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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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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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파란만장 가족史

    가벼운 시대다. 소설 시장도 다르지 않다. 대하소설은 고사하고 400쪽 넘는 두툼한 장편을 국내 창작소설 가운데서 찾기 힘들다. 내용 또한 굵직한 서사보다는 이미지의 나열이 앞선 감각적인 소설이 대세다. 이 소설의 문학적 완성도는 일단 제쳐두자. 13년 만에 펴낸 저자의 장편, 650쪽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유신, 1987년 민주화 열기, 이후 문민정부 수립까지 이어지는 시대적 배경,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3대에 걸쳐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가족사…. 책장을 펴는 순간 오랜만에 ‘물건’을 만난 듯 긴장했다. 그렇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은 일단 재밌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한 편의 정치 야사(野史)를 읽는 듯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건은 두 남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폭력조직 ‘서의실업’의 행동대장인 선우활과 야당 거물의 아들인 소설가 윤완. 둘은 군대에서 만나 의형제가 된다. 윤완의 아버지가 정계에 입문한 뒤 사업을 하는 윤완의 이모가 서의실업 부하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선우활은 조직을 배신하고 윤완을 돕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선우활은 자신의 오른팔을 잃고, 자신도 조직에 쫓기게 된다. 한 편의 활극처럼 이어지던 이야기는 더 큰 밑그림을 그린다. 여당 편에 서서 골치 아픈 인물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서의실업, 그리고 운동권 비밀결사조직인 ‘아이제나흐’가 첩보전을 방불케 하며 대립을 이룬 것. 이 과정에서 서의실업 회장의 정부였다가 선우활의 애인이 된 남미현이 사실은 아이제나흐의 정보원인 것이 밝혀지며 소설은 탄력을 키운다. 1987년 거셌던 민주화운동이나 3당 합당, 문민정부 출현으로 이어지는 이 소설의 배경을 다룬 소설은 많다. 하지만 작가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집중하는 대신 당시 정치격변기에서 있을 법했던, 서의실업이나 아이제나흐 같은 조직을 앞세운 정보·테러전을 그려 신선함을 선사한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경찰이었다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했던 선우활의 할아버지 선우명, 그리고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월북한 뒤 다시 대남 간첩으로 활동한 선우활의 아버지 선우장의 얘기까지 그린다. 비록 1980, 90년대 이야기보다 긴박감은 떨어지지만 이런 과거사가 밀도 있게 펼쳐지며 장대한 스케일의 소설을 맛보는 즐거움을 준다.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궁금했다. 대체 이 거대한 서사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고. 결국 마무리는 힘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선우활의 복수는 급작스러웠고, 개연성도 부족해 보였다. 다른 중요 인물들의 결말도 후일담 형식으로 처리돼 아쉬웠다. 10년 넘게 공을 들인 역작. 작가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한 모양새다. 좀더 치밀한 후반부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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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편 ‘모르는 척’ 펴낸 소설가 안보윤 씨 “부조리한 사회 무너지는 가정 그렸죠”

    그의 소설은 불편하다. 잔혹한 폭력이 책장 가득 흘러넘치며 순환 또는 확대된다. 거대한 폭력 앞에 놓인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2005년 첫 장편 ‘악어떼가 나왔다’ 이후 최근 나온 다섯 번째 장편 ‘모르는 척’(문예중앙)까지. 문학동네작가상, 자음과모음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안보윤(32)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폭력성, 그 안에서 파괴되는 개인과 가정에 초점을 맞춘다. 25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행사 때문에 경호 인력이 새까맣게 거리를 뒤덮은 오후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날. 감상을 묻자 그는 이렇게 웃었다. “보통 광화문에 경찰이 깔릴 때는 집회나 시위를 막을 때인데, 오늘은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군요. 호호.” 신간 소설은 국가의 폭력을 말하지는 않는다. 소설은 폭력의 최소 단위를 다룬다. 가정, 그리고 개인, 더 나아가 그 개인의 내적 파괴 과정을 잔잔히 되짚는다. “결국 사회란 외부 구조의 잘못 때문에 사회의 가장 안쪽인 가정이 파괴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소설은 한 가정의 붕괴를 ‘복기’한다. 아버지를 돌연사로 잃고 남겨진 아내와 두 아들. 허름한 지방 도시로 이사 간 이 가족의 생계는 막막하다. 어느 날 형은 계단에서 사고로 굴러 떨어져 다치고, 보험금을 탄다. 쉽게 번 돈. 보험 판매를 하는 이모의 꾐에 형은 보험사기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고깃국과 생선도 밥상에 올라온다. 형의 보험사기는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를 파괴하며 생존해가는 모순에 휩싸이면서 괴로워한다. 작품은 2011년 강원 태백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보험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주민 400여 명이 병원과 짜고 140억여 원을 부정 수급한 사건이다. “보험사기라면 수억 원을 타서 흥청망청 쓰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건은 좀 다르게 보였어요. 일부 수급자는 다리가 골절됐다고 몇십만 원 타고, 모녀가 나란히 다리가 부러졌다고 몇십만 원 타는 식이었죠. 물론 범죄는 나쁘지만 이런 ‘생계형’ 사기의 모습이 안타깝게도 다가왔습니다.” 보험사기단 적발 같은 뉴스는 금세 잊혀진다. 하지만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보험사기단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찬찬히 그린다. 형은 몸의 곳곳이 부러진다. 이젠 항생제마저 듣지 않는다. 점차 정신도 혼미해진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멈출 수 없는 현실이 참혹하게 펼쳐진다. 그럼 누가 ‘모르는 척’ 하는가. 엄마, 동생, 이모가 그들이다. 하지만 모르는 척하는 게 이들뿐일까. “사실 보험사기는 일부예요.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대학생부터 취업이 안 돼 고민하는 사람들까지 사회엔 굉장히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죠. 사람들은 굉장히 이기적인 존재예요. 자신이 관련된 문제만 생각하고, 이마저도 너무 커지면 방관하거나 외면하려 하죠. 이런 ‘모르는 척’들을 얘기하고 싶었죠.” 폭력의 이면을 일관되게 그려온 작가는 이제 ‘안보윤의 소설 1기’를 마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주제로 옮겨 작품에 정진하고 싶단다. ‘평화는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폭력 얘기만 하다 널뛰듯 평화로 옮겨가면 가식적이 될 것 같다”며 깔깔댔다. “미묘한 극점에 놓인 사랑 얘기를 쓰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더 나이가 들면 가능할까요.” 미혼의 여성 작가에게 봄바람이 불까.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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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투병 소설가 최인호, 삶과 죽음-인연 성찰한 산문집 ‘인생’ 펴내

