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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이 5일 구치소에 수감된 지 353일 만에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과 최순실 씨(62·구속 기소)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뇌물죄의 핵심 근거인 ‘경영권 승계 작업’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개별 현안에 대해 명시적,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공소 사실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부정 청탁 대상으로 포괄적 현안인 승계 작업이 존재한다는 특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미르·K스포츠 재단 지원을 무죄로 판단해 1심보다 형량을 낮췄다. 다만 재판부는 삼성의 최 씨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 금액 36억여 원을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액수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와 공모해 이 부회장에게 승마 지원을 하도록 요구했고, 이 부회장은 청탁을 하지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기업활동에 대한 영향력을 알고 승마 지원을 했기 때문에 대가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회삿돈 횡령 금액도 1심 80억여 원에서 36억여 원으로 줄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대통령 측근 최 씨는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했다”고 밝혔다. 또 “이 부회장 등은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거액의 뇌물공여로 나아간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선고 직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렀다 나온 이 부회장은 취재진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다시 한번 죄송하다. 1년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에서 곧바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해 입원 중인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6) 병문안을 했다.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5일 오후 2시 2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312호 중법정. 서울고법 형사13부 정형식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가 법정에 들어섰다. 정 부장판사가 자리에 앉은 후 “피고인 출석 여부를 확인하겠다. 이재용 피고인?”이라고 하자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이 일어서서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긴장한 기색이었다. 정 부장판사는 재판의 쟁점과 판단을 1시간 10분간 설명해 나갔다. 이 부회장은 입이 마른 탓인지 자주 물을 마시고 입가에 립글로스를 발랐다. 이윽고 오후 3시 13분 정 부장판사가 “피고인 이재용의 형을 4년간 유예한다”고 판결을 선고하자 이 부회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난해 2월 17일 구속된 지 353일 만에 석방이 결정된 것이다. ‘자유’를 되찾은 이 부회장의 눈가가 흔들렸다. 선고가 모두 마무리된 후 이 부회장은 함께 풀려나게 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67) 및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64)과 법정에서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방청석에서 대기하던 삼성 관계자들과도 대화했다.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은 법원에서 곧바로 집으로 떠났다. 법정에 들어갈 때 포승줄에 묶인 상태였던 이 부회장은 선고 후 법원청사 지하주차장으로 나갈 때는 양팔이 자유로웠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가는 호송버스에 탑승하면서 법정 경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법원에서 곧장 귀가할 가능성에 대비해 차량을 법원 주차장에 대기시켰지만 이 부회장은 구치소행 호송버스를 탔다. 법원 규정에 따르면 석방되는 피고인이 희망하면 구치소로 가지 않고 법원에서 바로 귀가할 수 있다. 오후 4시 39분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 정문으로 걸어 나왔다. 옅은 미소를 띤 얼굴이었지만 말문을 열자마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됐다. 취재진에게 “여러분께 좋은 모습 못 보여드린 점 다시 한번 죄송하게 생각한다. 1년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경영 신뢰 회복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자 “지금 회장님 보러 가야 한다”며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장기간 입원 중인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6)을 거론했다. 이 부회장은 이 대목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기자들이 “회장님 보러 가시는 거냐”고 재차 묻자 “네”라고 답한 뒤 검은색 체어맨 차량에 올랐다. 이날 오후 5시 15분경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병실에서 약 40분간 머무르며 1년 만의 병문안을 했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4년 가까이 입원 중이다. 이어 이 부회장은 자녀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향했다. 삼성 소식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딸이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내내 아버지의 석방만을 기다렸다”며 “오래 기다린 자녀들을 비롯해 어머니 홍라희 여사, 여동생 이부진·이서현 사장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날 이 부회장의 동선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석방에 대비한 동선이나 메시지 등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혼선이 빚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섣부르게 대응해 오해를 사지 말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김지현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법원장에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를 이끌었던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59·사법연수원 14기)를 임명하는 등 취임 후 첫 고위 법관 인사를 단행했다. 신임 민 원장은 김 대법원장과 서울대 법대 동기이며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의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민 원장은 지난해 11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원장을 맡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을 전후해 대통령민정수석실과 연락을 취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조사 결과를 지난달 말 발표한 바 있다. 서울동부지법원장을 마치고 지난해 2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복귀했던 민 원장을 1년 만에 다시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원장에 앉힌 것은 법원의 최근 인사 관행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다. 법원장 근무를 마치고 고법 부장판사로 복귀한 고위 법관은 통상 2년가량 재판부에 근무한 뒤 다시 법원장으로 발령이 나곤 했다. 김 대법원장이 민 원장을 서둘러 법원장직에 복귀시킨 것은 서울중앙지법이 국정 농단 및 적폐청산 관련 재판을 다수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민 원장은 직접 재판을 하지는 않지만 형사합의부, 영장전담재판부를 포함한 서울중앙지법 전체 법관의 인사를 담당한다. 사법연수원장에는 성낙송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60·14기)가 보임됐다. 대전고법원장은 조해현 서울고법 부장판사(58·14기), 광주고법원장은 최상열 서울고법 부장판사(60·14기), 특허법원장은 조경란 서울고법 부장판사(58·14기)가 각각 맡게 됐다. 김용석 서울고법 부장판사(55·16기)가 서울행정법원장, 최규홍 서울고법 부장판사(57·16기)가 서울동부지법원장에 임명되는 등 사법연수원 16, 17기 고법 부장판사 9명은 지방법원장으로 발령 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이민걸 서울고법 사법연구 판사(57·17기)는 사법연수원 기수와 나이 등에 따른 법원 인사 서열로는 법원장 발령 대상이지만 아예 인사 명단에서 빠졌다. 