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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촌과 경기장 시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평창 올림픽에 크게 만족한다.” 25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내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결산 기자회견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구닐라 린드베리 IOC 조정위원장도 “모든 사람이 평창 올림픽은 역대 겨울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잘 조직되고 운영된 대회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다”고 말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이 국내외의 호평 속에 17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9일 개막한 평창 올림픽은 역대 최대 규모인 92개국, 2920명의 선수가 참가해 102개의 금메달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9개월 전만 해도 평창 올림픽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바흐 위원장의 말처럼 평창 올림픽은 우려와 걱정 속에 출발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대회 운영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IOC로부터 와일드카드를 받은 북한 선수 46명이 극적으로 참가하면서 2007년 창춘 아시아경기 이후 11년 만의 남북 공동 입장이 성사됐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서는 올림픽 사상 처음 단일팀이 구성됐다. 9일 개회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해 스포츠를 통한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동시에 ‘평화 올림픽’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들었다. 바흐 위원장은 “단일팀과 공동 입장은 스포츠를 넘어서는 강력한 평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했다”고 강조했다. 평창 올림픽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입장권은 판매 목표치(106만8000장) 대비 100.9%가 팔렸다. 유료 누적 관중은 평창 올림픽 플라자와 강릉 올림픽파크 방문객을 포함해 138만여 명이나 된다. 기록 면에서도 세계 신기록 3개와 올림픽 신기록 25개가 양산되는 등 풍성한 기록이 쏟아졌다. 한국 선수단은 겨울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썰매(스켈레톤 윤성빈 금메달, 봅슬레이 남자 4인승 은메달)와 설상(스노보드 이상호 은메달), 컬링(여자 은메달)에서 메달을 따는 등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선전했다. 모두 17개로 역대 겨울올림픽 최다 메달(종전 2010 밴쿠버 14개)을 딴 한국 선수단은 종합 7위(메달 개수 기준 공동 6위)에 올랐다. 목표로 삼았던 8-4-8(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선수들의 노력과 꾸준한 투자로 메달 종목의 다변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의 불협화음과 대회 초반 벌어졌던 자원봉사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 논란, 수송 대책 미비, 노로바이러스 발생 등은 흠으로 지적됐다. 이제 남은 것은 경기장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이다. 12개 경기장 가운데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강릉 하키센터, 올림픽슬라이딩센터, 정선 알파인경기장 등 네 곳의 사후 활용 방안이 정해지지 않았다. 개발 이전 상태로 복원할 가능성이 높은 정선 알파인경기장을 제외한 3개 시설은 올림픽 이후 국가대표 훈련시설 등으로 존치될 가능성이 높다. 평창=이헌재 uni@donga.com·최지선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평창과 한국은 올림피안들의 가슴속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장 안에서 92개국에서 온 선수 2920명은 메달에 울고 웃었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모두 환하게 웃었다. 특히 신세대 선수들답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 탐방(#Korea adventures)’ 해시태그를 달며 이색 문화를 즐겼다. 전 세계에서 모인 만큼 한국 문화를 즐기는 모습도 다양했다. 한복을 입고 탈을 쓴 채 인증샷을 남기는 ‘전통문화형’이 있는가 하면, 너구리 카페를 들러 “한국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며 엄지를 치켜세운 ‘체험형’도 있었다. 삼겹살, 산낙지 사진을 찍어 올린 ‘식도락형’도 빼놓을 수 없다. 올림픽 기간 동안 한국을 즐긴 올림피안들의 모습을 담았다. 평창=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다치지 말고 마지막까지 건강히 경기하고 돌아갔으면 해요.”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OAR)’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9)가 ‘엑소 오빠들’의 응원에 힘입어 역전극을 쓸 수 있을까. 21일 강원 평창 메인프레스센터(MPC)는 특별한 손님을 맞았다. 이날 쇼트프로그램 경기를 치른 메드베데바가 가장 만나고 싶어 했던 아이돌 ‘엑소(EXO)’다. 엑소는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 축하 공연을 맡아 가수 씨엘(CL)과 함께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메드베데바의 엑소 사랑은 각별하다. 메드베데바는 11일 피겨스케이팅 팀이벤트(단체전)에서 자신이 가진 세계기록을 경신한 뒤 “엑소 덕분에 경기를 잘할 수 있었다. 모든 멤버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에 왔으니 꼭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팬심’을 숨기지 않는다. 메드베데바의 인스타그램에는 엑소 히트곡인 ‘몬스터’ ‘로또’를 틀어놓고 빙상 위에서 춤추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엑소 멤버 수호는 “저희 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랑해줘서 고맙다”며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평창 올림픽 폐회식은 흥겨운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엑소, 씨엘 등 한류 스타들과 세계적인 DJ가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조직위원회는 “개회식에서 메시지 전달에 힘썼다면 폐회식은 선수들이 대회를 무사히 마친 걸 축하하는 자리다. 현대적인 공연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또 “엑소와 씨엘 외에도 깜짝 스타가 등장한다. 외국에서도 좋아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평창=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중국은 임피딩 반칙, 캐나다는 진로 방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20일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선에서 중국과 캐나다가 실격한 이유를 21일 밝혔다. ISU는 “중국 판커신이 3바퀴를 남기고 아웃코스에서 인코스로 들어가려던 중 한국 최민정에게 임피딩 반칙을 범했다”고 설명했다. 