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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북핵 ‘다 걸기’ 외교 속에 감춰졌던 위태위태한 한미동맹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2월 2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찾아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방위비 분담금의 최종 마지노선으로 10억 달러(약 1조1300억 원)를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의 법적 근간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다른 방식으로 이행하겠다고 말했다고 정부가 확인했다. (본보 22일자 A1·3면 참조) 지난해 분담금은 9602억 원. 이에 정 실장은 “1조 원 이상은 안 된다”며 9999억 원을 제시했고 해리스 대사는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해리스 대사의 제안을 포함해 지난해 분담금 협상 고비마다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한 가운데 분담금을 둘러싼 한미 간 균열 징후가 감지되면서, 이 문제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등 한미 연합 전력에도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2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2월 28일 청와대에서 정 실장을 만나 1년 유효기한과 함께 분담금 10억 달러를 제시했다. 지난해 분담금 9602억 원보다 17% 인상된 금액을 최후 통첩한 것. 정 실장은 1년 유효기한은 물론 액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9999억 원을 제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협상 때마다 직접 지시하며 고강도 압박에 나섰다. 협상 상황을 알고 있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초기엔 16억 달러(약 1조8015억 원), 12억 달러(약 1조3600억 원)를 잇달아 제시했다가 이를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특명(direct order)을 내려 협상을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협상 초기 미국에서 16억 달러를 요구하자 우리 측 협상팀은 “이게 무슨 동맹이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정부는 다음 달 말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는 어떻게든 분담금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지만, 결국 한미 정상 간 담판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비핵화라는 한배를 탄 미국이 설마 주한미군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란 낙관론에 기대다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 원로들은 더 늦기 전에 양측이 수용 가능한 선에서 접점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도 “한미 모두 파국은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만큼 2차 북-미 회담 전까지는 한미가 각자의 제안액 사이에서 극적으로 절충점을 찾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액수보다 한미동맹과 안보 영향이라는 큰 문제를 보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문병기 기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2월 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다른 방식으로 이행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차원이다. 외교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검토 중인 민감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주한미군 규모를 조정하진 않더라도 북한에 내어줄 보상 옵션 중 하나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고려할 수 있다는 뜻을 정부에 내비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WP “주한미군, 북핵 협상서 가장 중요한 카드” 미국이 한미동맹 이슈를 북한과의 협상 의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및 검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등을 제안하면 주한미군 일부를 줄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그간 안보 무임승차론을 강조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겐 주한미군 일부 감축은 한국을 길들이는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는’ 카드다. 정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 중인 북-미 실무협상이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 이슈가 테이블에 오를지 우려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 논란을 줄이려면 2차 북-미 정상회담 전 분담금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 시간) “주한미군 감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는 간접적인 선물이 될 것이고, 미국이 북핵 협상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카드”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분담금 증액에 몰두하고 있어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靑 “1조 원 넘기면 지지층 다 떠나” 난색 한미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부담하는 분담금 총액과 분담금 협정이 적용되는 유효기간을 놓고 의견 대립을 빚고 있다. 특히 총액의 경우 지난해 12월 마지막 10차 협의에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지난해 9602억 원의 2배 정도인 16억 달러(약 1조8017억 원)를 요구했다가 12억 달러(약 1조3566억 원)까지 낮췄다고 WP는 보도했다. 1조 원 아래로 맞춰 보려는 한국 입장에선 12억 달러도 수용 불가하다고 했고 이에 미국은 액수를 낮추는 대신 미 항공모함의 한반도 인근 전개 등 군사작전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했다고 WP는 전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도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1조 원 이하로 상한선을 제시하자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면서 협상을 뒤엎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10차 협의 전후로 미국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줄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하자 강경화 외교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조 원을 웃도는 선이 아니면 협상 타결이 어렵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나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의용 안보실장이 ‘1조 원을 넘기면 (정권) 지지층마저 떠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화, 국회에 지원사격 요청 강 장관이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협조를 요청한 것은 분담금 협정에 대한 비준동의권을 갖고 있는 국회를 움직여 어떻게든 ‘현실 가능한 안’을 찾아보자는 시도로 풀이된다. 