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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천둥 번개 치는 날이면 잠을 못 잤는데, 어머니가 손을 잡아준 날 깊은 잠을 잤습니다. 그날 잠을 자야 비로소 꿈도 꿀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가 손을 잡아준 것처럼 꿈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단편소설 당선자 한정현 씨)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5년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전민석(중편) 한정현(단편) 조창규(시) 김범렬(시조·본명 김종열) 박선(희곡) 박지하(시나리오) 윤경원(영화평론) 이성주 씨(문학평론) 등 8명이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당선자들은 부푼 가슴으로 각오를 밝혔다. 시 부문 당선자 조창규 씨는 “제 안에 일어난 작은 변화로 세상을 밝히는 큰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중편소설의 전민석 씨는 “오랫동안 구애했는데 이제야 좀 더 다가와도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열렬히 사랑하고 더 뜨겁게 연애하고 싶다”고 했다. 희곡의 박선 씨는 “10년 동안 혼자서만 글을 쓰고 읽었는데 소통의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문학평론 부문 이성주 씨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는 장면을 읽다가 당선 소식을 접했다. 등단하면서 굴로 들어가게 된 셈인데 설레고 두렵다”고 했다. 심사위원인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격려사를 통해 “작가란,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고 여유롭게 삶을 누리려고 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직업”이라며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를 100%로 살기에 훌륭한 직업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축사를 통해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면서 생각의 폭이 좁아져 ‘디지털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며 “우리 문학이, 당선자들이 긍정적인 미래를 만드는 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소설가 오정희 구효서 은희경 백가흠 김숨, 시인 김혜순, 시조시인 이근배 이우걸, 문학평론가 권성우, 연출가 김철리, 극작가 배삼식,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인터뷰 모음집 ‘작가란 무엇인가’(사진)가 전 3권으로 완간됐다. 출판사 다른은 미국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 실린 250여 명의 인터뷰 중 국내 대학 문예창작학과 학생 100명, 소설가, 평론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36명을 선정해 12명씩 묶어 세 권으로 출간했다. 1권은 지난해 1월 출간돼 김연수 정이현 등 유명 작가의 추천을 받았다. 1953년 창간된 파리 리뷰는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로 불리며 노벨 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유명 작가와 인터뷰해 왔다. 짧게는 1, 2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한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창작론, 작가론 같은 굵직한 주제부터 취향, 습관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다뤘다. ‘작가란…’ 1권에는 하루키, 폴 오스터, 밀란 쿤데라 등, 2권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조이스 캐럴 오츠, 오에 겐자부로 등, 3권에는 줄리언 반스, 앨리스 먼로, 수전 손태그 등이 수록됐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거장 보르헤스는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목숨을 잃을 뻔한 뒤 단편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들려준다. “‘지금껏 수백 편의 논문과 시를 써왔지. 그런데 그걸 쓸 수 없다면 끝장이라는 걸 바로 알게 되겠지. 모든 게 끝이라는 걸.’ 그래서 전에는 해본 적이 없던 걸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단편소설을 써보는 일은 내 능력이 끝났다는 최후의 압도적인 타격을 대비하는 전 단계였습니다.” 작가 36명을 저마다 기준으로 분류해볼 수도 있다. 하루키와 토니 모리슨은 오전 4, 5시에 일어나 작업하는 ‘새벽파’, 이언 매큐언과 겐자부로, 돈 드릴로는 ‘아침파’, 그리고 여성 작가 도리스 레싱, 앨리스 먼로는 가사노동 시간을 쪼개 글을 쓴 ‘위대한 엄마파’였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김사인 시인(59)은 지난 1년 내내 어린 당나귀를 곁에 두고 살았다. 불현듯 찾아온 당나귀라는 단어와 이미지가 시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더 선명해졌다. 9일 서울 세종로에서 만난 시인은 당나귀를 이렇게 소개했다. “작은 몸으로 일만 하는 당나귀는 고집 세고 지저분하고 욕심이 많아요. 한편 천진난만하고 철부지입니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떠올리면 시어 당나귀는 이국적이면서 애조의 정서가 있어요. 그런데 그 애물 덩어리가 옆에서 떠나지 않으니까 버릴 수도 없고 견뎌내면서 데리고 다녀야겠구나 했어요.” 》김 시인은 최근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하며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라고 이름 붙였다. ‘가만히 좋아하는’(2006년) 이후 9년 만에 낸 시집이다. 정작 이 시집에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란 시도, 구절도 없다. 시인은 “애물 덩어리 당나귀를 내가 평생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또 슬펐다. 그 생각만 하면 정말 슬프고 착잡한데, 그런 마음이 시집 바닥에 깔려 있다”고 했다. 시인은 “시집에 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슬픈 시”들을 골라줬다. “기억 못하겠지요 그대도 나도/함께한 이 낯설고 짧은 시간을./두고 온 별들도 우리를 기억 못할 거예요./돌아갈 차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둔해진 몸으로./부연 하늘 너머 기다릴 어느 별의 시간이 나는 무서워요./어떤가요 당신은.”(은하통신―에스컬레이터에서 중) “바쁘게 허덕거리며 살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만히 서 있으면 이상한 고요가 찾아와요. 그럴 때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이들인가. 아후∼ 정말로 막막할 때가 있어요.” 시인은 지구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가만히 안으며 위로한다. 시 ‘바짝 붙어서다’에선 팔순의 폐지 줍는 할머니가 골목에서 승용차를 마주쳐 바짝 벽에 붙어 서자 “구겨졌던 종이” 같다며 “목이 멘다”면서 함께 운다. 시 ‘졸업’에선 취업난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건투를 빈다. “학자금 융자 없애는 마법 알바 시급 올리는 마법 오르는 보증금 막는 마법을 익히거라.” 보릿고개를 함께 견뎌낸 동년배에겐 시 ‘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를 들려준다. “보릿고개 바가지 바닥/봄날의 물그림자가 보석 같았네./밤마다 오줌을 쌌네 죽고 싶었네./그때 이미 아이는 반은 늙었네.” 시인의 말은 느려서 받아 적기가 참 편했다. 주변에선 그를 두고 “느림의 대가”라 부르기도 했다. 시인은 ‘달팽이’에서 영원한 시간 앞에서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느리다는 말이 흉이라고 생각지도 않지만 약간의 나무람 투도 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열이면 아홉은 느리다고 해요. 내겐 최적화된 속도니 자연스러워요. 여기서 더 빨라지면 시도 삶도 날림이 돼 버립니다. 달팽이란 시도 느림에 대한 핑계로 갖다 붙인 것도 있어요. 하하.” 시인은 지난해 12월부터 특유의 느린 말투로 시 전문 팟캐스트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 중이다. 그는 “시에는 애쓴 말, 산 말, 힘 있는 말이 담겨 있다. 그 좋음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시 대중화의 매개 노릇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시를 옷 입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옷도 입어봐야 진짜 가치를 알듯 그저 눈으로 산문 읽듯 독해하면 읽는 재미가 떨어지거든요.” 