이는 법원 외부 인사가 주축이 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되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3차 조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인사에서는 사법연수원 22∼24기 지법 부장판사 14명이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는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법관 인사를 분리하는 ‘법관인사 이원화’ 시행에 따라 올해를 끝으로 폐지된다. 승진자 14명 가운데 이흥구 대구고법 부장판사(55·22기), 김경란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49·23기), 윤성식 특허법원 부장판사(50·24기), 김성수 대전고법 부장판사(50·24기) 등 4명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김 수석부장판사를 제외한 3명은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에도 속해 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김수정)는 2일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지분을 넘겨주지 않고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이장석 서울히어로즈 대표(52·프로야구 넥센 구단주)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는 넥센을 운영하는 서울히어로즈 대표로서 투자금을 가로채고 장기간 다양한 방식으로 회사 자금을 횡령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재미교포 사업가로부터 20억 원을 투자받은 뒤 약속한 서울히어로즈 지분 40%를 넘겨주지 않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회삿돈 48억 원을 개인 비자금 등으로 사용한 혐의도 인정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날 이 대표가 프로야구 관련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직무정지를 내리고 추가 제재를 논의 중이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2일 19대 총선 직전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방송 진행자 김어준 씨(50)와 시사인 기자 주진우 씨(45)에게 각각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공직선거법에 따르지 않고 확성장치를 사용하거나 불법 집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행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위험성이 크고 공직선거법의 입법 취지와 기능을 해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19대 총선 직전인 2012년 4월 이들이 당시 새누리당 후보들의 당선을 막기 위해 확성장치를 사용하고 불법 집회를 개최한 점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김용민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확성장치를 사용한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2012년 9월 기소 땐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규정을 위반한 혐의도 적용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해당 공소사실은 철회됐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상주)는 1일 청와대 문건을 최순실 씨(62·구속 기소)에게 유출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정호성 전 대통령부속비서관(49)에게 1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은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를 제공해 공무 및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고 국정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정 전 비서관이 최 씨에게 건넨 47건의 문건 중 태블릿PC 등에 저장된 14건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했다. 또 최 씨의 주거지에서 압수한 외장하드에서 발견된 문건 33건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한 증거가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하늘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온 정 전 비서관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양 주먹을 꽉 쥐고 일어선 채로 선고를 경청했다. 재판부가 “피고인 및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을 선고하자 정 전 비서관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 입을 꽉 다문 그는 방청석을 쳐다보며 법정을 나섰다. 정 전 비서관은 문건 유출 외에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에 개입한 혐의로 추가 기소돼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가수 고(故) 신해철 씨의 위장 수술을 집도한 서울 송파구 S병원의 전 원장 강모 씨(48)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윤준)는 30일 강 씨에게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그동안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온 강 씨를 법정 구속했다. 항소심은 1심과 같이 강 씨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강 씨가 2014년 10월 17일 S병원 원장이었을 당시 신 씨에게 복강경을 이용한 위장관유착박리술과 위 축소 수술을 집도했다가 심낭 천공을 유발해 열흘 후 사망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다 항소심은 1심이 무죄로 판결한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강 씨가 신 씨의 개인 의료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것이 의료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봤지만, 항소심은 강 씨의 행위가 의료법상 정보누설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 씨는 유족에게 사과하기에 앞서 신 씨의 개인 의료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노출하는 추가 범행까지 저질렀다. 이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신 씨는 강 씨에게 수술을 받은 후 복막염 증세를 보이다 2014년 10월 27일 46세의 나이로 숨졌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수원·의정부지법 판사들이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결과에서 과거 법원행정처가 판사 동향 파악을 한 사실 등이 드러난 것과 관련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성역 없는 철저한 조사를 29일 요구했다. 전국에서 일선 법원 판사들이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판사회의를 한 것은 처음이다. 수원지법 소속 판사 97명(재적 판사 149명)은 이날 판사회의를 연 뒤 결의문을 내고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법관의 독립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 이번 사건의 모든 관계자에게 사법신뢰 회복을 위한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수원지법 판사회의는 참석자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방식으로 1시간여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젊은 판사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들은 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판사들은 또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된 대표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구성할 것과 대법원이 조속히 규칙을 제정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할 것도 요구했다. 