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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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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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2-27~2026-03-29
문화 일반31%
여행27%
사회일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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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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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경영]TV 앞 앉은채 숨진 남자, 장수의 저주가…

    장수(長壽)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추구해온 꿈이었다. 최근 100년 동안 이 꿈은 전에 없는 정도로 실현됐다. 이 기간에 미국의 경우 남성 평균 기대수명은 47.9년에서 74.9년으로 늘어났다. 2050년에는 100세 이상 인구가 6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DC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그러나 장수 사회가 인류에게 축복만은 아니다. 이 두 책은 준비 없이 장수 시대를 맞게 된 현대사회의 그늘을 조명한다. ‘세대충돌’의 저자는 미국의 재정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첫 번째 이유로 ‘국민의 장수’를 꼽았다. 장수의 꿈을 실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미국인은 이 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식 부채는 약 11조 달러. 그러나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복지 프로그램을 위해 지출해야 할 금액과 미국 정부가 거둬들일 세금 수입의 차이를 나타내는 ‘재정격차(fiscal gap)’는 211조 달러에 이른다. 저자는 이를 근거로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파산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가장 ‘파멸적인 성공’은 은퇴를 ‘보수가 높은 장기적 직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현재 은퇴자 1인당 사회보장연금과 건강보험으로 매년 3만 달러 이상이 든다. 미국 1인당 국민소득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돈이다. 저자는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은 폰지 사기꾼(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범)과 같다”며 “현 세대의 빚을 미래 세대에게 지우는 ‘행운의 편지’ 돌리기가 끝나면 붕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80대 이상의 평균 소비는 164%나 늘어난 데 비해 20대의 평균 소비는 38%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노년층의 주택담보대출은 상환할 수 없을 때 집을 포기하면 사라지지만 젊은층의 학자금대출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경제위기와 취업난까지 겹쳐 젊은층의 빈곤을 가속화하고 있다.‘무연사회(無緣社會)’는 고령화 시대에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혼자 죽는 사람이 늘고 있는 일본 사회의 그늘을 보여준다. 2008년 11월 5일 오후 3시 15분경 일본 도쿄 도 오타 구 히가시로쿠고의 다가구주택 2층 거실에서 한 남자가 양반다리를 하고 앞으로 쓰러져 넘어진 채 부패한 상태로 발견됐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는 TV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심층취재를 통해 이처럼 연고자가 없어 지방자치단체가 공적비용으로 화장하거나 매장하는 사람의 수가 3만2000여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취재팀은 사망 현장에 남겨진 얼마 되지 않은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좇는 형사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되짚는 취재를 해나갔다. 충격적인 것은 가족이나 친족이 있는데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미 살아 있을 때부터 수십 년간 가족이나 친척과 떨어져 ‘무연’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무연사의 현장에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겨났다. ‘특수청소업’이다. 유족을 대신해 유품을 정리하는 전문업자다. 전국적으로 30개사가 성업 중이다. 생전에 가족 대신 사후정리를 해주는 자원봉사단체에는 고령자뿐만 아니라 50대 신청자도 몰려든다고 한다. 무연고 묘지가 될 우려 때문에 모르는 사람 수백 명과 함께 묻히는 ‘공동묘’를 예약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무연사가 늘고 있는 것은 ‘독신화’ ‘미혼’ ‘저출산’ 등으로 인한 가족 형태의 변화가 큰 원인이다. 50세 시점에서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평생미혼율’이 남자의 경우 2005년 16%였는데, 2030년에는 거의 30%로 3명 중 1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젊은 미혼자들까지 ‘나도 무연사할 수 있다’며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1인 가구는 직장을 다닐 때는 괜찮지만 구조조정, 해고, 정년퇴직, 건강악화로 직장을 잃고 나면 순식간에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책은 경제위기 속에서 장수 사회의 우울한 면만 다룬 측면이 없지 않다.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는 나라도 있다. ‘세대충돌’의 저자는 미국의 ‘세대 간 제로섬 게임’이 “남의 자녀는 내 자녀로 보지 않는 다인종 사회의 그늘”이라며 세대 간의 ‘경제적 이타주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한국 사회도 고령화 저출산이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미국의 ‘세대충돌’과 일본의 ‘무연사회’의 교훈을 깊이 되새길 때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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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생산하고 창조하던 인촌의 삶 자체가 근대화”

    “독립을 위해 먼저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안창호 선생의 실력양성론은 인촌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생산하고 건설하고 창조하고 확장하는 삶을 살았던 인촌은 근대화의 진정한 초석을 깔았던 인물이지요.” 백완기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76)가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의 실천적 삶의 철학을 조명한 ‘인촌 김성수의 삶-인간자본의 표상’(나남)을 펴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교육가 언론인 기업가 정치인 등 다양한 역할을 했던 인촌의 사상과 행적을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인촌은 누구보다 힘의 논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가장 급한 것은 사람을 키우고, 기술을 배우고, 산업을 일으켜 물리적 힘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이 때문에 일본 유학시절부터 자유주의와 민권사상, 근대화를 배우고 교육과 산업을 일으켜 구국의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백 교수는 “인촌은 3·1운동에 가담하면서 직접적인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했다”며 “하지만 일회적인 충돌보다는 지속적으로 힘을 기르는 독립운동에 역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인촌의 삶을 ‘공존적 상생’이란 키워드로 분석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인촌만큼 재산이 있던 사람은 많았지만 인촌처럼 자신의 재산을 독립을 위해 활용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촌이 전국을 돌면서 주주를 모집하고,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을 설득하고, 지주 출신인데도 농지개혁에 앞장선 것은 공존과 상생의 자본주의를 앞서 실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백 교수는 인촌의 주변에 수많은 인재가 몰려들었음을 강조하며 “인촌의 다양한 물적 사업도 연구해야 하지만 인적자본에 대한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촌이 수많은 인재를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따라가는 리더십’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차이를 분별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김구가 이끄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지지했지만 남북 협상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했고, 인간적으로 가까웠던 여운형이 좌파의 길을 걸을 때나 초대 대통령으로 지지했던 이승만이 집권 후 독재의 길을 갈 땐 맞서 투쟁했습니다. 인촌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와 싸웠고, 광복 후에는 공산주의와 싸웠고, 건국 후에는 독재와 싸웠습니다.”