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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을 발표했을 때 이십대 후반이었는데 이제 50년이 넘게 흘렀잖아. 이 시점에서 돌아보니 남북 관계는 그때보다 안 좋아진 것 같아.” 소설가 이호철 씨(81·사진)가 1961년 발표한 단편 ‘판문점’의 뒤를 있는 ‘판문점2’를 52년 만에 내놨다. 그는 판문점1, 2를 묶은 소설집 ‘판문점’(북치는마을) 출간에 맞춰 10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문열, 황석영이 남북 관계를 (다룬 소설을) 쓰는데 내가 보기에는 성이 안 차. 그나마 북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내가 이제 여든이 넘었으니 한번 다시 써보고 싶었지.” 1932년 함남 원산 출신인 작가는 6·25전쟁 때 월남했다. ‘판문점2’는 ‘판문점1’의 시점에서 50여 년이 흐른 남북 관계를 짚는다. ‘판문점1’은 1960년대 초 남한 기자인 진수와 북한 기자들의 대화 형식이었다. ‘판문점2’는 현재 시점의 진수와 그의 보수적인 친구 영호가 주고받는 대화다. 신작에는 북한의 독재, 권력 세습, 인권 유린 등을 비판하고 남북 간의 대화를 촉구하는 작가의 강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의 독재와 권력 세습에 반대하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어떤 명분이든 (남북이) 만나고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아져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해.” 이 씨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2013년 체제 만들기’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백 교수의 ‘2013년 체제’에서 이북 체제의 (문제점이) 한 번도 보이지 않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이야. 지금 이북의 상태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지.” “내가 초점을 두는 남북 관계는 딴 게 없어. 중국의 변화를 살펴서 어떻게 북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느냐 하는 거야. 북이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싶고, 문학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봐.” 이 씨는 1950, 60년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무궤도 제2장’(북치는마을)도 함께 펴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정유정(47)은 약속 시간보다 40분 늦었다.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이 벌겋다. “완전 멘붕(멘털 붕괴)이네요.” 신작 소설의 감수를 맡은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만나고 온 길. 출간이 코앞인데 소설에 무슨 일이?2011년 3월 출간해 23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 ‘7년의 밤’ 이후 정유정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가상의 도시 ‘화양’이다. 경기 의정부를 모델로 했다는 이 도시에 갑자기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이 퍼지고, 도시가 봉쇄된다. 29만 명에 달하던 시민이 3만 명으로 줄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생존자와 막으려는 군대, 개와 사람의 생과 사가 섞인 28일 동안의 아비규환…. 2010년 12월 시놉시스를 쓴 이후 작가는 여태껏 ‘화양’에서 살고 있다.“한 도시에 전염병이 돌면 감염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격리된다고 우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어쩌죠.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해야 이야기 전개가 되지, 어디 갇히면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거죠. 뭐 ‘눈먼 자들의 도시 2탄’도 아니고.”서울 마포구 서교동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작가는 기자를 앞에 두고 한숨과 열변을 번갈아 토해내며 신작을 설명했다. 200자 원고지 2500장 분량의 원고 중 그의 입을 통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인물과 사건들은 개성이 강했고 파격적이었다. 올해 최고 기대작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은 듯했다. 가제는 ‘화양 28’이지만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궁금한 독자를 위해 살짝 내용을 풀자면 주요 ‘인물’은 6명. 남자 수의사와 여자 신문기자, 119구조대 팀장, 링고, 여자 간호사, 소방공익요원이다. 링고는 수캐고, 소방공익요원은 사이코패스다. 이들이 화양이라는 ‘지옥’에서 얽히고설킨다. “소방공익요원은 짐승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죠.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대리만족하면서 즐거워하면서 썼어요. 하하.”작가는 결말까지 ‘시원하게’ 알려줬으나 “(광주 집에) 내려가 절반은 확 뒤집어 버려야겠다”고 말한 점을 감안해 소개는 않겠다. 그는 한두 번 더 고쳐 4월까지 원고 마감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5월 말쯤 책이 나오게 된다. 정유정의 소설은 이미지가 강하다. “냄새까지 느껴졌으면” 하는 게 작가의 욕심.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작가는 수의학과 응급구조대원의 이론과 실상을 공부했고, 세밀한 장면은 일일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가며 썼다. “수의사가 나오면 수술이나 검사 장면이 몇 개는 나와야 하잖아요. ‘동맥혈 산소 분압이 몇 이하면 기계적인 호흡장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문장들을 쓰려고 공부 열심히 했지요.”작가와 함께했던 앞선 두 번의 술자리 생각이 났다. “담배 안 피우세요”라고 물었다. 그가 달게 피우던 ‘디스’가 생각나서다. 많게는 하루 네 갑씩 피우던 담배를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끊었다고 했다.(대신 전자담배로 갈아탔다.) 술도 안 마신다고 했다. 몸이 무척 안 좋았고, 지방간이 좀 있다는 의사 소견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건강이 괜찮다. 한국 문단의 모범생으로 우뚝 섰다”며 그는 깔깔댔다. 평소 체중보다 3kg ‘오버’라는데 얼굴에 살이 붙어서인지 전보다 인상이 부드러워 보였다. “앞선 성과가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시원스레 답했다. “힘든 분야에서 위험한 도전을 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많이 팔리는 것과 상관없이 ‘이제 더는 못 써’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 있게 내놓는 게 우선이죠.”‘저질이다’라는 말보다 ‘재미없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마음이 아프다는 작가. “독서적인 즐거움이 있는, 쉽게 말하면 페이지터너(page turner·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책)를 쓰고 싶어요. 소설이 드라마, 영화와 경쟁하려면 재미있어야죠. 독자들을 밤새 붙잡아놓고 꼼짝 못하게 할 정도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김애란(33)은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1910∼1937)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오래전에 활동했던 다른 선배 작가들을 떠올리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이상 선배’는 유독 젊게 느껴진다는 이유였다. 이상의 작품 세계가 젊다거나 그가 스물일곱에 일찍 세상을 뜬 점이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다고도 했다.