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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만나는 신문, 동아일보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 기사가 부쩍 늘었다. “선거요? 옛날에는 평민당 텃밭이었는데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그렇지도 않아요.”(강모 씨·50·부동산중개업·서울 성동구 금호동) ‘선거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투표는 의무니까’ ‘이번에는 아직 못 정함. 검토중.’(이상명 씨·25·경기 용인시·스마트폰 문자로 답함) ‘선거’ ‘복지’ ‘심판’ ‘SNS’란 말이 신문에 많이 나온다. 실제로 선거와 관련 있는 말은 어떤 것이고 옛날에는 어땠을까. 동아일보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물결 21’ 사업팀(연구책임자 김흥규 국문과 교수)과 함께 동아일보 기사에 비친 선거의 변화상을 데이터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다. 1948년 제헌국회 선거부터 올해 4·11총선까지 디지털화한 동아일보 기사가 대상이다. 》○ 키워드로 보는 선거 이슈 분석한 결과 제헌국회 선거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정부 ‘수립’(6위)을 위한 첫 자유 ‘총선거’(7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첫 투표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투표소에서 본인임을 확인하는 ‘무인(拇印)’이란 말(19위)도 등장했다. 6·25전쟁 중 첫 직선으로 치러진 2대 대선(이승만 당선)에서는 ‘유엔’(1위) ‘휴전’(4위) ‘회담’(6위) ‘포로’(7위) 등이, 5·16군사정변 후 민정이양 형식으로 치러진 5대 대선(박정희 당선)에서는 ‘최고회의’(3위) ‘혁명정부’(7위)가 많이 사용됐다. 5, 6대 총선과 7대 대선에서는 ‘고무신’과 ‘막걸리’라는 단어가 ‘유권자’ ‘표’ ‘운동원’ 등과 함께 등장했다. 당시 집권당이 선거에 통반장을 동원했고 막걸리 한잔이나 고무신 한 켤레에 표를 사고팔았기 때문이다.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격돌한 7대 대선(1971년)에서는 ‘관권선거’(2위) ‘부정선거’(13위) 등의 단어가 많이 나타나 치열한 유세전을 짐작하게 한다.6월 민주항쟁 직후 13대 대선(노태우 당선)에서는 ‘지역감정’과 ‘단일화’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나선 14대 대선(김영삼 당선)에서는 ‘금권’ ‘관권’ ‘정치자금’ 등 돈과 관련된 단어가 많았다. 외환위기 때인 15대 대선(김대중 당선)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DJP연합’ ‘내각제’가, 16대 대선(노무현 당선)에서는 ‘병풍’ ‘후보단일화’ ‘행정수도’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가장 최근의 17대 대선(이명박 당선)에서는 ‘BBK’ ‘선진화’ ‘대운하’ 등이 키워드였다. 선거 시기 ‘갈등’의 관련어를 보면 총선과 대선의 차이가 확인된다. 총선에서는 ‘공천’ 갈등이 가장 부각되고 ‘지역’ ‘세대’ ‘계파’ ‘당내’ 갈등도 나타난다. 반면 대선에서는 ‘당내’ 갈등이 도드라진다. 여야 간 본선 대결보다는 당내 경선 과정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종교’ ‘계층’ ‘노사’ ‘세대’ 갈등 등 전국적인 키워드가 나타나는 것도 대선 시기의 특징이다. ‘관권선거’ ‘금권선거’ ‘부정선거’ ‘불법선거’ ‘타락선거’ ‘혼탁선거’라는 키워드는 4대 대선(3·15부정선거)을 비롯해 7대(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 격돌), 13대(6월 민주항쟁 직후), 14대(정주영 회장 출마)에 많이 등장했다. 총선 시기에는 5, 8, 13, 14대에 많았다.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1960년, 1971년, 1987∼88년, 1992년에 논란이 많았던 셈이다. 총선과 대선이 겹친 올해에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 ‘개혁’ 줄고 ‘복지’ 떠올라선거를 좌우하는 키워드로 ‘지역감정’이란 단어는 1971년 7대 대선에서 등장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호남 출신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이 대선에서 공화당의 이효상 국회의장은 “대구 경북에서 몰표를 쏟아 부어 기어이 당선시키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김 후보도 선거 막바지 대구 유세에서 “1200년 전 백제 신라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공화당의 망국적인 더러운 선거전에 좌우되지 말고 양심적으로 투표하자”고 호소했다(1971년 4월 26일자).‘지역감정’은 13대 대선부터 다시 영향력을 발휘했다. ‘1노 3김’이 대결한 이 선거에서 당시 노태우 후보는 대구에서 69.7%, 김영삼 후보는 부산에서 56%, 김대중 후보는 광주에서 94.4%, 김종필 후보는 충남에서 45%를 득표했다. 14, 15, 16대 대선에서도 ‘지역감정’ 키워드는 힘을 발휘했으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17대 대선 이후 비중이 크게 줄었다. 김일환 연구교수는 “지역감정이 선거 키워드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유권자들의 지역 기반 투표 성향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지역감정은 너무 고착화돼 더는 이슈가 되지 못하는 대신 ‘경제’ ‘세대 갈등’ ‘복지’ 등의 키워드가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16대 총선에서는 ‘낙선운동’이 최대 화제였다. 그러나 18대와 올해 19대에서는 주목도가 크게 낮아졌다. ‘개혁’이란 단어는 16, 17대 총선에서 영향력 있는 키워드였으나 18, 19대에서는 점차 줄었다. 19대에서는 ‘복지’가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4대 총선(1958년) 이후 54년 만이다. 무상급식이 이슈화한 데다 여야의 ‘선택적 복지’와 ‘전면적 복지’ 공약이 논쟁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진 16대 총선(2000년)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16대 대선(2002년)에서는 ‘인터넷’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한 19대 총선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 ‘SNS’가 각광받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본보 창간후 모든 기사 DB 구축… 선거기간 단어 3억개 분석 ▼■ 어떻게 조사했나어절 기준 무려 3억 개의 단어를 대상으로 한 데이터 분석에는 신문기사를 데이터 마이닝 기법으로 연구하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의 ‘물결 21’ 사업팀이 모두 동원됐다. 국문과 김흥규 교수, 언어학과 강범모 교수와 김일환 정유진 HK연구교수, 이도길 HK교수 및 석박사과정생 연구원 4명, 대학생 5명이 참여했다.분석에는 3주 이상 걸렸다. 1947년 7월 21일부터 2012년 3월 26일까지 65년간의 신문기사량이 만만치 않았던 데다 1980년대 이전에는 한자가 많이 포함됐고 띄어쓰기의 오류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선거 기간은 대선 전 1년, 총선 전 6개월(1990년대 이후는 대선 전 6개월, 총선 전 3개월)로 잡았다. 선거 기간의 키워드를 뽑기 위해 전체 단어의 빈도 통계를 구했다. 마찬가지로 관련어(선거 키워드)는 ‘선거’란 단어가 들어간 문장이나 문단의 전체 단어를 모두 색인한 뒤 예상보다 많이 쓰인 단어의 의미값(t-점수)을 계산했다.신문기사는 블로그나 트워터와 비교할 때 신뢰도가 높다. 