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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중민(中民)’은 지금도 새로운 리더십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70)가 1985년 ‘중민 이론’을 제시한 지 30년을 맞았다. 중민은 ‘중산층’의 중(中)과 ‘민중’의 민(民)을 더한 말로 ‘경제적으로는 중류층이면서 민의 정체성을 갖고 합리적 개혁을 선호하는 참여 지향적 집단’을 뜻한다. 11일 서울 관악구 관악로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에서 만난 한 교수는 “사회적 양극화와 함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윤리적 자원을 갖고 있는 중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5년 한 교수는 1년 동안 창원 울산 포항 구미 등 대형 산업단지의 생산직 노동자를 비롯해 전국의 자영업자 화이트칼라 직장인 언론인 공무원 등의 의식과 실태조사를 했다. 그 결과 관료적 권위주의를 통한 근대화가 성공하며 중산층이 생겨났고, 민중·서민적 정체성을 유지한 이들이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1980년대 중후반은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 등 ‘기층 민중’을 ‘변혁의 주체’로 보는 반면 중산층을 보수 세력으로 규정하는 급진 이론들이 만연하던 때였다. 한 교수는 소수파였다. “그 당시 ‘욕’ 많이 먹었지요(웃음). 당시 좌파 이론들이 정치적 신념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제 이론은 탄탄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어 덮어놓고 무시당하지는 않았어요.” 한 교수는 “사무 전문직, 중산층 진입이 확실시되는 대학생, 대형 산업단지의 기술 숙련직 노동자 등 세 집단을 중민의 핵심으로 봤는데 6월 항쟁을 앞의 두 집단이 주도하고 7, 8월 노동자 투쟁이 벌어지면서 중민 이론의 예측력과 설명력이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중민 이론의 현재적 의미 등을 담은 ‘중민 이론과 한국사회’를 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은 1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민청에서 중민이론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 디지털 세대의 등장에 따른 중민 이론의 의미 등을 조명할 예정이다. 중산층이 약화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중민의 전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한 교수는 “비정규직과 근로빈곤층이 늘어나고 취업의 어려움으로 젊은 세대마저 개혁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예전처럼 특정 집단을 중민으로 가정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중민 의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2012년 대통령 선거 평가위원장으로 일한 한 교수는 민주당 대선 패배의 원인을 조명한 책 ‘정치는 감동이다’를 지난해 내는 등 야당에 쓴소리를 해 왔다. 한 교수는 이날도 “야당은 설득을 하지 못하고 편 가르기만 하는 운동권적 리더십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생명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찰스 다윈은 “햇빛이 드는 얕고 따듯한 연못”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1960년대까지도 과학자들은 메탄과 암모니아로 이뤄진 초기 지구의 대기에 물과 에너지가 추가되면 아미노산이 쉽게 합성되고 생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후 연구에 따라 생명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유기화합물이 유지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유지돼야 한다는 게 드러났다. 1980년대 심해저 화산지대의 열수(熱水) 분출구에서 생물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계통에 속하는 호열성(好熱性)의 고세균이 발견되면서 이곳이 유력한 후보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생명 복제와 진화의 키인 RNA가 형성되기에 열수 분출구는 너무 고온이라는 것. RNA는 고온에서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또 RNA를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붕산염 광물이 만들어지려면 액체가 고였다가 증발하는 과정이 반복돼야 하지만 생명이 발생했던 약 40억 년 전의 지구는 거의 전체가 바다로 덮여 있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면 어디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일까. ‘새로운 생명의 역사’의 저자 조 커슈빙크 등은 생명이 형성된 ‘다윈의 연못’이 고온이었던 초기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바로 화성이다. 최근의 화성 고대 지질사 연구에 따르면 화성은 행성 전체가 바다로 뒤덮인 적이 없었고, 생명이 시작되는 데 필요한 기체 원료도 풍부했다. 우주선도 없는데 초기 생명은 어떻게 지구로 왔을까? 그는 “최근 10년 사이에 이뤄진 실험들은 화성에서 나온 운석이 열에 멸균되지 않고 지표면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생명은 생명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로 스스로를 보호하다가,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지구가 아닌 외계에서 왔다는 가설은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 제임스 왓슨과 함께 노벨상을 받은 프랜시스 크릭이 1970년대 이미 밝혔던 생각이다. 이를 정향 범종설(Directed Panspermia)이라고 한다. 크릭은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가까운 별에 사는 더 고등한 존재들로부터 은밀히 감시를 받는 처지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크릭이 너무 앞서 나갔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자연스레 생명의 종말에 대한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새로운 생명의 역사’의 저자들은 캄브리아기 대폭발처럼 생명체가 한꺼번에 출현하는 사건이 다시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대량 멸종은 온실가스 배출 등에 따라 쉽게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그 시대를 거쳐 온 국민들의 마음은 아픕니다. 무한 경쟁에 시달리며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이지요.” 1985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작은 상가 셋방에서 개원한 능인선원이 개원 30주년을 맞아 13일 오전 10시 반 서울 강남구 양재대로 능인선원에서 기념 법회를 연다. 개원 당시 신도가 10여 명에 불과했던 능인선원은 지금은 30만 명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포교 사찰로 성장했다. 능인선원은 개원 30주년을 기념해 구룡산 자락의 선원 내에 높이 38m에 이르는 ‘서울 약사대불(藥師大佛)’을 세우고 13일 ‘점안 대법회’를 함께 열 예정이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부처님이다. 10일 만난 능인선원 원장 지광(智光·65·사진) 스님은 “경제의 폭발적인 팽창의 여파가 국민들 마음과 몸의 병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불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약사대불’은 좌상(坐像)으로 몸체가 18m에 머리 부위를 덮는 천개(天蓋)와 보주(寶珠)가 8m다. 입상(立像)인 속리산 법주사 금동미륵대불(높이 33m)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좌대(12m)까지 합치면 약사대불이 더 크다. 능인선원 관계자는 “좌불인 약사여래불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고 말했다. 1999년 선원 신도회가 불상 건립을 제안한 뒤 재료인 구리를 마련했고, 2009년부터 불상 제작을 시작했다. 불상의 무게가 120t이 넘어 주조 뒤 100여 개의 조각으로 만들어 선원에서 다시 용접했다고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청와대와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사실상 확정하고,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본보 보도(9일 자 A1, 10면) 이후 후폭풍이 일고 있다. 역사학과 역사교육학 분야 학자와 연구자 1100여 명은 9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일동’은 이날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교과서는 정권이 원하는 대로 내용 서술이 뒤바뀔 수 있고,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국정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역사 교과서의 오류와 편향성 논란은 발행 체제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발행 체제를 정하는 문제보다 정확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정도 검정도 피하지 못한 오류 9일 교육부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서용교 의원(새누리당)에게 제출한 ‘2014년 역사 교과서 수정·보완 사항’에 따르면 2013년 12월∼2014년 11월 교육부는 이미 검정을 통과한 총 43권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역사부도 등)에 대해 1281건의 수정, 보완을 지시했다. 