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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전남 목포시 상동 목포한국병원 519호 병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 정성도 씨(54·사진)가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팽목항 일대에서 씩씩하게 ‘밥차’ 봉사를 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정 씨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은 팽목항 ‘밥차’ 봉사를 끝내고 돌아가던 지난달 28일 오후 6시경. 동료 자원봉사들과 함께 진도 읍내를 돌아보던 중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곧바로 읍내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목포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빠른 조치 덕분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정 씨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튿날인 4월 17일 팽목항을 방문해 40일 넘게 자원봉사를 해 왔다. 민간구호단체인 아드라코리아(ADRA KOREA) 호남지역본부의 도움을 받아 밥차에서 식사를 제공했다. 정 씨는 “많게는 하루 15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 잠수부에게는 특식을 별도로 만들었고 끼니를 거르는 실종자 가족을 위해 미숫가루를 타서 건넸다”고 말했다. 그러나 30일 팽목항이 정상 개방되기에 앞서 아드라코리아는 28일 밥차를 정리했다. 정 씨는 실종자 가족이 남아 있는 현장을 지키고 싶었지만 구호단체의 뜻에 따라 생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팽목항을 지키는 동안 아내 혼자 농사일을 해왔다. 일손이 모자라 호박과 대파 농사는 아예 접어야만 했다. 하루빨리 내가 아내를 도와야 해서….” 정 씨는 딸(30), 아들(28) 그리고 입양한 딸(7) 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막내딸은 선천성 시각장애(1급·무안구증)와 지적장애(1급)를 앓고 있지만 “가슴으로 키우는 딸”이라고 했다. “자녀가 잘못되면 부모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같은 부모로서 세월호 유족들이 겪고 있는 슬픔이 내 일처럼 느껴졌다.” 정 씨는 팽목항에 남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실종자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길 기원했다. 그는 “팽목항에서 느낀 건 바로 나눔의 아름다움이었다”며 “남은 봉사자들이 팽목항의 슬픔을 작은 희망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목포=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세월호 침몰 사고 45일째인 30일 선체 절단 작업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 1명이 숨졌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서 물속에 들어가 선체 외판 절개 작업을 하던 이민섭 씨(44)가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3시 35분 사망했다고 밝혔다. 민간 잠수사의 사망은 이번이 두 번째로 앞서 6일에는 이광욱 씨(53)가 수중 수색 중 희생됐다.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 씨는 오후 1시 50분경 입수해 외판 절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후 2시 20분경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렸고 바지선에서 산소공급선을 통해 이 씨와 소통하던 스피커에선 이 씨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급히 다른 잠수사와 수중 인근에 있던 동료 잠수사가 구조에 나서 20분 뒤 이 씨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지만 이 씨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흐르고 의식이 없어 현장에 있던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이후 이 씨를 헬기를 이용해 목포한국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민간 잠수사 이 씨는 선체 절단 작업을 위해 투입된 88수중개발 팀과 함께 사고 해역에서 작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호 목포한국병원 원장(49)은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지만 외부 충격에 의한 폐 손상이 사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9일부터 시작된 세월호 선체 외판을 잘라내는 작업은 ‘산소아크릴 절단법’으로 이뤄진다. 잠수사가 길이 30cm의 아크 절단봉을 갖고 물속에서 전류를 흘려 열을 발생시킨 뒤, 약해진 선체 표면에 산소를 강하게 분출시켜 자르는 방식이다. 창문 3개와 창틀을 포함해 너비 4.8m, 높이 1.5m의 외판을 절단한 뒤 진입로를 막고 있는 책상과 무너진 격실 벽 등 장애물을 꺼내는 게 목적이다. 한 잠수사는 “산소아크릴 절단 작업은 기포와 가스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고 산소를 쓰기 때문에 기포 중 뭉친 산소에 불꽃이 닿을 경우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고대책본부는 폭발음이 들렸다는 목격자 진술에 따라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고 이민섭 씨의 형 이승엽 씨(46)는 “동생은 20년 가까이 잠수사 일을 했다. 동생에게 세월호 수습에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더니 안 간다고 했었다. 동생에게 예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쌍둥이 형이 있는데 이제 동생까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의 유족으로는 인천에 살고 있는 부인과 10대인 두 딸이 있다.목포=권오혁 hyuk@donga.com / 강은지 기자}