데이터 마이닝이 첨단이라고 하지만 텍스트의 신뢰성이 높지 않다면 가치가 낮을 수밖에 없다.신문기사는 하루 단위로 나와 그동안 어떠한 단어를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알기 어렵다. 직관으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지금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시기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 분석은 1920년 창간 이후 동아일보의 전 기사가 디지털로 DB화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흥규 교수는 “신문기사는 그 시기 관심사와 사건이 그대로 담겨 있으므로 데이터 마이닝에 아주 좋은 자료”라며 “앞으로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삼가헌(三可軒)은 충정공 박팽년(朴彭年)의 11대손인 박성수(朴聖洙)가 1769년에 지은 집이다. 당시에는 초가였던 것을 현재와 같은 모습의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하게 된 것은 그의 아들인 광석이 1826년 아버지가 지은 초가를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삼가헌이란 당호는 박성수의 호로 ‘중용’에서 따온 것이다.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도 있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었으며,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도 있었지만 중용은 불가능했다”는 공자의 탄식에서 유래됐다. 선비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이라는 뜻이다. 삼가헌은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와 ‘ㄴ’자로 따로채로 구성돼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중문을 통해서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안채의 마당에 이른다. 이 집에는 세 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첫째는 사랑채를 정면에서 보면 이상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왼쪽 ‘ㄴ’자로 이루어진 아래 획의 왼쪽 부분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부분은 부섭지붕(벽이나 물림간에 기대어 만든 지붕)으로 삼각형의 꼭짓점을 누인 채 한 면으로 경사져 있다. 둘째는 서까래다. 대부분 오량집(다섯 개의 도리로 짠 지붕틀로 지은 집)은 중도리에서 주심도리로 긴 서까래를 걸고, 다시 위쪽 종도리로 짧은 서까래를 걸어 지붕이 높아진다. 그런데 삼가헌은 오량집인데도 서까래가 종도리에서 중도리를 거쳐 주심도리까지 하나의 부재로 내려온다. 결과적으로 중도리에서 경사가 달라지지 않고 모두 일직선상에 있게 되어 지붕이 낮아졌다. 이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 박성수의 아들은 적어도 사랑채만큼은 아버지가 지은 초가집을 부수지 않고, 지붕만 기와로 얹은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사랑채의 왼쪽 지붕도 이어진 채가 없으므로 간단하게 부섭지붕으로 처리된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중문이다. 박광석은 이 집을 기와집으로 개보수 할 때 이 중문만은 초가로 그냥 두었다. 사랑채와 대문채를 아래위로 비끄러매어 중문을 만들고 초가지붕을 그냥 둠으로써 청빈한 사대부가라는 걸 과시했다. 아버지의 손길을 중문에 남겨 두려는 아들의 마음이 전해져서 나는 이 삼가헌의 중문이 괜히 따뜻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 집의 세 가지 특이한 점들은 모두 아버지와 아들이 집으로 나눈 대화 같기도 하다. 시인·건축가}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당시 경제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기존 경제학에 심리학의 통찰력을 결합했으며 실험을 통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경제학을 새롭게 정립했다. 그는 경제학과 심리학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혁신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경제학은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가정 아래 인간의 경제 행위를 분석하는 학문, 즉 비실험과학으로 존재해왔다. 경제학은 실험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데이터와 수식, 그리고 통계로 현상을 분석한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카너먼 교수는 다양한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미래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경제학 이론이 실제와는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시 손님이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미터기 요금이 100원 올라갔는데 기사가 100원을 깎아주면 속으로 기뻐하겠지만 100만 원짜리 모피코트를 살 때 점원이 100원을 깎아주겠다고 하면 오히려 불쾌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는 똑같은 100원인데 말이다. 이 책은 손실회피의 예도 든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앞면이 나오면 150달러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100달러를 잃는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자고 하면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이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대수익이 0을 넘으므로 참여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달러를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압도되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나오게 된다. 이를 통해 손실회피란 개인과 조직에 변화가 최소화하기를 희망하는 경제 주체들의 행태라고 저자는 설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빠르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1’, 느리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2’로 명명하고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1이 범하는 오류와 편향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수합병 뉴스가 나오면 인수에 나선 기업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대개 기업인들은 자신이 다른 기업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데 인수합병 기업의 주가 약세는 그들의 생각만큼 그 기업이나 경영자들이 유능하지 못하다는 ‘교만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 1의 오류, 편향, 그리고 착각을 어떻게 해결하고 줄일 수 있을까. 저자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직관적 사고, 과신, 극단적 판단, 오류 등에 빠지기 쉽다고 자기고백 식으로 말하고 있다. 