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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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colee@donga.com

취재분야

2026-05-24~2026-06-23
칼럼100%
  • [횡설수설/이진영]얼굴 없는 기부천사, 누군지 알아내려 애쓰지 말자

    해마다 이맘때면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엔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올해는 “다솔어린이집 유치원 차 뒷바퀴에 상자를 두었다”고 했다. 직원들이 달려가 찾은 상자 안에는 지폐 뭉치와 동전까지 현금 7600만5580원, 그리고 편지가 들어 있었다. “등록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익명의 독지가는 2000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이후 23년간 9억 원 가까이 기부했다. 전주에선 그를 ‘얼굴 없는 천사’로 부른다. 경남 창원에는 ‘얼굴 없는 산타’가 있다. 2017년부터 성탄절이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익명으로 성금을 보내온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약 6000만 원을 기탁했다. 지금까지 기부 총액은 5억4500여만 원. ▷쌀이나 라면으로 온정을 전하는 이도 있다. 16년째 직접 농사지은 햅쌀을 기부하는 경남 거창군 ‘마리면 천사’, 명절마다 쌀 과일 떡 같은 제수용품을 두고 가는 광주 광산구 ‘하남동 천사’가 그들이다. 서울 양천구 ‘신월3동 천사’는 새벽에 몰래 트럭을 몰고 와 주민센터에 쌀 500kg, 라면 50박스, 귤 50박스를 내려놓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 “이곳에서 할머니와 지독한 가난에 빠져 살았습니다. 지금은 작게나마 도울 수 있어서 가슴 따뜻합니다.” ▷고마운 독지가의 얼굴을 기어이 알아낼 때도 있다. 매년 쌀을 보내오는 울산 중구 복산2동 천사는 주민센터가 쌀을 가져온 배달업체에 수소문해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 신월동 천사는 2011년 명동 자선냄비에 1억1000만 원짜리 수표를, 이듬해엔 같은 냄비에 1억570만 원짜리 수표를 넣었다. 자선냄비본부는 수표와 함께 건넨 편지의 필적을 감정해 두 사람이 동일인임을 확인했고 결국 그의 정체가 공개됐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 보면 지독히 가난했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못다 한 효도 대신 기부를….” ▷충남 천안시 청룡동 천사는 “내가 누군지 알려고 하면 다시 들고 가겠다”며 지난 28일 현금 9900만 원이 든 가방을 내밀었다. 기부천사들이 한사코 선행을 숨기는 이유는 ‘받는 이들에게 부담될까 봐’ ‘누군지 모르면 감동이 오래 유지되므로’ ‘기부 사실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는 게 싫어서’라고 한다. 기부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내 통장에 입금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와 같다. 그러니 감사한 마음에 얼굴 없는 천사의 정체를 알아내려 애쓰지 말자. 인간은 받는 기쁨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아는 존재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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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진영]중국은 왜 축구도 방역도 뒤처졌나

    중국인들은 농구 다음으로 축구를 좋아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은 여러모로 즐겁지 않다. 중국 기업은 14억 달러를 후원하고, 경기장 지어주고, 축구공에 호루라기까지 만들어줬다. 중국이 없었더라면 월드컵 어떻게 치렀을까 싶은데 정작 국가대표팀은 20년째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중국은 선수 빼고 다 월드컵 갔다”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왜 올림픽 메달을 쓸어 담는 스포츠 강국이 축구는 못할까.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1990년 이후 126개국의 150개 국제 A매치를 전수 조사한 결과 경기력의 40%는 국가의 경제력과 크기, 국민의 관심도가 좌우하고, 나머지 60%는 선수들의 창의력과 의사결정의 자율성, 공정한 경쟁과 개방성에 달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축구의 특성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보다 경기력이 좋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200개 넘는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 중 민주국가는 67%인데 16강 진출국으로 좁히면 88%로 늘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8개 우승컵을 가져간 나라는 군정 시절의 브라질(1970년)과 아르헨티나(1978년)를 빼면 모두 민주국가다. 이번에 아프리카 최초로 4강 진출 신화를 쓴 모로코는 왕정국가지만 대표 선수 26명 중 14명이 이민 가정 출신으로 유럽의 주요 리그에서 뛰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저조한 축구 실력도 하드웨어를 뺀 나머지 60%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유럽에선 난민 출신도 국가대표가 되는데 중국은 돈이 없으면 시작도 못 한다. 한국 일본 호주의 선전은 유럽파 선수들 덕이 크다. 그런데 중국은 막대한 자본력 덕분에 슈퍼리그 선수 평균 연봉이 K리그의 10배가 넘어 힘들게 해외에서 뛰려는 선수가 없다. 외국인 감독과 선수도 영입하지만 뇌물과 ‘관시(關係)’와 승부 조작의 문화에 오래 버티질 못한다. “월드컵 개최국이 되기 전엔 본선 무대 밟긴 글렀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국가대표팀 경기력에 실망한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관중이 마스크를 벗고 응원하는 중계를 보고 분노한다. 중국 관영 방송이 ‘노 마스크’ 관중석을 지워 내보낸 후로도 중국의 ‘나 홀로 봉쇄’에 성난 민심이 정권 퇴진 시위로 이어지자 중국 정부는 3년간 걸어두었던 ‘제로 코로나’의 빗장을 풀어야 했다. 중국은 코로나 초기 감염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아내 주목받았지만 방역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의사 리원량을 거짓 정보 유포죄로 체포하면서 국민 건강보다는 체제 유지를 중시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실상을 드러냈다. 민주국가들이 과학적인 데이터와 전문가 의견을 공유하며 유연하게 대응하는 동안 중국은 제로 코로나만 고수했다. 화이자가 더 효과적이라는 통계에도 중국산 백신을 고집했고, 병상 확충이 필요하다는 권고에도 검사소만 늘렸으며, 공식 통계를 불신하는 고령층은 가짜뉴스를 믿고 백신 접종을 꺼렸다. 그 결과 다른 나라들은 일찌감치 일상을 회복했는데 중국은 앞으로 100만 명 넘는 사망자 발생을 우려하는 처지가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월드컵 개최, 본선 진출, 우승이 세 가지 꿈”이라며 2050년엔 축구로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축구몽(夢)’으로 중국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겠다는 정치적 야심일 것이다. 제로 코로나로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효율성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 하지만 축구팀의 부진과 제로 코로나 실패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만 확인시켜 주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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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과이불개

