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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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문학/출판25%
역사21%
정치일반14%
사회일반11%
문화 일반7%
칼럼7%
정당4%
검찰-법원판결4%
인사일반4%
산업3%
  • [책의 향기]우리의 ‘편리’, 타인의 노동을 통해 제공된다

    우리는 어찌 보면 참 ‘편하게’ 산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면 문고리에 걸린 가방에 신선한 우유가 담겨 있다. 인터넷 쇼핑을 하면 몇 개 안 되는 물건이라도 집까지 가져다준다. 외국인들은 전화 한 통이면(요즘에는 배달앱을 몇 번 누르면)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집까지 따끈따끈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배달 문화에 깜짝 놀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고객은 ‘왕’ 대접을 받는다. 직원들이 작은 실수라도 하면 “점장 나오라”며 거세게 항의하기 일쑤다. 서비스 노동자는 고객의 하인들이다. 하지만 책은 이런 현실과는 다른 제목을 갖고 있다. 저자가 현재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사무차장 정책특보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는 2011년 국제노동기구 100차 총회에서 채택된 가사노동협약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 책은 주류 경제학의 시각이 포용하지 못하는 노동 문제에 관해 틈틈이 쓴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책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노동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과 주민을 피해 다니는 우유 배달원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어느 날 ‘배달원이 승강기를 사용해 주민들의 이용 불편과 승강기 고장, 전기료 발생으로 입주민 민원이 발생한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주민이 “전기세 내고 이용하는 거냐?”고 따지자 배달원은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에 대한 저자의 해법은 승강기를 타지 못해 생기는 배달 비용 상승을 주민들이 보상하지 않으려면 우유를 경비실 옆 우편함에 넣어 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편리’는 타인의 노동을 통해서 제공된다는 점을 기업도 소비자도 기억해야 한다. 일시적 불편이나 경제적 이익 때문에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실 ‘왕’(고객)들도 직장에 가면 노동자이고, ‘하인’도 일터를 벗어나면 소비자다. 그러기에 과잉 친절을 강요하는 기업을 거부하고 ‘우리가 조금 불편해지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기자는 몇 년 전 프랑스 남부 해안의 한 도시로 출장을 갔다. 점포에서 물건을 사고 지불을 하려는데 계산원이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다. 남자친구 험담이라도 하는 듯했다.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을 살폈지만 불편한 것은 기자뿐인 듯했다. 어떤 이들은 신문을 꺼내 읽거나 자신도 휴대전화를 꺼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비스가 조금 느려지고 불편해진다면 경제성장에는 좋을 게 없을 테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 말고 삶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GDP는 화폐로 거래된 경제활동만을 측정할 뿐 국민들의 복리후생을 보여주지 못한다. 책은 구체적 사례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거시적인 경제 현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소득 불평등과 금융시장의 팽창에서 찾는다. 상위 1%가 가져간 소득 비율이 사상 최고점이던 시기가 두 차례 있었는데, 뒤이어 1930년대 대공황과 현재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마이클 스펜서가 이끈 다보스 포럼의 ‘현안 위원회’가 인정한 것처럼 소득과 소비의 건실한 성장을 통해 안정적 경제를 이룰 수 있다”며 “일을 해도 빈곤해질 수 있는 사회에서는 시민들에게 기본적인 소득 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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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서 읽어본 美교수, 몸이 떨린다며 서명작업 팔걷어”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이번 지식인 공동성명에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들이 동참한 것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 등에서 왜곡된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데 대한 세계 역사학계의 반발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올 2월 미국 역사학자 20명이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미국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를 비판하며 성명을 냈고, 5월에는 미국 유럽 호주에서 활동 중인 일본학 전공 역사학자 187명이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병합 10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 발기위원회’(발기위원회)는 29일 성명과 별도로 낸 보도자료에서 “구미 지역의 지지자들(supporters)이 대부분 세계 명문대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이라는 점은 일본 정부의 우경화 시도가 세계 학계로부터도 용인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역사의 진실이 생매장되고 왜곡됐지만 우정으로 결속된 한일 지식인들의 탐구 끝에 태평양 저쪽에서 호응하는 지식인들까지 연대해 우리들의 힘이 더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성명은 2010년 한일 지식인 1144명(한국 604명, 일본 540명)이 참여한 한국 병합 불법-무효 공동 성명도 재확인했다. 지식인들의 성명에는 일본의 최근 급속한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실제 일본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은 지난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용당한 미군 전쟁포로에게 사과하고 중국인 강제노동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주기로 결정했으면서도 한국인 징용 피해자는 외면했다. 미쓰비시의 이런 이중적 태도는 “한국 병합은 합법적”이라는 일본 정부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병합조약의 불법-무효성 인정은 강제 징용 피해자의 배상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번 성명서는 한일 양국 지식인들이 7개월가량 문구를 만들고 다듬은 끝에 나왔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2010년 성명은 양국 역사가들의 연구에 입각해 한일병합조약이 무효라는 점을 다뤘기 때문에 이론이 없었지만 이번 성명은 ‘동북아시아 정세에서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등 폭넓은 주제가 포괄돼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논의에 따라 성명서에는 “과거사를 둘러싼 충돌이 내셔널리즘 간의 충돌로 이어지고 영토 분쟁과 안보 불안으로 확대되면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며 “역사의 과거 회귀는 갈등과 긴장을 불러와 전쟁 위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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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일-유럽 지식인 524명 “아베, 사죄하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우경화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한국 일본의 지식인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역사학자 등 세계 지식인 524명이 2010년에 이어 5년 만에 한일강제병합의 불법성을 재확인하고,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29일 발표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김영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초빙교수 등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15년 한일 그리고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동아시아의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한일강제병합조약은 당초부터 ‘널 앤드 보이드(null and void·무효)’”라며 “아베 총리는 과거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성명은 ‘한국병합 10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 발기위원회’가 주도했다. 발기위원회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인 2010년 한일 지식인 1100여 명이 참여한 병합조약 무효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는 “일본 아베 정권과 여당은 무라야마 담화 이래 진행된 식민지배 반성 노력을 역전시키려 하고 있고, 우파 정치가들은 역사 연구를 통해 논파된 거짓 역사를 확산시키고 있다”며 “이는 역사의 역류(逆流)”라고 지적했다. 성명서는 또 “아베 총리가 (다음 달 중) 발표할 담화는 고노, 무라야마, 간 (총리) 담화를 계승하고,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가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또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신속히 나서야 하고 탄광에서의 강제노동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명을 주도한 와다 명예교수는 “2010년 이후 역사가 역류하고 있어 죄송하다”며 “그러나 일본 역사학계가 연합해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는 등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성명에는 한국 지식인 382명, 일본 지식인 105명뿐 아니라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 놈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등 미국 지식인 22명, 볼프강 자이테르트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교수 등 유럽 지식인 15명이 참여했다. 이태진 명예교수는 “아베 총리의 위안부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던 구미의 역사학자가 동참해 세계 지식인의 공동성명이 됐다”고 말했다. 발기위원회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역사학계에서도 성명 동참을 검토하고 있어 참여 지식인의 수는 계속 늘 것으로 전망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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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글]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 정체 판명

