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특교

구특교 기자

동아일보 경영전략실 경영총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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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어린 따뜻함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겠습니다. 일이 안 될 때는 현장으로 가 직접 두 발로 뛰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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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1~2025-12-21
산업44%
기획27%
기업10%
사회일반7%
정치일반3%
건설3%
사고3%
경제일반3%
  • 피의자 양옆서 경찰 ‘샌드위치 작전’… 난동대비 양손에 수갑

    14일 오전 10시 30분경(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의 항공기 계류장. 남녀 수십 명이 차례로 줄을 섰다. 가슴에는 1부터 47까지 적힌 번호표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이들은 공항 직원들의 안내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주변에는 공항 경찰이 매서운 눈초리로 이들을 쳐다봤다. 번호표를 단 47명은 국내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른 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피의자다. 필리핀 이민청 산하 외국인수용소에 있다가 이날 오전 차량 20대에 나눠 타고 공항으로 왔다. 이동 내내 이민청 소속 수사관 120명이 이들을 감시했다. 공항에는 한국의 한 저비용항공사(LCC) 소속 비행기 한 대가 있었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태워가려고 1억 원 가까이 주고 빌린 전세기다. 안에는 한국 경찰 120명이 타고 있었다. 피의자 47명이 전세기에 오르자 곧바로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국적기 내부는 자국의 영토로 인정된다. 한국 경찰은 자신이 담당한 피의자에게 저마다 ‘미란다 원칙’(변호인 선임 등 피의자 권리를 당사자에게 고지하는 것)을 알리고 수갑을 채웠다. 전세기 기종은 보잉 737-800. 정원은 189명이다. 이날 전세기에는 피의자와 경찰, 승무원, 의료진을 포함해 177명이 탔다. 좌우 3개씩 있는 좌석의 가운데가 피의자 자리였다. 양 옆에는 경찰이 앉았다. 피의자가 연루된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 소속이었다. 여성 피의자 5명에게는 모두 여경이 배치됐다. 하지만 승무원과 의료진은 모두 남성이었다. 비행기는 공항 사정으로 약 40분 지연된 끝에 현지 시간 오전 11시 27분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을 출발했다.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외국에 있는 범죄 피의자 수십 명을 집단으로 송환하는 건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영화 ‘콘 에어’를 연상케 한다. 흉악범 여러 명을 한 교도소에 수감하기 위해 비행기로 이송하는 과정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1997년)다. 영화에서는 기내에서 폭동까지 일어났다. 그래서 경찰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피의자를 중간에 앉힌 ‘샌드위치 작전’이 그중 하나다. 화장실에 갈 때도 경찰이 따라갔다. 저비용항공사라 원래 기내식은 안 나오지만 이날은 식빵을 4등분한 샌드위치가 나왔다. 흉기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포크나 수저는 처음부터 배제됐다. 한국으로 오는 내내 비행기 안은 조용했다. 전세기에 탔던 한 경찰은 “쓸 데 없이 자극할 수 있다고 해서 범죄자와 전혀 말을 섞지 않았다. 경찰은 모두 긴장돼 눈도 감지 못했는데 범죄자들은 대부분 잠만 잘 자는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혹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기내에 테이저건 4개를 비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테이저건을 사용할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오후 3시 58분경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피의자들은 그제야 송환을 실감한 듯 고개를 숙였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나왔다. 오후 5시경 인천국제공항 F게이트를 통해 마스크에 모자를 쓴 수십 명이 줄지어 나오자 공항 이용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알지 못한 이용객 일부는 “연예인 오는가 봐!” “드라마 찍는 거 아니야?”라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들을 쳐다봤다. 피의자들의 손에는 수갑을 가리기 위한 검은색 천이 덮여 있었다.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였지만 필리핀에서 입던 옷 그대로 반바지 차림의 피의자도 있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도 눈에 띄었다. 공항 밖에는 이들을 태우고 갈 버스가 서 있었다. 피의자들은 곧바로 각자의 사건 관할 경찰서로 이송됐다. 경찰 관계자는 “체포영장 후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시간이 48시간이다. 이송에 걸린 시간만큼 조사 시간이 줄어들어 마음이 급하다”고 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 / 인천=구특교 기자}

    •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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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판 ‘콘에어’ 송환… 비상사태는 없었다

    ‘한국판 콘 에어(Con Air·Convict Airline)’ 작전이 14일 실시됐다. 필리핀에 있는 한국인 범죄 피의자 47명을 전세기에 태워 2600km 떨어진 한국으로 이송했다. 외국에 있는 피의자 수십 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범죄자들을 태운 전세기는 이날 오후 3시 58분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국내 한 저비용항공사(LCC) 소속 비행기다. 사기 사건 피의자 39명 등 범죄자 47명과 한국 경찰 120명, 승무원과 의료진 등 모두 177명이 탑승했다. 앞서 필리핀 이민청은 수사관 120명을 투입해 수용소에 수감 중인 한국인 피의자를 공항에 대기 중이던 한국 경찰에 넘겼다. 이들을 태운 전세기는 오전 11시 27분(현지 시간) 필리핀 공항을 출발했다. 필리핀은 한국인 범죄자가 가장 많이 찾는 도피처다. 비행기로 4시간 안팎이면 갈 수 있고 치안이 열악해 장기간 도피 생활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는 올해만 485명(11월 기준). 이 중 144명이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이번 콘 에어 작전을 통해 앞으로 범죄자의 필리핀행을 막는 효과가 기대된다.황성호 hsh0330@donga.com / 인천=구특교 기자}

    •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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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남녀 혈흔 육안 식별기술 세계 첫 개발

    “범인이 남긴 어떤 흔적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본원에서 만난 법유전자과 전병원 연구관(49)의 말이다. 5일 국과수에 따르면 전 연구관과 동료들은 사건 현장에서 육안으로 남녀 혈흔을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술은 짧은 DNA 사슬인 앱타머(aptamer)란 물질을 이용해 여성 호르몬이 포함된 혈흔만 선택적으로 발광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혈흔에 스프레이 형태 시약을 뿌리면 바로 구별할 수 있다. 기술이 상용화돼 범죄 현장에 적용되면 여성 혈흔을 손쉽게 발견해 DNA 정보를 채취할 수 있게 된다. 전 연구관은 2014년 ‘부산 가야동 고부(姑婦) 살인사건’ 현장에서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사건 현장에는 피해자 여성들 혈흔이 흥건했다. 그러나 족적을 분석한 결과 범인은 남성이 유력했다. 전 연구관은 “현장에서 남녀 혈흔을 바로 식별한다면 범인의 흔적을 찾는 게 더 쉽지 않을까 고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에서 요청한 DNA 감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연구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퇴근 후 밤샘 연구에 매진했다. 김주영 법유전자과 연구사(40)가 “앱타머 기술을 활용해 보자”고 제안하며 연구는 활기를 띠었다. 1년 넘게 동료 10명과 머리를 싸맨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 과정과 결과를 담은 논문 ‘앱타센서를 이용한 여성특이적인 혈흔식별 기술 개발’은 법과학 분야 유명 학술지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리걸 메디신(International Journal of Legal Medicine)’에 게재됐다.원주=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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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순직 인정되지 않은 경찰관 돕는 전담팀 신설