이 중 거란 침략 당시 고려의 관료들이 내주려 했던 영토의 범위에 대한 사실 관계가 틀렸거나 조선의 징병제로 끌려간 청년들의 수에 대한 통계 오류 등이 46.5%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표기, 띄어쓰기, 오탈자 등과 관련한 오류였다. 국가가 편찬하는 국정 교과서에서도 오류는 발견됐다. 역사교육연대회의가 국정 교과서인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고구려 비사성의 위치가 중국 진저우(錦州)에 표시돼 있는데, 전문가들은 중국 다롄(大連)에 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교과서에 ‘노비문서’라는 설명과 함께 나온 사진도 실제로는 노비 신분을 풀어준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였다. 검정 교과서는 다양한 시각의 집필자들이 교과서를 서술해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교문위 김회선 의원(새누리당)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현행 교과서 간 서술 편차 현황’에 따르면 출판사별 성향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강조점과 주관적 해석이 다르게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우편향이라는 평가를 받는 A출판사는 북한 비판과 반공에 대한 논조가 매우 강하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좌편향인 것으로 알려진 B출판사는 북한에 대한 비판 내용이 상대적으로 적고, 반공이 독재 수단으로 쓰였음을 다른 교과서보다 더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확한 기술, 공정성 담보할 시스템 필요 현재 시스템에서는 현행 검정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한다고 해도 바로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국정화를 강행한다고 해도 오류 없이 제대로 역사를 서술할 양질의 집필진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정이냐 검정이냐 하는 발행 체제보다 교과서가 졸속으로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검정 교과서는 검정 기준, 편찬상 유의점 등이 발표된 뒤 1년 6개월 안에 교과서 집필, 검정 심사, 수정·보완, 교과서 생산 등의 모든 과정을 끝내야 한다. 실제 교과서 집필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처음 적용된 교과서에는 기존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수정·보완 건수가 발생하고 있다. 잦은 개정을 지양하고, 교과서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편향성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편향성 논란은 특정 사실에 대한 선택 또는 배제, 주제별로 배분된 분량, 제목 선정, 사례 인용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중립적 시각과 전문성을 갖춘 심사위원의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 한 사학과 교수는 “공론의 장을 확대해 합의를 바탕으로 집필 기준을 상세화하고, 편향성 논란이 적은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집필진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유덕영 firedy@donga.com·이은택·조종엽 기자}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섬라(현재의 태국)의 함대를 빌려 일본을 치려 했던 이른바 ‘차병섬라(借兵暹羅)’ 전략의 전말을 조명한 논문이 나왔다. 최근 발간된 해양문화 전문 무크지 ‘해양문화’(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발간) 2집에 실린 정제시(鄭潔西) 닝보대 교수의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전체 아시아국가의 연동’에 따르면 1592년 9월 조공하러 북경에 와 있던 섬라 왕국(아유타야 왕조)의 사신 ‘악팔라’가 “섬라의 군대를 동원해 왜국의 소굴을 치자”고 명에 제안했다. 명의 경략대신 송응창이 이를 만력제에게 보고했고, 만력제가 동의해 구체적인 실행 절차를 검토했다. 그러나 양광(광동과 광서 지역) 총독 소언이 “섬라 군대가 명나라에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실현되지는 않았다.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북경에 갔던 조선 사신 정곤수가 차병섬라 전략을 조선에 보고한 내용이 실록에도 간략하게 기록돼 있다. 이번 논문은 명나라 조정의 관보, 양광 총독의 상소문, 당시 저술된 서적 등을 검토해 나왔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차병섬라 전략은 임진왜란이 한중일뿐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도 관련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류큐국(현재의 오키나와)이 명의 정보 수집에 동참하고 마카오의 흑인 노예와 동남아, 인도에서 온 병사들이 명군에 편입돼 출병했다”고 말했다. ‘해양문화’ 2집에는 ‘1928년 동아일보 ‘도서순례’를 통해 본 식민지기의 섬과 바다, 섬사람(1)’(류창호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도 실렸다. ‘도서순례’는 동아일보가 1928년 6월 22일∼9월 12일 73회에 걸쳐 연재한 기사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원 비서로 일했던 동아일보 송정욱 기자(1897∼1929) 등이 고군산군도 거제도 거문도 등의 섬을 현지 취재했다. 이번 기고를 시작으로 시리즈의 원문 전체가 3회에 걸쳐 소개될 예정이다. 류 연구원은 “‘도서순례’는 민속과 전통 문화가 구습이 아니며, 전통 연구를 민족 주체성 강화 방법으로 인식하는 전환을 이룬 기획”이라며 “민족의 실력 양성 운동의 성과와 방향을 가늠해보려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유학자이지만 불교에 귀의했던 매월당 김시습(법명 설잠·1435∼1493)의 사리는 어디에 있을까? 전국을 방랑하던 김시습은 충남 부여 무량사에 머물다 죽음을 앞두고 “죽으면 3년 동안 화장하지 말라”고 유언했고, 3년 뒤 무덤을 열었더니 시신 모습이 살아있는 사람과 같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무량사 승려들은 그를 화장한 뒤 부도(浮屠·스님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돌탑)를 세워 그의 사리를 봉안했다. 일제 당시 폭풍으로 부도가 쓰러졌을 때 발견된 사리를 국립부여박물관이 보관했지만 오래도록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문헌을 뒤져 이 사리의 소장처를 알게 된 혜문 스님은 4일 “지난해 부여박물관에서 특별열람을 해보니 사리가 플라스틱 바구니에 휴지 같은 종이로 싸여 보관되고 있었다”며 “설잠대사의 사리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수장고에 방치되는 것보다 부도가 있는 원래 소장처인 무량사에 다시 봉안해 예우를 갖추는 게 옳다”고 말했다. 도난 등을 거쳐 국내외로 유출된 불교 문화재를 사찰로 되돌려주자는 ‘불교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이 4일 발족했다. 최근 한국 반환 계획이 확인된 문정왕후 어보 환수를 비롯해 우리 문화재 지키기 활동을 펼쳐 온 혜문 스님 등이 운영위원을 맡았다. 상임대표는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다. ‘불교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은 경기 남양주시 수종사의 팔각오층석탑에서 1957년과 1970년 발견된 불상 31구 중 분실됐다가 최근 동아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2구도 수종사 반환을 추진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분실된 불상은 모두 12구인데, 국립중앙박물관에도 6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영담 스님은 “국내에 소재가 파악된 불교 문화재부터 제자리로 돌리겠다는 취지”라며 “약탈돼 해외에 있는 불교문화재의 목록을 작성하고 환수하는 운동에도 바로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은 먼저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과 함께 추진 중인 일본 오쿠라 집고관 소재 평양 율리사지 석탑의 반환 운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영담 스님은 다음 주 일본에서 조불련 관계자를 만나는 방안을 타진 중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대륙의 벌판에서는 주변의 적과 친구가 선명히 보입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적선이 몰려오거나 하멜 같은 이방인이 출현합니다. 예측불허지요.” ‘적도의 침묵’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돌살-신이 내린 황금그물’을 비롯해 바다에 대한 ‘두꺼운’ 책을 써온 해양문명사학자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60)가 또다시 역작을 펴냈다. 민속학 인류학 역사학 고고학 해양학 국제정치학을 넘나들며 동해를 둘러싼 ‘환(環)동해’ 지역의 문명사를 그려냈다. 3일 만난 주 교수는 “수평선을 보는 방법과 지평선을 보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1019년 일본 쓰시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선 50여 척이 침입해 각지를 약탈한 뒤 이키 섬과 규슈 하카타 지역까지 공격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뒤늦게 파악된 이들의 정체는 오늘날 연해주 일대에 살았던 동북 여진족이었다. 이들은 울릉도를 들이친 뒤 일본까지 공격한 것이다. 주 교수는 “그들은 발해와 일본이 교류했던 항로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동해는 오래전부터 고요한 변방이 아니라 역동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책을 쓰기 위해 최근 2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러시아 자바이칼 사할린 연해주, 오호츠크와 베링 해, 일본 홋카이도 호쿠리쿠 사카이미나토 지방, 몽골 초이발산 등을 답사하며 자료를 모았다. 