“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이상보다 나이가 많더군요. 삼촌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멋쩍기도 했어요.” 김애란은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웃었다.김애란이 문학사상사가 주최하는 제37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단편 ‘침묵의 미래’. 가상의 강국이 사라져 가는 언어들의 마지막 화자들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을 그리며, 점차 소멸되는 언어에 대한 문제를 우화처럼 그린 소설이다.그는 8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상은 자기가 쓴 언어에 대해서 예민하고 (글의) 재료를 의식하고 작품 활동을 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 제가 쓴 글도 말과 언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작품이라서 상을 받게 된 것이 우연이자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우리 애란이가 상복이 많은 것 같다’고 하시기에 ‘아냐 엄마 복이 많은 거야’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시더라”라며 밝게 웃었다.2011년 출간한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 20만 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애란은 지난해 소설집 ‘비행운’으로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정초부터 한무숙문학상에 이어 이상문학상을 거머쥐며 문단의 ‘대세’임을 공고히 알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수줍고 조심스러웠다.“데뷔한 지 10년 정도 됐지만 네 번째 책(소설집 ‘비행운’) 정도 내니까 소설이 되게 궁금해지는 것도 많고 기술적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모르는 게 많았다는 것을 쓸수록 깨닫게 되는 것 같다.”김애란은 40년 가깝게 이어진 이상문학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됐다. 종전 기록은 2005년 제29회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당시 35세). 최연소 수상의 의미를 묻자 김애란은 나직이 이렇게 읊조렸다. “가장 젊은 작품이 뭘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가장 오래 사랑받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100년, 150년 전 선배들이 쓴, 시간을 이긴 작품들을 보면 ‘저분은 얼마나 젊으면 100살 어린 나하고도 말이 통하나’ 싶어요. 이런 의미에서 ‘젊은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그는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새 장편 연재를 시작한다. 주위의 높은 기대에 대해 그는 “부담보다는 힘을 받았으면 한다”며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첫 번째 독자인 제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여섯 살 연상의 극작가 고재귀 씨와 결혼한 김애란은 “남편은 두 번째 독자”라고 덧붙였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사교적인 제스처를 빼고 담백하고 솔직한 비판을 해줘서 도움이 돼요. 호호.”이상문학상 우수상은 김이설의 ‘흉몽’, 손홍규의 ‘배우가 된 노인’, 염승숙의 ‘습(濕)’,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 이평재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천운영의 ‘엄마도 아시다시피’, 편혜영의 ‘밤의 마침’, 함정임의 ‘기억의 고고학’ 등 8편에 돌아갔다. 상금은 대상 3500만 원, 우수상은 300만 원씩이며 시상식은 11월 예정. 수상 작품집은 이달 말 나온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꽁꽁 언 겨울도 언젠가 녹겠지. 봄 오면 들로 산으로 씨 뿌리겠지. 통통한 씨감자도, 어느 보드라운 흙 속에 자리 잡겠지. 하루가 가겠지, 계절이 흐르겠지. 어느 날 감자가 뽀얀 얼굴을 내밀 때, 닮고 닮은 얼굴들이 환하게 웃겠지. 새해, 칼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어떤 감자를 심을까. 어떤 얼굴들을 수확하게 될까. ‘이달에 만나는 시’ 1월 추천작으로 고영민 시인(45)의 ‘수필’을 선정했다. 지난해 11월 말 나온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슴공원에서’(창비)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온기가 느껴지는 시다.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읽었다고 하신다”고 시인도 말한다. 하지만 사실 이 시는 죽음에 관한 것. 2년 전 세상을 뜬 둘째 형을 떠올리며 썼다. “형님을 땅에 묻는 것을 씨감자를 묻는 것과 병치시킨 거죠. 잊어먹지 않을 만큼 잊어버려야 하고, 또한 끝내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시의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씨감자를 죽음이 아닌 희망이나 새해 소망, 꿈으로 바꿔도 무탈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죽음은 또 하나의 탄생을 모색하는 겁니다. 제 시가 사람들의 따뜻한 본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고영민의 묘사 속에는 옛것들, 가련한 것들, 고향, 작은 사물들이 씨감자처럼 옹글지게 들어와 있다. 그것들을 품고 발효하는 마음이 따스하고 넉넉하다.” 이건청 시인은 “작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들이 눈 시린 환희를 포함하고 있음을 찾아 보여준다. 시적 대상을 보는 예리한 눈, 신선한 이미지가 돋보인다”며 추천했다. “서정이 소멸된 시대에 홀로 피어 뿜어대는 찬란한 시향(詩香)! 고영민 시인은 사슴 같은 눈빛으로 생의 어두운 마디마디를 환하게 치유한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사다. 손택수 시인은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를 추천했다. “법정 스님께서 ‘어린 왕자’를 읽은 뒤 책을 수십 권 구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누가 만약에 새해 선물로 그런 시집 한 권을 추천하라면 이 시집을 슬며시 끼워 넣고 싶다.” 이원 시인은 황인찬 시인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민음사)를 추천하며 “이 시인은 도시에 나타난 청년 수도사 같다. 황인찬은 언어라는 구관조를 오래 씻기는 서약에 몰두한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세밑에 몇몇 문인들과 조촐한 송년 자리를 가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스레 검찰 조사 얘기가 오갔다. ‘(소설가) 손홍규는 벌써 조사를 받았다는데’ ‘나한테도 연락이 올까’ ‘벌금은 얼마 나오려나’ 등등.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졌다. 일부 문인들이 새해 벽두부터 검찰 소환을 우려하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18대 대통령선거를 닷새 앞둔 지난해 12월 14일 문인 137명은 한 일간지에 ‘우리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담은 광고를 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가 진보적인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약자의 신음에 더 잘 귀 기울일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답은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입니다’ 등의 내용이었다.나흘 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이 광고가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 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제1항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혐의가 인정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된다. 