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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영국에서 열리는 런던 도서전은 출판계의 미래를 미리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출판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행사다. 올해 41회를 맞이한 런던 도서전의 화두는 ‘디지털 출판(Digital publishing)’이었다. 지난 몇 년간 각종 도서전을 장식한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이제 출판계에 친근한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올해의 런던 도서전은 출판사들이 ‘디지털 출판이 앞으로 출판계를 이끌어갈 주축이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대형 오프라인 서점인 반스앤드노블도 전자책 단말기 ‘누크’를 발표했다. 전자책 시장은 아직까지 출판사 전체 수익의 10% 정도만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번 도서전을 기점으로 세계 각국의 대형 출판사들은 전자책이 향후 10년을 책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의 이언 허드슨 부사장은 랜덤하우스그룹이 영국 내에서만 약 1만 종, 세계적으로는 약 4만 종의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전자책 판매 수익이 랜덤하우스그룹 전체 수익의 20%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거대 출판사들뿐이 아니다. 중소 출판사들 또한 앞다퉈 전자책과 애플리케이션을 이미 판매하고 있거나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출판이 발전함에 따라 저자가 스스로 책을 출간해 판매하는 ‘자가 출판(self-publishing)’도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서전을 방문한 24세의 작가 벤 갤리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에이전트와 편집자를 통해 책을 출간하는 전통적 출판 방식에서 벗어나 전자책 버전으로 직접 아마존에서 책을 판매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들인 비용은 약 50만 원. 그는 아마존을 통해 한 권에 99펜스(약 900원)인 그의 전자책을 5만 권 팔았다. 이 중 35%를 인세로 받는다. 수차례 출판사로부터 원고를 거절당한 스릴러 작가 레이철 애벗도 자신의 첫 작품을 아마존에 1.99파운드(약 3600원)에 내놓았고,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쳐 10만 부를 판매했다. 다양한 전자책 수익 모델은 몇 년째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한국 출판계에도 한 가닥 동아줄을 드리워주는 희망이 아닐까. 특히 영미권의 출판사들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초고속 인터넷 망을 갖춘 한국에서 과연 전자책과 애플리케이션이 어떤 활약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한국 출판계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것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 지식의 전성시대다.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내는 지식은 인터넷에서 지하자원처럼 채굴된다. 거대한 ‘지식기계’인 구글은 전 세계의 도서관, 박물관을 집어삼키고 있다. 네이버의 ‘지식IN’에는 건강상식부터 버스노선까지 잡다한 지식이 쌓여간다. 현대의 지식세계는 기가(109), 테라(1012), 엑사(1018) 바이트 단위로 생산되고 전달된다. 그런데 현대의 지식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의 본질은 정보의 신뢰도와 안정성이다. 인터넷에는 잘못된 상식이 판을 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미확인 루머가 사실처럼 떠돌아다닌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은 연예인 가십이나 ‘××녀’와 같은 자극적인 뉴스들이 장식한다. 정보와 지식시장에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재현된다. 》이 책에서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전문가 16인이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과 교양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저널리스트들의 취재와 분석을 바탕으로 한 글인 만큼 지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깊이와 대중성을 함께 담아냈다. 지식세계를 이끌어 온 학자와 각국의 도서관과 박물관에 대한 꼼꼼한 각주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넷 시대에는 ‘적은 지식’으로 감동시키는 일이 더욱 쉬워졌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인류 모두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지식과 교양을 추구했다면, 현재의 지식은 자기만족을 위한 개별지식으로 대체되는 형국이다. 지식이 극단적으로 세분함에 따라, 지식은 열정을 더는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독일의 뉴스 시청자 10명 중 9명이 뉴스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구글은 사람들이 정보를 소화하는 방법까지 크게 변화시켰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구글은 검색 결과의 상위에 ‘다른 페이지로 연결된 링크가 많은 정보’를 보여줌으로써 원하는 문서를 이용자가 찾아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 결과 구글은 가장 많은 사람이 검색한 대중적인 답을 추천한다. 중요하지만 새로운 것, 낯선 것, 정도에서 벗어난 것은 ‘오류’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클릭 수가 적은 창의적 지식들은 빛도 못보고 ‘디지털 세계의 묘지’로 사라질 위험이 커졌다. 클라우스 디터 레만 독일도서관장은 “역사적인 배경이 없는 인식은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정보와 지식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정보와 사실을 복사(Copy)하고, 붙이기(Paste)하며 수집하는 것은 지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자기 자신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정보의 자기화, 내면화, 체계화 과정을 거치고 삶에 반영될 수 있어야 진정한 지식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이 ‘지식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는 공로에 대해서도 “허위 개념일 뿐”이라고 일침을 날린다. “오늘날 지식의 생산자는 다른 사람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식은 이익을 창출하는 자본이며, 자본은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인터넷 지식과의 전쟁선포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두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감성지능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정치, 역사, 자연과학, 경제, 문화, 상식 분야에서 미래를 극복하는 데 어떤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한지 각계 전문가들이 소개한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확산되는 정보와 지식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을 포함시키지 않은 점은 아쉽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8세기 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카를 6세는 세계열강으로 성장해가는 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유럽 최초의 대형 공공 도서관인 호프비블리오테크(국립도서관)를 설립했다. 그는 도서관에 보관된 합스부르크 왕가의 장서들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이용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지불해서는 안 되며, 풍요를 얻고 돌아가야 하며, 자주 들러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 미국도 19세기 초부터 신흥 강국의 부와 힘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워싱턴, 보스턴, 뉴욕에 잇따라 세계 최대규모의 도서관과 박물관들을 건립했다. 