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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은 저승에 가서도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그저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밌게 손 잡고, 구름 타고 그렇게 슬슬 놀러 다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4일 남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배우 엄앵란 씨(82)는 평생의 동반자 신성일에게 마지막으로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신성일 엄앵란 부부는 사랑과 원망, 애증과 연민으로 55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부부가 인연을 맺은 것은 ‘맨발의 청춘’(1964년)에 함께 출연하면서부터다. 엄 씨는 남편에 대해 “가정 남자는 아니었다. 사회 남자, 대문 밖의 남자지 집안의 남자는 아니었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나한테 다 맡기고, 영화만 하러 돌아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는 “집에는 늦게 들어와서 자고 일찍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늘그막에 재밌게 살려고 그랬더니 내 팔자가 그런가보다”고 아쉬워했다. 신성일의 유언은 그의 삶처럼 자유롭고, 로맨틱했다. 엄 씨는 “딸이 ‘아버지 재산 뭐 있소?’라고 물어봤더니 ‘재산 없다’고 했단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한테 가서 ‘참 수고했고, 고맙다 그래라, 미안하다 그래라 가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며 “사회적인 남자이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이지만 존경할만 해서 55년을 살았지 흐물흐물하고, 능수버들 같은 남자였으면 그렇게 안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성일은 임종 직전까지 촬영 예정이었던 영화 ‘소확행(가제)’의 세세한 준비사항까지 직접 챙기고 있었다. 엄 씨는 “우리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물이 들어간 영화인이다”며 “까무러쳐서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는 이렇게 찍고, 저렇게 만들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지만 이토록 영화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위기 때 빛나는 부부의 사랑이었다. 엄 씨가 2015년 12월 채널A 건강정보 프로그램 ‘나는 몸신이다’에 출연하면서 유방암 확진 판결을 받자 20여 년간 별거 중이던 남편이 달려와 극진히 간호했다. 엄 씨는 이듬해 1월 수술을 받아 완쾌한 후 “수술 후 깨어나니 웬 남자가 침대를 끌고 있더라. 누군가 살펴봤더니 그렇게 욕하던 남편이었다. 한참 안 보다가도 급한 상황에 나타나니까 의사선생님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며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반대로 신성일이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자 엄 씨가 수천만 원 병원비를 부담하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엄 씨는 올해 3월 채널A 뉴스TOP10과의 인터뷰에서 “내 남편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VVIP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30년 된 승복을 기워 입어 ‘누더기 스님’으로 불리는 부산 영일암 주지 현웅 스님. 단지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스님은 인재불사(人材佛事)를 위해 써달라며 사찰의 전 재산인 7억 원 상당의 금액을 동국대에 기부해왔다.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녀 ‘포대화상’으로 불리는 무원 스님의 일화와 12년간 8000km를 달리며 모금해 소외된 이웃을 도와온 ‘철인 스님’ 진오 스님까지. 종교인들의 속살을 살펴볼 수 있는 각종 일화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동아일보 종교전문기자다. 2014년부터 ‘뫔길’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쓴 글을 각색해 엮었다. T길은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닌 조화된 삶의 길을 전한다는 의미다. 특정 종교를 넘어 한국 사회에 울림을 주는 이들의 활동은 읽는 내내 따뜻함을 준다. 송길원 목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시민들이 유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팽목항에 ‘진도 하늘나라 우체통’을 만들어 우리 사회에 위로를 선사했다. 은둔의 생활이 아닌 팟캐스트로 소통하는 바오로수도회 소속 김젬마 수녀와 황인수 수사의 이색적인 도전은 디지털시대 종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 종교의 위기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도 눈에 띈다. 