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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를 형사 조치하는 것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등 전국의 소장 판사들이 4일 회의를 갖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회의는 의견 대립과 정족수 미달로 파행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인 서울고법 판사들도 회의를 열었지만 형사 조치 의견은 밝히지 않았다. ○ 소장 법관들 “철저한 수사 필요” 소장 법관들은 형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잇달아 결의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촉구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이어 “대법원장은 향후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배석판사들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한 형사책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며 이에 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인천지법 단독판사들은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 드러난 모든 의혹에 대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사 의뢰 등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수사 의뢰’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판사들은 “미공개 파일 원문 전부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대구지법 단독판사들도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인 서울고법 판사들은 회의를 갖고 “사법행정권자의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을 인식하고 우려하며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효적인 대책’에 수사의 필요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길에 “개개인의 의견에 대해서 공표하거나 의견을 내는 것을 자제하고 말을 아끼면서 경청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회의 정족수 미달 ‘파행’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은 이날 오전 회의를 열었으나 일부 온건파 판사들이 불참하면서 시작부터 파행했다. 온건파 판사들은 강경파의 의견에 자신들의 의견이 묻힐 수 있고, 의견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해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가 시작되자 격론이 벌어졌다. 강경파는 형사 조치 요구를 결의문에 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반면 온건파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잘못됐다는 의견은 표명해야 하지만 형사 조치까지 결의문에 담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오전 회의는 안건조차 정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그 대신 오후에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으나 오후 회의도 정족수(참석 대상 113명의 과반 출석) 부족으로 열리지 못했다. 오후 회의는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참석한 부장판사들끼리만 의견을 나누다가 1시간 만에 끝났다. 회의는 5일 다시 열릴 예정이지만 정족수를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 40대 중후반 연령대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24∼28기가 주축이다. 중요 사건의 1심 판결을 대부분 결정하기 때문에 법원 내부에서 차지하는 발언권과 비중이 크다. 전국의 판사회의는 5일에도 잇달아 열린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판사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서울회생법원 수원지법 대전지법도 5일 전체판사회의를 열고 사태를 논의한다. 부산지법 울산지법은 배석판사회의를, 광주지법은 단독·배석판사회의를 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실을 왜곡하는 판사들에게 일침을 가한 기자회견이었다.” “검찰 고발을 피하기 위해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불쾌감만 감정적으로 드러낸 것 같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해명한 것을 두고 일선 판사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대법원 권위 추락” vs “검찰조사 피하기” 고위 법관들은 대법원의 권위가 추락할 것을 우려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의혹을 더 키우면 사법부 독립은 사라지고 대법원 판결이 있을 때마다 정치권과 검찰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임명돼 현재 대법원에 있는 대법관들도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해명한 만큼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논란은 이제 끝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고법 부장판사는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재판 거래’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런 프레임을 키우는 이들이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해명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논란을 키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소장 판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사실상 김 대법원장과 특별조사단 결과를 무시한 것이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해 미리 기자회견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먼저 기자회견을 자처하면서 의혹을 다 해명하고 문제가 더 이상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이 지시 없이 법원행정처 문건이 만들어졌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사법발전위원회가 ‘캐스팅보트’ 김 대법원장은 이번 주 연달아 열리는 자문회의 결과를 듣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형사 조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법원장들이 논의하는 ‘전국법원장간담회’(7일)에서는 형사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반면 소장 판사들이 모인 ‘전국법관대표회의’(11일)에선 형사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사법개혁 방안을 김 대법원장에게 건의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5일)가 형사 조치 여부를 결정하는 캐스팅보트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법발전위원회는 이홍훈 전 대법관, 박성하 대한변호사협회 제1법제이사, 김홍엽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등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외부인사가 두루 포함된 만큼 중립적인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는 김 대법원장이 여론에 휩쓸려 성급한 판단을 내려선 안 된다고 말하는 판사들도 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고, 검찰 수사해야 한다’는 글과 국회 청문회를 통해 의혹을 