책은 과거 담비 해삼 다시마 등을 사고팔며 동해를 둘러싸고 형성됐던 교역의 그물망을 복원해낸다. 그는 “바다를 국민국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영토와 유사한 차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국가를 이루지 않았던 환동해 지역의 작은 소수민족 사회와 역사를 살피면 바닷길을 통한 문명 교류의 역사가 보인다”고 말했다. ‘격 낮은’ 질문일 수 있지만 환동해 문명 연구의 쓸모를 물었다. “최근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의 예를 들어볼게요. 북극항로가 경유하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소수민족들은 자원 개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자결권을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가 북극항로를 개척하면서 부닥칠 문제를 풀려면 소수민족과 해양 교류의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주 교수는 앞으로 한국부터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까지 바닷길로 이어진 해상 실크로드에 관한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육로와 바닷길 양쪽에서 고려할 수 있습니다. 남북 철도 연결도 중요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한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양에 대한 전망을 갖고 시야를 베링 해 너머까지 확장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본군에 의해 아시아 각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군 위안부들의 면모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사학회는 4일 경기 과천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 시기 지역 피해 사례를 통해 본 일본군 위안부의 개념과 범주’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이선이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일본 제국의 성폭력에 대한 일고찰―중국 산시 성 피해자의 구술을 중심으로’ 발제에서 중일전쟁 시기 산시 성에서 일본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구술 증언을 모은 자료집들을 분석해 발표할 예정이다. 한혜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박사는 ‘일본의 남양군도 지배와 전쟁기 일본군 위안소 설치’를 주제로 발제한다. 일본군 위안소를 제도화하는 과정과 위안부가 미크로네시아(남양군도) 지역으로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다룬다. 이 밖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과 대만의 일본군 위안소와 위안부’(윤명숙 충남대 국가전략연구소 전임연구원),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강정숙 이화여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일본군의 병사에 대한 성적 위안 정책하 위안부는 누구인가’(박정애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 등의 발제와 토론이 진행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치, 경제에서 ‘화평굴기(和平굴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추구해 온 중국이 예술 분야에서도 굴기하고 있다. 여전히 중화(中華)를 강조하는 대규모 관제 예술 공연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한편에선 그런 정부에 냉소적이고 세계적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현대 미술도 베이징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 예술의 폭과 관용도가 점차 넓어지며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중국 청더(承德) 시의 ‘정성왕조(鼎盛王朝) 강희대전(康熙大典)’ 야외 공연장은 3000명을 수용하는 객석이 가득 찼다. 좌우로 100m가 넘는 대형 무대에 조명이 켜지자 기마병이 수십 명씩 무리 지어 달리다가 원을 그리며 황제 앞에 도열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에 온몸이 긴장될 정도였다. 경기문화재단 ‘신연암로드’ 탐방단과 함께 관람한 이 공연은 청나라의 융성기를 이끈 강희제의 업적을 다뤘다. 공연은 규모로 관객을 압도했다. 작은 야산 전체를 무대 배경으로 사용했고, 말 130여 마리와 지역 주민을 비롯한 배우 400여 명이 투입됐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선전(深(수,천)) 시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대형 공연이 잇따라 생겨났다고 한다. 강희대전 같은 공연은 내적으로는 ‘민족 대융합’을 강조하면서 소수민족의 분리 운동을 억누르고 외적으로는 ‘G1’을 노리는 중국 정부의 지향점을 보여 준다는 분석이다. 현대무용가 안은미 전 대구시립무용단장은 “질서를 중시한 연출 탓에 감동은 적었지만 최고급 조명과 시설이 사용된 공연의 스펙터클과 주제가 ‘팍스 차이나’를 지향하는 중국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달 25일 방문한 베이징 차오양(朝陽) 구 헤이차오(黑橋) 촌의 ‘오십육도 예술구(五十六度 藝術區)’에서는 정부에 냉소적인 작품도 발견할 수 있었다. 헤이차오 촌은 베이징 내 대표적 빈민촌이었으나 베이징 올림픽 이후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져 물류창고와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스튜디오 등이 들어선 곳이다. 수묵이나 판화 등 전통 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주로 만드는 쑨쉰(孫遜·35) 작가의 작업실에는 해학 넘치는 드로잉이 가득했다. 그는 2010년 중국현대미술상(CCAA)을 받고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중국 현대미술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애니메이션 ‘용년왕사(龍年往事·용의 해에 일어난 일)’는 공산당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현수막 아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관중의 항의가 묘사됐고, 조소에 이어 환멸에 가득 찬 흐느낌 소리로 마무리됐다. 2012년 쑨쉰 등 중국 젊은 미술 작가의 작품 전시를 기획한 임종은 큐레이터는 “반체제 성향의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한때 가택 연금되는 등 중국 정부는 현대 미술을 불온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치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는 작가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청더·베이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치, 경제에서 ‘화평굴기(和平¤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추구해 온 중국이 예술 분야에서도 굴기하고 있다. 여전히 중화(中華)를 강조하는 대규모 관제 예술 공연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한편에선 그런 정부에 냉소적이고 세계적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현대 미술도 베이징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 예술의 폭과 관용도가 점차 넓어지며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중국 청더(承德) 시의 ‘정성왕조(鼎盛王朝) 강희대전(康熙大典)’ 야외 공연장은 평일인데도 3000명을 수용하는 객석이 가득 찼다. 좌우로 100m가 넘는 대형 무대에 조명이 켜지자 기마병들이 수십 명씩 무리 지어 달리다가 원을 그리며 황제 앞에 도열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에 온몸이 긴장될 정도였다. 경기문화재단 ‘신 연암로드’ 탐방단과 함께 관람한 이 공연은 청나라의 융성기를 이끈 강희제의 업적을 다뤘다. 공연은 규모로 관객을 압도했다. 작은 야산 전체를 무대 배경으로 사용했고, 말 130여 마리와 지역 주민을 비롯한 배우 400여 명이 투입됐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선전(深¤) 시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대형 공연이 잇따라 생겨났다고 한다. 강희대전 같은 공연은 내적으로는 ‘민족 대융합’을 강조하면서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을 억누르고 외적으로는 ‘G1’을 노리는 중국 정부의 지향점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현대무용가 안은미 전 대구시립무용단장은 “질서를 중시한 연출 탓에 감동은 적었지만 최고급 조명과 시설이 사용된 공연의 스펙터클과 주제가 ‘팍스 차이나’를 지향하는 중국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달 25일 방문한 베이징 차오양(潮陽) 구 헤이차오(黑橋) 촌의 ‘오십육도 예술구(五十六度 藝術區)’에서는 정부에 냉소적인 작품도 발견할 수 있었다. 헤이차오 촌은 베이징 내 대표적 빈민촌이었으나 베이징 올림픽 이후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져 물류창고와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예술가 스튜디오 등이 들어선 곳이다. 수묵이나 판화 등 전통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주로 만드는 쑨쉰(孫遜·35) 작가의 작업실에는 해학 넘치는 드로잉들이 가득했다. 그는 2010년 중국현대미술상(CCAA)을 받고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중국 현대미술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애니메이션 ‘용년왕사(龍年往事·용의 해에 일어난 일)’는 공산당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현수막 아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관중의 항의가 묘사됐고, 조소에 이어 환멸에 가득 찬 흐느낌 소리로 마무리됐다. 2012년 쑨쉰 등 중국 젊은 미술 작가의 작품 전시를 기획한 임종은 큐레이터는 “반체제 성향의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한때 가택 연금되는 등 중국 정부는 현대 미술을 불온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작가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청더·베이징=조종엽기자 jjj@donga.com}