    작가 최인호(68)는 한국불교를 중흥한 경허 선사와 그 제자들을 그린 소설 ‘길 없는 길’을 쓰면서 불교에 심취해 1990년대 초 전국의 절을 돌아다녔다. 알고 지내던 무법 스님의 승복을 걸치고 밀짚모자를 쓴 채 화려한 압구정동의 밤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승복으로 갈아입자 세상과 절연하고 무소의 뿔처럼 유아독존이 되어 홀로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며칠 뒤 최인호는 법정 스님(1932∼2010)을 만났다가 “며칠 전 승복을 빌려 입고 밤거리를 걸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래 기분이 어떻던가요?” 법정 스님이 웃으며 물었다. “스님께서 효봉 스님(법정 스님의 은사)으로부터 출가를 허락받았을 때 느끼셨다던 그 환희심을 느꼈습니다.” 최인호가 웃었다. “그럼 이 기회에 머리 깎고 출가하시지요.” 스님이 넌지시 말을 건네자 작가의 답은 이랬다. “저야 저의 가정이 바로 산문(山門)이지요. 아내가 바로 저의 효봉 스님이고, 저야 늦깎이 햇중이지요. 그러니 머리는 이미 깎은 셈이지요.” “허허허, 하기야 최 선생은 재속거사(在俗居士)이시니까.” 법정 스님이 웃고 최인호도 따라 웃었다. 시간이 흘러 2003년 봄. 둘은 다시 만났다. 최인호가 죽음에 관해 묻자 법정 스님이 답했다.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시 10년이 흘러 2013년. 봄의 기운이 움트는 이 계절에 최인호가 산문집 ‘인생’(여백)을 펴냈다. 2008년 5월 침샘암 수술을 받은 뒤 5년여의 투병 기간에 틈틈이 쓴 글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지난해 5개월간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 연재한 글과 각종 산문을 모았다. ‘생(生)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命令) 그래서 생명(生命)’이란 짧은 글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는 그가 투병 이후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법정 스님과의 몇 번의 인연.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입적했고, 작가는 암 투병 중이다. 작가는 다시 스님을 떠올린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말대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육신의 껍질을 벗었다. 동시에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 그것이 우리의 일상사인 것이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로 유명한 이태석 신부(1962∼2010)와의 일화도 들려준다. 4차 항암치료를 위해 2010년 1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옆 병실에 입원해 있던 이 신부를 만났다. 반가운 만남도 잠시, 얼마 뒤 이 신부가 퇴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끝인가 봐요”라는 이 신부 누이의 울먹임을 들은 뒤였다. 작가는 신부를 찾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를 껴안았다. 얼마 뒤 신부의 선종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함께 나눈 짧은 포옹은 생과 사가 교차하는, 지상과 하늘나라가 연결되는 찬란한 동산에서 나눈 날카로운 첫 키스와 같은 것이니. 신부님, 나의 이태석 신부님, 이 가엾은 죄인을 위해 우리 주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최인호는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청한 점심식사 자리를 마다한 게 두고두고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김 추기경과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으나 작가는 신문 연재 때문에 “바쁘다”며 자리를 떠야했다. 김 추기경은 “왜 함께 식사를 하지 그래”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요즘 나는 내 서재 벽 앞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초상을 내걸고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 천상의 식탁에서 그분과 함께 지상에서 미뤘던 점심식사를 하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 수술대에 누운 것은 포경수술을 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꼽을 정도로 건강했다는 작가는 투병 이후 많은 것을 새로 보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환자로 병원을 출입하게 되니 아아, 세상에는 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나는 글쟁이로서 지금까지 뭔가 아는 척 떠들고 글을 쓰고 도통한 척 폼을 잡았지만 한갓 공염불을 외우는 앵무새에 불과했구나.” 작가는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힘을 보탠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죽일 병은 없습니다. … 우리를 죽이는 것은 육체를 강한 무기로 삼고 있는 악입니다. 절망, 쾌락, 폭력, 중독, 부패, 전쟁, 탐욕, 거짓과 같은 어둠이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한꺼번에 죽이는 것입니다.” 서울고 2학년 때인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인호는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 동안의 작가 인생을 기념하는 문집인 탓에 ‘인생’이란 제목도 달았다. 까까머리 고교생 작가에서 반백의 노(老)작가가 된 그는 머리글에 이렇게 적으며 머리를 숙였다. “그동안 명색이 작가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지냈음이 느껴져 부끄럽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 작가는 이 책을 출간한 뒤 홀연히 길을 떠났다고 한다. 주위에 “피정(避靜·가톨릭 신자들의 수련생활)을 떠나겠다”는 말을 남긴 뒤였다. 그는 머리글을 이렇게 맺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어서 어서 꽃 피는 춘삼월이 왔으면 좋겠다. 혹여나 이 책을 읽다가 공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숨결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그 숨결들이 모여 내 가슴에 꽃을 피울 것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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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가 스크린을 만났을 때

    “어라? 스크린에 시(詩)가 나오네.” 요즘 영화관 메가박스를 찾은 관객들은 시 한 편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전에 나오는 광고 시간에 시를 소개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기 때문. 한국시인협회와 메가박스가 손잡고 진행하는 ‘다시 보는 우리 시’ 캠페인이다. 16일부터 김종해 시인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가 전국 367개 상영관에서 하루 평균 2200여 회(상영관당 하루 약 6회) 노출되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바로 그대 앞에 있다’란 시어가 영상과 함께 16초가량 나온다. 시가 왜 극장을 찾아간 것일까.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란 캠페인을 진행하는 메가박스는 광고 시간의 일부를 공익적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극장의 주요 관객인 20, 30대가 시와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행사를 시인협회에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취지에 공감한 시인협회가 시인과 시를 정했고, 메가박스가 영상을 만들었다. 김 시인의 시에 이어 3월에는 허영자 시인의 ‘마음’이 뒤를 잇는다. 이 행사는 6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김지헌 시인협회 사무국장은 “이번 캠페인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시를 좀 더 친숙하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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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지 바꾸고 머그컵 넣은 뒤 포장… 책값 두배로 인상한 출판사 꼼수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를 살펴보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러브에디션 광고였다. 원래 푸른색이었던 책 표지를 오렌지색으로 바꾼 양장본, 시인의 글이 새겨진 커플 머그컵, 이들을 담을 상자와 쇼핑백까지 함께 판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화이트데이를 겨냥한 선물 패키지였다. 지난해 7월 출간된 ‘바람이…’는 성적이 좋았다. 지금까지 30만 부 넘게 팔렸다. 이 책은 감각적인 사진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글들이 담겨 있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베스트셀러에 ‘스페셜’ ‘한정판’의 이름을 붙여 판매를 촉진시키는 것은 출판사가 흔히 하는 마케팅 방법이다. 하지만 이 러브에디션의 가격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원래 책의 정가는 1만3800원이지만 이번 에디션의 가격은 2만8000원. 양장본에 머그컵 2개, 상자와 쇼핑백이 추가되면서 가격이 두 배 넘게 뛴 것이다. ‘바람이…’를 출판한 문학동네의 계열사 ‘달’로 전화를 걸자 예기치 않은 답변도 나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디션으로 3만 부 한정판을 냈는데, 거의 판매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당시는 푸른색 표지의 양장본에 책 옆면을 은색으로 칠한 상품이었다. 가격은 1만3800원으로 원래 책값과 같았다. 쉽게 정리가 됐다. 크리스마스에디션이 잘 팔리자 표지색을 바꾸고 선물을 추가해 가격을 올린 것이다. “원가 상승분이 있다”고 출판사는 설명했지만 앞서 양장본으로 선보인 에디션은 가격이 동일했다. 그럼 머그컵 2개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문학동네 카페에서는 ‘꼬마 니콜라’ 구입자 80명에게 머그컵 2개를 무료로 주는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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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말을 건네온다, 시인을 닮아 둥글고 따뜻한 詩가…

    시(詩)는 시인을 닮는다. 시가 시인의 내면에서 육화(肉化)돼 외부로 터져 나오는 것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와 시인의 합일점이 보다 뚜렷한 작가를 꼽는다면 함민복 시인(52)은 앞자리에 자리 잡을 것 같다. 넉넉하고 푸근한 그의 성정은 시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1988년 등단한 그가 25년 동안 사랑을 받는 것도, 독자들이 그의 따스함을 글에서 읽었기 때문이리라. 여기 양팔저울이 있다. 미량의 무게 차이에도 삐걱거리는 불안감. 이제 한쪽은 너가 되고 다른 쪽은 내가 된다고 시인은 속삭인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당신을 읽어나갑니다//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시 ‘양팔저울’에서) 상대에 나를 맞춰 서로 수평을 이루는 양보는 결국 삶의 짐을 더는 지혜다. ‘양팔저울’ 외에도 ‘줄자’ ‘수평기’ ‘직각자’ ‘나침판’ ‘앉은뱅이저울’ 등의 작품들을 담았다. 왜 온갖 ‘측정기’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가 피식 웃는다. “원래는 이런 측정 기구들만 다룬 시들로 시집을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받치고 있는 ‘약속’ 같은 것들을 새롭게 보고 싶었지요.” 측정기구가 받치고 있는 것은 계량적 토대로 이뤄진 물질적 세상, 즉 자본주의다. 시인은 측정기구들의 의미를 확장해 기구들이 잴 수 없었던 삶의 넓이와 무게까지 헤아려본다. 시인은 대중에게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를 쓰는 작가로 인식돼 있지만 ‘무른 사람’은 아니다. 관찰력은 섬뜩할 정도다. 시 ‘외바퀴 휠체어’의 일부는 이렇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외바퀴/휠체어 탄 사람이 주차되어 있다//그 위로/장애인 스티커 붙인 차가 진입한다//사각 보호선에 갇혀 비명도 없이/차에 깔리는 휠체어 타고 있는 사람….’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람이 또 다른 휠체어 탄 사람을 치는 아이러니라니! 8년 만에 나온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로 시작하는 그의 대표작 ‘긍정적인 밥’처럼,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편도 여럿 눈에 띈다. ‘달’ ‘흔들린다’ ‘봄비’ 등이다.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달은/마음의 숫돌//모난 맘/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달//그림자 내가 만난/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 전문) 시인은 2011년 3월 6일 나이 쉰에 동갑내기 아내를 맞았다. 부부 나이의 합이 100세였다. 늦깎이 결혼에 문단은 잔치를 벌인 듯 즐거워했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인삼센터에서 인삼가게 ‘길상이네’를 열고 있는 시인에게 ‘결혼 2주년에 뭐할 건가’ 묻자 더듬거리며 말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선물 생각을 못했다…. 하루 쉬어야 하나….” 역시 그답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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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관능의 손짓 너머에 기다리는 진지함