시인과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시집을 다시 읽었다. 부모가 정성으로 마련해 준 옷을 입은 듯 뭉클하고 황홀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연재 시작합니다. 재미있다고 동네방네 광고하세요.” 심상대, 한때 마르시아스 심이라 불리길 원했던 그가 2013년 5월 장르소설이 주로 올라오는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를 시작하며 남긴 인사다. 장르는 미스터리. 광고 문구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릉도원에서 봄마다 벌어지는 집단살인. 아름다움을 탐닉했다는 이유로 화형대에 오르는 여자. 사람들은 화형에 처할 또 한 명의 남자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웹소설을 다듬어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등단 25년 만에 내는 첫 장편이다. 소설 배경은 표지에 그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연상되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자 이름 없는 고을이다. 550여 년 전 병자사화의 참살을 피해 첩첩산중으로 숨어든 사육신 집안의 어린 오누이와 늙은 종복 12명이 세운 곳이다. 외부인 유입은 딱 두 차례뿐이었다. 자연환경이 비옥하고 풍족한 고을에선 모든 것이 공동 소유물이고 원하는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고을 밖을 나가는 걸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은 근친혼으로 마을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유전병이 발병한다. 마을 사람들은 미남미녀로 태어나지만 절반 이상 불임이 된다. ‘정 씻기 술’을 마시면 한 해 부부로 살았던 사람에 대한 애정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 출발을 하는 ‘새낭군맞이’ 풍습도 있다. 단, 함께 살다가 출산한 적이 있으면 다시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으며, 흔한 불임 탓에 아이는 온 고을 사람이 공유한다. 매해 봄 ‘이성과 재물’을 독점하고 싶어 하거나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 소망을 품는 젊은이들이 출현하는데, ‘아이와 행복’까지 공동 소유하려는 마을은 이들을 광증으로 몰아 화형시킨다. 어느 봄 이 마을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과 그의 부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생기고, 소설은 이 사건의 범인을 밝혀가는 데 플롯이 모아진다. 진범을 찾는 추리 기법의 미스터리 요소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독자를 소설 속 낯선 세계에 묶어 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를 전체를 위한 하나의 부속물로 취급하려는 마을에 균열을 내려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 소년의 광증은 ‘관념적이고 현학적’이다. 가족 관계를 터부시하는 고을에서 소년은 ‘나를 낳은 여자와 함께 나를 낳도록 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을 입에 올리며 ‘나’가 누구인지 탐구한다. 저자는 “결핍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는 소설 밖 현실 세계에도 균열을 낸다. 한 번 읽어보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싶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문화연수원과 사단법인 자비명상은 3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마가 스님과 함께하는 ‘2015 마음챙김 캠프, 화! 어쩌란 말이냐?’를 개최한다. 충남 공주시 태화산 자락의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열리는 이 캠프는 마음의 아픔과 슬픔이 뭉쳐 생기는 화병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문진건 캘리포니아대학원 심리학 교수, 한영용 음식전문가, 이윤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이 참가한다. 1차 접수 마감은 26일까지. 선착순 100명. 문의 자비명상 02-3666-0260, 한국문화연수원 041-841-5050}

1억 원 모금 프로젝트 ‘기적의 책 캠페인’은 올해도 계속된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지금까지 5400만 원 이상 모였다. ‘책 한 권, 벽돌 한 장, 책으로 이루는 꿈’이라는 모토로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과 교보문고(대표 허정도), 동아일보가 펼치는 이 캠페인은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지원한다. 매달 선정한 ‘기적의 책’ 20종을 교보문고 오프라인 14개 점포에서 구매할 때마다 권당 1000원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짓고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자동으로 기부된다. 기부액 1000원은 캠페인에 참가하는 출판사가 부담한다. 이 캠페인에 활발히 참가해온 출판사 푸른숲 김혜경 대표(62)를 만나 기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김 대표는 “책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귀한 상품이다. 책을 샀는데 남까지 도울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답했다. 출판계가 불황인데 손해가 크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출판사도 교보문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사 책을 홍보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하는 ‘착한 마케팅’”이라며 “책을 사는 사람도 책도 읽고 기부도 하는 큰 기쁨을 느끼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기적의 책 리스트에 포함된 푸른숲 책은 ‘나는 참 늦복 터졌다’(김용택),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아녜스 르디그),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박성제), ‘나를 찾아줘’(길리언 플린), ‘데뷔의 순간’(한국영화감독조합) 등이다. 1월에는 소설 ‘허삼관 매혈기’(위화)와 자기계발서 ‘쿨하게 생존하라’(김호)가 포함됐다. 김 대표는 “‘쿨하게 생존하라’는 젊은 세대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라며 “젊었을 때 읽었더라면 일과 여가의 시간 배분을 좀 더 균형 잡히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 창립을 주도하며 회장을 맡기도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가 김숨 씨(41·사진)가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39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수상작은 지난해 작가세계 여름호 수록작인 중편소설 ‘뿌리 이야기’다. ‘뿌리 이야기’는 철거민과 입양아, 일본군 위안부 여성 등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뿌리 들린 나무에 비유해 형상화했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최일남 김윤식 이태동 윤후명 김성곤)는 “산업화와 개발로 인한 현대사회의 황폐함과 현대인의 뿌리 뽑힘, 다른 곳으로의 이주가 초래하는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데 성공한 수작”이라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우수작으로는 손홍규 ‘배회’, 윤성희 ‘휴가’, 이장욱 ‘크리스마스캐럴’, 이평재 ‘흙의 멜로디’, 전성태 ‘소풍’, 조경란 ‘기도에 가까운’, 한유주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까지 7편이 선정됐다. 상금은 대상 3500만 원, 우수상은 각 300만 원이다. 시상식은 11월 초에 열린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젊은 날부터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은 순간을 파도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순간을 놓치는 것은 영원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매순간을 뜨겁게 치열하게 타오르곤 했습니다.”(서문에서) 등단 46주년을 맞은 한국시인협회장인 문정희 시인(68)이 시산문집 ‘살아 있다는 것은’(생각속의집·사진)을 출간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문 시인의 산문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시를 골라 함께 묶었다. 