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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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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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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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깟 암세포 내쳐버리겠다” 마지막까지 꼿꼿했던 신성일

    “나는 내키지 않는 길은 가지 않았다.…‘나는 신성일이다’라는 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별은 끝내 별로 살다 갔다. 평생 창공에 머물며 낙조(落照)를 품지 않은 채. 스스로를 ‘쥘리앵’(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 주인공)이라 여겼던 ‘한국의 알랭들롱’ 신성일(申星一)은 4일 또 다른 하늘, 별들의 고향으로 날아갔다. 향년 81세. 신성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성일이었다. 꼿꼿하고 강렬했다. 지난해 갑작스럽던 폐암 판정.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 때도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내쳐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언론인터뷰가 된 지난달 동아일보의 만남에서도 “할일이 많다. 북한에 있다는 영화 ‘만추(晩秋·1966년)’ 필름을 찾아오고 싶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고인은 “스스로를 최고로 대접해야 진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사에서 첫 월급을 받아 반 이상을 호화로운 하숙집에 밀어 넣었던 그는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포츠머리’를 유행시켰던 그를 따라 남자들은 이발소에서 ‘신성일 머리’를 주문했다. “배우는 언제나 배우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일이 없어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었다. 2005년 구속됐을 때 감옥에서도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골프채 대신 3m짜리 빗자루로 하루에 20~30번씩 스윙 연습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냉수로 샤워를 해 30대 청년처럼 근육이 잡힌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 패션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고인은 본보와의 마지막 인터뷰 때도 와인 빛이 감도는 빨간 스웨터에 실크스카프를 멋들어지게 곁들였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선 150만원짜리 돌체앤가바나 청바지를 입고 레드 카펫을 뚜벅뚜벅 걸었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처음부터 스타였다. 1959년 5081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는,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이자 배우 엄앵란을 만난 데뷔작 ‘로맨스 빠빠’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다. ‘맨발의 청춘’ ‘초우’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찍는 작품마다 저잣거리를 들썩였다. 삶 자체도 세간의 기준과는 결이 달랐다. 1964년 역시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엄앵란과 전격 결혼을 발표했다. 11월 14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두 사람의 혼인식에는 전국에서 3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정작 최무룡 김지미 등 주요 하객은 식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2층 테라스 얼굴을 내민 신랑신부를 향한 환호는 영국 왕실 예식이 부러울 것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탓일까.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말 못할 고충도 적지 않았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말했으나 큰 표차를 고배를 마시고 빚더미에 올랐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며 오랫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식당을 운영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던 엄앵란은 “어디 가도 기죽지 말라”며 매일 10만 원식 쥐어주고 내보냈다. 고인은 2000년 대구 동구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당선됐다.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솔직했던 그는 이미 고인이 된 한 여배우와의 사랑을 고백한 게 세상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때도 신성일은 당당했다. “난 그녀에게 일생을 빚진 자다.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두렵지 않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는 것이 내 의무다.” 그는 마지막까지 신작 영화 제작의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방과 양방 복합 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최근 감기에 걸린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고 유가족이 전했다. 3일 오후 세상은 그의 ‘사망설’로 들썩였지만, 그는 생명의 끈을 쉽게 놓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새벽 2시반. 거성(巨星)은 마지막 숨결을 거둬들였다. “나는 자유인으로, 로맨티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숱한 유혹이나 강압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나다. 난 젊은이들에게 ‘정면 돌파하라’고 외치고 싶다.” 은막의 청춘은 시대의 청춘에게 마지막 종언을 고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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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 폐암 치료중 별세

    영화배우 신성일(81)이 4일 오전 2시25분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을 통해 투병 생활을 해왔다. 같은 해 7월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최한 ‘2017 한국을 빛낸 스타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며 “내 몸에 있는 암세포를 모두 떨쳐버리겠다. 기본 체력이 워낙 좋아서 걱정할 것 없다”고 의지를 다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4호실에 마련됐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이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등 히트작에 출현해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1964년에는 다수 멜로 영화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엄앵란과 결혼했다. 1978년에는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하고,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고인과 ‘은막의 콤비’였던 아내 엄앵란 부부의 삶은 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고인의 여성 편력이 화제가 되는가 하면, 2015년 채널A ‘나는 몸신이다’ 촬영 중 유방암을 발견한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으로 주변에 감동을 주기도 했다. 500여 개 작품에서 주인공만 맡은 그는 “늘 준비되어야 프로”라는 자세로 언제나 철저히 몸 관리를 했다. 2013년에는 49살 어린 여성 배우를 상대역으로 한 멜로 영화 ‘야관문:욕망의 꽃’에 출연해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까지도 고인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내년 부산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유명 사진가의 가족을 다룬 영화 ‘소확행’(가제)을 준비 중이며, 건강이 회복하는 내년 5, 6월 경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생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고인이 정계 활동을 하다가 2005년 뇌물 혐의로 수감되었을 때 옥중 생활을 함께 했던 권노갑 전 국회의원은 회고록에서 “신성일은 과묵하고 담백한 사람. 나름대로 고집은 있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남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며 “‘장부다움’이 신성일의 지향점인지도 모른다. 내가 겪어본 신성일은 정말 남자다웠다”고 기억했다.김민 기자kimmin@donga.com}

    • 201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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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화성에 누군가 산다면 인류의 방문을 반길까

    고대 그리스인들이 ‘방랑하는 별’이라고 불렀던 화성은 붉은빛으로 타오르며 가장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는 행성이다. 오래전부터 인류의 눈길을 끌었던 이 행성은 지구와도 무척 닮았다. 17세기에서 19세기 중반, 망원경이 발명되고 성능이 월등히 좋아지면서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저자는 화성 여행이 현실화된 시점에 과학자로서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인류가 그것을 무분별하게 오염하기 전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판단을 위해 최초 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측하게 된 이야기와 가장 최근의 실험기지 계획까지 화성 탐사에 관한 모든 것을 시간 순서대로 담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화성은 화성인의 것”이라는 칼 세이건의 충고다. 일부 전문가들의 이슈였던 화성 탐사의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고 논의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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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세대 서양화가 이수억 탄생 100주년 기념전

    1세대 서양화가 이수억 화백(1918∼1990)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14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수억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 화백의 대표작을 되짚는다. 1918년 함경남도 함주군 선덕면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1942년 도쿄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6·25전쟁 때 국방부 종군화가단원에 참여했다. 1950년대에 흔치 않게 전쟁을 묘사한 ‘폐허의 서울’(1952년), ‘6·25동란’(1954년)이 잘 알려져 있다. 실상은 참혹했음에도 입체파풍으로 알록달록하게 표현된 전쟁의 풍경은 일본으로부터 왜곡된 서양화를 수입해 표면적 묘사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한국 화단의 한계도 고스란히 담는다. 당시 이 화백은 미군 PX에서 박수근 화백과 함께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해 입선하고 1970년 말부터는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소장한 대표작을 비롯한 작품 7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 화백의 딸 이명희 씨는 “이 화백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재조명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2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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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정아 “수동적 주부의 소심한 일탈…반전매력 끌려”

