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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5개 광역시(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의 아파트 매도심리가 매수심리를 추월했다. 11월 셋째 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9.6으로 올해 4월 이후 7개월 만에 100 이하로 떨어졌다. 5개 광역시는 99.8로 1년 1개월 만에 매도세로 돌아섰다. 지수가 100을 밑돌면 사겠다는 사람보다는 팔겠다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당분간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 매매수급지수는 아파트 가격의 선행지수로 여겨진다. 지수가 계속 낮게 나온다면 가격 하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서울 아파트는 가격이 여전히 오르고 있지만 상승률은 줄고 있다. 거래량은 급격히 줄어든 가운데 가끔씩 신고가 거래가 나오는 상황이다. 몇 년 사이 너무 많이 오른 아파트 값 때문에 실수요자들은 아파트 대신 빌라나 오피스텔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파트 매수세가 약화된 원인으로는 정부의 대출 규제, 금리 상승, 계절적인 비수기, 오랜 기간의 상승으로 인한 심리적 피로감 등이 지목된다. 이미 오른 집값 때문에 무주택자가 대출을 받아 살 수 있는 6억 원 미만 아파트가 급속히 줄어든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지방에서는 가격 하락 지역이 늘고 있다. 기존 세종에 이어 대구가 추가됐다. 대구는 일주일 전 가격 상승률이 0%를 기록하더니 이번에 0.02% 떨어졌다. 1년 8개월 만의 가격 하락이다. 매매수급지수가 5개월 내내 100 이하를 밑돌다 가격이 하락했다. 세종 아파트 가격은 올해 5월 중순 처음 하락했다가 반등과 하락을 반복하더니 7월 하순부터는 계속 하락 중이다. 세종과 대구 모두에서 신규 입주 물량이 늘고 있어서다. ▷집값 하락 조짐은 청약경쟁률과 미분양 물량에서 먼저 나타난다. 서울에서 아직 청약경쟁률이 약화되는 추세는 안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내년이나 내후년에 수도권 외곽부터 청약경쟁률이 약화될 수 있다고 본다. 수백 대 1까지 가던 경쟁률이 최근 들어 수도권 일부에서 10 대 1 정도로 떨어지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5 대 1까지 경쟁률이 떨어지면 계약 단계에서 미분양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전국 미분양 물량은 아직 늘지 않고 계속 줄고 있는 상태다. 다만 대구에서는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다. ▷집값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매도 심리가 커졌다고 하지만 공급이 충분히 늘어나기 전까지는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거래절벽 속 신고가 거래를 하락의 전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집값이 본격적인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금리 인상기로 접어든 금융 환경, 4년간 급격히 오른 가격 등을 감안할 때 그 폭이 예상을 크게 웃돌 수도 있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베이징증권거래소가 출범 첫날인 15일 5배 가까이 폭등하는 종목을 배출하며 이목을 끌었다. 홍콩을 제외한 중국 본토에서, 상하이와 선전에 이어 31년 만에 생긴 세 번째 거래소다. 상하이는 대기업들이, 선전은 정보기술 분야 벤처기업들이 주로 상장된 데 비해 베이징거래소는 혁신적인 중소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중국의 수도라는 지리적 위치도 상징하는 바가 크다. ▷첫날 가장 많이 오른 주식은 현대차의 상용차 부품 공급업체이기도 한 퉁신촨둥(同心傳動)이다. 차 동력전달축 제조에서 기술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상승·하락 제한 폭은 30%인데 중국은 개장 첫날인 이날은 제한을 없앴다. 퉁신촨둥을 비롯해 신규 상장된 10개 기업은 평균 2배 이상으로 주가가 뛰었다. 하지만 총 81개 기업 중 59개 주식은 하락했고, 3개 기업은 아예 거래가 이뤄지지도 않았다. ▷베이징증권거래소는 속전속결로 설립됐다. 시진핑 주석의 설립 발언 이후 74일 만에 문을 열었다. 시 주석은 9월 2일 국제서비스무역교역회에서 “중소기업의 혁신과 발전을 지지할 것”이라며 “베이징증권거래소 설립을 통해 서비스 혁신형 중소기업의 주진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처음 밝혔다.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 등 중국 대형 정보기술 기업은 옥죄면서도 베이징증권거래소 설립으로 중소기업의 자본 조달에는 숨통을 틔워준 셈이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시 주석이 주창하는 ‘공동부유론’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갈등은 베이징증권거래소 설립의 또 다른 원인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대형 기업의 미국 증시 진출을 막고, 미국 또한 중국 기업을 배척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미국 나스닥 상장을 강행한 디디추싱(滴滴出行)을 국가 안보 위협 혐의로 조사 중이다. 자국 인터넷 기업이 미국 등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면 사실상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미국은 자국 회계 기준을 따르지 않는 중국 기업은 내년부터 미 증시에서 퇴출시킬 예정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혁신 기업의 해외 의존을 줄일 자체 거래소를 키울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베이징 증시에는 외국인은 물론 일반 중국인도 아직 거래에 참여할 수 없다. 전문 투자가와 기관에만 개방됐다. 아직은 불안한 시장이라는 방증이다. 일일 거래 규모는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이 기업 통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세계 투자업계에서 중국 기업 리스크는 더 커졌다. 그런 중국이 자유로움이 경쟁력인 혁신 기업의 자본 조달 창구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성공적인 ‘베이징판 나스닥’으로 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올해 신입행원 공개채용을 하지 않는다. 다른 은행들도 공채 대신 수시채용을 늘리고 있다. 대기업에서 시작한 공채 폐지가 금융업계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공채가 없어지면 필요 인력만 조금씩 뽑아, 전체 일자리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금융 업종은 제조업보다 평균 연봉이 높고 고용도 안정적이다. 청년들이 신입으로 갈 수 있는 최고등급 일자리가 줄어드는 셈이다. ▷은행들은 산업 변화에 발맞춰 채용 방식을 수시 위주로 바꾼다고 한다. 한꺼번에 뽑아 부서별로 나누는 방식으로는 비대면과 정보기술(IT)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올 연말까지 5대 시중은행이 정기 공채로 뽑은 신입행원은 1000명 안팎으로 2년 전의 절반에 그쳤다. 공채 폐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지만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추세는 경력자보다 졸업생에게 불리하다.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몸집 줄이기도 활발하다. 금융 업무가 디지털과 비대면 위주로 바뀌면서 영업점 인력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금융 상품의 80∼90%가 비대면으로 팔리는 상황이다.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점포 304곳을 정리했고, 내년 초까지 250개 안팎을 더 정리할 계획이다. 명예퇴직에도 적극적이다. 올해 1∼9월 5대 시중은행 명예퇴직 인원은 1644명으로 이미 전년 전체 1531명을 넘어섰다. 적은 점포와 인력으로 은행을 운영하는 흐름은 당분간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 ▷공채는 줄지만 디지털 인재 채용은 늘고 있다. 채용 시험도 디지털 능력을 갖춘 이공계 전공자에게 유리해 문과 졸업생의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10월 치른 일반직 필기시험에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문해력)’ 과목을 도입했다. 어떤 일이나 온라인 주문을 처리하는 방식을 순서도로 표현하는 방법 등을 물었다. 데이터 관련 자격증을 가진 지원자에게 우대점수를 주는 것도 일반화되고 있다. 문과생들은 학부 때 이공계 수업을 듣거나 IT 관련 자격시험을 준비해야 할 처지다. ▷금융업계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168조 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금융업이 공적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부여한 ‘금융업 면허’로 막대한 이익을 얻으면서, 산업 변화를 핑계로 고용에 대한 공적 책임을 외면해선 곤란하다. 수시채용을 명분으로 시장이 만들어 놓은 인재만 가져다 쓰는 것도 옳지 않다. 디지털 인재가 필요하다면 대학과 협조해 직접 양성할 수 있다. 은행들이 공적 기능을 외면한다면 국가도 그들에게만 금융업 면허를 허용할 이유가 사라진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잭 웰치는 2001년 GE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나의 성공은 앞으로 20년 동안 후임자들이 GE를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달렸다”는 말을 남겼다. 정확히 20년이 지난 지금 GE는 사실상 기업 해체 선언을 했다. 129년 역사를 가진 기업이 겨우 이름만 유지하게 된다. ▷로런스 컬프 GE 회장은 GE를 3개 회사로 분할한다고 9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헬스케어 부문을 2023년 초까지 분리하고, 에너지 부문은 그 이듬해에 떼어 낸다. 남아 있는 항공 부문이 GE의 이름을 사용한다. 컬프 회장은 항공 부문만 실질적으로 이끌고, 헬스케어 부문은 비상임 의장을 맡는다. 기업분할은 GE 구조조정의 ‘절정’으로 평가된다. 발명왕 에디슨이 만든 회사가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셈이다. ▷GE는 잭 웰치가 회장으로 재임했던 1981년부터 20년간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키웠던 금융계열사 GE캐피털이 GE 몰락의 화근이 됐다. 제조업체였던 GE는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멀트 시대를 거치면서 이익의 50% 이상이 GE캐피털에서 나오는 사실상 금융회사였다. 그런 상태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2014년에는 프랑스 알스톰 전력 부문을 인수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2018년에는 간병보험에서 22조 원대 손실을 입었다. 결정적인 3연타다. ▷GE의 경영은 그 자체가 ‘경영학 교과서’였다. 불량품을 100만 개 제품 중 3, 4개 수준으로 낮추는 ‘6시그마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 품질 경영은 세계에 내로라하는 제조업체 중 도입하지 않은 곳이 드물었다. 국내에서도 삼성, LG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잇따라 도입했다. GE는 GE캐피털을 발판 삼아 각 부문 세계 1, 2위 기업들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매출과 이익을 늘렸다. NBC 인수로 미디어 분야까지 진출했다. 당시 경영컨설팅 회사들은 GE를 ‘프리미엄 복합기업’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GE의 기업 분할 발표에 시장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업 분할 발표 후 장외거래에서 주가가 17%나 뛰었다. 전문가들은 기업 분할에 20억 달러의 비용이 들기는 하겠지만 향후 몸집이 가벼워진 3개 회사가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기업이 무너지는 데는 2008년을 기준으로 13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장 잘나갈 때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GE가 보여준다. 이번 기업 분할이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국내 첫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가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고 있다.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9월 14일 첫날 올해 생산 가능 물량인 1만2000대를 훌쩍 넘긴 1만8900대의 주문을 받았다. 주문이 쌓이면서 지금은 4개월가량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운전석까지 모두 접히도록 한 공간 활용성, 첨단운전자 보조시스템, 단단하면서도 깜찍한 느낌이 나는 외관, 다양한 외장 색상 등이 주목을 끈다. 캐스퍼의 판매 호조로 캐스퍼를 만드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GGM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자리를 목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광주시 산하 광주그린카진흥원)가 최대주주로 나서 만든 회사다. 23년 만에 국내에 설립된 자동차 제조 공장이라는 의미도 남다르다. GGM은 현대자동차로부터 부품을 공급 받아 캐스퍼를 생산한다. 박광태 GGM 사장(78)은 2019년 9월 설립 이후 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고, 3일 연임이 결정됐다. 4일 취임식을 한 그를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만났다. 그는 국회의원과 광주시장을 지냈다.》