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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무술 영화배우’ 이소룡의 영향으로 무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 때 물리학도였던 그는 무예에 심취해 결국 전공을 바꿨고 지금은 한국 전통무예를 수련하며 연구하고 지도하는 무예인(武藝人)으로 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한국무예연구소와 네덜란드십팔기협회를 이끌고 있는 최복규 박사(54) 얘기다. 그는 십팔기 7단의 고수로 매일 2~3시간 수련하고 지도하며 한국 전통무예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제 나이 또래 무예인들의 공통점은 이소룡의 세례(洗禮)를 받았다는 겁니다. 제가 네덜란드에서 와서 무술 사범들을 만나서 ‘왜 무예를 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거의 모두 이소룡이 출발점이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소룡, 성룡, 이연걸로 이어지는 무협 영화의 주인공에 매료되어 어릴 때부터 태권도와 유도, 쿵후를 배웠습니다.”무협 영화의 주인공을 꿈꾸다 포기하는 대부분의 ‘이소룡 키즈’와 달리 최박사는 실행에 옮겼다. 그는 서강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뒤 본격적으로 무예에 입문했다. 서울 신촌로터리에 있던 한국무예원에서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십팔기(十八技)를 익히기 시작했다.십팔기는 조선 영조 25년(1749년), 사도세자가 정리해 ‘무예신보(武藝新譜)’에 수록한 18가지 보병무예의 총칭이다. 현재 무예신보는 전해지지 않으나, 정조 14년,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이 왕명에 의해 이를 계승하고 보완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에 기록이 남아 있다. 십팔기는 무예 육기인 장창, 당파, 낭선, 쌍수도, 등패, 곤방에 죽장창, 기창, 예도, 왜검, 교전, 월도, 협도, 쌍검, 제독검, 본국검, 권법, 편곤의 열두 가지 무예를 더한 것이다. 고인인 김광석 선생이 국내에서 십팔기의 전통을 이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 박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련했다. 수련이 목적이었지만 몸도 탄탄해졌다. 최 박사는 도장에서 개인 수련에만 전념하다가 십팔기 전국대학생 연합이 1988년 말에 결성되자, 이듬해 서강대에 한국무예연구회라는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 사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는 학생운동으로 대학가는 늘 혼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창칼을 들고 수련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보였을지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데모의 선봉대로 앞장서 달라’거나 ‘백골단에 맞설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는 총학생회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무예는 단순히 창칼을 휘두르는 기술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무예가 신체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기는 하지만, 그건 껍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무예를 통해 구현되는 신체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 발차기를 잘한다고 해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예의 이면에 담긴 인문학적인 영역을 어떻게 하면 구체화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깊어지면서 졸업할 무렵을 전공을 바꾸게 되었습니다.”서울대 체육교육과에서 무예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영산대학교 동양무예학과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무예를 학문화하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한계가 많았다. “2004년 경입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유럽에 나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무예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현지 무예인들을 만났습니다. 무예가 유아 체육으로 전락한 한국 상황과 달리 유럽에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동양의 무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다들 배우려는 열의가 강했습니다.”하지만 동아시아 무예에 대한 열정을 제대로 충족시켜줄 만한 정보가 제한됐고, 여전히 소림사, 화랑, 닌자의 신화가 어우러져 왜곡된 정보가 만연해 있었다. 