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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 궁금해요. 어떻게 변했을지. 그동안 못 본 세상이 너무 궁금해요.” 열다섯 살 때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해 지금은 낮과 밤만 겨우 감지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조승리 작가(39)의 말이다. 하지만 15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이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에서 낙담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신파는 질색”이란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이다. 조 작가가 지난해 낸 첫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달)는 ‘깜짝’ 14쇄를 찍으며 출판가에 화제를 몰고 왔다. 그가 기세 좋게 1년 만에 신작 에세이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세미콜론)을 최근 냈다. 175cm 훤칠한 키의 조 작가는 담당 편집자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은 채 걸어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 어색한 기색도 없이 ‘잇몸 웃음’을 발사했다. “제가 옷을 사러 가면요. 일단 더듬어 봐요. 손에 닿는 촉감으로 상상해요. 거기서부터 물어보기 시작해요. 이 레이스는 무슨 색이야? 전체적으로는 무슨 색이야? 빨강은 쨍한 빨강이야 아니면 어두운 빨강이야?” 그가 질문이 많은 건 그렇게 수집한 감각들의 교집합이 곧 자신의 관점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티셔츠를 두고도 어떤 사람은 보라색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분홍색이라고 해요. 같은 미술품인데도 누구랑 보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다르고 다른 이야기를 해줘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면서 같은 걸 물어볼 때가 있어요. 그 안에서 나만의 상상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아요.” 책 속엔 독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사례가 가득하다. 작가의 일터는 마사지숍. 손님의 몸에 밴 파스 냄새와 해장국 누린내로 고된 삶을 짐작하고, 여행으로 간 백두산 천지에선 인파의 감탄으로 눈앞의 풍광을 감각한다. 나프탈렌 냄새가 밴 지폐 한 장으로 상대의 가난과 고독을 헤아리는 장면에선 탄식이 나온다. 그는 금·토·일요일 주 3일 마사지숍으로 출근하고 나머지 4일은 글을 쓴다. 점자 전자 단말기로 초고를 쓴다. 이 단말기로는 행갈이를 하거나 오타를 잡아내는 게 어려워 다시 PC로 옮겨서 작업하곤 한다. 퇴고할 땐 다시 점자 단말기를 손으로 만지거나 음성 프로그램으로 소리로 들으며 퇴고한다. 더딜 것 같지만 아니다. 다음 달에만 신간 두 권이 예정돼 있다. 문학동네 ‘월급사실주의’ 앤솔로지와 자전적인 연작소설이다. 그 뒤엔 일본 추리소설가 와카타케 나나미처럼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고 싶단다. 조 작가는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곳에 꺼내 놓는 게 내 글쓰기의 사명”이라고 했다. 이번 신간에 소개한 한 에피소드에서 그는 자신을 코앞에 두고 ‘저런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식당 주인 앞에서 어깨를 곧게 펴고 국을 떠먹으며 다짐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써야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거야.” 첫 책이 복지관 산문 교실 은사인 박현경 동화작가에게 헌정하는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7년 넘게 눈이 돼준 활동지원사 수미 씨에게 헌정하는 책이라고 했다. 그는 “조금 오버일 수도 있는데 어머니 같은 분”이라며 “저를 처음으로 자랑스러워한 분이었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어질 즈음, 그는 “어머, 나 주책 떤다. 수미 씨 얘기 이제 그만해. 금지어”라며 까르르 웃었다. 다람쥐가 나무 위로 올라가듯 재바른 웃음이었다. “신파는 질색”이라는 사람다웠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한강의 산문 ‘북향 정원’에서)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사진)이 수상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책을 24일 선보인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는 “한 작가의 산문집 ‘빛과 실’을 출간한다”고 16일 밝혔다. 172쪽 분량인 신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강연문을 포함해 미발표했던 시와 정원을 가꾸면서 쓴 일기 등 총 10여 편이 수록된다. 출판사 측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부터 산문집 시리즈 ‘문지 에크리’ 중 한 권으로 출간을 준비해 왔던 책”이라며 “한 작가가 과거에 써 뒀던 원고 등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책이 특히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한 작가가 기존에 공개하지 않았던 글들이 다수 수록됐다는 점이다. 이번 산문집에는 미발표 원고가 절반 정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산문뿐 아니라 시도 실렸으며 지난해 ‘문학과사회’ 가을호(147호)에 실린 시 ‘(고통에 대한 명상)’과 ‘북향 방’ 두 편도 수록됐다. 지난해 12월 스웨덴에서 발표한 노벨 문학상 강연문 ‘빛과 실’이 공식적으로 책에 수록되는 것도 처음이다. 산문집의 제목 역시 이 강연에서 따왔다. 출판사에 따르면 예약 판매는 따로 하지 않고, 24일부터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해당 신간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소설가 한강의 유일한 산문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는 2007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 2009년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을 냈으나 현재 모두 절판된 상태다. 한편 지난해 말부터 집필 마무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던 한 작가의 차기 소설은 올 상반기에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 전부터 ‘겨울 3부작’의 마지막 편을 경장편 분량으로 집필해 왔다. 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소설이다. 해당 작품이 공개되면 앞선 두 편의 단편과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가 완성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기차역 대합실 풍경을 떠올려보자. 까치발을 세워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잘 가라고 손 흔들고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마중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의 표정은 묘하게도 닮았다. 시인 박준(42)은 마음속 액자에 걸어둔 이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마중은 기다림을 먼저 끝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배웅은 기다림을 이르게 시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과 돌아서는 순간이 엇비슷해진다.’(산문 ‘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에서) 7년 만에 새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를 낸 박 시인을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났다. 