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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독서의 계절’은 옛말. 여름휴가와 방학이 겹치는 7∼8월이 연중 최대의 도서 판매 시즌으로 떠올랐다. TV도 컴퓨터도 없는 산과 계곡에 텐트 치고 머물며 아이들과 대화하고, 책 읽으며 휴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교보문고와 YES24 북마스터들의 도움을 얻어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휴가 때 읽을 만한 책들을 ‘독자맞춤형’으로 골랐다. 》기차나 비행기 안에선 인문교양서기차나 비행기, 휴가지의 카페에선 평소 읽을 시간이 없던 인문교양서나 에세이류가 적당하다. 미라 레스터의 ‘힐링여행’(북스코프)은 사랑과 헌신, 용기와 인내, 구원과 화해, 정신적 풍요, 감사와 애도, 용서 등 10개의 힐링 테마에 맞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산과 호수, 섬과 바다, 고대 문명의 유적지, 성지 등과 관련된 감동적인 경구는 읽는 이의 마음과 영혼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정민의 ‘일침’(김영사)은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 속 한마디를 음미하게 해준다. 김지현의 에세이집 ‘디테일, 서울’(네시간)은 30대 여성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서울의 일상을 그려냈다. 허태균의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 이츠키 히로유키의 ‘타력’, 임용한의 ‘세상의 모든 전략은 전쟁에서 탄생했다’(교보문고)도 여행가방에 넣을 만하다. 여름밤엔 오싹한 공포소설공포소설은 열대야에 지지 않는 중독성이 있다. ‘좀비’(포레)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품. 실존했던 사이코패스 제프리 다머가 모델인 쿠엔틴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살인자의 내면을 파헤친다. 납치한 사람을 뇌수술시켜 주인에게 복종하는 착한 노예(좀비)로 만들려 했던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개인을 넘어 탐욕스러운 현대사회를 상징한다. 극한으로 치닫는 상상력과 우울한 내러티브가 더위를 잊을 정도의 무서움을 선사한다.영화 ‘화차’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문학동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북로드),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밝은세상),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황금가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참자’(재인)도 추천됐다.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세미콜론)은 저주 증오 광기 상실 분노 죽음 등 예술가들이 포착해낸 7가지의 공포를 선별하고 그림을 통해 무서움의 심리를 소개한다.내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면휴가의 진정한 의미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친 영혼을 달래고 삶을 재충전하는 것이 아닐까. ‘욕망해도 괜찮아’(창비)는 법학자인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창비 인터넷 카페에 인기리에 연재했던 ‘색계: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욕망과 규범’을 묶었다. 내 안의 욕망을 직면하는 풍자, 유머가 가득한 감성에세이다. 아잔 브라흐마의 ‘성난 물소 놓아주기’(공감의 기쁨)와 허허당의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예담)는 스님들이 마음 다스리기에 관해 쓴 책들. 김경집의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랜덤하우스코리아), 윤대현의 ‘마음 아프지 마’(쌤앤파커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행나무)도 자신의 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한다.투자의 달인이 되게 하는 책많은 직장인이 경제 경영 책을 읽으며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어 한다. 심리학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교양서인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이 이 분야 추천 1순위로 꼽혔다.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로 선정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협상 전략서인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8.0), 조직구성원을 천재로 만드는 곱셈의 리더십에 관한 리즈 와이즈먼의 ‘멀티플라이어’(한국경제신문사)도 읽을 만하다.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갤리온)는 여행을 통해 ‘공정무역’의 현장을 직접 확인한 책이다. 고득성의 ‘운명을 바꾸는 10년 통장’(다산북스), 신동일의 ‘한국의 슈퍼리치’(리더스북)도 투자 재테크 책으로 추천됐다.고전 입문을 도와주는 책들책 읽기의 왕도는 역시 고전을 집어 드는 것이다. 휴가철을 이용해 평소 엄두를 못 냈던 고전 읽기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는 십자군전쟁 관련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인간 권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와 ‘갈리아 내전기’(사이), 동양고전의 백미인 사마천의 ‘사기’ 세트(민음사)도 읽어볼 만하다.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심볼리쿠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역작인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원문의 운율과 리듬을 살려 새롭게 번역해낸 작품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휴가 때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거나 집에 머물면서 아이의 마음을 살펴보자. 김수정의 ‘대한민국 구석구석 교과서 여행’(아주좋은날)은 아이와 함께 체험학습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어볼 만한 책이다. 오은영의 ‘아이의 스트레스’(웅진리빙하우스), 존 가트맨의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한국경제신문사) 등은 아이의 상처 난 마음을 보듬고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준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평가이자 지제크 전도사인 이현우(로쟈) 한림대 교수가 꼽은 인문교양서▼◇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사사키 아타루/자음과모음 ‘책과 혁명’이란 주제를 다룬 책을 여름휴가 때 읽어 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게다가 청량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체온을 높여 주는 책이라면. 하지만 며칠 전 지방 강연을 가면서도 가방에 이 책을 챙겨 넣었다. 한 번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지 않으면 뭔가 성에 차지 않는 책도 있는 법인데 이 책이 바로 그런 범주에 속한다. 철학, 현대사상, 이론종교학을 전공한 일본의 이 젊은 저자는 놀라운 열정과 내공으로 문학이 어떻게 해서 혁명의 근원이며, 혁명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조곤조곤하지만 아주 뜨겁게. 저자의 구분법에 따르면 이 책은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읽어 버린’ 책이다. 어떤 책이 일류라 치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읽기는 두려운 것이고 드문 것이다.▼영화배우 손예진이 고른 소설▼◇모멘트/더글라스 케네디/밝은세상 요즘 국동석 감독의 범죄 스릴러 영화 ‘공범’을 촬영 중이라 이번 여름에는 휴가를 가지 못할 것 같다. 그 대신 촬영 도중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 것이 내겐 가장 행복한 휴식이다. 소설 ‘모멘트’는 ‘빅 픽처’를 쓴 미국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으로 통일 독일 이전인 1984년 베를린을 배경으로 분단과 냉전의 역사 속에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태어난 남녀가 겪는 운명적 사랑과 엇갈림, 놓쳐 버린 기회, 사라진 꿈 등이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수십 년을 오가는 시간적인 배경과 긴장감 있는 스토리, 복잡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웬만한 영화보다 흡인력을 느끼게 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국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해서 공감을 하며 읽었다. 운명적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휴가철에 일독을 권한다.▼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소장이 선택한 과학서▼◇기술의 충격/케빈 켈리/민음사 기술의 정체와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 활동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시대다. 그렇다면 기술은 단순한 도구일까, 아니면 우리가 기술에 종속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한 의문에 대해 깊이 있는 답변을 제시한 책이 이 시대 최고의 기술 칼럼니스트로 꼽히는 케빈 켈리의 ‘기술의 충격’이다. 올해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던 그는 인터넷과 정보기술뿐만 아니라 기술의 전체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공학기술과 정보과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를 꿰뚫는 통찰을 보여 준다. 책은 결코 쉽지 않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상당히 많지만, 읽고 나서 남는 여운이 크다.▼‘미실’, ‘채홍’을 쓴 김별아 소설가가 고른 에세이▼◇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서효인/다산책방 9회말 투 아웃의 만루, 당신은 18.44m 앞에 강속구 투수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 팀이 3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간절히 바란다. 역전 만루 홈런! 한 방에 상대편을 무릎 꿇리고 주자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경기장을 환호로 채우고 싶다. 하지만 인생의 경기장에서, 우리는 대부분 플라이볼을 날리거나 삼진아웃을 당한다.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 삶의 경기, 승리를 원한다기보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단단히 배트를 움켜잡는다. 전 야구 선수 서효인과 동명이인인 시인 서효인의 에세이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는 부제대로 ‘어느 젊은 시인의 야구 관람기’이자 꿈과 추억과 청춘에 대한 보고서다. 시인의 날카롭고도 섬세한 시선은 관중의 함성 속에 숨은 열망과 분노를 캐내고, 지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경기를 위로한다.}

