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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면 겨우 십여 년 남짓 키운 건데 벌써부터 왜 이리 힘든 걸까요? …학부모의 간절한 마음과 혼자 ‘성장’이라는 고독한 싸움을 치르고 있는 아이의 간극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모쪼록 제가 옮긴 아이들의 목소리가 이 책을 읽는 부모님들의 지극한 마음에 가닿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 선배들에게 물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어떤 거야?” 누군가 답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어질어질해. 기쁘거나 혹은 힘들어서”라고. 그때 또 덧붙였다. “학교 가면 전쟁이야.” 참 묘하다. 세상은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됐다. 근데, 어째 아이 키우는 건 갈수록 어려워진단다. 분명 나아진 점도 있을 텐데, 왜 이리들 부담감은 더 커지는지. 고민은 고민을 낳고, 자꾸만 누군가가 필요하다. 저자는 1992년부터 교편을 잡은 강원도 초등학교 교사다. 2008년쯤 학교생활 등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했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통해 전국 학부모들이 고민을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열심히 상담에 응했다. ‘초등학교…’는 그런 다양한 사례를 모으고 추린 책이다. 실은 자녀 양육에 관한 책, 지금도 엄청나게 많다.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거다. 어설프게 구분하자면, 대충 두 갈래로 나뉜다. ‘아이에게 자유를! VS 이래야 성공한다!’ 정도.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다. 역시 현실을 직시하는 현직 교사라서 그런가보다. 예를 들면, 아이의 교육을 위해 강남 이사를 고민하는 학부모에겐 ‘얼른 강남으로 가라’고 답한다. 왜? 이런 질문을 한 엄마는 이미 가지 않으면 불행하다. 만약 가지 않았는데, 자녀와 관련해 아쉽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계속 후회할 거다. 다만 분명히 못 박는다. 왜 강남을 꿈꾸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당신은 ‘돼지 엄마’라고.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본인을 위한 거라고. 이렇게 말하니 되게 학부모에게 냉정한 교사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느 상담서적보다 부모의 맘을 어루만지려 노력한다. 자신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이기에 공감을 표한다. 특히 너무 아이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지려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물론 보호자로서 열과 성을 다해야지만, 아이의 작은 잘못까지 부모 탓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하나의 인격체로 자녀를 대하며,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실용적인 조언도 적지 않다. 자녀가 학교에서 가해자로 학교폭력위원회에 가게 생겼을 때나 담임이 아이에게 특수학급을 권유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지에 대한 설명은 꽤나 요긴해 보인다. 곁에 두고 참고서처럼 상황마다 들쳐 봐도 괜찮겠다. 다만 제목에 부제처럼 달린 ‘담임선생님께는 말하지 못하는…’에는 시비를 걸고 싶다. 눈길이야 끌겠지만 너무 자극적이다. 책도 가장 먼저 담당 교사와 허심탄회하게 상의하길 권했는데, 이 글귀는 이율배반적인 느낌도 든다.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부모는 교사를 믿고, 교사는 부모를 믿어야 한다. 어떤 일도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금 정조(正祖·1752∼1800)를 다시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살짝 심드렁한 기분으로 펼친 책인 걸 부정하기 힘들다. 평전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세종과 함께, 대왕으로 숭상하는 임금이 아닌가. 교과서와 영화 등에서 숱하게 등장해 생소함이 1도 없는데. 심지어 드라마 덕분에 ‘이산’이란 이름까지 낯이 익으니. 실제로도 ‘정조 평전’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밝혀내는 책은 아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짙은 그림자나 규장각과 탕평책, 수원 화성 축조 등의 공적도 웬만큼은 다 안다. 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누군가를 ‘안다’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섣부른 일인지 깨닫는다. 그 대상이 위인일 경우엔 특히나 그렇다는 걸 책은 잘금잘금 짚어 준다. 뭣보다 여주대 교수인 저자는 오랜 세월 정조를 연구해 온 학자답게 인물의 입체적인 면을 다각도로 조명하려 애썼다. 국내외 정치 사회 문화적 변동이 꿈틀대던 18세기에 정조가 추구했던 개혁과 부흥의 노력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정조는 “국왕과 백성의 관계를 달과 시냇물로, 왕과 신하의 관계를 달빛과 구름에 비유하곤” 했다고 한다. 푸른 달빛이 냇물에 직접 비쳐야지 구름에 가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즉, 지배자는 임금 한 사람이며, 나머지는 모두 민(民)인 셈이다. 이는 당파와 신분을 뛰어넘어 인재를 등용하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지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 확립에 치중한 결과, 소모적 당쟁은 줄였을지 몰라도 공론을 형성해 생산적인 견제가 가능한 구조가 무너졌다. 이는 결국 정조 사후 세도정치가 똬리를 트는 데 기여하고 만다. 정조의 대표적 공적으로 꼽히는 규장각을 통한 지식 경영 또한 마찬가지다. 일종의 ‘싱크 탱크’였던 이 기구를 바탕으로, 국내외 지식과 정보를 모으고 젊은 인재를 키워낸 건 당연히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너무 ‘교육’에 방점을 찍다 보니 소통이 원활한 군신 관계이기보단 가르치고 혼내는 사제 관계로 기울었던 점, 정통 문예에 초점을 맞춰 소설의 유행과 같은 새로운 흐름엔 보수적이었던 점 등은 약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몇몇 아쉬운 대목을 들춰내더라도, 정조대왕의 위대함은 여전히 오롯하다. 정조는 자주 신하들에게 “물결이 아니라 나루가 있는 곳을 보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후대에 와서 이렇다 저렇다 첨언을 하지만 ‘세상을 다스리는 통찰’은 누구보다 깊고 넓었다.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은 교만 때문이고, 스스로에게 관대한 것은 나약한 까닭이다”(홍재전서)라며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면서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매진한 그의 생애는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특히나 지금 시대라면 ‘정조’를 다시 읽을 것을 주문한다. 사마천의 말마따나 “난세를 다스려 올바른 세상을 되돌리는 해법”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백척간두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했던 군왕의 삶은 일깨우는 바가 크다. 다만 이 책이 다소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단 점은 덧붙인다. 해박한 이에겐 놀랍지 않고, 낯선 이에겐 녹록지 않다. 타깃 층을 확실히 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우리의 권리를 알고 살자. 디자인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디자인에는 우리의 삶을 변질시킬 힘도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매일 디자인에 의해 차별당할 수도 우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디자인에 의해 정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곧장 결론부터 까서 죄송. 