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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함이 때로는 진정한 자비다’ ‘선한 의지를 갖되 악을 이해하고 활용하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사상을 말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활하고 무자비한 권모술수’라는 비난의 뜻으로 수백 년간 쓰여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군주론’은 인간의 본성, 조직의 성격, 리더십, 통치기술 등에 걸쳐 핵심을 꿰뚫고 있는 고전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러시아 혁명가 레닌, 이탈리아 혁명가 그람시, 쿠바의 카스트로는 모두 ‘군주론’을 탐독했다. 저자는 “30대 초반까지는 마키아벨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키아벨리는 거부감만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라고 말한다. 40대 이후 조직 내부에서 리더의 역할을 경험하고, 젊은 시절 품었던 이상과 사회생활에서 실제로 맞닥뜨린 냉엄한 현실의 간극을 실감해 봐야 마키아벨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동서고금의 사례를 통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최고경영자(CEO)론으로, 리더십 이론으로, 개인의 삶에서 되새겨 봐야 할 ‘가능성의 기술’로 재해석한다. 마키아벨리의 저작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이 된 이유는 ‘현실의 정치’를 ‘추상적 윤리’와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도덕과 윤리라는 추상적 가치에 매몰돼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리더야말로 공동체를 파멸로 이끄는 무능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현실 속에서도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반드시 좋은 리더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말했다. 저자는 “마키아벨리는 조직원에 대한 평면적 자애심이 아닌 ‘현명한 엄격함’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진정한 자비가 될 수 있다는 리더의 역설을 꿰뚫고 있다”며 “리더는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과 악’,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대칭적 요소를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두껍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비판해온 사람들 중 원전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국가 간 외교에도, 기업 조직에서도, 개인의 삶조차도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절대적 선함을 강조하는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들의 위선은 오늘도 계속된다. 저자와 함께 마키아벨리를 읽다 보면 그가 복잡다단한 가치가 혼재돼 있는 현대사회에 얼마나 큰 통찰력을 주는 인물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이라는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 동네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책이다. 집을 출발해 시장, 학교, 놀이터로 가는데 세탁소, 문방구, 병원의 간판들을 살피다 보면 그곳이 한이가 사는 서울 한강변 어느 동네가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같다. 이 책은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는 그림을 천천히 보는 것이 좋다. 창문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사람들 하나하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읽어야 재미있다. 혼자 읽기보다는, 어느 한 면을 펼쳐놓고 누군가와 이마를 맞대고 자기가 찾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깔깔깔 웃으면서 볼 수 있어 즐거운 책이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에게 독후 활동으로 한이네 동네 말고 ‘우리 동네 이야기’를 꾸며 보도록 하는 건 어떨까. 매일 다니던 길이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는 ‘어슬렁 어슬렁 동네 관찰기’(웅진주니어),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진선아이)가 있다. ○ 독후 활동-우리 동네 지도 만들기 준비물은 큰 종이, 크레파스, 색연필, 디지털카메라나 휴대전화, 프린터, 가위, 풀, 양면테이프. 작업 시간 2, 3일. 대상은 초등학교 2학년 이상.1. ‘집에서 학교까지’처럼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정하고 그 길을 꼼꼼히 살펴본다. 살피면서 가게 이름, 길 이름 등을 메모하고 카메라로 건물 하나하나를 찍어 놓는다.2. 큰 종이에 크레파스로 큰 길을 먼저, 작은 길을 사이사이 그려 넣어 전체 윤곽을 정한다(포털 사이트 지도검색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3. 그려 놓은 길 위에 첫날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건물들의 위치를 연필로 표시한다.4. 지도를 만든다.(2∼3학년은 큰 종이에 크레파스로 건물과 간판 등을 그려서 만들고, 3∼4학년은 카메라로 찍은 건물 사진을 출력해 위치에 맞게 오려 붙인다. 5∼6학년은 사진을 출력해 길 위에 입체적 형태의 건물을 붙여 입체 지도를 만든다.)5. 다 만든 지도에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거나 사진을 출력해 원하는 장소에 세워놓는다. 김혜원 어린이책교육연구가}