    공자의 가르침을 모은 ‘논어’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강조한 구절이 곳곳에 나온다. 군자는 ‘잘못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고치고(過則勿憚改)’, 제자 안회는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不貳過)’라고 칭찬받았으며,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過而不改 是謂過矣)’이라고 했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과이불개’는 논어의 ‘위령공편’에 등장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과오가 없을 순 없지만 이를 스스로 감당하지도, 고치지도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잘못이라는 뜻이다. 선정에 참여한 교수들은 학계의 연구 윤리 문제와 함께 반성 없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었다. “많은 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는데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이유도, 고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아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잘못을 고쳐 좋은 쪽으로 옮겨간 사례가 여럿 있다”며 세종의 예를 들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간 권희달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자 “사람을 잘못 알고 보낸 것이 심히 후회된다”고, 역병이 돌았을 땐 미리 예방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한다”고 했다. 군자감(군량미와 군수품 담당 관청) 붕괴사고 때는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으로 이후 세종 재위 기간 내내 비슷한 참사는 반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의 사자성어 2∼5위에 비친 한국 사회도 암울하다. 2위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 과이불개하고 덮으려고만 하니 계란을 쌓아 놓은 듯 위태롭고(累卵之危·누란지위·3위),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하며(文過遂非·문과수비·4위)’, 눈먼 자들이 코끼리 만지듯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한다(群盲撫象·군맹무상·5위). 제 역할을 못하는 지식인에 대한 자성도 담아 선정한 사자성어들이다. ▷지난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한 것을 부수고 생각을 바르게 한다)’엔 촛불 시위로 들어선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부정적인 사자성어가 꼽히더니 2020년엔 ‘내로남불’ 세태를 꼬집은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2021년엔 ‘묘서동처(猫鼠同處·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 패가 됐다)’가 선정됐다. ‘과이불개’로 시작한 새 정부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하여 해가 갈수록 희망적인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되길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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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원 조사, 세월호 조사 실패부터 돌아보라[오늘과 내일/이진영]

    이태원 참사에 대해 여야가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를 하기로 했다. 정부의 수사가 미덥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국정조사라고 다를까 싶다. 활동 기간이 짧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 한 달여 전 끝난 세월호 조사의 실패가 너무도 참담해서다. 선진국에선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의회 내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는 수사와 달리 조사는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의 기초가 될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고든다. 2001년 미국 9·11테러는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정보기관의 ‘상상력의 실패’, 2003년 컬럼비아호 폭발은 작은 일탈을 감당 가능한 안전 오차로 오인한 ‘일탈의 일상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규제 당국이 규제 대상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제 포획’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에선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검찰의 수사에 집중할 뿐 변변한 진상 보고서를 낸 적은 거의 없다. 세월호 사태 후 처음으로 재난조사위원회가 꾸려진 건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세월호는 90일간의 국정조사 외에 국가기관 조사만 8년간 9차례 하고도 진상 규명에 실패했다. 무능한 정부와 기회주의적 야당의 정치적 힘겨루기 탓만은 아니다. 당시 조사관으로 참여한 박상은 씨는 조사 실패의 기록인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기보다 책임 추궁에 매몰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조사위원회 구성부터 구조적 원인 규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원 17명 중 15명이 법조인으로 공학자나 기술자는 한 명도 없었다. 스스로 조사 계획을 세우기보다 과거사위원회처럼 희생자 유족이 신청한 개별 사건을 조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진영 대결이 워낙 팽팽해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수동적으로 신청 사건 조사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인양 후 구성된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 원인에 관한 기술적 판단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선박 내부의 결함이 문제였음을 충분히 조사하고도 국내외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된다는 잠수함설이나 고의 침몰설 같은 ‘외력설’에 매달렸다. 책임이 분산되는 ‘내인설’과 달리 고의로 침몰시키고 은폐하려 한 ‘윗선’을 특정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외력설을 좇다 결국 종합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마지막 사회적참사위원회도 법조인 위주의 구성으로 외력설 입증에 매달리다가 명확한 결론을 못 내고 끝났다. 박 전 조사관은 “재난은 여러 행위자들의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으로 발생하지만 대중은 결정적인 책임자가 누구인지 묻는다”며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거나 승객들을 구조하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이전에 10명 넘게 숨진 압사 사고만 세 번 있었다. 비슷한 후진적 재난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세월호 등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매번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거나 사표 받고 안전 구호 외치는 것으로 끝낼 뿐 시스템과 문화를 손대지 않으니 사람이 바뀌어도 비슷한 재난이 반복되는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단기 국정조사가 차분히 참사를 복기하고 근본 원인을 규명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진상 조사는 중립적인 명망가들의 몫이다. ‘158명은 대체 누가 죽인 거냐’며 명쾌한 결론을 기대하는 유족들도 설득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신뢰성을 겸비한 이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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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경기버스 입석 중단

    “광역버스 입석 중단 후 매일 지각이다. 오늘도 버스 3대를 그냥 보냈다.” “몇 정거장 거슬러 올라가도 자리가 없어 아예 반대 방향 종점까지 가서 탄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가 입석 승차를 중단하면서 도민들이 출퇴근길 승차난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125만 도민은 버스 승차난이 지하철까지 확대될까 노심초사다. ▷경기도 광역버스의 절반을 운행하는 KD운송그룹은 18일 성남과 남양주 등에서 서울 광화문과 사당 쪽으로 운행하는 버스의 입석 승차를 전면 중단했다. 나머지 버스업체도 올 7월부터 입석 승차를 줄줄이 중단했다. 이로써 경기지역 220개 노선 광역버스 2000여 대의 입석 승차가 거의 모두 제한된 상태다. 올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최근에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안전 우려가 커지자 이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의 입석 승차는 불법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한해 허용해 왔다. 이 버스 놓치면 서서 가기도 어려울까 45석 버스에 70명 이상이, 74석 이층버스엔 120명 이상이 1, 2층은 물론이고 중간 계단에까지 빽빽이 몸을 구겨 넣었다. 밀도가 위험 수준인 m²당 5명을 훌쩍 넘는다. 운전석 시야를 가릴 때도 많다. 2018년엔 추돌 사고로 70명 넘게 태우고 달리던 광역버스에서 28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특히 이층버스 승객들은 “시속 100km로 달리는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코너를 돌다 사고가 날까 아찔하다”고 했다. ▷2014년 세월호 사태 때도 정부는 국민안전 대책으로 광역버스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하고 입석 승차를 금지한 적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에 입석 승객을 태우다간 언제 대형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100m 넘게 줄서서 1시간을 기다려도 버스를 타지 못한 도민들은 “탁상행정을 한 공무원들 모아서 광역버스로 출퇴근시켜 보라”며 반발했다. 결국 정부는 입석 승차 단속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한 달 후 출퇴근길 입석 승차를 허용했다. ▷입석 승차 전면 중단 첫날인 어제는 전세버스 투입으로 큰 불편은 없었다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경기도는 정규 버스를 대폭 늘리겠다고 했는데 새 차 출고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버스 운전사들마저 코로나 이후 배달업계로 옮겨가 기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세월호 사태 이후 8년간 무얼 하다 이태원 참사가 터지니 근본 대책 없이 입석 승차 중단부터 하나. 안전 문제가 불거질 때만 반짝 대책을 내놨다 흐지부지되니 안전해지지도 않고 승객들만 매번 큰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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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웃기고 있네”

