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일상과 뒷골목, 여행하듯 바라보니 따스함이 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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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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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찬 에세이집 펴낸 건축가 오영욱-방송작가 김지현씨

서울 종로구 통의동 ‘류가헌’ 갤러리 앞 골목에 선 건축가 오영욱 씨(왼쪽)와 작가 김지현 씨. 두 사람은 낡은 한옥과 첨단 콘크리트 건물이 뒤섞인 서울 뒷골목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종로구 통의동 ‘류가헌’ 갤러리 앞 골목에 선 건축가 오영욱 씨(왼쪽)와 작가 김지현 씨. 두 사람은 낡은 한옥과 첨단 콘크리트 건물이 뒤섞인 서울 뒷골목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최근 서울에 대한 에세이를 펴낸 남녀가 4일 오후 종로구 통의동의 갤러리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페이퍼스토리)를 쓴 건축가 오영욱 씨(36)와 ‘디테일, 서울’(네시간)의 작가 김지현 씨(37). ‘오기사’란 필명으로 유명한 오 씨는 독특한 캐릭터의 그림과 사진, 감성적인 문장으로 서울의 건축을 이야기했다. 14년차 방송작가인 김 씨는 30대 여성의 눈으로 서울의 세밀한 일상을 기록했다. 서울의 몰개성, 몰역사성을 비판하는 책이 많지만 두 책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서울의 일상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에 실린 건축가 오영욱 씨의 삽화. 스페인에서 찾아온 여자친구를 데려간 종로 뒷골목 식당의 풍경이다. 페이퍼스토리 제공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에 실린 건축가 오영욱 씨의 삽화. 스페인에서 찾아온 여자친구를 데려간 종로 뒷골목 식당의 풍경이다. 페이퍼스토리 제공
▽오=4년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살다 2007년 서울로 돌아왔어요. 귀국하면서 다짐한 게 하나 있었는데 앞으로는 서울에서 여행하듯 살아보기로 한 것이었죠.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먼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사진으로 찍어보라고 하잖아요. 일상 자체를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신선한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김=제 또래인 1990년대 학번들은 봇물 터지듯이 해외로 나갔던 세대예요. 그런데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으로 떠난 친구들이 한다는 게 펍이나 카페를 찾고, 박물관 가는 거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거 다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서울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도시가 일만 하는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못 느껴요. 뉴욕이라는 도시를 즐길 줄 아는 우디 앨런 할아버지는 섹시하죠.

오 씨는 스페인에서 찾아온 여자친구를 종로 뒷골목의 돼지껍데기집,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지하의 냉면집, 백화점 옥상의 팥빙수집에 데려간 이야기를 책에 적었다.

▽오=서울에 오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도시의 모습은 날것 그대로의 일상입니다. 창덕궁이나 한옥마을이 줄 수 없는, 서울에 대한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새빨간 네온으로 치장한 교회의 십자가, 차에 붙여놓은 파란 스펀지, 산책하는 아줌마들이 쓰고 있는 다스베이더 마스크, 시내버스에서 흐르는 라디오 소리, 자정 무렵 택시들의 승차거부…. 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상처와 추억이 공존하는 시간의 자취에 있지 않을까요.

▽김=외국인 친구들이 서울에 와서 재미있어 했던 것 중 하나가 편의점 앞에 놓인 파란 파라솔이었어요. 내 생각에는 그들이 근사한 카페나 한식집에 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걸 재밌어 하더군요. 서울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반경 5km 이내의 맛집 지도’를 그리는 겁니다. 내가 살면서 발견한 거니까 내 삶의 이야기가 담기는 거죠. 그런 제 삶에 친구가 동참하게 될 때 기쁨을 느낍니다.

김 씨의 책에는 광진구 아차산 정상에서 ‘비바크’(야영 장비 없이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한 뒤 도심 위로 떠오르는 일출 감상, 오전 8시의 신도림역에서 느끼는 출근길의 거대한 에너지, 퇴근 무렵 강변북로에서 바라보는 한강, 낮술 천국인 서울의 명소 등등 세부적인 일상의 즐거움이 담겨 있다. 그의 동선을 따라 순례하는 누리꾼도 나타났다.

▽오=서울의 속성은 ‘뒤섞임, 혼재’입니다. 외국 도시는 역사지구와 신시가지가 따로 있지만 서울은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불끈불끈 욕망들이 막 피어오르다 뒤늦게 옛 건축물의 가치를 깨달아 보호하려는, 과거와 현재가 마구 섞여 있는 도시지요. 요즘은 그것 또한 서울이란 생각을 해요. 가령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의 아이러니한 근대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설치작품’입니다.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법주사의 팔상전, 화엄사의 각황전, 금산사의 미륵전 등 각지의 고건축을 복제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죠. 그런데 경복궁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곳이 경회루나 근정전이 아니라 이 민속박물관이에요. 의도했든 안했든 민속박물관은 현재 한국의 전통 건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김=대만의 온천마을에 놀러 갔을 때 만난 여종업원이 케이팝의 고향인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더군요. 그때 ‘내가 떠나온 고향은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떠나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 제가 사는 서울을 더 즐기려 노력하려고 합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김지민 인턴기자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 예찬 에세이집#오영욱#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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