마중과 배웅에서 시인은 누굴 떠올렸을까. 어쩌면 수록 시 ‘블랙리스트’가 힌트가 될 것 같다.‘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생전 몇 명 이름을 얘기하며 ‘내 장례 때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청승맞은 소리 마시라고 앞에선 타박했지만, 멋지단 생각도 들었다”고 시인은 회고했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한 번쯤 생각하는 게 시인의 태도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내가 죽었을 때 무슨 생각으로 올까,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까 이게 연결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블랙리스트는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 나름의 마중이자 배웅이었던 셈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났다. “미리 생각해서 마중 나가고 혹은 가는 거 알면서도 조금 더 앉아서 배웅하고. 이게 가장 인간다운 시간이고, 인간다운 시간에서 인간다운 정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마중하고 배웅한 관계지만, 정작 영원한 이별 앞에선 마중도 배웅도 미진하다. 시집에는 그런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차마 얘기하지 못하는 더 많은 죽음들이 있어요. 욕심 같아선 한 권을 다 장례식으로 채우고 싶었어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전혀 마르지 않는. 근데 마지막에 이를 악물었어요. ‘이건 독자들에게 너무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떤 뜨거운 재료도 읽는 이들을 위해 호호 불어 내놓자는 게 박 시인의 태도다. “시인이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시는 샤우팅하지 않잖아요. 물론 나는 내적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지만 이 소리가 타인의 귀를 찌르지 않는다는 거죠. 내 목청을 뚫고 찌르고 나온 것이지만 타인을 훼손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요.” 그런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시의 화법을 닮아갔으면 싶다. “김치 먹을 때 ‘대 좋아해 이파리 좋아해?’ 이런 것은 정보의 대화가 아니라 정서의 대화죠. 상대가 대를 좋아한다고 미워하지 않죠. ‘난 이파리를 좋아하는데 저 별종은 왜 대를 지지할까’ 생각하지 않잖아요. 긍정적인 인간의 대화는 시에 가까워요. 만약 우리가 여전히 시를 읽어야 한다면 시의 화법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도인 같다’고 하자, 박 시인은 손사래를 치며 “나도 무슨 선비나 신선처럼 ‘허허’ 하는 정서의 대화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날 선 대화, 정보의 대화가 오가는데 이런 완충이 있어야 다시 또 돌직구를 날릴 수 있죠. 상처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요? 시간이 지나면 피멍이 들죠. 그냥 그 위로 다른 말들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 연고처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한강의 산문 ‘북향 정원’에서)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이 수상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책을 24일 선보인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는 “한 작가의 산문집 ‘빛과 실’을 출간한다”고 16일 밝혔다.172쪽 분량인 신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강연문을 포함해 미발표했던 시와 정원을 가꾸면서 쓴 일기 등 총 10여편이 수록된다. 출판사 측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부터 산문집 시리즈 ‘문지 에크리’ 중 한 권으로 출간을 준비해 왔던 책”이라며 “한 작가가 과거에 써 뒀던 원고 등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책이 특히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한 작가가 기존에 공개하지 않았던 글들이 다수 수록됐다는 점이다. 이번 산문집에는 미발표 원고가 절반 정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산문뿐 아니라 시도 실렸으며 지난해 ‘문학과사회’ 가을호(147호)에 실린 시 ‘(고통에 대한 명상)’과 ‘북향 방’ 두 편도 수록됐다. 지난해 12월 스웨덴에서 발표한 노벨 문학상 강연문 ‘빛과 실’이 공식적으로 책에 수록되는 것도 처음이다. 산문집의 제목 역시 이 강연에서 따왔다. 출판사에 따르면 예약 판매는 따로 하지 않고, 24일부터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해당 신간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소설가 한강의 유일한 산문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는 2007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 2009년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을 냈으나 현재 모두 절판된 상태다.한편 지난해 말부터 집필 마무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던 한 작가의 차기 소설은 올 상반기에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 전부터 ‘겨울 3부작’의 마지막 편을 경장편 분량으로 집필해 왔다. 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소설이다. 해당 작품이 공개되면 앞선 두 편의 단편과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가 완성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기차역 대합실 풍경을 떠올려보자. 까치발을 세워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잘 가라고 손 흔들고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마중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의 표정은 묘하게도 닮았다. 시인 박준(42)은 마음속 액자에 걸어둔 이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마중은 기다림을 먼저 끝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배웅은 기다림을 이르게 시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과 돌아서는 순간이 엇비슷해진다.’(산문 ‘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에서)7년 만에 새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를 낸 박 시인을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났다. 마중과 배웅에서 시인은 누굴 떠올렸을까. 어쩌면 수록 시 ‘블랙리스트’가 힌트가 될 것 같다.‘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실제로 아버지는 “생전 몇 명 이름을 얘기하며 ‘내 장례 때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청승맞은 소리 마시라고 앞에선 타박했지만, 멋지단 생각도 들었다”고 시인은 회고했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한 번쯤 생각하는 게 시인의 태도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내가 죽었을 때 무슨 생각으로 올까,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까 이게 연결되는 거 아니겠습니까.”말하자면 블랙리스트는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 나름의 마중이자 배웅이었던 셈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났다. “미리 생각해서 마중 나가고 혹은 가는 거 알면서도 조금 더 앉아서 배웅하고. 