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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미화원으로 일하던 남자는 어느 날 건물 벽을 휘감은 녹색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미화원들이 학교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점거 농성에 들어간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남자의 팔다리는 녹색 줄기로 변형돼 건물을 휘감았고 녹색으로 변한 얼굴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의 딸은 패션몰 고객상담실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다. 딸도 다른 계약직 동료들과 회사에서 해고된 날 매장 한가운데 기둥을 휘감은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이렇게 도시에는 절규하듯 기괴한 소리를 내는 인면수(人面樹)가 하나둘 늘더니 덩굴 숲을 이룬다. 도시의 기후는 건조한 편이라 사람들은 그저 인면수가 말라죽길 기다리며 물도 주지 않는다. 한때 사람이었을 인면수가 말라죽고 나면 수레에 담아 버리거나 불쏘시개로 쓴다. 그들이 건네고 싶어 하는 말은 기껏해야 한 장짜리 고막의 떨림이 아닌 온몸을 써서만 들을 수 있는 그 무엇 같다. 그래서 도시는 아예 듣기를 거부한다. 저자의 두 번째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의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을’들은 일터에서 잘리자 덩굴식물로 변해 버텨 보지만 곧 말라죽거나 잘려나간다. 이 책에 실린 소설 8편에는 이른바 ‘각자도생’하는 암울한 오늘날이 그려진다. 모든 것을 녹이는 산성비가 내리는 도시에선 “나중 가면 피차 난처해질 뿐”이라며 몸이 녹아가는 피난민을 외면하고(‘식우’), 콜센터 상담원은 갑의 전화를 받느라 감정이 ‘피투성이’가 되고 성대결절까지 걸렸지만 하소연할 곳은 생면부지의 택시기사밖에 없다(‘어디까지를 묻다’). 저자가 지은 소설집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그것’에 무엇을 놓을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불행한 일이 나만은 아니길 바라는 괴물이 되거나, 나만은 괴물이 안 되길 바라거나.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냉랭한 한일 관계를 녹일 한일 대표시인의 대시집(對詩集)이 양국에서 최근 동시 출간됐다. 한국의 신경림 시인(80)과 일본의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84)의 대시, 대담, 대표시, 에세이를 묶은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위즈덤하우스). 1931년 도쿄에서 태어난 다나카와는 10대 후반에 등단한 뒤 1952년 첫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출판한 이래 시집을 포함해 200여권의 책을 냈다. 두 시인은 지난해 1월부터 6개월간 번역자 요시카와 나기를 가운데 두고 전자메일로 시를 주고받았다. 지난해 4월 신경림 시인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침통한 심정을 담은 시를 일본으로 보냈다. “남쪽 바다에서 들려오는 비통한 소식/몇 백 명 아이들이 깊은 물 속/배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는/온 나라가 눈물과 눈노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나는/고작 떨어져 깔린 꽃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다니카와도 일본에서 슬픔을 나눴다. “숨 쉴 식(息) 자는 스스로 자(自) 자와 마음 심(心) 자/일본어 ‘이키(息·숨)’는 ‘이키루(生きる·살다)’와 같은 음/소리 내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상상력으로조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괴로움/시 쓸 여지도 없다//” 작은 키도 엇비슷한 두 시인은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을 각각 맡아 썼다. 다니카와는 들어가는 말에 “국가 간의 관계가 순조롭지 못할 때도 시인들은-그들도 그 안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또 하나의 편안한 공간에서 정치인들의 언어와 차원이 다른 시의 언어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라고 썼다. 신 시인은 나오는 말에 “우리가 서로 나라가 다르고 말이 다른 만큼 생각이나 정서가 같을 수야 없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지구상에 같은 시대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라고 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구병모 지음302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 대학교 미화원으로 일하던 남자는 어느 날 건물 벽을 휘감은 녹색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미화원들이 학교로부터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고 점거 농성에 들어간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남자의 팔다리는 녹색 줄기로 변형돼 건물을 휘감았고 녹색으로 변한 얼굴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의 딸은 패션몰 고객상담실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다. 딸도 다른 계약직 동료들과 회사에서 해고된 날 매장 한가운데 기둥을 휘감은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이렇게 도시에는 절규하듯 기괴한 소리를 내는 인면수(人面樹)가 하나둘 늘더니 덩굴 숲을 이룬다. 도시의 기후는 건조한 편이라 사람들은 그저 인면수가 말라죽길 기다리며 물도 주지 않는다. 한 때 사람이었을 인면수가 말라죽고 나면 수레에 담아 버리거나 불쏘시개로 쓴다. 그들이 건네고 싶어 하는 말은 기껏해야 한 장짜리 고막의 떨림이 아닌 온몸을 써서만 들을 수 있는 그 무엇 같다. 그래서 도시는 아예 듣기를 거부한다. 저자의 두 번째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의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을’들은 일터에서 잘리자 덩굴식물로 변해 버텨보지만 곧 말라죽거나 잘려나간다. 책에 실린 8편의 소설에는 이른바 ‘각자도생’하는 암울한 오늘날이 그려진다. 