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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년 만에 신무기 시험 현지지도에 나서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위협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 요구를 일축하고 핵·미사일 신고, 사찰을 압박하자 김 위원장의 군사행보를 재개하며 북-미 대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으로부터 상응조치를 얻어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 美 “제재 유지”에 위협 수위 높이는 北 김 위원장의 이번 현지지도는 그간 경제시찰에 집중해왔던 행보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도발 이후 경제건설 집중을 선언하며 군사행보에 거리를 뒀다. 현지지도에 동행한 수행단도 의미심장하다.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병철 전 당 중앙위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등 실세들이 총출동했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이나 미사일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우리는 무기를 갖고 있으며 당 차원에서 대화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대미 메시지도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향한 위협의 수위를 차츰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달 초 “핵·경제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며 핵개발 재개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이번엔 김 위원장이 직접 군사행보에 나섰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이번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 레토릭(수사)에 그쳤지만 다음에는 직접 실험도 보여주면서 단계별로 반발 수위를 높여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장사정포·지대함미사일 추정 다만 북한이 김 위원장의 행보를 두고 수위를 조절한 정황들도 포착된다.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한 무기가 미국을 겨냥한 ICBM이나 핵무기 등 ‘전략무기’가 아닌 ‘전술무기’ 실험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 군 안팎에선 신형 장사정포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의 주력 방사포(122·240mm)와 2016년 실전 배치된 300mm 방사포(KN-09)와는 또 다른 형태의 신형 방사포일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한미 정보당국은 올 초 평양 산음동 병기연구소 일대에서 신형 방사포의 존재를 포착하고 ‘KN-16’으로 명명한 바 있다. 일각에선 신형 지대지·지대함 미사일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에도 신형 지대함미사일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하고 이를 공개한 바 있다. 군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한 장소는 평북 신의주 인근이고, 그 부근 바닷가 지역에 국방과학원 시험장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시험 때 (포탄 등이) 실제로 날아간 것은 확인되지 않았고, 북한도 ‘발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며 “무기체계 개발의 초기 단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 기조는 유지 정부는 북한의 행보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힘겨루기라고 보고 있다.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상응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다시 한 번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상응조치로 요구하고 있는 제재 완화의 조건을 놓고 북-미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에 영변 핵시설은 물론이고 비밀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에 대한 신고·사찰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은 “우리가 전범(戰犯)국이냐”고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은 억류된 미국인을 석방하는 등 미국과의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중을 내비쳤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미국 공민 브루스 바이런 로런스가 지난달 조중(북-중) 국경을 통해 불법 입국해 억류됐다”며 “조사 과정에서 로런스는 미 중앙정보국의 조종에 따라 불법 입국했다고 진술했다. 로런스를 추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년 만에 군사행보에 나서면서 핵시설 신고 및 사찰 계획을 요구하며 제재 고삐를 죈 미국에 경고를 보냈다. ‘핵·경제 병진’ 노선 부활을 위협한 데 이어 김 위원장의 무기 개발 현장지도 사실을 공개하면서 북-미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은 16일 김 위원장이 국방과학원 시험장을 찾아 첨단전술무기 시험을 지도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무기 시험 현지 지도는 지난해 11월 29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참관 이후 처음이다.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뒤 처음으로 무기 개발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오늘의 이 성과는 당의 국방과학기술 중시 정책의 정당성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우리의 국방력에 대한 또 하나의 일대 과시며 우리 군대의 전투력 강화에서 획기적인 전환”이라면서 대만족을 표시했다. 이어 “저 무기는 ‘유복자’ 무기와도 같은데 오늘의 이 성공을 보니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를 한 첨단무기가 선군(先軍) 정치를 앞세웠던 김정일의 유훈을 이은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지도한 무기의 구체적인 종류는 밝히지 않았다. 군 안팎에선 개량형 방사포와 같은 신형 장사정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의 군사행보 재개는 미국을 겨냥한 경고성 메시지로 풀이된다. 제재 고삐를 죄면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을 향해 지난해 긴장 국면으로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는 ‘공개 시위’에 나섰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 요구를 일축하며 북한의 비밀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에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15일(현지 시간) 북한이 비밀 기지에서 미사일 개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에 대해 “북한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선 핵·미사일 시설과 무기를 모두 공개하고 검증할 수 있는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북한은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한 신무기가 미국을 겨냥한 ICBM 등 전략무기가 아닌 ‘전술무기’라고 밝히며 미국과 대화의 끈은 놓지 않았다. 현지 지도엔 미사일 개발 총사령탑인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이 동행하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약속(완전한 비핵화)이 지켜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밝혔다.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ysh1005@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이 남북을 오가는 동해와 서해 국제항공로 연결을 제안했다. 철도와 도로에 이어 하늘길 개통 논의가 시작됐지만 새 항공로 개설은 대북제재 문제와 맞물려 있어 실제 성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통일부와 국토교통부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첫 남북항공 실무회의에서 북측이 동·서해 국제항공로 연결을 제안했다. 