군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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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서양의학은 암을 치료한 적이 없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저자는 그의 말기 췌장암 치료에 참여한 주치의 중 하나였다. 그는 “게임의 막판에, 뒤늦게 발견한 진행된 암 치료를 위해서 의사를 찾아온다면 게임은 곧 끝나고 만다. 나는 진행된 암은 치료할 수 없는 종양학자다”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20년간 암 전문의와 연구자로 이름을 날려 온 저자이지만 이 책은 암 치료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현대 서구의학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패러다임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2009년 덴버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우리는 지난 50년간 암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우리는 실수를 해왔다”고 발언해 파란을 일으켰다. 1950년부터 2007년까지 심장병, 뇌중풍(뇌졸중), 폐렴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60∼70%까지 줄어들었지만, 의료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에 의한 사망률은 8%밖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저자는 그 이유를 20세기 서구의학이 맹신해온 ‘질병 감염설’에서 찾았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침입한 감염원(세균, 바이러스)에서 찾을 뿐, 감염이 일어난 장소(인체)는 생각하지 않는 자세다. 암 역시 침입자처럼 다뤄져 잘라내거나 독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치료돼 왔다. 그러나 ‘암은 감염성 질환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암은 우리 몸의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던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돌연변이 세포인 종양이 자기증식하는 것이지 외부의 침입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암이 현대 산업사회의 공해와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환경독성물질과 관계가 있다는 말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원전 3000년∼기원전 1500년에 기록된 7개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암 증상이 기록돼 있듯 암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만병의 황제’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암과 같은 병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암을 결코 치료한 적도 없다. 몸과 병의 관계를 새로운 복잡계로 바라봐야 한다. 종양 자체도 간, 심장, 폐처럼 우리 시스템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몸을 복잡계로 모델화하면, 곧 우리 몸의 기본 요소들을 모두 이해할 필요 없이 조절한다면, 언젠가는 ‘마법의 탄환’을 실제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암과 싸워 이기기보다는 암을 예방하고 조기 진단함으로써 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유전자학과 단백질체학 기술을 활용한 개인형 맞춤치료다. 그는 최첨단 컴퓨터 기술로 단백질 세포의 미세한 신호를 분석해 일기예보처럼 개인의 몸 상태를 진단해내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는 이를 위해 ‘어플라이드 프로테오믹스’와 ‘내비제닉스’라는 의료기술 회사를 설립했고, 자신의 실제 유전자(DNA) 프로필을 책 속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합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통해 인간이 질병 없이 장수하다가 스위치를 내리듯 죽음을 맞는 ‘질병의 종말’의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본다. 이 책은 숱한 의료계의 논란 속에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10주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새롭지 않게 읽힌다. ‘몸과 병을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동양의학에선 질병을 없애는 데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질병이 생겨난 몸을 제대로 살펴 양생(養生)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몸이다”(신토불이) “개인의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해야 한다”(사상의학)는 말도 분명 우리는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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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5세’ 초연 400여년 전 英 커튼 극장 유적지 발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5세’가 초연됐던 커튼 극장의 유적지가 영국 런던에서 발견됐다. 런던 고고학박물관은 템스 강 동쪽의 번화가인 쇼디치 지역의 한 재개발 공사장에서 커튼 극장의 객석 토대 부분과 외부 벽 등을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커튼 극장은 1622년 청교도들이 폐쇄한 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템스 강 주변에 글로브 극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1597년부터 2년간 커튼 극장에서 주요 작품을 상연했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커튼 극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셰익스피어가 로즈 극장과 커튼 극장 사이의 세력 다툼을 몬태규가와 캐퓰렛가의 집안싸움으로 바꿔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또 로즈 극장이 공연 정지를 당하자 라이벌인 커튼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초연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셰익스피어는 ‘헨리5세’의 프롤로그에서 이 극장의 무대를 묘사했다. “이 작은 투계장 같은 공간에 프랑스의 광활한 들판을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아니면 아쟁쿠르(프랑스 북부의 작은 마을)의 공기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수많은 투구를 이 극장 안에 다 집어넣을 수 있을까.” 커튼 극장 터는 지난해 10월부터 재개발되고 있다. 설계회사 측은 “새로운 빌딩에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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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진실일까. 현대의 물리학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데까지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엄청난 인식의 발전을 가져왔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준 것은 현미경과 망원경이다. 네덜란드의 과학자 판 레이우엔훅(1632∼1723)은 자신이 직접 렌즈를 깎아 만든 현미경으로 세계를 들여다봤다. 이 책은 그 관찰기록을 이렇게 전했다. “벌레, 우물물, 입 안에서 긁어낸 표피, 한 방울의 피….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 그는 그 안에서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고 사로잡혔다. 그는 최초로 박테리아를 발견했고 이스트균을 보았다. 그는 핏속에서 혈구를 발견했고 움직이는 정자를 처음으로 보았다. 물방울 하나 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가득 차 있는지. 그것은 경이와 감동의 세계였다. 우리가 보고 있던 것은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미경과 천체망원경이 발달해도 소립자의 세계나 우주 바깥에는 아직도 볼 수 없는 것이 많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블랙홀은 강한 중력 때문에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눈으로 볼 수 없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물리학 이론뿐이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던 저자(건국대 물리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오직 현대물리학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현대물리학에서 양성자를 비롯한 하드론(강한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소립자)을 이루는 기본 입자로서의 ‘쿼크’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 대칭성을 통해 사유한 끝에 나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쿼크는 자연에 존재하는 실재라기보다 단순한 가설로 여겨졌다. “중성미자가 상호작용이 너무 약해서 볼 수 없었던 것과 반대로 쿼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상호작용이 너무 강해서이다. 너무 강한 상호작용이 쿼크 주변에 장막을 둘러쳐서 곧 하드론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쿼크는, 쿼크만을 따로 떼어내서는 볼 수 없고 항상 하드론 상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자, 이런 대상을 과연 우리는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가 결국 던지고 싶은 질문은 ‘본다’는 것의 의미이다. 현대물리학의 세계가 일반인에게는 보이는 실재가 아니라 관념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 같다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생각하고,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과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며 “결국 ‘본다’는 것은 자연과학의 시작이고 끝일 뿐 아니라 자연과학 그 자체”라고 말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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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마을입구 당산나무… 수호神의 모습인가 쓸모없는 고목인가

