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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해서 정권을 국민에게 봉환한다.” 1945년 8월 16일. 조국의 광복을 맞이한 다음 날. 중국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다. 석 달 가까이 지난 그해 11월 4일. 환국을 앞둔 백범 김구(1876∼1949)와 이시영(1868∼1953), 유동열(1879∼1950), 김규식(1881∼1950) 등 임정 요인 23인은 한자리에 모여 조국 독립에 대한 감회와 새 시대를 향한 포부를 붓으로 적었다. 이 휘호(揮毫)가 ‘재유기념첩(在諭記念帖)’이다. 기념첩에는 ‘대동단결(大同團結)’ ‘자립(自立)’ ‘자유(自由)’ ‘신사상(新思想)’ 등 임정 요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이 기념첩이 올해 문화재로 등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재청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등록문화재로 추진할 20여 건의 임정 관련 유물을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이 가운데 문화재 등록 기준에 부합하고 희소성을 지닌 11건은 우선 조사 대상으로, 중요성은 크지만 조사가 필요한 유물 9건은 추가 검토 대상이 됐다. 우선 조사 대상은 재유기념첩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이자해(1894∼1962?)가 쓴 ‘자해자전(慈海自傳) 초고’ 등이 선정됐다. 1930, 40년대 내몽골에서 의사로 일하며 광복군으로 활동한 이자해의 자서전에는 내몽골 지역에서의 항일운동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이 밖에 김병조가 집필한 ‘한국독립운동사(상)’, 김의한 광복군 임명장, 조소앙이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일기 ‘동유약초’,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 이승만 대통령 임정 관련 문서 등이 포함됐다. 추가 검토 대상은 조소앙, 이규채, 안창호, 이혜련, 한유한, 박영준, 신순호 유물 등이다. 문화재청은 4월까지 우선 조사 대상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해 등록을 추진할 방침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겨울 배추는 달다. 살짝 고소하고, 은은하게 매콤하기도 하다. 가을 지나고 서리 내린 후쯤이면 배추 뿌리의 달고 매콤한 기운이 이파리 위쪽까지 쑥 치밀고 올라온다. 된장에 찍어먹으면 알싸하게 단맛이 혀끝을 감돈다. 노상 날로만 먹을 순 없을 터. 저자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는 추운 밤 이웃들이 모여 배추적을 함께 구워먹었다. 물을 끓여 날배추를 데치고 한쪽에선 밀가루를 개고, 다른 쪽에선 들기름 칠할 무를 깎는다. 맑은 간장에 파 마늘을 다져 넣고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살짝 친 양념간장은 손맛 좋은 저자 어머니의 몫이었다. 배추적은 깊은 맛을 가진 음식이라고 한다. 깊은 맛을 알려면 반대인 얕은맛을 보면 된다. 얕은맛이란 혀에서만 달아, 먹고 난 후엔 조금 민망해지는 그런 맛이다. 고기나 생선처럼 그 자체로 맛이 뛰어난 음식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깊은 맛은 먹고 나서 전혀 죄스럽지 않다. 빈 접시가 부끄러울 리도 없다. 양념장이 없으면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밍밍한 맛이다. “얕은맛이 혀가 느끼는 맛이라면 깊은 맛은 위가 느끼는 맛이다. 어쩌면 ‘깊은’과 ‘얕은’이란 수식은 그것을 느끼는 신체 부위의 심천(深淺) 때문에 붙여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저자의 설명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음식을 토대로 자연과 인생, 그리고 깨우침까지. 솜씨 좋은 글맛으로 풀어낸 독특한 에세이다. 형용사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풍부한 어휘와 생생한 비유를 담고 있는 책을 읽고 있으면 ‘글’의 내공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서령체’라 불릴 정도로 자기만의 글 빛깔을 자랑하던 작가의 유고집이다. 우리말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저자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침을 삼키고, 푸근한 시골 풍경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의 경험이 책을 이끈다. 사실 조선의 3대 조리서라고 꼽힐 만한 ‘수운잡방’(1540년), ‘음식디미방’(1670년) ‘온주법’(1700년)은 모두 안동에서 나왔다. 책이 전해져 온 광산 김씨, 재령 이씨, 의성 김씨 가문은 안동에서 500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온 유서 깊은 문중이다. 저자는 “그들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제사 받들기와 손님 대접하기)’을 삶의 기본원리로 삼으면서 음식에 들이는 깊은 정성을 그들의 이상인 ‘군자 되기’의 구체적 실천 강령으로 여긴 것 같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음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TV프로그램에서 범람하는 ‘먹방’이 결코 주지 못하는 위로를 선사한다. 불린 햅쌀을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 ‘갱미죽’. 이 음식은 햇볕을 실컷 받고 천천히 여문 쌀알을 다시 낮은 열로 뭉근히 익힌 후 오래 묵은 간장을 똑똑 끼얹어 먹는 죽이다. “입안의 엷은 상처를 순하고, 따스하며 다정하게 어쩌면 슬쩍 서러운 듯도 하게,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솨르륵 도포한다”는 대목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아플 때 어머니가 끓여주던 흰죽이 떠올라 따스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달지 않지만 들큰하고 맵지 않지만 알싸한 밥도둑 ‘집장’, 음력 오뉴월에 담가 먹던 찹쌀 술 ‘정향극렬주’와 봄을 알리는 ‘냉잇국’ 등 30편의 행복한 음식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편인 ‘간고등어’와 ‘헛제사밥’을 쓰다가 그치고 만 저자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저자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작스레 사망했다. 한반도가 비통함과 충격에 휩싸였다. 그중에서도 전통사회의 지도자였던 지방의 유림들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고종에 대한 평가, 상복의 착용과 기간, 인산 준비 등 여러 의견이 난무했다. 