우리 측은 앞으로 항공당국 간 회담을 통해 계속 논의해 나가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2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인천 비행정보구역(FIR)을 통과하는 신규 항로 개설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북측이 우리 정부에 직접 동서해 직항로 개설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측의 적극적인 제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항공로 개설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물론 북한 영공통과를 금지한 5·24조치 해제와도 맞물려 있어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무접촉에 우리 측 수석대표로 참가한 국토부 손명수 항공정책실장은 “새로운 국제 항로 개설은 통상 1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남북 항로의 경우 대북 제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동의가 필요해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국제항로를 개설하면 통과료 명목으로 북한에 영공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우선 영공 사용료 지급이 대북제재 위반인지 미국 측과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가 북한으로 현금이 유입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인 점을 감안하면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작업도 벌여야 한다. 안보리 대북제재는 북한으로 뭉칫돈(벌크 캐시)이 들어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쓰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영공사용료의 WMD 개발비 전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2010년 5.24조치가 취해지기 이전까지 한국 항공사들이 북한에 낸 영공사용료는 연간 20~60억 원 규모다. 국토부 관계자는 “북한 영공을 통과할 때 비행기 크기에 따라 사용료를 냈다. 대당 평균 80만 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당시 국내 항공사들은 북한 영공통과를 통해 연간 200억 원가량의 연료비를 절약하고 비행시간을 한 시간가량 단축하는 효과를 누렸다고 한다. 새 항공로가 개설돼도 이를 사용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항공사의 판단에 달려있다.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외국 항공사들은 유엔 제재 이후 북한 영공을 통과하지 않고 있다. 손 실장은 “현재 기준에서 영공 사용료가 얼마나 될지, 그로 인한 편익은 얼마일지 등은 다시 계산해봐야 한다”고 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기지 외에 최소 13곳의 비밀 미사일기지를 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뉴욕타임스(NYT)와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통해 제기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핵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6월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서 더 이상 미사일 실험은 없다”고 공언해왔지만, 그 전제 자체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동시에 일각에선 미 정보당국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압박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언론 등에 흘렸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CSIS가 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대표적인 비밀 미사일기지는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이다. 북한이 2016년 3월 10일 오전 사거리 약 500km의 스커드 미사일을 2발 발사했던 일대로 지목된 곳이지만 구체적인 위성사진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CSIS는 삭간몰을 가리켜 “드러나지 않은 20곳 중 13곳(확인 기지) 가운데 하나”라고 했고 CSIS 보고서를 토대로 관련 보도를 한 NYT는 “16곳의 숨겨진 기지들”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차이는 직접 미사일 비밀 기지의 장소를 확인했다기보다는 정보당국을 통해 관련 정보를 들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는 워싱턴 정가에서 북한의 비밀 미사일기지를 대체적으로 13∼16곳으로 추정해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삭간몰 등 비밀 미사일기지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줄기차게 북한에 제출하라고 요구해 온 핵·미사일 관련 리스트 중 일부일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그동안 고위급, 실무 협상을 통해 북-미 간에 비핵화 조치 등을 놓고 의견차를 좁히려 했으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 간의 뉴욕 회담이 무산되면서 평양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보도는 그 연장선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시 말해 국제사회에 북한이 여전히 핵·미사일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중국 러시아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대북제재 완화론을 꺾고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핵 개발을 하고 있으니 대북제재를 계속해야 하는 명분을 정보당국에서 제공한 것 같다”며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비핵화의 진정성을 거듭 강조하는 북한에 대해 ‘다 보고 있다. 협상에 절대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당근을 줬다. 우리는 채찍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북한)은 제재 해제를 보장할 만한 어떤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8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북제재 해제 불가’를 다시 한번 다짐했다. 러시아의 요청으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관련 비공개 회의에 참석하기 전 여론전부터 시작한 것이다. 헤일리 대사는 회의가 끝난 직후 다시 기자들을 찾았다. 로이터통신은 “헤일리 대사가 안보리 회의 전후로 대북제재 관련 발언을 통해 ‘지금은 북한이 행동할 차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올해 말 사퇴하는 대북 강경파인 헤일리 대사는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까지 중단하며 많은 ‘당근’을 내밀었는데 북한은 제재를 해제해줄 만큼의 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은 여전하다”며 “그들(북한)은 사찰관이 들어가 핵과 탄도미사일 시설을 사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현재 코스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 중단만으로는 부족하며 관련 시설에 대한 사찰이 허용되지 않는 한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뜻이다. 헤일리 대사는 미국이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을 위한 제재 유예까지 막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과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주민이 아닌 권력자와 정권한테 갔다”며 “인도주의적 지원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 회담 연기를 미국 중간선거 당일(6일)에 요청한 배경에는 제재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방송은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은 미국이 제재 완화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에 화가 나 있다”며 “자신들이 (비핵화 관련) 추가 조치를 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CNN은 또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측이 이번 회담을 통해 얻어낼 게 별로 없다고 판단하고 6일 전화를 걸어 회담을 연기했다고 보도했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무산되자 북한은 선전매체들을 활용해 미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9일 논평에서 비핵화와 남북 협력, 대북제재 등을 논의하는 한미 워킹그룹에 대해 ‘실무팀 조작 놀음’이라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북남(남북) 협력 사업들에 나서지 못하게 항시적으로 견제하고 제동을 걸며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아무 때나 파탄시키려는 미국의 흉심이 깔려 있다”면서 “북남 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 대양 건너에서 사사건건 걸고 들며 훈시하다 못해 이제는 직접 현지에서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구까지 만들겠다는 미국의 오만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선전매체 ‘메아리’도 이날 “남조선 군부 호전광들이 이제는 아예 정례훈련이라는 간판 밑에 ‘한미해병대연합훈련을 강행해 대고 있다”며 시대착오적인 군사적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3일부터 17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통일부는 9일 “조 장관이 미국 정부 및 의회 인사들을 만나 남북 관계 및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 장관의 방미는 2014년 12월 류길재 장관 이후 4년 만이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신나리 기자}

