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자체 컬렉션이 있는 재단의 경우 선호하는 예술적 경향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소장품을 관리하지 않는 에르메스는 주류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5일 만난 카트린 츠키니스 에르메스재단 디렉터(57)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프랑스 고급 브랜드 에르메스가 한국지사를 설립하며 만든 이 상이 어느덧 17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집 속의 집’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서도호도 2003년 이 상을 받았다. 국제적 브랜드의 후원인 만큼 신인 작가라면 한 번쯤 수상을 꿈꾸는 상이기도 하다. 최근 17회 수상자인 오민 작가 개인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츠키니스 디렉터는 에르메스 미술상의 독특한 심사 기준부터 설명했다. “독창성과 예술적, 문화적 배경 지식이 강한 작가”를 뽑는다고 말한 그는 의외로 인성도 중요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수상 작가는 프랑스 파리 각 분야의 고급 기술을 가진 장인들과 만나는 기회를 갖습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며 작품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너무 자신에게 취해 있으면 곤란하죠. 예술 활동만큼 인간적 교류와 공감 능력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상자는 누구였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그는 박윤영(2009년 수상)과 정은영 작가(2013년)를 꼽았다. 박윤영은 지팡이를 이용한 설치나 픽토그램 산수 작품을, 정은영은 1950년대 대중적 공연 장르였던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 문화의 흐름을 보여준 작가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역대 수상자를 봐도, 사회나 역사에 대한 의문이나 자각을 표현한 작가의 수상 경향이 높습니다.” 츠키니스 디렉터는 무용가 출신으로 프랑스 정부 무용 담당 고문으로 일하다 2008년 재단 설립 때부터 디렉터로 일해 왔다. 그는 “저 자신도 예술가였고, 정부에서 일했기에 무대 위 공연보다 그 이전 과정을 돕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르메스재단이 미술상을 운영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츠키니스 디렉터는 “에르메스가 한국에 진출할 때 상업적 활동과 더불어 한국 대중과 예술의 거리를 좁히자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며 “당시 한국은 현대미술이 도약하는 시기였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와 가까워지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작가에게 필요한 조건을 제공해 새로운 장을 열게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추석 연휴는 역시 사극? 혹은 의외의 복병이 관객을 사로잡을까? 12일 개봉한 ‘물괴’를 시작으로 연휴를 겨냥한 대작들의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19일에는 ‘안시성’ ‘명당’ ‘협상’이 개봉해 추석 박스오피스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네 영화 모두 100억∼200억 규모의 총제작비를 투입한 대작이지만 제작비가 관객 수를 보장하진 않는다. 이들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관객 1500만 명이 영화관을 찾아야 하는데 영화계는 전체 시장 규모를 1300만 명 안팎으로 추측하고 있어 최소 한 편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관상’(2013년), ‘사도’(2015년), ‘남한산성’(2017년)까지 매년 추석 연휴 흥행은 사극의 몫이었다. 그러나 현대극임에도 탄탄한 전개로 무장한 영화 ‘협상’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과연 어떤 작품이 경쟁에서 살아남을까.○ 몰입도 ‘최고’ 범죄오락영화 ‘협상’ 유일한 현대물인 ‘협상’은 범죄오락영화를 자처하며 네 영화 중 최고의 몰입감을 자랑한다. 흔히 사극이 겨냥하는 소재의 신기함보다 이야기의 긴장감 자체로 정면승부해 의외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경찰 최고의 협상가 하채윤(손예진)과 인질범 민태구(현빈)의 심리전을 다룬다. 대부분 장면이 협상이 이뤄지는 상황실과 민태구가 인질극을 벌이는 밀폐된 창고 등 한정된 공간에서 전개된다. 그런데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과 종잡을 수 없는 민태구의 속내가 맞물려 지루할 틈이 없다. ‘해운대’ ‘국제시장’ 등 대중적이면서도 탄탄하게 극을 만들어가는 JK필름의 노하우가 돋보인다. 여성 협상가가 특유의 감성과 강단으로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아드레날린 넘치는 전투 ‘안시성’ ‘안시성’은 사극이지만 소재도 참신하고 대규모 제작비만큼 볼거리도 화려하다. 고구려 군사 5000명이 당나라 대군 20만 명과 맞서 싸워 승리했다는 ‘안시성 전투’를 소재로 한다.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조인성)은 물론이고 추수지(배성우), 파소(엄태구) 활보(오대환) 등 고구려인의 호전적 모습을 살린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돋보인다. 또 1초당 1000프레임으로 촬영해 슬로모션처럼 보이는 전투 장면은 스파르타인을 그린 영화 ‘300’을 떠올리게 한다. 기상천외한 전술로 당나라군을 무찌르는 장면, 인물들이 전장에 뛰어들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한다. ‘젊고 섹시한 사극’을 만들고 싶었다는 김광식 감독의 의도처럼 장르는 사극이지만 젊은 관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극 공식에 충실 ‘명당’ ‘관상’ ‘궁합’에 이은 주피터필름의 사극 ‘명당’은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기존 사극 공식을 벗어나지 않아 식상하다. 영화는 땅의 기운을 읽어낼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이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과 함께 명당으로 나라를 지배하려는 세도 가문의 탐욕을 막고자 한 과정을 담았다.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은 풍수지리나 명당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를 기대하지만 이는 소재에 불과하다. 결국 왕족과 세도가의 권력 다툼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해 김이 빠진다. 무덤 자리만으로 한 가문이 조정을 장악한다는 설정은 판타지적이나 뒤로 갈수록 진부한 정치권력 다툼 사극이 전개돼 혼란스럽다.○ 최초 사극 크리처 무비 ‘물괴’ 이미 개봉한 ‘물괴’는 “밤에 개와 같은 짐승이 문소전(文昭殿) 뒤에서 나와 앞 묘전(廟殿)으로 향하는 것을, 전복(殿僕)이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는 중종실록의 기록에서 시작한다. 국내 최초 사극판 괴수물로 조선시대 중종의 명으로 괴물을 추적하는 과거의 내금위장 윤겸(김명민)과 내금위 수하 성한(김인권)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수준급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탄생한 괴물의 존재감은 어색하지 않고 참신하다. 그러나 ‘물괴’에서도 괴물은 관심을 끌기 위한 소재일 뿐 무력한 왕인 중종(박희순)과 역모를 꿈꾸는 심운(이경영)의 대립이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추석 연휴는 역시 사극? 혹은 의외의 복병이 관객을 사로잡을까? 12일 개봉한 ‘물괴’를 시작으로 연휴를 겨냥한 대작들의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19일에는 ‘안시성’, ‘명당’, ‘협상’이 개봉해 추석 박스오피스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네 영화 모두 100억~200억 규모의 총제작비를 투입한 대작이지만, 제작비가 관객 수를 보장하진 않는다. 이들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관객 1500만 명이 영화관을 찾아야 하는데, 영화계는 전체 시장 규모를 1300만 명 안팎으로 추측하고 있어 최소 한 편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관상’(2013년), ‘사도(2015년)’, ‘남한산성’(2017년)까지 매년 추석 연휴 흥행은 사극의 몫이었다. 