최근 발간된 은희경의 소설 ‘태연한 인생’(창비)에는 주인공인 소설가 요셉이 동네 커피전문점을 훤히 꿰뚫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작업도 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니까. 버스 정류장 앞 카페는 자리가 넓고 콘센트도 많아 일하기는 괜찮은 편이야. (…)주차장 뒤에 있는 카페는 오백 원만 더 주면 커피도 에스프레소로 리필해줘.” 영화 번역가 이미도 씨도 서울 역삼동 집 앞에 있는 스타벅스를 자신의 사무실처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전 7시면 신문 3개를 들고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신문을 꼼꼼히 다 읽은 뒤 번역이나 집필활동을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 퀵서비스도 커피전문점에서 받는다. 1999년 이화여대 앞 스타벅스 1호점이 개점하면서 불어 닥친 국내 커피전문점 열풍은 ‘된장녀’ 논란 속에서 시작됐다. 도대체 밥값보다 비싼 브랜드 커피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커피전문점은 한 집 건너 하나씩, 동네 구석구석까지 번졌다. 불황 속에서도 커피전문점 시장이 연간 1조 원대로 급성장하게 된 원인은 무얼까? 단순히 커피맛 때문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 교수는 집이나 직장 이외의 부담없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3의 장소’라 불렀다. 한국사회에서 제3의 장소는 사랑방에서 시작해 다방, 카페, 노래방, PC방 등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해왔다. 커피전문점이 예전의 ‘제3의 장소’와 다른 점은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철저히 ‘개인적인 공간’이란 점이다. 대화를 나누러 온 사람도 있지만 리포트를 쓰고, 게임을 하고, 과외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데이트를 즐긴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 백수들이 노트북을 꺼내놓고 일자리를 찾는 곳도 커피숍이다. 그런데 5000원짜리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다 녹도록 몇 시간씩 앉아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기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도심의 거대한 모바일 오피스가 된 커피숍은 각종 신조어도 만들어낸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직장인 ‘코피스족’(커피+오피스)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대학생 ‘카페브러리족’(카페+라이브러리)이 그들이다. 카페베네에 따르면 이처럼 일과 공부를 위해 커피숍을 찾는 고객이 전체 고객 중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휴식과 노동이 어우러지는 커피숍이 적막한 도서관이나 사무실보다 훨씬 생산성 높은 창작 공간으로 선호되는 것이다. 소설가 주원규 씨는 최근 200자 원고지 840장 분량의 장편소설 ‘반인간선언’(자음과모음)을 24시간 운영하는 홍대앞 커피전문점에서 나흘 만에 썼다. 커피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은 아예 자지 않은 상태에서 월요일 아침부터 목요일 오전 3시까지 미친 듯이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카타르시스가 몰려오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들의 창의성은 ‘샤이 애니멀(Shy animal)’, 즉 부끄러운 동물과 같아서 평소엔 잘 나오지 않지만 낯선 곳에 있으면 호기심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 요즘 나도 주말 저녁에는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책 한 권을 들고 커피전문점으로 향한다. 이종(異種)과 경계의 문화가 만나는 커피숍은 요즘 사진, 인문학, 콘서트, 강연회 공간으로 무한변신 중이다. 무엇보다 커피전문점이 종이책과 전자책 붐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출판계가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올해는 대선의 해. 삼국지 초한지 마키아벨리와 같은 동서양 고전에서 배우는 리더십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외국 고전과 인물뿐일까. 웅녀, 박혁거세, 석탈해, 주몽 같은 우리나라 건국 신화 속 인물들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신화란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란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말처럼 신화 속 등장인물은 한국적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최고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이번엔 우리나라 건국신화에서 열한 명을 불러냈다. 모두들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구하고 나라를 세운 영웅들이다. ‘물지게 리더십’ ‘물레방아 리더십’ ‘보따리 리더십’ 등 평범한 일상을 결부시킨 리더십 분석이어서 한층 친근하게 다가온다.○ 웅녀의 ‘바리데기 리더십’=‘단군신화’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쪽은 환웅이 아니라 웅녀라고 저자는 말한다.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와 태백산 신단수 밑에 신시(神市)를 세웠지만 인간의 나라를 위한 청사진은 갖고 있지 않았다. 반면 웅녀에겐 확실한 비전이 있었다. 단지 인간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국의 주인공인 단군을 낳는 것이었다. 웅녀는 이 같은 계획을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수행해 나갔다. 호랑이가 중도에 포기했던 이유는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설화 속 바리데기처럼 웅녀는 자발적이며 희생적인 자세로 ‘미래의 비전’을 치밀하게 엮어 나갔던 지도자였다”고 설명했다.○ 주몽의 ‘물지게 리더십’=물지게를 효과적으로 지기 위해서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어깨 양쪽에 걸린 물통이 절묘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물통이 적절한 운동을 하며 어깨 위에서 놀아줄 때, 물지게가 저절로 지게꾼의 발걸음을 떼 놓게 한다. 주몽은 타고난 활솜씨에 피나는 노력,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세운 고구려는 지혜와 힘이 조화된 나라였다. 광대한 고구려의 영토는 지혜에 힘이 더해진 완벽한 한판승으로 이뤄낸 것이었다. ○ 박혁거세의 ‘보따리 리더십’=“보따리를 풀어 놓은 곳이 주인집이다”라는 말이 있다. 박혁거세는 백성들이 등에 지고 머리에 인 짐을 어디에 풀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신라의 6개 부족이 우왕좌왕할 때, 박혁거세는 백성들에게 보따리를 풀어 정착할 나라를 세운 지도자였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도 처음에는 구멍가게에서 시작했듯이,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된 신라도 자그마한 부족국가에서 시작했다. ○ 온조의 ‘집토끼 리더십’=“불황일 때는 집토끼부터 지켜야 한다”는 마케팅의 원칙이 있다. 그렇게 지켜낸 집토끼는 산토끼도 몰고 온다. 온조는 유리, 비류에 이어 주몽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형인 유리가 왕위를 잇자 온조는 비류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러 떠난다. 온조는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부하들(집토끼)을 데리고 십제(十濟)를 세워 우선 기반을 다졌다. 결국 미추홀로 떠났던 비류의 부하들(산토끼)도 돌아와 백제(百濟)를 건국했다. ○ 왕건의 ‘물레방아 리더십’=“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은 먼저 가자고 다투지 않는다.” 리더십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왕건은 선배 궁예와 견훤을 따랐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두 선배를 무리하게 앞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궁예를 주군으로 끝까지 모시고자 했으며 라이벌이었던 견훤도 존중하고 예우했다. 그는 자신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왕건은 통산 전적에서 견훤과 싸워 3 대 7로 졌다. 그러나 전쟁에선 승률이 중요하지 않다. 