    금기의 빗장이 열리는 것일까. 에로티시즘을 앞세운 책들이 출판시장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 불리는 E 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출간에 이어 이번에는 성애 소설의 고전들을 묶은 에디션 D(Desire) 시리즈가 전열을 정비했다. 에디션D는 이 책 ‘비터문’과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부영사’를 새로 출간했고,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 제임스 발라드의 ‘크래시’, 엘리자베스 맥닐의 ‘나인 하프 위크’를 재출간했다. 시리즈는 총 20권으로 완간된다. ‘비터문’은 한 호화여객선에서 만난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레베카에게 애인도 있는 디디에가 흔들린다는 내용. 1993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만든 ‘비터문’처럼 시리즈에 들어 있는 소설은 모두 영화화됐다. 화면에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대사와 상황의 함의를 텍스트를 통해 찬찬히 읽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다만 ‘단순하고 뜨거운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쉽다. 예스런 문체에 30여 년 전 발표된 소설의 시대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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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기현]4월 재·보선의 정치학

    20년 전 4월이었다. 김영삼(YS)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하자마자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군내(軍內) 핵심 사조직 하나회 숙정, 대대적 사정(司正) 등 고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동아일보 등 언론의 검증으로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박희태 법무부 장관 등 당정청 고위 인사가 낙마하는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초반 출발은 좋았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첫 시험대인 4·23 재·보궐선거를 맞았다.어떤 성적표를 받느냐에 따라 정권 초기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에 여권은 사활을 걸었다. 당시 이기택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4개월 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난 뒤 표류하던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3개 선거구 중 YS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두 곳은 여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야세가 강한 경기 광명이 관건이었다. YS는 재야 운동권 출신 손학규라는 혁명적인 카드를 내세워 이곳에서까지 승리하며 첫 재·보선에서 전승을 거뒀다.반면에 참패한 민주당은 이기택 대표와 DJ 동교동계의 어색한 동거관계에 본격적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2년 뒤 DJ의 정계 복귀를 불러오는 단초가 됐고 돌아온 DJ는 결국 1998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해의 4월 재·보선은 이처럼 새 대통령에 대한 첫 평가일 뿐 아니라 정권 5년의 향방과 차기 대선 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15년 전 DJ 정부 1년차인 1998년 4·2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들어왔다. 대구 달성에서 박근혜가 당시 여권의 거물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을 꺾은 데 힘입어 야당이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대선 패배 뒤 첫 재·보선의 4곳 모두에서 이겼다.박 당선인으로선 20년 전 YS나 15년 전 자신처럼 올해 4·24 재·보선에서도 성공적인 출발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전부터 인선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거구로 이미 확정된 서울 노원병과 부산 영도는 새누리당에 쉬운 곳이 아니다.여권에서 새누리당 중진 김무성 전 의원이 전격적으로 영도 출마를 선언한 것을 신호탄으로 4월 재·보선을 향한 ‘게임’이 벌써 시작됐다. 원내 진입으로 정치 복귀를 노리는 김무성은 당권까지 염두에 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다음 10월 재·보선 때는 여권 내의 정치지형과 민심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그때는 공천도, 당선도 보장받기 힘들다는 판단이 그의 결정을 재촉했을 것이다.반대편에는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있다. 20년 전 4월 민주당은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에 가 있던 DJ만 쳐다봤다. 이번에도 민주당 대신 미국에 있는 안철수가 야권의 ‘메인 플레이어’다. 다음 달 귀국할 것으로 보이는 안철수가 직접 선거에 나서지 않더라도 측근 인사를 출마시키고 지원에 나서면 재·보선은 순식간에 차기 대선 레이스의 전초전이 돼 버린다.벌써부터 안철수 진영 주변에선 김성식 전 의원, 금태섭 정연순 변호사 등 출마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의 이름까지 나온다. 안철수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야권 표가 많은 영도와 진보진영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노원병 모두 ‘해볼 만한 곳’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반면에 박근혜가 미국 벤처업계의 영웅 김종훈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을 ‘안철수 견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철수 ‘백신 신화’를 한순간에 덮어버렸다는 것이다.그러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다시 정치게임이 시작되는 상황이 올 경우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민심은 한순간의 자만도 허용하지 않는다. 1993년과 1998년 4월 재·보선에서 각각 전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출발했던 민자당과 한나라당은 5년 뒤 대선에서 모두 졌다.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kimkihy@donga.com}

    •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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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 ‘김수영의 연인’ 펴내는 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 씨