임피딩 반칙은 △고의로 상대를 방해, 가로막기, 공격을 한 경우 △몸의 어느 부분으로 다른 선수를 미는 경우 등에 선언된다. ISU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기존보다 강한 임피딩 반칙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최민정도 여자 500m 결선에서 2위로 골인했지만 임피딩 반칙으로 탈락했다. ISU는 캐나다에는 ‘진로 방해’를 적용했다. 주자가 아닌 선수들은 주로 안쪽에 있어야 하지만 캐나다 선수가 결승선 부근의 주로 안쪽 라인 부근을 침범해 있었고 한국과 중국의 레이스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대표팀은 판정에 불복하고 있다. 중국 리옌(李琰)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 팀이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경기에서 심판 판정 잣대는 일관성,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심판 판정을 바꿀 순 없더라도 올림픽에선 공정한 경기가 이뤄져야 한다”며 ISU에 제소할 의사를 밝혔다. 중국 언론도 격앙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중앙(CC)TV는 중국 출신 국제심판의 평론을 통해 “캐나다 선수의 터치 장면, 한국 선수가 넘어지는 장면, 중국 선수가 한국 선수를 추월하며 손을 쓰는 장면 등 여러 규정 위반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환추시보도 “중국 팀은 실격 판정을 받았지만, 그에 앞서 한국 선수가 넘어지며 캐나다 선수의 진로를 방해한 행위는 실격 판정을 받지 않았다”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중국 누리꾼들은 최민정 등 한국 선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 쇼트트랙의 수치다’, ‘역겹다’ 등의 악성 댓글 수천 건을 달고 있다.유근형 noel@donga.com / 평창=최지선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선수(OAR)’ 한 명이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메달리스트 중에서는 처음 적발된 사례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반도핑분과는 19일 “OAR 선수인 알렉산드르 크루셸니츠키(26·사진)에 대한 중재 절차가 개시됐다”고 밝혔다.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에서 동메달을 딴 크루셸니츠키의 소변 A, B샘플 모두에서 ‘멜도늄’이 검출됐다. CAS는 크루셸니츠키에게 소명 기회를 준 뒤 징계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멜도늄은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하는 약물이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2016년 1월 금지약물로 지정했다. 테니스 스타인 마리야 샤라포바(러시아)가 복용한 사실이 적발돼 2년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던 약물로 알려졌다. 크루셸니츠키는 미모의 컬링 선수이자 아내인 아나스타시야 브리즈갈로바(26)와 팀을 이뤄 화제가 됐다. 도핑이 사실로 드러나면 크루셸니츠키 부부는 동메달을 박탈당한다. 4위였던 노르웨이가 동메달을 가져간다. 6위로 대회를 마감한 한국의 이기정-장혜지 조는 5위가 된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러시아는 폐회식에도 국기를 들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는 지난해 불거진 ‘도핑 스캔들’ 때문에 올림픽에서 국호와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징계를 받고 있다. IOC는 올림픽 기간 러시아가 ‘클린’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24일 열릴 집행위원회에서 징계를 해제하고, 폐회식에는 국기를 들 수 있도록 할 방침이었다. 러시아 선수들은 “메달보다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며 폐회식에 국기를 들고 입장하기를 희망해왔다.평창=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가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 도중 일본의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9일 개회식 도중 일본 선수단 입장 차례가 되자 NBC 해설자 조슈아 쿠퍼 라모는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을 점령한 나라다. 한국인들은 일본이 좋은 문화적, 기술적, 경제적 본보기가 됐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라모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국제컨설팅회사 공동최고경영자를 지냈으며 아시아통으로 꼽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작가로 중국 칭화대 교수로 베이징에 거주한 적이 있다. 베이징 올림픽 때도 개회식 중계를 맡았다. 중계 직후 미국 내 한인 교포들이 먼저 분노를 쏟아냈다. 이들은 라모의 해설과 문제를 지적하며 “몹시 불쾌하다” “한국 정부가 공식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누리꾼들도 NBC 올림픽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몰려가 “사과하라”는 댓글을 남겼다. 현재 한국에서는 NBC 올림픽 계정에 접근이 안 되는 상태다. NBC는 10일 오전 생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인들이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사과한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성백유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대변인 역시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NBC에 즉각 항의했고 사과 서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NBC 기자단을 추방해달라”는 요청까지 올라오고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43)는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일본이 아시아에 저지른 잔인한 역사를 제대로 알리자”며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평창=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가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 도중 일본의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9일 개회식 도중 일본 선수단 입장 차례가 되자 NBC 해설자 조슈아 쿠퍼 라모는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을 점령한 나라다. 한국인들은 일본이 좋은 문화적, 기술적, 경제적 본보기가 됐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라모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국제컨설팅 회사 공동최고경영자를 지냈으며 아시아통으로 꼽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작가로 중국 칭화대 교수로 베이징에 거주한 적이 있다. 