그러나 현대극임에도 탄탄한 전개로 무장한 영화 ‘협상’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과연 어떤 작품이 경쟁에서 살아남을까? ● 몰입도 ‘최고’ 범죄오락영화 ‘협상’ 유일한 현대물인 ‘협상’은 범죄오락영화를 자처하며 네 영화 중 최고의 몰입감을 자랑한다. 흔히 사극이 겨냥하는 소재의 신기함보다 이야기의 긴장감 자체로 정면 승부해 의외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경찰 최고의 협상가 하채윤(손예진)과 인질범 민태구(현빈)의 심리전을 다룬다. 대부분 장면이 협상이 이뤄지는 상황실과 민태구가 인질극을 벌이는 밀폐된 창고 등 한정된 공간에서 전개된다. 그런데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과 종잡을 수 없는 민태구의 속내가 맞물려 지루할 틈이 없다. ‘해운대’, ‘국제시장’ 등 대중적이면서도 탄탄하게 극을 만들어가는 JK필름의 노하우가 돋보인다. 여성 협상가가 특유의 감성과 강단으로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 아드레날린 넘치는 전투 ‘안시성’ ‘안시성’은 사극이지만 소재도 참신하고, 대규모 제작비만큼 볼거리도 화려하다. 고구려 군사 5000명이 당나라 대군 20만 명과 맞서 싸워 승리했다는 ‘안시성 전투’를 소재로 한다.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조인성)은 물론 추수지(배성우), 파소(엄태구) 활보(오대환) 등 고구려인의 호전적 모습을 살린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돋보인다. 또 1초당 1000프레임으로 촬영해 슬로모션처럼 보이는 전투 장면은 스파르타인을 그린 영화 ‘300’을 떠올리게 한다. 기상천외한 전술로 당나라군을 무찌르는 장면, 인물들이 전장에 뛰어들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한다. ‘젊고 섹시한 사극’을 만들고 싶었다는 김광식 감독의 의도처럼 장르는 사극이지만 젊은 관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 기존 사극 공식에 충실 ‘명당’ ‘관상’ ‘궁합’에 이은 주피터필름의 사극 ‘명당’은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기존 사극 공식을 벗어나지 않아 식상하다. 영화는 땅의 기운을 읽어낼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이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과 함께 명당으로 나라를 지배하려는 세도 가문의 탐욕을 막고자 한 과정을 담았다.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은 풍수지리나 명당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를 기대하지만 이는 소재에 불과하다. 결국 왕족과 세도가의 권력 다툼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해 김이 빠진다. 무덤 자리만으로 한 가문이 조정을 장악한다는 설정은 판타지적이나 뒤로 갈수록 진부한 정치권력 다툼 사극이 전개돼 혼란스럽다. ● 최초 사극 크리처 무비 ‘물괴’ 이미 개봉한 ‘물괴’는 “밤에 개와 같은 짐승이 문소전(文昭殿) 뒤에서 나와 앞 묘전(廟殿)으로 향하는 것을, 전복(殿僕)이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는 중종실록의 기록에서 시작한다. 국내 최초 사극판 괴수물로 조선시대 중종의 명으로 괴물을 추적하는 과거의 내금위장 윤겸(김명민)과 내금위 수하 성한(김인권)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수준급 CG를 통해 탄생한 괴물의 존재감은 어색하지 않고 참신하다. 그러나 ‘물괴’에서도 괴물은 관심을 끌기 위한 소재일뿐, 무력한 왕인 중종(박희순)과 역모를 꿈꾸는 심운(이경영)의 대립이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김민 기자kimmin@donga.com}

1993년 출간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아직 유효할까? 전 세계에서 5000만 부 넘게 팔려나가며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에 관한 혁신적 시각을 보여준 ‘화성에서…’의 저자가 21세기 상황에 맞춰 새 책을 냈다. 제목에서 엿보이듯 ‘화성인’과 ‘금성인’ 구분을 그대로 유지하되, 새롭게 변한 남녀의 지위에 맞춰 여러 가지 조언을 전개한다. 저자는 과거와 달리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독립적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화성인 같은 여성’ ‘금성인 같은 남성’이 더 많아졌다고 진단한다. 요즘은 남녀의 구분보다 ‘양성성’을 가지면서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관계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또 상대방이 변하길 바라기보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관계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빠르게 변한 사회만큼 사람들의 관계도 다양해진 가운데 이성 관계에 한정된 조언을 현대 독자들이 여전히 반길지는 의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단정적인 표현이 흥미로운 자기계발서라기보단 도덕책처럼 느껴진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초코파이로 남북 평화 통일 기원요? 눈길은 가는데, 이게 왜 예술인지는 이해가 잘 안 돼요.” 8일 2018 부산비엔날레가 열린 부산현대미술관의 한 전시장. 10만 개의 초코파이로 만든 작품을 본 한 관객의 반응이다. 관객이 먹을 수 있는 작품은 영국 개념미술가 로엘로프 루가 1967년 ‘오렌지 피라미드’로, 1991년에는 미국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가 사탕을 쌓은 ‘무제’로 선보인 바 있다. 루의 ‘오렌지’는 예술의 정의에 관한 의문을, 곤살레스토레스의 사탕은 연인을 잃은 개인적 아픔을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초코파이와 ‘정’을 남북 관계로 연결짓는 것은 다소 식상해 보였다. 사실 이 작품은 이번 부산비엔날레 주제인 ‘비록 떨어져 있어도(Divided We Stand)’와 이어진다. 주제의 문구는 이솝 우화의 속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어순을 바꾸고 축약한 것으로 원어는 ‘흩어져도 산다’에 가깝다. 구체적으로는 냉전 이후 분단된 영토를 다룬다는 취지다. 한반도 상황은 물론이고 난민 문제 등 국제적 이슈까지 아우르려는 의도로 읽힌다. 11월 1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34개국 66개 팀의 작품 125점을 부산현대미술관과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 공개한다. 인도와 파키스탄 군사분계선을 담은 아마르 칸와르의 ‘시즌 아웃사이드’(1997년), 유럽 청년 극우파의 이중성을 다룬 헨리케 나우만의 ‘독일 통일을 애도하는 제단’(2018년) 등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분열되는 세계를 조명한 모습은 ‘상상된 경계들’을 주제로 내세운 2018 광주비엔날레와 유사했다. 두 비엔날레를 직접 본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이민 경계 탈식민주의는 10년 전부터 사회과학에서 유행한 용어”라며 “최근 비엔날레가 공적 역할을 부각하려고 사회적 이슈를 다루지만, 격년제로 자주 열리며 비슷한 주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는 해외 미술계에서도 지적된다. 영국 서펀타인 갤러리의 예술감독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처음엔 비엔날레가 다양성을 보여줬지만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서로 비슷해져서 문제”라며 “2년마다 새 기획자, 작품을 선정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비엔날레에도 부족한 준비 기간에 대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당초 베니스 비엔날레는 처음부터 일종의 ‘예술 올림픽’적 성격을 띠면서 각국의 경쟁을 유도하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는 시대 증언이라는 새로운 현대미술의 속성을 보여줘 주목받았다. 그러나 국내 미술계의 사정을 고려하면 비엔날레 개최가 효과적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예술계 인사는 “공공자금을 사용할 때 첫째는 시민에게 예술을 이해하는 기회가 주어지는지, 둘째로는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냉정하게 국내 상황을 볼 때 시민들이 볼만한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가의 전시를 개최해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책이 찍어내기 무섭게 팔려나가 딱히 홍보도 못했다. 