조사하자는 글이 200여 건 올라와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31일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대대적인 사법행정 개편을 약속했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담화는 역대 5번째로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2차 조사결과 발표 이후 두 번째다. ○ 법원행정처 대대적 수술 예고 김 대법원장은 이날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지난주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은 국민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겠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하고, 의혹 해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의 공개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번 파문의 진원지인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최고 재판기관인 대법원을 운영하는 조직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인적·물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고, 법원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법원행정처에 상근하는 법관들을 사법행정 전문 인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도 조속히 시작하겠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형사 조치와 관련해 김 대법원장은 “각계 의견을 종합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6월 5일), 전국법원장간담회(6월 7일), 전국법관대표회의(6월 11일) 등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일선 법원에서는 31일 의정부지법에서 단독·배석 판사 회의가 시작됐고, 1일 춘천지법과 원주 강릉 속초 영월 지원이 판사회의를 연다. 4일에는 서울중앙지법 단독 판사 회의와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 판사 연석회의가 예정돼 있다. 수원지법은 5일 소속 판사 전원이 참석하는 전체 판사 회의를 갖는다. 이에 따라 김 대법원장이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결정할 시기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는 11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최종적으로 대법관들의 의견까지 들은 후 방침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법관들 “형사고발 필요” 의견 최근 법원행정처 법관들은 내부 논의를 통해 “결론적으로 수사는 피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3가지로 의견을 압축했다. △형사 고발 △수사 의뢰 △검찰이 먼저 수사에 나설 경우 협조하는 방안 등이다. 31일 회의에서는 핵심 법관들을 중심으로 형사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법원이 고발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기존에 접수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고발 사건 수사를 시작하면 대법원 입장이 더 부담스럽다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전체적으로는 수사에 협조하는 수준으로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금 더 많았고, 형사고발을 주장한 법관은 소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 분열 조짐 법관대표들 사이에서는 법관대표회의 의장인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전날 법원 내부통신망에 “재판 거래 의혹은 ‘헌정 유린’ 행위”라고 규정하는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의결기관의 대표가 다른 법관대표들과 상의 없이 마음대로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한 법관대표는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글을 올려 마치 법관회의의 전체 입장처럼 보여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법관대표회의는 지난달 29∼31일 재판 거래 의혹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 410건을 법관대표들에게 완전 공개하는 방안을 놓고 투표를 진행했다. 젊은 소장 판사가 많은 만큼 대다수가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특별조사단은 “문건 공개는 가능하지만 문건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그 내용들이 다 실행된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고승일 청주지법 판사 등 법관대표 21명은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대법원은 수사에 협조할 책무가 있음을 선언한다”는 ‘의안’을 법관대표회의에 냈다. 또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은 이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사과와 신속한 판결을 촉구했다. 최근 3차 조사에서 공개된 문건에는 ‘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을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패소하는 취지로 대법원 판결이 나오도록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기대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소송은 재상고돼 현재까지 5년간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
고속철도(KTX) 해고 승무원들이 30일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51)을 만나 2015년 ‘KTX 승무원 대법원 판결’을 대법원이 직권으로 재심 청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대법원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당한 승무원들에게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고, 그해 11월 해고 승무원들의 패소가 확정됐다. 승무원들은 김 비서실장에게 철저한 진상조사와 대책마련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비서실장은 “고통 받은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요구사항을 한 자도 빠짐없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겠다. 조만간 답변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사소송법상 법원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소송 당사자가 재심 사유를 안 날로부터 30일 내에 법원에 재심을 직접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해고 승무원들이 직권 재심을 요청한 것은 사법부에 자성의 뜻을 보여 달라고 촉구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해고 승무원들이 이날 스스로 재심을 청구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재심을 청구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사소송법 제451조는 재심 사유를 ‘판결의 증거가 된 문서, 그 밖의 물건이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인 때’ 등으로 엄격하게 한정한다. 