    8일 대통령실 국정감사 도중 대통령실 수석 2명이 필담을 나누다 퇴장당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이 질의하는 동안 강승규 시민사회수석과 김은혜 홍보수석이 메모장에 “웃기고 있네”라고 썼다가 지우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수석들은 “의원들 질의와 무관한 사적 대화”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대통령실 국감이었다. 문제의 메모를 포착한 인터넷 언론에 따르면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실의 이태원 참사 대응을 질타하는 와중에 두 수석이 필담을 나눴다고 한다. 강 의원은 김대기 비서실장을 상대로 “역사가 김대기 비서실장을 소환할 수 있다”는 엄중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필 그 타이밍에 “웃기고 있네”라는 메모가 등장한 것이다. 야당 의원의 질의를 조롱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수석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도 “강 수석과 다른 사안들로 얘기”하던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개국 156명의 젊은이가 깔려 죽은 초유의 참사에 대해 대통령실의 책임을 따지는 자리였다. 국민을 대신해 묻는 의원들 질의에 집중을 했어야 하지 않나. 두 수석은 국감장에서 소리 내어 웃다가 수감 태도를 지적받았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통령실 태도를 보여주는 것” “국회 모독이자 국민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번 메모 파동에 대해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들킨 게 잘못”이라고 했다. 설사 야당을 겨냥한 말이었대도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니 정색하지 말라는 뜻인가. 들키면 안 될 말을 하다 들켰으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동안 정제된 말로 감추고 있던 오만과 저열함이 부주의한 메모로 드러났다. 원래 뒤통수를 맞으면 더 아프고 괘씸한 법이다. 김 수석은 어제도 공식 브리핑에서 거듭 사과하며 눈물을 보였다. 남이 듣는 줄도 모르고 내뱉은 다섯 글자로 얼어버린 민심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두 수석이 국회 운영위에서 “웃기고 있네”를 썼다 지우는 동안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강남역 인파’ 설화로 뭇매를 맞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야당 의원이 ‘마약 단속하느라 이태원 경비 경찰이 부족했다’고 지적하자 “강남역 하루 통행 인원이 13만 명이 넘는다”고 답변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내뱉었다 사과하고 주워 담은 “우려할 만한 인파가 아니었다”는 말로 들린다.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어이없는 실언으로 될 일도 안 되게 하고 사람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예삿일이 돼 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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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 이태원 의인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타이태닉호 침몰이나 9·11테러와 같은 재난을 연구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사람들은 배가 가라앉고 빌딩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약자들을 보호하며 의연하게 대처했다. 위기의 순간 이기심에 지배당하지 않고 서로 돕는 이타적 본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재난이 닥치면 등장하는 ‘의인’들이 그 증거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목숨 건 의인들이 있었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준 고교생, 마지막까지 제자들의 탈출을 도운 교사, “승객들 먼저”라며 끝까지 배에 남은 승무원들이다. 2020년 경기 군포 아파트 화재 때는 ‘사다리차 의인’이 주민들을 살렸다. 2016년 서울 서교동 원룸 건물 화재 땐 ‘초인종 의인’이 집집이 초인종을 눌러 대피시키느라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2017년 경북 군위군에 사는 스리랑카 남성은 불난 집에 뛰어 들어가 할머니를 구해냈다. “평소 마을 어르신들이 따뜻하게 보살펴 준 게 고마워서”라고 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죽음의 골목길에서도 외국인들이 귀한 목숨을 살렸다. 골목길엔 대피할 수 있는 건물 난간이 있는데 청재킷을 입은 남성이 “밟고 올라가라”며 어깨를 내주고 가죽재킷을 입은 남성이 도와준 덕분에 여럿이 난간으로 올라가 살았다. 덩치 좋은 흑인 남성이 동료 2명과 나타나 인파에 깔린 사람 30여 명을 ‘밭에서 무 뽑듯’ 빼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이들은 경기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 근무하는 미군들로 밝혀졌다. ▷경찰의 부실 대응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참사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경찰관에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31)다. 김 경사는 단순 시비 신고를 받고 동료들과 출동했다가 참사 현장을 발견한 뒤 “사람이 죽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하고 외치며 인파를 통제하고 구조 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시민들이 경찰관보다 먼저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었고,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가 달려 나와 환자들을 둘러업고 이송했다”며 “더 살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말이 있다. 공감하고 연대하는 힘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99.9%의 종이 멸종하는 동안 뇌도 덩치도 네안데르탈인보다 작은 인류가 살아남은 비결이다. 이타심은 전염된다. 군포 ‘사다리차 의인’은 예전에 어느 사다리차 기사의 구조담을 듣고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이태원 의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재난이 닥쳤을 때 또 다른 의인이 되어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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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진영]이태원 비극, 실패한 정치는 책임 없나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촛불행동’이 5일 서울 광화문 ‘이태원 참사 추모 촛불집회’를 준비 중이다. 촛불행동은 ‘조국백서’를 집필한 교수와 야당의 비례위성정당 대표를 지낸 인사가 주도하는 시민단체다. 지금까지 12차례 정치 집회를 가졌는데 이번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추가 집회를 예고한 것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 29일 오후 5시 촛불행동은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역까지 행진한 후 오후 8시 넘어 해산했다. 전광훈 목사가 대표인 자유통일당은 그날 오후 3시 광화문 일대에서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를 열었다. 양대 노총 집회와 4·15 부정선거 규탄대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 집회, 반미 집회까지 이날 도심에서 열린 집회가 16개다. 6만 명이 운집했고 경찰 4000명이 동원됐다. 같은 날 13만 명이 모인 이태원 일대 경찰 인력은 137명이었다. 집회 참가자 15명당 경찰 1명, 이태원은 시민 950명당 경찰 1명꼴이다. 정치 집회엔 민감하고 시민 안전엔 둔감한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대응 부실을 질타하는 지적에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의 상당수가 광화문 등으로 분산됐다”고 했다. 참사의 책임을 집회에 전가하는 듯한 부적절한 해명이다. 하지만 매주 대규모 정치 집회로 세 대결을 벌여온 이들이라면 경찰 역량을 소진시켜 이번 참사에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닌지 조용히 돌아봐야 하지 않나. 최근 광화문 일대에서 맞붙는 시위는 언제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하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이지만 관리되지 않는 갈등은 위험하다.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3위인데 갈등 관리 능력은 27위로 바닥권이다(전국경제인연합회). ‘유익하게 싸우는 정치’는 할 줄 모르고 ‘유해하게 갈등하는 정치’에만 능한 것이다. 임기가 4년 반 남은 대통령 퇴진을 바라거나 4·15 부정선거를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열정적 소수 지지자’들을 말리기는커녕 이들 행사에 얼굴을 내밀며 갈등을 키운다. 박상훈 정치학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서로 마주 보고 문제를 풀어가는 게 아니라 뒤돌아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아첨하는 정치” 탓에 “정치도 사회도 양극화되고 안전한 시민의 삶은 멀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역량은 참담한 수준이다. 참사 사흘 전 상인 단체가 “압사사고 위험”을 경고했고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잇단 신고가 접수됐다. 모두 흘려들었다니 기가 막힌다. 그래도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려면 정부의 무능과 부실 대응에 책임을 묻는 선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 후 ‘생명우선 안전사회’를 한목소리로 약속했던 정치권은 8년간 뭘 했나. 주최 측이 없는 행사 대응 매뉴얼의 필요성을 인지하고도 7년간 만들지 않은 이유는 뭔가.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 죽음의 병목 현상을 초래한 불법 건축물을 방치해둘 수밖에 없었나. 이태원 말고 다른 곳은 안전한가. 전쟁이나 테러가 난 것도 아닌데 어제 나간 자식이 오늘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14개국 26명의 외국 젊은이가 서울 한복판에서 깔려 죽었다. 마주 보고 차분하게 이태원의 비극이 제기하는 질문들에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유익하게 싸우기보다 유해하게 갈등하는 실패한 정치로는 또 어떤 희생을 대가로 치러야 할지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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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인구배당효과의 소멸