온라인에 공개한 저자 칼럼과 서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급속도로 퍼지며 자연스레 입소문을 탔다. 100만 명 넘게 칼럼을 봤고, 책은 최근까지 30만 부가 팔렸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사진) 이야기다. 잡지 ‘대학내일’ 디지털미디어편집장 출신인 저자 정문정 작가(32)는 출간 전부터 ‘글발’ 좋은 칼럼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에게 온라인에서 잘 읽히는 글쓰기에 대해 들어봤다. ―‘무례한…’이 온라인으로 입소문이 퍼지게 된 과정은…. “포털 사이트 메인 말고도 다양한 통로가 있다. 처음엔 블로그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것이 1boon(일분·모바일 맞춤형 짧은 콘텐츠 서비스)을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 가면서 파급력이 세졌다. 페이스북도 있고, 내가 직접 확인하지 못한 다른 통로도 많을 것이다.” ―온라인에 맞는 표현을 고민한 결과인가. “맞다. 온라인에서 먹히는 콘텐츠는 따로 있다. 잡지 기자를 하다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적응하는 데 고생했다. 종이로 볼 때 좋은 글이어도 모니터나 휴대전화에선 안 읽힐 수 있다. 웹툰을 보듯 스크롤하며 읽기 때문에 최대한 편한 호흡으로, 친근하게 써야 한다.” ―온라인 독자를 사로잡은 비법을 공개한다면…. “우선 클릭하고 싶은 제목을 정해야 한다. 글의 첫 문단에 매력적인 얘기를 많이 넣는 것도 중요하다. 스크롤하면서 보는 독자들은 아무래도 참을성과 집중력이 떨어진다. 정보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아예 읽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간단한 핵심 주제를 처음과 중간, 마지막에 3번 반복해 쓰는 편이다. 새로운 정보보다 ‘공감’이 되는 글을 쓰려고 해야 한다.” ―책 서문에서 개그우먼 ‘김숙’을 언급했는데 같은 맥락인가. “김숙과 이효리가 한국의 20, 30대 여성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걸 멋있게 느낄 거라 봤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좋은 촉매제였다.” ―온라인에서 텍스트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많이 본다지만, 실제로 텍스트를 더 많이 접한다.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하고 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기반은 모두 텍스트다. 다만 지면에 맞는 밀도 높은 텍스트가 아니라 편안하게 읽히는 텍스트를 원한다. 여전히 그런 콘텐츠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 ―준비하는 다음 작업은…. “올해까지는 ‘무례한…’을 사랑해준 독자를 위해 강의를 많이 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직장생활에 관한 책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활자의 위기를 논하는 영상의 시대에 때 아닌 ‘긴 글’ 바람이 불고 있다.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쇼트폼(short form)’ 콘텐츠와 반대로,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읽을거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각광받는다. 넘쳐나는 영상물로부터 정신을 해독시키길 갈망하는 이들을 일컫는 ‘비디오 디톡서(Video Detoxer)’란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비디오 디톡서들이 찾는 텍스트 콘텐츠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실용적인 글과는 결이 다르다. 같은 정보라도 문학적 감수성을 더하거나 개성 있는 체험이나 통찰을 살려 정리한 글이 많다. 굳이 따지면 블로그보다 진중하고 전문서적보다 알기 쉽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글을 찾는 이유로 ‘대충 쓴 영양가 없는 글이나 광고·홍보 성격이 짙은 콘텐츠에 지쳤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박자영 씨(27)는 “출퇴근 자투리 시간에 의미 없는 글이나 영상을 보며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게 싫었다”며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밀도 있는 콘텐츠에 대한 갈증을 느껴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이성수 씨도 “무한대로 쏟아지는 3분 내외 동영상들은 보고 나서도 남는 게 없고, 답답하기만 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수요가 급증하면서 ‘긴 글 전용 온라인 플랫폼’들도 최근 크게 성장하고 있다. 2015년 시작한 ‘브런치’는 글을 게재할 권한이 주어지는 작가가 되는 자격이 까다롭다. 현재 2만여 명의 작가를 보유하고 있는데, 미리 글들을 심사해 퀄리티를 유지한다. ‘퍼블리’는 비교적 현장 전문가를 저자로 섭외해 기획단계에서 예약 펀딩을 받거나 정기결제를 통해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공급한다. ‘스티밋’은 저자에게 독자의 추천 수에 비례해 일종의 가상화폐인 ‘스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신력을 끌어올린다. 비디오 디톡서에게 인기 있는 글감은 아무래도 자기계발이나 취미를 깊이 있게 다룬 것이 많다. 워킹맘의 하루, 낯선 직업의 세계, 퇴사 준비기를 소개한 글도 인기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 ‘어쩌다 마주친 발레’를 출간한 윤지영 작가(45)는 “사적인 일기가 아니라 궁금해할 만한 정보들을 담는다. 영상보단 여백이 있는 글이 적합하다”며 “플랫폼에서 작가 자격을 얻어서 글을 쓰는 거라 책임감이 크다”고 했다. ‘콘텐츠의 비용’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공짜 글’보다는 돈을 지불하더라도 양질의 글을 추구한다. 마케팅을 전공하는 대학생 이소연 씨(20)는 퍼블리를 통해 “6월 열린 칸 국제광고제 현장 소식을 발 빠르게 받아봤다”며 “이전엔 글을 돈 내고 읽는다는 게 낯선 개념이었지만, 이젠 믿을 수 있는 콘텐츠라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 플랫폼은 이용자 환경도 긴 글 애호가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브런치의 허유진 담당 디자이너는 “독자 입장에서 긴 글이 잘 읽히도록 문장과 문단의 여백, 행간의 차이, 글자의 두께, 자간 등을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이제 수준 있는 긴 글의 인기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인기 있는 콘텐츠는 책 출간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최근까지 박창선 작가의 ‘디자이너 사용설명서’ 등 총 900여 권이 이런 방식을 거쳐 출판됐다. 브런치 관계자는 “작가들이 지속적인 창작과 출간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주문형 출판서비스 등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도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윤경 yunique@donga.com·김민 기자}

활자의 위기를 논하는 영상의 시대에 때 아닌 ‘긴 글’ 바람이 불고 있다.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숏폼(short form)’ 콘텐츠와 반대로,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읽을거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각광받는다. 넘쳐나는 영상물로부터 정신을 해독시키길 갈망하는 이들을 일컫는 ‘비디오 디톡서(Video Detoxer)’란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비디오 디톡서들이 찾는 텍스트 콘텐츠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실용적인 글들과는 결이 다르다. 같은 정보라도 문학적 감수성을 더하거나 개성 있는 체험이나 통찰을 문장력을 살려 정리한 글들이 많다. 굳이 따지면 블로그보단 진중하고 전문서적보다 알기 쉽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글을 찾는 이유로 ‘대충 쓴 영양가 없는 글이나 광고·홍보 성격이 짙은 콘텐츠에 지쳤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박자영 씨(27)는 “주로 출퇴근 자투리 시간에 의미 없는 글이나 영상을 보며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게 싫었다”며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밀도 있는 컨텐츠에 대한 갈증을 느껴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이성수 씨도 “무한대로 쏟아지는 3분 내외 동영상 영상들은 보고 나서도 남는 게 없고, 답답하기만 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수요가 급증하면서 ‘긴 글 전용 온라인 플랫폼’들도 최근 크게 성장하고 있다. 2015년 시작한 ‘브런치’는 글을 게재할 권한이 주어지는 작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까다롭다. 