 이사회와 교내 구성원, 동문의 합의를 통해 발전해왔는데 대학이 상업화, 기업화되고 있어 대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평의회는 이사진 12명 가운데 일부의 자격이 부족하다며 소송을 내기로 하고 비용 모금에 나설 계획이어서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차기 총장 선출 방식을 놓고 학교법인 이사회와 대립해 온 연세대 교수평의회가 개별 후보를 놓고 사전 인준투표를 진행하고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도 제기하기로 했다. 서길수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경영대 교수)은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교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 후보 소견 발표회가 끝난 이후인 이달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후보들에 대한 사전 인준투표를 시행하겠다고”고 밝혔다. 총장 후보들에 대한 투표행위를 하지 말라는 이사회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연세대는 2011년 정갑영 현 총장을 선출할 때 이사회가 지명한 최종 후보를 대상으로 교수평의회가 인준투표를 진행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올해 차기 총장 선출을 앞두고 이사회가 인준투표를 없애기로 하면서 교수평의회 등이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사회는 인준투표를 없애는 대신 투표행위로 여겨질 수 있는 방식을 배제한 가운데 추천된 후보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재적 교수 과반이 부적격하다고 평가한 후보는 총장으로 선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방안에 현실성이 없다며 거부하고 나선 교수평의회는 개별 후보들을 대상으로 사전 인준투표를 진행해 재적 교수 과반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의 찬성을 얻은 후보만 최종 후보 자격을 인정할 방침이다. 교수평의회는 이사회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도 나서기로 했다. 현직 이사 12명 가운데 3명이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선임됐다는 의혹이 있고 인준투표 폐지가 과거 이사회의 결의를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해 이를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세대 학교법인 관계자는 “이사회가 결정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채 진행한 인준투표 결과를 이사회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의 이사진 구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며 과거 이사회 회의록은 인준투표 제도가 당시의 총장 선출에 한한다고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내년 2월 취임할 연세대 18대 총장 선출에는 정 총장을 비롯한 4명의 후보가 나섰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대학생의 실질등록금 부담 분석 결과는 대학의 장학금 제도가 성적 우수자에 대한 ‘인센티브’ 성격에서 ‘복지’ 성격으로 전환됐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각 대학의 1인당 평균 장학금 규모는 대학의 위상과 사회적 평판 등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의 실질등록금 분석 결과는 ‘명목등록금이 높은 서울 주요 사립대는 많은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어 실질등록금은 낮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2011년 93개 대학 가운데서 명목등록금 최상위권이었던 연세대(2위) 한양대(6위) 성균관대(7위) 고려대(9위)가 실질등록금에서는 각각 53위, 24위, 47위, 38위였다. 이런 가운데 경기와 충청권 대학들은 명목등록금이 비교적 낮음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이 적어 실질등록금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해 실질등록금 1∼10위는 명지대(용인본교), 연세대(원주캠퍼스),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아주대, 광운대, 고려대, 한양대(에리카캠퍼스), 중앙대(제2캠퍼스)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가 실질등록금 부담이 큰 대학으로 대거 진입한 것이다. 》 교육부의 압박 때문에 그동안 대부분 대학이 명목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인하한 가운데 이렇게 실질등록금 순위가 크게 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장학금 규모를 크게 웃도는 국가장학금이 2012년 도입되면서 대학별 1인당 장학금 액수에 변동이 커진 것이다. 정부가 지급하는 장학금이 전체 장학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에는 23.2% 수준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55.5%에 달했다. 반면 69.9%에 이르던 교내 장학금 비율은 40.5%로 줄었다. 이 때문에 서울 지역 대학들은 교내 장학금 수준이 여전히 높은 편인데도 국가장학금을 포함한 1인당 장학금이 낮게 집계되면서 실질등록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 시각에서는 국가장학금을 제외한 교내외 장학금 규모가 더 중요하다. 소득분위를 중심으로 지급되는 국가장학금은 어떤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액수가 거의 정해져 있지만 학교와 장학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지급하는 장학금은 대학별로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국가장학금을 제외한 1인당 교내외 장학금 규모가 큰 대학은 홍익대(234만1200원) 성균관대(225만3900원) 성신여대(194만900원) 대진대(183만2200원) 이화여대(181만1500원)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홍익대와 성균관대는 2011년 조사에서도 국가장학금을 뺀 교내외 장학금이 178만여 원과 177만여 원으로 각각 1, 2위를 기록했던 대학이다. 반면 성신여대는 장학금 지급을 2010년 1인당 120만여 원에서 70만 원 이상 늘린 경우다. 이성기 성신여대 학생처장은 “동아일보의 실질등록금 분석 결과 등을 바탕으로 명목등록금 인하와 장학금 확충의 두 가지 축으로 학생들의 실질적인 학비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백석대 역시 2011년에 교내외 장학금이 92만8000여 원에 그치면서 실질등록금 순위 3위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180만2800원으로 교내외 장학금이 늘면서 실질등록금 순위가 60위권으로 떨어졌다. 학생들의 소득분위를 중심으로 지급되는 국가장학금의 대학별 편차가 상당한 것도 눈에 띈다. 사립대끼리 비교했을 때 학생 1인당 국가장학금은 최고 259만5800원(남서울대)에서 최저 106만5600원(한국외국어대)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 또 서울 소재 사립대 20곳의 국가장학금 평균은 128만9000원인 반면 나머지 사립대 전체 평균은 171만5000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중앙대 등 이른바 서울 지역 주요 대학 6곳이 국가장학금 평균 하위 10위 안에 포진한 가운데, 한국외대는 실질등록금 순위가 2011년 71위에서 지난해 27위로 상승했다. 결국 경제적 여건이 좋은 학생들이 서울 지역 주요 대학에 상대적으로 많이 진학했다는 사실이 대학별 국가장학금 지급 규모의 편차를 통해서도 입증된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5000억 원가량의 ‘국가장학금 2유형’은 대학의 등록금 부담 인하 노력 등이 반영돼 차등 지급된다”면서도 “대부분의 국가장학금은 소득수준이 기준인 게 맞다”고 밝혔다.김도형 dodo@donga.com·김호경 기자 }