현대사회에는 3만 개가 넘는 직업이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변화하고, 또 새로 생긴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10대는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기다. 이때를 놓치면 20대에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고, 30대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진로와 직업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10대 학생들에게 알고 있는 직업을 써보라고 하면 대부분 50개 이상을 쓰지 못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 외에는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 알 길이 별로 없고, 자신에게 적합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지만 그 해결 방법은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진로와 직업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책만 한 것이 없다. 자신의 꿈을 사랑하고 그 꿈을 이루려고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좌절을 딛고 일어나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의 경험, 남들이 갖지 않은 자기만의 색깔로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책 속에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그들이 전해주는 정보를 알아가는 동안 자기에게 맞는 직업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알게 된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읽어볼 만한 책 몇 권이 있다. 김재헌의 ‘16살, 네 꿈이 평생을 결정한다’(팝콘북스)는 청소년기의 아들에게 쓴 아버지의 편지다. 우리 역사상 위대했던 일을 한 35명의 선택과 결정은 어떤 과정 속에서 이뤄졌고, 그들은 자신의 실패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따뜻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영남의 ‘너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민음인)는 청소년들이 가장 되고 싶고 궁금해하는 16가지 직업을 소개한다. 자신의 열정과 의지로 1%의 희망을 99%의 가능성으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불행한 일은 ‘그 무엇’을 너무 늦게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를 통해 청소년들은 자기 진로 선택에 중요한 기준들을 만나게 된다. 이와 함께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자신의 내부 깊숙이 던지면서 ‘생각하기’의 변화부터 공부 방법, 공부 대상, 관심과 취미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으로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이철수 외 지음·철수와영희)를 권한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자기 삶에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게 행복한 직업임을 이야기한다. 이 책들은 직업을 정하기 전에 가져야 할 직업 가치관을 제대로 갖도록 도와준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작가가 들려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따져보고, 자기가 가진 꿈에 적용시켜 보면 도움이 된다. 자신이 갖고 있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책을 대할 것도 권한다.오길주 경민대 독서문화콘텐츠과 교수}

12일 열린 런던 올림픽 폐막식은 현대 미술계의 악동 데이미언 허스트가 만든 거대한 유니언잭 모양의 무대에서 시작했다. 런던의 러시아워를 묘사한 장면에서 사람들의 옷은 물론 블랙캡 택시와 2층 버스도 모두 신문지로 싸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문지에는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존 밀턴, 윌리엄 워즈워스 같은 영국 대문호들의 작품이 인쇄돼 있었다. 오늘의 영국을 만들어낸 힘이 활자와 인문학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활자로 시작한 폐막식은 조지 마이클, 스파이스 걸스, 더후, 뮤즈 등 팝음악 스타들과 패션계의 거장 알렉산더 매퀸, 타악 퍼포먼스 ‘스톰프’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영국 대중문화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개막식에서 폴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를, 폐막식에서 퀸이 ‘위 윌 록 유’를 수만 명의 관객들과 함께 ‘떼 창’한 것은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개막식에서도 영국은 산업혁명, 여성참정권 운동, 국민의료서비스(NHS), 해리포터, 피터팬, 뮤지컬, 코미디까지 두루 자랑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중국은 인류 4대 발명품(나침반, 화약, 인쇄술, 종이)과 세계로 뻗는 중국의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이 베이징 올림픽과 달리 쇼비니즘(배타적 애국주의) 논란에서 벗어나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숨겨진 ‘유머’의 힘 때문이었다. ‘영국식 유머’(British Humour)는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프랑스 유머가 남의 약점이나 순진함을 조롱하는 말장난이 많다면, 영국식 유머는 자기 자신까지도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블랙유머가 많다. 이는 먼저 자기를 낮춤으로써 남의 공격을 예방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런던 올림픽은 진지하고 엄숙한 개막식에서 국가의 최고 존엄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86)을 웃음거리로 삼았다. 올해 즉위 60주년을 맞은 여왕이 제임스 본드와 함께 치마를 휘날리며 스카이다이빙을 하고(대역이었음),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미스터 빈’ 로언 앳킨슨이 무대 위에서 조는 장면에서 전 세계인들은 ‘빵’ 터졌다. 지난 한 달 동안 유튜브에서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세계의 공통언어인 유머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기름진 머리를 한 남자가 육중한 몸매로 말춤을 추는 장면을 본 외국인들은 컴퓨터 앞에서 파안대소하고, 패러디 동영상을 띄우면서 싸이의 유머에 동참했다. ‘런던스타일’이나 ‘강남스타일’도 모두 자신이 ‘가장 잘 나가는 핫(hot)한 존재’임을 강조했지만,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머로 세계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것이다. 런던 올림픽 개·폐막식을 본 탈북자들은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북한의 아리랑축전이나 88 서울 올림픽,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등은 꽉 짜인 군대 열병식 같은 분위기였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관람했던 리틀엔젤스 공연이나 SM타운의 K팝 콘서트의 ‘집단 안무’도 경이롭지만 획일적인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개·폐막식은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총감독을 맡는다고 한다. 