“나 같은 하사(下士·삼류 선비)는 중국의 장관은 깨진 기와 조각과 똥 부스러기에 있다고 말하리라.”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일신수필(馹迅隨筆)의 한 대목이다. 그는 명나라를 우러러보는 숭명(崇明)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청나라 문물을 비하하는 이른바 ‘상사(上士·일류 선비)’를 비판하며 반어적으로 이렇게 썼다. 하찮은 물건을 유익하게 사용하는 문화가 커다란 궁성보다 더 가치 있다는 얘기다. 경기문화재단(대표 조창희)은 연암 210주기를 맞아 지난달 17∼26일 연암의 연행로를 따라 중국 단둥-랴오양-선양-친황다오-청더-베이징으로 이어지는 ‘신(新)연암로드’를 탐방했다. 신연암로드는 열하일기에 드러난 연암의 창의적 상상력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 탐방에는 무용가와 시인 등 예술가와 인문학자를 비롯해 현대의 ‘삼류 선비’를 자처하는 17명이 참가했다. 19일 랴오양에서 선양으로 가는 도로에서는 지평선 끝까지 옥수수 밭이 펼쳐진 만주 벌판이 드러났다. 연암은 랴오양 백탑을 보고 “한번 크게 울 만한 곳”이라며 ‘호곡장론(好哭場論)’을 펼쳤다. 김홍백 박사(단국대 동양학연구원)는 “연암의 청 문화 찬사는 조선의 협소함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며 “타자를 배타하지도 추종하지도 않는 긴장의 균형은 현대 한국이 중국이나 미국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연암이 몰래 사행단을 벗어나 마주친 사람과 사건을 바탕으로 열하일기를 썼던 것처럼 이번 탐방에서도 예기치 못한 만남들이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달 17일 단둥 시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중국 동포들을 만나 대화하던 중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 들렸다. “요즘 ‘스판 바지’를 하루에 한 250장, 한 달이면 7000장쯤 만드는데 다 남조선으로 갑니다.” 중국 동포라고 생각했던 한 50대 남성은 자신을 북한의 무역일꾼이라고 소개했다. 단둥의 중국인 소유 공장에서 자신이 북한 노동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제품은 모두 한국으로 수출된다는 것. 동행한 북-중 무역 전문가 강주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단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국-북한의 교역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탐방단은 단둥을 출발한 지 5일째인 21일 연암의 목적지였던 베이징 북쪽 청더(承德·옛날 열하)에 도착해 연암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용가 안은미 씨는 청더 강변에서 즉흥 공연을 했는데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기괴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공동체 예술을 하는 김월식 씨가 참가자들이 여정 중 촬영한 이미지를 청더 거리 곳곳에 빔 프로젝터로 투사하며 대화를 이끌자 현지 중국인들도 삼삼오오 호기심을 보이며 질문을 던졌다. 신춘호 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 대표는 “연행로를 답사할 때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거나 사라지고 있다”며 “연행길의 모습을 기록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은 “연행로는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길이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로였고,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건너간 길이었다”면서 “경제와 문화 교류의 통로가 되고 있는 연행로의 역사적 의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문화재단은 동행한 미디어 아티스트 등의 작업을 바탕으로 답사 자료를 정리하고 2016년까지 연암의 발자취를 추가로 연구한 뒤 전시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청더·단둥=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공포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 감독(사진)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뇌종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크레이븐 감독이 1984년 선보인 ‘나이트메어’는 꿈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 캐릭터 ‘프레디 크루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1996년에는 영화 ‘스크림’으로 공포영화의 문법을 새로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31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29회째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학교와 재단, 개인 2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대학교수 등 외부 전문가 4명씩이 참여해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진행됐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신입생 1대1 면담 전통… “학교는 인성교육의 요람” ▼교육) 광주 살레시오여고광주 살레시오여고는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인성 교육에 최선을 다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교장선생님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가 쉽지 않지만 살레시오여고는 다르다. 류경희 살레시오여고 교장수녀는 올해 초 300명이 넘는 신입생을 모두 1 대 1로 면담했다. 류 교장수녀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라며 “짧은 순간이지만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살레시오여고는 담임교사들도 한 학기에 두 번씩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하면서 학생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주고 있다. 편부모나 조손가정 등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도 교사와 단둘이 있을 때면 비교적 자연스럽게 말문을 연다. 살레시오여고는 명상의 시간, 합창경연대회, 부모와 함께하는 봉사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인성교육을 함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하는 소록도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류 교장수녀는 “2학기에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성교육은 일반 수업시간에도 배어 있다. 1학년은 ‘생활과 인성’, 2학년은 ‘생활과 종교’, 3학년은 ‘생활과 심리’ 과목을 전원 선택과목으로 이수하고 있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1년이 지나면 착해지고, 2년이 지나면 더욱 착해지고, 3년이 지나면 그보다 더욱 착해진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돌 정도다. 다른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끈끈한 유대관계의 밑바탕에는 이런 노력과 전통이 있다는 평가다. 류 교장수녀는 “홈커밍데이에는 연세가 지긋한 대선배들이 찾아와 학생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며 “학생들도 졸업생들의 이런 마음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인성교육을 국제화교육과 연계한 점도 특별하다. 살레시오여고는 네팔 지진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에게 국제사회에서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당 재난국가를 돕는 교내 행사를 열기도 했다. 미국, 캐나다, 일본에 있는 살레시오 자매학교들과의 교류를 통해 여러 나라의 다양성을 체득하고 포용하는 법도 배운다. 류 교장수녀는 “학생들이 학교를 집처럼 느끼고 선생님을 가족처럼 친밀하게 느끼도록 하는 게 올해 목표”라며 “학생들에게 학교는 또 하나의 집”이라고 말했다.공적살레시오여고는 1961년 1월 살레시오 수녀회가 세운 가톨릭 학교. 개교 당시 9학급이었으나 초대 교장인 안칠라 그릿디 수녀 취임이래 1970년 12학급, 1974년 24학급, 1994년 30학급으로 성장해 현재 총 1006명(29학급)이 재학 중이다. 2006년부터 몽골 해외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사학기관 경영평가에서 우수학교로 선정됐다. 2011년 일본 도쿄 세이비여고와 국제교류 자매결연을 했고 2012년에는 인성교육실천 우수학교에 선정됐다. 2013년엔 영어교육모델창의경영학교 성과 우수학교에 선정돼 표창을 받았다. 