내년 봄까지 500명 추가 채용 ―노사 상생 일자리 회사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캐스퍼가 나왔다. “18만 평 부지에 연 10만 대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짓고 양산을 하는 데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고속 진행이었던 셈이다. 임원급 인원 5명이 건설공정 관리하고, 직원 채용하고 교육하는 일을 도맡아했다. 직원들의 협력과 현대자동차의 도움이 컸다.” ―성공했다고 보나. “지금까지는 순조롭다고 할 수 있다. 캐스퍼가 잘 팔리면서 지금 직원과 맞먹는 500명가량을 내년 4, 5월까지 추가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자리가 더 느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지금은 직원들 임금이 같은 직종의 60% 수준이다. 이를 더 끌어올려야 진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GGM의 직원은 현재 570명이다. 대부분이 생산직으로 라인에 배치돼 있다. 평균 연령은 28.3세. 고교 및 전문대 졸업자가 많다. 거의 대부분이 직무 경험이 없어 회사가 교육한 뒤 현장에 배치한다. 직원들은 평균 연봉이 3500만 원(주 44시간 근무 기준) 정도인 것을 대부분 알고 입사한다.지속 가능성이 절대 목표 ―세간에선 ‘관(官)이 주도해 만든 회사인데, 오래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그런 시각을 노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지속 가능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제품에 불량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파업 등으로 납기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불량과 납기 차질이 발생하면 수주 감소로 이어져 생존이 위태롭게 된다. 이런 점은 근로자도 잘 알고 있다.” GGM은 캐스퍼의 판매 호조로 생산량을 더 늘려달라는 현대차의 요청을 받고 있지만 양산 초기 품질 관리를 위해 거절하고 있다. 불량품이 나오는 것도 치명적이라고 보고, 검수를 하는 현대차에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불합격 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해 둔 상태다. ―파업이 없으려면 직원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노사 관계는…. “현재 노조는 없고 노사상생협의회가 있다. 근로자위원 6명과 사측위원 6명으로 총 12명이다. 노사 관계가 나빴다면 자동차 조립은 처음인 직원들이 2년 만에 양산에 성공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직원들은 GGM이 일자리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알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회사 설립 초부터 민노총은 직원들을 민노총에 가입시키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다. 민노총이 가입 권유 문자를 보내오자 직원들이 나서서 개인정보 도용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할 정도다. 광주시와 협약을 맺은 한국노총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품질과 납기에 전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장에 붙어 있는 근로자대표의 당선 인사말이 인상적이다. 10월 말 근로자 88%의 동의를 받아 당선된 이제헌 씨는 “GGM 탄생과 공장 준공, 성공적인 양산은 우리 모두가 이뤄낸 훌륭한 결실”이라며 “주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회사를 지키고 최고의 품질과 상생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노조 필요성 못 느끼도록 진력 ―어려움은 없었나. “대기업에 비해 임금이 낮으니 조립 기술을 가르쳐야 할 중간간부를 구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었던 분들과 자동차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한 분들 중에서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회사 초기에 강성 노조가 생기면 양산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어 이 부분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경력직으로 오신 분들 중에는 일자리를 잃고 고생을 해서인지 상생협의회 방식을 잘 따라 주었다. 덕분에 신입직원들을 빠르게 교육할 수 있었다.” ―강성 노조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노사 상생 회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선 고용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해고를 없앴다. 사장보다 오래 회사를 다닐 직원들이 주인이라고 늘 강조한다. 둘째로 임금 문제다. 연간 7만 대 정도를 생산하게 될 내년이면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 직원들 성과급부터 챙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로 방지다. 여가를 중시하는 MZ세대가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업무 배정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임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탈은 없나. “임금을 더 많이 주는 다른 자동차 회사로 이직하는 직원이 더러 있다.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지도 않는다. GGM에서 얻은 기술과 경험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된다면 그것 또한 GGM의 설립 목적과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직업훈련소 역할을 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공장에서 만난 직원들 대부분은 20, 30대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연공서열을 없애 서로를 매니저라고 불러 스타트업을 방문한 듯했다. 한 시간에 22대, 하루에 200대가량을 생산하고, 지금은 교대근무 없이 일과를 끝낸다. 임금은 적지만 고용안정에 만족하는 직원이 많다. 이들은 애로 사항을 사장에게 직접 알릴 수 있다. 구내식당 앞에 있는 ‘상생함’에 넣으면 사장이 직접 읽고 결과를 알려준다. 매월 둘째 주 수요일에는 경영진으로부터 회사 경영상태에 관한 정보를 공유받는다. 노사의 소통과 신뢰를 위한 작은 장치들이다.노사 상생 문화 만든다는 각오 ―회사가 독자적 생존을 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금 연 10만 대인 생산 능력을 5∼10년 내에 20만 대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대만의 폭스콘이나 TSMC 모델처럼 자동차 분야에서 수탁생산 전문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20만 대는 생산해야 규모의 경제가 생긴다. 직원이 늘더라도 노사 상생의 문화가 지속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도 관건이다.” ―노사 상생 문화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있나. “생각하는 복안은 사원주주 회사다. GGM은 머지않은 미래에 상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사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주식을 나눠 줄 계획이다. 말로만 주인이라고 해서는 지속될 수 없지 않겠나.” GGM은 현대차와의 협약을 통해 5년간은 35만 대 주문량을 보장받고 인건비와 경상비 등의 지원을 받는다. 그동안 힘을 길러야 한다. 기술력을 높여 대형차 조립 주문도 받고 외국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야 20만 대를 채울 수 있다. GGM이 지금 공장 바로 옆에 연 1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 부지를 마련해 둔 상태다. 국내에선 노사 문제 등이 이유가 돼 자동차 제조회사가 20여 년간 세워지지 않았다. GGM은 노사 관계가 안정되면 국내에도 다시 자동차 공장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시금석이다. 앞으로 2∼3년이 중요한 시기다. 박 사장은 “GGM은 노사 상생 문화를 만드는 기적에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경유 차량에 요소수가 떨어지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화물차뿐만 아니라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경유차 운전자들은 요소수 부족 경고등이 켜지면 주유소에서 요소수를 별도로 채워왔다. 요소수는 경유 연소 과정에서 많이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을 줄여주는 일종의 대기오염 방지제다. ▷경유차 운행의 필수품인 요소수가 부족해 비상이 걸렸다. 10L에 1만 원가량이던 요소수 가격이 2배 이상으로 올랐고, 급히 필요한 수요자를 노린 일부 판매상은 10만 원을 부르기도 한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하면 다행이지만 물량 부족으로 요소수를 구하지 못한 화물차 운전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러다 보니 기존 요소수에 물을 더 타서 쓰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요소와 정제수의 함량은 정교하게 맞춰져 있는 것이어서 자칫하면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고장 나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요소수는 운행거리와 배기량 등에 따라 소모량이 다른데 승용차는 수개월에 한 번씩 갈아도 될 정도지만 매일 운행하는 대형 화물차는 2, 3일에 한 번씩 갈아야 한다. 2015년 이후 출고된 차량들은 유럽 기준에 맞춰 요소수가 없으면 운행을 못 하도록 설계됐다. 국내 화물차 330만 대 중 200만 대가량이 그런 차량으로 추산된다. 이대로 가면 연말에 요소수발 물류대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소방차와 구급차에도 요소수가 필요해 응급체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이 지난달 중순부터 요소에 수출 전 검사 의무화를 적용해 사실상 수출을 제한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은 요소의 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요소는 석탄에서 추출하는데 호주와의 무역 분쟁 여파로 중국에서도 석탄이 부족하고 가격이 급등한 상황이다. 또 요소는 식량 생산에 필수적인 화학비료의 원료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무역협회는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국내에서는 사재기가 일어나 물량 부족과 가격 급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최근 3일간 요소수 판매량이 보통 때의 1개월분과 맞먹을 정도로 급증한 주유소가 나올 정도다. ▷요소수 부족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요소를 전량 수입으로 충당한다.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중국산보다 가격이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석탄 가격이 불안정해져 요소 가격은 더 오르고 물량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중 격돌 속에 우리가 수입을 못 할 품목이 더 생길 수 있다. 요소수 대란은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CJ택배 김포 장기대리점을 운영하던 마흔 살의 가장(家長)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는 유서에 자신을 괴롭힌 택배기사 12명 이름과 함께 ‘너희들로 인해 죽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단 걸 잊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괴롭힘에 가담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고인이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돈을 제때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생전 생활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공개하며 유족을 힘들게 하고 있다. 그 대리점에는 18명이 일했다. 많지 않은 인원이라 서로들 잘 알고 지냈다. 여가를 즐길 때 가족을 동반하기도 해 가족끼리도 알고 지내는 사이로 알려졌다. 그렇게 지내다가 택배노조에 가입한 기사들이 수수료 늘려 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욕설과 조롱, 태업, 업무방해 등으로 점장을 괴롭혔다. 노조원들이 배달하지 않은 물품을 배송하던 비노조원들도 괴롭혔다. 택배 개인사업자인 그들은 여전히 배송을 하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 개인사업자는 약 2만 명이다. 연평균 매출은 8500만 원가량이다. 차량 유지비용 등을 제하고 7000만 원가량을 버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배송과 판매자 상품을 수거하는 집하 모두로 돈을 번다. 집하는 한 번에 많은 물건을 회사 터미널로만 보내면 되는 일이라 투입 대비 수입이 좋은 일이다. 좋은 거래처를 확보하려고 접대도 한다. 집하 물량이 많으면 한 달에 2000만∼3000만 원을 벌기도 한다. CJ대한통운이 연간 배달하는 15억∼16억 개 물품 중 70%가 이런 식으로 영업을 해 따 온 물량이다. 본사와 대리점장, 택배기사는 계약으로 엮여 있는 사업자들 집단인 셈이다. 택배노조는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 지난 지난달 29일에야 종합혁신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는 폭언, 폭행, 집단적 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신체적 정신적 학대에 대해 엄정 조치하겠다는 내용이다. 일반 회사원이 이런 물의를 일으켰다면 바로 징계를 받고 업무에서 배제됐을 것이다. 