    사람들은 약자가 강자를 꺾은 전쟁을 오래 기억하지만 대부분의 전쟁에서 “신은 큰 군대의 편”(볼테르)이었다. 1차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 병력은 4600만 명, 동맹국은 이의 절반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실패한 데는 아프간의 중위 연령이 20세 미만인 반면 두 강대국의 경우 30세를 훌쩍 넘는 인구구조의 차이도 한몫을 했다. ▷경제도 인구의 힘이 작용한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건 산업혁명에 앞선 데다 영아 생존율과 기대수명 급증으로 제국을 경영할 인력을 확보한 덕분이다. 미국은 1930년대만 해도 저출산 국가였으나 전후 귀향한 군인들이 부지런히 2세를 낳으면서 합계출산율이 3.5명으로 뛰었다. 1950년대엔 이민 유입이 본격화하기 전임에도 인구가 2배로 늘어 세계 1위 경제대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출산율 감소 시기와 맞물린다. ▷인구의 구조도 중요하다.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야 경제성장률이 오른다. 일명 ‘인구배당효과’ 혹은 ‘인구 보너스 효과’다. 중국 성장률의 5∼27%는 인구배당효과라는 추산이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1960∼2019년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성장률을 분석했는데 인구가 1% 늘면 연평균 성장률이 0.18%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높아지면 성장률은 하락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폭발적 경제성장에도 인구배당효과가 ‘순풍’으로 작용했다. 어제 동아일보 포럼에서는 생산인구 비중이 1975년 46%에서 2000년 64%로 증가하면서 교육비와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급성장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인구배당효과는 소멸 중이다. 2050년이면 생산인구 비중이 1975년도 수준으로 쪼그라든다. OECD는 한국이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역풍’을 맞아 2047년부터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배당효과를 높이려면 출산을 장려하는 동시에 고령층을 더 오래 효율적으로 일하게 해야 한다. OECD 국가들의 경우 자동화와 로봇 도입으로 고령층의 생산성이 오르면서 고령화가 성장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2000년대 이후로는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로 국내총생산(GDP)을 10%까지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해외 이주민 유입은 경제적 효과와 사회적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숫자는 승리의 가장 일반적 원칙”이라는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의 명언은 국가의 생존에도 적용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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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후진타오의 퇴장

    2012년 후진타오(80)와 시진핑(69)의 권력 이양은 이례적으로 순조로웠다. 후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원로정치 타파” 를 명분으로 전임자가 몇 년간 군권을 갖는 전례를 깨고 당과 군의 권력을 한꺼번에 물려줬다. 후임자 시 주석은 “ 고풍량절(高風亮節· 고상한 품격과 굳은 절개)을 보여줬다” 는 극찬으로 화답했다. 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던 둘은10년 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색한 장면을 노출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22일 폐막한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단연 눈길을 끈 장면은 후 전 주석이 폐막식 도중 화난 표정을 짓다가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퇴장하는 모습이다. 외신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에는 그가 책상 위에 있는 파일을 열어보려다 시 주석의 최측근에게 제지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측근은 파일을 빼앗다시피 했고 후 전 주석이 화내자 시 주석의 지시를 받은 수행원이 그를 끌어내는 듯한 장면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건강상 이유’라고 했지만 “후 전 주석을 자극해 끌려나가는 모습을 연출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후 전 주석은 고위급 원로들 중 이례적으로 이번 당대회에 참석했다. 당 3대 파벌인 ‘상하이방’의 거두 장쩌민 전 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시주석의 종신집권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시 주석의 상하이방 척결 후 장 전 주석은 ‘반(反)시진핑’으로 돌아섰고, 주 전 총리도 올 3월 시 주석의 3연임에 제동을 거는 당 원로들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나왔다.▷시 주석에 대한 공개 발언을 자제한 덕분인지 후 전 주석은 당대회에 초대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수모만 당한 셈이 됐다. 개혁·개방의 실용주의자였던 그의 퇴장은 시 주석의 중국이 정반대 길을 가게 될 것이며 이를 견제할 세력은 모두 제거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리틀 후’ 로 불렸던 최측근 후춘화 부총리는 정치국 위원 24명에도 들지 못했다.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도 중앙위원 205명을 뽑는 선거에서 탈락했다.▷시 주석의 측근 그룹인 ‘시자쥔(習家軍)’이 이번에 상무위원 서열 2∼7위를 싹쓸이하면서 집단지도체제를 1인 독재체제로 바꿔놓았다. 모두 10대 시절 문화혁명을 겪으며 홍위병에 ‘가스라이팅’ 당해 뼛속까지 공산당원인 사람들이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혁명 같은 광신적 정책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대 세력을 모조리 몰아내고 전면에 나선 만큼 실패의 책임도 더 크게 돌아올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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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1시간 거리 5시간 타는 택시