또 KTX 해고 승무원들과 비슷한 재심 사례가 없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해고 승무원들이 이처럼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최근 발표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3차 조사 결과에 ‘KTX 승무원 판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하려 한 사례로 적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해고 승무원들은 2008년 11월 소송을 내 1·2심에서 승소했으나 2015년 2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깨고 “KTX 승무원은 철도공사 정규직이 아니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9일에는 KTX 해고 승무원 10여 명이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사상 첫 대법정 점거 시위를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자에 대한 형사 조치 여부와 관련해 29일 법원행정처 소속 부장판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의견을 취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날 법원행정처 소속 부장판사와 심의관 20여 명이 자체적으로 가진 회의에서는 형사고발 조치 의견이 소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행정처 소속 부장판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특별조사단 3차 조사 결과에 대한 처리 방안과 관련한 의견을 내달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형사 조치를 해야 할지, 만약 한다면 어느 정도 수위로 해야 할지 물어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개로 대법원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법원행정처 부장판사와 심의관 20여 명이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검찰에 자료를 보내주는 소극적 수사협조 △수사협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적극적 수사협조 △수사의뢰 △형사고발 등 네 가지 의견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형사고발 의견은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오전에는 법원행정처 차장 주재로 부장판사 회의가 예정돼 있다. 오후에는 법원행정처 내 부장판사들과 심의관들이 모두 모여 형사 조치에 대한 의견을 내는 회의를 연다. 오후 회의는 김 대법원장이 직접 참여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생각을 밝히는 형식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김 대법원장은 앞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2차 조사를 앞두고 심의관들을 모두 모아놓고 전원의 의견을 들었다. 당시 회의에서 추가 조사를 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았지만 김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 요구를 수용했다. 그 같은 전례로 볼 때 이번에도 김 대법원장은 수사의뢰나 형사고발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일단 3차 조사 결과에 따른 징계 대상자들을 적시한 법원행정처 윤리감사실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가 된 법관들 가운데 징계 대상자를 추리는 작업은 최소한 2, 3일은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김 대법원장이 형사고발을 하기로 정한다면 윤리감사실에서 보고한 징계 대상자 중 최소한의 인원을 고발할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의뢰를 한다면 검찰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차원이 되므로 수사의뢰 대상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형사 조치에 대한 의견은 법원 내부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일부 판사는 검찰 수사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1∼3차에 걸쳐 1년 2개월간 조사가 이뤄졌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조사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수사가 필요한 핵심 이유로 들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장과 함께 법원 공무원 3405명의 서명이 담긴 검찰 수사 요구서를 30일 서울중앙지검에 전달할 방침이다. 반면 대법원과 일선의 고위 법관 가운데는 형사 조치를 취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고위 법관은 “사법부는 헌법상 독립이 보장돼야 한다”며 “고발 사안이 되는지 여부를 떠나 사법부가 행정부 소속인 검찰의 수술대 위에 자청해서 올라가는 것은 헌법상 3권 분립 원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충수가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다음 달 4일 단독판사회의를 열고 ‘현 사태에 관한 입장 표명’ 안건을 논의한다. 같은 날 서울가정법원도 단독·배석판사회의를 열고 후속 조치를 논의한다. 법관 대표들은 다음 달 11일 열릴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를 열어 형사 조치 여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양 전 대법원장은 일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김윤수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77·구속 기소)이 23일 첫 재판에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주장했다.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열린 재판 시작 직후 이 전 대통령은 공책에 직접 쓴 입장문을 12분 동안 읽으며 검찰 기소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검찰 자신도 아마 속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자신이 다스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며 “다스는 형 이상은 다스 회장의 회사”라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특히 삼성의 다스 소송 비용 대납과 관련해 “삼성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 사실은 충격이고 모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송비 대납 대가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사면했다는 의혹에 대해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도전을 결정한 뒤 정치적 위험이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삼성 회장이 아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이건희를 사면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이 된 뒤 개별 기업 사안으로 경제인을 단독으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발언 말미에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기자들에게 “법과 상식에 맞는 재판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법정 출석 장면 방송 녹화를 허용했다. 다음 주부터 이 전 대통령 재판은 일주일에 2, 3차례 열린다. 김윤수 ys@donga.com·이호재 기자}