이게 가장 인간다운 시간이고, 인간다운 시간에서 인간다운 정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평생 마중하고 배웅한 관계지만, 정작 영원한 이별 앞에선 마중도 배웅도 미진하다. 시집에는 그런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차마 얘기하지 못하는 더 많은 죽음들이 있어요. 욕심 같아선 한 권을 다 장례식으로 채우고 싶었어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전혀 마르지 않는. 근데 마지막에 이를 악물었어요. ‘이건 독자들에게 너무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어떤 뜨거운 재료도 읽는 이들을 위해 호호 불어 내놓자는 게 박 시인의 태도다. “시인이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시는 샤우팅하지 않잖아요. 물론 나는 내적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지만 이 소리가 타인의 귀를 찌르지 않는다는 거죠. 내 목청을 뚫고 찌르고 나온 것이지만 타인을 훼손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요.” 그런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시의 화법을 닮아갔으면 싶다. “김치 먹을 때 ‘대 좋아해 이파리 좋아해?’ 이런 것은 정보의 대화가 아니라 정서의 대화죠. 상대가 대를 좋아한다고 미워하지 않죠. ‘난 이파리를 좋아하는데 저 별종은 왜 대를 지지할까’ 생각하지 않잖아요. 긍정적인 인간의 대화는 시에 가까워요. 만약 우리가 여전히 시를 읽어야 한다면 시의 화법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도인 같다’고 하자, 박 시인은 손사래를 치며 “나도 무슨 선비나 신선처럼 ‘허허’하는 정서의 대화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날 선 대화, 정보의 대화가 오가는데 이런 완충이 있어야 다시 또 돌직구를 날릴 수 있죠. 상처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요? 시간이 지나면 피멍이 들죠. 그냥 그 위로 다른 말들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 연고처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자 페루의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요사(사진)가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의 아들인 알바로 바르가스요사는 13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36년 페루에서 태어난 고인은 초창기엔 AFP통신과 프랑스 국영 TV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1963년 육군사관학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도시와 개들’을 펴내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원주민 착취를 다룬 소설 ‘녹색의 집’, 소설의 전복성을 강조한 에세이집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도 출간된 ‘염소의 축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등도 큰 사랑을 받았다. 바르가스요사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와 카를로스 푸엔테스(파나마), 훌리오 코르타사르(아르헨티나)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 전성기를 이끈 4인방으로 꼽힌다. 1994년 영국 맨부커상과 비견되는 스페인 문학상 ‘세르반테스상’을 받았으며,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위원회는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고 평했다. 고인은 수상 강연에서 “가난하고 불의가 만연한 나라에서 글을 쓰는 게 사치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이 내 소명의식을 꺾진 못했다”고 했다. 고인은 정치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2011년 스페인은 고인의 문학성을 인정하며 그를 후작으로 봉작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13일(현지시간)별세했다. 향년 89세.고인의 아들인 알바로 바르가스 요사는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부친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부고를 전했다. 요사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훌리오 코르타사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 붐을 이끈 작가 4인방으로 꼽힌다.1936년 페루에서 태어난 요사는 1959년부터 파리 , 런던 ,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살다가 1974년 페루로 귀국했다. 한때 AFP통신과 프랑스 국영 TV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시와 개들’(1963)를 펴내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원주민 착취를 다룬 소설 ‘녹색의 집’, 소설의 전복적인 성격을 강조한 에세이집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94년 세르반테스상을 받았고, 2010년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정치에도 활발히 참여해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패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강연에서 그는 “독자가 적고 가난하고 문맹인 사람이 많고 불의가 만연하며 문화가 소수의 특권인 나라에서 글을 쓰는 것이 나만의 사치가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이 소명의식을 꺾지 못했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목욕탕은 작가 김영하에게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인가 보다. 직업군인이던 그의 아버지는 서울 집으로 돌아올 때면 김영하 형제를 데리고 목욕탕부터 갔다고 한다. 어린 형제에게 아버지와의 목욕탕 나들이는 꽤 기다려지는 행사였다.그러나 추억은 마냥 낭만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 신발장에 올려둔 아버지의 신발을 누가 훔쳐 갔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김영하 형제는 집에도 못 간 채 아버지가 목욕탕 주인과 싸우는 걸 지켜봐야 했다. 국민학생이었던 김영하는 목욕탕의 벌거벗은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인과 대거리하는 아버지가 부끄럽고 싫었다.어느덧 57세가 된 김영하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아버지 나이는 마흔이었고, 지금 내 나이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렸던 젊은 아버지의 행동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마치 우주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이끌리는 것만큼이나 자명하다고.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리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라는 고백이 담담하게 느껴진다.신간은 작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이다. “이 세상으로 나를 초대하고 먼저 다른 세계로 떠난 두 분에게”라는 첫 장의 헌사가 암시하듯, 신간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등장한다. 누구든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그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터. 