저자는 오랜 역사와 훌륭한 건축미를 지닌 아름다운 도서관 23곳을 찾아간다. 바로크의 찬란함이 압도하는 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 르네상스의 보고 피렌체 리카르디 도서관, 괴테의 손길이 남아 있는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 도서관, 스페인 엘에스코리알의 장엄한 왕립 도서관, 보자르 양식의 걸작 뉴욕 공공 도서관…. 만인에게 공개된 공공도서관뿐 아니라 수도회에 몸담고 있던 수사들만 들어갈 수 있거나, 황제와 귀족 등 소수 계층에만 개방되던 도서관들도 공개한다. 사진작가 기욤 드 로비에의 컬러사진 200여 컷은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이 내뿜는 빛과 향기에 빠져들게 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01년 9·11테러,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출현,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2010년 아랍의 민주화 시위, 2011년 일본의 대지진….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가 꼽은 21세기 세계를 뒤흔든 ‘5대 충격’이다. 그에 의하면 이들 5대 충격이 잇따르면서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서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시장은 글로벌화하고, 기업은 국제화되고, 온라인 네트워크가 인류를 하나로 묶고 있지만 세상은 더 이상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심각한 경제위기는 통제 불능 상태이며, 유럽연합 주요 20개국(G20)과 같은 국제기구들도 무기력함을 보인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누가 이 혼란을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에 설 것인가. 미래학자인 저자는 이런 초국가적인 위기상황을 ‘체계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금융, 인구, 원자재 부족, 환경 문제 등 체계적 위험의 본질을 규명한다.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겠지만 쇠퇴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로는 중국이 유력한데,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것으로 보았다. 중국은 역사상 한 번도 보편적 사명을 가진 적이 없으며, 국내 문제 해결에도 힘이 부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대신 2030년 헤게모니 지형도는 ‘다중심적인 혼돈’이 될 것이며, 글로벌 거버넌스는 ‘시장의 세계정부’에 자리를 내줄 것으로 저자는 예견했다. 통제력을 갖춘 ‘국가의 세계화’가 없는 ‘시장의 세계화’는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개인의 부채를 점차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융거품과 대량실업이 더 자주 발생하고, 인플레이션과 환경 파괴, 원자재 부족, 범죄가 급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장의 세계화로 인해 기업이 복지국가를 대체하며, 특히 보험회사들이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책의 후반부는 ‘세계정부’라는 거대담론으로 발전한다.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지구 전체의 이익을 돌볼 ‘세계적 차원의 정부’ 수립을 제시하는 것. 저자에 따르면 세계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 혹은 인류에게 닥칠 심각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각각의 국가가 독립적으로 민주적 연방정부를 구성하며, 세계 삼부회와 예산, 경찰, 군대까지 갖추는 방안을 제시한다. 또 “세계정부 구성에 있어 민주주의만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담보해줄 수 있으며, 법치주의가 없다면 효율적이고 정당한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세계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주체들을 저자는 ‘하이퍼 유목민’이라고 규정했다. 하이퍼 유목민이란 시민운동가, 기자, 철학자, 역사가, 국제공무원, 외교관, 국제주의 운동가, 메세나, SNS의 주체 등 모든 종류의 정보 크리에이터들로 인류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이퍼 유목민들이 “시장보다 훨씬 큰 초국경적 역동성을 만들어낼 것이고, 세계 공공재를 구현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저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예순 살이 넘어 공자의 ‘논어’를 강의하고, 책을 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16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의 깊은 산골마을. 벚꽃, 살구꽃, 개나리, 목련, 진달래가 순서도 없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휴)을 펴낸 이남곡 씨(67)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8년 전이다. 그의 집 뒤쪽 마당에는 장류사업을 하기 위해 그가 담가놓은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었다. 》 “저 앞에 보이는 게 대성산(大聖山)입니다. 큰 성인, 즉 공자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웃 ‘논곡(論谷) 마을’에서는 예전부터 사람들이 주경야독하면서 공자를 읽었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에 정착해서 논어를 강독하게 된 것도 인연인가 봅니다.” 이 씨는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상경해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교사운동을 하다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4년간 복역했다. 1980년대 정토회 법륜 스님의 요청으로 불교사회연구소장을 지내고, 무소유를 표방한 경기 화성 ‘야마기시(山岸) 실현지’ 공동체에서 8년을 살았다. 2004년 아내와 함께 전북 장수에 정착한 뒤론 이웃 주민들과 ‘논어’를 강독하고, 논실마을학교 이사장으로 시골사람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왜 논어를 읽기 시작했나요. “농촌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수, 전주, 익산 등지에서 귀농자들, 마을 주민들과 2년 동안 함께 읽으며 공부했죠. 처음엔 공자가 봉건제와 군주제, 가부장제의 옹호자라는 생각에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논어를 다시 읽으면서 왜 그동안 공자 사상의 탁월함, 특히 인간 지성에 대한 태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비판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논어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로 ‘무적무막(無適無莫·군자에겐 옳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는 것도 따로 없다)’과 ‘무지야(無知也·나는 모른다)’라는 구절을 꼽았다. “배우기를 즐기는 모습, 이것이 공자가 가진 최대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호학(好學)’은 ‘나는 모른다’에서 출발해 ‘무엇이 진리인가’를 끊임없이 물어가는 과정입니다. 옳고 그름을 쉽게 단정하지 않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진리다’ ‘내 생각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통과 배움은 불가능합니다. 무지를 인정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 무엇이 진리인가를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첫 단계인 셈이죠.” ―공자와 다른 사상을 진보성 면에서 비교한다면….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공자에게 배우려는 것은 아집을 넘어 끝까지 진리를 탐구하려는 정신입니다. 반면 ‘완고한 이념체계’인 마르크스주의는 스스로 과학을 표방했지만 계급성과 당파성에 치우쳐 과학에서 멀어졌습니다. 이른바 ‘당의 무오류성’이란 말은 가장 완고한 종교임을 나타내죠. 