각 44편씩 담겼다. 시인은 책에서 “젊은 날의 나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나의 사랑과 절망이 그대로 드러난 글들”이라며 “모두가 순간의 삶, 바로 현재의 삶을 향한 나의 아프고 뜨거운 열정의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2015년 새해, 시인은 특유의 활기와 생기로 독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표제작인 시 ‘살아 있다는 것은’에서 시인은 “살아 있다는 것은/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함께 묶인 산문 ‘다시 오라, 눈부시게 빛나던 날들’에서 “나는 진실로 한순간 한순간을 섬광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 누구와도 다른 오직 나만의 모습으로 눈부시게 질주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 시인은 여고 시절 천부적인 재능을 뽐내며 시집 ‘꽃숨’을 출간하고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오직 시인이고” “시(詩)라는 모국어로 나 자신을 혁명하고” 싶다며 오로지 시만 팠다. 시 ‘목숨의 노래’에서 “목숨의 처음과 끝/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죽고 싶었다”고 했다. 문 시인은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이 나약하고 짧은 생명을 눈부시게 키울 수 있으랴”라고 썼다. ‘사랑’ 자리에 시, 문학밖에 놓을 것이 없다. 미모가 출중한 학생이 받는 상은 못 받고 ‘미스 건치’로 뽑힌 사연, 부부싸움 후 집을 박차고 나와 호텔 숙박부에 무직이라고 쓴 이야기, 아이 둘을 이끌고 30대 초반 미국 유학을 떠나 블루진을 입고 고군분투한 기억 등 시 밖의 시인의 삶도 들려준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강소천 곽종원 박목월 서정주 임순득 임옥인 함세덕 황순원.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5월 열릴 예정인 ‘2015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업적과 생애를 기릴 문인을 선정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기념문학제는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를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권위 있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특히 각 분야를 대표하는 거목들이 대거 포함됐다. 동시집 ‘호박꽃 초롱’을 쓴 아동문학가 강소천(∼1963),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지낸 평론가 곽종원(∼2001), 청록파 시인 박목월(∼1978), ‘국화 옆에서’의 시인 미당 서정주(∼2000), 광복 후 북에서 활동한 최초의 여성 평론가이자 서정주가 짝사랑했던 여성으로도 알려진 임순득(∼?), ‘월남전후(越南前後)’를 쓴 여성 소설가 임옥인(∼1995), ‘동승’의 극작가 함세덕(∼1950), ‘소나기’의 소설가 황순원(∼2000)까지 모두 8명이다. 최근 열린 문인 선정 회의에서 오간 얘기를 들어보면 문인들의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기념문학제 기획위원장을 맡은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와 기획위원인 강헌국 고려대 교수,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오창은 중앙대 교수, 서영인 평론가, 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식민지 시대였음에도 한국 문학이 활발하게 꽃을 피운 1930년대에 등단해 활약했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 황금기의 아이들’로 불러도 될 만하다. 1915년 한 해에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한꺼번에 태어났다는 게 믿기 어렵다.” “곤궁한 현실 속에서 문학적 성취가 뛰어났다. 식민지 시대에 등단해 한국 문학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공통점도 있다.” 후보들에 대한 찬반 토론까지 거쳐 8명이 최종 확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5월 해당 작가의 생애와 작품 활동을 조명하는 학술회의와 작품 낭독회, 유가족과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숭원 기획위원장은 “오늘의 문학이 어떤 토양에서 성장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밝혔다. 개별 작가의 유족이나 기념사업회, 학회도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박목월 시인의 아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학 노트 300권 분량의 육필 원고를 정리 중이다. 박 교수는 “노트에는 시 원고뿐만 아니라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시인이 발상을 어떻게 했고 어떤 과정으로 고쳐 썼는지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시작(詩作) 과정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집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황순원기념사업회는 올 9월로 예정된 황순원문학제를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황순원문학제는 해마다 개최되지만 올해는 특히 황순원 문학의 21세기적 의미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편소설 ‘소나기’의 이어 쓰기 공모전을 열어 책으로 출간할 계획도 세웠다. 황순원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인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예전에는 소나기의 주제도 사랑이라 부르기가 조심스러워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감정교류라고 했는데 이제는 사랑이라 당당히 불러도 될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미당기념사업회는 출판사 은행나무를 통해 서정주 시인의 전집을 출간한다. 4월 시 전집 5권을 시작으로 자서전, 시론 등 모두 20권을 내놓는다. 강소천 작가의 아들 강현구 씨는 1950, 60년대에 발간한 동화집 9권과 동시집 ‘호박꽃 초롱’ 등 10권을 맞춤법만 수정해 당시 출간했던 형태 그대로 복간해 선보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꿈을 이루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평범한 삶을 버리고 꿈을 좇고 있는 세 가지 사연을 소개한다. 남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박차고 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차린 창업가, 꿈꾸던 바다에서 일터를 얻은 예비 항해사, 취미였던 그림 그리기를 직업으로 삼은 웹툰 작가…. 자신의 꿈을 향해 과감히 도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다.창업 꿈 이루려 미국 유학도 포기했다 2013년 11월 어느 날 서울 중구의 한 카페. 미국 퍼듀대 동문인 김경태 씨(31)와 서한석 씨(29)는 이날 지인의 소개로 KAIST 출신의 김성현 씨(26)를 처음 만났다. LG전자, 신한금융투자, SK텔레콤 등 서로의 직장은 달랐지만 이들의 꿈은 같았다. 창업. 금세 마음이 통했다. 이듬해 봄 이들은 창업에 올인(다걸기)하기 위해 약속대로 사직서를 냈다. 세 명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직토’는 걸음걸이를 교정해주는 웨어러블 밴드 ‘아키(Arki)’를 생산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최근 미국 최대 소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총 16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모금했다. 전 세계 익명의 누리꾼들이 ‘아키’의 잠재력을 보고 십시일반 투자한 것이다. 사전 주문량만 1500대가 넘었다. 주변에서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나서는 이들을 “무모하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세계를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더 간절했다. 이 회사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성현 씨는 당초 장학금 8만 달러를 받고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모두 포기했다. 창업을 한 뒤로 몸은 더욱 바빠졌다. 한국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미국 등 해외에서 들어온 문의에 답하려고 밤을 지새운 적도 많다. 