    경찰청은 최근 5년간 경찰관 순직 및 공상 불승인에 따른 재심 인용과 승소율이 21%에 그치자 이를 지원하는 경찰 전담팀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5일 밝혔다. 포항 죽도파출소 최모 경장(30)이 야간근무 중 의식을 잃고 숨지고도 순직 인정이 되지 않았다는 본보 보도(4일자 A14면)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경찰관의 순직 및 공상이 불승인돼 12건의 재심이 신청됐지만 이중 1건만 인용됐다. 제소한 소송도 29건 중 8건이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심 인용과 승소율이 총 41건 중 9건으로 21.9%에 그친다. 재심 인용과 승소율이 낮은 이유는 질병으로 경찰관이 사망했을 때 유가족에게 질병과 공무의 연관성을 입증할 책임이 있어서다. 발병의 의학적 원인이 명확해야 한다. 질병이 근무여건과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직접적인 의학적 증거도 제시해야 한다. 최근 5년간 순직이 불승인된 66명 중 질병으로 사망한 경찰관이 41명(62%)에 이르는 이유다. 경찰은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청 직속의 재심 및 소송 지원 전담팀을 구성해 유가족들을 도울 방침이다. 또 질병의 발병 원인과 직무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연구 용역도 실시할 계획이다. 연구 결과는 재심과 소송에 적극 활용될 방침이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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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야근중 숨진 경찰, 순직 아니라니…”

    야간근무 도중 의식을 잃고 숨진 경찰관이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동료 경찰관들은 순직을 인정해 달라며 대대적인 탄원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3일 경북 포항북부경찰서에 따르면 공무원연금공단은 죽도파출소 최모 경장(30)의 유족에게 “최 경장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를 찾지 못했다”며 지난달 20일 순직 불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최 경장은 9월 26일 오전 3시 16분경 파출소 2층 숙직실에서 대기 근무를 서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전날 오후 6시 반부터 철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사망 당일 최 경장은 10차례 각종 신고를 받아 4차례 현장에 출동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다. 죽도파출소는 포항 지역에서도 치안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이다. 특히 사망 직전 마지막 출동 때는 폭행 사건 피의자를 체포해 연행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최 경장은 심한 욕설과 발길질을 하며 저항하는 피의자를 제압하느라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문제의 피의자는 파출소에서도 연신 침을 뱉는 등 난동을 피웠다. 함께 출동했던 채유훈 경위(47)는 “최 경장이 한 시간 넘게 피의자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매우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 경장이 과로와 근무 스트레스로 사망했다고 보고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공로장도 헌정했다. 하지만 공단은 최 경장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검 결과 정확한 사인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등의 증세가 나타나는데 최 경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포항북부경찰서 동료들은 “공단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전국 경찰관을 상대로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동료 전희영 순경(31·여)은 “밤새 근무하다 사망해도 사인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못한다니 좌절감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복무 중 숨진 경찰관은 총 438명이다. 이 중 순직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은 79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18%에 불과하다. 포항=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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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 물렁해졌다는데 벼농사 계속 지을 수 있을지 걱정”

    1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 농가주택 곳곳에서 지진 피해 복구가 한창이었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이라 해병대원 20여 명이 투입돼 무너진 담장 등을 치우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농민 이모 씨(65·여)의 얼굴에 고마움과 안도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불안한 기색을 감추진 못했다. 이날 망천리 일대의 액상화 현상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진앙 반경 10km 이내 10곳을 시추 조사한 결과 5곳이 액상화 발생 가능 지반으로 파악됐다고 이날 밝혔다. 액상화란 지진으로 지반이 흔들리면서 지하 모래층에 지하수 등이 유입돼 땅이 물렁해지는 현상이다. 지표면으로 물이 솟아오르며 흙이 봉긋하게 올라오는 ‘샌드·머드 볼케이노(모래·진흙 분출구)’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에서 지진 액상화 현상이 나타난 건 포항이 처음이다. 특히 5곳 중 망천리 논 지역은 액상화지수(LPI)가 6.5였다. 5.0을 넘어 ‘높음’으로 분류됐다. 건물 등 구조물을 설치할 때 액상화 대책이 필요한 수준이다. 나머지 4곳은 ‘낮음’ 단계였다. 중요 구조물을 설치할 때 연약지반을 걷어내는 등 상세한 조사가 필요한 곳이다. 중대본은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로 “액상화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익수 경남대 교수(한국지진공학회 이사)는 “액상화 발생이 구조물의 피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10곳은 더 이상 피해 진척이 없고 구조물 기초에도 피해가 가지 않았다.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망천리 주민들의 걱정은 여전하다. 이 씨는 “지반이 물렁해져 트랙터가 빠질 수 있으니 미리 대비도 해야 할 것 같고 흙 성질이 바뀌어 아예 벼농사를 짓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농가 주택에 대한 불안감도 더욱 커졌다. 홍모 씨(57·여)는 “원래 지진 나기 전에 이사 갈 계획이 있었다. 앞으로 아무도 집을 사려고 하지 않을 텐데 이사도 못 가고 계속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홍 씨는 “액상화가 발생한 곳은 물 위에 집 짓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새로 집을 짓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낮음’ 판정을 받은 지역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남구 송도동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강모 씨는 “주변이 복개천이라 지반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는 괜찮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흥해읍 일대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동공(洞空) 여러 개가 발견됐다. 동공은 땅속의 빈 공간을 말한다. 경북도와 포항시에 따르면 경북도지진재해원인조사단이 3차원 지표투과레이더(GPR)를 통해 조사한 결과 흥해읍 일대 땅속에서 크고 작은 공간 9곳이 확인됐다. 큰 것은 깊이 1m, 폭 1.5m이고 나머지는 수십 cm∼1m 정도다. 일부 동공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다. 조사단은 지진 연관성 등 정확한 동공 발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지진 충격으로 상·하수도관이 새면서 발생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지열발전소의 지반 내 물 주입으로 인한 지진 영향 여부에 대해서도 정부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최종 조사 결과는 이달 말 나올 것으로 보인다.포항=구특교 kootg@donga.com / 서형석 기자}