모든 것을 녹이는 산성비가 내리는 도시에선 “나중 가면 피차 난처해질 뿐”이라며 몸이 녹아가는 피난민을 외면하고(식우), 콜센터 상담원은 갑의 전화를 받느라 감정이 ‘피투성이’가 되고 성대결절까지 걸렸지만 하소연할 곳은 생면부지의 택시기사 밖에 없다.(어디까지를 묻다) 저자가 지은 소설집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그것’에 무엇을 놓을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불행한 일이 나만은 아니길 바라는 괴물이 되거나, 나만은 괴물이 안 되길 바라거나.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눈 맑은 청노루 하나/타박타박 홀로 눈밭을 걷다가/고개 들어 문득/뒤돌아본다./하이얗게 눈 덮인 겨울 산등성,/앙상한 나목 사이로/달빛은 찬란히 쏟아지는데…//”(오세영 시 ‘박목월’ 전문) 박목월 시인(1915∼1978)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제자들이 ‘존경과 감사의 꽃다발’ 같은 헌정 시집 ‘적막한 식욕’(문학세계사·사진)을 최근 출간했다. 이건청 목월문학포럼 회장을 비롯해 김종해 신달자 오세영 정호승 등 문하생 출신 시인 40명이 참가했다. 제자들은 자신의 대표작과 함께 스승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시집에 실었다. 김종해 시인은 그의 집을 찾았던 스승에 대한 다정한 추억을 떠올린다. “스승 목월 내외분이 우리집에 오셨다/상계동 저녁 어스름이 하늘에 깔리고/그 밑에서 불암산이 발을 씻고 있었다/목월은 지팡이로 불암산을 가리키며/그놈 참 자하산 같구나/(중략)아내와 아이들은 자하산을 모르지만/어머니 입가에 감도는 대웅전 같은 미소/”(‘저녁밥상’에서)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눈 맑은 청노루 하나/타박타박 홀로 눈밭을 걷다가/고개 들어 문득/뒤돌아본다./하이얗게 눈 덮인 겨울 산등성,/앙상한 나목 사이로/달빛은 찬란히 쏟아지는데……//”(오세영 시 ‘박목월’ 전문) 박목월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제자들이 ‘존경과 감사의 꽃다발’ 같은 헌정 시집 ‘적막한 식욕’(문학세계사)을 최근 출간했다. 이건청 목월문학포럼 회장을 비롯해 김종해 신달자 오세영 정호승 등 문하생 출신 시인 40명이 참가했다. 제자들은 자신의 대표작과 함께 스승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시집에 실었다. 김종해 시인은 그의 집을 찾았던 스승에 대한 다정한 추억을 떠올린다. “스승 목월 내외분이 우리집에 오셨다/상계동 저녁 어스름이 하늘에 깔리고/그 밑에서 불암산이 발을 씻고 있었다/목월은 지팡이로 불암산을 가리키며/그놈 참 자하산 같구나/(중략)아내와 아이들은 자하산을 모르지만/어머니 입가에 감도는 대웅전 같은 미소/”(‘저녁밥상’에서) 이명수 시인은 스승이 살았던 원효로를 배회하며 그리움이 담긴 시를 썼다. “원효로 종점 근처 목월 공원에도/눈이 옵니다/산도화(山桃花) 시비(詩碑)에 눈꽃이 피었습니다/전차도 끊긴 원효로/어둠 속에 발자국만 남겨 두고/선생님, 이제 갑니다//”(‘원효로 4가 5번지’에서)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만8154원.’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입니다. 단행본 도서 한 권 값 평균이 1만8648원이니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사지 않는 가구도 적지 않을 겁니다. 출판계가 얼마나 불황인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잘 찾아보면 한 달에 50만 원 넘게 책을 사서 주변에 선물하는 ‘책 산타’들도 있습니다. 부산에 거주하는 판사 출신 홍광식 변호사(66)는 1980년대 초부터 책을 사서 주변에 선물했습니다. 그렇게 선물한 책이 어림잡아 5만 권이 넘습니다. 요즘엔 어려운 국내 출판계 상황을 고려해 이왕이면 국내 저자가 지은 책을 골라 지역 서점에서 산다고 하네요. 특히 그는 그냥 책을 대량으로 사는 게 아니라 양서를 고르기 위한 수고도 아끼지 않습니다. 매주 토요일 여러 일간지에 실린 서평을 꼼꼼히 읽고 후보 책을 고른 뒤 직접 서점을 찾아 구입합니다. 요즘엔 그의 또래들에게 이근후 박사의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샘터사)를 주로 선물한답니다. 홍 변호사는 “나 혼자만 잘 살아선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 지식도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 가치가 있기에 책 선물로 여러 사람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책 산타는 책에 생명도 불어넣습니다. 눌와 출판사는 지난해 11월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궁궐의 우리 나무’ 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2001년 첫 출간 후 3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입니다. 여기엔 10년 넘게 꾸준히 이 책을 사서 주변에 선물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의 지지가 큰 보탬이 됐습니다. 김효형 눌와 대표는 “한 권의 책 선물은 받는 이에게 좋은 책이란 인상을 주고 주변에 구전 홍보도 되기에 단순한 한 권 판매 이상의 효과를 낸다”고 전했습니다. 기자도 책 산타가 한 명이라도 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장르문학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만든 머그잔(사진)을 머리에 올렸습니다. 잔에 쓰여 있는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는 절규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 올해는 꼭 ‘출판계, 불황을 떨치다’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만8154원.’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입니다. 단행본 도서 한 권 값 평균이 1만8648원이니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사지 않는 가구도 적지 않을 겁니다. 출판계가 얼마나 불황인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잘 찾아보면 한 달에 50만 원 넘게 책을 사서 주변에 선물하는 ‘책 산타’들도 있습니다. 부산에 거주하는 판사 출신 홍광식 변호사(66)는 1980년대 초부터 책을 사서 주변에 선물했습니다. 그렇게 선물한 책이 어림잡아 5만 권이 넘습니다. 요즘엔 어려운 국내 출판계 상황을 고려해 이왕이면 국내 저자가 지은 책을 골라 지역 서점에서 산다고 하네요. 