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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현실이 지배되면 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저자의 경험을 따라가니 이런 물음이 생겼다.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저자는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476일 동안 수감됐다. 감옥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독방에 머물렀을 때 보이는 풍경, 혼거방으로 옮겨 다른 재소자들과 서열을 맺는 과정, 감옥 내의 규칙과 경제 논리 등이 건조하게 적혔다. 자진해서 감옥에 간 저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돌이켜보려 애쓴다. 그러나 관념에 그쳤던 인간애는 지극히 현실적 공간인 감옥에 적용되지 못한다. 자신을 사회성 없는 서울대 출신 병역거부자로 바라보는 동료 수감인의 시선에 야속함을 느끼지만, 그들 눈에 저자는 배부른 소크라테스일 뿐이다. 징역을 받고 감옥에 왔을지언정 억울하다고 느낄 죄수에게, 신념 때문에 감옥에 온 저자의 모습은 한가롭게 보일 수밖에 없다.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사람만이 희망이다’ 같은 감옥 문학이 뜸해진 지금, 2000년대판 감옥 이야기를 자처한다. 그러나 성장을 기대하고 감옥에 간 저자는 끝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이 좇았던 이상이 무엇일까 반추하는 계기가 된 걸까? 저자의 머릿속에 품고 있는 사회학적, 정치적 코드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솔직한 심정을 가늠해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감옥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로도 익숙하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도 동명의 논픽션을 토대로 한다. 미국 사회의 주류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주인공의 경험을 토대로 ‘오렌지…’는 여성, 동성애, 인종에 관한 관점을 여러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저자의 수감생활은 신념에서 출발됐기에 관념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좀 더 편안하게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디션도 갑작스러웠고, 캐스팅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행복했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모두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고 어른들이고….” 생애 첫 오디션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에 캐스팅됐다. 데뷔작인데 칸 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왔다. 영화 ‘버닝’에서 미스터리 인물 해미를 연기한 배우 전종서(24)를 3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디션 당시에도 전종서는 큰 기대가 없었다. “제작진이 준 대본과 제가 좋아한 MBC 드라마 ‘케세라세라’(2007년) 대사를 준비해 갔는데, 당시엔 잘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첫 오디션 뒤 몇 차례 미팅을 하면서도 “되든 안 되든,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덤덤하게 돌아봤다. 이 감독은 “요즘은 10대 때부터 활동하는 이들이 많은데, 어디서 뭘 하다 이렇게 원석 그 자체로 나타났을까” 하며 신기해했다. ‘오아시스’와 ‘밀양’이 이창동 작품인지도 몰랐다는 그는, 처음 ‘버닝’을 볼 때만 해도 쑥스러워 얼굴을 파묻었다고 한다. “칸에서 세 번째로 보는데, 그제야 비로소 어떤 대사와 장면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어요. 종수(유아인)의 집에서 해미가 잠들었을 때, 종수와 벤(스티븐 연)이 속을 털어놓는 장면이 가장 좋았습니다. 친한 사람에게도 못 하는 얘기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 확 와 닿았어요.” 여전히 얼떨떨하지만, 자신만의 신념도 분명해 보였다. 연기에 대해 얘기할 땐 열심히 손짓을 해가며 또박또박 설명했다. “주변에선 신인이 부담스러운 노출 신을 왜 자진해서 하느냐고 우려하기도 했죠. 하지만 평소에도 성별을 떠나 옷이 파였거나 뭘 걸치지 않았다고 이상하게 본 적이 없어요. 하물며 영화는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굳이 ‘노출’에 얽매이는 건 편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강력한 데뷔는 다음 행보에 걸림돌이 되기도 할 터. 하지만 전종서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가 있다면 무조건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곧 서울국제여성영화제도 시작하잖아요. 평소에도 ‘여성스럽다’거나 ‘남성스럽다’는 규정이 싫었어요. 이번에 칸도 다수 심사위원이 여성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여성의 힘이 확장될 거라 믿고 그런 움직임을 지지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가 있듯 영화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데, 그 힘으로 여성을 대변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어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디션도 갑작스러웠고, 캐스팅도 예상 못했어요. 행복했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모두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고 어른들이고….” 생애 처음으로 본 오디션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에 캐스팅됐다. 첫 걸음마 데뷔작인데 칸 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왔다. 영화 ‘버닝’에서 미스터리 인물 해미를 연기한 배우 전종서(24)는 그야말로 ‘깜짝 스타.’ 5월 3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도 아직은 오롯이 실감을 못 하는 눈치였다. 오디션 당시에도 전종서는 큰 기대가 없었다. “제작진이 준 대본과 제가 좋아한 MBC드라마 ‘케세라세라’(2007년) 대사를 준비해갔는데, 당시엔 잘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첫 오디션 뒤 몇 차례 미팅을 하면서도 “되던 안 되던,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덤덤하게 돌아봤다. 이 감독은 “요즘은 10대 때부터 활동하는 이들이 많은데, 어디서 뭘 하다 이렇게 원석 그 자체로 나타났을까”하며 신기해했다. ‘오아시스’와 ‘밀양’이 이창동 작품인지도 몰랐다는 그는, 처음 ‘버닝’을 볼 때만 해도 쑥스러워 얼굴을 파묻었다고 한다. “칸에서 세 번째로 보는데, 그제야 비로소 어떤 대사와 장면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어요. 종수(유아인)의 집에서 해미가 잠들었을 때, 종수와 벤(스티븐 연)이 속을 털어 놓는 장면이 가장 좋았습니다. 친한 사람에게 못하는 얘기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 확 와 닿았어요.” 여전히 얼떨떨하지만, 자신만의 신념도 분명해 보였다. 연기에 대해 얘기할 땐 열심히 손짓을 해가며 또박또박 설명했다. “주변에선 신인이 부담스런 노출 신을 왜 자진해서 하느냐고 우려하기도 했죠. 하지만 평소에도 성별을 떠나 옷이 파였거나 뭘 걸치지 않았다고 이상하게 본 적이 없어요. 하물며 영화는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굳이 ‘노출’에 얽매이는 건 편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강력한 데뷔는 다음 행보에 걸림돌이 되기도 할 터. 하지만 전종서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가 있다면 무조건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곧 서울국제여성영화제도 시작하잖아요. 