비구니의 권한 확대를 강력히 제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행태를 비판하고 교회 세습을 둘러싼 개신교의 갈등에 일침을 가하며 존경받는 지도자가 부재한 한국 종교계의 문제를 꼬집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 음식문화의 뿌리인 ‘장(醬)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이를 건조·발효하는 과정을 통해 된장과 간장 등을 만드는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장 담그기는 고대부터 이어져왔으며 세대 간에 전승돼 모든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우리 음식문화와 조리법 등 다양한 갈래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주거문화와 세시풍속, 기복신앙, 전통과학과 관련한 요소를 지닌다는 점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승하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김치 담그기(제133호), 제염(제134호)처럼 특정 보유자와 단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강원 강릉시 초당동 유적지에서 4세기 신라시대의 찰갑(札甲)이 출토됐다. 찰갑은 작은 미늘조각을 꿰매어 붙인 갑옷으로 영동지역에서 신라시대 갑옷이 완형으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을 조사 중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유적 내에 직사각형 형태의 토광목곽묘(덧널무덤)에서 찰갑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토광목곽묘 내부에 지름 5~10cm 크기의 돌을 사용해 만든 시신 안치대(시상대)가 있었는데 찰갑은 시상대의 서단벽 쪽에서 발견됐다.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외에 목의 뒤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경갑·頸甲),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견갑·肩甲) 등도 함께 확인됐다. 찰갑 옆에는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 짧은목항아리(단경호·短頸壺) 등 신라시대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도 함께 출토됐다. ‘삼국사기’에는 “395년 말갈이 북쪽 변방을 침입하여 신라가 크게 패했다”는 사건과 “450년 하슬라(강릉) 성주 삼직이 실직(삼척)의 들에서 사냥하던 고구려 변방 장수를 살해했다”는 기록 등이 남아있다. 4, 5세기 무렵 국경지대였던 강릉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신라 간에 충돌이 빈번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원 측은 신라 토기 연대를 고려하면 4세기 강릉 지역에 주둔한 신라 장수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원은 “신라의 영동 진출 시점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50년간 전통가구 만들기 외길을 걸어온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박명배 소목장(68)의 네 번째 개인전이 3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박 소목장은 전통의 멋을 살리면서도 현대인의 생활공간 속에 녹아들 수 있는 가구들을 만들어 왔다. 그의 작품(사진)들은 나무 자체의 무늬와 색상을 그대로 살려 자연스럽고 담백한 멋을 자랑한다. 특히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느티나무 용목’을 활용한 가구가 많다. 이번 전시에는 책장과 반닫이, 문갑, 약장, 머릿장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목가구들과 사무 공간에서도 쓰일 수 있는 회의용 테이블, 침실용 수납장으로 디자인한 삼층장 등 40여 점을 선보인다. 박 소목장은 “현대 생활공간 속에서도 전통 목가구가 주는 소박한 호사를 누리며 고유의 미의식을 함께 즐기고 공유했으면 한다”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12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영하의 날씨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얼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2016년 1월 충남 태안군 당암포구 앞바다에는 배 위에서 생활하며 바닷속을 하염없이 뒤지는 이들이 있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38)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진들. 이곳에서 85점의 고려, 조선시대 도자류를 훔쳤다가 붙잡힌 도굴꾼들에게 정보를 입수한 직후였다. 망망대해에서 1주일을 탐색한 끝에 그물에 도자기 1점이 걸려들었다. 1000여 년 전 제작된 고려청자가 훼손 없이 원형 그대로 올라왔다. 당암포구는 좁은 해역에 유속이 빨라 각종 해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2주간의 수색을 거쳐 수사팀이 건져 올린 유물은 20여 점. 도굴꾼들이 이미 가져간 85점을 회수한 것과 더불어 100여 점의 문화재가 다시 안전하게 돌아왔다. “힘겹게 입수한 첩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허탕 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죠. 그런데 바다에서 청자를 건져 내니 머리카락이 삐쭉 설 만큼 짜릿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1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만난 한 반장은 2년 전 당암포구 고려 문화재 회수 사건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화재청 소속 공무원이지만 그의 주된 일상은 잠복근무와 첩보입수, 현장단속 등이다. 언뜻 경찰관처럼 보이지만 그는 대한민국 전체를 관할구역으로 삼으며 도난당한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는 사범단속반의 수장이다. 1990년대까지 화제를 끌었던 뉴스 중 하나는 이른바 ‘대도(大盜)’로 불리는 전문 도굴꾼의 범죄 소식이었다. 