특히 그는 그냥 책을 대량으로 사는 게 아니라 양서를 고르기 위한 수고도 아끼지 않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여러 일간지에 실린 서평을 꼼꼼히 읽고 후보 책을 고른 뒤 직접 서점을 찾아 구입합니다. 요즘엔 그의 또래들에게 이근후 박사의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샘터사)를 주로 선물한답니다. 홍 변호사는 “나 혼자만 잘살아선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 지식도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 가치가 있기에 책 선물로 여러 사람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책 산타는 책에 생명도 불어넣습니다. 눌와 출판사는 지난해 11월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궁궐의 우리나무’ 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2001년 첫 출간 후 3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입니다. 여기엔 10년 넘게 꾸준히 이 책을 사서 주변에 선물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의 지지가 큰 보탬이 됐습니다. 김효형 눌와 대표는 “한 권의 책 선물은 받는 이에게 좋은 책이란 인상을 주고 주변에 구전 홍보도 되기에 단순한 한 권 판매 이상의 효과를 낸다”고 전했습니다. 기자도 책 산타가 한 명이라도 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장르문학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만든 머그잔(사진)을 머리에 올렸습니다. 잔에 써 있는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는 절규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 올해는 꼭 ‘출판계, 불황을 떨치다’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성복 김소연 시인, 이광호 조재룡 평론가는 콕 집어 그의 첫 시집을 가장 기다린다고 했다. 기다리던 시집이 최근 출간됐다. 송승언 시인(29)의 첫 시집 ‘철과 오크’(문학과지성사)다. 그는 201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신인이다. 문단의 기대를 모은 덕분일까, 신인의 첫 시집으로는 드물게 초판 1500부를 찍은 지 일주일 만에 1000부를 더 찍었다.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송 시인에게 문단의 주목을 받은 이유부터 물었다. “운이 좋았어요. 요즘 수사가 현란하고 난해해서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인 시도 많은데, 전 일단 눈에 쉽게 읽히도록 쓰려고 했어요.” 송 시인은 자신의 시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시로 ‘새와 드릴과 마리사’를 추천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골목은 차다 골목은 반짝인다 골목은 깊이를 잃은 채 골목은 갈라진다 골목은 둘로 나뉜다/ 셋으로도 나뉜다 넷으로도 나뉜다” “제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언뜻 스치는 풍광을 반복하는 거예요.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는 풍경들을 되새길 때 우리의 머릿속에 남는 잔상이 있어요. 무엇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읽었다는 이미지를 얻는 것, 저는 이것이 시에서 음악적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정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원래 소설가가 되겠다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이시영 시인에게 배우면서 시에 눈떴다. 시인으로 진로를 확정한 것은 2006년 겨울 군대에 입대한 뒤였다. 그는 군대에서도 ‘쓰는 감’을 잃지 않으려고 짬짬이 글을 썼다. 긴 시간을 투자할 수 없으니 소설 대신 시에 집중했다. 당시 군대 인트라넷에 취미로 시를 쓰는 군인들이 만든 ‘시인부락’ 게시판도 도움이 됐다. 그곳에 습작시를 올리며 동료 군인들과 감상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문학 비전공자가 게시판에 올린 제 시를 읽을 수나 있을까’라며 오만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아주며 소통했어요. 그게 큰 도움이 됐어요. ‘시도 혼자 쓰면 의미 없다, 독자가 있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시 ‘물의 감정’에서 “물고기들은 빛나는 물의 양상을 배운다”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 ‘돌의 감정’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애초에 배운 게 없으니 어떤 사물에도 레테르를 붙이지 않기로 오늘 식단에 대해 침묵하기로 음식이 어떠했더라도 그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므로”라고 번복한다. 여기에 그의 시작(詩作) 각오가 담겨 있다. “삶이든 시를 쓰는 일이든 어느 하나가 분명히 옳다고 해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을 겁니다. 어떤 것을 반복하면 항상 관습이다 생각하고 의심하려고 들 겁니다. 앞으로도 스스로 끝없이 틀렸다고 주문을 걸면서 수많은 시인이 가지 않은 제 길을 찾아가야죠.”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80)의 자전적 장편소설 ‘익사’(문학동네·사진)가 출간됐다.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된 소설로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옮겼다. 오에는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처음으로 논픽션적인 고백을 담은 작품으로 내 인생의 소설 쓰기는 끝났다”며 “앞으로 평화와 일본인의 생활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원고나 에세이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소설의 주인공 조코 코기토는 오에의 소설에서 여러 차례 그의 분신으로 등장했던 소설가다. 조코는 어릴 적 아버지가 홍수로 갑자기 불어난 강에 배를 띄웠다가 익사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평생 ‘익사 소설’을 쓰는 일에 집착한다. 천황주의자인 조코의 아버지는 일본이 전쟁에서 패할 기미가 보이자 천황과 함께 죽기 위해 천황궁에서 자폭할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오에는 “천황궁 자폭은 일본 국가주의, 전체주의 전통의 멸망을 뜻한다”고 했다. 