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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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5-15~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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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빛의 바다’에 빠지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다니엘 뷔렌(81)의 작품 ‘사진의 기억: 다니엘 뷔렌, 짜여진 광섬유’ 24점을 국내 처음으로 광주에서 공개한다. 뷔렌의 트레이드마크인 색 띠를 광섬유로 제작한 이 작품은 12일 개막하는 광주디자인센터(GDC)의 전시 ‘Dive into Light’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Dive into Light’는 제8회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와 제18회 광주 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기념해 열린다. 뷔렌을 비롯해 영국 현대미술가 마크 퀸, 한국 작가 서도호, 이성자 등 작가 14명의 작품 51점을 GDC와 수영대회가 열리는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 전시한다. 뷔렌의 기존 작업은 대부분이 설치 작품으로 전시가 끝나면 작업을 분해해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 ‘광섬유’는 캔버스 사이즈로 작가가 소장한 유일한 작품이다. 고급 패션 직물을 생산하는 프랑스 리옹의 ‘브로시에 테크놀로지’와 협업해 빛을 발하는 얇은 섬유를 만들었고, 이를 엮어 다양한 색채와 줄무늬로 변주했다. 전시를 기획한 심은록 큐레이터는 “비단이 반짝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자 화백(1918∼2009)이 프랑스 누보로망 문학가 미셸 뷔토르(1926∼2016)와 협업한 작품도 볼 수 있다. 시화전을 열고 싶었던 이 화백이 뷔토르를 처음 만난 뒤 두 예술가는 꾸준히 인연을 이어갔다. 전시 작품은 두 사람이 만난 직후인 1978년 판화 ‘더 이상 하늘의 빛을 외치지 말라/그들의 계곡을 파괴하다/빛으로부터’ 등이 있다. 전시는 수영대회장에서는 28일까지, GDC에서는 10월 31일까지 열린다.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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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행복을 주는 집에 살고 있나요?”

    커다란 부엌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며 때론 밥도 함께 짓고 술도 나누는 집. 귀가가 늦어져도 함께 사는 사람 한 명쯤은 아이를 대신 돌봐줄 수 있는 집. 공장에서 찍어낸 구조가 아니라 내 가족의 취향에 꼭 맞춰 설계한 집. 북유럽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런 집이 서울에 있다. 2011년 탄생해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가고 있는 공동체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다. 서울 마포구 ‘소행주 1호’를 시작으로 전국 15개 소행주를 기획하고 건축한 류현수 자담건설 대표(53)를 9일 만났다. 스스로 ‘건축 운동가’라 칭하는 그는 최근 소행주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예문·1만7000원)를 발간했다. 류 대표는 “아이들이 뛰놀고 동네 사람들이 근황을 주고받던 골목 공동체를 집 안으로 들여온 것이 ‘소행주’”라고 설명했다. ‘소행주 1호’에는 변호사, 회사원, 영화감독, 비정부기구(NGO) 직원 등 다양한 구성원이 있다. 공통점은 입주 전부터 육아를 함께했다는 것. 공동체건축의 필요성을 느낀 이들과 류 대표가 합심해 대지 선정부터 설계, 완공까지 일일이 합의해 탄생시켰다. 모든 과정에 건축주가 참여해 ‘맞춤형’ 공간이 가능했다. ‘소행주 1호’도 112.4m²(약 34평) 복층형 집부터 36.4m²(약 11평)까지 주거 형태가 다양하고 비용도 각각 다르다. 또 각 구성원이 십시일반해 33.6m²(약 10평) 커뮤니티 공간 ‘씨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공동육아와 공동식사 ‘저녁 해방 모임’(저해모) 등 다채로운 활동이 열린다. 류 대표는 통상 집이 공급자와 판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좋은 집’에 대한 생각은 개인마다 다른데, 획일화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춰 왔어요. ‘거실 조명등은 6개를 설치한다’ 같은 공식에 따라 지어져 눈부신 조명을 참거나, 높은 싱크대에 발 받침대를 놓고 사용했잖아요.” ‘소행주’는 건축주가 갖고 있는 집에 관한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을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락방’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최상층에 다락을 만들고, 세면대가 높아 고생한 적이 있다면 높낮이를 조절한다. 소량 맞춤 생산이지만 공급자 마진이 없어 아파트 전세 가격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다. 류 대표는 “소행주에 살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들 다 하는 사교육, 아파트 투자 같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니 용기가 필요하죠. 소행주는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만든 집’이에요.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담보 잡히기보다 당장 조금 투자해서 확실한 행복을 얻는 건 어떨까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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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서 펼치는 ‘춤꾼 안은미 30년’

    미술관이 시각 예술을 넘어서 패션디자인이나 무용, 가요 등 대중문화를 다루는 흐름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해외에서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에서 선보인 패션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전이 큰 성공을 거뒀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 데이비드 보위를 다룬 전시도 흥행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무용가 안은미(57)를 다룬 특별전 ‘안은미래’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안은미의 30년에 걸친 창작 활동을 토대로 제작한 회화,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무대와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했다. 한 번의 무대만으로는 보여주기 쉽지 않았던 무용의 세계를 시각예술의 형태로 풀어 나간다. 전시 제목 ‘안은미래’는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전이자 ‘미래’를 탐구하는 전시가 되길 희망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첫 번째 공간은 안은미의 활동 이력을 회화를 이용해 비선형적 방식으로 구성한 타임라인으로 그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다. 두 번째 공간은 과거에 사용한 오브제를 활용해 만든 작품과 사운드, 형형색색의 조명을 설치한 미술관 속 무대다. 마지막 공간인 아카이브룸에서는 의상, 디자인, 사운드 자료를 볼 수 있다. 핵심은 중앙에 설치한 무대 공간 ‘이승/저승’이다. 이곳에서는 오전엔 다양한 분야의 퍼포머들과 함께하는 댄스 레슨을, 오후에는 공연 리허설을 진행한다. 토요일에는 각종 강연이 열릴 예정이다. 사회디자인학교인 ‘미지행’, 국악인 박범태, 현대무용을 하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소리꾼 이희문, 탭댄서 조성호가 참여한다. 자세한 프로그램 확인과 참가 신청은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9월 29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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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평원 17년치 감정서 9000여점 처리 놓고 세갈래 기싸움