북한에서는 개인숭배로 왜곡돼 마침내 3대 세습이라는 시대착오적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대 가장 필요한 운동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공자가 내세운 ‘정명(正名)’을 현대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시대정신의 구현을 위한 종합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과거의 좌우, 진보-보수 개념의 고정된 시각으로는 지금의 시대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인문(人文) 운동’입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꾸준히 지속되는 인문운동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이남곡 씨의 인생 역정▼경기고 - 서울대 법학과 나와 남민전 사건으로 4년 복역불교사회연구소장 지내다 무소유 공동체서 8년 생활아내와 전북 장수에 정착해 장류사업하며 인문학 강좌장수=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능성을 미리 포기해 버리는 냉소주의는 겁쟁이의 마지막 피난처다. 세계에 닥친 어떤 문제 앞에서도 비겁해지지 않고, 겸손함과 진정성을 갖고 낙관적인 정신으로 전진하는 것. 이것은 도덕적 선택이다.”(김용 신임 세계은행 총재·신간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중)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52)이 제12대 세계은행(WB) 총재로 공식 선출됐다. 세계은행은 1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로버트 졸릭 총재의 후임으로 김 총장을 선출하기로 결의했다. 세계은행은 구체적인 득표 결과를 밝히지 않았지만 25인으로 구성된 이사회 투표에서 김 총장은 18표를 얻었고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나이지리아 재무장관은 7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김 총장은 68년 세계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공개경쟁을 통해 총재에 올랐으며 첫 비(非)백인 총재라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김 신임 총재는 7월 1일부터 5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김 총재는 25일 발간 예정인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알마)에서 자신이 평생 간직해온 ‘마음습관’과 21세기가 원하는 인재상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저자인 백지연 앵커는 다트머스에서 수차례 김 총재와 만나 진행했던 인터뷰를 정리했다. 김 총재는 이 책에서 “월가의 탐욕으로 상징되는 세계경제의 병폐를 해결하고 인류의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3M 패러다임’을 오늘의 ‘3E 패러다임’으로 시프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시장(Market)에서 오직 나(Me)의 이익과 돈(Money)만을 좇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속(Engagement)과 윤리(Ethics) 감수성을 갖추고 자신의 탁월한 능력(Excellence)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성공이란 ‘누군가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며 “내가 세상을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나의 지위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스스로 이 일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트머스대 학생들에게 늘 “세계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주문해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 전 세계적인 선거의 해, 정치든 경제든 ‘행복’이 화두다. 그러나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 답이 다르다. 이번 주에는 경제학자, 심리학자, 종교인 등이 저술한 ‘행복론’에 관한 책이 쏟아졌다. 》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현대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지식인들은 “온 세상이 거대한 하비트레일(햄스터를 키우는 둥근 플라스틱 우리)이 되기 전에 ‘쾌락의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라”고 촉구한다. 경쟁을 그만두고 자연으로 돌아가 ‘느림과 휴식’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의 주장은 도발적이다. 그는 “날이 선 채 팽팽한 긴장감 속의 ‘경쟁’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논박한다. 하버드대 교수와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을 지낸 저자는 베스트셀러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쓴 경제학자다. 책은 우선 ‘능력 있는 고소득자나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왜 더 많이 일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주당 44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반인보다 자영업자의 비율이 29% 더 많다. 비영리단체 근무자보다는 63%나 많다. 저자는 “돈보다는 도전과 경쟁의 스트레스가 도파민(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하고, 스스로 삶을 통제할 때 느끼는 성취감이 행복감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연금제도가 잘돼 있는 프랑스에서는 60대 남자가 50대 남자보다 80∼90% 일을 덜 한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3분의 1가량만 일을 덜 한다. 두 나라 60대 남자의 인지 능력을 비교한 결과 미국인에 비해 프랑스인이 두 배 이상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불황과 우울이란 단어가 영어로 모두 ‘Depression’인 것에 주목한다. 일자리가 줄고, 경기불황이 길어지면 우울, 정신질환, 나치즘과 같은 사회병리 현상이 발생하기 좋은 토양이 마련된다. 실업률이 높아 여가시간이 생기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오히려 줄어든다. 저자는 “경쟁 없이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틴 셀리그먼의 실험에서 나타나는 ‘학습된 무기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쟁을 혐오하는 21세기형 행복전도사들에 대해선 ‘에덴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원죄로 자리 잡았다”며 “원죄로 인해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났듯, 자본주의로 인해 인간은 에덴으로 돌아갈 길이 막힌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찾아갔던 월든 호숫가에 가서 휴대전화를 버릴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보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경쟁과 성취욕이 주는 행복을 버리고 낙원에서 살기엔 인간이 너무 진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행복전도사들은 개인에게만 쉬어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쉬어가라고 처방한다”고 비판한다.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이 ‘그만! 이 정도 발전했으면 됐어’라고 외쳤을까? 기원전 1년이 멈추기 좋은 때였을까? 아니면 1776년 7월 3일? 1964년 시민권 법안 투표 전날? 테디 루스벨트가 우리를 1904년의 생활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수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할 수도, 쉰 살 이상의 수명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이면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행동경제학, 진화생물학, 뇌과학 이론부터 르네상스 미술, 제너럴 모터스까지 수많은 이론과 일화를 들이대며 논박하는 저자의 입심은 대단하다. 그러나 주제에서 떨어진 과도한 예화 때문에 읽어내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무엇보다 경쟁이 무조건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저자도 “1994년 올림픽을 앞두고 토냐 하딩이 경쟁자인 낸시 캐리건을 습격하고, 1997년 마이크 타이슨이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건 올바른 경쟁이 아니다”라며 “경쟁은 규칙이 잘 지켜질 때 신뢰와 협력을 강화시킨다”고 강조한다. ●함께 읽을만한 ‘행복론’비운의 천재가 설파한 행복학◇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W 베란 울프 지음·박광순 옮김524쪽·1만7000원·매일경제신문사“행복해질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라. 