26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서망항. 민간 잠수사 10여 명이 해양경찰 소속 P-67 경비정에 몸을 실었다. 세월호 침몰 해역의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에서 작업을 하다 전날 기상 악화로 1박 2일간 피항한 이들은 남은 실종자 16명을 찾기 위해 다시 배에 올랐다. 잠수사들이 시신 1구당 500만 원을 받는다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24일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뒤였지만 사고해역으로 돌아가는 잠수사들의 얼굴에서는 어떤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민간 잠수사들의 필사적인 수색 작업에도 불구하고 실종자 수는 21일 이후 16명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서망항에서 만난 민간 잠수사 양모 씨(45)는 “며칠째 희생자 수습이 안 되니까 우리도 애가 탄다”며 “잠수사들이 힘든 걸 아니까 가족들이 뭐라도 해주려고 하시는데 요새는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끼리는 밖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얘기에 흔들리지 말자고 얘기한다. 남은 실종자들을 찾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된 잠수사들은 정신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잠수 후유증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먹는 잠수사가 태반이다. 이들을 지탱하는 건 실종자 가족들의 격려와 신뢰다. 초기 잠수사들을 불신했던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바지선에 음식을 올려 보내 주며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내 가족을 찾으려면 믿을 건 이들뿐’이라는 마음에서다. 시신을 찾아 돌아간 유가족이 다시 찾아와 감사함을 전하기도 한다. 사고해역에서 작업하는 한 민간 잠수사는 “조카를 찾은 한 남성이 고맙다며 담배 몇 보루를 사들고 서너 번 찾아오기도 했다”며 “밖에서 무슨 말이 들려와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한의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진이 추가로 배치되고 음식배달도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등 바지선 내 환경은 나아지고 있지만 수색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세월호 내부는 선체 붕괴가 진행돼 부유물과 장애물이 쌓여 있어 잠수사들이 손으로 더듬어 일일이 수색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간 잠수사 이모 씨(49)는 “선내는 무너지고 결과는 안 나오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이 씨는 “사람들이 그 위험한 데 왜 들어가느냐고 말리지만 남은 잠수사들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남은 실종자들을 찾겠냐는 각오로 뭉쳐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언딘 리베로호에는 노란 리본 그림과 함께 ‘당신은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실종자 가족 일동―’이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 3개가 걸려 있다. 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사진)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의 일당이 100만∼150만 원이고, 시신 한 구를 인양하면 5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발표와 대대적 인적 쇄신을 통해 세월호 정국을 돌파해가는 와중에 대통령의 ‘입’이 또다시 설화(舌禍)에 휘말렸다. 민 대변인은 24일 일부 청와대 출입기자와 점심을 먹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민간 잠수사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한 잠수사는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돈을 준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일당도 얼마인지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민간 잠수사들은 수난구호법에 따라 종사명령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정부와 일당 등에 관해 구체적 계약을 맺지 않았다. 민 대변인은 논란이 커지자 25일 기자들을 만나 “실종자 가족들은 잠수사들이 마지막 한 명을 수습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 것이고, 가능하다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통해 잠수사들을 격려해주길 희망할 것이라는 개인적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해명했다. 앞서 민 대변인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은 것과 관련해 “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니고…”라고 지난달 21일 발언하는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연 9일에는 “유가족이 아닌 사람이 더 많다”며 ‘순수 유가족’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마지막까지 세월호에 남아 승객들을 구하다 숨진 양대홍 사무장(46)의 큰형 대환 씨(56)와 작은형 석환 씨(48)는 25일 오전 손수 준비한 돼지고기와 찰밥 등을 양손 가득 든 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앞 급식봉사 천막을 찾았다. 전날 인천에서 진도로 오기 전 준비한 200인분의 음식이었다. 양 사무장 가족은 이날 새벽부터 직접 돼지고기 120kg을 썰어 찰밥 국 채소 등과 함께 정성스레 상자에 담았다. 이들은 당초 사고 해역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는 잠수사들에게 음식을 전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바지선에 오르기 어렵게 되자 준비해온 음식을 체육관과 팽목항의 급식봉사단체에 전달해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로 제공했다. 대환 씨는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어떻게든 잠수사들에게 준비해 온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는데 아쉽다”며 “다음에는 떡을 해 와서 꼭 잠수사들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양 사무장의 부인과 두 아들도 이 자리에 동행했다. 