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우

신진우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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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아일보 신진우 기자입니다.

nicesh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미국/북미49%
국제일반27%
국제정치8%
산업3%
국제정세3%
중동3%
인사일반3%
대통령3%
기타1%
  • 인터넷 같이 하며 ‘선플’ 보여주세요

    아이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냈다. 처음엔 ‘괜찮겠지’란 생각을 했다. 산만하던 아이가 게임만 시작하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까지 했다. 게임에 빠지면 몇 시간이고 그냥 두면 되니 맞벌이하는 입장에서 편한 면도 있었다. 6개월쯤 됐을까.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의 말투가 변했다. 평소 나이에 비해 논리적으로 얘기하는 편이었던 아이가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비속어나 욕설도 내뱉었다. 말투 역시 공격적으로 변했다. 학부모인 유지혜(가명·39) 씨는 이로 인해 요즘 고민이 깊다. 온라인게임 채팅방에서 자주 쓰던 ‘나쁜 말’을 이젠 일상생활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기 시작한 아이. 게임은 못하게 했지만 입에서 쏟아내는 이 나쁜 말은 대체 어떻게 정리할까. 강용 한국심리상담센터 원장은 “단순하게 접근하는 게 좋다. 인터넷 사용을 억지로 막지 말고 일단 온라인상에도 좋은 말이 있다는 것부터 보여주라”고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아이와 함께 개방된 공간에서 온라인 활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생산적인 커뮤니티에 함께 가입해 활동을 해보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건전한 취미 활동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활동 등을 하면서 아이를 계속 지켜보고 실시간으로 조언도 해주란 얘기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이가 인터넷상에 좋은 댓글을 달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방법도 좋다. 강 원장은 “이런 방법들은 다소 인위적이고 유치해 보이지만 처음엔 이렇게라도 아이를 직접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 직접 아이에게 들려주는 방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양명희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초등학생 때는 아직 자신의 언어 습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단계”라면서 “일단 자기 스스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듣고 느끼고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에서까지 온라인상 나쁜 말을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면 이미 아이의 말은 경고 수준으로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다. 심리적으로 공격성 충동성 저항성 등도 평균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박인기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일단 언어를 순화하려면 나쁜 말로 분출하는 공격 성향부터 건전한 방식으로 전환시켜줘야 한다”면서 “스포츠, 여행 등이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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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3은 지원가능대학 좁히고 취약점 보완을”

    전국 고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진 3월 모의평가 결과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고교생 132만여 명이 치른 이 시험은 전국단위로 시행된 올해 첫 학력평가다. 1학년은 이 시험이 고교 진학 후 처음 보는 전국단위 시험이라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2학년 역시 입시전략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될 시점이라 결과가 중요하다. 가장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이들은 3학년. 3월 모의평가 결과가 본격적인 입시 체제에 들어간 이들에게 수시지원 대학을 파악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학력 기준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고3들은 3월 평가 결과를 통해 그동안 준비한 과정을 점검하고 지원 가능한 대학을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입시전문가들은 일단 모의평가 결과를 받으면 과목마다 꼼꼼하고 냉정하게 결과를 분석하라고 조언했다. 틀린 문제가 있다면 단순히 배점 확인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관련 영역이나 배경까지 공부해 취약점을 파악하고 보완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등급을 볼 때는 재수생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수능 과목별 등급 유지 및 상승 전략을 짜야 한다. 재수생이 응시하는 전국단위 모의평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6월과 9월 평가밖에 없다. 3월 모의평가에는 재수생들이 응시하지 않았다.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재수생 강세는 점차 심화되는 분위기다. 실제 최근 수능에서 국어의 경우 전국 4%인 1등급 학생 중 재수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30.7%(2010학년도)→34.2%(2011학년도)→36.8%(2012학년도)→38.4%(2013학년도)로 꾸준히 늘었다. 수학 영어 등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수능 2등급 이내로 범위를 넓혀도 재수생의 강세는 눈에 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재수생을 고려하면 3월 모의평가에서 국어는 2.5%, 영어는 2.3%, 수학은 2.2% 안에 들어야 실제 수능에서 1등급 받은 수준으로 기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3월 모의평가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시험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실제 수능과는 경향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문제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출제 의도 파악, 시간 배분 등은 잘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실전 전략 수립의 바탕으로 삼으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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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가출청소년들, 신림동이 ‘아지트’

    서울 관악구가 서울 시내 25개 구 가운데 가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아일보가 여성가족부, KT와 함께 지난해 9∼11월 ‘1388 청소년 헬프콜’로 걸려온 청소년(9∼24세·청소년기본법 기준)들의 전화 발신지를 추적해 분석한 결과다. 이 기간 헬프콜로 걸려온 청소년들의 전화는 전국적으로 15만여 통. 이 가운데 서울에서 걸려온 가출 관련 청소년들의 전화는 2만8000여 통이었다. 전화의 발신지를 분석한 결과 관악구가 낮 11.5%, 저녁 12.5%로 모두 비율이 가장 높았다. 낮·저녁 시간대에 가장 적은 은평구, 성동구보다 각각 10배가량 높은 수치. 관악구의 경우 낮에는 봉천동, 신림동에서의 발신 비율이 비슷했지만 저녁에는 유흥가가 밀집한 신림동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였다. 관악구 신림동 지역에 가출 청소년들이 많이 몰리는 것은 이 일대에 술집, 모텔, 고시원 등이 몰려 있는 데다 강남역, 압구정동 등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4년(2010∼2013년) 동안 전국 가출 관련 긴급구조 현황도 살펴봤다. 긴급구조는 헬프콜 상담 도중 해당 청소년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출동하는 경우다. 긴급구조 횟수는 여름철인 8월(1392회)과 7월(1340회)에 많았고 2월(809회)에 가장 적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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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나온 친구들과 놀 곳 잘 곳 많은 관악구, 낮밤 모두 북적