    《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그러나 너의 얼굴은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그 찰나(刹那)에 꺼졌다 살아났다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은― 김수영의 시 ‘사랑’ 》“김 시인(김수영)은 초고를 원고지에다 안 쓰고 백지에 썼어. 이 양반은 원고지도 뒤집어서 백지에 썼지. 초고가 완료되면 무조건 나를 부르는 거지. 제일 왕성할 때는 마포 구수동에 살림을 차렸을 때였어. 구공탄에 밥을 짓는데, 그 밥이 부글부글 끓을 때 서재로 나를 부르는 거야. 그러면 나는 밥이 탈까 아예 솥을 내려놓고 들어갔지.” 김수영(1921∼1968)의 아내는 1950년대 후반의 서울 마포로 가 있었다. 시인을 떠올리는 그의 눈망울이 촉촉하다. “얼마나 까다로운지 원고지를 앞에 딱 내놓고 정좌 상태로 앉아 있어. 그러면 (내가) 시 제목, 그리고 김수영이라고 쓰고 한 자 한 자 정서를 했어. 행여 한 자라도 잘못 쓰면 ‘다시!’라고 했지. ‘땜질’이 안됐어.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썼지. 그렇게 써서 한 통은 잡지사에 보냈고, 하나는 간직했고….” ‘풀’ ‘폭포’를 비롯해 수많은 현대시의 걸작들을 남긴 김 시인. 지금 전해 내려오는 그의 육필 원고들은 대부분 부인 김현경 씨(86)의 글씨다. 1942년 문학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난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고, 두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났고, 1968년 시인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떴다. 시인의 부인은 그가 떠난 지 45년 만에 그 추억을 담은 첫 산문집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을 이달 말 펴낸다. 18일 경기 용인시 마북동에서 김 씨를 만났다. 여든을 훌쩍 넘긴 시인의 아내는 지금도 고왔다. 가볍게 화장을 했고, 헤어밴드와 팔찌로 포인트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 그는 포도주와 육포, 딸기를 내왔다. “손님이 오면 한 잔씩 내와요.” 세련된 손님맞이였다. 그는 신(新)여성이었다. 문단이란 말도 생소했던 1940년대. 이화여대 문과생이었던 그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폴 발레리의 시를 읽었다. 이화여대 교수였던 정지용의 예쁨을 받았고, 김소월의 ‘산유화’에 곡을 붙인 작곡가 김순남이 오촌 당숙이다. 김순남의 집에 놀러가서 자연스럽게 임화 오장환을 비롯한 문인들과 어울렸다. 미와 지성을 겸비한 그는 남성 문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김수영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이자 도쿄 유학시절 친구였던 이종구를 통해 1942년 김수영을 처음 만났다. 이듬해 김수영이 귀국하며 둘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 양반이 시를 쓰니까 같이 문학에 ‘턱’ 빠졌지. 박인환이 하던 마리서사(종로의 서점)에 가서 일본 전후파 시집들을 같이 읽고 흥분하고 했어.” 하지만 김 씨에게 김수영은 첫사랑이 아니었다. 이른바 ‘흑인 시’를 쓰던 배인철(1920∼1947)과 사귀었던 그는 1947년 남산에서 데이트를 하다 한 괴한이 쏜 총에 애인이 죽는 것을 옆에서 봤다. 그도 옆구리에 총을 맞았다. ‘배인철이 공산주의자였다’란 소문이 돌자 함께 있던 김 씨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났다. 하지만 김수영만은 예외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외면했지만 김수영만은 제게 남았어요. ‘네 재주가 아깝다. 너는 문학을 해야 한다’며 저를 다독여줬죠.” 1949년 초겨울부터 동거에 들어간 김수영과 김현경은 1950년 4월 결혼한다. 하지만 둘의 행복은 짧았다. 6·25전쟁이 터지자 김수영은 징집당해 전선으로 갔고, 포로가 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머물게 된 것. 1952년 김수영이 수용소에서 나온 뒤 둘은 피란 수도 부산에 살았지만 판잣집 생활을 면치 못했다. 김현경은 취직하기 위해 이종구를 찾아갔다가 그 집에 머물게 된다. 그를 흠모했던 이종구가 김현경을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김수영은 이종구의 집에 왔다가 아침 밥상을 차리는 김현경을 보고 말없이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김현경은 “먼저 가세요”라고 말한다. 이종구의 부친은 김현경에게 “이혼을 하고 새로 결혼하게 김수영의 도장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그 등쌀에 밀린 김현경은 서울을 찾는다. 종로 보신각 옆에 있던 주간잡지 ‘태평양’ 건물. 2층에 올라가자 김수영이 보였다. “1년 만의 재회였는데 제 얼굴을 보고 좋아하더군요. ‘저기 뒤에 조그만 여관이 있는데 거기 가서 좀 있으라’고 하데요. 말이 떨어지지 않아 ‘저기…도장…’이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알아채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군요.” 김현경은 김수영의 도장을 받아왔다. 하지만 차마 이종구의 부친에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종구 집을 나와 서울 성북동에 방을 하나 얻었지요.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서 밤낮으로 문학을 했지요. 몇 달 뒤 제 결심을 알리고 싶어 김수영에게 엽서를 보내 성북동 다방에서 보자고 했어요.” 자신을 버렸던 여자의 느닷없는 엽서. 김현경은 김수영이 안 나올 줄 알았단다. 약속한 오후 5시를 일부러 넘겨 30분 늦게 찾아간 다방. 김수영은 출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말쑥한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1954년 둘이 헤어진 지 2년여 만의 해우였다. “차를 시키고, 둘이 말 한마디 없었죠. 한참 있다가 ‘나가자’ 하더군요. 대뜸 ‘약수동(당시 김수영의 집) 가자’ 하더군요.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은 용기가 안 나서 ‘내가 성북동에 방 한 칸 얻어놨어요’라고 말했죠. 그 길로 성북동으로 들어가 다시 부부가 됐고, 15년을 함께 살았죠. 다시 만난 날 밤 ‘나 평화신문 가서 취직하고 올게’라고 말하더군요. ‘아이 러브 유’라는 말보다 더 좋았죠. 돈 벌어온다는 얘기였으니까요. 이튿날 정말 취직해서 오더군요.” 이후 김수영은 번역일도 많이 하고, 서울대와 연세대 강단에도 섰다. “그 사람이 집에서 글 쓰고 내가 바느질할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가 집에 있어도 그리웠지요. 가만히 서재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그는 이런 말을 했어요. ‘야, 너 말야. 어젯밤에 내가 해줬는데 뭐가 더 궁금해서 왔냐.’ 뭐 이랬죠. 사실은 전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놀렸죠.” 김수영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40년 넘게 그는 문단을 멀리 했다. 이번 책을 낸 것은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같이 산 20여 년의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세월이 두 배가 넘지만 아내는 남편을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아내는 책 말미에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라는 편지글을 붙였다. ‘1940년대에 처음 당신을 아저씨로, 그저 꿈 많던 한 문학소녀의 선생님으로 맺은 첫 인연이 부부의 연으로 이어져 이렇게 질길 줄이야…. 당신보다 반세기를 더 살고 있는 내 인생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모든 시가 나의 버팀목이 되었고…. 당신, 수영. 꿈에서라도 나타나주기라도 하면, 이 책과 함께 당신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용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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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김수영의 아내, 45년 만의 첫 산문집