    “제가 생긴 게 이래서(?) 그렇지, 알고 보면 가정적이에요. 남편에게도 잘 맞춰주고요.” 차갑고 도시적인 이미지의 배우 염정아(46)에게 주눅 든 전업주부 역할이 의외라고 하자 돌아온 답이다. 염정아는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가부장적 변호사 태수(유해진)를 상전처럼 모시는 아내 수현 역할을 맡았다. 소극적 성격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고 하자 반가운 듯 “대본을 읽어 본 것 중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라고 맞장구를 쳤다. “유해진 씨와의 앙상블은 상상만 해도 재밌겠단 예감이 들었어요. 촬영할 때는 맹하고 순진한 이미지를 살려 대본보다 더 귀여워졌고요.” 영화 속 수현은 남편 태수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시를 읊어댄다. ‘사랑 속에 얼굴 담그고/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시합을 했어// 넌 그냥 져주고 다른 시합하러 갔고/ 난 너 나간 것도 모르고/ 아직도 그 속에 잠겨있지.’ 머리를 새로 했는데도 통 알아봐주지 않는 무관심한 태수를 향한 은근한 압박이다. 육아와 집안일이 일상의 전부인 수현은 문학 모임에 나가고 블로그에 시와 소설을 쓴다. 블로그를 통해 연락하게 된 팬이 ‘답답하면 속옷이라도 자유롭게 입어보라’고 하자 남편 몰래 과감한 속옷도 걸쳐본다. 그런 행동을 염정아는 “그녀만의 일탈”이라고 했다. “숨 쉴 구멍은 없는데, 가정을 버릴 용기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거죠. ‘남편이 아무리 무심해도 나는 이 가정을 잘 지킬 거야. 대신 나는 시 좀 쓸게. 속옷만큼은 내가 입고 싶은 거 입을 게.’ 아무도 몰래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가 수현 역할에 끌린 건 물론 수동적 모습만은 아니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수현은 어떤 계기로 한순간에 감정을 폭발시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현이 보여주는 것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에 터뜨릴 부분이 있어 굉장히 매력적이었죠. 속상함을 여기까지 쌓아놓다가 한 번에 터뜨린 거죠.” 베테랑 배우들이 함께한 현장 분위기도 매끄러웠다. 대사를 두 사람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대화하는 형태가 많았지만, 리허설을 해보면 ‘각이 나왔다’. “현장에서 유해진 씨가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정말 웃겼고, 이서진 씨는 정말 긍정적이에요. 저도 긍정적인데 저를 능가할 정도에요.” 어느 덧 연기 경력 27년차에 “육아로 몇 년간 공백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녀다. “하고 싶은 역할이요? 맘마미아나 라라랜드처럼 말랑말랑한 뮤지컬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20대 때 노래와 춤을 꽤 즐겼거든요.(웃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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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계의, 한국계에 의한, 세계를 향한 드라마 나온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트콤 ‘김 씨네 편의점’…. 최근 아시아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주목받은 콘텐츠다. 특히 모든 배우를 아시아인으로 캐스팅한 ‘크레이지…’는 앞서 10년 동안 개봉한 로맨틱코미디 영화 중 최고 성적을 거두며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다. 기뻐하기엔 이르다. 애플은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에 버금가는 대규모 역사 드라마를 제작할 예정이다. 원작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로, 지난해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최고의 책 10’에 포함됐다. 》애플은 최근 10억 달러(약 1조1425억 원)를 투자해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 10여 개 작품은 각본이 완성됐고 5, 6개 작품은 각본을 준비 중이다. 이 중 하나가 ‘파친코’다. 원작 주인공이 한국인이며 부산 영도와 일본이 배경이어서 배우 대부분이 아시아인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한인 이민자 가족 4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대사도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구성된다. 소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으로 간 이민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떠난 사람들은 식민 지배, 제2차 세계대전 등 무거운 역사의 굴레에 짓눌린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는 “승자의 역사가 지우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풍부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파친코’가 드라마로 제작되는 과정에는 할리우드의 두 한국계 여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 WME의 에이전트 테리사 강, 미국 드라마 ‘더 테러(The Terror)’, ‘더 위스퍼스(The Whispers)’ 등을 제작한 쇼러너(작가) 수 휴가 주인공이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재미교포 2세인 테리사 강은 캘리포니아주의 비디오 대여점 딸이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등 다양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자라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기를 꿈꿨다. 강 씨가 일하고 있는 WME는 1898년 설립돼 찰리 채플린, 엘비스 프레슬리, 메릴린 먼로가 속했던 미국 굴지의 에이전시. 해외에 진출한 영화감독 박찬욱, 봉준호와 배우 배두나, 이하늬도 WME와 계약을 맺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BBC 드라마를 제작하도록 연결해 준 에이전트도 강 씨다. 에이전트는 작가와 감독, 프로듀서, 배우를 연결하고 계약과 협상 과정을 돕는다. 쇼가 만들어진다는 정보를 발 빠르게 입수하고, 적합한 작가와 연출자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기에, 할리우드에서 에이전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작가, 연출자가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습니다. 그들의 모든 정보를 알고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거죠. 고객이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떻게 만들지?’ 하고 물어보면 제가 전화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최근에는 쇼 전체를 기획해 적합한 제작자와 방송국을 찾아 ‘프로젝트’도 만드는 추세다. 강 씨는 “모두가 ‘노’라고 할 때부터 내 일이 시작된다. 대본을 방송사에 보내는 건 쉽지만, 작품으로 만드는 건 유명한 아티스트라도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릴 적 영화를 보여줬던 아버지는 딸이 거물급 감독과 작업하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강 씨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아쉬움이 있었다. 미국인으로 자랐지만, 자신과 피부색이 같은 아시아인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닌 악역이나 조력자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 씨는 동양인은 물론 흑인, 라티노, 성소수자, 여성 등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작가와 일할 때 특히 보람을 느낀다. 그가 보기에 할리우드에는 다양한 시각의 작품이 여전히 부족하다. 소수자가 주인공인 대본을 주면 “대중이 낯설어한다”거나 “이런 이야기는 충분하다”며 덮어버린다. “평범한 드라마부터 범죄물까지, 백인 남성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널렸어요. 그런데 ‘이제 그만 만들자’고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내가 어릴 때 한국인은 조연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9개월 된 제 아들이 자기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으면 해요.”○ “내 역사를 딛고 선 느낌” 부산에서 태어난 수 휴는 한 살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사랑했던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학보사에서 일하고, 소설을 쓰던 그는 열세 살 무렵 연출자의 꿈을 키웠다. 그에게 TV는 이미지로 펼쳐지는 소설이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 필름스쿨에 입학했다. 중간급 작가였던 그는 ‘더 위스퍼스’를 통해 총책임자인 ‘쇼러너’로 발돋움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참여한 이 드라마는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미지의 존재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다. 휴는 원작 소설에 상상력을 덧입히는 능력을 인정받았고 스필버그가 제작한 세 개 작품에서 함께 일했다. 휴처럼 중간급 작가에서 총책임자로 건너뛰는 건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참신한 시각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기회가 생기고 있다. 할리우드는 그만큼 ‘절박할 정도로’ 신선한 목소리에 목말라 있다. 휴는 “경력이 많지 않아도 경쟁력 있는 스토리만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한 것이 할리우드”라고 했다. 휴는 ‘더 테러’ 등 작업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위해 수많은 조사를 했다. 그런데 ‘파친코’에서는 자신의 과거, 즉 역사를 딛고 선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것은 내 가족은 물론 전 세계 수백만 난민 가족의 이야기”라고 했다. 휴가 ‘파친코’의 드라마화를 맡은 건 강 씨의 추천 덕분이다. 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이들을 연결했고, 미국에 없던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아시아인의 이야기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하세요. 많이 읽고 쓰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세요. 할리우드는 독창적인 목소리를 갈구하고 있습니다.”(수 휴)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색다른 시각의 ‘보고(寶庫)’인 아시아인의 이야기는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겁니다.”(테리사 강) 로스앤젤레스=조윤경 yunique@donga.com / 김민 기자}