현재 2만여 명의 작가를 보유하고 있는데, 미리 글들을 심사해 퀄리티를 유지한다. ‘퍼블리’는 비교적 현장 전문가를 저자로 섭외해 기획단계에서 예약 펀딩을 받거나 정기결제를 통해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공급한다. ‘스티밋’은 저자에게 독자의 추천 수에 비례해 일종의 가상화폐인 ‘스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신력을 끌어 올린다. 비디오 디톡서에게 인기 있는 글감은 아무래도 자기계발이나 취미를 깊이 있게 다룬 것들이 많다. 워킹맘의 하루, 낯선 직업의 세계, 퇴사 준비기를 소개한 글도 인기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 ‘웰컴 투 발레월드’를 쓴 윤지영 작가(45)는 “사적인 일기가 아니라 궁금해 할만한 정보들을 담는다. 영상보단 여백이 있는 글이 적합하다”며 “플랫폼에서 작가 자격을 얻어서 글을 쓰는 거라 책임감이 크다”고 했다. ‘콘텐츠의 비용’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공짜 글’보다는 돈을 지불하더라도 양질의 글을 추구한다. 퍼블리 측에 따르면 월 5만 원 이상을 내는 고객이 전체 80%이상을 차지할 정도. 마케팅을 전공하는 대학생 이소연 씨(20)는 퍼블리를 통해 “6월 열린 칸 국제광고제 현장 소식을 발 빠르게 받아봤다”며 “이전엔 글을 돈 내고 읽는다는 게 낯선 개념이었지만, 이젠 믿을 수 있는 콘텐츠라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 플랫폼은 이용자 환경도 긴 글 애호가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브런치의 허유진 담당 디자이너는 “독자 입장에서 긴 글이 잘 읽히도록 문장과 문단의 여백, 행간의 차이, 글자의 두께, 자간 등을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이제 수준 있는 긴 글의 인기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인기 있는 콘텐츠는 책 출간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최근까지 박창선 작가의 ‘디자이너 사용설명서’ 등 총 900여 권이 이런 방식을 거쳐 출판됐다. 브런치 관계자는 “작가들이 지속적인 창작과 출간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주문형 출판서비스 등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도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윤경 기자yunique@donga.com 김민 기자kimmin@donga.com‘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저자 정문정 작가 책이 찍어내기 무섭게 팔려나가 딱히 홍보도 못했다. 온라인에 공개한 저자 칼럼과 서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급속도로 퍼지며 자연스레 입소문을 탔다. 100만 명 넘게 칼럼을 봤고, 책은 최근까지 30만 부가 팔렸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이야기다. 잡지 ‘대학내일’ 디지털미디어편집장 출신인 저자 정문정 작가(32)는 출간 전부터 ‘글빨’ 좋은 칼럼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에게 온라인에서 잘 읽히는 글쓰기에 대해 들어봤다. -‘무례한…’이 온라인으로 입소문이 퍼지게 된 과정은? “포탈사이트 메인 말고도 다양한 통로가 있다. 처음엔 블로그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것이 1boon(일분·모바일 맞춤형 짧은 컨텐츠 서비스)을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 가면서 파급력이 세졌다. 페이스북도 있고, 내가 직접 확인하지 못한 다른 통로도 많을 것이다.” -온라인에 맞는 표현을 고민한 결과인가? “맞다. 온라인에서 먹히는 컨텐츠는 따로 있다. 잡지 기자를 하다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적응하는 데 고생했다. 종이로 볼 때 좋은 글이어도 모니터나 휴대전화에선 안 읽힐 수 있다. 웹툰을 보듯 스크롤하며 읽기 때문에 최대한 편한 호흡으로, 친근하게 써야 한다.” -온라인 독자를 사로잡은 비법을 공개한다면? “우선 클릭하고 싶은 제목을 정해야 한다. 글의 첫 문단에 매력적인 얘기를 많이 넣는 것도 중요하다. 스크롤하면서 보는 독자들은 아무래도 참을성과 집중력이 떨어진다. 정보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아예 읽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간단한 핵심 주제를 처음과 중간, 마지막에 3번 반복해 쓰는 편이다. 새로운 정보보다 ‘공감’이 되는 글을 쓰려고 해야 한다.” -책 서문에서 개그우먼 ‘김숙’을 언급했는데 같은 맥락인가. “김숙과 이효리가 한국의 20~30대 여성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걸 멋있게 느낄 거라 봤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좋은 촉매제였다.” -온라인에서 텍스트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많이 본다지만, 실제로 텍스트를 더 많이 접한다.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하고 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기반은 모두 텍스트다. 다만 지면에 맞는 밀도 높은 텍스트가 아니라 편안하게 읽는 텍스트를 원한다. 여전히 그런 컨텐츠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 -준비하는 다음 작업은? “올해까지는 ‘무례한…’을 사랑해준 독자를 위해 강의를 많이 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직장생활에 관한 책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다.” 김민 기자kimmin@donga.com}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코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리엄 코너가 어느 날 강물 위로 몸을 던진다. 그의 나이 88세. 곰팡이 전문가였던 코너는 죽기 직전까지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연구실에 놀러 온 증손자 딜런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지낸 그가 왜 목숨을 버린 것일까? 그를 사랑했던 동료 교수 제이크 스털링과 손녀 매기는 자살이라는 경찰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코너가 죽고 이틀 뒤 뉴욕에서 ‘731 악마’라는 문신을 새긴 일본인이 붙잡힌다. 코너는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에 세균전 전문가로 참전했다. 그리고 끔찍한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일본 ‘731 부대’ 포로 히타노 기타시를 만나 세계를 종말로 빠뜨리려는 계획을 저지시켰다. 이 일이 코너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은 그의 죽음 뒤 숨겨진 전쟁의 진실을 들춰내는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다룬다. 최신 과학 분야를 소재로 삼아 영화 ‘앤트맨’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소설은 과학적으로 더 설득력이 있다. 심지어 세계적 과학저널인 ‘네이처’지에서 ‘과학적 지식이 흠잡을 데 없다’고 호평했다. 사실 이 소설의 저자는 코넬대 물리학과 교수로 지난해 노벨상 수상이 유력했던 연구자였다. 대중에게 생소한 연구를 친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그의 노력에 인간적인 과학자의 면모가 물씬 풍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낡은 나무 의자 위에 놓인 다리. 앉은 모습이 안락하고 편해 보여야 하는데, 한쪽 발은 맨발, 다른 쪽 발은 구두를 신고 있어 어디론가 떠날 듯, 떠나지 않을 듯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설치 작품은 2018광주비엔날레에 공개된 카데르 아티아(48)의 ‘이동하는 경계들’이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광주비엔날레가 ‘상상된 경계들’을 주제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비엔날레관 등 광주 일대 곳곳에서 7일 공식 개막한다. 하루 앞서 6일 미리 본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난민 이슈가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국경에 대한 의문을 다양한 각도로 제기한 작품이 많았다. 