이들은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결사항을 최대한 존중하고 이를 사법행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의정부지법 판사들도 비공개 판사회의를 열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보강조사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의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경질성으로 교체된 김소영 법원행정처장(53·19기)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공식 이임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통상 법원행정처장은 인사가 나면 이임식을 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명수 대법원장(59·사진)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 전 대법관 13명에게 그 내용에 대해 아무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조사 결과엔 2015년 당시 지금의 대법관 7명이 참여했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 재판과 연계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김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에게 사전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 안팎에선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앞으로 ‘사법부 블랙리스트’ 3차 조사의 절차와 방향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원세훈 선고’ 관련 문건이 발단 추가조사위가 22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0) 재임 중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원 전 원장 항소심 선고를 전후해 청와대와 주고받은 의견 등을 정리한 문건이 포함돼 있다. 제목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다. 여기엔 원 전 원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데 대해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구속)이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법원행정처가 대통령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그리고 실제 우 전 수석의 희망처럼 원 전 원장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당시 대법원은 사건을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에 배당했다가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사안이 중대하다는 이유였다.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 판결을 전원 일치로 파기하고 핵심 증거를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3개월 뒤 원 전 원장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원 전 원장은 2017년 8월 파기 환송심에서 다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대법관들까지 조사 대상’ 논란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간에 갈등 기류가 형성된 주요 배경은 ‘원 전 원장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경위’가 3차 조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법원행정처의 원 전 원장 사건 문건엔 ‘상고심 처리를 앞두고 있는 기간 동안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하는 방안 검토 가능’이란 대목이 있다. 이에 일부 판사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원 전 원장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전원합의체에 참여했던 대법관들은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당시 이상훈(62·퇴임), 이인복 대법관(62·퇴임) 등은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했다. 청와대와 상고법원을 놓고 거래를 했다면 대법관 전원일치로 원 전 원장 사건을 파기하는 판결이 나올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대법원장 vs 대법관들’ 편 나뉘나 김 대법원장은 25일 취재진에게 추가조사위 조사 결과에 대해 “대법관들도 이번 문제 해결을 위한 나의 고뇌와 노력을 충분히 이해했고 빠른 시간 내에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대법관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에게 수차례 사법부가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PC 파일 개봉을 당사자 동의 없이 하는 데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이다.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 다음 날인 23일 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공동으로 “(원 전 원장 전원합의체) 관여 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하여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힌 데도 대법관들의 불만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3차 조사 대상에) 대법관들까지 들어간다면 결국 대법원장 대 대법관들로 편이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
“강간당하는 게 싫었으면 얼굴에 욕이라도 해주지.”(A 검사) “나는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건 싫어한다.”(B 판사) 25일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표한 검사, 판사 평가 결과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막말 사례다. 그동안 수사와 재판에서 인권 침해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됐지만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변협은 이날 소속 변호사들이 수사와 재판에서 경험한 검사들의 모습을 평가한 ‘2017년 검사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평가는 지난해 1∼11월 변호사 1828명이 전국 검사 1327명을 평가했다. 변협은 하위 검사 10명의 명단을 공개하는 대신 구체적인 사례를 발표했다. 피의자를 고압적으로 윽박지르고, 참고인들을 협박하거나, 피의자들을 무분별하게 소환한 뒤 ‘밤샘 조사’를 한 사례가 나왔다.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에게 모욕이나 협박을 한 사례도 많았다. 한 검사는 신문조서를 미리 작성한 뒤 “빨리 보고를 해야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피의자를 협박했다. 피의자에게 면박을 주면서 “우리가 수사해서 밝혀내기 전에 유리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윽박지른 경우도 있다. 남자 수사관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성폭행당할 때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라”고 했는데도 아무 제지를 하지 않은 검사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변협에 “세상에 이런 검사가 있으니 자살자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변호사회도 ‘2017년 법관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평가는 지난해 1∼12월 소속 변호사 2214명이 전국 법관 2385명을 평가한 것이다. 하위 법관으로 뽑힌 판사 5명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법관 평가에서는 고압적이고 예의 없는 태도, 막말이 주된 문제로 지적됐다. 하위 법관들은 변호사에게 “○○○ 씨”라고 낮춰 부르거나, “당신 말고 그 옆에”라고 반말을 했다. 여성 변호사에게 “나는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건 싫어한다”라고 말하거나, 증거를 제시하는 변호사를 ‘푸흡’ 하고 크게 비웃는 판사도 있었다. 이혼소송 중인 원고에게 “(집 나와서 혼자) 그렇게 사니 행복하십니까”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박근혜 전) 대통령님께서는 저에게 ‘우리가 지금 고생하더라도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는 말을 하셨습니다. 흑∼흑.” 25일 오전 11시 35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 공판. 증인으로 나온 이재만 전 대통령총무비서관(52·구속 기소·사진)이 법정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인 남현우 변호사(47·사법연수원 34기)가 “이 전 비서관도 경제학 박사여서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관심이 많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한 직후였다. 재판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나오지 않았다. 