한국의 ‘정(情)과 한(恨)’을 탁월하게 그려냈던 임 감독에게 세계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한국식 유머도 함께 기대해본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스웨덴 스톡홀름에는 프랑스 퐁피두센터를 모방한 ‘문화의 집’이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제 문화센터보다 스웨덴인들의 사회문화적 소통에 더 큰 역할을 하는 곳은 주민들이 전국 곳곳에 지은 ‘민중의 집’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민중의 집(Maison du Peuple)’ 전통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 전역에 퍼졌다. 생활과 정치가 만나는 곳이자 문맹퇴치 교육, 직업훈련, 문화공연, 생활 스포츠의 공간이기도 하다. 2008년 서울 마포에 국내 최초 ‘민중의 집’을 열었던 저자가 45일간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을 돌며 탐방한 민중의 집을 소개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역겨운 멸시의 대상, 일본 근대사의 치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총리 겸 육군대신으로 전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1884∼1948)다.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처형됐던 그의 이름은 일본인들에게 전후 50년간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도조를 재평가한다는 미명 아래 그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998년 도조 히데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프라이드; 운명의 시간’은 일본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 왔고, 히데키의 손녀 도조 유코가 전쟁을 정당화한 소설 ‘일체를 말하지 말라’도 14만 부나 팔렸다. 도조 히데키의 삶은 근대 일본의 전개 과정과 일치한다.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열강으로 일본을 이끈 동력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 시리즈였다. 도조 히데키는 대일본제국의 공영을 만천하에 떨칠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패전 후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몰락했다. 저자는 “도조를 불편하고 역겨운 대상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문제 삼는 것은 근대 일본의 역사를 직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논픽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6년간 도조 히데키와 관련된 퇴역군인, 관료, 왕족, 친인척과 후손 등을 취재한 후 1979년 초판을 냈고, 2005년까지 꾸준히 재·개정판을 펴냈다. “도조 히데키는 정치와 군사의 관계에 무지했고 국제법규에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군인이야말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 그는 국가를 병영으로 바꾸고 국민을 군인화하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여겼다. 그런 그는 적어도 20세기 전반의 각국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인물이었다.” 저자는 “왜 이러한 지도자가 시대와 역사를 움직였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나라가 가장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총력전 시대를 이끈 전쟁 지도자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한 과정에서 일왕의 역할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전쟁을 부추긴 재벌과 군부의 결탁에 관한 진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은 한계로 지적할 만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고3 수험생의 성적 비관 자살은 더이상 뉴스도 아니다. ‘왕따’와 학교 폭력에 중학생이 자살하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사는 게 힘들다’며 뛰어내린다. 한림대 의대 연구 결과 우리나라 초등학교 1학년 학생 100명 중 약 4명이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이제 어린이 청소년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출간된 ‘여름캠프에서 무슨 일이?’(주니어김영사)는 동화책으로는 생소했던 ‘죽음 교육’을 주제로 한 책이다. 방학 동안 리더십 캠프를 떠난 학생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떠내려 온 청년의 시신을 발견한 뒤 교관 선생님과 함께 죽음을 주제로 한 체험 프로그램을 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쓴 고정욱 작가(52)와 감수를 맡은 오지섭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50)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 작가=저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어요. 고열에 시달리다 겨우 살아났죠. 그러나 장애인으로 살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숱하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어요. 결국 인간이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게 됐어요.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썼습니다. △오 교수=죽음 교육이란 또 다른 말로 하면 ‘삶의 교육’입니다. 제가 ‘죽음의 이해’ 같은 강좌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와요. 그러나 ‘죽음 교육=삶의 교육’이라는 취지에서 본다면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볼 수 있죠.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이니까 어릴 적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 등에서는 1년에 10시간 이상 학교 정규과목으로 죽음 교육을 실시한다. 