아홉 번을 져도 최후의 1승을 얻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이 밖에도 저자는 신라의 석탈해와 김알지의 ‘모퉁잇돌 리더십’, 가락국 김수로의 ‘눈높이 리더십’을 소개하는 한편 반면교사로 경계해야 할 리더십도 꼽았다. 해부루와 금와는 강대국이었던 부여국의 수도를 변방으로 옮겨 스스로 국력을 약하게 한 ‘헛삽질 리더십’, 후백제의 견훤은 자전거 페달 밟듯 아랫사람을 닦달하고 공적은 자기에게만 돌리는 ‘자전거 리더십’으로 비판했다. 올해 대선에는 청년층의 취업난 해소와 국민의 안정된 살림살이가 최대 이슈다. 그래서 후보마다 자기가 눈높이의 소통능력, 물지게꾼의 전문성, 집토끼와 보따리의 현실감각, 바리데기의 자발적 희생, 모퉁잇돌의 비전을 갖춘 후보라고 목청을 키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누가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일지, 누가 국민을 자전거 페달처럼 밟아대는 리더일지 가려내는 눈도 필요하다. 신화 속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베스트셀러 소설 시리즈 ‘트와일라잇’의 팬픽션(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을 팬이 자신의 뜻대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시작한 소설 ‘그레이의 오십 가지 비밀’이 영국 문고판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소설로 등극했다.2011년에 처음 출간됐던 이 소설은 올해 6월 문고판으로 재출간되며 다시금 인기몰이에 나섰다. 해리 포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리고, 저작권은 무려 37개국에 판매됐으며 전자책으로도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쓴 이 책의 장르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에로틱 소설’이다.이야기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아나스타샤 스틸이 억만장자인 크리스천 그레이를 만나며 시작된다. 그레이는 스틸에게 ‘삶을 내게 맡기라’는 은밀한 계약을 제의한다. 이에 응한 스틸은 그레이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점차 그가 사디즘(상대에게 성적 고통을 줌으로써 만족하는 성적 취향) 등 왜곡된 성적 취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그레이와 사랑에 빠진 아나스타샤는 그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사디즘과 마조히즘(상대로부터 육체적 고통을 받음으로써 만족하는 성적 취향)을 비롯한 괴상한 성적 취향에 맞춰 나가기로 결심하는데…. 선정적이고 직설적인 성적 표현으로 비판받는 이 소설이 갑자기 2012년 여름 출판계의 핵으로 떠오른 데 대해 영국 출판계는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에로틱 소설이라는 장르는 항상 존재해왔지만 이같이 단숨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며 출판계의 중심에 선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평도 엇갈려 가디언지의 제니 콜건 기자는 “문학적인 에로틱 소설보다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며 후한 평을 준 반면에 텔레그래프지는 “과장이 심하고 진부하다”며 혹평했다. 정신의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에스텔라 웰던은 “이 책의 성공은 여성들의 인권을 다시 구석기 시대로 되돌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과 여성학자들의 의견이 상반되는 가운데 일반인의 이 책에 대한 호응도는 한결같이 높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도서관에서는 성적인 내용을 문제 삼아 이 책을 철수시켰다가 후에 독자들의 성원에 못 이겨 재배치하는 촌극을 만들기도 했다. 진부하다면 진부할 단순한 로맨스, 혹은 영국 언론에서 농담 삼아 부르듯이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인 이 소설이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영국 출판계를 잠식한 비결은 무엇일까. 가디언지는 “이 책의 성공 비결은 중년 부인들이 가진 성에 대한 판타지를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대중적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이 책이 ‘에로틱 소설’의 붐을 가져다줄지 혹은 이번 한 번의 반짝 인기로 사라질지 영국 언론은 주목하고 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 최근 서울에 대한 에세이를 펴낸 남녀가 4일 오후 종로구 통의동의 갤러리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페이퍼스토리)를 쓴 건축가 오영욱 씨(36)와 ‘디테일, 서울’(네시간)의 작가 김지현 씨(37). ‘오기사’란 필명으로 유명한 오 씨는 독특한 캐릭터의 그림과 사진, 감성적인 문장으로 서울의 건축을 이야기했다. 14년차 방송작가인 김 씨는 30대 여성의 눈으로 서울의 세밀한 일상을 기록했다. 서울의 몰개성, 몰역사성을 비판하는 책이 많지만 두 책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서울의 일상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 ▽오=4년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살다 2007년 서울로 돌아왔어요. 귀국하면서 다짐한 게 하나 있었는데 앞으로는 서울에서 여행하듯 살아보기로 한 것이었죠.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먼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사진으로 찍어보라고 하잖아요. 일상 자체를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신선한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김=제 또래인 1990년대 학번들은 봇물 터지듯이 해외로 나갔던 세대예요. 그런데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으로 떠난 친구들이 한다는 게 펍이나 카페를 찾고, 박물관 가는 거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거 다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서울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도시가 일만 하는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못 느껴요. 뉴욕이라는 도시를 즐길 줄 아는 우디 앨런 할아버지는 섹시하죠. 오 씨는 스페인에서 찾아온 여자친구를 종로 뒷골목의 돼지껍데기집,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지하의 냉면집, 백화점 옥상의 팥빙수집에 데려간 이야기를 책에 적었다. ▽오=서울에 오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도시의 모습은 날것 그대로의 일상입니다. 창덕궁이나 한옥마을이 줄 수 없는, 서울에 대한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새빨간 네온으로 치장한 교회의 십자가, 차에 붙여놓은 파란 스펀지, 산책하는 아줌마들이 쓰고 있는 다스베이더 마스크, 시내버스에서 흐르는 라디오 소리, 자정 무렵 택시들의 승차거부…. 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상처와 추억이 공존하는 시간의 자취에 있지 않을까요. ▽김=외국인 친구들이 서울에 와서 재미있어 했던 것 중 하나가 편의점 앞에 놓인 파란 파라솔이었어요. 내 생각에는 그들이 근사한 카페나 한식집에 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걸 재밌어 하더군요. 서울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반경 5km 이내의 맛집 지도’를 그리는 겁니다. 내가 살면서 발견한 거니까 내 삶의 이야기가 담기는 거죠. 그런 제 삶에 친구가 동참하게 될 때 기쁨을 느낍니다. 김 씨의 책에는 광진구 아차산 정상에서 ‘비바크’(야영 장비 없이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한 뒤 도심 위로 떠오르는 일출 감상, 오전 8시의 신도림역에서 느끼는 출근길의 거대한 에너지, 퇴근 무렵 강변북로에서 바라보는 한강, 낮술 천국인 서울의 명소 등등 세부적인 일상의 즐거움이 담겨 있다. 그의 동선을 따라 순례하는 누리꾼도 나타났다. ▽오=서울의 속성은 ‘뒤섞임, 혼재’입니다. 외국 도시는 역사지구와 신시가지가 따로 있지만 서울은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불끈불끈 욕망들이 막 피어오르다 뒤늦게 옛 건축물의 가치를 깨달아 보호하려는, 과거와 현재가 마구 섞여 있는 도시지요. 요즘은 그것 또한 서울이란 생각을 해요. 가령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의 아이러니한 근대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설치작품’입니다.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법주사의 팔상전, 화엄사의 각황전, 금산사의 미륵전 등 각지의 고건축을 복제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죠. 그런데 경복궁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곳이 경회루나 근정전이 아니라 이 민속박물관이에요. 의도했든 안했든 민속박물관은 현재 한국의 전통 건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김=대만의 온천마을에 놀러 갔을 때 만난 여종업원이 케이팝의 고향인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더군요. 그때 ‘내가 떠나온 고향은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떠나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 제가 사는 서울을 더 즐기려 노력하려고 합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김지민 인턴기자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장수(長壽)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추구해온 꿈이었다. 최근 100년 동안 이 꿈은 전에 없는 정도로 실현됐다. 이 기간에 미국의 경우 남성 평균 기대수명은 47.9년에서 74.9년으로 늘어났다. 2050년에는 100세 이상 인구가 6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DC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그러나 장수 사회가 인류에게 축복만은 아니다. 