하지만 굳이 책 끄트머리에 있는 글귀를 먼저 쓴 이유는 간단하다. 이게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전부’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인 저자는 괜한 학술적 장광설로 시간을 끌지 않는다. 투사(鬪士)로 변신해 직구로 내리꽂는다. 세상을 둘러싼 디자인, 싹 뜯어 고쳐야 한다고. 원서 제목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좀 길긴 한데, ‘디자인으로 정의(혹은 규제)되는: 일상의 상품과 장소에 숨겨진 성과 연령, 육체에 대한 편견의 놀라운 힘’ 정도 되겠다. 그니까 우리가 무심코 마주치거나 익숙하게 사용하는 많은 것이 실은 약자나 소수를 차별하고 있단 소리다. 나중에 책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거의 모든 것’을 거론한다. 하이힐이 성차별적이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건 알 만한 얘기. 높지만 근사한 침대도 아이나 병자가 추락할 가능성이 큰 나쁜 디자인이다. 오른손잡이에 맞춰져 있는 학교 책상, 좁고 불편한 비행기와 버스 통로, 좌석도 마찬가지.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는 배달 포장과 운동선수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용품,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지하 쇼핑몰…. ‘생산자’와 ‘다수’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디자인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쯤 되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흔히 디자인은 보기 좋게 만들어 “소비자와 고객을 유혹해서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하는 거라 치부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와 우리 가족에게 유리한 세상, 지금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디자인이라고 명명한다. 나이나 성별, 피부, 체형 때문에 피해를 본다면 그건 제대로 된 디자인이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은 ‘투사’의 글이다. 사소한 것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고 걸고넘어진다. 공중화장실의 성평등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했는데, 저자는 실제로 2010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 변화를 이끌어 낸 바 있다. 이런 이들 덕분에 세상이 바뀌는 거 아니겠나. 고마운 인물이고, 고마운 책이다. 게다가 ‘좋아 보이는…’은 주장만 나열하지 않고 나름의 대안을 성실히 소개한다. 미 캘리포니아주 라호야 해변의 남녀 중립 화장실이나 학생에게 적절한 온도와 공기를 제공하는 독일 쾰른 발도르프 학교 등을 통해 디자인이 뭘 할 수 있는지 살핀다. 흥미롭게도 서울의 지하철 안전시스템이나 젠더 친화적 공중화장실 등도 좋은 사례로 소개한다. 다만 과하다 싶은 지적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앉아 일하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넉넉한 바지 주머니 탓이라고 말한다.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줄기차게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첫 머리글의 나머지 대목을 곱씹어보자. “디자인은 변화를 만들지 않는다. 변화는 사람이 만든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장착한다면 변화는 우리 손에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개념적으로’ 알고 있죠. 하지만 막상 평소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종사자가 아닌 이상 대답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 때문에 예술로 바라본 농업 자체가 관객들에게 신선한 질문을 던졌다고 봅니다.” 21일부터 열린 특별전 ‘예술+농촌, 공간-농업과 기술의 만남’은 참 생경한 전시다. 어쭙잖게 넘겨짚자면, 농업과 예술은 왠지 가장 서로 멀리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주관한 이 독특한 전시에 참여한 김형규 작가(35)는 “생각해보면 둘 다 ‘인간의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는 공통점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다소 어색하긴 했죠. ‘농업’이란 게 미술전시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는 아니잖아요. 전시를 위해 2∼3개월 스터디도 열심히 했습니다. 결국은 어떤 해답을 던지기보다는, 우리가 바라보는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풀어내면 관객들이 거기서 뭔가를 찾아가길 기대했어요.” 실제로 김 작가가 김기라 작가와 함께 선보인 ‘문명적인 이해-비밀스러운 농장’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스마트팜’을 소재로 했다. ‘비닐하우스의 미래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팜은 모종마다 햇빛이나 물, 비료, 습도 등을 자동으로 체크해 공급한다. 작가들은 이 스마트팜의 축소판을 전시장에 설치하고, 안팎에 미디어아트 작품을 설치해 생각거리를 던졌다. 이 밖에 이진경 이동욱 백정기 작가 등도 단풍잎과 수석 등을 이용한 회화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김 작가는 “결국 자연에서 출발한 농업이 기술과 연결되는 지점이 인류의 생애 자체와 맞닿아 있단 생각이 든다”며 “예술 담론으로 농업을 고민하는 시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가 농업을 마주하는 자세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해외도 마찬가지지만, 3권 분립 민주국가에서 사법기관은 그 나라의 청렴과 직결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시류나 권력과 별개로 대나무처럼 꼿꼿이 원칙을 지키는. 하지만 최근 들려오는 저잣거리 소식만 들어봐도 이렇게 말하기 머뭇거려진다. 그곳 역시 사람 사는 데라 여기고 넘어가기엔 찜찜한 구석이 많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런 법조계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출발했는지를 짚기 위해 해방 전후의 시기를 살핀다. 이전 책 ‘헌법의 풍경’(2004년) 등에서 탄탄한 문장을 선보였던 저자는 이번에도 상당한 공력을 발휘했다. 연구 및 집필에 3년 이상 걸려서 나온 두툼한 책은, 일반인에겐 생소한 당대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부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에서 대략 힌트를 얻겠지만, 그 시절 사법 현장은 혼탁했던 당시 상황을 붕어빵 찍어내듯 닮았다. 욕망과 야합, 보신(保身), 폭력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저자는 이런 맥락을 모르고선 현재의 법조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봤다. 평가는 갈라질 수 있겠지만, 이러한 문제제기가 하나의 경종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도 된다. 다만 이쪽에 관심 없는 이들에겐 너무 낯선 얘기로 가득하다. 분명 엄중한 사안이나 받아들이는 체감 온도는 꽤나 차이가 날 듯하다. 영 힘들면, 에피소드 위주로 엮은 4장부터 읽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저자는 추천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흙의 작가’로 불리는 채성필 작가(46)의 개인전 ‘Symphonie de terre(대지의 교향악)’가 28일부터 열린다. 