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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으로 통한다.’ 2002년 기준 세계 인터넷 통신 중 미국을 거치지 않고 미국 이외의 두 지역을 오간 비율은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했다. 예컨대 당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상파울루로 보낸 이메일은 엉뚱하게도 미국 마이애미를 경유했다. 브라질 내 느린 구리선을 이용하는 것보다 미국의 초고속 광섬유 케이블을 이용하는 게 더 빨랐기 때문. 그런데 흥미로운 건 미국의 초고속 통신망이 정보기관들이 모여 있는 워싱턴DC 북부 버지니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경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을 통과하는 광섬유는 프리즘 기술을 통해 2개의 신호로 분리돼 하나는 원래 경로로 움직이고, 다른 하나는 신호정보(시긴트)를 담당하는 NSA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 미국 정보기관이 가만히 앉아서 전 세계 통신망을 감청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2명이 쓴 신간은 오늘날 미국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길인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세계를 통제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제국’이 탄생한 과정뿐 아니라 미국이 어떻게 다른 나라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막강한 힘이 가능한 것은 크리스 밀러가 베스트셀러 ‘칩워’에서도 강조한 ‘무기화된 상호의존성(weaponized interdependence)’ 덕분이다. 세계화를 계기로 무역, 통신, 금융 등에 있어서 높아진 각국의 상호의존성이 강대국에 의해 무기로 전용되었다는 것. 저자들은 미국이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통신망이나 금융시스템 같은 글로벌 인프라를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상은 미중 갈등 국면에서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의 화웨이 5G 전화교환기 도입을 저지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은 중국의 감청 위험을 내세웠지만, 실은 자국이 구축한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 기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화웨이가 만든 5G 기지국을 통해 냉장고, 자동차, 보안 카메라, 심박 조율기, 로봇 등 온갖 사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정보, 돈, 물류가 중국산 장비를 통해 유통될 수 있다는 걸 미국이 특히 우려했다는 얘기다. 2020년 2월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가 미국 정부의 화웨이 설비 구입 중단 요청을 거절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졸도 직전까지’ 격분한 이유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간이 미국의 권력을 고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는 ‘국제정치의 속성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상호의존성을 무기로 다른 나라를 통제,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패권을 추구하는 모든 강대국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밀러는 이 책에 대해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설명서”라며 “미국이 어떻게 세계질서를 얽은 배관을 무기화하는 법을 배웠는지를 미묘한 필체로 폭로한다. 오늘날 경제 및 기술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라는 추천사를 썼다. 밀러의 ‘칩워’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기술 및 경제 통제의 실상을 신간을 통해 접할 수 있을 것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약 195㎡(약 59평) 규모의 전시실 안에 가로 35cm, 세로 50cm의 모형 책이 놓여 있다. 천장 프로젝터로 쏜 외규장각 의궤(儀軌) 영상이 책장에 가득 담긴다. 종이 질감을 흉내낸 천 재질의 페이지를 넘기자, 다른 영상으로 바뀐다. 번역 버튼을 누르면 의궤의 한자가 한글로 번역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이것은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개되는 ‘외규장각 의궤실’ 내 비치된 의궤 실물 크기의 ‘디지털 책’이다. 진열장 안에 있는 의궤와 달리 책장을 넘기며 의궤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김진실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의궤는 한문으로 쓰여 피상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데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책을 도입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고 말했다. 2011년 프랑스에서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를 위한 별도의 전시 공간이 생기는 것은 처음이다. 앞서 박물관은 환수 후 두 차례 특별전을 연 뒤 1층 조선실 한편에 소규모로 의궤를 전시해왔다.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 의식이나 행사의 전 과정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일종의 종합 보고서다. 이 중 정조(재위 1776∼1800년)의 명을 받아 강화도 외규장각에 봉안한 의궤는 왕이 보는 어람(御覽)용으로, 예부터 귀하게 여겨졌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범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의궤를 가져갔다가 고 박병선 박사(1923∼2011) 등의 노력으로 2011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전시의 백미는 어람용 의궤인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莊烈王后尊崇都監儀軌)’와 현존 유일본인 ‘종묘수리도감의궤(宗廟修理都監儀軌)’를 하나씩 넣은 진열장. 과거 외규장각과 비슷하게 기둥과 문살을 넣어 ‘왕의 서고’처럼 꾸몄다. 1686년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에게 존호(尊號)를 올린 과정을 기록한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는 제작 당시의 표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가치가 높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영국 작가 서맨사 하비(49·사진)가 소설 ‘오비털(Orbital)’로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았다. 12일(현지 시간) AP 등 외신들에 따르면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런던 올드 빌링스게이트에서 열린 부커상 시상식에서 하비를 수상자로 발표했다. 부커상은 영국,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영어로 작성된 소설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결정하며, 매년 상반기에 발표하는 인터내셔널 부문(비영어권 작품 대상)과 구분된다. 수상작 ‘오비털’은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기간 지구를 돌던 우주비행사 6명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로 인간의 욕망과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번역원이 자체 운영 중인 번역아카데미를 대학원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해외 작가와 번역가, 출판인과의 교류를 늘려 글로벌 문학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안에도 힘을 기울인다. 전수용 번역원장(사진)은 11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노벨 문학상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담론 형성과 비평 기반이 강화돼야 한다”며 번역대학원대 설립 등을 강조했다. 현재 번역원은 7개 언어권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비학위 과정인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정규 석사학위 과정의 번역대학원대로 격상시키겠다는 것이 번역원의 구상. 번역의 질을 높이고, 각국의 현지 번역가들이 학교 등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전 원장은 “번역가라는 게 번역만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며 “수강생들이 석사학위까지라도 받을 수 있다면 본국에 돌아가서 학교 등에 재직하면서 번역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이들이 제자를 양성하고 친한(親韓) 인사, 한국 문학 유포자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번역원은 곽효환 전 원장 재임 시에도 번역대학원대로 격상을 추진했으나 국내 통번역계의 반대 등에 부딪혀 진척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번역원은 해외에서 한국 문학이 단순히 번역, 소비되는 수준을 넘어 관련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동안 번역되지 않은 고전, 근현대 주요 작품들 가운데 시대별로 5편씩을 선정해 매년 기획 번역에 나서는 것. 비평 선집도 번역 출간한다. 해외 문학계와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국제작가축제 등 국내외 작가, 번역가, 출판인이 협업하고 소통하는 장도 적극 마련할 방침이다. 