경남 거창에서 은거하던 영남유림의 대표 격인 곽종석(1846∼1919)은 결단을 내린다. “태황제(太皇帝)께서 40년간 임어(臨御)하셨고, 나라를 잃은 것이 또한 그 몸에 있지 않으니 어찌 상복을 입지 않겠는가”라며 조선의 실질적 마지막 임금 ‘고종’에게 예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곽종석은 제자인 중재(重齋) 김황(1896∼1978·사진)에게 경성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한다. 김황은 스승의 명에 따라 2월 27일 경성의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한다. 그는 열흘간 경성에 머물며 3·1운동 전후 만난 인사들과 각종 사건을 빠짐없이 ‘기미일기(己未日記)’에 남겨뒀다. 이 기록에는 근대적 의미의 ‘독립’에 수긍하지 못했던 청년 유학자가 결국 유교계의 독립청원운동인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하기까지 드라마 같은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근 이 일기를 분석한 서동일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의 논문 ‘김황의 일기에 나타난 유림의 3·1운동 경험과 독립운동 이해’를 통해 청년 유림의 눈에 투영된 3·1운동을 들여다봤다. ○ 유림을 흔든 ‘고종 독살설’ 김황 일행은 경성에 있던 친척과 지인들로부터 3·1운동 계획을 전달받는다. 3월 1일 당일 오전에 지인으로부터 “3월 1일 오후 3시, 우리나라가 독립한다는 뜻으로 손병희 등 여러 분들이 문서를 작성하고 선언을 한다”며 소요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니 바깥출입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당부에 따라 여관에 머물던 이들은 저녁이 되자 경성 시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해 듣는다. 일제 경찰에 저항한 학생들, 혈서로 ‘조선 독립만세’를 쓴 수건을 휘두르던 시위대와 상인들의 철시(撤市)까지. 김황은 “갑자기 처음 들으니 결국 멍하다”며 당시의 생경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솔직하게 일기에 적어 놨다. 다음 날인 2일 김황은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향했다. 준비해 둔 작은 종이에 이름과 주소를 적어 함에 넣은 뒤 엎드려 곡을 하고, 네 번 절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엎드려 통곡하는 이들로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었다. 이날 밤 김황이 머물던 여관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여흥부대부인 민 씨의 사촌동생 민용호였다.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김황에게 들려준다. 고종이 자연사한 게 아니라 친일파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것. 서 학예연구사는 “고종 독살설이 지하신문이나 격문 같은 선전물 형태가 아닌 궁중 인사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은 처음 밝혀진 사실”이라며 “진위와 관계없이 고종 독살설은 충군애국(忠君愛國) 의식이 강한 유림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 김황, 파리장서회의 초안 작성 슬픔과 혼란에 빠져있던 김황에게 당시 경성에서 유교계의 독립운동을 이끌던 김창숙(1879∼1962)이 찾아왔다. 3·1운동 민족대표에 유교계만 빠져있었다며 파리 국제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10일 경남 거창으로 귀성한 김황은 스승에게 경성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내용을 전달한다. 곽종석은 마침내 독립청원서의 초안을 김황에게 작성하라고 지시한다. 3월 말이 되자 김황의 초안을 바탕으로 유교계의 독립청원서 파리장서(巴里長書)가 완성됐다. 이 문서에 서명한 유림만 137명. 수백 년간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가 모두 참여했다. 서 학예사는 “김황의 일기에선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 흐름을 마주한 청년 유림 내면의 미묘한 흔들림이 녹아있다”며 “상대적으로 외면받았던 유교계의 독립운동사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신경세포 분야의 권위자이자 미국 스탠퍼드대의 생물학자인 바레스 박사. 그는 여성 바버라로 살다가 42세에 성전환을 했다. 여성이었던 대학 시절, 어렵기로 소문난 문제를 수백 명의 학생 중 혼자만 풀어내자 동료로부터 남자친구가 대신 해결해줬다는 의심을 받았다. 박사과정 때는 논문을 6편이나 발표했지만, 단 1편만 썼던 남학생에게 연구원 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그러나 성전환 뒤 누구도 그의 권위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어느 사회에서든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성별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육아와 사회적 차별에 결국 꿈을 실현하지 못한 다양한 여성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여성 최초로 부주필 자리에 오르고, USA투데이 편집장까지 지낸 ‘알파 걸’. 세계 곳곳의 불평등 현황과 이를 극복할 대안까지 담아낸 치밀한 취재력이 돋보인다. 저자는 뭣보다 여성의 성공이 남성의 실패를 의미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날 경우 향후 20여 년간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2조1000억 달러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고 한다. ‘경단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에 이르는 한국 사회는 어떤 대비책을 꾀하고 있을까.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KBS가 적폐 청산과 개혁을 이유로 설립한 ‘진실과 미래 위원회’ 활동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서울남부지법은 KBS가 제기한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에 대한 가처분 결정 이의 신청을 1일 기각했다. 지난해 9월 서울남부지법은 KBS공영노동조합이 제출한 진미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일부를 받아들여 진미위가 징계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의 효력이 정지됐다. 법원은 진미위가 운영규정을 만들며 해당 직원에 대한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는 등 절차상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KBS가 이의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KBS공영노조는 “KBS 내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마구잡이 조사와 징계위협 등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환영했다. 