“나는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3일 오후 2시 17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 첫 재판에 나온 이명박 전 대통령(77·구속 기소)이 A4용지만 한 연두색 공책에 적힌 11장 분량의 입장문을 읽기 시작했다. 재판장인 정계선 부장판사(49·여)가 ‘앉아서 읽어도 된다’고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꼿꼿이 서서 3000여 자 분량의 입장문을 12분 동안 읽어 내려갔다. 말투는 단호했다. ○ ‘연설하듯’ 12분간 입장문 낭독 이 전 대통령은 재판부와 방청석을 자주 바라보며 연설하듯 12분간 입장문을 낭독했다.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사면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은 충격이고 모욕”이라고 공소사실을 반박하면서는 검사석을 5초간 노려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측근들을 증인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도 직접 밝혔다. “증인 대부분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저와 밤낮없이 일했던 사람이 많고, 그 나름대로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법정에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의 왼쪽 가슴에는 ‘동부(구) 716’이라고 적힌 흰색 둥근 배지가 달려 있었다.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돼 있고 수인번호는 716번이라는 뜻이다. 이 전 대통령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고개를 돌려 “쿨럭, 쿨럭” 크게 기침을 두 번 한 뒤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500mL 생수병을 들고 꿀꺽 목을 적신 뒤에야 기침이 잦아들어 말을 이어갔다.○ 수갑·포승줄 없이 호송차 내려 이날 낮 12시 59분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도착한 이 전 대통령은 수감되기 전보다 많이 수척한 모습이었다. 호송차에서 내릴 때는 수갑을 차거나 포승줄에 묶이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은 5월 23일 첫 재판 때 수갑을 찬 채 호송차에서 내렸다. 이 전 대통령의 손이 묶이지 않았던 것은 지난달 ‘수용 관리 및 계호 업무 등에 관한 지침’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여성 등은 법정 출석 때 구치소장의 허가를 받아 수갑이나 포승줄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전 대통령은 65세 이상 고령자 적용을 받은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2시 1분 법정에 들어섰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 세례를 의식하지 않고 측근들에게 간단히 목례를 했다. 법정을 가로질러 뚜벅뚜벅 걸어가 강훈 변호사(64) 왼쪽 피고인석에 앉았다. 재판이 시작된 뒤 정 부장판사가 직업을 묻자 “무직”이라고 답했다. 오후 4시 5분 삼성의 소송비 대납 혐의에 대해 검찰과 공방을 벌이던 도중 이 전 대통령은 재판부에 “한 말씀만 올리겠다”고 요청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5년간 청와대 본관에는 기업인이 한 사람도 들어온 적이 없다. 그것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6)이 왔다면 모르지만,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72)을 대통령 방에 데려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어디 삼성 부회장이 약속도 없이 들어오나”라고 불쾌한 기색을 비쳤다. 이에 검찰이 반대 입장을 밝히려 하자 이 전 대통령은 “검찰하고 싸운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하겠다”며 말을 맺었다. 재판은 시작한 지 약 5시간 만인 오후 7시 6분에 끝났다. 두 번째 재판은 28일 열린다.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78·구속 기소)이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이 첫 재판을 받은 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인 23일 처음으로 법정에 나선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9년째 되는 날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첫 공판을 연다. 앞서 3차례 공판 준비기일을 열었지만 정식 공판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의 회삿돈 349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와 111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은 박 전 대통령이 첫 재판을 받은 곳과 같은 장소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남색 정장 재킷에 수인번호 ‘503’이 적힌 둥근 배지를 달고 법정에 나서 3시간 동안 재판을 받았다. 이날은 이 전 대통령이 전임자인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적 곤경에 빠졌던 날이기도 하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인근에서 투신했다. 이 일로 이 전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보복수사를 벌였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정반대 처지에 놓인 이 전 대통령 역시 청와대와 검찰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올 1월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검찰과 문재인 정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의 첫 공판이 열리는 같은 시간에 봉하마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9주기 추도식이 열릴 예정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루킹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가 후보 인선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17일 “지방변호사회에서 신망이 높은 법조인에게 연락해 특검 후보자로 추천하겠다고 해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 추천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며 “거부하는 이유는 주로 ‘부담스럽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추천을 안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방변호사회의 추천이 일부 더디게 진행되면서 변협 ‘특검 추천위원회’가 당초 18일 0시까지 받기로 한 지방변호사회 후보군 추천 시한을 21일 오후 6시까지로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협은 국회에 특검 후보자 4명을 추천해야 하는데, 지방변호사회별로 추천받은 후보군을 특검 추천위원 11명이 논의한 뒤 후보자 4명을 추리게 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드루킹 특검은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런 골치 아픈 사건을 누가 선뜻 맡겠다고 나서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사건의 성격상 수사가 잘되든, 못 되든 특검이 져야 하는 부담이 클 것이란 점도 인선 난항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7일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62·법무법인 민 대표변호사)을 후보군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민 전 지검장은 추천을 고사했다. 변협 안팎에서는 BBK 특검처럼 판사나 변호사 출신도 후보자에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변협이 국회에 후보자 4명을 추천하면 이 중 야3당 교섭단체가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한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 기자}