11·6 미국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내주고 상원을 지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내년 초에 만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다음 날인 7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를 묻는 질문에 “내년 언젠가”라고 말했다가 “내년 초 언젠가 할 것”이라고 정정했다. 8일 예정됐던 뉴욕 북-미 고위급 회담이 전격 취소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도 미뤄질 거란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북-미 고위급 회담에 대해선 “앞으로의 일정들 때문에 우리는 그것(고위급 회담 일정)을 바꾸려고 한다. 우리는 다른 날 만나려고 한다. 회담 일정은 다시 잡힐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서두를 것 없다”며 “제재들을 해제하고 싶지만 그들(북한)도 호응해야 한다. 쌍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제재는 유지되고 있다”는 표현을 네 차례, “서두를 것이 없다” “급할 것이 없다”는 표현을 각각 일곱 차례 반복했다. 제재가 유지되는 한 시간은 미국 편이라는 자신감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로버트 팰러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한밤중에 고위급 회담 연기를 발표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정보를 확인하자마자 가능한 한 빨리 공개한 것”이라며 “순전히 일정을 다시 잡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8일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측으로부터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미국이 우리에게 설명해줬다”고 밝혔다. 단순한 일정 조율의 문제라는 미 국무부 브리핑 내용보다 더 진전된 설명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7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서로 분주한 일정이 있는 만큼 연기하자’고 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7일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북한이 먼저 고위급 회담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는 제재 완화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라고 지적했다. 미 언론은 갑작스러운 북-미 고위급 회담 취소는 협상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고위급 회담 연기는 북-미 간에 상대방에 대한 요구와 기대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정점을 이뤘던 양측 간 외교가 모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회담 연기는 6월 이후 수개월간 외교가 정체돼 있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지적했다. CNN은 두 명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전에 북한으로부터 핵 프로그램 사찰 같은 조치를 얻어 내려고 했고, 북한은 제재 완화를 원했지만 미국은 그럴 의향이 없다”고 전했다. 애덤 마운트 과학자연맹 선임연구원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느리지만 확실하게 (북-미) 협상이 붕괴하고 있다”며 “양쪽 모두 핵 제한에 관해 달성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를 제안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이번 회담에선 북한이 요구해온 대로 싱가포르 합의 4개항을 함께 논의한다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검증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재 해제 전에 북한의 호응이 있어야 한다면서 ‘쌍방향(two way)’을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는 ‘영변 핵시설 등을 검증받지 않고 어떻게 제재 해제를 논하느냐’는 불만이 담겨 있다는 의미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신나리 기자}
당초 8일로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 회담에 공개적으로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던 청와대는 7일 갑작스러운 연기 결정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은 국무부가 7일 오후 회담 연기 사실을 공식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 외교 라인을 통해 연기 사실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카운터파트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외교당국은 미국이 통보하기 전까지 연기될 것이라는 기류는 읽지 못했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6일 미국으로 날아갔어야 했던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중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뉴욕행 비행기 편을 취소했지만 청와대는 이날까지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6일 브리핑에서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는 새로운 북-미 관계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 문제도 본격적으로 협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위급 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해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러면서도 취소가 아닌 연기라면서 회담 일정이 곧 다시 정해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대변인은 7일 국무부의 연기 발표 후 브리핑에서 “회담이 연기됐다고 해서 북-미 회담이 무산되거나, 회담의 동력을 상실했다거나 하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도 이제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곧 북-미가 다시 마주 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기간에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등을 갖고 비핵화 협상 동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이어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도 추진한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뉴욕 고위급 회담이 연기되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가 불투명해졌다. 미국은 “회담을 다시 잡을 것”이라며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 하지만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거친 신경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실무회담에 이어 고위급 회담까지 무산되면서 북-미 대화가 좀처럼 교착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회담 하루 전에 연기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7일(현지 시간) 네 문장의 짧은 성명을 통해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북 고위급 회담이 나중에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가 전날 뉴욕회담 일정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회담이 연기된 것이다. 