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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정장 차림의 해리 해리스 신임 주한 미국대사(사진)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나타났다. 신임장 사본을 외교부 의전장에게 제출하는 ‘신고식’을 치러야 대사로서 공식적인 외교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전까지 주한미군을 통할하는 인도-태평양사령관을 지낼 때와는 달리 제복 대신 양복을 입고, 까만 콧수염을 기른 그는 이날부터 외교관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7일 부임한 해리스 대사는 18개월간 공석이었던 주한 미국대사의 존재감을 메우려는 듯 부임 전부터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군인에서 외교관이 되면서 콧수염을 기르는 게 신선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특유의 콧수염을 자랑한 그는 9일부터 본격적인 외교 업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에 동행했던 북핵 실무 총책인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을 만나 협상 내용을 브리핑 받았다. 신임장 사본 제출 뒤에는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만나 환담을 겸해 북핵 관련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면담에서 해리스 대사는 “평소 취미로 수집해온 탈을 한국에도 가져왔다. 관저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선 해리스 대사가 주한 미국대사로는 최중량급 인사인 데다 미국이 한국 못지않게 중시하는 호주 대사로 지명됐다가 한국으로 되돌아온 점을 들어 그가 ‘역대급’ 행보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해리스 대사가 태평양사령관 시절 수시로 워싱턴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도 여야 의원들에게 거의 꼬투리를 잡힌 적이 없을 정도로 정무적 감각이 탁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한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그는 해군이었던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경남 창원시 진해에서 한국 해군과 함께 근무했던 경험담을 듣고 자랐다. 부임한 뒤 그를 지켜본 복수의 관계자들도 “푸근하고 정겨운 모습을 강조하며 군인에서 외교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한국을 알고 싶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 시작은 그 흔한 케이팝도 드라마도 아니었다. 헝가리 청년 가보 세보 씨(36·사진)를 부다페스트에서 움직인 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김기덕 감독의 장르영화들이었다. 한국 영화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2015년 9월 고려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1년, 가보 씨는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았다. 고 신상옥 감독(1926∼2006)과 영화배우 최은희(1926∼2018) 부부의 납북과 탈북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를 관람한 뒤 북한 영화로 고개를 돌린 것. 논문 ‘신상옥 감독이 북한 영화에 미친 영향’으로 이달 초 박사 학위를 받은 가보 씨를 10일 고려대에서 만났다. “신 감독이 가져온 변화요? 사회 문제에 천착하던 북한 영화를 사랑과 같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감정을 조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실제로 가보 씨는 신 감독이 납북된 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직접 연출한 영화 7편을 모두 섭렵해 분석했다. 북한 영화 최초로 키스신과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내용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역설적으로 김정일은 이런 영화를 해외 시장에 내보내 “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선전 도구로 쓰기도 했다. 실제로 최은희 씨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전 영화들의 장면들을 비교하며 “남녀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나 동지적 감정으로 손을 잡는 게 전부였던 북한 영화가 확 달라졌다. 연애 감정을 살리거나 피가 낭자한 자극적인 장면들이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 납북 전 옛날 북한 영화 ‘춘향전’ 속 성춘향과 이몽룡의 첫날밤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었다”고도 귀띔했다. 가보 씨가 북한 영화에 애착을 가진 데는 소련 아래서 공산주의를 겪은 고국 헝가리와의 유사점도 배경이 됐다. 그는 공산주의 시절인 1950년대 헝가리 영화와 북한의 1980년대 영화를 비교하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몸을 쓰는 노동자로서 땀 흘려 일해 공화국에 기여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면, 차이점은 헝가리 영화가 내부 반동 인물을 교화해 올바른 체제 인사로 교화시켜 나가는 데 비해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 등 외부의 적을 만들어 물리치고 민족주의를 고취시켜 나간다는 것이다”라고 짚었다. 박사과정을 마친 뒤 헝가리로 돌아가는 가보 씨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북한에 대한 영화를 꼭 만들고 싶다. 유럽에선 아직 베일에 가려진 북한을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한국을 알고 싶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 시작은 그 흔한 K-Pop도 드라마도 아니었다. 헝가리 청년 가보 세보 씨(36)를 부다페스트에서 움직인 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김기덕 감독의 장르영화들이었다. 한국영화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2015년 9월 고려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1년, 가보 씨는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았다. 고 신상옥 감독(1926~2006)과 영화배우 최은희(1926~2018) 부부의 납북과 탈북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를 관람한 뒤 북한 영화로 고개를 돌린 것. 논문 ‘신상옥 감독이 북한 영화에 미친 영향’으로 이달 초 박사학위를 받은 가보 씨를 10일 고려대에서 만났다. “신 감독이 가져온 변화요? 사회 문제에 천착하던 북한 영화를 사랑과 같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감정을 조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실제로 가보 씨는 신 감독이 납북된 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직접 연출한 영화 7편을 모두 섭렵해 분석했다. 북한영화 최초로 키스신과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내용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역설적으로 김정일은 이런 영화를 해외시장에 내보내 “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선전 도구로 쓰기도 했다. 실제로 최은희 씨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전 영화들의 장면들을 비교하며 “남녀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나 동지적 감정으로 손을 잡는 게 전부였던 북한 영화가 확 달라졌다. 연애감정을 살리거나 피가 낭자한 자극적인 장면들이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 납북 전 옛날 북한영화 ‘춘향전’ 속 성춘향과 이몽룡의 첫날밤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었다”고도 귀띔했다. 