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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4일(현지 시간) “중국을 제재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미중-미러 관계 재설정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중국은 ‘연러제중’을 통해 중국을 포위·압박하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20일 트럼프 취임 이후 미중이 강대강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14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1979년 이후 미중 관계의 원칙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포함해 모든 것은 ‘협상 중(under negotiation)”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외교 노선의 핵심인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중국과 대만을 하나로 보는 ‘하나의 중국’ 원칙도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의 환율과 무역 정책에서 내가 생각하는 진전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트럼프가 ‘중국이 환율 조작을 끝내지 않으면 하나의 중국 정책도 없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중국과의 환율·무역 전쟁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렛대(레버리지), 즉 협상 칩으로 쓰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끝낸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13일(현지 시간) 경유지인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도널드 당선인 측과의 접촉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중 갈등의 핵심인 통상 문제에 대해 “취임 첫날부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을 것이고 먼저 대화를 하겠다”면서도 중국이 여전히 환율 조작 중이라고 비판하며 중국과의 통상 전쟁을 예고했다. WSJ는 “중국이 환율 정책을 수정할 최소한의 시간은 주겠지만 변화가 없다면 환율조작국 지정 등 고강도 보복 조치를 감행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러시아에 대해선 “당분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겠다”면서도, 필요하면 언제든 제재를 해제해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실제로 우리를 돕게 된다면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려는 누군가를 왜 제재해야만 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러시아가 (우리와)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는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와의 전쟁이나 중국 굴기(굴起)를 견제하는 데 러시아가 유용하다면 얼마든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손잡을 수 있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 외교부 루캉(陸慷)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대만은 분리될 수 없는 중국의 일부분일 뿐”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은 미중관계의 정치적 기초이고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미국은 대만 문제의 민감성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중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과 양국의 중요한 영역의 협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인훙(時殷弘) 런민(人民)대 교수는 “대만, 남중국해와 같은 중국 핵심 이익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도를 넘은 흥정은 중국의 강력한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러시아와 연합하고 중국을 제재하겠다는 ‘연아제화’(聯俄制華·‘아’는 러시아를 가리킴)는 트럼프 당선인의 일방적인 소망일 뿐 이뤄질 수 없다”며 “그런 생각을 포기하라”고 비난했다. 중국은 자국 영해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메가톤급 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적재한 최신형 094A형 전략 핵잠수함을 실전 배치했다고 미국 과학 전문매체 포퓰러 사이언스가 15일 전했다. 러시아는 미러 관계 개선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다. 당면한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대화로 풀어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전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15일 영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단 부인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윤완준·황인찬 기자}
앞으로 해외 취업 경력이 없는 석사학위 이상 대학 졸업자들이 중국에서 바로 취업하거나 창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취업 경력 증명서가 없는 외국인 학생들이 중국에서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걸 금지해 온 현행 외국인 취업 제한 정책을 대폭 완화하는 것으로 한국 청년들의 중국 취업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중국 인터넷매체 펑파이(澎湃)에 따르면 최근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와 교육부, 외교부는 공동으로 발표한 통지문에서 외국인 취업 제한 완화 내용이 담긴 새 규정을 공개했다. 펑파이는 “중국의 현행 정책이 혁신적인 창업 잠재력을 가진 외국인 인재들의 유입을 가로막았다”며 “인재의 국제화 추세에 따라 외국인 졸업자들의 중국 취업과 창업 제한을 풀기로 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외국인의 중국 내 취업 문턱을 낮춰 해외 인재들을 중국 내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베이징 중국세계화센터 관계자는 “해외 우수 인력을 중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많은 중국 기업이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외국인 졸업생들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해외로 나간 중국인 유학생은 126만 명인 데 반해 중국으로 온 외국인 유학생 수는 39만8000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펑파이에 따르면 취업 경력을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에 취업하거나 창업하기 위한 졸업자의 자격 요건은 까다롭다. 중국 내 대학이나 외국 대학의 석사 이상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 가운데서도 졸업 1년 이내 외국인만 대상이다. 외국 대학의 경우 ‘지명도가 높은 외국 대학’이라는 모호한 규정도 포함됐다. 또 학업 성적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거나 B+ 또는 B(해당 대학의 등급제에 따라 결정) 이상이 돼야 한다. 중국 내에서 종사하려는 직업과 대학 전공이 일치해야 중국 내 취업이 허용된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택시투어’를 이용해 대만을 여행하던 한국 여학생들이 수면제가 든 음료를 마시고 대만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최근 대만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 데다 대만은 비교적 안전한 여행지로 인식되던 터라 충격을 주고 있다. 대만 주재 한국대표부는 피해자들의 신고 전화를 받고 “신고(여부)는 알아서 하라”며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대만 쯔유(自由)시보에 따르면 제리택시투어 소속 택시기사 잔(詹·41)모 씨는 12일 오후 6시 20분경 대만 근교 유명 관광지 진과스(金瓜石)의 한 주차장에서 손님인 한국인 여학생 3명에게 수면제를 탄 요구르트를 줬다. 목적지인 타이베이 북부 스린(士林) 야시장으로 가던 길에 뒷좌석에 탄 2명은 요구르트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잔 씨는 요구르트를 마시지 않은 1명이 야시장을 구경하는 사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차를 몰고 가 잠든 여학생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교민의 도움을 통해 현지 경찰과 대만 주재 한국대표부에 신고했다. 현지 경찰은 신혼 3개월째인 잔 씨를 14일 체포해 다음 날 구속했다. 일부 교민 사이트에는 피해자들이 14일 오전 3시 40분에 한국대표부에 전화를 하자 “자는데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란 답을 들었다는 전언이 실렸지만 외교부는 부인했다. 하지만 대표부 당직자는 “신고(여부)는 알아서 하시고 신고를 결정하면 알려 달라”고 말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미국 워싱턴이 11일(현지 시간) 태평양 건너에 있는 북한과 중국을 향해 하루 종일 정치 외교적 경고 사격을 가했다. 오랜만에 신구(新舊) 권력이 합심했다.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지휘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후보자는 강도 높은 대북, 대중 정책을 예고하고 나섰다. 20일 백악관을 떠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마지막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북한을 ‘적(adversary)’으로 규정한 틸러슨 후보자는 “우리가 최근 그렇게(북한이 합의를 지키도록) 하는 데 실패하면서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전 세계 악당들이 약속을 깨도록 고무시킨 결과를 낳았다”라고 지적했다.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차원이 다른 대북 강공 드라이브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현실론적 외교 구상과 무관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의 전면적 외교 마찰을 우려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위한 모든 법적 체제를 갖추고도 정작 시행하지 못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틸러슨은 “중국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라며 역시 강력한 대중 정책을 시사했다. 