    마을을 지키는 신목(神木)은 농경문화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다. 마을 입구에 심은 당산나무는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고, 재앙을 막아주며, 동네의 쉼터이자 사랑방의 구실을 해왔다. 이 책은 청학동, 운주사, 장승 등 사라지는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저자가 30년간 찍어온 당산나무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을 과거의 수많은 변화를 묵묵히 보아온 산증인. 카메라에 원경으로 찍힌 당산나무는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어떤 나무는 도로 옆으로 위태롭게 밀려 나와 마을 밖으로 내쫓길 운명에 처하기도 하고, 보호수로 지정받아 철창 속에 갇혀 버리기도 한다. 또 다른 당산나무는 밭 한가운데 고립된 채 쓸모없는 고목이 돼 버렸다.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을공동체의 쇠락을 상징한다. 그러나 마을은 변했어도 나무는 그대로다. 초라한 마을 주변 모습에 비하면 나무의 웅장한 자태는 여전하다.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엿본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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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북카페]강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은 영국 문화계가 즐겨 쓰는 소재다. 수많은 책과 영화들이 그들의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했고, 할리우드도 ‘튜더스’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이 있다. 670쪽이 넘는 이 책은 맨부커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았던 책으로 꼽힌다. 그가 3년간의 침묵을 깨고 5월에 내놓은 신작 ‘시체를 대령하라(Bring Up the Bodies)’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예견된 바였다. 이 책은 ‘울프 홀’의 후속작이자 그가 예정한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편에서 마침내 헨리 8세의 사랑을 차지하고 왕비가 된 앤 볼레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헨리 8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이 주로 헨리 8세 혹은 앤 볼레인인 데 비해 맨틀의 3부작은 제1대 에식스 백작인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제1대 백작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크롬웰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장관의 자리에 오르고, 그에 따라 귀족의 칭호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울프 홀’에서 크롬웰은 앤 볼레인을 도와 헨리 8세가 첫 부인과 이혼하고 바티칸과 절연한 후 영국 성공회를 만들도록 하는 데 큰 공헌을 한다. 대장장이의 아들에 불과한 크롬웰이 어떻게 상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그 이후 앤 볼레인과 결탁해 그 자신은 신분 상승을, 앤 볼레인은 왕비의 꿈을 이루게 만드는지가 ‘울프 홀’의 핵심이다. 후속작은 원하던 바를 얻은 두 사람의 동맹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이 영리한 두 남녀의 두뇌 싸움의 승자가 과연 누구인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결국은 조금 더 ‘영리하게 처신한’ 크롬웰이 승리하고 앤 볼레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2000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던 마거릿 애투드는 “맨틀의 문학적 창조성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의 글솜씨는 여전히 능숙하고 노련하다”고 호평했다. 사실 크롬웰의 모습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아슬아슬한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의 균형,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모습, 한마디 잘못한 말로 목이 달아나는 상황도 그렇다. 2008년의 경제 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 한파’가 다시 찾아왔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영국 정부에 대해 영국 국민들은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크롬웰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과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진 정치가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고로 영국 내전 당시 공화정을 수립하는 올리버 크롬웰은 이 토머스 크롬웰의 누이인 캐서린 크롬웰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 201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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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자외선이 만든 피부색의 비밀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장. 처음으로 시체를 해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꺼림칙함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차근차근 피부를 제거해감에 따라 망설임은 사라진다. 피부 밑으로 근육, 신경, 힘줄들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피부가 완전히 사라진 뒤 학생들은 비로소 복잡하고 신비한 인체 내부를 열정적으로 탐색하게 된다. 피부는 과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얇은 막에 불과한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3억 년에 걸친 인류 피부 진화의 역사를 연구해 왔다. 이 책에서 그는 피부가 가진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의미를 폭넓게 고찰한다. 한 사람이 가진 피부의 평균 넓이는 약 2m²(약 0.6평), 무게는 4kg이다. 우리 신체에서 가장 크고 뚜렷하게 보이는 기관이기도 하다. 몸을 보호하고, 감각을 느끼고, 정보를 수집하고, 나를 알리는 광고판이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역할을 하는 핵심 기관이 피부다. 인간의 피부가 여타 포유류와 다른 점으로 저자는 세 가지를 꼽는다. ①털이 없고 ②지역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을 갖고 있으며 ③피부에 인위적으로 색칠하고, 구멍을 뚫고, 흉터를 남겨 장식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람 피부에 털이 없는 이유는 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뇌 용량이 커서 몸 안팎에서 발생하는 많은 열을 효과적으로 식혀야 하는 인간은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리고 빨리 증발시키기 위해 털을 없애게 됐다는 설명이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개는 땀을 흘리기보다는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며 더위를 식힌다. 또 인간은 다른 포유류처럼 털을 곤두세울 수 없기 때문에 얼굴 피부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설명하는 부분은 ‘피부색’이다. 피부색은 인류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시켜온 정교한 생존전략일 뿐, 인종주의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피부색은 자외선의 강도와 가장 큰 관련이 있다. 자외선은 인체 생존에 꼭 필요한 엽산과 비타민D 생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햇빛을 차단하는 피부 속 멜라닌 색소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피부색이 변화해온 것이다. 그런데 백인들이 검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감정도 없고, 수치심도 없는 열등한 존재(피부색이 옅은 사람들은 부끄러울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게 눈에 잘 뜨인다)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피부색이 인종이라는 파괴적 개념과 연계됨으로써 인류의 분열에 기여한 것은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한다.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성(性) 기관이기도 하다. 섹스에서 얻는 기쁨의 대부분 또는 상당 부분은 피부 접촉에서 얻어진다. 이렇듯 피부는 중요한데도 사람들은 그 존재 의미를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 ‘낯짝 두껍다’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한다’ ‘닭살 커플’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면서도 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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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스마트해지고 싶니? 3가지만 콕 집어 기억하라