괴물이 나오는 판타지 SF영화 ‘불가사리’가 가져온 음향효과 등 기술 변화도 상당했다. ‘연인과 독재자’ 시사회에서 우연히 만난 신 감독 아들 신정균 감독과의 심층 인터뷰는 천군만마였다. 신 감독 부부가 한국으로 귀국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해빙 무드를 타고 불가사리가 한국에서 재개봉 됐을 때 “아버지(신상옥 감독)가 불같이 화를 내셨다. 북한에서 만든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흥미로운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가보 씨가 북한 영화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소련 아래서 공산주의를 겪은 고국 헝가리와의 유사점도 배경이 됐다. 그는 공산주의 시절인 1950년대 헝가리 영화와 북한의 1980년대 영화를 비교하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몸을 쓰는 노동자로서 땀 흘려 일해 공화국에 기여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면 헝가리 영화는 내부반동 인물을 교화해 올바른 체제인사로 교화시켜나가는 것이 다르다. 이에 비해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 등 외부의 적을 만들어 물리치고 민족주의를 고취시켜 나간다”고 짚었다. 박사과정을 마친 뒤 헝가리로 돌아가는 가보 씨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북한에 대한 영화를 꼭 만들고 싶다. 유럽에서는 아직 베일에 가려진 북한을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으로 달려갔지만 기대했던 비핵화 시간표나 검증 대상은 들고 돌아오지 못했다. ‘(협상)판을 깨지 않고 유지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마저 흘러나오는 가운데 꽉 막힌 비핵화 대화의 출구를 조속히 찾기 위한 ‘플랜 B’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부터 예견된 난관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떠나며 “진전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워싱턴 조야의 반응은 싸늘하다. 굳이 성과라면 앞서 정상 간 만남에서 ‘완전한 비핵화’라고 포장됐던 비핵화 견해차가 이번에 벗겨지며 첨예한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지경이다. 문제는 미국이 패를 많이 써버렸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를 연이어 결정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비핵화에 나서지 않으며 CVID를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비핵화 조건부 경제 지원 의사에 북한은 “북한의 미래는 미국이 결코 가져다주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공화국 보검’인 핵을 ‘푼돈’에 넘길 의사가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 것이다. 정상회담 후 약 한 달 만에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이 성과 없이 마무리되면서 자칫 어렵게 만든 대화 모멘텀이 급속히 냉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가장 핵심적인 북한의 핵 능력 신고 절차와 관련된 합의 시점이 빨리 이뤄져야 접점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앞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디테일에 대한 지침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교착 국면은 예고됐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 다시 주목받는 문 대통령의 운전석론 일단은 서신을 교환한 북-미 정상이 다시 ‘톱다운’ 방식으로 협상 모멘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6일 판문점에서 ‘깜짝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가 싱가포르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처럼 이번에도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정부는 이전보단 신중한 입장이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핵 회담이 단시일 내에 끝나는 쉬운 협상이 아니지 않나. 일단 긴 호흡으로 (북-미 간 협상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북-미가 12일 판문점에서 만나 미군 유해 송환 등을 논의하는 후속 회담을 열기로 한 만큼 일단 움직임을 더 지켜볼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미 간 이견의 골이 깊어지고 자칫 감정이나 자존심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정부가 다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결국 장기전이고 북-미 정상의 인내심 싸움에 들어간 측면도 있다. 다소 다혈질인 양측 정상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리 정부가 상황을 주시하고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중간한 중재자 역할보다는 한반도의 캐스팅보트를 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북-미 사이에서 중재나 조정자 역할을 버리고 오히려 미국에 힘을 실어줘 비핵화 단계 속도를 앞당겨야 한다”고 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기자}

“우리의 요구가 강도 같은 것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8일 북한이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 비핵화 요구만 들고 왔다”고 비난한 데 대해 이같이 맞받아쳤다. 1박 2일의 방북 기간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9분간의 발언 중 대북 제재를 12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제 더는 북한 핵 위협은 없다”고 장담한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반응이다.○ 김정은 못 만나고 강도로 몰린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하루 앞둔 5일(현지 시간) “이번 방북은 북-미 간 성과를 검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야에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성과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1박 2일간 9시간에 걸쳐 이뤄진 고위급 회담은 사실상 별다른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합의는 물론이고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내놨던 ‘선물’인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장 폐기에 대한 확실한 시기도 못 박지 못했다. 특히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7일 평양을 떠나며 “비핵화 시간표에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자마자 몇 시간 뒤 폼페이오를 ‘강도’라고 비난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방침을 밝히자 앞선 비난 성명에 대한 사실상의 사과 입장을 담은 ‘정중한’ 담화문을 발표했던 북한 외무성이 다시 태도를 바꿔 미국에 날을 세운 것. 북한은 외무성 담화문에서 북-미 고위급 회담의 의제로 △정전 65주년(7월 27일) 종전선언 발표 △ICBM 엔진 시험장 폐기 △미군 유해 발굴 실무협상 등을 제기했지만 미국은 비핵화 대상 핵시설의 신고와 검증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이 회담에서 끝까지 고집한 문제들은 이전 행정부들이 고집하다가 대화 과정을 다 말아먹고 불신과 전쟁 위험만을 증폭시킨 암적 존재”라고 했다. 