베이징 올림픽 때도 개막식 중계를 맡았다. 중계 직후 미국 내 한인 교포들이 먼저 분노를 쏟아냈다. 이들은 라모의 해설과 문제를 지적하며 “몹시 불쾌하다” “한국 정부가 공식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누리꾼들에게도 NBC 올림픽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몰려가 “사과하라”는 댓글을 남겼다. 현재 한국에서는 NBC 올림픽 계정에 접근이 안 되는 상태다. NBC는 10일 오전 생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인들이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사과한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성백유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대변인 역시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NBC에 즉각 항의했고 사과 서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NBC 기자단을 추방해달라”는 요청까지 올라오고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43)는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일본이 아시아에 저지른 잔인한 역사를 제대로 알리자”며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 평창=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아리랑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한국 원윤종(33·남자 봅슬레이)과 북한 황충금(23·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맞잡은 ‘한반도기’가 나타나자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남남북녀(南男北女)’ 기수를 따라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행진을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3만5000여 명의 관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남북 선수들이 ‘코리아’란 이름으로 공동 입장하기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흐뭇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이들을 환영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었다. 9일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이뤄진 남북 공동 입장은 ‘눈과 얼음의 축제’ 겨울올림픽에 평화의 의미를 더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남북한 선수들의 국제 스포츠 대회 공동 입장은 2007년 창춘 겨울아시아경기 이후 11년 만이자 역대 10번째다. 1988년 서울 여름올림픽에 이어 3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린 평창 올림픽은 이로써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남북한 선수들은 92개 참가국 가운데 마지막인 91번째로 입장했다. 이번 대회 출전국은 92개국이지만 남북한이 하나가 돼 입장하면서 91번째가 됐다. 이날 공동 입장에는 우리나라 선수단 147명(선수, 임원 포함), 북한 선수단 50여 명 등 약 200명이 참가했다. “안녕하세요, 평창”이라는 한국말로 개회식 연설의 말문을 연 바흐 위원장은 “통합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오늘 한국과 북한 선수들이 공동 입장을 한 것이다”고 말했다. 바흐 위원장은 한국말로 “자원봉사자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전해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는 또 “2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여름올림픽에서 처음 출전한 난민팀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평창에서 남북한 선수들은 전 세계에 또 한번 강력한 평화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바흐 위원장에 이어 연단에 선 문 대통령은 “제23회 동계올림픽 대회인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회를 선언합니다”라고 17일간의 겨울 스포츠 축제의 개막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서 기자단에 보낸 인사말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냉전의 벽을 허물고 동서 화합의 장을 열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의 마음을 담아 평창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고 강조했다. 이날 개회식을 찾은 북한 응원단은 “통일 조국” 등을 외치며 연신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공동 입장 시 흘러나온 아리랑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경기 부천에서 개회식을 찾은 장은진 씨(21)는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입장할 때 뭉클하면서도 감격스러웠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으로 발전해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라 머리 감독(캐나다)이 이끄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35명은 이날 개회식에 모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단일팀의 한국 박종아와 북한 정수현은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서 의미를 더했다.평창=이헌재 uni@donga.com·최지선 기자}
강원 평창군과 인근 지역에서 근무하던 평창 겨울올림픽 보안요원과 경찰 등 54명이 7일 노로바이러스 감염자로 추가 확진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전날 확진된 32명을 합쳐 이 일대 노로바이러스 감염자가 총 86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노로바이러스는 위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감염되면 1∼2일 안에 구토, 설사, 오한,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오염된 음식물 또는 물을 섭취하거나 감염자가 손을 씻지 않고 만진 수도꼭지, 문고리 등을 다른 사람이 손으로 만진 후 오염된 손이 입에 닿으면 감염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한 대상은 설사 증상자가 집단 발생한 평창군 호렙오대산청소년수련관에 머문 983명과 강릉시에서 순찰 업무를 하던 경찰 29명, 프레스센터에 머물던 기자 4명 등 총 1102명이다. 이 중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은 일부다. 앞으로도 확진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올림픽 출전 선수 중에는 감염자가 확인되지 않았다. 보건당국은 감염 경로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역학 조사를 벌였지만 감염자들에게서 나온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이 서로 달랐고, 이들의 동선과 섭취한 음식도 겹치지 않았다. 따라서 예방을 위한 검사 인력을 집중 투입할 장소도 찾지 못했다. 문제는 당국이 이 같은 사태를 예측하고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로바이러스는 지난해 11월 질병관리본부가 ‘겨울올림픽 유행 우려 1위’로 꼽았던 감염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개최지 일대의 숙소와 음식점의 노로바이러스 방역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보안요원과 경찰의 숙소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통보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사전 점검하지 않았다. 조건희 becom@donga.com·최지선 기자}