나워트 대변인은 “진행 중인 대화(ongoing conversation)는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무부는 회담 연기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국무부가 뉴욕 고위급 회담 일정을 공식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회담이 연기된 만큼 북한의 통보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회담 연기는 미국의 중간선거와 미중 대화 일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은 9일 폼페이오 장관과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웨이펑허 국방부장의 2+2 외교안보 대화를 가질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철이 5월 첫 미국 방문 때처럼 이번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미국이 중국과의 일정 때문에 확답을 못 주자 고위급 회담을 미뤘다는 것. 북-미 고위급 회담 연기 사실이 공개된 것은 8월에 이어 두 번째. 폼페이오 장관이 7월 3차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비핵화 진전이 충분하지 않다”며 4차 방북을 무기한 연기시킨 바 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석 달 만에 ‘되치기’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외교 당국은 국무부 성명이 비교적 차분한 어조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대화의 일방이 무너뜨린 것이라고 하긴 어렵다. 멀고 먼 길을 가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무례한 방식으로 고위급 회담에 어깃장을 놓은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에 따라 북-미 고위급 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나워트 대변인이 성명에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약속을 이행하는 데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는 분석이다. ○ 돌파구 못 찾는 북-미 대화, 모멘텀 상실 우려 이유가 어찌됐든 뉴욕 고위급 회담 연기는 북-미 대화가 좀처럼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결국 북한에 핵시설 사찰과 검증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과 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북한이 아직 절충점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폼페이오 장관이 강조했던 게 검증인데 북한이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됐다”며 “제재 해제라든지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등 미국이 쉽게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 같아 만나봤자 소용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각에선 북-미가 조기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비핵화 협상의 동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핵·경제 병진노선 부활’ 가능성을 언급하며 핵 개발 재개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미가 조기에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맞바꾸는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한반도 정세가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 베이징=권오혁 특파원}
정부가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연일 ‘한국 때리기’에 나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물밑 조율에 나섰다. 조현 외교부 1차관은 6일 오후 일본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비공개로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가 전날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가 조선업계에 공적자금을 지원한 것을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추진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자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나가미네 대사와의 일정도 외부엔 알리지 않았다”며 “판결 이후 일본 측도 계속 면담을 요청해 왔고 우리도 입장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초치(招致)라고 보긴 어렵고 긴밀한 외교 협의 차원에서 이뤄진 면담이었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30∼40분간 이뤄진 면담에서는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단독 제소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우리가 추진하는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놓고서도 논의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판결은 폭거(暴擧)”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우리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절제되지 않은 언사로 평가를 내리는 등 과잉대응하는 데 심히 유감스럽다”고 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잇따라 ‘쌍끌이 외교’에 나섰다. 8일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고위급 회담에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보내는 데 이어 14∼17일 경기도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 리종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북측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할 의사를 밝혔다. ○ 김영철, 5월 방미보다 하루 더 묵어 미 국무부는 5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장이 8일 뉴욕에서 만나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달성이 포함된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의 4가지 합의사항의 진전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김영철이 7일 밤 뉴욕에 도착해 8일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한 뒤 주말까지 미국에 머물다가 일요일 새벽 귀국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1차 방북 때보다 하루 더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았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김영철의 뉴욕행에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동행한다. 비건 대표와 최 부상의 실무급 회담이나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김 부장과 최 부상’이 참가하는 ‘2+2 회담’이 입체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회담에서 지난달 초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답보상태에 빠진 협상의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북한 비핵화 문제와 더불어 내년 초로 미뤄진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 및 장소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검증, 북한 측이 바라는 제재 완화, 종전선언 등 상응 조치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5월 말 1차 방미 때 3박 4일 일정으로 뉴욕과 워싱턴까지 방문했던 김영철이 이번에도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친서 외교’를 펼칠지도 주목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6일 브리핑에서 “미국 중간선거 이후 새롭게 조성되는 환경과 정세 속에 북-미 협상도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염수정 추기경 “교황 방북할 때 같이 가겠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북한의 ‘대남통’들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는 14∼17일 경기 고양시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리종혁 대의원,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 7인의 대표단이 참석하는 것과 관련한 방남 승인을 6일 통일부에 요청했다. 올해 82세인 리종혁은 ‘원로 대남통’으로 1994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뒤 활발한 대남 활동을 펼쳤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에게 북한 종교 정책의 개방성을 강조한 ‘종교통’이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고 “초청장을 보내주면 갈 수 있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리종혁이 이번에 염수정 추기경을 만나 초청장을 전할 가능성도 있다. 