전 원장은 “영화를 보더라도 단순히 한 편씩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소개가 있으면 그걸 따라 영화를 보게 된다”며 “한국 문학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너도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거 봤어?”(여자1) “우리가 뭘 요구하는 건지도 잘 모르면서 참나.”(여자2)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거하라’ 시위가 정점에 달한 2011년 11월 이 책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맨해튼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험담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그는 ‘노 로고’로 1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과거 버니 샌더스 미국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유명 시민운동가다. 클라인에 대한 험담은 그날로 끝나지 않고 이후 10년 넘게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도배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원래 비난하려던 인물은 나오미 클라인이 아니었다. 또 다른 유명 인사로 이름이 비슷한 ‘나오미 울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둘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했다. 둘다 유대인인 데다 흔치 않은 ‘나오미’란 이름을 가졌고 폭넓은 사회활동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두 인물은 완전히 상반된 성향을 지녔다. 클라인은 좌파 성향에 가까운 반면, 울프는 자유주의자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극우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많은 대중이 둘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자, 인공지능(AI) 자동완성 기능도 둘을 혼동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두 사람은 그냥 “권력에 불만을 품은 나오미들”일 뿐이었다. 신간은 나오미 클라인이 반대 진영의 나오미 울프와 혼동된 사적인 ‘도플갱어’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신의 도플갱어 경험을 길잡이로 삼아 동시대 인터넷 환경과 극우 정치에 스며든 ‘도플갱어 문화’를 다양하게 조명한다. 영국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여성문학상의 논픽션 부문을 올해 수상했다. 클라인은 양 극단의 진영이 상대와 유사한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책사 스티브 배넌이 주요 현안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민주당 당원들이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다는 ‘거대한 거짓말(Big Lie)’을 한다고 주장하자, 배넌은 조 바이든이 선거 결과를 앗아갔다는 ‘거대한 절도(Big Steal)’로 맞섰다. 민주당 당원들이 적법한 선거 결과에 순응하지 않는다며 트럼프에 치를 떨자, 배넌은 민주당 당원들이 한 번도 트럼프를 적법한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이처럼 상대 진영의 언어를 차용해 정치 의제를 만든다는 점에서 양측은 도플갱어처럼 서로 닮았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두고 양 극단으로 갈린 서구 사회도 재조명한다. 백신을 받아들인 쪽은 백신 거부자들을 비난했다. ‘이웃의 안녕보다 개인 편의를 우선시하다니 어쩌면 그리 무정할 수 있을까’라고. 하지만 백신 거부자의 냉담함을 비판한 사람들 다수는 코로나로 앓아누운 백신 미접종자들에게 ‘진료받을 가치가 없다’고 했다. 백신 접종을 놓고 갈라선 두 진영은 상대에게 등을 돌렸지만 서로 닮아갔다. 흔히 자신의 도플갱어와 맞닥뜨린 사람은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경험이 “마냥 끔찍하기만 하진 않다”고 썼다. 내가 누군지, 나는 상대와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어서다. 실제로 저자는 ‘또 다른 나오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나오는 팟캐스트와 방송, 저서를 섭렵하고 만남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진영 간 갈등이 첨예한 요즘 상대방을 알아 나가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보름 넘게 지났다. 17일 포니정 시상식을 끝으로 공개 활동을 삼가고 있는 한강은 새 작품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출간이 목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라던 그가 다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소설을 쓰는 한강의 ‘진짜 삶’의 모습은 어떨까. 앞서 한강과 함께 작업한 편집자들과 한강의 과거 발언을 통해 재구성해 봤다.● 지독한 체험형 글쓰기 한강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건 실제로 겪는 듯한 생생한 묘사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에선 시각과 청각, 촉각을 동원해 눈을 묘사한다. 작가는 2021년 출간 당시 북토크에서 “눈이 내릴 때마다 나가서 눈을 집어서 녹을 때까지 지켜보기도 하고 얼마나 추워지는지 느꼈다”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택시 타고 가장 가까운 산으로 가서 미친 사람처럼 등산로 밖으로 가서 헤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바람 부는 자정엔 천변 길을 걸었고, 살갗에서 눈이 녹는 감각을 기억했다. 그 기억은 작품 속 다음과 같은 구절로 되살아났다. “젖은 실밥처럼 앞유리에 달라붙는 눈송이들”,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한강은 작품 속 상황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독특한’ 행동을 스스로 하기도 한다. 외딴집이 정전됐을 때 촛불이 얼마나 밝은지 보려고 보일러 센서 등을 가리거나 냉장고 코드까지 뺐다고. 구덩이 안쪽의 느낌을 알려고 책상 아래 모로 누운 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직접 겪을 수 없으면 ‘공부’에 나섰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창비)를 쓸 때 “900명의 증언이 들어 있는 구술집을 완독했다”고 했다. 한강은 2020년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완독하고 나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림이 크게 그려졌다”며 “구술자료를 읽은 다음엔 사건을 자세하게 분석한 책들을 읽는 방식으로 나선형으로 자료를 읽었다”고 했다.● 책 홍보에 발 벗고 나서기도 한강은 평소 조곤조곤 작게 말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커진 순간도 있었다. ‘소년이 온다’를 펴내고는 대중 강연을 20여 차례 진행하며 직접 ‘판촉’에 나선 것. 그는 “이 소설을 홍보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나섰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에게 애착이 큰 작품일 터. 한강은 오디오북 녹음에도 직접 나섰다. 하지만 첫 장을 녹음할 때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계속 눈물이 나서 이어 나갈 수 없었기 때문. 나머지는 성우가 녹음하고 한강은 에필로그만 녹음했다고.● “제 흰머리 보정하지 마세요” 대표작을 모아 지난해 출간된 스페셜 에디션 ‘디 에센셜’(문학동네) 표지에는 한강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들어갔다. 한강은 사진작가에게 주름살을 지우거나 흰머리를 없애는 보정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했단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 주인공은 소설가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평소 한강도 이렇게 불안정한 모습일까. 한강은 이렇게 말한다. “저 자신을 떼어서 인물들에게 주기도 하지만 100% 저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혹시 자네들도 블라인드인지 뭐시기 들여다보고 그러나?”(이사) “죄송합니다. 이사님.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힌트 없습니까?”(김 대리)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컷짜리 웹툰 ‘김퇴사’의 대화 장면이다. 정사각형 안에 노랑과 검정 두 색만으로 직장생활의 에피소드를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한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를 압축된 컷에 완결성 있게 담아냈다. 미국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그림체도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김퇴사’는 포털 연재 없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만 공개되는데, 관련 계정의 팔로어가 인스타그램만 5만6000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 3월 연재 시작 후 총 조회 수는 2031만 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인스타그램 주소를 제외하곤 그동안 작가의 신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인터뷰도 없었다. 최근 동아일보와 첫 인터뷰를 가진 웹툰 ‘김퇴사’의 작가 지창현 씨(29). 그는 “내 만화를 보고 퇴사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두렵다. 원래 그럴 의도가 아닌데…”라고 했다. 작품 속 퇴사를 꿈꾸는 ‘김 대리’의 일상을 그리는데 독자들의 퇴사가 두렵다고? 