독일의 경우 초중고교의 죽음 관련 교재만 20종이 넘고, 일본 게이오고교는 죽음 교육을 통해 자살과 학교폭력, 왕따 문제를 해소했다고 한다. 고 작가는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이 있는 아이들은 남을 괴롭히거나 왕따시키지 않는다”며 “죽음 교육이야말로 어릴 적부터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작가=어린이들이 쉽게 죽음을 접할 기회는 애완동물의 죽음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나 강아지가 죽었을 때 땅에 묻어주고 꽃을 꽂아준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강렬한 ‘추억’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애완동물이 죽으면 직접 치우고, 아이들에게 “야, 가까이 오지 마”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아이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가까운 사람이나 동물을 떠나보내는 경험은 인격이 성숙되는 데 중요한 과정입니다. △오 교수=요즘 TV, 영화에서는 죽음을 너무 가볍게 취급합니다. 게임에서는 ‘리셋’만 하면 다음 판에 주인공이 또 등장하죠. 이런 때문인지 현실에서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죽음과 관련해 판단력이나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들어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 작가=연예인의 자살은 인기, 명예, 부와 삶의 가치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입니다. 삶은 무엇을 이뤄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인데 말이지요. 요즘 JYP와 같은 아이돌 그룹 기획사에서는 연습생들에게 성교육과 외국어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교육도 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돌 그룹은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오 교수=한국 사회에는 예로부터 죽음을 기피하고, 금기시하는 풍토가 있어요.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될 수 있으면 죽음에서 멀리 떨어지려 하지요. 그런 현상들이 죽음에 대한 오해를 낳았습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에서 대중들에게 시신을 공개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되어야 좀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세기 중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해온 일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까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문화의 이중성은 늘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었다. 이 책은 일본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비판론적 일본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베여학원 문학부 명예교수인 저자는 중심부에 반대되는 ‘변경(邊境)성’을 일본 문화의 핵심적 특성으로 꼽는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까지 올랐는데도 여전히 ‘비주체적 열등의식’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변경인’인 일본인은 여기가 아닌 저 바깥 어딘가에 세계의 중심인 ‘절대적 가치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화적인 열등감에 싸여 끊임없이 힐끔거리며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것을 따라잡으려고 버둥거린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타국과 비교하지 않으면 자국이 지향하는 국가상을 그릴 수도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일본인은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선행의 성공사례를 효율적으로 모방할 때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선발주자의 입장에서 타국을 이끌어갈 처지가 되면 사고가 정지해버린다”고 비판한다. 세계의 중심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이 왜 ‘변경’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는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이 책은 일본에서 35만 부 이상 팔렸고 2010년 ‘일본 신서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인 못지않은 한국인의 ‘변경성’을 지적하는 것 같아 뜨끔한 느낌도 든다. “세계 표준에 맞춰 행동할 수는 있지만 세계 표준을 새롭게 설정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변경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대다수 지식인은 ‘일본의 험담’밖에 하지 않게 되지요. (중략) 그러니까 ‘세계 표준을 따라잡자’는 익숙한 결론에 귀착합니다. 핀란드의 교육제도가 훌륭하니까 핀란드를 모방하자, 프랑스의 출산정책이 성공했다고 하니까 프랑스를 본받자, 브라질 축구는 세계 최강이니까 브라질을 닮아보자, 북한이 핵미사일을 준비한다고 하니 우리도 북한을 따라하자, 이런 식으로 늘어놓자면 밤을 새워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변경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변경인에게는 외래의 제도와 문물은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개방적 태도가 필수다. 변경성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번역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됐다. ‘Philosophy’를 철학으로, 주관 객관 개념 관념 명제 긍정 부정 이성 같은 서양의 용어를 한자로 번역한 것도 일본인이었다. 반면 중국인은 중국어에 없었던 개념어를 새롭게 추가한다는 것은 그들의 중화 문화가 지닌 불완전성이나 지방성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보고 번역어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21세기에도 변경인으로 잘 살아갈 것인가에 주목한다. 