그는 “중국은 남중국해, 경제 통상, 무역, 지식재산권, 해킹 등 사이버 이슈 등 전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멋대로 행동할 수 있음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의 영토주권과 정당한 권익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루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 주권 문제에서 (특정 국가를) 편드는 발언을 중단해야 한다”며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이 자국 영토에서 주권 범위에 있는 활동을 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거론할 바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김씨 권력의 핵심인 김여정을 제재 대상에 포함한 것은 압박과 제재라는 대북 정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신구 정권의 공감하에 이뤄진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의 한 핵심 관계자는 “김여정은 당초 제재 대상이 아니었으나 발표 직전 최상층부의 결정으로 포함됐다. 트럼프 인수위 측과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국무부는 이날 제재의 근거가 된 북한인권보고서에서 “김여정은 1989년 9월생으로 27세”라고 밝힌 뒤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 검증을 통해 주민을 선동해 왔다”라고 제재 이유를 밝혔다. 민병철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대해선 “무차별적 숙청으로 ‘저승사자(angel of death)’로 불린다”라고 명시했다. 이번 조치로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말한 대로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이야기할’ 가능성은 더 줄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이번 조치를 핑계로 트럼프 임기 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단행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 조치를 포함한 추가 제재와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등 동시다발적 제재 조치를 들고 나오며 북-미 관계가 강 대 강의 대결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김수연·윤완준 기자}

2012년 집권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인적 청산과 숙청 규모가 지난해 사상 최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 주석은 올해도 벽두부터 부패 처벌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시진핑 1인 권력’ 공고화를 위한 권력투쟁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중국권 매체들은 시 주석 집권 2기가 출범하는 올해 11월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위한 포석으로 분석했다.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앙기율위)는 12일 “간쑤(甘肅) 성 위하이옌(虞海燕) 부성장을 엄중한 당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처음으로 낙마한 ‘호랑이’(장차관급 부패 관료)다. 중국중앙(CC)TV는 올해 초에만 중앙과 지방 고위 간부 13명이 부패 혐의로 중앙기율위의 조사를 받거나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수개월 전부터 기율위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민정부(행정자치부) 전직 부장(장관)·부부장(차관) 리리궈(李立國), 더우위페이(竇玉沛)가 대표적이다. 장차관이 한꺼번에 조사를 받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CCTV는 시 주석 집권 이후 현재까지 기율위의 조사를 받은 중앙 간부가 240명에 이르며 이 중 223명이 처벌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기율위 처벌을 받은 사람은 199만9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산당원이 부패 혐의로 처벌받은 비율은 2012년 0.18%에서 2016년 0.43%로 치솟았다. 당원 200명 가운데 1명 가까이 처벌을 받은 셈이다. 12일 기율위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장차관급인 성·부장급 간부 76명을 포함해 41만3776명이 기율위 처벌을 받았다. 공산당은 반부패 전쟁의 성과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2015년 이전만 해도 “여전히 (반부패 문제가) 심각하고 복잡하다”고 했지만 2015년에는 “부패와 반부패의 교착 상태”라고 했고 지난해 말에는 “반부패 투쟁의 압도적 태세가 이미 형성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는 당내 권력투쟁에서 우위를 점해 가는 시 주석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CCTV는 “반부패 전쟁이 정치체제 개혁”이라고 강조해 반부패 전쟁이 부패 처벌뿐만 아니라 권력 개편을 위한 전면적 인적 청산과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내비쳤다. 중국권 매체들은 시 주석의 반부패 전쟁이 공산당 핵심 파벌이자 경쟁 세력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사단의 숙청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내부에서 거론되는 유력한 다음 숙청 타깃은 후 전 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인 것으로 알려졌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저지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직후 예상됐던 정치, 경제, 군사적 대응방안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형국이다. 송영길 박정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베이징 방문 외교(4∼6일), J-11 등 최첨단 전투기 12대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입(9일)에 이어 알려진 한국산 화장품 19개 수입 불허 조치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세 분야별 대응조치를 상징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해 중국 외교의 성과 중 하나로 ‘사드 반대’를 들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영토주권 수호를 신년사에 들고 나온 뒤 쏟아지는 일련의 조치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사드 배치의 주체인 미국, 부산 소녀상 설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미일 3각 협조체제를 동시에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20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으로 한국에서도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한미 양국의 정권 교체기를 맞아 사드 배치를 무효화하려는 계산된 강공이라고 분석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대선 일정이 정해져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보복 조치의 강도가 지금보다 훨씬 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한국 내에서 사드가 논란이 되고 시끄러워지는 걸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3일 공식 발표된 지난해 11월 수입분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의 한국 화장품 무더기 통과 불허 조치는 경제 무역에 대한 조치 범위가 확대되고 엄격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류 연예인 출연 금지 및 한국 드라마 방영 중지 등 ‘한한령(限韓令)’에 이어 한류(韓流)를 대표하는 품목인 화장품에 대한 손보기에 나선 것은 타격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화장품 통관을 엄격히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영 언론을 동원해 한국에 간 관광객에게도 구입을 억제하도록 선동하고 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7일 ‘한국이 사드 때문에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시론에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서기로 선택한다면 한국 화장품 때문에 한국으로 간 중국인 관광객들이 국익을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9일 첨단 전투기 12대를 KADIZ에 들여보낸 것은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대응이라는 의미가 크다. 지난해 11월 중국 군함 100여 척이 서해에서 실탄훈련을 벌이고, 12월에는 첫 항모인 랴오닝(遼寧) 함이 보하이(渤海) 만에서 실탄훈련을 벌여 사드 배치에 대해 무력시위를 벌였으나 모두 간접적인 조치였다.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보란 듯이 관통해 지나가고 다시 같은 하늘 길을 되밟아 왔다. 한국 내 정치적 혼란과 한미일 3각 협조 체제의 균열을 틈탄 중국의 사드 반대 책동은 향후 한반도 주변 정치 일정에 따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왕이 부장은 송 의원 등 방중 의원들에게 “사드 배치를 가속화하지 말라”고 말했다. 야당이 차기 정권을 차지하면 사드 정책이 달라질 수 있음을 기대한 것이자 새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더 강한 조치들을 내놓겠다는 사전 경고인 셈이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윤완준 기자}