    《 지난해 말 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를 피해 가출한 이소연(가명·16) 양은 ‘가출팸(가출과 패밀리의 합성어로 가출한 아이들 무리)’과 함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를 떠돌며 생활하고 있다. 이 양은 “이 동네에 오면 값싸게 잘 곳도 많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도 많다”며 “친구들도 있고 놀 곳도 많아 집에 가고 싶던 마음까지 사라진다”고 말했다. 》○ 신림동은 가출 청소년 집합소 경찰청이 발표한 ‘실종아동·가출인 접수 현황’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은 지난해에만 2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렇게 집을 나온 청소년들은 유해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여성가족부가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실태조사’에선 성매매업소 등 유해업소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40%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정책은 소극적인 사후 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단 가출 청소년 현황 파악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보니 선제적 예방적 대책 마련 자체가 어렵다. 동아일보와 여성가족부는 정확한 실태 파악이 효과적인 제도를 만든다는 취지로 함께 ‘가출 청소년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3개월 동안 서울에서의 가출 상담 헬프콜 비율을 구별로 살펴본 결과, 관악구는 낮(정오∼오후 3시)과 저녁(오후 6∼9시) 모두 각각 11.5%, 12.5%로 가장 높았다. 헬프콜은 청소년들이 고민 상담을 하고, 가출 폭력 등 위기 상황 시 도움까지 요청할 수 있는 채널이다. 관악구의 헬프콜 비율을 동별로 분석한 결과 낮에는 신림동(53.5%)과 봉천동(44.2%)이 비슷했지만 저녁에는 신림동(88.9%)이 봉천동(4.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신림청소년쉼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들이 낮에는 봉천동의 학교 인근, 모텔, PC방 등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해가 지면 신림역 주변 유흥가, 신림초등학교 주변 빌라촌 등으로 몰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악구에 가출 청소년들이 집중되는 가장 큰 이유는 모텔, 원룸, 찜질방 등 잘 곳이 많아서다. 중구와 영등포구 등 청소년 인구 대비 헬프콜 발신 비율이 높은 다른 지역 역시 모두 비교적 저렴한 숙박업소들이 유흥가에 밀집돼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돈벌이가 비교적 쉽다는 점도 가출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요소다. 지난해 여름 집을 나와 종로, 신천역 부근을 전전하다 신림역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는 김영식(가명·15) 군은 “신림동에선 ‘알바(아르바이트생)’ 뽑을 때 신분증 검사를 안 해서 좋다”고 말했다. 김 군은 매달 70만 원 정도 드는 고시원 방값 및 생활비 마련을 위해 주유소, 패스트푸드 가게, 고깃집 등을 돌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자아이들의 경우 신림동을 근거로 ‘조건만남’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 많은 PC방이 탈선의 장소로 변하기도 한다.○ 빅데이터로 가출 청소년 구조 현재 정부가 진행하는 대표적인 가출 청소년 선도활동은 ‘아웃리치(out reach)’. 직접 인력을 거리로 투입해 청소년 상담 지원, 범죄 예방 등을 하는 방식인데 효과가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아웃리치에 나서는 시간과 장소가 정교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현재 아웃리치가 집중되는 기간은 5월과 10월. 하지만 가출 관련 헬프콜에서의 긴급구조 현황(2010∼2013년)을 조사한 결과, 연중 긴급구조는 7∼9월에 가장 많았다. 박성원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위기개입팀장은 “새 학기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한 아이들이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7월”이라고 했다. 김미영(가명·15) 양은 “여름엔 밤에 춥지 않아 거리에서 술 마시고 놀기에 좋아 가출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아웃리치 요일과 시간대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는 특별한 기준 없이 일주일에 2회, 오후 5∼10시에 아웃리치를 집중한다. 권용현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은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반영해 월 목요일 오전 9∼11시, 오후 9시∼밤 12시 무렵에 인력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럴 경우 현재보다 효과가 2, 3배는 클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빅데이터를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해 가출 청소년 구조에 나선다는 구상을 세웠다. 우선 각 부처 관련 기관들이 실시간으로 수집한 정보에 청소년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배출한 정보를 더해 위기경보가 가능한 실시간 예측 정보시스템을 만든다. 15억 원가량 예산을 투입해 위기경보 발생 시 인력을 집중 투입하는 시스템도 갖추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론 전국 단위 ‘위기청소년 맵(map)’을 만들어 분 단위로 실시간 가출 청소년 현황을 들여다볼 계획이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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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범죄 교수도 강단서 퇴출

    교육부가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를 교단에서 사실상 퇴출시킬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16일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대상을 대학까지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은 성범죄로 실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은 사람은 형 또는 치료감호 집행이 끝난 날로부터 10년 동안 유치원이나 초중고교, 학원 등에 취업할 수 없다. 교육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충남 공주대에서 제자를 성추행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교수가 올해 새 학기 전공과목 강의를 하면서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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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천기 가톨릭대 의대학장 “인성-실력 겸비한 굿닥터 키울것”

    표정에선 자신감과 긴장이 동시에 묻어났다.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로 키우기에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는 발언에선 자신감이 넘쳤다. 한편으론 “첫발을 떼는 느낌”이라면서 7년 만에 학부 신입생을 다시 뽑는 심정을 전할 땐 살짝 떨린다고 했다. 주천기 가톨릭대 의과대학장(58)을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 성의회관 7층 학장실에서 만났다. 주 학장은 “가톨릭대 의대는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췄다. 거기에 맞춤형 교육과정, 든든한 동문도 자랑이다. 기분 좋게 설렌다”며 웃었다.○ 교수 임용 비율, 경쟁 의대 압도 최근 가톨릭대 의대는 의예과 신입생 65명을 선발하는 2015학년도 모집요강을 발표했다. 2009년부터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운영하다 다시 의과대학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시작인 셈. 그런데도 입시가는 벌써부터 술렁거린다. 이유가 뭘까. 주 학장은 먼저 “다른 대학보다 월등히 앞선 인프라”를 강조했다. 가톨릭대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을 포함해 전국 8개의 부속병원에 5700여 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다. 모두 국내 최대 규모. 가톨릭대는 의전원 체제 전환 전에도 이미 수험생들이 ‘명분의 서울대’냐 ‘실리의 가톨릭대’냐를 놓고 고민할 만큼 선호도가 높았다. 주 학장은 “특히 요즘 학생들은 경력·실력을 기르기에 좋은 환경인 종합병원을 선호한다. 8개 부속병원 모두 종합병원 규모인 가톨릭대에 수험생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런 얘기는 허언(虛言)이 아니다. 가톨릭대 의대 졸업생 중 학교 수련의가 되는 비율은 100%에 가깝다. 최근 15년 통계를 보면 교수진으로 임용된 비율이 39%. 주 학장은 “보통 다른 유명 의대에서도 교수 임용 비율이 10%를 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기회의 천국인 셈”이라고 말했다. 교육 역량에 대한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일단 교수 수가 전국 의대 가운데 가장 많다. 166명으로 이뤄진 자문교수들이 학부 때부터 1 대 1로 학생들을 멘토링하기에 그물망 교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톨릭대 의대는 내년에 입학하는 신입생 전원에게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의대로 복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제공하는 파격적인 혜택이다. 각계각층에 포진한 5000여 명의 의대 동문도 무시할 수 없다. 주 학장은 “각막 이식(1966년), 신장 이식(1969년) 등을 국내에서 최초로 성공한 대학이 가톨릭대”라면서 “현재 국내 의료계 성장을 선두에서 이끄는 상당수가 동문”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인성 갖춘 진정한 의사 양성 서울성모병원 안과 센터장을 역임한 주 학장은 국내 안과계의 거두다. 국내 최초로 안구 기초 연구소를 개설한 주인공도 그였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전정한 의사’란 어떤 모습일까. 주 학장은 “부끄럽지만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진정한 의사는 실력이 최고인 의사와 동의어였다. “나에게 수술 받은 환자들은 가장 좋은 혜택을 받았다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어요. 그래서 후배들도 매우 엄격하게 교육했죠.” 하지만 이젠 제자들에게 인성과 배려부터 강조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야말로 윤리적으로 가장 성숙해야 할 직군이잖아요. 인성이 부족한 의사는 언제 양심을 팔지, 또 유혹에 흔들릴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또 자연스럽게 학교 자랑이 이어졌다. 가톨릭대야말로 ‘인성 교육의 메카’라는 얘기다. 그는 “천주교의 인간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학교인 만큼 교육과정 역시 인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의대에 입학하면 최소 1년 동안 ‘옴니버스 교육과정’으로 철학과 인문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매주 수요일은 아예 인문학의 날로 정했다. 다른 대학보다 3배 이상 의무 봉사활동 시간이 많고 공동체 훈련을 하는 이유도 인성 배양을 위해서다. 그는 “아픈 사람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차별 없이 가장 좋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의 혜택을 누리는 건 환자의 기본 권리이기도 하잖아요. 학교가 실력에 인성까지 완벽한 의사를 기르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죠.”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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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신진우]시간제 교사채용 철회… 교육정책도 ‘땜질’