2000년대 들어 주요 문화재 시설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는 등 안전조치가 강화됐지만 도굴꾼들의 범죄도 덩달아 지능화됐다. 철저한 분업화 팀 조직과 함께 비신고 문화재만 털어가는 신종 수법이 나타난 것. 당암포구 사건에서도 5명의 도굴꾼이 절취책, 판매책, 자금팀 등으로 나눠 문화재를 훔쳐갔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점조직으로 연결하고, 외국 경매 사이트에서 도난 경력을 세탁하는 등 도굴 범죄도 디지털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단속반의 업무는 첩보입수 등 아날로그 방식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대학이나 박물관처럼 보안장치가 견고한 기관 대신 개인이나 문중의 자산을 노리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올해 2월 회수한 어사 박문수(1691∼1756)로 유명한 고령 박씨 집안의 간찰(簡札) 1047점은 2008년 충남 천안의 종중재실에서 도난당했다. 그러나 문중에선 도난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문화재보호법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인 10년을 채웠다고 생각해 간찰을 판매하려다 덜미가 잡혔죠. 2007년부터 선의취득 배제 조항을 신설해 실질적으로 공소시효를 무제한 연장했습니다. 문화재 안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보관하는 것보다는 기관에 위탁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8년간 단속반원으로 활동하며 수백 건의 문화재를 회수한 한 반장에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의 회수다. 소유자인 배익기 씨(55)가 2008년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배 씨는 29일 국정감사에서 “1000억 원을 주더라도 내놓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가지보(無價之寶)’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안전입니다. 수십 번, 수백 번 협의를 해서라도 반드시 국민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죠.” 대전=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인문학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5회 세계인문학포럼이 31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부산 수영구 F1963에서 열린다. 교육부와 유네스코, 부산시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포럼은 ‘변화하는 세계 속의 인간상’이라는 주제로 41개국 130여 명의 인문학자가 참여한다. 첫날인 31일에는 초대 세계인문학포럼 추진위원장을 지낸 이한구 경희대 미래문명원장이 ‘지구촌 시대의 인간상’, 미국 사학계의 거장 타일러 스토발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자유와 인종과 자유의 여신상’이란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한다. 1일에는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 왕후이 칭화대 교수의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의 과제와 도전’, 2일에는 로시 브라이도티 위트레흐트대 교수의 ‘포스트휴먼의 조건과 비판적 포스트 인문학’ 강연이 이어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영하의 날씨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얼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2016년 1월 충남 태안군 당암포구 앞바다에는 배 위에서 생활하며 바다 속을 하염없이 뒤지는 이들이 있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38)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진들. 이곳에서 85점의 고려-조선시대 도자류를 훔쳐간 도굴꾼들에게 정보를 입수한 직후였다. 망망대해에서 1주일을 탐색한 끝에 그물에 도자기 1점이 걸려들었다. 1000여 년 전 제작된 고려청자가 훼손 없이 완형 그대로 올라왔다. 당암포구는 좁은 해역에 유속이 빨라 각종 해난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곳이다. 2주간의 수색을 거쳐 수사팀이 건져 올린 유물은 20여 점. 도굴꾼들이 이미 가져간 85점을 회수한 것과 더불어 100여 점의 문화재가 다시 안전하게 돌아왔다. “힘겹게 입수한 첩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허탕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죠. 그런데 바다에서 청자를 건져내니 머리가 삐쭉 설 만큼 짜릿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1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만난 한 반장은 2년 전 당암포구 고려 문화재 회수 사건을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문화재청 소속 공무원이지만 그의 주된 일상은 잠복근무와 첩보입수, 현장단속 등이다. 언뜻 경찰관처럼 보이지만 그는 대한민국 전체를 관할구역으로 삼으며 도난당한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는 사범단속반의 수장이다. 1990년대까지 화제를 끌었던 뉴스 중 하나는 이른바 ‘대도(大盜)’로 불리는 전문 도굴꾼의 범죄 소식이었다. 2000년대 들어 주요 문화재 시설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는 등 안전조치가 강화됐지만 도굴꾼들의 범죄도 지능화됐다. 철저한 분업화 팀조직과 함께 비신고 문화재만 털어가는 신종수법이 나타난 것. 