강 장관을 만난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의원들도 ‘협상이 파국으로 가면 안 된다, 한미동맹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게 기본 전제”라며 “(강 장관의 방문은) 협상이 타결됐을 때 국회의 비준동의를 못 받으면 또 다른 파장이 일어나니 미리 설명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고위급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상 간 합의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은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통화를 하고 합리적 타결안에 조속히 합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홍정수·한기재 기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2월 말 청와대를 방문해 제10차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면서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다른 방식으로 이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한미동맹 이슈를 협상 레버리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1953년 10월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 근간이다. 익명의 외교 소식통은 21일 “지난해 12월 말 해리스 대사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비공개 협의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까지 언급하며 분담금을 더 내라고 압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 25일 연이어 “우리(미국)가 불이익을 당하면서 부자 나라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직후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주한 미대사관 측은 “비공개 외교적 협의(Confidential diplomatic discussions) 내용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제안하면서 주한미군 규모 감축이나 연합훈련 폐지 또는 축소라는 ‘상응 조치’를 요구하고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난해 분담금은 약 9602억 원. 이를 기초로 한미는 올해부터 적용될 분담금 협정을 놓고 지난해 10차례 협상했지만 연내 타결에 실패했다.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국은 당초 16억 달러(약 1조8017억 원)를 제시한 뒤 한국이 반발하자 1조3000억 원 수준으로 낮췄다. 그러나 한국이 ‘1조 원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자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사흘간 열린 10차 협의에서 다시 요구액을 높이고 협정 유효기간을 현행 5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고 제안해 협상이 결렬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1일 국회를 찾아 강석호 외통위원장 등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분담금 협의 과정에서 한미 이견이 아주 큰 상황”이라며 분담금 협정의 비준동의권을 가진 국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홍정수 기자}

19일(현지 시간) 늦은 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하크홀름순드 콘퍼런스장. 멜라렌 호숫가와 깊은 산속에 둘러싸인 이곳은 기자가 이날 차로 이동하던 도중 꼬불꼬불한 산길에서 사슴을 두 차례나 만날 정도로 고립돼 있었다. 인적 드문 스톡홀름 외곽의 회의장 주변이 갑자기 분주해진 것은 18일부터다. 남북미 북핵 실무협상 대표들이 속속 모여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비공개 실무협의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17일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8일 오전에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차례로 도착했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워싱턴 방문을 줄곧 지켜봤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9일 오후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이곳에 합류했다. 한국, 스웨덴, 일본 언론들이 수 시간째 진을 치고 있지만 정문에서부터 사주경계를 늦추지 않는 스웨덴 경찰들의 철통 경비로 회의장 접근이 막혀 있는 상태다. 22일 출국 예정인 각국 협상단은 스웨덴 정부가 마련한 이곳에서 21일까지 식사와 숙박을 해결하며 협의를 진행한다. 19일 오후에는 스웨덴 정부 주최로 환영 만찬이 진행됐다. 19일 오후 이곳에서 스웨덴 정부와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주최하는 소규모 원탁회의에 남북미 3국 대표가 참석했고 이는 20일에도 계속된다.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과 얀 엘리아손 전 유엔 사무부총장 등 다자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정치인과 민간 전문가 등 30여 명도 함께했다. 현지에선 무엇보다 비건 대표와 최 부상의 첫 만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초부터 시도했으나 계속 불발됐던 북-미 비핵화 협상 실무팀의 첫 만남이다. 북-미는 스톡홀름 협상 테이블에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로 상징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 남북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제재 면제 등 미국의 상응 조치를 모두 올려두고 ‘시퀀싱’(순서 맞추기) 작업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어렵사리 성사된 첫 실무 만남인 만큼 그동안 난산을 겪었던 ‘비핵화+상응 조치’ 조합이 단박에 나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한 외교 소식통은 “ICBM 반출 혹은 생산 중단 정도로는 미국이 제재 완화를 해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18일 김영철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고위급 회담이 끝난 뒤 “양측의 견해차가 좁혀졌다는 징후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단순한 북-미 실무급 회담이라기보다는 김영철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 이후 곧장 열린 데다 한국까지 실무 회담에 사실상 참여하는 만큼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끌어낼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많다. 한국이 과거 6자회담 같은 다자협의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오거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미 간 협상 중재자 역할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협상 전면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도훈 본부장은 앞서 9일 방한 중이던 켄트 헤르스테트 스웨덴 한반도특사와 면담을 한 바 있어 사전에 스웨덴 측과 이번 실무회담 합류 가능성을 조율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스톡홀름=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신나리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사실상 베트남으로 좁혀지고 있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북-미 고위급 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한 가운데 이르면 18일(미국 시간) 정상회담 장소와 일정이 공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트남 현지 정부 고위 소식통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미 회담 개최지가) 베트남 수도 하노이로 거의 기정사실화돼 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노이의 최고급 호텔들은 이미 VIP룸을 비워 가며 채비에 들어갔다고 귀띔했다. 