특히 북한은 “합동군사연습을 한두 개 일시 취소한 것을 큰 양보처럼 광고했지만 극히 가역적인 조치로 우리가 취한 핵시험장의 불가역적인 폭파 폐기 조치에 비하면 대비조차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가 핵 실험장 폐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만큼 ICBM 엔진 시험장 폐기 등 추가 조치를 위해선 종전선언을 비롯한 가시적인 체제 보장 조치를 내놓으라는 얘기다.○ 대화 판은 깨지지 않은 만큼 협상은 이어질 듯 북한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완료 전 대북 제재 완화 불가 방침을 거듭 강조하며 압박에 나섰다. 폼페이오 장관은 8일 회견에서 북한이 CVID 요구를 ‘강도’에 빗댄 데 대해 “비핵화가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제재 이행이 계속될 것이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있겠지만 경제 제재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종전선언을 요구한 북한에 ‘비핵화가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앞으로 수일, 수주 안으로 미국이 지속적으로 제재 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보게 될 것”이라며 대북 제재와 관련해 추가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북-미 관계는 지난달 싱가포르 회담 전후로 절정에 달했던 해빙 무드와는 전혀 다른 냉기류를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내 여론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트럼프 행정부 내 ‘대화파’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수도 있다. 다만 북-미가 비핵화 신고, 검증 등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하며 대화의 판은 깨지 않은 만큼 비핵화 협상을 위한 실무접촉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킹그룹을 이끌 대표로는 ‘판문점 채널 구원투수’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등판’을 요청한 점도 주목을 끌고 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면담을 거절한 대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제안을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미 정상이 아직 성사되지 않은 핫라인 통화나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 기자}

“더 자주 오실수록 양측이 더 많은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6일 세 번째 평양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김영철의 미국행에 이어 둘의 공식적인 만남만 이번이 네 번째. 북핵 협상 선봉에 선 이들이 이젠 기자들에게 공개적인 친근감을 과시할 정도로 북-미 관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도 이번에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에 의견 접근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미 언론은 여전히 폼페이오가 평양에서 비핵화 로드맵 성과를 내는 것을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폼페이오 “北에 세금 내야겠다”며 농담 폼페이오와 김영철은 이날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2시간 45분간 회담했다. 폼페이오는 “이번이 세 번째(방문)”라며 “내가 한 번 더 오게 되면 (북한에 방문에 따른) 세금을 내야겠다고 농담했었다”고 했다. 이에 김영철은 “(평양이) 이제 익숙해지셨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김영철이 “오늘의 만남은 정말로 의미가 있는 만남이다”고 하자, 폼페이오는 “동의한다. 생산적인 만남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회담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폼페이오의 상대가 김영철에서 리용호 외무상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됐지만 여전히 상대는 김영철이었다. 다만 7일 리용호가 교체돼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리용호는 이날 공항 영접도 김영철과 함께 했다. 북한은 미국 대표단의 숙소로 ‘국빈용’인 백화원초대소를 내줬다. 1,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회담장과 숙소였으며,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도 머문 곳이다. 반미 선전공세를 사실상 멈춘 데 이어 국빈 숙소까지 내주며 미국에 강하게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셈이다. 북한 관리가 미국 기자에게 농담하는 이색적인 장면도 있었다. 폼페이오 장관을 수행 취재 중인 미 ABC방송 타라 팔메리 기자는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의 김광학 연구사에게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미국 대통령처럼 상황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혹 이 버스 안에 가짜 뉴스(fake news)는 없지요’라며 웃었다”고 했다. ○ 유해 송환 너머, 비핵화 이행 틀 만들까 앞서 신의주 시찰에 나섰다는 김정은이 폼페이오와 회동했다는 소식은 6일 오후 늦게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백악관이 사전에 김정은-폼페이오 회동을 공지한 만큼 7일엔 만남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6일 미 정보 당국자들을 인용해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방북에서 최소한 검증·확인할 수 있는 핵시설과 (핵물질) 목록에 대해 첫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이미 준비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려진 미군 유해 송환도 다시 진척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빼고 ‘완전한 비핵화’에 머물렀던 북핵 합의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합의하며 다시 탄력이 붙을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은 “비핵화 시간표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무한정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CNN은 “백악관과 국무부에는 8월 말까지 북한의 견고한 시간표나 세부계획이 나와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8월 예정됐다 유예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나 9월 유엔총회와 맞물려 추가적인 북핵 합의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워싱턴의 기류라는 것이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 기자}