“정말로 그렇게 부담이 줄었어요? 나는 한 푼도 받는 게 없는데….” 이번 분석을 살펴본 고려대 공과대 2학년 채모 씨(21)의 말이다. 채 씨는 국가장학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연간 9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의 일부를 메우고 있다. 정부는 올해를 기준으로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고 주장하지만 대학생 사이에서는 채 씨처럼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전문가들은 4조 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임에도 아직도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생계가 힘겨운 기초생활수급자에게도 국가장학금 1유형으로는 사립대 등록금에 크게 못 미치는 480만 원까지밖에 지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학에서는 “언제까지 대학을 옥죌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국가장학금을 투입하고 대학은 등록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장학금은 확충하는 방식으로 ‘반값등록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김영세 연세대 기획실장은 “지금 대학들은 수년에 걸친 재정 압박 때문에 동반 부실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며 “교육·연구를 위해 대학에 지원하던 예산을 줄여 국가장학금을 늘린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김호경 whalefisher@donga.com·김도형 기자}
지난해 3조4500억 원의 국가장학금이 투입되면서 대학생 1명의 연간 실질등록금(명목등록금에서 1인당 평균 장학금을 뺀 금액) 부담이 2011년 576만여 원에서 376만여 원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대학생의 연간 등록금 부담이 3년 새 200만 원가량 줄어든 셈이다. 9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2014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재적 학생 1만 명 이상의 전국 4년제 일반대 97곳의 1인당 평균 명목등록금(고지서상의 등록금)은 669만여 원으로 나타났다. 2011년 같은 기준의 4년제 일반대 93곳의 명목등록금 705만여 원보다 36만 원가량 낮아진 수치다. 반면 장학금은 큰 폭으로 늘었다. 대부분 국가장학금이다. 국가장학금 제도 도입 이전인 2010년 정부가 대학생에게 지급하던 장학금은 1인당 28만 원가량이었지만 지난해 1인당 국가장학금은 163만 원까지 늘었다. 대학 자체 장학금은 2010년 91만6000원에서 지난해 117만9000원으로 소폭 올랐다. 이에 따라 이들 대학의 평균 실질등록금은 2011년 576만2000원에서 지난해 376만8000원으로 떨어졌다.김도형 dodo@donga.com·김호경 기자}

대자보를 붙여 놓은 게시판 앞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 남짓. 그 시간에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통화를 하며 대자보를 스쳐 지나갔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혹은 수업에 쓰일 출력물을 들여다보는 학생도 있었다. 바로 오른쪽에 빼곡하게 붙은 대자보에 눈길을 주는 학생은 찾기 힘들었다. 20분 넘게 지켜봤지만 멈춰서 대자보를 들여다보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5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후문 근처 대자보 게시판 주변에서 관찰한 모습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강행 철회하라”, “총장은 학생들에게 공개 사과하라”, “캠퍼스 내에, 독재가 돌아왔다”와 같은 제목으로 쓰여진 대자보는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또렷한 목소리를 내며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1980, 9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각 대학 총학생회의 이런 목소리에 이제 학교 구성원들 대부분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대자보에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 학교 4학년 안지수 씨(23·여)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기보다 지금 대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싶다”며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인다고 뭐가 크게 바뀌는 시대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반문했다.대학 본부에 외면당하는 총학생회 지난달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는 서재우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성적장학금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장학금 제도 개편안 발표를 예고한 상황이었다. 이에 앞서 기자회견을 연 서 총학생회장은 “장학금 제도 개편이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책 결정 과정에 우리의 목소리가 전혀 들어가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실망했다”고 했다. 총학생회는 새로운 제도에 반대한다고 하지 않았다.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며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인데 학교 측이 총학생회에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는 강민구 부총학생회장도 “대학원생 행정조교 폐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결정에서 일방적이던 학교가 장학금 제도 개편까지 일방적으로 진행해 참다 참다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고려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총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이 크게 줄어들면서 이제 대학 본부가 학교의 주요 정책을 추진할 때 총학생회를 ‘협상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송준석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현재의 정갑영 총장은 총학생회에 상당한 패배감을 안겨 줬다”고 말한다. 