    “감정서 자료 폐기는 ‘증거 인멸’, ‘분서갱유’?” 최근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진위를 판결하는 ‘감정 평가’의 주도권을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국내 최대 민간 감정기구였던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이 지난해 9월 문을 닫고 올해 청산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갈등의 발단은 2003년부터 2019년 3월까지 감평원이 발행한 ‘감정서’ 9000여 점의 행방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시작됐다. 감정을 둘러싼 갈등은 어떻게, 왜 일어난 것일까?○ 감평원 빈자리 둘러싼 감정 주도권 3파전 감평원은 2002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로 출발해 2003년 출범한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감정협회)와 제휴를 맺고 미술품 감정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화랑협회는 1982년부터 자체 감정 업무를 해오다가 2007년 주식회사로 전환한 감평원과 제휴를 맺고 공동 명의로 감정서를 발급했다. 사실상 감평원으로 감정 업무가 일원화된 셈이다. 지난해 9월 감평원은 주주총회를 열고 해산을 결정했다. 영리 목적의 주식회사가 감정을 한다는 지적에 사단법인으로 재구성하거나, 감정협회와 업무를 일원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올해 3월 감평원의 1, 2대 주주가 새로운 주식회사인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감정센터·대표 정준모 이호숙)를 설립하면서 감정협회 ‘잔류파’ 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불씨를 지핀 것은 청산 진행 과정에서 그간 감평원이 발급한 9296건의 감정서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한국화랑협회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감정서 폐기는 ‘먹튀’”라며 ‘강력 대처’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 화랑협회도 “자체 감정을 올해 8월부터 실시하겠다”고 해 감정을 둘러싸고 ‘3파전’이 벌어졌다. 감평원은 한국화랑협회도 2007년 이전의 감정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으며 감평원의 데이터는 정기적으로 송부했는데도 뒤늦게 전체를 달라며 문제를 삼는다는 입장이다. 감평원 청산인인 임명석 우림화랑 대표는 “감정데이터를 두고 의견이 오가다 ‘이럴 바엔 폐기하자’는 말이 나온 것을 화랑협회에서 과장했다. 자료 폐기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웅철 한국화랑협회장은 “향후 감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존 감정서를 폐기한다는 것은 화랑협회의 자체 감정 업무를 못마땅하게 여겨 공유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종이 조각과 ‘명품’ 운명 가르는 감정 “붓이 칼이 되고, 혀가 칼이 되고, 돈이 칼이 되고… 그게 이 바닥 아닙니까?” 조선시대 명화의 위작을 둘러싼 사기극을 다룬 영화 ‘인사동 스캔들’(2009년)에 등장하는 대사다. 감정은 그 결과에 따라 작품을 ‘명품’으로 만들기도 하고, 가치 없는 종잇조각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히 위작이 많았던 한국화나 근대미술에서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위작 제작 방법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원화와 뒤에 붙인 배접을 떼어내는 복원 기술을 악용한 수법, ‘떼어내기’다. 동양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이 수법은 쉽게 말해 작품을 두 장으로 가르고, 희미한 부분을 덧칠해 위조하는 방식이다. 1960, 70년대에 이 같은 위작이 다량 생산돼 일본으로까지 밀반출되곤 했다. 또 일제강점기 한국에 온 일본인이나, 재일 한국인 그림 중 서명이 없는 그림을 유명 화가의 전칭작(傳稱作)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도 위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이 위작 판결을 내린 이우환의 작품을 위조한 일당은 수개월에 걸친 연구 끝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원작 특유의 질감을 재현하기 위해 유리나 외국산 석채를 물감에 섞어가며 실험을 했다. 점을 일렬로 그리기 위해 ‘레이저수평기’를 동원하는가 하면, 서명은 사진 촬영 후 빔프로젝터로 캔버스에 쏜 뒤 그대로 따라 그렸다. 원작의 캔버스 틀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일련번호를 포토샵으로 조작해 비슷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게 하려고 캔버스 뒤에 커피색 물감을 칠했다. 그러나 이러한 범행은 결국 전문가의 눈에 덜미가 잡혔다. 오래된 시리즈의 신작이 갑자기 화랑가에 등장하고, 물감에 노화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의심을 샀다. 결정적으로 이들이 작가 고유의 물감 배합 비율을 100% 재현할 수는 없었기에, 수사 과정에서 정밀 분석을 통해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2005년 개인 소장가가 이중섭(1916∼1956), 박수근 화백(1914∼1965)의 미공개작이라고 주장한 2827점이 위작으로 밝혀진 사례는 한국 미술사상 최대의 사기 사건으로 꼽힌다. 이들 작품 역시 안목 감정과 물감 성분 분석을 통해 위작 판정이 내려졌다. 또 2007년 12월에는 당시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가 위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술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기도 했다. ‘빨래터’는 2009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진작으로 추정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위작 의혹을 제기한 미술전문잡지 ‘아트레이드’ 측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한편 생존 작가의 경우 작가와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유통 과정이 비교적 투명해 위작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한 번 위작이 수면에 드러나면 다른 작품까지 의심을 받게 돼 작가나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철저한 감정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컬렉터도 스스로 감식안 키워야 한편 전문 수집가들은 감정에만 기대기보다 구매자 스스로도 감식안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형의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무 자르듯 객관적으로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집가들이 안목을 기르고, 좋은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보는 풍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감정도 더 엄격해지고, 위작이 설 자리도 줄어든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한국 근대 미술품을 수집하는 소장가 A 씨는 “그림의 출처와 사료 등 다양한 참고자료로 진품임이 명백한 작품은 감정이 필요 없다”며 “진위가 애매한 C급, D급의 작품이 감정의 대상이 되는데 이런 작품은 구매자도 스스로 리스크를 알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위작의 문제는 작품 자체보다 이름값만 중시했던 미술시장의 풍토가 자초한 사태라는 의견도 나왔다. 즉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그림의 내용이나 역사적 의미에 따라 가치가 다르지만, 국내에선 이런 차이가 반영되지 않아 위작이 무분별하게 양산됐다는 것이다. 세계적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1881∼1973)만 해도 작품의 내용과 매체에 따라 수천만 원에서 수천억 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일부 국내 미술시장에서는 최근까지도 그림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작품의 크기에 따라 ‘호당 가격’을 매기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 같은 이중섭의 작품이라고 다 비싼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의 갭이 커진다면 위조를 통해 큰돈을 챙기는 일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거래 당사자가 아닌 제3의 기구를 통해 감정을 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예술 작품 딜러 B 씨는 “과거의 한 유력 수집가는 고미술품을 구매했다가 위조품이라는 걸 알게 되자 그 자리에서 깨버렸다고 한다”며 “이는 결국 수집가로서 속은 자신의 감식안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불확실한 행운을 노리고 투명하지 않은 유통 경로로 싼값에 작품을 살 때는 구매자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카탈로그 레조네, 블록체인… 감정의 미래는? 