    교육부가 시간선택제 교사 채용 정책을 발표한 지 채 네 달도 안 돼 정책을 철회했다. 사전에 충분한 여론 수렴도 하지 않은 채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졸속 발표한 결과다. 교육부 내부에서조차 “태생부터 부실한 정책을 싸고돌다 상처만 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 계획’의 일환으로 시간선택제 신규 교사 채용과 정규직 교사의 시간제 전환 정책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각 부처 정책의 일환이다. 며칠 뒤 교육부는 시간선택제 교사 채용 근거를 마련한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또 올해 2학기부터는 별도 임용시험을 치러 시간선택제 교사를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계는 반발했다. 교원 임용 제도는 교육 커리큘럼, 학령인구 변화, 전일제 교원과의 관계 등까지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교육부는 이러한 의견에 귀를 닫았고, 지켜야 할 절차조차 지키지 않았다. 정책 발표 전에 했어야 할 공청회는 열리지 않았고, 현장 의견 수렴 절차도 없었다. 뒤늦게 관련 연구 용역을 맡겼지만 연구 결과는 올해 1월이 돼서야 발표됐다. 정책 설계 전에 했어야 할 연구 용역이었다. 교사들은 물론이고 교원단체, 예비교사들까지 “청년 고용 효과도 미미하고, 교육적으로 문제가 우려되는 시간선택제 교사 제도에 반대한다”며 반발이 커지자 교육부는 뒤늦게야 여론 수렴에 나섰다. 결국 정책 발표 석 달여가 지난 7일 교육부는 ‘정규직 시간선택제 교사제도 도입·운영계획’에서 우선 기존 전일제 교사만 시간선택제로 전환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현직 교사가 육아, 가족 병간호, 학업을 이유로 시간선택제로 전환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시도교육감이 전환을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쟁점이던 시간선택제 교사 신규 채용과 관련해선 “관계 부처와 협의를 하고 교육계로부터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뒤 다시 결정하겠다”며 논의를 미뤘다. 하지만 교육계는 여전히 정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휴화산인 셈이다. 기자는 이번 해프닝이 교육부가 제도를 국민과 교육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교육계를 먼저 생각해서 만든 제도라면 그들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사전에 듣고 파악하는 과정을 안 거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이번 졸속 정책 추진은 대통령이 좋아할 정책을 먼저 만들고, 국민에게 ‘따르라’고 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신진우·정책사회부 niceshin@donga.com}

    • 201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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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대 모의논술 온라인으로 본다

    4.6%. 지난해 두 차례 실시된 한양대 모의 논술고사에 응시한 지방 고교생 비율이다. 수도권 고교생은 682명인 반면 지방 고교생은 33명에 불과했다. 올해는 어떨까. 15일 실시되는 모의 논술고사에 응시한 지방 고교생 비율은 35.7%. 지난해와 비교해 8배 가까이 되는 수준이다. 5일 오전 학교 홈페이지에서 접수를 받은 지 40분 만에 941명이 신청해 정원을 꽉 채웠다. 변화를 이끈 비결은 간단하다. 국내 대학 최초로 ‘온라인’으로 모의 논술고사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응시생은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 계열에 맞춰 시험을 골라 응시하면 된다. 답안은 컴퓨터로 작성하며, 고사 시작 75분 뒤에 자동으로 시험이 종료된다. 수리 논술의 경우, 키보드 작성이 힘들기에 응시생은 답안 양식을 출력해 수기로 작성한 뒤 답안을 촬영해 파일로 제출하면 된다. 이후 채점 및 결과 발표 등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지난해까지 학생들은 모의 논술고사를 치르기 위해 해당 학교로 고사 시간에 맞춰 찾아가야 했다. 대학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 학생들은 시·공간상 제약으로 가기 힘들었던 게 사실. 대학마다 고사 일자가 달라 오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한양대가 온라인 고사로 눈을 돌린 이유는 그래서다. 배영찬 한양대 입학처장은 “지방 고교생들은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아닌 차별을 당했다”면서 “온라인 논술은 수요자 중심 스마트 입시의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고사로 기대되는 또 다른 효과는 사교육 비용 절감.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온라인 시험 특성상 학교 측은 세 차례에 걸쳐 3000여 명의 응시생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해는 두 차례 시험에 715명이 응시했다. 학교 측은 온라인 논술에 대한 응시생들의 반응이 뜨거운 만큼 응시 인원을 더 늘리기로 했다. 또 모의 논술을 보지 못한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문제를 입학처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로 했다. 수험생은 각자 응시한 뒤 공지된 평가 기준과 예시 답안으로 혼자 채점하면 된다. 배 처장은 “더 많은 학생이 시험을 볼 수 있게 되고, 또 자기 주도적인 논술 학습이 가능해진 만큼 사교육 의존도가 크게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양대는 15일에 이어 6월과 8월에도 시험을 실시한다. 현재 해외에 거주해 고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수험생을 위해 ‘재외국민 온라인 모의필답고사’(6월) 및 ‘편입 온라인 모의필답고사’(10월)를 치른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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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성화 고민없이 ‘몸집 줄이기’… 대학 부실病 더 키워