쉰이 넘은 작가는 부모가 자신에게 남긴 것들에 대해 찬찬히 돌이켜 본다. 2023년 봄, 어머니의 빈소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인상적이다. 그는 여든이 훌쩍 넘은 엄마의 친구들로부터 어머니가 생전 숨겨온 비밀을 듣게 된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엄마에 대해 별로 알고 있는 게 없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그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 입을 다문 채 이 세상을 떠났으며, 이제 더 이상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이가 됐다. 소설가인 아들은 엄마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엄마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해내야 하는,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고.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메가 파이어(Mega Fire)가 판을 뒤집고 있습니다. 이제 기존의 사고방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습니다.”지난달 경북 지역 등에 발생한 산불은 4만 ha 이상을 태우는 초대형 산불을 일컫는 ‘메가 파이어’가 더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진화 수단을 총동원해도 잡히지 않았던 불. 당연히 장비와 인원 보강 등 더 적극적인 산불 대비가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한 게 아닐까.‘메가 파이어’를 새로운 생태적 재앙으로 조명한 신간 ‘숲이 불탈 때’(필로소픽)를 쓴 조엘 자스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철학과 교수(사진)는 10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때는 2017년 7월이었습니다.” 자스크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 바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친구의 집을 비롯한 일대가 황폐화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큰 불길은 잡힌 상태였지만 숨이 막힐 듯한 냄새로 가득했다고 한다. 철학자인 그가 직감한 건 이 화재가 ‘정상적’이 아니란 느낌이었다.“숯덩이처럼 타버린 숲을 바라보며 느꼈던 재앙의 감각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습니다.”자스크 교수는 사람들이 산불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홍수나 지진에 비해 산불은 상대적으로 작은 영향을 미치며, 필요한 경우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불에 타지 않는 건축 자재를 사용한다거나, 거주지를 숲에서 멀리 떨어뜨린다거나, 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등의 재정비는 뒷전입니다. 현상 자체를 통제하려는 이상만 고집하고 있죠. 하지만 메가 파이어는 우리의 뒤통수를 가격합니다. 메가 파이어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마치 폭발하는 화산 위에 뚜껑을 덮으려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게다가 다른 재난과 달리 메가 파이어는 주로 인간에 의해 발생한다. 그는 “어떤 재난도 인간이 직접 일으킬 수 없지만, 산에 불을 내는 건 가능하다”며 “지중해 지역에서 번개 등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은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자스크 교수는 심지어 메가 파이어가 새로운 유형의 전쟁과 테러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2018년 이스라엘에선 방화용 풍선과 연을 사용한 테러로 약 2000ha의 숲이 불에 휩싸였다. 그는 “숲에 불을 지르는 건 인류가 존재한 시간만큼 오래된 전술”이라며 “이상 기후를 테러리스트들이 악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때문에 자스크 교수는 “위험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예방”이라며 “의학과 마찬가지로 예방에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계획적 불놓기’를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 아래 불을 놓아 산불 발생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연료들을 미리 태워 없애는 방법이다. 그는 “2019년 호주를 황폐화시킨 대형 산불은 과도한 더위와 가뭄 때문이지만, 숲을 관리하는 법을 알던 원주민 문화가 파괴되며 ‘계획적 불놓기’가 사라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짚었다.“미국과 호주, 스웨덴, 그리스, 스페인 등 세계 곳곳이 불타고 있습니다. 모든 기후 이상 시나리오 중에서도 우리의 터전이 불길에 잠식당하는 게 가장 위협적입니다. 이에 대처할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때입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미국의 한 도서관에서 99년간 연체됐던 책이 반납됐다. 9일 CNN에 따르면 미 뉴저지 오션카운티도서관에선 1926년 3월에 대출된 책 ‘소녀와 소년을 위한 집에서 만드는 장난감(Home-Made Toys for Girls and Boys)’이 최근 반납됐다. 책을 반납한 메리 쿠퍼(81)는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 이 책을 발견했다고 한다. 1911년 출판된 이 책은 나무와 금속, 가정용품 등으로 아이 장난감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실려 있다. 책에는 당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할 때 사용했던 카드가 골판지 커버에 쌓인 채 들어 있었다. 책을 빌린 사람은 쿠퍼의 외할아버지인 찰스 틴턴(1884∼1927). 그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해당 도서를 대여했다. 목수였던 틴턴은 딸인 쿠퍼의 어머니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책을 대출한 것을 보인다. 실제로 쿠퍼는 책에서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장난감 배와 똑같은 모양의 배 그림을 발견하기도 했다. 오션카운티도서관 관계자는 “우리 도서관이 올해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이 책이 돌아온 건 마치 신의 섭리 같다”며 기뻐했다. 도서관 측은 반납된 책을 도서관 전시장에 보관하고, 연체료는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포장마차에 술 마시러 오는 분들, 길에서 물건 파는 분들….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한국인에게서 놀라움을 넘어 경이를 느낀다는 프랑스인이 있다. 2003년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에 한국학과를 개설한 데 이어,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를 세운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교수(73)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 한국인 며느리가 있고, 한국어 이름(장길도)도 따로 있는 ‘원조격’ 한류 전도사다. 지난달 31일 에세이 ‘경이로운 한국인’(마음의숲)을 펴낸 드크레센조 교수를 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부인이자 엑스마르세유대 한국학과 교수인 김혜경 씨도 함께했다. 두 사람은 현재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살고 있다. “한국에선 주사를 놓기 전에 볼기를 찰싹 때리죠.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순간이에요. 환자가 주사 맞는 아픔을 잊게끔, 생각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꾸기 위해 때리는 건데 이게 아주 재밌습니다.” 에세이엔 이러한 사례가 100개 넘게 실렸다.