통상적인 미술품 거래에서 감정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대다수 수집가들은 출처가 확실한 작품을 구매하며, 동시대 작가는 감정이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다. 최웅철 회장 또한 “수십 년 동안의 감정을 통해 ‘진위 감정’을 해야 하는 작품은 상당수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 대신 국공립기관이나 개인 단체가 자산을 기록하기 위해서 기존에 소장했던 작품의 현재 가치를 산정하는 ‘시가 감정’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 새롭게 난립하는 감정기구들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시가 감정’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 가격의 변동 역시 일정한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역사적, 미학적, 조형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감평원이 기존에 갖고 있던 감정서가 중요한 이유도 이 자료를 기반으로 ‘시가 감정’의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거래되는 작품에 관한 기록을 블록체인에 저장해 작품을 보증하는 기술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블록체인 특성상 작품 관련 기록을 특정 주체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동시에 기록을 보유하고 이를 영구적으로 보관하는 형태가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이 새로운 객관적 작품 보증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미술품 감정기구의 필요성에 관한 지적 때문에 국가가 특정 기관을 감정 주체로 지정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정부는 2017년 위작 미술품 유통과 허위 감정 등 시장질서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미술품 유통법’안을 만들어 발의했다. 올해 2월에는 김영주 의원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두 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다만 국가가 지정한 기관이 작품을 보증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사실상 인력풀이 넓지 않은 미술계에서 그동안 감정 업무를 맡았던 인력이 그대로 국가 인증만 받게 되는 격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보다는 새로운 감정 기술과 인력을 육성하고, 작가 측의 ‘카탈로그 레조네’(작품 전체를 기록한 도록) 제작을 독려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욱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 미술작품엔 ‘진위감정’보다 ‘시가감정’ 비중 더 높아져 ▼ 佛 아트프라이스닷컴 등 작가-경매 빅데이터 실시간 공유미술품 감정은 예술 작품의 진위를 가리고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를 말한다. 위작 여부를 판단하는 ‘진위 감정(authentication)’과 작품의 가격을 산정하는 ‘시가 감정(appraisal)’으로 나눈다. 또 미술사가, 평론가, 큐레이터 등이 작품의 가격뿐 아니라 미학적, 시대적, 조형적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가치 감정’, ‘가치 평가’라고도 한다. 흔히 감정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진위 감정은 작품에 사용된 재료의 성분을 분석하는 등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하는 ‘과학 감정’과 여러 작품을 오랜 시간 보면서 감식안을 키운 전문가가 ‘안목 감정’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진위 감정 결과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극단적으로 갈리기에 많은 주목을 받는다. 과거에는 안목 감정이 주를 이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과학 감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나 동시대 미술 작품에 관해서는 시가 감정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감정의 중심을 작품 자체의 미학적, 조형적, 역사적 가치보다는 작가의 학력, 인맥, 수상 경력 혹은 캔버스 크기 등 외적 기준에 둬 불신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작품 가격이 그 자체의 가치가 아닌 해당 작가의 작고 같은 외적 상황에 휘둘리면서 수집가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프랑스에 본부를 둔 아트프라이스닷컴, 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 기반의 아트넷이 경매나 작가에 관한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작품 가격을 책정하는 데 참고하고 있다. 각국의 오랜 역사를 지닌 민간 감정 회사도 시가 감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대적으로 미술품 거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는 잘못된 작품 가격 산정 기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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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7년 만에 다시 돌아온 명화 속 무서운 이야기

    7년 만에 부활한 ‘무서운 그림’ 시리즈. 2008년 처음 출간된 ‘무서운 그림’은 공포를 키워드로 명화 속 뒷이야기를 끄집어 내 인기를 끌었다. 2010년 ‘무서운 그림3’을 마지막으로 멈췄던 시리즈가 명화 20점의 이야기를 담은 새 책으로 돌아왔다. 책은 저자가 엔터테인먼트 소설 잡지인 ‘소설 야성시대’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에 담긴 그녀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웠던 삶,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에 담긴 자살한 여성의 이야기 등을 파헤친다. 그림의 해석은 보는 사람의 자유고 누구나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책도 그림의 정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인 특유의 미스터리를 풀듯 전개하는 개성 넘치는 해석이 돋보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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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긋불긋 알록달록… 여름이 활짝 피었습니다

    “우산이 이렇게 정교하고 화려해도 될 일인가?” 실용성과 편리함을 중시하고,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요즘. 이런 우산은 유별나 보일지도 모르겠다. 원단을 주름지게 만든 ‘드레이프’와 리본 장식, 레이스는 물론이고 상아, 고래 뼈, 코뿔소 뿔, 산호까지 이용해 만든 각종 우·양산 컬렉션. 서울 강남구 플랫폼엘 컨템포러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Summer Bloom 여름이 피다’전이다. 전시 작품 대부분은 프랑스 우·양산 장인인 미셸 오르토(53)의 소장품이다. “우산 갈빗대를 덮은 천이 팽팽하게 당겨진 모습이 좋아”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여덟 살 때 이미 우·양산을 해체하고 조립하며 메커니즘을 이해했다. 파리로 이주한 스무 살 때부터 벼룩시장이나 골동품 가게를 돌면서 우·양산을 수집해 서른 살 무렵엔 이미 800여 점을 모았다고 한다. 손재주가 좋아 정규 교육과정 없이도 오트쿠튀르 패션 하우스의 코르셋 복장과 영화, 연극 의상을 만들다 2008년 파라솔 공방 ‘파라솔르리 오르토’를 설립했다. 이후 30년간 독특한 우·양산 작품을 수집하고 복원했으며 직접 작품도 제작했다. 2013년 프랑스 문화부에서 제정한 ‘메트르 다르’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 국내에선 처음 소개되는 오르토의 소장품은 18∼20세기에 사용하던 것으로, 문화재급이다. 당대의 우산은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귀한 사치품이었다. 혼례용품이나 가보로 물려받기도 했다. 특히 독창성 있는 디자인의 우산은 그 사람의 취향을 과시하는 기준이 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이번 전시에선 시대별로 다른 드레이프나 리본 장식, 프랑스 샹티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레이스 등을 활용한 다양한 디테일을 만끽할 수 있다. 9월 19일까지. 6400∼8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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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위를 향해 들이댄 글과 이미지의 칼날… 아시아 첫 ‘바버라 크루거’전