채 작가는 흙과 천연안료를 이용해 대지(흙)의 근원적 공간을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인간의 본질, 자연의 생성과 순환을 주제로 작품들을 선보이며 국내와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다. 2년 만에 갖는 개인전에서 채 작가는 모두 1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타이틀 작인 ‘Symphonie de terre’는 빛의 파노라마를 통해 대지와 우주를 담은 작가의 새로운 도약으로 평가받는다. 가로 5m가 넘는 ‘익명의 땅’ 연작 등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 작품의 이미지로 제작한 판화 3점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그림손 개관 10주년 초대전이기도 하다. 다음 달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그림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11회를 맞는 대구아트페어에서 갤러리 ‘셀로아트’가 눈길을 끄는 국내 작가 3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셀로아트는 15일 “22일부터 열리는 대구아트페어에 곽동준 박선기 신승헌 작가의 작품 25점을 소개한다”며 “떠오르는 젊은 작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미술 애호가의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초대작가인 곽동준은 남서울대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유리라는 재료를 통해 구름과 물방울 같은 자연적인 형태를 형상화한 작품을 내놓는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미래를 향한 모호함을 이미지로 표현”하려는 그의 시도는 추상적이면서도 몰입도가 높다. 동국대 미술대를 졸업한 신승헌 작가는 전형적인 유화 기법을 썼지만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최근 개인전과 아트페어에 내놓은 작품이 모두 팔릴 정도로 관심이 크다는 후문. “간결한 색과 선이 만들어내는 사각의 형태를 통해 관계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 컨템퍼러리 아트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박선기 작가의 작품도 놓치면 아쉽다. 신라호텔 등에 설치된 작품 덕에 대중적 인지도도 높은 박 작가는 투명한 크리스털 아크릴 비즈를 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빛의 반사가 만들어낸 착시가 관객들에게 즐거움마저 선사한다. 셀로아트가 참여한 대구아트페어는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다. 국내외 갤러리 111곳이 작가 700여 명의 작품 5000여 점을 전시한다. 25일까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뭐랄까…. 이 책은 ‘바람’ 같다. 일단은 산뜻하다. 뇌 과학자와 신경과학자의 공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발랄하다. 이렇게 말하면 기존 과학서적을 폄하하는 게 될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아무리 재밌는 과학책도 싱긋이 미소가 번지는 일은 없다. 그런데 ‘뇌는…’은 읽다 보면, 쓰윽 어깨가 가벼워지고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춤바람이라도 난 듯이. 자, 저잣거리 약장수에게 홀릴 맘으로 페이지를 넘겨 보자. 이토록 춤을 상찬한 책은 개인적으로 본 적이 없다. 인류의 태생부터 함께했다는 댄스는, 한마디로 만병통치약이다. 뇌와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든다. 심장 척추 관절을 튼튼하게 만들 거라는 건 예상 가능할 터. 여기에 인간의 뇌에 개운한 리듬을 전달하고, 몸에는 도파민이 분비되며, 체취에는 페로몬이 배어나온다. 게다가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과 공감능력까지 높여준다. 설마 과학자들이 ‘뻥’을 칠 리도 없고. 이 정도면 100년 묵은 산삼을 캐러 갈 이유가 없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오예! 하지만 남실남실 기분을 북돋우는 ‘뇌는…’은 또 엔간히 힘 빠지게 만드는 구석도 있다. 배 나온 아저씨들이 운동 좋은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춤이라곤 술 먹고 노래방에서 흐느적거리는 거 말곤 배운 적이 없어서다. 물론 여기에 게으름과 주변 시선도 플러스. “아니,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해요?”라고 저자들은 토끼 눈을 뜨지만, 우리네 시선에선 “속 편한 소리하고 앉았네” 하는 삐죽거림이 튀어나온다. 뇌는 춤추고 싶은 ‘바람’을 가졌는지 몰라도, 삶이 언제나 바람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속 좁게 굴었지만, ‘뇌는…’은 참 리드미컬하다. 다소 ‘과학책’답지 않긴 해도, 이렇게 과학자들이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손 내미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다. 춤의 ‘ㅊ’도 모르지만 왠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 보고 싶다. 하지만 뭣보다 중요한 건, 읽은 뒤에도 정말 한 발 스텝을 뗄 수 있는가이다. 문득 영화 ‘쉘 위 댄스’가 다시 보고 싶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나는 내키지 않는 길은 가지 않았다. …‘나는 신성일이다’라는 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별은 끝내 별로 살다 갔다. 평생 창공에 머물며 낙조(落照)를 품지 않은 채. 스스로를 ‘쥘리앵’(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 주인공)이라 여겼던 ‘한국의 알랭들롱’ 신성일(申星一)은 4일 또 다른 하늘, 별들의 고향으로 날아갔다. 향년 81세. 신성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성일이었다. 꼿꼿하고 강렬했다. 지난해 갑작스럽던 폐암 판정.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 때도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내쳐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된 지난달 동아일보와의 만남에서도 “할 일이 많다. 북한에 있다는 영화 ‘만추(晩秋·1966년)’ 필름을 찾아오고 싶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고인은 “스스로를 최고로 대접해야 진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사에서 첫 월급을 받아 반 이상을 호화로운 하숙집에 밀어 넣었던 그는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포츠머리’를 유행시켰던 그를 따라 남자들은 이발소에서 ‘신성일 머리’를 주문했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처음부터 스타였다. 1959년 508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는,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이자 배우 엄앵란을 만난 데뷔작 ‘로맨스 빠빠’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다. ▼ “나는 신성일이다”… 마지막까지 영화 꿈꾼 맨발의 청춘 ▼ ‘맨발의 청춘’ ‘초우’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찍는 작품마다 저잣거리를 들썩였다. 패션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고인은 본보와의 마지막 인터뷰 때도 와인 빛이 감도는 빨간 스웨터에 실크스카프를 멋들어지게 곁들였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선 150만 원짜리 돌체앤가바나 청바지를 입고 레드 카펫을 뚜벅뚜벅 걸었다. “배우는 언제나 배우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일이 없어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었다. 2005년 구속됐을 때 감옥에서도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골프채 대신 3m짜리 빗자루로 하루에 20∼30번씩 스윙 연습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냉수로 샤워를 해 30대 청년처럼 근육이 잡힌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 삶 자체도 세간의 기준과는 결이 달랐다. 1964년 역시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엄앵란과 전격 결혼을 발표했다. 11월 14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두 사람의 혼인식에는 전국에서 3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정작 최무룡 김지미 등 주요 하객이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2층 테라스에서 얼굴을 내민 신랑 신부를 향한 환호는 영국 왕실 예식이 부러울 것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탓일까.