염 추기경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어 교회법상 김정은의 초청장을 바티칸에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교황이 방북할 때 같이 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여정의 최측근’인 김성혜 실장은 앞서 평창 올림픽 개막식 때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방남한다. 평창 방문 때 김여정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4·27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만큼 이번엔 김성혜가 연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놓고 사전 답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한국이 5일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미국의 대(對)이란 독자제재 예외를 인정받았다. 이란과의 교역에 필요한 원화결제시스템도 함께 예외로 인정받아 이란발 ‘원유 공급 대란’을 당분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외조치는 6개월마다 연장해야 해서 우리 정유업계의 장기적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한국 일본 인도 중국 등 8개국을 이란산 원유 금수 조치의 예외 국가로 인정한다고 5일(현지 시간) 밝혔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 타결과 함께 풀렸다가 올해 8월 자동차 등 일부 품목 거래를 차단하는 1차 조치로 3년 만에 재개됐다. 5일부터는 2차 제재로 이란의 석유 수출이 차단되고 이란 중앙은행(CBI)과의 금융거래가 전면 금지된다. 당초 미국은 이란에 대한 2차 제재를 예고하며 “어느 국가도 제재 예외(waive) 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이에 각국은 미국을 상대로 제재 예외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 치열한 물밑 협상을 벌였다.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한 정부 협상팀은 미 측에 이란산 콘덴세이트(초경질유)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적 특성과 한미 동맹의 특수성을 강조해 미 측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 업계가 한국의 콘덴세이트 기술력을 위협적인 속도로 따라붙고 있다고 설득하는 등 미국의 중국 견제 심리도 파고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동맹국이 피해를 입어 가고 있는데 엉뚱한 나라가 반사이익을 얻어서야 되겠느냐’고 설득한 게 효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도 차츰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려 한국 입장에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유의 원화 사용 교역결제시스템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피할 수 있는 요소였다. 미국의 제재로 달러와 유로화 결제가 어려워지면서 2010년 10월 도입된 이 시스템은 한국 IBK기업은행·우리은행에 CBI의 원화 계좌를 개설해 이란과 한국 간의 무역대금을 원화로 결제하도록 한다. 정유사 등 한국 수입기업은 CBI 원화계좌에 원화로 수입대금을 쌓아두고 국내 은행들이 이란 중앙은행을 대신해 한국 수출업체에 대금을 지급하고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란 정부로 직접 현금이 흘러들어가 핵무기 수출·수입의 돈줄이 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차원에서다. 이 원화결제계좌가 폐쇄되면 이란에 자동차 냉장고 디스플레이 등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정부는 한미 간 합의에 따라 정확한 감축 폭을 밝히진 않고 “한국의 석유화학업계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양”이라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에 한국이 예외로 인정받은 물량을 하루 20만 배럴, 연간 7300만 배럴로 추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 현대케미칼 등 한국 기업들의 지난해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1억4760만 배럴이며 그중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약 74%를 차지한다. 수입량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기업들은 “불행 중 다행”이라며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 업체 관계자는 “올해 8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멈춘 후 러시아와 호주, 아프리카까지 닥치는 대로 수급처를 늘려 물량을 확보해 왔다”며 “가격과 질 면에서 모두 이란산보다 못 해 예외국 인정을 받지 못했으면 장기적인 원가 상승이 우려됐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외 조치를 받았지만 새로 계약을 맺고 은행의 결제계좌와 선박 보험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예외 조치는 6개월간 유효해 정부의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 노력 등을 평가받고 미국과 6개월마다 협상해 연장해야 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든 원유 수입 위기가 재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황태호 기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 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고위급회담을 공식화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2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다음 주 나의 카운터파트인 2인자와 일련의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6월 1일 김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도 ‘2인자’라는 표현을 썼다. 회담 시기와 장소에 대해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7, 8일 뉴욕이 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7일 베이징을 거쳐 당일 오전 뉴욕에 도착한 뒤 폼페이오 장관과 만찬을 한 뒤 북한 유엔대표부 인근 호텔에 묵고, 다음 날 공식 고위급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부위원장은 5월 30일 뉴욕을 방문했을 때도 유사한 일정을 소화했다. 김 부위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직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지도 관심이다.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 조율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김 부위원장의 뉴욕 방문 기간이 짧기 때문에 두 정상이 원하는 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를 확정하는 데 방점이 찍힐 것”이라며 “비핵화와 상응 조치에 대한 논의는 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때 김 위원장이 언급한 내용을 기본 틀로 해 실무협상 라인에서 조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는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의 회동에서 좀 더 진전된 비핵화 관련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뉴욕 회담에서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언론의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해 북한에 제공할 상응 조치에 대해서도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다. 비핵화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북한에 내줄 상응 조치도 북한이 즐겨 쓰는 살라미 전술을 역으로 활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비본질적인 사안에서 조금씩 진전시키는 방식을 고집하는 만큼 미국도 상응 조치를 단계별로 세분해 북한과 협상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 조치가 늦어지는 것도 북한과의 협상에서 카드로 쓰기 위해 보류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고위급회담 때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동행해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의 상견례 성격을 가진 실무회담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전인 5월 김영철의 뉴욕행엔 김성혜 통일전선부 실장과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장대행이 따라 나섰지만 이번에는 최 부상까지 가세하면서 통일전선부와 외무성으로 북-미 회담판의 외연이 확장될 것이라는 의미다. 