어디에 있어도 정착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정서를 표현한 아티아의 작품은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기획 의도를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다수 큐레이터제를 도입해 여러 전문가가 7개 섹션으로 전시를 나누어 구성했다. 클라라 킴 테이트모던 수석큐레이터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주로 다룬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를, 이완 쿤 홍콩대 교수와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을 맡는 식이다. 최근 이슈가 충실하게 반영된 전시관을 보고 싶다면 그리티야 가위웡 태국 짐 톰슨 아트센터 큐레이터의 섹션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와 이완 쿤, 정연심 교수의 ‘지진’을 추천한다. 커미션 작업을 위해 광주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한 만큼 충실한 작업이 돋보이는 아티아의 설치 작품과 벨기에 작가 프랑시스 알리스의 최근작도 만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인 크리스틴 김, 리타 곤살레스의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정치’는 온라인을 소재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작가의 작품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완성도보다는 젊은 세대들의 시각 언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광주비엔날레에 종종 제기됐던 ‘대중성 부족’ 문제는 올해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난민이나 경계의 이슈가 국내에서도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올랐지만 국내 관객이 쉽게 공감할 만큼 크게 부각됐다고 보기는 이른 단계이기 때문이다. 여러 큐레이터가 각자 주제로 전시를 선보여 전체 이미지를 한눈에 그려 보기도 쉽지 않다. 현대 예술에 낯선 관객이라면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가 큐레이팅한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가 가장 쉽고 재미있는 즐길 거리가 될 듯하다. 사실적인 표현을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것이 특징인 북한의 ‘조선화’ 22점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그림들은 북한 도시 일상의 풍경이나 노동 현장을 그렸다. 문 교수는 “대부분 여러 사람이 그리는 ‘집체화’인 조선화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이기기 위해 ‘언제나 웃으라’고 강조한 국가 기조에 따라 노동 현장에도 웃는 모습을 그린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만석 독립큐레이터 겸 공간 힘 아키비스트가 기획한 ‘집결지와 비장소’는 지역성 문제를 인식한 듯 지역 이슈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응노의 군상부터 민중미술 작가 강연균의 ‘만장’ 프로젝트 등 강렬한 작품이 공간을 압도한다. 11월 11일까지. 1만∼1만4000원. 가족입장권(4인 기준) 3만2000원. 광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 나무를 가리키는 ‘당산나무’는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밑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았고,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 동네 어린아이들이 만나 세대를 아우르며 어울렸다.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며 간절한 바람을 묵묵히 들어주는 버팀목 역할도 했다. 당산나무를 35년 동안 촬영해 온 사진작가 오상조(66)의 개인전 ‘자연·인간, 공존의 공간―당산나무’(서울 종로구 ‘갤러리 나우’)는 그간 기록한 당산나무 중 22점을 선별했다. 전북 장수군, 전남 보성군, 영암군, 화순군 등 논밭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시골 작은 집을 움켜쥔 듯한 위용에서는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나무뿐 아니라 솟대, 선돌, 비석 돌탑, 서낭당 등 나무를 신으로 모신 사람들의 흔적도 함께 담았다. 작가는 시트 필름을 사용하는 대형 카메라로 당산나무를 촬영하고, 아날로그 방식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로 사진을 인화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체취를 담아 온 당산나무를 기록하기 위한 그 나름의 방식이다. 오 작가는 “민속학적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당산나무를 느림의 미학으로 관조하며 촬영하기 위해 대형 목제 카메라와 흑백 필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순심 갤러리 나우 대표는 “세월이 지나도 동구 밖에서 당산나무를 보면 나무 주변을 오갔던 추억이 떠오르듯, 사람들을 맞는 나무의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며 “역사와 추억이 담긴 공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관된 미학의 고수인가, 과거에 안주하는 안이함인가. 이강소 작가(75)의 1970년대 퍼포먼스를 그대로 재현한 전시 ‘소멸’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공개됐다. 전시장에서는 즉흥적 만남으로 의미를 자아낸 1973년 ‘소멸(선술집)’과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화제가 된 닭 퍼포먼스 ‘무제-75031’ 등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활동 중인 작가의 신작이 아닌 40여 년 전 작품을 재현한 전시에서 재해석이나 새로운 대목을 찾기는 어려워 신선함보다 씁쓸함이 남았다. 작가는 과거 작업을 재현한 계기에 대해 “내 작품은 관객이 상상하는 것이기에 지금의 관객에겐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1980년대부터 찰흙 조각과 ‘오리’로 유명한 회화를 선보일 때도 “관객이 느끼면 된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는 반세기 전인 1960, 70년대 미국 중심으로 일어난 ‘미니멀리즘 예술’, ‘과정 예술’의 미학과 다르지 않다. 다만 ‘한국인의 선은 기운이 다르다’는 등 동양적 사상을 차별점으로 설명했지만, 그것을 조형 언어로 찾기는 쉽지 않다. 간담회 현장에서도 ‘외견상 단색화와 구분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작가는 “내 작품을 단색화로 보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했다. 국제 미술계는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작가의 관점을 적극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한결같은 작업의 이유를 묻자 작가는 “자기주장은 근대적 아우성”이라며 “현대에는 관객의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내 작업은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작가의 미학적 출발뿐 아니라 변화도 가치의 중요한 기준이다. 미학의 견고함은 작품 변화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비슷한 조형 언어를 고수하는 것은 한국 주류 미술계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오상길 미술 비평가 겸 작가는 “적절한 비평을 제공하지 못한 환경 탓”이라며 “작가는 비평적 검증을 통해 당대 이슈를 성찰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재능이 감각적 유희로 흘러 안타깝다”고 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과거부터 관전(官展)을 중심으로 한 일부 작가들이 대학에서 안정적인 직위를 갖고 순탄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분위기가 주류 미술계에 만연해 유사한 조형 언어를 반복하는 폐해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이 예술을 전업으로 삼는 작가들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갤러리현대 측은 간담회에서 “광주 비엔날레를 계기로 국제 미술계에 한국 실험 미술을 선보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미술계 관계자는 “미학이 부족한 작품 띄우기가 장기적으로 시장 침체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영화상류사회(사진)감독 변혁. 