    • 201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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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窓]“지진 부상자는 거들떠도 안봐” 치료비 걱정 70대 노인의 한숨

    “다리를 절단할지도 모릅니다.” 의사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김모 씨(70·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열흘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김 씨는 자신의 현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지난달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닥쳤을 때 김 씨는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 자신의 연립주택에 있었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집 전체가 흔들렸다. 한쪽 벽이 김 씨를 덮쳤다. 콘크리트 잔해가 다리 위로 떨어졌다. 온몸에서 피가 흘러 바닥에 고였다. 지난달 29일 포항의 한 대형 병원에 입원 중인 김 씨를 찾았다. 그는 “아들 말고 처음 찾아온 사람이다.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나처럼 다친 사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 상태는 꽤 심각했다. 얼굴과 머리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문제는 왼발이다. 흰 붕대로 감싼 왼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피부 일부는 괴사했다. 치료 때마다 불에 닿는 듯한 통증이 온다고 한다. 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말할까 봐 김 씨는 회진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더 큰 걱정은 얼마가 될지 모르는 치료비다. 차상위계층인 김 씨는 아들(45)과 단둘이 살고 있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부도가 난 아들은 최근 개인회생절차가 끝난 뒤 건설 현장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아들이 피해 신고를 하며 주민센터에 물었지만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변만 들었다. 이런 지진 피해가 처음이다 보니 공무원조차 부상자 지원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이다. 부상자들은 ‘자연재난 구호 및 복구비용 부담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사망·실종자의 50%(250만∼500만 원)에 해당하는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 기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신체장애등급 7급 이상이다. ‘엄지와 둘째 손가락을 잃은 사람’ ‘한쪽 눈이 실명되고 다른 쪽 눈의 시력이 0.6 이하가 된 사람’ 등이다. 이 기준대로면 심한 부상을 입어도 자칫 지원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30일 현재 포항 지진 부상자는 92명. 전날까지 5명이 재난지원금을 신청했지만 확정된 사람은 아직 없다. 지난해 경주 지진 당시 부상자 18명 중에도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은 없다.포항=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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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진 트라우마 달래려 노란 머리띠 맨 교수님

    “교수님, 지진 때문에 불안한데 어떡하죠?” 27일 오후 9시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에 접속한 한 누리꾼이 질문했다. “외벽이 무너졌지만 구조체는 이상이 없다고 해요. 수리 잘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아요.” 곧바로 주재원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교수가 답했다. 주 교수는 이날 아프리카TV의 BJ(인터넷방송 진행자)로 변신했다. 방송 제목은 ‘지진 트라우마 부수기’. 한동대는 15일 규모 5.4의 포항 지진으로 일부 건물의 외벽이 무너져 내리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교직원과 학생이 평소 재난 대응 훈련을 반복적으로 실시해 다행히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경상 4명이 전부였다. 현재 학교에서는 정밀 점검과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은 집에 갔거나 포항지역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인터넷 강의가 진행 중이고 다음 달 4일부터 학교에 간다. 등교일이 다가오자 일부 학생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지진 당시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전해 들은 한동대 총학생회는 ‘지진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지 논의하다 인터넷방송을 선택했다. 김기찬 총학생회장(26·경영경제학부 4학년)은 “지진 때문에 전국 각지로 흩어진 학생들이 함께 모여 힘든 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하다 ‘인터넷방송’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접한 교수들도 흔쾌히 참여를 결정했다. 한동대는 한 팀당 35명씩, 100여 개팀을 구성해 학생을 관리한다. 총학생회는 각 팀장에게 전달해 인터넷방송 계획을 알렸다. 27일 첫 방송은 교내에서 입담 좋기로 소문난 총학생회 소통국장 박우주 씨(23·경영경제학부 4학년)가 맡았다. 박 씨가 노란 꽃 머리띠를 한 주 교수와 꿀벌 머리띠를 한 손화철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를 소개하자 학생들은 채팅창에 “교수님 귀여워요”를 올렸다. 이내 지진 공포를 호소하는 학생들이 글이 올라왔다. 주 교수는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학교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학교 측이 마련한 지진 대비 계획 등을 소개하며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방송을 시청한 한동대 3학년 안정윤 씨(22·여)는 “지진 후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을 정도로 불안했는데 2주 만에 교수님과 친구들을 만나 채팅방에서나마 대화하다 보니 조금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진과 무관한 이야기도 화제에 올랐다. 학생들은 개인적인 고민을, 주 교수는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털어놨다. 학생들의 부탁에 막춤을 추기도 했다. ‘망가지는 교수님’을 통해 학생들의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것이다. 이날 첫 방송에는 전교생(약 3600명) 중 700여 명이 접속했다. 같은 시간대 방송된 아프리카TV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방송’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9일에는 심리상담 전공 교수가 방송에 출연한다. 채팅방을 통해 학생들과 실시간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 달 1일에는 학부별로 교수가 한 명씩 방송에 나와 앞으로 수업 계획 등 보다 구체적인 대화를 학생들과 나눈다. 주 교수는 “학생들이 혼자서 힘들어하면 병이 더 깊어진다는 생각에 방송 출연에 동참했다. 같은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이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며 치유해가는 ‘트라우마 극복’의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포항=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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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피소 생활 지쳤는데 갈곳 없어” 위험 건물로 돌아가는 이재민들

