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36분의 기자회견 동안 전 메이저리거 강정호(33)는 ‘죄송’과 ‘잘못’이라는 단어를 10번 넘게 썼다. 검은 정장 차림의 그는 고개만 세 차례 숙였다. 그러나 여전히 왜 국내에서 야구를 해야 하느냐는 팬들의 물음에는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팬과 국민, 가족에게 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도 여전해 보였다. 23일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는 강정호의 사과 기자회견이 열렸다. 2016년 12월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저지르면서 앞서 두 차례(2009, 2011년) 음주운전 적발 사실이 드러난 강정호가 공식석상에서 직접 사과 의사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진아웃제’가 적용된 강정호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강정호는 이날 미리 준비해온 글을 읽으며 “어떻게 사과의 말씀을 드려도 부족하지만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 잘못된 행동으로 팬들과 어린이, 청소년에게 야구선수로서 잘못된 모습을 보여 드린 점 엎드려 사과한다. 제 모든 걸 포기하고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더 큰 파장을 일으켰던 그는 “그때는 정말 무지했고 어리석었다. 야구만 바라봤고 야구만 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반성했다. 강정호는 “구단(키움)에서 받아준다면 첫해 연봉 전액을 음주운전 피해자를 위해 기부하겠다. 음주운전 피해자를 위한 캠페인에도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은퇴하는 순간까지 비시즌 동안 유소년을 위한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정호는 이에 대해 “어린아이들의 꿈을 짓밟아 미안했고, 재능기부를 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해주는 모습에 더 미안했다”고 설명했다. 4년째 금주를 해오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금주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도 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야구팬은 “미국 생활이 여의치 않자 억지 사과를 하는 게 아니냐”며 비판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강정호는 지난달 20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임의탈퇴 복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인터넷에는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국내 포기가 최선이라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강정호는 “이기적으로 살지 말자고 노력하면서도 다시 또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다”면서도 “많이 생각했지만 주변에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강해서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단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말하는 강정호의 향후 거취는 키움의 판단에 달렸다. 키움이 임의탈퇴를 해제하고 계약을 해야 강정호는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앞서 KBO는 상벌위원회를 열고 강정호에게 유기실격 1년,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내렸다. 강정호는 “키움에서 (추가 징계 등을 포함한) 어떤 결정을 내려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공을 넘겨받은 키움은 강정호 영입 여부에 대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통한의 아웃카운트 하나였다. 강릉고 에이스 김진욱(18·사진)에겐 평생 잊지 못할 아웃카운트 하나가 됐다.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주목받았던 김진욱은 이날 김해고와의 결승전 2회초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예상보다 투입 시점이 빨랐지만 다음 경기가 없는 만큼 최재호 강릉고 감독은 일찍 김진욱 카드를 빼들었다. 김진욱은 3, 4, 5회 3이닝 연속 삼자범퇴로 김해고 타선을 돌려세우는 등 8회까지 단 2안타 2볼넷만 내주며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팀도 3-1로 앞서고 있어 사상 첫 전국대회 우승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그러나 투구 수 제한(105개)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9회초 1사 후 김해고 1번 타자 황민서, 2번 허지원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대회 첫 실점을 했다. 실점도 아쉬웠지만 투구 수 제한(105개)이 다가오는 게 더 뼈아팠다. 3번 박진영에게 몸 맞는 공을 내줬지만 4번 정종혁을 포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하며 2아웃을 잡았다.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 하지만 투구 수는 103개를 가리키고 있었다. 5번 서준교를 상대로 공 2개를 던져 투구 수가 105개로 꽉 차면서 김진욱은 경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김진욱의 바람과 달리 후속 투수들은 팀의 승리를 지키지 못했다. 볼넷과 몸에 맞는 볼을 남발하며 3-4로 역전을 허용했다. 김진욱은 7과 3분의 1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우승을 했다면 당연히 최우수선수(MVP)였겠지만 준우승을 하면서 감투상에 만족해야 했다. 김진욱은 “내가 직접 끝내고 싶었는데 9회를 마무리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원했던 우승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김진욱은 이번 대회 내내 집중 조명을 받았다. 우승후보 간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광주일고와의 첫 경기에서는 6이닝 동안 안타 7개를 내주면서도 무실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상고와의 8강전에서 4이닝 동안 전체 12개 아웃카운트 중 10개를 탈삼진으로 잡으며 ‘탈삼진 괴물’다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키 185cm의 왼손 투수인 김진욱은 제구력과 슬라이더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원북중에서 강릉고로 진학하면서 1차 드래프트 대상에서 제외된 김진욱은 2차 드래프트 1순위 후보로 거론된다. 지명 우선권은 롯데가 갖고 있다. 이석환 롯데 사장과 성민규 롯데 단장은 이날 직접 경기장을 찾아 김진욱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8회말 1사 1루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그는 7회까지 마운드를 책임졌던 선발 투수였습니다. 9회말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잠시 1루수로 숨을 돌리고 있었지만, 팀이 1사 1, 2루 위기에 처하자 다시 등판한 것입니다. 경기는 3-2 한점 차 리드. 다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공 단 2개로 이닝을 마무리 짓습니다. 첫 번째 공은 포수가 받아 도루 중인 주자를 잡았고, 두 번째 공으론 타자를 뜬 공 처리했습니다. 1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율곡고와 광주진흥고 경기의 숨은 명장면입니다.