소설에는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비판하는 지점도 있다. 조코의 조력자인 연극배우 우나이코는 고위 관료인 큰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강제로 낙태당한다. 오에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배경에는 남성주의적 폭력성이 있다. 위안부 문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후진성 탓에 일어난 일로 사죄해야 옳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80)의 자전적 장편소설 ‘익사’(문학동네)가 출간됐다.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된 소설로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옮겼다. 오에는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처음으로 논픽션적인 고백을 담은 작품으로 내 인생의 소설 쓰기는 끝났다”며 “앞으로 평화와 일본인의 생활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원고나 에세이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소설의 주인공 조코 코기토는 오에의 소설에서 여러 차례 그의 분신으로 등장했던 소설가다. 조코는 어릴 적 아버지가 홍수로 갑자기 불어난 강에 배를 띄웠다가 익사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 평생 ‘익사 소설’을 쓰는 일에 집착한다. 천황주의자인 조코의 아버지는 일본이 전쟁에 패할 기미가 보이자 천황과 함께 죽기 위해 천황궁에서 자폭할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오에는 “천황궁 자폭은 일본 국가주의, 전체주의 전통의 멸망을 뜻한다”고 했다. 소설에는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비판하는 지점도 있다. 조코의 조력자인 연극배우 우나이코는 고위 관료인 큰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강제로 낙태 당한다. 오에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배경에는 남성주의적 폭력성이 있다. 위안부 문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후진성 탓에 일어난 일로 사죄해야 옳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가 김영하는 2008년 5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나를 작가로 만든 것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날 그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청중들에게 들려줬다. 그는 어릴 적 비무장지대의 전방 부대 관사에서 육군 중령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곳은 벌건 대낮에 북한군이 군사분계선까지 내려와 원시부족처럼 남성성을 과시하며 돼지 멱을 따고 밤이면 노루가 지뢰를 밟고 폭사하는 소리가 불꽃놀이용 화약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하루는 아버지 동료인 육군 중령 하나가 지프차 운전병만 데리고 월북했다. 남은 가족에겐 비극이었다. 얼마 뒤 중령의 아내가 미쳤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는 자신과 또래인 중령의 아들에게 닥칠 운명을 걱정했다. “거기에는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고 존재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해괴한 일들, 원시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아주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인간들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버립니다. 어쩌면 그 물음표를 문장들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산문집 ‘말하다’에서 털어놓은 고백이다. 작가는 1995년 등단 후 가진 인터뷰나 대담에서 했던 방대한 발언들을 모으고 새롭게 편집해 산문집으로 출간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 “말이 자아낸 후회들을 글로 극복하려는 작가다운 노력의 소산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썼다. 인터뷰나 강연 동영상에서 맥락이 훼손되거나 잘려나간 자신의 말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소설 창작 과정, 글쓰기의 즐거움, 비관적 현실주의자로서의 자세 등을 이야기한다. 익히 알려진 TV, 신문, 잡지에서 했던 말도 수록됐지만 멀리 해외에서 했던 강연 내용들은 새롭다.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하며 ‘책의 향기’ 지면을 펼쳤을 독자들에겐 작가의 책 고르는 기준을 읽어볼 만하다. “첫째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둘째는 꼼꼼하고 믿음직스럽고 우아한 편집을 제공하는 출판사, 셋째로 번역서의 경우 신뢰하는 번역자의 책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처음 접하는 저자의 책일 경우는 작가의 관상을 눈여겨본다.” 독서에 다시 흥미를 붙이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자기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다섯 권만 적어본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어본다.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 놀랍도록 큰 어떤 발견의 기쁨을 준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가 김영하는 2008년 5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나를 작가로 만든 것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날 그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청중들에게 들려줬다. 그는 어릴 적 비무장지대의 전방 부대 관사에서 육군 중령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곳은 벌건 대낮에 북한군이 군사분계선까지 내려와 원시부족처럼 남성성을 과시하며 돼지 멱을 따고 밤이면 노루가 지뢰를 밟고 폭사하는 소리가 불꽃놀이용 화약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하루는 아버지 동료인 육군 중령 하나가 지프차 운전병만 데리고 월북했다. 