    •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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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리우드 놀라게 한 ‘아시아 파워’…비결은?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드라마 ‘내가 사랑한 다섯 남자들’, 시트콤 ‘김 씨네 편의점’…. 최근 아시아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주목받은 콘텐츠들이다. 특히 모든 배우를 아시아인으로 캐스팅한 ‘크레이지…’는 앞서 10년 동안 개봉했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최고 성적을 거두며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다. 나아가 애플에선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에 버금가는 대규모 역사 드라마를 제작할 예정이다. 원작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로, 지난해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최고의 책 10’에 포함됐고 영국 BBC가 ‘2017년 꼭 읽어야 할 책 10권’에도 이름을 올렸다. 애플은 최근 10억 달러(약 1조 1425억 원)를 투자해 콘텐츠 제작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0여개 작품은 이미 각본이 완성됐고 5, 6개 작품은 각본을 준비 중이다. 이 중 한 작품이 ‘파친코’다. 원작 주인공이 한국인이며 부산 영도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배우 대부분이 아시아인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한인 이민자 가족 4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애플 측은 ‘더 크라운’에 버금가는 예산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도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구성된다. 소설 ‘파친코’가 드라마로 제작되는 과정에는 할리우드의 두 한국계 여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 WME의 에이전트 테레사 강, 미국 드라마 ‘더 테러’(The Terror), ‘더 위스퍼스’(The Whispers) 등을 제작한 쇼러너(작가) 수 휴가 주인공이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재미교포 2세인 테레사 강은 캘리포니아주의 비디오 대여점 딸이었다. 어린 시절 신인 감독부터 마틴 스코세지 같은 거장까지 다양한 감독의 영화를 보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기를 꿈꿨다. 그 꿈을 향해 달려온 강 씨가 일하는 WME는 1898년 설립돼 찰리 채플린, 엘비스 프리슬리, 마릴린 먼로 등이 속했던 미국 굴지의 에이전시. 해외에 진출한 국내 영화감독 박찬욱, 봉준호와 배우 배두나, 이하늬도 WME와 계약을 맺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BBC 드라마를 제작하도록 연결해 준 에이전트가 바로 강 씨다. 어릴 적 영화를 보여줬던 아버지는 딸이 이제 거물급 감독을 돕는 이야기를 들으며 뿌듯해한다. 그러나 강 씨의 마음 한 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미국인으로 자랐지만, 자신과 피부색이 같은 아시아인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닌 악역이나 조력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저에겐 9개월 된 아들이 있어요. 그 아이가 자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라길 바라요. 내가 자랄 땐 한국인은 조연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강 씨는 흑인, 라티노, 성소수자, 여성 등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보여주는 작가와 주로 일한다. 에이전트는 작가와 감독, 프로듀서, 배우들을 대변하고 연결하고, 계약 협상을 돕는다. 각각의 에이전트들은 쇼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제작사나 방송국을 찾는다. 모든 정보는 에이전시를 경유해 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방송 영화 영상 분야의 예술가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작품을 만드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해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다. 강 씨가 보기에 다양한 시각의 작품은 아직도 부족하다. 과거보단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런 작품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대본을 주면 혹자는 “게이 영화, 소수자 영화는 이미 많잖아?”라면서 덮어버린다고 한다. 반대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등장하는 영화는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은데도 “이젠 그만 만들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내 역사를 딛고 선 느낌” 부산에서 태어나 한 살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건너 온 한국계 미국 작가 수 휴는 13살 무렵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책을 좋아했다. 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세계로 연결되는 끈이었다. 글자와 이미지를 함께 다루는 것이야 말로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신인 작가들은 작가룸의 스태프로 커리어를 쌓아야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독창적인 콘텐츠의 수요로, 이 같은 판에 박힌 커리어 루트는 변화했다. 지금 할리우드는 신선한 시각과 목소리에 ‘절박할 정도로’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휴 작가 역시 이런 흐름 덕분에 첫 작품 ‘더 위스퍼스’의 총책임 작가가 됐다. ‘더 위스퍼스’를 비롯해 그는 원작 소설에 상상력을 덧입혀 드라마화 하는 작업을 종종 해왔다. 19세기 극지방 탐험에 나선 선원들의 생존과 공포를 다룬 드라마 ‘더 테러’는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휴 작가는 강 씨의 추천으로 ‘파친코’의 드라마화를 맡게 됐다. 소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으로 간 이민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떠난 사람들은 식민 지배, 제2차세계대전 등 무거운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 과정을 촘촘하게 그린 책에 대해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승자의 역사가 지우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풍부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저자 이민진 씨도 “역사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절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휴 작가에게 ‘파친코’는 리서치 작업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어봐야 했던 여타 작품과 달리 자신의 과거, 즉 역사를 딛고 선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휴 작가는 “내 가족 뿐 아니라 전 세계 수백만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었다. 나는 이 소설에 내재된 따뜻함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파친코’의 드라마를 기획한 제작사와 수 휴 작가, 투자할 배급사 애플을 연결한 것도 테레사 강 덕분이다. 강 씨는 “한국은 마치 미국이 백인 남성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처럼 똑같은 타입의 드라마를 찍어내고 있다. 더 많은 시청자를 모으고 싶다면 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됐고, 수상한 작품 중에서 로맨틱 코미디가 없다는 사실은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LA=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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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질 전사로 돌아온 40년 전 그 여고생