    우리나라 대학의 양적 성장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됐다. 국민들의 높은 고등교육 수요와 허술한 대학 설립 요건이 맞물린 결과다. 대학을 세우기만 하면 학생이 저절로 몰렸고, 이는 등록금 수입으로 직결됐기 때문에 대학들은 마구 몸집을 불렸다. 특성화나 학과 경쟁력을 따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의 무사안일과 고등교육 정책 실패는 급격한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 잡화점이 된 국내 대학 우리나라는 전후 국가 복구 과정에서 부족한 교육 예산으로 인해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도 사립 위주로 설립됐다. 꾸준히 늘어나던 사립대는 문민정부 시절 도입된 대학설립 준칙주의와 대학 정원 자율화 정책으로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허가하는 준칙주의가 도입된 1996년 대학 설립 신청은 62건, 이듬해인 1997년에는 55건이나 쏟아졌다. 당시 외환위기 칼바람 속에서도 대학 설립 신청은 1998년 17건, 1999건 12건, 2000년 14건이나 됐다. 당시 대학 정책을 담당했던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을 폼도 나고 돈도 불릴 투자처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일단 대학을 세우기만 하면 돈이 된다고 하니 설립 신청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대학은 대부분 종합대를 지향했다. 학과를 많이 만들수록 정원이 늘어나고, 그만큼 등록금 수입이 많아지는 구조 탓이다. 특히 이공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과 신설 비용이 적게 드는 인문, 사회계열 학과를 양산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고등교육 재정이 열악하고, 외국처럼 기부금이나 재단 지원금이 많지 않은 탓에 우리 대학들의 등록금 의존율은 기형적으로 높다. 사립대의 경우 2013년 현재 66.6%. 국가 예산 중 고등교육재정 비율은 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에 크게 못 미친다. 전체 대학 재정에서 정부 지원금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20.7%로 낮다. 이 때문에 대학의 수입은 고스란히 학생수에 따라 좌우된다. 대학가에서는 입학 정원 1000명을 ‘손익 분기점’이라고 부를 정도다. ○ 번번이 실패한 구조개혁 몸집만 커지고 경쟁력은 없는 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 생태계는 엉망이 됐다. 그래서 과거 정부도 여러 가지 대학구조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국민의 정부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국립대 통폐합 및 학과 교환 등을 추진했다. 참여정부는 지방대 정원미달 사태가 심각해지자 구조개혁 선도대학 사업을 추진했다. 국립대는 유사 중복학과를 통폐합해 정원을 강제로 줄이고, 사립대는 대학 간 통폐합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제도를 도입해 상시적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학 및 정원 감축 실적은 미미하다. 일례로 2004년 교육부는 “2009년까지 대학 통폐합을 통해 87개 대학을 정리한다. 국립대 1만2000명, 사립대 8만3000명의 입학 정원을 줄인다”고 예고했지만 공염불로 끝났다. 이는 대학이 몸집을 불릴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도 대학의 특성을 고민하지 않고 몸집 줄이기에 급급한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대학 특성 고려한 구조조정 이뤄져야 최근 교육부가 9년간 16만 명을 감축하겠다는 대학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단순한 대학 규모의 축소에 그쳐서는 안 되고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질적 평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부가 감축 규모만 밝히고, 정작 중요한 평가 방식 및 지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질적 평가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간 교육부는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 같은 각종 학부 재정지원 사업을 시행해왔으나 개별 학과나 사업단에 대한 지원 성격이 강해서 대학 전반을 관통하는 특성화를 유도하지 못했다. 교육부 대학구조개혁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대학구조개혁 정책연구팀’ 관계자는 “기존 대학평가는 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이뤄져서 구조개혁 효과가 미흡했다. 각종 평가와 인증 제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대학 특성에 맞는 정성 평가를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호주의 경우 2008년 ‘다양성 및 구조조정 기금’을 운영해 전공 특성화와 다양화, 지역사회 및 산업체와의 유기적 관계 등을 바탕으로 지원을 늘리면서 대학의 특성화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우리나라 대학은 총장 임기가 짧아 가뜩이나 중장기 비전을 세우기 어려운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개혁 방향마저 오락가락하면 대학들이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먼저 대학의 규모와 특성을 감안한 중장기 구조개혁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김희균 foryou@donga.com·신진우 기자}

    • 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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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립대 95%에 영어 관련학과… 철학 등 기초학문은 취약

    지방의 A사립대 영문과의 취업률은 수년째 10%대. 관련 전공 대학원 진학자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 학과 교수는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명문 사립대가 즐비한 미국에서도 인문대 학과들은 신성불가침이에요. 인문대는 전략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키면 안 됩니다.” 서울의 B사립대 신문방송학과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졸업생 가운데 학과 관련 직종으로 취업하는 학생은 10명 중 2명 수준. 하지만 영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이 학과 교수는 “영국엔 대학마다 언론 관련 학과가 다 있다. 오히려 우리는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학과 이기주의에 발목 잡힌 대학들 지방대 위기론이 확산되고, 폐교에까지 이르는 대학이 속출하면서 대학 구조개혁이 화두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 여기에 최근 교육부가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구조개혁은 단순 화두가 아니라 당면 과제가 됐다. 이에 따르면 향후 9년 동안 대학들은 최소 16만 명을 감축해야 한다. 그런데 얼마를 줄일 것인지만 정했을 뿐, 어떻게 줄일 것인지 그 방법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고려대 기획처 관계자는 “실질적인 감축 방법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며 “다른 대학들도 어떻게 정원을 감축할지 고민하는 눈치”라고 토로했다.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결국 학과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 기회에 대학마다 학과 통폐합 등 제대로 된 구조조정에 나서 정원을 감축하고, 현실에 맞게 학과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학과 구조조정이란 큰 틀에는 대학들도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 학과 이기주의다. 학과마다 “우리 학과만은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을 펼치다 보니 전체 학과 수가 줄기는커녕 외려 늘어나는 형편이다. 이는 본보가 한양대 배영찬 교수팀과 함께 국내외 대학들의 학사 과정과 학과 편성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분석 대상은 국내의 경우 4년제 대학 중 종합대학 성격을 지니고 정원이 1만 명이 넘는 53개교를 선정했다. 해외 대학은 영국의 세계적인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대학평가 종합순위에서 400위 안에 포함된 미국, 영국의 대학 중 학사 과정 및 학과 편성이 종합대학 성격을 지닌 110개교를 뽑았다.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국내 국·공립대 15곳과 미국의 주립대 44곳 △국내 사립대 38곳과 미국 영국의 사립대 66곳(각 33곳)을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국내 사립대는 평균 학과 수가 61.3개로 미국(48.1개), 영국(46개)보다 월등히 많았다. 평균 단과대 수에 있어서도 국내(11.7개)가 미국(4.8개), 영국(5.9개)의 두 배 수준이었다. 국내에서 지난해 QS 평가 400위 안에 든 사립대는 6곳(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경희대, 이화여대). 이들의 평균 학과 수는 65.8개로 QS 평가 1∼6위를 휩쓴 미국·영국의 사립대 6곳(매사추세츠공대, 하버드대, 케임브리지대, 런던대, 런던임페리얼대, 옥스퍼드대)의 평균 학과 수(35.7개)보다 월등히 많았다.○ 학과 특성화는 학과 발전 위해서도 절실 대학들의 주요 학과 보유 현황을 보면, 사립대들이 정체된 학과에 대한 구조조정 없이 방만하게 학과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번에 조사한 학과는 22개. 그중 14개 학과에서 국내 사립대들(38개)의 학과 보유 비율이 해외 사립대들(66개)의 보유 비율보다 높았다. 특히 국내 사립대들은 인문, 사회과학, 사범 계열 등에서 학과 보유 비율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필요로 하는 수요보다 지나치게 많은 졸업생이 배출된다고 지적받는 학과들이다. 전공과 상관없는 공부를 하는 학생이 많으면 정부가 추진하는 학과 특성화 정책도 요원해진다. 충북의 C사립대 국문학과의 경우 졸업생 절반이 같은 학교 및 타 대학 경영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미 입학생의 30%가량은 편입으로 빠진 상황. 이렇다 보니 교수들은 의욕이 떨어져 연구에 집중하기 힘들다. 구연희 교육부 지역대학육성과장은 “정부도 비인기 학과에 지원을 해주고 싶지만 너무 많은 학교에 학과가 개설돼 있어 몰아주기 힘든 형편”이라고 말했다. 취업 현장에선 대졸 취업자들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한 중견 정보기술(IT) 업체 대표는 “업체가 필요로 하는 대졸 전공자 비율이 갈수록 줄어든다. 학생이나 회사나 답답한 상황”이라고 불평했다. 다른 대기업 인사과 관계자는 “엉뚱한 전공자가 많다 보니 신입사원 재교육 기간이 너무 길다.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국·공립대에 해당하는 미국 주립대들의 평균 학과 수는 80.5개로 국내 국·공립대 평균 학과 수(77.5개)보다 오히려 많았다. 특히 퍼듀대(176개), 미네소타대(149개), 펜실베이니아주립대(145개), 오하이오주립대(195개) 등은 국내 국·공립대 가운데 학과 수가 가장 많은 경북대(109개)보다도 훨씬 많다. 미국 주립대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인재를 양성한다는 정부 철학을 반영해 비인기학과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 안 덩컨 미국 교육부 장관이 최근 “정부는 다양한 관심을 가진 학생들의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해줄 의무가 있다”고 한 발언도 이러한 맥락이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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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과 감축, 교수-학생 반발에 헛바퀴