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며 “한국에 대한 책은 꽤 있는데 한국 사람들에 대한 책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해마다 두세 차례 한국을 찾고, 그때마다 하루 두세 건씩 약속을 소화하는 ‘인싸’다. 이 책은 그가 여러 한국인과 교류하며 찾아낸 한국의 독특한 문화 관찰기를 모은 셈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드크레센조 교수는 한국인 작가들이 하나같이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괴고 글씨를 쓴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이 습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지 알아보고, 자음과 모음이 결합돼 네모꼴을 이루는 한글의 문자 모양과 필기법의 상관관계를 찾아 나섰다.드크레센조 교수는 201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드크레센조’ 출판사를 세운 뒤 한국 소설가 한강 은희경 정유정 김애란 등의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이승우 작가의 장편소설 ‘캉탕’을 김 교수와 공역해 2023년 한국문학번역상 대상도 받았다. 강동호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2012∼2024년 프랑스에서 번역된 한국문학 단행본은 총 242종. 이 중 21.5%에 이르는 53종이 드크레센조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단일 출판사로서는 엄청난 비중이다. 부인인 김 교수는 현재 엑스마르세유대 아시아학연구소장을 지내고 있다. 김 교수는 “요즘 입학 경쟁률이 가장 높은 게 한국학”이라며 “75명을 뽑는데 해마다 2000명 이상 지원자가 온다. 이 덕에 올해부터 정원이 10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지금 프랑스에선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많이 몰리지 않는 대학도 한국학과는 1000명씩 지원해요. 유럽에서도 프랑스가 가장 열기가 뜨겁다고 할 수 있어요.”(김 교수)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 같은 한류 붐 형성에 한국 영화의 역할이 컸다고 평했다. 그다음 K팝과 드라마다. K문학이 다음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한국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예요. 시집의 판매량과 출간 부수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프랑스에선 상상할 수 없는 숫자죠. 현재 한국도 문학이 다른 나라처럼 어렵다지만, 그래도 한국인 정서에는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다시 문학이 자기 자리를 되찾을 거라고 봅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포장마차에 술 마시러 오는 분들, 길에서 물건 파는 분들….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한국인에게서 놀라움을 넘어 경이를 느낀다는 프랑스인이 있다. 2003년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에 한국학과를 개설한 데 이어,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를 세운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교수(73)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 한국인 며느리가 있고, 한국어 이름(장길도)도 따로 있는 ‘원조격’ 한류 전도사다.지난달 31일 에세이 ‘경이로운 한국인’(마음의숲)을 펴낸 드크레센조 교수를 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부인이자 엑스-마르세유대 한국학과 교수인 김혜경 씨도 함께 했다. 두 사람은 현재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살고 있다.“한국에선 주사를 놓기 전에 볼기를 찰싹 때리죠.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순간이에요. 환자가 주사 맞는 아픔을 잊게끔, 생각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꾸기 위해 때리는 건데 이게 아주 재밌습니다.”에세이엔 이러한 사례가 100개 넘게 실렸다.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며 “한국에 대한 책은 꽤 있는데 한국 사람들에 대한 책은 많지 않다”고 했다.그는 해마다 두세 차례 한국을 찾고, 그때마다 하루 두세 건씩 약속을 소화하는 ‘인싸’다. 이 책은 그가 여러 한국인과 교류하며 찾아낸 한국의 독특한 문화 관찰기를 모은 셈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드크레센조 교수는 한국인 작가들이 하나같이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괴고 글씨를 쓴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이 습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지 알아보고, 자음과 모음이 결합돼 네모꼴을 이루는 한글의 문자 모양과 필기법의 상관관계를 찾아 나섰다.드크레센조 교수는 201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드크레센조’ 출판사를 세운 뒤 한국 소설가 한강 은희경 정유정 김애란 등의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이승우 작가의 장편소설 ‘캉탕’을 김 교수와 공역해 2023년 한국문학번역상 대상도 받았다. 강동호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2012~2024년 프랑스에서 번역된 한국문학 단행본은 총 242종. 이 중 21.5%에 이르는 53종이 드크레센조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단일 출판사로서는 엄청난 비중이다. 부인인 김 교수는 현재 엑스-마르세유대 아시아학연구소장을 지내고 있다. 김 교수는 “요즘 입학 경쟁률이 가장 높은 게 한국학”이라며 “75명을 뽑는데 해마다 2000명 이상 지원자가 온다. 이 덕에 올해부터 정원이 10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지금 프랑스에선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많이 몰리지 않는 대학도 한국학과는 1000명씩 지원해요. 유럽에서도 프랑스가 가장 열기가 뜨겁다고 할 수 있어요.”(김 교수)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같은 한류 붐 형성에 한국 영화의 역할이 컸다고 평했다. 그다음 K팝과 드라마다. K문학이 다음 바톤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한국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예요. 시집의 판매량과 출간 부수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프랑스에선 상상할 수 없는 숫자죠. 현재 한국도 문학이 다른 나라처럼 어렵다지만, 그래도 한국인 정서에는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다시 문학이 자기 자리를 되찾을 거라고 봅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배출됐지만 문학 붐을 기대했던 ‘노벨문학상 효과’는 반년 만에 잦아든 것으로 보인다. 문학·출판 업계에선 “실제 체감 경기는 더 심각한 상황”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탄핵 정국 등으로 ‘연초 특수’까지 사라지면서 시장은 더욱 경색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 초 문학 매출 반 토막 수준”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지난해 10월 서적출판업 생산은 9개월 만에 반등해 1년 전보다 1.3% 늘었다. 지난해 2월 이후로 9월까지 마이너스 행진을 하다가 노벨상 발표 직후 도서 구매가 급증했다. 당시 한 작가의 소설들은 닷새 만에 100만 부가 팔렸고, ‘텍스트힙(Text Hip·독서를 멋지게 여기는 유행)’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이에 자연스레 한국 문학 전체로 온기가 퍼지는 ‘한강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하지만 반향은 불과 한 달 만에 꺾이기 시작했다. 11월 서적출판업 생산은 전년보다 ―12.7% 급감했다. 12월에도 ―4%가 감소해, 한 달이 채 지속되지 못했던 셈이다. 