택배기사들이 범법 행위를 했다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 택배만큼은 저런 사람들의 손을 거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이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 전부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올바름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다. 바다 건너에서 오는 커피가 공정하게 생산된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시대다. 환경을 생각해 일부러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옷을 사 입는 ‘착한 소비’ 운동도 한창이다. 높아진 소비자 의식을 고려하면 택배 서비스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는 여러 택배 서비스가 제시돼야 한다. 소비자는 자기 집에 오는 택배기사의 평소 서비스와 언행 등을 고려해 선택할 것이다.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선택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비자가 선택권을 가지면 택배 서비스는 더 좋아질 공산이 크다. 아울러 이번 같은 일이 다시 생겼을 때 소비자는 자신의 의사를 즉시 표출할 수도 있게 된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에 소비자가 택배 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는 논의가 시작되기를 고대한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전기차 사려고 할 때 한 번쯤 머리를 스치는 걱정은 화재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충격이나 열로 배터리 속 분리막이 부서지면 한순간에 섭씨 1000도가 넘는 고열이 발생한다. ‘열 폭주 현상’이다. 기존 소화 장비로는 끄기도 쉽지 않다. 전기차 화재 발생 빈도가 내연차보다 적기는 해도 소비자로서는 꺼림칙한 문제다. ▷열 폭주 현상이 없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全固體) 배터리가 장착되면 문제는 해결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샌디에이고대 연구팀과 함께 상온 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1회 충전으로 800km 주행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나온 전고체 배터리 기술 중 충전 가능 횟수 500회를 넘긴 것은 처음이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한발 다가선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고체 배터리는 자동차 제조사들까지 달려들어 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7일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도요타는 아직까지도 순수 전기차는 양산하지 않지만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2008년부터 자체 연구소를 통해 개발해 왔다. 전고체 배터리로 세계 자동차시장을 단번에 석권하겠다는 야망이 엿보인다. ▷전고체 배터리는 아직 대중화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추운 지방에서는 충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등 넘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많다. 설사 누군가 먼저 양산에 성공한다 해도 경제성이 문제다. 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가격은 지금보다 40% 이상은 더 떨어져야 경제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kWh당 120∼130달러인 가격이 70∼80달러대로 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배터리 값이 차 가격의 30% 안팎인 지금의 전기차는 보조금이 없으면 팔릴 수가 없는 불완전한 상품이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3국의 싸움터다. 올해 상반기 사용량 기준 점유율은 중국(41.5%)이 가장 많고, 한국(34.9%) 일본(17.8%) 순이다.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중국 기업이 해외 수주에도 적극 나서면서 성장률이 빨라지고 있다. 일본은 파나소닉의 시장 점유율이 급락해 점유율이 줄었다. 지난해와 비슷한 점유율을 보인 한국은 미국 현지 공장 설립과 화재 위험은 낮추고 에너지 밀도는 높인 ‘하이니켈 리튬이온 배터리’로 반등을 꾀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2030년을 전후로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10년은 배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배터리는 결국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 같은 소재과학의 싸움이다.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산업 중 하나가 배터리 산업이다. 기초소재 개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10년이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타던 차를 자동차 대리점에 ‘믿을 만한’ 가격에 직접 팔고, 돈을 보태 바로 새 차를 살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업 진출 허용 논란 얘기다.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판매업계 등으로 구성된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는 3개월간의 상생 협상이 결렬됐다고 9일 밝혔다. 허용 여부는 이제 중소벤처기업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심의위원회 손에 달렸다.》소비자 불신 쌓인 중고차 시장 중고차를 사고 싶어도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주는 것이 아닌지 불안해 중고차 시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중고차 시장이 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 비대칭 때문에 품질이 낮은 상품이 많은 ‘레몬 마켓’인 점도 소비자들 불안을 부추긴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올해 4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80%의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은 혼탁하고 낙후돼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허위·미끼 매물과 가격 불신, 주행거리나 사고이력 조작, 비정품 사용 등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2019년 6년 동안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있으면서 사업권을 보호받았다. 제도의 취지대로면 이 기간 동안 중고차 판매업은 신뢰를 회복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소비자 신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중고차 판매업계도 일부 인정을 한다. 지해성 한국자동차매매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소비자 불신이 여전한 점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라면서도 “정부가 허위 매물로 장사를 하는 불법 조직 등을 더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해서 중고차 판매사업자가 모두 불법 사업자인 양 비치는 것은 막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는 6200여 개의 중고차판매 사업자가 있고, 5만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됐다. 법적으로는 이때부터 대기업이 진출을 해도 되는 상태다. 하지만 중고차 판매업계가 바로 중기부에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청하자 완성차 업체들은 진출을 자제해 왔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적합성을 먼저 살피는 동반성장위원회는 6개월의 실태 조사를 끝내고 그해 11월 중고차 판매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중기부로 보냈다. 중고차 판매업이 소득은 영세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영세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대기업이 진출을 해도 점유율을 크게 높이지 못하고 있어 업종 보호의 필요성도 약하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의 경우라면 중기부는 곧이어 심의위원회를 열고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만 2년 반이 지나도록 결정을 못 내렸다.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되나 생계형 적합업종은 영세성과 보호 필요성, 산업 경쟁력, 소비자 후생 등 4가지 기준으로 판단한다. 중기부 심의위원회는 동반성장위의 의견서를 참고해 결정하는데, 제한 조건을 붙여 지정하는 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 조건부 지정이 된다면 상생협약에서 나온 양측 주장과 합의된 부분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양측은 완성차 업계가 4년간 현재 전체 중고차 거래대수의 10%까지만 늘린다는 원칙에는 합의했다. 다만 기준을 삼을 중고차 거래 대수에서 250만 대(완성차 업계)와 110만 대(중고차 판매업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중고차 판매업계는 신차 판매권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완성차 업계는 신차를 팔기 위해 소비자의 중고차를 바로 매입하기를 원했지만 중고차 판매업계는 소비자가 공용 플랫폼에 내놓으면 서로가 경매를 통해 매입하자고 주장했다.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되면 소비자들은 제조업체가 인증하는 중고차를 살 수 있는 선택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해당 업종 진출이 제한되면서 역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미 진출한 기업은 사업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 판매 등을 내세운 ‘케이카’ 등은 1조3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수입차 브랜드들도 이미 중고차 판매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어 국산차 브랜드들은 더 불리해질 수 있다.낙후된 중고차 시장 키울 기회 한국에서 거래되는 중고차 대수는 한 해 약 250만 대로 시장 규모로는 25조∼30조 원대로 추산된다. 완성차 업체들은 대기업이 진출하면 중고차 시장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신차를 살 때 소비자들이 중고차로 대납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더 많은 중고차가 시장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고차 판매업계는 5년 이하·10만 km 이하의 ‘좋은 물건’을 완성차 업계가 독식하다시피 하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번 상생 협의에서 좌장을 맡아 중재위원 역할을 했던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믿고 살 수 있는 중고차가 생기면 그만큼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져 시장을 키우고 투명하게 하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중고차 시장의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 후생까지 폭넓게 고려해 중기부 심의위원회가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美-獨 등 차 선진국에선 신차 전시장서 중고차도 산다 중고차 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독일의 소비자는 신차를 사는 곳에서 중고차도 구매할 수 있다. 중고차에 대한 이력 및 시세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고, 정찰제도 정착돼 있어 중고차 구매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한 편이다. 대형 딜러들을 통해 신차를 판매하는 미국의 완성차 브랜드들은 전시장에 신차와 중고차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5, 6년 안팎이 된 중고차를 사들여 100∼200여 항목을 점검하고 수리를 거친 뒤 무상보증 기간을 연장해 판매하고 있다. ‘인증 중고차’로 불린다.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인증 중고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불과하지만 성능점검 품질보증을 확신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미국 중고차 딜러 연합회인 ‘전미독립자동차딜러협회(NIADA)’와 대형 독립 딜러들이 자체적인 인증 중고차 사업을 도입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10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켈리블루북’ 같은 업체들이 제공하는 시세와 차량 가치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딜러들과 판매 사이트의 가격을 비교한 뒤 구매를 결정한다. 독일 완성차 브랜드들도 상태가 좋은 중고차를 대상으로 성능을 점검한 뒤 2, 3년 보증 기간을 연장해 신차와 함께 판매한다. 인증 중고차의 비중은 미국보다 높은 16∼17% 수준이다. 중고차 관련 산업이 분화해 차량 평가 및 검사·인증기관은 물론이고 잔존가치 평가 업체, 디지털 트윈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차량 점검 업체, 우수한 중고차를 활용한 구독형 서비스 제공 기업 등이 있다. 