스트레스도 늘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서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박에 대한 기대감과 실패의 두려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때 그는 두통이 심해 근육이완 주사를 한 번에 17차례 맞은 적도 있다. 그런데도 왜 힘든 길을 택했을까. “정말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꿈을 먹고 살거든요.” 김성태 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직장에서는 월급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내일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취업 대신 웹툰 작가의 길로 “요즘 또래 친구들은 짧아도 1년은 취업 준비를 해요. 저도 웹툰 작가로 자리 잡는 기간으로 1년을 잡고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데뷔작인 네이버 웹툰 ‘여탕보고서’로 단숨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웹툰 작가 마일로(본명 박지수·25·여). 지난해 8월 부경대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취업 대신 웹툰 작가의 길을 택했다. 취미 삼아 틈틈이 만화를 그렸고 애니메이션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경험도 있어 만화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만화를 그리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전공을 살려 취업한 친구들이 열악한 근무 조건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본 것도 꿈을 좇게 된 이유였다. 그는 진로를 정한 뒤 앞만 보고 달렸다. 기존에 연재 중인 웹툰 작품을 샅샅이 살피며 누구도 그리지 않은 소재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택한 것이 여탕. 마일로는 ‘금남의 공간, 신비의 세계’인 여탕을 웹툰으로 옮겼다. 실리콘 부항, 접이식 방수방석, 핑크색 비닐 튜브톱, 일명 ‘여탕벅스’(물통에 각얼음을 채운 믹스커피)까지 여탕만의 디테일을 살려 에피소드를 그렸다. 여성의 나체를 전혀 야하지 않게 그리는 그림체도 인기를 모았다. 그는 “목욕탕을 자주 찾아 관찰했다. 여자들은 공감하고 남자들은 금남의 공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여탕보고서’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졸업 직전부터 아마추어 작가의 웹툰 경연장인 ‘도전만화’ 코너에 연재를 시작해 두 달 만에 ‘베스트 도전만화’를 거쳐 정식 연재 웹툰으로 승격됐다. 그는 “주변에선 빨리 자리를 잡았다곤 하지만 취업 대신에 선택한 일이라 불안했다. 안 되는 걸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마일로 작가는 새해를 맞아 “앞으로도 아무도 그리지 않은 참신한 소재를 발굴해 그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취업을 택한 또래를 위한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고생 끝에 취업을 해도 삶의 품질은 전혀 보장받지 못해요. 우리 사회가 근무환경 개선에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습니다.”대양을 꿈꾸던 소년에서 예비항해사로 지난해 한진해운의 항해사 공채에 합격한 방주환 씨(23)는 이틀 앞으로 다가온 첫 출근을 기다리고 있다. 방 씨는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면 전 세계를 누비는 선박을 타게 된다. 한국해양대를 올해 2월 졸업하는 그는 대학 시절 실습생 신분으로 태평양을 4차례나 왕복한 경험이 있다. 방 씨의 첫인상은 군기가 바짝 든 군인을 연상시켰다. 188cm의 큰 키와 넓은 어깨, 검게 그을린 피부, ‘다’나 ‘까’로 끝내는 말투까지. 하지만 선박 크기, 각종 전문 용어의 영문 스펠링까지 줄줄이 외는 걸 듣고 나서야 예비 항해사라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방 씨는 고3 수험생이던 4년 전만 해도 항해사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진로 상담을 하던 중 “해양대 갈 생각은 없냐”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제복, 바다도 좋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항해사’라는 직업이 끌렸습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은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랐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명문대 합격해서 현수막에 이름 올라가는 것은 잠깐이지 않습니까. 이 길을 택한 것이 제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일 겁니다.” 방 씨의 대학 생활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학 후 2년 동안 점호로 시작해 점호로 끝나는 엄격한 합숙생활을 했다. 이후 1년 동안은 한국과 중국, 미국을 왕복하는 배에서 보냈다. 당직을 설 때면 무거운 책임감까지 더해졌다. 수천억 원에 이르는 선박과 화물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방 씨는 “그만큼 보람도 컸다”며 “23세에 이렇게 큰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직업이 또 있겠느냐”고 강조했다.김호경 whalefisher@donga.com·박훈상·황태호 기자}

기발한 착상에 따뜻한 감성을 녹인 팩션(Faction·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저자는 2010년 프랑스 그랑제콜 건축학교에서 최우수 졸업 작품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폴 메이몽 건축가상’을 받은 실력 있는 건축가다. 그는 8년간 파리에 거주하며 기품 있고 잘 지어진 오래된 저택에 호기심을 품었다. 길 가다 그런 저택과 마주치면 무작정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저는 건축가입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집 내부를 구경해 보고 싶습니다.” 방문을 허락하면 주인을 만나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나무 바닥에서 삐거덕 하는 소리가 났다. 저자가 초대해 준 답례로 수리해 주겠다고 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생전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오랜 시간 의자를 뒤로 젖히는 버릇 때문에 바닥이 상해 삐거덕 소리가 나게 됐다. 삐거덕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영혼이 같이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저자는 여러 저택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추리소설 형식이라 흥미롭다. 주인공인 건축가 루미에르 클레제는 파리 시테 섬의 오래된 저택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단 스위스 루체른의 왈처요양병원으로 가 집주인 피터 왈처를 만나고 그의 아버지인 건축가 프랑수아 왈처에 얽힌 비밀을 풀어야 한다. 주인공은 프랑수아가 중세 수도원을 고쳐 만든 요양병원 등에서 숨겨진 단서를 하나씩 찾아간다. 시테 섬 저택에서 마지막 비밀이 풀린다. 그곳에는 프랑수아가 화재 사고로 아들과 딸을 잃은 여인 아나톨을 위해 만든 장치가 있었다. 계단 위 천장 유리에서 내리쬐는 빛의 온기로 아들의 따뜻한 입김을 느끼게 했다. 정원수 아래에 나무토막을 놓아 비 오는 날이면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딸의 실로폰 연주처럼 들리도록 했다. 그리고 프랑수아가 아들에게 남긴 출생의 비밀도 집안에 숨겨져 있다. 이야기는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란 문장으로 끝난다. 아무리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그곳을 추억과 사랑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결국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얘기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새해 첫날 톱스타와 재벌가 장녀의 열애 소식이 알려졌다. 영화배우 이정재 씨(42)가 1일 대상그룹 장녀인 임세령 ㈜대상 상무(38)와 열애 중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 씨의 소속사인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씨 측은 같은 날 오전 연예 전문 인터넷 매체 디스패치가 두 사람이 만나는 사진과 함께 열애 중이라고 보도하자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앞서 디스패치는 두 사람이 서울 삼성동에 있는 이 씨의 자택에서 주로 데이트를 즐겼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열애설, 결혼설에 휘말렸지만 “오랜 친구 사이”라며 부인해왔다. 