    1978년 개봉한 영화 ‘할로윈’에서 식칼과 옷걸이를 들고 벌벌 떨던 고등학생 로리 스트로드(제이미 리 커티스). 겁에 질린 연약한 모습에 ‘스크림 퀸’이라 불렸던 그녀가 건강한 근육이 잡힌 팔뚝에 커다란 샷건을 든 모습으로 돌아왔다. 할리우드의 가장 주목받는 제작자 제이슨 블룸이 만든 ‘할로윈’은 왜 2018년에 그녀를 전사로 탈바꿈시켰을까? 31일 개봉하는 영화 ‘할로윈’은 존 카펜터 감독의 전설적 공포 영화 ‘할로윈’의 속편이다. 1978년 개봉한 전편은 약 30만 달러(약 3억4200만 원)의 예산으로 박스 오피스 수익 7000만 달러(약 798억 원)를 거뒀다. 저예산 영화로 엄청난 수익을 거둔 이 영화의 성공은 감정도 논리도 없는 살인마 마이클의 무시무시함에 있었다. 그런데 40년 뒤 제작된 속편은 마이클의 무자비함이 아닌 로리의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추며, 수동적이었던 여성 인물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미투 시대’에 걸맞은 재해석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스무 살에 ‘할로윈’에 출연했던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는 60세의 나이에 다시 주인공 로리 역으로 출연했다. 로리는 40년 전 연쇄살인의 유일한 생존자다. 살인의 기억은 그녀를 평생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녀의 집은 안전장치로 무장했고 무기고에는 총이 가득하다. 딸 캐런(주디 그리어)도 어릴 때부터 사격 연습 등 훈련을 받다가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12세 때 엄마와 떨어진다. 캐런은 공포를 물려준 엄마를 원망한다. 로리도 절대 용감한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이클이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에 늘 불안해하고 술에 의존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쪽에 가깝다. 기존의 공포 영화가 살인의 긴장감만을 강조한다면 ‘할로윈’은 그런 사건이 주는 트라우마와 그것이 가족에게 미친 영향을 끼워 넣으려 시도한다.더욱 흥미로운 것은 완전히 깨져 버린 과거의 공식이다. 1978년 ‘할로윈’에서는 베이비시터의 일을 내팽개치거나 애인과 시간을 보낸 친구들은 죽임을 당한 반면 비교적 순진한(?) 로리만 살아남았다. 이 공식은 ‘스크림’(1996년) 등 다양한 공포 영화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 ‘할로윈’에서 로리는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 독특하다. 모두가 이상하게 봤던 그녀의 집착은 결국 현실이 된다. 1978년 ‘할로윈’에서는 마이클의 담당 의사 루미스 박사가 마이클을 해치웠다면 이제는 로리가 직접 맞선다. 새롭게 태어난 속편 ‘할로윈’은 이미 미국에서 오프닝 수익 7700만 달러(약 879억 원)를 벌어들이며 시리즈 최고 개봉 수익을 올렸다. 후속작 제작도 확실시되고 있으며 제이미 리 커티스도 출연할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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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트럼프로 대변되는 백인 남성의 고립주의적 사고 비판

    전 세계 ‘미투’ 운동이 거셌던 지난해 ‘맨스플레인’(여성은 잘 모른다는 전제로 남성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행위)을 알린 리베카 솔닛의 새 에세이집이 나왔다. 이 책은 백인 남성의 고립주의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백인 남성의 이데올로기만 옳고 다른 것은 잘못됐다는 사고에 대한 비판이고, 그 정점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봤다. 만약 단순히 페미니즘에 관한 시각을 기대하고 이 책을 본다면 실망할 수 있다. 또 제목과 서문을 보고 언어나 이름을 붙이는 일에 관한 걸 기대해도 여전히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온갖 정책을 통해 비주류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위해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언론마저 비전을 제공하지 못하는 미국의 민낯을 보고 싶다면 딱 맞는 책이다. 솔닛이 서문에서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단어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주류가 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그는 트럼프를 ‘모든 것을 갖고 싶었던 아이’라고 표현하고, 그의 이상한 행동들을 분석한다. 그러면서 자아를 갖지 못한 욕망 덩어리인 트럼프가 자신의 ‘똥 덩어리’ 위에 엎어지는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기후변화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이 취하는 태도 저변의 심리도 분석한다. 그들은 극단적 자유를 추구하기에 기후변화마저 부정한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기후변화를 인정하면 공동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여기에는 정부의 규제를 받는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기후변화가 허구라는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솔닛은 이처럼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거칠지만 생생한 언어로 서술해 나간다. 다만 이 책은 그의 이전 저서들과 달리 관념적인 내용이 많다.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을 해왔던 활동가의 목소리가 좀 더 크다. 지난 저서에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이번엔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게다가 너무 미국 사회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남의 집 불구경’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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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조형물 통해 엿보는 1980년대 뉴욕 문화

    1980년대 뉴욕에서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 함께 활동했던 팝 아티스트 케니 샤프(60)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는 케니 샤프를 아시아 최대 규모로 조명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샤프는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해 앤디 워홀을 만나면서 이름을 알렸다. 198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 분관인 PS1에서 열린 뉴욕·뉴웨이브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작가는 생소하지만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현상이 된 198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다. 교회 지하실을 개조한 예술가들의 집합소 ‘클럽 57’의 사진도 만날 수 있다. ‘클럽 57’은 힙합 펑크 등 다양한 거리 문화를 만들어내는 젊은 예술가들이 만나는 곳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추모 파티, 레이디 레슬링 등 테마 파티와 키스 해링의 전시가 열렸다. 뉴욕 모마는 2017년 이 장소를 주제로 대규모 기획전을 열었다. 1980년대 선보인 ‘젯스톤’ 연작은 핵전쟁과 환경 파괴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만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에서 영감을 얻은 ‘젯스톤’은 우주시대를 배경으로 불안감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샤프가 첫 내한을 기념해서 그린 10m 길이 대형 벽화도 전시됐다. 용 두 마리와 태극문양, 서울을 감싸는 산과 한강을 만화적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1981년 PS1에 설치했던 ‘코스믹 카반’도 재현했다. ‘코스믹 카반’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주워 형광 페인트를 칠한 환각적인 우주 공간으로, 휘트니 뮤지엄 비엔날레에서도 선보였다. 7000∼1만3000원. 내년 3월 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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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핑크, 유니버설뮤직 손잡고 美 진출

    블랙핑크가 유니버설뮤직그룹의 대표 레이블인 인터스코프 레코드와 손잡고 미국 무대에 본격 진출한다. 23일 YG엔터테인먼트는 “블랙핑크가 최근 인터스코프와 계약했고, 앞으로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스코프는 닥터 드레, 투팍, 에미넘 등 힙합 아티스트와 마룬5, U2, 건스앤드로지스 등 록그룹, 마돈나 레이디가가 등 팝스타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레이블이다. 이에 앞서 10일(현지 시간) 열린 유니버설뮤직그룹(UMG) 회장인 루시안 그레인저 경은 전 세계 임원진이 모인 ‘UMG 글로벌 리더십 서밋’에서 블랙핑크의 활동이 최우선 순위 프로젝트라고 직접 밝혔다. 그레인저 경은 “그룹의 글로벌 자원과 전문 지식을 토대로 블랙핑크의 놀라운 성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행사에 참석한 존 재닉 인터스코프 회장도 “블랙핑크의 음악과 비주얼은 기존 팝 음악계와 매우 달라 기대된다”고 밝혔다. 데뷔 2년 차인 블랙핑크는 현지 활동 없이 유튜브를 통해 주목을 받아 왔다. ‘붐바야’ ‘휘파람’ ‘불장난’ 등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억대의 뷰수를 돌파했다. ‘뚜두뚜두’는 국내 그룹 영상 중 가장 빨리 2억 뷰를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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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분방한 협업이 만든 ‘과감한 유혹’… 시청자 욕망을 두드리다