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말 못 할 고충도 적지 않았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큰 표차로 고배를 마시고 빚더미에 올랐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며 오랫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식당을 운영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던 엄앵란은 “어디 가도 기죽지 말라”며 매일 10만 원씩 쥐여주고 내보냈다. 고인은 2000년 대구 동구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당선됐다.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솔직하게, 이미 고인이 된 한 여배우와의 사랑을 고백한 게 세상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때도 신성일은 당당했다. “난 그녀에게 일생을 빚진 자다.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두렵지 않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들려 드리는 것이 내 의무다.” 그는 마지막까지 신작 영화 제작의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방과 양방 복합 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최근 감기에 걸린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고 유가족이 전했다. 3일 오후 세상은 그의 ‘사망설’로 들썩였지만, 그는 생명의 끈을 쉽게 놓지 않았다. 결국 다음 날 오전 2시 반. 거성(巨星)은 마지막 숨결을 거둬들였다. “나는 자유인으로, 로맨티시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숱한 유혹이나 강압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나다. 난 젊은이들에게 ‘정면 돌파하라’고 외치고 싶다.” 은막의 청춘은 시대의 청춘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들려주었다. 정양환 ray@donga.com·김민 기자※본보와의 신성일 마지막 인터뷰 동영상은 동아닷컴과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내키지 않는 길은 가지 않았다.…‘나는 신성일이다’라는 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별은 끝내 별로 살다 갔다. 평생 창공에 머물며 낙조(落照)를 품지 않은 채. 스스로를 ‘쥘리앵’(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 주인공)이라 여겼던 ‘한국의 알랭들롱’ 신성일(申星一)은 4일 또 다른 하늘, 별들의 고향으로 날아갔다. 향년 81세. 신성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성일이었다. 꼿꼿하고 강렬했다. 지난해 갑작스럽던 폐암 판정.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 때도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내쳐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언론인터뷰가 된 지난달 동아일보의 만남에서도 “할일이 많다. 북한에 있다는 영화 ‘만추(晩秋·1966년)’ 필름을 찾아오고 싶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고인은 “스스로를 최고로 대접해야 진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사에서 첫 월급을 받아 반 이상을 호화로운 하숙집에 밀어 넣었던 그는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포츠머리’를 유행시켰던 그를 따라 남자들은 이발소에서 ‘신성일 머리’를 주문했다. “배우는 언제나 배우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일이 없어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었다. 2005년 구속됐을 때 감옥에서도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골프채 대신 3m짜리 빗자루로 하루에 20~30번씩 스윙 연습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냉수로 샤워를 해 30대 청년처럼 근육이 잡힌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 패션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고인은 본보와의 마지막 인터뷰 때도 와인 빛이 감도는 빨간 스웨터에 실크스카프를 멋들어지게 곁들였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선 150만원짜리 돌체앤가바나 청바지를 입고 레드 카펫을 뚜벅뚜벅 걸었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처음부터 스타였다. 1959년 5081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는,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이자 배우 엄앵란을 만난 데뷔작 ‘로맨스 빠빠’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다. ‘맨발의 청춘’ ‘초우’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찍는 작품마다 저잣거리를 들썩였다. 삶 자체도 세간의 기준과는 결이 달랐다. 1964년 역시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엄앵란과 전격 결혼을 발표했다. 11월 14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두 사람의 혼인식에는 전국에서 3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정작 최무룡 김지미 등 주요 하객은 식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2층 테라스 얼굴을 내민 신랑신부를 향한 환호는 영국 왕실 예식이 부러울 것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탓일까.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말 못할 고충도 적지 않았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말했으나 큰 표차를 고배를 마시고 빚더미에 올랐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며 오랫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식당을 운영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던 엄앵란은 “어디 가도 기죽지 말라”며 매일 10만 원식 쥐어주고 내보냈다. 고인은 2000년 대구 동구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당선됐다.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솔직했던 그는 이미 고인이 된 한 여배우와의 사랑을 고백한 게 세상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때도 신성일은 당당했다. “난 그녀에게 일생을 빚진 자다.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두렵지 않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는 것이 내 의무다.” 