중국 정부가 한국산 화장품에 대해 무더기로 수입 불허 조치를 취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전날 중국 군용기 12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데 이어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잇단 공세는 부산 소녀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미일 3각 협조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10일 주중 한국대사관과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에 따르면 질검총국이 3일 발표한 ‘2016년 11월 불합격 식품 및 화장품 명단’의 불허 제품 28개 가운데 19개가 이아소(13개)와 애경(3개) 등 한국산 화장품이었다. 크림, 에센스, 클렌징, 팩, 치약, 목욕 세정제 등 해당 한국산 화장품 1만1272kg은 모두 반품 처리됐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식품과 화장품 부적합 비율이 17.0%로 10월(4.7%)에 비해 올랐다”며 “한국 화장품에 대한 제재로 볼 수 있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아소 측은 “9년 전부터 53개 화장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으나 부적합 이력은 없었다”고 말했다.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한국산 제품 수출이 급증하면서 중소 업체들이 규정을 맞추지 못해 통관이 불허된 경우도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발표(2016년 7월 8일) 이후 검사가 강화됐다는 것이 업계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병광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중국의 보복 조치는 한국 국내의 정치적 혼란을 최대한 이용해 차기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포기하도록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중국 내 한류 제한에 이어 올해 들어 사드 반대 야당 의원 초청 외교 등 정치적 조치에다 경제 및 군사적 조치까지 본격화되면서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가장 큰 도전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수교 25주년을 맞았지만 관련 기념행사는 실무적인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고 있다. 한편 전날 KADIZ를 침범한 중국 군용기들 가운데 중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J(젠·殲)-11도 4대가 포함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중국의 주력 전투기들이 이어도 상공 KADIZ로 들어와 장시간 비행한 것은 이례적 상황으로 군은 보고 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J-11 전투기들은 이어도 남쪽 상공에서 KADIZ를 넘나들며 H(훙·轟)-6 전략폭격기 6대와 Y(윈·運)-8 조기경보기 2대를 호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J-11 전투기는 중국이 2000∼2011년 러시아의 SU-27 전투기를 면허 생산한 기종으로 총 120여 대가 실전 배치됐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윤완준 기자}

한국 외교가 새해 벽두부터 일본 중국 미국 등 주변 강대국의 ‘힘의 외교’에 압도당하며 벼랑 끝에 몰렸다. 최근 힘의 외교는 각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기인하고 있으며 한국의 조기 대선을 앞두고 차기 권력의 외교 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에서 과거 외교 파고보다 더 위협적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정지에 따른 국정 공백 하에서 당국자들의 상황 인식과 대처 방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주한 대사의 소환 등 일본의 조치에 대한 맞대응은 자제한다는 쪽으로 기조를 모았다. 외교 당국자는 “한국이 취할 조치는 이미 취한 상태”라며 “맞대응으로 격화시키기보다 상황을 관리해 가며 절제된 모습으로 대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과 도쿄(東京)에서 일상적인 외교 소통은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9일 출국하는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가 ‘본국에 한국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만큼 조기 복귀 여부와 일본의 태도를 봐 가며 대처한다는 것이다. 부산 소녀상의 처리와 관련해서 외교부는 “외교 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 예양(禮讓·예의를 지킨 공손한 태도) 및 관행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며 “정부와 지자체·시민단체 등 당사자가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종래 원칙을 재확인했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장관급)은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8일 미국을 방문한 가운데 외교부는 이날 안총기 외교부 제2차관이 9일부터 3일간 미국에 머물며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및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 회의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재빠른 위안부 외교를 펴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를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시킬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대미 외교와 관련해 외교관들은 주한 미국 대사 후임자 인선이 늦어져 공석이 되더라도 한미 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외교 소식통은 “마크 리퍼트 대사를 포함해 정치적으로 임명된 특임공관장(political appointee)들은 새 행정부 출범과 함께 자리를 비워 주는 게 미국의 관행”이라며 “대사가 떠나도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미 국무부에서 대사관 차석(DCM·Deputy Chief of Mission)을 비중 있게 운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고 밝혔지만 한 관계자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인한) 거시동향 자체는 전체적으로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상황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반도를 흔드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정치적 속내는 간단치 않다. 아베 총리는 이날 NHK의 ‘일요토론’에 출연해 내년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선 도전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시사해 장기 집권 의지를 표명했다. 장기 집권과 평화헌법 개헌으로 가려는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외교 성과물’이 뒤집혀 보수층이 이탈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한국 내 반일 여론을 자극할 것임을 알고도 강행한 소녀상 보복 조치가 일시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사드 한국 배치에 대해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7일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 화장품 수입 중단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중국의 강공은 올해 지도부가 대거 바뀌는 정치 권력 변동기인 11월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이미 시작된 중국 핵심 권력 내부의 권력 암투와 관련이 있다. 역시 장기 집권을 노리는 시 주석이 대외 문제에서 약한 리더십을 보일 경우 자신 위주로 권력 지형을 변화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박 대통령 탄핵 파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한국과 관련해 추진하고 싶은 이슈들을 차기 대통령 취임 초부터 밀어붙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등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추진 카드 등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명확한 국가 목표와 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미국과 일본, 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조숭호 기자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영국의 저명한 미술 비평가이자 작가인 존 버거 씨(사진)가 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3일 보도했다. 향년 90세. 고인이 1972년 출간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미술 비평, 감상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미술 전공자들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고인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을 배경으로 한 소설 ‘G’로 1972년 영국의 부커상(현재 맨부커상)을 받았다. 이 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고인은 부커상 수상 당시 부커상 후원사가 카리브 해 지역의 노예 노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 뒤 상금 절반을 미국의 급진적 흑인 운동단체인 ‘블랙 팬서’에 기부해 화제가 됐다. 고인은 나머지 상금으로 유럽 이민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제7의 인간’을 출간했다. AP통신은 그를 20세기 말 비평, 소설, 시, 시나리오 등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상가로 평가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팔레스타인 등 중동 국가들의 편에서 중동 자유를 위해 헌신해 왔다는 평가를 받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 힐라리온 카푸치 전 예루살렘 대주교(사진)가 선종했다. 교황청과 그리스 정교회는 고인이 로마에서 선종했다고 2일(현지 시간) 밝혔으나 정확한 사망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향년 94세. 시리아 알레포 출신인 카푸치 전 대주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주교이던 1976년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을 위해 레바논에서 무기를 밀수한 혐의로 이스라엘 정부에 체포됐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12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교황청의 중재로 2년 만에 석방됐다. 86세였던 2009년에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지원할 구호품을 싣고 가자 지구로 가다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압송된 레바논 선박에 올라타기도 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고인을 “위대한 자유의 투사” “팔레스타인인 권리의 수호자” 등으로 칭하며 애도를 표했다고 BBC는 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주민배제 탈북시설! 밀실야합 결사반대!” 