그는 “회사에서 나 혼자만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김퇴사’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이렇구나’라며 직장생활의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자들의 퇴사 결심보다는 ‘김퇴사’ 덕분에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는 반응을 들을 때 뿌듯하다고. 지 씨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패션회사 브랜딩팀에서 3년간 근무한 브랜드 마케터 출신이다. 직장생활과 웹툰 작업을 6개월간 병행하다 지난해 9월 퇴사하고 현재는 전업작가로 나서 스스로 실제 ‘김퇴사’가 됐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작가 일에 좀 더 집중하고, 두 살짜리 딸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 그는 “퇴사를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며 “퇴사를 결정할 때 회사를 계속 다녀 희생해야 하는 것이 더 크면 퇴사를 해도 된다고 봤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회사를 다닐 때야 직장생활의 숱한 에피소드가 계속 나오겠지만, 퇴사 후엔 어디서 작품의 영감을 얻을까. 그는 요즘엔 웹툰 협업 기업들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사무실의 냄새를 최대한 들이마시려 한다”고 했다. “웬만하면 협업하는 회사 본사에 직접 가서 대면 미팅을 해요. 회사들의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기회거든요. 대중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만한 보편성을 갖는 것도 웹툰 작가에게 큰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만화 속 말풍선에 들어갈 구절은 수시로 메모한다고. 그의 노트에는 말풍선 후보가 60개 이상 쌓여 있다.인스타그램 구독자들이 대부분 25∼35세로 젊지만, 지난달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연 팝업스토어에선 40, 50대 중년층이 생각보다 많이 찾아 놀랐다고 한다. 그는 “40, 50대는 저희 세대보다 회사 문화를 격하게 경험하셔서 그런지 소리 내 웃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 말했다.앞으로 작품 계획을 묻자 딸아이를 둔 아빠로서 ‘육아 툰’에 도전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 아이가 눈 뜨기 시작할 때 출근하고 또 자야 할 때 퇴근하다 보니 회의감이 들었다. 요즘엔 아이가 일어난 시간에 같이 있기 위해 밤 늦게 새벽 3, 4시까지도 작업을 한다”며 육아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앞으로 ‘초보 아빠’ ‘초보 남편’을 다룬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싶어요. 육아 콘텐츠들이 인스타그램에 활발하게 올라오는데, 대부분 엄마들을 타깃으로 한 것들이 많거든요. 아빠들의 ‘비밀 기지’ ‘비밀 쉼터’가 될 수 있는 육아 툰을 그려보고 싶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법원이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가 두 번째로 낸 가처분 신청을 각하했다.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민희진이 자신을 어도어의 대표이사로 다시 선임하라며 하이브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각하했다. 하이브는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하이브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어도어 정상화, 멀티 레이블 고도화, 아티스트 활동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희진은 “법원은 주주 간 계약이 유효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며 “하이브와 체결한 주주 간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희진과 하이브 양측은 법정에서 각각 1승 1패를 거두게 되면서 양측이 불편한 동거를 계속 이어가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은 올해 5월에는 민희진이 자신의 해임을 추진하는 하이브의 임시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바 있다. 민희진은 최근 3년 임기의 어도어 사내 이사로 재선임됐다. 어도어는 민희진의 요청으로 오는 30일 이사회를 열고 민희진 대표이사 선임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법원의 각하에 따라 민희진의 대표이사 복귀는 불발될 것으로 보인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강 선생님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도 꿈 같은데, 그분 한마디에 제 책이 재조명돼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소설가 조해진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그가 올 8월 펴낸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문학동네)는 한강이 노벨 문학상 수상 직전 인터뷰에서 최근 읽은 책으로 꼽아 주목받았다. 실제로 노벨상 발표 직후 예스24에서 이 책의 일주일(10∼16일)간 판매량이 직전 일주일에 비해 138.9% 늘었다. 한강과 연락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은 너무 밀물 같은 축하에 약간 지칠 수도 있을 것 같아 축하 메시지만 보냈다”며 “큰 상을 받고도 인기에 부합하지 않고 고요하게 지나가는 모습, 세계시민으로서의 모습도 후배 작가로서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빛과 멜로디’는 전쟁과 이를 극복하는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일면식도 없는 전쟁 난민들에게 대가 없이 숙식을 제공하는 지구촌 사람들이 등장한다. 조해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동시대 전쟁을 바라보며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문학으로 증명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탈북인의 삶을 조명한 ‘로기완을 만났다’(창비), 해외 입양과 기지촌 여성 문제를 다룬 ‘단순한 진심’(민음사)을 통해 사회적 소외계층의 삶을 꾸준히 그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인터뷰집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미음)를 읽고 올 5월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현지에 거주 중인 윤지영 작가를 만났다. 이때 윤 작가의 이웃으로 2년 가까이 우크라이나 난민과 살고 있는 영국인 아만다 그리토렉스의 삶을 취재했다. 그리토렉스는 두 아들이 출가하고 남은 방 하나를 난민에게 선뜻 내줬다. 새 식구에 대해 그가 아는 신상 정보라곤 ‘나타샤, 39세’가 전부였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조해진은 “난민에게 대가 없이 자기 집을 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릴 때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제일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리토렉스의 이야기는 난민 식구를 받기 위해 새 커튼을 달고 집 안을 꾸미는 인물들로 작품에서 그려졌다. 그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점점 잊히는 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아예 전쟁이 있든 말든 거의 망각되고 있다. 전쟁 탓에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을 줄이고 물가가 올랐다고 비난하기도 한다”며 “폴란드 국경도시가 처음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이제는 거의 비어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지 못한 분들에게 작품이 다가갔으면 좋겠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난민 문제에 폐쇄적인 편이 아닌가 싶어요. 난민 인정 비율도 낮고, 여론도 좋은 편이 아니죠. 대만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났다는 가정하에 대만 피란민을 받아주는 한국인이 많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좀 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1월 5일 치르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겸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은 낙태나 동성 결혼, 세금, 이민문제 등에선 입장이 극명히 갈린다. 하지만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다. 어느 후보도 ‘보복 전쟁’에 열을 올리는 이스라엘을 강력히 비난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 내에 견고하게 구축된 이스라엘 세력의 힘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신간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외교정책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석학인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가 공저했다. 특히 미어샤이머는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 러시아의 침공을 불러올 거라고 예측했고, 실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더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미국 내 유대인들의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대정부 로비가 중동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내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는 30만 명의 개인 기부자가 막대한 기금을 조성해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 언론계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다. 