    지난해 11월 부산 동의대는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정원 200명을 감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정원 감축안에 대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학교의 발표에 교수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반발했다. 동의대교수협의회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라며 “학교 측은 책임을 물어 교학부총장을 즉각 사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답답해했다. 이미 10년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학과 눈치 보며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 동의대 관계자는 “몇몇 학과 살리자고 전부 그냥 두면 결국 폐교하자는 얘기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 무렵 충북도의회 정책복지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선 충북도립대 학과 구조조정이 화두에 올랐다. 장선배 의원(민주당)은 충북도립대가 과감한 구조조정을 발판으로 강소(强小)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13개 학과 가운데 3개 학과를 통폐합해 자구책 마련에 나선 강원도립대 사례를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김양희 의원(새누리당)도 “충북도립대의 취업률은 2009년 89.9%를 정점으로 2012년 61.6%까지 떨어졌다”며 “특성화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과 구조조정은 지방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수도권 대학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일률적 정원 감축이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그렇게 줄일 경우 대학 경쟁력 자체가 뚝 떨어진다”면서 “몇몇 구조조정 세부 감축안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교육부가 최근 정원 감축 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한 금액이 전체 수요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도 대학들이 학과 구조조정에 더 관심을 쏟게 만든 이유다. 숭실대 관계자는 “정원 감축을 정부 지원금을 받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장기적 발전이라는 안목에서 치열한 학과 구조조정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먼저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대학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수·학생·동문들 사정을 다 들어줘야 하고, 어떻게 해도 욕을 먹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느냐’는 것이 가장 큰 이유. 교육부의 미적지근한 태도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숙명여대 관계자는 “학교가 알아서 내부적으로 대책을 세워 정원을 줄이라는 게 교육부의 태도”라며 “교육부가 정책만 세워놓고 실행은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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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립대 학과 수 61개 ‘잡화점’… 특성화에 역주행

    여기 두 대학이 있다. 하나는 18개 단과대(100개 학과)에 재학생은 2만3000여 명, 다른 한 곳은 단과대 5개(38개 학과)에 학부 재학생은 6700여 명(지난해 기준). 전자는 국내 지방의 한 사립대. 후자는 미국의 하버드대다. 국내의 이 사립대는 교육부의 정원감축 계획에 대비해 반년 전부터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해 학과 통폐합에 나섰지만 교수진 등 학내 반발로 제대로 실행조차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한양대 배영찬 교수팀과 국내외 대학들의 학과 편성 및 학사과정 등을 분석한 결과 국내 사립대가 외국 명문대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사립대 평균 학과 수는 61.3개로, 미국(48.1개) 영국(46개)의 사립대 평균 학과 수보다 10개 이상 많았다. 반면 국공립대 학과 수(77.5개)는 미국의 국공립대에 해당하는 주립대(80.5개)보다 적었다. 국공립대는 지역 거점대학으로 육성해 대형 종합대로 키우는 한편 사립대는 강소형 특성화 대학으로 발전시킨다는 교육 당국의 구상과 역주행하는 셈이다. 학과 편성도 문제로 나타났다. 국내 사립대의 건축학 신문방송학 교육학 관련학과 보유비율은 외국 사립대보다 30%포인트 이상 높았다. 영어 관련학과 보유 비율에서도 국내 사립대는 94.7%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미국 영국 사립대(81.8%)보다 높았다. 반면 기초학문인 철학 물리학 화학 관련학과 보유 비율은 외국 사립대보다 낮았다. 중구난방으로 학과를 개설하다 보니 학생들은 학교 간판만 바라보게 되고 결국 전공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기 일쑤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의 최근 3년(2011∼2013년) 학과별 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신문방송학과의 경우 3년 동안 취업에 성공한 91명 가운데 전공 관련 취업자는 16명(17.6%)에 불과했다. 배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강도 높은 학과 통폐합 등을 통해 정원 감축과 학과 구조조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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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중고생 15%가 비만… 농촌이 더 뚱뚱

    우리나라 초중고교 학생 100명 가운데 15명이 표준 체중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특히 농촌 청소년이 도시 청소년보다 더 뚱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25일 발표한 ‘2013년 학교건강검사 표본조사’에 따르면 전체 비만 학생 비율은 15.3%로 2012년보다 0.6%포인트 증가했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 14.4%, 중학교 15.1%, 고등학교 17.0% 등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만율도 높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패스트푸드를 주 1회 이상 먹는다고 답한 학생 비율도 초등학교 60.0%, 중학교 69.1%, 고등학교 71.1%로 역시 학년이 올라가면서 증가했다. 지역별 비만율은 △초등학생은 대도시 12.8%, 읍면 17.0% △중학생은 대도시 14.5%, 읍면 16.1% △고등학생은 대도시 17.1%, 읍면 17.4%로 모두 읍면 지역이 대도시보다 높았다. 특히 초등학생은 읍면 지역과 대도시 비만율의 차이가 2012년 1.1%포인트에서 지난해 4.2%포인트로 크게 벌어졌다. 교육부 조명연 학생건강안전과 사무관은 “시골지역의 경우 부모들이 대도시에 비해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관리하기 어렵고 식단 조절도 해주기 힘든 여건”이라며 “시도교육청, 단위 학교 등과 협의해 학교에서라도 아이들 체중을 관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키는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 기준 150.9cm로 10년 전인 2003년(148.7cm)보다 2.2cm, 20년 전인 1993년(145.5cm)보다는 5.4cm 커졌다. 몸무게는 46.3kg으로 2003년(43.8kg)보다 2.5kg, 1993년(39.0kg)보다 7.3kg 늘었다. 성별로는 초등학교 6학년 기준으로 20년 전과 비교해 남녀 학생의 키는 각각 5.4cm, 4.9cm 커졌고 몸무게는 7.3kg, 5.3kg 늘었다. 안경을 쓰지 않은 맨눈 시력이 0.7 이하인 ‘시력이상’ 학생의 비율은 56.9%로 10년 전(41.5%)보다 크게 올랐다. 반면에 충치를 가진 학생 비율은 28.4%로 10년 전(48.6%)의 절반가량 떨어졌다. 이번 학교건강검사 표본조사는 지난해 전국 756개 초중고교 학생 8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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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먹을 때도 양치할 때도 명상… 긴장 풀면 잠 솔솔