북한이 기대를 걸고 있는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과 북측 공동조사에 대한 제재 예외를 레버리지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고위급회담을 앞둔 북-미 간 장외 신경전도 치열하다. 5일 0시에 발표될 미국의 이란 제재는 북한을 향한 압박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핵합의 파기 후 이란의 말로를 보여주면서 비핵화 조치에 진전이 없다면 북한이 상응 조치로 요구하는 제재는 언제든 복원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신나리 기자}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북한의 최대 우라늄 정광시설로 꼽히는 황해북도 평산의 우라늄 광산시설이 계속 가동 중이라고 2일(현지 시간) 주장했다. 38노스는 이날 상업용 위성사진을 통해 “최근까지 평산 지역에서 우라늄석을 채광하고 정련하는 작업을 계속해 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16년부터 2년간 상업용 위성사진으로 평산군 우라늄 광산시설 변화를 추적한 결과 최근 시설 주변에 우라늄 정련 과정에서 생긴 광석 폐기물과 정제 부산물이 부쩍 늘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2년 전보다 인근 수면이 심하게 얼룩져 있다. 우라늄을 정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성 부산물이 강으로 배출돼 일어나는 현상으로 추정된다. 38노스는 “이러한 폐기물이 최근 채굴된 우라늄의 부산물인지, 이미 채굴돼 있던 것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아내기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평산은 북한이 우라늄 광석을 채굴한 뒤 농축 전에 ‘옐로케이크’(불순물을 제거한 제련의 중간산물)로 바꾸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핵무기 주재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기 위한 물질을 생산하는 시설이 가동 중이라는 정황이 나오면서 북한이 계속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확산되고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방한 중인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사진)은 1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에만 집중하고 인권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순진한(short sight and naive) 접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로스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여성 성폭력 실태 보고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비핵화를 우선해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북한 정부가 이런 이슈들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듯이 비핵화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비핵화와 인권 문제를 별도로 분리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이 제안한 이슈에 대해서만 협상하는 것은 ‘실수’라고 명백히 말하고 싶다”고 했다. HRW는 2011년 이후 탈북한 54명과 실제 성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들을 인터뷰해 북한 당 지도부나 보안원(경찰) 등 권력층에 의해 자행되는 각종 성폭행·성추행 사례를 소개했다. 로스 사무총장은 “‘고난의 행군’을 거친 1990년대 후반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장마당에 나선 기혼여성들이 특히 성폭력 위험에 크게 노출됐다”고 말했다. ‘장마당 단속원이나 보안원들이 장마당 밖에 빈방이나 다른 곳으로 따라오라고 한 뒤 여러 차례 성폭행했다’는 증언과 밤마다 탈북자 구금시설 관리들이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와 점찍은 여성에게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전날 상정된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인권은 보편적 가치의 문제로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한다는 기본 입장 아래 결의 채택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갑자기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대표로 하는 한미 워킹그룹 출범을 발표하면서 이 조직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상 주요 비핵화 이슈는 한미 양국이 동시에 발표했던 관례와 달리 이번엔 국무부가 먼저 발표한 만큼 워싱턴이 의지를 갖고 만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공식적으로는 비핵화 협상을 조율하고 실무를 다룰 협의 시스템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뤄져온 비핵화 논의의 세부사항을 채워가며 이행 조치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 하지만 비건과 이 본부장은 최근 석 달간 이미 14차례나 만나며 별도 조직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주 접촉해왔다. 그래서 일각에선 또 다른 조직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과속을 견제하고, 이를 통해 대북 협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트럼프의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작 급한 북-미보다 한미 먼저 워킹그룹 한미 워킹그룹은 비건과 이 본부장을 축으로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에 참여해온 당국자들을 중심으로 멤버를 구성하되 향후 분야별 소그룹을 만들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하되 통일부를 비롯한 다른 부처 관계자들도 필요에 따라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 측에서는 알렉스 웡 국무부 부차관보와 대북 담당인 마크 램버트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 국제안보비확산국(ISN) 내 검증·사찰 담당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에서는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명단에 들어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워킹그룹의 성격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사이에 더욱 긴밀한 논의를 위한 기구로 안다”고 밝혔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재의 양국 논의를 정례화,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이 시점에 워킹그룹을 새로 구성하는 이유에 대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준비의 세부 내용은 한미가 아니라 북-미가 워킹그룹을 꾸려 논의해야 할 사안. 막상 북-미 워킹그룹은 7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차 방북에서 “북한과 합의했다”고 밝힌 이후 4개월째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후 비건 대표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만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 속도 조절용 견제장치인 듯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과의 워킹그룹을 만들려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팰러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밝힌 워킹그룹의 4가지 의제는 △한미 간 외교 공조 △비핵화 노력 △대북제재 이행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협력이다. 제재 관련 비중이 절반을 차지한다. 비건 대표가 워킹그룹 구성에 나선 또 다른 배경엔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대북 관련 정보를 원한다는 속내도 깔려 있다. 청와대가 남북관계나 평화 구상을 주도하는 가운데, 미 국무부가 한국 정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는 말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북핵 협상을 주로 맡게 된 국무부가 외교부는 물론이고 비핵화, 남북관계 분야에서 청와대, 통일부와도 소통하자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가 이 본부장과 미국에서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돼 방한해 2박 3일간 두 차례 청와대를 찾은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비건 대표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평양정상회담을 수행했던 윤건영 국정기획실장도 비공개로 면담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신나리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정부는 판결 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정부는 한일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지일파 중 한 명인 이 총리가 직접 메시지를 낸 만큼 이번 사법적 판결이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가급적 줄여 가자는 시그널을 도쿄에 발신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 “총리가 나서 대응방안 마련할 것” 이번 판결로 당분간 경색 국면이 불가피한 문재인 정부가 택한 건 ‘로키(low key·저강도 대응)’다. 