평소에도 ‘여성스럽다’거나 ‘남성스럽다’는 규정이 싫었어요. 이번에 칸도 다수 심사위원이 여성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여성의 힘이 확장될 거라 믿고 그런 움직임을 지지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가 있듯 영화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데, 그 힘으로 여성을 대변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어요.”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영화 ‘독전’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독주를 끝내더니 개봉 8일 만인 29일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로 최단기간이다. ‘독전’은 장르는 흔한 범죄물이지만 탄탄한 기본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형사 원호(조진웅)가 실체가 불분명한 마약 조직 우두머리 ‘이 선생’을 쫓는 과정을 짜임새 있게 설계해 몰입감을 높였다. ‘독전’이 개봉하기 전에는 범죄 영화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해영 감독(45)이 연출을 맡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천하장사 마돈나’(2006년)로 데뷔한 이 감독은 ‘페스티발’(2010년)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년)을 연출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지금까지는 오리지널 기획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써왔는데, 틀을 깨보고 싶었다”며 “정서경 작가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장르 영화의 기본인 몰입감에 충실하려 했지만, 사건 위주로만 영화가 흐르지 않도록 캐릭터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주인공 원호는 ‘마초’ 같지만 여리고 감정에 잘 흔들린다. 또 다른 핵심인물 락(류준열)은 버림받은 조직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인물. 극을 이끄는 원호와 그를 지켜보는 락의 시선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 원호가 락의 멱살을 잡고 ‘왜 도발했냐’고 추궁할 때, 락이 ‘방금 그거 꿈꾸신 거예요’라고 하는 장면은 이런 둘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 감독은 “말이 안 되는 대화지만, 속내는 락이 원호를 관찰하고 있고 그의 눈동자를 보며 괜찮다고 달래는 듯한 장면”이라며 “만약 영화를 2번 본다면 첫 번째는 원호의 입장에서, 두 번째는 락의 입장에서 지켜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주혁(진하림 역)의 파격적 비주얼과 거친 캐릭터 연기는 여운이 짙다. 이 감독은 “불꽃같은 연기”라고 회상했다. “저는 물론이고 다른 배우와 모든 스태프가 하림의 첫 등장부터 매순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존재감에 짓눌려 숨 막힐 듯한 휘몰아침이 더할 나위가 없는 연기였습니다. 그게 관객에게 잘 전달됐길 바랄 뿐이에요.” ‘독전’은 원작인 두기봉 감독의 홍콩영화 ‘마약전쟁’(2014년)과 달리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마치 오락영화로만 남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다. 감독은 결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누가 누구를 응징하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독전’은 집착했던 신념의 부질없음을 직면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영어 제목도 ‘빌리버(Believer)’죠.” 이 밖에 화려한 비주얼과 미장센, 오연옥(김성령) 보령(진서연) 등 신선한 여성 캐릭터, 동영 주영 남매(김동영 이주영)의 ‘변사’를 연상케 하는 수화 통역 신 등 인상적인 볼거리가 가득하다. 이 감독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 가장 기뻤다”며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영화라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빌보드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사진)이 신곡 ‘페이크 러브(Fake Love)’로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10위에 올랐다고 29일(현지 시간) 밝혔다.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핫 100’ 2위에 올라 7주 동안 자리를 지킨 적이 있지만 케이팝 그룹 가운데 이 차트에서 10위를 차지한 건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다. 방탄소년단은 27일 정규 앨범 3집 ‘Love Yourself: 轉 ‘Tear’’로 한국 가수 최초로 앨범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위에 오른 뒤 또 한번 새 역사를 썼다. ‘핫 100’은 ‘빌보드 200’과 함께 빌보드의 양대 차트로 꼽힌다. 방탄소년단은 24일 열린 정규 3집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꿈은 클수록 좋으니 입 밖으로 낸 이상 열심히 하겠다”며 “‘빌보드 200’과 ‘핫 100’ 1위,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 참석, 스타디움 투어 등을 통해 영향력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3일 만인 27일(현지 시간) ‘빌보드 200’ 1위의 꿈을 이룬 데 이어 두 번째 목표에도 다가가고 있다. 매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집계하는 ‘핫 100’은 스트리밍 및 음원 판매 실적, 라디오 방송 횟수 등을 종합해 선정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빌보드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페이크 러브’(Fake Love)로 싱글 차트인 ‘핫100’에서 10위에 올랐다고 29일(현지시간) 밝혔다.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핫100’ 2위에 올라 7주 동안 자리를 지킨 적이 있지만 케이팝 그룹 가운데 이 차트에서 10위를 차지한 건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다. 방탄소년단은 27일 정규 앨범 3집 ‘Love Yourself: 轉 ’Tear‘’로 한국 가수 최초로 앨범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위에 오른 뒤 또 한 번 새 역사를 썼다. ‘핫100’은 ‘빌보드200’과 함께 빌보드의 양대 차트로 꼽힌다. 방탄소년단은 24일 열린 정규 3집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꿈은 클수록 좋으니 입 밖으로 낸 이상 열심히 하겠다”며 “‘빌보드 200’과 ‘핫 100’ 1위,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 참석, 스타디움 투어 등을 통해 영향력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3일 만인 27일(현지시간) ‘빌보드 200’ 1위의 꿈을 이룬데 이어 두 번째 목표에도 다가가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200’에는 이번 3집까지 8회 연속 진입했지만 ‘핫 100’은 지난해 10월 ‘DNA’로 85위에 처음 등장했다. ‘DNA’는 67위까지 올라 4주 동안 순위를 유지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싱글 ‘마이크 드롭’ 리믹스가 28위에 올라 10주 동안 머물렀다. 당시 28위는 케이팝 그룹 최고 기록이었다. 매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집계하는 ‘핫100’은 스트리밍 및 음원 판매 실적, 라디오 방송 횟수 등을 종합해 선정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너 무지하게 어둡네. DC 유니버스에서 온 거 아냐?” “겨울왕국의 ‘두 유 워너 빌드 어 스노맨’과 엔틀의 ‘파파 캔 유 히어 미’, 나만 비슷해?” 