올해 2월 제52회 졸업식에서 338명이 졸업해 개교 이래 총 2만88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3월 현 류경희 마리아 제네로사 교장수녀가 취임했다. ▼ 국내 언론지원 반세기… “인촌선생이 성곡선생에게 준 상” ▼언론·문화) 성곡언론문화재단“이 상은 하늘나라에서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이 제자였던 성곡(省谷) 김성곤 선생(1913∼1975)에게 준 상이라 생각합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성곡언론문화재단(성곡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한종우 이사장(83)은 “창립자인 성곡이 1930년대 말 보성전문학교에 재학할 당시, 교장이던 인촌을 모델로 삼아 인촌의 3대 과업인 산업, 교육, 언론 육성의 뜻을 이어받고자 노력했다”며 “인촌의 길을 따르고자 했던 성곡의 노력이 창립 반세기 만에 빛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성곡은 금성방직과 쌍용양회를 창업한 후 대구 현풍중고교와 국민대를 설립, 인수했으며 동양통신과 연합신문 등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기업가·교육가·언론인이었던 인촌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한국 최초의 언론 지원 재단인 성곡재단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언론 규제를 위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해 언론계와 갈등을 빚은 것이 재단의 창립 계기가 됐다. 당시 박 대통령과 언론인들의 ‘유성(儒城)회담’을 주선한 성곡은 이 법의 시행을 미루는 대신 언론사 각자가 자율적으로 윤리강령을 만들도록 했으며 언론인의 자질향상을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 성곡재단은 영국의 톰슨, 미국의 니먼 재단을 모델로 설립된 후 현역 기자들의 해외 유학 및 연수 사업을 통해 언론인의 소양을 기르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뒀다. 1966년 중견 기자 해외 연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인터뷰 자리에 한 이사장과 함께한 박현태 전 KBS 사장은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 일본 도쿄대로 1기 연수를 떠났다. 그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수준으로 여권도 쉽게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며 “당시 해외 연수를 통해 기자로서 국제적인 감각과 선각자적인 혜안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곡재단은 이후 삼성언론재단(1995년)과 LG상남언론재단(1995년) 등 민간언론재단이 설립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0% 독자적인 출자로 창립된 성곡재단은 쌍용양회의 주식배당금과 쌍용그룹의 지원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 왔다. 한 이사장은 “외환위기 등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도 언론계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며 “언론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언론인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공적국내 최초의 언론재단으로 1965년 9월 창립 이후 현역 언론인들이 해외 대학에서 유학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왔다. 재단은 지난 50년간 총 213명의 언론인이 미국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일본 도쿄대, 영국 카디프대, 프랑스 파리대, 독일 베를린대 등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체재비와 학비 등을 지원했다. 재단은 또 기자 재교육 사업을 위해 1968∼1978년 서울대 신문대학원에 입학한 현직 언론인 150여 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 바 있다. 1989년에는 한국언론학회에 ‘성곡언론학연구기금’을 창설했고 1993년 9월부터 학술계간지 ‘언론과 사회’를 발간하고 있다. 1994년 11월 미국 미주리대로부터 한국언론의 국제화에 기여한 공로로 ‘언론공로메달’을 받았다. ▼ 6·25 직후부터 60년 한우물… “중문학계 전체가 받는 것” ▼인문·사회)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제가 중문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이 분야를 이해하는 사람도, 관련 논문도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인문 분야에서 학생들이 몰리는 학과의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개인이 아니라 성장한 중문학계 전체가 받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수내로 자택에서 만난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81)는 과거 펴냈던 번역서 ‘중용’의 개정판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가 중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교 시절 학도병으로 참전한 6·25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황포군관학교 출신 중공군 장교를 만나면서부터다. ‘제대로 된 소총도 없이 꾸준히 전투를 벌이는 중국을 우리가 제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대 중문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중문학 교수진도 적었고, 그나마 일부가 월북하거나 납북당한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1959년 국비 유학생으로 대만으로 유학해 중국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베이징대 교수들에게서 배우며 관련 자료를 모았다. 귀국해 처음 쓴 중국의 탈놀이에 관한 논문이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번역돼 현지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1961년 그는 서울대에서 중문학 강의를 시작했지만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 중문학 고전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일반인에게 보급하기 위해 이때부터 번역과 저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현대적 시각으로 주석을 단 당시 번역서 중 일부는 최근까지도 개정판이 나온다. 김 교수는 “그때는 한자에 토를 달아 놓은 값싼 문고본, 이른바 ‘딱지본’이 전부여서 틀려도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책을 썼다”며 “전국에 고전 강연을 하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부터는 초기의 관심으로 돌아가 중국 전통 민간 연희 연구를 시작했다. 한중 수교 이전부터 정부 허가를 받아 중국 각지로 연희 탐사를 다녔다. 그때 수집한 중국 전통 탈 300여 점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김 교수는 “당시는 중국에 지방 연희에 관심을 가진 학자가 거의 없었고 1980년대 중반에 와서야 연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팔순이 넘은 지금도 북송 시대와 위진 남북조시대의 문학사에 관한 책을 각각 내기 위해 준비하는 등 왕성한 연구열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데 곁눈질하지 않고 평생 중문학만 파 왔습니다. 이번 수상도 계속 중문학계를 위해 헌신하라는 뜻으로 생각하는데, 늙은 저의 힘이 어디까지 닿을지 걱정입니다.”공적학계에서 중문학의 입지가 협소하던 195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해 중국문학 연구의 토대를 닦은 대표적 중문학자다. 서울대 중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과정과 국립대만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줄곧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1967년 국내 최초로 서경(書經)을 완역한 이래 유학의 핵심 경전과 제자백가의 주요 고전을 현대적 해석을 담아 펴냈고 동양 고전 읽기 운동을 벌여 대중화에 기여했다. 중국의 학자들이 민간 전통 연희에 주목하기 전인 1960년대부터 탈놀이 ‘나희(儺戱)’를 비롯한 전통 가무와 잡희에 관해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 국내외에서 현대 중문학 연구의 대표서로 꼽히는 ‘중국문학사’를 1986년 저술하는 등 연구서와 번역서 70여 권을 냈다. 학술원 회원이다. ▼ ‘화학적 암 예방’ 세계적 석학… “암 발생 줄이는 게 평생목표” ▼ 과학·기술) 서영준 서울대 약대 교수“훌륭한 은사님들과 헌신적인 연구원들 덕분에 이런 큰 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학문도 패션처럼 유행이 있기 마련이지만 유행 타지 않고 30년간 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 온 끈기에 대한 격려로 생각하겠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서영준 서울대 약대 교수(58)는 인촌상 수상의 영광을 스승과 제자들에게 돌렸다. 그는 “체내에 독성물질이 들어가면 간에서 해독 과정을 거치지만 발암물질은 오히려 독성이 강해져 ‘조물주의 실수’로 불린다”면서 “1985년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암 발생 연구를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화학적 암 예방(ChemoPrevention)’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안전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일탈’하는 과정을 막아 암 발생을 줄이는 게 서 교수의 목표다. 