법무부가 2일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45·사법연수원 33기) 사건을 계기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대책위원장에는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사진)을 위촉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와 산하 기관에서 발생한 성희롱·성범죄의 실태 전반을 점검하고 유사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날 검찰 내 성범죄 사건 전반에 대한 첫 직권 조사를 결정했다. 서 검사 측이 전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검찰이 외부 기관의 수술대에 올려진 셈이다. 인권위 직권조사단은 검찰 내 성범죄 진정, 제보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며 여성 검사와 수사관 등 여직원 전수 조사도 3개월간 실시한다. 대검찰청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은 과거에 검찰 내부에서 발생한 성추행 의혹 관련 자료를 대검에서 모두 이첩받아 광범위한 실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2015년 재경지검에서 여검사 성추행 의혹이 일자 제대로 된 사실관계 조사도 없이 남성 검사의 사표를 수리하고 무마시켰다는 사건도 조사 대상이다.황형준 constant25@donga.com·최지선 기자}

“할머니 된장찌개, 이제는 못 먹네요….” 손반석 씨(26)는 ‘할머니바라기’였다. 중학교 때까지 할머니 팔다리를 주물러드린 후에야 잠을 잤다. 기숙형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매달 한 번씩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 ‘할머니표’ 시골된장찌개와 김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지난해 배탈 난 할머니 배를 “손자 손은 약손”하며 쓸어드린 게 마지막 추억이 됐다. “마지막 가는 길이 편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신모 씨(85·여)의 발인을 앞두고 손자는 고개를 떨구었다. 신씨를 비롯한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첫 발인이 28일 열렸다. 오전 7시 반 세종병원장례식장에서 박모 씨(93·여) 유족들은 영정사진을 뒤따르며 눈물을 흘렸다. 울음을 참던 아들도 관이 화장장 불 속으로 들어가자 끝내 “엄마 가냐”며 오열했다. 이날 7명이 발인을 마쳤다. 각 병원 빈소에서는 자식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귀 어두운 어머님 보청기 맞춰드리고 이야기 많이 나눌걸….” 칠순 맏며느리 박모 씨는 잘 듣지 못하는 시어머니 이모 씨(95)와 대화가 잘 안 됐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보청기 구입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호랑이 할머니’로 불렸지만 가족이 모이면 직접 지은 밀로 수제비를 해주는, 속정 깊은 노인이었다. 입원하면서도 당신보다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을 걱정했다. 안타까운 사연들도 속속 드러났다. 사지와 장기, 근육이 점차 마비되는 루게릭병으로 3층 중환자실에 입원한 박모 씨(59)는 기계호흡기가 벗겨진 상태로 구조됐다. 박 씨는 걸을 수는 있었지만 횡격막이 마비돼 스스로 숨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박 씨 아들은 “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아버지를 구출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씨 유족은 경찰의 무성의함에 두 번 울었다. 박 씨 시신은 사인이 불분명한 것으로 분류돼 부검을 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 이유와 절차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박 씨 아들이 검안서를 보자고 요구했지만 “바빠 죽겠는데 왜 유난이냐. 궁금하면 직접 찾아오라”는 경찰의 답을 들었다. 정부 관계자들이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이 사실을 말하고 나서야 검안서를 볼 수 있었다. 박 씨 아들은 “경찰이 어떻게 유가족한테 그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다리차 영업을 하는 50대 남성은 이 장비로 환자는 10명 넘게 살렸지만 정작 자신의 장모는 살리지 못했다. 정모 씨(57)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장모님이 입원한 3층은 접근이 어려워 5층 사람들부터 구조했다. 장모님을 구하지 못해 비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는 지난해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찾았다. 유가족 대표 류건덕 씨(60)는 “이 땅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은 밀양 시내 장례식장 18곳에 빈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28일까지 희생자 38명 가운데 5명이 빈소를 차리지 못했다. 유족 박모 씨(64)는 전날 “밀양 시내 장례식장에 전부 전화했는데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날은 추운데 오도 가도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아들이 인터넷을 뒤져 창녕군의 장례식장을 겨우 구했다. 박연택 씨(48)도 전날 오후 2시까지 어머니 빈소를 차리지 못했다. 박 씨는 “밀양시에서는 전화 한 통 없고 돌아버릴 지경이다. 공무원들은 대체 하는 일이 뭐냐”고 말했다. 전날 밀양문화체육회관에 차려진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이날까지 밀양시민 등 5500명이 찾아 조문했다.밀양=최지선 aurinko@donga.com·안보겸·김정훈 기자}