마이클 매콜 미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도 16일(현지 시간) “동아시아·태평양 주재 미 대사들을 어제(15일) 만났는데 2차 정상회담은 하노이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전했다. 주베트남 북한대사관도 하노이에 있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평소에도 김명길 북한대사가 주변 공관장들과의 만남을 피해 왔는데 회담 개최가 결정되면 외부 노출을 더욱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노이에서 열린다면 회담장 및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로는 하노이 JW매리엇 호텔이 유력해 보인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 등 국빈이 방문할 때마다 묵는 숙소인 데다 인공호수에 둘러싸여 있어 1차 회담 장소였던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처럼 경호에 용이하다. 베트남 중부 휴양지인 다낭도 후보지로 거론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과 아시아 외교관들을 인용해 “(2차 회담 장소가) 3, 4월 다낭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베트남이 손꼽히는 것은 북한 경제 발전의 롤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과 수교한 베트남은 김 위원장이 원하는 ‘정상 국가화’와 흡사한 모델이다. 베트남이 격렬한 내전 끝에 반미 국가의 길을 걸었다가 시장경제를 수용한 뒤 미국과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북한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등 북-미 관계 개선안을 도출해 낸다면 상징성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 왔던 북한의 ‘더 밝은 미래’와 닿아 있기도 하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최지선 기자}

미국 중간선거 전날인 지난해 11월 5일. 미 국무부는 ‘8일 뉴욕 북-미 고위급 회담’을 공식 발표하며 협상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중간선거 투표 개표가 한창이던 7일 0시경 돌연 회담 연기가 발표됐다.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어야 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 김영철이 다시 베이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편도 비행기 표, ‘원웨이 티켓’을 끊었다. 17일 오후 6시 25분(현지 시간) 베이징을 떠나 미국 현지 시간으로 당일 오후 6시 50분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UA 808편이다. 그동안 북-미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중동 속 극비리에 CIA-통전부 막후 협상 미국은 “서로 분주한 일정 탓에 미루자”는 북한의 연기 요청으로 회담이 취소됐다고 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가 어려워져 미국행이 취소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 조건과 상황이 맞지 않아서였다는 게 외교가의 주된 설명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당시) 북한이 협상카드를 모두 제시했는데 미국이 (보상에 대한)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북한이 ‘이런 식으로는 어렵다’고 해서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뉴욕에서 김영철을 만나고 그 다음 날 돌연 워싱턴으로 이동해 중국과 2+2 회의를 진행한다고 북한에 알렸고, 이를 전해 들은 북한은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한 뒤 취소했다”고 말했다. 조건도 안 맞는 데다 홀대당하는 듯한 형식에 반발한 것이다. 이후 고위급 회담이 무산되고 공식 외교 채널이 흔들리자 비핵화 협상은 교착 장기화로 가는 듯했다. 그러자 지난해 11월 말부터 미 중앙정보국(CIA)-통전부 채널이 다시 가동됐다. 지난해 12월 CIA를 떠나기로 한 앤드루 김 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통전부 라인과 접촉에 나섰다. 김 센터장이 11월 말부터 12월 사이에 던진 마지막 카드가 김영철의 방미를 이끈 키포인트였다는 후문이다. 김 센터장의 후임도 기세를 이어받아 1월 초 판문점 접촉까지 긍정적인 기류를 유지해 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서도 이 통로를 거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제재 완화와 영변 시설 폐기 맞바꿀 수도 정보라인을 통해 오간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 세부 조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는 영변 핵시설 단지로 국한해 ‘폐기를 전제로 한 동결’이 거론된다. 전국의 핵시설 신고 문제를 놓고 “고의로 누락했다” “숨긴 것 아니냐”며 다투다 대화가 어그러진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현실 가능한 목표로 타협할 것이라는 얘기다. 미 측의 상응조치는 다양한 옵션이 제기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상응조치와 관련해 “종전선언을 포함해서 인도적인 지원이라든가, 어떤 상설적인 미북 간 대화채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중 북측에 의견을 전달했고 2차 정상회담에서도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안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상시 대화채널, 즉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논의다. “미 측이 종전선언을 건너뛰고 곧바로 평화협정을 하기 위한 논의 개시도 제시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평화체제 논의를 위해 우선 종전선언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본격적인 대북제재 해제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도 “정부로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지금은 검토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합작회사 금지, 특정 물품에 대한 수출입 금지, 금융 관계를 차단하는 다양한 제재 요인이 있기 때문에 다각도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 한기재 기자}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와 북한 통일전선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초까지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논의차 판문점 등에서 수차례 극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8일 미 뉴욕에서의 북-미 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뒤 외교채널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자 정보라인이 물밑 접촉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이 내놓을 상응조치 간 조율을 시도한 것.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17일(현지 시간) 북한 고위 관계자로는 처음 직항편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18일경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뒤 상황에 따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할 계획이다. 