정부는 이날 “총리가 관계 부처 및 민간 전문가 등과 함께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해 보상이 끝났다고 했던 정부 입장이 뒤집힌 건지, 한국 내 일본 기업에 대해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일본 측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정부의 이 같은 스탠스는 외교적 문제를 더 키워봤자 득보다 실(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에 대한 반인도적 행위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만 식민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해 배상 책임을 묻는 건 국제사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오히려 50년 넘게 지켜온 양국 협정을 한국이 스스로 뒤집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없는 외교 상대’임을 주지시킬 우려도 있다. 정부는 민관공동위원회 협의체를 만들어 후속 대응에 나설 예정인 만큼 이 과정에서 일본과 절충점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민관협의체에 대해 “2005년 한일협정 문서 공개 당시 후속대책 논의를 위해 구성했던 민관공동위원회 형식의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비등점 찍은 후 냉각기 가질 수도 어찌 됐든 이번 판결로 최근 수년간 악화 일로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는 그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위안부 협상 파기,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을 따졌고, 지난달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선 문 대통령이 ‘화해와 치유재단’ 해산을 통보하면서 냉랭한 분위기를 이어갔다가 이번에 최고점에 달한 것. 그럼에도 한일 관계가 이번 판결로 비등점을 기록한 만큼, 냉각 기간을 거치면서 차분하게 재정립될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특히 북핵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 여부에 따라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북-일을 중재할 수 있는 한국과 계속 대립각만 형성할 수는 없다는 것. 여기에 비핵화 비용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면 일본의 참여가 불가피한 만큼, 한미일 3각 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2014년 일본군 위안부 갈등 때처럼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수준으로 오래갈 이슈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전망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문병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간)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며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재차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이 비핵화 속도에 점차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북제재 효과가 쌓이면서 결국 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야금야금 내놓는 것을 베껴 미국 또한 비핵화 시한을 점층적으로 늘리는 ‘살라미 미러링(mirroring·모방)’을 펼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트럼프 “비핵화 얼마 걸릴지 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일리노이주 정치 유세에서 북한의 비핵화 협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과 관련해 “북한 핵실험이 없는 한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사람들에게도 말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시간싸움(time game)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문턱을 없앤 것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시간 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종전선언 대신 대북제재 해제 같은 경제적 요구에 집중하는 만큼 키를 쥔 미국으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대북제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스란히 미국의 대북 협상 칩으로 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한은 중국, 러시아, 한국 사이의 좋은 위치에 있어 경제적으로 훌륭한 곳이 될 것이다. 위치가 좋아 환상적인 곳이 될 것”이라고 반복했다. 핵을 포기할 경우 과감한 경제적 보상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이 올해 정상 국가란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한 만큼 다시 핵 도발과 같은 길로 되돌아가기는 힘들 것으로 미국이 판단한 것이다. 결국 본격적인 비핵화와 보상의 주고받기를 앞두고 북-미의 샅바 싸움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조명균 “연내 김정은 답방, 종전선언 가능” 비핵화 협상이 늘어지면서 시급해진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연될수록 남북 경협과 교류도 덩달아 위축되기 때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한미 간의 이견으로 남북 사업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조 장관은 경의선 철도 공동 조사가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미국 측과 저희가 부분적으로 약간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와도 북한에 올라가는 열차에 필요한 유류 등과 관련해 협의하고 있다.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조 장관은 연내 종전선언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연내 실현을 목표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이 “연내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고 재차 묻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미 간 정상회담이나 고위급 회담은커녕 실무회담마저 지체되는 상황에서 연내 종전선언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더라도 청와대의 기대와는 달리 한미는 물론 남남 갈등만 더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초대형 태풍 ‘위투’가 할퀴고 간 사이판에 고립됐던 한국인 관광객 1800여 명 가운데 28일까지 약 600명이 괌으로 이동하거나 한국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여전히 1200명 안팎의 관광객은 전기가 끊기고 음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사이판에 남아 있다. 정부는 29일까지 전원 귀국시킨다는 방침이지만 관광객들의 혼란과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정전에 음식 재료까지 동나 군 수송기를 이용해 사이판에서 괌으로 이동한 뒤 귀국한 관광객들은 정부의 신속한 조치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28일 새벽 귀국한 임신부 박모 씨(26)는 “사이판에서 군 수송기에 탈 때 군인들이 귀마개를 나눠주며 친절하게 안내해 어려움이 없었다”며 “나는 빠져나왔지만 남은 관광객들은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황모 씨(34·여)는 “괌으로 빠져나왔을 때부터 군 수송기에 탄 사람들은 안도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28일 아시아나 항공기 편으로 사이판에서 귀국한 이모 씨(39)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어머니 심장약을 충분히 챙겨가지 않아서 귀국이 늦어지면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사이판에 고립돼 있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음식을 구하기 어려운 게 가장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영업을 하지 않는 식당이 많아 문 연 가게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일이 끼니때마다 반복됐다. 