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8강전 마지막 경기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광주진흥고의 5-4 역전 승리로 끝났습니다. 4-4 1사 만루 상황에서 평범한 땅볼을 율곡고 2루수가 잡지 못하면서 광주진흥고의 역전 주자가 홈을 밟았습니다. 광주진흥고는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이 대회 준결승에 올랐습니다. 사상 첫 황금사자기 우승에 도전합니다. 승리를 수확하진 못했지만 소개하고 싶은 선수가 있습니다. 이날 103구 역투를 한 율곡고 2학년 에이스 이준혁(17)입니다. 그는 이날 팀의 첫 번째, 세 번째 투수로 등판했습니다. 7회까지 경기를 책임지다 1루수로 교체된 뒤 다시 아웃카운트 하나 만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고교야구의 투혼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두 차례 등판을 합쳐 8과 3분의 1이닝 동안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2 몸 맞는 공, 8탈삼진 5실점(4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팀이 잡은 25개의 아웃카운트 중 24개를 책임졌습니다. 8이닝 동안 볼넷, 몸 맞는 공은 하나도 내주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제구력을 펼쳤습니다. 140㎞대의 패스트볼에 슬라이더, 커터 등을 섞어 던졌습니다. 프로팀 스카우트들도 변화구를 이용한 완급조절이 뛰어나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점이 적진 않지만 5점 중 3점을 스퀴즈 번트로 내줬습니다. 그만큼 상대도 이준혁을 공략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는 의미일 겁니다. 광주진흥고의 오철희 감독은 “결정구가 상당히 좋다. (3학년이 되는) 내년에 굉장히 발전할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높은 평가를 보냈습니다. 물론 마지막 9회말은 아쉽습니다. 이준혁은 1사 후 2 몸 맞는 공과 1 볼넷을 내주면서 만루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투구 수 제한(최대 105개)에 준하는 103개의 공을 던진 이준혁은 직접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팀은 역전패 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올해 첫 전국대회는 마무리 됐습니다.경기 뒤 만난 이준혁은 “마지막 (위기) 상황이 나로 인해 벌어졌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빨갛게 여드름이 난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져서 너무 아쉽지만 다음이 있으니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준혁은 올 시즌 프로야구 신인왕 1순위로 꼽히는 KT 소형준처럼 “덤덤하게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팀 버스로 돌아가며 이준혁은 “이 계기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말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른 시일 안에 율곡고 이준혁의 이름을 다시 만나길 기대해봅니다.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프로야구 키움 주효상(23·사진)이 KBO리그 최초로 2경기 연속 대타 끝내기 안타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주효상은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K와의 경기 9회말 1사 만루 기회에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 상대 마무리 투수 하재훈을 상대로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를 쳤다. 0점으로 묶여 있던 키움은 주효상의 안타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키움은 사흘 연속 끝내기 안타로 3연승을 달리는 매서운 뒷심을 발휘했다. 주효상은 전날 롯데와의 경기에서도 연장 10회말 대타로 나서 끝내기 적시 2루타를 쳤다. 자신의 시즌 1, 2호 안타를 모두 끝내기 안타로 장식했다. 백업 포수인 주효상은 17일 1군에 다시 등록되기 전까지 올 시즌 4차례 타석에 들어섰을 뿐이었다. 주효상은 경기 뒤 “(1스트라이크 3볼에서) 스트라이크 하나를 더 당하면 불리해지기 때문에 직구 하나만 보고 스윙을 돌렸다”고 말했다. 평균자책점 1위 NC 토종 에이스 구창모(25)는 다승 공동 선두에 오르며 팀을 2연패에서 꺼냈다. 이날 창원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3피안타(1피홈런) 9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6승을 거뒀다. 두산 알칸타라와 다승 공동 1위다. 구창모는 최고 시속 147km의 패스트볼에 슬라이더, 포크볼을 섞어 던지며 한화 타선을 요리했다. 5회초 한화 최진행에게 1점 홈런(3호)을 내준 게 유일한 옥에 티였다. 평균자책점은 0.75에서 0.82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중 유일한 0점대 기록이다. 마무리 1위 NC 원종현(33)은 9회초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가장 먼저 10세이브 고지에 올랐다. 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시즌 개막을 미뤘던 일본프로야구가 이날 무관중으로 막을 올렸다. 요미우리는 정규리그 개막전에서 한신을 3-2로 누르고 일본 구단 최초로 통산 6000승을 달성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9회말 1사 만루. 점수는 4-4 동점. 타자가 친 공이 땅에 튀어 2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더블플레이로 승부는 연장으로 갈 것 같았다. 하지만 타구가 2루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자 광주진흥고 선수들이 3루 더그아웃에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수비하던 율곡고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9회말 끝내기 실책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율곡고 선수들은 눈물을 쏟은 채 한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광주진흥고가 9회말 끝내기 승리로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마지막 준결승행 티켓을 잡았다. 1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율곡고와의 8강전에서 5-4로 역전승을 거뒀다. 팀의 5득점 중 3점을 스퀴즈 번트로 따낸 짜릿한 승리였다. 9회초까지 3-4로 뒤져 패색이 짙었던 광주진흥고는 1사 후에 7번 타자 이준서(19)가 몸에 맞는 공으로 1루에 나가면서 역전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 이어 볼넷,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면서 1사 만루 기회가 생겼다. 타석에 들어선 건 9회말 전까지 4타수 3안타로 타격감이 좋았던 1번 타자 김길모(19). 그러나 오철희 광주진흥고 감독은 스퀴즈 번트 사인을 냈다. 김길모는 바뀐 투수 도재현(19)을 상대로 초구에 번트를 대 4-4 동점을 만들었다. 김길모도 1루에서 살았다. 이어진 2번 타자 정주영(18)의 타석에서 2루수 실책이 나오면서 2시간 55분의 접전은 마무리됐다. 이 대회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3차례 했던 광주진흥고는 첫 정상의 기회를 잡았다. 경기는 졌지만 율곡고의 에이스 투수 이준혁(17·2학년)의 투구도 빛났다. 7이닝 동안 볼넷 없이 7탈삼진 3실점(2자책점) 호투를 한 이준혁은 8회말 1루수로 교체됐다. 9회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준 것. 그러나 이어 등판한 서준호(19)가 1사 1, 2루 위기를 초래하면서 다시 마운드에 올라 직접 8회말을 마무리했다. 