반면 KBS는 즉각 항고하겠다며 “진미위 설치와 운영 규정은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으며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구비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진미위는 양승동 KBS 사장이 취임하면서 불공정 방송과 부당 노동행위 등에 대한 조사를 위해 출범한 기구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MBC가 지난해 1200억 원의 적자를 낸 가운데 임원들이 1인당 약 3000만 원 가량의 특수활동비를 받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MBC 노동조합(제3노조)은 1일 “임원 ‘특활비’, 그들만의 ‘주지육림”이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최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한 회의에서 MBC의 ’눈먼 돈‘으로 간주되는 임원들 특활비 문제가 정식으로 거론됐다”며 “과거 흑자 땐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던 돈이었지만 MBC가 지난해 1200억 원 적자를 내면서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임원들의 특활비는 본부장 1인당 매달 200만 원 가량 현금으로 지급되는 돈으로, 영수증도 필요 없고 사용처도 묻지 않는 돈이라고 한다”며 “2017년 말 정치파업으로 경영권을 빼앗은 최승호 경영진은 2018년 한 해만 1인당 3000만 원 가량의 ’묻지 마‘ 현금을 챙겼고, 임원 숫자를 감안하면 수억 원의 ’묻지 마‘ 현금이 임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MBC 노조는 경영진이 ’사원 본부장‘ 같은 불필요한 임원 직급을 만들어 차량과 운전기사 임금 등 추가 지출요소를 만들었다며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했다. MBC 노조는 “방문진 회의에서 즉각 폐지를 촉구하는 이사들에게 최승호 사장 등은 특활비가 과거부터 내려온 관례라며 즉답을 회피했다”며 “회사와 한 몸인 민노총 언론노조는 과거 김장겸 전 사장이 연 380만 원을 내고 사용하는 호텔 스포츠 회원권을 두고도 ’황제 피트니스‘니 ’임원들의 잇속 챙기기‘라느니 맹비난을 퍼부었는데 3000만 원은 그때와 사뭇 비교되는 금액”이라고 비판했다. MBC 프로그램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MBC 노조는 “당당하게 방문진 보고까지 올라간 ’김태호PD의 시즌2‘는 당초 3월 계획에서 5월로 연기됐다고 한다”며 “보안상의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연출도 없이 김태호와 달랑 작가 1명이 후속 프로그램을 구상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상황은 허술하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19 밀라노 한국 공예전’의 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전시 준비를 지휘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의원이 행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사업에 직접 참여한 것은 겸직을 금지한 국회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 따르면 손 의원은 지난해 9월부터 ‘2019 밀라노 한국 공예전’의 기획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번 달까지 열린 4차례의 회의에 손 의원이 모두 참여해 관련 전시 준비를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위는 올해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릴 ‘밀라노 디자인 위크’ 가운데 한국관 행사인 ‘한국공예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기구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획위원회는 문체부에서 1명, 진흥원에서 1명, 외부 전문가 4명 등 6명으로 구성되는데 손 의원은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단순 자문이라기보다는 실제 전시의 주제와 방향을 논의하는 집행기구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 의원은 밀라노 전시에 참여시킬 작가 섭외를 위해 지난해 10월 문체부 직원 등과 함께 지방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1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손 의원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당시 손 의원은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그동안 보고 있다가 내년 전시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서 내년 전시 준비를 지금 하고 있다. 내년에 아주 최고의 전시를 한번 나가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나가는 콘셉트는 감독들하고 굉장히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전시 준비를 지금 하고 있으니 첫해에 했던 것만큼 다시 올려 주시면 그때보다 더 멋진 전시를 한번 해 보도록 하겠다”며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당초 문체부는 올해 밀라노 전시 관련 예산으로 6억 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손 의원의 발언 이후 관련 예산이 8억 원으로 늘었다. 해당 예산은 2014년 13억9000만 원, 2015년 8억9000만 원, 2016년 8억9000만 원, 2017년 8억1000만 원, 지난해에는 7억 원 등 지속적으로 줄어들다 올해 이례적으로 증액됐다. 