한 사람의 손길이라도 더 필요한 순간이었다. 검은 연기는 병원을 휘감고, 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26일 오전 화마에 휩싸인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앞에는 애가 탄 보호자들과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환자들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업거나 부축했다. 불이 막 번지기 시작한 이날 오전 8시경 병원 앞에 있던 시민 20여 명은 뒤도 보지 않고 구조에 나섰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우영민 씨(26)는 “사람들이 병원 창문으로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다른 시민들과 함께 이불을 펴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받았다”고 말했다. 보호자와 가족도 뛰어들었다. 간호조무사 김모 씨(37)의 남편 김모 씨(37)는 “불이 났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수라장이 된 응급실 앞에서 정신을 잃은 환자들을 직접 구급차까지 옮겼다. 어머니가 2층에 입원해 있던 손모 씨(49)는 사다리차와 소방슬라이드(미끄럼틀형 구조기구)가 흔들리지 않게 밑에서 잡고 받쳤다. 더 이상 구할 사람이 없다는 소방관 말을 듣고는 기구가 얼지 않도록 옆으로 치워뒀다. 그러나 이들의 아내와 어머니는 모두 숨졌다.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남을 배려한 환자도 있었다. 독감 때문에 23일 입원해 27일 퇴원을 앞둔 박평안 군(19). 201호 병실에서 밥을 먹다가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는 뛰쳐나와 연기가 적은 205호로 들어갔다. 소방대 대피용 사다리가 눈에 띄었지만 박 군은 다른 환자 4명을 내려 보내고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박 군은 “붕대를 한 다른 환자가 보여서 순간적으로 결정했다. 당황스럽고 무서웠지만 본능적으로 양보한 것 같다”고 말했다.밀양=최지선 aurinko@donga.com·사공성근 기자}

50년 전 벌어진 ‘1·21사태’ 때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 서장 최규식 경무관(당시 36세)과 정종수 경사(당시 33세)가 숨졌다. “육탄으로 서울을 지켰다”는 칭송을 받은 두 경찰의 50주기 추도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고개에서 열렸다. 최 경무관과 정 경사는 1968년 1월 21일 오후 10시 10분경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을 자하문고개 초소(현 청운실버센터)에서 맞닥뜨렸다. 청와대를 습격하려 침투해 인왕산을 타고 넘은 이들은 청와대 대통령집무실까지 약 500m를 남겨 뒀다. 최 경무관이 “누구냐” 하며 제지하자 이들은 외투 속 기관단총을 꺼내 난사했다. 최 경무관은 가슴에 맞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복부 등에 4발을 맞은 정 경사는 열흘 뒤 병원에서 운명했다. 자하문고개에는 최 경무관 동상과 정 경사 흉상이 서있다. 추모비만 있던 정 경사의 흉상은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이 세웠다. 이날 추도식에는 최 경무관과 정 경사의 유족 5명과 이주민 서울경찰청장, 김기현 대통령경호처 경비안전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배화여고 학생 39명도 ‘당신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리본을 달고 자리를 지켰다. 최 경무관 장남 최민석 씨(56)는 추도사에서 “아버지의 호국정신이 경찰정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경사 아들 정창한 씨(63)는 “평창 올림픽 단일팀 등 남북 화해 무드라고는 하지만 1·21사태 같은 역사를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순직 경찰의 희생 덕분이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후배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추도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Halmoni’와 함께하겠다.” 1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18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한 니샤 싱 씨(38·여)의 손팻말에 적힌 내용이다. Halmoni는 할머니 발음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인도에서 온 싱 씨는 이화여대 ‘글로벌 임파워먼트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이날 수요집회 현장을 찾았다.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의 여성에게 여성인권 향상과 공동체 발전 방안을 교육하는 것이다. 싱 씨 외에도 18명이 수요집회에 동참했다. 짐바브웨에서 온 앤절라인 마코레 씨(28·여)는 “할머니들에게 끝없는 응원과 연대를 보낸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사바 하켐 초드리 씨(30·여)도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세대를 뛰어넘어 위안부 문제 집회가 이어진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들은 집회 참가자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일본 공식 사죄’ 구호를 외칠 때마다 노란 나비 손팻말을 흔들며 호응했다. 한국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는 “외국인 활동가들이 모국으로 돌아가서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국제적인 연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우울이 저를 집어삼켜요. 이 글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2일 서울 A대학 ‘대나무 숲’(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순식간에 댓글 400여 개가 이어졌다. 대부분 또래 대학생들이 적은 글이었다. “저도 돈이 없지만 같이 따뜻한 김치찌개에 밥 말아 먹으며 이야기해 봐요. 열 번이라도 살 테니 연락 주세요. 010-××××-××××” “저도 치료 중이라 그 마음 알아요. 하지만 지금 댓글 수만큼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등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페이지를 가득 메웠다. 비슷한 시간 해당 대학이 있는 관할 경찰서에 수십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전국 각지에서 “A대학에 자살을 시도하려는 대학생이 있는 것 같다”고 전화를 건 것이다. 경찰서 실종수사팀은 곧바로 글을 올린 사람의 인터넷주소(IP주소)를 확보했다. 해당 대학 기숙사 내 IP주소였다. 확인 결과 다행히 당사자는 무사했다. 페이스북 대나무 숲이 따뜻한 말로 또래 친구들을 살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대나무 숲은 2013년부터 대학별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주로 익명으로 사랑 고백이나 잡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취업난과 극심한 경쟁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20대가 늘어나면서 대나무 숲은 ‘익명 상담소’ 역할까지 하고 있다. 16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2년 5만2000명에서 2016년 6만4000명으로 4년 새 20%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10대, 40∼50대 우울증 환자는 줄었다. 대나무 숲에 종종 고민 글을 올리는 대학생 최모 씨(23·여)는 “상담받기에는 시간도 돈도 없다. 그래서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 종종 대나무 숲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7일 또 다른 대학 대나무 숲에도 삶을 정리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누구도 제 우울증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아요. 