새 아파트 입주가 한창인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곳곳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통일부의 ‘남북통합문화센터’ 건립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마곡지구 입주자대표연합회 명의로 뿌려진 호소문에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북한이탈주민 편익시설 건립 결사반대 탄원을 추진하니 마곡 입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동참을 호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이 벌어져 대량 탈북 사태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남쪽에는 3만 명의 탈북자가 입국해 지역마다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탈북민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부는 ‘통일 대박’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는 북한 체제가 싫어서 탈북한 3만 명을 보듬어 안기도 버거운 듯하다. 탈북민 정착 시설은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난민 유입 반대였다. 오늘날 한반도의 난민은 탈북민이다. 우리는 지금 탈북민과 한 동네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일보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은 5, 6월 두 달간 대표적인 탈북민 밀집 지역인 서울 강서구 가양동, 노원구 중계동, 양천구 신정동, 인천 남동구 논현동 남북 출신 주민 404명을 대상으로 남북 주민 통합 실태를 조사했다. 지역별로 남북 출신 주민 50명씩(논현동은 52명씩) 설문 조사했다. 탈북민 밀집 지역에서 남북 출신 주민을 상대로 통합 현실을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조사 결과 남북 출신 주민 간 대화 경험이 있는 주민 가운데 북한 출신 주민(탈북민)의 69.1%, 남한 출신 주민의 62.7%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남측 주민이 탈북민을 ‘나와 같은 국민’으로 보는 데 훨씬 인색했다. 그동안 정부의 탈북민 정착 정책 초점이 경제적 지원에 맞춰졌지만 이제는 주민 통합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할 때임을 보여준다.▼ “빨갱이가 그렇지” “색안경 쓰고 쳐다봐”… 동네안 ‘38선’ ▼이달 중순 어느 날 오후 4시경 탈북민 1400여 명이 거주하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단지 어린이집 앞. 아이들을 데리러 온 30대 전후의 학부모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이다. 탈북민 집단 거주지인 만큼 이색적인 북한 억양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 가운데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린이집에 남한, 북한 출신 부모를 둔 애들이 모두 다니긴 하지만 등·하원할 때 어머니들은 끼리끼리 나뉘어요. 탈북 엄마들은 경계심이 있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요. 내가 북한 출신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피해버리거나 그냥 가버려요. 애들은 또래라 같이 노는데….”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년 4개월이 됐다는 신새롬 씨(30)는 탈북민 엄마들의 인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였다.“탈북민 동네엔 가지 마” 어린이집 풍경만 놓고 보면 이 동네에선 남한 주민과 탈북민이 여전히 다른 공간에 사는 것 같다. 과연 탈북민이 다른 사람을 경계하거나 자존심이 강해서일까.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년 반이 됐다는 한 30대 엄마의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저는 새터민에 대해 생각이 그렇게 좋지가 않아요. 저 앞의 일반 아파트 엄마들이 여기는 발도 붙이지 말라고 애들에게 말해요. 그래서 나도 여기 온 지 이제 1년 반 됐는데 다른 아파트 애기 엄마들과 친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유독 여기가 인식이 그래서…. 애들도 놀이터에서 놀 때 발음이 어눌하면 아예 배제하고 놀아요. 엄마들도 그런 애들에게 ‘새터민이야, 아니야’ 하고 확인해요.” 신 씨도 거들었다. “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편이 갈려 있어요. 노인정에서도 새터민 어르신들이 남한 어르신들과 어울리기 어려우니까 아예 따로 노인정을 만들기도 했어요.”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남한 주민과 탈북민 사이엔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졌다. “아침에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누가 아파트에서 쓰레기봉투를 던져 냄새가 너무 심했어요. 꼭 탈북민이 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유독 다른 아파트에 비해 몰상식한 사람이 많으니 의심이 가는 거죠.” 익명을 요구한 30대 주부의 말이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논현동 아파트에서 6년째 살고 있는 한국 입국 16년 차인 장성근 씨(35)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탈북민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 임대아파트엔 장애인, 치매 노인도 많이 사는데 그런 분들이 쓰레기 던지는 것도 제가 여러 번 봤어요. 남한 사람들도 쓰레기 불법 투기를 하는데 항상 탈북민만 손가락질을 받아요.” 슈퍼에서 일하는 50대 탈북 여성 최진옥(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릴 세금 안 내고 자기들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처럼 봐요. 우리도 세금 내면서 사는데 말이죠. 똑같은 상황이라도 우릴 대하는 게 달라요. 열심히 일하면 ‘쫓겨나지 않으려고 악을 쓴다’고 말하고, 무거운 걸 나르다 ‘아이고, 힘들어’ 하면 ‘이럴 거면 북한에 있지 여기 왜 왔느냐’고 말해요. 그럴 때면 정말 상처를 받습니다.” 최 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한국 사람을 깊이 사귀기가 무섭다고 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40대 탈북 여성 김영란(가명) 씨도 “본토(남한) 사람들이 못사는 것은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탈북민이 못살면 꼭 게으른 사람 보듯이 한다”며 거들었다. 이런 감정의 골은 비단 논현동만의 일은 아니었다. 이번 공동조사에서 탈북민 밀집 지역에 사는 데 대한 만족도가 낮은 이유로 남한 출신 주민이 가장 많이 꼽은 점 역시 남북 주민 간 생활 방식 차이로 인한 갈등(42.5%)이었다. 탈북민은 탈북민 밀집 지역에 산다는 주변의 부정적 인식(41.5%)을 가장 많이 꼽았다. “북한 여성들은 지금까지 꾸며보지 못했으니 여기 와선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러다 보니 밤에 동네 가까운 곳에 나갈 때에도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경우가 많죠. 같은 탈북민은 그냥 편하게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북한 여자들은 밤에도 치장하고 나간다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요.” 한 탈북민의 하소연이다.남한 주민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북 주민들이 어울리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비율은 북한 출신 주민(24%)이 남한 출신 주민(6.8%)보다 훨씬 높았다. 탈북민은 4명 가운데 1명꼴로 남한 주민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무시당한다고 느끼니 탈북민은 먼저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남한 출신 주민은 굳이 탈북민과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탈북민은 편견과 차별을 넘어 증오의 시선까지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한국 입국 13년 차인 마순희 씨(60대)는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의 일을 잊지 못한다. “집에서 TV 뉴스로 사건을 보고 단골 미용실에 갔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다가 입을 다 닫더군요. 내가 앉아서 머리 하는데 할머니들, 젊은 여성들이 들어와서 ‘연평도 봤냐. 빨갱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탈북자들이 그렇게 많이 오는데 그 속을 어떻게 알겠어’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일이 있은 뒤에 다시 그 미용실을 가려니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미용실을 바꿨어요.” 함북 청진에서 온 30대 탈북 여성 역시 당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회사에 나갔더니 나이 든 아줌마들이 ‘너희 북한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돼’ 하고 면전에서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남한 주민들이 탈북민을 ‘나와 같은 국민’으로 보는 데 훨씬 인색하고 불신한다는 점은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한 주민들은 북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데는 82.4%가 찬성했지만 배우자로 삼는 것에는 반대가 57.6%나 됐고, 찬성은 절반 수준인 42.4%로 줄었다. 자신의 자녀가 북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것에는 81.9%가 찬성했지만 배우자로 삼는 것에는 찬성이 절반 수준인 44%로 줄고 반대가 56%로 크게 증가했다. 북한 출신 주민은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90.5%가 남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데에 찬성했고, 배우자로 삼는 것에도 74%가 찬성했다. 자신의 자녀가 남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삼는 데에 98%가 찬성했고 배우자로 삼는 것에도 90.2%가 찬성했다. 동아일보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공동 조사 결과는 남북 출신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는 탈북민 밀집 지역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그리고 남북 출신 주민 간 진정한 통합은 아직 갈 길이 멀고, 탈북민보다는 남한 주민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공동기획을 담당한 남북하나재단 한윤석 차장은 “조사 결과 탈북민들이 보여주는 통합 노력에 비해 한국 사회의 포용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탈북민에 대한 포용력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과의 통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탈북민에 대해 마음을 더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엄마 공동 육아… 땀 흘리며 공동작업… 허물어진 ‘38선’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이번 취재 과정에선 갈등만 목격된 것이 아니다. 