비핵화 협상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16일 “미 CIA와 북한의 통전부 라인이 중심이 돼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시간, 장소를 조율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미 외교 소식통은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내놓을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서로 주고받는 초입 단계, 협상의 입구를 설정하는 것”이라며 “양측이 그동안 주장해 왔던 요구들을 조금씩 양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미국은 CIA-통전부 막후 협상을 통해 △북-미 관계를 개선한다는 싱가포르 합의 정신에 따라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평화협정을 위한 다자회담 관련 논의를 시작하며 △대북제재는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개성공단 재개 등 일부 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를 논의한다는 내용의 상응조치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북한은 비핵화 조치로 북한 핵의 상징인 영변 핵시설에 국한해 ‘폐기를 전제로 한 동결’에 나설 수 있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포함한 추가 조치를 취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논의는 지난해 12월 하순 물러난 앤드루 김 전 KMC 센터장이 주축이 돼 진행됐고, 후임 센터장이 연말부터 이어받아 판문점 협의 등을 통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구체화해왔다고 한다. 김영철은 17일 오후 6시 25분 베이징을 떠나 미국 현지 시간으로 당일 오후 6시 50분 워싱턴에 도착하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UA-808편을 예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위급 회담 결과에 따라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이르면 다음 달 20일 전후 베트남 하노이 또는 태국 방콕에서 열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추진도 그만큼 당겨질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이란산 컨덴세이트(초경질유)의 수입이 이달 말부터 재개된다. 지난해 11월 5일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미국의 대(對)이란 독자 제재로부터 한국이 예외를 인정받은 지 약 두 달 만이다. 앞선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달 말 들어오는 물량은 예년 평균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15일 “후세인 안사리 이란 외교부 경제차관보가 18일 방한해 외교부에서 차관보급 비공개 협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속적인 원유 수급과 원화 사용 교역결제 시스템의 원활한 사용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제재로 교역이 제한되는 이란 측에서 의약품과 자동차 부품 등을 수출해 달라고 우리 측에 요청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이 15일(현지 시간) 보도한 원유 수송 분석 자료에도 이란 국영 원유회사의 수송 선박 ‘실비아 1호’가 이달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영 원유회사는 4월까지 최소 1400만 배럴의 원유를 한국에 보낼 것으로 보인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A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카운터파트가 바뀐 지 한참 지났는데도 만날 때마다 상대국 관계자에게 알고 지내던 해당국 외교관의 안부를 묻는 것은 외교부의 오랜 관례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말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20∼30년간 대미·대일 외교를 책임져 왔던 ‘워싱턴 스쿨’(미국통 외교관) ‘저팬 스쿨’(일본통 외교관) 출신들이 줄줄이 교체된 흐름과 무관치 않다. 새 정부 들어 적폐로 몰리거나 한직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다자, 경제 전문 외교관들이 차지한 데 따른 것이다. 비교적 순탄하게 넘어갈 수 있는 양자 현안이 갈등으로 부각되는 것도 이 같은 네트워크가 흔들리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실제 최근까지 언제든지 국무부 핵심 관계자들과 연락하면서 미국통으로 불리던 이들이 보직을 잃고, 일본군 위안부 합의 당시 당국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면서 외교부 내의 ‘전문가 그룹’은 명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일본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한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본부에서도 일본 업무를 맡길 사무관을 찾아 제발 와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젊은 외교관들이다. 한창 뜨거운 이슈인 북핵이나 대북정책을 다루는 ‘신흥 명문’ 한반도평화교섭본부 근무를 선호하거나 ‘워라밸’이 가능한 부서를 찾는 경향이 커졌다. 서기관급의 한 외교관은 “선배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열심히 일해 봤자 우리를 보호해 줄 안전장치가 없다는 데서 좌절감을 느꼈다. ‘○○ 스쿨’로 운신의 폭이 줄어들까봐 겁난다”고 전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지훈 기자}
#1. “어떻게 대통령비서실장 후보에 미중일러 4강 대사가 한꺼번에 거론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12월 말 여권 핵심 관계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후임 인선이 한창일 때 이렇게 말했다. 노영민 주중 대사가 최종 발탁됐지만 조윤제 주미 대사, 이수훈 주일 대사가 동시에 거론됐고, 우윤근 주러 대사는 본인이 고사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이제부터 4강 외교를 기반으로 북핵 장기전에 들어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2. 요즘 미국의 지한파 인사들은 방한 시 외교 관계자들을 만날 때 자주 “한미 관계를 이대로 둘 거냐”고들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말은 지금 북핵 해법을 둘러싼 한미 양국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까지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분석관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미 간 정책 차가 너무 커서 이제는 숨길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반도 명운을 가를 북핵 비핵화 협상의 분수령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작 이를 추동해 결과물을 낼 한국의 4강(强) 외교는 실종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한 만큼 북-미 중재자 역할은 물론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과도 협력하면서 외교적 입지를 넓혀야 하지만, 북핵 외교에 가려졌던 해묵은 양자 현안들에 발목이 잡혀 전통적인 관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 북핵 문제에 ‘다걸기(올인)’하다가 정작 북핵 외교를 움직일 핵심 국가들을 상대할 전략전술과 기초체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4강 국가별 현안들은 봇물 터지듯 불거지고 있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개성공단 재개 여부를 앞두고 남북 경협 과속 논란도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일본과의 협력은 위안부 합의 재검토, 화해치유재단 강제 해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레이더 갈등 등으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방북하는 순간 삽시간에 나머지 두 나라와의 외교적 거리도 멀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 4강 외교 최전선에 있어야 할 대사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수준이다. 