내일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낼 거예요.” 게시자는 구체적인 장소와 방법까지 적었다. 이때도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하며 “같이 차 마시며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저도 극단적 선택을 했었다. 지금 인생은 덤이다. 절대 죽지 말라”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이튿날 게시자는 “한강에 갔는데 한 여학생이 뛰어와 아무 말 없이 핫팩을 건네줬다. 밤새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고맙다”란 글을 올렸다. 청년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위로와 연락처를 건네는 이유는 ‘공감’이다. 댓글로 연락처를 남긴 여모 씨(32)는 “나 역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어 그 마음을 이해한다. 힘들게 살고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대나무 숲을 자주 이용하는 이모 씨(26)는 “댓글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글에 공감하며 나도 댓글로 그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또래의 고민을 보며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진심 어린 위로를 할 수 있다. 익명이라 더 솔직하게 고민을 드러낸다. 진솔한 위로가 오가다 보니 이런 문화가 더 활발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송영찬 기자}
10일 오전 5시 잠에서 깬 환경미화원 최영우(가명·61) 씨가 옷을 갈아입으며 곤히 잠든 아내(62)를 내려다봤다. ‘오늘도 별 탈 없이 지나야 할 텐데….’ 13년 전 아내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일곱 살’이 됐다. 뇌출혈로 쓰러져 뇌병변 3급 판정을 받았다. 7세 수준의 지능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에는 치매 판정까지 받았다. 최 씨 아내는 아프기 전 솜씨 좋은 미싱사였다. 바느질로 동생들 학비를 해결할 정도였다. 결혼 후에는 남매를 키우느라 자기 몸 돌볼 겨를이 없었다. 고혈압과 당뇨 증세가 있는데도 “약을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한다”며 치료를 미뤘다. 처음 1년간 최 씨는 아내 간호에 매달렸다. 하지만 식비와 병원비, 아내 기저귀 비용까지 마련하려면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환경미화원을 시작했다. 이날도 최 씨는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길 바랐다. 하지만 아내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내는 가스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잔뜩 둘렀다. 뇌병변 판정 후 아내는 직접 요리한 적이 없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인스턴트 냉동식품을 꺼내더니 프라이팬에 올렸다. 이날 오후 1시경 오전 일을 마치고 쉬던 최 씨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를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큰일 났어요. 아내분이… 당장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최 씨가 갔을 때 집 안팎은 곳곳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소방관은 “부엌에 있던 정수기의 호스가 녹아내리면서 물이 쏟아져 다행히 불은 빨리 꺼졌다”고 했다. 하지만 119 신고도, 대피요령도 모르는 최 씨 아내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최 씨는 “요양보호사를 더 일찍 오게 했어야 하는데…”라며 자책했다. 아내는 장기요양보험 3등급 판정을 받아 하루 3시간 요양보호사의 돌봄서비스를 받는다. 더 오랜 시간 서비스를 받으려면 매달 수십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최 씨는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아등바등 살았던 세월이 허무하다”며 고개를 떨궜다.송영찬 chanson@donga.com·최지선 기자}

10일 새벽 5시 환경미화원 최영우 씨(61·가명)는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곤히 잠든 아내(62·여)를 내려다봤다. ‘오늘도 별 탈 없이 지나야 할 텐데….’ 최 씨는 잠든 아내를 홀로 두고 집을 나섰다. 불안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13년 전 아내는 갑작스런 사고로 ‘일곱 살’이 됐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뇌병변 3급 판정을 받았다. 지능은 7세 수준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혼자 밖에 나갔다가 넘어져 상처투성이로 귀가하곤 했다. 주민들이 건네주는 음식을 마구 집어먹어 탈이 난 적도 있다. 얼마 전 치매 판정까지 받았다. 아내가 쓰러진 뒤 1년 동안 최 씨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병간호에 매진했다. 하지만 식비와 병원비, 아내 기저귀 값을 대려면 일해야 했다. 그래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아내가 잠든 새벽에 나가 오후 6시에 귀가하는 일상을 13년 간 반복했다. 최 씨는 이날도 평소처럼 하루가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는 평소와 달랐다. 가스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잔뜩 둘렀다. 아내는 뇌병변 판정 후 직접 요리한 적이 없다. 이날은 냉장고에서 인스턴트 탕수육을 꺼낸 뒤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렸다. 최 씨는 “아내가 병을 얻기 전 솜씨 좋은 미싱사였다”라고 말했다. 손끝이 야무져 일감이 많았다. 바느질로 동생들 학비를 댈 정도였다. 결혼 후에는 남매를 키우느라 자기 몸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목수이던 최 씨의 일감이 줄어 부담은 더 커졌다. 아내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었지만 “약을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한다”며 치료를 미뤘다. 아내는 2005년 홀로 집에서 쓰러졌다. 이후 다시는 미싱 앞에 앉지 못했다. 10일 오후 1시 경 청소를 마치고 쉬고 있던 최 씨는 요양보호사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큰일 났어요. 아내 분이…. 당장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최 씨는 아내와 살았던 서울 동작구의 한 임대아파트로 달려갔다. 집 주변은 검게 얼룩져 있었다. 아내는 프라이팬 위로 불이 치솟는 것을 보고도 119에 신고하지 못했다. 아내가 아는 전화번호는 오직 최 씨의 휴대전화뿐이었다. 출동한 소방관은 “정수기 호스가 열기로 녹아내리면서 물이 쏟아져 불은 빨리 꺼졌다”고 했다. 하지만 대피 요령을 모르는 아내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다. 요양보호사 방문을 불과 몇 분 앞둔 시점이었다. 아내의 빈소에서 만난 최 씨는 “요양보호사를 충분히 오랫동안 곁에 있게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아내는 장기요양보험 3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보호사를 하루에 3시간밖에 부를 수 없었다. 