소속사는 이에 대해 “2010년부터 두 사람이 열애설에 휩싸이긴 했지만 최근까지는 서로의 힘든 일을 들어주는 우정 그 이상이 아닌 친구 사이였음은 분명히 하고 싶다”고 해명했다. 또 소속사는 두 사람이 2010년 필리핀 동반 여행을 떠났고, 이 씨가 임 씨의 도움으로 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인 임 상무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1998년 결혼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2009년 이혼했다. 2012년부터 대상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 부회장과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이 씨 측은 “임 씨가 일반인이며 특히 아이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임 씨와 그 가족이 상처를 받거나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만큼은 막아 주고 싶다”고 밝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별에서 온 그대’ 이전엔 영화 위주로 하다 보니 10대들이 절 몰라봤는데 ‘별그대’로 10대 스타상을 받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2014 SBS 어워즈 페스티벌 연기대상에서 10대 스타상을 수상한 배우 전지현이 수상 소감을 말하자 행사장에 폭소가 터졌다. 10명의 스타에게 주는 ‘10대’의 의미를 10대가 뽑은 스타로 오해한 것. 진행자인 이휘재가 “SBS를 빛낸 10명의 스타에게 주는 상”이라고 취지를 설명하자 전지현은 민망한 듯 꽃다발로 얼굴을 가렸다. 앞서 수상한 박유천도 “10대 스타상이라고 해서 10대한테 주는 상인 줄 알았다”며 말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선 “수상자가 무슨 상인지도 모른 채 상을 받는 현실이 우습다” “민망해하는 수상자를 보니 시청자까지 민망해진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방송사가 10대 스타상, 뉴스타상, 네티즌인기상 등 모호한 타이틀을 붙인 상을 남발하다 생긴 촌극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한 누리꾼은 “전지현에게 무식하다고 하면 안 된다. 상 명칭 자체가 충분히 오해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적었다. 전지현은 시상식에서 10대 스타상뿐만 아니라 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 프로듀서상 등 4개의 상을 받았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새봄(新春)이 오려고 그리 추웠나 보다. 2015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전민석 씨(35)는 지난해 겨울 춥디추운 방에서 소설을 썼다. 형편 탓에 보일러를 틀지 못한 방은 숨 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손이 얼어 자판을 두드리기도 힘들고, 방문 밖으로 식구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의 심장은 내려앉았다. 그래도 그는 썼다. 신춘문예 응모 마감일 아침 일어나 소설 결말 부분을 완성하고 우체국에 들러 서울로 보냈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은 날, 전 씨는 차가운 집을 덥혀줄 보일러부터 틀었다. 그는 “백수라서 낮잠을 자다가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백수라고 했지만 준비된 이야기꾼이었다. 어릴 적부터 소설가와 영화감독을 꿈꿨다. 영상보다 글이 먼저라고 생각해 99학번으로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읽고 쓰기를 반복했지만 여러 차례 문단 데뷔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다른 꿈마저 막힐까 09학번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입학해 영화를 배웠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글에 대한 갈증이 몰려왔다. 갈증을 풀려고 완성한 소설이 응모작이었다. 그는 “이제 보일러를 틀었으니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당분간 영화 대신 소설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2015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 인원은 총 2006명. 0.4% 확률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8명이다. 중편소설 등 9개 부문을 모집했지만 동화 부문 당선자는 내지 못했다. 젊은 신인 작가의 약진이 두드러져 시조 부문을 빼고 모두 20, 30대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해 12월 24일 공동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당선자들은 예상 못한 당선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저마다 힘든 시간을 버텨 내며 묵묵히 글을 써 온 작가(作家)였다. 시 부문 당선자인 조창규 씨(35)는 이사 준비로 한창 바쁠 때 이삿짐센터에서 걸려온 전화인 줄 알고 덤덤히 받았다. 그는 “당선됐다는 말에 정말 기뻐서,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다. 감정을 표현한 건 하루나 이틀이 지나서였다”고 했다. 신춘문예 도전 9년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작사·작곡가, 출판사 교정교열, 편의점 아르바이트, 막노동까지 하면서도 시만큼은 놓지 않았다. 문학이 아니면 삶을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끊임없이 붙잡고 싶었다. “시가 여러 가지 감동을 줄 수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재밌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장정일 선생 같은 시를 쓰고 싶어요.” 희곡 부문 당선자인 박선 씨(38)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통보 전화를 받아 반가운 티를 내지 못했다. 박 씨는 10년 동안 가족 몰래 글을 쓰고 컴퓨터 속에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생계는 인기 캐릭터 뽀로로 제품을 팔아 유지했다. 지난해 3월 ‘곡도’란 필명으로 자신의 일상을 가십거리로 만들고 싶은 여성 이야기를 그린 ‘좀 더 순진하게’를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표지도 일부러 야한 그림을 쓰고 출판사도 레즈비언 사랑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앞세워 홍보했지만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는지 수입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지 못하니 글도 사람도 자폐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어요. 변화를 꾀하려고 독백 소설을 처음으로 희곡으로 써 보았습니다. 당선 후에도 삶은 똑같겠지만 소통이 됐다는 점이 먼저 기쁩니다. 컴퓨터에 저장해 둔 글들이 세상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한정현 씨(30)는 일찌감치 당선 기대를 접고 내년 초 계간지에 응모할 새로운 단편을 쓰고 있었다. 2013년부터 여러 계간지,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다가 떨어지자 자신감을 잃은 터였다. 한 씨는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도 작업 중인 소설은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을 눌렀다. 충분히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기쁘기보다 무서워요. 한 달에 한 편씩 쓰라는 선배들 말을 명심해서 열심히 읽고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인 박지하 씨(33)는 어린 시절부터 신춘문예 공고를 보면 설렜다고 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신춘문예 시상식장을 구경하며 ‘이다음에 커서 저 자리에 꼭 서리라’고 다짐했다. “시나리오로 여러 상을 받았지만 신춘문예에 당선되니 문학인이 된 것 같아 더 기뻤어요. 가슴 울리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인 윤경원 씨(37)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전화를 받았다. 대만국립정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그는 신춘문예에 처음 응모했다. 최종심에 올라 심사평에 언급만 돼도 글을 쓸 용기가 나겠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당선까지 됐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정말 기뻐서 홀로 소리를 질렀어요. 