    시각장애인 제삼열 씨와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윤현희 씨. 부부는 수년 전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영국과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런던 시내를 걷고, 파리 에펠탑에 오르고, 베르사유 궁전도 구경했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남산서울타워에 오르거나, 경복궁 가는 데 걸림돌이 됐던 신체적 장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상버스와 지하철 타기가 너무도 쉬웠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건 택시였다. 런던 시내를 걷다 블랙캡이 지나가기에 혹시나 싶어 손을 들었는데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일반 택시였지만 전동 휠체어를 타고도 탑승이 가능했다. 한국에선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 한다. 운 좋으면 부른 지 30분 만에 오지만 2∼3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릴 때가 많다. 부부가 서울로 이사한 첫날, 마트에 갈 땐 초저녁이어서인지 금방 오던 콜택시가 집에 가려고 다시 불렀더니 2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결국 부부는 잔뜩 짐을 든 채 휠체어 바퀴가 지하철 승강장에 빠져가며 한밤중에 귀가했다. ▷시 경계를 넘어 이동할 땐 불편함이 더하다. 어제 동아일보에는 경기 포천에서 의정부를 거쳐 서울 영등포로 가는 장애인 문정길 씨 동행 기사가 실렸다. 자동차로 1시간 1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장애인 콜택시를 탔더니 5시간 8분이 걸렸다. 포천 택시는 포천, 의정부 택시는 의정부를 벗어날 수 없어 택시만 3번 부르고 그럴 때마다 20분∼2시간 20분을 기다렸다. 경기 성남에 사는 전윤선 씨는 서울 용산에서 오후 10시 40분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한 후 갈아타고 기다리느라 다음 날 오전 6시에야 도착했다고 한다. ▷장애인 콜택시는 중증 장애인 150명당 1대를 확보해야 하는데 경기(112%)와 경남(105%)을 제외한 15개 시도의 확보율은 법적 기준에도 못 미친다. 사정이 나은 서울도 85%다. 그렇다고 장애인용 택시를 마냥 늘리는 것만이 해결책일까. 장애인이 지하철이나 저상버스를 타는 데 불편함이 없는 나라는 한국보다 장애인용 택시가 오히려 적다고 한다. 장애인도 버스와 지하철을, 휠체어 이용자도 일반택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제삼열 윤현희 씨 부부는 유럽여행기 ‘낯선 여행, 떠날 자유’에서 콜택시가 늦게 와 놓쳐버린 기차, 입장할 수 없었던 공연장에 대해 썼다. 언제 올지 모르는 택시가 거의 유일한 이동 수단인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할 수 없다. 정시 도착이 기본인 교육이나 취업의 기회를 갖기 어렵고, 사교와 문화생활이 여의치 않으니 고립되고 삶의 질도 나빠진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려면 ‘떠날 자유’부터 보장돼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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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 군대 가는 BTS

    세계가 주목하는 ‘군백기(군대+공백기)’가 예고됐다. 방탄소년단(BTS) 일곱 멤버가 맏형 진부터 순차적으로 입대한다고 발표한 것. 막내 정국이 2027년까지 입대를 미룰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BTS의 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는 2025년, 늦어질 경우 2029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00개국 1800만 다국적 ‘아미’를 팬으로 거느린 BTS가 사병 복무를 선언하자 주요 외신도 일제히 속보를 전했다. ▷‘BTS 병역특례법’을 놓고 논쟁하던 국회가 머쓱해졌다. 국위를 선양한 체육인과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병역 면제 혜택을 대중문화인에게도 적용하는 내용의 법안인데 설문조사를 하면 찬성 여론이 약간 높게 나온다. 국위 선양으로 치자면 BTS만 한 인물이 있느냐는 것이다. BTS는 세계 5대 음악 시장에서 앨범 차트 정상을 찍었다. 미국 빌보드 핫100 1위에 6곡을 올린 한국 가수는 BTS가 유일하다. 2020년엔 한국어 노래로 1위를 차지했는데 영어 가사가 아닌 노래가 발매 첫 주 정상에 오른 것은 빌보드 6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BTS의 누적 앨범 판매량은 3000만 장이 넘는다. 포브스는 2019년 BTS의 경제적 생산유발효과를 연간 46억5000만 달러(약 6조6200억 원)로 추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BTS가 2014년 데뷔한 후 2023년까지 창출할 경제적 효과가 56조 원이라고 했다. 구글 검색량으로 측정한 인지도가 1포인트 올라갈 때마다 외국인 관광객 수와 옷, 화장품, 음식 수출액이 0.18∼0.72%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한마디로 BTS는 총 대신 마이크를 잡는 게 국익에 훨씬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입영 대상이 줄어들고 있어 특례 확대는 무리인 데다 앨범 판매량 등으로 뽑는 대중음악상은 경연대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미들 사이에선 ‘깔끔하게 다녀오면 장수 아이돌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샤이니의 민호는 해병대 제대 후 주연급 배우로 활약 중이다. 군대에 가려고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 2PM 옥택연은 허리 디스크로 군 대체 복무 판정을 받았지만 현역 복무를 자원했고 제대 후에도 잘나가고 있다. ▷BTS는 국내에선 ‘반듯한 아이돌’, 해외에선 ‘소셜 캠페이너(사회운동가)’로 통한다. 방황하는 청춘들이 ‘Love yourself’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전 세계 민주화 시위대가 ‘Not today’를 들으며 ‘우리가 지는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아니야’를 합창한다. 가장 성공한 7명의 청년들이 성취에 기대어 특혜를 바라지 않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정상급 노랫말과 춤사위 못지않은 선한 영향을 줄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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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의 직장[횡설수설/이진영]

    세계 청년들이 선호하는 기업의 대명사는 한동안 구글이었다. 높은 지명도에 멘토링 기회, 호텔 뷔페 수준의 공짜 구내식당, 근무시간의 20%를 자기 계발에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조직 문화가 지원자들을 자석처럼 빨아들이면서 27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그런데 구글보다 더 선망 받는 직장이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최근 발표한 ‘세계 최고의 직장’ 순위에서 삼성전자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57개국의 다국적 기업 임직원 15만 명을 대상으로 4000여 개 기업의 영향력과 이미지, 인재 육성 프로그램, 임금 수준, 근무 여건을 평가하게 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상위 800개 기업을 추려낸 결과다. 2∼5위는 마이크로소프트, IBM, 알파벳(구글 모회사), 애플 순으로 모두 미국계 IT 기업이다. 알파벳은 이 조사가 시작된 2017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가 2020년부터 삼성전자에 자리를 내주고 밀려났다. ▷삼성전자의 부상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연하고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따라잡기 위해 수차례 인사혁신에 나선 결과다. 우선 직급별 표준 체류연한이나 승격 포인트제를 없앴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팀장으로 발탁된다. 직원 간 호칭은 ‘님’, ‘프로’로 통일해 서로 존댓말을 쓴다. 법정 한도의 2배를 쓸 수 있는 육아휴직 제도로 9년 연속 여성가족부의 ‘가족친화 인증 기업’으로 선정됐고, 미국 법인은 민간재단의 ‘기업평등성지수’ 평가에서 3년 연속 만점을 받았다. 역량 개발의 기회도 많다. 반도체 사내 기술대학으로 시작한 삼성전자공과대학과 사내 대학원을 졸업한 학사가 1045명, 석박사가 858명이다. ▷알파벳의 지난해 연봉 중간값은 29만5884달러(약 4억2000만 원)로 삼성전자 평균 연봉(1억4400만 원)의 약 3배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순위가 높은 건 ‘고용 브랜드’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 취업포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고용 브랜드에 영향을 주는 3대 요소는 조직문화, 워라밸, 일을 통한 성장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좋은 기업문화 속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으면 연봉을 높여 부른다고 쉽게 다른 회사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삼성은 시작부터 인재 욕심이 많았던 기업이다. 창업주는 “1년 계획은 곡식을, 10년 계획은 나무를, 평생 계획은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는 중국 고전을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대퇴직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제는 좋은 인재 앞에선 기업이 ‘을’인 시대다. ‘세계 최고의 직장’ 800위 안에 든 한국 기업이 지난해 38개에서 올해는 16개로 줄어들었다. 삼성전자의 약진이 기업 간 고용 브랜드 높이기 경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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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진영]‘여가부 폐지’로 무엇을 하려 하나