수강신청 제도 변경처럼 학생들에게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도 학교 측이 총학생회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달 보름간 교내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던 손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아예 수렴하려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손 회장은 학교 측에 ‘정책 예고제’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학생 호응 줄어들며 ‘추락’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대학가에서는 2000년대 이후 총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호응이 갈수록 줄어들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총학생회장이 학교 안팎을 넘나들며 민주화 투쟁을 이끌고 유명 연예인을 넘어서는 인기를 누리던 과거와 달리 총학생회 활동 자체가 학생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의 발언력도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보직 교수는 “총학생회장은 여전히 대학 내 주요 협의 기구의 당연직 위원”이라며 대학의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교수도 “총학생회가 내는 목소리가 일반 학생들의 요구와 상당한 괴리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힘이 많이 떨어진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학점과 갖가지 ‘스펙’ 쌓기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는데 총학생회가 정작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대학가에서는 총학생회 활동뿐만 아니라 각종 동아리를 비롯한 학생 활동 전반이 위축된 상황이기도 하다. 연세대 송 총학생회장은 “지금 대학생들은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 자체가 낮아진 것 같다”며 “과거처럼 지성인이라기보다 이제 취업을 준비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급급한 상황으로 떨어지면서 사회적 활동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의 ‘소통 부재’를 지적하기도 한다. 고려대 정경대 신문사 ‘호안스’ 편집국장 이기욱 씨(20)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사회 문제나 정치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며 “총학생회의 정치적 입장에 찬성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입장을 정해 전체 학생의 의견인 것처럼 밝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등록금 결정 과정에서도 ‘들러리’ 힘이 빠진 총학생회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인 등록금 결정 과정에서도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에서는 교직원, 학생, 전문가로 구성된 등록금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학생 측 위원이 전체의 30%를 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의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을 견제하고 등록금 책정 과정에 학생들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통상 총학생회장과 총학생회가 추천한 인사들이 학생 측 위원으로 참여한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지만 문제는 나머지 위원 대부분이 학교 측 인사로 채워지는 탓에 이들이 실질적으로 등록금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이 전국 333개 대학 등록금심의위원회 구성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학생 측 위원 비율은 36.1%였다. 법으로 정한 기준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매년 3월을 전후해 대부분 대학의 총학생회가 ‘등록금 투쟁’에 나서지만 대학 본부는 학생회보다는 교육부의 눈치를 볼 뿐이라는 것이 대학 전반의 시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11월을 전후해 각 대학 총학생회가 마주하는 고민도 있다. 다음 해 총학생회장단을 뽑는 선거를 치러야 하는 시기지만 출마 후보자가 많아야 1, 2명 수준인 데다 투표율도 극히 낮아 총학생회 출범 자체가 늦춰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모든 대학은 총학 선거 유효 투표율을 재학생의 50%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하면 연장 투표를 하거나 재선거를 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총학생회장 없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1년을 버티는 경우도 생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투표율이 70%를 넘는 대학이 적지 않았지만 2000년대 이후 거의 모든 대학에서 50%를 넘기는 것이 벅찬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대는 총학생회장 선거 투표율이 50%에 못 미쳐 재선거를 치렀다. 재선거도 투표 기간을 연장한 끝에 가까스로 50%를 넘겼다. 연세대는 2002∼2004년 3년 연속으로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해 연장 투표를 했다. 고려대 역시 2006년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해 투표 기간을 5일 연장해야 했다. 투표율만 낮아진 게 아니다. 총학생회의 가장 큰 수입원인 학생회비 납부율은 더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다. 과거에는 학생회비가 등록금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대학들이 하나둘씩 학생회비와 등록금을 분리해 납부토록 하면서 학생회비를 내지 않는 학생이 늘기 시작했다. 학생 상당수는 “나한테 직접 도움도 안 되는데 왜 내야 하느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연세대는 학생회비 자율 납부를 시작한 2013년 1학기 학생회비 납부율이 39.9%였으나 2년이 지난 올해 1학기에는 28.6%로 10%포인트 넘게 줄었다. 학생 10명 중 3명만 학생회비를 낸다는 얘기다. 학생회비 외에 마땅한 수입원이 없는 총학생회는 당장 각종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학생회가 주최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축제 등 행사 규모를 축소하거나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경쟁 사회의 그늘… 위상 재정립 필요” 이렇게 대학 자치 조직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상아탑’의 한 축을 대표한다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벌어진다.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나붙은 ‘성폭행 사과 실명 대자보’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중순 연세대 재학생 A 씨는 같은 대학 후배를 성추했다고 고백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자신의 실명과 학년, 학과 등을 명시해 캠퍼스 곳곳과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실명 대자보로 공개 사과하라는 피해자와 피해자를 돕고 있는 총여학생회 측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정이다. 