    “김 시인(김수영)은 초고를 원고지에다 안 쓰고 백지에 썼어. 이 양반은 원고지도 뒤집어서 백지에 썼지. 초고가 완료되면 무조건 나를 부르는 거지. 제일 왕성할 때는 마포 구수동에 살림을 차렸을 때였어. 구공탄에 밥을 짓는데, 그 밥이 부글부글 끓을 때 서재로 나를 부르는 거야. 그러면 나는 밥이 탈까 아예 솥을 내려놓고 들어갔지.” 김수영(1921∼1968)의 아내는 1950년대 후반의 서울 마포로 가 있었다. 시인을 떠올리는 그의 눈망울이 촉촉하다. “얼마나 까다로운지 원고지를 앞에 딱 내놓고 정좌 상태로 앉아 있어. 그러면 (내가) 시 제목, 그리고 김수영이라고 쓰고 한 자 한 자 정서를 했어. 행여 한 자라도 잘못 쓰면 ‘다시!’라고 했지. ‘땜질’이 안됐어.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썼지. 그렇게 써서 한 통은 잡지사에 보냈고, 하나는 간직했고….” ‘풀’ ‘폭포’를 비롯해 수많은 현대시의 걸작들을 남긴 김 시인. 지금 전해 내려오는 그의 육필 원고들은 대부분 부인 김현경 씨(86)의 글씨다. 1942년 문학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난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고, 두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났고, 1968년 시인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떴다. 시인의 부인은 그가 떠난 지 45년 만에 그 추억을 담은 첫 산문집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을 이달 말 펴낸다. 18일 경기 용인시 마북동에서 김 씨를 만났다. 여든을 훌쩍 넘긴 시인의 아내는 지금도 고왔다. 가볍게 화장을 했고, 헤어밴드와 팔찌로 포인트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 그는 포도주와 육포, 딸기를 내왔다. “손님이 오면 한 잔씩 내와요.” 세련된 손님맞이였다. 그는 신(新)여성이었다. 문단이란 말도 생소했던 1940년대. 이화여대 문과생이었던 그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폴 발레리의 시를 읽었다. 이화여대 교수였던 정지용의 예쁨을 받았고, 김소월의 ‘산유화’에 곡을 붙인 작곡가 김순남이 오촌 당숙이다. 김순남의 집에 놀러가서 자연스럽게 임화 오장환을 비롯한 문인들과 어울렸다. 미와 지성을 겸비한 그는 남성 문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김수영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이자 도쿄 유학시절 친구였던 이종구를 통해 1942년 김수영을 처음 만났다. 이듬해 김수영이 귀국하며 둘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 양반이 시를 쓰니까 같이 문학에 ‘턱’ 빠졌지. 박인환이 하던 마리서사(종로의 서점)에 가서 일본 전후파 시집들을 같이 읽고 흥분하고 했어.” 하지만 김 씨에게 김수영은 첫사랑이 아니었다. 이른바 ‘흑인 시’를 쓰던 배인철(1920∼1947)과 사귀었던 그는 1947년 남산에서 데이트를 하다 한 괴한이 쏜 총에 애인이 죽는 것을 옆에서 봤다. 그도 옆구리에 총을 맞았다. ‘배인철이 공산주의자였다’란 소문이 돌자 함께 있던 김 씨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났다. 하지만 김수영만은 예외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외면했지만 김수영만은 제게 남았어요. ‘네 재주가 아깝다. 너는 문학을 해야 한다’며 저를 다독여줬죠.” 1949년 초겨울부터 동거에 들어간 김수영과 김현경은 1950년 4월 결혼한다. 하지만 둘의 행복은 짧았다. 6·25전쟁이 터지자 김수영은 징집당해 전선으로 갔고, 포로가 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머물게 된 것. 1952년 김수영이 수용소에서 나온 뒤 둘은 피란 수도 부산에 살았지만 판잣집 생활을 면치 못했다. 김현경은 취직하기 위해 이종구를 찾아갔다가 그 집에 머물게 된다. 그를 흠모했던 이종구가 김현경을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김수영은 이종구의 집에 왔다가 아침 밥상을 차리는 김현경을 보고 말없이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김현경은 “먼저 가세요”라고 말한다. 이종구의 부친은 김현경에게 “이혼을 하고 새로 결혼하게 김수영의 도장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그 등쌀에 밀린 김현경은 서울을 찾는다. 종로 보신각 옆에 있던 주간잡지 ‘태평양’ 건물. 2층에 올라가자 김수영이 보였다. “1년 만의 재회였는데 제 얼굴을 보고 좋아하더군요. ‘저기 뒤에 조그만 여관이 있는데 거기 가서 좀 있으라’고 하데요. 말이 떨어지지 않아 ‘저기…도장…’이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알아채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군요.” 김현경은 김수영의 도장을 받아왔다. 하지만 차마 이종구의 부친에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종구 집을 나와 서울 성북동에 방을 하나 얻었지요.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서 밤낮으로 문학을 했지요. 몇 달 뒤 제 결심을 알리고 싶어 김수영에게 엽서를 보내 성북동 다방에서 보자고 했어요.” 자신을 버렸던 여자의 느닷없는 엽서. 김현경은 김수영이 안 나올 줄 알았단다. 약속한 오후 5시를 일부러 넘겨 30분 늦게 찾아간 다방. 김수영은 출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말쑥한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1954년 둘이 헤어진 지 2년여 만의 해우였다. “차를 시키고, 둘이 말 한마디 없었죠. 한참 있다가 ‘나가자’ 하더군요. 대뜸 ‘약수동(당시 김수영의 집) 가자’ 하더군요.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은 용기가 안 나서 ‘내가 성북동에 방 한 칸 얻어놨어요’라고 말했죠. 그 길로 성북동으로 들어가 다시 부부가 됐고, 15년을 함께 살았죠. 다시 만난 날 밤 ‘나 평화신문 가서 취직하고 올게’라고 말하더군요. ‘아이 러브 유’라는 말보다 더 좋았죠. 돈 벌어온다는 얘기였으니까요. 이튿날 정말 취직해서 오더군요.” 이후 김수영은 번역일도 많이 하고, 서울대와 연세대 강단에도 섰다. “그 사람이 집에서 글 쓰고 내가 바느질할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가 집에 있어도 그리웠지요. 가만히 서재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그는 이런 말을 했어요. ‘야, 너 말야. 어젯밤에 내가 해줬는데 뭐가 더 궁금해서 왔냐.’ 뭐 이랬죠. 사실은 전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놀렸죠.” 김수영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40년 넘게 그는 문단을 멀리 했다. 이번 책을 낸 것은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같이 산 20여 년의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세월이 두 배가 넘지만 아내는 남편을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아내는 책 말미에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라는 편지글을 붙였다. ‘1940년대에 처음 당신을 아저씨로, 그저 꿈 많던 한 문학소녀의 선생님으로 맺은 첫 인연이 부부의 연으로 이어져 이렇게 질길 줄이야…. 당신보다 반세기를 더 살고 있는 내 인생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모든 시가 나의 버팀목이 되었고…. 당신, 수영. 꿈에서라도 나타나주기라도 하면, 이 책과 함께 당신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용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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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영민의 그때 그곳] 10주기 맞은 이문구의 보령 생가터-집필실

    《 ‘관촌수필’의 작가인 이문구(1941∼2003)가 글쓰기를 위해 기거했던 오두막은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10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이 집은 그대로 비어 있다. 이제는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다. 나는 동향의 문단 후배가 되어 몇 차례 이곳에서 이문구와 만났었다. 집필실이라는 말에 그는 크게 웃었다. 이 조그만 오두막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 진당산 아래 골짜기는 조선 후기 유학자 토정 이지함을 배향하던 화암서원(花巖書院)이 가깝다. 나지막한 산자락 끝으로는 청천저수지가 널따랗게 펼쳐있다. 이문구는 1989년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온몸으로 가담했던 민주화운동 대신에 온몸으로 글다운 글을 쓰겠노라고 했다. 방 한 칸에 마루 하나 그리고 작은 부엌을 갖춘 이 집에서 그는 십년이 넘게 글을 썼다. 》 이문구는 충남 대천 갈머리(관촌마을)에서 1941년 토정과 같은 한산 이씨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이 열 살이 되던 해 6·25전쟁이 터지자 남로당 간부였던 아버지는 예비검속에 걸려 처형당했고, 끌려간 형들마저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조부도 세상을 떠났고, 화병을 앓던 모친도 잃었다. 중학을 겨우 나온 이문구는 결국 고향을 등진 채 서울로 올라갔다. 그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전쟁을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지워버리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큰 상처로 덧났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는 글쓰기에 매달렸다. 힘든 고학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1966년 ‘현대문학’에 단편 ‘백결’로 등단했다. 작가가 된 후 그는 1970년대의 살벌했던 시대상황에 맞서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한 맺힌 고향 이야기를 마치 아름다운 화폭을 펼치듯 써내려갔다. 그것이 그의 대표작 ‘관촌수필’(1977년)로 완성되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워나갔던 고향 갈머리를 서사의 공간으로 살려내고는, 그 속에 온전하지는 않지만 빼앗긴 아버지와 형의 존재를 기억의 끝자락에 매달았다. 그는 1974년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이사, 부이사장, 이사장을 차례로 맡았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투쟁에도 적극 가담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살아남기 위해 힘썼다. 그의 작품 ‘관촌수필’을 통해 갈머리가 문학적 명소(名所)로 살아났다고 하자, 생전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아호인 명천(鳴川)을 한자로 내게 써보였다. 나는 ‘울음내’라는 대천 인근의 옛 지명을 댔다. 그러자 그는 “알고 있네” 하면서 반겼다. 관촌수필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아예 울음내를 아호로 쓰기로 했다는 거였다. 이제는 좀더 깊이가 있고 듬직하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서울을 떠났다고 그는 말했다. 단단히 결심을 하고 귀향한 그는 소설 ‘매월당 김시습’(1992년)을 썼다. 상당한 부수가 팔렸다. 자신의 뜻을 독자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고 그는 말했다. ‘장곡리 고욤나무’(1995년) ‘만고강산’(1998년) 등 후기 작품도 잇달아 나왔다. 문학적 성과들은 나왔지만 그는 “글쓰기가 자꾸 더 힘들어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매월당 김시습’을 쓰면서 몇 번이나 충남 부여군의 무량사(無量寺)라는 옛 절간을 찾아갔었다고 했다. 현실 정치를 뒤로 하고 김시습이 숨어 지냈던 무량사는 대천에서 성주산을 넘으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 그 절간을 가보면 그래도 옛날 모습이 남아 있어. 매월당이 어떻게 그 구석까지 숨어들어 왔었는지….” 상념에 젖은 이문구는 이야기 끝에 “한잔 할까? 그래도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야지” 하면서 나를 이끌곤 했다. 지난해 말 보령에 내려가 이문구의 생가 터와 집필실을 둘러봤지만 뒤늦게 글을 쓴다. 25일 이문구의 10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다. 그가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갈머리 생가 터는 휑하고, 집필실은 찾는 이 없이 쓸쓸히 서 있었다. 흐릿한 날씨 때문인지 더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간 고인을 기리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문구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삶과 그 문학을 기리기 위한 이런저런 모임들이 생겼다. 그리고 ‘이문구 문학관’을 만들자는 계획도 세워졌다. 보령에서도 뜻있는 이들이 상당히 적극성을 보였다. 그런데 갈머리 생가 터에 문학관을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보령시의 계획이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두막 집필실에 남겨져 있던 유품의 보관에 대해서도 유족들과 갈등이 생겼다. 갈머리 생가 터에 문학관을 짓고 오두막 집필실을 기념관으로 보존하고, 보령시의 축제와 연계해 이문구 문학제를 개최하자고 했던 계획이 모두 중단되었다. 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니 부끄럽다. 이문구는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위암으로 투병 중일 때에도 글 쓰는 일만을 생각했다. “좁은 땅덩어리에 내 봉분까지 만들 필요가 없다. 내가 태어난 고향 뒷산에 재 한 줌을 뿌리면 되지”라던 그의 말은 그대로 유언이 되었다.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 갈머리의 솔밭 길 사이에 뿌려졌다. 허망한 이름자를 새기는 비석도 필요 없다고 했다. 문학관을 세우고 문학제를 열고 하는 일들도 이문구가 살아있다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라고 나무랐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의 고향 갈머리의 뒷동산 솔밭 길이 너무도 허전하다. 그나마 그가 남긴 소설들은 스물여섯 권의 전집으로 묶였지만, 그의 체취가 남아있는 마지막 집필실이 이렇게 날로 퇴락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 아프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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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탕! 30년 만에 다시 왔소