    토요일인 25일 오후 9시 반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원룸 건물. 6층 건물의 16가구 중 9가구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집집마다 설치된 보일러 연통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건물 가운데 출입문으로는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렸다. 출입구 옆 기둥에 ‘위험!’이란 문구가 선명한 빨간색 표지가 붙어 있었다. ‘본 시설의 거주 및 출입을 금함’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긴급 위험도 평가 결과에 따라 건물 붕괴 위험이 커 출입을 완전히 제한한다는 포항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이름의 표지다. 실제 필로티 구조의 건물 기둥 2개는 내부 철근이 크게 휘어진 채 드러나 한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입주민 A 씨는 나흘간 대피소 생활을 하다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는 “불안하지만 기약 없는 대피소 생활에 지쳐 위험을 감수하고 돌아왔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별다른 출입 통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26일 찾은 북구의 다른 원룸 건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곳 역시 필로티 기둥이 심하게 파손됐다. 출입구와 기둥 2곳에 역시 위험도 평가 결과를 알리는 빨간색 표지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15가구 중 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타 지역에서 온 대학생들이다. 건물주 B 씨는 “초기에는 학생들이 불안하다며 밖에서 살았는데 하나둘 다시 들어왔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지진 피해로 위험 판정을 받은 건물 26곳 중 25, 26일 10곳의 주민 거주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9곳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 중 4곳은 철거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주민이 없는 건물은 1곳에 불과했다. 여진이 계속돼 추가 피해가 우려되지만 이들을 통제할 마땅한 규정이 없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정밀 안전진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위험 판정 건물의 거주를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설치된 지지대 등의 구조물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상환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작은 여진이라도 균열이 조금씩 누적되면 어느 한순간에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임시 구조물도 하중만 견딜 뿐 지진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힘에는 버티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주민은 건물의 위험성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위험 판정을 받은 건물 10곳 중 4곳에는 아예 출입 제한 표지가 보이지 않았다. 위험 표지를 떼어낸 한 건물주는 “바로 옆에 있는 원룸은 다 ‘안전’ 등급을 받았는데 우리만 ‘위험’ 판정이면 세입자들이 다 떠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잘못된 정보’ 탓에 건물로 돌아오는 주민도 있다. 입주민 김모 씨(44)는 “건물주가 ‘임시 지지대를 세우면 출입해도 된다는 말을 시청에서 들었다’고 말해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위험 판정을 받은 건물에 대한 현장 관리도 들쭉날쭉하다. 건물 10곳 중 현장 통제가 이뤄지는 곳은 1곳에 불과했다. 25일 오후 11시 장성동의 한 원룸 건물에는 여러 겹의 출입통제선이 설치돼 있었고 경찰관 2명이 계속 순찰을 하고 있었다. 이 건물 내 12가구는 모두 비어 있다. 건물주 김모 씨는 “지진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경찰이 배치돼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위험 판정 건물의 출입을 금지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따로 현장 통제 규정이 있지도 않고, 모든 건물의 출입을 막기에는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포항=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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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 한장, 나보다 이웃을 덮다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흔들림이었다. 유리창이 깨지고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나섰던 집 앞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붙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주민 500여 명이 15일 오후 흥해실내체육관에 모였다. 기약 없는 대피소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때만 해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이재민’으로 불릴 줄 몰랐다.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을 덮친 지 24일로 열흘을 맞았다. 아직 포항시민의 마음에는 불안과 공포가 여전하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 절망이 가득했던 대피소였지만 이재민들은 난생처음 본 ‘대피소 이웃’과 서로 의지하며 견뎌 나갔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닥친 17일 공무원들이 담요와 핫팩 등 보온용품을 나눠 줄 준비를 했다. 금세 수십 m의 줄이 만들어졌다. 이재민 모두 힘들고 지친 표정이었지만 누구 하나 “빨리 좀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새치기는 물론이고 “한 장 더 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있던 박정연 씨(45·여)는 “혹시 우리 때문에 못 받아가는 이재민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식사 때 노인과 아이를 먼저 챙기는 건 대피소의 불문율이 됐다. 18일 낯설고 불편한 대피소 생활 나흘째. 이재민이 1000명이 넘으면서 체육관은 포화상태가 됐다. 과부하로 온풍기 6대와 공기청정기 2대는 수시로 멈췄다. 이재민들은 담요를 모았다. 추위에 약한 노인과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서다. 가로세로 각각 130cm, 200cm 크기의 작은 담요를 두 가족 3, 4명이 나눠 쓰기도 했다. 갓난아기들은 춥고 낯선 환경에 밤새 울음을 그치지 않았지만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대피소 생활이 5일째를 넘어서자 옷과 세면도구 등 생필품도 늘어났다. 구호품이 모자라자 이재민들은 반파된 집에서 힘들게 꺼내온 옷과 양말 등을 나눴다. 피해가 크지 않은 주민들은 이재민들에게 자신들의 집 욕실을 내주기도 했다. 한 이재민은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내던 아이 친구의 부모인데 몸을 씻을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부모가 직장을 가느라 혼자 남은 아이들을 도맡아 돌보는 이재민도 있었다. 조모 씨(44·여)는 “옆 텐트에 8세, 10세 된 남매가 혼자 놀고 있더라. 부모에게 걱정 말라고 말했다. 행여 컵라면만 먹을까 봐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배식을 받아 먹게 했다”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 행렬이 이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은 수시로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24일에는 전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대피소를 찾았다. 온 마음으로 자신들을 응원한 이재민들에게 고마움을 갚기 위해서다. 장성고 3학년 박현지 양(18)은 뜨거운 행주로 이재민들이 먹고 남긴 식판을 닦았다. 또 텐트촌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했다. 박 양은 “무사히 수능을 치를 수 있었던 건 이재민들의 기도 덕분이다”라고 했다. 흥해고 김한솔 군(18)은 “이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생활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왔다”고 말했다. 24일 현재 포항 지역 대피소 13곳에는 이재민 1349명이 머물고 있다. 열흘간 대피소를 찾은 자원봉사자는 1만1030명이었다.포항=김단비 kubee08@donga.com·황성호·구특교 기자}

    •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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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 끝내고 엄지척 올린 딸…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가슴이 답답했다. 묵직한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았다. 23일 최정희 씨(46·여)는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었다. 최 씨는 고3 딸을 둔 어머니다. 딸은 ‘포항 수험생’이다. 이날은 일주일 연기됐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날.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딸 정보권 양(18) 생각에 최 씨는 마음이 무거웠다. 최 씨 가족은 15일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기약 없는 대피소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 대피소에는 베개는커녕 바닥 보온재도 없었다. 시험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껏 휴대전화로 온라인 강의를 보는 수준이었다. 딸은 새벽 찬바람에 수시로 잠을 깨더니 결국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19일부터는 경북 포항의 한 호텔로 겨우 거처를 옮겼다. 다만 두 사람만 머물 수 있었다. 승용차로 딸의 등교를 도맡아야 하는 아버지 정해승 씨(50)가 딸 곁을 지켰다. 최 씨는 둘째 딸 정윤권 양(13)을 챙기느라 대피소에 남았다. 결국 수능일에 싸주려던 엄마표 도시락은 챙기지 못했다. 당초 시험 전날인 15일에 도시락용으로 준비했던 김밥 재료가 자꾸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22일 대피소에서 어떻게든 도시락을 챙길까 했지만 주변 환경 탓에 포기했다. 최 씨는 딸에게 미안해 아침에 시험장에 가지도 못했다. 최 씨는 “호텔에서 도시락을 챙겨줬지만 엄마 손맛보단 덜하지 않을까요”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정 씨는 전날 승용차로 포항여자전자고 시험장을 답사했다. 도로 사정을 미리 익혀두기 위해서다.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딸에게 정 씨는 “평소대로 파이팅”을 외치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정 씨는 “그렇게 힘든 환경을 견디고 시험 보러 가는 딸이 정말 대견하다”고 말했다. 오전 9시경 최 씨는 불안한 마음과 딸에 대한 걱정을 잠시나마 잊으려는 듯 짧은 머리를 질끈 묶고 옷과 담요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어 이동식 세탁소에 보낼 옷가지를 분류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정리를 마친 최 씨는 딸이 무사히 시험을 마치기를 바라며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정성껏 기도했다. 잠시 기도를 쉴 때면 행여 여진이 발생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오후 4시경 최 씨는 딸이 있는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 종료 30분 전. 딸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 학교 건물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후 휴대전화를 바라보던 최 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시험 끝났어요. 빨리 나갈게요’라는 딸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곧이어 교문 주변에서 박수가 터지고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 씨는 멀리서 오던 딸에게 달려가 안았다. 얼굴을 어루만지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딸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고마워요”라고 답했다. “국어 시간에 조금 긴장했는데 이후에는 모의고사처럼 쳤다. 지진을 전혀 느낄 수 없어서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다”며 웃는 딸의 머리를 최 씨는 대견한 듯 연신 쓰다듬었다. 이날 최 씨 가족은 나흘 만에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포항=장영훈 jang@donga.com·구특교 기자}