이달 15일 동생의 시신을 수습해 돌아간 대환 씨는 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도 진도에 다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겨진 가족들과 애써준 잠수사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이 먼저 나왔지만 남은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다”고 전했다. 19일 바다에서 발견된 양 사무장의 임명장도 25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임명장을 건네받은 대환 씨는 “단 5분이라도 동생을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동생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한 16명이 얼른 가족들에게 돌아가길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나흘째 수중수색에 진전이 없는 가운데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선체 일부를 절단해 장애물을 꺼내는 방안과 원격수중탐색장비(ROV)를 재투입하는 방안 등을 가족들과 논의했다. 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22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진도로 내려온 자승 스님은 40여 명의 스님과 함께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임시 법당에서 불교 경전인 천수경을 읽고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어 “실종자가 가족 품에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시고 세월호 침몰 생존자 각각은 마음속의 두려움을 떨치고 일상으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자승 스님은 자원봉사자 등 불교 신도 50여 명과 함께 팽목항 방파제를 한 바퀴 도는 ‘안행(雁行)’을 한 뒤 사고해역 방향을 바라보며 반야심경을 봉독했다. 스님은 노란 리본에 ‘여러분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적어 팽목항 방파제에 걸었고 불교 신자인 유가족 2명을 만나 미리 준비해 온 염주를 건넸다. 자승 스님은 팽목항을 떠나기 전 경기 안산 단원고 김모 교장을 만나 “희생자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간다”며 “열심히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21일 환갑을 맞았던 자승 스님은 “이럴 때 내 생일을 누릴 수 없다”며 진도 방문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승 스님은 팽목항에서 가장 가까운 절인 진도 쌍계사에 들러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봉사한 스님들과 신도들을 격려한 뒤 진도를 떠났다. 조계종은 세월호 참사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부터 팽목항에 임시 법당을 차리고 세월호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기도를 올려 왔다.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 대해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0일 오후 3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대책위는 “담화문에 대한민국 국민인 실종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통령조차 국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전날 담화에서 남은 실종자 구조계획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점을 비판한 것이다. 대책위는 “가장 소중한 것은 실종된 아이들과 가족들”이라며 “대통령도 잊혀져가는, 쓰러져가는 우리 국민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16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요구한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도 지적했다. 당시 진상 규명에 피해자 가족이 필수적으로 참여하고 △청와대 보고 및 지시를 포함한 모든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독립된 진상조사기구 설치 △국정조사 등 각 절차에서 수집된 정보에 대한 접근 보장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대통령이 가족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음에도 우리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 언급되지 않은 점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가족의 목소리로부터 출발하는 진상 규명이 진상조사의 대원칙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오랜 시간 가족들과 마주하다 보니 직접 물어보기 어려웠던 가족 이야기를 먼저 말해주는 분도 있어요.”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부터 전남 진도군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서 봉사해온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들은 아직도 현장에서 실종자를 애타게 찾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한약사회 소속 이승용 씨(43)는 “실종자 가족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영양제라도 하나 주머니에 넣어드린다. 마지막 한 분까지 힘이 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정성에 냉랭하던 실종자 가족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일부 가족은 담당 약사에게 “시신이 수습됐다는데 함께 가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고마움을 전하고 가는 이도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으면서 현장의 자원봉사도 변하고 있다. 처음에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수칙이 있을 만큼 가족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요즘은 가족들과의 소통이 점차 늘고 있다. 