한국 주민과 탈북민이 함께 어울려 화합을 만들어내는 현장도 곳곳에 있었다. 서로 의식적으로 다가가고 노력하면 두 집단 사이의 간극은 결코 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서울 양천구 신월6동의 한 주택가 20평대 빌라엔 일주일에 몇 차례씩 남한과 북한 출신 엄마들이 함께 모인다. 이 집의 이름은 ‘친정집’이다. 이곳에선 남북한 엄마들이 서로 마음을 합쳐 만들어가는 공동육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오후가 되면 서너 살 아이에서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엄마를 따라 이곳에 모여 형, 동생, 언니, 누나, 친구가 된다.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글쓰기 모임, 발표 모임 등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만난 회령 출신의 40대 탈북 여성은 “제가 사투리를 써도 이곳 엄마들은 잘 들어주니 마음이 편하다”며 “한국에 와서 홀로 너무 힘들었는데 이곳에선 친정집처럼 푸념도 할 수 있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계획한 윤은정 사무처장은 “이 사회에서 남한 사람과 탈북자들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지 않고 어울려 살면 어떨까 싶어 지난해 5월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동체 운영비용은 남북하나재단의 후원을 받는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어울렸던 것은 아니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한 아이가 북한 사투리가 심하니 애들이 자꾸 그 아이를 따돌리는 거예요. 애들이어도 참 밉더라고요. 왜 따돌리냐고 물었더니 ‘쟤는 전쟁을 하는 나쁜 나라에서 왔잖아요’라고 답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엄마 아빠의 고향을 다 말하게 했어요. 중국도 있고, 강원도도 있고 다 달랐어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다 다른 고향을 갖고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더니 이후 애들이 달라졌어요.” 모임에 참가한 주부 김하나 씨(37)는 “내가 여기 다닌다고 하니 주변에서 ‘북한 사람들은 어때’라고 물어요. 애들은 간식 주는 어른이 남한 사람인지 탈북민인지 가리지 않는데 어른들이 참 부끄러워요”라고 말했다. ‘친정집’과 유사한 프로그램은 곳곳에 있다. 인천 남동구와 서울 노원구 중계동엔 남북 출신들이 어울리는 체육모임이 주말마다 열린다. 논현역 인근 탁구장에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모이는 ‘하나코리아핑퐁클럽’도 그중 하나다. 4년째 탁구 모임에 참가하는 김진수 씨(50)는 “처음엔 탈북민을 대하기가 어색했지만 지금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논현동엔 남북 주부들이 함께 모여 의상 디자인과 옷 수선을 함께 해내는 작업 공간도 있고, 남북 노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하나경로대학’도 운영되고 있다.먼저 노력하는 탈북민들 남북 주민들의 통합은 서로 한 공간에 어울려 지낸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탈북민 중에는 먼저 열심히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면 남쪽 주민들도 자연히 우리에게 마음을 열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서울 강서구 화곡4동에 문을 연 카페 ‘더치숲’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이 카페는 지난해 4월 탈북민 4명이 함께 문을 열었다. 카페에서 만난 김인실 씨(58)는 “서비스직이라 어떻게 하면 손님의 요구를 잘 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매일 인사하는 법을 익히게 되니 남한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알게 됐고, 그러다 보니 손님도 늘고 단골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탈북자들이 나랏돈을 받고 산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니 어느새 그런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해 탈북민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사례도 많다. 서울 양천구과 구로구 등지에서 지역 봉사에 열심인 탈북민 봉사단체 ‘소망두레봉사단’도 그중 하나다. 2010년 2월 탈북 여성 6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한 모임은 지금은 참가자가 20명이 넘는다. 하는 일도 노인 목욕 봉사, 홀몸노인 가구 도배,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기, 신규 전입 탈북자의 집 청소해주기 등 다양하다. 지난해 12월엔 지역 노인 200여 명을 초청해 동지 팥죽을 대접하는 봉사도 했다. 이 단체는 2011년 남북하나재단 우수자원봉사단 우수상, 2014년 10월 서울시 봉사상 단체 부문 우수상 등을 받았다. 탈북민이 동네에서 주민에게 먼저 인사하고 이웃처럼 다가가는 모습만 보여도 인식은 많이 달라진다. 양천구 신정동 학마을아파트에서 16년째 살고 있는 60대 주부는 “나를 보면 탈북민 이웃들이 먼저 인사하고 지나가고 이야기도 걸어주고 하니 아주 친해졌다. 초등학생인 손녀딸도 새터민 또래 아이들하고 어울려 논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는 30, 40대 학부모들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서로 친해져서 모임도 하고 있다”며 “지내 보니 새터민도 우리와 똑같더라”라고 평가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주성하 기자변수연 인턴기자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동아일보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은 5월 남북 주민을 대상으로 통합 실태 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서울 강서구 가양동, 노원구 중계동, 양천구 신정동,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서 활동하는 지역 하나센터 전문 상담사 4명을 만나 정확한 조사를 위한 자문을 했다. 이후 설문조사 초안을 만들어 지난달 초·중순 정광호 서울대 교수(설문 분석),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남북 주민 통합),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탈북민 출신 연구자) 등 3명의 자문을 거쳤다. 이렇게 확정한 설문안을 갖고 지난달 중순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거주하는 남북 주민 10명에게 사전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를 통해 최종 설문안을 한 번 더 다듬었다. 양측은 지난달 23∼26일의 4일간 대표적인 탈북민 밀집 지역인 서울 가양동 9-1단지 아파트, 중계동 시영4단지 목화아파트, 신정동 양천아파트, 인천 남동구 논현동 12단지(산뒤마을) 및 14단지(등대마을) 아파트에서 남북 주민 40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지역별로 남북 주민 50명씩(논현동은 52명씩) 조사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8월 15일을 전후로 평양이나 개성에서 남북과 해외의 정당과 단체,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는 민족적 대회합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련석회의(연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는 이날 공개편지에서 “올해 8·15를 전후해 북과 남의 당국과 해외 정당, 단체 대표들, 각계인사들이 참가하는 민족적 대회합을 평양이나 개성에서 개최하되 회의 명칭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련석회의로 하자”고 제안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같은 내용의 공개편지를 청와대 실장들과 황교안 국무총리, 장·차관을 비롯한 한국 정부 당국자, 정세균 국회의장, 박주선·심재철 부의장,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국민의당, 정의당 관계자, 유호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에게 보냈다고 전했다. 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전직 통일부 장관들과 박지원 의원 등 100여 명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과거 연초에 남측에 제안하던 연석회의를 하반기에 제안한 것은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고 대화에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와 함께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의 중단을 요구하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북한 정부·정당·단체는 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연석회의를 열어 한반도 통일을 바라는 남북 인사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열자고 제안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은 23일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화성-10’이라고 불렀다. 무수단이라는 명칭은 미국 첩보위성이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이 미사일의 존재를 확인한 뒤 한국과 미국이 붙인 이름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가운데 사거리 300∼500km의 단거리 미사일은 스커드, 사거리 1500km의 중거리 미사일은 노동, 사거리 6700∼1만 km의 장거리 미사일은 대포동이라고 부르지만 이 또한 북한이 실제 쓰는 명칭은 아니다. 북한은 스커드-B를 ‘화성-5’, 스커드-C는 ‘화성-6’, 노동 미사일을 ‘화성-7’로 부르고 있다. 이번에 시험 발사한 무수단이 화성-10이기 때문에 앞서 시험 발사한 대포동 1, 2호는 각각 ‘화성-8’ ‘화성-9’일 것으로 관측된다. 