남은 가족에겐 비극이었다. 얼마 뒤 중령의 아내가 미쳤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는 자신과 또래인 중령의 아들에게 닥칠 운명을 걱정했다. “거기에는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고 존재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해괴한 일들, 원시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아주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인간들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버립니다. 어쩌면 그 물음표를 문장들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산문집 ‘말하다’에서 털어놓는 고백이다. 작가는 1995년 등단 후 가진 인터뷰나 대담에서 했던 방대한 발언들을 모으고 새롭게 편집해 산문집으로 출간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 “말이 자아낸 후회들을 글로 극복하려는 작가다운 노력의 소산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썼다. 인터뷰나 강연 동영상에서 맥락이 훼손되거나 잘려나간 자신의 말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소설 창작 과정, 글쓰기의 즐거움, 비관적 현실주의자로서 자세 등을 이야기한다. 익히 알려진 TV, 신문, 잡지에서 했던 말도 수록됐지만 머리 해외에서 했던 강연 내용들은 새롭다.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하며 ‘책의 향기’ 지면을 펼쳤을 독자들에겐 작가의 책 고르는 기준을 읽어볼 만하다. “첫째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둘째는 꼼꼼하고 믿음직스럽고 우아한 편집을 제공하는 출판사, 셋째로 번역서의 경우 신뢰하는 번역자의 책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처음 접하는 저자의 책일 경우는 작가의 관상을 눈여겨본다.” 독서에 다시 흥미를 붙이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자기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다섯 권만 적어본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어본다.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 놀랍도록 큰 어떤 발견의 기쁨을 준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상상력이 없습니다. 사실 아베는 제2차 세계대전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때 일본이 얼마만큼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는지 상상도 못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을 끊임없이 비판해 온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80) 씨는 12일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못할 만큼의 정말 막대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다”며 아베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에 씨는 이날 서울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대학 창립 1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에서 ‘인간감성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감수성’ ‘상상력’ ‘이미지’ 같은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오늘날 세계를 진단하고 일본을 비판했다. 그는 연설에서 “일본은 아시아에 대해 특히 한국 국민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고 새로운 헌신을 만들어 가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패전 후 과오를 반성하는 노력이 일본 밖에서 인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는 패전 후 10년을 일본이 가장 떠올리기 싫은, 부끄러워해야 할 시대라고 주장하며 지우고 뒤집으려 하니 일본의 잘못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에 씨는 최근 일본을 방문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일본 과거사 청산 촉구 발언에 대한 일본 내 부정적인 여론에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메르켈 총리를 향해 일본에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나는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이 더 걱정된다”며 “메르켈 총리가 다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너희(일본)가 더 새롭고, 너희한테 배울 게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일본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메르켈 총리에 대해 “그와 독일은 원전 반대를 주장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어 유럽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감수성을 싹트게 한다”고 했다. 이날 강연장은 수백 명의 젊은 대학생으로 북적거렸다. 기조연설 뒤 서면으로 받은 질문에는 “취업도 힘든 환경에서 상상력은 젊은이에게 사치가 아니냐”는 내용도 있었다. 오에 씨는 “현실을 인식하는 힘과 새롭게 상상하는 힘은 총괄적이다. 우리에게 축적된 인식, 갑옷처럼 입고 있는 지식을 의심하고 상상력으로 뒤집을 때 르네상스와 같은 부흥이 가능하다”고 답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출판사 은행나무는 한국 작가가 고르고 직접 번역해 소개하는 외국 문학 시리즈 ‘작가의 옮김’을 펴낸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특한 색깔을 가진 외국 작가 위주로 선정할 예정이다. 시리즈 첫 책은 ‘어떤 작위의 세계’ 등을 쓴 소설가 정영문이 번역한 프랑스 요절 작가 에두아르 르베의 소설 ‘자화상’(사진)이다. 