    “뉴욕이 가진 매혹적인 분위기, 반짝이는 불빛, 그 속에 야망을 가진 사람들. 이 분위기는 ‘섹스 앤드 더 시티’가 만든 캐릭터죠. ‘옷이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생각한 의상 디자이너 퍼트리샤 필드가 참여해 그가 고른 옷이 네 주인공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것이 뉴욕 그 자체로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의 A+E(에이앤이) 네트워크 사옥에서 만난 미국의 거물 드라마 제작자 배리 조슨은 “섹스 앤드 더 시티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하나의 캐릭터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매력이 극대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곱슬머리에 한쪽 어깨에 백팩을 걸친 수수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화려하고 깐깐한 이미지일 거란 예상은 깨졌다. 문 뒤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헬로’ 하고 인사하는 첫인상은 괴짜 아인슈타인이었다. 조슨은 ‘섹스…’를 포함해 배우 김윤진이 출연한 ‘로스트’ 등 수많은 히트작을 제작했다. 2014년부터는 에이앤이 스튜디오 대표를 맡아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의 ‘루츠’ ‘식스’ ‘나이트폴: 신의 기사단’과 라이프타임의 ‘언리얼’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 자유분방한 협업이 만든 캐릭터, ‘뉴욕’ “모든 걸 가졌지만 사랑은 찾을 수 없었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여성. 그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1998년 미국 케이블 채널 HBO에서 ‘섹스 앤드 더 시티’가 처음 전파를 탔을 때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고 섹스를 자유롭게 얘기하는 4명의 싱글 여성 주인공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 쇼에서 ‘밝히는’ 여성은 악역이었고 주인공은 육체적 사랑을 추구해선 안 됐다. “당장 금지돼야 한다. 저속해서가 아니라 짜증 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여성지 독자나 좋아할 자기 비하를 끊임없이 해댄다.”(더타임스) “이 드라마는 30대 여성이 섹스에 집착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나이대 여성들은 그만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인디펜던트) 그런데 첫 에피소드가 방영되자 280만여 가구가 시청했고 시즌1의 평균 시청 가구는 690만여 개에 달했다. 2004년까지 계속된 드라마는 7번의 에미상, 8번의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2007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최고의 텔레비전 시리즈로 꼽았다. 국내에도 ‘브런치’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큰 반향을 낳았다. 과감한 스토리의 ‘섹스…’는 책에서 출발했다. 원작은 ‘뉴욕 옵서버’의 칼럼니스트 캔디스 부시넬이 2년 동안 쓴 글을 모은 동명의 에세이집. 한데 1명이 쓴 에세이보다 작가 여러 명이 협업해 만든 드라마가 새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쟁 관계로만 그려졌던 여성들의 끈끈한 우정과 그들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했다는 것이다. 칼럼을 메가 히트쇼로 만든 저력은 자유분방한 작가룸의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작가는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싱글이었고, 스스로를 뉴욕의 아웃사이더로 여겼다. 이런 공감대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토론했다. 캐리가 싱글인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기혼 여성 친구에게 “나와 결혼하기로 했다”며 결혼 선물로 구두를 받아낸 에피소드도 경험의 산물. 당시 한 작가는 “나는 비싼 결혼 선물을 갖다 바치는데, 비싼 구두를 신는다고 싱글을 비꼬는 사람에게 한 방 날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결혼해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는 캐리와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된다”는 사만다의 거침없는 대사도 실제 연애담에서 출발했다. 이전까지 결혼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또 다른 작가 줄리 로텐버그를 비롯한 커리어 우먼들은 결혼에 회의를 느꼈다. 로텐버그가 오랫동안 만난 연인의 프러포즈를 거절한 아픈 경험은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을 산 에피소드로 살아났다.○ “신선함, 보편성 있으면 두려울 것 없어” 조슨은 독창적인 신선함과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성의 결합이 성공의 요소라고 강조했다. ‘섹스…’는 물론이고 ‘로스트’도 이 두 가지 요소를 갖췄다. “인기 있는 인물이 중간에 죽는 설정은 드라마 역사상 ‘로스트’가 처음이었어요. 죽었던 인물을 플래시백으로 살려내 비밀을 드러내기도 했고요. ‘첫 시도’가 많았던 드라마입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신선함이라면 생존을 향한 싸움은 보편성의 영역이다. 무인도라는 미지의 공간에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는 ‘캐스트 어웨이’ 등 영화는 물론이고 ‘로빈슨 크루소’ 같은 문학에도 나온 익숙한 내용이다. 조슨은 한 가족의 여정을 통해 미국 노예제도를 재조명한 드라마 ‘루츠’, 아프가니스탄으로 출동한 미 특수부대 최정예 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식스’ 등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적 DNA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여러 국가의 팬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히스토리채널의 리얼리티쇼 ‘전당포 사나이들’은 라스베이거스가 배경이다. 화려한 라스베이거스 속 전당포라는 설정은 새롭다. 그러면서도 물건에 담긴 사연과 협상의 과정, 사업체를 운영하는 가족의 사연은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다. ○ 당돌하게, 치열하게 조슨은 정글 같은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와이에서 대학을 나온 그는 197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에 왔다. 처음 6개월간은 경비의 눈을 피해 모든 제작사를 돌았다. 작가와 프로듀서의 사무실을 두드리며 이력서를 건네고, 우호적인 사람에게는 자신을 적극 홍보했다. 그러다가 한 프로듀서로부터 협업을 제안받으면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직접 부딪치며 겪은 현장 경험이 그를 베테랑 제작자로 만들었다. 1996년 제작한 파일럿 프로그램 ‘디어 다이어리’는 ABC로부터 거절당했다. 어렵게 제작한 쇼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 다른 통로를 수소문했다. 결국 드림웍스에서 극장 배급을 결정했고,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여성 주인공의 생각을 내레이션으로 풀어낸 ‘디어 다이어리’의 형식은 1년 뒤 ‘섹스…’에서도 활용됐다. “독창적이면서 보편적인 이야기가 왕”이라고 말하는 조슨은 한국도 참신한 콘텐츠와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곳으로 보고 있었다. “거대 플랫폼의 위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LA=조윤경 yunique@donga.com / 김민 기자}

    •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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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로 되살아난 ‘어린 왕자’