선언문에 참가한 문인들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김숨 김애란 김연수 박민규 박성원 백가흠 손홍규 이기호 전성태 천명관 하성란 황정은 씨 등 소설가 56명, 김경주 김선우 나희덕 박형준 손택수 장석남 씨 등 시인 81명이다. 서울시선관위는 해당 일간지에 직접 광고를 의뢰한 소설가 손홍규 씨만 고발했지만,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 문인들이 줄줄이 소환될 가능성도 있다. 손홍규 씨는 “광고는 문인들이 모금을 해 낸 것이며, 광고료는 880만 원이었다”며 “광고를 게재하는 게 불법인 줄 몰랐다. 작가들의 진정성을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한국작가회의가 두 차례 성명서를 내 고발 취소 등을 요구했지만 서울시선관위는 다른 입장이다. 홍문표 서울시선관위 조사담당관은 “광고 내용이 위중하다고 본다. 고발 취소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공은 이제 검찰로 넘어간 상태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조만간 피고발인 자격으로 손 씨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이상호 공안1부장은 “피고발인(손홍규 씨)을 먼저 조사한 뒤 이를 확대할지 말지 결정할 예정이다. 광고 의뢰인과 선언문 참가자를 동일하게 (처리)할지는 지금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프랑스의 여성 시인이자 화가인 마리 로랑생(1883∼1956). 로랑생은 조르주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등과 교유하면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에 일찍 접했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등과도 함께 어울리면서 프랑스 예술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시인 박인환(1926∼1956·사진)은 이 자유분방한 여성 예술가의 이름을 따 광복 직후인 1945년 말 서울 종로3가 2번지에 서점 하나를 차린다. ‘마리서사(茉莉書舍).’ 시인이 열아홉 살 때 일이다. 》 강원 인제 태생인 박인환은 평양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광복을 맞았고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온 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이 책방을 열었다. 박인환은 유난히도 책을 좋아했다. 책방은 20평(약 66m²) 남짓이었지만 서구의 예술과 문학 관련 서적을 많이 비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리서사가 문을 열자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 하던 문인 예술가들에게 알려졌고, 곧바로 종로의 명소가 되었다. ‘말리(茉莉)’라는 한자어는 일본 모더니스트 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시집 ‘군함 말리(軍艦茉莉)’에서 차용했다. 마리서사는 신간 서적만을 취급하는 고급 서점은 아니었다. 당시의 서점이 대개 신간과 중고 서적을 함께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서사에서는 광복 후 혼란기의 한국 서적보다 일본어판 세계문학전집이나 일본에서 간행된 세계 여러 문인의 시집과 소설집, 그리고 화집들이 서가를 장식했다. 당대의 시인이던 김기림 김광균 오장환 이시우 이한직 이흡 등이 단골손님이 되었고, 청년 문사였던 김수영 양병식 임호권 등도 이 서점을 드나들면서 박인환의 친구가 되었다. 새로운 미술에 뜻을 둔 화가들도 드나들었고, 영화인들도 거기에 끼어들었다. 문학을 열망하던 청년 박인환은 마리서사를 찾는 당대의 모더니스트, 자유분방한 예술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자기 문학 세계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러한 예술적 분위기를 놓고 김수영은 수필 ‘마리서사’를 통해 이렇게 평했다. ‘우리 문단에도 해방 이후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가장 자유로웠던, 좌우의 구별 없던, 몽마르뜨르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던 좌우 문단의 분위기와는 달리 마리서사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될 새로운 문학 예술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마리서사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꿈꾸던 예술의 세계를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좌익 문단 조직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분과를 책임지고 있던 김기림은 이곳에 자주 들러 오장환 설정식 이흡 등과 어울렸고 김광균 이한직 등과도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한낱 문학 지망생에 불과했던 박인환은 이 같은 문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문단의 분위기를 익혔다. 그리고 동년배의 김수영 조우식 임호권 등과 자유롭게 어울리면서 자기만이 누릴 수 있는 문학의 세계를 꿈꾸었다. 이렇게 마리서사는 광복 후 새로운 문학 예술이 싹트는 작은 텃밭이 되었다. 이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1930년대 김기림 등에 의해 이 땅에 뿌리를 내렸던 모더니즘 시운동의 기운이 문단의 신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박인환은 1948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던 마리서사의 문을 닫았다. 개점 후 3년이 채 안 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설 무렵부터 그는 자유신문사 경향신문사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1949년 김경린 김병욱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하였고, 김수영 김경린 양병식 임호권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년)을 펴냈다. 이 젊은 시인들의 사화집(詞華集)은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근대를 비판하던 모더니즘 시 운동을 광복 후 새롭게 부활시켰고, 한국 현대시의 한 경향으로 자리 잡게 하는 신호탄이 됐다. 박인환은 1950년 6·25전쟁 당시에도 김차영 김규동 이봉래 등과 피란지 부산에서 문학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고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어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1955년 대표작 ‘목마와 숙녀’가 실린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을 낸 이듬해에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평생 심취한, 스물일곱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처럼 짧은 생을 살았던 것이다. 마리서사에 드나들면서, 박인환과 함께 어울리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던 시인으로 김수영을 손꼽을 수 있다. 박인환보다 다섯 살 위인 김수영은 수필 ‘박인환’에서 ‘그처럼 재주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다’라고 박인환을 회고했다. 표면적으로 읽으면 폄훼하는 글 같지만, 사실 이 수필은 박인환의 죽음 뒤에 부쳐진 가장 속 깊은 우정의 만장(輓章)이다. 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과 신뢰가 없다면 아무도 이런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수영은 다른 수필인 ‘마리서사’에서 박인환의 작은 서점 마리서사가 광복 직후 문학 예술계에 새로움을 꿈꾸게 만든 환상의 공간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수은주가 영하 16도까지 떨어졌던 3일 마리서사를 찾아 나섰다. 