    “연우신(가수 김연우의 별명), 수고했어요.” 19일 MBC ‘복면가왕’에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가 5연속 가왕에 실패하고 복면을 벗었다. 그의 정체는 예상대로 김연우였다. 누리꾼들은 “2주마다 김연우 무대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연우는 이날 가왕결정전에서 민요 ‘한오백년’을 부르는 파격적 선택을 했고, 폭발적인 가창력과 고음을 강조한 ‘노래왕 퉁키’에게 패했다. ‘클레오파트라’는 5월 24일 처음으로 가왕이 됐을 때부터 김연우라는 의견이 절대 다수여서, 누구인지 궁금해하기보다는 김연우의 무대로 즐기는 시청자가 많았다. 이날 김연우가 ‘가왕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노래를 골랐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오백년’이 가요 위주의 프로그램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 누리꾼들은 “한오백년도 정말 잘 불렀지만 일부러 가왕을 양보하려고 민요를 한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한편 8대 가왕이 된 ‘노래왕 퉁키’의 정체에도 관심이 모였다. 음색이나 창법으로 보아 가수 이정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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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에게 ‘팽’ 당한 이옥의 상추쌈 미식기

    “마치 성이 난 큰 소가 섶과 꼴을 지고 사립문으로 돌진하다 문지도리에 걸려 멈추는 것과 같다. 눈을 부릅떠서 화가 난 듯하고, 뺨이 볼록하여 종기가 생긴 듯하고, 입술은 꼭 다물어 꿰맨 듯하고, 이(齒)가 빠르게 움직이니 무언가를 쪼개는 듯하다.” 도대체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쓴 사람은 조선시대 정조에 의해 팽을 당한 이옥(李鈺·1760∼1815)이다. 1792년 10월 17일 정조는 성균관의 유생이 쓴 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유생 이옥의 응제(應製) 글귀들은 순전히 소설체를 사용하고 있으니 요사이 선비들의 습성에 매우 놀랐다.”(정조실록) ‘순정고문(醇正古文)’만이 제대로 된 문장이라고 여겼던 정조가 보기에 이옥의 글은 ‘패관소품(稗官小品)’과 ‘순용소설(純用小說)’이었다. 이옥은 성균관에서 쫓겨나 경상도 합천 삼가현까지 가서 양반에게 면제됐던 군복무의 벌을 받았다. 그 후 고향 남양(지금의 경기도 화성)으로 돌아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문체로 세상사는 이야기를 썼다. 앞서 소개한 글 역시 남양에서 쓴 ‘백운필(白雲筆)’ 하편 ‘담채편(談菜篇)’에 나온다. 글의 제목은 ‘와거(萵苣)’, 곧 상추다.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상추쌈밥 먹는 모습을 가장 세밀하게 묘사한 사람은 단연 이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상추쌈 먹기 좋은 때로 한 여름에 단비가 처음 내린 후를 꼽았다. 비를 흠뻑 맞은 밭에는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상추가 솟아오른다. 잘 자라라고 인분을 잔득 뿌렸기 때문에 물을 채운 큰 동이에 오랫동안 담갔다가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이옥은 상추쌈 먹는 법을 이렇게 묘사한다. “왼손을 크게 벌려 구리쟁반처럼 들고, 오른손으로 두텁고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놓는다. 흰 밥을 큰 숟가락으로 퍼서 거위 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잎 위에 놓는다. 윗부분을 조금 평평하게 한 다음 젓가락으로 얇게 뜬 밴댕이회를 집어 노란 겨자장에 한 자밤 찍어 밥 위에 얹는다. 미나리와 어린 시금치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밴댕이회와 나란히 놓는다. 가는 파와 날 갓 서너 줄기는 그 위에 눌러 얹는다. 여기에 방금 볶아낸 붉은 고추장을 조금 바른다. 오른손으로 상추 잎 양쪽을 말아 단단히 오므리는데 마치 연밥처럼 둥글게 한다. 이제 입을 크게 벌리는데, 잇몸을 드러내고 입술을 활처럼 펼쳐야 한다. 오른손으로 쌈을 입으로 밀어 넣으면서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친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는 “이런 모양으로 느긋하게 씹다가 천천히 삼키면 달고 상큼하여 정말로 맛이 좋아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반드시 밴댕이회와 겨자장, 그리고 볶은 고추장을 곁들일 필요는 없단다. 서해 근처에 살았던 이옥은 황석어·굴·청어도 즐겨 먹었다. 겨자·생강·고추와 같은 매운 맛을 좋아하는 자신의 식성을 ‘천성(天性)’이라고도 했다. 성균관 유생 때 술집에서 연거푸 서너 잔의 술을 마시고서 시렁 위의 붉은 고추를 집어서 씨를 빼내고 된장에 찍어 씹어 먹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옥을 탐식가로 보면 오해다. 농부로부터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밭에서 채소를 가꿀 정도로 미식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꿰뚫고 있었다. 미식이 난리법석인 요사이 이옥의 이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식(耳食: 귀로 먹는다)을 많이 한다. 이런 탓에 명성에 기댈 뿐 맛을 잘 알지 못한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201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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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시장 저마다의 흥미로운 내력 알려지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찾지 않을까요?”