그는 마지막까지 신작 영화 제작의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방과 양방 복합 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최근 감기에 걸린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고 유가족이 전했다. 3일 오후 세상은 그의 ‘사망설’로 들썩였지만, 그는 생명의 끈을 쉽게 놓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새벽 2시반. 거성(巨星)은 마지막 숨결을 거둬들였다. “나는 자유인으로, 로맨티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숱한 유혹이나 강압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나다. 난 젊은이들에게 ‘정면 돌파하라’고 외치고 싶다.” 은막의 청춘은 시대의 청춘에게 마지막 종언을 고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달의 뒤편, 그 어둠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죠. …외로움이 점점 빵처럼 부풀어 오르더군요. 이 지구를 온통 덮을 만큼! 병실에 혼자 갇혀 혼자 아프다가 혼자 죽겠구나! 죽어서도 이름 대신 번호로 지칭되겠구나! 정부에서 붙인 그 번호가 대체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2015년 5월은 한국에 잔인한 달이었다. 시적 표현을 하자는 게 아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세월호’가 국민의 마음을 짓이겨 놓은 지 1년여. 생소한 전염병 하나가 또다시 세상을 찢어발겼다. 38명의 애꿎은 목숨까지 앗아가며. ‘살아야겠다’는 이젠 상당수가 돌아보길 멈춘, 바로 그 시절을 퍼 담았다. 허투루 쉽게 가자면, 이 책은 설명하기 참 편하다. 메르스를 다룬 소설이라 하면 누구나 단박에 알아들을 터. 하지만 그건 이 작품을 가장 ‘후지게’ 묘사하는 방식이다. 작가가 세월호를 다뤘던 2016년 작 ‘거짓말이다’와 마찬가지로, ‘살아야겠다’는 사건 자체를 파고들려는 소설이 아니다. 사람. 책을 읽는 독자와 똑같은 그 현장에 있던 인간을 바라본다. 치과의사 김석주와 출판물류회사 직원 길동화, 방송국 수습기자 이첫꽃송이는 살면서 접점이라곤 없던 인물들. 하지만 그날, 이젠 우리도 다 아는 F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에 감염된다. 우여곡절 끝에 확진 판정을 받은 그들은 세상의 모든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격리 치료를 받는다. 왜 그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도 모른 채. 왔던 길이 달랐던 것처럼 가는 길도 갈라졌다. 젊은 첫꽃송이는 비교적 빨리 회복했지만, 일가친척들이 메르스에 걸린다. 본인 역시 폐소공포증 등에 시달리고. 동화도 목숨은 건졌지만 폐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다. 게다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메르스 환자’라는 낙인 탓에 어디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석주는 더욱 힘겨웠다. 어렵사리 극복했던 암이 재발하며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이어간다. 엄청난 역경에도 극진한 부인 남영아와 굳세게 버텨가지만, 적절한 대처는커녕 갈피도 못 잡는 당국 탓에 결국 불씨는 꺼져간다. ‘살아야겠다’는 도저히 무게를 잴 수 없는 소설이다. 아픔과 울분이 한없이 묵직하다가도, 너무도 허망하고 덧없어 한줌도 손에 쥐기 어렵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무능한 정부를 질타하고 떠나간 이웃을 애도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은 못했던 부끄러움이 손끝을 타고 찌릿하다. 하나 덧붙이자면, ‘살아야겠다’는 문체가 메마르다. 실은 그간 작가의 이런 건조한 스타일을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 아닌 소설’에는 이게 맞는 방식이리라. 다소 과한 전지적 작가 시점인 몇몇 대목이 걸리긴 했지만, 거리의 균형을 잘 잡았기에 울림의 폭도 충분히 퍼져나갈 테니. 다시 한번, 고통 받았던 모든 분들께 고개를 숙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삶이 즐거울 것 무엇이며 죽음이 괴로울 것 무엇인가. … 세상사람 불쌍한 것은 걱정이 많음이로다.”(소설 ‘의천도룡기’에서) 강호에서 별이 떨어졌다. 1980년대 국내에서 ‘영웅문’(정식 명칭 ‘사조삼부곡’) 시리즈로 돌풍을 일으켰던 홍콩 무협소설의 태두(泰斗) 진융(金庸·본명 자량융·査良鏞·사진) 작가가 3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가족들은 이날 오후 진 작가가 홍콩 양허(養和)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진 작가는 1955년 펴낸 첫 무협소설 ‘서검은구록’ 이래 1972년 마지막 작품 ‘녹정기’까지 주옥같은 무협소설 14편을 출간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등이 모두 히트하며 세계적으로 수십억 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정식 계약 체결 없이 출간된 고려원 영웅문 시리즈가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후 2003년 김영사가 정식 판권을 계약해 출간했다. 진 작가는 현지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던 무협소설을 문학성과 대중성을 지닌 작품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추앙받는다. 2007년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내 모든 소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가 핵심 목표”라며 “순수냐 통속이냐는 잣대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어떤 울림을 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날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 무협소설가”라고 표현했다. ‘사조영웅전’은 베이징(北京) 초등학생 필독 도서 명단에 포함된 바 있으며, 그의 문학세계를 연구하는 ‘진쉐(金學)’라는 학문이 따로 있을 정도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중문과도 그의 소설을 부교재로 채택한 적이 있다. 실제로 진 작가는 세계적으로 3억 명이 넘는 두꺼운 독자층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도 그의 열혈 팬이다. 그가 회사에서 사용하는 별칭이 ‘소오강호’에서 주인공에게 천하제일 무공을 전수하는 ‘풍청양’이라는 인물이다. 1924년 저장(浙江)성에서 태어난 그는 쑤저우(蘇州)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상하이(上海)의 다궁(大公)보에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1948년 홍콩으로 온 뒤 1959년 밍(明)보를 창간해 유력지로 키워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과 고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진 작가는 ‘춘향전’ 줄거리를 외울 만큼 한국 고전문학에도 관심이 높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어쩌면 작가가 ‘와신상담(臥薪嘗膽)’했던 게 아닐까. 물론 헛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미야베 미유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데 ‘비탄의 문’은 왠지 근거 없는 추측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그만큼 이 소설은 그의 2009년 작품 ‘영웅의 서’를 떠오르게 하니까. 미스터리와 판타지에 사회적 이슈가 결합된 ‘비탄의 문’은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주인공 고타로는 평범한 대학 신입생. 우연히 사이버패트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터넷 세상에 대해 배워나간다. 그런데 동료 모리나가가 노숙자 실종을 추적하다 사라진 뒤, 고타로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나가다 예상치 못한 일에 휩쓸린다. 거기엔 의문의 연쇄살인과 함께 비현실적 ‘영역’이 펼쳐지는데…. 전혀 다른 소설이지만 ‘비탄의 문’과 ‘영웅의 서’가 겹쳐 보이는 건 두 소설이 공유하는 세계관 때문이다. 말과 이야기의 거대한 교집합 속에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깔려 있다. 