당암포구 사건에서도 5명의 도굴꾼이 절취책, 판매책, 자금팀 등으로 나눠 문화재를 훔쳐갔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점조직으로 연결하고, 외국 경매사이트에서 도난 경력을 세탁하는 등 도굴범죄도 디지털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단속반의 업무는 첩보입수 등 아날로그 방식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대학이나 박물관처럼 보안장치가 견고한 기관 대신 개인이나 문중의 자산을 노리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올해 2월 회수한 어사 박문수(1691~1756)로 유명한 고령박씨 집안의 간찰(簡札) 1047점은 2008년 충남 천안의 종중재실에서 도난당했다. 그러나 문중에선 도난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었다. “문화재보호법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인 10년을 채웠다고 생각해 간찰을 판매하려다 덜미가 잡혔죠. 2007년부터 선의취득 배제 조항을 신설해 실질적으로 공소시효를 무제한 연장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안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보관하는 것보다는 기관에 위탁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8년간 단속반원으로 활동하며 수백 건의 문화재를 회수한 한 반장에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의 회수다. 소유자인 배익기 씨(55)가 2008년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배 씨는 29일 국정감사에서 “1000억 원을 주더라도 내놓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가지보(無價之寶)’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안전입니다. 수십 번 수백 번 협의를 해서라도 반드시 국민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죠.” 대전=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남북한이 각각 신청한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가 확실시된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 신청했던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에 대해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가 심사한 결과 ‘등재 권고’ 결정을 내렸다”고 29일 밝혔다. 평가기구는 심사 결과를 등재, 정보 보완, 등재 불가 등 세 등급으로 나눠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 권고한다. 이 결과는 이변이 없는 한 그대로 수용된다.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인 씨름이 등재되면 대한민국의 20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된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택견, 아리랑, 김장문화, 제주 해녀문화 등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한편 북한이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도 우리나라의 씨름과 함께 등재 권고를 받았다. 남북한이 씨름 등재 신청서를 따로 제출한 상황이지만 사상 처음으로 남북 공동으로 등재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렸다. 다음 달 26일부터 12월 1일까지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열리는 제13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최종 등재 여부가 확정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화제였던 역사적 인물에는 쓰러져 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고종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고종은 조선의 임금부터 대한제국 황제, 강제 퇴위 이후에는 일상복을 입는 모습까지 다양한 의상을 선보였다. 실제로 고종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서울 중구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리는 특별전 ‘대한제국 황제 복식’은 고종이 입었던 복식 8종과 근·현대 복식 유물 8종 등 총 16점을 선보인다. 대한제국 황실의 ‘의·식·주’라는 주제를 연차적으로 기획해 선보이는 첫 특별전. 올해는 ‘의(衣)’에 해당하는 대한제국 황제 복식을 다룬다. 고종의 생애를 따라 조선의 왕이 입었던 홍룡포, 대한제국 성립 이후 만들어진 황제의 새 복식, 고종 퇴위 이후 만들어진 태황제 예복 등을 선보인다. 특히 실물이 없어 사진과 그림으로만 확인해야 했던 고종의 서양식 황제복과 태황제 복식을 처음으로 재현해 공개한다. 그동안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던 1906년 대한제국 마지막 서구식 문관 대례복(大禮服)도 나온다. 대례복은 국가에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 착용한 옷이다.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별도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다. 12월 12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 제7대 임금 세조의 어진(御眞·임금 초상화)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세조 어진 초본과 세조 관련 유물 및 자료 30여 점 등을 선보이는 테마전 ‘세조’를 22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궁중서화실에서 연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현존하는 유일한 세조 어진을 공개한다는 점이다. 