    화면을 가득 채운 여자의 얼굴 한가운데. 새빨간 박스 속 흰 글자가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듯 강렬하게 새겨졌다. ‘당신의/몸이/전쟁터다(Your body/is a/battleground)’. 미국 예술가 바버라 크루거(74)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1989년 미 워싱턴에서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며 열린 ‘여성 행진’ 집회를 위해 만든 포스터다. 당시 크루거는 집회 주최 측을 돕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이미 홍보대행사가 있다’는 답을 듣고 스스로 포스터를 제작해 늦은 새벽 거리 곳곳에 붙였다. 이 포스터는 이후 페미니즘의 고전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 ‘BARBARA KRUGER: FOREVER’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회는 미술관 측이 오픈 1주년을 맞아 유명 페미니즘 작가 섭외에 적극 나서 성사됐다. 전시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업 44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작품 대다수는 시사 잡지 표지나 헤드라인에서 볼 수 있는 강한 볼드체의 글씨와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병치한 것들이다. 크루거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다니다 10년 동안 잡지사 ‘콩데 나스트’의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을 그녀의 평생 작업에 활용했다. 크루거는 매일 아침 출근길 가판대에서 소비자를 유혹하는 잡지 표지를 보며 ‘사진과 문구가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결정하는 파워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기존 이미지가 자본을 끌어들이거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크루거는 그 반대를 향해 이미지의 칼날을 들이댄다. ‘당신의 몸이 전쟁터다’ 역시 1990년 미술관의 커미션으로 대형 광고판(빌보드)에 전시됐을 때, 곧바로 낙태 반대 모임에서 8주 된 태아의 그림을 넣은 광고판을 세우며 ‘이미지 전쟁’을 촉발했다. 크루거의 작품에서 ‘나’와 ‘너’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 등에게 받은 영향이다.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통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견해가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줬듯, 크루거는 문구를 통해 ‘주체’의 의미를 탐구한다. “전업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 가난해 늘 일을 해야 했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이 대중에게도 쉽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를 쓰지 않는 국가에서 작품을 선보일 땐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번 전시에도 두 작품, ‘무제(충분하면 만족하라)’, ‘무제(제발웃어제발울어)’를 한글로 제작했다. 특히 ‘제발웃어제발울어’는 작가가 해당 전시실을 보다가 “‘please laugh please cry’라고 쓰고 싶다”며 제작했다고 한다. 또 미국에서 작업한 ‘충분하면 만족하라’는 아직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못하는 작가가 연필, 지우개, 자를 활용해 도안을 직접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전시장 말미의 아카이브 룸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에 ‘LOSER’라는 문구를 새기는 등 직설적 표현이 돋보이는 최근의 잡지 표지들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 29일까지. 7000∼1만3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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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이후 방황하는 한국 미술사 대안은?

    “90년대 이후 서구 동시대 미술에 대한 급격한 관심의 증가로 한국 미술사에 관한 논의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동시대 미술에 관한 논의는 산발적으로만 이뤄지고 여전히 단색화와 민중미술 담론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다.”(허유림 독립큐레이터)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대안공간 ‘스페이스9’에서는 도발적 내용의 미술 세미나가 열렸다. ‘미학 없는 한국, 방황하는 미술사, 한국 미술의 미래’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는 홍가이 예술철학 박사, 오상길 미술비평가 겸 작가, 허유림 독립큐레이터가 연사로 나섰다. 허 큐레이터는 “조선시대 후기 회화의 사대주의,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수용한 서양화의 맹목적 모방이 한국 미술사를 변방에 머무르게 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예술의 본질 관점에서 본 한국 미술사와 신자연주의’를 주제로 발표한 그는 “단색화는 국내 미술사에서 언급될 것이 분명하지만 국제적 맥락에서는 미니멀리즘과 유사해 한계가 있다. 또 민중미술은 독창적 미술이지만, 국내 정치 상황과 연관을 맺고 있어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이후 미술사 논의의 화두로 ‘신자연주의’ 미학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미술사가 개인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흐름에 있는 가운데, 국내에도 그러한 작업을 선보인 작가가 있고 이들이 ‘신자연주의 작가’”라고 설명했다. 허 큐레이터에 따르면 신자연주의 미학은 개인이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그에 맞는 삶을 구축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철학적 구조가 된다는 내용이다. 작가가 자신의 삶에 기초해 세계를 해석하고 그것을 고유의 조형언어로 선보이는 것이 신자연주의 예술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오 비평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문제점’을 주제로 국립현대미술관의 3개 전시(1979년 ‘한국현대미술 20년의 동향’, 2000년 ‘한국현대미술의 시원’, 2006년 ‘한국미술 100년’)를 분석했다. 홍 박사는 ‘한국 현대 예술 철학의 유무’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번 세미나는 담양문화재단 후원으로 담빛예술창고에서 10월 열리는 ‘신자연주의 26주년 기념전’과 연계해 ‘RP인스티튜트 서울’이 주최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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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알고 먹으면 藥, 모르면 毒… 식탁 위 식물도감