추가로 부르려면 매달 수십만 원을 부담해야 했다. 그래서 최 씨는 청소부 일을 마치면 부리나케 귀가해 밥을 차리고 아내를 목욕시키며 13년을 버텼다. 최 씨는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아등바등 살았던 세월이 허무하다”고 했다. 송영찬 기자 chanson@donga.com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9일 서울 성북구 A아파트 앞 경비초소. 주민 4명이 기름난로 주변에 빼곡히 둘러앉아 있었다. 3.3m² 남짓한 초소 안에는 커피 옥수수 귤 누룽지 등 먹을거리는 물론 휴지와 쓰레기봉투 같은 생필품도 있었다. 핫팩과 담요 등 보온용품도 보였다. 추워진 날씨 탓에 주민들은 두꺼운 외투에 모자, 장갑으로 ‘중무장’했다. 이들의 시선은 아파트와 35m 떨어진 공터를 향했다. 이 모습은 지난해 10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기숙사 부지는 1년째 허허벌판 A아파트 주민들이 한겨울 ‘보초 근무’에 나선 이유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머물 공공 기숙시설인 ‘행복기숙사’ 건립을 막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초소에 머물다 기숙사 터로 향하는 공사 차량이 보일 때마다 재빨리 달려가 맨몸으로 막아선다. 주민 박모 씨(67·여)는 “주민 40명이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실시간 상황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초소에 나오지 못하면 베란다에서 현장을 내려다보며 감시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공사 차량을 막아선 주민들과 시공사 관계자들이 마찰을 빚어 경찰까지 출동했다. 행복기숙사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이 건립을 추진한다. 저소득층 대학생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월세는 19만 원 수준이다. 대학가 원룸이나 고시원의 절반 이하다. 완공되면 서울 지역 대학생 750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학교 구분 없이 형편이 어려울수록 우선권이 주어진다. 지난해 2월 재단은 서울시와 성북구로부터 아파트 앞 국유지(5164m²) 사용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공사는 시작도 못 한 상태다. 주민들은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주민은 “대학생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내 손자가 본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대학생 기숙사 앞에는 콘돔이 하루에 몇 개씩 나온다고 한다. 기숙사가 생기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기숙사에 공실이 생기면 재단 측이 숙박시설처럼 임대사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동네가 모텔촌이 된다”고 주장했다.○ “기숙사가 혐오시설인가” 비판 고조 기숙사 착공이 1년 가까이 표류하자 주민들을 비판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은 주민들이 대학생 기숙사를 반대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재학생 이모 씨(23·여)는 월세 60만 원짜리 원룸에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벌었지만 취업 준비에 바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있다. 이 씨는 “기숙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결국 아파트 가격 떨어지는 걸 걱정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대학 기숙사를 마치 혐오시설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사학진흥재단 측은 등·하교 시간에 중장비 이동을 하지 않는 등 타협안을 제시했다. 또 임대사업 계획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행복기숙사는 서울의 모든 대학생에게 기회가 제공된다. 수요가 공급보다 항상 많아 임대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사가 지연되자 성북구는 지난해 9월 공청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공청회장 밖에서 ‘기숙사 반대’ 집회를 열었을 뿐 정작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성북구는 지난해 말 구와 주민, 재단, 시공사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협의체에는 참여하겠지만 기숙사를 짓지 말라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9일 서울 성북구 A아파트 앞 경비초소. 주민 4명이 기름난로 주변에 빼곡히 둘러앉아 있었다. 3.3㎡ 남짓한 초소 안에는 커피와 강냉이 귤 누룽지 등 먹을꺼리는 물론 휴지와 쓰레기봉투 같은 생필품도 있었다. 핫팩과 담요 등 보온용품도 보였다. 난로 위에는 물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추워진 날씨 탓에 주민들은 두꺼운 외투에 모자 장갑으로 ‘중무장’했다. 이들의 시선은 아파트와 35m 떨어진 공터를 향했다. 이 모습은 지난해 10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기숙사 절대불가” 감시하는 주민들 A아파트 주민들이 한겨울 ‘보초 근무’에 나선 이유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머물 공공 기숙시설인 ‘행복기숙사’ 건립을 막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초소에 머물다 기숙사 부지로 향하는 공사차량이 보일 때마다 재빨리 달려가 맨몸으로 막아선다. 주민 박모 씨(67·여)는 “주민 40명이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상황을 공유한다. 공사장비가 들어오면 출동하라는 안내방송을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초소에 나오지 못하는 날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공사 부지를 내려다보며 감시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공사차량을 막아선 주민들과 시공사 관계자들이 마찰을 빚어 경찰까지 출동했다. 행복기숙사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저소득층 대학생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 중이다. 월세는 19만 원 수준이다, 대학가 원룸이나 고시원의 절반 이하다. 완공되면 서울 지역 대학생 750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학교 구분 없이 형편이 어려울수록 우선권이 주어진다. 2017년 2월 재단은 서울시와 성북구로부터 아파트 앞 국유지(5164㎡) 사용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기숙사 부지는 여전히 허허벌판이다. 주민들은 대학생 기숙사가 마을 분위기를 해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사 부지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대학생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내 손자가 본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대학생 기숙사 앞에는 콘돔이 하루에 몇 개씩 나온다고 한다. 