그동안의 연구 업적은 화려하다. 2003년 10월에는 암 분야 최고 저널로 꼽히는 ‘네이처 캔서 리뷰(Nature Cancer Review)’에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단독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매년 10편 이상, 총 2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인용 횟수는 1만4000회를 넘겼다. 미국 최대 온라인 의학 도서관인 ‘펍메드(PubMed)’ 검색창에 그의 영문 성인 ‘Surh(서)’를 치면 ‘Surh Young-joon’이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뜬다. 서 교수는 2011년부터 서울대에서 ‘종양미세환경 글로벌 핵심연구센터’를 이끌며 정상세포가 고장을 일으켜 암세포로 바뀌는 과정을 밝혀냈다. 서 교수는 “암은 오랜 세월 인류와 역사를 같이한 질병인 만큼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 연구실은 ‘과학자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2000년부터 9년 연속 ‘미국암학회’가 수여하는 ‘젊은 과학자상(Scholar-in-Training)’ 수상자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도 중국 옌볜(延邊)대 출신 중국동포 연구원이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예측과 다른 ‘네거티브 데이터’가 나오더라도 숨기거나 실망하지 말고 이걸 ‘반전’으로 삼아 새로운 논문을 쓰라고 조언한다”면서 “스스로 실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갖춘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공적서울대 제약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발암물질이 정상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세포를 만드는 과정을 처음 밝혀낸 제임스 밀러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의 논문을 읽고 감동을 받아 무작정 손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인연이 돼 2000년 작고한 밀러 교수가 논문지도를 한 ‘마지막 제자’로 유학 생활을 시작해 199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원, 예일대 의대 조교수를 거쳐 1996년 서울대 약대 교수로 부임했다. 2011년에는 서 교수 연구실이 글로벌핵심선도연구센터(GCRC)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지식창조대상, 2012년 보령암학술상, 2013년 한국 과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2014년부터는 대한암예방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제29회 인촌상 심사위원∇교육 △위원장=권대봉 고려대 교수△위원=강상진 연세대 교수, 성기옥 세계화교육문화재단 회장, 정철영 서울대 교수∇언론·문화 △위원장=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위원=고승철 나남출판 사장, 김영나 국립박물관장, 김영석 연세대 교수∇인문·사회 △위원장=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위원=박찬욱 서울대 교수,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과학·기술 △위원장=김병윤 KAIST 교수△위원=강현배 인하대 교수, 김기문 포스텍 교수, 노정혜 서울대 교수}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간토(關東)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뒤 도쿄의 거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산케이신문이 2009년 펴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이라는 책에 따르면 ‘조선인이 방화와 살인, 강간을 저질렀다’. 물론 ‘미친’ 소리다. 당시 이 같은 유언비어로 조선인 6000여 명이 일본 민간 자경단과 군대, 경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그러나 우경화와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당시 조선인이 실제로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의 방화로 일본인 몇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등의 글이 인터넷에 무더기로 나온다. 오늘날에도 일본 극우 단체인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은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인을 내쫓아라”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쳐 죽여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혐한 시위를 벌인다.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는 이 같은 역사의 반복에 공포를 느껴 간토대지진의 실상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간토대지진을 겪은 사람들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조선인 학살 현장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책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인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읽다 보면 평범한 인간들의 잔혹함에 좌절하게 되지만 희망이 생기는 대목도 있다. 학살의 광기로부터 조선인 이웃 2명을 지킨 마루야마 마을 주민들 이야기, 살해당한 조선인 엿장수의 시신을 수습해 안장한 맹인 안마사의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는 학살 원인을 3·1운동 등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을 보고 일본인들이 느낀 공포에서 찾는다. 조선인의 분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이 유언비어와 학살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흉악범죄의 주범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등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한국 내부에도 없지 않다. 이 역시 우리가 저질러 놓은 차별과 착취에 대한 공포의 반영이 아닐지. 책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우리 내부의 편견도 돌아보게 만든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내건 슬로건이다. 근대화와 산업화 등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만만찮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동아일보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오피니언 리더 11명은 무엇보다 이념과 지역, 계층 등으로 인한 사회 갈등의 극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을 계기로 불거진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앗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갈등 넘어 미래 갈등에 대비해야 상당수 응답자는 현재 한국 사회의 갈등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11명 가운데 3명은 ‘국가적 위기’ 수준이라고 우려했고 6명은 ‘위기까지는 아니나 국가 발전과 사회 통합에 상당히 악영향을 주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념과 지역, 계층, 세대 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반목이 우리 사회의 큰 ‘적(敵)’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생하는 수준의 갈등이라고 분석한 이는 2명에 그쳤다. 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연구실장은 “‘모 아니면 도’ 식의 극한적 대립 심리가 팽배한 상황”이라며 “국가 위기라고 볼 단계는 아니지만 ‘갈등’이 우리 사회를 어두운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눈에 띄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갈등의 양상이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앞으로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 해소해야 할 갈등으로 11명 가운데 9명이 ‘빈부격차 심화에 따른 계층 갈등’을 꼽았다. 2명은 ‘고령화 때문에 빚어질 세대 갈등’ 해결을 1순위로 선택했다. 