이 두 책은 준비 없이 장수 시대를 맞게 된 현대사회의 그늘을 조명한다. ‘세대충돌’의 저자는 미국의 재정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첫 번째 이유로 ‘국민의 장수’를 꼽았다. 장수의 꿈을 실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미국인은 이 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식 부채는 약 11조 달러. 그러나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복지 프로그램을 위해 지출해야 할 금액과 미국 정부가 거둬들일 세금 수입의 차이를 나타내는 ‘재정격차(fiscal gap)’는 211조 달러에 이른다. 저자는 이를 근거로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파산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가장 ‘파멸적인 성공’은 은퇴를 ‘보수가 높은 장기적 직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현재 은퇴자 1인당 사회보장연금과 건강보험으로 매년 3만 달러 이상이 든다. 미국 1인당 국민소득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돈이다. 저자는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은 폰지 사기꾼(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범)과 같다”며 “현 세대의 빚을 미래 세대에게 지우는 ‘행운의 편지’ 돌리기가 끝나면 붕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80대 이상의 평균 소비는 164%나 늘어난 데 비해 20대의 평균 소비는 38%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노년층의 주택담보대출은 상환할 수 없을 때 집을 포기하면 사라지지만 젊은층의 학자금대출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경제위기와 취업난까지 겹쳐 젊은층의 빈곤을 가속화하고 있다.‘무연사회(無緣社會)’는 고령화 시대에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혼자 죽는 사람이 늘고 있는 일본 사회의 그늘을 보여준다. 2008년 11월 5일 오후 3시 15분경 일본 도쿄 도 오타 구 히가시로쿠고의 다가구주택 2층 거실에서 한 남자가 양반다리를 하고 앞으로 쓰러져 넘어진 채 부패한 상태로 발견됐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는 TV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심층취재를 통해 이처럼 연고자가 없어 지방자치단체가 공적비용으로 화장하거나 매장하는 사람의 수가 3만2000여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취재팀은 사망 현장에 남겨진 얼마 되지 않은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좇는 형사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되짚는 취재를 해나갔다. 충격적인 것은 가족이나 친족이 있는데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미 살아 있을 때부터 수십 년간 가족이나 친척과 떨어져 ‘무연’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무연사의 현장에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겨났다. ‘특수청소업’이다. 유족을 대신해 유품을 정리하는 전문업자다. 전국적으로 30개사가 성업 중이다. 생전에 가족 대신 사후정리를 해주는 자원봉사단체에는 고령자뿐만 아니라 50대 신청자도 몰려든다고 한다. 무연고 묘지가 될 우려 때문에 모르는 사람 수백 명과 함께 묻히는 ‘공동묘’를 예약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무연사가 늘고 있는 것은 ‘독신화’ ‘미혼’ ‘저출산’ 등으로 인한 가족 형태의 변화가 큰 원인이다. 50세 시점에서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평생미혼율’이 남자의 경우 2005년 16%였는데, 2030년에는 거의 30%로 3명 중 1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젊은 미혼자들까지 ‘나도 무연사할 수 있다’며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1인 가구는 직장을 다닐 때는 괜찮지만 구조조정, 해고, 정년퇴직, 건강악화로 직장을 잃고 나면 순식간에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책은 경제위기 속에서 장수 사회의 우울한 면만 다룬 측면이 없지 않다.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는 나라도 있다. ‘세대충돌’의 저자는 미국의 ‘세대 간 제로섬 게임’이 “남의 자녀는 내 자녀로 보지 않는 다인종 사회의 그늘”이라며 세대 간의 ‘경제적 이타주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한국 사회도 고령화 저출산이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미국의 ‘세대충돌’과 일본의 ‘무연사회’의 교훈을 깊이 되새길 때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독립을 위해 먼저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안창호 선생의 실력양성론은 인촌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생산하고 건설하고 창조하고 확장하는 삶을 살았던 인촌은 근대화의 진정한 초석을 깔았던 인물이지요.” 백완기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76)가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의 실천적 삶의 철학을 조명한 ‘인촌 김성수의 삶-인간자본의 표상’(나남)을 펴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교육가 언론인 기업가 정치인 등 다양한 역할을 했던 인촌의 사상과 행적을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인촌은 누구보다 힘의 논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가장 급한 것은 사람을 키우고, 기술을 배우고, 산업을 일으켜 물리적 힘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이 때문에 일본 유학시절부터 자유주의와 민권사상, 근대화를 배우고 교육과 산업을 일으켜 구국의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백 교수는 “인촌은 3·1운동에 가담하면서 직접적인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했다”며 “하지만 일회적인 충돌보다는 지속적으로 힘을 기르는 독립운동에 역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인촌의 삶을 ‘공존적 상생’이란 키워드로 분석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인촌만큼 재산이 있던 사람은 많았지만 인촌처럼 자신의 재산을 독립을 위해 활용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촌이 전국을 돌면서 주주를 모집하고,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을 설득하고, 지주 출신인데도 농지개혁에 앞장선 것은 공존과 상생의 자본주의를 앞서 실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백 교수는 인촌의 주변에 수많은 인재가 몰려들었음을 강조하며 “인촌의 다양한 물적 사업도 연구해야 하지만 인적자본에 대한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촌이 수많은 인재를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따라가는 리더십’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차이를 분별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김구가 이끄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지지했지만 남북 협상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했고, 인간적으로 가까웠던 여운형이 좌파의 길을 걸을 때나 초대 대통령으로 지지했던 이승만이 집권 후 독재의 길을 갈 땐 맞서 투쟁했습니다. 인촌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와 싸웠고, 광복 후에는 공산주의와 싸웠고, 건국 후에는 독재와 싸웠습니다.”군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저자는 그의 말기 췌장암 치료에 참여한 주치의 중 하나였다. 그는 “게임의 막판에, 뒤늦게 발견한 진행된 암 치료를 위해서 의사를 찾아온다면 게임은 곧 끝나고 만다. 나는 진행된 암은 치료할 수 없는 종양학자다”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20년간 암 전문의와 연구자로 이름을 날려 온 저자이지만 이 책은 암 치료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현대 서구의학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패러다임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2009년 덴버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우리는 지난 50년간 암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우리는 실수를 해왔다”고 발언해 파란을 일으켰다. 1950년부터 2007년까지 심장병, 뇌중풍(뇌졸중), 폐렴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60∼70%까지 줄어들었지만, 의료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에 의한 사망률은 8%밖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저자는 그 이유를 20세기 서구의학이 맹신해온 ‘질병 감염설’에서 찾았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침입한 감염원(세균, 바이러스)에서 찾을 뿐, 감염이 일어난 장소(인체)는 생각하지 않는 자세다. 암 역시 침입자처럼 다뤄져 잘라내거나 독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치료돼 왔다. 