    직장인 유모 씨(36)는 요즘 틈날 때마다 명상을 한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휴게실에서 정자세로 앉은 뒤 크게 심호흡을 하며 그만의 명상법으로 머리를 비운다. 앉아서 눈을 감고 있을 때만이 명상은 아니다. 밥을 먹을 땐 모든 미각을 동원해 맛을 느끼고, 양치질할 때는 칫솔 쥔 감촉을 느끼는 것도 명상의 방법이다. 특히 잠자리에 들기 직전은 하루 일과의 정점. 매일 30분 이상 명상에 심취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다. 유 씨가 명상에 빠진 건 불면증 때문이다. 수면유도제 등은 먹기 싫고, 본인에게 가장 적절한 수면유도법을 찾다 보니 명상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의 경우 불면증 배경에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입이 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직속 상사. 매일같이 그로부터 듣는 폭언이 쌓여 만성 스트레스가 됐고, 그 스트레스가 편한 잠자리를 짓눌렀다. 다행히 명상을 시작한 뒤 유 씨는 조금씩 예전 수면 시간을 찾아가고 있다. 실제로 명상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마음 챙김 치료’라 부르며 불면증 치료법으로 자주 사용된다. 유 씨는 “명상을 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더 좋은 건 명상을 했단 그 사실만으로도 뭔가 든든하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나쁜 말로 인한 스트레스가 불면증을 부른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일단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신홍범 코모키수면센터 원장은 “항상 8시간씩 자던 사람이 잠이 줄면 불안해서 더 못 자는 경우가 많다. 좀 못 자도 당장 건강에는 지장이 없다는 식으로 편하게 생각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어떤 나쁜 말이나 행동이 자극이 돼 수면을 방해한다면 그 고리를 단계별로 끊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재헌 교수는 “생각하기 싫어도 어떤 부정적인 말이나 상황이 계속 머리를 채운다면 중간 중간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합리화하거나 초점을 바꿔 해석해야 한다. 연결고리를 끊어 자신만의 드라마를 종방시켜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전날 밤 늦게 잠이 들더라도 아침엔 평소 기상 시간에 맞춰 일찍 일어나는 것도 불면증 극복에 도움이 된다. 또 전문가들은 잠들기 직전 음식을 먹지 말고 낮잠도 가급적 피하라고 조언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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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신자” 석달전 친구의 한마디에… 어제도 잠을 설쳤다

    얼마나 됐을까. 불안한 마음을 꾹 부여잡고 곁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벌써 오전 3시.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듯 요동치기 시작한다. 긴장감에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곤두서는 듯하다. 자야 하는데, 벌써 3일짼데, 내일 기말시험을 보는데…. 따뜻한 우유를 한잔 들이켜 본다. 크게 심호흡도 해본다. 넓은 목장에 뛰노는 양떼를 머릿속에 그리며 그 수를 세어본다. 한 마리, 두 마리…. 소용없다. 세면 셀수록 오히려 정신은 더 또렷해진다. 머리는 빡빡하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욱신욱신 피곤하다. 그런데 미치겠다. 잠이 오지 않는다. ○ 잠들지 못하게 만든 한마디, ‘배신자’ 석 달 전, 그때였다. 유선이(가명·16)에게 ‘무서운’ 친구가 생긴 건. 그 친구는 이미 1년 전부터 알았다. 사이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알고만 지내던 사이. 하지만 그 일이 있고부터 그는 무서운 친구가 됐다. 그 친구가 때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심한 욕설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때 알았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 “유선이는 앞에선 웃는데 뒤에서 뒤통수를 치는 아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왜 그런 말을 할까. 도대체 영문을 몰랐다. 그렇다고 대놓고 따지지도 못했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다 보니. ‘좀 지나면 조용해지겠지.’ 이렇게 생각한 게 화근일까. 얼마 뒤, 악몽이 시작됐다. 몇몇 친구가 대놓고 유선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배신자”라고. 그리고 그 즈음부터 유선이는 밤마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불면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요즘은 가끔 환청도 들린다. 누군가 “배신자” “뒤통수치는 ×” “상종하면 안 되는 ×”이라 말하며 수군거리는 듯하다. 밤에 잠을 못 자니 수업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입맛이 없어져 몸무게는 4kg이나 줄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이 불면증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른다는 막막함. 유선이는 “차라리 몸이 아프면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는데…. 이건 침대에서 매일 나 자신과 전쟁을 치러야 하니 너무 힘들다. 이젠 지쳤다”며 울먹였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지난해에만 40만 명이 넘었다. ‘나쁜 말’은 불면증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욕설, 막말 등 나쁜 말이 유선이처럼 잠 못 자는 사람들을 낳고 있다는 얘기다. 보통 나쁜 말로 인한 불면증은 ‘적응 불면증’이라 불리는 급성 불면증과 관계가 깊다. 회사원 안모 씨(32)는 잠들기 직전 항상 그날 회사에서 들은 갖가지 폭언들을 떠올린다. 회사에 있는 동안엔 너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던 말들. 하지만 침대에 눕고 잠들기 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면 그날 상사에게 들었던 말들이 차례차례 떠오른다. 생각은 깊어지고 그 말을 곱씹다 보면 화가 난다. 이처럼 불쾌했던 말이나 상황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과정을 정신의학적으로는 ‘반추(rumination)’라고 부른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반추는 사람을 더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왜 반박하지 못했을까’ 후회하고 자책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떨어진다. 또 무력감까지 생긴다. 정신이 지치다 보니 몸에서 불면증이란 반응이 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뇌에 각인된 나쁜 말이 불면증 불러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 범죄분석실. 최면을 통해 범죄의 단서를 찾아내는 곳이다. 최면은 일상적인 자극들을 차단해 의식의 집중 상태를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그렇게 최면에 들어가면 피최면자들은 그동안 잠재적으로 억압돼 표출시키지 못했던 상황들을 떠올리고 얘기한다. 피최면자들의 반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들이 범죄 상황 등에서 들었던 ‘말’에 대한 기억. 함근수 국과수 범죄분석실장은 “때론 폭행당한 기억보다도 어떤 말을 들은 기억이 또렷한 경우가 많다. 말 자체가 매우 강렬한 자극이라 뇌에 뚜렷이 각인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떠올리는 말은 단서 발견에도 큰 도움을 준다. 욕설 등 막말은 일반적인 말보다 뇌에 몇 배 더 강렬한 자극을 준다. 뇌에서도 감정 처리를 전담하는 곳이자 위협 감지 센터인 편도(扁桃)에 매우 뚜렷이 각인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재헌 교수는 “편도는 막말을 들을 때마다 예민해지고 활성화된다. 충격적이고 중요한 정보로 인식해 또 겪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편도가 흥분하면 주변에 위치한 시상하부도 흥분한다. 이에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 역시 긴장한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갑갑해진다. 뇌의 각성도 일어난다. 결국 뇌와 신체가 극도의 긴장 반응을 보이면서 불면증까지 생긴다는 얘기다. 여성이나 청소년은 폭언으로 인한 불면증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 ‘불안감수성’은 같은 자극을 줬을 때 불안 증상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는 지표. 일반적으로 불면증은 불안감수성이 높을수록 자주 생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불안감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는 “특히 청소년 시기는 자아존중감이 형성되는 시점이라 폭언으로 자아존중감이 떨어지면 그로 인한 불면증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서영석 인턴기자 연세대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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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혈압-당뇨환자 ‘막말 주의보’… 심장 멈추는 뇌관 될수도