슈퍼 히어로들의 이면을 까발리며 냉소와 유머를 쉴 틈 없이 쏟아내는 ‘데드풀 2’가 1편에 이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28일 기준 ‘데드풀 2’는 전 세계에서 약 4억9800만 달러(약 535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1편에 비해 북미 관객 수 증가 속도는 살짝 떨어지지만 국내를 비롯한 해외 성적이 좋아 ‘행오버’ 이후 코미디 시리즈 사상 최대 수익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개봉 11일째인 26일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청소년 관람불가 외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갖고 있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612만 명)보다 7일가량 빠른 속도다. 개봉 둘째 주말인 26, 27일에도 42만 관객을 동원하며 ‘데드풀’의 최종 스코어 331만 명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데드풀 2’의 매력은 뭘까. 전작에서 이어진 거침없지만 참신한 유머코드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영화 속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은 “작가가 대본을 대충 썼다”거나 “CG(컴퓨터그래픽) 파티를 즐기라”며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1983년 영화 ‘엔틀’이나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인 ‘덥스텝’ 등 영화 대사에 등장한 낯선 문화 코드를 관객들이 직접 찾아보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24일 관객과의 만남을 가진 황석희 번역가는 “작품에 숱한 레퍼런스(참고자료)와 패러디가 쏟아져 번역이 무척 힘들었다”며 “데드풀의 대사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렵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열성 팬들은 벌써부터 ‘데드풀’ 후속작에 대한 걱정이 크다. 디즈니가 ‘데드풀’의 제작사인 이십세기폭스사 인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가족 관객을 중시하는 디즈니가 데드풀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레이놀즈가 인터뷰 중 “디즈니 합병에 대한 농담이 있었는데 제작사 요청으로 삭제했다”고 밝힌 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디즈니의 폭스 인수는 비슷한 색깔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업적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보여 심각한 변화가 생기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인수 절차를 두고 봐야겠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준 것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이용한 하이퍼텍스트적 확장이 팬들의 바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94년 창간한 빌보드는 1956년부터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이때 탄생한 빌보드 차트는 세계 팝음악의 흐름을 살피는 척도로 여겨지며 국내에도 1960년대부터 AFKN 등을 통해 소개됐다. 처음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한국인은 1959년 미국에 진출한 여성 트리오 ‘김시스터즈’였다. 이들은 1962년 미국 그룹 ‘코스터스’의 동명 곡을 커버한 ‘찰리 브라운’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1963년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가 ‘스키야키’로 아시아 가수 최초로 3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40년 가까이 흐른 2001년, 김범수는 ‘하루’의 영어 버전인 ‘헬로 굿바이 헬로’로 ‘핫 싱글 세일즈’ 차트 51위에 진입했다. 메인 차트 진입은 2009년 보아가 처음이었다. 미국 정규 1집 ‘BoA’가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 127위에 올랐다. 빅뱅은 2012년 미니 앨범 ‘Alive’로 150위, 지드래곤은 솔로 미니 앨범 ‘One of a Kind’로 161위를 차지했다. 싱글 차트 ‘핫 100’에서는 2009년 원더걸스가 ‘노바디’의 영어 곡으로 76위에 랭크됐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핫 100’ 2위에 올라 7주 동안 자리를 지켰다. 2013년 발표한 ‘젠틀맨’도 ‘핫 100’ 12위까지 올랐다. 소녀시대와 투애니원, 슈퍼주니어도 ‘월드 앨범’ ‘소셜 50’ 차트 등에 진입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발표한 ‘Love Yourself: 承 ‘Her’’로 ‘빌보드 200’ 7위에 올랐고 타이틀곡 ‘DNA’는 ‘핫 100’에서 67위를 했다. 마침내 ‘Love Yourself: 轉 ‘Tear’’로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너 무지하게 어둡네. DC 유니버스에서 온 거 아냐?” “겨울왕국의 ‘두 유 워너 빌드 어 스노맨’과 엔틀의 ‘파파 캔 유 히어 미’, 나만 비슷해?” 슈퍼 히어로들의 이면을 까발리며 냉소와 유머를 쉴 틈 없이 쏟아내는 ‘데드풀 2’가 1편에 이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28일 기준 ‘데드풀 2’는 전 세계에서 약 4억9800만 달러(약 535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1편에 비해 북미 관객 수 증가 속도는 살짝 떨어지지만, 국내를 비롯한 해외 성적이 좋아 ‘행오버’ 이후 코미디 시리즈 사상 최대 수익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개봉 11일째인 26일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청소년관람불가 외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갖고 있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612만 명)보다 7일가량 빠른 속도다. 개봉 둘째 주말인 26, 27일에도 42만 관객을 동원하며 ‘데드풀’의 최종스코어 331만 명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데드풀 2’의 매력은 뭘까. 전작에서 이어진 거침없지만 참신한 유머코드가 관객들을 사로잡았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영화 속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은 “작가가 대본을 대충 썼다”거나 “CG(컴퓨터그래픽) 파티를 즐기라”며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1983년 영화 ‘엔틀’이나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인 ‘덥스텝’ 등 영화 대사에 등장한 낯선 문화 코드를 관객들이 직접 찾아보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24일 관객과의 만남을 가진 황석희 번역가는 “작품에 숱한 레퍼런스(참고자료)와 패러디가 쏟아져 번역이 무척 힘들었다”며 “데드풀의 대사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렵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열성 팬들은 벌써부터 ‘데드풀’ 후속작에 대한 걱정이 크다. 디즈니가 ‘데드풀’의 제작사인 이십세기폭스사 인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가족 관객을 중시하는 디즈니가 데드풀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레이놀즈가 인터뷰 중 “디즈니 합병에 대한 농담이 있었는데 제작사 요청으로 삭제했다”고 밝힌 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디즈니의 폭스 인수는 비슷한 색깔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업적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보여 심각한 변화가 생기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인수 절차를 두고 봐야겠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준 것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이용한 하이퍼텍스트적 확장이 팬들의 바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게 바로 하와이안 갈릭 버터 시림프(새우)입니다. 