각종 선거 기간에는 캠프들에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한다. 선거자금 조성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반(反)이스라엘 발언을 삼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1948년 건국전쟁(제1차 중동전쟁)부터 올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위한 군사·경제 원조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이제 미국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가 높지 않다는 것이 저자들의 시각이다. 미소가 팽팽히 대립한 냉전 때는 중동 지역에서 동맹의 가치가 컸지만, 냉전 종식 후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 오히려 지나친 친이스라엘 정책이 중동 내 반미 감정을 자극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9·11테러에서 보듯 과도한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인해 미국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핵심 공격 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를 정면에 내세운 이 책은 2007년 출간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미어샤이머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반유대주의 서적으로 낙인찍혀 미국 내에서 북콘서트나 관련 세미나를 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출간된 지 17년이 흘렀지만 두 석학이 지적한 미국 중동 정책의 현실과 대안은 여전히 적실성을 갖고 있다. 지난해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최근 확전과 더불어 막대한 민간인 희생자를 낳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을 확실히 압박하지 못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만류를 외면한 채 일방적인 군사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들은 미국의 패권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편중 정책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중동에서 반미 정서로 미국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틈을 타고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 미국 정부와 정치권이 ‘폭주’하는 이스라엘을 왜 제어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알기에 좋은 책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국내 최장수 방송 드라마인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로 사랑받았던 배우 김수미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경찰 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8시경 심정지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인은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해 몸에 이상이 생기는 고혈당 쇼크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고인은 지난 5월부터 피로 누적 등으로 활동을 중단해왔다. 1970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고인은 드라마 ‘전원일기’(1980년~2002년)에 일용엄니 역으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젊은 나이에 60대 노인 역할을 맡았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전 나이 순서대로 살아온 게 아니라 거꾸로 살았잖아요. 겨우 스물아홉에 일용어머니 역할을 했으니 제대로 된 청춘을 못 느끼고 살아서 좀 억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연기력을 인정받아 1986년 MBC 연기대상을 받았고 이후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 영화 ‘가문의 영광’ ‘맨발의 기봉이’ 등에서 괄괄한 어머니 역이나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를 코믹하게 연기해 인기를 누렸다. 최근까지도 영화·뮤지컬·예능 등에서 전방위로 활동해 온 김수미는 동료들에게 병색을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과 함께 함께 연기했던 동료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저마다 애도를 보내며 고인과의 기억을 추억했다. 배우 김용건(78)은 “2주전 마지막 통화를 하며 ‘또 봅시다, 오빠’라고 했는데 그 말을 못지켰다”며 “혹시 가짜 뉴스가 아닐까 싶었는데 황망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여배우로서 노인 역을 소화한다는 것은 배우로서 프로의식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그런 연기 욕심과 열정이 있으니 작품마다 새 인물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배우 최불암(84)는 “배우(俳優)란 ‘우수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아프거나 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들을 하지 않는다”며 “그런 배우 정신이 김수미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다양성, 직관력, 관찰력이 발달했던 충실한 배우였다”고 고인을 회고했다.함께 연기했던 동료들이 기억하는 김수미는 배우로서의 사명감뿐 아니라 인정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남 먹이기를 좋아해 촬영장에 음식을 잔뜩 해오곤 했다. 최불암은 “김치도 서너 가지 가져오고 고기도 여러 가지 해서 가져오곤 했다. 나를 보면 ‘회장님 오시는구나~’하면서 반갑게 맞아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전원일기’에서 응삼이 어머니 역으로 출연했던 김영옥(86)은 고인에 대해 “‘천생 연예인’이라며 “일에 목마른 사람처럼 오늘날까지 미친 듯이 뛰어온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20일 전쯤 통화를 할 때만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인사도 못 하고 갑자기 가 버리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배우 강부자(83)도 “입원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며칠 있으면 벌떡 일어나서 일 잘하겠지’ 생각했는데 너무 망연자실해서 앉아만 있다”고 말했다.함께 전원일기에 출연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73)은 이날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로 가족처럼 다가오신 분이라 그 슬픔이 가족을 잃은 것처럼 크게 다가온다”며 “후배 배우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신 고인에게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애도한다”고 밝혔다. 유족으로 딸 정주리, 아들 정명호, 배우인 며느리 서효림 씨 등이 있다.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11시. 02-2290-9456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김준희, 이하 출판진흥원)은 K-북의 해외 진출 확산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북의 해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 전시 및 작가 행사를 개최하고 저작권 수출 확대를 위해 출판 콘텐츠 소개 자료 번역, 출판사의 해외 도서전 참가 지원 및 K-북 수출 상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속적인 지원 사업으로 한국 출판사들의 수출 실적이 확대되고 있으며 해외 독자들의 K-북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작품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집중됨에 따라 이를 계기로 한국의 우수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출판진흥원은 2014년 ‘노랑무늬영원’ ‘채식주의자’의 전자책 제작을 지원했고 2018년에는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의 일본어판 제작을 지원한 바 있다.2024년 파리 올림픽 연계 K-북 전시 출판진흥원은 2024 파리 올림픽과 연계해 6월 5일부터 8월 30일까지 약 3개월간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한국 도서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는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8종을 비롯해 ‘글 없는 그림책’을 주제로 한 한국의 우수 그림책 51종을 전시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 ‘흰’ ‘작별하지 않는다’ 2종의 국내 원서와 불어 번역본도 함께 조명했다. 아울러 한국 웹소설 13종도 e북 리더기를 통해 현지 독자에게 소개하는 등 전시에 다양성을 더했다. 이번 전시에는 총 3279명의 현지 독자가 방문했다.2024년 프랑스 K-박람회에서 K-북 전시 이달 26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 파리 브롱냐르궁에서 개최되는 ‘2024 프랑스 K-박람회’에 K-북 전시와 작가 행사로 참여한다. 