    ‘여인들은 남자의 위안물로 창조되었다’ ‘유리와 처녀는 항상 위험하다’ ‘여자의 아량 중 하나는 허락하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동서양의 ‘금언’이라며 정부 관보 자투리 지면에 소개하던 말도 안 되는 시절이 있었다. 1990년의 일이다. 32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의 퇴행일까, 여성정책 성공의 역설일까. 여가부 폐지 찬반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데이터가 있다. 세계경제포럼 젠더격차지수(GGI)로 한국은 캄보디아보다 뒤지는 99위다. 한쪽에선 여성행정 전담 조직을 신설한 때가 1988년인데 아직도 GGI가 하위권을 못 벗어나고 있으니 여가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쪽에선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한데 여가부 폐지가 웬 말이냐고 한다. GGI는 여성 지위의 절대적 수준이 아닌 남녀 격차만을 따지므로 해석엔 신중해야 하지만 고용 부문에서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평가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GGI 4개 부문 중 순위가 가장 뒤지는 부문은 ‘여성의 경제적 참여’로 에티오피아보다 못한 115위다. 이제는 아들딸 차별해서 키우는 집은 없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2010년부터 남학생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졸업하고 사회에 나서는 순간 이등시민이 된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60%)은 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 중 31위다. 남성보다 20% 낮다. 남성이 시간당 2만2637원을 받는 동안 여성은 1만5804원을 받는다. 올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남녀 응답자 모두 강화해야 할 여가부 기능 1위로 꼽은 것이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이었다. 이제 여성정책의 최대 목표는 경제활동 젠더 격차 해소이고, 여가부 조직 개편의 적절성도 이 기준으로 따져봐야 한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여가부의 경력단절여성 업무는 여성고용 업무를 맡고 있는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비슷한 업무를 한데 모으는 건 효율적이고, 그 업무를 고용부에 두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본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여성 인력 활용이 필수적이다. 여성 고용을 여성 문제가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81%가 넘는 스웨덴도 고용부가 양성평등 업무를 한다. 문제는 고용부 이관 이후의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성별 고용률과 임금 격차 해소를 중요한 노동개혁 과제로 다룬다는 의지를 이번 개편안에 담았더라면 설득이 쉬웠을 것이다. 여가부의 나머지 업무는 보건복지부에 신설되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통합된다. 지금처럼 아동과 노인은 복지부, 청소년과 가족은 여가부가 맡는 건 정책 수요자를 무시한 억지 나누기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고용률이 확 떨어져 이를 회복하기까지 21년이 걸린다. 자녀가 한 명 생기면 취업 유지율이 30%포인트 감소한다. 일과 육아의 병행을 돕는 돌봄, 여성권익, 저출생 대책을 아울러 시너지를 내는 본부가 돼야 할 것이다. 덩치 큰 본부를 독일처럼 독립 부처로 떼어 놓을지, 복지부에 둘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여가부 폐지 못지않게 조직 이름에서 ‘여성’이 빠지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1년 신설된 여성부 영문명을 지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한명숙 장관은 남성들의 반감을 의식해 ‘Women’ 대신 ‘Gender Equality’로 정했다. 헌법상 남녀평등 이념을 실천하는 부처라는 자부심도 담았다고 한다. 영문명에서 앞서갔던 시대정신을 한글명에서도 따라야 할 때라고 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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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또 수신료 내리는 NHK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 남자 주인공의 어릴 적 별명은 ‘NHK’다. 주말마다 NHK 수신료 징수원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왕따가 돼 얻은 별명. 그만큼 NHK 징수원은 악착같이 수신료를 걷는 직업으로 악명 높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에선 수신료 미납자 처벌 규정이 없어 징수원의 역할이 크다. 덕분에 수신료가 꾸준히 올라도 납부율은 80%대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 내부 스캔들이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4년 인기 프로인 ‘가요홍백전’ PD와 NHK 서울지국장을 지낸 직원이 거액의 제작비를 빼돌린 비리가 폭로됐다. 이듬해엔 2001년 방송된 ‘전시 성폭력을 묻는다’가 집권 자민당의 외압으로 일본에 불리한 내용이 삭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수신료 납부 거부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고, 재원의 거의 100%를 수신료에 의존하는 NHK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수신료 거부를 공약으로 내건 ‘NHK당’도 2005년 내부 비리를 고발했던 NHK 직원 출신이 만든 당이다. ▷결국 NHK는 직원 감축과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과 방송 공정성 확보 방안을 담은 ‘신생플랜’을, 2008년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12년 수신료 7% 인하’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로도 수신료는 인하를 거듭해 현재는 월 1275엔(약 1만2000원)이다. 최근엔 내년 10월 추가 인하안까지 발표했다. 5년 새 3번째 인하다. 수신료 인하로 인한 적자는 적립된 잉여금과 군살빼기로 메운다는 계획이다. ▷일본에서도 NHK의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수신료 미납자 처벌 조항을 두자는 제안이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제구실을 못할 때 시청자들이 수신료 거부권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대 논리를 넘지 못했다. 젊은층이 다양한 민영 방송으로 옮겨가면서 ‘안 보는데 왜 내느냐’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도 걸림돌이다. 결국 NHK는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경영을 합리화하고 수신료를 인하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KBS는 국회에 수신료를 월 3800원으로 올려 달라면서 경비 절감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억대 연봉을 받는 직원이 51.3%로 1년 새 4.9%포인트 늘어났다. 지상파 중간광고까지 허용되자 지난해 광고 판매액은 2705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16.7% 증가했다. 막대한 광고 수입에 수신료 수입까지 보장되니 방만 경영과 편파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KBS와 한전의 3년 주기 수신료와 전기료 통합 징수 계약이 2024년 끝난다. 전기 끊길까 억지로 수신료를 내는 징수제도를 손봐야 시청자 무서운 줄 알고 공영방송의 질도 경영도 나아질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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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인공지능(AI) 권리장전