냠냠.” 자막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방송인 백종원 씨가 새우를 입에 넣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자, ‘쩝쩝’ 소리만이 또렷이 귓가를 파고든다. 뒤이어 펼쳐지는 조리 과정. 버터를 잔뜩 두른 프라이팬 위에 튀겨지는 마늘의 ‘지글지글’. 뒤이어 통통한 새우 10여 마리가 들어가자마자 사운드는 거의 교향곡 수준으로 화면 가득 울려 퍼진다. 지난달 23일 방영을 시작한 tvN 다큐멘터리 예능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기존 ‘먹방’과는 뭔가 다르다. 백 씨의 감칠맛 나는 설명도 훌륭하지만, 하나의 요리가 어떤 히스토리와 과정을 지녔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기획 단계부터 염두에 뒀다는 음식 연출 방식이 이채롭다. 마치 시청자도 함께 식탁에 앉은 것처럼 음식을 귀로 풍성하게 즐기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쾌락반응)를 적극 활용한다. 최근 ASMR가 ‘귀르가즘(귀+오르가즘)’이란 신조어까지 낳으며 대중문화 전반에서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방송은 물론이고 광고, 1인 미디어, 웹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스트리트…’를 연출한 박희연 PD는 방송가에서 ASMR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제작진이다. 박 PD는 “백 씨와 함께했던 ‘집밥 백선생3’를 찍으며 제작진도 음식을 조리할 때 나는 ‘소리’에 식욕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각에 집중했던 기존 방식보다 청각을 부각시키는 방식이 시청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렌드에 예민한 광고계도 ‘귀르가즘’은 새로운 블루칩이다. 특히 소리를 활용하기에 먹거리 광고에서 요긴하다. 다니엘 헤니가 출연했던 치즈 광고를 찍은 이채훈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청각을 극대화시키면 대중이 광고를 보며 ‘내가 아는 그 맛이네’라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며 “ASMR를 통해 맛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공감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유행이 빠른 유튜브 등 인터넷 영상에서는 이미 ASMR가 보편화 수준에 이르렀다. 유튜브에 개설된 전문 채널은 30만 개에 이르며, 관련 콘텐츠는 이미 1000만 개를 넘어섰다. ‘혼밥 ASMR 채널’ 등을 운영하는 유튜버 ‘초의 데일리쿡’은 “생생한 소리를 전달하려면 고성능 기계가 필요하고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하지만 ASMR를 활용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보는 비율이 2배가량 높아진다”고 귀띔했다. 최근 귀르가즘은 음식 분야 이외로도 확장하는 추세다. 1020세대에게 인기인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최근 출연 배우들이 에세이를 읽어주는 ASMR 버전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아이돌 ‘워너원’을 전면에 내세운 한 인터넷 쇼핑몰 광고는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수묵화 배경에 새가 지저귀는 자연의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이 크리에이터 디렉터는 “소리의 의외성이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는 효과가 ASMR를 통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ASMR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대중이 ASMR가 주는 새로운 자극에 쾌감이나 욕구를 느끼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진 유튜브 파트너십 수석부장은 “1인 미디어에서 ASMR는 이미 대세 콘텐츠”라며 “과거 단지 음식을 많이 먹는 ‘먹방’에서 벗어나 최근엔 조리나 섭취 과정에서 소리로 식감을 전해야 대중이 찾는다”고 말했다. ASMR가 최신 콘텐츠와 맞물리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아날로그 감성’이란 문화코드가 들어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디지털 문화가 발달할수록 대중은 역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ASMR 인기의 이면에는 디지털 시대의 역행 혹은 반발이란 사회적 심리가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kimje@donga.com·김민 기자}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자그마한 식당은 어느 때 찾아가도 앉을 자리가 없다. 원래도 식도락가들에게 사랑받는 숯불갈비 맛집이었지만, 이달 초 일본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소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지며 난리가 났다. 다름 아닌, 국내에도 팬층이 두꺼운 TV도쿄의 ‘고독한 미식가’였다. 현재 시즌7에 이른 ‘고독한 미식가’는 철저히 음식에 집중한 ‘먹방’ 드라마다. 줄거리는 직장인 이노가시라 고로(마쓰시게 유타카)가 일을 마친 뒤 허기를 느끼고 홀로 식당을 찾아가 요리를 즐기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노가시라의 생생한 표정이나 실감나는 묘사가 ‘신의 경지’라는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 특히 ASMR를 적극 활용한 소리가 예술이란 평이 많다. 지난해 말엔 모든 프로그램이 피해 간다는 NHK ‘홍백가합전’ 시간대에 특집편성 방송을 할 정도로 ‘거물’이 됐다. 이런 ASMR 콘텐츠는 해외에서도 인터넷 영상에서 먼저 각광받았다. 2010년 2월 개설된 가장 큰 규모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ASMR 그룹’은 소개글에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간의 경험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ASMR)을 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2년 시작한 채널인 ‘젠틀위스퍼링’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상황극을 하거나 가위로 사각거리는 미세한 소리를 극대화한 콘텐츠 등으로 인기를 모았다. 130만 명이 팔로하는 채널 운영자인 ‘마리아’는 다니던 직장을 관둘 정도로 상당한 수입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ASMR에 관한 학문적 연구도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로 ASMR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영상을 보며 “머리가 쭈뼛 서거나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며 과학적 효과를 확신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2015년 영국 스완지대의 심리학 연구진도 실험을 통해 ASMR 콘텐츠를 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숙면이나 통증 완화에 도움을 얻었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반면 미국 셰넌도어대의 생물약제학 교수인 크레이그 리처드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이다. 리처드 교수는 ‘ASMR 유니버시티’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ASMR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례를 온라인으로 수집하고 있다. 그는 “ASMR의 원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 과학적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민 kimmin@donga.com·김정은 기자}