그는 “현대 일본의 국민적 위기는 배우는 힘의 상실, 즉 변경의 전통을 상실한 데 있다”고 지적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인 저자는 “우리 정치문화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안철수 현상과 ‘나꼼수’ 사건이 모두 ‘콘서트’와 연결돼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의 패션화, 감성화에 가려진 정치의 부재, 좌우 이념의 실종이 결국 정치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하며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보다 치열한 좌우 이념의 경쟁’과 ‘건강한 정치적 중도문화’를 제시한다. 그는 “‘닥치고 정치’를 넘어 ‘묻고 따지는 정치’로, 극단을 배제하고 극단을 포용하는 열린 중도의 철학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명 언론인이 1922년 출간한 명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에도 언론 관련 서적의 고전으로 꼽힌다. “우리는 우선 보고 그 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의부터 하고 그 다음에 본다.” 저자는 고정관념에 따라 사안을 정의하는 인간의 태도를 이렇게 지적한다. 이어 고정관념과 편견에 좌우되는 공중에 대한 회의, 언론과 여론에 대한 불신,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의 한계를 설명하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으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사회과학자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경북 포항시 죽장면 비학산 자락의 산골마을. 선화가(禪畵家)인 허허당(虛虛堂) 스님이 살고 있는 휴유암(休遊庵)을 지난달 말 찾았다. 36m2(약 11평)짜리 단칸방인 이곳의 이름은 ‘쉬면서 노는 암자’라는 뜻이다. 대형 화폭에 부처상이 그려져 있는 작은 방에는 그림 도구와 찻잔, 이불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누군가 제게 절이 있느냐, 화실이 있느냐고 물어요. 저는 ‘다 있다’고 이야기하죠. 단칸방인 휴유암은 명상을 하면 선방, 그림을 그리면 화실, 누우면 침실이 되지요.” 스님은 여기에서 7년째 머무르며 선화를 그려 왔다. 2년 전부터는 산중 생활 속 명상을 담은 시와 그림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팔로어가 2만 명이 넘는다. 트위터에 올린 시와 그림은 최근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예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고/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는다./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시에 많은 젊은이들이 위로를 받았다며 공감을 표했다. 스님은 “디지털 사이버 공간도 생명의 세계”라고 했다. “트위터를 통해 내가 그들의 아픔에 반응하고, 산속의 청정함을 전해 주면 상상만으로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쓴 글들입니다.” 1974년 열여덟의 나이로 해인사에서 출가한 그는 향곡 스님 문하에서 수행하던 선승이었다. 1983년 지리산 벽송사 방장선원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어 본격적으로 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도는 결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 버리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래서 ‘비고 빈 집’이란 뜻의 ‘허허당’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부처님의 8만4000개 법문에 담긴 깨달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 붓을 잡았어요. 그림 실력 부족으로 6, 7년간 엄청나게 방황했지만 지극한 ‘사무침’이 쌓이니 붓이 움직이더군요.” 그는 2008년 가로 12m, 세로 2.8m 크기에 100만 명의 동자승을 모자이크처럼 그려 넣은 ‘화엄법계 백만 동자-새벽’을 그릴 때는 1년여간 하루 17시간씩 건빵과 생수만 먹으며 작업했다. 해인사와 불일미술관 등 국내뿐 아니라 스위스와 미국 하와이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 강원 화천군은 내년 말까지 파로호 주변에 스님의 작품 전시관과 작업 공간이 들어서는 ‘화천아트빌리지’를 지을 예정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 한바탕 멋지게 놀다 가라”고 말한다. 그에게 그림은 생명을 노래하고, 통쾌한 자유를 느끼는 ‘붓놀음’이다. ‘붓을 던지니 학이 난다/한 소리에 하늘이 깬다’(‘선승의 눈-覺’)는 시는 이런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스님의 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색소폰도 눈에 띄었다. 3년 전부터 교본을 보며 독학으로 익혀 온 악기다. 그는 “산속에서 나와 함께 호흡하며 대화해 온 도반(道伴)”이라고 소개했다. “몇 년 전 비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와서 집 앞 계곡물이 불어나 거대한 파도처럼 넘실댔어요. 집 안에 그동안 그려온 수백 점의 그림이 있었는데, 마당까지 물이 차올랐어요. 급박한 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지요. 방안에 들어가 색소폰을 불며 모든 것을 잊고 놀았습니다. 그렇게 30분쯤 놀다 보니 비가 그치더군요.”포항=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일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은 여름 출판계에 불어 닥친 대형 태풍이다. 발간 다음 날 온라인에선 7초에 한 권씩 이 책이 팔렸다. 김영사는 매일 4만 부씩 추가 인쇄를 했지만 온오프라인에서 쏟아지는 주문량을 채우지 못했다. 도매상 부도 사태로 유통망이 무너진 지방 서점들은 모처럼의 히트 상품을 공급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책은 열흘 만에 30만 부 가까이 배포됐고, 국내 최단기간 100만 부 돌파 기록도 세울 기세다.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책 발간에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여야 후보들은 셈법이 복잡하다. 그러나 출판계에는 “하반기 출판시장은 안철수 책이 먹여 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의 책을 사러 서점에 간 사람들이 다른 책까지 더 산다면 출판계에 단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23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책에서 내 생각을 밝혔으니 국민이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책을 선전하러 TV에 나온 것은 아니라고 말했으나 출연 후 교보문고에선 하루 7000권에서 1만3000권으로 책 판매량이 껑충 뛰었다. ‘안철수의 생각’은 정치 소통 도구로서의 책의 존재감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물론 지난해 말부터 ‘닥치고 정치’ 등 ‘나는 꼼수다’ 출연진이 쓴 정치 비평 서적이 유행했지만 대부분 소셜미디어(SNS)의 인기에 기댄 책들이었다. 