    내 취향에 맞는 영화와 책을 골라준다. 학생 수준에 따라 맞춤형 개별 지도가 가능하다. 손떨림 없이 수술하고 지치지 않고 간병해주는 로봇 상용화도 머지않았다. 이 모든 것이 인공지능(AI) 덕분이다. 그런데 AI 기술에서 앞서가는 미국에서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AI는 공정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편향적이다. 아마존은 AI 채용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가 남성 지원자를 과대평가하는 편향을 발견하고 폐기했다. AI는 직원들의 축적된 인사고과 자료를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고과를 잘 받는 핵심 부서엔 남성이 많았던 것. AI 재판 지원 시스템에서는 흑인의 재범 가능성을 높게 예측하는 편향이, AI 의료 검사장비에서는 여성과 유색인종의 이상 징후를 못 잡아내는 편향이 포착됐다. 백인 남성 신체가 오랫동안 표준이 돼왔기 때문이다. 기존 데이터에 의존하는 AI의 판단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AI를 의도적으로 악용할 경우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가짜 영상이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의 여성 사진을 누드로 편집하는 AI가 등장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는 머저리”라고 욕하거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에 항복을 선언하는 딥페이크 영상이 돌았다. 최근에는 가방이나 열쇠 같은 물건에 붙여두면 실시간 위치를 확인해 분실 걱정을 덜어주는 애플의 에어태그가 스토킹 범죄에 활용돼 논란이다. AI를 탑재한 자율살상 로봇 시장이 커지는 것도 큰 문제다. ▷미국 백악관은 5개조로 구성된 ‘AI 권리장전(Bill of Rights)’ 청사진을 4일 발표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권리, AI 작동 방식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을 권리, AI 대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수정헌법 10개조로 구체화된 1791년 ‘권리장전’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이빨 없는’ 지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럽연합은 2018년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한 데 이어 AI로부터 피해를 입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정부가 내년에 ‘디지털사회 기본법’을 제정하고 ‘디지털 권리장전’도 만든다고 한다. 최근 발표 내용을 보면 디지털 권리장전은 디지털 기술을 보편적 권리로 규정해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윤리적 활용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다.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기본 인권을 지켜낼 제도 정비의 속도는 너무나 더디다. AI가 사람을 해치는 기술이 되지 않도록 입법과 기업 활동에 지침이 되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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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당역 사건, 여성혐오 범죄 맞나[오늘과 내일/이진영]

    서울 신당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과 비슷하다. 강남역 사건도 통행량이 많은 주점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했고, 남성이 죄 없는 여성을 무참히 살해했으며, ‘여자라서 죽었다’는 분노 섞인 추모와 함께 ‘여성혐오 범죄’ 논쟁이 뜨거웠다. 한국과 달리 미국과 유럽의 다인종 국가들은 인종, 민족, 종교, 성적 정체성 등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범죄를 따로 분류해 관리한다. 혐오범죄방지법이 있는 미국에서 혐오 범죄는 가중처벌감이다. 코로나 시기 아시아계를 겨냥한 범죄가 대표적인 혐오 범죄다. 구체적으로는 가해자가 특정 인종이나 종교 등에 대해 비뚤어진 신념을 가졌다는 증거가 명확하고, 이 신념이 범죄와 인과관계가 있으며, ‘아시아인이면 다 싫다’는 식으로 피해자가 대체 가능할 때 혐오 범죄로 규정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신당역 사건은 현재로선 여성혐오 범죄로 단정하기 어렵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전주환은 스토킹으로 고소당해 중형을 선고받을 처지가 되자 보복 살인을 저질렀고, 여성혐오적 신념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으며, 오랫동안 스토킹해온 피해자만 겨냥했다. 전주환이 범행 전 피해자를 닮은 여성을 뒤쫓는 영상이 공개됐는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혐오 범죄였다면 그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했다. 강남역 사건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 범죄로 기억한다. 범인은 흉기를 들고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남자 여섯을 그대로 보내고 여자가 들어오자 바로 범행을 저질렀다. 처음 보는 여성이었다. 검거 직후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는 진술까지 했다. 하지만 경찰이 프로파일러 5명을 투입해 수사한 결과 내린 결론은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였다. 범인은 2009년 조현병 진단을 받고 입원한 적이 있는데 사건이 발생한 2016년 초 약을 끊어 증상이 악화된 상태였다. 여성혐오가 아니라 악화된 정신질환 탓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검찰도 범인을 입원시켜 장기간 정신감정을 실시한 후 같은 결론을 내렸다. 1심 법원도 전문의 감정을 통해 ‘여성혐오가 아니라 남성을 무서워하는 성격 및 망상으로부터 영향받은 피해의식으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했다’고 보고 30년형을 선고했다. 이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대책이 달라진다. 정부는 강남역 사건 이후 범죄취약지역 폐쇄회로(CC)TV 확충, 신축건물 남녀 화장실 분리 설치와 함께 정신질환자 범죄 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성혐오 범죄라는 본질을 간과하고 물리적 환경 개선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죄라는 대목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되 자해나 타해 우려가 있는 경우 선진국처럼 법적인 절차를 밟아 강제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는 제도를 마련했더라면 ‘임세원 교수 사건’이나 ‘안인득 방화 살인사건’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강남역 신당역 사건이 여혐 범죄든 아니든 많은 여성이 공유하는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존중받아야 한다. 강력사건 피해자의 절대 다수는 여성이다. 하지만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집중하느라 범죄의 재발을 막아줄 현실적 대책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여혐 범죄냐를 따지기보다 어디에서 놓치고 실패했는지 차분하게 복기해야 할 때다. 그래야 앞으로 막을 수 있었던 불행은 막고,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은 살릴 수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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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서울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역무원인 피해자는 제복 차림으로 순찰 중이었다. 공격당한 직후 곧바로 비상벨을 눌러 1분 만에 동료 역무원들이 달려왔고, 119구조대가 8분 만에 도착했다. 하지만 제복도, 적시의 대응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 스토킹이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사건은 스토킹 범죄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스토킹 가해자는 대부분 피해자와 아는 사이다. 피해자 A 씨(28)와 가해자 전모 씨(31)도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다. 일반 범죄의 경우 특별한 원한 관계가 아니면 동일인을 상대로 반복해서 저지르진 않는다. 하지만 스토킹은 상대가 마음을 받아주거나, 물리적으로 스토킹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면 장기간에 걸쳐 반복된다. A 씨는 입사 이듬해인 2019년부터 전화와 문자로 300차례 이상 스토킹을 당했다. ▷스토킹의 세 번째 특징은 갈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점. 전 씨는 처음엔 ‘만나 달라’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가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는 단계로 갔다. A 씨는 지난해 10월 불법 촬영과 협박 혐의로 전 씨를 고소했지만 이후로도 피해가 계속되자 올 1월 스토킹 혐의로 재차 고소했다. 징역 9년을 구형받은 전 씨는 결국 A 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1심 선고 하루 전날이었다. 범행 당일 법원에 두 달 치 반성문을 제출하고도 신당역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스토킹은 초기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바로 경찰에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 괜히 자극했다가 더 큰 봉변을 당할까 겁도 난다. 가족이나 직장에 피해가 갈까 숨기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서 도와주기도 어렵다. A 씨도 피해가 3년 가까이 이어진 후에야 경찰을 찾았다. 법의 보호도 허술했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전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가 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점도 참작했을 것이다. 경찰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신변보호 조치를 소홀히 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0월 스토킹방지법이 시행된 후 발생했다. 스토커 김태현의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해 사건이 발생한 직후 통과된 법이다. 예전엔 과태료 10만 원의 경범죄로 처벌하던 스토킹 범죄를 이제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으로 다스린다. 하지만 무거운 형벌이 범죄를 막아주진 못한다. 스토킹을 사소한 범죄쯤으로 여기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신당역 같은 일상의 공간은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메모로 가득한 두려움의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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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오영수 댄스