일부 호텔은 음식 재료가 떨어져 예약을 받지 않고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고객을 받고 있다. 밥값이 부담스러워 끼니를 거르는 관광객도 있었다. 외교부 주(駐)하갓냐 출장소 등에서는 군 수송기를 통해 구호물품을 사이판으로 옮긴 뒤 고립된 관광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 성모 씨(27)는 28일 “전날에는 즉석밥이나 통조림, 과자 등을 1인당 2개씩 받았지만 이날은 1인당 1개로 줄었다”며 구호물품 부족을 호소했다. 관광객들은 언제까지 사이판에 머물러야 할지, 호텔 숙박은 계속 연장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아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관광객 김모 씨(28·여)는 “26일 리조트에서 갑자기 ‘내일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고 해 밤중에 다른 숙소 4, 5곳을 돌았지만 빈 방을 찾지 못했다. 리조트 쪽에 사정한 끝에 간신히 숙박을 연장했다”고 토로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호텔 로비에서 밤을 지새운 관광객도 있다. 전기 복구가 늦어지면서 더운 날씨에 불편이 커지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 온 전모 씨(20·여)는 “밤에도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데 전기가 끊겨 엘리베이터와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최모 씨(39)는 “리조트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8세, 3세 아이들의 몸에 두드러기와 발진이 생겼다. 온수도 끊겨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아이들을 씻겼다”고 전했다. 도로 사정이 열악하고 휘발유가 부족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 태풍이 물러간 뒤 도로 정비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일부 도로는 쓰러진 야자나무 등으로 통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관광객 A 씨는 “주유소 앞에 기름을 넣기 위한 차량이 길게 줄을 서고 있어 택시운전사들도 ‘4∼5시간씩 줄을 서야 기름을 넣을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군 수송기 탑승 놓고 갈등도 정부가 파견한 군 수송기 탑승 기준을 놓고 현지 체류 중인 일부 한국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한 체류자는 ‘못에 긁혀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며 우선 탑승을 시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임신부나 환자·부상자, 고령자는 본인만 탑승 가능하며, 영유아 보호자는 한 사람만 탑승할 수 있다는 기준 때문에 탑승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사이판 시내 호텔에 체류 중인 양모 씨(37)는 태풍으로 호텔 유리창이 깨지며 파편에 다리를 베였고 병원에서 치료도 받았다. 부상으로 우선 탑승 대상자가 됐지만 함께 온 6명의 가족을 두고 홀로 귀국할 수 없어 우선 탑승을 포기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되며 혼란을 키우기도 했다. 사이판 체류 한국인들이 항공기 운항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여행사를 통해서 온 사람은 군 수송기 탑승 대상에서 빠진다”는 등의 내용이 퍼졌다. 정부가 투입한 군 수송기를 통해 27일 161명의 고립 관광객을 괌으로 옮겼고, 이들은 28일까지 모두 귀국했다. 28일에는 군 수송기가 4차례에 걸쳐 330명을 사이판에서 괌으로 이송했고, 이들도 대부분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아시아나 항공기 편으로 사이판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258명 중에는 93명이 한국인이었다. 외교부는 “현지 공항 발권 시스템 미비로 현장 판매가 안 됐다. 기존 예약자 중 빠른 일자부터 발권을 진행하다 보니 중국인 탑승객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9일 4편의 국적기가 사이판에서 인천공항으로 운항하고, 군 수송기도 계속 운항할 예정이다. 정부는 괌으로 이동했다가 귀국하는 인원 등을 합치면 29일까지는 사이판 체류 관광객들이 전원 한국에 도착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현지 기상과 공항 사정 등 변수는 남아있다.홍석호 will@donga.com·김은지·신나리 기자}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사진)가 한미 간 대북 공조를 조율하기 위해 28일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외교부는 비건 대표가 2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수석대표 협의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이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은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비건 대표의 한국 방문에는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과 케빈 김 국무부 대북선임고문이 동행했다. 비건 대표의 방한은 이번이 네 번째. 이 본부장이 21∼23일 미국을 찾아 협의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한미 수석대표가 다시 만나는 것이다. 정부는 비건 대표의 방문을 통해 남북 경협의 빗장이 풀릴지 주목하고 있다. 당초 이달 하순에 예정돼 있었던 남북 철도·도로 협력 북측 현지조사 관련 실무회담이 열리지 않자 미국과 이견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비건 대표가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 북한 양묘장 현대화 등 남북 경협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제재 예외 인정 문제를 언급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러시아 등 우방과 관련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통’으로 불리는 신홍철 외무성 부상은 29일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교차관과 만나기 위해 27일(현지 시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이달 초 최선희 외무성 부상에 이어 신 부상까지 모스크바를 찾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임박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모르굴로프 차관이 김 위원장의 방러 및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일정에 대해 “조율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힌 만큼 신 부상의 방러는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통일부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보수에 들어간 총공사비 97억8000만 원의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최근 100억 원 가까이 지출된 공사비가 과다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항목별 비용을 밝히면서 ‘퍼주기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배포한 ‘공동연락사무소 개보수 공사 참고자료’에 따르면 사무소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재료비 34억9000만 원, 노무비 25억8000만 원, 경비 8억5000만 원, 부대비용 26억9000만 원, 감리비 1억7000만 원 등으로 구성됐다. 감리비를 제외한 개보수 공사 비용은 연락사무소 청사와 숙소 등 직접 시설에 총 79억5000만 원이 들었고, 연락사무소 운영에 필요한 정·배수장, 폐수·폐기물처리장 등 지원 시설에 16억6000만 원이 들었다. 재료비는 철거 및 재시공을 위해 투입된 건축자재, 배관류 및 필요 장비와 가구 등에 들어간 비용으로 이번 총공사비 중 36.3%를 차지했다. 공사에 투입된 인원 2026명에게 준 노무비는 총공사비의 26.9% 수준이었다. 통일부는 “특수 지역에 따른 인건비 할증(40∼45%)과 하루 5시간 정도 일하면서 상대적으로 임금이 많이 들었고, 장기간 방치된 시설과 장비를 철거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통일부는 자료에 지원 시설과 식당 등 편의시설에 공사 현장 사진 15장을 게재해 각각의 공사 내용과 공사비 사용 현황을 소개했다. 앞서 통일부는 연락사무소 개보수 비용 논란이 일자 28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공사비를 공개했다. 25일에는 개보수 액수를 공개하고 26일에는 시설별로 소요된 공사비를 밝힌 데 이어 28일에는 내용별로 공사비 구성을 밝힌 것. 그러나 일각에선 통일부가 사무소 관련 비용을 살라미식으로 쪼개 발표하는 등 여론 눈치를 보다 불필요한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