중고차 시장의 활성화로 독일 중고차 시장의 거래 대수는 2019년 기준 신차 시장의 2배인 719만 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영세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자율 규제인 데 반해 이 제도는 법(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으로 규제된다. 2019년 10월 서적·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 지정을 시작으로 두부, 간장, 고추장, 된장, 청국장, 국수, 냉면, 떡볶이떡 제조업 등 9월 현재 11개 업종이 지정돼 있다. 지정 기간은 5년으로 재심의 후 연장이 가능하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80세 노인의 세포를 떼어내 40대로 되돌리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이를 ‘세포의 시간역전’이라고 한다. 인류는 시험관 안에서 세포를 다시 젊게 하는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확보해 둔 상태다. 수명 연장 연구는 이 기술을 세포 단위에서 생체 단위로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세기 중에 영생불사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아마존 최고경영자에서 올해 7월 물러난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명 연장 연구를 목표로 올해 설립된 알토스랩스에 그가 투자한 사실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 알토스랩스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출신의 정보기술(IT) 투자계의 거물인 유리 밀너가 과학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가진 세미나에서 태동했다. 베이조스와 밀너 등은 최소 2억7000만 달러(약 3105억 원)를 알토스랩스에 투자했다. ‘영원한 삶’에 대한 거부들의 공동 연구인 셈이다. ▷이론적으로 세포의 시간을 역전시킬 수 있으면 생체의 시간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세포에 단백질을 주입해 일반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리프로그래밍 기술은 동물실험에서 장기와 생체 기능을 젊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암 같은 비정상적인 세포가 발현하는 문제가 있다. 이 난관을 뚫기 위해 알토스랩스는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유능한 유전학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인간의 노화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생체 시계’의 개발자인 스티브 호바스 교수와, 리프로그래밍 기술 발견으로 2012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 교수 등이다. ▷한국에서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가 쓴 ‘노화의 종말’이 지난해 번역 출간되면서 수명 연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는 노화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확산시켰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물질을 복용해 신체 나이를 젊게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효능이 완전히 검증되진 않았지만 그 노화 방지 물질을 미국에서 구매해 복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부자들만의 욕망은 아닌 것이다. ▷영원한 젊음을 간직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부단하게 이어져 왔다. 옛소련에서는 젊은 사람의 피를 나이 든 사람의 혈관을 돌게 한 뒤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젊음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리고 젊은 피를 활용한 회춘 연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원하는 것은 다 이룬 것처럼 보이는 베이조스와 밀너의 올해 나이는 57세와 60세다. 나이 든 부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건강한 젊음’이 아닐까 싶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카카오택시(카카오T)가 콜 비용을 정액 1000원에서 수요에 따라 최대 5000원까지 내도록 한 ‘스마트 호출 탄력 요금’ 제도를 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바쁜 시간대에 택시를 빨리 부르려면 기본요금(서울 3800원)보다 더 많은 콜 비용을 내라는 것이다. 단거리 이용 소비자는 기본요금의 2배가 넘는 8800원을 내야 할 수도 있다. ▷2015년 택시 시장에 진출한 카카오는 초기엔 무료로 소비자와 택시 기사의 환심을 샀다. 그러다 택시 기사의 90% 이상,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가입하며 독점적 지위에 오르자 ‘유료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2018년에 콜을 유료화했고, 지난해에는 블루 서비스를 도입해 승차 거부 없는 배차를 구실로 최대 3000원을 더 받고 있다. 스마트 호출과 블루 서비스는 고급차량도 아닌 일반택시를, 쉽게 잡게 해준다는 명분으로 돈을 더 받는 사업이다. ▷카카오T는 택시 기사로부터도 월 9만9000원을 받는 ‘프로 멤버십’을 3월 도입했다. 회원으로 가입한 택시 기사에게 손님 행선지를 다른 기사들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고 돈을 받는다. 몇 년 전 자동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손님을 먼저 잡으려는 택시 기사들이 있었는데, 카카오T가 이를 직접 사업화한 셈이다. ▷택시가 필요한 사람은 손을 들어 택시를 잡거나 앱을 켜서 택시를 부른다. 그런데 이 두 방식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길에서는 택시를 탄 후에 행선지를 알리면 되지만, 앱을 이용할 때는 목적지를 먼저 입력해야 한다. 만약 길에서 택시 기사가 행선지를 먼저 묻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냥 가버리면 승차 거부가 된다. 승차 거부는 세 번만 위반하면 택시 운전 자격까지 취소당하는 범법 행위다. ▷카카오T가 손님 행선지를 미리 알려주니 가까운 거리에는 택시가 잘 오지 않는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는 카카오T는 스마트 호출로 돈을 버는 셈이다. 장거리 손님 행선지를 특정 기사들에게 먼저 알려주는 것은 손님 골라 태우기를 조장하는 행위인데, 이걸로도 돈을 번다. 원칙에 맞춰 손님의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가까운 택시를 무조건 배차하면 손님이나 기사 모두 웃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드는 것은 택시를 이용하겠다는 의사만 표시하는 것이다. 앱으로 택시를 잡는다고 승차 거부의 빌미를 제공할 행선지까지 밝힐 이유는 없다. 규제 당국은 카카오T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요금을 올렸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카카오T가 승차 거부를 조장하며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밝혀내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7월 말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2분기에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실적을 발표했다. 하지만 웃을 수가 없다. 철강은 대표적인 탄소배출 산업인데 유럽연합(EU)이 수입품의 탄소배출 정도를 따져 부담금을 지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도입을 지난달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2025년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계획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국내 기업에 적용할 탄소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탄소국경세와 탄소세는 수출과 제조업 중심의 한국엔 중대한 도전이다. 20년 전부터 탈탄소 경제를 준비한 EU의 수준에 맞추려면 시간이 많지도 않다.》EU, 5개 분야에 우선 적용 EU는 2023년 1월 1일부터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등 5개 분야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수입품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별도로 부과한다. 3년간은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보고만 받고, 2026년부터 실제로 부과한다. 탄소배출량을 실물 가격에 반영함에 따라 EU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소배출량이 많은 개발도상국 수출품은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EU는 탄소국경세를 발표하면서 전 지구적 탄소배출 감축을 명분으로 세웠지만 개도국에 대한 탄소 감축 기술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담지 않았다.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을 택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 등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를 중심으로 ‘탄소를 앞세운 신무역장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철강사 年 4000억 부담할 수도 탄소국경세는 국내 철강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국경세가 적용될 5개 품목 중 지난해 철·철강은 221만 t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알루미늄(5만2600t), 비료(9214t), 시멘트(80t) 등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EY한영회계법인은 2023년 EU가 t당 30.6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한다면 우리 철강업계는 연간 약 1600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탄소배출권의 가격 상승으로 2030년에는 t당 75달러가 부과될 경우 부담액은 4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2030년 기준 철·철강 수출액의 12.6%나 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철강업계의 영업이익률이 10%대인 것을 감안하면 적자 수출이 예상되는 수준이다. EU는 탄소국경세 제도를 발표하면서 2035년 EU에서 내연기관 차량 판매도 금지했다. 현대차는 2040년에 유럽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를 전면화할 계획이었는데, 이를 앞당겨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EU는 탄소국경세를 전 수입품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문진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글로벌전략팀장은 “EU의 탄소국경세는 개도국의 반발과 그에 따른 보복관세 등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탄소중립이라는 명분 때문에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아직도 탄소배출량이 늘고 있는 우리가 이에 대한 대처를 소홀히 했다가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우리 정부는 탄소세 도입 추진 수출품에 적용되는 탄소국경세와 별개로 국내에서는 탄소배출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탄소세 도입이 추진 중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전환 지원을 위한 ‘기후대응기금’ 마련을 위한 세제와 부담금, 배출권 거래제 등 탄소 가격 부과 체계의 전면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탄소세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량이 많은 기업과 업종을 중심으로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산업 경쟁력 훼손이다. 전 세계에서 탄소세를 시행하는 나라는 25개국이지만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이 발달한 유럽 국가가 대부분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t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유럽과 미국이 모두 도입한다면 우리 수출이 8조 원(1.1%) 줄고 국내총생산(GDP)은 0.28% 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여기에 탄소세 부담까지 더해지면 주력 수출 업종인 철강과 석유화학 관련 업종의 수출 타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에 2건의 탄소세 관련 법안도 계류 중이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온실가스 t당 4만∼8만 원을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부과토록 돼 있다. 최대 36조3000억 원의 부담이 기업에 부과되는데 2019년 법인세수의 절반이 넘는 비현실적인 규모다.