    모든 시상식의 주인공은 수상자다. 그제 열린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선 아시아 최초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특히 주목받았다. 그런데 시상식 뒤풀이를 뒤집어 놓은 건 조연배우 오영수(78)였다. ▷에미상 뒤풀이 참석자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35초짜리 영상엔 ‘오영수 꺾기 춤’ 현장이 담겼다. 점잖게 정장을 차려입은 백발의 신사가 뜻밖에 관절을 꺾어가며 격렬하게 춤추자 사람들이 박수치고 환호하는 영상은 시상식 하이라이트 장면 못지않게 화제가 됐다. 해외 누리꾼들도 “깐부 할아버지의 대변신” “78세 배우에게 이런 에너지가 나오다니”라는 댓글을 달며 놀라워했다. 그가 요즘도 매일 아침 집 근처 남한산성 밑에서 평행봉 50개를 하며 속 근육을 단련하는 줄 모르나 보다. ▷오영수는 팔순 가까워 찾아온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오징어게임에서 ‘1번 참가자’ 오일남 연기를 선보인 후로는 마스크를 쓰고 나가도 “사인해 달라”며 줄을 선다. 에미상 남우조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올해 1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TV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의 세계입니다”라는 그의 수상소감은 명대사 “우린 깐부잖아”와 함께 해외 언론도 보도했다. ‘글로벌 스타’의 티켓 파워는 다르다. 오징어게임 이후 출연작인 연극 ‘라스트 세션’은 전석 매진이었다. ▷시작은 미미했다. 월남한 흙수저 집안에서 ‘오세강’으로 태어나 막노동 하다 1967년 극단 광장에서 ‘오영수’로 배우 인생을 시작한다. 연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학력이 보잘것없어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존재감 없던 내가 무대에선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황홀한 경험”을 하는 맛에 50여 년간 200편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동아연극상(1980년)과 백상예술대상(1994년) 연기상을 수상한 실력자이지만 데뷔 45년 차에도 언더스터디, 즉 주연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투입되는, 무대에 선다는 기약도 없는 배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빛나지 않아도 무대에 진심이었던 시간은 내공으로 쌓였다. ▷그는 에미상 시상식 후 기자간담회에서 “전에는 민족의 나약한 면을 느꼈는데, 이제는 자신감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45달러이던 시절 연기를 시작해 3만5000달러였던 지난해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 미디어업계를 흔들어 놓았다. 가난한 나라의 ‘딴따라’였던 그가 이제는 대중문화의 최강국에서 ‘명배우’로 대접받는다. 오영수는 흥이 날 만도 한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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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엄마, 키워줘서 고마워”

    서른일곱에 얻은 늦둥이여서일까. 사춘기 반항이 한창이라는 남의 집 중2와 달리 아들은 엄마와 꼭 붙어 다니는 ‘엄마 껌딱지’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6일 새벽도 그랬다. ‘차를 옮기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날은 따라오지 말라고, 엄마 혼자 가겠다고 끝까지 말렸어야 했다. ▷그날 새벽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날이 개고 있던 수도권과 달리 경북 포항의 수해 상황은 심각했다. 인근 하천이 범람해 모자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밀려들었다. 엄마는 차를 빼려다 포기하고 나오려 했지만 수압에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밖에 있던 아들이 문을 열어줬다. 이미 걷기 힘들 정도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몸이 약해 탈출할 자신이 없었던 엄마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들을 어렵게 돌려세웠다. “너라도 살아서 나가. 수영 잘하잖아.” ▷기독교인인 엄마는 천장 모서리 배관 위에 엎드려 구조될 때까지 15시간을 기도하며 버텼다. 늦둥이를 살아서 보겠다는 의지로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견뎠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기력을 회복할 즈음에야 남편이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마음을 단디 먹어야 우리 아이 마지막을 볼 수 있다.” 아, 이 지옥을 보라고 신은 나를 어렵게 살려낸 건가. 왜 늙은 내 몸을 거두어가지 않고 축구와 떡볶이를 좋아하던 열다섯 어린아이를 데려가셨나. ▷고인이 된 박완서 소설가는 26년간 자랑스럽게 키워온 의사 아들이 사고로 앞서 갔을 때 묵주를 집어 던지며 신을 원망했다. “그 애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도 견디기 어렵거니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나 하는 회답 없는 죄의식은 더욱 참혹하다”고 썼다. “참척(慘慽)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그게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다.” ▷그날 물 빠진 지하주차장에서는 늦둥이 김 군과 함께 해병대를 갓 전역한 서 씨(22), 20년 넘게 홀어머니를 모셔온 홍 씨(52), 33년간 장손집 살림을 꾸려온 허 씨(55), 베트남 참전 용사 안 씨(76), 자식에 손 벌리기 싫어 퇴직 후에도 지게차를 몰던 남 씨(71)와 아내 권 씨(65)가 발견됐다. 성실했던 이들의 황망한 죽음을 보고서야 매뉴얼을 뜯어고치고, 차수벽을 세우고, 배수펌프를 설치하느라 부산하다. 포항의 비극 이후 세상은 좀 더 안전해지겠지만 그리운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100년 만에 가장 둥근 보름달이 뜬다는 올 추석, 엄마는 선물인 듯 비수인 듯 늦둥이의 마지막 인사를 뇌고 또 뇌며 통곡할 것이다.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요.”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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