    중국인도 한국인만큼이나 음식의 효능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산에서 나물이나 버섯을 캐 먹는 건 물론이고, 떨어진 은행을 줍는 풍경까지 벌어진다는 걸 이 책에서 짐작할 수 있다. 식물학 박사인 저자는 ‘고지식한 먹보’를 자처하며 일상에서 사람들이 먹는 식물의 뒷이야기를 파헤친다. 여러 식물을 ‘식물학자의 경고’, ‘식물학자의 추천’, ‘식물학자의 개인 소장품’ 총 3개의 장으로 분류해 설명한다. 중국 과학원 식물연구소를 졸업하고 잡지 ‘과학세계’ 부편집장으로 일했으며, ‘론리 플래닛’ 시리즈 번역자로도 일하는 만큼 전문 지식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첫 장의 주제가 경고라는 것도 흥미롭다. 쓴맛과 야생에 대한 맹신으로 위험한 식물을 무턱대고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그는 “채소에서 얻어야 하는 영양소는 수분, 비타민, 무기질과 식이섬유인데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다양한 음식을 통해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며 “쓴맛을 견디고 중독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천연에 가까운 채소를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개하는 첫 주인공이 은행이다. 그는 은행이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는 상고시대의 간식’이라고 한다. 은행 특유의 달짝지근하고 씁쓸한 맛은 고급 요리에도 잘 쓰이지만,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 은행에는 시안화수소산, 깅골산 등의 화학물질이 있어 중독 사례도 많다. 1세 미만의 영아는 은행 10알을 먹으면 치명적이고, 3∼7세 아동은 30∼40알을 먹으면 중독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재배하지 않은 야생 식물을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지구에 있는 식물의 종류가 무려 37만여 종에 달하는데 이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8만 종 미만이다. 역사상 인류가 활용해 본 식물은 3000종이며 재배하는 식용식물은 150종에 불과하다. 저자는 재배 식물이 오랜 세월 동안 안전성을 검증한 것임에도, 이를 믿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야생 식물을 먹고 싶다면 전문가의 지도 아래 캐야지 식물도감을 들고 가서 캐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다음 장인 ‘추천’과 ‘개인 소장품’은 맛은 물론이고 영양도 좋은 식물과 저자가 흥미롭게 여기는 식물을 소개한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먹었던 ‘참죽순’ 부침을 “따귀를 맞아도 포기할 수 없는 별미”라고 표현하는 등 맛깔나는 표현이 웃음을 자아낸다. 아내가 즙을 내준 샐러리를 먹다가 ‘샐러리가 정자를 죽인다’는 기사를 보고 연구 자료를 뒤져 본 경험도 흥미롭다. “둘째를 가져야 하는 중책을 짊어지고 있기에” 직접 의혹을 파헤친 결과 인용된 글은 정식 학술 연구 보고가 아니었다. 저자는 샐러리가 정자를 죽인다는 소문은 ‘카더라’ 뉴스라고 결론지은 뒤 덧붙인다. “참, 나는 무사히 득녀에 성공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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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샐러리가 정자 죽인다’ 기사 본 식물학자, 연구 자료 파헤친 결과…

    중국인도 한국인만큼이나 음식의 효능에 관심이 많은 가보다. 산에서 나물이나 버섯을 캐먹는 건 물론, 떨어진 은행을 줍는 풍경까지 벌어진다는 걸 이 책에서 짐작할 수 있다. 식물학 박사인 저자는 ‘고지식한 먹보’를 자처하며 일상에서 사람들이 먹는 식물의 뒷이야기를 파헤친다. 여러 식물을 ‘식물학자의 경고’, ‘식물학자의 추천’, ‘식물학자의 개인 소장품’ 총 3개의 장으로 분류해 설명한다. 중국 과학원 식물연구소를 졸업하고 잡지 ‘과학세계’ 부편집장으로 일했으며, ‘론리 플래닛’ 시리즈 번역자로도 일하는 만큼 전문 지식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첫 장의 주제가 경고라는 것도 흥미롭다. 쓴 맛과 야생에 대한 맹신으로 위험한 식물을 무턱대고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그는 “채소에서 얻어야 하는 영양소는 수분, 비타민, 무기질과 식이섬유인데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다양한 음식을 통해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며 “쓴 맛을 견디고 중독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천연에 가까운 채소를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개하는 첫 주인공이 은행이다. 그는 은행이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는 상고시대의 간식’이라고 한다. 은행 특유의 달짝지근하고 씁쓸한 맛은 고급 요리에도 잘 쓰이지만,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 은행에는 시안화수소산, 깅골산 등의 화학물질이 있어 중독 사례도 많다. 1세 미만의 영아는 은행 10알을 먹으면 치명적이고, 3~7세 아동은 30~40알을 먹으면 중독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재배하지 않은 야생 식물을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지구에 있는 식물의 종류가 무려 37여만 종에 달하는데 이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8만 종 미만이다. 역사상 인류가 활용해 본 식물은 3000종이며 재배하는 식용식물은 150종에 불과하다. 저자는 재배 식물이 오랜 세월 동안 안전성을 검증한 것임에도, 이를 믿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야생 식물을 먹고 싶다면 전문가의 지도 아래 캐야지 식물도감을 들고 가서 캐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다음 장인 ‘추천’과 ‘개인소장품’은 맛은 물론 영양도 좋은 식물과 저자가 흥미롭게 여기는 식물을 소개한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먹었던 ‘참죽순’ 부침을 “따귀를 맞아도 포기할 수 없는 별미”라고 표현하는 등 맛깔 나는 표현이 웃음을 자아낸다. 아내가 즙을 내준 샐러리를 먹다가 ‘샐러리가 정자를 죽인다’는 기사를 보고 연구 자료를 뒤져 본 경험도 흥미롭다. “둘째를 가져야 하는 중책을 짊어지고 있기에” 직접 의혹을 파헤친 결과 인용된 글은 정식 학술 연구 보고가 아니었다. 저자는 샐러리가 정자를 죽인다는 소문은 ‘카더라’ 뉴스라고 결론지은 뒤 덧붙인다. “참, 나는 무사히 득녀에 성공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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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짝 열린 폐쇄공간… 시끄러운 도서관… “참 난감한 건축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는 시민 접근이 제한된 옛 채석장이 있다. 조선총독부, 경성역(서울역) 건물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석조건물을 지을 때 석재를 조달하던 곳이다. 다음 달이면 이곳에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열린다. 초기 언덕 일부만 활용하기로 했던 전망대는 옆 낙산배수지까지 보행 덱(deck)으로 넓게 확장됐다. ‘뒤통수치는 건축’, ‘당황시키는 건축’을 표방하는 젊은 건축가 조진만(43·사진)의 작품이다. 그는 최근 1981년 미국에서 창간한 세계적 건축전문지 ‘아키텍추럴 레코드’로부터 ‘차세대 세계 건축을 선도할 건축가(디자인 뱅가드 어워드)’로 선정했다. ‘디자인 뱅가드 어워드’는 건축 실무 경력 10년 미만의 혁신적 작업을 선보인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조진만은 설계상 제약과 부지의 악조건을 창의적으로 극복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창신동 전망대도 전례 없는 확장으로 폐쇄된 공간을 열어낸 해법이 돋보인다. 2017년 서울시 설계공모로 이곳을 맡게 된 조 씨는 “현장에 가보니 기존 부지보다 낙산배수지에서 보이는 풍경이 훨씬 훌륭해 활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낙산배수지가 보안시설이라는 점이었다. 관련법을 검토해 제한 접근 거리를 모두 지킨 가운데, 배수지 위를 지나는 입체 구조물인 보행 덱을 제안했다. 관리 기관은 난색을 표했지만 입체 구조물에 대해서는 금지하는 법도, 허용하는 법도 없었다. 결국 창신동 전망대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조진만 건축의 또 다른 키워드는 충돌과 만남이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 은평구 내숲도서관은 출입구가 무려 6개나 된다. 기존 도서관이 로비를 중심에 두고 열람실을 여러 개 배치하는 중앙 집중적 구조라면, 내숲도서관은 위계와 권위를 파괴하고 ‘시끄러운 도서관’을 표방한다. 가파른 부지에 들어선 도서관은 뒷산, 놀이터, 골목길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를 그는 “공간의 위계가 흩어져 보기에는 무질서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정해진 용도가 없으니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놀이터 바로 옆에 위치한 어린이 열람실이 백미다. 기존 도서관이라면 ‘책은 조용히 읽어야 한다’며 엄숙한 공간을 조성했겠지만, 이곳 열람실은 통창으로 놀이터가 훤히 보인다. 그는 “공간이 사람들의 행동을 강요하고 규정짓는 부분이 있다. 