탑골공원 정문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가다 낙원동으로 들어서는 골목 모퉁이다. 지금은 한 보청기 가게가 들어섰다. 이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60여 년 전 서울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여기 모였던 것을 알까. 서울 종로에서 마리서사 같은 작은 서점의 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인 예술가들이 서로 만나서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논할 수 있는 열린 공간도 드물다. 마리서사는 인제에 세워진 박인환문학관에 복제된 모형으로 남아 있고, 박인환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시 ‘세월이 가면’만이 가끔 흘러간 옛 노래처럼 불려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수가/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신달자 시인(70)이 결혼하고 서른 중반이던 1960년대 말. 시인의 노모가 딸네 집에 왔다.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풍경이 가득했던’ 집이었기에 시인은 빨리 가라고 노모의 등을 떠밀었다. 시인은 대문 앞에서 노모의 주머니에 1만 원짜리 한 장을 넣는다. “택시 타고 가.” 노모는 돈을 다시 딸의 주머니에 넣는다. “혼자 빨리 저 시장에 가서 짬뽕이라도 한 그릇 사먹어라.”모녀는 1만 원짜리 한 장을 갖고 대문 앞에서 옥신각신 싸운다. 시인은 홱 돈을 길에 던져 버리고 대문을 쾅 닫았다. 조금 후, 대문을 밀고 나가 보니 길에는 돈도, 노모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 만 원짜리 한 장을 거리에서 허리를 굽혀 주웠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뼈가 저리다.”엄마와 딸. 다른 피붙이랑은 느낌이 다르다. 딸은 엄마가 되고, 그 엄마는 다시 딸을 낳는다. 윤회 같은 질기고 애틋한 인연. 서로 가깝기에 그만큼 작은 일에 상처를 주고받고, 돌아서서는 금방 후회하는 바보 같은 관계. 신달자는 이번 에세이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를 되돌아본다. 신달자는 엄마와 딸의 모진 인연이 뼈저리게 삶에 스며든 사람이다. 내리 딸 여섯을 낳고 막내아들을 얻은 집에서 시인은 여섯 번째 딸이었고, 이제는 마흔 내외의 딸 셋을 둔 엄마다. 신달자는 부부 관계에서는 물질적·감정적 계산이 있을 수 있지만 모녀 관계는 그런 계산이 없다고, 이별 또한 부부 사이엔 존재하지만 모녀에게 영원한 이별은 없다고 말한다. “죽음도 그 이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딸,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라는 엄마. 이들은 상대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다툰다고 시인은 말한다. ‘‘감정의 암’을 태우기 위해서 깊은 대화를 하라’, ‘편지로 마음을 전하라’, ‘엄마의 한을 딸에게 풀지 마라’ 등 여러 조언을 전하기도 한다. 연륜이 묻어나는 글들은 곱씹으며 되새길 만큼 공감이 간다. ‘신달자 산문’이 갖는 힘은 무엇보다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아들을 기대했던 집안에서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난 핏덩이였던 자신을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두어 번 뒤집어엎어 버렸다거나, 엄마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 기도를 했던 얘기를 덤덤히 전한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들춰내 먼저 손을 내밀기에 독자는 위로를 얻고 공감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시인은 엄마와 딸 중에서 먼저 엄마가 물러서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도 한때는 ‘못된’ 딸이었지만, 이제 일흔의 나이가 되니 엄마가 한없이 그립고, 딸들을 더 포용하게 됐으리라. 서로 사랑만 하기에도 삶은 짧다. 엄마에게 살가운 사랑을 전하지 못했던 시인은 허공에 외친다. “엄마! 다음 세상엔 꼭 내 딸로 태어나, 엄마!”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걸려 넘어지는 일이라면 가능합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넘어진 채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 무슨 지독한 자기혐오와 패배주의적 시각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러브레터의 한 구절이라는 것. 그것도 세계적인 문호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쓴 편지다. 카프카는 펠리체 바워라는 여성과 1914년 5월 약혼했다. 하지만 두 달 뒤 파혼한다. 3년 뒤 카프카는 다시 이 여성과 두 번째 약혼을 하지만 다시 파혼한다. 모두 카프카의 ‘간청’에 의한 파혼이었다. 카프카는 극단적으로 사랑하거나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양향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결혼을 위해 노력했지만 카프카는 평생 혼자 살았다. 34세에 객혈이 시작됐고, 41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카프카의 일기, 편지 등을 모은 ‘절망은 나의 힘’(한스미디어·사진)에는 카프카의 치열한 고민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카프카가 남긴 86개의 짧은 글에 일본 번역가인 가시라기 히로키가 일일이 설명을 달았다. 카프카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자료들이 많아 인간 카프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오늘날 ‘변신’ ‘성(城)’ ‘소송’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지만 사실 생전 그는 외로운 작가였다. 릴케를 비롯한 몇몇 문인들의 관심만을 받았을 뿐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심지어 유언으로 “모든 원고를 소각해 달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대표작인 ‘변신’에 대해선 일기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변신’에 대한 심한 혐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결말. 더이상 바닥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당시 출장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훨씬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 직장 연애 가족 등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으며, 지독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주변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집은 부유했고 그 또한 ‘노동자상해보험협회’라는 든든한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졌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부정의 인생은 카프카 문학의 원동력이었다. 인간과 삶에 대한 끝없는 절망을 그는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카프카는 한 메모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나의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묵묵히 파내어 일구어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대를 대표할 권리가 있다. 어떠한 종교도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나는 종말이다. 