공예계에서는 손 의원이 밀라노 전시를 지휘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공예계 인사는 “기획위원에 손 의원과 가까운 장병인 씨 등이 포함돼 있고, 손 의원이 전시 주제를 직접 정하기도 했다”며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의 특정 사업에 실제로 참여해도 되는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국회법에 명예직 자문위원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수당도 받는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건 겸직금지 의무 위반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손 의원 측은 “밀라노 가구박람회의 디렉터로 참여한 경험이 있어 문체부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국회의원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건 겸직금지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지형과 조류(潮流)의 흐름, 물고기의 습성을 고려해 어구(漁具)를 부려 고기를 잡는 한반도 고유의 ‘전통어로방식’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어촌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어로방식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전통어로방식은 물고기를 잡는 기술을 넘어 관련 문화와 지식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전통어로방식은 고대부터 어구로 물고기를 잡는 행위에서 기원했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나는 ‘어량(魚梁)’이라는 문구에서 실체가 확인된다. 어량은 대나무 발을 치거나 돌을 쌓아 썰물 때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도구다. 조선 후기에는 어로 기술이 발달하고 해산물 수요가 증가하면서 ‘방렴(防簾)’이나 ‘장살(杖矢)’ 같은 어구가 등장했다. 방렴은 대나무 발을 고정하기 위해 나무 기둥 아래에 무거운 돌을 매단 어구이고, 장살은 고정한 나무 기둥 사이에 대나무 발 대신 그물을 설치한다. 이런 전통어로방식은 1970년대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경남 남해 지족해협과 사천 마도, 저도 등에서 죽방렴 멸치잡이와 그물살 고기잡이로 명맥을 잇고 있다. 문화재청은 전통어로방식이 어촌 각지에서 광범위하게 전하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와 보유 단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보유자와 보유 단체를 인정하지 않은 국가지정문화재는 아리랑과 제다(製茶)를 포함해 모두 8건에 이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문화재청은 설 연휴인 다음 달 2일부터 6일까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 조선 왕릉, 아산 현충사, 금산 칠백의총, 남원 만인의총 등을 무료로 개방한다고 29일 밝혔다. 평소 예약제인 종묘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다만 창덕궁 후원은 제외한다. 설맞이 문화 행사도 즐길 수 있다. 경복궁 집경당에서는 5, 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세배 행사를 진행한다. 덕수궁 함녕전 앞에서는 2∼6일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일 정오 캘리그래피 작가가 덕담을 써주는 ‘복 찾고, 덕 받고’ 행사를 연다. 국립민속박물관은 6, 7일 ‘2019년 기해년 설맞이 한마당’ 행사를 개최한다. 1일과 입춘(立春) 당일인 4일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 등 입춘첩을 나눠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자신이 속했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피감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인사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손 의원 측은 “문체부가 먼저 추천을 요청했다”고 해명했으나 진흥원 안팎에선 “관련 경력이 전무해 부적절한 인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27일 문체부와 진흥원에 따르면 손 의원은 2017년 하반기 친분이 두터운 조모 씨(51)를 진흥원 사무처장로 추천했다. 진흥원은 2018년 1월 1일 조 씨를 정식 임명했고 현재 업무를 맡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손 의원 측이 조 씨를 진흥원에 임명하라는 요구를 해와 실무진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당시 진흥원도 사무처장 인사에 난색을 표했다. 사무처장은 진흥원 예산 및 인사, 기획·조정 업무를 총괄하는 요직. 이 때문에 행정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이 주로 맡아 왔는데 조 씨는 전시기획자로 이런 분야 경력이 전무하다. 진흥원 관계자는 “사무처장은 원장 다음 핵심 보직인데 조 씨가 거론돼 내부 반발이 상당했다”며 “고위급들도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토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진흥원 사무처장은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임명한다. 손 의원은 공개 석상에서 조 씨를 추천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7년 12월 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7 공예 트렌드 페어’ 개막식에서 손 의원은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조 씨를 “사무처장으로 추천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현장에 있던 한 공예계 인사는 “조 씨가 행정 경험이 전혀 없고 인사가 나기 전이라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조 씨는 2015년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예술감독을 맡으며 손 의원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엔날레에는 손 의원이 원장이던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이 작품 300여 점을 출품했다. 손 의원 측은 “도 장관이 취임 뒤 진흥원에서 일할 만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먼저 부탁했다”며 “조 씨가 적임자라고 판단해 추천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도 장관 측은 “의례적으로 여러 기관에 전문가 추천을 요청한다. 손 의원에게만 인사 의뢰를 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유원모 onemore@donga.com·강성휘 기자}