르베의 소설은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르베는 그림 한 장에는 담을 수 없는 정신적, 성적, 철학적 자화상을 간결하고 건조하지만 두서없는 문장으로 그렸다. “나는 내 내부 장기를 전혀 본 적이 없고, 단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몸의 특정 부분들을 보았지만, 내 몸의 다른 특정 부분들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도 결코 본 적이 없는데 그것들이 뭔지는 전혀 알 수 없다.”(68쪽) 정 작가는 옮긴이 후기에 “작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을 발가벗겨서 있는 그대로의 삶 전체를 임의로 펼쳐놓는다”며 “일상의 단면들을 아무런 구조적 형식 없이 나열하는 것으로 ‘자화상’은 일상적인 것들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해준다”며 추천했다. 정 작가는 르베의 작품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끌렸다. 르베는 2007년 친구의 자살을 그린 마지막 작품 ‘자살’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기고 열흘 뒤 42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앞으로 배수아 작가가 루마니아 작가 베테라니 소설, 김다은 작가가 프랑스 작가 중 한 명을 골라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출판사 은행나무는 한국 작가가 고르고 직접 번역해 소개하는 외국 문학 시리즈 ‘작가의 옮김’을 펴낸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특한 색깔을 가진 외국 작가 위주로 선정할 예정이다. 시리즈 첫 책은 ‘어떤 작위의 세계’ 등을 쓴 소설가 정영문이 번역한 프랑스 요절 작가 에두아르 르베의 소설 ‘자화상’이다. 르베의 소설은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르베는 그림 한 장에는 담을 수 없는 정신적, 성적, 철학적 자화상을 간결하고 건조하지만 두서없는 문장으로 그렸다. “나는 내 내부 장기를 전혀 본 적이 없고, 단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몸의 특정 부분들을 보았지만, 내 몸의 다른 특정 부분들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도 결코 본 적이 없는데 그것들이 뭔지는 전혀 알 수 없다.”(68쪽) 정 작가는 옮긴이 후기에 “작가는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을 발가벗겨서 있는 그대로의 삶 전체를 임의로 펼쳐놓는다”며 “일상의 단면들을 아무런 구조적 형식 없이 나열하는 것으로 ‘자화상’은 일상적인 것들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해준다”며 추천했다. 정 작가는 르베의 작품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끌렸다. 르베는 2007년 친구의 자살을 그린 마지막 작품 ‘자살’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기고 열흘 뒤 42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앞으로 배수아 작가가 루마니아 작가 베테라니 소설, 김다은 작가가 프랑스 작가 중 한 명을 골라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한중일 세 나라가 과거사를 딛고 함께 할 이웃이 되기 위해 문학의 역할을 고민하는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5년 만에 재개된다. 대산문화재단은 6월 12~17일 중국 베이징과 칭다오 등에서 중국작가협회 주최로 ‘2015 중한일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열린다고 10일 밝혔다. 한국에선 조직위원장 최원식 평론가와 시인 안도현, 소설가 이승우 김인숙 김애란 등이, 일본에선 위원장 시마다 마사히코를 비롯해 히라노 게이치로, 에쿠니 가오리 등이, 중국에선 중국작가협회 주석 티에닝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동아시아문학포럼은 그동안 2년마다 개최하기로 하고 2008년 서울, 2010년 일본에서 행사를 열었다. 2012년 10월 중국에서 열 예정됐으나 개최 3주를 앞두고 중국작가협회가 자국의 ‘제18차 전국대표대회’와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연기하면서 열리지 못했다.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상무는 “당시 중일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이 첨예화 돼 교류가 중단됐지만 한국조직위원회가 물밑에서 중재했다”며 “문학포럼이 한중일 간에 다른 분야의 교류를 재개하는데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엄마 성미정 시인(48)은 최근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외아들 배재경 군(13)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넸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교감하며 쓴 동시집 ‘엄마의 토끼’(난다). 이 책에는 아들이 색연필을 손에 쥐고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아 온 그림을 선별해 어울리는 동시와 함께 실었다. 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성 시인은 “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쫓아다니며 새로운 경험도 하고 어릴 적 나를 다시 만나면서 첫 동시를 쓰게 됐다”며 “동시를 쓰면서 아이와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8년 배용태 시인(44)과 결혼한 성 시인은 2002년 5월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최최고’로 좋아한다는 재경 군을 낳았다. 부부는 시를 쓰며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서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엄마가 쓰고 아들이 그림을 그린 동시집엔 공부의 어려움, 바른말 쓰기, 외둥이에 대한 편견, 체험 활동 등 생활밀착형 소재가 가득하다. 교훈적이거나 마냥 동심을 미화하지 않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는 아들이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엄마, 선생님이 까닭을 들어 설명하라고 하는데 까닭이란 말을 몰라 머릿속이 하얘져요.” 