주재국에서의 존재감이 이전만 못하다는 얘기다. 조윤제 주미 대사만 해도 북핵을 실무 총괄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한 외교계 원로는 “대통령의 복심들이 부임했지만 주재국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심어줄 역량은 부족한 듯하다”며 한숨을 쉬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전 북한과의 꽉 막힌 비핵화 협상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는 버리지 않되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 비핵화 사전 조치를 찾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최근 미 국무부를 중심으로 워싱턴이 평양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부터 폐기하자’는 시그널을 보내는 징후들이 포착된다. 미국의 비핵화 협상 실무를 지휘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1일(현지 시간) “최종 협상 목표는 미국인의 안전이다. 미 국민의 위험을 줄일 방법에 대한 북한과의 대화, 비핵화 협상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9일 한반도 전문가인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란 표현을 잇달아 쓰고 있는 것과 관련해 “달성하기 어려운 비핵화 목표 대신 ICBM 제거 쪽으로 대북 정책이 수정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국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서도 난관이 예상되는 완전한 비핵화보단 우선 ICBM 폐기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인들 입장에선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미국 본토에 위협을 줄 수 있는 ICBM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며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문제로 연방정부가 멈춰 선 트럼프로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면서 ICBM 이슈를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가져가되 ‘핵 동결’로 한 박자 쉬고 가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동아시아태평양지역 합동전략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개발, 핵·탄도미사일 실험, 핵 물질 생산을 동결하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힌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 시설물에 대한 전체 리스트를 공개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신뢰가 쌓이면 신고 리스트에 준하는 실사 확인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핵 폐기와 신고가 겸해지는 상태가 된다”고 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조정관은 미국의소리(VOA)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지만 단계적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그 수순을 밟아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악용해 비핵화 협상을 미국과의 핵 군축협상으로 변질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핵 동결(Freeze)에 그치고 핵 불능(Dismantle)으로 가지 못한다면 한국으로서는 계속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북-미가 2차 정상회담 과정에선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개념 정립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핵 동결만 하더라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치적 선언에 그치는지, 영변 핵시설처럼 조건에 맞으면 국제검증단의 사후 감시도 계속 받겠다는 기술적 동결에 합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발표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미국은 북한을 향한 유화 제스처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11일(현지 시간) 외교관과 구호단체 활동가들을 인용해 국무부가 9일 북한에 대한 미국인 구호단체 관계자들의 방북 금지를 해제하고 북한으로 향하던 인도주의 물자에 대한 봉쇄도 완화키로 한 결정을 국제 구호단체들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지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로 가기 위한 사전 조치로 ‘화성-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반출 또는 폐기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폐기를 현실적 목표로 설정해 원론적 합의에 그친 1차 북-미 정상회담보다 진일보한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13일 “미 국무부가 ‘궁극적 목표는 CVID이지만 현 단계에서 북한에 핵 신고·검증 리스트를 달라고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무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동아시아 태평양지역 합동전략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개발, 핵·탄도미사일 실험, 핵물질 생산을 동결하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ICBM 등의 폐기나 미사일 생산라인, 다른 핵 단지들의 폐기 등을 통해 미국의 상응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북한이 이를 빌미로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으로 선회하면 비핵화 프로세스가 지연될 수 있는 만큼, CVID를 최종 목표로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1일(현지 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인 비핵화에 도달해야 한다”면서도 “(북한과) 어떻게 미국 국민에 대한 위협을 줄일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인의 안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과 태국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가 미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은 “베트남 하노이와 태국 방콕 모두 정상회담 유치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일본 정부가 9일 한국 정부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기초한 외교적 협의를 요청하면서 ‘30일 내로 답변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일본은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에 대한 외교 공세를 예고한 바 있지만 외교적 협의를 요청하면서 일방적으로 데드라인을 제시해 외교 결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9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신일철주금에 대한 자산 압류 신청을 승인한 데 대해 반발하며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전달한 외교적 협의 공식 요청 문건에서 답변 시한을 30일 이내로 못 박았다. 