해당 지수는 올해 1월에 5%가량(잠정치) 상승 전환했지만 2월 들어 다시 ―8.1%로 꺾였다. 실제 체감 경기는 수치보다 훨씬 나쁘다고 한다. 한 중견 문학출판사 대표는 “1, 2월 매출이 전년 대비 거의 반 토막 수준”이라고 했다. 또 다른 출판사 팀장도 “전반적으로 문학 판매가 확산될 거라 기대했지만 실제론 정반대”라며 “한 작가의 책을 낸 몇몇 출판사의 매출만 크게 뛰었을 뿐,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주요 중견 작가들의 신작이 ‘한강 신드롬’에 묻혀 관심을 못 받는 현상도 벌어졌다. 한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경쟁이 부담스러워 다들 상반기 출간을 미루는 분위기”라며 “규모가 작은 출판사일수록 훨씬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한국 문학의 자체 근육 키워야” 물론 이 모든 걸 한쪽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지난해 12월 계엄부터 이어진 시국 불안도 연초 특수를 사라지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문학과지성사 이근혜 주간은 “해마다 연초에 잘나가는 자기계발, 철학, 고전, 잠언집마저 부진하며 출판계 상반기 판매가 둔화됐다”며 “탄핵 정국에 산불까지 여러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학의 주요 독자층인 2030 여성들 또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쏠린 상황이라 문학 시장이 더 힘을 받기 힘들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문학 시장이 가진 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짚을 필요가 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도 예전 같지 않고, 단발성 유입 외에는 문학 독자의 저변이 넓어지기 어려워졌다. 1일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강 책을 가장 많이 샀던 독자층은 50대였다. 같은 시기 이들이 문학책을 구입한 비중은 전체의 30%를 넘겼다. 하지만 이후 계속 줄어들어 3월 25일 기준 24%대로 떨어졌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노벨문학상으로 새로운 문학 독자층이 유입됐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 문학 시장의 이 같은 침체는 노벨상 수상 이후 해외에서 쏟아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과는 대조적이다. 김승복 일본 구온출판사 대표는 “해외에선 ‘한강 효과’로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결국 계약까지 가려면 자국 인지도와 판매 부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문학시장이 뒷받침해 줘야 ‘K문학’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우리 국민의 독서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한 해 두 사람 중 한 명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줄이기 쉬운 분야가 독서 지출인데, 공적 지원마저 줄고 있다. 지원이 체계화되지 않으면 시국과 상관없이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배출됐지만, 문학 붐을 기대했던 ‘노벨문학상 효과’는 반 년 만에 잦아든 것으로 보인다. 문학·출판 업계에선 “실제 체감 경기는 더 심각한 상황”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탄핵정국 등으로 인해 ‘연초 특수’까지 사라지며 시장은 더 경색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 초 문학 매출 반토막 수준”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지난해 10월 서적 출판업 생산은 9개월 만에 반등해 1년 전보다 1.3% 늘었다. 지난해 2월 이후로 9월까지 마이너스 행진을 하다가 노벨상 발표 직후 도서 구매가 급증했다. 당시 한 작가의 소설들은 닷새 만에 100만 부가 팔렸고, ‘텍스트힙(Text Hip·독서를 멋지게 여기는 유행)’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이에 자연스레 한국문학 전체로 온기가 퍼지는 ‘한강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하지만 반향은 불과 한달 만에 꺾이기 시작했다. 11월 서적출판업 생산은 전년보다 -12.7% 급감했다. 12월에도 -4%가 감소해, 한 달을 채 지속되지 못했던 셈이다. 해당 지수는 올해 1월에 5% 가량(잠정치) 상승 전환했지만, 2월 들어 다시 -8.1%로 꺾였다.실제 체감 경기는 수치보다 훨씬 나쁘다고 한다. 한 중견 문학출판사 대표는 “1, 2월 매출이 전년 대비 거의 반토막 수준”이라고 했다. 또 다른 출판사 팀장도 “전반적으로 문학 판매가 확산될거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라며 “한 작가의 책을 낸 몇몇 출판사 매출만 크게 뛰었을 뿐,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이러다보니 오히려 주요 중견 작가들의 신작이 ‘한강 신드롬’에 묻혀 관심을 못받는 현상도 벌어졌다. 한 대형출판사 관계자는 “경쟁이 부담스러워 다들 상반기 출간을 미루는 분위기”라며 “규모가 작은 출판사일수록 훨씬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한국문학의 자체 근육 키워야”물론 이 모든 걸 한쪽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지난해 12월 계엄부터 이어진 시국 불안도 연초 특수를 사라지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문학과지성사 이근혜 주간은 “해마다 연초에 잘나가는 자기계발, 철학, 고전, 잠언집마저 부진하며 출판계 상반기 판매가 둔화됐다”며 “탄핵 정국에 산불까지 여러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학 주요 독자층인 2030 여성들 또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쏠린 상황이라 문학 시장이 더 힘을 받기 힘들었단 의견도 나온다. 한국 문학시장이 가진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짚을 필요가 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도 예전같지 않고, 단발성 유입 외에는 문학 독자의 저변이 넓어지기 어려워졌다. 1일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강 책을 가장 많이 샀던 독자층은 50대였다. 같은 시기 이들이 문학책을 구입한 비중은 전체의 30%를 넘겼다. 하지만 이후 계속 줄어들어 3월 25일 기준 24%대로 떨어졌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노벨문학상으로 새로운 문학 독자층이 유입됐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 문학시장의 이같은 침체는 노벨상 수상 이후 해외에서 쏟아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과는 대조적이다. 김승복 일본 쿠온출판사 대표는 “해외에선 ‘한강 효과’로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결국 계약까지 가려면 자국 인지도와 판매부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문학시장이 뒷받침해줘야 ‘K-문학’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단 얘기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우리 국민독서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한 해 두 사람 중 하나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줄이기 쉬운 분야가 독서 지출인데, 공적 지원마저 줄고 있다. 지원이 체계화되지 않으면 시국과 상관없이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07년생 피아니스트 김세현(사진)이 프랑스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금호문화재단은 “김세현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콩쿠르 피아노 결선 무대에서 1위를 했다”고 31일 밝혔다. 