감사원이 4일 이명박(MB) 정부를 겨냥한 4대강 사업의 추진 과정을 들여다본 감사결과를 1년 만에 발표했다. 4대강 사업 단일주제로만 감사원이 실시한 네 번째 감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내린 첫 감사 지시였던 만큼 기대감이 높았지만 관련자 수사 의뢰도 없고 대운하 사업 연관성, 수질오염 원인 등 핵심 논란들은 밝혀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감사원은 이날 491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기획재정부를 대상으로 4대강 사업이 결정된 과정과 추진 절차, 집행의 적정성을 짚고 연세대와 서울대 산학협력단, 대한환경공학회에 의뢰한 성과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무리한 사업 지시 및 추진이 빚은 ‘하자 많은 결정’이었다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이 전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 중단을 선언한 지 2개월 뒤인 2008년 8월부터 4대강 사업에 착수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 측근인 장석효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한반도대운하TF팀장의 용역자료를 마스터플랜에 반영하라고도 했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보 설치 △수심 5∼6m 굴착 △낙동강 물그릇(수자원 확보량) 8억 t 확보 등 이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타당성이나 기술 분석을 거치지 않고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최종 발표했다. MB의 ‘대운하 로망’은 감사결과 곳곳에 드러난다. 최소 수심을 2.5∼3m로 하면 홍수 예방과 물 부족 대처에 충분하다는 국토부 보고에도 수차례 지시로 결국 6m로 끌어올린 부분이 대표적이다. 배가 다니도록 최소 수심을 6m로 해야 한다는 대운하설계팀의 추진안을 따온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 환경부는 화학적 산소 요구량(COD)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수질개선 목표를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으로만 기준을 삼았고, 대통령실의 요청에 따라 조류 발생 등 수질오염이 우려된다는 표현을 각종 보고서에서 삭제시켜 공론화 과정도 막았다. 하지만 감사원은 이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직접 이 전 대통령의 조사 협조를 얻기 위해 구속 전 두 차례나 서울 대치동 사무실도 찾아갔지만 협조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외부 기관에 맡긴 성과 분석 결과도 미흡한 편이었다. 4대강 사업의 총비용은 31조여 원이지만 총편익이 6조6000억 원에 그친다는 경제성 분석 결과가 있지만 환경변화와 시설부족 등을 이유로 정확한 추정치가 아니라는 한계를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이번 감사는 시민단체 공익감사 청구 형식을 빌려 청와대 하명을 받은 ‘억지 춘향 감사’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 전 대통령 비서실은 이날 감사결과 발표 후 성명을 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따라 반복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치적 감사는 중지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6일 방북과 맞물려 미군 6·25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번엔 “송환비를 받지 않겠다”고 미측에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미군 유해 200여 구를 송환하는 협상을 벌이며 미 측에 별도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다. 미군 유해 발굴은 1990년에 시작돼 2007년까지 이어졌는데 지금까지 총 443구가 송환됐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통상 유해 1구당 약 5만 달러(약 5600만 원)를 북에 지급했다. 한 소식통은 “북한이 이번에 200여 구를 송환한다면 미국이 지불할 비용만 100억 원이 넘는다. 대량의 현금 유입을 금지한 유엔 대북 제재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이번엔 비용 지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북한은 향후 추가될 수 있는 유해 송환에 대해서는 ‘유료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북-중 접경지역 시찰에 나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고 칭찬한 공장에 선물을 보내며 경제발전 독려에 나섰다. 노동신문은 4일자 1면을 통해 김정은이 최근 시찰을 다녀온 신도군 주민에게는 버스를, 신의주 화장품공장에는 ‘문화 용품’을 보내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시찰에서 호되게 꾸짖은 신의주 방직공장과 화학섬유공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문제가 제기된 곳은 선물을 보내기는커녕 공장장을 비롯한 실무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사진)가 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관련해 “비핵화와 미군 유해 송환 등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특보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대담집 ‘평화의 규칙’ 출판 간담회에 공동저자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 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과 함께 참석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멀리서 온 폼페이오를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 국무부가 2일(현지 시간) 언급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개념에 대해 “‘최종(final)’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보다 더 강화된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미 언론매체들의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회의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추정이며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대북제재 해제 시점과 관련해선 “지금까지 보여준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 등으로는 제재 완화가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성실히 (핵 시설, 물질 등을) 신고하고, 사찰까지 허용하면 제재 완화가 가능할 듯하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에 대해선 “(중국은) 주한미군 성격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연계해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문제만 해결되면 중국이 주한미군을 반대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6일부터 이틀간 진행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세 번째 평양행은 시작부터 기존과 달랐다. ‘007작전’을 방불케 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백악관과 국무부가 먼저 밝혔다. 그만큼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CVID를 공동성명에 담지 못했던 백악관이 이번엔 구체적인 ‘비핵화 성과물’을 꼭 챙기겠다는 의지와 절박함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비핵화 로드맵’ 최신판 들고 평양 가는 폼페이오 북-미 회담 후 20여 일이 흘렀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비핵화 성과를 아직 내놓지 못한 채 오히려 북한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유해 송환이 이미 이뤄졌다고 잘못 발표하며 여론은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 1일 판문점에서 실무협상이 열렸지만 미국이 만족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3일(현지 시간)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판문점에서 비핵화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 전에 진전된 비핵화 조치와 관련된 의제 조율을 원했지만 비핵화 문제는 김정은만이 결단할 수 있는 만큼 실무 라인에선 별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했다. 한 정부 관계자도 “생각대로 착착 진행이 안 됐다는 반응”이라며 백악관의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북한의 ‘생명줄’인 핵은 김정은-트럼프 간 직접 소통으로만 진척될 수 있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워싱턴의 다른 소식통은 “과거 북-미 협상과 달리 정상회담을 거친 만큼 트럼프와 김정은이 결단해야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다. 