하늘색 수의를 입은 이 전 비서관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흑흑’거리는 소리가 방청석까지 울렸다. 이 전 비서관은 애써 숨을 고르며 “(박 전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정하시라. 물이라도 좀 드시라”며 증인신문을 급히 마무리했다. 오전 11시 41분 재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는 이 전 비서관은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이 전 비서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최순실 씨(62·구속 기소)를 만났던 상황도 증언했다. 이 전 비서관은 “보고를 하러 갔을 때 최 씨가 저희들(비서관들)끼리 있으면 들어와서 과일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며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는 곳에 대통령의 의상이 있었는데 최 씨가 들어와서 갖고 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또 “최 씨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최 씨가 정치 기사에 관심이 있었다. (최 씨가) 얘기를 하면 저는 주로 들었다”고 했다. 최 씨를 만난 정확한 시점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2013∼2015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충당한 청와대 명절·휴가비 명세를 최 씨에게 건네줬냐는 질문에 대해선 자신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증언을 거부했다. 이 전 비서관은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검찰에 말씀드린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제가 A 판사님, 나대는 행태가 좀 역겹습니다. (추가)조사위 활동 당시 대법원장님 정보원 역할 하셨죠?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자중하시죠. 제가 보기에…, A 판사님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B 판사의 페이스북 댓글) “제가 착한 사람 아니란 건 동의하는데, 정보원이라니. 무슨 의미이신지요? -_-??? 양승태 전 대법원장님 정보원이었다는 소리인가요?”(A 판사의 페이스북 댓글) 25일 판사들은 페이스북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서로를 비아냥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70·2기) 시절 법원행정처의 판사 동향 파악이 드러난 추가 조사 결과가 22일 발표되고, 김명수 대법원장(59·사법연수원 15기)이 24일 고강도 후속조치를 담은 입장을 밝힌 이후 일부 판사의 막말 공방이 강도를 더하고 있다. 최근 법원 내부 이슈에 여러 의견을 밝혀온 A 판사는 22일 페이스북에 “하. 법원에 국정원이 있었네. 현 대법원장 책임지라는 언론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런 사법부가 정상이라고 보는 건가? 진짜? 너희들 1970년대로 타임슬립했니? 난 진짜 병신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A 판사는 24일에는 “코트넷(법원 내부 전산망)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니, 나 진짜 겁내 재치 있잖아!!! 완전 신세대야!!!!”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러자 25일 새벽에 B 판사가 A 판사를 향해 “나대는 행태가 역겹다”고 댓글을 달고, A 판사도 동문서답하는 듯한 댓글을 올려 공방을 주고받은 것이다. 25일 새벽에 두 판사가 달았던 문제의 댓글 두 개는 이날 오전에 삭제됐다. 그 대신 A 판사는 “그나마 페이스북 도배하면서 그 정신적 충격이 많이 해소된 것 같다…저는 (김명수) 대법원장님을 믿는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대법원장님의 사실규명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측면이 크다”며 김 대법원장을 응원하는 글을 올렸다. 판사들은 과거에 의견이 달라도 법원 내부게시판에서 근엄하게 논쟁을 주로 벌였다. 하지만 최근 블랙리스트 논란을 거치면서는 인신공격성 막말 공방으로 치닫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법조계는 법원 내 주류세력 교체를 계기로 그간 조직 내부의 누적된 갈등과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결과로 분석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전 정권에서 요직을 번갈아 차지하며 세력을 공고히 쌓았던 소수 엘리트 법관들에 대한 반감이 사법개혁을 명분으로 한 법원 내 적폐청산을 계기로 도 넘은 말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신의 주관을 자주 드러내면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호재 hoho@donga.com·전주영 기자}

“피고인 조윤선을 징역 2년에 처한다.” 23일 오전 11시 2분 서울고법 형사3부 조영철 부장판사가 판결 주문을 읽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312호 중법정 피고인석에 서서 항소심 선고를 듣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2)은 공손하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재판부를 가만히 응시했다. 조 부장판사가 “피고인 조윤선은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말하자 4초간 머뭇거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전 11시 5분 선고가 끝나자 조 전 장관은 검은색 코트와 클러치백을 챙긴 뒤 법정 경위를 따라 법정을 나섰다. 방청석에서 한 젊은 여성이 “조윤선 장관님,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돌아보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법정을 나섰다. 호송차를 타고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180일 만에 ‘법정 구속’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축소했다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실행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월 21일 구속 기소된 조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27일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것. 하지만 이날 징역 2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180일 만에 다시 수감됐다. 앞서 오전 10시 5분 조 전 장관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법원에 도착했다. 옅게 화장을 한 얼굴이었다. ‘이번에 구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피고인 중 가장 먼저 법정에 도착한 조 전 장관은 하늘색 수의를 입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9·구속 기소)이 법정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10시 30분 재판이 시작된 후 35분간 조 전 장관은 피고인석에 꼿꼿이 앉아 재판부만 바라봤다. 조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조 전 장관이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고 문예기금과 영화, 도서 지원 배제에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박준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65)이 항소심에서 증언을 번복한 점이 조 전 장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박 전 수석은 1심 재판에서 조 전 장관이 ‘민간단체 보조금 태스크포스(TF)’에 개입했는지를 검찰이 묻자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항소심에선 “조 전 수석에게 TF 인수인계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서 발견된 이른바 ‘캐비닛 문건’이 항소심에서 증거로 채택된 점도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공모 관계도 인정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은 김 전 실장에 대해 문체부 1급 공무원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를 추가로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은 지원 배제 실행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되는 전직 장관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이유로 (1급 공무원에게) 사직 요구를 자의적으로 하는 등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또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김 전 실장과 박 전 대통령(66·구속 기소) 간의 ‘공모 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자신의 직권을 남용했고, 동시에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행위에 공모한 것이므로 그에 관한 공모공동정범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양승태 전 대법원장(70·사법연수원 2기)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법관 인사에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김명수 대법원장(59·15기)의 지시로 구성된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는 22일 이 같은 내용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결과를 법원 내부 전산망(코트넷)에 올리는 방식으로 발표했다. 