《 지난 한 해 독자 여러분의 큰 사랑을 받은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 시리즈가 올해 ‘신예기 2019’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신예기는 빠른 시대 변화 속에서 세대와 남녀, 개인 간 갈등을 낳는 일상의 예법을 재조명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예법을 제안하는 공론의 장입니다. ‘신예기 2019’ 첫 회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 종가의 특별한 설 차례와 제사 풍경을 소개합니다. 》 22일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인 이창수 씨(54)와 함께 경북 안동시 고성 이씨 사당이 있는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을 찾았다. 1519년 세워져 500년 전통을 간직한 임청각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전까지 부유한 유림 종가였다. 그래서 1년 내내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청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은 현재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나 감실(龕室·신주를 모시는 곳) 등 일반적인 제례(祭禮) 도구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 씨는 “고조할아버지(석주)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며 고향 땅에 신주를 묻었다”며 “지금은 신주 없이 사진만으로 조상을 모신다”고 말했다. 임청각에는 석주가 1911년 만주로 떠나기 직전 쓴 ‘거국음(去國吟)’이라는 시가 걸려 있다. ‘보배로운 우리 강산 삼천리, 조선 500년간 문화를 꽃피웠네. (중략) 고향 동산 근심하지 말거라. 태평한 훗날 다시 돌아와 머무르리다’라는 내용으로 구국을 위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조선 후기 임청각 종가의 분재기(分財記·가족이나 친척에게 나눠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에는 노비만 무려 408명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석주는 1911년 1월 “너희도 이제 독립군이다”라는 말과 함께 안동에서 처음으로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이들을 해방시켰다. 처분한 모든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쓰면서 제사는 자연스럽게 간소해졌다. 이 씨는 “독립운동 이전에도 임청각 종가의 제사상은 매우 간소했다”며 1744년 작성된 ‘고성 이씨 가제정식(家祭定式)’을 보여줬다. 집안의 제사 매뉴얼인 이 문서에는 ‘제사상은 간소하게 차릴 것’, ‘윤회봉사(형제간에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것)를 할 것’, ‘적서(嫡庶)의 차별 없이 모두 참여시킬 것’ 등 지금 봐도 혁신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임청각은 아들이 없는 경우 외손이 제사를 지낸 전통도 있다. 이 씨의 20대조 6형제 중 다섯째인 ‘이고’라는 분은 자손이 딸 하나밖에 없었는데, 생을 마치고 사위인 서씨 집안에 재산을 물려줬고 이후 외손자가 제사를 지냈다. 이 씨는 “지금도 서씨 가문에서 외손봉사로 ‘이고’의 제사를 지낸다”며 “외가든 서자든 누가 제사를 지내든 각 집안의 예법인 ‘가가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제사 때문에 식구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는 것이야말로 임청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며 “제삿날에는 제 여동생들도 모두 모여 며느리들과 똑같이 일한다”고 말했다. 광복절인 8월 15일 4대조의 제사를 모두 모아 지내는 임청각 종가는 낮 12시 제사를 마치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는 것으로 제사를 마친다. 이런 원칙은 설 차례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씨는 “제가 사는 서울의 아파트는 좁아 음식을 올릴 상을 제대로 펼 수도 없다”며 “가로 60cm, 세로 40cm 크기의 상 4개를 붙여 한꺼번에 차례를 지낸다. 차례 음식은 과일 4개랑 포, 떡국까지 합해 10개가 채 안 된다”고 전했다. 이 씨는 “지난해 추석 신예기 기사에서 퇴계 이황의 종가가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는데 많은 안동 유림 종가들이 그렇다”며 “우리도 추석엔 차례 없이 처갓집에 가서 처가 식구들과 여행도 하며 가족애를 다진다”고 말했다.안동=유원모 onemore@donga.com / 임우선 기자}

8월 15일 오전 11시. 광복절에 부모님부터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4대의 기일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는 집이 있다. 신문지 크기의 작은 상 4개를 모아놓고 과일 4개와 포, 국 등을 올리는 게 전부다. 그래도 조상을 기리고 존경하는 마음은 그 어느 집보다도 크고 깊다. 바로 유림 명문가이자 1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경북 안동시 고성 이씨 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파 종가의 이야기다. 임청각 종가를 대표하는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은 구한말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99칸짜리 사대부 반가(班家)의 종손이었다. 이 집안은 조선 후기 한때 노비가 408명이나 됐을 정도의 대부호였다. 석주는 일제에 나라를 뺏긴 이듬해인 1911년,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난다. 독립운동에 투신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400년간 이어져 온 가문의 재산을 모두 털어 서간도에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짓고, 독립군을 육성하셨죠. 고조할아버지(석주)가 고향을 떠나시며 조상의 신주를 땅에 묻으셨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공자와 맹자는 독립 후에 찾자’고 하셨다고 해요.” 22일 안동에서 만난 석주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 이창수 씨(54)가 말했다. 1년 내내 제사가 끊이지 않던 이 집안에서 1994년 새로운 전통이 생겼다. 당시 집안의 큰 어른이던 작은아버지가 “우리 집안의 전통은 제사가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년 중 가장 의미 있는 날에 4대조까지 모든 제사를 모아 지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만장일치로 광복절이 뽑혔고 매년 8월 15일이면 제사를 지낸다. 임청각 종가는 설 차례상도 간소하다. 이 씨는 “1744년 쓰인 집안의 제사 매뉴얼에는 후손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내용이 강조돼 있다”며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전은 사서 올린다”고 말했다. 이 집안에서는 석주와 그의 동생, 아들, 손자, 손자며느리까지 총 10명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됐다. 이들의 독립운동 기간을 합치면 300년이 넘는다.안동=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보령 성주사지 동(東)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보령 성주사지(사적 제307호)에 있는 동 삼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제26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5일 밝혔다. 