출연 박해일, 수애. 청소년 관람불가. 29일 개봉.욕망의 민낯 그린 블랙 코미디. ★★☆ (★ 5개 만점)서치감독 아니시 차간티. 출연 존 조, 데브라 메싱. 12세 관람가. 29일 개봉.컴퓨터 모니터만으로 설명되는 개인의 일상. ★★★★ ■ 공연뮤지컬 지하철 1호선(사진) 그때 그 시절 서울 풍경을 담은 객차가 다시 달린다. 9월 8일∼12월 30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소극장. 6만 원. ♥♥♥(두근지수 ♥ 5개 만점)연극 ‘아라비안나이트’무더운 여름날, 마법에 걸린 아파트에서 일어난 기묘한 이야기.9월 4∼1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3만 원. ♥♥♥ ■ 클래식오페라 ‘코지 판 투테’(사진)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모차르트의 3대 희극 오페라.9월 6∼9일 평일 오후 7시 반, 주말 오후 4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만∼15만 원. 가을을 앞둔 날씨에 어울리는 연애 사기 소동. ♥♥♥서울시향 2018 리오넬 브랭기에의 프로코피예프피아니스트 문지영이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9월 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만∼7만 원. 1920년대 파리의 정취를 담은 클래식 공연. ♥♥♥ ■ 콘서트엘리 골딩(사진)유튜브 조회수 17억 회를 기록한 ‘Love Me Like You Do’를 부른 영국 싱어송라이터. 9월 6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8만8000∼9만9000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어바웃 타임’…. 영화에 어울리는 극적인 노래들. ♥♥♥♥에이치얼랏모던 록, 펑크 록, 헤비메탈을 교배해내는 뜨거운 그룹. 9월 1일 오후 7시 서울 플랫폼창동61 레드박스. 2만 원. 멜로디와 에너지의 황금비율. ♥♥♥♥}

《정부 시스템이 망가지기 직전의 혼란 속 멕시코. 메마른 황야에 선 한 남자가 토네이도 속으로 뛰어든다. 멕시코시티의 번화가에서는 권총을 들고 거리를 걸으며 시민의 반응을 살피다 경찰에 체포된다. 스릴러 영화 같은 이 작업들은 벨기에 출신 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59)의 퍼포먼스 작품이다. 그는 2000년대부터 세계를 매혹시키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뉴욕의 메이저 상업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는 물론이고 뉴욕 현대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 등 공공 미술관도 개인전을 열어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2011년 미국 뉴스위크는 그를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예술가 1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알리스를 28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났다. 미리 본 전시에서 작품 ‘다리’(2006년)가 눈에 띄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쿠바인들이 미국 플로리다 남부 다리에서 발견된 사건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이민당국은 보트를 타고 몰래 국경을 넘는 이민자를 바다에서 발견하면 쫓아내고, 육지에서 발견하면 받아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다리를 육지로 볼 것인가를 두고 법적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한 알리스는 쿠바의 어선과 미국의 개인 보트를 연결해 다리를 놓아 보기로 했다. 그 과정과 결과를 영상,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두 담은 것이 이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년)는 북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사이 전략적 요충지인 지브롤터 해협의 양쪽 해안에서 스페인과 모로코의 아이들이 작은 보트를 들고 서로를 향해 걷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처럼 그는 단순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행위를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 맥락에 놓고 다양한 의미를 이끌어낸다. 보트로 다리를 지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되묻는 식이다. “현실의 모순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아주 순진하고 바보 같은 요소를 넣으면 그 상황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흔들어 다른 해석을 열고자 한 것이죠.” 국가 간 경계와 이동에 관심을 갖는 작가인 만큼 한반도의 분단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프로젝트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DMZ에도 가봤습니다. 그 후 여러 자료를 읽고 있어요. 아주 큰 덩어리의 땅을 사이에 두고 서로 보지 못한 채 의심하는 상황이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아시아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중요시하며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한국 작가 이불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올해 6월 우연히 영국 런던에서 이불 씨의 전시를 봤어요. 그녀의 언어는 거침이 없어 관객에게조차 아주 혹독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관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하나? 너무 친절한 거 아닌가?’ 하고 자문했죠.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 용기를 저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갈등의 현장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그는 예술이 세계를 바꿀 힘이 있다고 믿을까? “저는 그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그것을 위해 도전하면서 새로운 해석과 다른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높은 하이힐에 어깨를 강조한 슈트를 입고 차가운 복도를 걷는다. 그러다 남편 장태준(박해일)이 국회의원 후보가 됐다는 전화에 아이처럼 팔짝 뛰며 소리 지른다. 이어 미술관 관장이 되기 위해 중요한 업무를 후배에게서 가로채고는 “이런 일도 네임 밸류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차가운 얼굴로 쏘아 붙인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상류사회’에서 배우 수애(39)가 맡은 오수연의 모습이다. 욕망에 가득 차 물불 가리지 않는 캐릭터는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클레어 언더우드를 연상시킨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퍼스트레이디가 되려고 몸부림쳤던 드라마 ‘야왕’의 주다해와도 겹친다.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에서 어느새 ‘야망’의 옷을 입고 있는 수애를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수애는 오수연을 ‘겉은 우아하지만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백조’라고 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직업의식이 투철한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상류사회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실력만으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박탈감과 왜곡된 욕망이 생긴 거죠. 시험 볼 때 꼴찌가 아니라 2등이 꼭 울잖아요. 수연도 그런 처지였을 겁니다.”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수애는 캐릭터의 완성도와 생동감에 매력을 느꼈다. 변혁 감독과 세 차례 만나면서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출연을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박해일을 직접 만나 출연을 권유하기도 했단다. 