이준혁은 패전투수가 됐지만 이날 팀이 잡은 25개 아웃카운트 중 24개를 책임졌다. 장신(183cm) 오른손 투수인 이준혁은 뛰어난 경기 운영으로 프로팀 스카우트의 찬사를 받았다. 앞선 8강 경기에선 김해고가 부경고에 8-0, 7회 콜드게임 승리를 따냈다. 상대 주자가 단 한 명도 3루를 밟지 못했을 정도로 일방적인 승리였다. 2003년 창단한 김해고가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해고는 3회초 2사 2루 찬스에서 3번 타자 박진영(18)과 4번 타자 정종혁(19)의 연속 안타가 나오면서 2-0으로 앞서 나갔다. 분위기를 탄 김해고는 4회초에만 타자 일순하며 완승을 예고했다. 특히 3연속 볼넷으로 맞은 무사 만루 기회에서 1번 타자 황민서(18)가 우중간을 가르는 싹쓸이 3루타를 치면서 승부의 추가 김해고로 기울었다. 홈플레이트에서 1루까지 거리(27.43m)를 3.8초대에 끊을 정도로 발이 빠른 황민서는 4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김해고는 이날만 6도루를 기록할 정도로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김해고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김준수(19)는 3과 3분의 1이닝 동안 2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해 승리투수가 됐다. 특히 에이스 투수 김유성(18)을 아낀 것은 김해고 전력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신(190cm) 오른손 투수인 김유성은 프로야구 NC의 1차 지명 후보로 꼽힌다. 20일 강릉고와 대전고, 광주진흥고와 김해고의 준결승 승자는 22일 결승에서 맞붙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선수들 앞에 학부모들이 두 줄로 나란히 섰다. 선수들의 이름과 응원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활짝 펼쳤다. 막 승리를 따낸 선수들은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그 앞을 지나갔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창단 첫 전국대회 4강 진출의 기쁨은 달콤했다. 2003년 창단한 김해고가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준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1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부경고와의 8강에서 8-0 7회 콜드게임 승리를 따냈다. 상대 주자가 단 한 명도 3루를 밟지 못했을 정도로 일방적인 승리였다. 김해고가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작은 팽팽했다. 2회까지 양 팀 모두 선취점을 뽑지 못했다. 균열이 일어난 건 3회초였다. 김해고는 2사 2루 찬스에서 3번타자 박진영(18)과 4번타자 정종혁(19)의 연속 안타가 나오면서 2-0으로 앞서나갔다. 분위기를 탄 김해고는 4회초에만 타자일순하며 완승을 예고했다. 특히 3연속 볼넷으로 맞은 무사만루 기회에서 1번타자 황민서(18)가 우중간을 가르는 싹쓸이 3루타를 치면서 승부의 추가 김해고로 기울었다. 홈 플레이트에서 1루까지 거리(27.43m)를 3.8초대에 끊을 정도로 발이 빠른 황민서는 박무승 김해고 감독이 꼽은 팀의 키 플레이어다. 이날도 4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텍사스 추신수, 롯데 손아섭이 롤 모델이라는 황민서는 “깊은 외야플라이라도 치겠다는 생각으로 타이밍을 앞에 놓고 쳤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김해고는 이날만 6도루를 기록할 정도로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마운드에서는 4명의 투수가 부경고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특히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김준수(19)는 3과 3분의1 이닝 동안 2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상대의 추격의지를 끊었다. 김준수는 이날 승리투수가 됐다. 특히 에이스 투수 김유성(18)을 아낀 것은 김해고 전력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될 전망이다. 장신(키 190㎝) 오른손 투수인 김유성은 프로야구 NC의 1차 지명 후보로 꼽힌다. 박 감독은 수훈 선수로 포수 정종혁을 거명했다. 1회말 상대의 2루 도루를 저지해 기선을 제압한 것이 중요했다는 설명이다. 부경고로선 에이스 투수 권동현(19)이 투구 수 제한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15일 충암고와의 경기에서 공 104개를 던진 권동현은 현행 규정에 따라 나흘(91개 이상) 휴식을 취해야 했다. 경기 뒤 박 감독은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다. (결승전까지) 2경기가 남았지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다음 경기만 생각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황민서도 “새로운 역사를 쓰게 돼 감독님께 감사하다. 선수들이 컨디션만 더 끌어올리면 충분히 우승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이쯤 되면 팀이 원망스러울 법도 하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가장 불운한 선수를 꼽자면 롯데 외국인 투수 스트레일리(32)다. 올 시즌 거인군단 유니폼을 입은 그는 9경기에 선발 등판해 평균자책점 2.10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18일 현재 평균자책점 전체 3위다. 그러나 승리는 단 1승(2패)이 전부다. 자신의 두 번째 등판인 지난달 10일 SK와의 경기에서 첫 승을 기록한 이후 한 달 넘게 승리를 따내지 못하고 있다. 2승까지 가는 길이 멀다. 유달리 저조한 득점지원 때문이다. 프로야구 통계사이트인 ‘스탯티즈’에 따르면 18일 현재 스트레일리의 9이닝 당 득점지원은 1.84점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가장 낮다. 가장 많은 득점지원을 얻은 두산 알칸타라(9이닝 당 9.56점)보다 8점 가까이 지원이 적다. 덕분에 알칸타라는 평균자책점 4.13에도 벌써 6승(1패)을 챙겼다. 18일 키움과의 경기는 스트레일리에게 유독 운이 따르지 않는 경기였다. 스트레일리는 이날 개인 최다인 8이닝에 12탈삼진을 잡으면서 2실점했지만 승리를 수확하지 못했다. 12탈삼진은 롯데 외국인 투수 최다 탈삼진 타이 기록이다. 롯데 타선이 키움의 왼손투수 이승호(21)에게 7이닝 1득점으로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스탯티즈에 따르면 롯데의 왼손투수 상대 타율은 0.201로 10개 구단 중 가장 낮다. 롯데 타선은 이날 병살타만 3개를 기록했다. 다음 경기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로테이션에 따르면 스트레일리는 다음주 KIA와의 경기에 등판한다. 롯데는 올 시즌 KIA에게 6전 전패를 기록 중이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지옥과 천당을 오간 하루였다. 대전고 주장 김성용(19·사진)은 18일 마산고와의 8강에서 특별한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첫 번째는 1회말에 나왔다. 무사만루 기회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성용은 있는 힘껏 초구를 받아쳤다. 안타가 나올 거라는 기대와 달리 공은 땅에 튀어 3루수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갔고, 이어 2루수와 1루수에게 연결됐다. 김성용은 1루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했지만 삼중살을 막진 못했다. 하늘이 그를 외면하지만은 않았다. 7회말 4-4 동점 상황에서 자신의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김성용은 마산고 네 번째 투수 송진욱(17)의 체인지업을 받아쳐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좌측 파울폴대 상단을 맞고 떨어진 홈런에 3루 측 더그아웃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전고의 준결승 진출을 확정짓는 결승 홈런이었다. 