    • 201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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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고3들 “여진 불안하지만… 수능 잘봐야죠”

    “시험 잘 보고 오니래이.”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두호고 앞에서 학교 경비원이 교문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시험 잘 보고 올게요!” 학생들은 밝게 웃으며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예비소집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포항 지역 학생들이다.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뒤 일주일째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 학생들의 얼굴에선 여전히 불안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수험표를 들고 ‘인증샷’을 남기는 등 걱정과 긴장을 떨쳐내려 노력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진 여파에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었다. 김모 양(18·유성여고 3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잔뜩 충혈된 눈으로 예비소집에 참석했다. 김 양은 “지진 걱정에, 영어 듣기평가 걱정에 이래저래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포항 지역 학교에서는 예비소집과 함께 지진 대처 매뉴얼이 배부됐다. 지진이 발생하면 책상 밑으로 들어간 뒤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운동장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예비소집을 진행하던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진이 나면 감독관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학부모들도 분주했다. 자녀와 함께 예비소집에 참석하거나 ‘고사장 답사’를 다녀오느라 바쁜 하루였다. 지진 피해로 집이 아닌 대피소나 호텔에서 머무는 가정이 많은 탓이다. 자칫 돌발 상황에 지각할 것에 대비해 미리 길을 익혀두려는 것이다. 대피소에 머물다 한 호텔로 옮겼다는 수험생 학부모 정해상 씨(50)는 “오늘 호텔에서 고사장까지 가는 5km 정도 길을 봐두려 딸과 함께 사전 답사를 했다. 딸보다 내가 더 긴장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이날을 바라보고 공부한 자녀가 지진 때문에 마지막 일주일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특히 피해가 커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은 시험 당일 따뜻한 밥도 해주지 못한다며 탄식했다. 학부모 윤지원 씨(47·여)는 “아이를 독서실에 보냈는데 밀폐된 공간이 무서워 공부를 못했다고 하더라. 수능날에 집밥도 못 먹여 평생 두고두고 사무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진 불안 속에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포항 수험생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크다. 인터넷에서는 포항 수험생을 격려하는 ‘선플 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 사는 고3 수험생 학부모 김모 씨(47·여)는 “서울에서도 지진 때문에 걱정되는데 포항은 오죽할까 싶다. 다 같은 아들딸이니 수험생 모두 안전하게 시험이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진 발생에 대비해 수능 고사장 운동장에 수험생을 이송할 수 있는 버스 244대를 대기시킬 예정이다. 학교마다 지진계를 설치해 지진이 발생하면 즉각 규모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수험생의 심리적 불안감을 덜기 위한 조치도 이뤄지고 있다. 우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고사장마다 1명씩 배치돼 학생들의 불안감을 달랠 예정이다. 수능 고사장에서는 지난주 지진으로 건물에 생겼던 균열을 보강하는 작업도 상당수 이뤄졌다. 금이 간 부분에 실리콘을 바르고 페인트를 칠한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험생들이 조그마한 금에도 신경 쓸 것 같아 지난 주말 동안 보강했다”고 설명했다.포항=황성호 hsh0330@donga.com·구특교 / 임우선 기자}

    •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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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진보강한 학교는 진앙 바로 옆에서도 큰 피해 없었다

    “저 벽돌이 우리 학교를 지켜줬어요.” 2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남산초교에서 만난 황영애 교감(53·여)이 건물 외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외벽을 장식한 붉은 벽돌의 색이 대부분 짙었지만 황 교감이 가리킨 부분만 밝았다. 바로 내진보강이 이뤄진 곳이다. 올 1월부터 3개월간 내부에 철근을 보강하고 시멘트를 두껍게 하는 ‘내진벽체증설’ 기법의 보강 공사가 실시됐다. 1998년 설립된 흥해남산초교에는 학생 301명이 다닌다.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진앙에서 약 1.6km 떨어져 있다. 그러나 내벽 일부에 금이 가는 정도의 피해가 전부였다. 외벽 피해는 거의 없었다. 겉모습만 보면 진앙과 이렇게 가깝다는 걸 믿기 어렵다. 8개월 전 이뤄진 내진보강이 지진을 막아낸 것이다. 황 교감은 “새 벽돌은 금 간 곳이 하나도 없다. 내진보강 공사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 내진보강만으로 피해 줄였다 흥해남산초교에서 약 1km 떨어진 흥해초교. 이번 지진 피해로 흥해초교 본관의 기둥은 아랫부분이 심하게 훼손돼 구부러진 철근이 튀어나와 있었다. 반면 서관은 내벽에 일부 금이 가는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 같은 학교이지만 본관(1968년 건축)은 1988년 도입된 내진설계 의무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내진보강도 이뤄지지 않았다. 서관은 2012년 내진보강이 이뤄졌다. 학생 대부분은 본관에서 공부한다. 결국 흥해초교 학생 330명은 다음 주 흥해남산초교로 옮겨 수업을 받는다. 지난해 경주 지진 때 피해를 입어 부랴부랴 내진보강을 한 덕분에 이번에 피해를 줄인 학교도 있다. 양학중은 9·12 경주 지진 당시 학교 건물 외벽이 무너졌다. 이후 건물 외벽 곳곳에 지진 충격을 덜어 줄 ‘앵커’를 박았다. 겉에서 보면 마치 벽에 못을 박은 것 같다. 앵커는 건물 내부와 벽돌 같은 부착재를 강하게 이어주는 효과를 낸다. 또 진동을 흡수하는 장치도 설치했다. 이 덕분에 이번 지진 때 일부 경미한 균열만 발생했다. 당초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이었던 포항고와 포항여고, 포항여자전자고 중 본관 건물에 내진보강이 된 학교는 포항여자전자고뿐이다. 이번 지진으로 포항고와 포항여고는 고사장 지정이 취소됐다. 포항여자전자고에선 그대로 시험이 치러진다. 박용웅 포항여자전자고 행정실장(58)은 “전문가 진단 결과 건물에 구조적인 문제를 일으킬 만한 피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 내진보강 4년 앞당긴다 올 1월 시작된 흥해남산초교 내진보강은 3월까지 이어졌다. 새 학기 시작 후에도 공사가 진행되자 일부 학부모는 걱정하기도 했다. 학교 측은 내진보강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학부모들은 이번 포항 지진을 겪은 후 모두 안도했다. 학부모 금호성 씨(43)는 “당시 학교 측의 상세한 설명에 학부모들이 모두 납득했다. 지금은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포항지역 학교의 1차 점검 결과 내진보강이나 건립 당시 내진설계가 반영된 학교는 대부분 정밀 안전점검이 필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학교에서 붕괴를 우려할 만한 구조적인 피해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현재 포항지역 328개교 중 115개교 건물에 내진보강 혹은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학교 내진보강 완료 시기를 예정보다 4년 앞당기겠다는 내용의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을 위한 시설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매년 516억 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학교가 내진 성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포항=황성호 hsh0330@donga.com·구특교 / 김하경 기자}