또한, 시작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희곡, 아니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고교 자퇴 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라 불안감을 분출하는 통로로 역사와 철학 등 인문 서적을 읽으며 머릿속 오만 가지 잡생각에 동네를 홀로 돌아다니며 의미 없이 걸었던 시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이런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대학에 갔고 그곳에서조차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홍익대 사거리에서 처음 본 연극이란 장르는 내 안의 무언가를 홀렸고 그 후 무조건 희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연극과 영화를 보고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공연을 제작하며 밤을 새우고 자취방에 돌아와서는 연극·영화 관련 서적을 읽고 쓰는 걸로 다시 날이 밝고,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재미란 것을 느낀 순간 지난 20여 년간 있었던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시간이 오히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소재가 되었고, 연극이란 것에 티끌만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썼던 희곡들이 지금의 당선 전화를 받게 한 것 같습니다. 희곡의 텍스트를 보고 감동하게 해준 이강백 교수님, 희곡 쓰는 법을 알려준 윤조병 교수님,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것인지를 알려준 오태석 교수님, 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저의 꿈같은 첫 당선이었던 원광대문학상의 심사위원 신귀백 님과 이상복 교수님, 늘 함께하며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경 쓰지 않고 술 먹으러 가자며 전화하는 내 진짜 친구들… 그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198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극작과 2학년}

지난 한 해 동안 ‘상처’를 주제로 두 작품을 썼습니다. ‘당부’는 그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한 영화의 장소 헌팅을 위해 강원도를 찾았습니다. 눈이 쌓인 어느 어둑한 산길을 지나면서 ‘당부’ 속 주인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지나갔을 눈길이 아마도 이런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이 어디에선가 실제 살고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강하게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인물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외롭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을 이제 조금은 덜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익숙한 요즘입니다. 고단하고 힘든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그럴수록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의 이야기’만큼 ‘당신의 이야기’가 소중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고 한걸음씩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썩 괜찮은 연출자(영화감독)로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1978년 부산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일기도 쓰지 못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고,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내 안에 머물던 말과 기억들이 흩날려 사라졌던 것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나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어렵고 조심스럽게 서툰 문장을 쓴다. 서른 살이 되는 순간을 간절히 바랐던 시간들도 있었다. 어쩐지 서른 살이란 내게 어른의 나이처럼 느껴졌다. 그땐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스물 언저리의 시간들이 내겐 너무 어렵고 버거웠다. 빨리 그 시간들을 건너뛰고만 싶었다. 사실은 지난 몇 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작년과 재작년, 올해의 기억들을 바르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그 시간들은 괄호 안에 뭉뚱그려진 채 생략되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 글을 쓰지도 못했고,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도 어려웠다. 이상한 사춘기였다. 선생(先生)님,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에 담긴 따뜻한 의미를 좋아하고, 그 말을 머금는 동안 입안에 남겨지는 둥근 여음(餘音)을 좋아한다. 긴 망설임 끝에 냈던 용기가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지키지 못한 약속들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보면 거짓말이 되어 있어서 죄스러운 일이 많다. 긴 시간 동안 이상한 제자를 돌봐주시고 늘 토닥여주신 박광현 선생님께, 이제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 번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드리고 싶다. 선생님이 내게 펼쳐 보여주셨던, 그 환한 꿈같았던 기쁨의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소설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던, 스무 살 여름밤의 수줍은 고백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아마도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고 말해도 될까. 그 처음으로 향했던 거칠고 서투른 고백을 보듬어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1984년 대전 출생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영화는 나로 하여금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게 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했으며, 닮고 싶은 사람들을 보여줬고, 꿈을 꾸게 했다. 그런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만난 세계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응답이고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나의 글을 어떤 식으로든 공적인 장(場)에 드러낸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나 나름대로의 ‘말 걸기’ 방식이다. ‘신춘문예’라는 공적인 제도의 문을 두드린 것 또한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하고 싶어서였고 그 문이 열린 것에,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음에 감사한다. 인문학도로서 오랫동안 공부했고, 강의실 안과 밖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와 함께했던 이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특히 이재선 선생님, 우찬제 선생님, 김승희 선생님, 이상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귀감이 되어 주셨으며 부족한 제자를 믿어주셨다. 또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면서 늘 나를 깨어있게 했던 후배들과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나를 지지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 승희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내게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힘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이번 당선을 계기로 더 많은 영화를 보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더 많은 채널을 가지게 될 것 같아서 아이처럼 웃음이 나온다. △1967년 경기 동두천시 출생 △서강대 국어국문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석·박사(문학박사)}