하지만 대자보가 붙은 이후 피해자 측은 A 씨의 구체적인 과거 이력이 사과문에 담기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총여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A 씨의 아르바이트 장소에까지 찾아가 항의했고 가해자인 A 씨는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가해자의 잘못이 분명하더라도 피해자의 고소로 경찰이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여학생회 측이 지나치게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총여학생회의 성급함을 지적하고 있다. 박찬성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대학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실명이 공개된 상황에서는 당초 의도와 달리 논의가 가해자를 겨냥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실명 공개는 매우 신중히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학생에게서 멀어지면서 학생회의 발언력이 약해지고, 이 때문에 학생과 대학 본부로부터 소외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내 문제 대응마저 논란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대학 사회 안에서 이런 문제를 지켜보고 있는 교수들은 지나친 경쟁이 대학 자치까지 압박하는 현실을 돌아보되 학생회 역시 현실에 맞게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주의의 가속화는 현대사회 전체의 특징”이라면서도 “학점 상대평가와 스펙 쌓기로 대학생들을 몰아넣은 결과가 아닌지 기성세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인기에 접어들었고 사회에 진입하기 직전인 대학생들의 자치 조직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현실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생이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과거와는 상황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며 “학생들에게 밀착된 이슈를 발굴하는 해외 대학 학생회 등을 참고하면서 총학생회의 위상을 새롭게 만들 시기가 됐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학생 사회 전체가 심각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학생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는 결국 학생회 조직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김호경 whalefisher@donga.com·김도형 기자 }

“기후변화와 관련해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까지 1000억 달러가 더 필요합니다.” 한국을 국빈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사진)은 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기후와 녹색성장’을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밝혔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 2020년 신기후체제 출범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참가국들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이달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파리에서 열리는 COP21 의장국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중요한 외교 의제로 삼고 있다. 이날 올랑드 대통령은 “COP21에서 최선의 결의안이 도출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가능한 한 많은 국가가 참여하기를 원하고 국가들의 공약으로 배출 온실가스의 약 90%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좌담회에는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교장관을 비롯해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 등이 참석해 기후변화 문제를 함께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우리나라가 2030년 배출전망치(BAU)를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의 37%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을 소개하며 녹색성장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화답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일 ‘위안부 문제 조기 타결을 위한 협의 가속화’ 합의로 꽉 막힌 한일관계 개선에 ‘물꼬’를 텄다.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경제 안보 분야 협력까지 퇴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간 협력체제 복원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기 타결 시점’ 놓고 단독회담에서 공방 양국 정상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매듭짓는 시점과 관련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전환점에 해당되는 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라는 대목을 넣었다. 모호한 문구만큼 회담 직후 한일 양국의 해석에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청와대는 ‘사실상 연내’라는 쪽에 무게를 두는 반면 일본 측은 “타결 시점을 정해 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비공개 단독회담에서 조기 타결 시점이 최대 난제였다고 한다. 앞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연내 해결’을 언급한 박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도 타결 시점을 ‘연내’로 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난색을 표명했고 긴 공방 끝에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는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다. 단독회담이 당초 30분에서 1시간으로 길어진 것도 이 같은 공방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이던 상황은 바뀐다는 관측이 많다. 위안부 문제를 다른 현안들과 분리하는 ‘투 트랙’으로 접근한다는 기반은 마련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약해 보인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가 연내 타결되지 않고 늦어지면 양국 관계는 또다시 불편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베 “위안부 협상 진행해 일치점 찾는 것 가능” 위안부 문제 협의 타결을 위해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양국 간 견해차가 있다. 