전시에서는 한국의 우수한 그림책 총 59종, 프랑스에 번역 출간된 한국 문학작품 국내본과 번역본 총 36종을 소개한다. 특히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쾌거를 기념하고자 ‘흰’ ‘작별하지 않는다’ 등 작품 원서 및 불어 번역본 5종을 특별 조명하는 코너를 마련해 프랑스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웹소설 지원의 일환으로 웹소설 작가 2인의 작품 총 4종도 함께 전시된다.2024 몬트리올도서전 스포트라이트 국가로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되는 ‘2024 몬트리올도서전’에는 스포트라이트 국가로 참여한다. 이 도서전에서도 ‘흰’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작가의 작품 원서 및 불어 번역본 8종 내외를 특별 조명해 전 세계 도서출판 관계자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전시는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과 ‘글 없는 그림책’을 주제로 한 한국의 우수한 그림책 총 59종, 캐나다에 번역 출간된 한국 문학작품 국내본 및 번역본 약 20종을 소개한다. 또한 웹소설 지원의 일환으로 웹소설 작가 2인의 작품 4종도 함께 전시되며 한국문화상자 ‘안녕상자’를 활용한 한글 소개 전시도 포함된다.K-북 해외 진출 돕는 다양한 사업 전개 출판진흥원은 2016년부터 해외 주요 도서전에 지속적으로 참가, 한국관을 운영하며 전시를 통해 국내 도서를 소개하고 여러 작가를 파견해 작가 행사를 개최하는 등 한국의 우수한 출판 콘텐츠를 해외에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2024년에는 볼로냐아동도서전,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상하이국제아동도서전(11월 예정) 등 총 3개 도서전에 참여해 수출 상담을 지원했다. 2015년부터는 국내 출판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가는 해외 B2B 도서전’을 개최해 왔다. 찾아가는 도서전은 해외에서 열리는 수출 상담회로 국내 참가사 및 위탁 도서를 현지 바이어와 B2B 수출 상담을 지원한다. 출판진흥원은 2015년 중국을 시작으로 2024년 현재까지 총 17개국을 방문(2020∼2022년 코로나19 기간 온라인 비대면 상담)해 총 39회 개최했으며 지금까지 국내 참가사 총 726곳, 해외 참가사 1235곳, 위탁 도서 4208종이 참가해 총 7028건의 상담을 진행했고 다수의 계약 실적도 창출했다. 또한 2018년부터 세계 각국의 바이어를 국내로 초청하는 ‘K-북 저작권 마켓’ 개최를 통해서도 한국 출판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롯데호텔 월드에서 개최된 K-북 저작권 마켓에는 국내 98개사, 해외 29개국 100개사가 참가해 1250건의 수출 상담이 진행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성과를 보였다. 출판진흥원은 2016년부터 국내 출판사의 수출용 홍보자료 제작도 지원하고 있다. 출판 콘텐츠 해외 진출의 기본이 되는 초록, 도서 샘플, 출판사 포트폴리오 번역을 지원해 수출을 돕고 있다. 2021년부터는 재외 한국문화원과 협업해 현지 맞춤형 K-북 홍보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매년 한국 작가와 현지 독자와의 만남, 현지 서점 연계 K-북 전시, 현지 독자 대상 한국도서 독후감 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한국 문학의 가치 확산 올해부터는 ‘문학나눔 사업’을 새롭게 펼친다. 추천된 국내 작가의 작품을 해외 독자 맞춤형으로 해외에 소재한 한국 문학 및 한국어 관련 기관에 보급한다. 한편 11월에는 일본 오사카한국문화원과 주영한국문화원과 함께 ‘한국 문학의 날’을 운영한다. 오사카에서는 최은영 작가와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한일 작가 대담 및 번역가와의 만남 행사를 열고 런던에서는 이금이 동화작가, 은희경 작가가 현지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진행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2013)는 영혼의 부서짐을 예민하게 감지한다는 평을 받는 소설가이자 시인 한강의 유일한 시집이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 호에 시가 실리고 이듬해 서울신문에 단편이 당선돼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 한강은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이었다. 작가가 8권의 소설을 내는 동안 틈틈이 쓰고 고른 시 60편을 추려 시집으로 묶었다. 한강의 시집은 ‘저녁의 소묘’ ‘새벽에 들은 노래’ ‘피 흐르는 눈’ ‘거울 저편의 겨울’ 등 연작들의 제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그 정조가 충분히 감지된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더욱 분명해지는 존재와 언어를 투명하게 대면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고통과 절망의 응시 속에서 반짝이는 깨어 있는 언어-영혼”(문학평론가 조연정)을 발견해가는 환희와 경이의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노벨 문학상 선정 사유를 밝힌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는 의미 있다. 한강은 인간 삶의 고독과 비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맞닥뜨리는 진실을 특유의 단단하고 시정 어린 문체로 새겨왔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그간 한강 문학을 이야기할 때 맨 먼저 언급돼온 강렬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문장들 너머에 자리한 내밀한 기원에 한발 가까이 다가가는 주춧돌 역할을 해준다. 시집에는 늦은 오후와 한밤, 한밤과 여명이 교차되는 저녁이나 새벽 시간을 배경으로 한 시들이 유난히 많다.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모든 것이/등을 돌리고 있다//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 (‘피 흐르는 눈 4’ 중에서) 사물의 윤곽이 흐릿하고 마음의 경계가 느슨해진 시간, 시인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근원적인 상실과 슬픔, 영혼의 균열에 대해 노래한다.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점 하나로/언어를 모르고/빛도 모르고/눈물도 모르며/연붉은 자궁 속”에서 “죽음과 생명 사이,/벌어진 틈”(‘마크 로스코와 나’ 중에서)을 좇는다. 거기에는 ‘영혼의 피 냄새’가 가득하다.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그래서/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고요히 붉은/영혼의 피 냄새//이렇게 멎는다/기억이/예감이/나침반이/내가/나라는 것도”(‘마크 로스코와 나 2’ 중에서)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일상적 삶에 안착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주인공들의 독백으로 읽히는 시도 적지 않다. 한강은 더 많은 눈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 몸을 ‘텅 빈 항아리’로 만들기도 한다. 시대의 모든 아픔이 그의 몸으로 파고든다.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중략)//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둥글게/더 둥글게/파문이 번졌을 테니까//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중에서) 육체가 마르고 텅 비어 가는데 영혼이 온전할 리 없다. 결국 영혼도 부서진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과 균열의 느낌은 어김없이 찾아든다. 하지만 한강은 단순히 아픔을 품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오히려 “그렇게 부서지고도”(‘피흐르는눈3’ 중에서) 살아 있음을, 고통과 대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면을 보며 발을 구를 것/발목이 흔들리거나, 부러지거나/리듬이 흩어지거나, 부스러지거나//얼굴은 정면을 향할 것/두 눈은 이글거릴 것/마주 볼 수 없는 걸 똑바로 쏘아볼 것/그러니까 태양 또는 죽음,/공포 또는 슬픔//그것을 이길 수만 있다면/심장에 바람을 넣고/미끄러질 것, 비스듬히” (‘거울 저편의 겨울 9―탱고 극장의 플라멩코’ 중에서) 한강은 상실감과 슬픔에 압도당하는 대신 고통과의 정면 승부를 택한다. 스스로에게 재우쳐 다짐하듯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그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시인이 20대에 쓴 시들이 주로 수록된 시집의 5부(‘캄캄한 불빛의 집’)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벅찬 숨결, 더운 핏줄, 열정적 사랑, 푸릇한 청춘의 시절을 통과해왔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살아라, 살아서/살아 있음을 말하라/나는 귀를 막았지만/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막을 수 있는 노래가/아니었다”(‘유월’ 중에서) 시인이 닿고자 하는 것은 결국 순수한 언어, 삶의 본질, 고통과 절망 너머의 어떤 절실함과 회복의 풍경들과 맞닿아 있다. “이제/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물으며 누워 있을 때/얼굴에/햇빛이 내렸다//빛이 지나갈 때까지/눈을 감고 있었다/가만히” (‘회복기의 노래’ 중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통을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소생의 길을 탐색하는 이 시집은 소설가 한강이 그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추구했던 본질로 향하는 열쇠와 같다. 출판사 측은 “무엇 때문에 태어나 왜 서로 죽고 죽이며 죽어 가는지, 누구나 한 번 품어봤지만 풀리지 않아 잊어버린 질문을 한강은 수십 년 붙들고 글을 써왔다”며 “(이 시집은) 인간과 인간됨에 대해 끝없는 질문의 궤적을 그리는 한강의 ‘나이테’”라고 소개했다. 