    ‘스마트(Smart)’가 대세다. 스티브 잡스가 휴대전화에 인터넷통신, 컴퓨터 기능을 결합해 내놓은 ‘스마트폰’은 우리 삶의 혁명을 가져왔다. 가전제품도 스마트 TV, 스마트 에어컨으로 진화하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조합한 ‘스마트 외교’를 주창한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수사의 과학화와 정확 신속성을 내세운 ‘스마트 수사’를 표방했다. 전쟁터에서마저 ‘스마트 폭탄’이 사용된다. ‘스마트’라는 말은 원래 ‘맵시 있다’ ‘똑똑하다’ ‘말쑥하다’ 등의 뜻의 형용사였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융합된’ ‘창의적인, 혁신적인’이란 뜻이 더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덜 스마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깜빡 집에 두고 나오면 자기 집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내비게이션 없이는 여행을 떠날 엄두도 못 낸다. 탁월한 생각, 독특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스마트 싱킹’은 지능지수(IQ)가 높은 천재만의 전유물일까. 미국 텍사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지난 50년간의 인지과학 발달 덕택에 이제 우리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며 “누구나 스마트해지는 데 필요한 능력의 90% 이상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는 ‘3의 법칙’을 내세운다. 인간의 뇌는 아무리 많은 정보가 주어져도 한순간에 세 가지 정도만 인식하고 기억한다. 드넓은 야구경기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관중의 기억에 남는 것은 투수와 타자, 흰 공 정도밖에 없다. 영화를 한 편 보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녀와도 시간이 흐르면 대략 세 가지 정도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람은 ‘청각 루프’라고 불리는 종류의 기억에서 약 3초에 이르는 정보를 기억할 수 있다. 지식이나 경험을 기억할 때는 3가지 정도로 요약해서 저장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한 회의나 발표에서 남을 설득할 때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3가지 요점으로 주지시켜야 한다. 장황한 설명은 효과가 없다.” 저자는 요즘 스마트해 보이는 사람들이 흔히 몰두하는 멀티태스킹을 그만두고, 새로운 고품질의 지식을 습득하는 데 힘 쓸 것을 주문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해”라고 장담하지만, 우리 뇌의 능력은 그렇지 않다. 창조적 생각은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지식, 경험과의 연관성을 비교하고 유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이 욕탕에 더 깊이 들어가 앉을수록 더 많은 물이 흘러넘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이 발견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욕탕에서 벌거벗은 채 ‘유레카!’라고 소리치며 길거리로 뛰어나갔다고 한다. 왜 아르키메데스는 이 관찰에 크게 흥분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가 욕탕의 상황과 자신이 해결하려고 애쓰던 문제를 비교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처럼 새로운 경험과 과거의 지식을 결합해 창조적 생각을 해낸 수많은 사례를 소개한다. 사이클론 청소기를 발명한 제임스 다이슨, 상어 피부를 모방해 패스트스킨 수영복을 개발한 피오나 페어허스트, 포스트잇을 발명한 3M 등은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교착 상태를 스마트 싱킹으로 극복한 사례다. 이 책은 기업뿐 아니라 시험을 앞둔 수험생, 회의나 발표를 앞둔 회사원에게도 유용해 보인다. 특히 정보를 기억에 저장하는 법뿐만 아니라 정보를 적절하게 꺼내 쓰기 위해 연관된 맥락을 이용하는 ‘점화효과’의 설명도 이로울 듯하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라, 그 대신 먼저 더 스마트해지도록 노력하라”고 책은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스마트 싱킹’은 깊이 있는 인생의 철학적 사고라기보다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한층 실용적인 기술에 가깝다. 일상의 세세한 일은 무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습관을 통해 ‘생각의 자동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문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우리는 무심코 반복되는 일상의 문제를 뒤집어 생각해봄으로써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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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z books] 역사적 전투속에서 건진 뻔하지 않은 교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전 가운데 하나가 ‘손자병법’이다. 한국에 군인이 많아서일까. 아니다. 사실 손자병법의 애독자는 경영자, 경쟁에서의 승리와 자기개발에 목말라 있는 직장인들이다. 경영현장, 삶의 현장 자체가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우리 삶이 너무 각박하고 고단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 표현은 잘못됐다. 경영이 전쟁이 아니고, 전쟁이 경영이다. 그래서 군사학과 마케팅은 개념과 용어를 공유하고, 전쟁사는 경영의 지혜, 자기개발, 인생설계와 성찰에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그러나 막상 전쟁사를 통해 지식의 포만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전투 현장의 리포트는 생생하지만 너무 낯설거나 방만하다. 이야기를 압축하고 정제된 교훈을 뽑아내면 너무 뻔하거나 듣기 좋은 이야기로 정리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다. “병사들이 하나로 단합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어떻게 해야 하나로 단합할 수 있을까. 상대편은 왜 단합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정말로 하나로 단합하면 창과 칼로 무장한 군대가 탱크부대를 물리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역사 속의 전쟁’이라는 주제를 천착해 온 저자가 지난 3년간 경영전문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연재하고 삼성경제연구소 CEO 포럼(SERI CEO)에서 강연했던 글 가운데 25편을 추려 새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은 뻔한 결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교훈을 미리 설정해 놓고 전투의 교훈을 거기에다 끌어 맞추는 얄팍한 수법도 없다. 세상을 바꾼 동서양의 중요한 전투들을 전투 그 자체로 분석하고 교훈을 찾는다. 스팍테리아 전투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스파르타군이 아테네군에 패했다. 보통은 경보병을 이용해 둔한 중장보병의 약점을 공략한 것이 승리의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의견은 다르다. 그리스인들은 중장보병의 약점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중장보병 중심의 전술체제가 자신들의 신분적 특권과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작은 승리를 위해 신분적 특권을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이 그리스인의 진심이었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이 좁은 생각 때문에 파멸했다. 2000년 전의 이 교훈을 보면 현재의 그리스 사태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리스인들이 아직까지 스팍테리아 전투의 진정한 교훈을 배우지 못한 때문일까. 저자는 정통 역사학자이면서 전쟁과 군사학에 대해 직업군인 못지않은 해박하고 날카로운 식견을 지녔다. 그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참신하고 통찰력 넘치는 역사의 일화와 교훈을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경영과 자기개발, 또는 인생의 지침서로서도 유익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인 ‘인문학적 통찰력’이라는 관점에서도 흥미를 끈다.여현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201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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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성예찬]예술제본 전문가 조효은 씨