이 그림은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1892∼1979)가 1935년 이왕직(李王職)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어진이다. 1735년 제작한 또 다른 세조 어진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김은호는 초본 외에 채색본인 정본(正本)도 함께 만들었으나 6·25전쟁 직후인 1954년 화재로 소실돼 현재는 초본만 남아 있다. 하얀 종이에 먹으로 선만 그린 초본은 가로세로 131.8×186.5cm 크기다. 2016년 국내 한 경매에서 국립고궁박물관이 낙찰 받은 뒤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한다. 조선시대 세조 어진에 대한 보수와 모사 작업 내용을 기록한 등록(謄錄)도 공개한다. 등록에 따르면 세조 어진은 한양이 아니라 그가 묻힌 남양주 광릉(光陵) 옆 진전(眞殿·어진을 모신 전각)에 보관한 덕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무사했다고 한다. 세조 어진 초본에 색 입히기, 세조 어진 초본 따라 그리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과 강연도 있다.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올해 8월 세상을 떠난 미국 ‘애국의 아이콘’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매주 금요일마다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는 그의 죽음을 준비하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회의의 주재자는 다름 아닌 매케인 전 의원 자신이었다. 1년가량 열린 이 회의에서 장례식 관련 일정 및 참석자, 연주될 음악과 낭독할 시, 관을 운구하는 사람과 동선 등 모든 것이 결정됐다. 매케인의 보좌관은 “마치 선거 캠페인 전략을 짜듯 그는 아주 냉철하게 회의를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죽음 이후의 모든 절차를 준비하는 ‘상속설계(Estate Planning)’가 보편화돼 있다고 한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슈카쓰(終活)’라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준비되지 않은 상속으로 인해 후손들이 분쟁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책은 법률, 세무 등 실용적인 정보부터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까지 낯설게 느껴지는 상속 제도를 쉽게 설명해준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변호사인 저자가 직접 경험한 상속 분쟁 사례 등을 통해 상속설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책의 에필로그에는 저자가 아들에게 직접 쓴 유언장이 수록돼 있어 상속설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인쇄된 유언장, 연명 치료 의향서, 효도 계약서 등을 참고해 작성해 보는 것도 좋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불의를 내치면서 세우는 정의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불의까지 품어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죠.” 원불교의 교단 최고지도자에 선출된 전산(田山) 김주원 종법사(70·사진)는 18일 전북 익산시 중앙총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신임 종법사는 지난달 18일 원불교의 103년 역사에서 역대 6번째 종법사에 선출됐다. 전산 종법사는 탈종교 시대 속 원불교를 이끌 방향으로 ‘무아봉공(無我奉公)’을 내세웠다. 무아봉공은 원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로 나를 없애고 공익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다는 뜻이다. 전산 종법사는 “이기심을 버리고 세상을 위해 선행을 베풀고 덕을 쌓는 게 곧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참된 수도는 산중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에 마음을 잘 써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등록된 원불교 신자는 약 130만 명이다. 그는 교조 소태산(少太山) 박중빈 대종사(1891∼1943), 정산(鼎山) 송규(1900∼1962), 대산(大山) 김대거(1914∼1998), 좌산(左山) 이광정(82), 경산(耕山) 장응철 종사(78)의 법맥을 계승했다. 종법사는 불교 조계종으로 치면 종정에 해당한다. 전산 종법사는 최근 조성된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대해서 “어른들이 자고 나면 통일이 됐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올해 들어서 실제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한 상황을 비롯해 서로 갈등과 다툼이 있다면 어두운 과거에 대한 대참회를 하고, 서로 원망하는 마음과 어리석은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전산 종법사는 “‘절처봉생(絶處逢生)’ 끊어지는 곳에서 다시 새 삶을 만난다고 한다. 청년들이 원망하는 마음보다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1967년 출가한 전산 종법사는 총무부장, 경기인천교구장, 교정원장, 중앙중도훈련원장, 영산선학대 총장 등을 지냈다. 다음 달 3일 원불교 중앙교의회에서 정식으로 추대되고, 4일 취임식이 열린다. 