    •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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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은지 10년이내 원룸 6곳 ‘철거 불가피’… 모두 필로티 구조

    경북도와 포항시가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진단 내린 건물은 7곳. 이재민이 가장 많은 대성아파트도 포함돼 있다. 대성아파트는 1987년에 지어진 5층짜리 아파트다. 내진설계 의무적용(1988년) 직전이다. 철거 대상으로 분류된 원룸 건물 중에는 준공된 지 2년밖에 안 된 새 건물도 있었다. 경북도 관계자는 20일 “신축 건물이 철거 대상에 포함된 이유는 설계 및 구조 문제이기보다 부실공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철거 대상 원룸은 모두 필로티 구조 원룸 건물은 포항시 북구 장성동에 4곳, 덕수동과 양덕동에 각각 1곳이다. 모두 벽체를 없애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필로티 구조였다. 건립 연도는 2007년 2곳을 비롯해 2011년 1곳, 2012년 1곳, 2014년 1곳, 2015년 1곳이다. 현재 총 77가구가 거주 중이다. 20일 해당 원룸 건물을 모두 확인한 결과 하중을 받는 기둥이 크게 부서져 뼈대만 남거나 천장 일부가 내려앉은 상태였다. 5층 건물의 기둥 11개 가운데 5개가 부서진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6층 건물의 기둥 22개 가운데 2개만 파손된 현장도 있었다. 파손된 기둥의 수는 적었지만 정밀 점검에서 내부 손상에 따른 붕괴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나 철거 대상으로 분류됐다. 전문가들은 부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장성동의 한 원룸은 2011년 지어진 4층 규모의 건물이다. 지진 때 건물을 받치는 기둥 8개 가운데 3개가 주저앉았다. 기둥 내부의 철근은 크게 휘어져 한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현재 두께 30cm가량인 임시 철제 지지대 20여 개가 아슬아슬하게 건물 붕괴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원룸 주인은 “설계에는 철근 간격이 15cm인데 시공은 30cm 간격으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지대가 없었다면 여진 때문에 건물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동의 또 다른 원룸 사정도 비슷하다. 기둥 11개 가운데 3개에서 어른 엄지손가락이 들락날락할 크기의 균열이 났다. 나머지 기둥도 길이 1m 이상의 금이 보였다. 덕수동의 3층 원룸도 기둥 1개가 심하게 부서지고 160cm가량 균열이 난 상태다. 유영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도시연구소장은 “지난해 경주 지진을 겪고도 안전의식은 제로에 가깝다. 필로티 구조의 주택은 설계 단계부터 구조안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보금자리 떠나는 주민들 20일 규모 3.0이 넘는 강한 여진이 잇따르자 대피소에 머물던 흥해읍 대성아파트 주민들은 오전부터 집으로 가 남은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챙겨 나왔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간밤의 강한 여진 탓에 사라진 것이다. 이모 씨(61)는 “잠잠하다 했는데 또 여진이 왔다.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성아파트는 전체 6개동 260가구 중 3개동(170가구)이 큰 피해를 입었다. 현실적으로 일부만 재건축이 어려운 만큼 전면 철거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건물 철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가 정부에 철거를 건의해도 합동점검단의 정밀 조사가 끝나야 한다. 최소 몇 주일에서 최대 몇 개월이 걸릴 수 있다. 재건축까지는 최소 2, 3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 관계자는 “아직 건의 단계지만 사실상 철거를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입주민 동의와 시공사 선정, 주변 건물과의 형평성 논란 등 예상 문제점을 확인 중이다”라고 말했다.포항=장영훈 jang@donga.com·황성호·구특교 기자}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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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미인대회 입상’ 스펙 채우려다… 성추행에 운다