“이게 바로 하와이언 갈릭 버터 쉬림프(새우)입니다.(냠냠)” 자막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방송인 백종원 씨가 새우를 입에 넣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자, ‘쩝쩝’ 소리만이 또렷이 귓가를 파고든다. 뒤이어 펼쳐지는 조리과정. 버터를 잔뜩 두른 프라이팬 위에 튀겨지는 마늘의 ‘지글지글.’ 뒤이어 통통한 새우 10여 마리가 들어가자마자 사운드는 거의 교향곡 수준으로 화면 가득 울려 퍼진다. 지난달 23일 방영을 시작한 tvN 다큐멘터리 예능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기존 ‘먹방’과는 뭔가 다르다. 백 씨의 감칠맛 나는 설명도 훌륭하지만, 하나의 요리가 어떤 히스토리와 과정을 지녔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기획 단계부터 염두에 뒀다는 음식 연출 방식이 이채롭다. 마치 시청자도 함께 식탁에 앉은 것처럼 음식을 귀로 풍성하게 즐기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쾌락반응)을 적극 활용한다. 최근 ASMR이 ‘귀르가즘(귀+오르가즘)’란 신조어까지 낳으며 대중문화 전반에서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방송은 물론 광고, 1인 미디어, 웹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스트리트…’를 연출한 박희연 PD는 방송가에서 ASMR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제작진이다. 박 PD는 “백 씨와 함께 했던 ‘집밥 백선생3’를 찍으며 제작진도 음식을 조리할 때 나는 ‘소리’에 식욕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각에 집중했던 기존 방식보다 청각을 부각시키는 방식이 시청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렌드에 예민한 광고계도 ‘귀르가즘’은 새로운 블루칩이다. 특히 소리를 활용하기에 먹거리 광고에서 요긴하다. 다니엘 헤니가 출연했던 치즈 광고를 찍은 이채훈 제일기획 크리에이터는 “청각을 극대화시키면 대중이 광고를 보며 ‘내가 아는 그 맛이네’라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며 “ASMR을 통해 맛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공감을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유행이 빠른 유튜브 등 인터넷 영상에서는 이미 ASMR이 보편화 수준에 이르렀다. 유튜브에 개설된 전문 채널은 30만 개에 이르며, 관련 콘텐츠는 이미 1000만 개를 넘어섰다. ‘혼밥 ASMR 채널’ 등을 운영하는 유튜버 ‘초의 데일리쿡’은 “생생한 소리를 전달하려면 고사양 기계가 필요하고 작업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하지만 ASMR을 활용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보는 비율이 3~4배는 높아진다”고 귀띔했다. 최근 귀르가즘은 음식 분야 이외로도 확장하는 추세다. 1020세대에게 인기인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최근 출연 배우들이 에세이를 읽어주는 ASMR 버전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아이돌 ‘워너원’을 전면에 내세운 한 인터넷쇼핑몰 광고는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수묵화 배경에 새가 지저귀는 자연의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이 크리에이터는 “소리의 의외성이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는 효과가 ASMR를 통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중문화콘텐츠에서 ASMR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대중들이 ASMR이 주는 새로운 자극에 쾌감이나 욕구를 느끼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진 유튜브 파트너십 수석부장은 “1인 미디어에서 ASMR은 이미 대세 콘텐츠”라며 “과거에 단지 음식을 많이 먹는 ‘먹방’을 벗어나 최근엔 조리나 섭취 과정에서 소리로 식감을 전해야 대중이 찾는다”고 말했다. ASMR이 최신 콘텐츠와 맞물리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아날로그 감성’이란 문화코드가 들어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디지털 문화가 발달할수록 대중은 역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ASMR 인기 이면에는 디지털 시대의 역행 혹은 반발이란 사회적 심리가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 ASMR 콘텐츠 해외 사례 ▼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자그마한 식당은 어느 때 찾아가도 앉을 자리가 없다. 원래도 식도락가들에겐 사랑받는 숯불갈비 맛집이지만, 이달 초 일본 드라마를 촬영했던 소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지며 난리가 났다. 다름 아닌, 국내에도 팬 층이 두터운 TV도쿄의 ‘고독한 미식가’였다. 현재 시즌7에 이른 ‘고독한 미식가’는 철저히 음식에 집중한 ‘먹방’ 드라마다. 줄거리는 직장인 이노가시라 고로(마츠시게 유타카)가 일을 마친 뒤 허기를 느끼고 홀로 식당을 찾아가 요리를 즐기는 게 전부다. 하지만 고로의 생생한 표정이나 실감나는 묘사가 ‘신의 경지’라는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 특히 ASMR를 적극 활용한 소리가 예술이란 평이 많다. 지난해 연말엔 모든 프로그램이 피해간다는 NHK ‘홍백가합전’ 시간대에 특집편성 방송을 할 정도로 ‘거물’이 됐다. 이런 ASMR 콘텐츠는 해외에서도 인터넷 영상에서 먼저 각광받았다. 2010년 2월 개설된 가장 큰 규모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ASMR 그룹’은 소개글에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간의 경험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ASMR)을 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2년 시작한 채널인 ‘젠틀위스퍼링’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상황극을 하거나 가위로 사각거리는 미세한 소리를 극대화한 콘텐츠 등으로 인기를 모았다. 130만 명이 팔로우하는 채널 운영자인 ‘마리아’는 다니던 직장을 관둘 정도로 상당한 수입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ASMR에 관한 학문적 연구도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로 ASMR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영상을 보며 “머리가 쭈뼛 서거나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며 과학적 효과를 확신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2015년 영국 스완지 대학의 심리학 연구진도 실험을 통해 ASMR 컨텐츠를 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숙면이나 통증 완화에 도움을 얻었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반면 미국 셰넌도어 대학의 생물약제학 교수인 크레이그 리처드는 좀더 신중한 입장이다. 리처는 교수는 ‘ASMR 유니버시티’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ASMR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례를 온라인으로 수집하고 있다. 그는 “ASMR의 원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 과학적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 책을 젊은 요리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주인공 ‘모로’는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나와 아주 작은 레스토랑을 열고, 4년 뒤 이를 그만두고 프랑스와 방콕을 오가며 때로는 일하고 때로는 삶을 탐구한다. 