성주사는 통일신라 후기인 847년 승려 낭혜화상(무염)이 세운 사찰로, 약 1000년간 명맥을 이어오다 조선 후기에 폐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주사지에는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를 포함해 5기의 석탑이 남아 있다. 사찰 내 부처를 모시는 금당(金堂)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이 있고, 뒤쪽에는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 ‘보령 성주사지 서(西) 삼층석탑’(보물 제47호)과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동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이 같은 건축물 배치는 국내에 유일한 사례다. 학계에서는 먼저 금당 앞쪽에 오층석탑을 세워 ‘1탑 1금당’ 형식을 조성한 뒤 나중에 석탑 3기를 금당 뒤쪽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보령 성주사지 동(東)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보령 성주사지(사적 제307)에 있는 동 삼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제26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5일 밝혔다. 성주사는 통일신라 후기인 847년 승려 낭혜화상(무염)이 세운 사찰로, 약 1000년간 명맥을 이어오다 조선 후기에 폐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주사지에는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를 포함해 5기의 석탑이 남아 있다. 사찰 내 부처를 모시는 금당(金堂)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이 있고, 뒤쪽에는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 ‘보령 성주사지 서(西) 삼층석탑’(보물 제47호)과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동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이 같은 건축물 배치는 국내에 유일한 사례다. 학계에서는 먼저 금당 앞쪽에 오층석탑을 세워 ‘1탑 1금당’ 형식을 조성한 뒤 나중에 석탑 3기를 금당 뒤쪽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삼층석탑 3기는 거의 같은 시기에 동일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예술성과 조형미가 모두 뛰어나다. 동 삼층석탑은 4.1m 높이로, 기단 상부에 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이 있고 1층 탑신에는 문고리와 자물쇠를 표현한 문짝 문양을 새겼다. 이 가운데 동 삼층석탑만 뒤늦게 보물로 지정된 점이 흥미롭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960년대 초반에 국보와 보물 제도를 재정비하면서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 보물 지정이 늦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국회의원 임기 중에 자신이 설립하고 남편이 대표로 있는 공예품 판매·유통업체 ‘하이핸드코리아’의 나전칠기 상품 거래에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 외 영리 행위와 겸직을 금지한 국회법, 국가공무원법 위반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손 의원은 2016년 7월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 전체회의장에서 휴대폰 문자로 자개장 거래를 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물의를 빚었다. 당시 찍힌 손 의원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지인 김 모 씨에게 나전칠기 사진을 전달 받은 후 “내가 250 줬으니 그거만 받으면”, “신촌 자개장 조○○ 사장이 사고 싶다는데”라고 보내는 손 의원의 문자가 포착됐다. 손 의원실의 보좌관은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크로스포인트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훨씬 좋은 작품으로 그렇게 싼 가격은 있을 수 없다”며 “지인에게 개인 소장품을 판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문자에 등장하는 조 모 씨에게 확인한 결과는 달랐다. 조 씨는 2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문자의 앞에 나오는 250만원 짜리 거래는 다른 사람과의 문자 내용으로 별개의 것”이라며 “나는 하이핸드코리아에서 판매하는 6000만원 짜리 자개장 구입 문의를 위해 손 의원과 협의를 했다”고 말했다. 손 의원이 국회 상임위 도중 판매 중개한 것이 개인 소장품이 아니라 하이핸드코리아가 소장하고 있는 수천만원 대 나전칠기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조 씨는 “당시 ‘하이핸드코리아’ 측이 6000만 원 정도를 제시했지만, 나는 4000만 원 이상은 힘들다고 여겨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조 씨가 구입을 시도한 자개장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내에 입주한 하이핸드코리아 신촌점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겸임교수로 있는 한 대학의 국제디자인 대학원 모임, 디자인 경영 모임의 여행 등을 함께 다니면서 손 의원을 만나 알게 됐다”며 “손 의원이 나전칠기박물관을 운영하고, 비싼 작품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많이 구입을 의뢰하곤 했다”고 말했다. 손 의원이 설립한 후 현재 남편 정건해 씨(74)가 대표로 있는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은 나전칠기 관련 공예품 전시는 한국나전칠기박물관에서, 판매는 하이핸드코리아에서 나눠 운영 중이다. 