그러나 ‘암은 감염성 질환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암은 우리 몸의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던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돌연변이 세포인 종양이 자기증식하는 것이지 외부의 침입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암이 현대 산업사회의 공해와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환경독성물질과 관계가 있다는 말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원전 3000년∼기원전 1500년에 기록된 7개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암 증상이 기록돼 있듯 암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만병의 황제’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암과 같은 병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암을 결코 치료한 적도 없다. 몸과 병의 관계를 새로운 복잡계로 바라봐야 한다. 종양 자체도 간, 심장, 폐처럼 우리 시스템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몸을 복잡계로 모델화하면, 곧 우리 몸의 기본 요소들을 모두 이해할 필요 없이 조절한다면, 언젠가는 ‘마법의 탄환’을 실제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암과 싸워 이기기보다는 암을 예방하고 조기 진단함으로써 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유전자학과 단백질체학 기술을 활용한 개인형 맞춤치료다. 그는 최첨단 컴퓨터 기술로 단백질 세포의 미세한 신호를 분석해 일기예보처럼 개인의 몸 상태를 진단해내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는 이를 위해 ‘어플라이드 프로테오믹스’와 ‘내비제닉스’라는 의료기술 회사를 설립했고, 자신의 실제 유전자(DNA) 프로필을 책 속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합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통해 인간이 질병 없이 장수하다가 스위치를 내리듯 죽음을 맞는 ‘질병의 종말’의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본다. 이 책은 숱한 의료계의 논란 속에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10주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새롭지 않게 읽힌다. ‘몸과 병을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동양의학에선 질병을 없애는 데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질병이 생겨난 몸을 제대로 살펴 양생(養生)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몸이다”(신토불이) “개인의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해야 한다”(사상의학)는 말도 분명 우리는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5세’가 초연됐던 커튼 극장의 유적지가 영국 런던에서 발견됐다. 런던 고고학박물관은 템스 강 동쪽의 번화가인 쇼디치 지역의 한 재개발 공사장에서 커튼 극장의 객석 토대 부분과 외부 벽 등을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커튼 극장은 1622년 청교도들이 폐쇄한 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템스 강 주변에 글로브 극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1597년부터 2년간 커튼 극장에서 주요 작품을 상연했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커튼 극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셰익스피어가 로즈 극장과 커튼 극장 사이의 세력 다툼을 몬태규가와 캐퓰렛가의 집안싸움으로 바꿔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또 로즈 극장이 공연 정지를 당하자 라이벌인 커튼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초연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셰익스피어는 ‘헨리5세’의 프롤로그에서 이 극장의 무대를 묘사했다. “이 작은 투계장 같은 공간에 프랑스의 광활한 들판을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아니면 아쟁쿠르(프랑스 북부의 작은 마을)의 공기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수많은 투구를 이 극장 안에 다 집어넣을 수 있을까.” 커튼 극장 터는 지난해 10월부터 재개발되고 있다. 설계회사 측은 “새로운 빌딩에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진실일까. 현대의 물리학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데까지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엄청난 인식의 발전을 가져왔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준 것은 현미경과 망원경이다. 네덜란드의 과학자 판 레이우엔훅(1632∼1723)은 자신이 직접 렌즈를 깎아 만든 현미경으로 세계를 들여다봤다. 이 책은 그 관찰기록을 이렇게 전했다. “벌레, 우물물, 입 안에서 긁어낸 표피, 한 방울의 피….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 그는 그 안에서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고 사로잡혔다. 그는 최초로 박테리아를 발견했고 이스트균을 보았다. 그는 핏속에서 혈구를 발견했고 움직이는 정자를 처음으로 보았다. 물방울 하나 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가득 차 있는지. 그것은 경이와 감동의 세계였다. 우리가 보고 있던 것은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미경과 천체망원경이 발달해도 소립자의 세계나 우주 바깥에는 아직도 볼 수 없는 것이 많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블랙홀은 강한 중력 때문에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눈으로 볼 수 없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물리학 이론뿐이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던 저자(건국대 물리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오직 현대물리학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현대물리학에서 양성자를 비롯한 하드론(강한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소립자)을 이루는 기본 입자로서의 ‘쿼크’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 대칭성을 통해 사유한 끝에 나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쿼크는 자연에 존재하는 실재라기보다 단순한 가설로 여겨졌다. “중성미자가 상호작용이 너무 약해서 볼 수 없었던 것과 반대로 쿼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상호작용이 너무 강해서이다. 너무 강한 상호작용이 쿼크 주변에 장막을 둘러쳐서 곧 하드론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쿼크는, 쿼크만을 따로 떼어내서는 볼 수 없고 항상 하드론 상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자, 이런 대상을 과연 우리는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가 결국 던지고 싶은 질문은 ‘본다’는 것의 의미이다. 현대물리학의 세계가 일반인에게는 보이는 실재가 아니라 관념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 같다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생각하고,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과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며 “결국 ‘본다’는 것은 자연과학의 시작이고 끝일 뿐 아니라 자연과학 그 자체”라고 말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마을을 지키는 신목(神木)은 농경문화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다. 마을 입구에 심은 당산나무는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고, 재앙을 막아주며, 동네의 쉼터이자 사랑방의 구실을 해왔다. 이 책은 청학동, 운주사, 장승 등 사라지는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저자가 30년간 찍어온 당산나무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을 과거의 수많은 변화를 묵묵히 보아온 산증인. 카메라에 원경으로 찍힌 당산나무는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어떤 나무는 도로 옆으로 위태롭게 밀려 나와 마을 밖으로 내쫓길 운명에 처하기도 하고, 보호수로 지정받아 철창 속에 갇혀 버리기도 한다. 또 다른 당산나무는 밭 한가운데 고립된 채 쓸모없는 고목이 돼 버렸다.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을공동체의 쇠락을 상징한다. 그러나 마을은 변했어도 나무는 그대로다. 초라한 마을 주변 모습에 비하면 나무의 웅장한 자태는 여전하다.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엿본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은 영국 문화계가 즐겨 쓰는 소재다. 수많은 책과 영화들이 그들의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했고, 할리우드도 ‘튜더스’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이 있다. 670쪽이 넘는 이 책은 맨부커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았던 책으로 꼽힌다. 그가 3년간의 침묵을 깨고 5월에 내놓은 신작 ‘시체를 대령하라(Bring Up the Bodies)’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예견된 바였다. 