한일 간의 해석 또는 실시 사항의 분쟁이 있을 경우 외교상의 경로로 먼저 해결하도록 규정한 청구권협정 3조에 따른 행위로 일본이 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협정은 외교적 협의가 불발되면 한일과 제3국의 3인으로 구성된 중재위원회를 30일 내에 꾸리도록 하고 있지만, 어느 한쪽이 30일 안에 외교적 협의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일본이 법적 근거도 없는 시한을 제시한 것은 그동안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 등이 언급했던 제3국이 포함된 중재위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와 같은 추가 대응조치로 넘어가려는 명분 쌓기로 해석된다. 한국의 동의 없이는 국제 재판이 성립될 수 없지만, 국제 여론전에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일본 측의 청구권협정상 양자협의 요청에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본 측의 억지 부리기에 불필요하게 휘말리지 않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검토 중인 강제징용 피해자 구제 및 일본 정부 대응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서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로선 한국 정부와 기업, 일본 정부와 해당 징용 가해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피해 구제기금 조성 방안을 구상하고 있지만 일본 측의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함께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 주석은 중국이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에 더 적극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및 중국 관영 언론은 8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4차 북-중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이 지난해 3월 첫 회담을 가진 후 ‘비핵화 협상을 공동 연구·조종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조미(북-미) 관계 개선과 비핵화 협상 과정의 난관과 우려, 해결 전망도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지금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 상황과 향후 전망, 시나리오별 액션플랜 등을 시 주석에게 밝혔다는 것. 특히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에 나서지 않을 경우 모색하겠다고 밝힌 ‘새로운 길’에 대해서도 시 주석과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북측이 주장하는 원칙적인 문제들은 응당한 요구이며 합리적인 관심사항이 마땅히 해결돼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한 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열고 결과를 달성하도록 지원하겠다. 믿음직한 후방이며 동지, 벗으로서 한반도의 정세 안정을 위해 적극적이며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편리한 시기’에 북한을 공식 방문하라고 초청했고, 시 주석은 쾌히 수락하고 방북에 대한 계획을 통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35번째 생일이기도 한 8일 전격 방중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선공(先攻)을 날렸다. 1일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 압박을 고수하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언급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보란 듯이 회담을 열면서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 등 동시보상을 외면하면 비핵화가 아닌 ‘플랜B’를 가동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보인 것.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반년 만의 중국 방문으로 멈춰 섰던 한반도 외교전을 재가동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진지한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플랜B’ 논의하며 미국 압박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지난해 북-중,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달라진 정세를 평가하고 올해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2인3각’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년사에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은 물론이고 전략자산 및 전쟁장비 반입 완전 중지를 요구한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쌍중단(雙中斷·연합훈련과 도발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동시 논의)을 관철하기 위해 중국과 공동보조를 취하는 방안을 재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년사에서 미사일기지와 핵실험장 폐쇄 조치에 이어 핵무기 제조·시험·사용·전파를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4불(不)’을 약속한 만큼, 이제 미국이 성의를 보이라고 압박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올해 중국을 포함한 4자 평화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구상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올해 목표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상황. 4자 평화협정은 한반도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의 희망이 반영된 구상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지난해 5월 다롄(大連)에서 열린 2차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중국을 제외한 남북미 종전선언이 추진되는 데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 완화 등 미국의 보상을 얻어내는 데 중국의 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에 대한 구체적인 복안을 시 주석에게 전달했을 것으로 보여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더 이상 양보는 없다”며 미국을 향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북-미 비핵화 대화 교착이 장기화될 상황에 대비한 전략을 조율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대화 임박 신호” 해석도 하지만 외교가에선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회담이 성사된 것을 두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지난해 이뤄진 김 위원장의 세 차례 방중은 모두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전후였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지 못하면서 북한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불신이 커지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시작으로 미국과의 대화에 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부각했다는 것.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북-미 회담을 더 진지하게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도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 북-중, 북-미 교류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교류가 서로 선순환해서 또 다른 관계의 진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미 간 간극이 여전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의제 조율 없이 살얼음판 위에서 추진되는 북-미 정상회담인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은 “제재 완화 등을 미국이 양보할 것 같지 않으니 북한이 과거의 게임 전략, 즉 냉전구도로 돌아간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특별 열차가 중국 베이징역에 도착한 8일 오전 10시 55분(현지 시간), 대(對)중국 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주중 한국 대사는 베이징에 없었다. 