한국 정부는 책임 있는 사과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위안부 문제의 존재 자체를 몰라 요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날 귀국한 뒤 일본 BS후지 방송에 출연해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국 국민이 (해결책에 대해) 완전히 납득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그 와중에 협상을 진행해 일치점을 찾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인도적 차원의 추가 조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송 말미에 한 시청자가 “위안부 문제 해결과 관련해 골포스트(목표)를 계속 움직이는 한국과 어떻게 협의할 것이냐”고 묻자 아베 총리는 “많은 일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다. 서로 합의하면 다음에는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번이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보증해야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존 태도를 재확인한 것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군자 할머니(90)는 “70년을 기다렸는데 무슨 회의를 또 한다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정상회담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알맹이가 없는 회담이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제자리걸음하는 국장급 협의 양국 정상이 조기 타결을 위한 협의 가속화를 지시한 대상은 현재 양국 외교당국 간에 진행 중인 국장급 협의다. 현재 국장급 협의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9차례 한일 국장급 협의가 열렸으나 뚜렷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올해 외신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의가 최종 단계에 있다”고 밝혀 기대감이 형성됐지만 일본의 강제징용 관련 시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박민혁 mhpark@donga.com·김도형 기자 /도쿄=장원재 특파원}

“휴대전화에 유에스아이엠(USIM) 카드 확인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신고자) “죄송하지만 여기는 긴급범죄 신고전화입니다.”(경찰관) “아니, 경찰서에서는 그거 모릅니까?”(신고자) ‘112의 날(11월 2일)’을 앞두고 공개된 황당한 112 신고 사례다. 경찰은 긴급출동에 쓰여야 할 경찰력이 막연한 문의 전화들 탓에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달부터 ‘올바른 112 신고문화 정착을 위한 홍보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011년 995만여 건 수준이던 112 신고 전화는 지난해 1877만여 건으로 급증했다. 112는 긴급신고번호 대국민 인지도에서도 98.5%를 기록하면서 119(화재 구조 구급 재난신고·98.1%), 111(간첩신고·21.0%), 110(정부통합민원·11.2%)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해 명실상부한 ‘국민의 비상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제는 이 비상벨을 ‘장난벨’처럼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식당에서 밥을 먹다 뼈다귀를 씹어 이가 흔들린다”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으니 도와 달라” “홈쇼핑에서 두유를 사서 마시려고 하는데 하나가 썩었다” “길가에 있는 강아지의 목줄을 너무 짧게 묶어 놔 너무 불쌍하다” 등과 같은 황당 신고들이 접수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민원성 신고에도 일일이 응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고자의 거듭된 요구 때문에 현장 출동까지 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실제로 경찰은 “현관에 벌레가 있어 문을 못 잠그겠다”거나 “1층 식당에서 고기 굽는 연기가 집에 들어오고 있다”는 신고에도 현장 출동을 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2 신고의 44.7%(839만여 건)는 상담 및 민원 성격의 비출동 신고였고 42.6%(799만여 건)는 비긴급 출동 신고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긴급출동 신고는 전체의 12.7%(239만여 건)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내용이 없는 반복 전화나 욕설·폭언을 일삼는 악성신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 6월 한 달 동안 112로 100번 이상 전화한 사람이 173명이었고, 1000번 이상 전화한 사람도 5명이나 있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달부터 대형 현수막이나 포스터 등을 전국 곳곳에 붙여 긴급한 위험이 있을 때만 112에 전화해야 한다고 알리는 홍보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2일 오전에는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대에서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33)가 제작한 대형 홍보물도 공개한다. 잘못 건 112 신고가 경찰관의 발목을 잡아 긴급출동을 어렵게 한다는 내용의 조형물이다. 이동환 경찰청 생활안전과장은 “생활민원은 110번이나 120번, 경찰 관련 민원은 182번으로 신고하는 것이 맞다”며 “경찰도 112 신고를 내용에 따라 효율적으로 구분 대응해 긴급출동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운전자의 난폭운전 때문에 차에 탄 승객이 큰 위협을 느꼈다면 차량을 이용한 협박 행위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난폭운전으로 다른 차량이나 차량 밖의 사람이 아니라 동승자를 협박했다고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나상훈 판사는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 김모 씨(40)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김 씨는 올 6월 11일 오전 7시경 서울 서초구에서 이모 씨(42)를 태우고 강북 방향으로 가던 중 이 씨가 “빨리 가달라”고 재촉하자 차량을 급가속하고 급하게 차로를 바꾸는가 하면 앞 차량 바로 뒤에서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등의 난폭운전을 했다. 겁이 난 이 씨가 “천천히 가달라”고 하자 김 씨는 속도를 급히 줄여 운행하다가 급기야 반포대교 북단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이 씨를 택시에서 강제로 끌어내 목 뒷덜미를 잡아당겨 넘어뜨린 김 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승객이 운전 중 나를 폭행했으니 처벌해 달라”며 허위 진술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뒷좌석에 있던 피해자가 피고인의 난폭운전 때문에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느낀 점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택시를 위험하게 운전한 행위는 특수협박죄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김 씨는 “승객의 요청에 따라 택시를 빨리 운전했을 뿐이고 교통사고가 나면 스스로도 다치기에 승객을 협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앞으로 수렵을 위해 경찰에 맡겨 놓은 엽총이나 공기총을 찾을 때는 위치정보수집 동의서를 작성하고 반납할 때까지 휴대전화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을 항상 켜놓아야 한다. 