경제학 석사이기도 한 아주 독특해 보이는 이 요리사 ‘모로’는 시대를 반영한다. 20대 초반 모로는 훈련을 위해 미슐랭 스타 식당에서 무급으로 일했다. 그러나 겉만 화려한 그곳의 주방에는 구태가 도사리고 있었다. 재료를 잘못 준비했다는 이유로 요리 도구에 맞아 코피를 흘린 모로는 그 자리에서 식당을 떠난다. 그리고 기존의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하는, 매일 다른 메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연다. 독특한 미식으로 성공 궤도에 오른 모로는 4년 뒤 방콕으로 떠난다. 이런 모로의 여정은 밀레니얼 세대를 그리고 있다. 모로는 시스템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것을 적당히 이용해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그는 언제나 ‘요리사’가 아닌 ‘개인 모로’다. 멀리서 보면 파격의 연속이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움과 용기가 생긴다. 이 같은 사회학적 통찰을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개인에 대한 묘사만으로 풀어낸 점이 놀랍다. 저자는 파리에서 역사학, 철학, 민족학을 공부했다. 2014년 출간한 소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정밀한 서술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프랑스 쇠유 출판사가 역사·사회학자 피에르 로장과 기획한 총서 ‘삶을 이야기하다’의 일부다. 프랑스 사회의 거대 담론에 가려진 개인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시리즈라고 한다. 총서에 포함된 다른 이야기들도 궁금해진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정명훈 지휘자 이후 공석이었던 음악 감독의 후보군을 압축했다고 밝혔다. 강은경 서울시향 신임 대표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악 감독 최종 후보군을 6명으로 압축해 추천 대상자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강 대표는 “최근 발족한 ‘음악감독추천위원회’에서 최종 후보 2, 3명을 추천하면 계약 조건을 검토해 이사회 제청과 시장 임명 절차를 거쳐 음악 감독을 확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지난해 말까지 음악 감독 선임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대표 공석, 단원 투표 진행 등으로 지연됐다”며 “연내 모든 절차를 확정 지으려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시향은 지난해 9월 최수열 지휘자가 사임한 뒤 공석이었던 부지휘자도 다음 달 안에 선임할 계획이다. 서울시향은 11월 스위스와 이탈리아, 프랑스 등 3개국 6개 도시에서 수석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하는 순회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레퍼토리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슈만의 피아노협주곡 등을 포함할 예정이다. 강 대표는 “2014년 유럽 투어를 가진 이후 오랜 정비기간을 마치고 4년 만에 장기 순회공연으로 유럽시장을 재공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글로벌 오케스트라로 도약하기 위해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상호 교류도 추진한다. 강 대표는 “현재도 다양한 객원 수석, 악장을 섭외해 예술적 교류를 시행하고 있지만 대표적 서구 교향악단이나 오케스트라와도 여러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학생들을 위한 음악교육과 중장년층 교육프로그램 개발, 직장인들을 위한 교육콘텐츠 팟캐스트화 등 공공 교향악단 역할 강화에도 힘쓸 계획이다. 강 대표는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같은 문화 교류에도 관심이 크다”며 “기회가 생긴다면 서울시향은 언제든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취임한 강 대표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법률적 지식을 겸비한 문화예술 전문가로 꼽힌다. 예원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미국 벤저민 N 카도조 로스쿨에서 예술법 중심으로 지식재산법 석사 학위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전문사를 각각 받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만비키 가족’에 돌아갔다. 폐막식이 열린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심사위원장인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마지막 장면은 영화라는 걸 잊게 만들 만큼 감동을 줬다”고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인간사, 특히 가족의 의미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수상은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심사위원상 이후 두 번째다. 앞서 ‘아무도 모른다’(2004년)는 배우 야기라 유아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만비키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도둑질로 살아가는 가족이 집 앞에 서 있던 5세 소녀를 새 구성원으로 맞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가족 영화다. 2등상 그랑프리의 영예는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이 받았다. 반트럼프적 내용을 담은 ‘블랙클랜스맨’은 백인우월주의 집단 큐클럭스클랜(KKK)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경찰의 실화를 그렸다. 심사위원상은 레바논 감독 나디네 라바키의 ‘가버나움’에 돌아갔다. 영화는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의 12세 소년 자인을 중심으로 마약 등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의 비참한 삶을 담았다. ‘가버나움’은 칸 영화제에 참석했던 배우 게리 올드먼이 현지 언론에 ‘가장 추천하는 영화’로 언급하기도 했다. 기대작 중 하나였던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콜드 워’는 감독상을 받았다. 한편 높은 평점을 받으며 수상 기대감을 높였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본상을 받는 데 실패했다. 비평가들은 문학성에 높은 점수를 줬지만, 종수(유아인)와 벤(스티븐 연)으로 대표되는 구시대적 계층 갈등 코드가 다양한 성별과 직군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면면에 어필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버닝’은 세계 각국의 영화평론가와 영화기자 단체가 수여하는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았고, 신점희 미술감독이 ‘아가씨’에 이어 두 번째로 기술 부문 최고상인 벌칸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은 국제비평가연맹상 수상식에서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산책하는 미스터리 영화였다”며 “함께 그 미스터리를 안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폐막식은 법적 분쟁으로 상영이 불투명했던 테리 길리엄 감독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무사히 모습을 드러내며 막을 내렸다. 폐막식에서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는 “1997년, 21세 때 이곳 칸 영화제에서 하비 와인스틴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더 이상 와인스틴은 칸 영화제에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도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이 있다. 그게 누군지 당신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다. 