김성용에겐 12일 성남고 경기 1점 홈런에 이어 대회 두 번째 홈런이다. 경기 뒤 자신의 홈런 공을 들고 나온 김성용은 “삼중살을 당하고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 주장이니까 흔들리지 말고 수비만 잘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파울인 줄 알았다”고 웃은 뒤 타이밍을 앞에 놓고 치자고 생각한 것이 홈런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포수 김성용은 이날 3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김성용의 롤 모델은 LG 유강남이다. 그를 따라 등번호 27번을 단 김성용은 “유강남 선배처럼 수비도 잘하고 홈런도 잘 치는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강릉고와의 4강전에 대해선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서 올라온 만큼 똘똘 뭉쳐서 재밌는 경기를 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두산 내야수 최주환(32·사진)이 팀을 연패 수렁에서 건져냈다. 두산은 1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안방경기에서 7-3으로 역전승하며 4연패에서 탈출했다. 적재적소에서 터진 최주환의 방망이가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3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한 최주환은 1-3으로 뒤진 5회말 2사 3루에서 삼성 선발 허윤동을 상대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시즌 8호)으로 동점을 이뤘다. 7회말 1사 1, 3루에서는 중전 적시타로 4-3, 역전을 만들었다. 김재환이 곧바로 우중간 2타점 적시타를 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최주환은 전날 솔로홈런에 이어 이틀 연속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좋은 타격감을 이어갔다. 현재 추세(경기당 0.22개)는 시즌 31홈런 페이스다. 최주환의 시즌 최다 홈런은 2018년 기록한 26개다. 마운드에선 선발 유희관이 7이닝 5안타 3볼넷 1탈삼진 3실점(1자책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5승째(1패)를 따냈다. 데뷔전 이후 3연승에 도전했던 삼성 신인투수 허윤동은 5이닝 동안 5피안타(1피홈런) 3볼넷 3탈삼진 3실점으로 승리 수확에 실패했다. 고척에서는 키움이 롯데를 상대로 이틀 연속 끝내기 승리를 따냈다. 연장 10회말 1사 1루에서 대타 주효상이 원바운드로 우측 펜스를 때리는 대형 2루타를 치며 1루 주자 박정음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3-2 승리. 주효상으로선 개인 통산 첫 끝내기 안타다. 롯데 선발 스트레일리는 8이닝 동안 12탈삼진을 따내며 볼넷 없이 3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KT는 SK를 5-3으로 꺾고 주중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았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강릉고와 대전고가 황금사자 트로피를 향한 결승 문턱에서 만나게 됐다. 강릉고가 18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8강전에서 접전 끝에 경기상고를 4-3으로 꺾고 4강에 선착했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이 대회 우승을 노리는 강릉고는 마산고를 6-4로 꺾은 대전고와 20일 준결승을 치른다. 강릉고와 경기상고의 운명은 에이스의 존재가 갈랐다. 강릉고는 경기 초반 3점을 먼저 내며 앞서나갔다. 하지만 4회초에 1점, 5회초에 2점을 내주며 3-3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자 강릉고 더그아웃에서는 김진욱(3학년)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등번호 15번에 다부진 몸을 한 그가 캐치볼을 시작하자 동점으로 한껏 기세가 올랐던 경기상고 더그아웃에는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6회초 경기상고 선두 타자 엄형찬(1학년)이 내야 안타로 출루하자 김진욱이 곧바로 마운드에 올랐다. 1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이전재(2학년)에 이어 팀의 4번째 투수로 등판한 그는 첫 공을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꽂아 넣으며 삼진을 잡아냈다. 다음 타자 역시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후 1루 주자가 2루로 도루하던 중 아웃당하며 김진욱은 공 6개로 아웃카운트 세 개를 잡았다. 에이스가 든든하게 마운드를 지키면서 강릉고는 다시 살아났다. 6회말 선두 타자 허인재가 중견수 앞 안타로 출루한 뒤 정준재(이상 2학년)가 번트를 댈 듯 말 듯하며 상대 투수를 괴롭히다 볼넷을 얻어냈다. 무사 1, 2루에서 이동준(3학년)은 2볼 2스트라이크에서 스리번트를 성공시키며 1사 2, 3루 기회를 만들었다. 이어서 타석에 선 3번 타자 김세민(2학년)은 바뀐 상대 투수 전영준(3학년)의 초구에 주저 없이 스퀴즈 번트를 댔다. 글러브로 공을 잡자마자 포수에게 공을 토스한 전영준의 수비도 노련했지만 3루 주자 허인재의 포수 태그를 피하는 슬라이딩도 일품이었다. 강릉고의 역전. 강릉고가 추가점을 내지 못했지만 마운드에는 김진욱이 버티고 있었다. 김진욱은 이날 4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만 허용하며 무실점을 기록했다. 아웃카운트 12개 중 10개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압도적인 피칭이었다. 최고 구속은 시속 141km였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예리하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타자들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투구 수가 47개에 불과해 하루 쉰 뒤(투구 수 46∼60개의 경우) 준결승전 등판이 가능하다. 김진욱은 “감독님께서 7회부터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셨는데, 예상보다 등판이 빨라졌다. 야수들이 팽팽한 상황에서 잘해줬다. 어떤 팀을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대전고는 4-4로 맞선 7회말 2사 1루에서 터진 김성용(3학년)의 결승 홈런에 힘입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대전고의 ‘황금사자기 4강’은 1994년 제48회 대회 이후 26년 만이다. 김의수 대전고 감독은 “그간 황금사자기에서 4강 문턱을 못 넘은 기억이 많다. 징크스를 깬 만큼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대전고와 강릉고는 모두 이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적이 없다. 김배중 wanted@donga.com·강홍구 기자}