무예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익힌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7년 네덜란드로 옮겼다. 곧바로 한국무예연구소를 설립해 레이덴대 한국학 센터와 함께 공동으로 한국 무예사 특강을 진행했다. 무예도보통지 사이클이라는 일련의 특강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아울러 네덜란드의 한국 무예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도자 과정도 개설해 무예 이론과 실기를 가르쳤다. 십팔기협회도 만들어 무예 보급도 병행했다.최 박사는 왜곡된 전통무예를 바로잡기 위해 책도 많이 썼다. 최근엔 ‘일본 검술의 한국화’에 대한 책을 썼다. 그는 “일본 검술은 크게 세 단계로 한국에 유입됐다. 중국화한 일본 검술인 장도, 김체건에 의해 도입된 왜검, 그리고 구한말 근대화된 일본 검술인 격검. 하지만 일본 검술은 이 땅에 들어와서 변화하며, 적응했고, 진화했다”고 말했다.“중국과 일본 무술이 주류인 서구 사회에 무예의 후발 주자로 출발한 한국 무예가 그간 이룬 성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무예의 성취를 포장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무예계에 만연한 무예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는 무예를 고전 무예와 근대 무예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태권도, 합기도, 검도는 근대 무예이다. 근대 무예는 동아시아가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군사주의와 체육문화가 동아시아 무예 전통과 결합하면서 새로이 만들어졌다. 이전 전쟁터에서 사용되던 고전 무예와는 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무예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무예는 생사를 넘나들던 고전 무예와는 결을 달리한다. 건강, 수양, 스포츠를 위한 무예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근대 무예가 고전 무예에서 갈라져 나온 것은 맞지만 사실 양자는 서로 다른 무예로 봐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무예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대의 전환기에 근대적인 목적과 필요에 맞게 적응하며 발전한 무예가 바로 근대 무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도, 검도, 태권도, 합기도가 다 이 과정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무예들입니다.”무협 영화 키즈로 무예에 눈을 떴지만 피상적인 인식은 김광석 선생에게서 무예를 사사하면서 바뀌었다. 김 선생은 무예가 단순히 몸놀림이 아니라 전통적인 지식 체계(그는 이를 몸학이라고 했다) 위에 축적된 지식 체계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김광석 선생에게서 전통적인 몸 움직임의 원리, 호흡법, 한약을 다루는 법 등 광범위한 지식을 전수받았다.“지금 제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의 골간은 모두 해범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입니다. 제가 물리학에서 체육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도 사실 전통적인 몸학을 어떻게 근대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대학원 체육교육과로 진로를 바꿔 무예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체육교육과는 주변 학문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포츠 철학, 역사 뿐 아니라 생리학, 역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미학과와 철학과, 중어중문학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안목을 더욱 넓힐 수 있었습니다.” 최 박사는 몸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여기서 몸학은 말 그대로 몸에 관한 배움, 학문을 가리킵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기(氣) 개념을 통해 인간과 우주를 이해했습니다. 기는 인간과 우주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무예뿐 아니라 기공, 한의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습니다. 몸학은 바로 이러한 기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거기에서 나온 지식 체계를 가리킵니다. 무예는 맨몸, 혹은 병장기를 사용한 공격과 방어의 기술 체계로 크게 투로(품새), 공법, 격투의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됩니다. 투로는 공격과 방어를 위한 다양한 기술을 연결해서 수련하는 수련법을, 공법은 인체의 내외를 단련하는 방법으로 오늘날의 웨이트트레이닝, 인터벌트레이닝, 서킷트레이닝, 스트레칭과 같은 다양한 방법이 포함됩니다. 