사랑과 상실의 감정들을 노래한 전통적인 미학의 서정시들이 다수 수록돼 있는 만큼 한강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입문서로 택하기에도 좋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경매의 꽃은 특수물건이라는 말이 있다. 일반 경매보다 법적 권리관계가 복잡해 여러 차례 유찰된 물건을 뜻한다. 고수익을 낼 수 있지만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신간 ‘사례로 알아보는 돈 버는 부동산 경매’(새로운제안)는 10년간 특수물건 부동산 경매 소송을 다뤄온 변호사이자 경매 전문강사인 주희진 변호사(사법연수원 44기)가 실제 성공 사례를 토대로 의뢰인들이 어떤 점을 포착해 수익을 얻었는지 분석한 책이다. 5년 동안 경매 강의를 하면서 느꼈던 독자의 눈높이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특수물건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저자는 “낯선 용어 몇 가지만 이해하면 그 용어로부터 가지를 뻗어 어렵지 않게 필요한 지식 전반을 습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첫 장에서는 저자의 소송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방법으로 유치권이 깨질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이어 특수물건 중 특히 어려운 선순위 가등기 물건에 대해 알려준다. 선순위 가등기가 지워질 수 있는 때가 언제인지,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주 변호사는 한양대 법학과를 조기, 우수졸업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경매사건 전문 로펌에서 일했다. 2019년부터는 ‘열린 아카데미’에서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경매 강의를 했다. 현재 법무법인 윈스의 파트너 변호사다. 저서로는 ‘물어보기 부끄러워 묻지 못한 부동산 경매’(새로운제안)가 있다. 2만2000원.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사랑하는 연인 ‘구’를 기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의 시신을 먹는 ‘담’의 이야기를 그린 최진영(43)의 장편소설 ‘구의 증명’(은행나무) 중 일부다. 그의 팬들에게 즐겨 회자되는 이 구절은 어떻게 나온 걸까. 작가 최진영은 22일 첫 산문집 ‘어떤 비밀’(난다)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집필 배경을 밝혔다. 그는 “‘구의 증명’을 쓸 때 지금의 남편과 막 연애를 시작할 때였다”면서 “원래 저는 사랑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지런히 ‘담’을 따라가다 보니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2015년 출간된 ‘구의 증명’은 올 상반기(1∼6월) 교보문고 소설 분야 3위에 오르는 등 9년 만에 뒤늦게 주목받으며 ‘역주행’하고 있다. 이런 뒷심이 발휘되면서 그가 등단 18년 만에 처음 펴낸 이번 산문집은 예약 판매만으로 알라딘 주간베스트 2위에 올랐다. ‘어떤 비밀’은 그간 써 온 소설들의 에필로그 성격을 갖고 있다. 최진영은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어떤 ‘비밀’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등단 후 ‘해가 지는 곳으로’(민음사) 등 장편소설 8권과 소설집 4권을 냈다. ‘구의 증명’의 역주행 비결을 묻자 최진영은 “그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저는 모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면 저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또 쓰고 싶지 않을까요? 나만큼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결국엔 사람들이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닐까. 지겹고, 뻔하고, 할 만큼 했다, 볼 만큼 봤다 싶지만 여전히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은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새 산문집은 24개 절기마다 편지를 쓰고, 각각의 편지에 산문을 더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제주에 산다. 제주 옹포리에서 아담한 카페를 운영하는 남편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절기마다 편지를 써 손님들에게 전한 게 시작. 이날 간담회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하루 앞두고 열렸다. 서리 대신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최진영은 편지를 상대를 지극히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편지는 오직 너에게만 전하는 나의 마음이고 내가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메일만 하더라도 ‘보낸 메일’에 남아 있지만, 편지는 밀봉해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라며 “애틋하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소통 방식”이라고 했다. 최근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선 “휴대전화에 뜬 속보를 잊을 수가 없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한국어로 된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엄청난 응원이자 격려”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한강의 수상이 지역의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읽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고 한다. 최진영은 “‘소년이 온다’는 광주 이야기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이야기”라며 “특정 지역에 대해 쓴다는 게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나 주저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는데, 더 이상 그런 데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올 12월 제주 생활을 접고 가족과 함께 경기 파주시로 이사해 카페를 열 예정이다. 편지도 계속 쓸 생각. 그는 소설을 쓰다 보면 자신의 삶이 궁금해져 더 살아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10년 전 구와 담이 알려준 그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설이 근본적으로 저를 변화시킬 것이기에 앞으로의 소설 쓰기가 기대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스웨덴 한림원 회원이자 소설가인 스티브 샘 샌드버그는 13일(현지 시간)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한강 작가의 작품 중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를 추천했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찾는 전 세계 독자들 에게 한림원이 ‘입문서’를 제시한 것. 작품들에는 한강 작가의 고유한 스타일과 문학적 정수가 녹아 있다는 평가다. ‘한강 읽기’를 시작하려는데 뭐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이 책들을 먼저 펴봐도 좋겠다.》채식주의자‘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등 중편 소설 3편으로 엮은 연작 소설로 2007년 출간됐다.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를 보는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을 각각 담았다. 2016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에 이어 2017년 스페인 산클레멘테상을 받았다. 어느 날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에 사로잡힌 영혜는 육식을 거부한다. “아내가 평범한 여자라 좋았다”는 무관심한 남편은 영혜가 변한 이유에 관심이 없다. 그저 처가 식구들을 동원해 그녀의 ‘못된 습관’을 고쳐 놓으려 한다. 영혜의 아버지는 이에 동조하며 딸을 때려서라도 고기를 먹이려 하지만, 영혜는 이를 거부하고 자해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형부는 아내 ‘인혜’에게서 “동생의 몸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영혜에게 성적 욕망을 품게 된다. 처제인 영혜에게 자신의 작품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영혜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언니 인혜는 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했음에도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생을 지극히 보살핀다. “나는 나무라서 물과 햇빛만 있으면 된다”며 섭식을 거부하는 동생을 보면서 인혜는 복잡한 내면의 변화를 맞게 된다. 2016년 영국 부커상 수상작.한림원의 추천 이유주인공 영혜가 음식 섭취라는 규범을 따르기를 거부하면서 발생하는 폭력적 결과를 묘사한다. 혐오, 성적 매혹, 질투 등 주변 인물들의 다채로운 반응을 그린다. 이는 가족에게 수치심을 안겨줬다는 죄책감을 인정하지 않고 묵묵히 저항하는 영혜의 태도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와 직업주의, 때로는 폭압적인 사회 규범과 관습에 대한 날카로운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희랍어 시간어떠한 전조도 없이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한 남자가 만나 함께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 여주인공은 가정 폭력으로 언어 장애를 겪고 있으며 남자 주인공은 유전병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이후 이혼하고,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기는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선택한 것은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 여주인공은 더 이상 잘 사용되지 않는 희랍어는 더는 그녀를 해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의사소통 능력을 되찾기 위해 고대 희랍어 수업을 듣는다.