노영민 전 대사가 이날 대통령비서실장에 취임하기 위해 오전 한국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노 신임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11시경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이 방중할 때 노 실장이 베이징을 비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 실장은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이 세 번째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귀국해 자신의 지역구였던 충북 청주에 머물렀다.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난 노 실장은 ‘김 위원장 방중 기간에 주중 대사가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비판하면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하겠는가. 원래 어제 저녁(7일)에 귀국하기로 티케팅을 했었는데 오늘 온 것도 그 이유가 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한중이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이미 어젯밤과 오늘 아침 회의 등을 통해 다 마무리하고 오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사는 당초 7일 밤늦게 귀국하려다 이날 오전으로 비행기 편을 바꿨다. 노 실장의 귀국에 따라 주중 한국대사관은 당분간 공관 차석인 이충면 정무공사가 대사 대리 역할을 맡아 김 위원장의 방중 관련 상황을 점검한다.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

화해치유재단 해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레이더 갈등까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사안들이 잇따르자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인 ‘투 트랙’ 전략을 놓고서도 말이 많다.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한 한일 간의 협력은 협력대로 별개로 해 나가자’는 취지는 좋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통해 한일 관계 투 트랙 전략 구상을 내놨다. 독도 및 역사 왜곡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미래지향적인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을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거사 문제 해결은 여전히 답보 상태고, 한일 간 협력 면에서도 지지부진했다. 2016년 체결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두 차례 연장했지만 최근 한일 레이더 갈등에서 보듯 군사 분야 협력 역시 과거사에 얽혀 있다. 한일 군수지원협정(ASCA)의 논의와 한일 통화스와프협정 재추진도 난항을 겪었다. 투 트랙이 제 역할을 못하는 건 무엇보다 과거사 이슈가 쉽사리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한일 간 지속적인 논란의 진앙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그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은 해산했지만 남은 일본 정부의 재단 출연금 57억여 원을 어떻게 해결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전히 ‘휴화산’ 상태다. 지난해 11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이 난 이후에도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와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과거사 문제가 현안으로 계속 불거지는데 어떻게 미래 문제와 분리 대응이 가능하겠느냐. 그러다 보니 레이더 갈등처럼 해프닝으로 그칠 일도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자신이 있다면 일본 주장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다퉈서 우리가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확실히 이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부의 적극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개인적 청구권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법적으로 소송할 권능은 소멸됐다는 모순적인 판결을 내린 만큼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간 동영상 맞불 공개로 이어지고 있는 레이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군 당국 간 실무협의 개최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갈등이 장기화되면 8월로 계획된 GSOMIA 연장이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이 레이더 이슈와 관련된 허위 주장을 계속하며 사과하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가 나서 협정 연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GSOMIA 체결은 과거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 정부가 한국에 위성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군이 레이더, 정찰기 운용 등을 통해 수집한 대북 군사 정보 등을 제공받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안이다. 하지만 GSOMIA 파기는 한미일 3자 군사협력의 뇌관을 건드리는 문제인 만큼 파기까지 이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여전히 많다. 군 관계자는 “GSOMIA는 한미일 모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맺은 협정으로 GSOMIA까지 건드리는 건 우리 정부로선 엄청난 부담”이라며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손효주 기자}

국방부가 레이더 조준 논란과 관련해 일본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영상을 8개 언어로 전파하기로 하면서 ‘레이더 갈등’이 점차 한일이 서로 물러서기 어려운 ‘치킨게임’ 양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불거진 과거사 갈등이 군사 분야로까지 번지면서 한일관계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6일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는 일본의 입장을 반박하는 영상에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 자막을 입혀 유튜브에 게재하기 위해 번역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4일 한국어와 영어 자막으로 제작한 4분 27초 분량의 영상을 게재한 데 이어 추가로 6개 언어 자막이 들어간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배포하겠다는 것. 일본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 여론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다. 