요즘 여야 대선 후보들도 모두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트위터, 페이스북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세대의 멘토’로 불리는 안 원장은 거꾸로 갔다. 가장 오래된 매체인 ‘종이책’으로 정치판을 뒤흔든 것이다. 기업 경영도, 바둑도, 정치도 책으로 공부했다는 안 원장이 책을 통해 소통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엔 ‘나꼼수’와 ‘SNS’가 최대 화두였던 4·11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교훈도 작용한 듯하다. 강준만 교수는 최근 발간한 ‘안철수의 힘’이란 책에서 “SNS의 폐쇄성에 대한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4·11총선”이라며 “우리 편엔 너그럽고 상대편에겐 엄격히 응징하는 ‘나꼼수 모델’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과 ‘청춘콘서트’를 함께한 박경철 씨도 저서 ‘자기혁명’에서 “SNS의 약점은 역설적으로 ‘대중성의 부족’에 있다”고 말했다. 즉각적, 감성적 소통을 하는 SNS가 새 시대를 이끌 미디어로 각광 받았지만 사실은 견해가 같은 사람들끼리 동종교배가 이뤄지는 폐쇄적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여야, 좌우 구분의 ‘구체제’에 반대하는 중간층을 끌어안아야 하는 안 원장도 모든 세대에 대중적 파급력이 큰 매체는 SNS가 아니라 책이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이런 ‘책 정치’가 그에게는 최대한 검증을 늦추고,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의도적 전략일 수도 있다. 신문 인터뷰, TV 토론 출연은 즉각적 검증을 뜻하기 때문이다. 대담집인 ‘안철수의 생각’은 이슈에 대한 안 원장의 의견만 물었을 뿐 답변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날선 ‘추가 질문(probing question)’이 거의 없다. 책이 관심을 끈다 해도 안 원장이 언제까지 “내 생각을 알려면 1만3000원을 내고 책을 사 보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책만 많이 팔고 대선에는 불출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우파들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잖아요?”(딸) “그래. 현대 사회에서 좌우의 대립은 더이상 안정·전통 대 변혁·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에 대한 개념의 대립이야.”(아빠) 아빠가 두 딸과 함께 여름휴가를 가는 자동차 안에서 좌우파의 개념과 추구하는 가치, 목표에 대해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당 소속 좌파 정치가이자 유럽의회 의원. 저자는 “평등과 획일은 다른 것”이라며 “민주주의 좌파는 능력, 재능, 일의 성격에 따라 생기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진 남이섬. 타조가 메타세쿼이아 길을 어슬렁거리는 이곳은 매년 35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빈 소주병만 나뒹구는 모래땅 유원지였다. 이 책은 디자이너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발칙한 상상력으로 남이섬의 생명을 되살려낸 추억을 담은 에세이. 남이섬의 그림지도와 여행정보도 실어 훌쩍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책 초입의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의 북한강, 페이지를 살라 먹는 단풍 사진을 보면 과거의 쓰레기섬을 떠올리기 힘들다. 최서영 인턴기자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예나 지금이나 알게 모르게 가장 무서운 것이 가족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는 끔찍한 가족의 이야기가 실린다. 어린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고 보험금을 타내려던 아버지, 게임을 하다가 어린아이를 굶겨 죽인 엄마, 친딸을 임신까지 시킨 인면수심의 아버지…. 우리 옛이야기 속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효성스러운 아들, 절개를 지키는 열녀, 지엄한 남편과 정숙한 부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오싹한 경우가 많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손순이 노모를 극진히 모시기 위해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대표적인 ‘효자담’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가난한 살림에 하나라도 먹을 입을 덜기 위해 시도했던 ‘자식 살해’가 ‘효’로 치장된 것일 뿐이다. 저자는 고전소설 속에 나오는 계모, 첩, 기녀, 열녀 등 가부장의 욕망에 의해 일그러진 여성들의 본모습을 되살려낸다. 계모와 첩들은 왜 그렇게 사악하게 그려졌을까. 저자는 처첩 간의 위계질서, 과부 재혼 금지, 적서 차별 등의 배후에 조선시대 지배층인 사대부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있다고 해석한다. 과부가 재혼해서 새로운 아들을 낳거나, 서자까지 관직에 진출하게 되면 벼슬자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교훈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고전소설 속 숨겨진 진실을 저자와 함께 읽으면 유쾌한 재미가 느껴진다. 기녀에게까지도 순결과 절개를 요구하는 남자들, 할 수 있는 것은 아이 만드는 것밖에 없는 무능력한 남자의 대명사인 흥부와 변강쇠, 가짜 남편에 대한 의심을 담은 쥐 변신 설화…. 그러나 ‘장화홍련’의 아버지가 딸에게 성적 학대를 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은 흥미를 위해 ‘너무 나간’ 듯하다. 고전소설 이야기를 현대의 가족 모습과 대비시키는 분석도 흥미롭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여우누이’에서 자식을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내주는 엄마는 자식의 과외공부를 위해 밤낮 없이 희생하는 요즘 부모들의 모습과 겹친다. 여름밤에 읽기에 공포소설보다 더 오싹한 가족기담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 뉴욕의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에는 권위를 지닌 지휘자가 없다. 모든 단원이 서로 눈빛과 호흡을 주고받으며 연주한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리더십은 이 악단에 세계적인 명성을 부여했다. 