이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거듭 방북 의사를 밝혔고, 국무부가 심지어 방북 가능성을 언론에 흘려 북한을 압박하는 전술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폼페이오가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가 수정한 ‘비핵화 로드맵’ 최신 버전을 들고 가 김정은을 설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가 다시 김정은을 압박하며 소정의 비핵화 성과를 도출하려 애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 조급한 미국, 한일에 묻지도 않고 회의 날짜 통보 비핵화 로드맵을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는 백악관의 조바심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미 국무부가 7, 8일 폼페이오 장관이 일본 도쿄를 방문해 한미일 3자 협의를 한다고 3일 밝혔지만,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일본과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해 일정 조율에 애를 먹고 있는 형국이다. 이 시기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인도, 싱가포르 순방을 떠나는 날짜와 겹친다. 사정을 잘 아는 당국자는 “미국과 일정을 협의 중이다. 상의 없이 미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해 당황했다”며 “물리적으로 가지 못할 경우 전화로 결과를 공유받거나 대신해서 누군가가 갈 수도 있지만 순방 수행을 조정해서라도 되도록이면 도쿄행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강 장관의 일정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외교장관 회담이라고 못 박지 않고 ‘한일 지도부(leaders)’로 표시한 만큼 미측에서도 배려했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사전에 완벽히 만남 시간표를 주고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일본 외무성 또한 강 장관의 거취를 물어오며 미측과 일정 조율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3일 남북 통일농구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을 이끌고 방북하면서 평양에서 남북미 3자가 회동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3일부터 6일까지 체류할 계획인 조 장관이 6, 7일 머무는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6일 오전경 자리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조 장관도 방북길에 오르기 전 관련 질문에 대해 “일단 가서 봅시다”라고 답했다. 다만 그동안 김영철-폼페이오 소통 라인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던 조 장관이 이들과 동석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아직은 더 많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일부터 이틀간 평양을 방문한다. 지난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24일 만에 북-미 간 후속 협상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방북은 앞서 폼페이오의 두 차례 방문과 달리 사전에 일정을 공지한 ‘공개 방문’ 형식인 데다 평양 체류 기간도 이전보다 길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예정을 사전에 알렸다. 북한의 ‘비핵화 뜸들이기’에 지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북핵 총책이 평양으로 ‘달려가는’ 만큼 비핵화 시간표 등 소정의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중요한 북한 비핵화 업무를 계속하기 위해 폼페이오 장관이 5일 북한으로 떠나 북한 지도자(김정은)와 그의 팀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도 대변인 성명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후) 7일부터 8일까지 일본 도쿄를 방문해 한국과 일본의 지도부를 만나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final, fully verified)’ 북한의 비핵화 합의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방북 후 한미일 3자 협의는 사전에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미 측의 이른 발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의 카운터파트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 기간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싱가포르 순방을 수행할 예정이다. 그만큼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1일 판문점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도 별다른 소득 없이 빈손으로 필리핀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3일 트위터에 “북한과 많은 좋은 대화들이 잘 이뤄지고 있다. 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과 전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1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간 실무협상의 미국 측 대표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임무를 마치고 2일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6·12 북-미 정상회담 후 19일 만에 양측 협상팀이 마주했으나 ‘단 한 번, 한 시간’ 만나고 헤어진 것.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일정과 사전 준비된 의견만 빠르게 주고받는 ‘원포인트 회담’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김 대사는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판문점에) 매우 빠르게 왔다 간다. 오늘 (필리핀) 마닐라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판문점 협상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일엔 별도 일정이 없고 북한과 실무협상은 전날 짧은 만남이 전부”라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일정 조율 차원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대사와 함께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또한 전날 판문점을 찾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에게 폼페이오 장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CIA가 비핵화 협상을 주도했던 만큼 비핵화 관련 로드맵 등 북-미 고위급 협상 의제가 담겼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방북 전 어떻게든 사전에 (일부) 확정 짓고 가려는 것이다. 논의하고자 하는 의제와 방향을 알려주고, 받고 싶은 답변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내용을 전달한 거라고 본다”고 했다. 평양에 보내는 사전청구서 성격이라는 의미다. 이번 판문점 실무협상에 미국이 국무부와 CIA가 조합된 ‘연합팀’을 꾸린 것도 눈길을 끈다. 한 외교소식통은 “폼페이오가 주무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연합팀이 꾸려진 것 같다”고 전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최근 내놓은 북한 핵 개발 실태에 대한 보고서가 미 정치권과 외교가를 강타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새롭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북한이 최근 수개월간 핵무기 개발을 위한 농축 우라늄 생산을 늘려 왔으며,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후에도 핵 개발 작업을 계속 진행해 왔다고 결론지었다. 