이에 엄마 시인은 ‘까닭이라는 닭을 본 적이 있니’란 시로 아들과 고민을 함께 한다. “난 받아쓰기 급수 4급에 나오는/닭과 수탉 그리고 암탉은/틀리지 않을 자신 있는데/까닭을 말하는 건 아직 어려워//(중략)생각의 알 속에 살고 있다는 까닭/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의 알을 깨고/태어난다는 까닭//” 시인은 욕을 내뱉은 아들도 마냥 꾸짖지 않는다. 아들은 자신의 귀에 대고 ‘개새끼’를 ‘넣어주는’(들려주는)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도 욕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응수는 이렇다. “귓속에 강아지가 사니까/귀지 파도 귀가 간질간질//참다 참다/결국 입 밖으로 내보냈어/민이가 내 귓속에 넣어준/강아지 한 마리//” 인터뷰 중 엄마가 혼자 사진 찍기 외로울까봐 아들 재경 군이 왔다. 엄마보다 한 뼘이나 키가 더 큰 아들은 “시집을 받고서 재밌고 기뻤어요. 엄마가 제일 자랑스러워요”라고 했다. 성 시인은 “엄마가 감정 조절을 못하면 자녀에게 잔소리를 쏟아내기 마련인데, 나는 시로 풀었기에 아들을 많이 혼내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이 큰 성공을 못 해도 좋아요. 엄마가 아들이 조금씩 성취할 때마다 크게 기뻐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어요.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 잘 자라는 거예요. 자녀가 스마트폰을 얼마나 오래 쓸지 같은 평범한 고민을 하게 해준 아들이 고마워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엄마 성미정 시인(48)은 최근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외아들 배재경 군(13)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넸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교감하며 쓴 동시집 ‘엄마의 토끼’(난다). 이 책에는 아들이 색연필을 손에 쥐고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아온 그림을 선별해 어울리는 동시와 함께 실었다. 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성 시인은 “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쫓아다니며 관찰하면서 새로운 경험도 하고 어릴 적 나를 다시 만나면서 첫 동시를 쓰게 됐다”며 “동시를 쓰면서 아이와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8년 배용태 시인(44)과 결혼한 성 시인은 2002년 5월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최최고’로 좋아한다는 재경 군을 낳았다. 부부는 시를 쓰며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서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엄마가 쓰고 아들이 그림을 그린 동시집엔 공부의 어려움, 바른말 쓰기, 외둥이 편견, 체험 활동 등 생활밀착형 소재가 가득하다. 교훈적이거나 마냥 동심을 미화하지 않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는 아들이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엄마, 선생님이 까닭을 들어 설명하라고 하는데 까닭이란 말을 몰라 머릿속이 하얘져요.” 이에 엄마 시인은 ‘까닭이라는 닭을 본 적이 있니’란 시로 아들과 고민을 함께 한다. “난 받아쓰기 급수 4급에 나오는/닭과 수탉 그리고 암탉은/틀리지 않을 자신 있는데/까닭을 말하는 건 아직 어려워//(중략)생각의 알 속에 살고 있다는 까닭/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의 알을 깨고/태어난다는 까닭//” 시인은 욕을 내뱉은 아들도 마냥 꾸짖지 않는다. 아들은 자신의 귀에 대고 ‘개새끼’를 ‘넣어주는’(들려주는)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도 욕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응수는 이렇다. “귓속에 강아지가 사니까/귀지 파도 귀가 간질간질//참다 참다/결국 입 밖으로 내보냈어/민이가 내 귓속에 넣어준/강아지 한 마리//” 인터뷰 중 혼자 사진 찍기 쑥스럽다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재경 군이 왔다. 엄마보다 한 뼘이나 키가 더 큰 아들은 “시집을 받고서 재밌고 기뻤어요. 엄마가 제일 자랑스러워요”라고 했다. 성 시인은 “엄마가 감정 조절을 못하면 자녀에게 잔소리를 쏟아내기 마련인데, 나는 시로 풀었기에 아들을 많이 혼내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이 큰 성공을 못 해도 좋아요. 엄마가 아들이 조금씩 성취할 때마다 크게 기뻐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어요.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 잘 자라는 거에요. 자녀가 스마트폰을 얼마나 쓸지 같은 평범한 고민을 하게 해준 아들이 고마워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생각이에요. 어떤 색상을 좋아할까요.” “외출할 때 클러치백을 주로 드는데 어떤 사이즈가 편할까요.” 옷이나 패션 소품을 파는 가게에 걸려온 전화가 아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출판사 아티초크에 걸려온 독자 문의 내용이다. 이 출판사에서는 ‘책도 패션이다.’ 같은 책도 옷처럼 사이즈(판형)와 색상(표지)을 달리해 독자가 자기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인 박헬렌 아티초크 대표는 다양한 색상과 사이즈로 옷을 만드는 제조유통일괄형(SPA) 패션 브랜드처럼 선택 폭을 넓혔다. 책엔 비닐커버를 씌워 새 옷 포장을 뜯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이 출판사는 최근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출간하면서 미국인 아트디렉터에게 의뢰해 세 가지 디자인의 표지로 내놓았다. 독자들이 구입할 때 카를로스 슈바베의 ‘파괴’, 구스타프 클림트의 ‘금붕어’, 로비스 코린트의 ‘순수’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한 것. 여성이 도전적으로 정면을 노려보거나, 수줍게 나신을 드러내고, 슬픈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각각의 표지 덕분에 같은 시집이면서 느낌이 다르다. 이 출판사가 지난해 출간한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선집 ‘꿈속의 꿈’ 역시 세 가지 판형으로 제작했다. 