전남 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는 장려진 씨(30·여)는 “가족들이 먼저 봉사자들에게 ‘힘들지 않으냐’ ‘식사 더 많이 하세요’라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고 전했다. 세탁봉사를 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처음에는 얼굴조차 마주보지 않았던 가족들이 지금은 눈을 마주치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전남 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만든 ‘J(진도) 수칙’도 일부 조정됐다. ‘실종자 가족들을 존중하고 서로 마주할 때면 목례로 예를 표시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진도 수칙을 만든 이성태 사무국장(51)은 “처음에는 봉사자들도 가족들에 대한 두려움과 미안함이 많았다”며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조금씩 정서적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때 2300여 명까지 몰렸던 자원봉사자는 19일 400여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한 ‘맞춤식 봉사’는 계속되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시작된 세탁 봉사를 비롯해 가족들을 위한 피부관리, 미용, 발마사지 등은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가족들을 위해 맞춤식 식단도 제공되고 있다. 진도=권오혁 hyuk@donga.com·황성호 기자}
“다음 달이면 선거도 있는데…. 거기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우리 조카가 발견되든 말든 관심을 안 가지게 되면, 그래서 수색도 소홀해지면 어쩌죠?” 세월호에 탔던 경기 안산 단원고생 조카를 33일째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기다리는 박모 씨(46·여)는 18일 텅 빈 체육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가족의 시신을 찾은 희생자 가족들이 떠난 데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대형 행사 등이 다가오면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아직 가족을 찾지도 못했는데 잊혀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진도 팽목항 실종자 가족 대기실 옆에는 이날 ‘월드컵이 되면 이 비극적 사건은 세인의 기억에서 잊혀져 갈 겁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아직 체육관과 팽목항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팽목항에서 일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국민들이 세월호 사건과 수습되지 않은 실종자의 존재마저 잊을까 걱정된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자원봉사자마저 줄면서 실종자 가족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전남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이날 “4월 20일에는 개인과 단체를 합쳐 2350명의 자원봉사자가 일했는데 오늘(18일)은 408명이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체육관에는 적막함만 감도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 20여 명이 가족이 발견되기를 기다렸다. 먼저 가족을 찾은 이들의 흔적은 250여 장의 담요로 남았다. 자원봉사자 장길환 씨(49)는 “담요까지 치우면 너무 휑해 더 불안해 할까 봐 그대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의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 중인 대한약사회 김희식 씨(53·여)는 “노숙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체육관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이 많이 저하돼 구내염이나 대상포진을 앓는 실종자 가족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일교차가 커지면서 감기에 걸린 가족도 늘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설치한 이동식 조립주택에는 실종자 가족 일부가 19일부터 입주할 예정이다.진도=권오혁 hyuk@donga.com·황성호 기자}

“아직 아이들이 바닷속에 있는데. 나도 거기에 가야 하는데….” 전남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을 오가며 18일간 봉사활동을 한 A 씨(51)는 3일 극심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A 씨는 입원하기 전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같은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27일째를 넘어가면서 현장의 자원봉사자 중 심신이 지쳐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진도군에 사는 A 씨는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7일 진도지역 내 지인들과 함께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단체의 회장 역할을 맡고 있던 그는 자원봉사자 인력 운용부터 구호물품 배급까지 모든 과정을 챙겨야 했다. 24시간 자원봉사 천막을 운영하다 보니 집에 못 들어가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매일 천막을 찾아오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점차 피로가 쌓여갔지만 A 씨는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으니 모두 최선을 다해 가족들을 돕자”며 동료들을 격려하곤 했다.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등의 자원봉사자 중에는 이처럼 병원에 입원하거나 링거 주사를 맞아가며 봉사에 임하는 사람이 많다. 자원봉사자 B 씨(54)는 “실종자 가족들 걱정에 심신이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며 “실종자 가족을 보고 있자면 내가 건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실종자 수색작업이 장기화하면서 가족들만큼 자원봉사자들의 말 못하는 고민도 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은 힘든 와중에도 내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24일째 진도에서 자원봉사 중인 김진무 씨(28)는 “요새 우울하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많다”며 “봉사자들끼리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서로 달래고 있다”고 말했다. 