전문 디자이너가 없는 의류회사 스레드리스는 회원들로부터 디자인을 받고 투표로 선정된 디자인을 옷으로 생산한다. 이 회사가 ‘한 달에 수십 가지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지만 실패작이 없는’ 유명 의류회사가 된 이유다. 현대의 많은 기업이 ‘보스의 수렁’에 빠져 있다고 책은 진단한다. 저자는 “우리는 외로운 천재의 신비스러운 통찰력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며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혁신을 이룩하는 것은 ‘보스로부터 해방된’ 집단 지성”이라고 말한다.김지은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한국이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부모 자녀 관계가 가장 ‘도구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쯤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만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나이 든 부모를 찾는 자녀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한다. 부모가 가진 게 많아야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500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의 저자가 이번에는 한국의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철학을 집중 분석했다. 딸을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키워낸 ‘원조 딸바보’ 피천득(수필가), 1000일 독서로 교보문고를 일으킨 신평재(전 교보증권 회장), 한국판 메디치 가문 전형필(문화재 수집가), 3대 정치인 가문 정일형 이태영(8선 국회의원·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 가문 등 3대에 걸쳐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의 인재를 배출해낸 11개 가문 이야기를 소개했다. ‘황제도 자식은 맘대로 못한다’는 말이 있듯 자녀교육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저자는 집 안에서 늘 책을 읽으며 모범을 보이는 아버지의 ‘멘토링’을 강조한다. 수필가 피천득과 간송 전형필은 해외로 유학 간 자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나 선배와 같은 멘토의 역할을 했다.700년 역사의 영국 케임브리지대 최초로 형제 교수(장하준, 장하석)가 탄생하게 된 데는 집 안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버지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역할이 컸다. 위당 정인보의 4남 4녀 자녀들도 “아버지가 남겨준 최고의 선물은 ‘글 읽는 소리’였다”며 “아버지가 납북된 뒤에도 아버지의 그 목소리를 평생 가슴에 담고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아버지가 밤늦도록 부재하면서 자녀교육의 한 축이 무너졌다”며 “집 안에서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춘기 자녀를 둔 집 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겐 엄하지만 남에게는 인색하지 않고 돈을 제대로 쓸 줄 알도록 하는 자녀교육법도 눈에 띈다. 전형필은 24세에 10만 석이나 되는 재산을 물려받은 후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등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수집하고 쓰러져 가는 민족사학을 되살리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러나 1945년 조국의 독립과 함께 더는 일본이 문화재를 약탈해갈 수 없게 되자 문화재 수집가 역할을 그만둔다. 저자는 “전형필의 아름다운 퇴장은 부자들의 귀감이 됐다”고 평했다.현대판 명문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벌고, 높은 관직에 올라 권력을 누리고, 자녀를 정치인이나 유명 대학교수로 키우면 명문가일까. 저자는 “현대판 명문가란 사회와 잘 소통하고, 따뜻한 감정을 공유해온 가문에 주어지는 사회적 명성”이라고 정의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남자가 서점에 들어서자 ‘휴가철 필독서’ 코너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고경영자들 혹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은 책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필독서’라는 어감의 강한 압박. 그는 사람들 틈에서 필독서들을 들춰보다가 불안해졌다. 역시 몇 권을 사들고 가서 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나중에 높은 분과 점심을 함께하다가 ‘휴가 때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둘러댈 방패로. 전생에 대역무도한 죄를 아흔아홉 번은 지어야 대한민국 샐러리맨이 되는 모양이다. 휴가 때 읽을 책을 고르는 사소한 일마저 고역인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두려움을 용케 물리치고는 마음먹었던 대로 추리소설 코너로 향했다. 이번 휴가만큼은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남자는 매년 이 무렵이면 독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휴가는 반갑지만 ‘거룩한 필독서들’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작년까지는 휴가철 필독서의 대열에 매년 거르지 않고 참여해왔다. 변화와 트렌드에 뒤지지 않으며 교양서를 읽는 수준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싶었다. 하지만 필독서들은 휴식보다는 ‘압박의 추억’을 남겨 놓았다. 무게의 압박과 내용의 압박, 급기야 쏟아지는 졸음의 압박. 앞부분을 읽다가 포기하기를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하면서, 솔직한 마음으로 그런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쉬면서 긴장을 풀어야 할 휴가 때 왜 낯설고 어려운 책들을, 필독서 혹은 대세라는 이유로 억지로 읽어가며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독서습관으로부터 차츰 멀어졌던 것 같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남자는 추리소설 코너에서 끌리는 책들을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계산대에 올려놓고 보니 아홉 권이나 됐다. 언젠가는 깊이 있는 책들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마지막 장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독서습관을 다시 들이는 게 우선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가 아닌 자기 내면의 즐거움을 위한 독서로. 