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주인공은 그녀의 그리스어 교사다. 남자는 독일에서의 삶과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고 여자는 그 얘기를 말없이 듣는다.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고 세상과의 소통을 회복하려는 여정을 시작한다. 2011년 국내에 처음 출간됐으며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 출간됐다. 출간 후 10여 년이 흘렀지만 어느 순간에 접하더라도 두 인물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읽힌다는 평가를 받는다.한림원의 추천 이유‘희랍어 시간’은 짧고 강렬하면서도 주인공을 심리적으로 꿰뚫어 풀어내는 듯한 강점이 있다. 또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를 잃었거나 잃기 시작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초상화이기도 하다. 책은 말과 언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말이 어떻게 우리의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는지 고찰한다.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고 섬세한 정체성을 파괴하는데 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담고 있다.소년이 온다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6번째 장편소설이다. 2014년 출간 후 한국 만해문학상,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은 1980년 중학교 3학년인 소년 동호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동호는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친구 정대가 계엄군게 살해되자, 시민군의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는다. 매일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동호는 여러 생각에 빠진다.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린다.이 외에도 유령이 된 정대, 경찰에 잡혔던 은숙, 아들을 잃은 동호 어머니 등 광주민주화운동과 엮인 다양한 인물을 통해 다층적으로 당시를 회고한다.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처럼 시민군의 처참한 죽음을 묘사한 생생한 표현이 압도적이다.정치적 담론보다는 인간의 내면적 고통에 집중한 점이 특징이다.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한강 자신의 고백처럼 한강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한림원의 추천 이유서구 문학의 원형으로 꼽히는 고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 비견되는 작품이다. 환영이 어른거리는 듯하면서도 간결한 스타일로 예상을 비켜 간다. 묻을 수 없는 신원 미상의 시체들을 볼 때는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의 모티브가 떠오른다. 한강은 자신이 자란 도시인 광주에서 1980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배경으로 삼았다. 소설은 희생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잔혹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내 ‘증인 문학’ 장르에 접근한다.“가장 최근 작품에 애정… 첫 독자라면 ‘작별하지 않는다’와 시작하길”한강 작가 추천작“모든 작가는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합니다. 제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10일(현지 시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강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어떤 책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한강의 답변이다. 2021년 발표된 이 작품으로 한강은 지난해 프랑스 4대 문학상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한강은 출간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제주4·3사건을 다룬 소설,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를 고르자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작품 속 주인공 경하는 어느 겨울날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인선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게 됐다는 것. 곧장 병원을 찾은 경하에게 인선은 제주 집에 가서 혼자 남은 새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경하는 친구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 길로 제주로 향한다.경하는 인선의 집에서 70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얽힌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제주4·3사건 희생자 유족이었다. 경하는 인선과 정심이 수집한 기록을 보며 가슴 아픈 현대사를 실감한다.한강은 1990년대 후반 제주에서 몇 달간 살았을 때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4·3사건 당시 학살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작품 소재를 정하기도 하지만 어떤 장면이 떠오르면서 스스로 알고 싶어지는 것이 있다”며 “제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쓸 계획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한강이 그려내는 삶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경하의 꿈 역시 간절하고 비극적이다. 눈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심겨 있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생각하는 순간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그는 무덤들이 바다로 쓸려가기 전에 유골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다 꿈에서 깬다. 어쩌지 못한 채.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소설가 한강(54)은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일주일 만인 17일 첫 공개 행사에 참석해 이런 바람을 밝혔다. 한강은 이날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의 수상자로 단상에 서서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30년이 되는 해”라고 했다. 또한 한강은 “약 한 달 뒤 저는 만 54세가 된다”면서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작가 황금기’인 60세까지 6년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노벨상에 연연하지 않고 집필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강은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농담을 던졌고,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집필)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한강은 노벨상 발표 날도 회상했다. “노벨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에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았다”면서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한강은 “저는 술을 못 마신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다”며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도 했다. 대신 걷는 것, 아직 못 읽은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를 좋아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한강은 신작 얘기를 직접 꺼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 보고 있다”면서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정확한 시기를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은 별도로 초대받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한강이 노벨상 수상 결정 뒤 가진 첫 공개 행보였던 만큼 그를 만나려는 취재진과 시민들로 행사장 주변이 일찌감치 북적였다. 