    취업준비생 A 씨(23)는 얼마 전 한 미인대회에 참가했다. 한국 전통의 멋에 어울리는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였다. 참가비는 30만 원. 처음 열린 대회라 생소했지만 입상하면 취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 본선이 열리기 전 주최 측이 마련한 참가자 회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주최 측 임원 B 씨는 “회식도 사회생활이다” “술도 잘 따를 줄 알아야 한다” 등의 말을 반복했다. 회식이 끝난 뒤 B 씨는 A 씨 등 참가자 일부에게 2차 술자리를 제안했다. 거절하면 대회 결과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A 씨는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참석했다. 자리를 옮긴 뒤 B 씨는 A 씨에게 “왜 춤을 안 추냐”며 강제로 무대로 끌고 나갔다. 다른 임원은 A 씨 바로 뒤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참가자의 어깨와 허리 등에 손을 대고 춤을 췄다. 놀란 A 씨는 “화장실에 간다”고 말한 뒤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겨우 대회를 마쳤다. 최근 취업을 앞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인대회가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이름을 들어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회들이다. 주제도 비슷해 한복 관련 미인대회는 올해 전국적으로 10개 넘게 열렸다. 소규모 미인대회라도 경쟁률은 3∼5 대 1을 넘는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C 씨는 “주변을 보면 미인대회 입상자가 취업이 잘되는 경우가 많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시들해졌던 전문학원의 인기도 다시 오르고 있다. 일대일 과외나 화상수업까지 열린다. 수업은 회당 10만∼20만 원 선. 미인대회 출신 강사에게 드레스나 수영복을 입고 걷는 모델워킹이나 인터뷰, 장기자랑 요령 등을 배울 수 있다. 각 대회의 특성을 분석하고 참가자의 식단과 몸매 관리도 책임진다. 한 미인대회 전문학원 관계자는 “승무원과 아나운서 준비생뿐 아니라 대기업 취업준비생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회를 둘러싼 공정성이나 과장 홍보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한 번 열린 뒤 1년 만에 없어지는 대회도 있다. 대회 과정에서 성희롱 등 갑질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스펙 하나가 아쉬운 취업준비생들은 제대로 항의조차 못 한다. 20대 여성 D 씨는 참가비 수십만 원을 내고 한 미인대회에 지원했다. 다행히 입상권에 들어 상금도 받게 됐다. 그러나 주최 측은 뒤늦게 대회 당일 “상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신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E 씨도 한 미인대회에 참가했다가 주최 측 관계자가 마련한 회식에 참석했다. 이 관계자는 “나는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여자를 주로 사귄다. 너희도 나이 많은 남자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대부분 참가자에게 “대회 기간 발생한 근거 없는 루머 등을 폭로해 업무에 지장을 줄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한다. 인터넷에 부정적 내용이 담긴 후기도 올리지 못하게 한다. 대회에 참가했던 20대 여성 F 씨는 “주최 측 인사가 방송계나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며 취업까지 도와주겠다고 해서 내가 겪은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탈락한 참가자들의 과민 반응이라는 의견이다. 미인대회 주최 측 임원 B 씨는 “대회에서 떨어진 참가자들이 안 좋은 감정으로 문제 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술자리에서 신체가 닿을 순 있지만 일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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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고3 “학교 무너질까 불안해 신경안정주사 맞아”

    “학교가 무너질까 불안해 신경안정주사까지 맞았어요.” 20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대동고 정문을 지나던 3학년 조모 군(18)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핏줄이 터진 듯 두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이날은 지진 발생으로 휴업했던 포항 지역 초중고교의 첫 수업 날이다. 지진으로 집까지 곳곳에 금이 가면서 조 군은 그동안 포항 근처에 살고 있는 친척집을 전전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야 하는 수험생이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책을 펼쳐도 머릿속에는 지진 당시의 충격이 계속 떠올랐다. 5일 만에 다시 찾은 학교. 건물 주변에 떨어졌던 벽돌은 모두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건물 곳곳의 균열은 그대로였다. 이를 보던 조 군은 “어떡하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전 9시. 등교 시간이 됐지만 교실의 몇몇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다른 수험생들의 불안감도 조 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감해진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 교실 위치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실이 1층이 아닐 경우 지진이 났을 때 대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포항 지역 한 수험생 학부모는 “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머무는 교실은 적어도 높은 층을 피하는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긴장이 떠나질 않으면서 건강까지 나빠진 수험생도 있었다. 포항중앙여고 3학년 정모 양(18)은 지진 발생 후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에 머물렀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최대 1000명이 머물다 보니 결국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포항의 한 호텔에서 19일부터 수능 당일까지 방을 무료로 제공해 거처를 옮겼다. 학교에 나온 정 양은 “공부를 더 하기보다 컨디션 조절이라도 잘했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한편으론 고생한 가족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 학생들도 많았다. 유성여고 박모 양(18)은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부모님이 나만 공부하라고 외갓집으로 보냈다.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한 부모님을 위해 수능 당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여고 3학년 이모 양(18)도 “수능 당일 여진이 없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포항=구특교 kootg@donga.com·김단비 기자}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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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모 6.5이상 지진땐 강남도 액상화 가능성”

    20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의 한 논. 포항 지진의 진앙 인근인 이곳에서 지반이 물렁해지는 ‘액상화’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가 현장조사에 나섰다. 중앙지진재해원인조사단 관계자들은 20m 깊이로 땅을 뚫어 액상화가 일부 지역의 현상인지, 아니면 지역 전체에 퍼져 있는지를 확인했다. 포항 일대에서 액상화 현상이 관측되면서 ‘우리 동네는 안전하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른 지역도 안심할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경대 도시환경시스템공학과 최재순 교수팀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3구와 영등포구 양천구 등이 다른 구에 비해 액상화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최 교수팀은 장기간 지진과 액상화 우려 지역을 연구해 왔다. 지난해 9월에는 경남 양산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액상화 위험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지반공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서울시 액상화 재해도 연구’에서도 강남구 영등포구 등이 ‘액상화 가능성 지수(LPI)’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LPI는 지진의 힘과 지진을 버티는 땅의 힘, 지하수가 뭉쳐지면서 흙을 뚫으려는 힘 등을 계산한 지수로, 값이 높을수록 지진 시 건물 붕괴 등 위험이 커진다. 지반이 약한 곳은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면 흙과 모래 사이로 물이 들어가면서 암석이 액상으로 변한다. 송파구 잠실 등은 개발 과정에서 하천을 막아 매립한 곳이 많다. 다만 최 교수는 “잠실 등은 액상화 가능성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을 뿐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LPI가 높은 지역은 낙동강 일대의 경남 김해와 울산, 부산을 비롯해 매립지가 많은 충남 서산, 인천 송도 등이다. 액상화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시민 불안감이 커 집값 하락 등 재산상 손해를 볼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행정안전부는 전국 액상화 관련 정보를 내부용으로만 다룰 뿐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김윤종 zozo@donga.com / 포항=구특교 기자}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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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 소리만 나도 심장 오그라들어” 불안감에 식사도 못해