다만 법원행정처가 진보적 성향을 띤 법관들의 학술단체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들이 발견돼 업무 적절성을 놓고 일부 논란이 예상된다. ○ 조사보고서에 블랙리스트 언급 없어 조사위는 37쪽 분량의 결과 보고서에서 ‘블랙리스트’라는 표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조사위는 “블랙리스트 개념에 논란이 있으므로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밝혔다. 당초 이번 추가 조사가 블랙리스트 존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의혹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었다는 취지로 보인다. 하지만 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활동, 학술모임, 재판부 동향 등과 관련해 동향을 파악한 문건이 법원행정처의 PC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법관이 사법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법관의 인적 관계와 행적 등을 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면 인사상 불이익 여부를 떠나 법관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는데, 조사 결과 이런 문서가 나왔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이 추진하는 사안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특정 법관이 특정 연구회 회원인지, 정치적 성향은 어떤지 등을 파악했다. 또 법원 내부 통신망을 비롯한 페이스북, 포털사이트 익명 카페 등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파악해 문건을 작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그룹과 주변그룹, 진보와 보수, 강성과 온건 등으로 법관을 분류하기도 했다. 2015∼2016년 국제인권법학회의 소모임인 ‘인권을 사랑하는 판사들의 모임(인사모)’의 동향을 기록한 문건, 인사모의 학술대회를 축소하고 고립시키는 방안이 담긴 문건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조사위는 지적했다.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의 항소심 형사재판을 맡은 담당 재판부에 대한 동향을 파악한 정황이 담긴 문건도 공개됐다.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리는 한편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워 (법원)행정처도 불안해하는 입장’을 민정라인을 통해 보고했다는 내용이 있다. 원 전 원장이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된 후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19기)이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 “실체 없었다” vs “청와대 교류 충격적”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3월 불거져 1년 가까이 두 차례의 조사가 진행됐다. 대법원이 자체 조사를 위해 꾸린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4월 “일부 사법권 남용행위가 있었으나 블랙리스트는 실체가 없다”고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선 판사들이 재조사를 요구했고, 지난해 11월 추가 조사가 시작됐다. 법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블랙리스트가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특정 법관에 대한 동향을 파악한 것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프레임의 힘이란 게 무섭다. 동향 파악과 인사 불이익은 다른데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처럼 보여서 그럴듯하게 보였지만 실체는 없었다”며 “몇몇 법관이 제기한 의혹이 사법부 전체에 타격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에 다른 부장판사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재판을 전후해 독립을 지켜야 할 사법부가 청와대와 교류를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하면서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해 “보고서 내용을 잘 검토하고 있다. 심사숙고해서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과 법조계 개혁의 핵심입니다.” 23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53·사법연수원 30기)은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검찰은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개헌안을 다 중단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야 간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도 이번에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전체 변호사의 약 75%, 1만7700여 명이 속해 있는 서울변호사회의 94대 회장이다. 한국헌법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변호사회는 한국헌법학회와 함께 독자적인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 3월 전에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1년간 이 회장은 변호사들의 권익과 복지 향상에 많은 공을 들였다. 변호인의 변론권 확대를 위해 꾸준히 검찰 경찰과 소통하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 결과 변호인에게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통보하고, 경찰 단계에서 형사사건 관련 서류의 열람등사 범위를 확대하며, 변호인 입회 시 수기 메모 허용 등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검찰과 법원을 가까이서 봐 온 만큼 이들 기관의 개혁 움직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최근 청와대가 밝힌 권력기관 개편 방안에 대해 이 회장은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안이지만 견제와 균형을 잘 고려한 안이라고 본다”며 “이러한 시스템을 앞으로 어떻게 돌아가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서는 “법원은 검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 움직임이 약하다”며 “내부 갈등으로 인한 진통을 빨리 극복하고 내부에서부터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외부에서 사법부에 압력을 넣는 것보다 법원 내부에서 압력이나 판사 스스로 권력에 줄대기 하는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며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성향 등을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향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변화의 필요성과 함께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로스쿨의 도입에 관여했고 사법시험을 폐지하면서 로스쿨로 법조인 양성시스템을 일원화한 분으로서 로스쿨 제도의 완성에 책임이 있다”며 “로스쿨 제도의 취지에 맞게 포화상태로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활동할 직역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외국 공관에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파견하고, 정부 각 부처의 법무담당관과 각 기업의 준법지원인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을 임명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 회장은 향후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의 대응을 보면서 대한변협이 과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그동안 변호사업계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제해 왔지만 앞으로 현안에 대해서 직접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과 법조계 개혁의 핵심입니다.”23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53·사법연수원 30기)은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검찰은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개헌안을 다 중단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야 간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도 이번에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전체 변호사의 약 75%, 1만7700여 명의 변호사가 속해있는 서울변호사회의 94대 회장이다. 