손 의원 측은 하이핸드코리아 경영에 관여한다는 의혹에 “겸직 금지 판단을 받지 않고, 자의로 사직한 뒤 경영에 개입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조 씨의 하이핸드코리아의 소장 작품을 중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같은 해명은 거짓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와 국회법 제29조의2(영리업무 종사 금지) 등 법률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며 “손 의원은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김기윤기자 pep@donga.com}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손혜원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를 국립공예박물관으로 건립해 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문화역서울284 바로 옆 서울역 신역사에는 손 의원이 창업한 공예판매점 ‘하이핸드코리아’가 입점해 있어 국회의원이 사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활동에 지나치게 개입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손 의원은 지난해 10월 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에 공예박물관이 없다. 그 안(문화역서울284)을 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이 멋진 건물을 우리도 박물관으로 프랑스 오르세나 이런 데같이 하자”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1986년 방치됐던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문화역서울284는 2011년부터 공예, 건축, 디자인 전시회 등을 진행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문체부의 위탁을 받아 운영한다. 손 의원은 “(위탁 운영) 계약 기간을 6개월 단위로 하니까 장기적으로 갈 수가 없다”며 “여기를 우리가 국립공예박물관을 한번 해 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문체부 측은 난색을 표했다. 2016년 문화역서울284의 중장기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해 공예와 건축, 디자인, 철도 등을 아우르는 근대 복합공간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또 불과 3k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옛 풍문여고 터에 서울시가 ‘시립공예미술관’을 짓고 있어 박물관 성격이 중복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체부 관계자는 “손 의원이 국정감사뿐 아니라 문체부가 주관한 공예인 간담회 등에 참석해서도 문화역서울284를 국립공예박물관으로 건립할 것을 주문하는 등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고 밝혔다. 손 의원 측은 “국회는 다양한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의원들이 합의를 찾는 곳인데 이를 이익충돌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손혜원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현대 나전칠기 작품 구매를 종용하며 치켜세웠던 나전칠기 장인 오왕택 씨(64·사진)가 손 의원이 세운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의 이사로 확인됐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동업자나 다름없는 작가의 작품을 피감기관에 사라고 한 행위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금지 의무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3일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의 정관과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오 씨는 2014년 9월 재단 설립 때부터 손 의원 등 11명과 함께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후 재단 이사직을 유지해 왔고 지난해 12월 중임돼 현재까지 이사로 등기돼 있다. 재단을 설립한 손 의원은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인 2016년 5월 재단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오 씨는 손 의원의 남편 정건해 씨(74)가 대표로 있는 나전칠기 판매업체 ‘하이핸드코리아’ 홈페이지에 대표 작가로 소개돼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으로 평화를 담다’ 전시회에 오 씨의 작품이 출품되기도 했다. 손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오왕택이라고 무형문화재도 아니고 지방문화재도 아닌 이 사람 작품을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이 샀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다른) 박물관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더 늦기 전에 지금 살아 있는, 방금 작고한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박물관의 책무”라고 했다. 손 의원의 발언이 나온 지 두 달 뒤인 지난해 12월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례적으로 현대 공예품 4점을 사들였다. 당시 구입품에 오 씨의 작품은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존 전시품과의 연계성, 가격의 적절성 등을 고려해 구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국립박물관에서 작품을 구매해 전시나 도록에 실리면 그 순간부터 해당 작가의 가치가 확 올라간다”며 “자신과 친분 있는 작가를 띄우고, 특정 작품을 사라고 국정감사장에서 피감기관에 요구하는 국회의원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승리의 기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99년 전 짜릿한 승리의 함성은 골짜기를 넘어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한국 독립운동사상 일본 정규군과 싸워 처음으로 승리한 ‘봉오동전투’. 최근 동아일보가 찾은 중국 지린(吉林)성 왕칭(汪淸)현 봉오동에 위치한 봉오저수지 일대는 1920년 6월 7일 봉오동전투가 펼쳐진 곳이다. 저수지 댐 위에 오르면 전투 현장이었던 봉오골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산맥 사이로 보인다. 아쉽게도 1970년대 댐이 만들어지면서 승리의 현장을 직접 밟아볼 순 없었다.○ 최초이자 최고의 승리 ‘봉오동전투’ 봉오동전투는 홍범도 장군(1868∼1943) 등이 이끈 연합독립군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 157명을 사살하고 중상자 200여 명을 만든 전과를 올렸다. 반면 독립군은 전사 4명, 부상 2명에 그치는 압도적 승리였다. 물론 정확한 수는 더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판단. 하지만 일제에 치욕을, 독립군에게 희망을 선사한 성과임은 틀림없다. 