    《 ‘나쁜 말’의 폐해는 감정에만 그치지 않는다. 본보 기자가 직접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나쁜 말’을 들은 직후 스트레스지수가 2분 만에 5단계나 수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또한 빙산의 일각. 언어폭력은 두통, 불면증, 근육통, 우울증은 물론이고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까지 유발한다. 장기적으로 사람의 인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도 결국 말이다. 동아일보 연중기획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2부에서는 말이 신체 및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봤다. 》 “야, 이 답답아. 똑바로 하란 말이야!” 오늘도 직장 상사의 폭언이 시작됐다. 심장이 정신없이 쿵쾅거렸다. 등과 손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을 상사의 폭언으로 시작한 지는 벌써 4년째. 회계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 A 씨(37·여)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낮에는 두통과 현기증이, 밤에는 불면증이 찾아왔다.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됐다. 목과 어깨, 허리는 전보다 자주 결리고 쿡쿡 쑤셨다. 우울한 감정도 잦아졌다. 한 달 전 찾은 병원에서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가벼운 목 디스크 진단까지 받았다. 심리상담을 진행한 의사는 “직장 내에서의 언어폭력이 우울증과 목 디스크 악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폭언, 정신뿐 아니라 신체까지 파괴 폭언에 장기간 노출되면 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 의료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A 씨처럼 신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막말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두통, 어지럼증, 불면증, 근육통, 우울증 등 가벼운 증상은 기본. 심할 경우 고혈압, 당뇨병, 불임 등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폭언에 노출되면 1차적으로는 흥분하거나 긴장했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당황한 나머지 숨이 가빠지거나 혈압이 상승해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심하면 식은땀이나 어지럼증, 두통 등을 호소한다. 폭언은 불면증과 불안증, 우울증, 근육통 등을 유발해 심신을 들쑤신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근육이 긴장상태에 빠져 평소 하지 않았던 실수도 반복할 수 있다. ○ 자율신경계 호르몬 뇌파의 균형을 깨뜨려 이 같은 몸의 반응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뇌파가 막말에 반응해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자율신경계는 폭언에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리 몸은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가 균형을 이뤄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폭언과 같은 외부 자극에 노출되면 교감신경계의 활성도가 높아져 자율신경계 균형을 흐트린다. 몸에서는 가슴이 조여 오거나 심장이 빨리 뛰는 증상, 근육통, 식은땀, 어지럼증 등의 이상기운이 감지된다. 나쁜 말은 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끼친다.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코르티솔은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임파구의 수를 감소시켜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는 감염성 질환과 암 등 각종 질환에 취약해질 수 있어 위험하다. 폭언으로 인한 불면증, 우울증 등도 코르티솔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돼 생기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뇌파의 균형도 깨져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건강한 몸 상태에서는 알파파가 활성화되지만 폭언을 들으면 베타파가 활성화된다. 베타파는 긴장과 흥분 상태를 지속해 불안증을 일으킨다. 김 교수는 “실제 아내에게 비난받은 남편의 뇌파를 측정해본 결과 욕을 듣기 전보다 베타파는 더욱 항진됐다”며 “막말은 뇌파를 자극해 신체에 부정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위산과 펩신을 과다 분비시켜 소화불량, 위궤양 등을 생기게 할 수 있다. ○ 고혈압, 당뇨병 환자들에게 막말은 시한폭탄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을 지병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막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막말에 노출되면 코르티솔이 분비돼 혈당과 혈압 수치가 급격히 오르는 등 격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에겐 단 한 번의 폭언도 방심해선 안 된다. 최홍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한 경우 뇌중풍(뇌졸중)과 심근경색 등이 한꺼번에 올 수 있다”며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취약한 사람에게 폭언은 특히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말의 상처는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오래간다고 입을 모은다. 잠깐의 소음처럼 어쩌다 한 번 받는 스트레스는 그 순간을 넘기면 금방 잊히곤 하지만, 폭언은 편도체라는 뇌의 회로에 오래도록 저장된다. 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폭언과 막말 중에서도 적대감이 동반된 비난 섞인 말이 신체에 가장 좋지 않다”며 “나쁜 말로 인한 충격과 질병을 피하기 위해선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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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조5000억 들여 ‘특성화 전문대’ 키운다

    정부가 전문대를 육성하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1조5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2017년까지 전문대 139곳 중 84곳을 특성화학교로 지정한 뒤 학교별 강점 분야를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선정된 전문대의 성과를 매년 평가해 결과에 따라 지원액을 가감하고, 2년 뒤 중간평가를 통해 기준에 못 미치는 대학은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킬 계획이다. 올해엔 70곳을 선정한 뒤 2147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특성화 학교는 각 대학의 재학생 규모와 자율적인 입학정원 감축 계획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특히 학교의 정원 감축 규모를 재정지원과 밀접하게 연동시켜 지원 금액 등을 달리할 방침이다. 조봉래 교육부 전문대학정책과장은 “이번 특성화 정책을 계기로 전문대들이 그동안 백화점식으로 방만하게 운영하던 학과들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구조 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통해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9년 동안 대학 정원을 16만 명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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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유회성 OT 꼭 가야하나” 취소 잇달아

    입학 철을 앞두고 전국 각 대학에서 신입생을 상대로 한 오리엔테이션(OT)을 열고 있다. 매년 음주 폭행 등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대형 안전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고 직후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문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누리꾼들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굳이 갈 필요가 있나”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없어져야 하는 문화”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본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대학 신입생들이 대학생활에 관한 정보를 얻고 학내 인맥을 쌓는 취지로 마련된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이 학교 외부에서 1박 또는 2박을 하며 즐기는 ‘야유회’ 성질로 변질되면서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생회가 주도하는 오리엔테이션의 경우 준비나 관리 미흡에 따른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사고도 총학생회 단독으로 진행하면서 시설에 대한 사전 점검이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회가 주관하는 행사는 학교 측에서 실질적으로 관여하기 어렵다”며 “학교가 관여하는 것에 학생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고 소식을 접한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치자 일부 대학은 오리엔테이션 계획을 취소하거나 수정하고 있다. 건국대는 아직 오리엔테이션을 하지 않은 단과대학들의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한다고 18일 밝혔다. 동덕여대도 강원도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하려던 새내기배움터(새터)를 취소키로 했다. 다른 대학들도 오리엔테이션 일정 수정과 안전점검 강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딸을 둔 최성희 씨(52·여)는 “딸도 이번 주에 서울 근교로 오리엔테이션을 갈 예정인데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로 교내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열어 온 대학들도 있다. 순천향대는 2012년부터 외부에서 진행하던 오리엔테이션을 교내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실시하고 있다. 순천향대 관계자는 “교내 프로그램으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며 “올해 오리엔테이션도 총학생회와 협의해 교내에서 진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18일 전국 각 대학에 외부 행사를 가급적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이번 사고처럼 건물 붕괴 등 안전사고를 우려해서다. 특히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시설로 의심되면 행사 자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불가피하게 행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사전에 철저하게 안전조치를 하고 교직원들도 동행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권오혁 hyuk@donga.com·신진우 기자}

    •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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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쪽’ 선행학습 금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였던 선행학습 금지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임위원회에서 표결 없이 여야 합의로 가결된 만큼 이르면 이달, 늦어도 상반기에는 국회 법사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최종 의결까지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이 이달 통과하면 6개월 안에 시행령이 만들어져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특별법이 시행되면 초중고교는 정규 교육과정을 벗어난 선행학습을 할 수 없다. 또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평가도 금지된다. 이를테면 그동안 자주 논란이 됐던 외국어고 등에서의 특정 학년 수준을 넘어선 시험 문제 출제 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법안은 초중고교 및 대학의 입학시험 등 전형이 각급 학교 입학 단계 이전 교육 과정 범위와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규정했다. 학원이나 개인 과외 교습자가 선행학습을 광고하거나 선전하지도 못한다. 단, 학원에서 하는 선행학습까지 학교처럼 정부가 직접 규제하진 못하게 했다. 학교가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내용의 교육과정을 짜거나 시험 문제를 출제하면 ‘교육과정정상화심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설치되는 위원회는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도 내릴 수 있다. 박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한 이번 법안은 지난해 4월 처음 발의됐다. 하지만 정치적인 쟁점으로 부각되고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면서 심의되지 않다가 10개월여 만에 가결됐다. 법안을 발의한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배우지도 않은 내용이 시험에 출제돼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이번 법안을 계기로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오히려 사교육이 더 늘어날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선행학습 유발 요인은 그대로 둔 채 보이는 현상만 규제하면 사교육은 음성적으로 더 깊게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입학시험의 범위와 수준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건 기본적으로 대학의 학생 선발권 침해”라고 비판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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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허리 뚝 자르고 “마음대로 해”… 부부는 상처 받는다