작가의 의중을 넘겨 짚어본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전작은 너무 ‘판타지’했다. 롤플레잉게임을 하는 듯한 쾌감은 충만했지만, 미야베 특유의 ‘사회 고발’ 색채가 흐렸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작심한 듯 이런 분위기를 강조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한 가진 확실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작품은 재밌다. 극단적인 캐릭터와 평범한 캐릭터를 잘 교차시키고, 상황이나 심리적 변화를 쫀쫀하게 따라가는 속도감을 유지한다. 게다가 이 역시 짐작이지만, 작가는 부지런하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높다고나 할까, 다양한 분야를 열심히 들여다본다. 다만 언제나 끝이 허망할 때가 많은데, 그게 의도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미야베 미유키는 이제 말과 이야기가 쌓아올린 사이버 세상이 결국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느끼는 걸까. 그럼 뭐, 이젠 방법이 없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냥집사(고양이 기르는 이)가 되지 않는 게 나았을까.’ 책을 덮은 뒤, 잠시 제목을 흉내 내자면 이런 생각이 물씬했다. 아마 저자는 한 줌도 이런 맘을 먹지 않았겠지만. 반려동물 잡지에서도 일한 적 있는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는 결혼 직전 후배가 ‘냥줍’(길고양이를 거둬들였단 뜻)한 고양이를 맡는다. 아기고양이 ‘제이’는 자연스레 부부의 가족이 되지만, 언제부터인가 숨소리도, 먹는 것도 시원찮다. 결국 병원을 찾았는데 여러 검사를 거친 결과 ‘흉선 림프종’이란 진단을 받는다. 암에 걸렸단 얘기였다.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수술은 어렵고, 항암치료밖에 방법이 없는데 회당 30만∼50만 원. 그것도 25차례나. 게다가 치료 뒤에도 기대수명은 1년 정도란다. 벌써 검사비용도 적잖게 들어갔는데…. 하지만 저자는 괴로웠을지언정 흔들리진 않았다. “치료하지 않으면 보름밖에 살 수 없다고 했고, 치료를 시작하면 적어도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었다. 천만 원에 한 달을 더 산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 시간이 꼭 필요했다. … 치료를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나 예상하듯, 항암치료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금전적인 건 둘째 치고,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고양이를 지켜보고 돌보는 일은 육체와 정신을 모두 지치게 한다. 더군다나 이 가족에겐 ‘산 너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로 입양한 고양이 ‘아리’는 비만세포종이 생겨 수술을 했다. 동물병원 의사조차 “한 집에 두 마리가 종양이라니”라며 탄식했을 정도. 세 번째로 들인 ‘달’은 지독한 구내염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했다. 살짝 스포일러하자면, 1년도 못 산다던 제이는 2년이 지난 뒤에도 건강하게 가족 곁에 머물고 있다. 기적적인 결과다. 물론 이게 완치인지 앞으로 걱정은 없는 건지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와 남편은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의 말대로 “한 생명과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마음 졸여야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그들은) 지금 서로와 함께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길고양이로…’는 모래 속의 진주 같은 책이다. 요즘 반려동물 관련 에세이가 숱하게 쏟아지지만, 이렇게 극적이면서도 내밀한 사정을 담아내다니. 정갈한 글 솜씨가 솔직한 속내와 만나 근사한 작품으로 태어났다. ‘랜선 집사’(온라인으로 동물 키우기를 구경하는 이들) 처지에서 보자면, 깨달은 교훈과 감동이 만만치 않다. 다만 조심스럽게 첨언하자면, 가끔 반려동물 키우는 이들이 보여주는 ‘도덕적 우월의식’이 군데군데 묻어나는 점은 살짝 아쉽다. 여전히 동물권이 제대로 서지 않은 사회에서, 아무래도 약자의 심정에서 그러는 건 이해한다. 게다가 저자는 다름을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꽤나 기울인다. 하지만 ‘내가 옳다’ ‘내가 맞다’가 깔린 이해는 아무래도 한계를 지니지 않을까. 동등한 눈높이란 내려다보지 않는 데서 시작할 테니.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한 방문 요청에 “나는 갈 수 있다”고 밝히면서 교황이 방북한다면 언제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톨릭계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 의사를 밝힌 만큼 빠르면 내년 1월 동북아시아 방문 일정의 일환으로 북한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교황은 최근 “내년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 선교에 적극적인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공을 들여 왔다. 16일(현지 시간)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시노드’에 참석한 중국 주교 2명은 교황을 만나 중국 초청 의사를 전달한 상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과 중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평양을 함께 방문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유다. 교황 방북이 성사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교황이 어떤 형식으로 방북하느냐다. 교황의 외국 방문은 주로 2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첫째는 사목 방문이다.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서 가톨릭교회를 방문하는 형태다. 북한에는 천주교단체인 조선가톨릭협의회와 평양 장충성당이 있지만 사제는 1명도 없다. 신자의 존재 여부도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두 번째 형태는 정부에서 국빈으로 초청하는 방식이다. 이 역시 정부와 천주교 교회가 동시에 교황청으로 초청장을 보내야 한다. 북한이 정부 초청장은 보낼 수 있지만, 교회는 없어서 초청장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방북을 조율하고 교황을 맞는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줄곧 분단 현장에 깊은 관심을 보인 데다 북한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 방북하게 되면 기존 형식이나 외교적 프로토콜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천주교주교회 홍보국장인 안봉환 신부는 “교황께서 평소 다소 파격적인 표현을 쓰실 때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고 단호하게 방북 의사를 밝히셨다. 그만큼 확실한 의지를 표명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신부는 이어 “교황의 북한 방문은 기존 사례와는 어떻게도 들어맞지 않는다”며 “오히려 교황청에서 교황님의 뜻을 받들어 매우 유연하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교황의 메시지와 관련해 “평화의 사도로서 양 떼를 찾아가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신 교황님께 감사드린다”며 “평화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큰 힘을 실어주셨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교황의 방북에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여전히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로 꼽히는 북한을 방문하면 교황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교황의 북한 방문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가 얼마나 진전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정양환 기자}