    세계적인 동화 ‘어린 왕자’를 미술로 재해석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K현대미술관의 ‘나의 어린 왕자에게’전은 국내외 작가 20여 명이 참여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집필할 때 마음에 드는 삽화가를 찾지 못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에서 전시는 출발한다. 2018년을 사는 현대 미술가들이 ‘어린 왕자’를 시각적, 감각적으로 재해석해 당시 그려 넣지 못했던 삽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콘셉트다. 참여 작가들은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과 ‘길들인다는 것’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내놓았다. 작품은 회화부터 영상, 설치, 비디오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간다. 특히 미디어 아트가 중심이 되어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각 전시장은 예술 작품과 다른 전시에서 영감을 얻은 세심한 큐레이팅이 돋보인다. 네온으로 장식한 5층 전시장은 미국 설치미술가 제이슨 로즈(1965∼2006)가 생전 선보인 작품을 오마주한 공간이다. 서로 다른 인간 군상이 양립하는 모습을 전시장으로 구성한 4층은 2006년 멕시코 비엔날레에서 모티브를 얻은 방식이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연상케 하는 중국 웨하오장 작가의 영상 작품, 어린 왕자가 냅킨의 낙서에서 시작됐다는 것에서 착안한 그라피티 작가 레오다브의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자신만의 양을 그려 전시 공간에 부착하거나, 조이스틱을 이용해 우주 공간을 마음대로 탐험하는 체험형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동화 속 감동적 문구를 재현한 네온사인도 설치해 가족이 함께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기에 안성맞춤인 전시다. 8000∼1만5000원. 2019년 1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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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스’ 얘기하는 드라마 여주인공, 첫 방영후 혹평 쏟아졌지만…

    “당장 금지돼야 한다. 저속해서가 아니라 짜증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여성지 독자나 좋아할 자기 비하를 끊임없이 해댄다.”(더타임스) “이 드라마는 30대 여성이 섹스에 집착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나이대 여성들은 그만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인디펜던트) 1998년 미국 케이블 채널 HBO에서 이 드라마가 처음 전파를 탔을 때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고 섹스를 자유롭게 얘기하는 4명의 싱글 여성 주인공들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 쇼에서 ‘밝히는’ 여성은 악역이었고 주인공은 육체적 사랑을 추구해선 안됐다. 그런데 첫 에피소드만 280만여 가구가 시청했고 시즌1의 평균 시청 가구는 690만여 개에 달했다. 2004년까지 계속된 드라마는 7번의 에미상, 8번의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2007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최고의 텔레비전 시리즈로 꼽았다. 국내에도 ‘브런치’ 열풍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 배리 조센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의 A&E 네트워크 사옥에서 만났다. 곱슬머리의 조센은 한 쪽 어깨에 백팩을 걸친 수수한 차림이었다. 화려하고 깐깐한 이미지일거란 예상은 깨졌다. 문 뒤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헬로’하고 인사하는 첫 인상은 괴짜 아인슈타인이었다. 조센은 ‘섹스…’를 포함해 배우 김윤진이 출연한 ‘로스트’ 등 수많은 히트작을 제작했다. 2014년부터는 A&E 스튜디오 대표를 맡아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의 ‘루츠’ ‘식스’ ‘나이트폴: 신의 기사단’과 라이프타임의 ‘언리얼’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 자유분방한 협업이 만든 캐릭터, ‘뉴욕’ “모든 걸 가졌지만 사랑은 찾을 수 없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 그게 시작이었죠.” 과감한 스토리의 ‘섹스…’는 책에서 출발했다. 원작은 ‘뉴욕 옵서버’의 칼럼니스트 캔디스 부시넬이 2년 동안 쓴 글을 모은 동명의 에세이집. 한데 1명이 쓴 에세이보다 작가 여러 명이 협업해 만든 드라마가 새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쟁 관계로만 그려졌던 여성들의 끈끈한 우정과 그들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했다는 것이다. 칼럼을 메가 히트쇼로 만든 저력은 자유분방한 작가룸의 분위기였다. 줄리 로텐버그를 비롯한 작가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싱글이었고, 스스로를 뉴욕의 아웃사이더로 여겼다. 이런 공감대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토론했다. 캐리가 싱글인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기혼 여성 친구에게 “나와 결혼하기로 했다”며 결혼 선물로 구두를 받아낸 에피소드도 경험의 산물. 당시 작가는 “나는 비싼 결혼 선물을 갖다 바치는데, 비싼 구두를 신는다고 싱글을 비꼬는 사람에게 한 방 날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결혼해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는 캐리와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된다”는 사만다의 거침없는 대사도 실제 연애담에서 출발했다. 이전까지 결혼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로텐버그를 비롯한 커리어 우먼들은 결혼에 회의를 느꼈다. 로텐버그가 오랫동안 만난 연인의 프러포즈를 거절한 아픈 경험은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을 산 에피소드로 살아났다.조센은 여기에 ‘뉴욕’이라는 도시가 하나의 캐릭터로 역할을 하며 매력을 극대화했다고 봤다. “뉴욕이 가진 매혹적인 분위기, 반짝이는 불빛, 그 속에 야망을 가진 사람들. 이 분위기는 ‘섹스…’가 만든 캐릭터죠. ‘옷이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생각한 의상 디자이너 패트리샤 필드가 참여해 그가 고른 옷이 네 주인공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것이 뉴욕 그 자체로 이어졌죠.” ● “신선함, 보편성 있으면 두려울 것 없어” 조센은 독창적인 신선함과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성의 결합이 성공의 요소라고 강조했다. ‘섹스…’는 물론 ‘로스트’도 이 두 가지 요소를 갖췄다. “인기 있는 인물이 중간에 죽는 설정은 드라마 역사상 ‘로스트’가 처음이었어요. 죽었던 인물을 플래시백으로 살려내 비밀을 드러내기도 했고요. ‘첫 시도’가 많았던 드라마입니다.” 갑작스런 죽음이 신선함이라면 생존을 향한 싸움은 보편성의 영역이다. 무인도라는 미지의 공간에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는 ‘캐스트 어웨이’ 등 영화는 물론 ‘로빈슨 크루소’ 같은 문학에도 나온 익숙한 내용이다. 조센은 히스토리채널의 ‘루츠’ ‘식스’ 등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적 DNA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여러 국가의 팬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히스토리채널의 리얼리티쇼 ‘전당포 사나이들’은 라스베이거스가 배경이다. 화려한 라스베이거스 속 전당포라는 설정은 새롭다. 그러면서도 물건에 담긴 사연과 협상의 과정, 사업체를 운영하는 가족의 사연은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다. ● 당돌하게, 치열하게조센은 정글 같은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와이에서 대학을 나온 그는 197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에 왔다. 그곳에서 처음 6개월간은 경비의 눈을 피해 모든 제작사를 돌았다. 작가와 프로듀서의 사무실을 두드리며 이력서를 건네고, 우호적인 사람에게는 자신을 적극 홍보했다. 그러다 한 프로듀서로부터 협업을 제안 받으면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직접 부딪치며 겪은 현장 경험이 그를 베테랑 제작자로 만들었다. 1996년 직접 제작한 파일럿 프로그램 ‘디어 다이어리’는 ABC로부터 거절당했다. 어렵게 제작한 쇼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 다른 통로를 수소문했다. 결국 드림웍스에서 극장 배급을 결정했고,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여성 주인공의 생각을 내레이션으로 풀어낸 ‘디어 다이어리’의 형식은 1년 뒤 ‘섹스…’에서도 활용됐다. “독창적이면서 보편적인 이야기가 왕”이라고 말하는 조센은 한국도 참신한 콘텐츠와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곳으로 보고 있었다. “거대 플랫폼의 위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LA=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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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연 모두 아시아인… 할리우드 흔든 ‘막장 시월드’