    추리소설 패턴에 익숙한 독자라면 적잖이 황당할 수 있다. 범인을 쫓아가는 팽팽하고 압축된 패턴보다는 형사들의 자잘한 일상이 상세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당히 수다스럽다. 읽다가 어지러울 정도다. 이를테면 작품의 주무대가 되는 ‘87분서’라는 경찰서 풍경은 어떤가. 형사가 임신한 매춘부에게 성매매 여부를 조사하는 사이, 유치장에 들어간 술주정뱅이들은 고래고래 소리친다. 이 와중에 2인조 복면강도가 잡혀 들어오고, 매춘부는 급기야 경찰서에서 출산을 해 형사들을 패닉 상태에 몰아넣는다. 더군다나 이때 살인사건 신고가 들어온다. 작품은 이렇게 작은 에피소드들을 겹치고, 연결시켜 무엇보다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마치 미드(미국드라마) 수사물을 보듯 통통 튀는 대사가 눈길을 끌고, 간간이 익살스러운 장면도 등장한다. 소설이 영상처럼 읽히는 까닭은 저자의 다른 경력으로 설명될 것 같다. 저자 에드 맥베인(1926∼2005)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 드라마 ‘형사 콜롬보 시리즈’ ‘87분서 시리즈’에서 각본을 맡았다. 소설은 한 정의 총기에 대한 의문점으로 시작한다. 대박 난 뮤지컬 공연의 백인 무용수인 샐리는 어느 날 밤 집 앞에서 총기 살인을 당한다. 앞서 다른 곳에서는 하부 마약 공급책인 히스패닉계 파코가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된다. 피해자들의 연관성은 없는 상황. 다만 살인에 쓰인 총기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소설의 대부’로 불리는 작가답게 작품은 형사의 눈을 따라가며 점차 사건의 실체에 체계적으로 접근한다. 흡사 수사 매뉴얼을 읽는 듯하다. 최초 신고자, 최초 출동한 경찰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해 피해자의 가족, 친구, 동료들로 범위를 넓히는 과정이 매우 꼼꼼하다. 이 까닭에 보통 추리소설이 두세 명의 형사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것에 비해 20명 가까운 경찰이 등장한다. 경찰들의 정보교류, 상호협력의 과정도 흥미롭다. 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경찰들에게 친절히 이름까지 달았고, 이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통에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87분서 시리즈’는 1956년 시작돼 50편 넘게 책으로 나왔는데, 이 책은 1983년 발표된 중기 대표작이다. 30년 전 작품이지만 예스러운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다. 살인과 살인이 꼬리를 물고, 이 가운데 범인에 대한 힌트들도 적절히 흘려주며 요즘 추리소설 못지않은 긴장감도 유지한다. 하지만 자신 있게 강력 추천하기는 힘들 것 같다.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후반 강력한 반전이 없을뿐더러 사건이 풍선의 바람 빠지듯 비실비실 해결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범인의 동기가 석연치 않으며, 그 범인의 최후도 생뚱맞게 느껴진다. 제목인 ‘아이스’의 실체가 드러날 때는 허무함마저 밀려왔다. 논리적이고 치밀한 머리싸움보다는 가볍고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적합할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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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M1 개런드… Kar98k… 한 시대 풍미한 총기 53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력은 막강했다. 핵무기나 B-29 폭격기의 엄청난 화력은 미국 승전의 계기 중 하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전쟁을 끝내는 것은 육군의 몫이다. 월간 ‘육군’ ‘국방과 기술’을 비롯한 군사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 저자는 권총, 소총, 기관단총, 자동소총, 기관총으로 나누어 한 시대를 풍미한 53개 총의 역사를 조명한다. 특히 미 육군의 주력 개인 소총이었던 M1 개런드는 연속적으로 발사되는 능력에서 독일의 Kar98k를 압도했다. 강수지 인턴기자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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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말랑말랑한 고전

    고전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자가 많을 뿐 아니라 어투도 낯설기 때문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지난해부터 아동·청소년을 위한 고전 도서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이 책이 첫 번째 성과물이다.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의 의산문답’도 함께 나왔다. 번역원이 만들었다고 해서 딱딱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번역원이 기획·감수, 기존 동화작가와 화가가 글과 그림 작업을 맡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윤색은 했지만 바탕이 되는 역사적 사실들은 번역원이 검증한 것이기에 믿음이 간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중국 황제에게 바칠 생일 선물을 전하러 떠난 축하 사행단에 참여했다. 책은 중국에서 신문물을 접하는 연암과 그를 보필하는 하인 장복이, 창대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옛 단어를 그대로 실었으나 친절히 해설을 달았다. 뒷부분에 원작인 열하일기에 대한 설명과 당시 시대적 배경을 전한다. 사행단의 경로를 표시한 지도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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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자로 보는 어린이 책]비밀의 강 外

    ○비밀의 강(마저리 키넌 롤링스 글·레도 딜런 외 그림·사계절)=지난해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에서 명예상을 받은 책.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여자 아이 칼포니아는 어느 날부터 마을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자 ‘비밀의 강’을 찾아 나서는데. 1만6800원      ○마고할미 세상을 발칵 뒤집은 날(양혜원 글·이지숙 그림·학고재)=‘마고할미’가 기지개를 켜니 하늘이 쩍 갈라지고, ‘장길손’이 참다못해 싼 똥이 태백산맥을 이루고….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거인들의 얘기를 다룬 동화책. 9800원      ○블랙 독(레비 핀폴드 글·그림·북스토리아이)=아빠도, 엄마도 깜짝 놀라게 만든 무서운 검둥개. 가족들이 무서워할수록 개는 점점 커지고, 막내 ‘꼬맹이’가 당당히 검둥개에 맞선다. 두려움과 용기에 관한 책. 1만2000원       ○안돼, 내 사과야!(그웬돌린 레송 글·일하임 압델 젤릴 그림·두레아이들)=꼬마 지렁이 ‘꼬물이’ 위로 떨어진 사과. 친구가 나눠 먹자고 하자 고민하다 결국 사과를 나눈다. 사과 씨를 심으니 더 많은 사과가 열리고, 더 많은 친구들이 몰려드는데. 1만 원}