스마트폰 크기의 ‘포켓’(9cm×14.8cm), DVD 케이스 크기의 ‘레귤러’(11cm×18cm), 미니 태블릿PC 크기의 ‘라지’(12.5cm×20.5cm)다. 대학원생 김현빈 씨(29)는 “재킷 호주머니에 책을 넣고 다니며 읽으려고 포켓 사이즈를 산다. 책 디자인이 좋아 자연스럽게 멋 내기 소품도 된다”고 했다. 세 표지의 책을 모두 구입해 옷이나 핸드백에 따라 골라서 든다는 여성 독자도 있다. 휴대하기 편리하도록 띠지도 없애고, 얇은 종이를 사용해 책 무게도 같은 판형의 다른 책보다 40% 이상 줄였다. 판형에 따른 가격차는 600원이다. 클럽에서 진가를 드러내는 야광봉, 야광팔찌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책도 나왔다. 출판사 천년의상상은 이달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페이스북 인기 페이지를 책으로 옮긴 ‘열정에 기름붓기’를 출간하면서 표지에 야광물질을 입혔다. 책을 읽다가 불을 끄면 형광색 열기구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완규 천년의상상 대표는 “20대 저자들의 혁신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은 만큼 책의 물성도 혁신적으로 만들었다”며 “젊은층이 책의 물성에 호기심을 느껴야 독서와의 거리도 좁힐 수 있다”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처럼 수작업으로 제작한 책도 인기다. 디오브젝트 출판사는 표지 인쇄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한다. 여러 가지 색을 겹쳐 찍으면 결과물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 세상에 단 한 권만 존재하는 효과를 낸다. 북디자이너 김주영 씨는 “옷을 살 때도 남과 다른 특이한 옷을 찾듯이 다른 책과 달라 보이는 특별한 책을 만들려는 시도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계의 불황 속에서도 독특한 ‘패션’을 자랑하는 책들은 판매에서도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티초크가 다양한 판형으로 낸 책들은 모두 초판 발행부수(1000∼3000부)가 다 팔렸고 추가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생각이에요. 어떤 색상을 좋아할까요.” “외출할 때 클러치백을 주로 들어요. 어떤 사이즈가 편할까요.” 옷이나 패션 소품을 파는 가게에 걸려온 전화가 아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출판사 아티초크에 걸려온 독자 문의다. 이 출판사에서는 ‘책도 패션이다.’ 같은 책도 옷처럼 판형(사이즈)과 표지(색상)를 달리해 독자가 자기 스타일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인 아티초크 박헬렌 대표는 다양한 색상과 사이즈로 옷을 만드는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를 참고해 책도 선택 폭을 넓혔다. 책엔 비닐커버를 씌워 새 옷 포장을 뜯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출판사는 이달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출간하면서 화가들의 작품을 살린 세 가지 표지로 출간했다. 카를로스 슈바베의 ‘파괴’, 구스타프 클림트의 ‘금붕어’, 로비스 코린트의 ‘순수’가 그려져 있어 하나를 택하면 된다. 여성이 도전적으로 정면을 노려보거나, 수줍게 나신을 드러내고, 슬픈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 같은 시집이면서 느낌이 확 다르다. 이에 앞서 지난해 출간한 첫 책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선집 ‘꿈 속의 꿈’은 세 가지 판형으로 제작했다. 스마트폰 크기의 ‘포켓’(9cmX14.8cm), DVD 케이스 크기의 ‘레귤러’(11cmX18cm), 미니 태블릿PC 크기의 ‘라지’(12.5cmX20.5cm)다. 이 출판사 박준 팀장은 “휴대성을 따지면 포켓형, 가독성을 원하면 라지형을 고른다”며 “남성 독자는 잠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포켓형을 많이 찾았다”고 했다. 클럽에서 진가를 드러내는 야광봉, 야광 팔지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책도 나왔다. 출판사 천년의상상은 이달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페이스북 인기 페이지를 책으로 옮긴 ‘열정에 기름붓기’를 출간하면서 표지에 야광 물질을 입혔다. 책을 읽다가 불을 끄면 형광색 열기구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완규 대표는 “20대 저자들의 혁신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은 만큼 책의 물성도 혁신적으로 만들었다”며 “젊은층이 책의 물성에 호기심을 느껴야 독서와 거리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명품 옷을 만들 듯 수작업으로 제작한 책도 인기다. 디오브젝트 출판사는 표지 인쇄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한다. 여러 가지 색을 겹쳐 찍으면 결과물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 세상에 단 한 권만 존재하는 효과를 낸다. 김주영 디자이너는 “옷을 살 때도 남과 다른 특이한 옷을 고르듯이 남이 만들지 않는 특별한 책을 만드는 시도가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이들 출판사들은 판형과 표지 디자인에서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아티초크의 북 디자인은 미국인 아트디렉터가 맡았다. 박 대표가 출판사를 창업하면서 판형과 표지를 고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현해 줄 국내 북 디자이너를 수소문했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다며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출판계 불황 속에서 독특한 ‘패션’을 자랑하는 책들은 판매에서도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아티초크가 낸 책 5종 모두 초판 발행부수(1000~3000부)를 모두 팔고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아티초크는 1월부터 인터넷 서점 인터파크, 알라딘에도 입점했다. 박준 팀장은 “책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생각하기보다 스타일대로 고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처럼 만들어 독자와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