무수단 미사일의 잇단 발사 실패 이후 지난달에 열린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명단에서 빠져 문책설이 제기됐던 미사일통제부대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은 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락겸이 미사일 발사 장소에서 김정은을 맞이했다고 보도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22일 강원 원산 일대에서 발사한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2기 가운데 1기가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면서 무수단 미사일의 성능과 위협성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5시 58분과 8시 5분경 강원 원산 일대에서 무수단 미사일을 이동식발사차량(TEL)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첫 번째 미사일은 150여 km를 비정상적 궤도로 비행한 뒤 공중 폭발해 실패했다고 합참은 밝혔다. 이어 두 번째 미사일은 400여 km를 날아 해상에 낙하했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4월 중순 이후 이날까지 5차례 연거푸 실패한 이후 여섯 번째 만에 무수단 발사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됐다”며 “한미 정보당국이 미사일의 비행 궤도와 모의 핵탄두 탑재 여부 등을 정밀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두 번째 무수단 미사일을 의도적으로 고각(높은 각도)으로 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 사거리가 3000∼4000km인 무수단 미사일의 사거리를 최대한 줄여 발사해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면서 성능을 점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올 3월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로켓 시험 발사를 단행하라’고 지시한 후 5차례의 실패 끝에 무수단의 성능과 위력을 과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앞으로 추가 시험발사를 통해 무수단의 성능을 더 정교화한 뒤 대미 협상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압박에 나설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무수단 미사일의 위협이 조만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하지만 무수단 미사일 발사를 ‘절반의 성공’으로도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달여간 여섯 차례나 발사해 단 한 차례 성공한 무수단 미사일의 성능과 위협을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30∼50여 기로 추정되는 무수단 미사일의 성능과 유지 관리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무수단 미사일은 옛 소련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R-27을 복제한 것으로, 북한이 시험발사를 하지 않고 2007년부터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전역의 주일 미군기지와 서태평양의 괌 미군기지까지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4차 회의(29일)를 1주일 앞두고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김정은의 치적으로 선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달 초 36년 만에 열린 7차 노동당 대회에서는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김정은의 업적으로 내세웠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우리의 핵무장을 해제시키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개꿈”이라며 “미국의 선택은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윤완준 기자}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유엔 기구 전·현직 인사 등이 주축이 된 북한 인권 관련 현인(賢人) 그룹이 처음으로 설립된다. 이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북한 주민에 대한 반(反)인도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압박하는 공동 행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이정훈 외교부 인권대사(연세대 교수)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 인권을 위한 현인 그룹(Sages on North Korean human rights)’이 27일 서울 종로구 글로벌센터에서 발족한다”고 밝혔다. 북한 인권 분야의 거물급 인사들 대부분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끈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마르주키 다루스만 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위띳 문타폰 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영국 의회 종신 상원의원이자 ‘북한에 관한 상·하원 공동위원회’ 의장인 데이비드 올턴 경, 세르비아 인권운동가 출신의 소냐 비세르코 전 COI 위원이 참여한다. 한국인으로는 송상현 전 ICC 소장이 참여하고 이 대사도 현인 그룹 사무국장을 겸해 합류한다. 이 대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미국의 저명한 인권단체 대표도 그룹 참여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발족식이 열리는 서울글로벌센터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있는 건물이다. 창립식에서는 현인 그룹 멤버 대부분과 시냐 폴슨 북한인권사무소장이 참석한다. 북한 인권 현인 그룹은 가을 유엔 총회 기간과 3월 유엔 인권이사회 개최 기간 등에 1년에 2, 3번씩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 등에서 모임을 연 뒤, 그룹 명의로 북한 인권 관련 공식 입장이나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 가을 유엔 총회 기간에 유엔 안보리가 김정은을 ICC에 회부할 것을 공식 권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사는 “2014년 ICC 회부를 권고하는 유엔 총회 결의안이 채택된 뒤 안보리가 이 문제를 의제로 상정했지만 올해로 3년째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현인 그룹이 안보리에 강하게 권고하면 김정은의 ICC 회부를 압박하는 국제적인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인권 전문가는 “ICC 소장을 지낸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위원장이 그룹에 포함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는 모멘텀이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이 마련되면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선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한에도 커다란 압박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윤완준기자 zeitung@donga.com}

4월 한국으로 탈출한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자진 탈북’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 21일 열리면서 재판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단독 이영제 판사는 21일 오후 2시 반부터 중국 저장(浙江) 성 닝보(寧波) 소재 북한 ‘류경식당’에서 탈출한 종업원 13명 가운데 여종업원 12명이 자진 탈북했는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옛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 거주가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인신 보호 청구 사건 심문을 비공개로 진행한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온 이래 처음 벌어지는 일이다. 앞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인신보호법에 근거한 인신 구제를 청구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에 왔는지 확인하겠다는 이유였다. 인신 구제 청구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해 국가기관 등이 운영하는 시설에 수용 보호 감금된 사람이 법원에 구제를 청구하는 것이다. 법원이 민변의 청구를 받아들여 국정원에 출석 명령 소환장을 보내면서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국정원 측은 20일 “종업원들이 재판 출석을 원하지 않는다. 법무 대리인인 변호인이 대신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인권보호관 박영식 변호사는 법원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에서 “종업원들은 자신들이 자유의사로 탈북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진술할 경우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생명의 위협이 가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종업원들을 공개 법정에 출석시켜 진술하게 하는 것은 이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과 통일부는 민변의 요구에 대해 “자유의사로 입국한 종업원들은 인신 구제 청구 대상이 아니다”라며 “탈북민 입국과 보호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종업원들은 현재 우리 사회 정착을 위해 적법한 보호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탈북민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북한 내 가족들로부터 위임받았다는 사람이 소송하면 법원에서 자진 탈북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북한 앞에 탈북민을 세워 놓고 합동신문을 진행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민변의 요구는 정부와 국정원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민변이 인신 구제를 청구하기 위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국적의 인물을 통해 전달받은 북한 가족들의 위임장 작성 경위와 이를 확보한 과정의 위법성도 쟁점이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 가족들의 위임장이 자유로운 의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효력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변은 “인신보호법을 개정해 탈북민 수용 문제를 인신보호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여 논란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념 대결로 비화하면서 국론이 분열돼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신동진 기자}