이 책은 ‘울프 홀’의 후속작이자 그가 예정한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편에서 마침내 헨리 8세의 사랑을 차지하고 왕비가 된 앤 볼레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헨리 8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이 주로 헨리 8세 혹은 앤 볼레인인 데 비해 맨틀의 3부작은 제1대 에식스 백작인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제1대 백작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크롬웰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장관의 자리에 오르고, 그에 따라 귀족의 칭호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울프 홀’에서 크롬웰은 앤 볼레인을 도와 헨리 8세가 첫 부인과 이혼하고 바티칸과 절연한 후 영국 성공회를 만들도록 하는 데 큰 공헌을 한다. 대장장이의 아들에 불과한 크롬웰이 어떻게 상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그 이후 앤 볼레인과 결탁해 그 자신은 신분 상승을, 앤 볼레인은 왕비의 꿈을 이루게 만드는지가 ‘울프 홀’의 핵심이다. 후속작은 원하던 바를 얻은 두 사람의 동맹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이 영리한 두 남녀의 두뇌 싸움의 승자가 과연 누구인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결국은 조금 더 ‘영리하게 처신한’ 크롬웰이 승리하고 앤 볼레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2000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던 마거릿 애투드는 “맨틀의 문학적 창조성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의 글솜씨는 여전히 능숙하고 노련하다”고 호평했다. 사실 크롬웰의 모습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아슬아슬한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의 균형,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모습, 한마디 잘못한 말로 목이 달아나는 상황도 그렇다. 2008년의 경제 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 한파’가 다시 찾아왔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영국 정부에 대해 영국 국민들은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크롬웰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과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진 정치가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고로 영국 내전 당시 공화정을 수립하는 올리버 크롬웰은 이 토머스 크롬웰의 누이인 캐서린 크롬웰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장. 처음으로 시체를 해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꺼림칙함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차근차근 피부를 제거해감에 따라 망설임은 사라진다. 피부 밑으로 근육, 신경, 힘줄들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피부가 완전히 사라진 뒤 학생들은 비로소 복잡하고 신비한 인체 내부를 열정적으로 탐색하게 된다. 피부는 과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얇은 막에 불과한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3억 년에 걸친 인류 피부 진화의 역사를 연구해 왔다. 이 책에서 그는 피부가 가진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의미를 폭넓게 고찰한다. 한 사람이 가진 피부의 평균 넓이는 약 2m²(약 0.6평), 무게는 4kg이다. 우리 신체에서 가장 크고 뚜렷하게 보이는 기관이기도 하다. 몸을 보호하고, 감각을 느끼고, 정보를 수집하고, 나를 알리는 광고판이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역할을 하는 핵심 기관이 피부다. 인간의 피부가 여타 포유류와 다른 점으로 저자는 세 가지를 꼽는다. ①털이 없고 ②지역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을 갖고 있으며 ③피부에 인위적으로 색칠하고, 구멍을 뚫고, 흉터를 남겨 장식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람 피부에 털이 없는 이유는 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뇌 용량이 커서 몸 안팎에서 발생하는 많은 열을 효과적으로 식혀야 하는 인간은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리고 빨리 증발시키기 위해 털을 없애게 됐다는 설명이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개는 땀을 흘리기보다는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며 더위를 식힌다. 또 인간은 다른 포유류처럼 털을 곤두세울 수 없기 때문에 얼굴 피부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설명하는 부분은 ‘피부색’이다. 피부색은 인류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시켜온 정교한 생존전략일 뿐, 인종주의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피부색은 자외선의 강도와 가장 큰 관련이 있다. 자외선은 인체 생존에 꼭 필요한 엽산과 비타민D 생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햇빛을 차단하는 피부 속 멜라닌 색소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피부색이 변화해온 것이다. 그런데 백인들이 검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감정도 없고, 수치심도 없는 열등한 존재(피부색이 옅은 사람들은 부끄러울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게 눈에 잘 뜨인다)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피부색이 인종이라는 파괴적 개념과 연계됨으로써 인류의 분열에 기여한 것은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한다.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성(性) 기관이기도 하다. 섹스에서 얻는 기쁨의 대부분 또는 상당 부분은 피부 접촉에서 얻어진다. 이렇듯 피부는 중요한데도 사람들은 그 존재 의미를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 ‘낯짝 두껍다’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한다’ ‘닭살 커플’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면서도 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마트(Smart)’가 대세다. 스티브 잡스가 휴대전화에 인터넷통신, 컴퓨터 기능을 결합해 내놓은 ‘스마트폰’은 우리 삶의 혁명을 가져왔다. 가전제품도 스마트 TV, 스마트 에어컨으로 진화하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조합한 ‘스마트 외교’를 주창한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수사의 과학화와 정확 신속성을 내세운 ‘스마트 수사’를 표방했다. 전쟁터에서마저 ‘스마트 폭탄’이 사용된다. ‘스마트’라는 말은 원래 ‘맵시 있다’ ‘똑똑하다’ ‘말쑥하다’ 등의 뜻의 형용사였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융합된’ ‘창의적인, 혁신적인’이란 뜻이 더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덜 스마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깜빡 집에 두고 나오면 자기 집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내비게이션 없이는 여행을 떠날 엄두도 못 낸다. 탁월한 생각, 독특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스마트 싱킹’은 지능지수(IQ)가 높은 천재만의 전유물일까. 미국 텍사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지난 50년간의 인지과학 발달 덕택에 이제 우리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며 “누구나 스마트해지는 데 필요한 능력의 90% 이상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는 ‘3의 법칙’을 내세운다. 인간의 뇌는 아무리 많은 정보가 주어져도 한순간에 세 가지 정도만 인식하고 기억한다. 드넓은 야구경기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관중의 기억에 남는 것은 투수와 타자, 흰 공 정도밖에 없다. 영화를 한 편 보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녀와도 시간이 흐르면 대략 세 가지 정도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람은 ‘청각 루프’라고 불리는 종류의 기억에서 약 3초에 이르는 정보를 기억할 수 있다. 지식이나 경험을 기억할 때는 3가지 정도로 요약해서 저장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한 회의나 발표에서 남을 설득할 때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3가지 요점으로 주지시켜야 한다. 장황한 설명은 효과가 없다.” 저자는 요즘 스마트해 보이는 사람들이 흔히 몰두하는 멀티태스킹을 그만두고, 새로운 고품질의 지식을 습득하는 데 힘 쓸 것을 주문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해”라고 장담하지만, 우리 뇌의 능력은 그렇지 않다. 창조적 생각은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지식, 경험과의 연관성을 비교하고 유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이 욕탕에 더 깊이 들어가 앉을수록 더 많은 물이 흘러넘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이 발견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욕탕에서 벌거벗은 채 ‘유레카!’