경찰청은 총기 안전규정을 대폭 강화한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및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2일부터 적용한다고 1일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엽총과 공기총은 경찰관서 등 허가관청이 지정하는 곳에 보관해야 하며 수렵과 유해조수구제, 사격경기 등 본래의 용도로 사용할 때만 출고할 수 있다. 총기를 찾을 때는 위치정보수집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며 총기를 반납할 때까지 경찰이 소지자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항상 휴대전화 GPS 기능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휴대전화 GPS 기능이 꺼지는 등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 총기 사용을 할 수 없게 된다. 또 실탄 관리강화를 위해 총기 사용자는 실탄대장에 구매량과 사용량, 잔여량을 기록하고 담당 경찰관이 요구할 때 이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수렵용 실탄의 하루 구매 한도도 400발에서 100발로 축소됐으며 수렵인이 보관할 수 있는 실탄수도 500발에서 200발로 크게 줄었다. 이와 더불어 총포 소지허가 갱신 기간은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다. 총기 소지 결격사유도 강화돼 폭력으로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이나 5년 동안 2차례 이상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은 5년간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됐다. 현재는 폭력성 범죄로 징역형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만 총기 소지가 허용되지 않는다.김도형기자 dodo@donga.com}
사업가 행세를 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교 환경미화원에게 거액을 받아 가로챈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현모 씨(35)를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현 씨는 2012년 4월부터 올 6월까지 3년여에 걸쳐서 서울의 한 대학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어머니의 동료 백모 씨(53·여)에게 2억 6000여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백 씨에게 “부동산 투자와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자금 융통이 안 되니 잠깐만 도와주면 금방 돈을 갚겠다”고 속이고 42차례나 명의를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백 씨에게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게 하거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게 한 뒤 이를 가로챈 것이다. 현 씨는 애초 경매물로 나온 부동산을 사들여 되팔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리한 대출을 받았다가 부동산 경기침체로 시세가 떨어져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자 범행을 마음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백 씨는 새벽부터 오후까지 일하며 월 80만 원 가량을 받는 힘든 처지에서도 현 씨에게서 돈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계속해서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백 씨와 함께 일해 온 다른 환경미화원 중에도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여죄를 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 씨 명의의 부동산이 있긴 하지만 은행이 1순위인 담보가 설정돼 있어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한 범죄예방 홍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도형기자 dodo@donga.com}

전쟁이 잠시 멈췄다. 손님들은 집에 가기 위해 굳이 차도로 내려서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큰 소리로 행선지를 외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차례를 기다려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운전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손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23일 오후 11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에는 고성도 시비도 없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강남역 일대는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진다. 장거리 손님을 태우기 위한 택시 운전사들끼리의 전쟁, 택시가 잘 잡히는 장소에서 택시를 선점하기 위한 손님들 간 전쟁, 승차를 거부하는 운전사와 택시에 타려는 손님의 전쟁. 서울시가 23일 이런 전쟁을 막기 위해 강남역∼신논현역 구간에 ‘택시 해피존’을 마련했다. 연말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방향별로 6곳에 임시 승강장을 운영해 시민들이 줄을 서 택시를 타는 것이다. 이곳에 대기하는 택시는 승차를 거부할 수 없다. 이날 ‘택시 타는 곳’이라고 적힌 커다란 노란색 입간판이 세워진 곳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형성됐다. 택시를 타려는 시민도, 승객을 태우려는 택시도 줄을 섰다. 서울시, 개인·법인 택시조합 등에서 나온 단속 인력 150여 명이 곳곳에서 현장의 질서를 유지했다. 승차 지원 업무를 하는 관계자들은 승객을 태운 택시 번호판을 종이에 수기로 적었다. 해피존에서 승객을 태운 택시에 지원금 3000원을 지급하기 위한 조치다. 시민들은 대체로 반기는 표정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경기 성남시 분당구로 귀가하던 김상혁 씨(36)는 “금요일 저녁에 승차 거부를 10번 당하고 찜질방에서 자고 귀가한 적도 있는데 오늘은 줄만 제대로 서면 한 번에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와 택시를 기다리던 이선영 씨(25·여)도 “이 일대는 승차 거부가 너무 심해 친구들과 약속이 끝나면 아예 부모님을 불러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다”며 “어떤 방식이든 승차 거부만 없어진다면 대환영이다”라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남역 일대를 지속적으로 단속하는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도 한시적으로 임시 승강장을 운영했는데 단속 인원 충원과 예산 문제로 지속되지 않아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 한영희 씨(24·여)도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할 승차 거부 택시들에게 세금으로 혜택을 주면서까지 제도를 시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다”며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생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슷한 시간 해피존이 운영되지 않는 지역의 택시 잡기 전쟁은 여전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일대의 승차 거부 행태는 여전했다. 