    《 “사랑의 유효기간은 30개월이다.” 미국 코넬대 신시아 하잔 교수가 했던 말이다. 사랑엔 유효기간이 있다지만 부부 사이엔 유효기간이 없는 게 최선. 부부 사이 유효기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말’이다. 동아일보는 부부상담 및 교육전문기관인 듀오라이프컨설팅에 의뢰해 부부 사이에 가장 흔하게 하지만, 또 가장 주의해야 할 말들을 조사했다. 결혼 10년 미만과 10년 이상 된 부부로 나눠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부부관계를 좌우하는 말을 살펴본다. 사례로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전문가 컨설팅’에는 △이선영 듀오라이프컨설팅 총괄팀장 △김득성 부산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이재헌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류창용 가사 전문 변호사 △권현정 듀오 커플매니저 △이명길 듀오 연애강사 등이 도움을 줬다. 》   ■ 당신 마음대로 해이럴 땐 약 박미현 씨(28·결혼 5년 차)는 전업주부. 진작부터 살림, 육아는 물론이고 경제권까지 전담하고 있다. 남편이 늦게까지 일해 번 돈을 혼자 관리한다는 부담감과 미안함을 사라지게 만드는 건 남편의 한마디. “당신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하란 말을 하기 전, 그는 꼭 자신의 생각을 먼저 충분히 얘기한다. “남편은 세상 누구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얘기해줘요.” 이럴 땐 독 평소 차분한 편인 김수진 씨(29·6년 차). 하지만 그녀를 순간 욱하게 만드는 남편의 한마디가 있으니 “당신 마음대로 해”라는 말이다. 꼼꼼하고 준비성이 있고 호불호가 분명한 김 씨와 달리 남편은 다소 우유부단해 보일 만큼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 남편은 항상 상대를 편하게 해준다고 그 말을 한다지만 김 씨는 물어보기도 전에 마음대로 하란 말부터 하는 남편에게 서운하다.   전문가가 봤을 땐…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에게… 맘대로 하라면 의욕 잃어”당신 마음대로 하란 말은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주는 표현. 또 사람의 본능 중 하나인 ‘인정 욕구’와 관련돼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남성은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해 불만이 있는 경우가 많아 아내가 남편에게 마음대로 하란 말을 자주 해주면 좋다. 단, 이 말은 자칫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특히 남편이 아내보다 나이가 다섯 살 이상 많을 경우 아내에게 마음대로 하란 말을 하면 ‘귀찮다’란 의미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더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는 그렇지 못한 상대로부터 마음대로 하란 말을 들으면 대화 의욕을 잃기 쉽다. 표현 방식도 중요하다. 일단 상대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고 본인 생각을 어느 정도 밝힌 뒤 말을 해야 한다.   ■ 미안해, 미안해…이럴 땐 약 맞벌이를 하는 장민호 씨(38·8년 차)와 그의 아내는 성격이 닮았다. 고집이 세다. 또 자신의 주장이 강하다. 덕분에 한번 부부싸움이 나면 한쪽이 지쳐 항복할 때까지 끝을 봐야 했다. 그래서 하나의 원칙을 만들었다. 마음이 있든 없든 일단 언쟁이 시작되면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기. 큰 기대 없이 만든 규칙인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부싸움은 예전의 10∼20% 수준으로 줄었다. 이럴 땐 독 “기저귀 좀 사다줄래.” 오늘도 아내인 오인혜 씨(38·9년 차)가 부탁한다. 돌아오는 남편의 대답도 항상 같다. “미안해.” 부탁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안하다부터 던지는 남편이 얄밉다. 연애 당시만 해도 항상 눈을 쳐다보며 말을 경청해줬는데…. 이제 말조차 섞기 싫은 걸까. 벌써 나란 사람에게 질린 걸까. 오 씨는 이런 남편과 평생 함께할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전문가가 봤을 땐… “갈등 가장 많은 신혼 때는, 아끼지 말고 사과해야”미안하다는 말은 부부 사이에 가장 놓치기 쉬운 말 중 하나.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기에 당연히 내 마음을 알 거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커다란 오해다. 실제 지난해 한 카드회사의 조사에서 부부싸움의 가장 큰 이유로 ‘상대방이 사과를 하지 않아서’가 꼽혔다. 특히 미안하단 말은 신혼 때 자주 하는 게 좋다. 서로 맞춰가는 시기이자 갈등이 가장 많은 시점이기에 미안하단 말 한마디가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 결혼 전 연애 기간이 긴 커플일수록 결혼 뒤 더 적극적으로 미안하단 말을 해야 한다. 다혈질, 또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면 절대 미안하단 말을 아끼면 안 된다. 사과의 말은 개선 노력과 함께 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하루에 두 번 이상 하거나 동일한 상황에 대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과는 도리어 상대의 화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 도와줄까?이럴 땐 약 얼마 전 설 연휴. 남편이 아내인 강현숙 씨(32·2년 차)에게 다가와 말했다. “도와줄까.” 평소에도 이 말을 잘하는 남편이지만 특히 명절 때 그의 이 한마디는 ‘새내기 주부’ 강 씨의 피로와 긴장감을 시원하게 날려줬다. 도와주겠단 말을 할 때마다 손을 꼭 잡아주는 남편. 그럴 때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이 사람만큼은 내 편에 있을 거란 확신을 얻는다. 이럴 땐 독 장미영 씨(32·3년 차) 부부는 맞벌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은 언제나 장 씨의 몫이다. 저녁상을 차릴 때쯤 퇴근하는 남편은 얼른 밥을 먹은 뒤 소파로 직행해 TV를 본다. 장 씨가 설거지를 마칠 때쯤 슬금슬금 다가오는 남편. 이렇게 물어본다. “도와줄까.” 이 말을 들으면 짜증이 몇 배로 솟구친다. 생색내는 남편이 얄밉다.   전문가가 봤을 땐… “스킨십 같이 하면 더 효과, 말하는 타이밍도 잘 잡아야”일반적으로 여성은 관계지향적인 성향이 강하다. 특히 보통 결혼 3년 차 때까진 남편이 자신과 평생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남자인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 이런 아내에게 남편이 다정한 말투로 해주는 “도와줄까”는 결혼 초기 여성의 불안감을 제거해주는 가장 바람직한 한마디다. 문제는 도와줄까란 말이 ‘내 일은 아니지만 호의를 베풀어 줄까’란 뜻으로 전달된다면 부부 관계를 최악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사실. 가정에서 부부는 공동 책임자다. 가사 분담과 관련해 자주 얘기를 나누거나 명확한 기준도 세우지 않은 부부라면 도와줄까란 말이 더욱 화를 부른다. 도와줄까란 말은 보통 스킨십과 함께 할 때 진정성이 더 전달된다. 손을 잡아도 좋고, 뒤에서 살짝 안아줘도 좋다. 말을 하는 타이밍도 중요하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1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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