기숙사가 생기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차량이 오가면서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소음 탓에 정상적인 공부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주민 김모 씨(59·여)는 “기숙사 건립 결정 후 집값이 1억 원이나 떨어졌다. 기숙사를 죽어도 짓겠다면 내가 먼저 죽을 것”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 주민은 “기숙사에 공실이 생기면 재단 측이 숙박시설처럼 임대사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동네가 모텔촌이 된다”고 걱정했다.● 중재 노력에도 계속되는 ‘평행선’ 재단 측은 주민 우려를 감안해 등·하교 시간에 중장비 이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등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또 행복기숙사로 임대사업을 할 것이라는 의견도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행복기숙사는 서울의 모든 대학생에게 기회가 제공된다. 수요가 공급보다 항상 많아 임대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미 운영 중인 홍제동 연합기숙사의 경우 늘 대기자가 많다”라고 말했다. 공사가 지연되자 성북구는 지난해 9월 공청회를 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공청회장 밖에서 ‘기숙사 반대’ 집회를 열었을 뿐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성북구는 지난해 말 구와 주민 재단 시공사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협의체에는 참여하겠지만 기숙사를 짓지 말라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 휴일이라 출근하지 않은 차량이 주차장에 가득했다. 승용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승합차가 이중 삼중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주차 차량 사이에 남은 통행로 폭은 고작 3m 정도.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60)는 “그때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도 이 지경이니…”라며 한숨을 쉬었다.○ ‘참사의 교훈’은 어디에도 없었다 2006년 12월 중순 A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소방차는 신고 5분 만에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좀처럼 화재 현장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빼곡히 주차된 차량 탓이었다. 오전 4시 반에 일어난 불이라 운전자를 부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차량을 밀면서 하나하나 옮기는 작업이 시작됐다. 20분 만에야 고가사다리차와 펌프차가 들어섰다. 하지만 화마(火魔)를 피해 베란다 난간에 매달렸던 50대 여성은 결국 숨졌다. 11년이나 지났지만 A아파트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주차공간이 모자라 이중 삼중으로 차량을 세워놓고 있다. 차량 1대가 지날 정도의 통로만 겨우 확보된 상태였다. 소방차가 진입해 불을 끄려면 7, 8m의 공간이 필요하다. 주민 임모 씨(45·여)는 “한밤중이나 새벽에는 승용차 1대도 지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소방서는 4일 A아파트에 ‘소방통로 확보를 위해 이중 삼중 주차를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아파트 1층 현관에 붙은 공문을 보고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설마 또 불이 나겠느냐”고 말했다. 참사의 교훈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이곳뿐이 아니다. 5일부터 사흘간 동아일보 취재팀은 과거 화재로 인명 피해가 난 서울과 경기지역 5곳을 다시 가봤다. 주차 차량 탓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진 공통점이 있는 곳이다. 길게는 17년, 짧게는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소방차 불통’은 여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가 이면도로에도 차량이 꼬리를 물고 서 있었다. 2001년 3월 소방관 6명이 불을 끄다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한꺼번에 숨진 현장 주변이다. 골목길에 노란색 페인트로 ‘긴급차량 통행로’라고 쓴 글씨가 무색했다. 어른 1명이 지나갈 공간만 남은 곳도 있었다. 주민 최모 씨(55)는 “그때나 지금이나 불나면 다 죽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양보와 배려’만으로 참사 피할 수 없다 2015년 1월 발생한 경기 의정부시 도시형생활주택 화재는 필로티(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 구조와 드라이비트(외벽에 스티로폼 등을 붙이고 시멘트 등을 덧바르는 방식) 공법 등 여러모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비슷했다. 특히 주차 차량 탓에 소방당국의 초동 대응이 늦어진 건 판박이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현장 주변을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사후 대책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도 해당 지역은 아직 주정차 금지구역이 아니다. 일부 주민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화재 현장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불편해한다. 주정차 단속을 하면 손님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2016년 9월 일가족 5명 중 3명이 숨진 서울 도봉구 쌍문동 B아파트 화재 현장에서도 여전히 ‘겹겹이’ 주차가 반복되고 있었다. 한 경비원은 “주차 차량을 옮겨달라고 연락한 뒤 ‘경비가 불친절하다’고 관리사무소에 항의하는 경우가 있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2014년 9월 3명이 숨진 경기 시흥시 C아파트도 마찬가지. 주민들은 주차 상황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차 세울 곳이 부족한데 어떡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주차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때까지 손놓고 기다린다면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화재 현장에서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고, 주민과 지자체는 소방통로 확보를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소방청도 6월 27일 개정 소방기본법 시행에 맞춰 소방차 통행을 막는 불법 주차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무질서하게 주차한 차량의 경우 이동 과정에서 훼손돼도 보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소방대원이 책임지지 않는 미국 사례 등을 벤치마킹해 세부 시행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배준우 jjoonn@donga.com·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