과거의 공공건축이 관리와 통제에 집중했다면, 나는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유와 개별성에 더 초점을 두고 싶다”고 말했다. 역시 지난해 완공한 서울 성동구의 ‘고가하부 다락’도 숨겨진 공간을 끄집어낸다. 상부 도로 활용법만 생각했던 고가도로의 하부에 5000개 거울을 설치했다. 그 아래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이곳도 처음에는 카페를 넣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과감히 비웠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이 알아서 찾아와 워크숍, 장터, 야외 공연 등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했다. “근대 건축은 공간의 용도 중 90∼100%를 먼저 채워놓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에 더 매력을 느낍니다. 그래서 ‘난감한 건축가’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이 제 건축을 좋아해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건축이 늘 엄숙하고 조용하기보다 때로는 시끌벅적해도 좋지 않을까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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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작가 9인의 무한 도전과 가능성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1981년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기획전 ‘젊은 모색’이 5년 만에 다시 열린다. ‘액체 유리 바다’가 제목인 이번 전시에는 김지영 송민정 안성석 윤두현 이은새 장서영 정희민 최하늘 황수연 등 작가 9명의 작품 53점이 공개된다. ‘젊은 모색’은 덕수궁미술관 시절 ‘청년작가’전으로 시작했다. 김호석 노상균 서용선 정현 구본창 서도호 문경원 최정화 이불 등 유명 작가들이 이 기획전을 거쳐 갔다. 2013년 MMCA 서울이 개관하고 전시 프로그램을 점검하면서 잠시 중단됐다가 과천에서 올해부터 재개됐다. 전시 제목은 1980, 90년대생 작가들의 자유롭고 유동적인 태도, 현실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성향, 더 넓은 바다로 뻗어나갈 가능성을 키워드로 붙였다. 전시장은 각 작가의 개인전 형식으로 작품의 맥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물침대에 편하게 누워 감상하는 안성석의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추리극의 한 장면처럼 풀어낸 이은새의 회화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인터넷 문화나 애니메이션적 조형 요소를 활용한 작업도 눈에 띈다. 9월 15일까지. 2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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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 “시 ‘괴물’ 발표 후회 안해… 운명이라 생각”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미안했어요. 문단 성폭력 고발을 여고생이 시작했거든요. 내가 너무 늦게 쓴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단 권력의 성폭력 행태를 폭로한 최영미 시인(58)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열린 신작 시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그는 6년 만에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1만 원·사진)을 냈다. 최 시인은 “당시 젠더 이슈에 관한 시 세 편을 써달라는 황해문화의 청탁을 받고 ‘괴물’을 쓰게 됐다”며 “후회를 아예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서 최 시인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된 변화와 일상을 원숙해진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보에 실었던 ‘등단소감’도 눈길을 끈다. 등단 직후 써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등단 후 문단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을 겪고 느낀 감정을 솔직히 적어 내려간 시다. 그는 “작년 봄 이후로 ‘왜 그걸(성폭력 사건) 지금 말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제가 침묵했던 것이 아니고 작가로서 표현을 했지만 시집에 넣지 못했을 뿐이다.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번 시집에 게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집에는 ‘괴물’을 포함해 ‘미투’ 운동에 관한 시 5편을 수록했다. ‘독이 묻은 종이’에서는 고은 시인과 벌이고 있는 재판을 언급한다. “직접적인 표현이지 문학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질문에 그는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나에 대한 칭찬”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문학성은 잘 몰라요.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관해 쓸 뿐이에요. 사람들이 제 언어를 ‘직구’라고 느끼지만 저는 변화구도 써요. 다만 훌륭한 투수는 변화구도 직구처럼 넣잖아요? 고립무원으로 살았지만, 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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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계 미투’ 주도 최영미 “‘성폭력 사건 왜 이제야 말하느냐’ 묻는다면…”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미안했어요. 문단 성폭력 고발을 여고생이 시작했거든요. 내가 너무 늦게 쓴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단 권력의 성폭력 행태를 폭로한 최영미 시인(58)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열린 신작 시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그는 6년 만에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1만 원)을 냈다. 최 시인은 “당시 젠더 이슈에 관한 시 세 편을 써달라는 황해문화의 청탁을 받고 ‘괴물’을 쓰게 됐다”며 “후회를 아예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서 최 시인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된 변화와 일상을 원숙해진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실었던 ‘등단소감’도 눈길을 끈다. 등단 직후 써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등단 후 문단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을 겪고 느낀 감정을 솔직히 적어 내려간 시다. 그는 “작년 봄 이후로 ‘왜 그걸(성폭력 사건) 지금 말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제가 침묵했던 것이 아니고 작가로서 표현을 했지만 시집에 넣지 못했을 뿐이다.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번 시집에 게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집에는 ‘괴물’을 포함해 ‘미투’ 운동에 관한 시 5편을 수록했다. ‘독이 묻은 종이’에서는 고은 시인과 벌이고 있는 재판을 언급한다. “직접적인 표현이지 문학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질문에 그는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나에 대한 칭찬”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문학성은 잘 몰라요.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관해 쓸 뿐이에요. 사람들이 제 언어를 ‘직구’라고 느끼지만 저는 변화구도 써요. 다만 훌륭한 투수는 변화구도 직구처럼 넣잖아요? 고립무원으로 살았지만, 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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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율금 작가 개인전 ‘유’는 ‘나’이며 동시에 ‘당신’