법무법인 태평양이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에 분사무소를 새로 열었다. 정보기술(IT) 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고객으로 잡겠다며 대형 로펌이 ‘한국형 실리콘밸리’인 판교신도시에 거점을 마련한 것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태평양은 11일 법무부로부터 분(分)사무소 설립을 인가받고 업무를 시작했다. 분사무소는 성남시 분당구 판교현대백화점에 있으며 규모는 115m²다. 분사무소 오픈을 기념해 29일 판교신도시에서 ‘미국 특허분쟁 최근 동향, 실무 및 사례연구’ 세미나를 연다. 태평양이 판교신도시에 대형 로펌 중에서 처음으로 진출한 것은 IT 기업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다. 판교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굴지의 IT 대기업의 본사가 몰려 있다. 엔씨소프트 등 게임 대기업들도 여럿 있다. 이들 기업의 법률자문이 늘고 있는 만큼 관련 변호사들을 분사무소에 배치해 IT·게임 기업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인 것이다. 미래 성장성이 높은 IT 스타트업의 초기 법률자문에 응해 줌으로써 나중에 법률분쟁이 발생할 때 이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여서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제대로 된 법률조언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로펌이 스타트업의 고민을 해결해주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탄탄히 맺어두면 향후 이 기업들이 성장했을 때 로펌은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법률사건을 수임할 수 있다. 또 스타트업을 육성한다는 사회적 의미도 커서 대형 로펌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판교 분사무소장은 이병기 변호사(50·사법연수원 24기)가 맡았다. 민인기(44) 박준용 변호사(45)가 분사무소에 상주하고 기업법무, 금융, 노동 등 10여 명의 전문변호사가 서울 강남구 본사와 판교 분사무소를 오가며 일한다. 본사와 분사무소는 화상회의, 원격시스템을 통해 교류한다. 태평양 관계자는 “판교신도시에 있는 IT·게임 기업들의 요구에 바로 대응하기 위해 전문변호사팀을 구성했다”며 “스타트업에 대한 법률조언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태평양 외에 법무법인 세종도 5월 말 판교신도시에 분사무소를 열 예정이다. 법무법인 한결은 2014년 이곳에 분사무소를 열었다. 로펌들이 잇달아 판교신도시에 분사무소를 내는 것은 갈수록 커지는 IT기업 법률시장을 차지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판사들이 ‘미확정 판결문’을 인터넷에서 열람·복사하도록 바꾸는 것에 대해 10명 중 7명꼴로 반대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이 같은 결과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16∼27일 ‘바람직한 판결서 공개 제도에 관한 법관 설문조사’를 실시해 최근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결과에서 공개됐다. 전국 판사 2983명 중 1117명(37.5%)이 설문에 응답했다. 판사들은 ‘미확정 판결문의 인터넷 열람·복사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민사사건에 대해선 70.0%, 형사사건에 대해선 78.3%가 반대했다. 또 ‘검색을 통해 형사사건 판결문을 검색하고 열람·복사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57.5%가 반대했다. 현재 하급심 미확정 판결문은 대법원 청사 내 법원도서관에서 열람하거나 별도 신청을 통해 e메일 등으로 받아볼 수 있다. 대법원 확정 판결문은 일부 비공개 결정된 판결 외에는 공개되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찬반 여부만 물어 판사들이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체로는 ‘개인정보 보호’를 근거로 공개에 반대하고 있다. 판결문에는 소송 당사자의 주소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이 기재돼 있다. 또 성폭력 사건은 피해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기업 사건의 경우 영업비밀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하급심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공개 여부 자체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과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하급심 판결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재판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판결문이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혼소송에서 남편을 대리한 변호사가 소송 상대방인 부인과 사랑에 빠져 남편에게 불리한 정보를 빼돌렸다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달 6일 대한변호사협회에 A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신청했다. A 변호사가 이혼소송 중인 남편을 대리하면서 그의 부인 B 씨와 사귀었고, 남편에게 불리한 내용을 B 씨에게 몰래 알려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A 변호사는 남편이 B 씨와 별거하면서 다른 여성과 교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B 씨에게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남편이 데리고 있던 자녀들을 B 씨에게 데려갔다고 한다. 남편이 B 씨의 자동차를 마음대로 처분한 사실을 알려주고 B 씨가 이를 문제 삼아 고소장을 작성하는 것을 도와준 일도 있었다. 자신이 대리한 남편이 아닌 부인에게 유리하도록 도운 것이다. 변협은 현재 A 변호사에게 경위서를 써서 제출하라고 요청한 상태다. A 변호사는 부인과의 교제 사실은 인정했으나 중요 정보를 빼돌리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사법 제26조에는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변호사 징계는 변협 징계위원회가 최종 결정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순실 씨(62·구속 기소)가 항소심 재판을 생중계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13일 뒤늦게 알려졌다. 최 씨는 11일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받고 현재 회복 중이다. 최 씨는 지난달 3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에 “항소심 재판을 생중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4일 1회 공판준비기일이 열리기 직전에 요청을 한 것이다. 언론 보도만으로는 최 씨 주장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고, 누구의 논리가 더 타당한지 국민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아직 생중계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공판기일을 생중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최 씨 요청대로 항소심 공판이 생중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선고는 생중계될 수 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재판장은 피고인이 동의할 경우 선고 공판을 생중계할 수 있고,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생중계할 수 있다. 법조계에선 최 씨가 재판을 생중계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재판부에 ‘공정한 절차로 재판을 진행해 달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전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저도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만큼 깨끗한 분이 없습니다.” 8일 오후 3시 52분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9)이 증인석에 앉아 천천히 입을 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재판에 나온 정 전 비서관은 “이 분(박 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범행을) 하셨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에서 특활비를 받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부인한 것이다. “하…”라며 3초간 한숨을 쉬며 잠시 주위를 둘러본 정 전 비서관은 다시 재판부를 응시하고서 “팩트와 관련해선 더 드릴 말씀이 정말 없다. 