    장돌뱅이도 아닌데 전국의 시장을 돌아다니는 20대 청년이 있다. 이희준 씨(27·동국대 회계학과)는 2년 전부터 볼펜과 수첩만 가지고 1372개 전통시장 중 435개를 누볐다. 기자와 인터뷰한 16일에도 그는 서울 구로구 남구로시장에 다녀온 길이었다. “남구로시장은 ‘칠공주 떡볶이 할머니’가 유명하거든요. 같은 상점에서 할머니 일곱 분이 각자 철판을 갖고 장사를 하세요. 재료는 같은데 손맛이 다 달라서 단골도 다 따로 있어요.” 이 씨는 2013년 7월 친구들과 사회적 벤처 회사를 만들고 전통시장에서 구매한 정량의 식재료와 요리법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이 사업을 접었다. 소비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소규모로 식재료를 구매하다 보니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진척이 더딘 게 이유였다. 그는 스스로를 ‘전통시장 도슨트(해설사)’로 부른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젊은이들이 찾아와야 하고 그러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것. 이 씨는 시장의 통닭집과 닭강정만 해도 인천의 신포 국제시장, 부산 부평 깡통시장, 경기 수원 팔달문 통닭거리, 광주 양동시장, 서울 영천시장 등에 흥미로운 내력의 상점들이 많은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1372개 시장마다 한 명씩 1372명의 젊은 도슨트가 그 시장과 상인, 상점에 얽힌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다면 젊은이들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장마다 다른 색깔의 매력이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장은 광주 동구의 대인시장이라고 한다. 이 시장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여는 야시장도 마음에 들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해뜨는 식당’이라고 1000원짜리 백반집이 있어요. 밥값이 부담스러운 지역민들이 싼값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인데, 주인이 돌아가셨거든요. 그 뒤에 시장 상인회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주민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게 우리 전통시장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지방 시장에 한 번 답사를 가면 2, 3일은 걸린다. 답사 비용은 벤처를 운영하며 벌어놓은 약간의 돈과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진짜 불안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누가 바라봐 주지도 않지만 거의 사명감으로 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원래 ‘이제 그만 취업해라’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낸 책을 보시더니 ‘네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책에는 전국 44개 시장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씨는 “전국의 전통시장을 기록한 책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수중에 돈은 없지만 책 제목처럼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있어요. 바보같이 보일지 몰라도 행복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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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 北의 남침 징후 감지하고 사전에 대비”

    6·25전쟁 개전(開戰)은 ‘국군 장병들이 휴가와 외출·외박을 간 틈에 공산군이 기습 남침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전쟁 발발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당시 군의 무능으로 연결된다. 이승만 정부와 군 수뇌부가 무방비로 당했다는 통념을 반박하는 주장이 나왔다.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건국이념보급회가 이승만 전 대통령 50주기(19일)를 사흘 앞두고 16일 주최한 ‘제52회 이승만 포럼’에서 “6·25전쟁 이전 한국 정부와 군은 사전에 남침 징후를 감지하고 계획성 있게 전쟁에 대비해 나갔다”고 말했다. 남 책임연구원은 “이승만 정부는 1948년부터 청년단을 통합해 군사훈련을 시켰고, 청년방위대와 학도호국단을 조직했다”며 “미국에도 전차와 전투기 지원 및 상호방위동맹을 요청했지만 미국의 소극적인 대한(對韓) 정책 탓에 모두 거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6·25전쟁 10대 불가사의’에 대한 반론도 제기했다. 이는 고 이형근 전 육군참모총장이 1993년 회고록에서 제기한 문제로 ‘북한군의 남침 징후를 육군본부가 무시·묵살했다’ ‘전쟁 직전 대규모 인사이동을 했다’ 등 당시 정부와 군이 무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왔다. 남 책임연구원은 “1949년 12월 육본은 ‘1950년 봄 적이 38도선에서 전면 공격을 할 것’이라는 정보국 보고에 의거해 국군 방어계획을 수립하고 1950년 3월 시행토록 했다”며 “나머지 ‘불가사의’도 남북의 전력 격차를 간과한 채 (전쟁 초기의 패퇴라는) 결과에 전후 상황을 짜 맞춘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 정보기관도 전면전은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개전일이 6월 25일이라는 것은 김일성과 스탈린만 알고 있었다”며 “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의 노력은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최선에 가깝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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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44개 시장의 이야기가 담긴 ‘시장이 두근두근’