반면 고질적인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 해소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인사는 1명도 없었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와 산업화 시기 대표적 갈등으로 꼽히던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 대신 새로운 ‘미래 갈등’의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산업화 이후 이른바 ‘가진 자’들이 만들어 내는 문제가 심해졌고 이 때문에 갈등이 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라며 “서울대 역시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화합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려고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계층 갈등은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 때문에 나타날 세대 갈등이 겹쳐지면서 위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훈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사장은 “급속한 고령화 때문에 현역 세대의 사회보장비용이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세대 갈등이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오피니언 리더들은 갈등 해소를 위해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복지제도 강화’(4명)가 가장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4명은 전반적인 ‘국민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진강 대법원 양형위원장은 “갈등 당사자들은 그 책임을 외부에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개개인의 의식이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결국 남을 인정하는 데서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안전 한국’ 위협할 기후변화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국민들의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최근 국민안전처 조사 결과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20% 내외에 그쳤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30년 뒤 우리를 위협할 재난 재해 역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장 많은 6명은 ‘기후변화에 따른 대형 풍수해나 가뭄 같은 사태’를 가장 위협적인 재난 재해로 예측했다.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장은 “현대의 자연재해는 지구온난화 같은 생태계 파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모색돼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사태 속에서 안전 사회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교통사고 등 일상생활 속 안전사고’(2명), ‘메르스 같은 새로운 전염병’(2명)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한국 스토리텔링 강해 영화-드라마 미래 밝다” ▼“운동선수 아닌 학생선수 육성을”문화 분야에서는 영화감독 문인 역사학자 건축가 종교인을 비롯한 관련 인사 12명에게 광복 100년이 되는 2045년 한국의 대표적 문화콘텐츠와 미디어의 모습에 대해 물었다. 먼저 ‘2045년 한국을 대표할 문화 콘텐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6명)이 ‘영화와 드라마’를 꼽았다.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한국은 (영화,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구조가 다른 나라보다 강하다”라고 말했다. 문정희 한국시인협회장은 제작진의 상상력에 높은 점수를 줬고,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현재 문화산업 내 영화·드라마의 비중이 큰 점을 이유로 꼽았다. 영화와 드라마 다음으로는 ‘케이팝’(4명)이 대표적 콘텐츠로 꼽혔다. 지원 스님은 “스리랑카에 가봤는데, 사람들이 한국의 불국사와 다보탑은 몰라도 케이팝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현 한양대 건축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판’을 뒤집으면서 잘 노는 자질이 있는데 케이팝이 거기에 딱 들어맞는 콘텐츠”라고 말했다. ‘한글’을 꼽은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한류가 ‘4.0’으로 진화하려면 정보화와 디지털화를 이뤄야 하는데, 한글은 한국의 인터넷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처럼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 아이템이 등장할 것”이라고 봤다. 다음으로 ‘2045년 신문과 방송 등 미래 미디어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는 ‘모바일이 중심 매체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 응답자가 4명으로 가장 많았다. 소설가 복거일 씨는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 등 사람이 갖고 다닐 수 있는 정보처리기구가 활발히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의 구별이 사라지고 콘텐츠 생산 기업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2명이었다. 안규철 교수는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 배포하는 역할은 사회가 유지되는 한 필요할 것이지만 플랫폼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분야에선 국내 양대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장과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의 의견을 들었다. 김 위원장은 30년 뒤 한국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운동선수가 아닌 학생선수 육성’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그는 “선수들이 은퇴한 뒤에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을 겪는다. 선수들이 비단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 건강 증진’에 무게를 뒀다. 이 위원장은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궁극적인 가치는 건강한 몸과 마음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조종엽 jjj@donga.com·양종구 기자}
KAIST 경영대의 일부 강의가 이르면 9월부터 국내 최초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MBA(경영학 석사)를 비롯한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KAIST 경영대 관계자는 “9월 초부터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를 통해 경영학 강의 2개를 방송한다”며 “경영대 재학생이 대상이지만 검토를 거친 뒤 졸업생과 일반에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적 무료 공개 강연 테드(TED)를 비롯해 일반인과 지식을 공유하는 다시보기(VOD) 형식의 영상은 유튜브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강사와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 방송에서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질의응답하며 소통하는 것은 이번 KAIST 강의가 처음이다. 김영걸 KAIST 경영대 부학장이 고객관리(CRM), 정재민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가 미디어와 정보기술(IT) 분야의 최신 이슈를 강의한다. 강의별로 주중 1회(방송 요일 미정) 오후 9∼10시 방송된다. KAIST 경영대 측은 “MBA나 경영학에 관심 있는 직장인들에게 유익한 강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강의가 호응을 얻으면 그동안 캠퍼스 안에 갇혀 있던 대학 교육이 일반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프리카TV 관계자는 “이런 형태로 대학이 인터넷에 공개 강의를 여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라며 “국내 대학과 협업해 양질의 쌍방향 교육 콘텐츠를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홍상수 감독의 17번째 장편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15일 폐막된 제6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표범상과 남우주연상(정재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가 화가 윤희정(김민희)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으며 윤여정 기주봉 최화정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대상을 받은 것은 1989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 이어 두 번째다. 홍 감독은 2013년 ‘우리 선희’로 이 영화제의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9월 말 국내 개봉될 예정이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간도 참변이나 난징 대학살 등에서 민간인을 무차별로 학살한 일본 ‘황군’은 ‘악마’였다. 그러나 그게 일본군 전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황군의 상당수는 보통 사람이었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인들이 겪었던 전쟁의 모습을 보여 준다. 1925년 태어난 오구마 겐지가 1944년 11월 징집돼 관동군에 배치되고, 패전 뒤 구 소련군의 포로가 돼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노역하다가 돌아온 이야기다. 오구마의 구술을 게이오기주쿠대 종합정책학부 교수인 아들이 책으로 펴냈다. 오구마는 만주 헤이룽장 성 동남부 닝안 지역의 관동군 항공통신연대에 배치됐지만 전투를 치른 적이 없고, 총 한 방 쏘지 않았다. 패전 소식을 들은 뒤에는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기뻐했지만 그를 포함한 일본군 등 약 64만 명(강제 동원 조선인 약 1만 명 포함)은 소련군의 포로가 돼 시베리아 등에 분산 수용된다. 오구마는 시베리아 연방관구 치타 주의 치타 제24지구 수용소에 수용됐다. 수용소로 가는 열차 안에서 포로 한 명이 죽은 것을 시작으로 수년 뒤 귀환 때까지 그와 함께 수용된 포로 약 500명 중 45명 이상이 죽었다. 추위와 영양실조 탓이었다. 