저의 심경에 관련해선 말씀드릴 게 많다”고 했다. “그분(박 전 대통령)이 평생 사신 것과 너무나 다르게 비치고 있다. 그 부분이 안타깝다. 그 외에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특활비를 뇌물로 받았다고 보느냐’는 국선변호인의 질문에는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1년 6개월간의 형기를 마치고 4일 만기 출소한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 출소 4일 만에 법정에 나온 그는 박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말 외에 공소사실과 관련한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자신이 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건넨 혐의로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다. 검찰과 박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의 설득에도 정 전 비서관은 “동일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증언을 거부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 전 비서관의 증언 거부로 증인신문은 시작한 지 30분 만인 오후 3시 54분 종료됐다. 정 전 비서관은 재판부와 검찰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뒤 법정을 떠났다. 이후 기자들과 만난 그는 “(법정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앞서 정 전 비서관은 이날 오후 2시 45분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줄곧 입었던 수의 대신 감색 정장을 입고 밝은 표정에 걸음도 당당했다. 건물 내부에서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는 출입구를 착각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적이 없어서 실수를 한 것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과 제가 공범으로 돼 있어서 면회가 안 된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오후 3시 10분 법정에 들어선 정 전 비서관은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구속돼 있을 때 피고인 신분으로 마주쳤던 검사들과는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오후 3시 24분 법정에 들어온 재판부가 “정호성 씨 나와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증인석으로 걸어가 두 손을 모으고 앉았다.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을 ‘정호성 씨’라고 불렀다. 형기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피고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이다. 검찰과 국선변호인도 그를 ‘증인’이라고 불렀다.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 기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법조계 대표 직역단체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시험 합격률 공개 및 로스쿨 구조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법전협)는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일주일 앞두고 김현 대한변협 회장에게 ‘축사 요청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변협은 앞서 지난달 22일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공개하자 “합격률이 낮은 로스쿨들을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협의 이런 자세가 신규 변호사 배출을 막아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판단한 법전협이 김 회장의 축사를 보이콧한 것이다. ○ “축사 요청 취소” 통보 법조계에 따르면 김명기 법전협 사무국장은 3일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10일 법전협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해달라던 요청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공식 행사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축사 요청을 취소한 것은 로스쿨 통폐합을 주장하는 김 회장이 축사를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라고 한다. 법전협 기념식에서는 당초 김 회장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 로스쿨 관련 기관장들이 축사를 할 예정이었다. 예비 법조인 교육기관인 법전협 행사에서 변협 회장이 축사를 하는 것은 관행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다. 갑작스레 법전협이 태도를 바꾼 것은 지난달 22일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공개한 일이 계기가 됐다. 합격률 공개는 변협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이뤄졌다. 변협은 올해 변호사시험에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이 졸업자 수 대비 70%대 합격률을 기록한 반면에 지방대 로스쿨 대부분이 합격률 50%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나자 “전국적으로 난립한 25개 로스쿨을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스쿨들은 “변협의 주장은 로스쿨을 없애려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부 로스쿨 원장은 변협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법전협 측에 김 회장의 축사 취소를 요구했다고 한다. ○ “일방적 통보는 결례” vs “기득권만 지켜” 김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로스쿨 통폐합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축사 요청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은 결례”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법전협 창립 10주년을 맞아 덕담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취소 통보를 받았다. 법전협의 태도는 어떤 비판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법전협은 김 회장에게 축사 요청 취소를 통보한 일은 당연하다는 태도다. 변협이 변호사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로스쿨 통폐합을 주장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변협이 미래 법조인인 로스쿨 출신을 끌어안을 생각은 하지 않고 신규 변호사 수를 줄여 기존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들의 기득권만 지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김 회장에게 축사만 안 된다고 했을 뿐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괜찮다고 정중하게 전달했다. 