남자는 지하철 안에서 소설에 빠져 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계단을 뛰어올라 반대편 플랫폼으로 향하면서도 마음이 뿌듯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순수하게 느껴본 게 얼마 만인지. 자신의 눈높이를 인정하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를 한 번 발휘하니까 또 다른 자신감이 치솟았다. 나중에 높은 분의 질문에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리소설을 쌓아놓고 읽었는데요. 재미있는 걸로 추천해 드릴까요?”한상복 작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이 대선 출마 의지 등을 담은 책의 원고를 최종 탈고하고 17일 이를 출판사로 넘겼다. 안 원장의 출마 선언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이날 “원고를 오늘 출판사로 넘겼다”며 “한 인사가 안 원장을 인터뷰하는 대담 형식의 책”이라고 말했다. 출판은 김영사가 맡았고, 초판은 10만 부가량 찍을 예정이다.김영사 최연순 주간은 “안 원장의 원고는 출판사에서 편집하지 않고 외부에서 편집 작업이 이뤄진다”며 “편집에 참여하는 직원 외엔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이르면 내일부터 작업에 들어가 며칠 내로 인쇄를 마치고 제본에 들어갈 것”이라며 “24, 25일 이후에는 배포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안 원장이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했던 원고에는 현 정부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안 원장 측의 한 관계자는 “안 원장이 당초 자전에세이 형식으로 책을 낼 계획이었지만 일정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대담 형식으로 바꾼 것”이라며 “안 원장이 대화를 통해 자신의 대선 출마 의지와 정치·사회에 대한 비전 등을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민주통합당의 한 인사는 “안 원장의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고 듣고 있다”며 “29, 30일 예비경선(컷오프)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하는 7월 말 또는 8월 초가 안 원장의 출마 선언 시점으로 유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철그렁거리는 갑옷들의 금속음,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와 거친 숨소리, 칼과 창이 맞부딪치는 소리, 군인들의 비명과 함성…. 십자군 전쟁의 생생한 장면을 정교한 터치로 되살려낸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판화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18∼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여는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 판화 전시회다. 이 판화들은 본디 프랑수아 미쇼의 ‘십자군의 역사’에 실렸던 작품으로, 국내에서 시오노의 ‘십자군 전쟁’이 출판되면서 이 책의 삽화로 실렸다. 도레는 15세였던 1847년 풍자지 ‘주르날 푸르 리르(Journal pour Rire)’의 삽화가로 활동을 시작해 그리스로마 신화, ‘성서’,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발자크와 바이런의 문학작품에 실린 판화를 제작했다. 작품 수는 1만 점 이상이고 그의 판화가 실린 책만 221권이나 된다. 독특한 판타지 스타일, 극적 장면 연출, 종합적인 구성으로 서사 삽화의 최고봉에 올랐던 그의 작품은 현대 일러스트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들 사이에서는 도레의 그림을 걸어두는 게 유행일 정도로 생전에 이미 인기를 끌었다. 그의 판화는 목판에 원화를 그리고 전용 조각도인 ‘뷰린’으로 그림을 새기는 ‘우드 인그레이빙(wood engraving)’ 기법으로 제작돼 극도의 세밀함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19세기 후반에 급속도로 발달한 사진술의 대량 보급으로 고도의 집중력과 오랜 작업시간을 요하는 이 판화 기법은 예술작품으로서만 명맥이 유지돼왔다. 강명효 문학동네 기획실장은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도레의 판화 작품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원본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확대한 것으로, 실제로 우드 인그레이빙 작품은 확대경으로 감상해야만 정교한 디테일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료 없음. 02-736-6669 지난달 초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개관한 한길책박물관도 도레의 삽화가 실린 책과 판화 원본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돈키호테’ ‘라퐁텐 우화집’ ‘성서’ ‘런던’ ‘아라비안나이트’ 등 도레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책과 삽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한길책박물관은 16, 17세기 유럽의 아름다운 고서들, 18, 19세기 출판인쇄술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판화와 신문, 잡지 등 역사적 출판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한길책박물관은 영국의 시인이자 공예가, 북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1834∼1896)가 세운 출판사 켐스콧 프레스가 만들어낸 53종 66권의 출간도서 전종을 소장하고 있다. 모리스가 평생의 예술동지였던 번 존스와 함께 만든 ‘초서 저작집’을 비롯해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 ‘모리스 전집’ 등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윌리엄 터너와 윌리엄 호가스의 대형 판화집,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잡지 ‘옐로 북(Yellow Book)’, 26세로 요절한 삽화가 비어즐리의 책들, 20권으로 구성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 진귀한 옛 책 200여 종도 감상할 수 있다. 한길책박물관의 김혜현 학예사는 “후안 미로, 훈데르트바서, 살바도르 달리 등 거장들이 삽화를 그린 세계 각국의 ‘성서’를 비교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료 5000원. 031-949-9786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