현재까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부문 연구자들이 진행했던 연구 성과들이 이 책에는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이론, 세인 프레더릭의 의사결정이론, 월터 미셸 스탠퍼드대 교수의 심리학 역사상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 등 다양한 인간행동 관련 연구 성과와 주제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유익함을 줄 것이다. 최근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대한 대중교양서의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책이 출간됐다. 한국 출판계에 행동경제학의 붐을 일으킨 이가 이 책을 내놓은 카너먼 교수일 것이다. 가장 인기 있는 가수가 마지막에 등장하듯 그도 지금에야 대중교양서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경제 주체 안에 있는 전혀 다른 두 자아를 잘 분석해낸 ‘생각에 관한 생각’이 그의 학문적 깊이와 지향점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길 기대한다.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자기계발과 경제경영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가 인류 최고의 고전을 읽어 나가는 평생 프로젝트를 펼친다. 현대 기업 국가 가정 개인의 시각으로 고전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자기계발적 관점에서 철학 문학 역사서 등의 맥을 잡아가는 ‘지혜의 브리지’를 시도한다. 처음 나온 두 권 중 첫 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에서는 두 철학자의 문답법과 논박의 지적산파술에서 나오는 육체와 영혼, 성공과 부, 인간관계의 본질, 권력의 양면성, 사랑과 결혼 등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담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AK47은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년 뒤 28세의 청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개발했다. 군용 총기의 소형화, 자동화를 이끌었으며 1960∼80년대 베트남, 쿠바, 앙골라, 모잠비크 등에서 식민지 해방투쟁의 주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내전 지역부터 소말리아 해적까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를 폭력의 현장으로 내모는 흉기가 됐다. 20년 이상 아프리카 중동 분쟁지역을 발로 뛰며 취재한 저자가 통제되지 않는 무력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 차의 역사는 신라 말기 선종과 함께 유입되면서 시작됐고, 고려 시대에는 왕실과 사찰의 주도하에 송나라에 비견될 만큼 차 문화가 융성했다. 조선시대 배불(排佛)정책으로 사멸 위기에 처했던 우리 차문화가 부흥하게 된 배경에는 초의 선사(1786∼1866)가 있었다. 선종의 대표적인 ‘선다(禪茶)’ 정신을 이은 초의 선사가 인식한 차는 단순한 마실 거리가 아니라 정신적 수행의 삼매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그는 이러한 구도정신을 담아 필생에 걸쳐 ‘초의차’를 완성했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차’를 마신 후 “심폐가 시원하다”고 평할 정도였다. 저자는 초의 선사의 고향인 전남 무안군 삼향을 기점으로 그가 거쳐 간 운흥사, 쌍봉사, 대흥사, 학림암 등을 찾아가 다성(茶聖)이 남긴 정신과 인연의 흔적을 좇는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청년 시절의 초의에게 시학과 주역을 가르쳐준 다산 정약용, 초의와 동갑내기 친구로서 맑은 정신의 세계를 교감했던 추사 김정희, 절창의 시문으로 ‘초의차’의 웅대한 경지를 묘사했던 박영보와 신위, 황상…. 이 책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차와 시를 주고받았던 ‘초의차의 인문학’이 담겨 있다. 초의가 만든 차는 유배지에서 신체의 고통에 시달리는 선비들에게 ‘약’ 이상 가는 효능을 발휘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유배지 제주도로 떠난 추사는 ‘걸명시’를 지어 전하며 ‘초의차’를 부탁했다. 초의가 북학파 경화사족 등 유학자들과 교유를 확대하는 데도 차와 시가 매개물이 됐다. 초의와 추사, 당대의 문사 등 세대와 신분을 넘고, 유불선이 한데 만나는 네트워크는 고매한 정신세계를 공유하며 서로의 자긍심을 키워 나갔던 한국의 미학과 인문학의 근원을 이야기해준다. ‘초의차’ 5대째 계보를 이은 저자는 이 책에서 응송 스님에게 전해 받은 친필 ‘다도전게’를 공개했다. 저자는 “일본이 찻잎을 찌기만 하고 중국이 찻잎을 볶기만 한다면, 우리는 찻잎을 볶으면서 뚜껑을 덮어 열기로 찌는 공정을 절묘하게 합쳐 차의 독성을 중화해 차의 효능을 드러내는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초의차는 ‘동자처럼 젊어지고 팔십 노인의 얼굴에 붉은 빛을 띠게 하는 신묘한 효능을 지녔다’고 전해져 온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 광명성 3호를 4월 중 발사하겠다고 예고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일제히 반대하고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왜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까지 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하는지 그 속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또 지난해 12월 19일 북한의 김정일 사망 소식이 발표됐을 때는 정보의 사전 입수 여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렇게 북한의 동향은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어려운 문제다. 북한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북한학으로 시작해 대통령학 연구 전문가로 활동해온 저자가 40년 지적 편력의 마지막 닻을 내린 분야가 정보학이라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대통령학의 필드 스터디를 위해 세계 각국의 정보 실무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한 1995년부터 정보학에 관한 책을 준비해왔다. 한국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주요 8개국 100명 이상 정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아 국가의 신경망 조직인 정보기관을 꼼꼼히 짚어간다.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손무가 손자병법에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추구하려면 정보를 우선시하라’고 말한 것처럼 ‘정보의 중요성’이다. 둘째는 정보담당 기관을 국가 지도자에 대한 정보 지원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각국의 정치제도를 권력균점형 대통령중심제와 대통령형 내각제로 대별하고 그에 따른 대통령, 총리에 대한 정보 지원 시스템을 분석해 한국의 21세기형 대통령 정보 시스템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국가 지도자는 교육을 받아서라도 정보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고 국가 경영을 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진심어린 저자의 조언이다.안광복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연구교수}