    《 유럽을 여행하다가 고성(古城)을 방문하면 왕가나 귀족들의 도서관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나 영화 ‘해리포터’에서 봤음 직한 중세의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 있었다. 현대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모두 울긋불긋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데, 중세 도서관의 책들은 어떻게 수만 권이 한 곳에서 나온 것처럼 비슷한 색깔의 가죽장정과 금박문양 표지에 싸여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옛 유럽 왕가나 귀족들은 전속 제본가를 두고 평생 책을 제본하게 했지요. 중세에는 책을 낱장으로 인쇄해 표지도 없이 최소한의 실로 묶어 팔았어요. 그래서 똑같은 내용의 책도 소장자나 제본가에 따라 독특한 문양을 가진 표지를 갖게 됐지요.” 》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부근에 있는 예술제본 전문공방 ‘렉토베르쏘’의 대표 조효은 씨(33). 전자책(e북)이 대세인 21세기에 그는 종이책을 직접 손으로 꿰매고, 가죽을 다듬고, 문양을 입혀 책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작업에 푹 빠져 있는 장인이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김아중이 맡은 여주인공 직업이 예술제본가였다. ‘렉토베르쏘(Recto Verso)’란 책의 앞장과 뒷장을 뜻하는 라틴어. 1999년 파리예술제본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백순덕 씨가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예술제본 전문공방이다. 2008년 백 씨가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엔 수제자였던 조 씨가 공방을 운영하며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곳에서 전문과정까지 마친 예술제본가는 국내에 15명 정도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2001년 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던 중에 TV를 통해 예술제본을 알게 됐죠. 처음엔 취미로 배웠는데, 석 달 후에 ‘평생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맘이 들더라고요. 학교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10년 넘도록 공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술제본은 건축과 비견된다. 책이라는 구조물을 낱장으로 일일이 떼어내는 해체작업을 거쳐 보수와 복원을 하고, 다시 조립하는 60개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공방에는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프레스, 조합기, 재단기, 책을 매달아 실로 꿰매는 수틀, 망치, 톱과 같은 크고 작은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종이와 노끈, 실, 풀, 헤드밴드용 비단 등 재료만도 50가지가 넘는다. “3년 전 한 노신사가 독일에서 구한 괴테의 ‘파우스트’ 초판본을 제본해 달라며 왔어요. 워낙 귀한 책이라 작업하면서 꽤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서양의 제본문화를 알고 계셨어요. 굉장히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주문하셨는데, 작업자로서 귀찮다기보다 제 일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책 한 권에 80만∼100만 원, 기간도 최소 두 달에서 1년씩 걸리는 예술제본을 맡기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문학과지성사는 ‘깊이읽기’ 시리즈의 동인 회갑연 때마다 저자 선물용으로 제본을 의뢰해 왔다. 아내의 박사학위 논문, 20년 동안 쓴 자녀의 육아일기를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조 씨는 “제본가란 인류의 지적자산인 책에 새로운 생명력을 주어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전달자”라며 “책을 사랑하는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감각,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의뢰인이 가져오는 새로운 책을 만날 때 가장 설렙니다. 제본을 하다 보면 책 속에서 메모지도 발견하게 되고, 네잎 클로버도 만나게 됩니다. 책이란 단지 지식만 얻고자 읽는 게 아닙니다. 그것뿐이라면 전자책으로도 충분하겠죠. 책의 무게감, 감촉,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얻는 감성적 위로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종이 질부터 일러스트, 편집까지 정성이 깃든 책을 저는 사랑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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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잔]‘침묵의 봄’ 선진국엔 오지 않는다… 박석순 환경과학원 원장

    “가난이 환경의 최대 적이고, 부강한 나라가 환경을 지킵니다.”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이 ‘부국환경이 우리의 미래다’(사닥다리)를 펴냈다. 많은 환경운동가가 반(反)문명,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상황에서 “부국(富國)이 되는 것이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사뭇 논쟁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부유한 생활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며,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주장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생태근본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연계의 암적인 존재로,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이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입니다.” 박 원장은 “환경비관론자들은 환경에 대한 충격적 경고를 위해 ‘슬픔을 파는 장사꾼’의 역할을 해왔다”며 “그러나 레이철 카슨이 예언한 ‘침묵의 봄’도 오지 않았고, 선진 산업국가에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숲의 면적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 산업사회에서 나타난 환경과 경제의 상생현상을 ‘유턴이론’으로 설명한다. 초기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오염이 가중돼 환경의 질이 저하되는 ‘잿빛성장’을 하지만 경제성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기술이 향상돼 환경이 다시 회복되는 ‘녹색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었던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도쿄 등 대도시의 대기는 훨씬 맑아졌다. 미국의 국립야생생물보호구역은 1964년 3만600km²에서 1994년에는 42만 km²로 급속히 늘어났다. 반면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하에 있던 동독과 체코, 폴란드는 유럽 최악의 환경오염 지역이 됐다. 러시아와 중국도 마찬가지며 북한도 식량과 에너지난으로 인한 산림훼손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2005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환경지속성지수에서 북한은 146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박 원장은 “서방세계의 환경을 다시 살린 일등공신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며 “사회주의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는 시민들이 투표권을 갖고 친환경 정책을 펴는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부국이 된다고 무조건 환경이 좋아진다는 단순한 논리는 아니다”라며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정부의 바른 환경 및 경제성장 정책, 국민의 의식과 생활방식에 대한 변화가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책의 후반부에 에너지, 음식, 자원, 환경교육, 물관리 등에 대한 실천강령을 자세히 소개했다. “천성산 사패산 터널 등 그동안 국내 환경단체들이 국책사업마다 재앙이 올 듯이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환경운동에 대한 피로감을 느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까 두려워요. 과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환경운동으로 거듭나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시민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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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정원은 속깊은 교감의 대상

    “작은 화분 하나여도 충분합니다. 먼저 식물들에게 가벼운 인사말을 건네 보세요. 무언가와 교감한다는 것, 특히나 고요한 식물과의 교감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줍니다. 바로 ‘정원이 있는 삶’입니다!” 저자는 정원사다. 그는 정원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원 사용설명서’다. 이 책을 출판한 ‘나무도시’는 ‘고정희의 중세정원 이야기’ ‘윤상준의 영국정원 이야기’ 등 유럽정원과 공공조경 같은 정원 관련 전문서를 출판해 왔다. 정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정원을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원은 거실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풍경화가 아니라 완성이 없는, 늘 성장하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존재이다. 또한 정원은 치유의 공간이다. 우리가 가꾸기만 하는 번거롭고 귀찮은 장소가 아니라, 어느 순간 도리어 우리가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정원은 교감의 마당이기도 하다. 살아 움직이는 정원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소통하고, 가족과 이웃과 풀벌레와 새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주선한다. 텃밭의 고랑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함께 나누는 일상의 대화는 거실의 TV 앞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속 깊은 이야기들이다. “저는 일을 마치고 목장갑을 벗고 의자에 가만히 몸을 기대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빨랫줄에 가지런히 널려 있는 목장갑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답니다. 정원 사용을 꿈꾸고 계신 분이라면 목장갑을 넉넉히 준비해 두시면 좋겠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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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민父 “먹고살려고 ‘막말’ 한건데…”