    장돌뱅이도 아닌데 전국의 시장을 돌아다니는 20대 청년이 있다. 이희준 씨(27·동국대 회계학과)는 2년 전부터 볼펜과 수첩만 가지고 1372개 전통시장 중 435개를 누볐다. 기자와 인터뷰한 16일에도 그는 서울 구로구 남구로시장에 다녀 온 길이었다. “남구로시장은 ‘칠공주 떡볶이 할머니’가 유명하거든요. 같은 상점에서 할머니 일곱 분이 각자 철판을 갖고 장사를 하세요. 재료는 같은데 손맛이 다 달라서 단골도 다 따로 있어요.” 이 씨는 2013년 7월 친구들과 사회적 벤처 회사를 만들고 전통시장에서 구매한 정량의 식재료와 요리법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이 사업을 접었다. 소비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소규모로 식재료를 구매하다보니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진척이 더딘 게 이유였다. 그는 스스로를 ‘전통시장 도슨트(해설사)’로 부른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젊은이들이 찾아와야 하고 그러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것. 이 씨는 시장의 통닭집과 닭강정만 해도 인천의 신포 국제시장, 부산 부평 깡통시장, 수원 팔달문 통닭거리, 광주 양동시장, 서울 영천시장 등에 흥미로운 내력의 상점들이 많은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고 했다. “1372개 시장마다 한명씩 1372명의 젊은 도슨트가 그 시장과 상인, 상점에 얽힌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다면 젊은이들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장마다 다른 색깔의 매력이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장은 광주광역시 동구의 대인시장이라고 한다. 이 시장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여는 야시장도 마음에 들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해뜨는 식당’이라고 1000원짜리 백반집이 있어요. 밥값이 부담스러운 지역민들이 싼 값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인데, 주인이 돌아가셨거든요. 그 뒤에 시장 상인회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주민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게 우리 전통시장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지방 시장에 한번 답사를 가면 2, 3일은 걸린다. 답사 비용은 벤처를 운영하며 벌어놓은 약간의 돈과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진짜 불안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누가 바라봐 주지도 않지만 거의 사명감으로 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원래 ‘이제 그만 취업해라’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낸 책을 보시더니 ‘네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책에는 전국 44개 시장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씨는 “전국의 전통시장을 기록한 책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수중에 돈은 없지만 책 제목처럼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있어요. 바보같이 보일지 몰라도 행복합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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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시험 수석들이 말한다 “출제자 의도를 파악하시오”

    흔히 말하는 장원급제는 어떤 시험에 합격한 것을 말하는 걸까. 고려, 조선시대 최고의 국가 고시였던 문과(대과)에서 ‘갑과(甲科) 제1인’(수석)으로 합격한 것이 장원급제다.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장원급제자는 700여 명에 불과하다. 장원급제자의 답안은 무엇이 특별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소장한 시권(試券·답안) 300여 점 중 대책문(對策文)을 중심으로 ‘시권, 국가경영의 지혜를 듣다’ 전시를 11월 29일까지 열고 있다. 이 전시에 등장한 시권을 통해 장원급제의 비결을 살펴봤다.○ 성역 없는 비판의식을 가져라 “백성이 부족한데 임금이 누구와 풍족할 수 있겠습니까? 왕자(王子)는 사사로운 재물이 없습니다. 하찮은 토공(土貢·세금)이라 하더라도 전부 지관(地官·재정담당 부서)으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소서.” 박세당(1629∼1703)이 1660년 현종 즉위 기념으로 시행된 대과에서 내놓은 답이다. 시제(試題)는 국가의 재정정책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세당은 왕실의 재정 간섭을 차단할 것을 주장했다. 임금이 언짢아할 수 있는 답이었지만 장원급제했다. 눈치 보지 않는 ‘소신 답안’이 주효했던 것.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학자료연구실장은 “조선 최고의 경제학자 김육 밑에서 배운 허적이 당시 시험관이었다”며 “허적은 남인이었지만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정파를 초월했고 서인인 박세당을 장원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고려 공민왕은 즉위 9년(1360년) 문과시험을 연다. 문제는 “태공망(太公望) 사마양저(司馬穰(자,저,차)) 손빈(孫賓) 오기(吳起) 공명(孔明) 이정(李靖) 등의 병서 중 어떤 책이 핵심적이며, 치란(治亂)에서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쓰는 도리의 요점은 무엇인가?”였다. 홍건적 등의 침입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공민왕의 고민이 배어 나온다. 열거된 병법가들의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정몽주(1337∼1392)는 특정 병서를 꼽는 대신 “문무 병용(竝用)은 모든 왕의 대법(大法)이고 만세의 떳떳한 원칙”이라는 답안을 작성해 장원급제했다. 김 연구실장은 “정몽주의 책문(답안)은 문무를 아우른 인재를 선발하려던 공민왕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느껴진다”며 “문무 병용의 실패 사례로 원나라를 거론한 것도 배원(排元) 정책을 펴던 공민왕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주는 자신의 책문처럼 문신이 된 뒤에도 최영 이성계 등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다.○ 현안에 민감하라 “신이 국도(國都·한양)에 들어오던 날에 사람들에게 급선무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그것은 오직 도적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윽고 전하의 물음을 받드오니 또한 ‘도적을 다스림’이라는 물음이셨습니다.” 조선 숙종 16년(1690년) 문과 식년시에 응시한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 선비 조덕순(1652∼1693)의 답안 첫머리다. ‘도둑을 다스리는 방책’이 시제였는데 이는 조덕순이 한양에 시험 치러 올라온 뒤 주민들에게 이미 그 심각성을 들은 문제였다. 그는 교화와 어진 정치를 강조하는 답변으로 장원급제했다. 백성들의 여론에서 예상 문제를 찾으려 했던 작전이 성공했던 셈이다.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78)은 “과거에서는 1차에서 경전, 2차에서 그를 응용한 작문시험을 본 뒤 3차에서 정책 입안 능력이 있는지를 봤다”며 “지금으로 치면 ‘메르스 방지책을 논하라’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내 인재를 선발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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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년 동안 합격자 겨우 700여명…‘장원급제’는 어떤 시험?