북한이 해외 언론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라는 ‘큰 쇼(big show)’를 벌였지만 진정한 비핵화에 나설 의지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 앞두고 공개된 보고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작성에 관여한 미 정보관리들이 언론에 주요 내용을 누설(leak)하면서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됐다. 상부의 지시 없이 정보관리들이 언론에 북한의 핵능력 확대와 은폐 실태를 공개한 것은 “더 이상 북한의 핵위협은 없다”고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뉴욕매거진은 지적했다. 정보 당국조차도 트럼프 대통령이 호언장담하는 북한 비핵화 약속을 믿지 않을 정도로 행정부 내부 분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보고서 내용을 처음 보도한 NBC방송은 “미국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중대 양보까지 했는데 북한이 핵 비축량을 줄인다든지, 핵무기 생산을 포기하겠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정보관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6일 전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북한 핵개발 관련 기밀 정보가 알려지면서 비핵화 확약에 금이 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측과 만나 비핵화 의제 등을 사전 조율했던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다시 방한해 1일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미 간 비핵화 로드맵 논의를 위한 실무 접촉인 것으로 보인다. 북-미 협상에 관여했던 당국자 간 접촉이 확인된 것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19일 만이다. 지난 주말 방한한 김 대사는 이날 오전 판문점에서 북측과 1시간가량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대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김 대사의 상대였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 한 대북 소식통은 “폼페이오의 이번 (세 번째) 방북은 북-미 정상회담 후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김 대사가 판문점으로 와서 직접 조율한다는 건 미군 유해 송환뿐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후속 조치까지 논의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보복’ 가능성 우려 트럼프 행정부는 DIA 보고서에 대해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개발 확대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대책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핵 전문가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트위터에 “북한에 핵시설을 폐쇄하도록 압력을 넣는 데 레버리지(지렛대)로 이용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일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거짓 약속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슈퍼매파의 충고에 따라 ‘(군사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볼턴 보좌관은 1일(현지 시간) 북한의 핵 프로그램 대다수가 1년 이내에 해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이 업무(비핵화 협상)를 진행 중인 이들에게는 몽상적(starry-eyed)인 감정이 조금도 없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과거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미 국무부에서 북핵 문제 등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외교를 관장해 온 수전 손턴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지명자가 7월 말 퇴임한다고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밝혔다. 2월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퇴임한 데 이어 손턴 지명자까지 물러나면 당장 미국의 대북 외교라인에 적잖은 공백이 예상된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신나리·주성하 기자}

졸지에 멕시코 사람들이 한국인을 ‘형제’라고 부르는 일이 벌어졌다. 27일(현지 시간) 멕시코 현지에서는 한국과 한국인들을 향한 칭찬과 감사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멕시코는 이날 열린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에서 스웨덴에 3골 차로 완패했지만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을 꺾어준 덕분에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는 기쁨에 도취한 시민들이 한국대사관과 한국 기업 앞으로 모여 맥주를 비롯한 물품들을 선물하고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들은 대사관에 “우리 모두는 한국인이다” “한국 형제들아, 당신들은 이미 멕시코 사람이다”라고 외쳤다.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와그너 기자 트위터에는 시민들이 멕시코 주재 한국대사관 앞으로 찾아와 한병진 대사관 공사를 목말 태우고 16강행을 축하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대사관 관계자는 한국과 독일의 경기가 끝나자 멕시코 외교부 차관으로부터 “한국 덕분에 멕시코가 올라가게 돼서 고맙다. 독일을 상대로 훌륭한 경기를 보여줬다”는 장관 메시지를 직접 전하기 위해 대사관으로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멕시코) 외교부에서 대사관으로 테킬라를 엄청 보냈다. 주민들도 대사관 앞에서 ‘코레아 코레아’를 외치며 흥겨워했다”고 덧붙였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한국 선수를 주인공으로 패러디한 이미지나 영상이 넘쳐났다. 멕시코 국기 중앙에 손흥민의 활짝 웃는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등장했고 골키퍼 조현우의 얼굴을 구세주 이미지로 합성한 사진도 인기를 끌었다. 멕시코 시내 일부 식당에는 ‘서울 수프’ ‘손흥민 갈빗살’ 등 한국팀에 대한 감사 기념 메뉴가 생겨났다. 현지 한국 교민과 주재원들은 휴대전화로 현지 지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멕시코 기업들은 ‘생큐, 한국’ 마케팅을 선보였다. 멕시코 최대 항공사 아에로멕시코는 자사 트위터에 “우리는 한국을 사랑한다”면서 “7월 1일까지 멕시코행 항공편을 20% 할인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에서는 “멕시코인들은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멕시코팀이 스웨덴을 이겼다면 한국이 멕시코와 함께 16강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은아 achim@donga.com·신나리 기자}