이제는 그런 행동을 우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뇌중풍으로 쓰러져 말하는 능력을 잃었을 때, 한 단어만은 잊지 않았다. 바로 “제기랄(cr´enom)!”. 수녀들은 그가 욕설을 너무 자주 하자 악마의 농간에 씌었다고 생각해 병원에서 쫓아냈다. 그런데 보들레르가 한 욕은 사실 ‘하느님의 신성한 이름(Sacr´e nom de Dieu)’을 줄인 말이다. 이렇게 욕설은 성스럽거나 상스러운 것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금기에서 시작했다. 책은 고대 로마와 중세 르네상스, 20세기 이후까지 욕설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다만 저자가 스탠퍼드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기에 분석 대상은 영어권에 한정되어 있다. 21세기에 들어 외설스러운 것에 익숙해져 사람들은 성적인 욕설을 그다지 불쾌해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흑인 등 유색인종과 타 민족을 멸시하는 속어가 차지했다. ‘젠장’, ‘빌어먹을’보다 ‘깜둥이(nigger)’라는 욕설이 심리적으로 더 큰 타격과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극단적 감정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비속어가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특별한 창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상소리의 역사를 따라가면 수 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정서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야깃거리를 쉽고 재밌게 파악할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래가 없는 시대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세계가 미스터리로 보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의 17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만든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 감독은 “일본 NHK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각색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원작 소설의 미스터리를 요즘 젊은이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려 했다”며 제작 경위를 밝혔다. 이 감독과 작업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배우들은 강한 신뢰감을 표시했다. 전종서는 “촬영하며 무척 즐거웠고 그게 영화에 잘 담긴 것 같아 행복하다”고 했다. 유아인은 “감독에 대해 절대적 믿음을 가졌고, 과거 배우로서의 때가 벗겨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스티븐 연은 “상상 이상이었다”며 “한국계 미국인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단 기분을 갖고 살았는데, 이번 촬영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앞서 공식 상영에 참석한 영화제 관계자들은 ‘버닝’에 대한 호평을 쏟아냈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순수한 미장센으로 영화의 역할을 다한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평했다. 외신은 ‘지적이고 진지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아름답게 다듬어진 영화는 삼각관계에 관한 빛나는 시각과 관찰을 보여준다. 그 삼각관계는 특권층, 가족의 멍에, 창작가의 자존심, 성적 질투와 정의, 복수에 관한 미묘한 인식을 담고 있다”고 했다. ‘인디와이어’는 극 중 벤(스티븐 연)의 “심각하면 재미가 없다”는 대사를 인용해 “‘버닝’도 이 충고를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순간들이 있다. ‘버닝’의 침울하고 사색적인 순간들에 대해 지적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 반갑기도 하다. 그러나 반전을 거듭하며 세상에 눈을 떠가는 남성에 대해 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 캐릭터의 소극성에 관한 지적도 나왔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배우 전종서의 짧은 출연 분량이 아쉽다”고 언급했고 ‘더 필름 스테이지’도 “조금은 낡은 젠더 정치학을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요즘 관객들은 스포츠카보다 농장에 더 큰 인상을 받을 것이지만 화려한 소설 같은 흥미로 관객을 사로잡는 작품”이라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회의 이면과 불편한 진실을 들춰 온 이창동 감독이 ‘청년’을 소재로 한 영화로 8년 만에 돌아왔다. 그의 신작 ‘버닝’이 16일 오후 6시 반(현지 시간) 프랑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됐다. 14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 ‘버닝’은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이자 분노조절 장애로 범법자가 된 아버지 아래 무기력한 청년 종수(유아인)를 전면에 내세운다. 종수가 어린 시절 동네 친구였던 해미(전종서)와 벤(스티븐 연)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울 강남의 고급 빌라에 살고 포르셰를 끄는 벤은 ‘재미’만을 추구하는 의문의 남자다. 종수는 벤을 보고 “어떻게 젊은 나이에 저렇게 돈이 많을 수 있지?”라거나 “한국엔 정체불명의 부자인 개츠비가 너무 많다”고 은근슬쩍 불만을 표시한다. 그러다 벤이 대마초를 피우다가 ‘두 달에 한 번 정도 비닐하우스 태우는 것이 취미’라 고백하고 때마침 해미가 사라져 종수는 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버닝’은 젊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음악을 과감히 쓰거나 미장센을 강조한 노을 장면 등 기존의 이창동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움을 추구한 시도가 엿보였다.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2년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주인공은 31세 기혼 남성이었지만 ‘버닝’에선 경기 파주 농가에 사는 희망 없는 청년 종수로 각색됐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여전히 문학적이지만 묘사가 훨씬 화려해졌고 눈높이를 낮춰 젊은 감각을 표방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있는 ‘청년’의 묘사가 단편적 클리셰에 그쳐 아쉽다. 영화에서 종수의 도망간 엄마는 갑자기 돌아와 돈을 빌려달라 하고, 초라한 집의 텔레비전에선 “OECD 국가 중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야근 특근 가능하냐”는 고용주의 질문에 도망쳐버리고, 화려한 벤을 보며 박탈감을 느끼는 소설가 지망생 종수는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그린 ‘불쌍한 청년’의 전형 그 자체다. 이러한 연민의 시선은 ‘그레이트 헝거’ 비유에서 극대화됐다.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배운 부시먼 춤 속에서 ‘리틀 헝거’는 음식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픈 사람이지만,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배가 고픈 사람이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과거와 다른 이유로 요즘 청년들은 괴롭다는 연민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이 감독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한 오정미 작가와의 대화에서 “지금 사람들은 각각의 이유로 분노하고 있고, 그중 청년의 분노가 문제다. 한국 청년은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데, 미래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분노의 대상을 찾을 수 없어 더욱 무력하다. 