격투는 기술을 실제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법으로 흔히 대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수련은 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수련이 되었든 양기(기를 기르는 방법)와 연기(기를 단련하는 방법)의 방법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몸에 관련된 기공과 한의학과 같은 전통적인 지식 체계를 포괄해서 ‘몸학’이라고 표현했습니다.”최 박사는 십팔기에 입문한 이래 무예는 그의 삶의 일부분이 됐다. 일상이 무예와 구분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이를 ‘생활 무예’라고 했다. 밥 먹듯 매일 2~3시간 수련한다. 그는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매일 밥 먹는 걸 거르지 않듯이 운동을 거르지 말아야 한다고. 운동하는 시간을 만들기 힘들면 일하는 틈틈이 일어나서 스트레칭이라도 하라고, 낮은 자세의 스쾃이라도 해서 하체의 힘이라도 키우고, 가볍게 발차기라도 하면서 몸을 움직이라고. 좁은 거실이라도 충분히 무예 수련을 할 수 있으며, 자그마한 막대기를 봉, 칼 삼아 움직이라고 조언한다.“그는 어떤 무술이든 배워서 수련하면 몸은 단련됩니다. 무술의 발치기, 주먹 지르기 등은 좋은 유산소 운동이자 근육운동이죠. 우리 몸은 움직이는 수련이 없으면 퇴화합니다. 일상생활에서 걷고, 앉고, 눕고, 일어서는 일거수일투족이 무예화 되어야 한다는 제 주장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로 보면 됩니다.”30년 넘게 수련한 그는 아직 20대에 버금가는 체력을 과시하며 날렵한 손 발놀림으로 네덜란드 거구들을 무너뜨리고 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물리학을 공부하다 체육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무술 영화배우’ 이소룡(리샤오룽)의 영향으로 무예에 관심을 가졌고, 전통무예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네덜란드에서 한국무예연구소와 네덜란드십팔기협회를 이끌고 있는 최복규 박사(54)는 십팔기 7단의 고수로 매일 수련하는 ‘무예인(武藝人)’이다. “제 나이 또래 무예인들의 공통점은 이소룡의 세례(洗禮)를 받았다는 겁니다. 제가 네덜란드에 와서 무술 사범들을 만나 ‘왜 무예를 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거의 모두 이소룡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죠. 이소룡, 성룡(청룽), 이연걸(리롄제)로 이어지는 무협 영화의 주인공에게 매료돼 어릴 때부터 태권도와 유도, 쿵후를 익혔죠.” 무협 영화의 주인공을 꿈꾸다 포기하는 대부분의 ‘이소룡 키즈’와 달리 최 박사는 실행에 옮겼다. 그는 서강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뒤 서울 신촌로터리에 있던 한국무예원에서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의 문하생으로 본격적으로 십팔기(十八技)를 익히기 시작했다. 십팔기는 조선 영조 25년(1749년), 사도세자가 정리해 ‘무예신보(武藝新譜)’에 수록한 18가지 보병무예의 총칭이다. 현재 무예신보는 전해지지 않으나,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에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은 고인인 김광석 선생이 십팔기의 전통을 이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 박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련했다. 수련이 목적이었지만 몸도 탄탄해졌다. 최 박사는 1989년 서강대에 한국무예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십팔기 보급에 나섰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학생운동으로 늘 혼란스러웠던 대학가에서 ‘데모의 선봉대로 앞장서 달라’거나 ‘백골단에 맞설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는 총학생회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예는 단순히 창칼을 휘두르는 기술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무예가 신체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기는 하지만 그건 껍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무예를 통해 구현되는 신체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 발차기를 잘한다고 해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예의 이면에 담긴 인문학적인 영역을 어떻게 하면 구체화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깊어지면서 졸업할 무렵 전공을 바꿨습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에서 무예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영산대 동양무예학과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무예를 학문화하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한계가 많았다. “2004년쯤 유럽에 나올 기회가 있었죠.