“그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을 ‘은둔자’라고 부르는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해줬다. 지역신문에서도 이따금 그를 ‘은둔자’라고 불렀다.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이해는 합니다. 뭔가 정확해요. 은둔자는 정말이지 딱 들어맞으니까요.’…‘나는 그 뒤로 숨을 수 있어요.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가정에 부합한 척할 수 있죠. 은둔자라는 꼬리표가 좋은 점 중 하나는 이상한 행동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별의별 사람이 많다지만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2013년 4월 4일, 미국 메인주의 노스 숲 야영지에서 그는 1000건이 넘는 절도 혐의로 붙잡혔다. 횟수만 보면 세기의 도둑 같지만, 실은 자질구레한 먹을 거나 입을 거만 훔쳤다. 그보다 진짜 놀라운 건 나이트가 1986년 이 숲에 들어가 지금껏 혼자 살았단 점이다. 27년 동안. 세상은 낭만적으로 ‘은둔자’라 불렀지만,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 존재하기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딱히 이유도 없다. 풍족하진 않았어도 불우한 어린 시절도 아니었다. 가족도 직업도 있었고, 뭣보다 스무 살짜리 청년 앞엔 창창한 미래가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모든 걸 버리고 숲으로 떠났다. “내 행동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떠날 때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냥 떠났어요.” 아무 생각이 없던 것처럼, 그 세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물론 숲을 익히고, 훔친 책이나 잡지를 읽고, 라디오도 듣긴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했던 일은, 홀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누구와도 대화하질 않았다는 대목이다. 27년 동안 우연히 지나가던 도보여행자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 번 나눈 게 전부였다. 정말 완벽한 혼자만의 삶이었다. 하지만 아름답게만 그리기엔 나이트는 꽤나 많은 ‘빚’을 타인에게 지고 있었다. 생산적인 활동이 없었던 그는, 입고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위에서 훔쳤다. 물론 값비싼 건 아니었다지만, 당한 사람은 괴롭기 짝이 없다. 자신의 완벽한 고독을 위해 타인은 불편한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다는 측면에서 그는 동정받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 나이트는 감옥으로 향했다. ‘숲속의 은둔자’는 참 미묘한 책이다. 좋은 글과 근사한 취재가 읽는 맛을 드높이는데, 책장을 덮은 뒤엔 살짝 허망하다. 나이트는 ‘진정한 은둔자’이자 ‘좀도둑’이었다. 솔직히 이런 정의도 쓸모없는 게, 세간의 시선이나 잣대로 측정되는 인물이 아니다. 그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건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다만 한 가지. 인류는 앞으로도 끝없이 이 경계에서 번뇌하는 게 아닐까. 함께 살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 그리고 그 인생의 가치는 몇 그램쯤 되는지. 어느새 훅하고 시린 가을이 밀려 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을 ‘은둔자’라고 부르는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해줬다. 지역신문에서도 이따금 그를 ‘은둔자’라고 불렀다.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이해는 합니다. 뭔가 정확해요. 은둔자는 정말이지 딱 들어맞으니까요.’ …‘나는 그 뒤로 숨을 수 있어요.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가정에 부합한 척할 수 있죠. 은둔자라는 꼬리표가 좋은 점 중 하나는 이상한 행동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별의별 사람이 많다지만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2013년 4월 4일, 미국 메인 주의 노스 숲 야영지에서 그는 1000여 건이 넘는 절도 혐의로 붙잡혔다. 횟수만 보면 세기의 도둑 같지만, 실은 자질구레한 먹을 거나 입을 거만 훔쳤다. 그보다 진짜 놀라운 건 나이트가 1986년 이 숲에 들어가 지금껏 혼자 살았단 점이다. 27년 동안. 세상은 낭만적으로 ‘은둔자’라 불렀지만,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 존재하기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딱히 이유도 없다. 풍족하진 않았어도 불우한 어린 시절도 아니었다. 가족도 직업도 있었고, 뭣보다 스무 살짜리 청년 앞엔 창창한 미래가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모든 걸 버리고 숲으로 떠났다. “내 행동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떠날 때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냥 떠났어요.” 아무 생각이 없던 것처럼, 그 세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물론 숲을 익히고, 훔친 책이나 잡지를 읽고, 라디오도 듣긴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했던 일은, 홀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누구와도 대화하질 않았다는 대목이다. 27년 동안 우연히 지나가던 도보여행자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번 나눈 게 전부였다. 정말 완벽한 혼자만의 삶이었다. 하지만 아름답게만 그리기엔 나이트는 꽤나 많은 ‘빚’을 타인에게 지고 있었다. 생산적인 활동이 없었던 그는, 입고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위에서 훔쳤다. 물론 값비싼 건 아니었다지만, 당한 사람은 괴롭기 짝이 없다. 자신의 완벽한 고독을 위해 타인은 불편한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다는 측면에서 그는 동정 받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 나이트는 감옥으로 향했다. ‘숲속의 은둔자’는 참 미묘한 책이다. 좋은 글과 근사한 취재가 읽는 맛을 드높이는데, 책장을 덮은 뒤엔 살짝 허망하다. 나이트는 ‘진정한 은둔자’이자 ‘좀도둑’이었다. 솔직히 이런 정의도 쓸모없는 게, 세간의 시선이나 잣대로 측정되는 인물이 아니다. 그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건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다만 한 가지. 인류는 앞으로도 끝없이 이 경계에서 번뇌하는 게 아닐까. 함께 살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 그리고 그 인생의 가치는 몇 그램쯤 되는지. 어느새 훅하고 시린 가을이 밀려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힘을 느끼길 원하는 모든 여성을 위한 집합 구호다. 우리가 더 이상 폄하당하고, 위협당하고, 저지당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우리는 제도나 권력에 의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사나워질 것이다.” ‘나는…’은 저자의 이 말에서 더 보탤 말이 딱히 없는 책이다. 저자는 아마도 2016년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 원래도 미국 폭스뉴스 간판 앵커로 유명했지만, 그가 속했던 방송국 회장인 로저 에일스를 성희롱 혐의로 고발하고 결국 사임시켰다. 이 사건은 이후 ‘미투 운동’이 폭발하는 도화선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책은 제목처럼 침묵하지 않은 저자가 그와 관련해 하고 싶은 ‘모든 속내’를 타 털어놓은 선언서다. 