    공부벌레, 일 중독자, 무술 유단자,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 백인의 시선에서 동양인을 고정관념 속 조연으로만 그렸던 미국 할리우드. 그곳에 대고 한 영화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미치도록 잘 놀 줄도 안다. 미치도록 돈 많은 거부도 있다. 다시는 아시아를 무시하지 마라!” 25일 개봉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주연 배우가 모두 아시아인으로 구성된 ‘화려한 비주얼’의 영화다. 미국에서는 8월 개봉해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단독 영화로는 올해 최고 성적. 세계적으로 2억2663만 달러(약 2567억 원)를 벌며 제작비 7배를 거둬들였다. 대성공에 힘입어 이미 속편 제작까지 확정했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나폴레옹이 1803년 중국을 지칭해 남겼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사자가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릴 것이다.” 이어지는 건 1995년 영국 런던 한 호텔. 쏟아지는 비를 뚫고 호텔에 도착한 엘레노어 영(양쯔충·양자경)은 방이 없다며 문전 박대를 당한다. 전화조차 쓰지 못하게 해 공중전화로 남편과 통화하고 돌아온 순간. 사장이 버선발로 뛰어내려와 “우리 호텔을 인수한 새로운 오너”라고 소개한다.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던 리셉션 직원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호텔과 부동산 사업으로 어마무시하게 돈 많은 집안 후계자인 닉 영(헨리 골딩)의 여자친구 레이첼 추(콘스턴스 우). 중국계 미국인으로 뉴욕대 경제학 교수였던 레이첼은 닉이 그 정도로 부자라는 건 꿈에도 모른다. 그러다 닉의 친구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에 가면서 엘레노어를 만난다. 아들을 끔찍이 여기는 엘레노어와 친척의 ‘시월드’는 레이첼을 돈 밝히는 여자라 비난하며 온갖 시련을 겪게 만든다. 내용의 큰 줄기만 보면 사실 영화는 매우 낯익다. 한국 시청자들이 욕하면서도 챙겨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고부 갈등을 뼈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할리우드에서 만든 만큼 차원이 다른 스케일. 바다 위에 띄운 거대한 호화선이나 궁궐을 연상케 하는 저택에서 열리는 각종 결혼 전야제 파티, ‘버진 로드’에 물이 흐르는 결혼식까지, 그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아콰피나 등 미국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감초 연기가 극의 재미를 더한다. 다만 ‘크레이지…’는 아시아에 사는 동양인보다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을 겨냥한 작품이다. 예를 들어 레이첼은 ‘이기주의적인 미국적 사고를 갖고 있다’거나 겉만 동양인이고 내면은 백인이라고 지적받는다. 이런 설정이 국내에서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지 의문이다. 미국에선 충격적 캐스팅이었던 아시안 배우들이 국내에서 얼마나 티켓 파워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우리는 영화관이든 TV든 원래 다 동양인이니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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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소설가 되려면…” 선배가 전하는 노하우

    1988년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으로 등단해 인간의 존재를 감각적인 언어로 탐구해 온 작가가 소설가 지망생을 위해 펴낸 지침서다. 2009년 출간된 ‘작가’에 새롭게 내용을 보탰다. 출간 직후 출판사가 사라지면서 절판된 ‘작가’는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청년들이 꾸준히 찾으며 중고책이 2만∼3만 원에까지 팔렸다고 한다. 이를 본 저자는 최근 등단 작품 경향과 소설에 관한 단상 등 여러 가지를 추가하고 제목도 바꿔 다시 냈다. ‘능률이 높은 시간대에 2∼4시간 글을 쓰는 것이 좋다’거나 ‘혼자서 여행을 하라’는 구체적인 팁은 막막한 소설가 지망생이 참고할 만한 조언이 될 수 있다.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대학 교수직 권유도 물리치며 현장에서 강의를 해왔다는 작가의 애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1년 뒤부터 18년 동안 소설 창작 커뮤니티 강좌를 이어왔다고 한다. 70여 명의 신춘문예 당선자를 배출했다니, 등단을 노리는 작가라면 참고할 만하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어 봤다. 하지만 ‘순수’나 ‘순도’를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거기서 인생을 글로 풀어내는 소설가는 존중하지만 평범한 삶에서 출발하는 글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 독자가 쉽게 공감하는 톡톡 튀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대중가요나 팝에 비해 서사 구조가 긴 클래식이 도움이 된다’는 지침도 지나치게 단정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지 막막한 문학청년들을 위해 책은 시시콜콜한 내용도 문답 형태로 설명하며 친절한 조언을 해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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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닥에 짓눌려 분노에 몸부림 치는 군상들

    1979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청년작가회관.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화가는 전시장 벽이 아닌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고깃덩어리처럼 사지 없이 고함치는 몸 그림은 관람객 발에 짓밟히는 신세가 됐다. 작가 정복수(61·사진)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첫 개인전, ‘바닥화―밟아주세요’였다. 어느덧 손꼽히는 중견 작가가 된 그가 최근 서울 강남구 갤러리세인에서 29번째 개인전 ‘몸의 극장’을 열었다. 정 작가의 그림은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은 불편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전시도 장기가 훤히 보이는 신체를 그린 작품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생각에 팔다리도 종종 생략한다. 예쁜 그림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무섭다’ ‘징그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하지만 평단이나 후배 예술가들은 그를 주저 없이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부른다. 정 작가가 이런 무시무시한 그림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화가는 그림과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보기 싫은 것, 미운 것은 안 보이게 치워 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림과 싸우는’ 작가는 그것을 정면으로 보고 낱낱이 기록해야 한단다. 신체에 그려진 반점들은 ‘살아가면서 맺힌 응어리’로 설명한다. 그 응어리가 어떤 순서로 생겼는지 번호까지 매기며 작가는 포장하려는 욕구와 끊임없이 싸운다. 젊은 시절부터 그려온 바닥화 역시 같은 궤적에서 풀이할 수 있다. 정 작가는 “서양미술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남을 따라가지 말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로 했다. 천장화가 신을, 벽에 걸린 그림이 권력자를 향한다면 바닥은 삶의 처절한 분노와 아픔이 담긴 현실 세계다. 어떤 장식도 없이 표현한 거친 현실적 화풍은 세상에 대한 비관이 담긴 걸까. 하지만 작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서양미술은 전통적으로 신만 완전하다고 봤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인간도 완전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정 작가는 한 가지 소재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 왔다. 2014년에는 바닥화를 벽과 설치로 확장해 ‘뼈 속 풍경’전을 선보였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가출한 화가’전에선 갤러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림을 그리는 기행(?)도 일삼았다. 작가는 “작품의 세계와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은데, 할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최근 ‘신자연주의’ 미학에도 참여했다. 1993년 처음 국내 미술계에 등장한 신자연주의는 경계가 무너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몸 자체가 중심이 된다는 이론. 지난해 11월 가나인 작가와 ‘신자연주의―두 몸의 만남’에서 이런 흐름을 선보인 것이다. 정 작가는 “나의 작업은 몸의 자연주의다. 서양에서 인간의 생각과 상상은 현실이 아니라 괴상망측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나는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26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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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석-정유미 “염문설 모두 거짓… 법적 대응”