남북이 26일 철도협력분과 회담을 통해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 및 현대화에 합의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는 한반도종단철도(TKR)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북한의 인프라 부족과 함께 현재 대북제재 상황이 걸림돌이다. 여기에 지난주 한-러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 연계를 위한 공동연구에 합의한 내막을 살펴보면 ‘러시아 변수’도 만만치 않다. 정부 소식통은 “러시아가 이미 2002년 경원선(서울∼원산)을 중심으로 타당성 조사를 마쳤다. 러시아는 물류의 중심지인 서울을 거쳐 가고 싶어 했지만 북한이 본토 중간을 관통하는 걸 꺼리고 동해안선을 따라 격리된 형태의 철도 연결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남북러가 한자리에 모여 지도를 펴놓고 철도 연결 루트를 그릴 때 이견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 지역 동해안 철로 주변에 있는 비행장과 해군부대의 이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북측이 요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또는 러시아가 철도 연결뿐만 아니라 제반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 정부는 제3국과의 한반도 경제협력 문제를 놓고 남북 간의 경협 타결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다음 달 24일 철도협력 분야의 공동조사가 착수되기 전까지 한-러 간 등 경협 논의는 미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 상반기 남북미 간 대화 기조가 이어지며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가 ‘일시 면제’되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향후 본격적인 대북 경협은 다른 문제란 인식이 많다. 경협 강화는 제재 약화와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 이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나 비핵화 시한 등을 다소 양보한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제재란 고삐를 강하게 움켜쥘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하셨다는 점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춘추관에서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의 36년 전 사법연수원 성적이 언급된 이유는 이날 한 중앙일간지의 칼럼 때문. 22일 한-러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A4용지를 들고 있는 장면을 두고 “정상 간의 짧은 모두발언까지 외우지 못하거나, 소화해 발언하지 못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것을 반박하면서다. 김 대변인은 “(대변인을 맡은 후) 넉 달여 동안 많은 정상회담과 고위급회담에 들어갔다. 거의 모든 정상이 메모지를 들고 와서 이야기한다”며 “‘당신과의 대화를 위해 이만큼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는 성의 표시”라고 덧붙였다. 이어 “(메모지로) 지도자의 권위, 자질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지난해 말까지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끌어낸 게 문 대통령”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청와대 말대로 실제로 많은 정상들이 회담에서 메모지를 사용할까. 일단 외교부 관계자는 “회담의 성격이나 정상의 스타일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상당수 정상은 회담에서 메모지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인사말과 농담까지 메모를 준비하는 정상도 있고, 핵심적인 내용만 담은 자료를 갖고 회담장에 들어가는 정상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에는 물론이고 지난해 7월 독일에서 가진 첫 한-러 정상회담에서 철도와 자유무역협정(FTA) 등 의제들을 빼곡히 담은 메모지를 직접 손으로 넘겨가며 대화했다고 한다. 올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역시 한일 위안부 합의와 소녀상 문제 등을 담은 자료를 들고 문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역시 정상회담 때 메모를 활용한다는 게 외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메모 없이 하는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 때는 자료를 활용하지만 단독 회담 때는 메모지 없이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트럼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메모 없이 회담을 했다. 그러다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에서 다른 정상들이 메모를 참고하는 걸 보고 종종 메모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정상회담은 치열한 전략·논리 싸움인 만큼 지켜보는 입장에선 오히려 정상들이 메모지를 활용하지 않을 때 더 조마조마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주성하 기자}
감사원이 ‘한미연구소(USKI) 청탁 이메일 논란’과 관련해 홍일표 청와대 행정관의 부인 장 모 감사원 국장을 조사한 결과 직권남용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정직 이상 중징계를 내부 징계위원회에 요구했다고 25일 밝혔다. 감사원은 이날 “장 국장이 작년 1월 24일 방문연구원 선정을 위해 USKI 구재회 소장에게 이메일을 송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예산 지원을 받는 USKI에 배우자(홍일표)가 소속된 국회의원실에서 지적했던 문제 해결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한 것은 감사원 간부 직원의 처신으로 부적절했다”며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 그러나 해당 이메일을 보낸 행위가 감사원 국장으로서 직무 권한 범위에서 이뤄진 게 아니라 연구원으로 선정해달라고 신청자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이기에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공무원 품위손상 부분은 인정했다. 감사원은 다음 달 중 외부위원이 과반을 차지하는 징계위를 소집해 품위손상에 관한 징계수위를 정할 예정이다. 앞서 3월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USKI 예산지원을 중단하기로 하자, USKI 측은 홍 행정관을 지목해 ‘청와대 개입설’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이런 와중에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홍 행정관의 부인인 장 국장이 남편과 자신이 재직하는 감사원을 앞세워 방문학자로 뽑아 달라고 요구했다”며 이메일을 공개했다. 장 국장은 지난해 USKI에서 국외교육훈련을 마치고 올해 3월 복직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파견관으로 근무 중이었다. 이에 감사원은 4월 20일 장 국장의 국회 파견을 면하고, 대기발령 상태에서 두 달 넘게 조사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통하는 노영민 주중대사(사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전에 한국에 들어왔으며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 과거 3선을 지낸 지역구(충북 청주)를 방문해 논란이 일고 있다. 노 대사는 21일 현재까지 한국에 머물고 있다. 외교부 및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노 대사는 개인 일정 등을 이유로 휴가를 신청해 16일 귀국한 뒤 19일 충북 청주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충북 광역·기초의원 출마자 간담회에 참석해 당선자들을 격려하고 낙선자들을 위로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간담회 측에서 먼저 초청한 것”이라고 전했다. 노 대사가 청주를 찾은 19일은 마침 김정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방중한 날이다. 정부는 김정은의 기습 방중을 예의주시하면서 향후 북-미 회담 후속협의 등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었다. 외교부도 19일 당일 정례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을 통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전략적 목표와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 등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사는 지난주 연가를 신청해 외교부로부터 승인을 받고 일시 귀국해 있다고 밝혔다. 