탄소저감기술 혁신이 활로 전문가들은 탄소배출 감축 기술 확립을 위해 적극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실질적인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탄소배출 감축 기술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U는 탄소배출 감축 기술의 사업화와 상용화를 위해 혁신펀드를 설립하고, 2030년까지 13조6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호주는 저탄소배출 기술 개발에 2030년까지 15조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탄소세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임시방편의 성격이 강하다”며 “제철 과정에서 탄소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수소환원제철공법 같은 탄소 감축 기술 개발에 나서는 기업들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세, 조세 부담 커 호주는 2년 만에 폐지 프랑스는 세율 인상 유예탄소세 제도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25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를 함께 시행하는 곳이 많아 중복 규제를 피하기 위해 법인세나 소득세 등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1990년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한 핀란드는 1997년과 2011년 에너지 세제 개혁을 통해 개인의 소득세와 기업의 사회보장비 부담을 줄여줬다. 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에는 배출권을 무료 할당하는 방식으로 탄소세 부담을 줄여줬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포르가 탄소세를 도입했다. 일본은 2012년 10월 ‘지구 온난화 대책세’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탄소세를 도입했다. 세율은 이산화탄소 t당 3달러. 기존 석유석탄세에 더해 부과하면서 면세와 환급 조치를 병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수는 재생에너지 도입, 에너지 수급구조 개선 등에 쓴다. 싱가포르는 2019년 연간 25kt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세 제도를 도입했다. 2023년까지 이산화탄소 t당 4달러의 세금을 부과하고, 2030년에 가서는 7.5∼11.3달러를 부과할 예정이다. 탄소세 도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호주는 2012년 7월 탄소세를 도입했지만 광산과 에너지, 유통 기업은 물론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나 2014년 7월 폐지했다. 2014년 탄소세를 도입한 프랑스는 탄소세율을 인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가 2018년 11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발생하자 인상 계획을 유예한 상태다. 탄소배출권거래제(ETS)정부가 탄소 전체 배출 허용 총량을 설정하고, 기업이 그 범위 내에서 배출권을 부여받는 방식. 남거나 모자라는 배출권은 시장에서 거래.탄소세정부가 정한 세율에 의해 탄소 배출량에 따른 세금을 지불하는 방식. 탄소 가격은 세율에 의해 일정하게 관리되는 특징이 있음.탄소국경세유럽연합(EU)이 처음 도입하는 제도로 탄소세와 탄소배출권과 달리 역외 국가 제품에 적용하는 일종의 관세. EU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용을 부과해 무역장벽의 효과를 냄.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열린 정책 의원총회에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과 함께 양도소득세 개편안도 당론으로 확정했다.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비과세 기준선을 현행 실거래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올리는 반면, 양도차익이 5억 원을 넘기면 금액이 커질수록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이 핵심이다. 10년 실거주할 경우 최대 80%까지 받던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최대 50%로 낮춰지는 식이다. 이에 따라 집값이 12억 원이 넘으면서 시세차익이 5억 원 이상인 1주택자는 양도세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개편안이 올해 국회를 통과해 바로 시행된다면 1주택자에게 주어지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이 2009년 도입 이후 12년 만에 축소되는 것이다.》장기보유자, 기존보다 세금 늘어 비과세 혜택 기준선이 실거래가 기준으로 12억 원까지 높아진 것은 양도세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2년 이상 거주한 1주택자는 기존에는 실거래가 9억 원 이하일 때만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았지만 여당 개편안이 시행된다면 12억 원 이하까지 적용된다. 하지만 실거래 가격이 12억 원을 넘는 1주택자는 양도차익이 5억 원이 넘을 경우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이 줄기 때문에 세금을 더 낼 수 있다. 개편안 이전과 이후로 나눠 세금을 모의 계산해보니 장기 보유한 1주택자가 이전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문제가 실제로 나타났다. 실거주·보유기간이 3년 5개월인 서울 양천구 목동3단지 아파트의 경우 세금(사례1)은 1870만 원가량 준 반면 비슷한 규모의 목동2단지 아파트(사례2)는 보유기간이 9년을 넘기면서 양도차익이 10억 원을 넘기자 세금이 2600만 원가량 늘었다. 비과세 기준선이 올라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보다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효과가 더 큰 영향을 끼쳐서다. 반포미도1차 아파트(사례3, 4)는 취득가액과 양도차익이 비슷한데도 5년가량 보유한 1주택자의 세금은 줄었는데, 10년 이상 장기 보유한 1주택자의 세금은 오히려 늘어난다. 서초구 롯데캐슬 클래식 아파트(사례5)와 강남구 은마아파트(사례6)를 비교한 모의 계산에서도 은마아파트 보유자는 양도차액이 더 적고, 보유기간은 더 긴데도 롯데캐슬 1주택자와 달리 내야 하는 세금이 늘게 된다.수십년 거주, 은퇴자에 직격탄 여당의 개편안이 시행되면 오래전 집값이 지금보다 싸던 시절에 서울 강남이나 목동, 여의도 등에서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구입해 20∼30년간 살다가 은퇴한 사람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보유기간이 길어 양도차익은 클 수밖에 없는데 공제혜택이 이전보다 줄어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은퇴자들 사이에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집 한 채 사서 평생 살아 온 1주택자에게 세금 폭탄을 때리는 게 공정한가”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전보다 늘어날 양도세 부담 때문에 집을 내놓기를 꺼려 도심 인기 지역에 매물 잠김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마땅한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이사를 하려면 취득세와 부동산 복비도 부담스럽기 마련인데, 양도세까지 이전보다 늘면 이주를 포기할 공산이 크다. 이번 정책으로 9억∼12억 원에 있던 집값이 12억 원으로 오르는 ‘키 맞추기’ 부작용도 우려된다. 실거래가 12억 원까지는 비과세 혜택이 있기에 그보다 조금 낮은 가격대의 주택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 장기보유특별공제 취지 어긋나 장기보유특별공제는 부동산을 오래 보유할수록 양도차익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해 주는 제도다. 단기적 투기가 아닌 건전한 부동산 투자와 소유를 유도하겠다는 취지가 있다. 또 부동산을 오래 보유하면 물가상승에 의한 가격 상승분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춰줘야 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1가구 1주택을 장기 보유하는 경우 80%에 이르는 높은 공제율을 적용하는 것은 1가구 1주택이 국민 주거 안정에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존의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더라도 양도세가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1주택을 오래 보유한 사람의 양도세 부담이 커지면 그들은 비슷한 환경의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은 아직 국회 심의 과정이 남아 있다. 국회에서 논의할 때는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개선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장기보유특별공제 도입한지 12년만에 축소 양도세 감면 혜택은 현 정부 들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다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없애는 것을 시작으로 1주택자가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는 조건도 점점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2017년 8·2대책을 통해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 안에 있는 주택을 양도하면 양도세를 중과함과 동시에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이때 1주택자가 양도세 비과세 혜택(양도가 9억 원 이하)을 받으려면 조정대상지역에서는 2년 이상 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생겼다. 물론 조정대상지역 주택이 아니거나 8월 2일 이전에 취득했다면 2년 이상 거주할 필요는 없었다. 이듬해 9·13대책에서는 1주택자가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받으려면 규제지역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2년 이상 거주해야 하는 것으로 조건이 강화됐다. 2017년 8월 2일 이전 취득 주택이더라도 9·13대책에 따라 2020년 1월 1일 이후 양도할 경우에는 2년 이상 거주해야 최대 80%의 공제를 받을 수 있다. 2019년에 나온 12·16대책에서는 1주택자가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최대(80%)로 받으려면 사실상 그 집에 10년 이상 살아야 한다는 취지의 조건이 붙었다. 공제율을 보유기간(연 4% 공제)과 거주기간(연 4% 공제)으로 구분해 적용키로 한 것이다. 즉 실거주하며 보유해야 연 8% 공제를 받고 2년 이상 실거주 후 보유만 하면 보유기간에는 연 4% 공제만 된다. 만약 거주기간이 2년 미만이면 일반 장기보유특별공제(연 2%)가 적용돼 최대 30%(15년 이상 보유)까지밖에 공제를 받지 못한다. 올해 1월 1일 이후 양도분부터 적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 축소는 그래도 10년 이상 실거주하려는 1주택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어 최대 80%의 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당의 개편안은 이 혜택마저 없앴다. 아무리 오래 실거주를 했더라도 양도차익이 5억 원 이상이면 공제율이 10∼30%포인트 더 낮아져 세금이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 80% 공제 혜택이 축소되는 건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누구나집’ 프로젝트를 띄우고 있다. 집값의 10% 정도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한다. 10년 정도 세를 살다가 분양전환 때 최초 분양가로 집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임대법인이 가져가던 시세차익을 임차인이 갖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입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10%의 사업비를 낸다. 나머지는 시행·시공사가 출자하는 10%, 대출 80%로 채워진다. 10년 전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8년 영종미단시티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민간사업자가 조합원을 모집한 적이 있다. 8년 임대를 산 뒤에 최초 분양가로 분양받을 수 있는데도 당시 조합원을 제때 모으지 못했다. 당시 영종도는 미분양이 많은 상황이었는데도 ‘8년 후에도 최초가 분양’을 고려하다 보니 30평형대 분양가가 주변보다 3000만∼4000만 원 더 비쌌다. 또 조합원들이 내는 돈이 분양가의 10%뿐이어서 전체 사업비 조달을 위한 금융사 및 건설사와의 협의도 지지부진했다. 사업을 살린 건 집값 급등이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사업성이 개선돼 올해 초에야 겨우 착공할 수 있었다. 내 집 마련 방안이 많아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좋은 일이다. 여당이 임대주택만 고집하지 않고 주택 소유 욕구를 인정한 점도 평가한다. 그러나 조목조목 따져보면 곳곳에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10년 뒤 분양할 아파트 가격을 지금 얼마로 책정하는 것이 적정하냐는 문제다. 지금 시세에 맞춘다면 사업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지금도 집값이 고점에 접근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10년 뒤의 분양가를 책정하는 것 자체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난제가 될 공산이 크다. 둘째, 사업비의 80%를 대출로 충당하는 구조가 존속 가능하냐의 문제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의 평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비슷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민간 리츠 사업자들은 ‘대출 비중은 사업비의 40% 이하’를 철칙처럼 지킨다. 이자 비용이 커지면 자본금을 까먹는 상황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국가 보증으로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춘다는데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하물며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셋째, 사업시행자가 가질 수 있는 이점의 불확실성이다. 