앞으로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거네요.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 강하라는 말을 명심하고 그런 평론을 쓰고 싶습니다.” 최고령인 시조 부문 당선자 김범렬(본명 김종열·54) 씨는 인터뷰 중 울컥해서 여러 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2008 동아일보 시조 부문에 당선됐다가 다른 지방지에 중복 투고한 사실이 드러나 취소된 바 있었다. “청천병력 같은 당선 취소 통보를 받고 수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습니다. 신문사에 심려를 끼친 미안함과 저 자신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습작에 매진했습니다.” 최연소인 문학평론 부문 당선자 이성주 씨(26)는 2월 졸업할 예정인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학생이다. 지난해 2월 막연하게 시를 써볼까 고민하던 그를 대학 은사인 김춘식 문학평론가가 불렀다. 이 씨가 수업시간에 쓴 시평 에세이를 인상 깊게 읽은 은사는 앞으로 문학평론을 써보라며 먼저 신춘문예 투고를 권유했다. 당시 토익 점수가 없어 졸업이 유예된 이 씨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 살고 싶어 무작정 전북 군산으로 내려갔다. 군산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며 처음 쓴 문학평론으로 당선이란 결실을 봤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던 순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있었다. “글은 좋아서 쓰는 것이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쓸 생각이었어요. 이제 제 목소리, 스타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015년 한국 문학 팬들의 ‘행복한 고민’이 시작된다. 5년 전인 2009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10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팔리며 바람을 일으켰다. 여기에 김훈의 ‘공무도하’,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도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내년엔 이들을 비롯해 인기 작가들이 대거 신작을 낸다. 젊은 팬들에게서 특히 인기가 높은 박민규와 김애란 작가는 각각 계간지에 연재한 ‘매스게임 제너레이션’, ‘눈물의 과학’을 장편으로 출간하기 위해 다듬고 있다. 두 소설은 올 하반기에 출간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세월호 참사 등의 여파로 출간이 2015년으로 미뤄졌다. ‘국수’의 김숨 작가는 바느질하는 여성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출간한다. 김경욱 김형경 백가흠 작가의 책도 내년 출간될 예정이다. 중장년층 독자들은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작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20대의 노량진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단편 ‘영자’ 등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4편과 신작 단편 2, 3편을 묶어 새 단편집을 낼 것으로 보인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신경숙 작가는 내년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30주년을 맞아 새 소설을 써주길 기대하고 있다. 희망사항이지만 내년에 출간되길 바란다”고 했다. 단편소설도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들은 단숨에 읽기 좋은 엽편(葉篇) 소설집을 읽어볼 만하다. 마음산책은 올해 출간한 정이현 작가의 엽편소설집에 이어 이기호 하성란 작가의 신간을 준비하고 있다. 반대로 대하 서사에 녹아들고 싶은 독자라면 복거일 작가가 1990년대부터 써온 ‘역사 속의 나그네’를 기다려볼 만하다. 이르면 1월 총 6권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완간된다. 작가뿐 아니라 영상과 결합한 주목할 만한 시도들도 있다. 우선, 영화(movie)와 소설(novel)을 합친 무블(movel) 시리즈다. 김탁환 소설가와 PD 출신 이원태 기획자가 결성한 창작집단 ‘원탁’은 올해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을 출간했다. 두 사람이 하나의 콘텐츠를 소설과 시나리오로 쓰고, 시나리오는 영화로 제작된다. 차기작인 ‘조선 마술사’는 이미 영화 작업이 시작돼 개봉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다. 김 작가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함께 작업해 콘텐츠의 완성도도 한결 높아진다”며 “소설가도 단순히 원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기획부터 영화인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를 받아 각색한 이른바 영상소설은 영화 개봉에 맞춰 함께 출간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작품성도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웬만한 인기 작가의 소설이 1만 부를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 ‘명량’은 3만 부가 팔렸다. ‘명량’ ‘국제시장’을 펴낸 21세기북스는 “영상에 익숙한 독자도 빠르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젖가슴이 커지고 있다. 책에선 란제리 회사에서 생산하는 브래지어 컵 사이즈가 계속 커지면서 수박만 한 크기의 H, K컵 사이즈까지 나온다고 한다. 각종 보형물이나 줄기세포를 이용한 가슴 확대수술이 유행하고 가슴이 발달하는 나이도 어려졌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앳된 얼굴의 10대 여자 아이돌이 경쟁적으로 부풀린 가슴을 격하게 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젖가슴이 효모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유력했던 가설은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 ‘털 없는 원숭이’가 퍼뜨린 관점이었다. 여자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네 발 시절 남자를 유혹했던 엉덩이를 대신해 가슴을 키웠다는 주장이다. 일부 남성 이론가들은 젖가슴이 그저 남자의 혼을 빼놓는 역할을 한다거나 크면서도 처지지 않은 가슴을 가져야 남자에게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가설까지 펼쳤다. 심지어 젖가슴이 남편의 구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미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런 남성 중심적인 주장에 대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골반 모형으로 머리를 얻어맞을 일”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젖가슴이 수유를 최적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했고 곧 인류의 전부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론은 이렇다. 젖가슴은 어머니가 먹은 음식을 젖으로 변화시켜 준다. 영양분이 가득한 모유 수유가 가능해지면서 아기는 작은 머리로 태어나도 뇌의 크기를 충분히 키울 수 있었다. 아기가 작으니 여성의 엉덩이가 더 작아질 수 있었고 이는 두 발로 보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인간은 젖꼭지를 빨면서 입 구조가 발달해 언어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둥근 모양의 지방질 가슴은 평평한 얼굴을 가진 아기가 불편함 없이 젖을 빨도록 돕는다. 젖가슴이 큰 여성이 작은 여성보다 아기를 키우는 데 우위에 서는 자연선택이 가슴 발달을 불렀다고 한다. 저자는 책상머리에서만 책을 쓰지 않았다. 전 세계를 돌며 젖가슴과 모유에 대한 취재와 연구를 했고 유방 확대, 유방암 검사도 직접 체험했다. 그는 가슴 성형의 메카 미국 휴스턴을 방문하고, 첫 유방확대술을 받은 여성과 실리콘 확대술로 성공을 거둔 토플리스를 만난다. 저자는 큰 문제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위험성을 내포한 가슴 성형에 대해 “젖가슴의 중요한 자연 기능이 위기를 맞고 그저 딱딱하고 생명력 없는 복제품을 갖게 됐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젖가슴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각종 화합물이 만들어낸 환경호르몬이 가슴 건강을 위협하고 모유 수유까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에 눈뜨면서 “가슴이 있다는 게 인간의 조건이라면 가슴을 위험에서 구하는 건 곧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비로소 젖가슴 앞에 조금 엄숙해졌다. 