자신의 경험은 물론이고 다양한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냈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가 어떤지 어떻게 바뀌어 나가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밝혔다. 저자는 문장이 그리 빼어난 편이 아닌데도, 글자 하나하나가 아주 명확하고 파장이 넓은 울림을 지녔다. 용기를 실천한 이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실은 ‘나는…’은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규정하기가 참 어렵다. 취재기 같기도 자서전 같기도 하며, 주장과 고백과 안내와 지시가 뭉뚱그려져 있다. 구성만 보면, 여성의 삶을 위한 자기계발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마도 그만큼 저자가 하고픈 말이 많았기 때문일 텐데, 다른 주제나 저자였다면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도 나왔을 게다. 꼭 하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마도 여성 독자들이 관심이 많을 책이지만, 정작 꼭 읽어야 할 이들은 남성이란 점이다. 불편할 수도, 뻔해 보일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도 나오듯, 상당수 남성은 저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신의 여성 가족과 친구를 위해서. 그들은 침묵하지 않기로 했고,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술과 함께하는 삶을 만끽하러 오세요.” 다소 선선하지만 청명한 날씨. 울긋불긋 솟아오른 풍선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야외광장은 오가던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한편에선 김명석 작가가 ‘하나 되는 우리’를 주제로 대형 서예 시연을 펼쳤고 씻김굿이 떠오르는 퍼포먼스 ‘현실 너머의 세계를 찾아서’(박일화 김석환 작가)도 이어졌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미술주간’ 개막식이 환호와 박수 속에서 성대한 출발을 알렸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도일)가 주관하는 ‘미술주간 2018’이 14일까지 열린다. ‘미술은 삶과 함께’를 주제로 열리는 이 행사에는 전국 181개 미술관 및 전시공간이 참여해 다양한 체험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프로그램은 해가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뮤지엄나이트’다. 가을밤을 수놓는 다양한 행사는 전국 5개 국·공립미술관 행사를 화려하게 변신시킨다. 먼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5일 ‘MMCA 뮤지엄나잇 with 시네마’를 준비했다. 야외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룬 영화 ‘러빙 빈센트’를 상영하고 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같은 날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일루젼 드로잉 쇼’를 개최한다. 지방에선 파티 클럽과 공연장으로 변신한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5일 본관 분수대광장에서 ‘바이오파티’를 연다. 미디어아트도 관람하고 디제잉 파티도 즐길 수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옥상정원에 음악회 ‘아트 나이트’를 준비한다. 미술작품 설명과 함께 아름다운 선율이 퍼져나가는 별밤이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6일 부산시립미술관은 ‘별이 총총 미술관’을 개최한다. 일렉트로닉 댄스뮤직(EDM) 공연은 물론이고 국악 현대무용 등을 즐길 수 있다.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전시공간을 찾아가는 미술여행 프로그램 ‘아트 투어’도 눈길을 끈다. 13일까지 워킹(도보)과 버스 투어 두 가지를 선보인다. 워킹 투어는 서울 북촌∼서촌 지역과 신사∼청담 지역을 둘러보는 코스로 나뉜다. 북촌∼서촌은 금호미술관과 아라리오갤러리, 학고재 등을 방문하며 신사∼청담은 코리아나미술관과 송은아트스페이스 등을 찾는다. 버스 투어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쉽고 재미있는 현대미술관 투어’ ‘역사와 함께하는 미술관 투어’ ‘자연에서 힐링하는 미술관 투어’ ‘예술가의 미술관 투어’ 등 네 가지 코스로 구성돼 있다. 자세한 내용은 미술주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막식에 참석한 김도일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국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미술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스코틀랜드에서도 북부 외진 곳에 있는 로흐두 마을. 이 촌구석에서 유일한 경찰인 해미시 맥베스는 어느 날 극심한 치통과 함께 잠에서 깬다. 하지만 건넛마을에 있는 프레더릭 길크리스트는 ‘웬만하면’ 이를 뽑아버리는 걸로 악명 높은 치과의사. 다들 기차를 타고 큰 도시 인버네스에 가길 권하지만, 해미시는 괜한 귀찮음과 호기심이 발동해 그에게 진료받기로 맘먹는다. 예약 당일, 오전 일찍 방문한 병원은 묘한 기운이 물씬한데…. 아니나 다를까, 치과의사는 의자에 늘어진 상태로 숨을 거둔 채 맥베스 순경을 맞이한다. 이달 국내에 나온 ‘치과의사의 죽음’은 추리소설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3편에 해당하는 작품. 저자는 본명이 매리언 채스니라는 영국 인기 작가로, 주로 역사로맨스 계열을 많이 써왔다. 비턴은 그가 추리소설을 쓸 때 사용하는 필명. 현지에선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의 후계자로 호평받기도 한다. 맥베스 시리즈는 1985년 1편 ‘험담꾼의 죽음’부터 지금까지 33권이 세상에 나왔다. 1936년생인 저자는 팔순이 넘었지만, 조만간 시리즈 차기작을 내놓을 예정이란다. ‘촌구석 셜록 홈스’쯤 되는 주인공 해미시는 깡마르고 큰 키에 후줄근한 차림새를 지닌 시골 순경. 30대로 여겨지는데, 약혼 경력은 있지만 아직 총각이다. 농촌 경찰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얼핏 봐선 흔하디흔한 캐릭터다. 그다지 성실해 보이지도 않거니와, 승진 욕심도 없이 한적한 전원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깊은 사려를 바탕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스타일이랄까. 게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날카로운 탐정 본능으로 척척 범인을 찾아낸다. 흥미진진하나 스케일이 크진 않은 이 연작이 영국은 물론 세계에서 30년 이상 사랑받은 비결은 뭘까. 여러 이유야 있겠지만, “스코틀랜드의 나른하고 아름다운 마을 로흐두로 여행을 떠날 시간”이란 뉴욕타임스 북 리뷰만큼 안성맞춤인 소개 문구도 없을 듯하다. 언제나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루는데도, 왜 이렇게 가상의 마을인 로흐두가 끌리는 건지. 실제로 이 소설은 박진감이라곤 찾을 길 없는데도 몽롱하되 매혹적으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느릿느릿 느긋한데도 스멀스멀 팽팽하고, 소탈한 인정과 속물의 악취가 희한하게 공존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서구 문단에선 맥베스 시리즈를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의 대표작으로 꼽는다고 한다. 이름처럼 평범한 듯 여유로운 추리소설들을 일컫는데, 참으로 잘 어울리는 용어다. 1권부터 읽으면 좋겠지만, 어느 편부터 봐도 어색하진 않다. 재밌는 건, 세월 따라 소설도 시대가 변하는데 등장인물들은 별로 나이 먹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1편은 대처 수상이 거론되는 1980년대가 배경. 하지만 ‘치과의사의 죽음’은 발행연도인 1997년 시절이 반영됐는데, 해미시는 여전히 30대. 하긴 뭐. 일본 추리만화 양대 산맥인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도 20여 년째 청소년이니까. 역시 사랑받으면 젊게 사나 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