한국헌법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변호사회는 한국헌법학회와 함께 독자적인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 3월 전에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1년 간 이 회장은 변호사들의 권익과 복지 향상에 많은 공을 들였다. 변호인의 변론권을 확대를 위해 꾸준히 검찰·경찰과 소통하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 결과 변호인에게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통보하고, 경찰 단계에서 형사사건 관련 서류의 열람등사범위를 확대하며, 변호인 입회 시 수기 메모 허용 등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검찰과 법원을 가까이서 봐 온 만큼 이들 기관의 개혁 움직임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최근 청와대가 밝힌 권력기관 개편 방안에 대해 이 회장은 “검찰·경찰·국정원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안이지만 견제와 균형을 잘 고려한 안이라고 본다”며 “이러한 시스템을 앞으로 어떻게 돌아가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서는 “법원은 검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 움직임이 약하다”며 “내부 갈등으로 인한 진통을 빨리 극복하고 내부에서부터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외부에서 사법부에 압력을 넣는 것 보다 법원 내부에서 압력이나 판사 스스로 권력에 줄대기하는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며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성향 등을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향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현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변화의 필요성과 함께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문 대통령은 로스쿨의 도입에 관여했고 사법시험을 폐지하면서 로스쿨로 법조인 양성시스템을 일원화하신 분으로서 로스쿨 제도의 완성에 책임이 있다”며 “로스쿨제도의 취지에 맞게 포화상태로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활동할 직역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재외국민보호를 위해 외국 공관에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파견하고, 정부 각 부처의 법무담당관과 각 기업의 준법지원인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을 임명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 회장은 향후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의 대응을 보면서 대한변협이 과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그동안 변호사업계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에 자제해 왔지만 앞으로 직접 현안에 대해서 직접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찬희 서울변호사회장과의 일문일답 전문. ―올 한해 최대 화두 중 하나가 개헌이다. 개헌 논의 중 사법 분야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검찰은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각 권력기관에 권한을 어떻게 적절히 분배할지는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개헌안을 다 중단하는 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도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은 다음에 다시 논의하더라도 이번에 매듭지을 부분은 확실히 짓고 가야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개헌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한국헌법학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현 시점에 가장 적합한 독자적인 헌법 개정안을 마련 중에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법조계 개혁에 대한 총평한다면. “새 정부 출범 이후 국가 전체에 개혁 바람이 불었다. 촛불혁명을 시작으로 잘못된 관행과 편법에 젖어있는 구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국가기관과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의 흐름이 이어졌다. 법조계에서도 개혁이 가장 큰 화두가 아니었나 싶다. 법원에서는 기존의 불통과 권위적인 문화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개혁적인 대법원장이 취임했고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검찰에서도 지나친 검찰권력 비대화와 정치권과의 유착에 따른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파격적인 인사와 광범위한 적폐수사가 진행됐다. 경찰도 집회·시위에 대한 무리한 대응과 비인권적인 수사관행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여 인권경찰로 탈바꿈하려는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안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이번 개혁안에 대해선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모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당사자들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안이지만 견제와 균형을 잘 고려한 안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을 어떻게 잘 돌아가게 하느냐다. 검찰은 왜 수사권 조정이 문제가 됐는지, 경찰은 왜 완전한 권한을 받지 못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까지 이들 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가 액턴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말했다. 권력은 늘 인권침해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법조인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전 집권자들과 다른 운용의 묘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 변호사회도 외부에서 권력기관들을 견제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검찰의 적폐 청산 수사가 국정을 혼란시키고 피로감을 야기하므로 적당한 수준에서 덮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종기를 완전히 도려내지 않으면 다시 또 곪는다. 그동안 우리는 일부 기득권층의 저항이나 집권세력의 편리함 추구 때문에 일제의 잔재나 독재·군사정부의 적폐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악순환이 반복되었다고 본다. 더 많은 비용과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번 할 때 제대로 수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혼란의 위험성을 이유로 개혁을 방해하면 안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에 큰 틀에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 수사와 재판은 일관성과 형평성에 입각해 철저하게 진행하고 그 후에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포용하는 정치적 결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법부 개혁 우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핵심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판사들은 늘 재판이 공정하다고 애기하지만 국민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법원 스스로 어떤 외부 바람에 도 흔들리지 않도록 내부에서부터 바로잡아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검찰·경찰·국정원 모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법원은 아직 그런 움직임이 약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개혁 작업에 기대가 큰데 아직 내부 문제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보이지 않는다. 