차도까지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시민 박찬열 씨(26)는 “강남역뿐 아니라 사당역, 홍익대 앞, 종각 일대도 주말마다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 지역들에도 해피존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김도형 기자}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설립한다면서 실제로는 영리 목적의 병원을 개설해 국민건강보험 급여를 받아 챙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의료생협은 지역 주민들이 의료 및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돈을 모아 만든 비영리법인이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출자금 대납 등 부정한 방법으로 의료생협을 설립하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건강보험 급여를 타낸 혐의(의료법 위반 등)로 김모 씨(55·여) 등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은 의료생협을 활용하면 의사가 아니어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운영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의 A 의료생협 이사장인 김 씨는 2012년 10월 명목상 의료생협을 설립한 뒤 정형외과 병원을 개설해 운영하면서 최근까지 요양급여비 8억5700만 원가량을 받아 챙긴 혐의다. 수사 결과 김 씨는 병원 인근 주민이 아닌 가족과 친지 등의 이름을 빌려 조합 설립동의서를 대신 작성했다. 또 출자금을 내기 어려운 지인에게는 돈을 대신 납부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법인 설립 요건을 채워 인가를 받았다. 의료생협의 설립 기준은 조합원 최소 300명, 출자금 최소 3000만 원이다. B 의료생협 이사장 안모 씨(50·여)도 2011년 1월 이런 수법으로 조합원과 출자금 기준을 맞춰 의료생협 설립 인가를 받은 뒤 서울과 지방에 성형외과 두 곳을 차리고 요양급여비 약 1800만 원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서모 씨(56) 역시 지난해 1월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C 의료생협을 설립해 부인을 이사장으로 등기한 뒤 자신이 원무부장을 맡아 운영하면서 요양급여비 3억2500여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경찰 관계자는 “의사 명의를 빌려 병원을 세우던 형태의 ‘사무장 병원’ 대신 의료생협을 이용하는 경우가 최근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며 “현행 의료생협 인가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총장 선출 방식 변경 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던 연세대에서 법인 이사회가 내놓은 새로운 방안을 교수들이 최종적으로 거부하면서 이사회 불신임 투표 등 본격적인 반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1일 오후 임시 총회를 열고 이사회가 제시한 총장 후보 의견 수렴 방안을 받아들일지 논의한 연세대 교수평의회 측은 이를 거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기존에 있었던 ‘총장 최종 후보 인준 투표’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이사회는 투표 행위를 제외한 범위 안에서 모든 후보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물어 전체 재적 교수의 과반이 ‘총장 직무수행에 부적격하다’는 평가를 내린 후보는 총장에 선임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방안을 이달 초에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 임시 총회에서 교수들은 총장 선출 기간 안에 모든 후보가 동의하는 의견 수렴 방식을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고 재적 교수 과반이라는 기준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길수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이사회가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뜻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교수평의회 측은 우선 교수 학생 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을 상대로 이사회 불신임 투표를 진행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학교법인 관계자는 “교수평의회의 결정을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김도형기자 dodo@donga.com}
도박 게임을 하기 위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또다시 사기 범죄를 저지른 전과 38범의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인터넷 중고품 매매 사이트에서 제품을 판매할 것처럼 속여 돈만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김모 씨(38)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비슷한 전과 38범인 김 씨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올 2월 출소하자마자 인터넷 도박게임 비용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또다시 범행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올 2월부터 9월까지 인터넷 중고물품 매매 카페에 스포츠 용품을 판다는 글을 올린 뒤 이를 보고 연락해 온 박모 씨(25) 등 90여 명으로부터 1700여만 원을 입금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경찰청 사이버캅’만 확인해봐도 중고 물품 판매자의 계좌와 전화번호가 인터넷 사기에 이용됐는지 검색할 수 있다”며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에서의 주의를 당부했다.김도형기자 dodo@donga.com}
마약으로 분류되는 진통제와 향정신성의약품을 병원에서 처방받아 외국인들이 주로 쓰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 외국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로 미국인 P 씨(33)를 구속하고 정모 씨(55)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P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병원 3곳을 돌며 진통제 옥시코돈과 신경안정제 졸피뎀 디아제팜 등 7종의 약품을 직접 처방받거나 김모 씨(44)로부터 구입해 확보한 뒤 70차례에 걸쳐 550만 원 가량에 판매하고 일부는 직접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P 씨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진통제를 판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이를 보고 연락해 온 구매자와 전자우편으로 접선 시간·장소를 정하고 약품을 넘겨준 것으로 조사됐다. 옥시코돈은 마약으로 분류되는 중증 진통제이고 졸피뎀과 디아제팜은 불면증과 불안 증세 등에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모두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다. P 씨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통증이나 불면증 등 후유증에 시달린다며 병원을 찾아가 약품을 처방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P 씨로부터 약품을 구매한 외국인 S 씨(55) 등 3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국내에서 필로폰을 매매하고 투약한 일당 13명도 함께 적발됐다. 이들 가운데 정 씨 등 마약 판매책 9명은 지난해 2월부터 올 3월까지 서울, 경기 일대에서 필로폰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포통장으로 돈을 송금 받은 뒤 지하철 물품보관함이나 고속버스 수화물 택배를 이용해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용 마약류 과다 처방이나 불법 사용 등을 막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기관과 협조해 유통 자료를 분석하고 마약류 유통 경로가 된 인터넷 사이트 점검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도형기자 dodo@donga.com}