임기는 6년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신문협회가 남북고위급회담 공동취재단에서 탈북민 기자를 배제한 통일부를 비판했다. 통일부는 15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구성한 공동취재단에서 탈북민이란 이유로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를 일방적으로 배제했다. 신문협회는 18일 성명을 통해 “군부독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탈북민의 권리 보호와 국내 정착에 가장 앞장서야 할 통일부가 탈북민을 차별했다”고 비판했다. 협회는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사과와 함께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관계자를 문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기자협회도 이날 “부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기자를 배제하는 것은 심각한 언론자유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동취재단 구성은 출입기자단과 언론사가 결정해 왔다. 지금까지 어떤 부처도 공동취재단 구성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여기자협회 역시 성명서를 내고 “취재 장소가 어디든 취재단 구성에 관여할 권리는 없다”며 통일부에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시원한 사이다 캔을 막 개봉한 것처럼 ‘샥∼’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성인 2명이 들어가도 될 만한큰 술항아리에서 나온 소리였다.항아리 안에는 보글보글 거품이 일어나는막걸리가 누렇게 발효되고 있었다.1939년 설립 후 80년째 같은 자리에서막걸리를 만들어내고 있는충북 괴산군의 ‘제일양조장’ 발효실이다.이곳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올해 3월부터진행하고 있는 ‘근현대 양조장과 술 물화’민속조사 현장이다.10일 박물관 조사팀과 80년 이상전통 막걸리 생산 방식을 고집하는‘제일양조장’과 ‘목도양조장’을 찾았다.》○ 평생 양조장 외길 ‘제조법으론 설명 안 되는 내공’ “매일 새벽 술항아리를 씻고, 주모(酒母·술을 만드는 원료)를 담그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벌써 50년이네요.” 제일양조장 대표 권오학 씨(70)는 덤덤하게 지난날을 되짚었다. 제일양조장은 ‘괴산에서 제일가는 막걸리’로 여겨질 만큼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술항아리에서 막걸리 한 모금을 떠 마셔보니 뒷맛이 개운한 시원함이 밀려왔다. 전통 막걸리는 지에밥(고두밥)에 누룩(술을 만들 때 쓰는 발효제) 등을 섞어 술항아리 안에서 일정 시간 동안 발효시켜 만든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재료의 비율과 숙성 시간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막걸리는 발효식품인지라 제조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이 무척 중요합니다. 술독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로도 어떤 막걸리가 나올지 알 수 있죠. 노하우를 알려줘도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막걸리는 시대에 따라 부침이 컸다. 쌀이 부족했던 1960, 70년대에는 법으로 막걸리 제조에 쌀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읍면 단위별 양조장 허가제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산업적으로 성장하기 힘든 측면도 있었다. “쌀을 못 쓰게 하던 정부가 1977년도에 갑자기 통일벼를 쓰라고 지침을 내렸어요. 하루아침에 원료를 바꾸니 막걸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속상하기도 했죠. 지금은 쌀과 밀을 섞어 가장 맛있는 비율로 만들고 있어요. 배운 게 막걸리밖에 없으니 힘이 닿는 한 계속 만들어야죠.”○ 3대를 이어온 전통 ‘우리 모두의 유산’ “제2회 전조선 주유품평회에 괴산주조주식회사의 제2공장약주가 1등으로 당선됐다.” 동아일보는 1939년 12월 26일자에 당시 전국 술 평가대회 결과를 보도했다. 여기서 소개된 ‘괴산주조주식회사’가 지금의 ‘목도양조장’이다. 조선 최고의 술도가로 뽑혔던 이곳은 1931년 설립 이후 현재 창업주의 3세인 유기옥 씨(60)가 운영한다. 실은 40여 년 동안 위탁경영을 했었다. 유 씨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어쩔 수 없이 양조장 경영을 외부에 맡겼다. 이후 전통 막걸리 시장이 계속해서 위축됐고, 결국 2013년 일하던 이들이 모두 양조장을 떠났다. “80년 역사를 간직한 곳인데 도저히 문을 닫을 수 없었어요.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통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런 마음 덕분인지 목도양조장 막걸리는 ‘옛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정성을 쏟고 있다. 묵직하면서 텁텁한, 다소 촌스러운 ‘그 맛’ 말이다. 주말이면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인 남편이 오토바이를 몰고 막걸리 1병이라도 직접 배달할 정도로 전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더 잘 팔릴 수 있게 설탕이라도 좀 치라지만, 전통 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양조장은 저와 제 가족의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는 꼭 이어가야 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니까요.”