용감하게 싸우면 훌륭하고 멋진 인생이 손이 닿는 곳에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어 보라.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도 지지 않는다.” 20세기 초 알프레트 아들러와 함께 ‘아들러 심리학’을 정립한 저자가 일상에서 행복을 앗아가는 고독, 성, 억압, 사랑, 결혼, 질투심, 허영심, 현실도피 등 온갖 문제를 진단했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저자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사고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로 불린다. 그는 전 세계가 대공황을 겪던 1931년 용기를 갖고 걸어가려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영미권이나 일본 등에서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행복학’의 고전이다. 당신 혼자서 행복할 수 있을까◇당신은 행복한가/달라이 라마, 하워드 커틀러 지음·류시화 옮김456쪽·1만5000원·문학의 숲600만 티베트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미국의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가 10년 만에 다시 나눈 행복에 대한 토론. 1998년 이들이 처음 만나 나눴던 대화를 담아 ‘행복에 대한 교과서’로 사랑받아 온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의 후속작이다. 달라이 라마는 ‘혼자 행복해도 되는가,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내가 행복을 추구할 때 다른 사람의 행복은 어떻게 되는가.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행복은 어떤 관계인가. 그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 나의 행복은 타인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커틀러도 “만일 당신이 행복하다면 당신은 옆집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을 34%까지 높인다”며 “행복은 한 사람의 인간관계 망에서 ‘세 다리까지 건너’ 퍼져나간다”고 설명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콘텐츠가 왕인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큐레이션의 시대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는 홍수처럼 흐른다.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페 등 정보가 공유되는 권역도 점점 세분된다. 정보의 질 자체는 분명 예전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어디서 정보를 찾을지 깜깜하다. 내가 원하는 정보가 유통되는 경로를 정확히 겨냥해 찾을 수만 있다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엄청난 기회를 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텐데 말이다. 일본의 정보기술(IT)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전자책의 충격’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등을 통해 미디어가 격변하는 사회상을 날카롭게 비평해왔다. 이 책은 지식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에, 가치 있고 정제된 정보를 찾는 등대와 같은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를 비오톱(biotop)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topos)를 합친 말로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다양한 종의 생물로 구성된 생식(生息·살아 숨쉬는)공간’이란 뜻이다. 매스미디어 시대에 비오톱은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었으나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디지털 공간 안과 밖으로 무한대로 뻗어나가게 됐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영화와 음악계는 엄청난 콘텐츠 버블과 쇠퇴를 경험했다. 비디오테이프, CD플레이어, DVD플레이어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콘텐츠 유통구조가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세분된 정보유통 구조를 가진 인터넷이 등장하자 음악, 영화산업의 대량소비 모델은 급격히 거품이 꺼졌다. 저자는 “문제는 불법 다운로드가 아니다. 콘텐츠업계는 핀포인트로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을 사람들의 비오톱을 찾아내 그곳에 정보를 전달하는 정밀한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대량소비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제 정보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전달된다”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가치관이나 흥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연결된다. 개인도 기업도 하나의 인격체일 뿐이다. 트위터는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시되는 세계다. 기업이 공식계정을 통해 무미건조한 공식 코멘트 같은 트윗만 올린다면 손님이 몰리지 않는다. 140자 안에 따뜻한 인간적 존재가 느껴지는 계정에는 수많은 팔로어가 따른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정보의 신뢰도’보다 전달하는 ‘사람의 신뢰도’를 찾는 게 빠른 길이다. 큐레이터는 본래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학예사’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 영미권의 웹에서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단편적인 정보에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들어내는 사람도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트위터에서 다른 사람을 팔로한다는 것은 다른 큐레이터의 ‘관점’을 얻는 것이다. 미술에서의 큐레이션과 다르게 소셜미디어에서의 큐레이션은 무수한 큐레이터와 무수한 맥락에 의해 재구성되기 때문에 신선함을 유지한다. 저자는 “‘내가 찾는 정보’와 ‘다른 사람의 관점’에 의해 주어진 정보가 부딪치면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세렌디피티’란 ‘자신이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발견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책 곳곳에는 컴퓨터뿐 아니라 음악 미술 철학에까지 뻗은 저자의 깊은 지식이 드러난다. ‘클라우드(cloud)’와 ‘공유(share)’를 동양의 ‘청빈사상(淸貧思想)’에 비유하고, ‘주객일체(主客一體)’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로 인터넷의 댓글 놀이와 상호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는 부분은 감탄할 만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현재 세계는 최악의 식량위기를 맞고 있다. 아시아에서만 10억의 인구가 식량 부족으로 기아 상태에 있다. 미래 식량전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푸드쇼크’의 저자는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 교수이자 식량위기를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경제학자다. 그는 지구 한쪽에서는 ‘비만’과 ‘다이어트’가 절실한 화두이고, 반대편에서는 5세 미만 어린이 다섯 명 중 한 명이 5초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인간이 먹을 옥수수를 자동차 연료용 에탄올로 전용하고, 그 대신 대량생산된 정크푸드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건강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환경은 무차별적으로 파괴된다. 화학비료 사용과 관개시설의 확대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한 듯했으나, 그 결과 토양과 지하수는 오염됐다. 