    • 201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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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당선생의 90세 동생, 27년만에 두번째 시집

    아흔 살 노(老) 시인이 아흔 편의 시를 묶어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생애 두 번째 시집인데 첫 시집 이후 무려 27년 만의 출간이다. ‘왜 이리 뜸했냐’고 물었더니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가 항상 쓰이는 게 아니거든. 또 나도 놀러 다니고 사람도 만나고 술도 먹고 해야지. 허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여덟 살 아래 동생인 우하 서정태 시인이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시와)를 펴냈다. 1946년 민주일보로 시작해 전북일보에서만 30년을 일한 기자 출신인 그는 1986년 첫 시집 ‘천치의 노래’(동아출판사)를 펴내며 형을 따라 시인이 됐다. “젊었을 때는 말이야, 친구가 많았어. 조병화니 구상이니 다 친구였지. 그런데 말이야, 그 친구들이 누구한테 나를 소개할라치면 꼭 ‘미당 아우 서정태’라고 말하더라고. 나도 독립된 사람인데 젊었을 적에는 그렇게 불리는 것에 불만도 많았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미당 서정주. 평생을 따라다닌 형의 그늘은 짙고 넓었지만 이제 동생은 크게 괘념치 않는다고 했다. “읽는 사람이 미당 시도 읽고, 내 시도 읽는 거지. 나는 유명하지 않지만 일부라도 내 시를 읽고 좋아하면 나도 좋은 거고.”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미당의 생가(우하의 생가도 이곳이다) 맞은편에 초가집을 짓고 살고 있는 시인은 “문만 열면 전부 산이고 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시집에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이 눈에 띈다. ‘나비야/꽃향기에 머물지 말고/그 향에 취하여 바람 나부끼듯/훨훨 날아 먼 길 가자//개울물 소리 넘어/솔바람보다 앞서가는/봄빛 헤치며 가자//나비야/머문 흔적 없으면 어떻다냐/그냥 가자 산 넘어/훨훨 날아 먼 길 가자’(‘먼 길’ 전문) 발표된 시는 이미 내 것이 아니며 자신을 떠났다고 말하는 시인. 그래도 오랜만의 시집인데 좋은 평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시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데, 내 것이 감동을 주는지 어떤지 난 몰라. 몇 사람이 써둔 거 보고 좋다고 말은 하더구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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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억 들고 사러간 ‘사슴’ 초판본, 10억 부르길래 포기” 배우식 시인

    빛바랜 책장을 넘기자 윤동주의 ‘서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시어가 희미하게 보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가 1945년 2월 일본에서 옥사한 후 1948년 1월 유족들에 의해 발간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정음사)이었다. 박물관 유리 너머로나 볼 수 있을 법한 귀한 물건을 손으로 만지니 묘한 흥분이 느껴졌다. 책 주인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 책이 얼마 전 (경매에서) 거래됐는데 아마 3000만 원이었지요.” 시집을 쥔 손이 살짝 떨렸다. 설 연휴 직전 찾아간 경기 용인시 죽전동 배우식 시인(61)의 집은 문학관 같았다. 아니, 웬만한 문학관보다 희귀 시집들이 많았다. 책들은 방 2개의 사면을 가득 채우고, 거실 책장과 베란다에도 넘쳐 나와 가지런히 책장에 꽂혀 있었다. 시집만 줄잡아 1000여 권. 대부분 초판본이다. 그의 소장 희귀본이 언론에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시인은 1999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2005년 시집 ‘그의 몸에 환한 불을 켜고 싶다’(고요아침)를 냈다. 그가 시집을 여러 권 꺼내왔다. ‘정지용 시집’ 초판본(1935년 10월 27일 발행·시문학사), 이육사의 ‘육사시집’ 초판본(1946년 10월 20일·서울출판사),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이 함께 펴낸 ‘청록집’ 초판본(1946년 6월 6일·을유문화사)이 줄줄이 나왔다. 이병기 선생의 ‘가람시조집’ 초판본(1939년 8월 15일·문장사)을 비롯한 귀한 시조집도 다수 보였다. 광복 후 첫 시집으로 평가받는 이태환의 ‘조선미’(1945년 9월), 김경탁의 ‘얼’(1946년 10월 1일·취영암)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개인이 이런 희귀본을 모을 생각을 했을까. “소장가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다”는 시인은 30여 년 전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문청(文靑)이었지만 생업을 위해 대그룹 건설회사에 다녔다. 유럽, 아프리카 현장에서 일한 그는 현지 감독관에게 선물할 예술품을 구하기 위해 귀국하면 골동품 가게를 찾았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청계천 가게에서 ‘정지용 시집’ 초판본을 발견했다. 당시 회사원 월급의 서너 배, 현재로 치면 약 1000만 원 돈이었지만 잊었던 ‘시에 대한 열망’이 떠올라 과감히 질렀다. 시간이 흘러 1994년. 그는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더니 급기야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원인을 찾지 못해 병원을 다니길 몇 년. 절망 속에서 시를 되찾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때 ‘정지용 시집’이 생각났다.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란 구절(시 ‘유리창 1’)을 읽고 또 읽었어요. 눈앞이 캄캄했는데 시를 읽으면 뭔가 환해지는 듯했죠. 시집이 제게는 별 같은 존재였습니다.” 뒤늦게 뇌종양 판정을 받은 그는 2001년 수술을 통해 건강을 찾았다. 이후 초판본을 구하려고 전국의 고서 경매장과 고서점을 돌았다. 1년에 1억 원 넘게 쓴 적도 있다. 다행히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낡은 책을 사들이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돈도 있는데 왜 헌책을 사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한번은 백석의 ‘사슴’ 초판본(1936년 1월 20일·자가출판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1억 원을 들고 소유자를 찾아갔지만 “10억 원”으로 높여 부르는 바람에 접었다. 몇 년 전 일이다. 그는 “돈 얘기는 더 하지 말자”며 이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저는 수집가, 장서가가 아닙니다. 시 공부를 위해 시집을 구했을 뿐이죠. 지금도 정지용의 별이 제 가슴에 들어와 빛을 내는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제 책들이 일반에 공개돼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별이 빛났으면 합니다.”용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희귀본 거래 대부분 인터넷 경매… 문학관이 ‘큰손’ ▼고서점과 수집가들 사이의 희귀 시집 거래는 1970∼90년대 호황을 이뤘다. 2000년대 들어 귀한 시집 구하기는 쉽지 않아졌다. 문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전국 각지에 들어서고 거래의 관문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온라인 경매로 이동하면서 눈에 보이는 거래가 크게 줄었다.여전히 거래가 이뤄지는 곳은 있다. 인터넷 경매나 전문 경매사를 통하면 된다. 코베이나 한옥션 같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종종 시집이 올라온다. 서울 인사동 화봉문고의 여승구 대표는 “박물관, 기념관 같은 국공립 기관이 시장에 대거 뛰어든 데다 소중한 자료는 개인수집가가 잘 내놓지 않아 거래가 많지 않다”고 했다.품귀 현상으로 값도 올라갔다. 여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1920년대 시집의 경우 초판본 자체가 남아있는 게 몇 권 안 되는 것으로 안다. 최근 큰 박물관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을 수배했다. 한 수집가가 억대의 가격을 불렀지만 500만 원 정도에 감정 평가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수집가들 사이의 거래가는 상상을 초월한다.”내용이 같으면 표지가 멀쩡한 것이 몇십 배 비싸다. 장서는 한정돼 있는데 좋은 물건이 나오는 경우는 적어 최근 발을 들인 수집가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다. 수집가들의 친목 모임에서 경매 정보가 공유되고 일대일 직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201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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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전쟁의 광풍에 희생된 상처받은 영혼의 울림