시세차익 대신 세입자들을 상대로 한 구내식당 운영, 차량공유 서비스, 돌봄 서비스, 헬스케어 사업 등으로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지만 가늠이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틀렸을 때의 위험성이다. 세입자는 10년 동안 월세를 내며 사업비의 이자를 충당하는 셈인데, 집값이 정체하거나 내리게 되면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은 또 멀어지게 된다. 여당이 이런 정책을 내놓은 것은 부동산정책 실패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국민을 설득하려면 최소한의 경제이론과 상식에는 맞아야 한다. 하지만 1일 여당이 개최한 ‘누구나집 5.0 및 누구나주택보증 시스템 도입방안 세미나’에선 “시행사가 이익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사회적 기여를 할 생각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답변까지 나왔다. 여당은 이 정책을 ‘부동산판 이익공유제’라며 자랑까지 하고 있다. 국민은 내 집 마련을 못 해 초조하다. 이념을 앞세운 허술한 정책으로는 그런 국민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 결정해야 하는 최저임금위원회 활동이 민노총의 18일 2차 전원회의 불참으로 초반부터 파행하고 있다. 민노총은 공익위원들이 지난 2년간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했는데 대부분이 유임되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회의에 불참했다. 아직 노사 양측의 공식적인 인상률 요구안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거진 분란이라 올해 노사 갈등이 더 심하게 표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마지막 최저임금 결정이어서 근로자위원 측의 요구가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2020년 시급 1만 원’ 공약의 무산을 사과했었다. 매년 8월 5일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다음 해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1만원 이상” vs “삭감-동결” 사용자위원 측은 내달 초에 모여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2018년과 2019년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 여파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의 삭감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대기업도 이미 많이 오른 최저임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과하다며 최소한 동결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60%대가 최고 수준인데, 이미 한국은 그 수준에 도달했고, 주요 7개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근로자위원 측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만 원 이상으로 큰 폭의 인상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와 내년은 코로나19로 위축되던 경제가 회복할 가능성이 높고,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최저임금에 이런 요인들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노총 측은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현실적인 심의가 이뤄져야 하고, 문재인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급격한 인상, 영세자영업 타격 문 정부 초기 2년간 29.1%에 이르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컸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근로자 일자리가 위협을 받았다. 2018년의 가파른 인상으로 약 35만 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중앙대 강창희 교수)이 나오기도 했다. 영세 사업자와 그 고용인이 최저임금을 두고 다투는 모양이 되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을’들의 전쟁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컸다. 이후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다시 급격히 낮춰졌다. 급격히 높아진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영세 사업자에게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부담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미만율(최저임금 미만으로 급여를 받는 근로자 비율)은 2019년 16.5%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이후 2020년에도 15.6%로 역대 2번째로 많았다.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87%에 불과했지만 한번 높아진 최저임금의 영향이 계속돼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자가 많은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을 적용할 때 최소한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배경이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현행 최저임금법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역별이나 규모별, 나아가 나이별로 차등 적용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중요한 국가정책, 정부 결정을”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위원 9명, 근로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해 원칙적으로 합의에 의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1988년 시행 이후 32번의 결정 중 합의가 이뤄진 경우는 7번뿐이다. 표결 25번 중에서도 노사 양측이 모두 참석한 경우는 8번에 불과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최저임금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용부는 2019년 2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내놨다.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가 객관적인 경제·사회 지표로 최저임금의 상·하한선을 정하면 노·사·공익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인상률을 확정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안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노사 반발 속에 자동 폐기된 상황이다. 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도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여럿 계류 중이다. 이 중에는 정부(고용부)가 책임지고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 국회에서 법률로 결정해야 한다는 방안 등 다양한 방식이 올라 있다. 문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고용과 물가 등 경제지표에 영향을 주고, 수많은 근로자와 사용자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국가 정책’이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확정하는 재분배 정책이기도 하다. 급격한 인상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실업자에게 미치는 악영향 등 범사회적인 영향도 고려돼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지 30여 년이 지나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노동시장에서 소외될 비정규직과 고령인력이 늘어나는 등 노동시장의 구조가 많이 변했다”며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듣되 정부가 결정하고, 그 근거를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하며 책임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에서는 최저임금 결정 방식 개선이 주요 어젠다가 돼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의회, 프랑스는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각 나라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의회를 통과하는 법률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5년까지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법적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발표다. 연방 최저임금과 달리 주별 최저임금을 허용하고 있어 지역별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셈이다.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로 2009년 7월 이후 12년째 동결이지만 캘리포니아(14달러), 워싱턴(13.69달러), 매사추세츠(13.5달러) 등 20개 주는 개별적인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노동장관이 ‘단체협상 국가위원회’ 의견을 들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단체협상 국가위원회에는 기업 규모별 고용주 대표 6명과 5대 주요 노조별 노동자 대표 10명이 참여한다. 먼저 전문가 그룹이 매년 국가위원회에 인상률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부는 국가 재정 및 경제 전반에 대한 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한다. 이후 노동부가 위원회를 소집해 노사 대표 의견을 청취한 뒤 결정한다. 독일은 노사 2자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노사 양측 대표 위원 각 3명과 중립적 위원장 1명, 표결권 없이 자문만 담당하는 학계 인사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연방 통계청의 월별 임금 지표에 기반해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석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 갱신 주기는 2년이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국회가 수익률 제고 방안에 초점이 맞춰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논의를 본격화한다.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는 28일 퇴직연금 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입법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확정기여(DC)형에는 ‘디폴트 옵션(사전 지정 운용) 제도’를, 확정급여(DB)형에는 ‘투자 일임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디폴트 옵션은 가입자의 운용 지시가 없으면 미리 지정된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방식이고, 투자 일임은 사용자(기업)에게 퇴직연금 위탁 운용을 허용하는 것이다. 간접적이나마 퇴직연금의 수령액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새 제도 도입 논의가 막 시작되고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연 1%대 2005년 12월 퇴직급여보장법 시행으로 시작된 퇴직연금은 2020년 말 기준으로 적립금이 255조5000억 원으로 늘었다. 매년 15% 전후로 적립금이 늘면서 그 규모가 126조 원에서 2배로 커진 것이다. 전 국민이 가입한 국민연금 855조 원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규모는 커지는데 수익률이 낮아 문제다. 수익률이 낮으면 노후 안전장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퇴직연금의 최근 5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1.8%대로 국민연금(5.3%)보다 낮다. 적립금의 대부분(86.1%)인 219조9000억 원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가입돼 있고, 실적배당 상품에는 10.7%(27조4000억원)만 투입돼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그나마 DC형 가입자는 여러 투자 상품을 선택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지만, 금융지식 부족과 무관심 등으로 적립금 67조2000억 원의 83.3%인 56조 원을 원리금 보장 상품에 넣고 있다. 이율이 가장 낮은 예금에 넣어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현재 DC형 적립금의 절반가량(50.4%)이 금리가 0.72%에 불과한 은행 예금에 들어있다. 근로자가 퇴직연금 사업자(은행, 증권사, 보험회사 등)에게 “저축은행에 넣어 달라”와 같은 명확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저축성 상품 중에서도 금리가 낮은 은행 예금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보고 있다. 기업이 운용을 책임지는 DB형도 손실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적립금의 대부분(95.5%)을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운용하고 있다. 2019년 현재 위탁운용 비중을 40.5%까지 늘린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11.3%로 2.3%가량인 퇴직연금의 약 5배에 달한다.