    흔히 말하는 장원급제는 어떤 시험에 합격한 것을 말하는 걸까. 고려, 조선시대 최고의 국가 고시였던 문과(대과)에서 ‘갑과(甲科) 제1인’(수석)으로 합격한 것이 장원급제다. 조선 왕조 500년 사에서 장원급제자는 700여 명에 불과하다. 장원급제자의 답안은 무엇이 특별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소장한 시권(試券·답안) 300여 점 중 대책문(對策文)을 중심으로 ‘시권, 국가경영의 지혜를 듣다’ 전시를 11월 29일까지 열고 있다. 이 전시에 등장한 시권을 통해 장원급제의 비결을 살펴봤다. ●성역 없는 비판의식을 가져라 “백성이 부족한데 임금이 누구와 풍족할 수 있겠습니까? 왕자(王者)는 사사로운 재물이 없습니다. 하찮은 토공(土貢·세금)이라 하더라도 전부 지관(地官·재정담당 부서)으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소서.” 박세당(1629~1703)이 1660년 현종 즉위 기념으로 시행된 대과에서 내놓은 답이다. 시제(試題)는 국가의 재정정책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세당은 왕실의 재정 간섭을 차단할 것을 주장했다. 임금이 언짢아할 수 있는 답이었지만 장원급제했다. 눈치 보지 않는 ‘소신 답안’이 주효했던 것.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학자료연구실장은 “당시 조선 최고의 경제학자 김육 밑에서 배운 허적이 당시 시험관이었다”며 “허적은 남인이었지만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정파를 초월했고 서인인 박세당을 장원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예나 지금이나 ‘이 문제가 왜 나왔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공민왕은 즉위 9년(1360년) 문과 시험을 연다. 문제는 “태공망(太公望) 사마양저(司馬穰¤) 손빈(孫賓) 오기(吳起) 공명(孔明) 이정(李靖) 등의 병서 중 어떤 책이 핵심적이며, 치란(治亂)에서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쓰는 도리의 요점은 무엇인가?”였다. 홍건적 등의 침입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공민왕의 고민이 배어나온다. 열거된 병법가들의 다 책을 읽었다고 해도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정몽주(1337~1392)는 특정 병서를 꼽는 대신 “문무 병용(竝用)은 모든 왕의 대법(大法)이고 만세의 떳떳한 원칙”이라는 답안을 작성해 장원 급제했다. 김 연구실장은 “정몽주의 책문(답안)은 문무를 아우른 인재를 선발하려던 공민왕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느껴진다”며 “문무 병용의 실패 사례로 원나라를 거론한 것도 배원(排元) 정책을 펴던 공민왕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안에 민감하라 “신이 국도(國都·한양)에 들어오던 날에 사람들에게 급선무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그것은 오직 도적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윽고 전하의 물음을 받드오니 또한 ‘도적을 다스림’이라는 물음이셨습니다.” 조선 숙종 16년(1690년) 문과 식년시에 응시한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 선비 조덕순(1652~1693)의 답안 첫머리다. ‘도둑을 다스리는 방책’이 시제였는데 이는 조덕순이 한양에 시험 치러 올라온 뒤 주민들에게 이미 그 심각성을 들은 문제였다. 그는 교화와 어진 정치를 강조하는 답변으로 장원 급제했다. 백성들의 여론에서 예상 문제를 찾으려 했던 작전이 성공했던 셈이다.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78)은 “과거에서는 1차에서 경전, 2차에서 그를 응용한 작문 시험을 본 뒤 3차에서 정책 입안 능력이 있는지를 봤다”며 “지금으로 치면 ‘메르스 방지책을 논하라’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내 인재를 선발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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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등재 아리랑, 국가 무형문화재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이 뒤늦게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4일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을 비롯해 향토 민요 또는 통속 민요로 불리는 모든 아리랑 계통의 악곡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은 지역과 세대를 넘어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아리랑 보유자 ○○○’ 같은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문화재보호법은 특정 보유자가 있어야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법이 개정됨에 따라 아리랑도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됐다.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 다양한 곡으로 변화하며 활발히 전승된 점 △한민족의 음악적 특징을 기반으로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점 △희로애락을 다양한 사설로 표현하는 점이 높게 평가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올랐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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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축조기술 적용한 대가야 목곽고 발견

    문화재청은 경북 고령군 주산성(사적 제61호)에서 백제의 축조 기술과 도량형이 적용된 대형 지하 저장시설인 목곽고(木槨庫)가 발견됐다고 14일 밝혔다. 이 목곽고는 가로세로 각 8m, 깊이 3.5m로 암반을 파 만들었고, 가장자리에 석축을 쌓고 석축과 목곽 사이에는 1m 이상 점토를 두껍게 채웠다. 문화재청은 “방수와 함께 온도와 습도의 변화를 최소화한 것으로 볼 때 식재료 저장시설로 보인다”고 밝혔다. 목곽고는 대가야가 백제와 연합해 신라와 대치하다 세력이 약화된 6세기 중엽 축조된 것으로 분석됐다. 발굴을 담당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은 “목곽고가 버려질 당시 바닥에 쌓인 토층에서 불에 탄 흙과 목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신라 접시 조각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신라가 562년 대가야를 병합한 뒤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불태웠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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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 “모든 ‘아리랑’ 악곡,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것”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이 뒤늦게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4일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을 비롯해 향토 민요 또는 통속 민요로 불리는 모든 아리랑 계통의 악곡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은 지역과 세대를 넘어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아리랑 보유자 ○○○’ 같은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문화재보호법은 특정 보유자가 있어야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법이 개정됨에 따라 아리랑도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됐다.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 다양한 곡으로 변화하며 활발히 전승된 점 △한민족의 음악적 특징을 기반으로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점 △희로애락을 다양한 사설로 표현하는 점이 높게 평가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올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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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시스템 붕괴된 사회… 삶과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2005년 8월 1800여 명의 사상자를 낳은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침수된 시내 메모리얼 병원의 상황은 심각했다. 전력이 끊기자 의료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통풍을 위해 창문을 깨자 병실은 비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37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던 환자 등 중환자들이 극도의 고통을 겪었다. 의사들은 심폐소생술 거부(DNR)를 요청한, 병세가 가장 위중한 환자들을 맨 나중에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환자들이 고문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내가 저 환자들이었다면 차라리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라는 말을 꺼낸다. 의료진은 약물을 주입해 일부 환자를 안락사시켰다. 의사 겸 기자인 저자는 카트리나 재해 당시 이 병원에서 닷새 동안 일어난 일을 재구성한 ‘The Deadly Choices at Memorial’ 기사로 201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카트리나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고립됐지만 연방군은 사흘 뒤에야 투입됐고, 휴가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재난이 발생한 뒤 하루가 지나서야 복귀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메모리얼 병원은 당시 미국 정부와 기관이 얼마나 무능력하게 대응했는지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은 한국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사건 관계자들을 500회 넘게 인터뷰하고 당시 정황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며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에서 삶과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고 묻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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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징용 배상은 인간존엄성 회복 투쟁”