멀쩡해 보이는 이 세상이 그들에겐 커다란 수수께끼처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파격적인 화면 연출과 새로운 시도가 담긴 ‘버닝’이 칸 영화제에서 수상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청년의 양상을 그려내면서도 이창동식의 해석을 잃지 않았다”며 “완전히 예상을 깬 작품이 나온 데 대한 좋은 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였죠. 악보만 600페이지, 11시간 분량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내년에 10번째 연주를 일본 무사시노홀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프랑수아프레데리크 기(49)는 2008년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프랭탕 데 자르(예술의 봄)’ 축제에서 열흘 동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연주한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베토벤 세계를 여행해보자는 의도였죠.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그즈음 제 삶의 과업인 ‘베토벤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다른 계기는 2006년부터 필리프 조르당과 함께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리코딩이었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2020년까지 매년 2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있다. 기는 “베토벤을 연주할수록 더 하고 싶기에 평생 끝나지 않을, 음악적 커리어의 핵심”이라고 했다. 기에게 베토벤이 중요한 이유를 묻자 ‘휴머니티’라고 답했다. “위대한 작곡가 중에서도 베토벤은 인류 보편적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특정 지역, 시대가 아닌 인간을 표현해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감동받을 수 있죠.” “1935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최초로 녹음한 아르투어 슈나벨의 아들 카를 울리히 슈나벨을 통해 베토벤의 모든 음악이 사람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됐죠. 리언 플라이셔도 저에게 멘토와 같은 분이었어요.” 프랑스 남서부 페리고르에서 자란 그는 “가을에 버섯 줍는 게 취미”라고 말했다. “트러플이 유명한 페리고르엔 버섯이 많아요. 버섯을 발견하는 순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기분이거든요. 라틴어 학명까지 다 알고 있어 지금도 친지들이 사진을 보내 독버섯 감별을 부탁해 와요.” 17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기는 13번(환상곡풍의 소나타), 4번(대소나타), 22번, 21번(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연주한다. “13번은 월광 소나타의 여동생 격인데, 악장 간 멈춤이 없어 독특하죠. 4번은 35분간 계속되는 아주 깊고 느린 음악이에요. 22번 소나타는 기이하면서 로맨틱하고요. 마지막엔 어려운 소나타를 들어줘 고맙다는 의미의 파워풀한 발트슈타인을 들려드릴 거예요.” 지난해부터 국내 연주를 이어온 기는 한국 관객에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2020년까지 한국에서 소나타를 연주하게 돼 영광입니다. 여러분, 베토벤 세계를 항해하는 저의 배에 함께하시겠어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내 유명 가요기획사의 대표이사가 중국인으로 교체되는 첫 사례가 나왔다. 이에 따라 중국의 입김이 한국 대중문화계의 자본을 넘어 경영권까지 잠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한한령(限韓令) 해금 분위기가 이런 우려를 더 높인다. 아이돌그룹 ‘위키미키’ ‘아스트로’ ‘헬로비너스’와 가수 옹성우를 보유한 중견 가요기획사 판타지오뮤직의 우영승 대표가 14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앞서 판타지오뮤직 이사회는 11일 우 대표에게 해임을 통보했으며 신임 대표이사는 중국인 푸캉저우로 전격 교체됐다. 푸캉저우는 판타지오뮤직의 모회사인 ‘판타지오’ 웨이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알려졌다. 가요계 일각에서는 한국 음악계 경험이 전무한 중국인 대표가 경영에 직접 나선 데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판타지오뮤직에 소속돼 있는 위키미키는 엠넷 ‘프로듀스 101’ 출신 걸그룹 연습생 김도연 최유정이 소속된 그룹. 옹성우는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신 스타 그룹 ‘워너원’ 멤버다. 판타지오뮤직은 연예기획사 ‘판타지오’의 음악 부문을 맡은 회사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모회사 격인 판타지오의 나병준 대표도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판타지오는 2016년 중국 투자집단인 ‘JC그룹’의 한국지사인 골드파이낸스코리아가 50.07%의 지분을 인수했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는 “현행법상으로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을 하려면 이 업종에 4년 이상 종사해야 한다”며 판타지오 임원 구성에 불법적 요소가 있는지 확인 중이다. 판타지오의 웨이제 대표와 푸캉저우 사내이사 모두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가요계의 주장이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막강한 자본을 내세워 한국 연예업계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 왔다. 배우 김윤석 유해진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심엔터테인먼트도 2016년 중국 화이브라더스 미디어에 인수돼 사명을 ‘화이브라더스코리아’로 변경했다. 화이브라더스코리아는 7월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를 영입해 중국 자본으로 만든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를 설립할 예정이다. 역시 중국 대형 연예기획사인 웨화 엔터테인먼트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협약을 맺고 최초의 한중 합작 걸그룹 ‘우주소녀’를 데뷔시킨 데 이어 위에화 엔터테인먼트코리아를 설립해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신의 ‘형섭×의웅’이 여기에 속해 있다. 또 다른 중국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 아이디어뮤직엔터테인먼트(iMe)도 지난해 iMe코리아를 설립하고 첫 작품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첫 내한 공연을 성사시켰다. iMe코리아는 배우 봉태규 등을 영입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자본에 의한 경영권 상실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CJ E&M의 한 관계자는 “중국 자본의 지분이 높으면 한국 연예인들의 활동에 관한 의사결정권 등 사실상 경영권을 가질 수 있어 판타지오와 비슷한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며 “수면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중국의 자본과 경영권 장악 시도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중견 가요기획사의 이사는 “사드 보복 조치로 인한 한한령으로 중국 투자가 무산되면서 사업을 아예 포기하게 된 연예 제작자도 있을 정도로 절박한 업체가 많다”고 했다. 반면 국내 한 대형 영화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소재가 거의 고갈된 국내 영화계에 외부 자본 유입은 장르 다양화 쪽으로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면서 “다만 자본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지거나 자본에 상응하지 못하는 낮은 퀄리티의 작품만 양산되는 상황은 우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