    이 전시장을 찾는 관객은 한 번쯤 그림 앞으로 눈을 바짝 가져간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밈에서 열리는 유율금 작가(61)의 개인전 ‘나는 어디에도 있으나,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이야기다. 작품 가까이로 다가서면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가득 찬 글자, ‘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40년 가까이 다른 일을 했던 유 작가는 둘째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함께 미술교습소를 찾으며 그림을 만났다. 이후 틈틈이 창고에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다른 모습을 찾으려 했다. 화면을 채운 ‘유’는 자신의 이름이자 당신을 의미하는 ‘You’이기도 하다. 작가는 “나를 숨기면서도 드러내고 싶은 감정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캔버스를 긁고 파내는 작업 속에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경험이 녹아 있다. 스스로 엄마가 된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애처로움, ‘집단’ 속에 살아가며 잃어버린 나, 그리고 공장지대에서 약사로 일하며 본 수많은 아픈 사람들까지. 작가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손가락을 잃은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나 나나 선택에서 배제돼 수동적인 삶을 살지만, 결국은 그 고통이 아름답게 꽃피길 바란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라고 말한다. 2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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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불공정했던 종교재판… 사법제도는 공정할까

    12세기 한 종교재판은 죄를 부력으로 따졌다. 죄인을 물에 빠뜨려 떠오르면 유죄, 가라앉으면 무죄라는 것이다. 이는 랭스 대주교 잉크마르의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음성이 울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없다”는 설명에 근거했다.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방식이다. 그런데 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던 시대에는 진실하고 공정한 재판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묻는다. 지금부터 900년 이후의 누군가는 우리의 사법제도를 어떻게 볼까? 저자는 후손들이 우리가 신성 재판을 대할 때 못지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도 직관이 몸에 배어 오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로젠바움의 죽음이 단적인 예다. 로젠바움은 강도에게 맞아 쓰러졌지만, 옷에 묻은 토사물 때문에 주취자로 오인받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그를 본 구급대원, 경찰, 의료진은 토사물로 인한 혐오감 때문에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처럼 의식 너머의 여러 인지적 요인이 사법제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강압적 심문 기법, 잘못된 기억을 가진 목격자,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넘기지 않는 검사, 사람인 이상 편견을 가진 배심원과 판사까지. 성역으로 여겨졌던 사법제도의 구멍을 흥미진진한 문체로 파헤친다. 이를 보완할 개혁안까지 2장에 걸쳐 조목조목 제시한 수작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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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엄마로 기억된 日 배우… 그녀가 나답게 사는 법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팬이라면 늘 엄마 역할로 등장한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의 개봉으로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는 그녀와의 작업을 “진검승부”라고 했다. 극중 해변에서 읊조린 대사 “다들 고마웠어…”가 첫 촬영 애드리브라면서 말이다. 유쾌하면서 강단 있는, 그럼에도 헌신적이어서 그리운 엄마를 연기한 배우 키키 키린의 120가지 말을 모았다. 영화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준 키키 키린의 전체 모습은 더 깊고 사랑스럽다. 처음 배우를 할 땐 “그 얼굴론 시녀 역할도 못 맡는다”는 소리를 들었고 로커와 결혼해 43년 동안 별거혼을 유지하며 혼자 아이를 키웠다. 유머러스한 표지사진처럼 ‘자기답게 사는 여자’ 그녀의 말들이 단단하게 반짝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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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老거장의 마지막 5년

    화가 박생광(1904∼1985)은 말년에 한국적인 채색화로 화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평생 수묵화를 그려온 작가는 눈을 감기 직전 5년여 동안 돌연 한국의 오방색과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그림을 쏟아냈다. 외부와의 교류도 끊고 작업했던 그의 곁을 지킨 이는 아들 박정 씨(74)다. 현재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생광전’(10월 20일까지)은 15년 만의 회고전으로 회화와 드로잉 등 162점으로 구성됐다. 박 씨를 17일 만나 박 화백의 마지막에 대해 인터뷰했다. 이를 박 씨의 육성으로 재구성했다. 일본에 머무르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한국에 오셨다. 여든이 다 된 아버지가 다시 일본으로 가려 하자 가족이 붙잡았다. 며칠을 생각하던 아버지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가지 말까” 하더니, 일본의 그림을 가져오라 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그림은 8호 캔버스에 작게 그린 ‘무속’이었다. 이는 후에 대작으로 그려지고, 1985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의 ‘르살롱-85: 한국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예술전’ 포스터가 됐다. 당시 아버지의 그림을 본 후배 작가들은 “지금 그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왜 이상한 걸 시작하느냐”고 했다. 아버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딴생각이 있어 그렇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내게 “게네는 모른다. 40대부터 우리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단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담은 ‘역사 인물 시리즈’는 호암미술관에서 가져온 피카소의 ‘게르니카’ 포스터에서 시작했다. 아버지는 포스터를 보고 “역사를 그려야겠다”고 하셨다. 당시 후두암을 앓고 계셨는데 의사가 1년 혹은 2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아버지에게는 이를 전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계획이 있으니 빨리 말해줘야 한다”고 독촉하셔서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대작 200점 시리즈를 계획하셨다며 작업실 문 앞에 ‘출입금지’를 써 붙이고 작업에 몰두하셨다. 하지만 계획의 절반밖에 이루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행운이 찾아왔다. 동아시아 기획전을 위해 1984년 10월 한국에 온 아르노 오트리브 프랑스미술가협회장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우연히 아버지 작품을 봤다. 오트리브는 “이 젊은 작가는 누구냐”고 물었다. “젊은 작가가 아닌 노(老)대가”라는 답변을 듣더니 당장 작업실로 가자고 했단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 겸 작업실로 온 오트리브는 “한국은 일제강점기도 겪었으니 게르니카 같은 작품이 나올 법한데 왜 풍경에만 집착하나 싶었다. 이게 바로 세계적인 그림이다”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파리 전시에 초청했다. 오트리브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버지는 대표작인 ‘전봉준’과 ‘역사의 줄기’를 제작하셨다. 