국방부가 제작한 이 동영상은 지난해 12월 20일 광개토대왕함이 표류 중인 북한 어선에 대한 구조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일본 초계기에 추적레이더를 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당시 일본 초계기가 위협 저공비행을 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이날 국방부의 반박 영상에 대해 “일본의 입장과는 다른 주장이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방위성은 “광개토대왕함의 초계기에 대한 화기관제(추적) 레이더 조사는 예측 불가한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로 매우 유감”이라며 “향후 한일 방위당국 간 필요한 협의를 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정면 맞대응을 피한 채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레이더 갈등이 한일 군사당국 차원의 문제를 넘어 국제 여론전으로 비화되면서 이번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6일 강제징용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직접 이번 사안을 언급할 경우 한일관계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레이더 논란은 양국 군 당국이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며 “양국 군 당국 실무진끼리는 해결하자는 의지가 있지만 양측 국가 지도자들이 이번 사안에 대해 사실상 직접 대응하는 국면”이라고 했다. 특히 군 내부에선 이번 사태로 가뜩이나 휘청거리던 한일 간 안보협력이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한일관계는 북한을 압박할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갈등 국면은 북한이 박수치며 좋아할 상황”이라고 했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11월 체결한 GSOMIA는 한반도 유사시 한층 신속한 군사적 대응을 위해 북핵 및 미사일 동향 등 대북 군사정보를 비롯한 군사기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청와대는 GSOMIA 연장에 부정적이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아직 여전하다는 점을 들어 지난해 8월 이 협정을 1년 연장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GSOMIA는 한일 양국이 서로가 필요해 어렵사리 맺은 협정인 만큼 양국 모두 GSOMIA까지 건드리는 부담을 지려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본 정부 입장에선 보수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끌어안을 꽃놀이패가 될 수 있는 만큼 갈등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 기자 / 도쿄=서영아 특파원}

이탈리아 당국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망명을 타진 중인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사진)가 지난해 11월 초부터 공관을 이탈했으며, 특히 유럽 지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치품을 밀수·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교관의 망명 시도가 공개된 것은 2016년 8월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한국으로 망명한 지 2년 5개월 만이다. 조 대사대리와 친분이 있는 태 전 공사는 3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조성길은 김정은의 요트와 와인 등 사치품을 공급하는 담당자들을 총괄하는 위치”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이어 “조성길은 김정은의 호화 사생활 사치생활에 대한 정보와 루트를 매우 자세히 알고 있는 사실상 ‘유럽 쪽 금고지기’이자 ‘사치품 밀수 조달자’”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타는 요트 등은 이탈리아를 통해 북한에 조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조성길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 특히 조 대사대리는 부친과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고위층 집안 출신 엘리트 외교관이자 본인도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한 ‘북한판 금수저’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 전 공사는 “조성길의 장인은 이도섭 전 태국 주재 북한대사”라며 “경제적으로 최상류층이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도 능통하다”고 전했다. 복수의 정보 당국자에 따르면 조 대사대리는 지난해 11월 말로 임기 만료가 다가오자 11월 초 잠적한 뒤 가족들과 함께 제3의 서방국가로 망명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당국에 의해 은신처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사대리가 정확히 어느 국가로 망명을 희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국행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제3의 서방국가’로 망명을 희망했다고 알려진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의 거취를 놓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잠적한 조 대사대리와 가족이 현재로선 익숙한 이탈리아 또는 유럽 지역에 잔류하거나 신변 보호와 일정 부분 생계가 보장되는 미국을 택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정보당국과 정부는 일단 로키를 유지하면서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한국으로의 망명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2016년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망명 때와는 달리 남북관계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망명을 수용할 경우 향후 비핵화 프로세스에 미칠 파장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을 만나 “조 대사대리 부부가 함께 공관을 이탈했으며 이탈리아 현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고 정보위원들이 전했다. 슬하에 아들 하나가 있지만 함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우리 정보당국이 이탈리아 현지에서 대사관 동향을 추적해 오다 조 대사대리가 잠적하기 직전부터 놓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추적에 실패한 뒤 망명 신청 첩보도 언론보도가 나기 직전 인지했다는 후문도 있다. 국정원은 신변 안전 등을 이유로 추가 확인을 거부하고 있지만 정보위 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조 대사대리 측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접촉을 안 했다”며 한국으로의 망명 신청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조 대사대리 부부가 유럽 지역이나 미국을 포함한 북미 지역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태 전 공사는 이날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조성길 본인 결심에 달렸다. 잠적한 지 한 달 이상이 흘렀는데 한국행을 결심했다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접촉했을 것이고, 한국행이 아니라면 이탈리아나 유럽에서 신변 보호를 받으면서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후 최근 유럽에서의 망명이 부쩍 늘었다”며 “유럽으로 망명할 경우 북한에서 찾는 것도 힘들다”고 귀띔했다. 2015년경 이탈리아에서 북한의 외화벌이 기관인 당 39호실 소속 김명철 지사장이 망명해 이탈리아에 남았다는 전례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어떻게 나올지도 조 대사대리의 향방을 결정할 변수 중 하나다. 조 대사대리가 갖고 있을 밀수 및 본국으로의 식량 조달, 일부 핵 관련 정보를 미국이 탐낼 수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캐나다로 망명 다리를 놓은 뒤 북한과의 상황이 달라지면 미국으로 데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박효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