‘예금 상품’ 옵션 도입 논란 디폴트 옵션은 DC형에 새로 가입했거나 기존 투자 상품이 만료된 가입자가 투자 상품을 선택하지 않는 특수한 경우에 적용된다. 4주 이내에 새 상품을 선택하지 않으면 사전에 가입자나 사용자(기업)가 정한 상품에 투자됨을 통지하고, 그럼에도 2주 내에 운용 지시가 없으면 해당 상품에 투자된다. 관건은 디폴트 상품(사전 지정 상품)에 원리금이 보장되는 저축성 상품을 넣느냐는 것이다. 안호영 의원이나 김병욱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안에는 실적배당 상품만 있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의 발의안에는 저축성 상품도 있다. 수익률 제고 취지에 맞추려면 디폴트 상품에 저축성 상품은 넣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이나 호주 등이 그런 방식으로 연 7%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된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금융투자협회 측은 “가입자가 상품 선택 때 예금을 선택할 기회가 있는데, 운용 지시가 없을 때 다시 넣는 것은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취지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도 가입자의 운용 지시가 없을 때는 저축성 상품에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생명보험협회와 은행연합회 등은 퇴직연금이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임금 성격이 강해 원리금에 대한 보장이 확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보험협회 측은 “퇴직 시기에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되면 예금에 넣어둔 것만 못한 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계층 간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디폴트 옵션이 도입되면 금융지식이 부족하고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녀야 하는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높은 위험에 노출되는 점 등 소득 계층 간의 불평등 문제도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디폴트 상품 수수료 낮춰야 여야 모두 디폴트 옵션 도입 자체에는 이견이 적어 앞으로 연금시장에는 디폴트 상품이 새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운용사들이 미국에서 인기 있는 타깃데이트펀드(TDF) 형태로 엄선한 새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TDF는 만기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 비중을 높여 수익성과 안정성을 같이 추구하는 상품이다. 디폴트 상품은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려는 DC형 가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2600여 펀드에서 직접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디폴트 옵션이 도입된 이후 디폴트 상품 가입자가 급증했다. 다만,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수수료를 낮추고, 이해충돌을 감시할 수 있는 별도 장치를 갖추는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 퇴직연금으로 100만 달러 자산 형성 노리기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이탈리아 뉴질랜드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디폴트 옵션 제도를 이미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1981년 DC형 퇴직연금(401k) 제도 시행 때 디폴트 옵션을 도입했다.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 때 디폴트 옵션 투자 손실에 대한 사용자(기업)의 면책 조항이 포함되면서 더 활성화됐다. 미국 가입자는 정부가 지정한 ‘적격 디폴트 상품(QDIA)’을 투자 대상으로 설정하는데, 그중에서 타깃데이트펀드(TDF) 선택 비율이 가장 높다. 연 7%대의 수익률과 주식 활황 덕분에 미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퇴직연금 내 주식과 펀드 등을 통한 100만 달러 노후자산 형성(401k Millionaire)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호주는 1992년 사용자가 근로자 급여의 9.5%를 의무 적립하는 강제 퇴직연금 제도인 ‘슈퍼 애뉴에이션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마이 슈퍼’라는 이름으로 디폴트 옵션을 도입했다. 양국 모두에서 디폴트 옵션 행사 때 선택하는 디폴트 상품(적격 연금 상품)은 전문가에 의해 잘 설계된 대표 상품이라는 인식이 높아 DC형 가입자가 투자 상품 선택 때도 이들 상품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일본은 대부분의 국가들과 달리 디폴트 상품에 저축성 상품을 포함시켜 가입자가 원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퇴직연금제도 유형1)확정급여(DB·Defined Benefit)형: 기업이 재원을 금융회사에 적립·운용하고 퇴직 시 근로자는 정해진 금액(퇴직 직전 3개월 평균 급여×근속연수)을 받는 방식.2)확정기여(DC·Defined Contribution)형: 기업이 매년 임금의 12분의 1 이상을 적립해주고, 근로자가 이를 운용해 최종 수령하는 방식.3)개인형 퇴직연금(IRP): 퇴직한 근로자가 수령한 퇴직금을 운용·관리하거나, 재직 중인 근로자가 DB나 DC 방식 외에 자기 부담으로 추가 적립·운용해 연금 혹은 일시금으로 수령.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3월 하순 온라인 블로그에 페이스북 해킹 피해가 하나 공유됐다. 페이스북에서 상품 광고를 하는 A사 계정이었다. A사는 광고비 결제를 위해 신용카드 번호를 등록해 놓고 있었다. 해커는 다른 기업 광고를 실은 뒤 A사 카드로 결제하는 방법으로 돈을 가로챘다. 관리자 한 명의 비밀번호가 해커에게 뚫리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 이용자 5억 명의 개인정보가 온라인 게시판에 노출됐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세계 106개국 이용자가 망라됐다. 한국인도 12만여 명이 포함됐다. 유출된 정보에는 아이디와 실명, 거주지, 생일, 이력, 이메일 주소 등이 포함된다.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3월에는 영국 정치 컨설팅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부적절하게 수집한 페이스북 이용자 데이터 8000만 명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페이스북은 벌금 50억 달러(약 5조6000억 원)를 물었다. 당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우리는 당신의 데이터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당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자격이 없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이듬해 2건의 정보유출 사고가 더 발생했다. ▷이번에 노출된 정보에는 페이스북 비밀번호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 측은 “2019년 8월 보안 패치 적용 전에 유출된 자료”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안 전문가들은 노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사회공학적 해킹이 가미되면 이용자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공학적 해킹이란 온라인 및 오프라인의 정보를 바탕으로 공격 대상의 성향이나 동향, 관심사 등 심리상태를 파악해 악성 파일이 담긴 메일 등으로 공격하는 방식을 말한다. 악성 파일은 비밀번호도 캐낸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활용 문제를 두고 최근 애플과 갈등을 빚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이용자가 명확히 동의해야만 자신의 활동내역이 페이스북 같은 앱에 제공되도록 했다. 페이스북은 이용자 활동내역이 있어야 맞춤형 광고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가 허술하면 동의자 수는 줄 수밖에 없다. ▷지갑에 대해 ‘중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만드는 도구’라는 냉소적인 정의가 있다. 페이스북은 ‘세계인의 개인정보 지갑’ 같은 곳이다. 저커버그의 말처럼 데이터 보호에 실패하면 관련 사업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발생한 뒤로 페이스북코리아나 저커버그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사과는커녕 안내조차 찾아볼 수 없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당시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홈페이지를 통해 바이든 당선인에게 공개서한을 띄웠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의 80%를 아시아가 차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12%에 불과하다는 점, 외국 정부의 보조금이 미국 반도체산업에 큰 불이익이 되고 있다는 점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스완 당시 CEO는 미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정부의 투자와 지원을 요청했다. 이 서한은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정책을 읽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미국 백악관이 삼성전자와 제너럴모터스(GM) 등 반도체 생태계의 주요 공급자와 수요자들을 불러 모으기로 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일 보도했다. 12일(현지 시간) 경제 참모뿐만 아니라 안보보좌관도 백악관의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회의를 할 예정이다. 미국이 반도체를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 문제로 끌어올려 대대적인 지원을 쏟아붓겠다는 구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는 올해 1월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켜 반도체 연구개발 및 투자에 연방정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인텔은 지난달 24일 2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31일 바이든 대통령이 밝힌 2조 달러 초대형 인프라 투자계획에도 국가반도체기술센터(NTSC) 설립 등 반도체 투자비 500억 달러가 포함돼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백악관 반도체 테이블에 왜 삼성전자를 초청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선 최근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가전 스마트폰 산업에 생산 차질이 생긴 것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 2월에 닥친 한파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공동전선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바이든 정부와 인텔의 ‘2인 3각’식 움직임은 그동안 아시아에 넘겨줬던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생산 분야에서는 현재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 TSMC의 뒤를 멀리서 쫓는 처지다. TSMC는 앞으로 3년간 연구개발에 10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1일 내놨다. TSMC는 달아나고 미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급성장하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백악관의 초대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계절이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이 부각됐지만 여야 국회의원들은 3월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았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함부로 사익을 좇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들을 담고 있다. 여야가 31일 심사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시민사회는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국회 처리가 무산된 데다 4·7 재·보선 이후 정국이 대선 체제로 전환되면 이해충돌방지법 이슈가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일주일 전 슬그머니 심사 중단 정치권에서 이해충돌방지법에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다. 서울·부산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열세로 나오는 더불어민주당이 도입을 더 서두르고 있을 뿐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도입에 찬성하면서도 제정법인 만큼 좀 더 신중하자는 입장이다. 겉으로는 야당이 지체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법안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한국투명성기구 등 시민단체의 판단이다. 이번 법안은 지난해 6월에 제출됐지만 그동안 심사를 하지 않다가 3월 초 LH 사태가 발생하자 부랴부랴 공청회가 열렸고, 법안 심사가 시작됐다. 