저자는 “현재의 푸드쇼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존 자본주의’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량전쟁’은 30년간 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를 지낸 뒤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을 설립한 저자가 식량위기의 미래를 소설 형식으로 그려낸다. 미국의 한 학자가 유전자 재조합기술을 이용해 저온에서 견디는 내냉성 밀종자 개발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캐나다 북부의 한랭초지에서 밀 재배가 가능하게 되면 식량난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이 기술을 사장하기로 결정한다. 밀 최대 수출국인 자국의 입김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선진국들은 우루과이라운드 같은 국제협약을 통해 후진국들의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리고 자국에 종속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다. 종자전쟁도 치열해진다. 저자는 공룡 농업기업이 거대자본을 이용해 각국의 종자를 싹쓸이함으로써 신종 농노제도를 만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2008년 세계곡물파동으로 시작된 식량위기는 결국 중동에 민주화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매일 만나는 신문, 동아일보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 기사가 부쩍 늘었다. “선거요? 옛날에는 평민당 텃밭이었는데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그렇지도 않아요.”(강모 씨·50·부동산중개업·서울 성동구 금호동) ‘선거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투표는 의무니까’ ‘이번에는 아직 못 정함. 검토중.’(이상명 씨·25·경기 용인시·스마트폰 문자로 답함) ‘선거’ ‘복지’ ‘심판’ ‘SNS’란 말이 신문에 많이 나온다. 실제로 선거와 관련 있는 말은 어떤 것이고 옛날에는 어땠을까. 동아일보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물결 21’ 사업팀(연구책임자 김흥규 국문과 교수)과 함께 동아일보 기사에 비친 선거의 변화상을 데이터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다. 1948년 제헌국회 선거부터 올해 4·11총선까지 디지털화한 동아일보 기사가 대상이다. 》○ 키워드로 보는 선거 이슈 분석한 결과 제헌국회 선거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정부 ‘수립’(6위)을 위한 첫 자유 ‘총선거’(7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첫 투표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투표소에서 본인임을 확인하는 ‘무인(拇印)’이란 말(19위)도 등장했다. 6·25전쟁 중 첫 직선으로 치러진 2대 대선(이승만 당선)에서는 ‘유엔’(1위) ‘휴전’(4위) ‘회담’(6위) ‘포로’(7위) 등이, 5·16군사정변 후 민정이양 형식으로 치러진 5대 대선(박정희 당선)에서는 ‘최고회의’(3위) ‘혁명정부’(7위)가 많이 사용됐다. 5, 6대 총선과 7대 대선에서는 ‘고무신’과 ‘막걸리’라는 단어가 ‘유권자’ ‘표’ ‘운동원’ 등과 함께 등장했다. 당시 집권당이 선거에 통반장을 동원했고 막걸리 한잔이나 고무신 한 켤레에 표를 사고팔았기 때문이다.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격돌한 7대 대선(1971년)에서는 ‘관권선거’(2위) ‘부정선거’(13위) 등의 단어가 많이 나타나 치열한 유세전을 짐작하게 한다.6월 민주항쟁 직후 13대 대선(노태우 당선)에서는 ‘지역감정’과 ‘단일화’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나선 14대 대선(김영삼 당선)에서는 ‘금권’ ‘관권’ ‘정치자금’ 등 돈과 관련된 단어가 많았다. 외환위기 때인 15대 대선(김대중 당선)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DJP연합’ ‘내각제’가, 16대 대선(노무현 당선)에서는 ‘병풍’ ‘후보단일화’ ‘행정수도’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가장 최근의 17대 대선(이명박 당선)에서는 ‘BBK’ ‘선진화’ ‘대운하’ 등이 키워드였다. 선거 시기 ‘갈등’의 관련어를 보면 총선과 대선의 차이가 확인된다. 총선에서는 ‘공천’ 갈등이 가장 부각되고 ‘지역’ ‘세대’ ‘계파’ ‘당내’ 갈등도 나타난다. 반면 대선에서는 ‘당내’ 갈등이 도드라진다. 여야 간 본선 대결보다는 당내 경선 과정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종교’ ‘계층’ ‘노사’ ‘세대’ 갈등 등 전국적인 키워드가 나타나는 것도 대선 시기의 특징이다. ‘관권선거’ ‘금권선거’ ‘부정선거’ ‘불법선거’ ‘타락선거’ ‘혼탁선거’라는 키워드는 4대 대선(3·15부정선거)을 비롯해 7대(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 격돌), 13대(6월 민주항쟁 직후), 14대(정주영 회장 출마)에 많이 등장했다. 총선 시기에는 5, 8, 13, 14대에 많았다.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1960년, 1971년, 1987∼88년, 1992년에 논란이 많았던 셈이다. 총선과 대선이 겹친 올해에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 ‘개혁’ 줄고 ‘복지’ 떠올라선거를 좌우하는 키워드로 ‘지역감정’이란 단어는 1971년 7대 대선에서 등장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호남 출신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이 대선에서 공화당의 이효상 국회의장은 “대구 경북에서 몰표를 쏟아 부어 기어이 당선시키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김 후보도 선거 막바지 대구 유세에서 “1200년 전 백제 신라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공화당의 망국적인 더러운 선거전에 좌우되지 말고 양심적으로 투표하자”고 호소했다(1971년 4월 26일자).‘지역감정’은 13대 대선부터 다시 영향력을 발휘했다. ‘1노 3김’이 대결한 이 선거에서 당시 노태우 후보는 대구에서 69.7%, 김영삼 후보는 부산에서 56%, 김대중 후보는 광주에서 94.4%, 김종필 후보는 충남에서 45%를 득표했다. 14, 15, 16대 대선에서도 ‘지역감정’ 키워드는 힘을 발휘했으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17대 대선 이후 비중이 크게 줄었다. 김일환 연구교수는 “지역감정이 선거 키워드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유권자들의 지역 기반 투표 성향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지역감정은 너무 고착화돼 더는 이슈가 되지 못하는 대신 ‘경제’ ‘세대 갈등’ ‘복지’ 등의 키워드가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16대 총선에서는 ‘낙선운동’이 최대 화제였다. 그러나 18대와 올해 19대에서는 주목도가 크게 낮아졌다. ‘개혁’이란 단어는 16, 17대 총선에서 영향력 있는 키워드였으나 18, 19대에서는 점차 줄었다. 19대에서는 ‘복지’가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4대 총선(1958년) 이후 54년 만이다. 무상급식이 이슈화한 데다 여야의 ‘선택적 복지’와 ‘전면적 복지’ 공약이 논쟁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진 16대 총선(2000년)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16대 대선(2002년)에서는 ‘인터넷’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한 19대 총선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 ‘SNS’가 각광받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본보 창간후 모든 기사 DB 구축… 선거기간 단어 3억개 분석 ▼■ 어떻게 조사했나어절 기준 무려 3억 개의 단어를 대상으로 한 데이터 분석에는 신문기사를 데이터 마이닝 기법으로 연구하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의 ‘물결 21’ 사업팀이 모두 동원됐다. 국문과 김흥규 교수, 언어학과 강범모 교수와 김일환 정유진 HK연구교수, 이도길 HK교수 및 석박사과정생 연구원 4명, 대학생 5명이 참여했다.분석에는 3주 이상 걸렸다. 1947년 7월 21일부터 2012년 3월 26일까지 65년간의 신문기사량이 만만치 않았던 데다 1980년대 이전에는 한자가 많이 포함됐고 띄어쓰기의 오류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선거 기간은 대선 전 1년, 총선 전 6개월(1990년대 이후는 대선 전 6개월, 총선 전 3개월)로 잡았다. 선거 기간의 키워드를 뽑기 위해 전체 단어의 빈도 통계를 구했다. 마찬가지로 관련어(선거 키워드)는 ‘선거’란 단어가 들어간 문장이나 문단의 전체 단어를 모두 색인한 뒤 예상보다 많이 쓰인 단어의 의미값(t-점수)을 계산했다.신문기사는 블로그나 트워터와 비교할 때 신뢰도가 높다. 데이터 마이닝이 첨단이라고 하지만 텍스트의 신뢰성이 높지 않다면 가치가 낮을 수밖에 없다.