    4·11총선에서 ‘막말 파문’으로 낙선한 민주당 김용민 후보의 아버지 김태복 목사(71·서울 성동구 홍익교회 원로목사)가 자신의 자녀교육법을 밝힌 책 ‘나꼼수·슈스케를 낳은 달란트 교육’(미래를 소유한 사람들·사진)을 14일 펴냈다. 김 후보는 김 목사의 장남이며 차남은 Mnet ‘슈퍼스타K’를 연출한 김용범 PD다.책에서 김 목사는 “이 책은 원래 올해 3월 초순에 발간할 예정이었으나, 큰아들 용민이가 갑자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바람에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후 김 후보가 8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막말 파문’이 터지는 바람에 김 목사와 출판사 측은 출간 여부를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목사는 말미의 ‘부록’에 큰아들의 선거에 대한 소회를 담아 책을 펴냈다.‘막말’ 내용에 대해 김 목사는 “발언 내용은 19금(禁) 성인방송에서 한 것이기에 너무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음담패설이었다”면서도 “8년 전 어느 인터넷 성인방송에서 했던 발언이다. 당시 용민이는 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 계통의 방송국에서 밀려나 인터넷 방송국에서 박봉을 받으며 근무하던 초라한 시기였다 (…) 구차한 변명이겠지만, 먹고살기 위해 치기 어린 마음에서 그런 못된 말을 한 것”이라고 아들을 옹호했다.그는 또 “새누리당이 조중동과 노조가 빠진 주요 방송사를 앞세워 총공세를 펼치며 잔인하게 아들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고 언론과 정치권에 화살을 돌렸다. 그는 “굳이 따지자면 그런 성인방송을 마구 퍼다가 일반 언론이나 방송에 공개하는 것 자체가 위법행위”라며 “용민이를 공격한 미디어들이 논문표절자 후보나 강간미수자 후보는 거의 기사화하지 않은 채 은닉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매스컴의 작태였다”고 언론을 비난했다.그는 “(막말 사건이 불거진 뒤) 용민이의 선거사무실은 물론이고 우리 집의 e메일과 전화기는 불이 날 지경이 되었다. ‘목사가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켰는가?’ (…) 등의 일방적인 공격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예를 갖춰 응대했지만, 결국 전화기 줄을 뽑아야 했다”고 회상하며 “용민이가 나꼼수로 활동하는 동안 목사 가운을 걸치거나 찬송가를 패러디한 것은 아무리 자기 딴에는 소신이 있어 행한 것이라고 하지만 목회를 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주 못마땅했다. 수차례 만류한 바 있다”고 전했다.한편 막말 파문 전 집필한 본문에서 김 목사는 ‘음란문화 만연과 청소년 문제’의 심각함을 지적하면서 “종교계는 방관하지만 말고 건전한 성문화를 바로 세우는 데 전력해야 한다. 그리고 방송이나 언론들, 특히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도 그동안의 상업적인 행태를 반성하고 과감히 방향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책의 집필 동기에 대해 김 목사는 ‘프롤로그’에 “두 아들의 활약상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많은 분들로부터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시켰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고 썼다. 그는 ‘달란트 교육’이란 “자녀에게 있는 ‘달란트’(각자의 타고난 자질)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또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날이다. (…)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지 4년이 됐는데, 근래 들어 두 아들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격상돼 나까지 유명인사가 된 느낌이다”라고 전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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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난방 없어도 한겨울 20도’ 집 지으려면

    난방 없이도 한겨울에 영상 20도를 유지하는 ‘제로 에너지하우스’를 짓는 법에 대한 이야기.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인도네시아 산림조사원으로 일했던 저자는 1997년 전원주택을 짓는 노하우를 소개한 ‘얘들아, 우리 시골 가서 살자’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후 15년간 강원 홍천군 살둔마을에서 에너지 수요를 저감하는 주택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해왔다. 그가 지은 에너지제로하우스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빛은 물론이고 집 안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열기, 주방의 조리기구와 여러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열에너지까지 하나도 밖으로 뺏기지 않고 모두 집안 공기를 데우는 데 사용하는 게 핵심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집의 방향, 유리창 위치, 환기장치까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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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50개 직업 체험… 이젠 실패가 두렵지 않다

    88만 원 세대, 청춘콘서트, 아프니까 청춘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북돋워주는 멘토들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26세 미국 청년 대니얼 세디키는 남에게 기대기보다 자기만의 색다른 도전으로 3년간의 백수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계속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고 전략을 배우고 성공을 위한 기술을 익히는 데 내 삶을 바쳐 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결국 실전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지 않은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3년간 2000통의 이력서를 내고, 40번의 면접을 봤지만 취업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고용주들이 내 인생을 정해 주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지긋지긋했다.”그래서 미국 50개 주를 돌면서 50개의 직업을 체험해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매일 16시간 동안 전국의 고용주들에게 전화를 한 끝에 일자리 몇 군데가 정해지자 무작정 떠났다. 다음번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디서 자게 될지, 무엇을 먹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루에 수백 km를 운전하고, 낡은 지프차에서 침낭을 덮고 3∼4시간 잠을 잤다.네브래스카 주에서는 옥수수농장, 위스콘신 주에서는 치즈공장에서 일했다. 애리조나 주에서는 불법 이민자들을 감시하는 국경 경비원이었고, 캔자스 주에서는 냉동육 포장 점원이었으며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선 광원, 하와이에서는 서핑 강사, 앨라배마 주에선 미식축구팀 코치였다. 틈틈이 인터넷 블로그도 운영했다. 그의 여행은 조그만 지역신문에 실리기 시작해 CNN, ABC, 폭스뉴스 등에서 방영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 한 방송사에서는 그의 여행을 ‘리얼리티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방송국이 관여하면 고용주들도 나를 다르게 대할 것이고, 연출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이 책은 마치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처럼 힘들지만 유쾌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특히 미국 각 주에서 만난 끈끈한 사람 이야기가 제맛이다. 20대인 저자가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서고, 켄터키 주에서 말 사육사로 경주마의 출산을 돕고, 오하이오 주에서 기상캐스터로 카메라 앞에 서면서 느꼈을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의 여행이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금융위기 속에서 미국인들이 잃어버렸던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미국인들 중 평생 자신이 태어난 주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저자가 마치 50개국 여행에 도전하는 것처럼 여기고 격려했다. 