차기작으로 안중근을 그려야겠다며 나를 데리고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가서 사진을 찍게 하고 스케치도 해보셨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1980년을 전후로 시작한 아버지의 불꽃같은 마지막 작업은 1985년 7월 막을 내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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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택가 골목길 ‘커뮤니티 바’… “소비 아닌 소통을 추구합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핫 플레이스’가 불과 몇 년 만에 썰렁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현상은 이미 오래된 문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된 원인으로는 무리한 임대료 상승이 꼽힌다. 장사가 잘되면 임대료가 올라 지역이 특색을 잃고 발길이 끊기는 악순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지역에 몰려든 다음, 식상해지면 떠나고 마는 ‘일회용 소비’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 과시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망을 형성해 오래 지속되는 공간을 실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에 문을 연 ‘공집합 상도’는 동네 청년이 자유롭게 오가는 ‘커뮤니티 바’다. 주거 공간이 대부분인 지역에 생긴 낯선 공간이지만, 금방 조용히 찾는 ‘혼술족’과 단골이 생겼다. 공집합을 기획한 이들은 블랭크 건축사사무소의 문승규(32) 김요한(32) 대표. 17일 두 번째로 서울 용산구에 문을 연 커뮤니티 다이닝 바 ‘공집합 후암’에서 이들을 만났다. ‘공집합’의 특징은 공간에 투자한 주민이 직접 바를 운영하는 ‘호스트 나이트’가 열린다는 점이다. 문 대표는 “단순한 술 판매가 아니라 찾는 사람이 바텐더가 되고, 매출 일부를 가져가면서 공간을 함께 소유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독특한 형태는 그들이 상도동에 거주하며 얻은 경험에서 나왔다. 김 대표는 “일상에서 편의점이나 마트, 카페 외에 다니는 곳이 많지 않았다”며 “술을 마시기 위해 이태원이나 연남동 등 번화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소비를 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기존 상업공간이 술의 ‘소비’에 초점을 둔다면, 공집합은 ‘소통’이 목적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을 추구한다.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한 바 체어 대신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있는 평범한 테이블과 콘센트를 놓았다. 바텐더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웠던 바는 1m 폭으로 넓혀, 원할 때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로 조정하고 조도도 높였다. 반려동물 입장을 허용했더니, 강아지와 산책하고 가볍게 한잔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여성들도 안심하고 찾을 수 있어 호응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영업 공간이 ‘소비’를 부추기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놀랍게도 공간이 유지될 정도의 수익은 생겨나고 있단다. 게다가 건축사사무소인 블랭크의 건축·설계 업무로 생기는 수익이 있어 ‘공집합’에서 필요 이상 이윤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문 대표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블랭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쇼룸’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블랭크는 이제 지방으로 눈을 돌리려 한다. 다음 프로젝트로 지방의 빈 공간을 쓸모 있게 변화시키는 ‘유휴’를 준비하고 있다. 올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정착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빈 공간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취지로 지은 이름 ‘블랭크’의 연장선이다. 문 대표는 “과거에는 ‘짓는 건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잇는 건축’이 중요하다고 한다. 건축이 탄생해 운영되기까지의 생애주기를 고려해야 하고, 그 점에서 ‘참여’와 ‘소통’하는 건축을 계속 고민하고 싶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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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드라미 위를 나는 풍경… 김지원 ‘캔버스 비행’전

    화려한 꽃 그림은 여전히 상업적으로 인기를 끄는 장르지만 누군가는 ‘이제 시장에서 꽃 그림을 그만 보고 싶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꽃 그림이 단순히 장식에만 쓰이는, 깊이가 없는 소비적 그림이라는 이유에서다. ‘맨드라미 작가’로 잘 알려진 김지원 작가(58)도 꽃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화가는 꽃의 화려함보다 야생성에 집중해 주목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김지원의 개인전 ‘캔버스 비행’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김 작가의 대표작인 ‘맨드라미’ 시리즈 신작을 비롯해 ‘풍경’ ‘비행’ ‘무제’ 연작 등 회화, 설치, 드로잉 작업 90여 점을 새롭게 공개한다. 2000년부터 맨드라미를 그려 온 작가는 처음에는 사람의 뇌, 소의 천엽, 고교시절 교련복 무늬를 떠올리게 하는 꽃의 독특한 형태에 끌렸다고 한다. 꽃이 “징그러워 작업실 밭에 심어놓고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맨드라미 작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맨드라미의 붉은색과 꿈틀대는 형상, 그 맨드라미를 감싸는 서정적인 표현이 새로운 장식성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캔버스 비행’이라는 제목처럼, 맨드라미가 아닌 다른 작품을 전면에 배치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붉은 기운을 쫙 뺀 맨드라미 대형 회화와 ‘비행’ 연작이 관객을 마주한다. 이전의 ‘맨드라미’나 ‘풍경’ 시리즈가 작가의 눈높이에서 그려진 그림인 데 비해 ‘비행’은 제목처럼 살짝 높은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모형 비행기는 캔버스 나무틀과 다 쓴 붓, 주워 온 나뭇가지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머무는 작업실에 모형 비행기를 매달아 놓고 그린 이 작품들은 ‘맨드라미 작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워질 무렵인 2013년 시작했는데, 여러 작품을 한데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들은 작업실 벽에 걸린 드로잉, 천장에 모빌처럼 달린 모형 비행기 등 여러 대상물을 정물처럼 그렸다. 모형 비행기를 매단 선이 어지럽게 얽히고 파편이 흩어져 마치 추락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인간이 만든 무기 중 가장 거대하며 세계 경찰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항공모함’은 어찌 보면 맨드라미와 같다. 욕망과 혁명, 연정, 독사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비행’을 그리기 전 작업실 풍경을 일기처럼 메모한 ‘무제’ 드로잉 연작도 전시장에서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김 작가는 이메일 주소도 ‘캔버스김’일 정도로 30여 년 동안 회화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작가는 캔버스 속에 드러나는 대상의 형태에만 집중한 것이 특징적이다. 작가가 “맨드라미와 항공모함이 같다”고 말한 것처럼, 맨드라미의 모양과 색깔, 비행기가 어지럽게 얽힌 형태 모두 캔버스 속에 조형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김 작가는 인하대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미술학교(슈테델슐레)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제15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했고 대구미술관(2015년), 금호미술관(2011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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