그가 조용한 성격이라는 걸 알던 박해일은 “제안을 하는 순간 이미 수애는 오수연이 되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오수연의 직업적 특성 때문에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영화 ‘국가대표2’에서는 유니폼을 주로 입었고, ‘심야의 FM’에서는 단벌이었는데 이번에는 의상이 매번 바뀌어 새로웠어요. 여린 모습을 피하고 싶어 주로 무채색에 목을 가리는 터틀넥을 많이 입었죠. 보통은 한두 번 입어보고 의상을 결정하는데, 이번에는 다섯 번씩 입어보며 철저히 따져봤지요.” ‘인간 수애’가 지금까지 가장 크게 가져본 욕망을 물었다. “개봉할 때마다 영화가 잘되길 바라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인 때 ‘과정이 중요한 거 아니냐’는 철없는(?) 소리를 했어요. 저 혼자 즐겁자고 하는 직업이 아닌데 많은 걸 간과했다는 걸 알고 나니 어깨가 무거워지더라고요. 제가 영화에서 사실 타율이 썩 좋지 않았는데…(웃음). 열심히 하는 것과 결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청순한 역은 물론 팜 파탈 역에도 욕심이 많지만 당분간은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고양이 ‘집사’가 된 지 3개월이 됐어요. 키우던 ‘봄이’라는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 지금은 고양이 ‘콩새’를 돌보는데, 고양이에게는 다 ‘해드려야’ 해서 정말 집사가 된 기분이에요. 덕분에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게 됐죠. 매일 오전 8시 필라테스를 할 때가 가장 상쾌해요. 연기는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이제는 내 삶과의 균형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선 회화 전시인데 입구에 서면 어두운 터널만 보인다. 이 터널을 따라 걸어가면 영화 ‘취화선’(2002년)에 출연했던 배우 최민식과 안성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면 인조 잔디와 갈대, 거울로 가득한 전시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의 ‘군마도’ 속 풀숲을 직접 걸어 다니는 느낌이 들도록 배치한 공간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 최후의 거장―장승업×취화선’전이 최근 화제다. 장승업의 작품 29점과 소림 조석진(17점), 심전 안중식(10점) 등 총 56점을 감상할 수 있다.간송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동 주최한 전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 명장면을 함께 전시하는 등 대중이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힘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장승업전 직전에 열린 ‘바람을 그리다’전은 혜원 신윤복과 겸재 정선의 작품을 인스타그램에서 볼 법한 해시태그 같은 친근한 표현과 함께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그만한 발랄함은 없지만, 그림 옆에 적힌 글귀를 쉽게 읽도록 한글 설명을 첨부하고 감각적인 큐레이팅을 더했다. 현재까지 두 전시 통틀어 관객 약 5만 명이 찾았다. 장승업의 대표작인 ‘삼인문년’과 쌍폭의 ‘남극노인도’가 전시된 공간에는 조향사가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향이 풍겨온다. ‘남극노인도’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노인(남극성)에게 천진난만하게 복숭아를 바치는 동방삭을, ‘삼인문년’은 서로 나이가 많다고 자랑하는 세 신선을 그렸다. 이에 맞춰 흙냄새를 머금은 나무와 복숭아 향이 배합된 향기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으로 이어지는 현대 동양화의 출발점인 장승업의 다양한 작품을 고루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세밀한 부분까지 확대해서 보여주는 디지털 병풍은 원작은 보존하면서, 대중적으로 작품에 접근하기 쉽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고미술을 일상적 언어로 풀어내는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의 설명도 인기라고 한다. 1만 원. 11월 3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순 제작비 200억 원(신과 함께-인과연), 190억 원(인랑), 165억 원(공작)…. 특수효과로 무장한 판타지 영화나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대작이 휩쓸고 간 올여름 극장가에 참신한 소재와 연출을 앞세운 소규모 영화들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서치’는 ‘스타트렉’에 출연해 잘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았다. 평범한 가장 데이비드(존 조)가 부재중 전화 3통을 남기고 사라진 딸 마고(미셸 라)를 찾기 위해 컴퓨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추적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든 장면을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구성해 새롭다. 영화는 SNS의 셀카나 라이브 영상을 통해 사라진 딸의 감정과 행방을 파악한다. 인물들이 메신저에서 대화할 때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하며 속내를 드러내도록 하는 연출도 기발하다. 여기에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온라인 기사와 무더기로 쏟아지는 악플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배려 없이 사건을 소비하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도 드러난다. 주인공이 잠들면 스크린에는 모니터 화면 보호기가 등장하는 등 컴퓨터와 모바일 화면만으로 24시간을 표현할 수 있다니 섬뜩한 기분도 든다. 이런 연출은 1991년생 인도 출신 감독 아니시 차간티의 독특한 이력과도 연관이 있다. 차간티는 ‘구글 글라스’를 이용해 미국에서 아내의 임신 소식을 인도에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알리는 과정을 담은 홍보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이후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일하며 콘텐츠 제작을 담당했다. 당초 6분짜리 단편으로 기획했지만 제작사의 권유로 장편으로 전환했고,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소니픽처스가 전 세계 배급권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배우들도 새로운 연출 방식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존 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서 17일 동시 생중계로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상대 배우의 얼굴을 보고 서로 의논도 하는 보통 촬영 현장과 달리, 이어폰으로 목소리를 듣고 카메라만 보며 연기를 해야 해서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대부분 컴퓨터 모니터 위에 초소형 카메라인 ‘고프로’를 두고 연기했다. 15일 개봉한 한국 영화 ‘목격자’는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로 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회식을 마치고 늦게 귀가한 직장인 한상훈(이성민)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다 살인범(곽시양)과 눈을 마주친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목격자인 한상훈의 입을 막으려는 살인범의 위협, 아파트 값을 사수하려는 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 등을 그렸다. 일상적 공간인 아파트가 순식간에 공포스러운 곳으로 변하고, 쉴 틈 없는 사건 전개로 중반부까지 관객을 몰아가는 연출이 돋보인다. 22일 기준으로 관객 160만 명을 넘어섰다. 손익분기점이 184만 명으로, 제작비는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흥미로운 소재로 관객의 호기심을 사로잡고 있다. 해외 57개국에 판매돼 북미와 호주, 뉴질랜드에서 이달 말에, 대만에서는 다음 달에 각각 개봉할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순 제작비 200억 원(신과함께-인과연), 190억 원(인랑), 165억 원(공작)…. 