김세현은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바스티앵 스틸이 지휘하는 프랑스 공화국 근위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다. 롱 티보 국제 콩쿠르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게리트 롱과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가 1943년 만들었다. 만 16∼33세 음악가를 대상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부문이 1∼3년 주기로 열린다. 2001년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우승했으며, 2022년에는 이혁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온정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방탄소년단(BTS) 정국은 28일 이재민 지원 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10억 원을 기부했다. 전날 보이그룹 세븐틴(10억 원)에 이어 연예인 개인으로는 최고 금액이다. 가수 지드래곤도 소속사를 통해 “이재민 지원 등을 위해 성금 3억 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BTS RM과 블랙핑크 제니는 각각 1억 원을 희망브리지에 기탁했다. 에스파 카리나와 가수 겸 배우 차은우도 각각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룹 라이즈는 1억5000만 원을, 있지의 예지는 5000만 원을 전달했다. 효성은 28일 “성금 3억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동국제강그룹은 긴급 구호 성금 3억 원을 기탁했다. HMM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3억 원을 전달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억 원을 기부했으며, 코오롱그룹은 텐트와 티셔츠 등 1억 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했다. 삼양그룹은 성금 1억5000만 원과 5000만 원 상당의 의약품을 기탁했다. 애경산업은 위생용품 3억 원 상당을 지원했고, 빙그레는 음료 제품 5만여 개를 전달할 예정이다. 동원F&B는 즉석밥 등 식품 5만7000여 개를, 컬리는 생수와 화장지 등 생필품 11t 트럭 7대 분량을 전달한다. SRT 운영사인 에스알은 “피해 지역 자원봉사자의 승차권 비용을 환급해준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은 이재민 등을 위해 도시락 4000인분과 매끼 1000인분 식사 지원이 가능한 밥차를 보냈고 구호 물품도 제공했다. 하나은행 노조와 임직원들은 성금 1억1691만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하기로 했다. 종교계도 힘을 보태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다음 달 30일까지 공익기부재단 아름다운동행을 통해 특별 모금을 실시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용훈 주교 명의로 위로문을 내고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긴급구호 헌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원불교는 경남 산청군과 하동군 등에서 진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고려대는 대규모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28일 고려대는 이번 산불 피해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울산 울주군, 경북 의성군, 경남 산청군 및 하동군 출신 학생들에게 ‘재해극복장학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자들은 피해사실확인서에 따라 학교가 정한 금액을 장학금으로 받는다. 신청 기간은 다음 달 1일부터 30일까지다. 고려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산불 피해 지역이 확대될 시 장학금 대상자를 늘릴 예정이다.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신무경 기자 yes@donga.com}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詩)를 약으로 처방했다고 한다. 최근 이 오래된 언어 예술의 생리·심리학적 효과가 연구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비(非)침습적 측정 기구를 이용해 시가 뇌에 일으키는 효과를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뇌과학자와 아티스트의 합작품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산하 국제예술마인드연구소 창립자인 수전 매그새먼과 구글 하드웨어 제품 개발부의 디자인 부총괄인 아이비 로스가 ‘예술이 부리는 뇌과학적 마법’을 조명했다. 흔히 직감으로만 알던 것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우리가 예술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영국 엑서터대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들이 시를 읽자 휴식 상태와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fMRI 영상으로 확인됐다. 시를 읽으면 신경과학자들이 ‘오한 직전’이라고 칭하는 상태가 온다. 차분한 감정이 서서히 최고조를 향해 가는 느낌을 일컫는다. 안정이 되지 않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시를 몇 편 읽으면 이완되고 새로운 관점이나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다. 시 처방뿐이랴. 세계 곳곳의 의료계 종사자들은 환자에게 미술관과 박물관 방문을 권하고 있다. 이 같은 ‘미학 처방’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뇌의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운동 처방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셈이다. 딱 20분만 낙서하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즉시 신체와 정신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의료 처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중증 화상 치료 과정을 보자. 화상 환자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붕대를 갈고 상처를 소독해야 한다. 그 과정은 말도 못 하게 고통스럽다. 이때 이용할 수 있는 ‘스노월드’라는 장치가 있다. 통증 관리를 위해 개발된 몰입형 가상현실(VR) 프로그램이다. 환자들은 처치 과정에서 헤드셋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고, 긴장을 풀어주는 음악을 듣고, 컴퓨터가 만들어낸 시원하고 마음 편한 흰색과 푸른색 배경의 3차원(3D) 겨울 세계로 들어간다. 눈을 뭉쳐 던지는 듯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VR을 사용한 환자들은 그냥 처치를 받을 때보다 통증을 35∼50% 덜 느꼈다고 한다. 통증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됐을 신경 회로들을 VR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예술이 신체 통증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예술 처방은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갓 출산한 엄마들은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항우울제 복용을 꺼린다.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으러 갈 시간도 없다. 이런 이들을 산후우울증에 맞춤 설계된 10주간의 노래 부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자,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평균 1개월 빨리 회복했다고 한다. 