    노벨문학상 심사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 후보 추천권이 있다’ ‘매년 초 각국에서 후보자를 추천받아 5인으로 압축한 뒤 6개월 동안 집중 심사한다’는 얘기들도 들리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이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이 다가오면 각국 도박사이트들이 점친 수상 후보자군에 관심이 쏠린다. 2011년에는 눈길을 끄는 예측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인 재미 작가 이창래가 베팅사이트 나이스로즈에서 수상 가능성 3위(배당률 8 대 1)에 오른 것. 그해 다른 베팅사이트인 래드브록스가 고은 시인을 6위(배당률 14 대 1)에 올려놓은 것보다 높았다. 미국에 살며 영어 소설을 쓰는 이창래는 국내에서는 낯선 작가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미국으로 이민했으며, 예일대와 오리건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가의 주식분석가로도 일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95년 첫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로 헤밍웨이재단상, 펜문학상을 받았다. 1999년 두 번째 소설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로 아니스필드-볼프 도서상, 아시아계 미국인상을 받았고, 2004년 펴낸 ‘얼로프트(Aloft)’도 호평을 받았다. 2000년에는 뉴욕타임스가 ‘미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선정하며 문학계의 메이저리그인 미국 시장에서 주목받는 한인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무엇이 이창래에 주목하게 만드는가. 2010년 미국에서 발표된 이 작품을 읽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6·25전쟁의 고통을 이렇게 사실적이면서도 깊고 울림 있게 전한 소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은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흐른다. 전쟁고아인 ‘준’과 참전 미군병사인 ‘헥터’, 선교사의 아내인 ‘실비’. 이들은 6·25전쟁에서 지옥의 끝을 본다. 준은 아버지가 간첩 혐의로 사형됐고, 오빠는 전선에 끌려갔다. 피란길에 어머니와 동생들마저 잃은 준은 헥터를 만나 고아원으로 들어간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헥터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생과 사의 전장에서 그는 짐승처럼 변해가는 동료와 자신을 보고 폭력사건에 휘말려 불명예 제대한 뒤 고아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 만주사변의 혼란 속에서 성폭행을 당한 실비는 선교사의 아내가 돼 고아원에서 일하지만 과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약에 빠진다. 소설은 거대한 전쟁의 광풍 속에서 고통 받는 개인의 삶을 조명한다. 게다가 이들의 아픔은 휴전 이후에도 이어진다. 1980년대로 시점을 옮긴 작품은 살아남은 준과 헥터의 재회를 통해, 그들의 아들 니콜라스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통해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모습을 잔잔히 짚어낸다. 6·25전쟁을 다룬 소설이 많지만 국내 작가의 경우 한국인의 아픔에 주목한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전쟁고아, 미군병사, 선교사 아내의 시선을 통해 6·25전쟁을 좀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동시대 인류의 아픔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지옥과도 같은 전쟁 속에 짓밟히는 인간성, 양심, 윤리들도 낱낱이 까발린다. 국가에는 전쟁의 승패가 존재하지만 한 개인에게 전쟁은 고통과 상처뿐이라는 문제의식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책을 읽다보면 매우 사실적인 묘사에 놀라게 된다. 피란민들이 한 줌의 옥수수 가루를 두고 서로 죽이려는 장면이나 군인들이 피란민들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일삼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전후 세대이자 미국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작가가 어떻게 이런 사실적인 전쟁 작품을 썼을까 싶을 정도다. 피란열차의 지붕 위에서 떨고 있는 소녀 준의 이야기로 시작한 작품은 그가 중년 여성이 돼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한 여성의 기구한 삶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고, 코끝이 찡해지는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미 인상적인 작품을 발표한 그의 작품 가운데 단연코 가장 야심 차고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를 비롯해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2011년 테이턴 문예평화상을 받았고, 그해 퓰리처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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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시인 이상화 미발굴 시-수필 공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저항시인 이상화(1901∼1943·사진)의 시와 수필이 새롭게 발견됐다. 근대서지학회는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 최신호(6호)를 통해 이상화의 미발굴 시 두 편과 수필 한 편을 공개했다. 1926년 5월 잡지 ‘문예운동’ 2호에 발표한 ‘설어운 調和(서러운 조화)’와 ‘머-ㄴ 企待(먼 기대)’란 제목의 시 두 편과 수필 ‘心境一枚(심경일매)’다. 문예운동은 1926년 1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통권 3호가 발간된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준기관지다. 이 작품들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인의 울분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은봄 말업는 한울은(이른 봄 말없는 하늘은)/한숨을 지여보아도 나즌텬정과가티 가위만눌린다(한숨을 지어보아도 낮은 천장과 같이 가위만 눌린다). (…) 일은봄 힘업는 이땅은(이른 봄 힘없는 이 땅은)/발버둥을 쳐보아도 죽은무덤과가티 가위만눌린다(발버둥을 쳐보아도 죽은 무덤과 같이 가위만 눌린다).’(시 ‘설어운 調和’에서) 시를 발굴한 염철 경북대 교수는 “말업는 한울, 즉 ‘하늘의 침묵’은 한용운 시 ‘님의 침묵’ 속의 ‘님의 부재’와 같이 절망적 상황 혹은 전망의 부재를 상징한다”며 “일제강점기 어떠한 역사적 전망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를 마주한 이상화의 답답한 내면이 형성화된 시”라고 평했다. 춘원 이광수(1892∼1950)가 1941년 1월 일본 잡지 ‘방송지우’에 발표했던 단편 ‘면화’와 1944년 7월 일본 잡지의 조선판인 ‘일본부인’에 발표했던 단편 ‘반전’도 이번에 함께 발굴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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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에 만나는 詩]사진… 지금은 멀리 떠난 아버지를 만난다

    허름한 양복바지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은 아버지의 오래된 지갑. 그 속에는 고이 ‘모셔둔’ 자식들 사진이 있다. 거나하게 취해 불콰해진 얼굴의 아버지는 허름한 선술집 한편에서 사진을 꺼내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을 터. 이제 내가 아이들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이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내 아버지의 미소를 읽는다.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이달에 만나는 시’ 2월 추천작으로 이성복 시인(61·사진)의 ‘사진’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이성복 시인의 아버지는 2005년 세상을 떴다. 이 시를 쓴 것은 그 후로 3, 4년 뒤. 아들들의 사진 속에서 나를 보고, 그런 나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는 윤회 같은 혈연. “아버지는 아주 내성적인 분이셨어요. 3대 독자셨고, 자기 취미생활이나 이런 것도 없었고, 당신을 위해서는 돈을 쓴 적이 없었어요. 아니 그 시대 부모들이 다들 그러셨죠.” 10년 만에 시집을 낸 시인은 지난해 계명대에서 정년퇴임했다. “사회생활에서도 명예퇴직했으니 제 시 작업도 한번 정리하고 싶었죠. 제게는 어떤 분기점 같은 시집입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에 들어섰구나, 하는 느낌이다. 사물의 구체성은 명징하고, 묽은 슬픔과 괴로움은 갑자기 까칠해지고 날카로워진다. 그 명징과 묽음이 만나 아득한 생의 풍경을 이룬다.” 김요일 시인은 “손을 쓸 수도 없는 생이라는 비극을, 그 슬픈 장르를 이성복은 소멸의 사유로 담아낸다. 그는 시를 넘어섰다”며 추천했다. “시집을 읽고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뒹구는 돌이 되어 찾아가던 남해 금산과 그 여름의 끝에 있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먼 여행에서 돌아온 선생의 시를 읽고 나는 문득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욱신거리는 생과의 지독한 사랑!”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원 시인은 “이성복의 시가 아니라 이성복의 ‘정신’이라고 해야 맞다. 가장 뜨거운 ‘최소’에 집어넣은 맨손을 거두어들이는 법이 없는 ‘불가능한 사랑’, 이것이 ‘빛’이다!”며 추천했다. 이건청 시인은 박희진 시인의 시집 ‘4행시 17자시’(서정시학)를 추천하며 “17글자로 한 편의 시를 이룬 ‘17자시’ 시편들은 형형한 정신을 담은 말의 극한을 추구해 보여준다. 지루한 서술이 판치는 요즘 한국시가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을 것”이라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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