저자는 1년여간의 여행을 마친 후 어떤 직업을 갖게 됐을까? 사실 이 점이 가장 궁금했는데,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저자의 페이스북을 통해 요즘 근황을 물었다.“여행을 마친 후 경제학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시절 운동을 했던 경험을 살려 지금은 시카고대 육상팀의 헤드코치로 일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직업에 대한 실전 경험을 통해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요즘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유럽 배낭여행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횡단 오토바이 여행, 심지어 극지 마라톤에까지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저자처럼 국내 곳곳에서 사람들과 진하게 부딪쳐 보는 여행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포항제철에서 쇠를 녹여 보고, 거제도에서 배를 만들어 보고, 제주도에서 말을 길러 보고, 외로운 섬에서 등대지기도 해보고…. 남들과 똑같은 스펙 쌓기에 매몰돼 있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세디키의 도전은 훌륭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저히 직구를 준비해 왔어도, 인생에는 변화구를 던져야 할 때도 있다”며 “나는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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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예찬’ 저자 마이클 린치 “인식의 공통기준 세워야 이성적 토론 가능”

    기후변화부터 광우병, 천안함 폭침 논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회적 논쟁마다 이성적 증거로 호소하기보다는 각자 가진 ‘신념의 벽’만 높이기 일쑤다. 정치권에서도 이성보다 감성에 대한 호소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가히 이성(理性)의 수난시대요, 감각과 막말이 우선하는 시대다. 신간 ‘이성예찬’(진성북스)의 저자 마이클 린치 미국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47)를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빌 콘퍼런스룸에서 만났다. 언어철학과 형이상학, 인식론 분야의 권위자이자 ‘다원주의 진리론’의 옹호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8∼12일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으로서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한국은 광우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쟁 등으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합리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미국에서도 지구온난화, 에이즈, 창조론과 진화론, 홍역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쟁이 이성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내놓는 근거의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인식의 공통 기준이 무너진 데 이유가 있다. ‘무엇이 이성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은가’에 대한 공유 기준이 없으면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멍청이나 고집불통이라고 비난하는 소모적 논쟁만 거듭하게 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이 이성적 토론에 끼친 영향은…. “현대인은 점차 폐쇄적으로 각각의 칸막이에 갇혀 편견을 강화해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인터넷은 많은 정보를 생산해내지만 역설적으로 지식의 양은 적어지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글에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검색했는데, 누군가가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과학적인 ‘근거’를 달아놓을 경우 많은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정보에서 거품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편견의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안한 공간(comfort zone)’을 깨고 나와야 한다.” ―올해는 한국에서 대선이 치러진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과 국민이 합리적인 소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도 올해 대선을 치른다. 각국에서 점점 이성보다는 감정적 호소, 험담, 조작 등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TV토론에서 유권자들은 토론내용보다 외모나 인상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문 등에서 다각적으로 체크한 심층 정보를 얻으면 의견을 바꾸기도 한다. 이성에 의한 소통은 훨씬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이성적 소통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매우 효과적이다.” ―정계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같은 스캔들인데도 내 편이냐 상대편이냐에 따라 가치판단의 기준이 달라지는 문제를 어떻게 보나. “정치세계에서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똑같은 행동에 대해 다른 잣대로 보는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맞춰가는 과정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강요나 조작 같은 방법으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이성을 존중하며 합리적 논리로 맞춰나가야 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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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어머니… 당신이 꽃이십니다

    《 5월이다. 진달래와 철쭉이 피는 봄은 내겐 슬픔이다. 10여 년 전 기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집에서 임종을 맞으셨는데, 뒤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분홍색 꽃을 꺾어다 누워계신 어머니 가슴 위에 놓아드렸던 기억이 난다. 봄이 되면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나는, 몇 년 전인가 실제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우연히 열어보았는데 읽지 않은 음성메시지 한 개가 저장돼 있었다. “여보, 비가 오네. 옥상에 빨래 널어놨는데…. 빨래 좀 걷어줘.” 돌아가신 지 5년이 넘었는데 마치 살아계신 듯 생생하게 일상의 말을 걸어오는 어머니가 신기해 듣고 또 들었다. 아버지는 그런 음성메시지가 저장돼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차가운 디지털 기기가 삶과 죽음의 세계까지도 이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 출판계에도 어머니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질수록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 한국의 시인과 일본의 작가가 펴낸 책 두 권을 읽다 보면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한 모성(母性)에 대한 향수를 더듬게 된다. 올해 등단 30주년을 맞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그동안 한 인물에게서 시를 베껴 썼노라고 고백했다. 바로 그의 어머니다. 몸집이 작고 야무지다고 해서 ‘양글이 양반’으로 불렸던 어머니는 문단 안팎에서 입심 좋고, 삶과 생명에 대한 혜안을 지닌 ‘문맹의 시인’으로 입소문이 나 있었다.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고 참깨 싹이 나온단다” “꽃만 저렇게 하야다 지면 뭐헌다냐.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는 어머니의 말에 신경림 시인은 “용택이가 시인이 아니고, 너그 어머니가 시인이구만” 하면서 무릎을 쳤다고 한다. 어머니는 또한 베어진 나무의 뿌리와 기둥을 새끼줄로 엮어 생명을 잇고, 뜨거운 물을 마당에 뿌려야 할 땐 흙 속의 벌레들이 눈이 멀까 봐 “눈 감아라. 눈 감아라”라고 속삭이는 분이다. 신간에서 봄처녀로 시집왔다가 어느덧 겨울의 나뭇가지로 늙어가는 노모의 인생을 김 시인은 시와 일기문에 고스란히 담았다. 젊은 시절 그가 오리농사를 망해먹고 무작정 고향을 떠나던 날, 손에 2000원을 쥐여주시며 강가에서 마른 풀잎처럼 울고 계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한다. 빈궁한 살림 속에 평생 호미로 밭을 갈고, 다슬기를 잡아 국을 끓이셨던 어머니의 젖은 다 쪼그라들었다. 할머니의 쪼그라든 젖을 놀리는 손주들에게 어머니는 “니 애비가 다 뜯어 묵고 이만큼 남았다”고 대답하신다. “손이 터서 쓰리면 우리들은 어머니에게 갔다. 어머니는 젖을 꼭 짜서 발라주었다. 젖꼭지 가까이에 손바닥을 대면 쪼르륵쪼르륵 짜주었다. 그 새하얀 젖을 손등에다 발랐다. 그러면 잠깐은 쓰렸지만 손은 금방 보드라워졌다. 어머니의 젖은 또 눈에 티가 들어갔을 때나 눈이 아플 때도 쓰였다. 우리들을 반듯이 뉘어놓고는 어머니가 젖꼭지를 눈 가까이 들이대고 젖을 한 방울 뚝 떨어뜨렸다. 그러면 우리는 얼른 눈을 끔벅끔벅해서 젖이 눈에 고루 퍼지게 했다. 그러면 눈도 역시 보드라워지곤 했다.” ‘둔황’ ‘풍도’ ‘빙벽’ 등을 쓴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1907∼1991)의 ‘내 어머니의 연대기’ 삼부작은 나이가 들어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기록했다. 