문제될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변협과 법전협의 이번 갈등을 푸는 일에 정부가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갈등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와 로스쿨 정원이 현재 법조인력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적정한지 여부에 대한 견해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결정권은 법무부가, 로스쿨 정원 결정권은 교육부가 각각 갖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청와대가 판사 파면을 요구한 국민청원을 전화로 대법원에 전달한 사실(본보 4일자 A10면 참조)을 인정하면서 전달 과정과 취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4일 해명했다. 하지만 본보가 ‘팩트 체크’로 확인한 결과 청와대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다. ○ 청, “국회 국민청원은 국회에 전달” 청와대는 4일 “법원 관련 국민청원이 들어왔으니 (법원에) 통지를 한 것이다. 국회 국민청원이 들어오면 국회에 통지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회와 관련한 국민청원이 들어오면 국회에 전달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올 3월 8일 27만 명이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주세요’라고 동의한 국민청원에 답변하면서 국회에는 이를 전달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청와대가 국회의원 월급을 결정할 수 없다”며 국민청원을 처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비서관은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의원 최저시급 청원은 (실제로 실현)될 것이라기보다는 ‘국회의원이 더 열심히 일해 달라’는 취지의 청원”이라며 “(청원의) 기대치가 다르다. 사안별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수의 법조인들은 청와대가 국민청원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구분하고, 전달 여부를 임의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 청, “문서로 전달하면 부담” 청와대는 4일 “문서나 우편, e메일 등으로 (국민청원을) 전달할 경우 서로 부담이 될 수 있어 전화 통화만 했다”고 해명했다. 법원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전화 통화로 배려했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 등 다른 정부 기관들은 ‘국민의 뜻’이 포함된 민원을 전달할 때는 전화가 아닌 ‘공문’을 통하는 게 일반적이다. 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은 모두 문서로 처리한다. 공문으로 하지 않을 경우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논란이 일 수 있고, 각 기관의 책임 소재도 명확히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접수한 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고 판단할 때는 법원에 내용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정 비서관은 “공문, e메일 전달 여부도 다양하게 검토했다. 그러나 (대법원에) 부담 가지 않았으면 했다”고 거듭 설명했다.○ 판사들은 “압력으로 느껴” 하지만 판사들은 청와대가 판사 파면 청원을 대법원에 전한 것 자체가 문제지만 공문이 아닌 전화를 사용한 방식도 부적절하다며 반발했다. A 판사는 4일 인터넷 포털에 개설된 판사 비공개 카페에서 “국민청원을 전달하려면 공문으로 해야지, 아무 근거도 남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알 수 없는 전화로 전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글을 올렸다. B 판사는 “국민청원을 청와대가 전달했다는 것 자체가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사법 독립 침해 우려가 있다”고 적었다.이호재 hoho@donga.com·전주영 기자}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이 법원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차지원 판사는 이란인 A 씨가 “난민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차 판사는 “이란은 이슬람교도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처벌할 수 있다”며 “A 씨가 이란으로 귀국하면 기독교 개종자라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의해 박해를 받을 수 있어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차 판사는 “이란의 기독교 개종자들은 폭행, 괴롭힘, 고문, 학대 등의 심각한 수준의 박해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며 “A 씨가 이란으로 돌아가 기독교 개종 사실을 숨기고 생활하면 박해를 피할 수도 있으나, 이는 종교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A 씨는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이란인으로 2011년 8월 한국에 입국했다. 2011년 12월부터 한국에서 교회를 다녔고 매주 빠짐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교회에 다닌 지 4년이 넘은 2016년 3월 세례를 받고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A 씨는 2016년 4월 출입국관리소에 난민인정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하고 법무부에 낸 이의 신청도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을 청와대 관계자가 대법원에 전화를 걸어 전달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 2월 말 이승련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53·20기)에게 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한 국민청원 내용을 전화로 전달했다. 통화가 이뤄진 때는 국민청원이 23만 명에 이르러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내놓은 그 즈음이었다. 청와대는 당시 “삼권분립에 따라 현직 법관의 인사와 징계에 관련된 문제는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었다. 이 기조실장은 3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2월 말쯤 청와대 관계자가 국민청원 내용을 단순히 알리고 전달하는 수준으로 전화했던 것”이라며 “해결하라, 조치하라는 말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조실장은 “통화 이후 청와대에서 보내온 공문서도 없었고, 대법원에서 징계 등의 조치를 한 것도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행정처 직제상 기조실장은 법원 예산 등 행정 전반을 총괄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국회와 청와대 등과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청와대와 기조실장은 평소 업무상 필요가 있을 때 종종 서로 연락을 한다. 