“각국의 화폐를 잘 살펴보세요. 위인들의 얼굴뿐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 건축물, 그림, 민속춤까지 무궁무진한 문화적 기호가 숨어 있답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김시영 씨(41)와 고교생 아들 상언 군(17)이 세계 각국의 화폐 이야기를 담은 ‘화폐 속 역사 팝’(좋은땅)을 펴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 혼자 노는 데 익숙했던 상언 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락방에서 우연히 아빠의 우표책을 발견했다. 낡은 우표책 속에 끼워져 있던 빛바랜 500원짜리 지폐가 눈에 확 들어왔다. 거북선, 이순신이 그려져 있는 옛날 지폐가 신기해 뚫어져라 쳐다보며 문양을 살피고, 좁쌀보다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확대해 보았다. “우표는 너무 작잖아요. 지폐는 크고 화려해 눈길이 갔어요. 당시 위인전집을 읽던 중이라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제일 컸어요.”(김상언) 아빠와 함께 화폐전시회와 화폐박물관을 둘러보기 시작한 김 군은 급기야 인근 외환은행에 들러 환전을 하며 외국지폐 수집에 나섰다. 집안일이나 심부름을 한 대가로 1만∼2만 원 용돈이 생기면 소액환전으로 달러, 위안화, 엔화 등을 모았다. 6개월 치 용돈을 모아 아빠와 함께 대구, 서울의 화폐상을 찾아가 유로화 이전의 유럽 국가들의 옛 화폐를 사기도 했다. 두 사람이 모은 세계 화폐는 앨범 7개에 빼곡히 담겼다. 김 씨는 아들에게 미국에서 발행된 ‘세계화폐도감’(World Paper Money)을 사주었다. 세계 각국의 화폐에 나와 있는 인물과 문화유산에 대해 길게 해설을 붙인 책이다. 김 군은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화폐도감을 읽었고, 백과사전, 인터넷을 통해 공부한 후엔 꼭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1만 원권의 앞면을 한번 볼까요. 세종대왕 얼굴뿐 아니라 일월오봉도 그림, ‘불휘기픈남ㅱㅱㅱ매아니뮐새…’라는 용비어천가 내용이 있습니다. 뒷면에는 조선시대 별자리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지요. 조선시대 별자리를 관측했던 ‘혼천의’와 현재 보현산 천문대에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현대식 광학망원경 그림도 그려져 있답니다.”(김시영) 김 군에게 화폐 수집은 역사뿐 아니라 경제를 이해하는 계기도 됐다. 수없이 은행을 다니며 환율변화에 민감해지다 보니 국제적인 경기 흐름과 증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리먼브러더스 사태, 아일랜드 화산 폭발, 동일본 대지진이 환율이나 증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는 질문을 해대는 아들에게 김 씨는 “증권사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권했다. 김 군은 여러 증권사를 찾아가 경제에 관해 묻고 들은 내용을 노트에 기록했다. 김 군은 2010년 아파트 경제장터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화폐 전시회를 열고 화폐 속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아버지 김 씨는 “요즘 아이들이 꾸준히 길게 뭔가를 해서 성취하려는 노력이 부족한데, 외국에서도 화폐 수집은 대를 이어서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로 꼽힌다”며 “아들과 함께 화폐를 수집하며 나눴던 대화의 시간들이 무척 소중한 추억”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요즘 TV의 토크쇼를 보면 인기 절정의 10대 아이돌 그룹 가수들도 연습생 시절 ‘눈물 젖은 라면’을 먹던 이야기를 한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모두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했음을 강조한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앞다퉈 펴낸다. “왜들 이러는 걸까요?” 개그맨 황현희의 말투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여기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대중은 힘센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국가대표’나 ‘쿨러닝’에서 보듯 대중들은 보잘것없는 주인공들에게는 열광하지만, 다윗과 싸운 거인 골리앗은 수세기가 지나도록 악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 최근 출간된 마이클 프렐의 ‘언더도그마(지식갤러리)’다. ‘언더도그(underdog)’란 싸움에서 지고 꼬리를 내린 개처럼 객관적인 열세를 보이는 약자다. ‘언더도그마’는 약자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선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사악하다고 믿는 현상을 말한다. 2005년 11월 이라크전쟁 당시 크리스천 피스메이커팀이라는 기독교 평화운동단체가 이라크에서 반전시위를 하던 중 이라크군에 인질로 잡혀 한 명이 총살을 당했다. 나머지 인질들은 수개월 후 공교롭게도 자신들이 비판했던 다국적군에게 구출됐는데, 석방 후에도 이들은 강자인 다국적군에게 모든 책임이 있으며, 약자인 이라크군은 선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국내에서 인권을 외쳐온 단체들이 북한 3대 세습체제에는 침묵을 지키고, 중국의 탈북자 북송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성명 하나 내지 않는 심리의 근저에는 언더도그마가 깔려 있다. 지구 최강국인 미국에 대한 반감이 북한, 리비아와 같은 독재국가나 테러리스트까지 무조건 옹호하는 아이러니를 빚어내곤 한다. 언더도그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은 무명의 언더도그 참가자들이 거대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한 수전 보일은 ‘우승을 하지 못한’ 덕분에 데뷔 앨범이 300만 장이나 팔렸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수년째 가을에 야구를 못한 롯데 자이언츠는 열광적인 팬을 몰고 다니는 반면, 만년 강자로 보이는 삼성 라이온즈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 언더도그마는 실패한 자는 칭찬하고, 성공한 자는 처벌하는 대중의 심리다.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언더도그마 전략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고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풀빵장사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욕쟁이 할머니의 장터국밥을 먹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자신이 ‘거대야당과 언론권력’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호소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속한 민주통합당이 언더도그였는데, 새누리당은 더 약해 보이는 27세 정치신인 손수조로 맞불을 놓아 ‘언더도그’ 경쟁을 벌인다. 진보정당이 거대여당에 대한 심판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스캔들에는 ‘무오류’를 주장하는 것도 언더도그마로 해석된다. 대중이 약자에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다. 그러나 이것이 말 그대로 ‘도그마(dogma)’로 변질될 때는 위험하다. ‘언더도그마’는 분별 있는 이념도, 도덕도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심리일 뿐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우리는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時空間)에서 살고 있다. 