최하위에 발목을 잡힌 탓일까. 프로야구 두산이 시즌 첫 연패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3-6으로 패하며 4연패에 빠졌다. 이번 시즌 들어 연패가 없었던 두산은 18연패에 빠져 있던 한화와의 14일 경기에서 진 이후 승전보를 울리지 못하고 있다. 두산 타선은 삼성 선발 김대우에게 꽁꽁 묶였다. 김대우는 6이닝 동안 5피안타(1피홈런) 1볼넷 1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하며 두산의 타선을 틀어막았다. 두산은 6회 최주환이 시즌 7호(1점), 박세혁이 시즌 1호(1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추격의 끈을 당겼지만 9회초 2사 2, 3루 위기에서 이원석에게 쐐기 2타점 적시타를 내주며 무너졌다. 김대우는 11일 키움과의 경기에 이어 승리를 따내며 시즌 2승째(2패)를 거뒀다. 전날 국내 무대에서 2457일 만에 세이브를 올리며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한 삼성 오승환이 이날도 팀 승리를 지켜냈다. 9회말 6-3 상황에서 등판해 세 타자를 땅볼 2개와 탈삼진 하나로 손쉽게 돌려 세우며 이틀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다. 삼성은 이날 승리로 3연승을 달렸다. 두산을 상대로도 2016년 7월 이후 약 4년 만에 위닝시리즈를 기록했다. SK 최정은 홈런포를 추가하며 역대 통산 홈런 공동 3위에 올랐다. 이날 KT와의 경기 3회말 1사 1루에서 상대 선발 조병욱을 상대로 2점 홈런을 쳤다. 시즌 5호. 최정은 이날 홈런으로 통산 340홈런을 기록하며 장종훈 한화 코치와 함께 역대 통산 홈런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 이승엽이 467개로 1위, 삼성 양준혁이 351개로 2위다. 우타자로서는 장 코치와 함께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한 단계 도약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유영원 서울컨벤션고 감독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막 대회에서 탈락한 패장의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된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버스에 야구 장비들을 실으면서도 끊임없이 지난 경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선수들 의 얼굴에서 묘한 설렘이 읽혔습니다. 서울컨벤션고는 현재 진행 중인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41개 참가팀 중에 막내입니다. 올 1월 창단을 했으니 팀을 꾸린 지가 채 6개월이 안 됩니다. 전체 팀원 24명 중 신입생 8명을 제외한 16명이 모두 전학생입니다. 3학년은 1루수 박지성(18) 단 한 명뿐입니다. 서울, 경기 지역 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백업 선수들이 서울컨벤션고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손발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제대로 된 팀 훈련을 할 형편이 못 됐습니다.그러나 이번 대회 신생팀 서울컨벤션고가 보여준 활약은 놀랍습니다. 대회 개막전인 성지고와의 경기에서 6-0으로 승리했습니다. 팀의 첫 공식경기를 전국대회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이어진 경기항공고과의 경기에서는 양 팀 도합 25안타(서울컨벤션고 12개, 경기항공고 13개)의 난타전 끝에 15-13으로 이겼습니다. 16일 우승후보 강릉고와의 16강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4회말까지 1-9로 콜드게임 패배 위기에 처했던 서울컨벤션고는 5회에만 3번타자 겸 포수 강산의 105m 우월 만루홈런을 포함 5점을 내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상대를 바짝 추격했습니다. 팀 사상 첫 홈런입니다. 끝내 7-11로 패했지만 강릉고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투구 수 제한으로 에이스 김진욱(18)을 등판시킬 수 없었던 강릉고는 투수만 5명을 투입시키며 진땀을 흘렸습니다. 각 팀의 재목들을 살피는 프로팀 스카우트들도 서울컨벤션고의 깜짝 활약에 놀라워했습니다. 선수들의 활약도 좋았습니다. 주장 강산은 이번 대회 타율 0.500, 1홈런, 8타점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팀의 리드오프이자 중견수인 조원빈도 타율 0.583, 2타점에 4도루로 상대를 흔들었습니다. 투수 박현진은 2경기에서 6과 3분의 1이닝 동안 36타자를 상대하면서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습니다. 8실점을 했지만 모두 비자책점입니다. 강산과 조원빈은 지난해 휘문고, 박현진은 인천고에서 뛰었던 2학년 전학생입니다. 선수들의 자신감 또한 이번 대회 큰 수확입니다. 유영원 감독은 “첫 대회 출전이다보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로 시작을 했는데 의외로 성과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걱정을 했는데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겁 없이 자유롭게 해낸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무엇보다 여름밤 목동야구장 하늘을 갈랐던 팀 역사상 첫 만루홈런과 그때 더그아웃의 분위기를 서울컨벤션고 선수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신생팀의 유쾌한 반란을 보여줬던, 그리하여 야구의 매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던 서울컨벤션고 선수들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저도 응원하겠습니다.아, 글을 마치기 전에 소개하고 싶은 팀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93년 해체 이후 26년 만인 지난해 재창단한 경기상고입니다. 서울컨벤션고와 마찬가지로 서울, 경기 지역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린 경기상고는 1회전 인천고에 2-1 승리한데 이어 2회전에서는 부산 지역의 야구 명문인 경남고를 2-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16일에는 경주고에 5-4 승리를 따내며 8강에 진출했습니다. 7회에만 5점을 뽑으며 승부를 뒤집었습니다. 서울고에서 전학온 경기상고의 주전 유격수 유준서는 “전국의 어느 팀보다 우리가 이기려는 마음이 강하다. 어떤 팀이 와도 어떻게든 들이받아서 이기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경기상고는 서울컨벤션고를 꺾고 올라온 강릉고와 18일 8강에서 만납니다. 준결승행 티켓은 두 팀 중 단 한 팀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가 초저녁 하늘을 갈랐다. 좌익수는 이내 공을 쫓기를 포기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 목동야구장 3루 더그아웃에서는 강릉고 선수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좌측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05m 만루홈런을 친 강릉고 3학년 전민준(18)이 환한 얼굴로 베이스 한 바퀴를 돌았다. 대회 첫 만루홈런이자 통산 11번째 홈런이 나온 순간이었다.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연일 홈런 잔치가 열리고 있다. 대회 6일째인 16일 현재 29경기가 열린 가운데 총 12개의 홈런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만 3개의 홈런이 추가됐다. 경기당 0.41개의 홈런이 나온 셈. 45경기에서 15홈런(경기당 0.33개)이 나온 지난해보다 뜨거워진 화력이다. 기간을 넓혀도 홈런 양산 모드다. 2017, 2018년 대회에서는 각각 8홈런이 나왔고, 2016년에는 단 하나의 홈런밖에 볼 수 없었다. 강릉고와 서울컨벤션고의 16강전에선 양 팀이 만루홈런으로 장군 멍군을 불렀다. 강릉고 6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전민준이 1회말 2사 후 좌측 담장을 넘기는 만루홈런으로 기선제압을 했다. 대회 처음이자 올해 고교야구에서 처음 나온 그랜드슬램이다. 서울컨벤션고도 맞불을 놨다. 5회초 3번 타자 겸 포수인 강산(17·2학년)이 우측 담장을 넘기는 그랜드슬램(비거리 105m)을 쏘아 올렸다. 올해 1월 창단한 서울컨벤션고 역사상 첫 홈런. 4회말까지 1-9로 콜드 패배 위기에 놓였던 서울컨벤션고는 5회에만 홈런을 포함해 5득점하며 추격을 이어갔다. 마지막에 웃은 팀은 강릉고였다. 6회 2점을 더하며 결국 11-7로 승리했다. 투구 수 제한으로 에이스 김진욱(3학년)을 등판시킬 수 없었던 강릉고는 투수 5명을 투입하는 총력전 끝에 승리했다. 이번 대회 ‘막내 팀’ 서울컨벤션고는 16강을 넘진 못했지만 성지고, 경기항공고를 상대로 2승을 따내며 발전 가능성을 밝혔다. 인상고와 대전고의 16강 승부를 가른 것도 홈런이었다. 0-2로 끌려가던 대전고는 2회말 신동민(17)의 비거리 115m 3점 홈런을 포함해 6득점하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대전고는 인상고에 10-3,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다. 대회 첫날 대구상원고와의 경기에서 홈런만 3개를 치며 웃었던 인상고는 이날은 상대 팀의 홈런에 무릎을 꿇었다. 올해 홈런이 유독 늘어난 것은 선수들이 어릴 적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힘이 세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비시즌에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전담 트레이너를 두는 학교들도 있다. 투수들의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프로팀 스카우트는 “투구 수 제한 강화(2018년부터 최대 105개)로 에이스들이 일찍 마운드에서 내려가면서 타자들이 보다 자신감을 갖고 타석에 들어서는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릉고는 경주고를 5-4로 꺾은 경기상고와, 대전고는 소래고를 9-4로 꺾은 마산고와 18일 8강에서 각각 맞붙는다. 강홍구 windup@donga.com·황규인 기자}