법안심사 소위는 24일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열릴 예정이었지만 결국 슬그머니 중단됐다.법 있었다면 LH사태 막았을 것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해충돌방지법이 있었으면 LH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법에 따르면 신도시 개발 업무 관련 공직자들은 관련 부동산 거래를 사전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직무상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했다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강력한 처벌도 효과를 발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반부패권익위법이나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달리 사전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직자가 사적 이익을 추구했는지를 증명할 필요 없이, 관련 신고의 미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 이해충돌방지 조항은 원래 청탁금지법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2013년 발의 당시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법안’이었다. 국민권익위가 법무부 감사원 등 8개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단체들과 토론해서 만든 안인데 국회에서 이해충돌 부분이 통째로 빠졌다. 국회의원이나 중앙부처 공무원의 업무는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업무가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주장 등에 밀렸다. 그나마 청탁금지법이라도 통과된 것은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컸다.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감독 부실이 거론됐고, 해양수산부의 사무를 위탁받는 관련 협회에 퇴직공직자들이 취업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에 퇴직공직자의 취업 제한 제도를 강화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과 청탁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셌던 것이다. 이해충돌방지는 부패방지와 한몸이어서 2001년 부패방지법 제정 때 도입됐어야 했다. 신봉기 한국부패방지법학회장(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이해충돌방지는 2000년 초부터 논의가 있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법안에 반영되지 못했다”며 “사실상 20년째 이해충돌방지 논의가 맴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내달 처리 못 하면 로드맵 제시를 여야가 법안 심사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니 4월에는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24일까지 3차례 진행된 법안심사 소위에서는 ‘직무상 비밀 이용 금지’ 조항에서 ‘비밀’을 ‘미공개 정보’로 확대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직무상’도 없애서 LH 사태에서처럼 동료로부터 취득한 정보를 포함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해충돌방지법은 LH 사태 이전에 제출돼 보완해야 할 사안이 있을 수 있다. 더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제대로 더 논의할 수 있다. 다만 여야는 마감 시한을 정한 일정표라도 제시해서 국민들의 불신을 잠재워야 한다. 국회의원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이해충돌방지법의 처리가 더딘 것에 대해 시민단체가 보는 눈은 곱지 않다. 이상학 한국투명성기구 대표는 “공직자는 공무원 행동강령과 감사원 감사 등으로 견제라도 받지만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들은 권력에 비해 감시가 약하다”며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이 핵심인 만큼 논의 도중 대상에서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조문이 많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너무나 상식적인 주문들이다. 美는 반세기 앞서 도입… 위반땐 최대 5년刑 이해충돌방지법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도입돼 있다. 미국은 1962년 제정한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방지법’을 통해 공직자 자신 및 가족 등의 재정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특정 사안을 회피하지 않고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향후 고용될 수 있는 단체도 이해관계 대상에 포함된다. 이를 위반하면 고의성이 있을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고의성이 없는 단순 참여라 할지라도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금융회사 조사관 등이 조사 대상 은행 등으로부터 대부금이나 사례금을 받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한다. 또 2009년 별도의 행정명령으로 공직자로 임용되기 전의 사용자 또는 고객과 직접적 실질적으로 관련된 특정 업무를 공직 임용 후 2년간 수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는 ‘공무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1983년 7월 13일의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이해충돌을 방지하고 있다. 객관적인 직무수행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여도’ 이해충돌 상황이 성립한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캐나다는 2006년 ‘공직자의 투명성과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했다. 공직자의 가족이 공직자와 유관한 기관과 고용계약을 맺는 것은 금지되고, 친인척에 대한 계약 발주도 제한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이해충돌방지 가이드라인에서는 공무와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적 이해관계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신고하는 절차를 만들 것을 권고하고 있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새집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주택청약제도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집값이 급격히 오르고 주택자금 대출은 여의치 않으니 사람들은 더 청약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올해 1월 말 2730만 명을 넘었다. ‘인생 최대의 쇼핑’인 생애 최초 주택 마련에는 7년 안팎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도 걸린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청약통장을 만들고, 땀 흘려 오랫동안 일하며 자금을 마련한다. 하지만 막상 청약을 하려고 보면 청약 조건은 이전과 달라져 있기 일쑤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니 불편하고 불안하다. 유주택자가 되려면 움직이는 과녁 정도는 맞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10명 중 1명은 부적격자로 탈락 청약은 조건이 복잡해져 지뢰밭 수준이다. 가령 지난달 19일 시행된 주택법 시행령을 모른 채 청약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2월 19일 이후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반드시 입주를 해야 하고 2∼5년을 의무적으로 살아야 한다. 새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그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새 아파트의 잔금이 부족할 때 일정 기간 전세를 주고 그사이 돈을 모아 입주하는 기회를 막은 것이다. 자금 부족으로 계약을 하지 못하면 청약통장은 무효가 되고 당첨일로부터 10년간 투기과열지구 등의 주택에 청약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된다. ‘남은 무주택자’에게는 더 혹독한 자금 조달 조건이 부과된 셈이다. 청약제도는 국토교통부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으로 주로 실현된다. 이 규칙은 1978년 5월 처음 나와 지난달까지 시행 횟수 기준으로 148번 고쳐져 시행됐다. 1년에 3.4회꼴이다. 1순위 자격은 툭하면 변경됐고, 바뀔 때마다 금지 규정이 신설되거나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이후로는 4년이 채 안 되는 동안 20번 새로 시행됐다. 청약제도의 잦은 변경은 청약 혼선과 함께 부적격자 양산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어그러지고, 투기과열지구 등에서 1년간 청약이 제한되는 불이익도 받는다. 2017∼2019년 매년 청약 당첨자의 11%가량, 즉 10명 중 1명꼴로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다. 경쟁이 치열한 곳은 20%를 넘기도 한다. 지난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세대 갈등까지 부른 청약제도 청약제도는 세대 갈등까지 야기한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30대 이하가 차지한 비중은 37.3%로 10명 중 4명꼴이다. 청약 시장에서 밀린 청년층이 대거 주택 매입에 나선 결과다. 정부는 2017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m² 이하 물량은 가점제로만 당첨자를 가리도록 했다. 가점에서 불리한 청년층이 소외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소득기준을 완화하고, 민간분양에도 생애최초 특별공급 등을 도입하며 달랬다. 이렇게 조건을 바꾸자 청약 대상이 줄게 된 장년층의 불만이 커졌다. 서울시가 작년 8·4대책에서 지분적립형 주택의 100% 추첨제를 발표했을 때도 20년 이상 청약통장에 돈을 넣으며 기다린 50대 이상 무주택자들은 반발했다. 한정된 물량을 일반공급(가점제)과 특별공급으로 가르니 제도가 바뀔 때마다 어느 쪽에서건 불만이 나온다.로또 분양 막을 채권입찰제 필요 청약제도를 둘러싼 잡음은 과도한 차익이 근본 원인이다. 당첨되면 많게는 10억 원의 이득이 생기니 청약자들은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된 지난해 7월 말을 기점으로 수도권 분양 아파트 1순위 경쟁률에서 세 자리 경쟁률이 속출했다. 당장 집이 필요 없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심리가 팽배하다. 실수요자 내 집 마련은 멀어지고 언젠가는 당첨될 거라는 희망고문만 늘어난다. 과도한 시세 차익을 줄이려면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채권입찰제가 현실적 해법이다. 당첨자가 독차지하던 시세 차익을 공공채권으로 흡수하면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를 막을 수 있고 공공채권을 주택 건립 재원으로 활용하면 주택 공급에도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분양가를 통제하면 채권입찰제는 바늘과 실처럼 같이 갔다.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 분양 때 그랬고 참여정부가 판교신도시를 분양할 때도 그랬다. 로또 분양을 그대로 두고 대출 규제를 옥죄면 부모의 도움을 받는 금수저만 웃는 불공정 논란도 계속된다. 한국 가계 자산의 80%가량이 집이다. 새집 배분 방식을 담은 청약제도는 사실상 자산을 배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더 공정하고 알기 쉬운 청약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1인 가구가 전체 30%… 가점제 손봐야청약제도는 2007년 청약가점제도가 도입되면서 더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가점은 부양가족 수(35점)와 무주택 기간(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을 합쳐 84점이 만점이다. 항목은 3개로 많지 않지만 해외 체류 등을 감안한 무주택 기간, 양어머니의 부양가족 포함 여부 등 개인 사정을 따져가며 정확한 계산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신혼부부, 생애최초, 다자녀 등 특별공급에 소득 기준 같은 별도 조건이 붙으면서 청약제도는 더 복잡해졌다.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별로 조건을 달리 적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점제는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둘 이상 두고 부모를 봉양하는 가정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1인 가구가 615만 가구로 30%에 달하고 30, 40대에도 미혼인 인구가 383만 명에 이를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달라진 환경에 맞춰 가점제 배점 항목이나 점수 비중을 바꾸지 않고, 특별공급 물량을 늘리면서 제도가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며 “생애 주기에 맞춘 청약 등 큰 틀에서 단순하고 오래가는 청약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했다. ::채권입찰제::아파트 분양 이후의 경제적 이득을 노리고 투기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청약 때 매입할 채권액수를 적어내고 많은 순서로 당첨자를 결정하는 제도. 매입한 채권을 은행에 할인해서 팔게 되면 수분양자는 그 할인액만큼 비용을 더 지불하게 되는 셈이 된다.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