노 대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휴가 기간 동안 선친 기일 및 추도예배와 함께 17일 아들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가 예정되어 있었다. 19일부터 20일까지 청주에 있다가 21일 건강검진을 받는 일정”이라고 했다. 노 대사는 22일 외교부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뒤 24일 오전에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외교부도 노 대사의 일시 귀국을 확인하면서 “한반도 관련사항 등 필요한 외교 업무는 최영삼 대사대리를 중심으로 차질 없이 수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리 휴가를 받았다고 해도 김정은 방중이라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면 주중대사가 ‘위수 지역’인 중국으로 즉각 복귀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군인으로 치면 휴가 중이더라도 즉각 원대복귀해야 할 상황”이라며 “중국 정부를 통해 김정은의 비공개 메시지를 파악해 보고하는 게 대사의 임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 대사는 “내가 미리 김정은이 올 줄 알았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한국에 도착해서 알았다”며 “대사관 시스템을 완벽히 갖춰 놔서 대사 한 사람이 없어도 대사대리가 실시간으로 북-중 관련 수집된 정보를 청와대한테 보고하고 상황을 대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김정은이 올 줄 몰랐다”는 노 대사의 설명과는 달리 김정은 방중 사실을 사전 인지했다고 밝힌 바 있어 노 대사의 이런 해명은 다시 한번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박효목 기자}

북한이 14일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 군 당국에 “군사분계선(MDL) 양측 60km 이내에서는 정찰기 비행 등 상대방에 대한 정찰활동을 하지 말자”고 제안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MDL 양측 40km 내에선 전투기 등 한미 및 북측 군용기를 비행시키지 말자”는 제안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유예시키는 데 성공한 데 이어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명분하에 한미 연합군의 대북 감시망은 물론이고 한반도 유사시 가장 빠르게 대북 공습에 나설 한미 공중 전력의 대비 태세까지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21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회담 당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이 같은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급 회담이 10년여 만에 이뤄진 만큼 양측이 서로의 요구 사항을 듣고 분위기를 살피는 데 주력해 북측 제안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 같은 제안을 통해 북한이 한미 첨단 정찰기의 MDL 인근 활동을 대표적인 적대행위로 규정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미군이 운용하는 글로벌호크, U-2 등의 정찰기는 MDL을 넘지 않고도 MDL 북측 수백 km 지점의 북한군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감시할 수 있다. 북한은 이어질 군사회담에서 이 문제를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한미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집중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군 안팎에선 북한 제안이 만에 하나 현실화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에 큰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군이 운용하는 정찰위성 외엔 사실상 감시 수단이 사라지면서 대북 감시 태세에 커다란 공백이 생긴다는 것. 북한이 수도권을 겨냥해 MDL 일대에 집중 배치한 장사정포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서울 불바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북한은 14일 회담에서 자신들도 MDL 북측 60km 내에선 정찰에 나서지 않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MDL 북측에서도 남한을 집중 감시할 수 있는 작전능력을 갖춘 정찰기 등 정찰자산이 없다. 북한이 수시로 소형 무인기를 MDL을 넘어 남측으로 내려보내며 대남 정찰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MDL 인접 작전을 수행할 최신예 전투기도 없다. 북한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는 셈이다. 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 기자}

15년 만에 첫 청와대 기관운영 감사를 실시한다고 밝혀 기대를 모았던 감사원이 감사 석 달여 만에 맹탕에 가까운 감사결과를 내놨다. 권력기관에 대한 감사 필요성이 제기돼 나섰지만 청와대 내 카페, 매점 운용 실태 등을 점검하는 데 그친 것. ‘감사를 위한 감사’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감사원은 21일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처, 국가안보실에 대해 기관운영 부문을 감사해 총 8건의 주의·통보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징계 요구 사항은 없었고 국가안보실은 예산이 대통령비서실에 묶여 운영됐다는 이유로 지적사항도 없었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은 청와대 경내 매점의 경우 장애인복지를 이유로 2003년 5월부터 14년여, 카페는 보안을 이유로 2009년 2월부터 9년여를 특정인과 계속 수의계약을 맺어왔다. 감사원은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청와대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절차적 시비가 없도록 앞으로 매점 운영에 지명 경쟁 또는 제한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경호처에 대해선 2016년 12월 청와대 주변 경비를 위해 드론을 구매할 당시 청와대 주변 공역에서 비행할 수 없도록 내장된 비행제한프로그램을 해제하지 않은 채 구매했다고 지적했다. 뒤늦게 해당 프로그램의 해제 작업을 시도했는데 지난해 업체가 폐업한 까닭에 총 6대의 드론을 돌려받지 못한 점도 주의를 받았다. 이번 기관운영 감사결과는 기존에 통상 해오던 재무감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2003년 기관운영 감사를 마지막으로, 2004년부터 청와대에 대해 예산 관련 재무감사만 해온 감사원이 15년 만에 다시 칼을 빼든 배경에는 권력기관을 견제해야 한다는 안팎의 주문이 있었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7월 발족한 감사원 혁신·발전위원회는 “감사원이 권력기관에 대한 감사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실질적 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고, 최재형 감사원장도 3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실과 검찰, 국가정보원 감사계획을 밝히며 “권력기관의 책임성을 확보하고 적법·투명한 국정운영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통상적인 기관운영 감사 결과와 비슷하다. 직무감찰 부분은 강화됐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제한적인 감사 대상으로 인해 이런 결과는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청와대의 정책결정을 따지는 게 아니라서 인사 관리나 수의계약 체결 부분 등을 중점 점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8일부터 사상 처음으로 직접 감사에 착수한 대검찰청과 하반기에 예고한 국가정보원에 대한 첫 감사도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청와대 감사와 대동소이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