라고 소리치며 길거리로 뛰어나갔다고 한다. 왜 아르키메데스는 이 관찰에 크게 흥분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가 욕탕의 상황과 자신이 해결하려고 애쓰던 문제를 비교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처럼 새로운 경험과 과거의 지식을 결합해 창조적 생각을 해낸 수많은 사례를 소개한다. 사이클론 청소기를 발명한 제임스 다이슨, 상어 피부를 모방해 패스트스킨 수영복을 개발한 피오나 페어허스트, 포스트잇을 발명한 3M 등은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교착 상태를 스마트 싱킹으로 극복한 사례다. 이 책은 기업뿐 아니라 시험을 앞둔 수험생, 회의나 발표를 앞둔 회사원에게도 유용해 보인다. 특히 정보를 기억에 저장하는 법뿐만 아니라 정보를 적절하게 꺼내 쓰기 위해 연관된 맥락을 이용하는 ‘점화효과’의 설명도 이로울 듯하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라, 그 대신 먼저 더 스마트해지도록 노력하라”고 책은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스마트 싱킹’은 깊이 있는 인생의 철학적 사고라기보다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한층 실용적인 기술에 가깝다. 일상의 세세한 일은 무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습관을 통해 ‘생각의 자동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문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우리는 무심코 반복되는 일상의 문제를 뒤집어 생각해봄으로써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전 가운데 하나가 ‘손자병법’이다. 한국에 군인이 많아서일까. 아니다. 사실 손자병법의 애독자는 경영자, 경쟁에서의 승리와 자기개발에 목말라 있는 직장인들이다. 경영현장, 삶의 현장 자체가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우리 삶이 너무 각박하고 고단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 표현은 잘못됐다. 경영이 전쟁이 아니고, 전쟁이 경영이다. 그래서 군사학과 마케팅은 개념과 용어를 공유하고, 전쟁사는 경영의 지혜, 자기개발, 인생설계와 성찰에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그러나 막상 전쟁사를 통해 지식의 포만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전투 현장의 리포트는 생생하지만 너무 낯설거나 방만하다. 이야기를 압축하고 정제된 교훈을 뽑아내면 너무 뻔하거나 듣기 좋은 이야기로 정리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다. “병사들이 하나로 단합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어떻게 해야 하나로 단합할 수 있을까. 상대편은 왜 단합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정말로 하나로 단합하면 창과 칼로 무장한 군대가 탱크부대를 물리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역사 속의 전쟁’이라는 주제를 천착해 온 저자가 지난 3년간 경영전문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연재하고 삼성경제연구소 CEO 포럼(SERI CEO)에서 강연했던 글 가운데 25편을 추려 새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은 뻔한 결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교훈을 미리 설정해 놓고 전투의 교훈을 거기에다 끌어 맞추는 얄팍한 수법도 없다. 세상을 바꾼 동서양의 중요한 전투들을 전투 그 자체로 분석하고 교훈을 찾는다. 스팍테리아 전투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스파르타군이 아테네군에 패했다. 보통은 경보병을 이용해 둔한 중장보병의 약점을 공략한 것이 승리의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의견은 다르다. 그리스인들은 중장보병의 약점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중장보병 중심의 전술체제가 자신들의 신분적 특권과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작은 승리를 위해 신분적 특권을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이 그리스인의 진심이었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이 좁은 생각 때문에 파멸했다. 2000년 전의 이 교훈을 보면 현재의 그리스 사태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리스인들이 아직까지 스팍테리아 전투의 진정한 교훈을 배우지 못한 때문일까. 저자는 정통 역사학자이면서 전쟁과 군사학에 대해 직업군인 못지않은 해박하고 날카로운 식견을 지녔다. 그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참신하고 통찰력 넘치는 역사의 일화와 교훈을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경영과 자기개발, 또는 인생의 지침서로서도 유익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인 ‘인문학적 통찰력’이라는 관점에서도 흥미를 끈다.여현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유럽을 여행하다가 고성(古城)을 방문하면 왕가나 귀족들의 도서관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나 영화 ‘해리포터’에서 봤음 직한 중세의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 있었다. 현대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모두 울긋불긋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데, 중세 도서관의 책들은 어떻게 수만 권이 한 곳에서 나온 것처럼 비슷한 색깔의 가죽장정과 금박문양 표지에 싸여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옛 유럽 왕가나 귀족들은 전속 제본가를 두고 평생 책을 제본하게 했지요. 중세에는 책을 낱장으로 인쇄해 표지도 없이 최소한의 실로 묶어 팔았어요. 그래서 똑같은 내용의 책도 소장자나 제본가에 따라 독특한 문양을 가진 표지를 갖게 됐지요.” 》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부근에 있는 예술제본 전문공방 ‘렉토베르쏘’의 대표 조효은 씨(33). 전자책(e북)이 대세인 21세기에 그는 종이책을 직접 손으로 꿰매고, 가죽을 다듬고, 문양을 입혀 책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작업에 푹 빠져 있는 장인이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김아중이 맡은 여주인공 직업이 예술제본가였다. ‘렉토베르쏘(Recto Verso)’란 책의 앞장과 뒷장을 뜻하는 라틴어. 1999년 파리예술제본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백순덕 씨가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예술제본 전문공방이다. 2008년 백 씨가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엔 수제자였던 조 씨가 공방을 운영하며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곳에서 전문과정까지 마친 예술제본가는 국내에 15명 정도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2001년 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던 중에 TV를 통해 예술제본을 알게 됐죠. 처음엔 취미로 배웠는데, 석 달 후에 ‘평생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맘이 들더라고요. 학교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10년 넘도록 공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술제본은 건축과 비견된다. 책이라는 구조물을 낱장으로 일일이 떼어내는 해체작업을 거쳐 보수와 복원을 하고, 다시 조립하는 60개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공방에는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프레스, 조합기, 재단기, 책을 매달아 실로 꿰매는 수틀, 망치, 톱과 같은 크고 작은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종이와 노끈, 실, 풀, 헤드밴드용 비단 등 재료만도 50가지가 넘는다. “3년 전 한 노신사가 독일에서 구한 괴테의 ‘파우스트’ 초판본을 제본해 달라며 왔어요. 워낙 귀한 책이라 작업하면서 꽤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서양의 제본문화를 알고 계셨어요. 굉장히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주문하셨는데, 작업자로서 귀찮다기보다 제 일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책 한 권에 80만∼100만 원, 기간도 최소 두 달에서 1년씩 걸리는 예술제본을 맡기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문학과지성사는 ‘깊이읽기’ 시리즈의 동인 회갑연 때마다 저자 선물용으로 제본을 의뢰해 왔다. 아내의 박사학위 논문, 20년 동안 쓴 자녀의 육아일기를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조 씨는 “제본가란 인류의 지적자산인 책에 새로운 생명력을 주어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전달자”라며 “책을 사랑하는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감각,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의뢰인이 가져오는 새로운 책을 만날 때 가장 설렙니다. 제본을 하다 보면 책 속에서 메모지도 발견하게 되고, 네잎 클로버도 만나게 됩니다. 책이란 단지 지식만 얻고자 읽는 게 아닙니다. 그것뿐이라면 전자책으로도 충분하겠죠. 책의 무게감, 감촉,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얻는 감성적 위로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종이 질부터 일러스트, 편집까지 정성이 깃든 책을 저는 사랑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난이 환경의 최대 적이고, 부강한 나라가 환경을 지킵니다.”