공간과 시간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것은 공간을 통해서다. 거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거리와 거리의 다른 방향들이 우리에게 살펴지면서 장면과 장면의 시간적 순서를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조선집을 구성하는 가구식 구조(架構式構造·목재로 기둥과 보를 조립해 만드는 구조)는 지형과 지세를 이용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장면과 장면의 시간의 순차를 통해 공간을 느끼게 하는 데 더없이 탁월한 구조다. 안동의 와룡면 중가구리에 있는 영남 남씨 문중의 남흥재사(南興齋舍)는 이러한 가구식 구조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남흥재사가 있는 남흥마을은 순흥 안씨 집성촌인 가느실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남흥재사를 충분히 느끼려면 적어도 이 가느실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좋다. 이 좁고 긴 가느실 마을의 지형을 따라가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남흥마을이 나온다. 잘못하면 사람 그림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올 수도 있는 이 동네의 제일 높은 곳에 남흥재사가 있다. 이제부터는 경사가 좀 가파른 길을 따라간다. 남흥재사의 2층 누각인 원모루 처마가 가까워 올수록 고조되는 음계처럼 펼쳐져 있는 재사의 지붕들이 일정한 화음을 갖고 변주된다. 원모루의 판벽에 낸 두꺼운 영쌍창(靈雙窓)들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처마의 그림자로 무겁고, 음울하다. 반면에 재사 1층의 흙벽들은 눈부시다. 약간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재사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서 이제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가느실의 좁은 길과 마을을 둘러싼 산들까지 남흥재사의 안뜰은 그것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경사지에서 각각의 채를 받치고 있는 기단들은 마치 각각의 마당을 구성하여 가운데 안뜰로 흐르는 듯하고, 지붕들은 지붕들대로 산맥이 달리듯이 서쪽 채에서부터 대청으로, 종손방을 돌아 2층 누각인 원모루에서 크게 일어서고 있다. 원모루에 앉아 비로소 숨을 내쉬면 다시 안뜰 위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지세를 따라 주초에 다리를 내리고 있는 가구식 구조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와 같이 걷는 집. 나는 혼자 걷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시인·건축가}

경영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먼의 수석 부사장인 저자는 시간 단위 렌트 개념을 도입한 집카(ZipCar), 스타벅스를 집 안으로 옮겨다준 네슬레의 네스프레소 등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해낸 기업들의 여섯 가지 비결을 밝혀낸다. 그에 따르면 불황이란 반드시 모든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황이라는 독특한 환경요인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변화를 관찰하고, 매력적인 제품과 배경 스토리를 갖춘 제품을 만들어 내면 ‘수요(demand)의 방아쇠’가 당겨진다는 설명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000만 명이 사는 도시 런던은 단지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끄는 도시다. 평범한 시내버스 안에서도 10개 언어를 들어볼 수 있다는 도시.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런던을 가리켜 ‘후대에 물려줄 특별한 기자와 같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후 기자이자 소설가인 존 란체스터는 ‘Capital’이란 제목으로 이 특별한 도시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를 써냈다. 가상의 인물들로 구성한 소설이지만, 란체스터는 논픽션에 비유될 만큼 생동감 있는 묘사로 런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남런던의 한 작은 거리인 페피스 로드. 19세기 후반 이곳의 주민들은 주로 서민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시작되는 2007년 12월경 이곳 부동산 가격은 높이 뛰어 있었고, 주택 소유주들도 모두 부자가 됐다. 2008년 말 유럽을 강타한 경제위기 이전에는 런던의 집값이 매년 꾸준히 오르기만 했기 때문이다. “페피스 로드에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첨확률 100%인 카지노에 있는 것과 같았다”라는 소설 속 문장은 런던에서 10년 이상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다문화 다인종의 상징인 런던을 잘 반영하듯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페피스 로드의 주민들과 이곳에서 목수로 일하는 폴란드인 남자, 보모로 일하는 헝가리인 여자, 유명한 세네갈인 축구 선수, 정치 망명자인 짐바브웨 출신 여자 등이다. 소설이 진행되며 독자들은 그들이 한때 꿈꿨던 장밋빛 인생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페피스 로드에 예전부터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부자가 된 집 주인들과 매일같이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타국에서 설움을 겪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던 중 2008년 11월 영국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경제위기가 닥치고, 경제위기 속에 이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뒤흔들리게 되는데…. 가디언지와 텔레그래프지가 ‘논픽션을 읽듯 생생한 묘사’라고 칭찬했듯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실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동유럽이 유럽연합에 속하면서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꿈과 돈을 좇아 런던으로 왔다. 본국에서 교사, 회계사, 회사원 등의 견실한 직업을 갖고 있던 이들은 런던에서는 택배 배달부, 청소부, 가정부 등의 일을 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많은 폴란드인들이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것은 영국 언론들이 비중 있게 다룬 큰 화제였다. 작가는 다양한 인종들을 품고 있는 이 멜팅 폿(melting pot·용광로)이 2008년 11월을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그려나간다. 머나먼 나라 영국 수도의 이야기지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수도, 서울을 가진 한국인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올 이야기이지 않을까.런던=안주현 통신원}