    “강제 징용자들이 배상을 받으려는 데 대해 일본 정부는 경제적인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는 인간의 존엄을 되찾기 위한 투쟁입니다.” ‘전시포로 연구회’ 공동대표이자 최근까지 ‘강제 징용 네트워크’ 대표를 맡아 온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74·사진)는 “가해자인 일본과 기업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의 의사를 확실히 하고, 그 사죄의 표시로 보상과 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쓰미 교수는 10∼12일 서울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리는 ‘역사 NGO 대회’에 참가해 ‘동아시아의 전후 질서와 역사 화해를 위한 일본의 역할과 기대’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9일 방한한 우쓰미 교수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쓰미 교수는 최근 일본 산업화 유물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국면에서 강제 징용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유산 설명에 쓰인 단어가 ‘강제 노동(forced labor)’이냐 ‘의사에 반해 일하게 됐다(forced to work)’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일본 정부는 한국 식민 지배를 대등한 국가끼리의 합법적인 병합이라는 인식을 갖고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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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활용이냐, 보존이냐”…‘宮스테이’ 찬반 논란 팽팽

    정부가 문화재인 창덕궁 낙선재 권역 내 일부 전각에서 숙박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궁(宮)스테이’를 추진한다는 보도 이후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부는 창덕궁뿐 아니라 고궁과 경주 서악서원 등 지방에 산재한 서원, 향교, 옛 지방 관아에서의 숙박프로그램을 하나로 묶는 통합 브랜드 ‘케이 헤리티지 인(K-Heritage Inn·가칭)’을 이르면 내년에 출범시킬 계획이어서 문화재 활용을 둘러싼 논란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보존이냐, 활용이냐 ‘궁스테이’ 사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의 승인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본보 보도 직후인 지난달 30일 일부 문화재위원들과 함께 창덕궁과 경복궁의 현장 답사를 마쳤다. 아직 사적분과위원회 심사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다. 사적분과위원회는 문화재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승인 심사에서 재적 과반 참석에 출석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궁스테이에 대해서는 문화재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깃든 궁궐에 담긴 정신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 김광현 서울대 교수(건축학)는 “모든 문화재에는 각각의 역사적 기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며 “다른 곳이면 몰라도 한 나라의 왕궁을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7년 전 숭례문 화재 참사의 트라우마도 궁스테이 추진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서양과 다른 목조 문화재의 특성상 화재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홍성걸 서울대 교수(건축학)는 “우리나라 목조 문화재는 지붕이 특히 화재에 취약하다”며 “활용도 좋지만 보존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을 비롯한 상당수 전문가들은 ‘활용을 통한 보존’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집에 살지 않으면 곧 폐가가 되듯 최선의 문화재 보존은 활용이라는 것.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은 “일부에서 화재 위험성을 거론하는데 빈집에서 오히려 방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고택(古宅)도 일단 사람이 사는 게 보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세계적인 흐름도 ‘박제된 문화재’로 보존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이 모델로 삼고 있는 건 스페인 파라도르(parador) 호텔. 그라나다와 세고비아, 톨레도 등 유서 깊은 도시에 자리 잡은 고성과 수도원, 요새 등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체인 숙박시설이다. 스페인 전국에만 90여 개에 달하는 파라도르 호텔이 있다. 외관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편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합리적인 문화재 활용 방안 이처럼 언뜻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재 보존과 활용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원형 훼손을 막기 위해 내부 개조를 최소화하고 관람객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물 외관과 주요 구조를 보존하되 내부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관람객으로선 불편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본래의 고궁 생활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재인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화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궁궐 내 취사를 아예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숙박뿐만 아니라 고궁 전각 내부를 전시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최근 복원된 덕수궁 석조전 내부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꼭 숙박시설이 아니더라도 강의장이나 세미나실, 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김상운 sukim@donga.com·조종엽·민병선 기자▼한복 차림 외국인 20여 명, 시습당서 茶道수업에 한창…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개방 5년 만에 지역 명물 된 경주 서악서원3일 경북 경주시 서악서원(西岳書院). 무열왕릉을 지나 호젓한 산길을 따라 한 30분쯤 걸었을까. 진흥왕릉과 서악동 삼층석탑(보물 제65호) 아래로 산뜻한 단청을 두른 서원이 나타났다. 신라시대 설총과 김유신, 최치원의 위패를 나란히 모신 사당을 중심으로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좌우로 배치한 전형적인 조선시대 서원이다. 이곳은 경북도 지정문화재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1563년 설립돼 45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보통 서원들이 그렇듯 으레 엄숙하고 조용한 나머지 썰렁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중앙의 시습당(時習堂)은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한복을 갖춰 입은 외국인 20여 명이 수업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유생들이 배웠던 경전 대신 찻잔을 손에 쥐고 다도(茶道)를 배웠다. 동재와 서재는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안에 들어가 보니 에어컨부터 전기장판까지 냉난방을 갖춘 숙박시설로 꾸며져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와 다름없었다. 평소 서원은 꽁꽁 잠겨 있었고 매년 두 차례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잠깐 문을 열었다.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400년 넘은 목조건물에는 거미줄이 쳐졌고 내부는 곳곳이 뒤틀려 틈까지 벌어졌다. 관리에 애를 먹던 문중은 문화재 위탁 운영기관에 서원을 맡기고 외부에 공개했다. 조선시대 서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낮에는 활쏘기와 다도, 국악공연, 붓글씨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폐가는 곧 지역 명물이 됐다. 인근 무열왕릉에서 진흥왕릉, 서악동 삼층석탑, 도봉서당을 거쳐 서악서원을 잇는 40분짜리 산책 코스까지 생겼다. 지난해 서악서원을 방문한 인원은 1만5000명에 이른다.진병길 신라문화원장은 “고택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환기가 제대로 안 되고 습기 때문에 집이 망가지게 마련”이라며 “최선의 문화재 보존은 활용”이라고 강조했다.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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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쉽고 맛있는 집밥… 쿡방 대세 ‘백주부’