한강은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시상식장을 출입하며 취재진 등과 거리를 뒀고, 수상 소감 등은 재단을 통해 공개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소설가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 처음 참석한 공식 행사에서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거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 상반기에 신작을 내놓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가 언론 인터뷰를 제외하고 공개 석상에서 수상 소감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한강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해 “제 개인적 삶의 고요에 대해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며 “저의 일상은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믿고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예측하면 늘 틀리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해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한강은 통상적인 작가의 전성기를 60세까지로 본다며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아래는 포니정재단이 공개한 한강의 수상소감 전문.〈한강 작가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수상소감 전문〉원래 이틀 전으로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진행했다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걸음하지 않으셨어도 되고, 이 자리를 준비하신 분들께도 이만큼 폐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셨으니, 허락해 주신다면 수상소감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간략하게나마, 아마도 궁금해하셨을 말씀들을 취재진 여러분께 잠시 드리겠습니다.노벨 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에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습니다. 무척 기쁘고 감사한 일이어서, 그날 밤 조용히 자축을 하였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한편으로 이후 제 개인적 삶의 고요에 대해 걱정해주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세심히 살펴주신 마음들에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은 올 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 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마지막으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저와 연결되는 통로를 통일하여서 모든 혼란과 수고, 제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없애고자 합니다. 제가 출간한 책들에 관련된 일들은 판권을 가진 해당 출판사에 부탁드리고, 그 카테고리에 잡히지 않는 모든 일들은 문학동네 담담 편집자의 이메일로 창구를 일원화하겠으니 부디 참고 부탁드립니다.이제,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해온 수상소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합니다.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제가 쓰려는 인물들을 알아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큽니다. 저는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삼십년이 되는 해입니다.이상한 일은, 지난 삼십년 동안 제가 나름으로 성실히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됩니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입니다.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 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말입니다.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지난 삼십년의 시간 동안 저의 책들과 연결되어주신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가고 계시는 모든 출판계 종사자 여러분과 서점인들께, 그리고 동료,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건넵니다. 저를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분들과 포니정재단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이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발표하는 첫 작품은 ‘겨울 3부작’의 마지막 경장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내년 초에는 신작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6일 문학동네 관계자는 “(한강 작가가) 차기작으로 ‘겨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을 쓰고 있다”며 “11월 첫째 주에는 작품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그 무렵 원고가 들어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한강은 13일(현지 시간) 스웨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월 혹은 11월 첫째 주까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마치고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서 낭독할 연설문을 쓰기 시작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한강이 발표할 이번 신작은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과 함께 ‘겨울 3부작’ 혹은 ‘눈 3부작’으로 불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작품이 공개되면 두 편의 단편과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가 완성된다. 앞선 두 단편에는 겨울의 차가움과 적막, 흰 눈의 이미지가 공통적으로 담겼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잡지사 내 노동쟁의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별’은 어느 겨울 벤치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눈사람이 돼버린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개인의 상처 등을 주로 다뤄왔던 최근작과 달리 차기작은 밝고 짧은 분량의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그동안) 밝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말씀을 계속 하셨고 짧은 작품이라고 하셨다”며 “편집자들도 어떤 작품이 될지 무척 궁금해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고가 들어온 이후로도 최종 원고가 나오기까지 교정 등 여러 작업이 남아 있어 구체적인 출간 시점을 예측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빠르게 진행된다면 내년 초에는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이 60∼70대에 수상한 데 반해 한강은 50대 초반에 수상했다. 수상 이후 발표할 작품 리스트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한강의 최근작은 2021년 발표한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다. 한강은 15일에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메일 구독 형식의 무크지 ‘보풀 사전’을 통해 917자 분량의 산문 ‘깃털’을 선보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 뒤 공개한 첫 글로, 외할머니와의 추억과 흰머리, 깃털, 웃는 얼굴, 전구빛 등을 ‘흰’ 이미지로 연결시켰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코딩 스킬이 필요하다니까 코딩 가르쳐야지’ 하는 식으로 접근해선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요.”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48)는 15일 신간 ‘넥서스’(김영사·사진) 화상 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 사회에선 “어떤 스킬을 가르칠 것인가 너무 좁게 정의해선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20년 후에는 AI가 코딩을 너무 잘해서 인간이 코딩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는 “20년 후 인력시장이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50세에 완전히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신적 유연성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라리 교수는 신간에서 AI는 인간이 발명한 어떤 기술과도 다르며, 독립적인 행위 주체자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독재국가가 AI의 잠재적 위협에 더 취약하다는 점도 짚었다. 권력자를 견제할 민주적인 장치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초기에는 독재자가 AI를 활용해서 자국민을 더 잘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오히려 AI가 독재자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며 “AI가 북한의 김정은을 그대로 좌지우지하는 입장이 된다면 그걸로 그냥 끝”이라고 했다. 그는 몇몇 국가가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전 세계를 지배했듯 현재도 AI 선두주자로 나선 소수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AI에 대한 지식은 미국과 중국의 아주 극소수 회사만 가지고 있고 다른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AI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반 대중과 정부에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