괴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려와 조선뿐 아니라 중국의 유물까지 품고 있어 ‘불복장(佛腹藏·불상을 조성하며 안에 넣은 부장물)의 타임캡슐’로 불리는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580호)의 복장품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공개한다. 수국사 종합학술조사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학술대회를 연다고 17일 밝혔다. 위원회 조사 결과, 이 불상에는 총 84점의 복장품이 담겨 있었다. 고려시대 재조대장경의 편집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11세기 화엄경과 밀교대장(密敎大藏) 등 희귀 서지를 다수 발견했다. 밀교대장은 대승불교의 한 교파인 밀교 경전을 집대성한 책이다. 정우택 수국사 종합학술위원장(전 동국대 박물관장)은 “현재까지 나온 복장품 등을 봤을 때 고려시대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조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시원한 사이다 캔을 막 개봉한 것처럼 ‘샥~’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성인 2명이 들어가도 될 만한 큰 술항아리에서 나온 소리였다. 항아리 안에는 보글보글 거품이 일어나는 막걸리가 누렇게 발효되고 있었다. 1939년 설립 후 79년째 같은 자리에서 막걸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충북 괴산군의 ‘제일양조장’ 발효실이다. 이곳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올해 3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근현대 양조장과 술 물화’ 민속조사 현장이다. 10일 박물관 조사팀과 80여 년간 전통 막걸리 생산방식을 고집하는 ‘제일양조장’과 ‘목도양조장’을 찾았다.● 50년 양조장 외길 ‘제조법으론 설명 안 되는 내공’ “매일 새벽 술항아리를 씻고, 주모(酒母)를 담그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벌써 50년이네요.” 제일양조장 대표 권오학 씨(70)는 덤덤하게 지난날을 되짚었다. 권 씨는 1966년 배달원으로 취업하며 양조장과 인연을 맺었다. 성실히 일한 덕분에 3년 뒤 정직원으로 채용됐고, 1974년부터는 공장장으로 일하며 40년 넘게 막걸리를 만들어오고 있다. 2015년에는 3대째 이어온 창업주 가족으로부터 경영권을 양도받아 양조장 주인이 됐다. 제일양조장은 ‘괴산에서 제일가는 막걸리’로 여겨질 만큼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술항아리에서 막걸리 한 모금을 떠 마셔보니 뒷맛이 개운한 시원함이 밀려왔다. 전통 막걸리는 고두밥(지에밥)에 누룩(술을 만들 때 쓰는 발효제) 등을 섞어 술항아리 안에서 일정 시간 동안 발효시켜 만든다. 언뜻 간단해보이지만 재료의 비율과 숙성 시간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막걸리는 발효식품인지라 제조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이 무척 중요합니다. 술독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로도 어떤 막걸리가 나올지 알 수 있죠. 노하우를 알려줘도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막걸리는 시대에 따라 부침이 컸다. 우리나라의 술 전통은 원래 집집마다 만드는 가양주(家釀酒) 형태로 전승돼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가정에서 만든 술의 면허제를 폐지하면서 양조장 체제로 바뀌게 된다. 현재 남아있는 전통 양조장 대부분이 1930년대 이후에 생겨난 배경이기도 하다. 쌀이 부족했던 1960~70년대에는 법으로 막걸리 제조에 쌀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읍면 단위별 양조장 허가제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산업적으로 성장하기 힘든 측면도 있었다. “쌀을 못 쓰게 하던 정부가 1977년도에 갑자기 통일벼를 쓰라고 하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하루아침에 원료를 바꾸니 막걸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속상하기도 했죠. 지금은 쌀과 밀을 섞어 가장 맛있는 비율로 만들고 있어요. 배운 게 막걸리밖에 없으니 힘이 닿는 한 계속 만들어야죠.”● 3대를 이어온 전통 ‘우리 모두의 유산’ “제2회 전조선 주유품평회에 괴산주조주식회사의 제2공장약주가 1등으로 당선됐다.” 동아일보 1939년 12월 26일자에는 당시 전국 술 평가대회 결과를 보도했다. 여기서 소개된 ‘괴산주조주식회사’가 지금의 ‘목도양조장’이다. 조선 최고의 술도가로 뽑혔던 이곳은 1931년 설립 이후 현재 창업주의 3세인 유기옥 씨(60)가 운영한다. 실은 40여 년 동안 위탁경영을 했었다. 유 씨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어쩔 수 없이 양조장 경영을 외부에 맡겼다. 이후 전통 막걸리 시장이 계속해서 위축됐고, 결국 2013년 일하던 이들이 모두 양조장을 떠났다. “80년 역사를 간직한 곳인데 도저히 문을 닫을 수는 없었어요.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통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런 마음 덕분인지 목도양조장 막걸리는 ‘옛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 묵직하면서 텁텁한, 다소 촌스러운 ‘그 맛’ 말이다. 양조장 옆으로 ‘달천’이란 강이 흐르는데, 물맛이 달아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지하수를 길러 막걸리 제조에 쓴다. 주말이면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인 남편이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막걸리 1병이라도 직접 배달할 정도로 막걸리 전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이어오고 있다. “주위에서는 더 잘 팔릴 수 있게 설탕이라도 좀 치라지만, 전통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양조장은 저와 제 가족의 것만이 아니니까요. 