신문기사는 하루 단위로 나와 그동안 어떠한 단어를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알기 어렵다. 직관으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지금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시기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 분석은 1920년 창간 이후 동아일보의 전 기사가 디지털로 DB화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흥규 교수는 “신문기사는 그 시기 관심사와 사건이 그대로 담겨 있으므로 데이터 마이닝에 아주 좋은 자료”라며 “앞으로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삼가헌(三可軒)은 충정공 박팽년(朴彭年)의 11대손인 박성수(朴聖洙)가 1769년에 지은 집이다. 당시에는 초가였던 것을 현재와 같은 모습의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하게 된 것은 그의 아들인 광석이 1826년 아버지가 지은 초가를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삼가헌이란 당호는 박성수의 호로 ‘중용’에서 따온 것이다.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도 있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었으며,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도 있었지만 중용은 불가능했다”는 공자의 탄식에서 유래됐다. 선비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이라는 뜻이다. 삼가헌은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와 ‘ㄴ’자로 따로채로 구성돼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중문을 통해서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안채의 마당에 이른다. 이 집에는 세 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첫째는 사랑채를 정면에서 보면 이상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왼쪽 ‘ㄴ’자로 이루어진 아래 획의 왼쪽 부분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부분은 부섭지붕(벽이나 물림간에 기대어 만든 지붕)으로 삼각형의 꼭짓점을 누인 채 한 면으로 경사져 있다. 둘째는 서까래다. 대부분 오량집(다섯 개의 도리로 짠 지붕틀로 지은 집)은 중도리에서 주심도리로 긴 서까래를 걸고, 다시 위쪽 종도리로 짧은 서까래를 걸어 지붕이 높아진다. 그런데 삼가헌은 오량집인데도 서까래가 종도리에서 중도리를 거쳐 주심도리까지 하나의 부재로 내려온다. 결과적으로 중도리에서 경사가 달라지지 않고 모두 일직선상에 있게 되어 지붕이 낮아졌다. 이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 박성수의 아들은 적어도 사랑채만큼은 아버지가 지은 초가집을 부수지 않고, 지붕만 기와로 얹은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사랑채의 왼쪽 지붕도 이어진 채가 없으므로 간단하게 부섭지붕으로 처리된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중문이다. 박광석은 이 집을 기와집으로 개보수 할 때 이 중문만은 초가로 그냥 두었다. 사랑채와 대문채를 아래위로 비끄러매어 중문을 만들고 초가지붕을 그냥 둠으로써 청빈한 사대부가라는 걸 과시했다. 아버지의 손길을 중문에 남겨 두려는 아들의 마음이 전해져서 나는 이 삼가헌의 중문이 괜히 따뜻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 집의 세 가지 특이한 점들은 모두 아버지와 아들이 집으로 나눈 대화 같기도 하다. 시인·건축가}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당시 경제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기존 경제학에 심리학의 통찰력을 결합했으며 실험을 통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경제학을 새롭게 정립했다. 그는 경제학과 심리학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혁신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경제학은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가정 아래 인간의 경제 행위를 분석하는 학문, 즉 비실험과학으로 존재해왔다. 경제학은 실험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데이터와 수식, 그리고 통계로 현상을 분석한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카너먼 교수는 다양한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미래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경제학 이론이 실제와는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시 손님이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미터기 요금이 100원 올라갔는데 기사가 100원을 깎아주면 속으로 기뻐하겠지만 100만 원짜리 모피코트를 살 때 점원이 100원을 깎아주겠다고 하면 오히려 불쾌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는 똑같은 100원인데 말이다. 이 책은 손실회피의 예도 든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앞면이 나오면 150달러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100달러를 잃는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자고 하면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이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대수익이 0을 넘으므로 참여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달러를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압도되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나오게 된다. 이를 통해 손실회피란 개인과 조직에 변화가 최소화하기를 희망하는 경제 주체들의 행태라고 저자는 설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빠르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1’, 느리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2’로 명명하고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1이 범하는 오류와 편향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수합병 뉴스가 나오면 인수에 나선 기업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대개 기업인들은 자신이 다른 기업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데 인수합병 기업의 주가 약세는 그들의 생각만큼 그 기업이나 경영자들이 유능하지 못하다는 ‘교만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 1의 오류, 편향, 그리고 착각을 어떻게 해결하고 줄일 수 있을까. 저자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직관적 사고, 과신, 극단적 판단, 오류 등에 빠지기 쉽다고 자기고백 식으로 말하고 있다. 현재까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부문 연구자들이 진행했던 연구 성과들이 이 책에는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이론, 세인 프레더릭의 의사결정이론, 월터 미셸 스탠퍼드대 교수의 심리학 역사상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 등 다양한 인간행동 관련 연구 성과와 주제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유익함을 줄 것이다. 최근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대한 대중교양서의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책이 출간됐다. 한국 출판계에 행동경제학의 붐을 일으킨 이가 이 책을 내놓은 카너먼 교수일 것이다. 가장 인기 있는 가수가 마지막에 등장하듯 그도 지금에야 대중교양서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경제 주체 안에 있는 전혀 다른 두 자아를 잘 분석해낸 ‘생각에 관한 생각’이 그의 학문적 깊이와 지향점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길 기대한다.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자기계발과 경제경영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가 인류 최고의 고전을 읽어 나가는 평생 프로젝트를 펼친다. 