    나영석 PD(42)와 배우 정유미 씨(32)가 급속히 퍼지고 있는 악성 루머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내용이 담긴 ‘지라시’(증권가 사설 정보지)가 17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자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다. 나 PD는 18일 입장문을 내고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최초 유포자 및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인의 명예와 가정이 걸린 만큼 선처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CJ ENM 및 변호사가 관련 증거를 수집 중이며 고소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슬픈 일은 누가 왜 이와 같은 적의에 가득 찬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퍼뜨리는가 하는 점”이라며 “너무 황당해서 웃어넘긴 소문들이 진실로 둔갑해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정 씨의 소속사인 매니지먼트 숲도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악성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배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큰 상처를 준 행위에 대해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숲 측은 “악성 루머의 최초 작성 및 유포자, 온라인 게시자, 악플러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증거 자료 수집을 마쳤고 고소장을 접수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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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국 찾은 ‘서치’ 주연 존 조 “차간티 감독의 진정성 있는 제의에 출연 결심

    “고국에 제 영화를 보여드리고, 관객들이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경험 자체가 굉장히 특별합니다. 제게 많은 감정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경험입니다.” 영화 전체를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의 화면으로 구성한 독특한 형식으로 인기를 끈 ‘서치’의 주연배우 존 조(46)가 한국을 찾았다. 16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특별히 한국 관객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가 공식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2009년 ‘스타트렉: 더 비기닝’ 이후 9년 만. 이번엔 가족과 함께 내한해 친척들과 경기 파주시를 찾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 할머니 댁 감나무 사진을 올리거나,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옆에서 셀카도 찍어 올렸다. 조는 “어릴 때 우리나라가 글자를 만들었다는 게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 지 오래돼 많은 게 제 기억과 달라졌지만, 익숙한 모습도 있어 반가웠다”고 말했다. 조는 ‘서치’에서 행방불명된 딸을 찾기 위해 온라인을 샅샅이 뒤지는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는 처음엔 이 독특한 연출 방식 탓에 출연을 꺼렸다고 털어놨다. “아니시 차간티 감독으로부터 전화로 설명을 듣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영화가 기술 구현에만 신경 쓰는 게 아닌 것 같았어요. 처음엔 유튜브 영상처럼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진정성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비전이었다. “전통적인 이야기를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와 배역에 진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또 차간티 감독이 좋은 사람이에요. 작품이 흥행하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인기 비결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하더니, 조심스럽게 “관객의 이해도가 높은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이 워낙 정보기술(IT) 강국이라 미국에 비해 디지털 기기나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가 빠른 것 같습니다. 또 한국계 미국인 가정이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서 더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조는 한국영화도 많이 보는 편이다. 최근 감명 깊게 본 작품으로 ‘버닝’과 ‘리틀 포레스트’를 꼽았다. 그는 “버닝은 굉장히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했다. 두 영화가 매우 다르지만,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외로운지를 보여줘서 감명 깊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6세 때 가족과 이민 간 조는 ‘아메리칸 파이’ ‘아메리칸 뷰티’ 등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코미디영화 ‘해롤드와 쿠마’에서 주인공 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두꺼운 마니아층을 가진 SF영화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에서 ‘술루’ 역을 맡아 글로벌 배우로 발돋움했다. 2006년에는 피플지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하기도 했다.이현용 채널A 기자 hy2@donga.com·김민 기자}

    •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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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의 뒷면처럼 감춰진 슬픔과 고독…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

    인간이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는 환희의 순간. 이 장면을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인류의 성공과 기쁨을 기억했다.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을 것만 같았던 미지의 공간은 먼 미래에 한번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은 도전의 공간이 됐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이면을 뒤집어 차분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실패와 희생, 죽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발로 툭 건드리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위태롭다. ‘라라랜드’, ‘위플래쉬’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데이미언 셔젤의 새 영화 ‘퍼스트맨’은 이런 이면을 알고 있었던 사람, 닐 암스트롱(1930∼2012)의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을 그린다.○ 인간 ‘닐’의 고독과 절망 영화는 닐의 인생 최악의 순간으로 시작한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그를 상사는 “집중력이 부족하다”며 탐탁지 않게 여긴다. 딸 카렌을 잃고 출근한 날 그에게 떨어진 지시는 ‘실수 보고서’를 쓰라는 것이다. 대놓고 슬픔을 강요하진 않지만, 예상치 못한 장면 전환으로 우울함을 극대화한다. 닐이 침대에서 카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행복해하는 찰나, 갑자기 화면은 바뀌고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암 투병을 했던 카렌의 장례식이다. 창밖에선 어린 아들이 뛰어놀고 닐은 홀로 슬픔을 삼킨다. 그리고 카메라는 다시 비어 있는 아기 침대를 비춘다. 가장 행복한 순간과 가장 슬픈 순간을 곧바로 이은 지독한 장면. 헤밍웨이가 썼다는 가장 슬픈 문장이 떠오른다. “팝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 나약하고 위태로운 도전의 기록 대중적인 우주 영화라면 매끈하고 멋진 우주선이 하늘로 힘차게 뻗어 오르는 모습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퍼스트맨’의 우주선은 대부분 닐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그것은 매끈한 표면이 아니라 철판을 이어 땜질한 내부의 모습이다. 나사 하나라도 잘못돼 부서질까 불안한데 파리마저 날아다닌다. 닐의 동료들이 훈련을 위해 우주선에 탔을 때도 벨트가 말을 듣지 않자 공수된 도구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 완벽할 것 같았던 도전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위험한 미지의 길이었다. 우주선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도 혼돈 그 자체다. 닐이 우주선을 타기 직전,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또 그 우주선에 타고 하늘로 오를 땐 땜질한 철판이 추진력에 못 이겨 서로 부딪치며 귀를 찌를 듯 덜컹거린다. 수시로 흔들리는 선체 때문에 눈을 질끈 감은 닐의 모습은 사라질 듯 희미하다. 그러면서 거리의 성난 사람들의 구호가 겹쳐진다. “이만한 희생과 비용을 치를 가치가 있는 일인가!”○ 위대했던 미국에 관한 우울한 향수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는 미국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던 시기다. 그런데 영화에서 밝은 햇빛이 비치는 장면은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노는 때밖에 없다. 나머지 대부분은 어두운 밤 실내조명 하나에 의지하거나, 커튼을 쳐서 푸르스름한 빛이 실내로 비치곤 한다. 세계가 미국을 바라봤던 그 순간을 왜 어둡게 그리고 있을까. 아마도 과거의 영광이 어디로 갔는지 우울하게 돌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가 공개되자 닐 암스트롱이 발을 딛는 순간 달에 꽂았다는 성조기가 생략됐다며 정치적 논란이 일어났다. 영화는 불안한 현재의 관점에서 화려했던 과거의 미국을 정교하게 곱씹으며 비트는 방식을 통해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영악하게’ 정조준하고 있는 듯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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