    ‘쿵!’ 16일 오후 5시경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누군가 전원이 켜진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스피커를 통해 묵직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체육관 내부는 정적에 휩싸였다. 수백 명의 주민이 놀라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떨었다. 1시간 후 누군가의 발에 마이크 줄이 걸렸다. ‘지지직…’ 하는 소리가 나자 여기저기서 ‘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또 지진 났냐”며 웅성거렸다. 기분 나쁜 마이크 소리가 자주 들리자 “와 이라노!” “뭐하는 거냐!” “당장 꺼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벌떡 일어서 화를 내며 무대 쪽으로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겁에 질린 얼굴의 한 여성은 가족의 손을 잡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일부는 체육관 밖으로 뛰쳐나갔고 갓난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김홍제 씨(58)는 “가뜩이나 모두 예민한데 저런 마이크 같은 건 관리 좀 잘하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포항 시민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난생처음 겪은 충격에 여진까지 이어지며 몸과 마음 모두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집단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우려된다. 대피소에는 가슴 및 머리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신모 씨(64·여)는 여진이 닥쳐 ‘쿵’ 소리가 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긴장 탓에 신 씨의 얼굴은 늘 찡그린 상태다. 신 씨는 “둘째 날 여진을 겪으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체육관으로 대피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온몸이 떨린다”고 말했다. 체육관 한쪽의 의료봉사단을 찾은 한 여성은 불안 증세에 혈압이 200 가까이 치솟아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혈압은 내렸지만 불안감 탓에 식사를 계속 거르고 있다. 김연수 간호사는 “하루 수백 명이 찾는데 대부분 불안 증세를 호소하고 40%가량은 두통약 처방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두통의 이유는 지진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감 때문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대부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열악한 대피소 사정도 주민들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흥해실내체육관에 머무는 이재민은 17일 1000명가량으로 늘었다. 15일 500명, 16일 700명 등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피소는 더 이상 이재민 수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실내 공기도 답답하고, 씻거나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을 가는 기본적인 생활이 매우 불편한 상태다. 이날 설치된 트라우마센터에서는 노인과 어린이 수십 명이 상담을 받았다. 불안과 공포를 견디지 못해 급기야 포항을 떠나는 시민도 나오고 있다. 북구 두호동 아파트 19층에 사는 원순옥 씨(68·여)는 지진 첫날 울산의 아들집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청심환을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원 씨는 “다음 주까지 강한 여진이 이어진다는 소식에 당분간 포항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고층에서 느낀 지진이 너무 무서워 이참에 고향을 아예 떠날까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북구 용흥동의 손모 씨(22·여)도 15일 오후 늦게 부모님을 모시고 대구의 언니 집으로 대피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만 여진이 잠잠해질 때까지 포항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 두통과 소화불량 증세를 호소하는 손 씨는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너무 무섭다. 지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포항을 완전히 벗어나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포항=장영훈 jang@donga.com·구특교 기자}

    • 20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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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일 같지 않아…” 포항 달려온 경주시민들

    430일 전 지진 피해를 겪은 경북 경주 시민들이 포항에서 이재민들을 위해 급식봉사를 했다.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소속 자원봉사자 20여 명은 16, 17일 포항시 대피소인 항도초등학교 체육관을 찾아 150여 명에게 매 끼니를 제공했다. 대부분 지난해 9월 경주 지진을 겪은 봉사자들은 지진 발생 다음 날인 16일 오전 8시 포항을 찾았다. 그만큼 하루빨리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포항과 경주는 경계를 접한 이웃 도시다. 봉사자 조래숙 씨(56·여)는 경주 지진 당시를 떠올리면 심장이 아직도 벌렁거린다. 하지만 포항 시민들이 찾아와 건넨 위로를 잊지 못해 발 벗고 나섰다. 조 씨는 “지난해 여기 분들의 도움으로 경주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추운 날씨를 고려해 쇠고깃국과 황탯국처럼 따뜻한 국을 주 메뉴로 삼았다. 재료 선정부터 요리, 배식, 그리고 설거지까지 다 했다. 봉사자 김종순 씨(63·여)는 아침 준비를 위해 한숨도 못 자고 17일 오전 3시 경주에서 출발했다. 김 씨는 “아침에 대피소에 들어가니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이재민들이 따뜻한 국으로 몸을 녹였으면 한다”고 했다.포항=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 20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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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림공사로 외벽벽돌 와르르… 내진설계 의무화 ‘구멍 숭숭’

    16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의 한 빌라 입구. 3층짜리 건물 아래에 붉은 벽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파트 외벽을 장식했던 벽돌이다. 벽돌이 있던 자리는 시멘트 골격만 앙상하게 남았다. 한 주민은 “외벽에 붙어 있던 벽돌이 순식간에 떨어져 내렸다. 마침 지나는 사람이나 차량이 없어 인명피해는 겨우 면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식용’ 마감재에 속수무책 당했다 피해는 이곳을 비롯해 북구 장성동, 환여동, 양덕동, 흥해읍 일대에 집중됐다. 그리고 피해 유형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낡은 벽돌과 대리석 외장재, 대형 강화유리 등의 피해가 많았다. 장성동의 한 카페는 1층 전면이 ‘뻥’ 뚫렸다. 지진 충격에 두께 1cm가 넘는 강화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카페 입구에는 임시 휴업 안내문이 붙었다. 흥해종합복지문화센터 꼭대기 부분에 설치된 대리석 외장재도 20m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현장에 있던 승용차가 처참하게 부서졌다. 차량 소유주 서금주 씨(67·여)는 마침 운전석을 비워 화를 면했다. 서 씨는 “멀쩡한 대리석 외벽이 이렇게 힘없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냐. 다들 부실공사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건물의 척추에 해당하는 기둥이나 전체의 하중을 견디는 보를 제외한 다른 비구조적 요소는 건축 때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준호 계명대 토목공학전공 교수는 “미관상 필요로 도입하는 비구조적 요소들은 내진 설계는커녕 보강 의무 규정도 없다. 지진 대비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증폭시키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벽 대신 기둥으로 건물을 띄우는 방식인 ‘필로티 구조’ 건물 피해도 잇따랐다. 장성동 환여동 양덕동 등지의 필로티 구조 건물 10여 채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일부 기둥이 처참하게 부서져 뼈대만 남았거나 천장 일부가 폭삭 내려앉아 임시 철골 구조로 받쳐 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다른 필로티 구조 건물에서는 피해가 나타나지 않았다. 포항 지진 현장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건물 구조보다 부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 내진설계 강화해도 구멍 ‘숭숭’ 내진설계 의무화 건축물 기준은 현재 ‘2층 이상 또는 규모 500m²(이하 연면적 기준)’에서 올 연말까지 ‘2층 이상 또는 규모 200m²’로 강화된다. 신축 주택은 규모와 관계없이 내진설계가 반영돼야 한다. 1988년(‘6층 이상 또는 10만 m² 이상’) 이후 다섯 차례 법 개정이 이뤄진 결과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질적인 내진설계·시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대상 범위만 확대됐을 뿐 전문설계·시공사를 거치지 않은 ‘날림 작업’이 여전한 탓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주거용 661m² 이하, 비주거용 495m² 이하 규모 건물은 건축주가 ‘직영 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건축주가 건설사(건설업 등록업자)를 끼지 않고 공사에 필요한 자재·장비를 직접 동원해 소형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661m²는 아파트 건설 최소면적인 26m² 주택 25채 정도를 지을 수 있는 넓이다. 이에 따라 무자격 개인사업자들이 저층 빌라 등을 내진기능 없이 부실 시공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내진설계 대상인 서울 연립·다세대 주택 4만5861동 중 내진 성능을 갖춘 곳은 11.6%(5324동)에 그쳤다.포항=장영훈 jang@donga.com·구특교 / 천호성 기자}

    •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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