일제는 봉오동전투에서 대패한 뒤 치졸한 분풀이로 그해 10월 북간도 일대 한인을 학살한 ‘간도 참변’ 만행을 저질렀다. “생으로 매장하기도 하고, 불에 태우기도 하고, 솥에 삶기도 하고…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저네들은 오락의 일로 삼았다”고 기록한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는 처참한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봉오저수지로 가는 길목에는 당시의 승리를 기억하는 작은 기념비가 있다. 1993년 6월 투먼시 정부가 세운 이 기념비에는 “일본 침략자의 기염을 여지없이 꺾어 놓았으며 인민대중의 반일 투지를 크게 북돋아줬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2013년 투먼시는 이 비를 대체한 대형 기념비를 새로 건설하며 묘한 문구를 넣었다. “중국 조선족 반일무장이 여러 민족 인민들의 지지 아래 처음으로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워 중대한 승리를 거두고”라고 기록했다. 마치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처럼 표기해 놓은 것이다. 동북공정의 여파가 항일 독립운동 역사 현장에서도 배어나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윤동주 생가에 그늘진 동북공정 룽징(龍井)시의 명동촌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북간도 독립운동의 중심지이자 항일 민족시인 윤동주(1917∼1945)가 나고 자란 땅. 명동촌 입구에 위치한 ‘윤동주 생가’에 가보니 ‘조선족 민족시인’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그 때문일까. 1994년 복원된 윤동주 생가는 그의 반신상과 시가 적힌 기념비 등으로 정갈하게 정돈됐지만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윤동주 생가에서 명동촌 내부로 200m 정도 들어가면 명동학교가 등장한다.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김약연(1868∼1942)은 1908년 명동서숙을 세웠고, 1910년 3월 명동학교로 확대, 개편해 교장에 취임했다. 명동학교는 1929년까지 졸업생 1200여 명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졸업생으로는 윤 시인을 비롯해 문익환 목사와 송몽규 수필가, 나운규 영화감독 등이 있다. 명동학교의 졸업생 대다수는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사업에 투신해 “독립운동사관학교”로 일컬어졌다. 명동학교 한쪽에는 3·13운동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1919년 3월 13일 룽징 시내에서 일어난 3·13만세시위는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 바깥에서 펼쳐진 가장 큰 규모의 움직임이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명동학교 학생들과 명동촌 주민들이었다.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북간도 곳곳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홍범도, 김약연, 윤동주 등 위대한 영웅들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투먼·룽징=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손혜원 의원이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인사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22일 사실상 시인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손 의원이 작년 6월 박물관을 찾아와 나전칠기 연구 복원에 대한 사업을 이야기하며 국립민속박물관 소속인 학예연구사 A 씨의 전문성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추천했다”며 “연말 정기인사 교류 시 해당자를 검토했으나 교류 분야가 맞지 않아 선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손 의원이 A 씨를 ‘추천했다’고 표현했지만, 여러 중앙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손 의원은 지난해 6월 중앙박물관을 찾아가 “A 씨를 받으라”며 상당한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질의에서 “도쿄예대에서 박사를 받은 전문가가 수리를 못한다고 인격적인 모독을 받고, 민속박물관에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 유물 수리에 최고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가진 인재”라고 A 씨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A 씨는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에 재직하던 중 나전칠기 보존 과정에서 원형 훼손 문제를 일으켜 2016년부터 보존 업무에서 배제됐다. 현재 섭외교육과에서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A 씨의 부친은 경남 통영시에서 활동한 나전칠기 장인으로 손 의원의 한국나전칠기박물관 개막특별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A 씨는 지난해 손혜원 의원실이 관여한 일본 쇼소인(正倉院·정창원) 학술대회와 공주 옻칠갑옷 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가했다. 지난해 5월과 11월에는 손 의원과 일본 출장을 함께 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재단 이름으로 땅을 사면요. 그것은 국고로 가는 겁니다. 제가 팔 수 없고 그것을 다른 명의로 바꿀 수도 없어요.” 손혜원 의원은 17일 유튜브 개인채널 ‘손혜On’에 출연해 남편이 이사장으로 있는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의 부동산 매입이 투기가 아니라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손 의원의 해명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손 의원의 문화재단 정관 제38조 ‘잔여재산의 처리’ 항목에 “법인이 해산될 때의 잔여재산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유사한 목적을 가진 다른 비영리법인에 귀속된다”고 나와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가에 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100% 국고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재단법인의 재산 중 ‘기본재산’은 처분할 때 주무관청에 보고해야 하지만 ‘보통재산’은 재단에서 임의로 처분 가능하다. 21일 현재 이 재단의 기본재산은 3000만 원, 보통재산으로 1100여만 원을 신고했다. 재단의 재산 변동 명세는 회계연도가 끝난 뒤 2개월 내에 문체부에 보고해야 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해 재단 명의로 구입한 목포 부동산이 2월 말까지 보고된 후에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