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이 ‘부국환경이 우리의 미래다’(사닥다리)를 펴냈다. 많은 환경운동가가 반(反)문명,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상황에서 “부국(富國)이 되는 것이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사뭇 논쟁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부유한 생활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며,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주장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생태근본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연계의 암적인 존재로,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이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입니다.” 박 원장은 “환경비관론자들은 환경에 대한 충격적 경고를 위해 ‘슬픔을 파는 장사꾼’의 역할을 해왔다”며 “그러나 레이철 카슨이 예언한 ‘침묵의 봄’도 오지 않았고, 선진 산업국가에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숲의 면적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 산업사회에서 나타난 환경과 경제의 상생현상을 ‘유턴이론’으로 설명한다. 초기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오염이 가중돼 환경의 질이 저하되는 ‘잿빛성장’을 하지만 경제성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기술이 향상돼 환경이 다시 회복되는 ‘녹색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었던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도쿄 등 대도시의 대기는 훨씬 맑아졌다. 미국의 국립야생생물보호구역은 1964년 3만600km²에서 1994년에는 42만 km²로 급속히 늘어났다. 반면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하에 있던 동독과 체코, 폴란드는 유럽 최악의 환경오염 지역이 됐다. 러시아와 중국도 마찬가지며 북한도 식량과 에너지난으로 인한 산림훼손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2005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환경지속성지수에서 북한은 146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박 원장은 “서방세계의 환경을 다시 살린 일등공신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며 “사회주의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는 시민들이 투표권을 갖고 친환경 정책을 펴는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부국이 된다고 무조건 환경이 좋아진다는 단순한 논리는 아니다”라며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정부의 바른 환경 및 경제성장 정책, 국민의 의식과 생활방식에 대한 변화가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책의 후반부에 에너지, 음식, 자원, 환경교육, 물관리 등에 대한 실천강령을 자세히 소개했다. “천성산 사패산 터널 등 그동안 국내 환경단체들이 국책사업마다 재앙이 올 듯이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환경운동에 대한 피로감을 느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까 두려워요. 과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환경운동으로 거듭나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시민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작은 화분 하나여도 충분합니다. 먼저 식물들에게 가벼운 인사말을 건네 보세요. 무언가와 교감한다는 것, 특히나 고요한 식물과의 교감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줍니다. 바로 ‘정원이 있는 삶’입니다!” 저자는 정원사다. 그는 정원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원 사용설명서’다. 이 책을 출판한 ‘나무도시’는 ‘고정희의 중세정원 이야기’ ‘윤상준의 영국정원 이야기’ 등 유럽정원과 공공조경 같은 정원 관련 전문서를 출판해 왔다. 정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정원을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원은 거실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풍경화가 아니라 완성이 없는, 늘 성장하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존재이다. 또한 정원은 치유의 공간이다. 우리가 가꾸기만 하는 번거롭고 귀찮은 장소가 아니라, 어느 순간 도리어 우리가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정원은 교감의 마당이기도 하다. 살아 움직이는 정원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소통하고, 가족과 이웃과 풀벌레와 새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주선한다. 텃밭의 고랑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함께 나누는 일상의 대화는 거실의 TV 앞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속 깊은 이야기들이다. “저는 일을 마치고 목장갑을 벗고 의자에 가만히 몸을 기대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빨랫줄에 가지런히 널려 있는 목장갑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답니다. 정원 사용을 꿈꾸고 계신 분이라면 목장갑을 넉넉히 준비해 두시면 좋겠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4·11총선에서 ‘막말 파문’으로 낙선한 민주당 김용민 후보의 아버지 김태복 목사(71·서울 성동구 홍익교회 원로목사)가 자신의 자녀교육법을 밝힌 책 ‘나꼼수·슈스케를 낳은 달란트 교육’(미래를 소유한 사람들·사진)을 14일 펴냈다. 김 후보는 김 목사의 장남이며 차남은 Mnet ‘슈퍼스타K’를 연출한 김용범 PD다.책에서 김 목사는 “이 책은 원래 올해 3월 초순에 발간할 예정이었으나, 큰아들 용민이가 갑자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바람에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후 김 후보가 8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막말 파문’이 터지는 바람에 김 목사와 출판사 측은 출간 여부를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목사는 말미의 ‘부록’에 큰아들의 선거에 대한 소회를 담아 책을 펴냈다.‘막말’ 내용에 대해 김 목사는 “발언 내용은 19금(禁) 성인방송에서 한 것이기에 너무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음담패설이었다”면서도 “8년 전 어느 인터넷 성인방송에서 했던 발언이다. 당시 용민이는 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 계통의 방송국에서 밀려나 인터넷 방송국에서 박봉을 받으며 근무하던 초라한 시기였다 (…) 구차한 변명이겠지만, 먹고살기 위해 치기 어린 마음에서 그런 못된 말을 한 것”이라고 아들을 옹호했다.그는 또 “새누리당이 조중동과 노조가 빠진 주요 방송사를 앞세워 총공세를 펼치며 잔인하게 아들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고 언론과 정치권에 화살을 돌렸다. 그는 “굳이 따지자면 그런 성인방송을 마구 퍼다가 일반 언론이나 방송에 공개하는 것 자체가 위법행위”라며 “용민이를 공격한 미디어들이 논문표절자 후보나 강간미수자 후보는 거의 기사화하지 않은 채 은닉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매스컴의 작태였다”고 언론을 비난했다.그는 “(막말 사건이 불거진 뒤) 용민이의 선거사무실은 물론이고 우리 집의 e메일과 전화기는 불이 날 지경이 되었다. ‘목사가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켰는가?’ (…) 등의 일방적인 공격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예를 갖춰 응대했지만, 결국 전화기 줄을 뽑아야 했다”고 회상하며 “용민이가 나꼼수로 활동하는 동안 목사 가운을 걸치거나 찬송가를 패러디한 것은 아무리 자기 딴에는 소신이 있어 행한 것이라고 하지만 목회를 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주 못마땅했다. 수차례 만류한 바 있다”고 전했다.한편 막말 파문 전 집필한 본문에서 김 목사는 ‘음란문화 만연과 청소년 문제’의 심각함을 지적하면서 “종교계는 방관하지만 말고 건전한 성문화를 바로 세우는 데 전력해야 한다. 그리고 방송이나 언론들, 특히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도 그동안의 상업적인 행태를 반성하고 과감히 방향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책의 집필 동기에 대해 김 목사는 ‘프롤로그’에 “두 아들의 활약상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많은 분들로부터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시켰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고 썼다. 그는 ‘달란트 교육’이란 “자녀에게 있는 ‘달란트’(각자의 타고난 자질)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또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날이다. (…)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지 4년이 됐는데, 근래 들어 두 아들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격상돼 나까지 유명인사가 된 느낌이다”라고 전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