미국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성애자들’이란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반미,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에서는 동성애자를 범법자로 간주해 잔인하게 학대하고 광장에서 처형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동성애자 축제 퍼레이드가 열리는 유일한 나라다. 이슬람계 레즈비언 작가 어샤드 만지는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위해 자신들의 정체성마저 철저히 내팽개쳤다”고 말한다. 왜 인권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들을 옹호할까.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 건물을 공격하거나, 동성애자의 몸을 생매장해 얼굴에 돌을 던져 죽여도, 선량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동을 자살폭탄 공격에 이용해도 관계없다. ‘강한 자’(미국)에게 맞서 싸우는 ‘약한 자’로서의 유대감 때문이다.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 패트리어츠의 전략가인 저자는 ‘가진 자’(overdog)와 ‘못 가진 자’(underdog) 사이의 ‘힘의 축’이 어떻게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의 개념을 대체해 이 시대의 쟁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는지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언더도그마(underdogma)’란 약자는 도덕적 우위에 있고, 강자는 경멸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뜻한다. 언더도그마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도 나온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힘없는 다윗을 영웅으로, 힘센 골리앗은 악으로 생각해 왔다. 1923년부터 2009년까지 월드시리즈에서 27회나 우승한 뉴욕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린다. 심지어 세계자연보호기금 전 총재인 필립 공은 “다시 태어난다면 세계의 인구밀도를 낮추기 위해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인간의 수를 줄여야 인간보다 힘이 약한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대해서도 주택 소유가 미국 시민들의 권리라는 환상을 심어준 정치적 언더도그마가 개입했다고 분석했다. 처음엔 언더도그로 인기를 얻다가, 힘센 오버도그로 변하는 순간 대중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던 애플은 2010년 5월 ‘시장자본 총액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추월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공격의 대상이 됐다. 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한 수전 보일은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첫 앨범이 300만 장이나 팔릴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저자는 “현대의 정치인과 기업은 대중의 눈을 속여 ‘언더도그’가 되기 위해 갖은 연극을 해댄다”고 분석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세기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면서 현재에 대한 과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며, 따라서 현재는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부상이 구체화되면서 현재 중국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조명해 보면서 중국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려는 작업들이 시도되고 있다. 특히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시각에서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 책은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대중관(對中觀)을 모색해 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통한 근대화 과정, 그리고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였던 후야오방, 자오쯔양, 장쩌민, 그리고 후진타오와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현대중국역사에서 나타나는 중국 발전의 명과 암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해서파관(海瑞罷官·명나라의 강직한 관리 ‘해서’의 파직을 소재로 한 역사극)’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우한, 팽더화이, 류사오치와 그의 부인 왕광메이에 이르기까지 마오쩌둥 시대의 정치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인물들을 꼼꼼하게 검토해보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개방과 나아가서는 중국 강대국화의 성공에 필수적인 환경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현대적 해석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은 철저한 현장주의에 기반을 두고 완성되었다. 저자는 해서의 고향이자 그의 묘가 위치해 있는 하이난 섬의 하이커우 시를 직접 찾아 해서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시도했으며, 왕광메이가 홍위병과 대결하였던 베이징 칭화대에서는 당시의 모습을 그려가며 참담한 상황에 처한 왕광메이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다년간에 걸쳐 수집했던 엄청난 양의 자료에 대한 분석의 결과로 출판되었다. 저자는 1970년대 말 동아일보 도쿄지사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읽으며 시각을 정립해왔다. 이러한 현대 중국 역사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즉, 저자는 현대사적 시각에서 오늘날 중국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 지배체제의 정당성 문제, 고도성장의 지속가능성 여부,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및 차별의 문제,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경향, 그리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입장 등 중국 사회 내에서 민감성과 불확실성이 내재된 문제들을 일관된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북 상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령 밑에 큰 도회지로 산세가 웅장하고 들이 넓다. 북쪽은 조령과 가까워서 충청도 경기도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임해서 김해·동래와 통한다. 육로로 운반하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과 육로로 모여드는데, 이것은 교역하기가 편리한 까닭이다.” 그래서 상주는 예부터 번성한 도시였다. 물류의 집합지였고 정보의 교환처였다. 그러나 살기에 그렇게 녹록한 곳은 아니다. 여름은 덥고 비도 많이 오고, 낙동강의 범람도 있다. 반면에 겨울은 눈도 많고 심하게 춥다.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것이 꼭 살기에 좋은 법은 아니다. 그래서 상주와 안동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전혀 다른 건축을 보여준다. 상주지역의 건축적 특색은 겨울을 견디기 위한 북방식 평면과 여름을 나기 위한 남방식 구조가 섞여 있다. 