“말보다는 경기로 보여드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한화 이용규(35)는 통화 내내 이 말을 반복했다. 길고도 길었던 연패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는 100경기도 넘게 남은 시즌에 대한 고민이 더 큰 듯했다. 이용규는 15일 전화인터뷰에서 “연패 기간 동안 선수들 각자가 많은 부분을 느꼈을 거다. 나 또한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최다 연패 타이’(18연패)라는 불명예를 쓴 한화가 14일 길었던 연패에서 탈출하게 된 데에는 주장 이용규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이용규는 9회말 선두 타자로 볼넷을 골라 출루해 결승득점을 기록했다. 앞서 7회말에는 투수의 몸쪽 공을 피하지 않고 종아리에 맞으며 1루로 걸어 나갔다. 동료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플레이였다. 그라운드 위에서만 주장 이용규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팀의 공격 때에는 더그아웃 입구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목소리 높여 동료들을 격려한다. 시즌 초반에는 심판의 스트라이크-볼 판정 일관성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총대를 메기도 했다. 지난해 트레이드 요청 논란으로 무기한 참가 활동 정지 징계를 받았다가 복귀하면서 더욱 팀에 헌신적인 선수가 됐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14일 연패를 끊는 끝내기 안타를 친 노태형(25)과 시즌 전 함께 훈련하면서 숙식비용을 제공하는 등 후배들도 각별히 챙기고 있다. 이날 3루 베이스 위에서 노태형의 타석을 본 이용규는 “후배에게 부담을 떠넘긴 것 같아 미안했다. 생각대로 태형이가 직접 경기를 끝내줘서 고마웠다. 정말 멋졌다”고 말했다. 말 못할 스트레스도 많았다. KIA 소속이던 2010년 16연패에 이어 다시 한 번 긴 연패를 경험한 이용규는 “그때는 어렸었고 선배들도 많아서 그저 그라운드 위에서 내 플레이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참이 되니까 확실히 상황이 달랐다. 의기소침해 있는 후배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싶어도 그 말 한마디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힘들었다. 최대한 경기 전엔 말을 아꼈다”고 말했다. 베테랑인 김태균(38) 정우람(35)과도 말보다는 그라운드 위에서 악착같은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자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고기를 사 먹이거나 용품을 선물하며 격려하던 김태균은 13일 서스펜디드 선언이 되기 전 두산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때리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용규는 “오늘 져도 내일 또 경기를 해야 하는 게 프로야구 선수의 삶”이라며 “선수들이 연패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게 된 것이 위안”이라고 했다. 연패 과정에서 2군으로 내려간 동료들도 잊지 않았다. 이용규는 “경기 끝나고 많은 연락을 받았다. (1군으로) 와서 함께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누구보다 팬을 향한 미안함을 거듭 밝혔다. 구단 또한 14일 경기 뒤 “연패와 무기력한 경기로 허탈감과 큰 실망을 안겨 드린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이용규는 “팀이 잘하나 못하나 늘 같은 응원을 보내주시는 팬들에게 무엇보다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하고 싶다. 연패를 끊었지만 그동안 보여 드리지 못한 게 너무 많다. 프로다운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최혜진(21·롯데·사진)으로선 하늘도 무심하다 싶을 한 주였다. 제주 엘리시안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에쓰오일 챔피언십이 악천후로 끝내 1라운드(18홀) 만에 막을 내렸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13일 일몰로 마치지 못한 2라운드 잔여 경기를 14일 오전 7시에 시작하는 등 이날 2, 3라운드를 모두 소화하려 했지만 짙은 안개로 경기 시작이 거듭 연기되면서 끝내 오후 3시 30분경 대회 종료를 선언했다. 2라운드가 열린 13일에는 전체 120명 중 59명이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 대회 성적은 모든 선수가 경기를 마친 1라운드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첫날 8언더파 64타를 친 최혜진이 1위를 차지했다. KLPGA투어는 현재 36홀 이상 진행한 대회만 공식 대회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최혜진 또한 대회 우승자로 인정받진 못한다. 상금도 총상금 7억 원의 75%인 5억2500만 원을 성적에 따라 나눈다. 최혜진도 상금 요율에 따라 전체 상금의 18%인 9450만 원을 받는다. 디펜딩 챔피언 최혜진으로선 아쉬움이 남는다. 2라운드 9홀까지 3타를 더 줄인 최혜진은 2라운드를 가장 좋은 12언더파로 마친 김지영(24·SK네트웍스)과 1타 차로 남은 경기에 따라 우승에 도전할 수 있었다. 최혜진은 “1라운드 컨디션이 좋아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이렇게 끝나서 아쉽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대회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최혜진은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KLPGA투어에서 통산 9승을 올렸으나 한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적은 없다. 이번에 생애 첫 타이틀 방어를 노렸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됐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전통의 야구 명문고들이 16강에도 오르지 못하고 연이어 무릎을 꿇었다. 대회 나흘째인 14일에는 강호 부산고가 고배를 마셨다. 이날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파주 율곡고와의 첫 경기에서 1-3으로 패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38·텍사스), LG 정근우(38) 등을 배출한 부산고는 경남고와 함께 부산 지역의 양대 산맥이다. 올해도 대형 유격수 자원으로 꼽히는 3학년 정민규(18) 등 강력한 타선을 앞세워 우승 후보로 꼽혔다. 