진도 자원봉사자는 12일 현재 520여 명에 이른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관계자는 11일까지 진도 지역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194명 중 47명(24.2%)이 자원봉사자라고 밝혔다.진도=권오혁 hyuk@donga.com·여인선 기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3000여 주민의 삶에도 귀를 기울여 주세요.” 뱃길이 막힌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 인근 섬마을 주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사고 직후 진도 팽목항은 사고대책본부로 이용되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매일 8회 팽목항에서 조도 선착장을 오가던 여객선은 사고 직후 임시 선착장을 통해 2, 3회로 운행 횟수가 줄었다. 11일에는 강한 풍랑으로 아예 한 척의 배도 운항하지 못했다. 뱃길이 막히자 주민 이동과 물자 공급에 차질이 생겨 조도 주민들은 생계에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실정이다. 상조도 하조도 등 36개 섬 주민 3000여 명은 유일한 이동수단인 배를 통해 생필품을 조달하고 생산한 농수산물을 판매해 살아왔다. 활어 양식업을 하는 일부 주민은 세월호 침몰 이후 20여 일 동안 사료를 배달받지 못해 피해를 봤다. 상황이 악화되자 주민들의 불만도 극도로 커지고 있다. 조도면 율목이장 정순배 씨(50)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오늘(11일)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며 “뱃길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14일 팽목항에 설치된 천막 일부를 강제로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현재 관련 지방자치단체 및 기관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며 자세한 답변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어민들의 민원이 접수된 이후 대책본부는 팽목항 선착장 주변 천막을 옮기는 등 후속 조치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근 섬 주민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생계를 내팽개치고 구조 및 수색 작업에 적극 참여해왔다. 사고 당일 정 씨 등 어민들은 어선 60여 척을 동원해 승객 60여 명을 구조했다. 조도 주민들은 현재까지 인근 해역에서 유실물 수거 및 오염방제 작업 등에 동참하고 있다. 지원 작업에 드는 수십만 원의 유류비까지 자비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피해 보상이 가능해졌지만 보상 규모와 내용 등은 아직 불확실하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관계자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돼 관련 법령에 따른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며 “아직 사고 수습 단계이기 때문에 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회와 노동계가 선원 등 국민 안전과 관련된 직종에 비정규직 채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선원 등을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해 처우와 책임감을 동시에 높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해운업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논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선원은 정규직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경협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선원 등 국민 생명과 안전에 밀접한 업무에 대해선 계약직(기간제) 근로자 채용을 금지하는 ‘기간제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8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사업주가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현행 기간제법은 사실상 모든 업무에서 비정규직 채용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선원 △간호조무사 △하역 업무 △건설공사 현장 업무 등 파견 고용이 이뤄질 경우 안전 위험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는 직종에 한해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김 의원은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업무까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파견법과 법률적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라도 선원의 비정규직 고용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운업계는 “업계 특성상 선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력 반발했다. 특히 외항선원은 보통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배를 탄 뒤 1년 이상의 휴가를 갖고, 다시 배를 타기 때문에 정규직은 곤란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국내 선원 3만8000여 명 중 비정규직은 70% 이상으로 추산된다. 