통곡하는 비통함만 슬픔의 표출방식이 아니듯, 노년과 치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담담하게 그려낸 이 자전적 소설에는 조용한 침묵과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낸 아픔이 담겨 있다. 팔순을 넘기고 기억이 사라지는 어머니는 처음엔 같은 말을 반복하시다가, 점차 먼저 돌아간 남편의 존재를 잊고 자신을 돌보는 아들딸마저 하인으로 여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양자로 들어왔던 친척 오빠에게 품었던 연정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한다. 작가는 “어머니는 걸어온 긴 인생을 70대, 30대, 10대, 이렇게 걸어온 방향과는 반대로 지우고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부의금 명세를 적어놓은 ‘부의금첩’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밤마다 달빛 속에 배회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가족의 안타까운 시선이 작가의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묘사된다. “나는 스물셋의 젊은 어머니가 아기인 나를 찾아 헤매며 심야의 달빛이 쏟아지는 길을 걷는 그림을 눈 속에 그리고 있었다. 내 눈 속에는 또 하나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환갑을 넘은 내가 여든다섯 살의 늙은 어머니를 찾아 같은 길을 걷는 그림이었다. 한 장은 차가운 무언가에 젖어서 빛나고, 다른 한 장에는 무언가 황량함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장의 그림은 곧 내 눈꺼풀 위에서 겹쳐 한 장이 되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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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북 카페]디지털 출판의 미래

    매년 4월 영국에서 열리는 런던 도서전은 출판계의 미래를 미리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출판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행사다. 올해 41회를 맞이한 런던 도서전의 화두는 ‘디지털 출판(Digital publishing)’이었다. 지난 몇 년간 각종 도서전을 장식한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이제 출판계에 친근한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올해의 런던 도서전은 출판사들이 ‘디지털 출판이 앞으로 출판계를 이끌어갈 주축이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대형 오프라인 서점인 반스앤드노블도 전자책 단말기 ‘누크’를 발표했다. 전자책 시장은 아직까지 출판사 전체 수익의 10% 정도만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번 도서전을 기점으로 세계 각국의 대형 출판사들은 전자책이 향후 10년을 책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의 이언 허드슨 부사장은 랜덤하우스그룹이 영국 내에서만 약 1만 종, 세계적으로는 약 4만 종의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전자책 판매 수익이 랜덤하우스그룹 전체 수익의 20%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거대 출판사들뿐이 아니다. 중소 출판사들 또한 앞다퉈 전자책과 애플리케이션을 이미 판매하고 있거나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출판이 발전함에 따라 저자가 스스로 책을 출간해 판매하는 ‘자가 출판(self-publishing)’도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서전을 방문한 24세의 작가 벤 갤리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에이전트와 편집자를 통해 책을 출간하는 전통적 출판 방식에서 벗어나 전자책 버전으로 직접 아마존에서 책을 판매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들인 비용은 약 50만 원. 그는 아마존을 통해 한 권에 99펜스(약 900원)인 그의 전자책을 5만 권 팔았다. 이 중 35%를 인세로 받는다. 수차례 출판사로부터 원고를 거절당한 스릴러 작가 레이철 애벗도 자신의 첫 작품을 아마존에 1.99파운드(약 3600원)에 내놓았고,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쳐 10만 부를 판매했다. 다양한 전자책 수익 모델은 몇 년째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한국 출판계에도 한 가닥 동아줄을 드리워주는 희망이 아닐까. 특히 영미권의 출판사들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초고속 인터넷 망을 갖춘 한국에서 과연 전자책과 애플리케이션이 어떤 활약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한국 출판계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것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 201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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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새롭고 낯선 창의적 지식들을 ‘오류’ 취급하는 인터넷

    《 지식의 전성시대다.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내는 지식은 인터넷에서 지하자원처럼 채굴된다. 거대한 ‘지식기계’인 구글은 전 세계의 도서관, 박물관을 집어삼키고 있다. 네이버의 ‘지식IN’에는 건강상식부터 버스노선까지 잡다한 지식이 쌓여간다. 현대의 지식세계는 기가(109), 테라(1012), 엑사(1018) 바이트 단위로 생산되고 전달된다. 그런데 현대의 지식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의 본질은 정보의 신뢰도와 안정성이다. 인터넷에는 잘못된 상식이 판을 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미확인 루머가 사실처럼 떠돌아다닌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은 연예인 가십이나 ‘××녀’와 같은 자극적인 뉴스들이 장식한다. 정보와 지식시장에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재현된다. 》이 책에서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전문가 16인이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과 교양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저널리스트들의 취재와 분석을 바탕으로 한 글인 만큼 지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깊이와 대중성을 함께 담아냈다. 지식세계를 이끌어 온 학자와 각국의 도서관과 박물관에 대한 꼼꼼한 각주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넷 시대에는 ‘적은 지식’으로 감동시키는 일이 더욱 쉬워졌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인류 모두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지식과 교양을 추구했다면, 현재의 지식은 자기만족을 위한 개별지식으로 대체되는 형국이다. 지식이 극단적으로 세분함에 따라, 지식은 열정을 더는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독일의 뉴스 시청자 10명 중 9명이 뉴스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구글은 사람들이 정보를 소화하는 방법까지 크게 변화시켰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구글은 검색 결과의 상위에 ‘다른 페이지로 연결된 링크가 많은 정보’를 보여줌으로써 원하는 문서를 이용자가 찾아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 결과 구글은 가장 많은 사람이 검색한 대중적인 답을 추천한다. 중요하지만 새로운 것, 낯선 것, 정도에서 벗어난 것은 ‘오류’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클릭 수가 적은 창의적 지식들은 빛도 못보고 ‘디지털 세계의 묘지’로 사라질 위험이 커졌다. 클라우스 디터 레만 독일도서관장은 “역사적인 배경이 없는 인식은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정보와 지식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정보와 사실을 복사(Copy)하고, 붙이기(Paste)하며 수집하는 것은 지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자기 자신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정보의 자기화, 내면화, 체계화 과정을 거치고 삶에 반영될 수 있어야 진정한 지식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이 ‘지식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는 공로에 대해서도 “허위 개념일 뿐”이라고 일침을 날린다. “오늘날 지식의 생산자는 다른 사람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식은 이익을 창출하는 자본이며, 자본은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인터넷 지식과의 전쟁선포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두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감성지능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정치, 역사, 자연과학, 경제, 문화, 상식 분야에서 미래를 극복하는 데 어떤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한지 각계 전문가들이 소개한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확산되는 정보와 지식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을 포함시키지 않은 점은 아쉽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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