실책에 발목이 잡혔다. 5회까지 1-0으로 앞서던 부산고는 6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투수 하성민(17)이 율곡고 4번 타자 남정완(18)의 번트 땅볼을 놓치면서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연이은 무사만루 위기에선 실책성 플레이가 나왔다. 3루수가 땅볼을 잡아 베이스를 터치하고 던진 공을 받은 포수 박성재(18)가 태그아웃 상황을 포스아웃 상황으로 착각하고 홈을 밟은 채 주자를 태그하지 않아 동점 점수를 헌납한 것. 실책으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상대의 사기를 살려주기에 충분했다. 부산고는 7회말에도 연이어 송구 실책 2개를 기록하며 율곡고에 2점을 내줬다. 8회초 1사 2, 3루 공격 기회에선 후속 타자들이 유격수 직선타, 2루수 직선타로 연이어 물러났다. 충격의 패배를 당한 부산고 일부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한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부산고는 우승 없이 준우승만 네 차례 했을 정도로 유독 황금사자기와 인연이 없다. 율곡고에선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3학년 에이스 도재현(19)의 호투가 빛났다. 키 191cm의 장신 도재현은 4이닝 동안 피안타 3개, 볼넷 2개, 몸에 맞는 공 1개, 탈삼진 1개를 기록하며 무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문용수 율곡고 감독은 “상대 타선이 강한 만큼 빠른 공만으로 공략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변화구 중심의 승부를 주문한 것이 통했다”고 설명했다. 두산 투수 이영하가 롤모델이라는 도재현은 “상대가 전통의 강호라고 해서 못 이기리란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끼리 똘똘 뭉쳤다”고 말했다. 2015년 창단해 전국대회(2017년 봉황대기) 4강이 최고 성적인 율곡고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전국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13일에는 경남고가 경기상고에 0-2로 패했다. 경기상고 선발 구민수(18)가 5와 3분의 2이닝 동안 피안타 2개, 볼넷 1개, 몸에 맞는 공 1개, 탈삼진 5개로 무실점 호투했다. 통산 일곱 번째 황금사자기 우승을 노렸던 경남고는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대회 첫날 비봉고를 꺾었던 경북고 역시 이날 경주고에 5-8로 패했다. 류중일 프로야구 LG 감독, 한국 야구 레전드 이승엽(44) 등을 배출한 경북고는 황금사자기에서만 네 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고교 진학을 앞둔 중학생 야구 유망주들이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전국 각지로 퍼지면서 전력 평준화가 이뤄졌다고 말한다. 한 프로팀의 스카우트는 “각 팀 에이스들이 총출동하는 첫 경기에서는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회 전 훈련이 부족해지면서 예년에 비해 각 팀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강홍구 windup@donga.com·조응형 기자}

한국 여자 골프가 흥행을 이어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프로투어 중 가장 먼저 문을 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최종 라운드 시청률도 지난달 E1 채리티 오픈은 1.075%(수도권 유료 가구 기준)나 됐다. 지난주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은 1.872%로 다시 최고치를 경신했다.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의 최고 순간 시청률은 2.766%까지 치솟기도 했다. 12일 제주 엘리시안 제주컨트리클럽(파72)에서 막을 올리는 투어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도 확실한 흥행 카드가 있다.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던 우승자 김효주(25·롯데), 2위 김세영(27·미래에셋)과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최혜진(21·롯데)이 1, 2라운드에서 동반 플레이를 펼친다. 김효주와 김세영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주무대로 뛰고 있고 최혜진은 이른 시기에 LPGA 입성을 노리고 있다. 지난주 3년 6개월 만에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며 ‘천재소녀’의 부활을 알린 김효주는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김효주는 2014년 한국여자오픈, 금호타이어 여자오픈에서 연속 우승을 맛본 바 있다. 김효주는 “최대한 우승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겠다. 한 타 한 타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지난해 2위 그룹을 한 타 차로 따돌리고 극적인 역전승을 따낸 최혜진도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KLPGA투어 통산 9승(아마추어 포함)을 수확한 최혜진은 아직까지 같은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적이 없다. 최혜진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이 대회에 7년 만에 출전한다. 이 밖에 LPGA투어의 ‘핫식스’ 이정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의 이보미 김하늘 배선우 등 해외파도 출사표를 냈다. 사흘간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총 7억 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우승 상금은 1억2600만 원이다. 우승 상금요율을 20%에서 18%로 낮췄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승자 외에 다른 선수들에게도 보다 많은 상금을 챙겨 주기 위해서다. 이번 대회도 무관중으로 치러진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김연경(32)은 단상 위에서 보란 듯 여러 포즈를 취했다.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도 긴장한 기색 없이 도리어 취재진에게 원하는 포즈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뒤로 돌아서는 양손 엄지로 자신의 백넘버(10)를 가리켰다. 11년 만에 흥국생명에 복귀한 김연경은 “지금이라도 코트에 들어가서 경기하고 싶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배구여제 김연경이 V리그로 돌아왔다. 10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서울호텔에서 김연경의 흥국생명 입단식이 열렸다. 2005∼2006시즌부터 흥국생명에서 4시즌을 뛰었던 김연경은 이후 일본, 터키, 중국 무대 등을 거쳐 11년 만에 다시 친정팀에 돌아왔다. 과거 흥국생명에서 달았던 10번을 그대로 달았다. 박미희 감독과 구단 관계자들은 축하 꽃다발로 복귀를 반겼다. 터키, 중국 팀의 러브 콜을 받기도 했던 김연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 리그가 재개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내년 (도쿄) 올림픽을 최고의 컨디션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국내 복귀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샐러리캡 제도에서 후배들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단이 제시한 최대 연봉(6억5000만 원)보다 적은 3억5000만 원(1년)에 도장을 찍은 김연경은 “금전적인 부분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경기력”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복귀로 전력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스포츠라는 게 쉽지 않다. 