    “달궈진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올리자 지글지글 기름이 끓었다. 정말 이래도 될까. 잠시 망설였지만 ‘백주부’를 믿어보기로 했다. 미리 무를 넣어 오래 끓여놓은 된장 베이스를 프라이팬에 들이부었다. 삼겹살 기름이라니…. 보기만 해도 느끼하다. 오래 묵은 시골 된장인지라 백주부의 레시피대로 설탕 반 숟가락 투하. 먹어보니, ‘아, 맛있다’. 설탕 덕인지 정말 텁텁함이 잡혔다. 그리고 자극적이다. 밖에서 사먹는 것 같은 맛이 난다.” 기자가 ‘집밥 백선생’(tvN)에서 요리 연구가 백종원이 소개한 요리법을 따라 ‘삼겹살 된장찌개’를 끓여봤다. 최근 블로그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백종원 표 요리를 따라 해봤다는 게시물이 넘친다. 대세는 ‘백주부’ 백종원이다. ‘집밥 백선생’의 시청률은 6.4%(1일·닐슨코리아 유료방송시청가구 기준). 3주 연속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백종원은 ‘한식대첩’(올리브TV)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MBC)에서 대박이 났다. 김구라 이은결 등 다른 출연자들보다 그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가장 뜨겁다. 그러나 설탕과 양념을 비교적 많이 사용하는 그의 요리법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을 중시하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백종원이 보여주는 음식은 모두 외식 레시피를 따른 것”이라며 “(먹을 만하지만)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종원의 요리법은 건강과는 ‘별로 안 친해’ 보인다. ‘마리텔’ 2회에서 그는 빵에 땅콩버터, 바나나, 하얀 초콜릿,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뒤 버터를 듬뿍 사용해 ‘칼로리 폭탄 토스트’를 굽는다. 그는 태연하게 “급하게 살이 쪄야 하는 분들은 이걸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또 “설탕 안 넣어서 맛없는 것보다 낫다”며 비빔국수 양념장에 설탕을 쏟아 붓는다. 시청자들은 ‘진격의 설탕’이라며 환호한다. 조미료 사용도 종종 권장한다. 김은영 문화평론가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정신적으로 허기진 대중들이 ‘금기를 깨는’ 요리법에 열광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 하기 쉽다는 게 백종원 요리법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는 ‘물 ○○○mL’가 아니라 “물은 참치 넣은 뒤 빈 참치캔 양으로 2번 넣으면 됩니다” 식으로 설명한다. “재료가 없으면 이건 안 넣어도 됩니다”는 말도 자주 한다. 정석희 문화평론가는 “백종원은 요리가 어렵다는 생각을 깨뜨렸다”며 “마리텔에서는 채팅창을 보며 누리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한식대첩’에서는 각종 먹거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뽐내는 등 프로그램별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백종원 등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를 낳은 ‘쿡방’은 계속 진화 중이다. KBS2 ‘요리인류 키친’을 진행하는 이욱정 PD는 “백종원 씨는 외식사업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이 좋아할 만한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다”며 “한국의 쿡방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고 지금보다 다양한 포맷으로 확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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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글로벌 금융위기 이겨낸 미국의 ‘비법’

    “중앙 은행가들은 경기가 패닉이 발생해 유동성이 증발하기 시작하면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을 맡는다.”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가속기를 엄청나게 밟아댔다. 세계 경제는 붕괴 직전에서 돌아섰고, 금융시스템은 보존됐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장으로 일하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저자도 그 주역이다. 저자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뱅커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과 AIG 구제, 정부 내 갈등 등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와 금융 시스템은 ‘스트레스 테스트(거시경제 변수의 급격한 변동에 대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선언한다. 저자는 솔직한 편이다. 저자는 2007년 3월 서브프라임 대출이 증권으로 재포장돼 위험을 평가하기 어려워졌다고 경고했지만 스스로의 말대로 “그건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2006년만 해도 “조정이 심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힌다. 1일 그리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현재 진행형임을 말해준다. 글로벌 환율 전쟁과 1100조 원의 가계부채 사이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택한 한국이 만에 하나 대형 금융위기를 겪는다면 과연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2008년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미국이 대량으로 살포한 달러를 거둬 들이기 위해 언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은 세계 경제가 아직도 당시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라며 “위기관리 비법을 정책 결정자들에게 전수하는 책”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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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수화미사 성당 꿈 담아 목소리 기부해요”