내부 진통을 빨리 극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법관의 독립은 외부로부터의 독립도 보장돼야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의 독립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국민들은 외부에서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보다 법원 내부의 압력이나 판사 스스로 권력에 줄대기를 하는 것을 더 우려한다. 이런 점에서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성향 등을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향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추가조사위 발표에서 문제로 지적된 점을 법원 스스로가 시정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받는 사법부가 되도록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국정농단 재판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보이콧을 어떻게 보는가. “재판에서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이콧한다는 건 대통령 출신으로서 사법제도의 틀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옳지 않다고 본다. 할 말이 있으면 재판에서 떳떳이 하고 국민을 설득해야지 재판 보이콧이라는 소극적 방법으로 국민의 이해바라는 건 그것 역시 구시대적인 사고로 보인다.” ―현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나. “로스쿨이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이제는 로스쿨의 개혁을 이야기할 시점이다. 로스쿨 제도의 취지는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과 변호사들의 활동을 넓혀 사회 곳곳을 ‘법치주의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앞부분만 시행되고 있다. 로스쿨을 도입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로스쿨의 설계에 관여하지 않은 대통령들이 집권하면서 뒷부분이 유보되고 있는 상태다. 문 대통령은 로스쿨의 도입에 관여했고 사법시험을 폐지하면서 로스쿨로 법조인 양성시스템을 일원화하신 분이다. 로스쿨 제도의 완성에 책임이 있다. 로스쿨 제도의 취지에 맞게 포화상태로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활동할 직역을 넓혀줘야 한다. 재외국민보호를 위해 외국 공관에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파견하고, 정부 각 부처의 법무담당관과 각 기업의 준법지원인에 변호사자격을 가진 사람을 임명해야한다.” ―변호사시험의 낮은 합격률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로스쿨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 출발점은 너무 낮은 변호사시험(변시) 합격률에 있다. 초기에 사실상 80%이상이 합격하던 시험이 이제는 합격률이 50%가 안 된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변호사시험 과목에만 학생들이 몰린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과거 사법시험의 폐해로 제기되던 대학교육의 황폐화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전공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로스쿨의 본래 취지에 맞게 로스쿨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조정돼야 한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어떠한 수준으로 조정할 것인지, 연간 시장에 배출되는 적정한 변호사 숫자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이제 로스쿨과 관련 있는 정부 조직인 법무부와 교육부, 대법원, 대한변호사협회,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함께 모여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는 각자 따로 움직이고 있다. 건드리면 너무 민감한 문제니까 수수방관하면서 상대방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이건 옳지 않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으로 지낸 1년의 소회는. “하루도 안 쉬고 주말에도 각종 행사나 회원들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아니면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 삶에서 가장 바쁜 1년을 보냈다. 회원들(변호사) 많이 만나면서 변호사가 참 힘든 일이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업무를 편하게 할 수 있을지, 변호사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게 할 지 더욱 고민하게 됐다. 지난 1년 간 겉으로 보이는 외형보다는 서울변호사회 내부의 문제점을 바로 잡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선거에서 지나치게 프레임 구조를 짜서 청년변호사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회계업무 등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 과거 집행부에 비해 예산 절감을 상당히 이뤘다. 사무국 체제도 바꿨고 전자결제시스템도 도입했다. 회원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거의 매일 진행하고 있다. 지금도 서울 곳곳의 회원사무실 방문하면서 회원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현장 목소리를 자주 듣고 있다.” ―지난 1년 간 검찰·법원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얻은 성과는. “변호사들이 자주 접촉하는 검찰·법원·경찰 그리고 교정당국과 긴밀한 소통체제를 확립하는 데 힘썼다. 성과도 적지 않다. 검찰과는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휴대전화로 변호인에게 통보하게끔 했고, 변호인 입회 시 수기 메모를 허용하는 등 피의자 방어권과 변호인 변론권 보장을 위해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개인회생·파산 사건을 노리는 법조 브로커를 근절하기 위해 서울회생법원과는 업무협약도 맺었다.” ―유사직역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직역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순히 밀어붙이기식 교섭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의 제시가 필요하다. 국민이 수긍한다면 국회의 표는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 지난해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의 대응을 보면서 대한변협이 과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회원의 약 75%를 차지하는 서울변호사회와 서울변호사회장이 일정부분 대외적인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요청도 많이 받고 있다. 그동안 변호사업계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에 자제해 왔지만 앞으로 직접 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겠다.”권오혁기자 hyuk@donga.com이호재기자 hoho@donga.com}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된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19일 법정에서 첫 대면을 했다. 2016년 11월 정호성 전 대통령부속비서관(49)이 구속된 지 1년 2개월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52), 이재만 전 대통령총무비서관(52),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속행 공판을 진행했다. 이 재판부에서 안 전 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이 먼저 재판을 받던 중 10일 추가 기소된 정 전 비서관이 함께 배당되면서 세 사람이 같은 법정에 서게 된 것.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36억5000만 원의 특활비를 받는 것을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오후 1시 55분 안, 이 전 비서관이 먼저 법정에 들어섰다. 3분 뒤 정 전 비서관이 법정에 들어서자 안 전 비서관이 고개를 들어 힐끗 쳐다봤다. 이 전 비서관은 정 전 비서관을 약 10초 동안 응시했다. 