세월호 역시 선원 25명 중 선장을 포함해 15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정부는 선원의 비정규직 채용을 금지할 경우 다른 직종에 대해서도 비슷한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신중한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2007년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 때도 비정규직 채용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노사정 합의로 도입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이번 사안도 국회를 통과하려면 노사정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여객선 선원들의 열악한 처우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 여객선 선원들의 낮은 처우가 사고의 한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선원 인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처우마저 열악하다 보니 안전사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만한 젊고 능력 있는 선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국내 해양수산 분야 선원 수요는 연간 5만8548명이지만 약 33.4%가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에 50대 이상 고령 선원은 약 60%에 이르고, 내항선의 경우 예비 선원 비율은 1.3%에 불과해 대체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다. 연안여객선 선원의 평균 월급은 2011년 기준 약 329만 원으로 선원 전체 평균 임금의 77% 수준에 불과하다. 해수부 관계자는 “실력 있는 선원들은 저임금과 격무에 시달리고 비정규직으로 고용까지 불안한 내항선 근무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한국해양대, 목포해양대를 졸업한 엘리트들은 국내 여객선보다는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외항선을 운영하는 대기업을 선호한다. 박윤수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고용지원부장은 “실력이 떨어지거나 나이 든 선원이 연안 여객선에 배치되면 여객선의 해사 재난사고 때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유성열 ryu@donga.com / 진도=권오혁·박민우 기자}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아버지는 전남 진도 앞 해상에 설치된 바지선에 올랐다. 외아들이 탄 세월호가 지난달 16일 이곳에서 침몰했다. 단원고 2학년 나강민 군(17)의 아버지 나병만 씨(47)는 ‘오늘만큼은 반드시 아들을 만나 데려가겠다’는 마음으로 7일 오전 진도 실내체육관을 나섰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효자인 아들이 반드시 나타나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강민 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챙기는 걸 빼먹은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서툴게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줬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매년 카네이션을 사왔다. 야근이 잦았던 나 씨가 아들이 등교한 뒤에 집에 들어간 해에도 식탁 위에는 어김없이 카네이션이 놓여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의 생일도 잊는 법이 없었다. 지난해 9월 나 씨의 생일날, 일을 마치고 들어와 자고 있던 나 씨를 하교 후 돌아온 아들이 깨웠다. “아빠 케이크 사왔어. 생일 파티하자.” 5일은 강민 군의 어머니(43) 생일이었다. 팽목항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이날 아들이 돌아오길 염원하며 부둣가에 달린 연등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강민아! 오늘 엄마 생일인 거 알지? 기다릴게. 사랑한다. 내 아들 너무 보고 싶다. 내 애기 빨리 와줘!’라고 쓴 리본이 바람에 나부꼈다. 반대편에는 나 씨가 ‘강민아, 아빠다. 미안타(미안하다). 기다릴게. 꼭 한번 보자꾸나’라고 쓴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강민 군은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도 고모에게 전화해 곧 어머니 생일이라고 알려줬다. 강민 군은 나 씨에게 친구 같은 아들이었다. 나 씨가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들어온 날엔 배고픈 아버지를 위해 직접 라면도 끓여줬다. 여름이면 둘이서 고기를 구워 먹고 놀았다. 아버지는 “태권도를 잘하는 우리 강민이가 경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나 씨의 휴대전화에 담긴 사진 속 강민 군은 아버지에게 팔을 두르거나 아버지의 뺨에 뽀뽀를 하는 애교 많은 모습이었다. 어머니와 웃는 모습이 꼭 닮은 중학교 졸업사진도 있었다. 나 씨는 체육관에서 사진 속 아들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실종자 수가 30여 명으로 줄어들면서 나 씨의 마음도 점점 조급해졌다. 아버지는 7일에도 진도 앞바다에서 하염없이 아들을 기다렸다. 효자 아들은 애타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진도=주애진 jaj@donga.com·권오혁 기자}

5일 오후 5시 20분경 전남 진도 팽목항. 주황색 아웃도어 재킷을 맞춰 입은 한 쌍의 연인이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들어섰다. 그들은 팽목항 한쪽에 마련된 자원봉사단체들의 부스와 자원봉사자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팽목항 곳곳을 둘러봤다. 가족대책본부 앞에 놓아둔 간식과 추모 메시지를 훑어보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변 정경을 찍기 시작했다. 바로 옆을 지나치는 실종자 가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둘만의 데이트처럼 보이는 행동은 한동안 계속됐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등 연휴가 겹치면서 이 기간에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는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 대부분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현장을 둘러본 뒤 추모와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일부 방문객은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팽목항의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념 촬영을 하거나 크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화사한 나들이 복장이나 짧은 치마, 하이힐 등을 착용한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추모의 