마지막으로 김민정 시인의 ‘젖이라는 이름의 좆’을 암송한다. “네게 좆이 있다면/내겐 젖이 있다/그러니 과시하지 마라/유치하다면/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원제는 ‘Breasts’(2012년).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아이 한번 낳아보지 못한 연실의 단단한 젖가슴이 흔들렸다. 이성태는 연실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옷을 후딱후딱 벗었다. 산사의 밤은 죽음같이 고요하고 달빛은 한층 그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따금 부엉새의 울음이 한층 직정을 북돋아준다.’(167쪽)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이 1960년 4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은하’(마로니에북스)가 최근 단행본(사진)으로 처음 출간됐다. ‘은하’는 전형적인 대중 연애소설. ‘토지’만 알고 있는 독자라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1950년대 여대생인 주인공 최인희는 실연의 아픔과 아버지의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충동적으로 재력가 이성태의 재취로 들어간다. 인희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에 고통을 느끼고, 옛 애인의 친구 강진호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이성태도 최인희의 젊은 계모 연실과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삼각관계, 불륜, 우연한 사고가 등장하고 첫날밤에 ‘처녀의 날’을 운운하는 등 선정적인 묘사가 난무하는 작품을 박 선생이 왜 썼을까. 조윤아 가톨릭대 교수는 해설에서 “1960년 초반에는 최희숙 같은 여대생 작가들이 독서 시장을 장악해 젊은이의 연애와 결혼 문제를 주요 서사로 다뤘다”며 “이런 책들이 수십만 부가 팔려 나가는 상황이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에게 큰 경각심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올해 우리네 삶은 더 팍팍해진 걸까. 동아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 목록에선 자본주의의 폐해와 소득 양극화, 소통의 문제 등을 파헤친 묵직한 책들이 대거 선정됐다. 대표적인 예가 ‘21세기 자본’이다. 증세 논란과 맞물려 집권여당 대표가 이 책을 언급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됐다. 함께 선정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나 ‘세상 물정의 사회학’도 현 자본주의 방식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들이다. 또 ‘단속사회’와 ‘소년이 온다’에서는 소통 부재와 역사의 단절이라는 한국 사회의 병폐가 도마에 올랐다. 그 대신 문학은 퇴조했다. 지난해엔 올해의 책 10권 중 4권을 소설이 차지했으나 올해는 2권이었다. 올해의 책은 출판계와 학계 전문가 31명에게 5∼10권의 책을 추천받아 선정했다. 》21세기 자본 올해의 책 중에 가장 파급력이 컸던 책이라 할 만하다. 자본 수익률 증가 속도가 노동 수익률 증가보다 빨라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올 초 세계적 붐을 일으켰다. 9월 한국어판 출간과 저자의 방한을 전후로 책 내용에 대해 학자들 간에 논쟁이 불붙기도 했다. 피케티 논쟁을 정리한 책(피케티 패닉)도 나왔다 또 ‘자본’ ‘마르크스’ 등 관련 도서가 잇달아 출간돼 88만 원 세대, 하우스푸어, 양극화 심화와 같은 현실이 이 책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이중섭 평전 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인 저자는 문헌 기록 150여 종을 망라해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의 실체를 그렸다. 어떨 때는 과대평가됐다고 하다가 어떨 때는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이중섭의 거의 모든 것’을 충실히 담았다. 20세기 걸작으로 꼽히는 ‘소’ 시리즈를 남겼지만 가난과 외로움에 찌든 유랑 생활 끝에 마흔 나이에 무연고자로 요절한 극적인 삶이 시리게 다가온다. 이중섭의 생애별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자본주의의 병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본 시골빵집 주인의 이야기다.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 내 인구 8000명인 시골마을 가쓰야마(勝山)에 차린 저자의 빵집은 여러모로 유별나다. 인공발효 효모인 이스트를 쓰지 않고 천연효모와 유기농 밀로만 빵을 만든다. 목∼일요일만 가게를 열고 이윤은 전부 직원들과 나눠 갖는다. 지은이는 자본을 부패하지 않고 증식만 하는 이스트에 비유하는 등 건강한 빵을 만드는 과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적절하게 엮어낸다. 투명인간 압축성장 시대, 각박한 세상을 힘껏 살았지만 투명인간처럼 소외된 가장들을 기리는 서글픈 노래. 주인공 김만수 가족은 일제강점기 할아버지가 사상 문제로 고초를 겪다 숨진 탓에 집안이 몰락해 가난하게 산다. 큰형은 명문대에 진학해 집안의 기대를 받지만 베트남전 고엽제 후유증으로 숨진다. 만수는 일찍 가장이 되어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난과 외면뿐.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란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사회문화적 전개 과정을 탐사한 결과물이 담겼다. 종이 생산부터 책값 책정까지 당시 책 인쇄와 유통 방식을 자료 사진과 그림을 통해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 한글 창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출판 독점으로 조선이 출판 강국이 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도 담았다. 저자는 “읽히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니다. 책은 인쇄되거나 그 외의 복제 과정을 거쳐 확산되지 않는 한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라고 일갈한다. 깊은 마음의 생태학 국내 대표적 인문학자인 저자가 문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수학 생물학을 넘나들면서 이성과 마음의 문제를 파헤쳤다. 현대 문명이 사람만 위하는 인간 중심주의에 갇혀 방황하고 있고 성찰을 통해 마음의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제언이다. 난해하지만 77세 학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이 구절을 기억하자.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속사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사이버 세계의 교류는 사람들의 관계를 보다 돈독히 할까. 그러나 SNS에선 현실 속 타인의 고통이나 이슈엔 무감각한 채 자기가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취할 뿐이다. 저자는 현실은 끊고(斷) 사이버세계는 잇는(續) ‘단속’의 개념으로 한국 사회를 풀이한다. 불통을 치유하는 건 경청(敬聽)이다. 경청은 말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의 말문을 여는 말 걸기까지 포함된다. 남을 이해하려는 주체적인 관계 맺음을 화두로 제시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사회학이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자. 세상 물정을 핑계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거나 자신의 이익을 탐닉하진 않았는지, 세상 물정을 알려주겠다는 사람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거나 처세술 책을 붙들고 살진 않았는지, 소비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아치울 기세로 덤벼들지는 않았는지…. 팽창과 성장에 눈이 멀어 괴물 같은 짓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저자가 들려주는 25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소년이 온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혹함을 다시 되살렸다. 계엄군에 희생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던 중학교 3학년 동호와 주변 인물들이 당시를 증언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가 한 병사의 총에 맞아 숨지는 걸 목격한다. 