‘저는 지난 9월 우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우에게 성폭력 가해를 한 사실에 대해 사과하려 합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되는 대자보(사진)가 지난 주말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 등 교내 곳곳에 붙었다. 대자보에는 성폭력 사실을 고백하는 내용과 함께 가해자의 소속 학과와 학년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작성자는 원고지 6장 분량의 대자보에서 ‘저는 피해자와 술자리를 함께한 뒤 피해자가 잠든 사이 동의 없는 신체 접촉과 피해자의 신체 일부에 강도 높은 성폭력 가해를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피해자의 주체성을 무시한 채 이뤄진 폭력적 행동’이라며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다. 작성자는 이어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정신적 공포와 고통을 알고 있으며 공개적인 사과문 게시로 사과와 미안함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주말을 거치면서 교내는 물론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문제의 ‘실명 대자보’ 사진과 함께 해당 내용이 확산되고 있다. 대학가에서 학생들 사이에 성폭력 사건은 종종 벌어지지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공개한 경우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대자보가 붙기 전 이미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고소장이 접수돼 강제추행 혐의로 수사 중인 사건이며 (혐의가 확인되면) 가해자는 사법 처리될 것”이라고 19일 밝혔다. 강제추행은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도 수사가 중단되지 않는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피해자가 이런 형태의 사과를 요구했고 가해자가 이를 받아들여 대자보를 붙인 것이라면 처벌 과정에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는 의미로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김도형 dodo@donga.com·김호경 기자}

우등생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대학 장학금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에게 주는 ‘특전’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학업 중단을 막는 ‘복지’로 변하는 중이다. 이런 변화가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장학금 고유의 면학 인센티브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14일 내후년부터 성적 장학금 제도를 폐지하고 저소득층 장학금을 늘려가겠다고 밝힌 가운데 최근 대학가 곳곳에서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이화여대는 올해 성적장학금 제도 가운데 일부를 폐지하기로 했고 서강대도 그동안 성적장학금 비중을 꾸준히 줄여왔다. 연간 3조 원이 넘는 국가장학금 역시 대부분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지급되고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준다’는 ‘니드 베이스(Need Based)’와 ‘성과의 보상으로 준다’는 ‘메리트 베이스(Merit Based)’는 예전부터 장학금의 중요한 두 축으로 팽팽하게 맞서왔지만 최근 들어 ‘니드 베이스’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여기에 찬성하고 있다. 고려대 재학생 강보라 씨(21·여)는 “성적장학금이 사라진다고 열심히 공부하던 사람이 공부를 그만두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며 찬성의 뜻을 밝혔다. 성적장학금 존폐 논란이 벌어진 고려대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부 학생들은 “가난한 학생에게 돈은 생존의 문제”라거나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공부에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저소득층이 아닐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찬성 의견을 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메리트 베이스 장학금’이 가진 장점을 포기하는 것에 따른 우려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국가나 기업 등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성과에 따라 주는 곳은 대학이 거의 유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학금으로 우수한 성적의 신입생을 학교로 끌어들이고 뛰어난 성과를 낸 학생에게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다. 이런 우려는 대학 대부분이 성적장학금 제도 폐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각 가정의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나”라거나 “소득이 비교적 높은 사람을 역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 재학생 이가형 씨(21)는 “다양한 장학금이 있지만 소득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주던 장학금은 성적장학금뿐이었다”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이제 장학금 받을 기회가 박탈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런 흐름이 과거와는 달라진 대학의 위상 등으로 빚어진 결과라는 설명도 나온다. 대학은 ‘우골탑’이라 불릴 정도로 고비용을 요구하는 교육기관이었지만, 최근에는 사실상 누구나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고 이에 따라 대학의 장학금도 복지의 한 방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누구나 대학에 가는 반면 대학 졸업장은 취업과 임금에서 예전 같은 이점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라며 “이 때문에 ‘국가와 대학이 보편적으로 학비를 지원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김도형 dodo@donga.com·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