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무예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현지 무예인들을 만났어요. 무예가 유아 체육으로 전락한 한국 상황과 달리 유럽에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동양의 무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죠. 다들 배우려는 열의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왜곡된 정보가 많았다. 그는 “무예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익힌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2007년 네덜란드로 떠났다. 곧바로 한국무예연구소를 설립해 레이던대 한국학센터와 함께 공동으로 한국 무예사 특강과 지도자 교육을 진행했다. 십팔기협회도 만들어 무예를 보급했다. 최 박사는 그동안 왜곡된 전통무예를 바로잡기 위해 책도 많이 썼다. 최근엔 ‘일본 검술의 한국화’란 책을 썼다. 그는 “일본 검술은 중국화한 장도, 김체건에 의해 도입된 왜검, 그리고 구한말 근대화된 일본 검술인 격검 등 크게 세 단계로 국내에 유입됐다”고 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 무술이 주류인 서구 사회에서 후발 주자로 출발한 한국 무예가 그간 이룬 성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한국 무예의 성취를 포장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최 박사에게 무예는 삶의 일부분이다. 일상이 무예와 구분되지 않는다. 그는 이를 ‘생활 무예’라고 했다. 밥 먹듯 매일 2∼3시간 수련한다. 그는 “어떤 무술이든 배워서 수련하면 몸은 단련된다. 무술의 발차기, 주먹 지르기 등은 좋은 유산소 운동이자 근육 운동이다. 우리 몸은 움직이는 수련이 없으면 퇴화한다”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수련한 그는 아직 20대에 버금가는 체력을 과시하며 날렵한 손·발놀림으로 네덜란드 거구들을 무너뜨리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중고교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비전이 보이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삶의 활력소이기 때문에 축구는 계속 즐겼다. 최근엔 마라톤에 입문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김하나 씨(37)는 축구와 마라톤을 동시에 즐기며 즐거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워킹맘’이다.“축구를 하다 2018년 5월 마라톤 10km에 출전할 기회가 있었어요. 훈련도 하지 않았는데 48분에 완주했죠. 그랬더니 주위에서 ‘좀만 열심히 하면 시상대에 오르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죠.”그는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마라톤 출전 두 번째 대회(15km)에서 3위로 입상했고 2019년 10월 경주국제마라톤 때 하프마라톤에 처음 도전했는데 당시 축구를 하다 햄스트링 부상을 입은 채로 달리고도 6위를 하기도 했다. 축구와 병행하다 보니 처음엔 10km와 하프코스에 집중했다. 2020년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에 도전하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대회가 모두 취소되면서 2년여간 풀코스 완주 준비만 했다. 그의 10km 최고기록은 37분 11초, 하프는 1시간22분33초다.“대회가 없어 풀코스를 뛸 수가 없었죠. 2년간 축구하면서 장거리주로 몸만 만들었죠. 그런데 축구하는 게 마라톤에 큰 도움이 됐어요. 축구가 일종의 인터벌 트레이닝이었죠.”인터벌 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그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으로 주로 엘리트 선수들의 심폐지구력을 강화할 때 쓰인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기록의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전문가들은 1시간 동안 10km를 달리는 것보다 100m 인터벌트레이닝을 10∼20회 하는 게 심폐지구력 향상과 에너지 소비엔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김 씨의 경우 축구를 일종의 인터벌 트레이닝 기회로 삼은 것이다. 축구는 공격과 수비 때 상대를 뚫거나 막기 위해 짧고 굵게 달리고, 그 상황이 끝나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반복한다. 아마추어의 경우 전후반 20분 혹은 25분씩 경기를 하기 때문에 축구 한 경기를 모두 뛴다면 40분에서 50분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는 효과를 보는 셈이다.김 씨의 이런 축구도 즐기고 장거리달리기도 하는 훈련은 바로 효과를 봤다. 