시베리아 포로의 사망률은 약 10%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시베리아 포로가 펴낸 귀환기는 주로 장교나 지식인 출신이 쓴 탓에 젊은 날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초조감 등이 담겨 있지만 오구마는 “그냥 살아남는 데 필사적이었다”고 했다. 건장하지 않았던 몸으로 운 좋게 노역을 견뎌 낸 오구마는 1948년 8월 귀환선을 탄다. 귀향을 학수고대했던 그지만 배에 내걸린 일장기에 대한 감개는 전혀 없었다. 그는 “1945년부터 일장기를 보자기로 썼다”고 했다. 그는 “나는 전쟁을 지지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휩쓸려 간 것이다”고 입대 전의 자신을 회상했다. 군 복무는 “포로가 되기 위해 (만주에) 보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라고 했고 패전 뒤에는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전쟁 책임에 대해 쇼와 천황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했다. 책은 입대 전후 오구마의 개인사를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 변동과 함께 서술한다. 전쟁 중 물자가 부족해져 궁핍해지고, 전후에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호구책을 찾는 일본 서민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본인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한국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전쟁과 대규모 학살은 별 생각 없이 명령을 따르는 보통 사람들의 손으로 수행되는 것이기에 평범한 병사라고 무조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오구마 역시 중국군이나 조선 독립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곳에 투입됐다면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였을 것이다. 오구마는 1988년부터 평화를 지향하는 ‘부전(不戰) 병사의 모임’에 참여하며, 과거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과 함께 시베리아 포로로 수용됐지만 일본 정부의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는 배제된 조선인 오웅근 씨를 기억해 내고, 1990년 정부에서 받은 위로금 10만 엔 중 절반을 오 씨에게 보냈다. 1996년에는 오 씨와 공동으로 “일본 정부가 조선인 시베리아 억류 포로에게도 배상을 해야 한다”는 소송을 냈으나 끝내 패소했다. 저자는 “인간은 평범하게 살지만 몇 차례인가 위기를 경험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한다”며 “아버지의 궤적은 어디까지나 일본인의 평균적인 인생행로”라고 말한다. 돌려 말했지만 평화는 힘없어 보이는 평범한 양심에서 온다는 얘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저는 ‘날조 기자’가 아닙니다. 부당한 공격에 무릎 꿇지 않겠습니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을 처음으로 보도했던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57)는 13일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동북아역사재단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력의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14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심포지엄 ‘전쟁과 폭력의 세기의 여성을 생각하다’에 패널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우에무라 씨는 김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기 사흘 전인 1991년 8월 11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통해 할머니의 증언을 한국 언론보다 먼저 아사히신문에 보도했다. 이후 일본 우익들로부터 끊임없는 협박과 공격을 받아 왔다. 지난해 1월 우익 성향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이 “우에무라 기자의 위안부 증언 기사는 날조”라고 보도한 뒤 협박이 더 극심해졌다고 한다. 지난해 3월 아사히신문을 퇴사한 그는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던 대학에 “우에무라를 임용하지 말라”는 e메일과 협박 전화가 이어져 결국 임용이 무산됐다. 심지어 그의 열여덟 살 딸에 대한 협박도 시작됐다. 딸의 이름을 거론하며 “네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고생을 했나. 자살할 때까지 몰아 댈 수밖에 없다” 등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올 2월에는 딸이 다니는 학교에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장이 날아왔다고 한다. 요미우리나 산케이 등 보수 성향의 신문이나 혐한(嫌韓) 잡지들도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인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의 기사를 왜곡된 것으로 몰아 왔다. 그는 “제 처와 장모가 한국인이어서 위안부 기사를 썼다는 등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없는 차원의 억지 공격도 있었다”고 했다. 우에무라 씨는 15일 김 할머니의 묘를 찾을 계획이다. “솔직히 가족까지 피해를 볼까 두려워 1991년 기사를 쓴 뒤에는 위안부 문제와 거리를 둬 왔습니다. 그러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당연히 같은 기사를 쓸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고종이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 일본 공사관에 배상을 요구하려 했다는 러시아 측 기록이 발견됐다. 고종이 명성황후 시해범 처벌 요구 외에 일본에 대한 외교적 카드로 배상 요구까지 고려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최근 분석한 1903년 카를 베베르 러시아 특명전권공사의 ‘1898년 전후 한국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종은 아관파천 직후 “명성황후의 시해에 대해 배상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일본 공사관에 전달했다. 아관파천은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 2월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약 1년간 거처를 옮긴 일이다. 》베베르 공사는 이 보고서에서 “아관파천 직후 조선에서 불법으로 사업을 하던 일본인 약 40명이 살해당했고, 일본 공사관은 이에 대해 금전적으로 배상 해 줄 것을 요구하려고 했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 공사관에) ‘명성황후의 살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달하자 일본 공사관은 그것을 포기했다”고 기록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배상 요구가 언급된 국내외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배상 요구 방침을 일본에 전달하는 한편 대일 협상카드로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1903년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축하하는 사절로 한국에 온 베베르 공사가 그해 4월 러시아 본국에 보낸 것으로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베베르 공사는 표면적으로는 축하사절로 왔지만 사실은 한러 비밀 협정 체결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 과정에서 1880년부터 1903년까지 한국, 러시아, 일본의 관계를 정리해 보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연구위원이 최근 입수해 분석한 자료 중에는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가 피신해 살아남았다”는 이른바 ‘명성황후 생존설’의 뿌리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당시 경복궁 건청궁에서 살해됐다는 게 정설이지만 피신했다는 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3년에는 로바노프 당시 러시아 외무장관과 베베르 주한 러시아 공사로부터 “명성황후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독일과 영국 외교관들의 보고서가 발견되면서 다시금 조명받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독일과 영국 외교관들에게 명성황후 생존설을 전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원래 보고 내용을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소장 한국 관련 문서를 정리한 자료집에서 찾아냈다. 1896년 1월 2일 시페이에르 주한 러시아 공사는 로바노프 외무장관에게 “한 조선인이 ‘명성황후가 살아 있고 어딘가에 숨어있는데 러시아 공사관에 은신하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고종과 베베르 공사에게 알렸다”는 내용을 비밀 전문으로 보고했다. 또 “고종은 아직 (황후가 생존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이 전문에 고종과 베베르 공사에게 황후의 생존설과 관련된 소식을 알린 조선인이 누구이고 신빙성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더구나 이 조선인은 행방불명됐다. 시페이에르 공사는 “고종이 자신과 베베르에게 황후에 대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 조선인을 찾고 있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다고 며칠 전 이범진을 통해 알려왔다. 이 조선인은 행방불명됐다”고 보고했다. 김 연구위원은 “명성황후 생존설을 뒷받침한다기보다 생존설이 어디서 비롯돼 어떻게 증폭됐는지를 보여주는 문서”라고 평가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