상주의 양진당(養眞堂)이 그 대표적인 집이다. 양진당은 검간 조정(黔澗 趙靖·1555∼1636)이 1626년 처가인 안동의 천전동에 있던 가옥을 해체해 낙동강에 뗏목을 띄워 상주 승곡리에 옮겨 지은 집이다. 남녀 차별 없이 상속이 똑같이 나누어지던 시대에 하필 집을 뜯어 왔다는 게 좀 의아하지만 어쨌든 조정은 처가의 집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러나 그 집이 상주에 안착할 때는 상주의 자연조건에 따라 많은 변형이 이뤄졌다. 양진당의 안채는 방들이 ‘田’자 형태의 겹집이다. 겹집이란 방-마루-방으로 이어지는 홑집과 달리 ‘밭전’ 자의 네모 칸이 모두 방으로 이어져 있는 집을 말한다. 이는 한겨울의 추위에 견디기 위한 형태로 주로 강원도 이북의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런데 입면구조를 보면 조선집에서는 드물게 양진당은 기단이 사람 키 이상으로 올라와 있다. 이는 분명 더위와 습기를 피하기 위한 남방식 주거의 형태다. 더구나 안채 좌측의 날개채는 이층으로 일층은 부엌과 헛간이 있고 이층에는 방과 긴 마루가 있다. 상주지역은 한겨울의 추위도 추위지만 한여름의 더위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태양열로 뜨거워진 땅의 열기를 피해 입면구조가 고상식 주거로 정착된 것이다. 그 결과 양진당을 비롯한 상주의 고상식 겹집형 주거들은 한여름의 더위와 낙동강의 범람, 한겨울의 추위와 눈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시인·건축가}

수박씨닷컴 아이셀파 하이퍼센트 이투스 엠베스트 엠쥬니어 IB96…. 언뜻 봐서는 무엇을 나열한 것인지 알기 힘들다. 중고교생 자녀에게 물어보면 금방 대답할 것이다. 인터넷 강의 사이트들이다. 학생들은 줄여서 ‘인강’이라 부른다. 인강은 학원을 오가는 시간, 수업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준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 휴대용 정보기술(IT)기기를 활용할 경우 자투리 시간에 아무데서나 시청이 가능하다. 요즘은 사법시험, 공무원시험, 컴퓨터자격시험, 토익 준비생들을 위한 인강도 꽤 활성화돼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EBS 강의와 연계돼 출제되면서 ‘EBS 수능 인강’이 특히 인기다. 무료이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데다 실력 있는 인기 교사 및 강사가 대거 출연해 “EBS 수능 인강만 제대로 들으면 꼭 학원 다닐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교육과학기술부는 EBS 인강을 통해 사교육비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농어촌 지역이나 오지의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기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기주도적 학습’ 방식인 인강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 어린 학생이 스스로 강의를 선택해 꾸준히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니터에서 툭하면 팝업 창이 뜰 경우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야 인강을 들을 수 있으므로 게임의 유혹도 따른다. 수강 장소를 일정한 곳으로 정하고 자신만의 계획표를 준비해 체계적으로 수강해야 도움이 된다. 강의 중 메신저나 웹서핑은 절대 금물이다. 휴대용 IT기기를 이용하는 것은 자기통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나 적합한 수강 방식이다. ▷EBS가 중학생을 대상으로는 유료 인강을 하고 있다. 가격도 사교육업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EBS 관계자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가 있어 중학생 과정을 개설했다. 고교생의 수능 관련 강의는 정부 지원을 받지만 초·중학교 과정은 지원이 없어 자체 수익이 있어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EBS는 공영방송이다. KBS가 받는 수신료에서 일정 부분을 지원받고 있다. 중학교 인강도 공영방송답게 무료로 제공해야 옳다. EBS는 수능 교재를 팔아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교과부도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 주려면 인강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1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테살로니키의 국립극장은 5일부터 관람객들에게 티켓 대신 밀가루, 국수, 쌀 한 포대씩으로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재정위기 이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실업자도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극장 측은 티켓 대신 받은 식료품을 고아, 싱글맘 등을 돕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2 올해 1월 초 아테네 피나코테크 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약 550만 유로·약 80억 원)를 비롯해 몬드리안의 작품, 17세기 이탈리아 그림 등 작품 3점을 도난당했다. 2월에는 고대 올림픽 경기의 발상지인 올림피아 박물관에 총을 든 두 명의 강도가 침입해 청동조각상 63점과 항아리 등 전시유물을 훔쳐갔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문화가 위험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2년간 긴축정책으로 문화예산을 대폭 줄인 데다 길거리 민심도 흉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인 지시스 파라스 씨는 “길가에 아이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깨진 항아리 조각에 관심을 쏟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2009년 경제위기가 시작된 이후 문화 분야 예산을 35%나 줄였고, 2000명이 넘는 공무원을 해고했다. 올해 문화유적 보호예산은 2010년 대비 50%나 줄었다. 다음 달에는 인력 40%를 추가로 감축할 예정이다. 문화예산이 줄어든 데 따라 정부 예술단체 소속 예술가들은 대폭 삭감된 임금조차도 8개월∼1년짜리 어음으로 받고 있다. 그리스 극장연합회 측은 “일부 극장에서 현물로 표를 받는다는데, 앞으로 배우들도 유로로 월급을 받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리스 북부지역 파블로스 크리스토무 유적지에선 정부 발굴이 중단된 이후 도굴꾼들이 파낸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10개나 발견됐다. 이 때문에 발굴이 중단된 유적을 다시 덮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가 12일 총 3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인문서로는 국내 초유의 기록이다. 1993년 출간된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북한 문화유산을 다룬 4∼5권, 지난해 발간된 제6권까지 20년 세월에도 이 시리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15일 서울 경복궁 옆 전통레스토랑 ‘두가헌’에서 그를 만나 소감을 물었다. 그는 “인문서의 대중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첫 권이 출간됐을 때 교보문고 도서 분류에 ‘인문’ 파트가 없었어요. 그냥 도서관처럼 소설, 비소설, 역사, 종교, 문학 등으로 돼 있었죠. 