지난해 10월 열린 2022년 경주국제마라톤에서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2시간59분59초, 딱 1초 차로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이 열망하는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를 달성한 것이다. 물론 여자부 우승도 차지했다.김 씨는 올 3월 열린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50분 11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작성하고 5위에 올랐다. 해외 마스터스 참가자들을 빼면 국내 마스터스 여자부 1위였다. 지금까지 출전한 풀코스 5번 중 한번 빼고 다 서브스리 기록을 냈다. 8월 27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홋카이도마라톤 2023에서만 3시간11분43초로 서브스리를 달성하지 못했다. 섭씨 29.2도에 습도 78%의 무더위만 아니었다면 서브스리는 충분했다. 그는 “이런 더위는 처음이었다. 초반 10km까지 서브스리 페이스로 가다 늦췄다. 자칫 완주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까스로 3시간 11분대에 완주했다”고 말했다.마라톤 입문 6년 차인 그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달리고 있다. 내년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249(2시간 50분 이내 기록)’를 달성하는 게 1차 목표. 그리고 홋카이도 마라톤에서 해외 첫 마라톤 완주를 경험한 것을 계기로 세계 6대 마라톤(보스턴, 뉴욕, 시카고, 베를린, 런던, 도쿄)에도 도전하겠다는 각오다.김 씨는 축구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천안여성축구단 수비형 미드필더로 각 대회 우승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천안여성축구단은 지난해에만 충남축구협회장배, 대한축구협회 전국대회, 전주시 한옥마을배 전국대회를 석권했고, 천안시장배에선 3연패를 달성했다. 고등학교까진 수비수였던 김 씨는 수비형미드필더로 공격을 차단한 뒤 역습으로 이어지는 플레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김 씨의 하루는 달리기로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 10km를 가볍게 달리고 출근한다. 주 2회 축구를 한다. 수요일 저녁과 주말(토요일 혹인 일요일). 축구를 하지 않는 주말엔 장거리주인 LSD(Long Slow Distance)를 한다. LSD는 풀코스를 완주를 위해 긴 거리를 달리는 훈련으로 보통 25~30km를 달린다. 그는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32km, 35km, 38km로 끌어 올린다”고 했다. 동아마라톤 등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는 스피드를 올리는 훈련까지 병행한다. 김 씨는 “메이저 대회를 앞둔 다른 대회는 훈련 삼아 달리고 메이저 대회에서 총력전을 펼친다”고 했다.축구와 마라톤 어떻게 다를까?“아주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죠. 축구는 함께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서로 맞춰주고, 맞춰가면서 나오는 플레이가 효과를 봤을 때 희열을 느껴요. 마라톤은 혼자 달리지만 옆에서 달리는 주자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맛이 있죠. 달리고 난 뒤의 그 개운함, 그리고 고된 시간을 이겨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개인적으로 마라톤은 기록 단축도 좋지만 달리면서 온전히 저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요. 그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농구코트에서 슈팅가드로, 녹색 그라운드에서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다 갑자기 필드의 고수가 됐다.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 겸 산학협력단장(58)은 골프 ‘핸디 3(평균 3오버파)’의 아마추어 골프강자로 거듭났다. 그는 한때 농구와 축구광으로 학계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어릴 때부터 축구 농구 야구를 즐겼고 농구 명문 홍익대 부중·고를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농구에 천착했다. 캐나다 유학 때도 농구 축구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귀국해서도 코트와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런 그가 10여 년 전부터는 골프에 빠져들었다. “농구와 축구를 즐기다 보니 어느 순간 무릎에 이상이 오더군요. 여기저기 잔 부상도 생기고…. 그런데 승부의 세계를 떠나긴 싫었죠. 그때 다가온 게 골프입니다. 산과 들, 자연 속에서 라운드한 뒤 오는 상쾌함, 그리고 샷에 집중해 목표로 한 타수를 칠 때의 성취감은 농구와 축구를 하며 얻는 즐거움과는 좀 달랐어요.”