뜻을 전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는 한 남성 아이돌 그룹도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한 채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방문객의 이런 행태에 대해 한 자원봉사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여전히 큰 슬픔에 잠겨 있는데 마치 관광지에 온 것처럼 사진 찍고 떠드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과 현장 관계자의 지적이 이어지자 5일 오후 “실종자 가족분들을 위해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대형 안내문이 팽목항 입구 2곳과 가족대책본부 천막 옆에 부착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도 6일 브리핑을 통해 “연휴 기간에 일부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거나 심하게 웃는 등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사례가 있었다”며 “실종자 가족이나 사고 수습 관계자 이외의 분들은 팽목항 방문을 가급적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방문할 경우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다.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사고 발생부터 수습까지 무한한 책임을 느낍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찾은 것은 참사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한 ‘대국민 사과’를 두고 유가족들은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야권에서도 연일 박 대통령의 ‘정식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팽목항을 전격 방문해 책임을 회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4일 오전 11시 30분경 ‘주차관리’ 옷을 입은 경호요원들이 현장에 투입되자 팽목항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 대통령은 낮 12시 9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실종자 가족 50여 명이 모인 가족대책본부 천막에 들어섰다.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러자 실종자 가족들의 응어리진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이들은 “애들이 다 죽었잖아요. 오늘 다 꺼내주세요” “아이들의 형체를 이제 알아볼 수 없다. 언제까지 꺼낼 수 있는지 말해 달라”며 절규했다. 또 일부 가족은 “기다려라, 기다려라가 도대체 몇 번째냐”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심정이실 겁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겪어 봐 잘 알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어떠실지 생각하면 가슴이 멘다”고 말할 때는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2일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서도 “부모님을 다 흉탄에 잃어 가족을 잃은 마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통감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사를 꺼낸 셈이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울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 유가족은 박 대통령에게 “이주영 장관을 어떻게 하실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박 대통령은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 죄를 지은 사람들은 철저히 밝혀서 엄벌에 처하겠다”며 “공직자와 정부 관계자도 책임을 못 다한 사람은 엄중 문책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이런 거 다 소용없다”며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외면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가족대책본부를 나와 시신확인소를 둘러본 뒤 팽목항에서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함정을 타고 실종자 수색작업이 진행 중인 침몰 현장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구조단의 바지선에 올라 민관군 잠수사들에게 “국민 모두가 감사하고 있다. 여러분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2일 ‘실종자 수습→관료사회 적폐(積弊) 척결 등 근본적 대안 마련→대국민 사과’라는 향후 수습 절차를 소개한 뒤 4일 구조 현장을 전격 방문했다. 실종자 수습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이 관료사회를 정조준하면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동요하고, 정부 역량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한편 박 대통령은 어린이날인 5일 청와대에서 연례적으로 열던 어린이날 행사를 취소했다. 그 대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린이날에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길 바라면서 축복의 하루가 되기를”이라는 짧은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이재명 egija@donga.com / 진도=권오혁 기자}