어떤 교수는 서평에서 ‘유홍준 답사기의 가장 큰 의의는 베스트셀러의 수준을 높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베스트셀러 하면 싸구려 문화의 상징처럼 돼 있었는데, 좋은 책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것이죠.”―인세 수입도 상당하지요.“지금은 창비에 신경숙, 공지영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지만 당시 제 책과 동의보감이 밀리언셀러로 처음이었어요. 창비는 두 책으로 30년 적자를 면하고 건물도 샀죠. 인세 수입은 집사람이 부동산도 펀드 투자도 안 하고 모두 정기예금에 넣어놨어요. 저는 문화재청장으로 재산 공개할 때 정확한 액수를 알게 됐어요. 모두 17억 원이었는데, 덕분에 공직자 중 현금보유액 순위 2등을 했습니다.”유 교수는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꼽았다.“대학 때 읽었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제 전공을 미학에서 미술사로 바꾸게 한 결정적인 책입니다. ‘서양미술사’는 대중적인 눈으로 미를 보는 방법을 깊이 있게 가르쳐 주었지요. 우리나라에도 곰브리치가 쓴 것처럼 제대로 된 ‘한국미술사’가 있으면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크게 달라질 겁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은 우리말이 갖고 있는 조선인의 정서가 뭔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책입니다.”―기행문학도 많이 읽으셨나요.“답사기를 쓰기 전에 읽어본 적은 없어요. 육당 최남선이 1925년 남도를 답사하고 쓴 ‘심춘순례(尋春巡禮)’도 제 답사기가 나온 후에 읽어봤어요. 그 책을 읽었더라면 ‘남도답사 일번지’를 못 썼을 겁니다. 육당이 이야기한 이미지에 씌어서 내 글을 못 썼을 거예요. 19세기 스위스 미술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쓴 ‘치체로네’라는 책은 부제가 ‘로마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예요. 저도 언젠가 ‘경주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답사기 1∼3권에는 경주가 다 들어갔어요. 경주가 갖고 있는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그렇게 강하니까요.”―책에 나오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너무도 유명해졌는데요. 과도한 사전지식은 고정관념을 낳지는 않을까요.“고(故) 박완서 선생이 추천사에서 ‘나는 한때 유홍준의 신도였다. 유홍준이 보라는 대로 보고, 유홍준이 아름답다는 대로 아름다움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유홍준의 신도가 아니다. 이제는 내 시각대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유홍준이 시키는 대로 해봤기 때문에 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라고 쓰신 적이 있어요. 그게 핵심 아닐까요. 교육과 훈련은 처음엔 모방에서 나오는 겁니다. 사전지식이 더 깊이 보게 하고, 보고 난 후에는 나만의 시각과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나게 합니다.”창비는 27일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300만 권 기념 북콘서트를 연다. 유 교수는 6월경 제주도 편을 다룬 ‘답사기’ 7권을 출간할 계획이다. “앞으로 중국 만주에 있는 고구려 문화, 일본 교토 나라 오사카에 있는 한국 문화를 다룬 책도 펴내고 싶어요. 올해 예순세 살인데 답사기를 졸업하려면 칠순이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상파 화가의 거장 클로드 모네는 대단한 미식가였다.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할 때에도 재료의 품종부터 신선함과 맛까지 세밀하게 따졌다. 지베르니로 이사 갔을 때 모네 일가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정원을 가꾸고 채소밭을 가꾸는 것이었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정원은 사실 모네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는 채소밭이요, 닭과 오리를 키우는 마당이기도 했다. 미술사가인 저자가 ‘그림같은’ 식탁 이야기를 통해 모네의 삶을 들여다본다. 책 후반에는 모네의 ‘요리수첩’도 실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 해의 시작은 봄에 있고, 인생의 봄은 청춘이다. 봄의 문턱에서 중국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청춘에 관한 책들을 모아 봤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活着已値得慶祝)’는 양팔이 없는 피아니스트의 감동적인 자서전이다. 저자 류웨이(劉偉·25)는 10세 때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하지만 중국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땄으며, 발가락 타자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다. 19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1년 만에 리처드 클레이더먼의 ‘꿈속의 웨딩’을 발가락으로 연주했다. 2010년 8월 중국판 ‘코리아 갓 탤런트’ 프로그램인 둥팡(東方)위성TV ‘중국다런슈(中國達人秀)’에서 이 곡을 연주해 일약 스타가 됐다. 류웨이는 이 책에 중증장애인인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로도 제작돼 올해 개봉될 예정이다. “이 책을 읽은 뒤 생활은 영원히 희망과 역량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살아있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서평이 나왔다. 중국의 20, 30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신세대 작가 한한(韓寒·30)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출간한 수필집 ‘청춘(靑春)’에서 냉소적인 화법으로 성장을 이야기한다. “‘이상’이라는 것은 꾸며진 가상일 뿐 우리의 현실에서 꿈꿀 수 있는 공간이란 없다”, “어렸을 때 해보지 못하면 평생 갈증을 느낀다. 아이가 물건 부수기를 좋아하면 부수게 놔두라. 크면 다시는 부수지 않을 테니….”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5개월 연속 관련 분야 1∼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지독한 세상이니 마음이 강해야 한다(世界如此險惡니要內心强大)’는 책 이름부터 심상찮다. 지난해 7월 출시돼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매달 판매량 1위를 독차지하다시피 해왔으며 올해 들어서도 한한의 ‘청춘’과 1, 2위를 다툰다. 저자 스융(石勇·37)은 삶의 태도에 따라 인간형을 ‘콤플렉스형’ ‘독점형’ ‘공격형’ ‘자화자찬형’ ‘적극적 표현형’ 등으로 분류한 뒤 이들이 살아가는 심리 상태를 해부하듯 조목조목 분석했다. 무엇이 우리를 비겁하고 소심하게 만드는지, 어떻게 자신감을 찾아야 하는지 등등을 자가 진단한 뒤 처방을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나이가 든 사람이라고 모두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만 먹었을 뿐 인격이나 심리 상태는 아직도 유년 시절에서 멈춘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그는 책 영화 음악 리뷰 사이트인 ‘더우반닷컴(豆瓣·www.douban.com)’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다양한 사회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많이 쓰고 있다.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