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중국은 왜 축구도 방역도 뒤처졌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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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몽 흔들리고 제로 코로나 실패
폐쇄-억압적 권위주의 체제의 한계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중국인들은 농구 다음으로 축구를 좋아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은 여러모로 즐겁지 않다. 중국 기업은 14억 달러를 후원하고, 경기장 지어주고, 축구공에 호루라기까지 만들어줬다. 중국이 없었더라면 월드컵 어떻게 치렀을까 싶은데 정작 국가대표팀은 20년째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중국은 선수 빼고 다 월드컵 갔다”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왜 올림픽 메달을 쓸어 담는 스포츠 강국이 축구는 못할까.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1990년 이후 126개국의 150개 국제 A매치를 전수 조사한 결과 경기력의 40%는 국가의 경제력과 크기, 국민의 관심도가 좌우하고, 나머지 60%는 선수들의 창의력과 의사결정의 자율성, 공정한 경쟁과 개방성에 달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축구의 특성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보다 경기력이 좋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200개 넘는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 중 민주국가는 67%인데 16강 진출국으로 좁히면 88%로 늘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8개 우승컵을 가져간 나라는 군정 시절의 브라질(1970년)과 아르헨티나(1978년)를 빼면 모두 민주국가다. 이번에 아프리카 최초로 4강 진출 신화를 쓴 모로코는 왕정국가지만 대표 선수 26명 중 14명이 이민 가정 출신으로 유럽의 주요 리그에서 뛰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저조한 축구 실력도 하드웨어를 뺀 나머지 60%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유럽에선 난민 출신도 국가대표가 되는데 중국은 돈이 없으면 시작도 못 한다. 한국 일본 호주의 선전은 유럽파 선수들 덕이 크다. 그런데 중국은 막대한 자본력 덕분에 슈퍼리그 선수 평균 연봉이 K리그의 10배가 넘어 힘들게 해외에서 뛰려는 선수가 없다. 외국인 감독과 선수도 영입하지만 뇌물과 ‘관시(關係)’와 승부 조작의 문화에 오래 버티질 못한다. “월드컵 개최국이 되기 전엔 본선 무대 밟긴 글렀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국가대표팀 경기력에 실망한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관중이 마스크를 벗고 응원하는 중계를 보고 분노한다. 중국 관영 방송이 ‘노 마스크’ 관중석을 지워 내보낸 후로도 중국의 ‘나 홀로 봉쇄’에 성난 민심이 정권 퇴진 시위로 이어지자 중국 정부는 3년간 걸어두었던 ‘제로 코로나’의 빗장을 풀어야 했다.

중국은 코로나 초기 감염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아내 주목받았지만 방역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의사 리원량을 거짓 정보 유포죄로 체포하면서 국민 건강보다는 체제 유지를 중시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실상을 드러냈다. 민주국가들이 과학적인 데이터와 전문가 의견을 공유하며 유연하게 대응하는 동안 중국은 제로 코로나만 고수했다. 화이자가 더 효과적이라는 통계에도 중국산 백신을 고집했고, 병상 확충이 필요하다는 권고에도 검사소만 늘렸으며, 공식 통계를 불신하는 고령층은 가짜뉴스를 믿고 백신 접종을 꺼렸다. 그 결과 다른 나라들은 일찌감치 일상을 회복했는데 중국은 앞으로 100만 명 넘는 사망자 발생을 우려하는 처지가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월드컵 개최, 본선 진출, 우승이 세 가지 꿈”이라며 2050년엔 축구로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축구몽(夢)’으로 중국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겠다는 정치적 야심일 것이다. 제로 코로나로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효율성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 하지만 축구팀의 부진과 제로 코로나 실패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만 확인시켜 주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제로 코로나#중국#축구#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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