기다림이 있으므로 시간은 더디게 갔고, 더딘 만큼 견뎌야 할 생의 길이는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생의 길이만큼 또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달려 날마다 초조해하는 것보다 희망도 소원도 없는 게 훨씬 더 편할 거 같아요”라는 김수현 선생님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미자’의 대사를 내 것처럼 중얼거리고 다녔으나 늘 바라는 것들은 더욱 커지고, 시간은 주체할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어젯밤 꿈에 스마트폰으로 합격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꿈처럼 2013년 신춘문예 수상 소감을 씁니다. 고맙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때때로 무너질 때 힘을 북돋아 주신 김봉집 선배님, 그리고 이 길을 가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없이 목 젖혀 바라보았던 하늘을 우러릅니다. 기쁨도 감당하기 힘들면 울음이 되는가 봅니다. 세상 600개의 언어로도 통역되지 않는 눈물의 빛깔은 투명합니다. 그 투명함 속에 내 어머니가 있고, 평소 ‘조 시인’이라고 불러 주시던 먼 유년의 아버지가 계시고, 가까이 있어서 소홀했던 내 가족이 있고, 너무 가까우므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이웃이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하므로 용서받고 용서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풋것들’ 가운데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절을 올립니다. 우리의 숨결, 우리의 정신이 녹아 있는 현대시조의 마당에 한 계절 밝히는 꽃을 피우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 이 땅의 위로가 되겠습니다. △1965년 충남 공주 출생 △드라마 ‘사랑과 야망’ 등에 연기자로 참여 △숭실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응모작 33편 가운데 최종 후보로 선택된 것은 두 편이었다. ‘비극적 스투디움과 일상적 푼크툼의 세계-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와 김기덕의 ‘피에타’를 중심으로’와 ‘문제적인, 그러나 전복적이지 않은…‘피에타’를 향한 질문’이다. 고심하며 재독 끝에 결국은 후자를 택했다. 그 까닭은 (영화)평론은 무엇보다 ‘문제제기적’이어야 한다는 내 특유의 비평관 때문이다. ‘문제적인, 그러나 전복적이지 않은…’은 글쓰기의 완성도 면에서 ‘비극적 스투디움과 일상적 푼크툼의 세계’에 비해 다소 미흡하다. 비문적 대목이 거슬리기도 한다. 영화의 기표인 비주얼과 사운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피에타’의 내러티브 및 의미 속으로만 파고든 것도 유감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제기적 비평의 어떤 전범으로서 손색없다. 이 전범은 감독을 포함한 세간의 주장처럼 ‘피에타’가 과연 ‘반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영화인가에 대해, ‘자비’와 ‘구원’이란 ‘피에타’의 대주제와 ‘폭력’ ‘복수’ ‘모성 신화’ ‘가족주의’ ‘정글’ 속 ‘먹이사슬’ 등으로 나열될 수 있을 서브테마들의 유기적 연결성에 대해 의구심 짙은 물음들을 던진다. 그 문제제기가 집요하고 논리 전개도 정치해 가독성도 빼어나다. 그에 비해 ‘비극적 스투디움과 일상적 푼크툼의 세계’는 지나치게 스투디움과 푼크툼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 다분히 설명적이며 동어반복적이다. 그 두 개념의 영화적 적용에 더 큰 힘을 쏟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승자와 패자, 모두의 건필을 소망한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우주놀이 해요! 우주놀이 해요!” 반복이의 우주놀이가 또 시작됐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보드게임에 빠져 있는데도 반복이는 오로지 우주놀이밖에 모른다. 반복이는 3학년이지만 유치원생보다도 말을 못하는 현수의 별명이다. 늘 두 번 이상 반복해서 말한다고 내가 지어줬다. 현수는 전에 특수학교를 다녔었다. 하지만 아빠를 따라서 이사 온 이곳 주변에는 특수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한 반이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현수를 같은 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현수는 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빨간 바구니를 뒤집어썼다. 빨간 바구니는 엄마가 빨래를 모아 놓는 둥근 바구니처럼 생겼다. 머리에 쓰면 쏙 들어가 마치 깡통인형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현수 머리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반복이 아저씨, 또 나물 캐러 가세요? 웬 바구니예요? 네?” 내가 툭툭 바구니를 치자 바구니는 현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화를 낼 줄 알았던 현수는 오히려 박수를 치며, “와! 멋져요! 멋져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곧 바구니를 벗어서 내 머리에 씌우려고 했다. “같이 해요, 우주놀이! 같이 해요, 우주놀이!” “하하. 반복이 우주로 날아갈 기세네. 내가 이 바보 같은 짓을 왜 해. 너 같은 반복이도 아니고! 야, 김창우! 받아랏!” 나는 현수의 빨간 바구니를 휙 던졌다. 창우는 엉겁결에 빨간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쫓아오는 현수를 이리저리 피하다가 다시 나에게 패스해주었다. 마치 농구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우주놀이 주세요! 우주놀이 주세요!” 현수는 수비수처럼 두 팔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하하! 이거 신나는데! 자! 여기, 여기!” 이번에는 보드게임에 열중하던 미영이에게 던졌다. 미영이는 어디로 패스할지 우물쭈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으악! 야! 너 뭐하는 거야!” 현수가 미영이를 그만 와락 안아버렸다. 순식간에 온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얼레리 꼴레리! 미영이랑 반복이랑 안았데요∼! 안았데요∼!” 미영이는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르르 부르르 입으로 반복되는 소리를 냈다. “누구야! 누가 미영이를 울렸어?” 선생님은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하신다. 선생님은 가장 먼저 날 쳐다보셨다. 이미 선생님한테 여러 번 찍힌 나다. 반복이가 우리 반에 전학 오면서 나는 선생님께 미운털이 박혔다. 사실 우리 반에서 제일 인기남은 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늘 교실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고 예뻐하셨다. 그런데 이제 선생님의 관심사는 오로지 반복이 녀석인 것 같다. 반복이 녀석이 하는 짓에는 모두 관대하시다. 반복이가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아도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늘 현수만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반복이 녀석처럼 막 나가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관심 못 받나 저렇게 관심 못 받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나 선생님께 혼나는 사람은 늘 나다. “박민철! 또 네 짓이지? 네가 또 아이들을 괴롭힌 거지?” 