“통일 준비의 핵심사업 중 하나는 통일 재원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국회가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2012년 7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19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 달 뒤 국무회의는 ‘남북협력기금법’을 개정해 통일 계정을 신설하고 여기에 ‘통일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법률 이름도 ‘남북협력 및 통일기금법’으로 바꾸고 대통령부터 ‘통일항아리’ 성금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19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통일기금법’은 사장되고 말았다. 통일항아리 홈페이지(www.unijar.kr)도 폐쇄됐다. 성금은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unitiative.kr)이라는 민간단체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MB 정부 때 통일 비용 연구용역 책임자는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로 박근혜 대통령을 인수위원회 때부터 보좌하고 있지만 통일 재원 마련은 정책의 후순위로 밀렸다. 그렇다면 ‘통일 대박’을 외치며 대북정책의 전면에 통일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의 통일 준비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있을까. 취임 첫해 ‘신뢰 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웠던 현 정부는 이듬해 ‘통일대박론’을, 3년 차엔 ‘도발대응+대화 병행’을 주장하다 현재는 대북 압박 외교에 전력을 쏟고 있다.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만든다던 ‘통일헌장’은 소식이 없고 올해 통일부에 신설된 평화체제 태스크포스(TF)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 하루 2000명 엑소더스 가능성… 대응 훈련 한번도 안해 ▼“(서독) 마르크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거기로(마르크에게) 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90년 2월 동독 주민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실제로 1989년 10월부터 1990년 1월까지 4개월 동안 30만 명 이상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특히 1990년 1월 들어서는 매일 2000명 이상이 서독으로 옮겨왔다. 한 달간 이주한 사람이 5만8000명이 넘을 정도였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독일에서 겪었던 것처럼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쇄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처럼 매일 탈북자 2000명이 쏟아지는 사태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유사시 정부는 휴전선과 인접한 육·해군 부대 8곳에 탈북자 임시수용소 10곳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그야말로 수용소일 뿐, 포용·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 2000명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본 적도 없다(2015년 1년간 입국한 탈북자는 1276명).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그동안 탈북자의 정착 교육은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것을 받아들여라’는 식이었지,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생을 추구하는 차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해마다 탈북자 1000명 이상이 한국 땅을 밟았지만 그동안 입국한 탈북자(2만8786명)는 특정 지역(함경남북도 71%), 특정 계층(노동자·무직 86%)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공생 학습을 할 충분한 기회가 없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북한 땅에 묶어둘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동독 주민들의 서독행 엑소더스가 한풀 꺾인 것은 서독 정부가 동·서독 화폐를 통합하기로 발표한 뒤였다. 1989년 4.5%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총생산(GNP) 대비 재정 적자가 0%였던 서독과 달리 한국의 현재 경제 체력은 내수 시장을 부양하기에도 취약한 실정이다. “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우리 것”이라는 착각 그동안 통일은 ‘당연히 해야 할 것’ ‘되면 좋은 것’이라는 당위론에 묻히면서 실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제대로 논의한 적이 드물었다. 국민의 ‘통일’에 대한 생각도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한국 것이 된다’는 식의 생각이 대표적이다. 김숙 전 유엔대사는 “‘핵 비보유국은 핵무기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이 핵 보유국들의 묵시적 합의사항”이라며 “유사시에도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이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핵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손에 넣거나 핵무기 제작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비확산(non-proliferation)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북한 핵무기는 미군이 처리하거나 유엔의 협조하에 중국, 러시아가 함께 처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순진한 접근이다. 탈북자 정착을 돕고 있는 박석길 링크(LINK) 정보전략부장은 “최근 한국에 온 탈북자 J 양은 1997년생으로 ‘고난의 행군’(1990년대 북한 대기근)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장마당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북한의 젊은층에서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을지훈련 실시, 충무계획도 있지만… 일반인의 통일 인식이 순진하다면 정부의 통일 대비는 허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역대 정부는 충무, 부흥계획 등의 이름으로 북한 급변사태 대응 계획을 세워왔다. 북한 최고지도자 유고(有故), 무정부 상태, 쿠데타 등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식을 담은 것이다. 남북의 통합을 강조했던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의 호를 따서 한때 ‘고당계획’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유사시 정부는 북한 지역을 수복해 행정통치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북한의 실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미덥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여전히 북한을 1945년 광복 당시 기준인 ‘이북 5도’(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로 부르고 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행정구역이 1946년 강원도, 1949년과 1954년 자강도·양강도가 신설되는 등 1직할시(평양), 2특별시(남포, 나선), 9도로 바뀐 현실과 맞지 않다. 전 청와대 고위 안보당국자는 “지금의 이북5도위원회는 실향민을 정서적으로 끌어안은 조직이지 통일 준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평안남도지사를 지낸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도 “정부가 차관급 이북 5도지사를 임명해 놓고 정작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은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북5도위원회 관계자는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통일부 산하가 아니라 행정자치부 산하인 점도 통일 준비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년 8월 ‘비상대비자원관리법’에 따라 모든 정부기관이 참여해 전쟁연습인 ‘을지훈련’도 실시하고 있지만 공무원 사이에는 “훈련은 휴가 못 가는 기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통준위, 대북정책과 다른 목소리 못 내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외치며 발족시킨 통준위는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로는 개점휴업 상태다. 대통령 주재 회의는 지난해 11월 제6차 통준위 회의 이후로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통준위가 정부의 대북정책보다 나아간 남북협력 방안을 제시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준위가 ‘로키(low key·저자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리 정보는 국토부’ ‘날씨 정보는 기상청’ 식으로 각 부처에 흩어진 북한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시너지를 발휘하려면 통준위 같은 총괄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직 고위 당국자 A 씨는 “통일 과정에서 독일이 동독 주민의 이주, 국유재산 처리, 사회보장·정치체제 결합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쏟아 부은 실질적 통합 문제에 우리 정부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통일정책은 흡수통일론? vs “북한 안 망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외교적 고립 압박 △제재를 통한 북한 변화 유도로 요약된다. 