엄마들은 노래를 부를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대폭 감소했다. 저자들은 제안한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대신 20분간 ‘낙서 일기’를 그려 보라고. 또 레고 블록으로 아무거나 만들어 보거나 점토로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보라고. 하루 중 아무 때나 하던 일을 멈추고 일상에 예술을 한 스푼 더하면서 그 활동이 기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관찰해 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은 무한정이고, 결과는 즉각적이니 당장 실천해 보길 권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온정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효성은 28일 “성금 3억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동국제강그룹은 긴급 구호 성금 3억 원을 기탁했다. HMM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3억 원을 전달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억 원을 기부했으며, 코오롱그룹은 텐트와 티셔츠 등 1억 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했다.삼양그룹은 성금 1억5000만 원과 5000만 원 상당의 의약품을 기탁했다. 애경산업은 위생용품 3억 원 상당을 지원했고, 빙그레는 음료 제품 5만 여 개를 전달할 예정이다. 동원F&B는 즉석밥 등 식품 5만7000여 개를, 컬리는 생수와 화장지 등 생필품 11t 트럭 7대 물량을 전달한다. SRT 운영사인 에스알은 “피해 지역 자원봉사자의 승차권 비용을 환급해준다”고 밝혔다.KB국민은행은 이재민 등을 위해 도시락 4000인분과 매끼 1000인분 식사 지원이 가능한 밥차를 보냈고 구호 물품도 제공했다. 하나은행 노조와 임직원들은 성금 1억1691만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하기로 했다.가수 지드래곤은 소속사를 통해 “피해 복구와 이재민 지원을 위해 성금 3억 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BTS) RM과 블랙핑크 제니는 각각 1억 원을 희망브리지에 기탁했다. 그룹 라이즈는 1억5000만 원을, 있지의 예지는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에스파 카리나와 가수 겸 배우 차은우도 각각 1억 원을 기부했다.종교계도 힘을 보태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다음 달 30일까지 공익기부재단 아름다운동행을 통해 특별 모금을 실시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용훈 주교 명의로 위로문을 내고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긴급구호 헌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원불교는 산청군과 하동군 등에서 진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신무경 기자 yes@donga.com}

25일 경북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천년고찰 고운사가 무너져내린 가운데 지금까지 산불로 피해를 입은 문화유산은 27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국가유산청은 28일 “오전 11시 기준 산불로 피해를 입은 문화유산이 추가로 4건 확인됐다”고 밝혔다. 피해를 입은 문화유산은 경북 청송 병보재사와 청송 기곡재사, 의성 만장사석조여래좌상, 안동 약계정이다. 석조여래좌상은 부분적으로 그을림 피해를 입었으나, 나머지 3점은 전소됐다.경북 민속문화유산인 청송 기곡재사는 진성 이 씨 시조 이석의 묘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없어진 것을 영조 16년(1740년) 새로 지었다. 조선 후기 유생들의 기숙사인 재사(齋舍)의 기능과 특징을 잘 간직한 건축물로 평가됐다.경북 안동 지산서당과 구암정사, 국탄댁, 송석재사, 지촌종택 등 조선시대 건축물도 피해를 입었다. 구암정사를 제외한 나머지 건축물들은 모두 전소했다.지금까지 산불로 피해를 입은 문화재 가운데 국가지정 문화유산은 11건이다. 고운사의 가운루와 연수전 등 보물 2건을 비롯해 명승 3건과 천연기념물 3건, 국가민속문화유산 3건이다. 시도지정 문화유산은 16건이다. 유형문화유산 3건과 기념물 2건, 민속문화유산 4건, 문화유산자료 7건으로 집계됐다.국가유산청은 “산불 위험으로부터 국가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 살수, 방염포 설치, 방화선 구축, 유물 긴급 이송 등을 지속해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실패라는 게 어디 있어요? 살면서 죽지 않으면 공부 아닐까요?”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이렇게 말하는 김호연 작가(51)에게선 늦깎이로 빛을 본 사람 특유의 내공과 겸손이 묻어났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 1·2’와 ‘나의 돈키호테’를 도합 180만 부 베스트셀러에 올린 그가 이번엔 에세이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푸른숲)를 냈다. 작가의 성공담을 들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김 작가는 신간에 대해 “제가 뒹굴고 실족(失足)한 얘기들”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실제로 이 책은 실패담 모음집에 가깝다. 글이 안 써져 거리를 헤매고, 한 줄도 못 써서 찝찝하게 침대에 눕고, ‘관찰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이 내 책을 냄비 받침으로 쓰는 요행 덕에 책이 역주행하길’ 바라는 인간적인 고백이 담겨 있다. 김 작가는 시나리오 대본 작업, 출판사 소설 편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약 20년 동안 꾸준히 소설을 썼다. 네 번째 소설마저 지지부진하던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개월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집필할 기회를 얻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불편한 편의점1’(2021년)과 ‘나의 돈키호테’(2024년)를 집필했다. “네 번째 소설마저 잘 안 됐을 때, 저는 거의 투명 인간 같았어요. 민망한 모습이나 바보 같은 모습, 제 민낯을 가감 없이 담으려고 했어요.” 김 작가의 이야기가 실패담에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계속 걸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으면 돼요. 살아 있는 게 승리거든요.” 그의 말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누구나 자기 업(業)에서 ‘업 앤 다운’이 있을 텐데, 그냥 김호연처럼 바보짓 한번 하고, 무모한 도전이라도 해보고 농담하면서 버티면, 좋은 기회도 생기는구나 하고 기운을 얻으면 좋겠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책 강연도 소통하지 못한 곳을 찾아간다고 했다. 다음 주에는 울릉도에서 강연한다. “작가들이 많이 못 가는 곳이니까 제가 가야죠.” 해외도 마찬가지다. 현지 출판사의 초청이 없어도, 북토크와 인터뷰 기회를 직접 만들어냈다. 현재 ‘불편한 편의점1’은 27개국에 수출됐다. “외국 독자들이 한국 책을 읽는 건 한국 문화를 알기 위해서예요. 물론 케이팝이나 영화, 드라마 보면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죠. 하지만 문학이라는 매체로 접하는 질감이 또 다르거든요.” 김 작가는 이번 신간의 독자에게 사인을 할 때 “계속 걸어요, 계속”이라는 문구를 함께 쓰고 있다. “제가 쓰는 소설들도 그런 얘기잖아요. 실패한 사람들, 그래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 사람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작은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저도 그렇게 살아요.”(김 작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