재판 중에도 이들은 각자 변호인과 얘기를 나누면서 가끔씩 서로를 쳐다봤다. 평온하던 이들의 표정은 남 전 원장의 특활비 상납에 관여한 오모 전 국정원장 정책특별보좌관이 증언을 시작하자 변했다. 오 전 보좌관은 “(특활비를 상납하라는) 지시가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땐 상당히 치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눈을 뜨고 있던 이 전 비서관은 눈을 부릅뜨면서 오 전 보좌관을 노려봤다. 안 전 비서관도 얼굴이 벌게진 채 오 전 보좌관을 바라봤다. 정 전 비서관은 체념한 듯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오 전 보좌관은 “부하가 쓰도록 돼 있는 돈을 상급자가 써야겠다는 지시로 받아들였다”며 “떳떳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 전 원장도, 저도 창피했다.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이어 “(남 전 원장에게) 누가 전화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안 전 비서관”이라고 증언했다. 안 전 비서관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당황했다. 오 전 보좌관은 “전화를 받은 남 전 원장이 ‘아무리 형편없고 나쁜 놈들(비서관들)이라도 대통령 속이고 날 농락하는 짓은 않겠지’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현금 5000만 원을 차례대로 종이상자와 두툼한 봉투에 넣은 뒤 테이프로 봉했다고 했다. 함께 출석한 박모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은 “봉투를 건네받은 뒤 이 전 비서관이 보낸 차를 타고 청와대로 갔다. 대부분 신분증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판사 시절 재직 중인 법원의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에게서 수백만 원어치 술 접대를 받은 변호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박창제)는 알선수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 변호사(41)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변호사가 청주지법에서 근무하던 2013년 7∼11월 청주지법 내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이모 씨(40)에게서 모두 9차례에 걸쳐 630만 원어치의 술 접대를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김 변호사는 연수원 동기인 박모 변호사(43)로부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이 씨를 소개받아 서로를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며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이 씨로부터 ‘재판 청탁’을 받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이 씨가 법정에서 “청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고, 공판기일이 언제라는 점 외에는 김 변호사에게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뇌물공여 혐의로 함께 기소된 이 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씨는 2014년 4월 청주지법에서 6400억 원어치 가짜 세금계산서를 무단으로 발행한 혐의로 징역 5년, 벌금 640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형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복역하며 김 변호사에게 접대비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2016년 10월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김 변호사는 2014년 2월 청주지법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64)이 2015년 9월 임시주주총회에서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 이사직에서 해임당한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함종식)는 18일 신 전 부회장이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신 전 부회장이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 이사직에서 해임될 때 이미 일본 롯데그룹에서 해임된 상태여서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가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또 신 전 부회장이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3)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일본 언론을 통해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회사의 업무를 방해한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신 전 부회장의 인터뷰 내용이 진실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명수 대법원장(59·사법연수원 15기) 취임 이후 첫 정기인사를 앞두고 현직 판사 수십 명이 이미 사표를 제출했거나 사직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법원 내부와 변호사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 중에는 능력을 인정받은 엘리트 판사들이 가는 법원행정처 출신의 고위 법관들도 다수 포함돼 사직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에 사직 의사를 밝힌 판사는 총 40명이다. 그런데 법원 정기인사까지 한 달여 남은 기간에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의 결과가 나오면서 갈등이 커지면 사표를 내는 법관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사직 의사를 표시한 법관 중에는 전·현직 법원행정처 출신과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기회가 사라진 사법연수원 25기 판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과 국정농단 관련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부장판사 등 중견 판사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법관 중에는 강형주 서울중앙지법원장(59·사법연수원 13기), 김정만 서울중앙지법 민사1수석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8기). 서울고법 유해용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19기)와 여미숙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1기) 등이 사의를 표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축소 의혹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법원 내부의 갈등이 고조된 것을 한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법원행정처 출신의 한 판사는 “행정처 출신을 ‘적폐’로 낙인찍는 내부 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판사들이 상당수 있다”며 “법원의 내부 갈등 때문에 능력이 뛰어난 판사들을 스스로 내보낸 꼴”이라고 지적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도 원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올해 고법 부장판사 승진 대상이었던 25기 판사들의 동요가 특히 심했다”며 “25기 일부 판사는 이미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원 내부에서도 ‘이번에 뛰어난 판사들이 많이 그만둬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경험 많고 유능한 판사들이 떠나는 것은 법원으로서도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판사 개인적인 선택을 조직 문제와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매년 40∼60명의 판사가 각자 사정을 이유로 법원을 떠났는데 유독 올해 경우에만 법원 내부 문제로 퇴직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법원의 ‘악재’가 변호사 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대형 로펌들은 이미 퇴직 판사들에 대한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법원행정처 출신이나 중요 재판부를 거친 경력이 있는 사법연수원 25기 판사들에게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올해 사직할 판사의 수가 약 8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미 지법 부장판사급 서너 분과 영입 의사를 타진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형 로펌도 이미 퇴직 예정인 7명 안팎의 판사 영입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