그러나 업무 차원에서 알려준 것이라는 청와대와 대법원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판사 파면 청원을 전달한 것 자체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판결을 문제 삼아 법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위해 판사의 신분 보장을 규정한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한 국민청원의 근거와 정당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대법원에 이를 전달한 것은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헌법 제106조 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법관은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될 수 있는데, 판결은 법관에게 고도의 재량이 인정돼 설령 하급심에서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청와대 관계자가 정 부장판사에 대한 인사 조치를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파면을 주장하는 국민청원을 전달하는 행위로 인해 판사들은 사실상 무언의 압력을 느낄 여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올 1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 항소심 재판 당시 법원행정처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구속 기소) 등 청와대 측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재판부 동향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완전한 독립이 보장돼야 하는 ‘판결’에 대해 의견을 교류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전주영 기자}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 측이 네이버 기사 댓글의 추천 횟수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늘린 것과 관련해 네이버의 ‘방조 책임’이 있다고 2일 주장했다. 김 씨의 변호인 오정국 변호사(50·사법연수원 36기)는 이날 오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김 씨가 한 행동은 댓글 추천 횟수 조작이 아니라 ‘선플’(좋은 내용의 댓글) 활동”이라며 “네이버도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회원들에게 1인당 아이디를 무한정으로 쓰게 놔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오 변호사는 또 “김 씨가 구치소 접견 중에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나 때문에 떨어진 걸로 알고 열 받은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고 전했다. 김 씨로 인해 당시 안 후보가 떨어진 게 아니고 자신이 그럴 능력도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드루킹, 법정서 ‘여유만만’ 이날 오전 11시 24분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김 씨와 공범 우모 씨(32·구속 기소), 양모 씨(35·구속 기소)의 첫 공판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김대규 판사(44·33기) 심리로 재판이 시작되자 연녹색 수의를 입은 김 씨가 법정에 들어섰다. 머리카락은 대부분 하얗게 셌고 안경을 낀 채였다. 김 판사가 직업을 묻자 김 씨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차분하게 답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을 때도 김 씨는 긴장하지 않았다. 김 씨는 간지러운 듯 코와 이마, 귀를 자주 긁었다. 다리를 덜덜 떨고 눈곱을 떼기도 했다. 고개를 내린 채 절레절레 흔들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김 씨는 이날 말을 아꼈다.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는 김 판사의 질문에 “네, 인정합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김 씨는 오 변호사에게 수차례 ‘귓속말 지시’를 내리며 실질적으로 변론을 주도했다. 검찰은 이날 증거 목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증거로 신청한 압수물 대부분을 현재 경찰이 분석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서다. 이에 오 변호사는 “기소한 지 2주가 넘었는데도 증거 목록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데 의구심이 든다. 재판을 지연하려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김 판사도 “자백 사건에서 증거 분석을 이유로 증거 제출이 늦어지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네이버 로그인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손으로 입력하는 데 귀찮아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뿐이다. 손으로 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어서 실질적으로 네이버에 크게 업무상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은 시작 16분 만인 오전 11시 40분에 끝났다. 두 번째 공판은 16일 열린다.○ 경찰 “매크로 동원 아이디 2200개” 경찰은 1월 17, 18일 네이버에 올라온 기사 약 30만 개를 분석해 매크로 작업에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가 2200여 개에 이른다는 내용을 이날 추가로 밝혀냈다. 기존 614개의 약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아이디 일부는 김 씨가 운영했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아이디 명의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경우가 상당수 포함됐다. 경찰은 이런 내용을 김 씨의 공소사실에 추가할 방침이다. 이호재 hoho@donga.com·정성택·권기범 기자}
“피고인 김○○ 양(18)에게 징역 2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30년 부착을 선고한다. 박○○ 씨(20·여)에게는 징역 13년을 선고한다.” 30일 오후 2시 40분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가 형량을 선고하자 방청석에선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주범 김 양에겐 1심과 같은 법정최고형(징역 20년)이 내려졌지만, 공범 박 씨는 1심 형량인 무기징역에서 크게 감형된 징역 13년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김 양은 범행 당시(지난해 3월 29일) 만 16세로 소년법 적용을 받아 법정최고형이 징역 20년이다. 선고 후 연두색 수의를 입은 김 양과 박 씨는 빠르게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날 김 양과 박 씨는 404호 법정 피고인석에 나란히 섰다. 피고인석 의자 3개 중 가운데 의자를 비워두고 양쪽 의자에 앉은 채 서로에게 거리를 뒀다. 선고가 진행된 40분 동안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았다. 검사, 변호사는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씨는 재판부에 눈을 떼지 않으며 선고를 경청했다. 감형을 기대하는 듯 보였다. 재판부는 수차례 “유족들이 심한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질책했고 박 씨는 그때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침내 재판부가 감형된 형량을 선고하자 박 씨 얼굴에 살짝 화색이 돌았다. 반면 김 양은 시종일관 무덤덤했다. 양손은 깍지를 낀 채 피고인석 책상에 올려놓았다. 고개는 푹 숙였다. 눈을 자주 깜빡였고 때론 두 눈을 감았다. 재판부가 1심과 같은 법정최고형을 선고할 때도 김 양은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방청석엔 피해 아동이 살았던 지역주민 10여 명이 나왔다. 이들은 선고 내내 손수건이나 휴지로 눈가를 훔쳤다. 두 손을 꽉 쥐고 재판을 바라보기도 했다. 피고인 가족은 박 씨의 모친만 보였다. 박 씨의 모친은 방청석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선고를 들었다. 김 양의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 유족도 없었다. 1심 재판부는 김 양과 박 씨가 살인사건을 같이 저질렀다고 보고 둘 모두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김 양에게는 살인죄를 적용했지만, 박 씨는 살인사건에 가담하진 않고 살인을 방조한 것이라며 살인죄가 아닌 ‘살인방조죄’를 적용했다. ‘박 씨가 사람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한 김 양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양은 박 씨가 자신에게 잔인한 인격을 만들어줬고 잔혹성을 이용해 범행하게 했다고 진술하지만, 박 씨는 김 양의 요구에 응답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