30일 오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한 실종자의 어머니가 쓰러져 링거를 맞고 있다. 구조작업이 장기화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 가고 있다. 진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중국 노동절 연휴를 하루 앞둔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인 관광객들이 입국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5월 1일부터 3일까지인 중국 노동절 연휴 동안 7만여 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 때 23세 딸과 21세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김창윤 씨(59). 그는 매년 5월이면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어버이날(5월 8일)을 맞아 ‘부모님 사랑합니다’라며 해맑게 웃던 아들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 씨는 “5월만 되면 어쩔 수 없다. 어린이날 어버이날같이 이런저런 날이 다가오면 하늘로 보낸 두 아이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모임에서 지인들이 어버이날 받은 선물 이야기를 하며 자랑이라도 하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5월에는 유난히 결혼식도 많아 청첩장을 연이어 받으면 김 씨의 고통은 배가 된다. 그는 “두 녀석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결혼해서 손주도 안겨줬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며 슬퍼했다. 김 씨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5월이면 떠나보낸 가족 생각에 훨씬 힘이 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5월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성년의날(19일)이 몰려 있는 ‘가정의 달’이다. 그러나 사건 사고 등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잔인한 달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축하와 감사를 나누고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지켜볼수록 쓰라린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일이나 생일 명절 성탄절 등을 맞았을 때 피해자의 가족들이 평소보다 더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심리적 증상을 의학적으로 ‘애니버서리 리액션’이라고 부른다.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5월이 돼도 실종자를 언제 모두 찾을지 모르는 상태다. 가족들이 애니버서리 리액션을 더 심각하게 겪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특히 스승과 제자를 동시에 잃은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은 고통 유발의 원인을 하나 더 안고 있는 셈이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피자를 보면 이걸 좋아했던 자식이 생각난다”거나 “바다를 보면 물에 아직 있을 아이가 생각난다”는 등 주변의 모든 것에서 자녀의 흔적을 찾고 있다. 경기 안산에서 이미 자녀의 장례를 치른 학부모들은 “단원고 근처에 가거나 교복만 봐도 잃어버린 자녀가 생각나 슬픔이 더욱 커진다”고 하소연한다.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이런 아픔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이고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므로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삶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활동도 효과적인 해법이다. 박은진 일산백병원 신경정신의학과 교수는 “상실감을 건전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추모 행사나 자원봉사 등에 참여하는 것도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과 비슷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 중에는 이런 방식으로 아픔을 극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4년 전 천안함 폭침 때 아들 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올해 4월부터 공개적으로 단체 봉사활동에 나섰다. 아들(고 장철희 일병)을 잃은 아버지 장병일 씨는 “죽은 아들만 그리워하며 살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기에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버서리 리액션 (anniversary reaction·기념일 반응) ::사건 사고 등으로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고인의 기일이나 생일 때 평소보다 더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현상.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탄절 등 가족과 함께하는 기념일에도 같은 심리상태에 빠지기 쉽다.이건혁 gun@donga.com·권오혁·강은지 기자}

해양경찰청이 28일 공개한 9분 45초짜리 최초 구조상황 동영상 속에서 해경이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로 필사적으로 살리려고 했던 학생은 안산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군(17)인 것으로 밝혀졌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고 다시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정 군은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전남도 201호 어업지도선은 16일 오전 10시 25분경 침몰된 세월호의 좌현으로부터 20여 m 떨어진 해상에서 떠내려가는 정 군을 발견해 구조했다. 발견 당시 정 군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어업지도원들은 정 군에게 1차 응급조치를 한 뒤 해경 경비정으로 옮겼다. 해경은 의식을 잃은 정 군에게 3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해경은 오전 11시 17분경 구조헬기로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했다. 정 군은 목포 한국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정홍원 국무총리가 28일 경기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8시 30분경 수행원 없이 홀로 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조문 과정에서 유족들의 반발은 없었다. 정 총리는 돌아가는 길에 취재진의 질문을 받자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안산=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