현대 기업 국가 가정 개인의 시각으로 고전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자기계발적 관점에서 철학 문학 역사서 등의 맥을 잡아가는 ‘지혜의 브리지’를 시도한다. 처음 나온 두 권 중 첫 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에서는 두 철학자의 문답법과 논박의 지적산파술에서 나오는 육체와 영혼, 성공과 부, 인간관계의 본질, 권력의 양면성, 사랑과 결혼 등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담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AK47은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년 뒤 28세의 청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개발했다. 군용 총기의 소형화, 자동화를 이끌었으며 1960∼80년대 베트남, 쿠바, 앙골라, 모잠비크 등에서 식민지 해방투쟁의 주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내전 지역부터 소말리아 해적까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를 폭력의 현장으로 내모는 흉기가 됐다. 20년 이상 아프리카 중동 분쟁지역을 발로 뛰며 취재한 저자가 통제되지 않는 무력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 차의 역사는 신라 말기 선종과 함께 유입되면서 시작됐고, 고려 시대에는 왕실과 사찰의 주도하에 송나라에 비견될 만큼 차 문화가 융성했다. 조선시대 배불(排佛)정책으로 사멸 위기에 처했던 우리 차문화가 부흥하게 된 배경에는 초의 선사(1786∼1866)가 있었다. 선종의 대표적인 ‘선다(禪茶)’ 정신을 이은 초의 선사가 인식한 차는 단순한 마실 거리가 아니라 정신적 수행의 삼매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그는 이러한 구도정신을 담아 필생에 걸쳐 ‘초의차’를 완성했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차’를 마신 후 “심폐가 시원하다”고 평할 정도였다. 저자는 초의 선사의 고향인 전남 무안군 삼향을 기점으로 그가 거쳐 간 운흥사, 쌍봉사, 대흥사, 학림암 등을 찾아가 다성(茶聖)이 남긴 정신과 인연의 흔적을 좇는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청년 시절의 초의에게 시학과 주역을 가르쳐준 다산 정약용, 초의와 동갑내기 친구로서 맑은 정신의 세계를 교감했던 추사 김정희, 절창의 시문으로 ‘초의차’의 웅대한 경지를 묘사했던 박영보와 신위, 황상…. 이 책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차와 시를 주고받았던 ‘초의차의 인문학’이 담겨 있다. 초의가 만든 차는 유배지에서 신체의 고통에 시달리는 선비들에게 ‘약’ 이상 가는 효능을 발휘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유배지 제주도로 떠난 추사는 ‘걸명시’를 지어 전하며 ‘초의차’를 부탁했다. 초의가 북학파 경화사족 등 유학자들과 교유를 확대하는 데도 차와 시가 매개물이 됐다. 초의와 추사, 당대의 문사 등 세대와 신분을 넘고, 유불선이 한데 만나는 네트워크는 고매한 정신세계를 공유하며 서로의 자긍심을 키워 나갔던 한국의 미학과 인문학의 근원을 이야기해준다. ‘초의차’ 5대째 계보를 이은 저자는 이 책에서 응송 스님에게 전해 받은 친필 ‘다도전게’를 공개했다. 저자는 “일본이 찻잎을 찌기만 하고 중국이 찻잎을 볶기만 한다면, 우리는 찻잎을 볶으면서 뚜껑을 덮어 열기로 찌는 공정을 절묘하게 합쳐 차의 독성을 중화해 차의 효능을 드러내는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초의차는 ‘동자처럼 젊어지고 팔십 노인의 얼굴에 붉은 빛을 띠게 하는 신묘한 효능을 지녔다’고 전해져 온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 광명성 3호를 4월 중 발사하겠다고 예고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일제히 반대하고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왜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까지 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하는지 그 속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또 지난해 12월 19일 북한의 김정일 사망 소식이 발표됐을 때는 정보의 사전 입수 여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렇게 북한의 동향은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어려운 문제다. 북한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북한학으로 시작해 대통령학 연구 전문가로 활동해온 저자가 40년 지적 편력의 마지막 닻을 내린 분야가 정보학이라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대통령학의 필드 스터디를 위해 세계 각국의 정보 실무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한 1995년부터 정보학에 관한 책을 준비해왔다. 한국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주요 8개국 100명 이상 정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아 국가의 신경망 조직인 정보기관을 꼼꼼히 짚어간다.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손무가 손자병법에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추구하려면 정보를 우선시하라’고 말한 것처럼 ‘정보의 중요성’이다. 둘째는 정보담당 기관을 국가 지도자에 대한 정보 지원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각국의 정치제도를 권력균점형 대통령중심제와 대통령형 내각제로 대별하고 그에 따른 대통령, 총리에 대한 정보 지원 시스템을 분석해 한국의 21세기형 대통령 정보 시스템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국가 지도자는 교육을 받아서라도 정보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고 국가 경영을 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진심어린 저자의 조언이다.안광복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연구교수}

“각국의 화폐를 잘 살펴보세요. 위인들의 얼굴뿐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 건축물, 그림, 민속춤까지 무궁무진한 문화적 기호가 숨어 있답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김시영 씨(41)와 고교생 아들 상언 군(17)이 세계 각국의 화폐 이야기를 담은 ‘화폐 속 역사 팝’(좋은땅)을 펴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 혼자 노는 데 익숙했던 상언 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락방에서 우연히 아빠의 우표책을 발견했다. 낡은 우표책 속에 끼워져 있던 빛바랜 500원짜리 지폐가 눈에 확 들어왔다. 거북선, 이순신이 그려져 있는 옛날 지폐가 신기해 뚫어져라 쳐다보며 문양을 살피고, 좁쌀보다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확대해 보았다. “우표는 너무 작잖아요. 지폐는 크고 화려해 눈길이 갔어요. 당시 위인전집을 읽던 중이라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제일 컸어요.”(김상언) 아빠와 함께 화폐전시회와 화폐박물관을 둘러보기 시작한 김 군은 급기야 인근 외환은행에 들러 환전을 하며 외국지폐 수집에 나섰다. 집안일이나 심부름을 한 대가로 1만∼2만 원 용돈이 생기면 소액환전으로 달러, 위안화, 엔화 등을 모았다. 6개월 치 용돈을 모아 아빠와 함께 대구, 서울의 화폐상을 찾아가 유로화 이전의 유럽 국가들의 옛 화폐를 사기도 했다. 두 사람이 모은 세계 화폐는 앨범 7개에 빼곡히 담겼다. 김 씨는 아들에게 미국에서 발행된 ‘세계화폐도감’(World Paper Money)을 사주었다. 세계 각국의 화폐에 나와 있는 인물과 문화유산에 대해 길게 해설을 붙인 책이다. 김 군은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화폐도감을 읽었고, 백과사전, 인터넷을 통해 공부한 후엔 꼭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1만 원권의 앞면을 한번 볼까요. 세종대왕 얼굴뿐 아니라 일월오봉도 그림, ‘불휘기픈남ㅱㅱㅱ매아니뮐새…’라는 용비어천가 내용이 있습니다. 뒷면에는 조선시대 별자리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지요. 조선시대 별자리를 관측했던 ‘혼천의’와 현재 보현산 천문대에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현대식 광학망원경 그림도 그려져 있답니다.”(김시영) 김 군에게 화폐 수집은 역사뿐 아니라 경제를 이해하는 계기도 됐다. 