누군가는 꼭 이어가야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니까요.”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문화예술인에게 수여하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수상자로 배우 이순재와 방탄소년단(BTS) 등 총 36명(팀)이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을 연다”고 16일 밝혔다. 문화훈장 13명, 대통령 표창 7명, 국무총리 표창 8명, 문체부장관 표창 8명(팀)이다. 올해 은관문화훈장은 배우 이순재, 가수 겸 제작자 김민기, 가수 고 조동진에게 수훈한다. 보관문화훈장 수훈자는 배우 김영옥, 지휘자 겸 작곡가 김정택, 방송작가 김옥영으로 결정됐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방탄소년단 7명은 화관문화훈장을 받는다. 가수 심수봉, 윤상, 배우 김남주, 희극인 유재석, 성우 이경자, 모델 김동수, 음향 디자이너 고 김벌래 등 7명은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다. 가수 최진희, 강산에, 배우 손예진, 이선균, 고 김주혁, 희극인 김숙, 성우 강희선, 방송인 전현무는 국무총리 표창 수상자다. 아이돌 레드벨벳, 록그룹 국카스텐, 배우 김태리, 희극인 박나래, 성우 이선, 작사가 김이나, 뮤지컬 기술 감독 김미경, ‘한국분장’ 대표 강대영 등 8명(팀)은 문체부장관 표창을 받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됐을 문화재입니다.” 정우택 전 동국대 박물관장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아미타삼존도’에 대해 설명하며 안타까워했다. 3명의 보살이 극락세계에서 왕생자(往生者)를 맞는 장면을 담은 이 그림은 고려불화의 전형인 이중 채색법을 사용하고 금으로 연화당초문을 배치한 걸작이다. 당초 이 불화는 12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인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도쿄박물관이 대여를 거부하면서 고국 나들이가 무산됐다. “대여 후 안전하게 돌려받을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일본 측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고려 나전칠기가 20여 점에 불과한 가운데 도쿄박물관이 소장한 ‘국화나전경상’ ‘화당초나전합자’와 지장보살도를 그대로 불상으로 옮긴 고려시대 유일한 작품인 ‘지장보살반가상’(규슈국립박물관)도 같은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런 분위기는 2012년 쓰시마섬에서 발생한 고려불상 도난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당시 한국 절도범이 일본 사찰에서 훔쳐온 불상에 대해 지난해 대전지법이 환수 요구를 거부하고 충남 서산시 부석사가 불상을 가져가라고 판결했다. 이후 한국 문화재를 소장한 해외 박물관과 미술관은 유물이 한국에 가면 압류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전시 대여를 기피하고 있다. 이에 올해 3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압류면제법’을 대표 발의했다. “전시 등 공익적 목적으로 외국 기관의 자료를 대여할 경우 한시적으로 압류, 압수 등을 금지할 수 있다”는 조항 신설이 핵심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법안 심사 보류를 요청해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 상당수 국가들은 현재 압류면제법을 시행한다. 노 의원은 “국민의 문화 향유권 증진을 위해 필요한 압류면제법이 다음 달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와 행정부를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측으로부터 대여를 거부당한 유물 6점 외 77점의 해외 소재 고려시대 관련 유물과 국내의 357점 등 총 450여 점에 이르는 문화재를 특별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려시대 불교미술과 공예기술을 보여주는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와 ‘화당초나전합자(花唐草螺鈿盒子)’ 등 일본 소재 고려 문화재의 국내 전시가 결국 무산됐다. 일본을 비롯해 프랑스 대만 등 국제사회에서 요구했던 ‘한시적 압류면제법’ 도입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국내 전시를 추진했다 난관에 봉착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에 이어 또다시 입법 미비로 문화재 교류에 차질을 빚게 됐다. 15일 국립중앙박물관이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대고려전, 해외 유물 전시대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은도금 석가-비사문상호부’ ‘백의관음도’ ‘아미타삼존도’ ‘국화나전경상’ ‘화당초나전합자’ 등 5점과 규슈국립박물관의 ‘지장보살반가상’ 등 유물 6점의 대여를 거부당했다. 중국 원나라 불화인 백의관음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5점은 모두 고려에서 제작한 불화와 불상, 나전칠기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일본 박물관 측은 공식적으로 ‘일본 내 전시대여 일정으로 인해 불가능하다’는 뜻을 전했다”며 “실제로는 정부의 공식 보증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압류면제법의 미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현재 해당 법률안은 일부 시민단체와 법무부의 반대로 입법이 보류된 상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