역시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선생님, 미영이를 울린 건 제가 아니라 현수가…….” “현수 너, 미영이를 울렸니?” 선생님의 물음에 현수는 계속 부르르 부르르 이상한 소리만 반복해서 낼 뿐이었다. “민철아, 선생님이 현수를 잘 챙겨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선생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셨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현수의 바구니로 장난하긴 했지만 미영이를 울린 건 정말 내가 아니다. “선생님! 왜 매일 현수만 감싸세요?” 나는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께 대들듯 말했다. 내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마도 무척 놀라신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몇 번을 얘기해야 하니? 너희들도 알다시피 현수는 장애가 있는 아이잖니? 그러니까 간혹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해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선생님! 지난번에는 현수가 장애를 가졌을 뿐 우리와 동등하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말했다. 선생님은 코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손등으로 코를 닦아댔다. 선생님의 꽁꽁 언 얼굴을 보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선생님이 동등하다고 한 건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런데 민철이, 너! 계속 그렇게 선생님 말에 대들거니?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지금 당장 선생님 따라와!” 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셨는지 교실문을 쾅 닫고 나가셨다. 나는 현수를 있는 힘껏 흘겨보았다. “이게 다 반복이 너 때문이야!” 그 순간 현수의 빨간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저벅저벅 현수 앞으로 걸어가서 빨간 바구니를 쾅 하고 있는 힘껏 밟았다. 빨간 바구니는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현수는 부서진 빨간 바구니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주놀이! 우주놀이! 우주놀이!” 주위에 서성이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내게 일주일 내내 급식당번을 하라는 벌을 주셨다. 그나마 가벼운 벌이어서 마음이 조금 풀렸다. ‘반복이 바보 자식. 우주놀이하자고 조르지만 않았어도.’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꾸 현수의 빨간 바구니가 생각났다. 현수는 교과서는 잊어도 빨간 바구니는 늘 챙겨왔었다. ‘바구니가 많이 비싼 건 아니겠지? 엄마가 알면 혼날 텐데…….’ 이 찜찜한 기분으론 도저히 그냥 집에 갈 수가 없다. 나는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현수와 선생님이 보였다. 나는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은 깨진 바구니를 접착제로 일일이 붙이고 있었다. “우주놀이 안 돼요? 우주놀이 안 돼요?” 현수가 선생님한테 물었다. “아니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우리 현수가 좋아하면 계속 하는 거야.” “우주놀이 좋아. 우주놀이 좋아.” “다른 아이들은 이 엄청난 우주놀이를 상상도 못할걸? 네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모두들 너의 기발한 우주놀이를 이해 못하는 거야. 현수 최고! 멋져!” 선생님은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현수 최고! 현수 최고!” 현수도 손에 든 빨간 바구니 조각을 치켜들고 말했다. 나는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복도를 빠져나왔다. 운동장을 나서려는데 우주놀이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현수는 왜 빨간 바구니를 우주놀이라고 하는 걸까? 바구니는 엄마가 빨래를 모아두거나 채소를 씻을 때 쓰는 것이지 우주가 아니다. 우주는 과학체험관에서 보았던 멋진 곳이거나, 불을 끄면 천장 가득 야광별이 빛나는 내 방 같은 곳인데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깟 플라스틱 바구니가 왜 기발하고 멋지다고 하셨을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과 반복이 녀석 사이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샘이 났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주방으로 뛰어갔다. 싱크대 맨 아래 칸을 열고 엄마가 국수 건질 때 쓰던 큰 바구니를 찾아냈다. 현수의 바구니처럼 머리가 다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모양은 비슷했다. 나는 바구니를 현수처럼 머리에 써보았다. 순간, 촘촘한 바구니 틈새로 불빛이 들어왔다. 나는 머리에 쓴 바구니를 빙빙 돌려보았다. 그러자 마치 수많은 별들이 눈앞에 와르르 쏟아지는 듯했다. “민철아! 너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야?” 엄마의 잔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우주에 온 것만 같았다. 다음 날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보드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수는 구석에서 더덕더덕 붙여진 빨간 바구니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야, 박민철! 너도 껴! 나 지금 영국에 빌딩 샀어.” 창우가 두 손으로 보드게임 머니를 세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가방에 챙겨온 바구니를 꺼내 들고 현수 앞으로 갔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바구니를 든 내 모습에 주목했다. “야, 반복이! 우리 우주놀이 할까?” “우주놀이 좋아요! 우주놀이 좋아요!” 현수가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어느 때도 들을 수 없었던 가장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나는 현수와 함께 바구니를 뒤집어썼다. “뭐야, 박민철! 너 반복이 넘버 투냐?” 창우의 말에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까르르 웃어댔다. 하지만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오로지 멋진 우주만 보일 뿐이었다.}

작가들의 당선 소감을 읽는 밤이다. 아르바이트 공고를 읽던 밤보다는 훨씬 운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세계의 예측 불허함엔 항상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 불허에도 불구하고, 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것을 소감이라기보다는 러브레터라고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 기쁘다.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유치하게, 억지 눈물이라도 한 방을 묻히고 싶다. 먼저 사람이 아닌 것들에게―함께 새벽을 지새운 나의 고양이 두 마리, 마감만 끝나면 부수겠다고 다짐한 노트북(그러나 지금 소감을 쓰고 있다), 이력서를 냈지만 받아주지 않았던 회사들, 내가 가졌던 방들, 치킨마요. 그리고 사람들에게―슬픔 또한 농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부모님과 가족들. 언제나 함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경기예고 친구들. 인사할 구실이 생겨 좋은 서울예대 동기들과 한강 선생님, 김혜순 선생님, 조동범 선생님. 자존감 하락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동국대 대학원 동기들와 선배들, 그리고 교수님들. 겨우 따라잡아 보폭을 맞추게 된 발상스터디와 엉덩이와 식사 멤버들. 조우리 선생님과 김혜정 선생님, 곁에서 항상 욕해준 곰과 그 친구들. 따로 이름 넣어달라고 한 민주. 퇴미 부부. 나를 스쳐갔거나 내가 지나친 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과 평화를 (곧 마실 알코올과 함께) 전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버려진 소설들에게―늘 AS 기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살겠다. 사실 많이 무섭다. 하지만 무서울 수 있어서 고맙다. 심사위원 두 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어 다행이다. △1987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