수없이 은행을 다니며 환율변화에 민감해지다 보니 국제적인 경기 흐름과 증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리먼브러더스 사태, 아일랜드 화산 폭발, 동일본 대지진이 환율이나 증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는 질문을 해대는 아들에게 김 씨는 “증권사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권했다. 김 군은 여러 증권사를 찾아가 경제에 관해 묻고 들은 내용을 노트에 기록했다. 김 군은 2010년 아파트 경제장터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화폐 전시회를 열고 화폐 속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아버지 김 씨는 “요즘 아이들이 꾸준히 길게 뭔가를 해서 성취하려는 노력이 부족한데, 외국에서도 화폐 수집은 대를 이어서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로 꼽힌다”며 “아들과 함께 화폐를 수집하며 나눴던 대화의 시간들이 무척 소중한 추억”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요즘 TV의 토크쇼를 보면 인기 절정의 10대 아이돌 그룹 가수들도 연습생 시절 ‘눈물 젖은 라면’을 먹던 이야기를 한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모두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했음을 강조한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앞다퉈 펴낸다. “왜들 이러는 걸까요?” 개그맨 황현희의 말투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여기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대중은 힘센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국가대표’나 ‘쿨러닝’에서 보듯 대중들은 보잘것없는 주인공들에게는 열광하지만, 다윗과 싸운 거인 골리앗은 수세기가 지나도록 악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 최근 출간된 마이클 프렐의 ‘언더도그마(지식갤러리)’다. ‘언더도그(underdog)’란 싸움에서 지고 꼬리를 내린 개처럼 객관적인 열세를 보이는 약자다. ‘언더도그마’는 약자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선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사악하다고 믿는 현상을 말한다. 2005년 11월 이라크전쟁 당시 크리스천 피스메이커팀이라는 기독교 평화운동단체가 이라크에서 반전시위를 하던 중 이라크군에 인질로 잡혀 한 명이 총살을 당했다. 나머지 인질들은 수개월 후 공교롭게도 자신들이 비판했던 다국적군에게 구출됐는데, 석방 후에도 이들은 강자인 다국적군에게 모든 책임이 있으며, 약자인 이라크군은 선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국내에서 인권을 외쳐온 단체들이 북한 3대 세습체제에는 침묵을 지키고, 중국의 탈북자 북송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성명 하나 내지 않는 심리의 근저에는 언더도그마가 깔려 있다. 지구 최강국인 미국에 대한 반감이 북한, 리비아와 같은 독재국가나 테러리스트까지 무조건 옹호하는 아이러니를 빚어내곤 한다. 언더도그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은 무명의 언더도그 참가자들이 거대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한 수전 보일은 ‘우승을 하지 못한’ 덕분에 데뷔 앨범이 300만 장이나 팔렸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수년째 가을에 야구를 못한 롯데 자이언츠는 열광적인 팬을 몰고 다니는 반면, 만년 강자로 보이는 삼성 라이온즈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 언더도그마는 실패한 자는 칭찬하고, 성공한 자는 처벌하는 대중의 심리다.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언더도그마 전략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고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풀빵장사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욕쟁이 할머니의 장터국밥을 먹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자신이 ‘거대야당과 언론권력’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호소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속한 민주통합당이 언더도그였는데, 새누리당은 더 약해 보이는 27세 정치신인 손수조로 맞불을 놓아 ‘언더도그’ 경쟁을 벌인다. 진보정당이 거대여당에 대한 심판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스캔들에는 ‘무오류’를 주장하는 것도 언더도그마로 해석된다. 대중이 약자에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다. 그러나 이것이 말 그대로 ‘도그마(dogma)’로 변질될 때는 위험하다. ‘언더도그마’는 분별 있는 이념도, 도덕도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심리일 뿐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우리는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時空間)에서 살고 있다. 공간과 시간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것은 공간을 통해서다. 거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거리와 거리의 다른 방향들이 우리에게 살펴지면서 장면과 장면의 시간적 순서를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조선집을 구성하는 가구식 구조(架構式構造·목재로 기둥과 보를 조립해 만드는 구조)는 지형과 지세를 이용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장면과 장면의 시간의 순차를 통해 공간을 느끼게 하는 데 더없이 탁월한 구조다. 안동의 와룡면 중가구리에 있는 영남 남씨 문중의 남흥재사(南興齋舍)는 이러한 가구식 구조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남흥재사가 있는 남흥마을은 순흥 안씨 집성촌인 가느실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남흥재사를 충분히 느끼려면 적어도 이 가느실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좋다. 이 좁고 긴 가느실 마을의 지형을 따라가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남흥마을이 나온다. 잘못하면 사람 그림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올 수도 있는 이 동네의 제일 높은 곳에 남흥재사가 있다. 이제부터는 경사가 좀 가파른 길을 따라간다. 남흥재사의 2층 누각인 원모루 처마가 가까워 올수록 고조되는 음계처럼 펼쳐져 있는 재사의 지붕들이 일정한 화음을 갖고 변주된다. 원모루의 판벽에 낸 두꺼운 영쌍창(靈雙窓)들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처마의 그림자로 무겁고, 음울하다. 반면에 재사 1층의 흙벽들은 눈부시다. 약간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재사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서 이제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가느실의 좁은 길과 마을을 둘러싼 산들까지 남흥재사의 안뜰은 그것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경사지에서 각각의 채를 받치고 있는 기단들은 마치 각각의 마당을 구성하여 가운데 안뜰로 흐르는 듯하고, 지붕들은 지붕들대로 산맥이 달리듯이 서쪽 채에서부터 대청으로, 종손방을 돌아 2층 누각인 원모루에서 크게 일어서고 있다. 원모루에 앉아 비로소 숨을 내쉬면 다시 안뜰 위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지세를 따라 주초에 다리를 내리고 있는 가구식 구조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와 같이 걷는 집. 나는 혼자 걷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시인·건축가}

경영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먼의 수석 부사장인 저자는 시간 단위 렌트 개념을 도입한 집카(ZipCar), 스타벅스를 집 안으로 옮겨다준 네슬레의 네스프레소 등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해낸 기업들의 여섯 가지 비결을 밝혀낸다. 그에 따르면 불황이란 반드시 모든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황이라는 독특한 환경요인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변화를 관찰하고, 매력적인 제품과 배경 스토리를 갖춘 제품을 만들어 내면 ‘수요(demand)의 방아쇠’가 당겨진다는 설명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