무실세트 우승, 전승 우승이라는 게 말로는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리그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기 때문에 우리도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주축 멤버인 레프트 이재영, 세터 이다영(이상 24) 쌍둥이 자매와 팀에서도 한솥밥을 먹게 된 김연경은 “같은 팀에서 뛰며 호흡을 맞추는 데 장점이 있을 것 같다”면서도 “내년에 올림픽도 열리지만 우선 올 시즌 팀의 우승이 중요하다”고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했다. 해외 리그에서 뛰면서 프로정신과 책임감을 배웠다는 김연경은 V리그의 발전을 위한 자신의 아이디어도 내놨다. 특히 현재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으로 진행되는 외국인 선수 선발에 대해 “자율계약으로 바뀌면 좋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와서 한국 배구 수준이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천할 만한 외국인 선수로 과거 터키 페네르바흐체, 에즈자즈바시으에서 같이 뛰었던 레프트 나탈리아 페레이라(31·브라질)를 꼽기도 했다. 21세에 국내 무대를 떠나 32세에 다시 돌아오게 된 김연경은 “그동안은 한국에 쉬러 들어왔었는데 이제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짐이 늘고 있다. 집도 사람 사는 분위기가 됐고 여유도 생겼다”고 말했다. 프로 데뷔 때 첫 월급으로 부모님의 속옷을 사드렸었다는 그는 “이번엔 월급을 받으면 나 자신을 위한 고급 가방을 살 생각”이라고 말해 장내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30대 중반을 앞둔 만큼 체력적 부담은 없냐는 질문에 “아직 만으로 서른두 살이라 몸 상태는 괜찮다. 비시즌 휴식도 많이 취한 만큼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김연경은 다음 달 팀 훈련에 합류할 예정이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미국프로골프(PGA)투어도 기지개를 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PGA투어가 석 달 만에 재개된다. 12일(한국 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CC(파70)에서 찰스 슈와브 챌린지가 열린다. 3월 1라운드 도중 취소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포함해 발스파 챔피언십,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델 매치 플레이 등 그동안 7개 대회가 취소됐다. 찰스 슈와브 챌린지도 애초 5월 22일 시작할 예정이었다. 3개월 만에 열리는 대회에 스타플레이어들도 총출동한다. 1986년 골프 세계랭킹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이 대회에 세계 1∼5위가 모두 출전한다. 총상금은 750만 달러(약 90억 원). 특히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 2위 욘 람(26·스페인), 3위 브룩스 켑카(30·미국)가 1, 2라운드 같은 조에서 경기를 펼친다. 매킬로이가 이 대회에 출전하는 건 처음이다. 4위 저스틴 토머스(27)는 절친 조던 스피스(27·56위), 리키 파울러(32·27위·이상 미국)와 동반 플레이를 한다. 5위 더스틴 존슨(36·미국), 23위이자 페덱스컵 랭킹 1위인 임성재(22) 등도 출전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는 불참한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이번 대회 또한 무관중으로 치러진다. 모든 참가자를 대상으로 체온도 측정한다.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특정 홀에서 사전 참가 의사를 밝힌 선수들에 한해 무인 카메라 앞에서 미리 인쇄된 질문을 읽고 대답하는 방식의 인터뷰도 진행할 계획이다. 일부 선수는 경기 도중 마이크도 착용한다. 다음 달 중순 열리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의 경우 하루 8000명에 한해 갤러리 입장을 허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동시 수용 가능 인원(4만2000명)의 약 20% 규모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백발의 감독은 오른손에 휘슬을 든 채 분주하게 코트 위를 헤집고 다녔다. 반바지 차림으로 코치들과 격의 없이 하이파이브를 나눴고, 선수들에겐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공격에 성공한 센터 조재영(29)에게 “라이트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농담을 던지자 선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속공 훈련이 시작되자 이내 표정이 진지해졌다. 선수들 하나하나를 불러가며 토스의 높이, 블로킹 동작 등을 세밀하게 지도했다. V리그에서만 12시즌을 보낸 베테랑 세터 한선수(35)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8일 경기 용인시 대한항공 체육관에서 열린 로베르토 산틸리 신임 감독(55)의 첫 훈련 현장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산틸리 감독은 V리그 남자부 첫 외국인 사령탑이다. 세터 출신의 산틸리 감독은 호주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프로팀 등을 지도했다. 선진 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선수단에 새로운 변화를 꾀한다는 게 구단 측이 밝힌 영입 배경이었다. 대한항공은 감독과 선수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 요원도 새롭게 채용했다. 지난달 24일 입국해 2주간의 자가 격리를 마치고 이날 선수단과 첫 인사를 나눈 산틸리 감독은 “부담감이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부담감을 즐긴다. 한국에 온 것 자체가 나에게 도전”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여자부 KGC인삼공사의 외국인 선수 디우프의 조언도 좋은 참고가 됐다. 자가 격리 기간에 실시간으로 선수들의 훈련 영상을 살펴온 산틸리 감독은 “대한항공 선수들은 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대한항공이라는) 훌륭한 수프에 나는 팀 기술이라는 소스만 조금 추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터 한선수, 레프트 정지석(25) 등이 버티는 대한항공은 새 시즌에도 우승 후보로 꼽힌다. V리그에 대한 인상을 묻자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봤는데 톱10 영상 중 6개가 리베로의 허슬 플레이였을 정도로 수비력이 뛰어났다. 수비력이 좋은 만큼 블로킹 라인 등 전위의 조직력 훈련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주장 한선수는 “선수들도 기대하는 부분이 많다. 오늘 감독님이 오셔서 ‘연습은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즐거움 속에서 집중력이 나오는 만큼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목표도 명확히 했다. 산틸리 감독은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지만 우승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하지 않는 팀이 돼야 한다. 승리라는 결과보다 과정에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산틸리 감독은 다른 팀에도 좋은 자극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틸리 감독 선임 소식을 접한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최근 “유럽의 선진 시스템을 어떻게 V리그에 적용할지 궁금하다. 새 시즌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인=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