본심에 올라온 여섯 편을 읽었다. 서사력이 문제였다. 최근 종종 논란이 되고 있는 서사력 문제가 신춘문예 응모작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서사력은 말 그대로 힘(力)이어서 권력화 될 수 있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서사력 무력화 전략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은 서사력 무용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서사력 미흡이 무력화 전략으로 간주되거나 미화될 수 없다. ‘형식주의자’는 자동기술법도, 의식의 흐름 기법도 아니면서 그것처럼 보이게 썼다. 치기가 패기로 읽히려면 어떤 게 더 필요할까 고민하길 바란다. ‘아름답고 비정한 나의 이웃들’은 시점이 불안하고 내레이션이 수다로 흐른 흠이 보인다. 비정하기만 하고 아름답지 않아서 그 좋은 입심이 그만 빛을 내지 못했다. 서사력이 돋보이는 ‘발신자 표시제한’은 안타깝게도 흔한 방식의 내용전개 때문에 서사력에서 얻은 점수를 깎아먹고 말았다. 뭉크의 ‘사춘기’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감성의 ‘소파 위의 개’는 기대작이었으나 개 사육장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무기력의 대비가 지나쳤다. ‘신의 희작’에 관한 3개의 주석’은 발상과 형식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다름 아닌 그 발상과 형식이 소박한 오마주적 결말과 서사 조형능력 부족에서 기인했다는 게 유감스러웠다. 지금까지 거론한 작품이 선정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한 편의 당선작만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교도’는 서사의 강점을 발휘했다. 푹 빠져들 만큼 인물에 대한 천착이 남달랐다. 다만 세속적 성공에 초연하다 하여 ‘루저’나 예비범법자 취급을 하는 세태를 꼬집는 방식에 새로울 건 없었다. 정진해야 할 숙제로 남긴다.조남현 문학평론가, 구효서 소설가}

전국 지명 150여만 개 가운데 뱀(巳)과 관련된 지명은 208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토지리정보원은 뱀의 해인 2013년 계사년을 맞아 뱀과 관련된 지명을 분석한 결과 ‘사동’이 전국에 15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뱀골’ 10개, ‘뱀재’와 ‘사도’ 각 4개, ‘사포’와 ‘장사도’ 각 3개 순이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41개로 가장 많았고 경북과 충남이 각 31개, 경남 29개, 전북 27개 순이었다. 지명 종류별로는 마을 명칭이 157개로 가장 많았고 섬 15개, 산과 고개가 14개씩이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지혜, 풍요, 불사를 상징하는 뱀은 우리 문화에서 숭배와 질시를 동시에 받아왔다. 집과 재물을 지켜주는 업구렁이로,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인간을 위협하는 두려운 동물로 표현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십 년 넘게 나는 필명(고수유)으로 살아왔다.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쓰면서 시로 데뷔할 때의 본명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필명이 십 년 넘게 나를 벌어먹여 주었고, 그 사이에 나는 고향도 부모도 형제도 문우도 다 잃어버렸다. 언젠가부터 희망, 기쁨과 더불어 절망, 슬픔에도 무감각해진 채로 단지 매일같이 글을 써댔다. 소설류도 쓰고 비소설류도 쓰고 그랬다. 그래서일까? 동아일보 당선 통보 전화는 우주 저 너머에서 보내오는 파장만 같았다. 꿈만 같고 어제 같고 또 몽상만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믿기지 않은 그 전화에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찰싹 뺨을 때려보았다. 하도 오래 나는 무감각하게 살아온 탓이라 본다. 지나보니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나에겐 부처이자 예수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난 특정 종교를 믿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바로, 지금, 여기가 극락정토이자 천당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니 내 옷깃을 스쳐간 분 모두 부처이자 예수이다. 오늘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다. 먼저, 이문열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번 생에선 갈림길을 걸어가게 될 줄 알았던 선생님과 기사회생하듯이 인연이 닿게 되었다. 또한 졸고를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 그리고 내가 지쳐 쓰러지려고 할 때 조우해 나에게 ‘빛’을 주신 정광호 학회장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 외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다시, 예전처럼 홀로 쓰고 또 쓰는 일만 남았다. 이제부터는 조금 욕심을 부려볼까 한다. 능력이 닿는 대로, 삶의 의미와 영성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는 소설을 꾸준히 써볼 작정이다. 눈부시게 희디흰 계절이다! △1968년 제주 출생 △홍익대 국문학과 박사 수료 △199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시 데뷔}

예년에 비해 편수도 늘고 평론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많이 향상되었다. 많은 경우 다양한 작품을 아우르고 관통하는 문학적 주제를 발견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안정된 문장력과 섬세한 분석력으로 작품이 내장한 깊이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려는 시도들이 돋보였다. 나아가 작품이 징후적으로 포착한 삶의 감각을 명징한 현실적 언어로 분석하려는 노력도 주목할 만했다. 최종 경합한 작품은 총 네 편이다. 우선 박범신의 ‘은교’를 타나토스와 에로스라는 두 가지 욕망의 범주로 분석하고 있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중주’와 언어를 불신하고 소설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유주 소설 내면에 들끓는 새로운 언어와 소설에 대한 욕망을 발견하고자 한 ‘의심과 불신의 소설쓰기’. 둘 다 부분적으로 탁월한 분석력이 돋보이기는 하나 지나치게 작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따르는 독법 때문에 텍스트라는 한계 안에 갇히고 말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선 여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한 ‘분열증적 탈주에서 생성의 상상력으로’는 윤이형 소설이 제기한 분열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금의 문학이 공유하는 불안의식과 연결 짓는 안목이 돋보였으나 분열에서 생명으로 변주되는 분석 과정의 소박함이 아쉬웠다. 당선작은 황정은 소설을 대상으로 한 ‘없음으로서의 유토피아: 언어의 (불)가능성에 대하여’로 결정했다. 황정은 소설의 소멸하는 인간, 탈의미화되는 언어 등을 통해 ‘없음’의 존재론을 발견하고 이를 텍스트 너머에서 새로운 존재론과 연결하고자 하는 비평적 노력이 돋보였다.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보내며, 아울러 안타깝게 당선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권성우, 심진경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