특수 효과로 무장한 판타지 영화나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대작이 휩쓸고 간 올 여름 극장가에 참신한 소재와 연출을 앞세운 소규모 영화들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서치’는 ‘스타트렉’에 출연해 잘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았다. 평범한 가장 데이빗(존 조)이 부재중 전화 3통을 남기고 사라진 딸 마고(미셸 라)를 찾기 위해 컴퓨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추적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든 장면을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구성해 새롭다. 영화는 SNS의 셀카나 라이브 영상을 통해 사라진 딸의 감정과 행방을 파악한다. 인물들이 메신저에서 대화할 때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하며 속내를 드러내도록 하는 연출도 기발하다. 여기에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온라인 기사와 무더기로 쏟아지는 악플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배려 없이 사건을 소비하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드러난다. 주인공이 잠들면 스크린에는 모니터 화면 보호기가 등장하는 등, 컴퓨터와 모바일 화면만으로 24시간을 표현할 수 있다니 섬뜩한 기분도 든다. 이런 연출은 1991년생 인도 출신 감독 아니쉬 차간티의 독특한 이력과도 연관이 있다. 차간티는 ‘구글 글라스’를 이용해 아내의 임신 소식을 인도에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알리는 과정을 담은 홍보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이후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일하며 콘텐츠 제작을 담당했다. 당초 6분짜리 단편으로 기획했지만 제작사의 권유로 장편으로 전환했고,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소니 픽쳐스가 전세계 배급권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배우들도 새로운 연출 방식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존 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서 17일 동시 생중계로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상대 배우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논도 하는 보통 촬영 현장과 달리, 이어폰으로 목소리를 듣고 카메라만 보며 연기를 해야 해서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대부분 컴퓨터 모니터 위에 초소형 카메라인 ‘고프로’를 두고 연기했다. 15일 개봉한 한국 영화 ‘목격자’는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로 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회식을 마치고 늦게 귀가한 직장인 한상훈(이성민)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다 살인범(곽시양)과 눈을 마주친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목격자인 한상훈의 입을 막으려는 살인범의 위협, 아파트 값을 사수하려는 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 등을 그렸다. 일상적 공간인 아파트가 순식간에 공포스러운 곳으로 변하고, 쉴 틈 없는 사건 전개로 중반부까지 관객을 몰아가는 연출이 돋보인다. 22일 기준으로 관객 160만 명을 넘어섰다. 손익분기점이 184만 명으로, 제작비는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흥미로운 소재로 관객의 호기심을 사로잡고 있다. 해외 57개국에 판매돼 북미와 호주, 뉴질랜드에서 8월 말, 대만에서 9월에 각각 개봉할 예정이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무대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는 시간은 길어야 대략 10분. 화려해 보이는 디바의 삶 대부분은 이 짧은 시간을 제외한 무대 밖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우리는 무대 위의 모습으로 그를 평가한다. 무대에서의 디바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세월이 흐르면 결점을 찾아내 비난하고 결국에는 외면한다. 2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휘트니’는 그런 휘트니 휴스턴(1963∼2012)의 기구한 삶을 차분하게 그린다. 영화는 갓 데뷔한 휘트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가 고음을 내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는 순간, 1960년대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의 게토에서 일어난 폭동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곳에서 태어난 휘트니는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 아버지와 공연으로 바쁜 가수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다. 미국인들은 천재적 재능을 가진 데다 모범적 가정에서 자라 티 없이 맑고 발랄한 소녀 휘트니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후 영화는 그녀의 삶을 시간 순으로 펼쳐 나간다. 모든 이야기는 생전 휘트니의 공연, 인터뷰 영상은 물론 홈 비디오와 가족, 친구, 음반·영화 제작자 등 주변 인물들의 증언으로 구성된다. 특히 무대 뒤의 모습을 담은 홈 비디오 영상은 가장 진실한 순간의 그녀를 조명한다. 한 영상에서 휘트니는 “사람들이 노래가 거저 되는 줄 알아 너무 화가 난다. 오늘 이걸 좋아해도 내일은 다른 걸 찾는다”며 불안감을 토로한다. 어머니가 “네 음악을 하면 된다”고 하자 휘트니는 그 품에 안겨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휘트니를 영화 ‘보디가드’에 캐스팅한 에이전트 니콜 데이비드부터 상대 배우 케빈 코스트너 등 다양한 인물이 만난 휘트니의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전남편 보비 브라운은 인터뷰 중 그녀를 파국으로 이끈 마약에 대해 언급하길 꺼리지만 제작진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휘트니 주변에 명예나 부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앳된 휘트니의 텔레비전 데뷔 장면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 5개 만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독특하면서 비주류를 자처하는 사람을 일컫는 ‘괴짜’를 주제로 한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16년 문을 연 서울 강남구 K현대미술관이 개최하는 ‘이상한 나라의 괴짜들: Geek Zone’전이다. 젊은 작가 31명이 만든 회화와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500여 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있었던 ‘Geeky Land: 이상한 나라의 괴짜들’에 이은 릴레이 전시다. 과거에는 이상한 사람을 뜻했던 ‘Geek’가 최근에는 한 가지 취미나 연구에 전문가 수준으로 몰두하는 ‘오타쿠’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미술관 역시 이번 전시가 이러한 의미에 착안해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한편 올해는 특히 전시 초점을 작품보다 관객에 둔 점이 눈에 띈다. 번화가의 잘 꾸며진 카페를 연상케 하는 전시장은 관객이 마음껏 ‘인증샷’과 ‘셀카’를 찍을 수 있는 포토 존처럼 조성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젊은 기획자와 뮤지션 그룹이 주최하는 디제잉 파티 ‘기키 서머 파티(Geeky Summer Party)’도 열렸다. 미국 음악가인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 ‘기크 인 더 핑크’에서 힌트를 얻어 핑크 드레스코드에 맞춰 분홍 액세서리, 신발, 옷을 입은 많은 관객들이 미술관을 찾았다. 강진석 K현대미술관 마케팅실장은 “미술을 가깝게 즐기면서 예술가가 아니라도 스스로에게 내재된 ‘괴짜성’을 탐색할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깊이 있고 무거운 예술보다 디자인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2016년 말 개관한 K현대미술관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7시까지 관람이 가능해 퇴근길에 들르는 직장인도 상당하다. 26일까지. 8000∼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