이 정책의 바탕에 ‘북한 붕괴론’이 깔려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실제 정부 내부에도 ‘2015년이면 (북한 붕괴로) 남북통일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지향하던 ‘신뢰 프로세스’ ‘통일대박론’과 지금의 대북 압박정책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향후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한 유럽국가 소속의 한 외교관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 갑자기 압박정책으로 돌아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1월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유로 들지만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때에는 없었던 강경책이 지배하게 된 배경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을 외교적으로 굴복시킬 시점이 언제인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북한이 변할지 등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오래 상대해 온 중견 외교관은 “모든 대외정책에는 출구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북정책은 출구도, 지향점도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대북제재의 결집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중국이 북한과의 대화론을 내세우고 미국이 이에 동조할 경우 한국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시아·중동 국가들이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도 유엔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대북압박 외교의 성과로만 홍보하는 것은 실제 모습을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현 정부가 이명박(MB) 정부와 같은 논리적 함정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MB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2008년)과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2010년)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할 수 있느냐”며 대북 강경론을 지속했다. 제재 및 압박으로 북한의 태도를 돌려놓겠다는 셈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은 살아남았고 핵능력은 더 고도화됐다. 통일부 간부를 지낸 B 씨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2018년이면 김정은 체제도 출범 7년째를 맞게 된다. 7년간 생존한 정권을 취약하다고 부를 수 있겠나. 북한이 망할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조숭호 shcho@donga.com·윤완준 기자}
정부가 단절 70년 만에 추진하던 경원선 철도(서울 용산∼북한 강원 원산) 복원 사업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원선 복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내세웠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16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통일부는 이달 초 경원선 복원 사업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복원 공사를 중지하라’는 지침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현대건설 등에 이달 말까지 현장에서 인력과 장비 등을 철수하기 위한 정리 작업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정부는 그동안 1단계로 남측 구간(백마고지역∼월정리역 9.3km)에 대한 복원 작업을 진행해왔다. 월정리역 이후 군사분계선까지 2.4km 구간은 비무장지대(DMZ)로, 한반도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 남북 간 합의를 통해 복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강원 철원군에서 열린 기공식에 참석해 “경원선이 복원되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진군을 알리는 힘찬 기적 소리가 한반도와 대륙에 울려 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측은 “공사 중단은 아니다”라며 “토지 보상비가 예상보다 늘어나 공사 일정이 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인 사업의 사업비를 변경하려면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공사를 위해 사들여야 하는 토지의 땅값이 애초 예산에 반영한 90억 원(공시지가)보다 3배로 오른 270억 원(감정평가)이 돼 조정이 불가피해졌다”며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이후 북한의 도발 우려로 전방 지역이 불안한 상황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라는 관측이 많다. 지난해 복원을 시작할 때는 박근혜 정부 임기 내 복원을 매듭짓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방식까지 적용했던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대북제재 국면에서 임기 내 남북협력 재개 가능성이 낮아진 것으로 판단한 것은 물론이고 경원선 복원 공사를 진행하려는 의지도 약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잠정 중단이지만 공사 재개 시점은 불확실하다. 공사가 재개되더라도 경원선 복원을 애초 예정했던 내년 11월경에 마무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남측에서만 진행되는 통일사업도 중단하며 북한에 대화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도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윤완준 기자}

16일 현재 경원선의 종착점이자 복원 공사의 출발점인 강원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백마고지역. 경원선을 복원하는 공사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철도중단점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복원 공사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감리업체인 동명기술공단이 머물고 있는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의 사무실도 썰렁했다. 동명기술공단 관계자는 “지금은 현대건설 5명, 동명기술공단 2명만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사무실에서 일했다던 한 주민은 “공사가 진행되려면 20∼30명은 필요할 텐데 기공식 때보다 사람이 줄었다”고 전했다. 공사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공사를 위한 토지 매입은 60%가량 진행됐지만 착공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철원 주민 이근회 씨(76)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와서 기공식을 했는데도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사업이 흐지부지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완전 중단은 아니다”라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경원선 복원 기공식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민족사의 대전환을 이루는 철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박 대통령이 강조한 핵심 외교 구상이다. 북한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것. 그 핵심이 남북 철도 연결이고 남북 철도 연결의 시작을 경원선 복원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경원선 복원 공사를 잠정 중단한 것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점을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 의지 없이는 남북 대화나 협력도 없다”는 대북정책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 비핵화 전이라도 남북 교류 협력을 통해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던 기존 접근법을 폐기했다. 통일부는 “경원선 복원 공사의 완전 중단은 아니다”라며 “토지 매입비 상승으로 인한 공사 일정 조정”이라고 애써 해명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경원선 복원을 중단한다면 공사 구간의 토지 매입도 중단해야 하지만 현재 토지 매입을 진행하고 있다”며 “남측 구간 복원 사업을 중단시킬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토지 매입을 위한 예산이 당초 예산보다 3배 늘어난 만큼 올해는 토지 매입과 설계에만 우선 치중하고 공사의 본격 재개는 상황을 봐가면서 검토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급하게 서둘렀던 공사 진행 과정을 절차에 따라 단계적으로 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내년 하반기까지 경원선 복원을 끝내겠다며 토지 매입과 설계, 환경영향평가, 지뢰 제거, 문화재 조사 등을 거의 동시에 진행하는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방식으로 서둘렀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박 대통령은 착공식에서 “경원선을 다시 연결하는 것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복원해 통일과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공사 진행해도 정부 임기 내 복원 어렵다” 통일부는 우선 토지 매입과 설계를 진행한 뒤 공사 재개를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도 “상황을 봐가면서 검토하겠다”며 재개 시점을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않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내년 말에 공사를 끝내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어차피 현 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사가 재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공사 잠정 중단 배경에 경색된 남북관계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은 만큼 내년까지도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고 남북 대화 협력 가능성이 계속 낮아진다면 공사를 재개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부처 간 엇박자가 나온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통일부는 “경원선 복원 중단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이를 “중단”이라고 받아들이고 관련 업체에 철수를 위한 정리 작업을 하라고 전달했다. 경원선 복원 공사가 잠정 중단된 상황이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최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다시 강조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의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철원=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