    “저도 한때 청각장애인처럼 말을 못하는 괴로움을 느낀 적이 있어요.” 3일 ‘청각장애인 성전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바다 재능 나눔 음악회’를 여는 S.E.S. 출신의 뮤지컬 배우 바다(본명 최성희·35)와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사제인 박민서 신부(47)를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보컬학원에서 만났다. 바다는 안양예고 1학년 재학 시절 얘기를 꺼내며 왜 청각장애를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았는지, 재능 기부 제안에 흔쾌히 응했는지를 설명했다. “학교 연극 오디션 보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전혀 안 나왔어요. 후두염증이었어요. 수술을 받고 원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6개월 동안 말을 못하고 지냈어요.” 가수가 꿈인 소녀에게는 작지 않은 시련이었다. 그는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야 했다. 친구와 주변인의 도움과 배려를 많이 받았다. 당시 그를 청각장애인으로 오해한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며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주기도 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바다의 눈이 금세 빨개졌다. 이번 음악회는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가 주최한다. 담당 사제인 박 신부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할 여건이 안 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쳤다. 2011년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 건립에 착수해 2013년 터를 매입했지만 건축비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박 신부는 “청각장애인은 수화 통역이 없으면 미사에서 신부 말을 이해하기 어렵고, 비장애인 신자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며 “청각장애인이 소외되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절실하다”고 수화로 말했다. 바다는 올봄 서울 한남동 성당에서 박 신부를 처음 봤다. 이후 박 신부가 바다에게 노래 한두 곡 정도를 곁들인 특강을 부탁했다. 바다는 아예 공연을 열겠다고 나섰다.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인터뷰 중 바다는 성가 ‘나’ 중 몇 소절을 불렀다. 뮤지컬 때의 폭발적인 발성과는 달리 아주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바다는 감성적인 노래를 부를 때면 가족이 소래포구 인근 도두머리 마을의 작은 성당 귀퉁이를 빌려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안 좋았거든요. ‘아픈 아빠를 낫게 해주세요’라고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달밤에 제 그림자를 보며 옷이 흠뻑 젖도록 노래와 춤 연습을 했어요. 제가 성당 청소 담당이었는데, 청각장애가 있는 할머니가 항상 일찍 오셔서 침묵의 기도를 하셨죠.” 음악회는 3일 오후 7시 반 서울 용산구 이촌로 천주교 한강성당에서 열린다. S.E.S. 시절의 히트곡과 성가 등 10여 곡을 부른다(2만 원·02-995-7394) “데뷔 18년이 됐지만 어쿠스틱 공연은 처음이에요. 화려하지 않아도 관객분들이 ‘영혼을 샤워할 수 있는’ 공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각장애가 없었다면 분명 저보다 훨씬 더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하셨을 분들이 계셨을 거예요. 그분들을 대신해 노래할게요.”(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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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청각 장애인 위한 음악회

    “저도 때로 청각장애인처럼 말을 못하는 괴로움을 느낀 적이 있어요.” 3일 ‘청각장애인 성전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바다 재능 나눔 음악회’를 여는 S.E.S. 출신의 뮤지컬 배우 바다(본명 최성희·35)와 아시아 최초의 청각 장애인 사제인 박민서 신부(47)를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보컬학원에서 만났다. 바다는 안양예고 1학년 재학 시절 얘기를 꺼내며 왜 청각장애를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았는지, 재능 기부 제안에 흔쾌히 응했는지를 설명했다. “학교 연극 오디션 보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전혀 안나왔어요. 후두염증이었어요. 수술을 받고 원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6개월 동안 말을 못하고 지냈어요.” 가수가 꿈인 소녀에게는 작지 않은 시련이었다. 그는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야했다. 친구와 주변인의 도움과 배려를 많이 받았다. 당시 그를 청각 장애인으로 오해한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며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주기도 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바다의 눈이 금세 빨개졌다. 이번 음악회는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가 주최한다. 담당 사제인 박 신부는 청각장애인이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할 여건이 안 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쳤다. 2011년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 건립에 착수해 2013년 부지를 매입했지만 건축비는 엄두를 못내고 있다. 박 신부는 “청각장애인은 수화 통역이 없으면 미사에서 신부 말을 이해하기 어렵고, 비장애인 신자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며 “청각장애인이 소외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절실하다”고 수화로 말했다. 바다는 올 봄 서울 한남동 성당에서 박 신부를 처음 봤다. 이후 박 신부가 바다에게 노래 한 두곡 정도를 곁들인 특강을 부탁했다. 바다는 아예 공연을 열겠다고 나섰다.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인터뷰 중 바다는 성가 ‘나’ 중 몇 소절을 불렀다. 뮤지컬 때의 폭발적인 발성과는 달리 아주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바다는 감성적인 노래를 부를 때면 가족이 인천 소래포구 도두머리 마을의 작은 성당 한 켠을 빌려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안 좋았거든요. ‘아픈 아빠를 낫게 해주세요’라고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달밤에 제 그림자를 보며 옷이 흠뻑 젖도록 노래와 춤 연습을 했어요. 제가 성당 청소 담당이었는데, 청각장애가 있는 할머니가 항상 일찍 오셔서 침묵의 기도를 하셨죠.” 음악회는 3일 오후 7시반 서울 용산구 이촌로 천주교 한강성당에서 열린다. S.E,S. 시절의 히트곡과 성가 등 10여 곡을 부른다(2만 원·02-995-7394) “데뷔 18년이 됐지만 어쿠스틱 공연은 처음이에요. 화려하지 않아도 관객 분들이 ‘영혼을 샤워할 수 있는’ 공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각 장애가 없었다면 분명 저보다 훨씬 더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하셨을 분들이 계셨을 거예요. 그분들을 대신해 노래할게요.”(바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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