그러고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라고 묻는다. 1970년생인 작가는 당시 열 살로 서울 수유동 언덕배기 집에서 광주 소식을 처음 접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저자는 인류 탄생 이후 폭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세기가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음을 증명한다. 우리가 현시대를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건 실제 폭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폭력을 손쉽게 접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악의 폭력 사건은 8세기 중국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과 이로 인한 내전으로 당시 중국 인구의 3분의 2인 3600만 명이 희생됐다. 지은이는 민주주의와 이성, 인도주의, 과학을 토대로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를 끄집어내면 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가나다순)강문종(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김경집(인문학자) 김기봉(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중(더숲 대표) 김석근(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김윤태(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갑(건국대 영문과 교수) 김학원(휴머니스트 대표) 김형찬(고려대 철학과 교수)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백경학(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신정근(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이권우(도서평론가) 이명학(한국고전번역원장) 이인식(지식융합연구소장)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승(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주일우(문학과 지성사 대표) 표정훈(도서평론가) 하응백(문학평론가)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미화(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황현산(고려대 명예교수) 김상운 sukim@donga.com·박훈상 기자 }

먼저 죽은 남편을 따라 죽어야 했던 조선시대 열녀의 진짜 속내는 어땠을까. 열녀전이 전하듯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제 목숨을 끊었을까. 은장도 대신 붓을 든 여자, 풍양 조씨의 ‘ㅱ긔록’을 통해 절절한 속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출판사 나의시간은 18세기 풍양 조씨가 쓴 ‘ㅱ긔록’을 처음으로 현대어로 옮긴 ‘여자, 글로 말하다-자기록’을 최근 출간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ㅱ긔록’은 200자 원고지 500장 분량의 자서전. 1772년 서울 무반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난 조 씨는 1786년 청풍 김씨 동갑내기 김기화에게 시집갔다가 1791년 남편을 잃고 이듬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서문 격의 글에서 “나의 궁한 팔자와 혼인에 느낀 설움은 세월이 오래 지나면 능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혼인하고서 남편이 병을 앓기 시작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일을 당하기까지의 대강을 기록한다”고 썼다. 조 씨는 남편이 위독하자 혹여 남편이 숨질 경우 열녀의 길을 걷고자 했다. “스스로 굳게 정하고 작은 칼을 신변에 감추는데 손이 떨리고 마음이 놀라 매양 하늘만 보며 ‘차마 이 어찌된 세상인고’ 하였다. (중략) 사사로운 정으로 친정아버지와 언니를 생각하니 앞이 어둡고 가슴이 막히나 또한 이미 끝난 일이라 정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남편이 사경을 헤맬 지경에 이르자 당시 민간요법에 따라 자신의 피를 남편에게 먹이려 했다. 조 씨는 ‘생혈(生血)로 행여나 목숨을 늘리는 힘이 있을까’라며 왼쪽 팔목을 찌르지만 손이 떨려 꿰뚫지 못했다. 다시 시도하던 중에 칼과 비녀까지 어른들에게 빼앗긴다. 남편도 그런 부인과는 말도 섞기 싫다며 적극 말렸다. 결국 친정아버지와 시댁 어른들의 거듭된 만류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조 씨는 “생목숨을 끊어 여러 곳에 불효하는 것과 참담한 정경을 생각하니 차마 죽을 수가 없었다. 또 생각건대 내 평생은 이미 정해졌으니 의롭지 못한 모진 목숨을 기꺼이 받아들일지언정 다시 양가 부모님에게 참혹한 슬픔을 더하랴 하여 금석같이 굳게 정하였던 마음을 문득 고쳐 스스로 살기를 정하였다”며 스스로 생의 의미를 부여한다. 10년에 걸쳐 현대 우리말로 옮긴 김경미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교수는 “남성이 쓴 열녀전은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을 당연한 일로 쓰면서 여성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자기록은 여성 스스로의 목소리로 죽음을 각오했을 때의 감정을 상세하게 들려준다”고 말했다. 평범한 양반집 여인이 쓴 덕에 당시 생생한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남편 김기화는 1788년 ‘서로 짓밟아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붐비는 과거 시험장에서 ‘찬 땅바닥에 겨울 짚자리 위에서’ 종일 앉아 있는 바람에 치질이 생겼고 이것이 큰 종기로 악화됐다고 한다. 당시 과거시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조선시대 젊은 부부의 훈훈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부부는 처음엔 서로 어색해 절제된 사랑 표현을 나눈다. 남편이 “모름지기 나의 불찰을 바로잡아서 빠진 곳을 메워보다 나은 슬기가 있어 그대를 가르치리이까”라고 답한다. 이들이 심지어 직접 얘기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통해 문답을 하자 시어머니는 부부에게 “통역관 아니면 문답을 통하지 않으니 이런 예법은 어디 있는 것이냐”라며 놀리기도 했다. 또 친정아버지는 상중인 딸이 걱정돼 육즙(고깃국)을 보내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과일을 먹이려 애쓰는 등 살가운 가족간의 모습도 그려졌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으로 훅 불면 먼지가 날리고, 누렇게 변한 종이가 바스라질 것 같은 ‘새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출판사 현실문화는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 시리즈 첫 책으로 동아일보 창간 기자이자 조사부장 출신인 김동성(1890∼1969)의 ‘미주의 인상’을 최근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1916년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발간한 영문 단행본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또 출간 당시 미국 언론에 실린 서평, 책 내용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 1918년 매일신보에 게재한 ‘미주의 인상’ 연재 기사도 실려 있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편집장 W F 윌리는 단행본 서문에서 “서구 문명의 사유와 활동과 약점을 포착하고, 이해하고, 그에 적응하는 동양정신의 다재다능함과 민첩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저자의 천재성은 본문과 삽화 모두에서 보이는 기발하고 건전한 유머를 통해 한층 더 강조된다”고 썼다. 책을 펼치면 1916년 출간된 고서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속지는 세월이 흘러 누렇게 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면지(표지 안쪽)도 미국 도서관에 보관된 단행본 면지 PDF 파일을 받아 그대로 사용했다. 일부 글씨체도 당시 타자기로 쓴 것 같은 ‘타이프라이터 서체’를 썼다. 현실문화는 앞서 1910∼50년대 소설을 복간한 아단문고 시리즈를 펴내면서 원형 그대로 복원한 책을 내기도 했다. 원본 표지를 새 책 표지로 사용하고 속지도 오돌토돌한 종이 위에 인쇄한 덕에 보고 만졌을 때 한지 느낌이 난다. 현실문화 김수현 편집자는 “옛 책을 복간할 때는 당시 분위기를 잘 재현할수록 독자들의 반응이 더 좋다”고 말했다. 시공사 브랜드 검은숲도 이달 초 누렇게 변색된 종이를 사용한 엘러리 퀸의 탐정소설 ‘열흘간의 불가사의’ ‘더블, 더블’을 냈다. 검은숲은 2011년부터 엘러리 퀸 컬렉션을 시리즈로 출간하면서 초판에 한해 누렇게 변색한 종이를 사용하고 있다. 검은숲 박고운 편집자는 “독자들이 헌책방에서 절판된 책을 만난 것처럼 좋아한다”며 “시리즈 초판은 대부분 팔려나갔고 이달에 낸 책도 다 팔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