골프의 운동량은 농구 축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 부총장은 “골프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고 하면서도 “자연과 함께 하며 신중하게 샷 하나하나에 집중해 플레이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특히 골프는 심신이 조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농구 등 단체 스포츠와 달리 내 신체와 정신이 동시에 반응하며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훈련하고 결과에 만족하는 게 골프의 매력”이라고 했다.“영국에서 대학 때까지 골프 선수를 하다 금융계에 몸담은 분과 골프를 자주 치는데 그분의 플레이에선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어요. 골프장에 와서 준비하고 샷 하나하나 신경 쓰는 모습에서 철저함이 묻어났죠. 주위에 보면 대충 치는 사람들도 있어요. 골프는 예절을 지키며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정신수양 스포츠입니다.”사실 최 부총장은 1990년대 중후반 캐나다 워털루대에서 유학할 때부터 골프를 쳤다. 그즈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등장해 미국프로골프(PGA)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등 잘 나갈 때였다. 골프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친구들과 필드에 나갔다. 하지만 농구와 축구가 있어 골프 ‘진심’은 아니었다. 귀국해서도 농구와 축구를 하느라 골프는 꼭 나가야 하는 자리에만 나갔다.“10여 년 전 고등학교 동기들하고 저녁 먹고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 농구코트에서 농구를 하는 객기를 부리다 친구 한 명의 다리가 부러졌죠. 그때부터 ‘우리도 이젠 조심할 나이’라고 생각해 거칠지 않은 운동을 찾았죠. 처음엔 트레킹이나 산책을 했는데 골프가 산과 들을 걸으면서 하는 스포츠잖아요. 이거다 싶었죠.”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하면서 다시 승부욕이 발동했다. 그는 “난 골프에 진심인 자칭 고수들과 자주 친다. 내기도 하지 않는다. 골프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멀리건, 퍼트 OK 등 전혀 없이 속칭 ‘PGA 룰’로 친다. 최 부총장은 지인들과 ‘승죽회(승리에 죽고 사는 모임)’를 만들었다. 지나친 승리 지상주의를 감추기 위해 한자로는 ‘승죽(承竹)회’로 쓰면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1년간 성적표로 연말에 우승 트로피와 배지도 준다. 최 부총장은 벌써 우승 배지 2개를 모았다.“골프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 치는 사람도 있죠. 그래도 늘 잘 치지는 못합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요. 남자 테니스는 3~4명이 우승을 번갈아 하지만 골프는 아닙니다. 타이거 우즈도 매번 우승은 못 했죠. 저도 10년 가까이 꾸준히 치면서 최근에야 골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최 부총장은 지난해부터 골프의 참맛을 알았고, 올 5월 13일 경기 용인 해솔리아골프장에서 생애 최저타인 4언더파 68타를 쳤다. 그는 “스포츠는 승부의 세계다. 내가 지금 농구 축구로 어떻게 30대와 경쟁하겠나. 골프로는 언제든 경쟁할 수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제자들도 축구 농구는 다친다며 말리지만 골프에서는 나를 이기는 게 목표라며 열심히 도전한다. 내가 아직 젊고 생생하다는 자신감을 골프에서만큼은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트레킹과 장거리 걷기로 체력을 키우는 그는 “보직을 맡으며 연구도 하다 보니 쉽지 않다”면서도 주 1~2회 짬을 내 연습하고 주말엔 필드에 나가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최 부총장은 고등학교 때 반 대표하면서 농구 축구팀을 이끌었고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에 다닐 때도 공과대학 체육대회 때 팀을 만들어 출전했다. 최 부총장은 “가장 열심히 했던 게 농구였다. 축구도 즐기고, 매년 여름엔 지리산 종주도 했다. 교양과목 수업으로 야구를 듣기도 했다. 대학 생활을 거의 운동으로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회상했다. 캐나다에서도 그의 농구 축구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아리랑 훕스’란 농구팀, ‘아리랑 슈터스’란 축구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학교 리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교포 학생들이 ‘체육과생인줄 알았다’고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골프는 레슨을 받은 적이 없어요. 어울려 친 뒤 맥주 한잔하며 뭐가 잘못됐는지를 서로 얘기하는 게 ‘레슨’이었죠. 연구실에서 골프로 토론을 하기도 했죠. 한국에 와서도 레슨은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혼자 연구했고 치는 사람들끼리 장단점을 분석하면서 저만의 스윙을 만들었습니다.”최 부총장은 스포츠를 즐기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도 쌓았다. 캐나다에 사는 교포들을 중심으로 농구팀 축구팀을 꾸렸는데 현지인들도 참여했다. 그는 “내가 10살 정도 많았는데도 축구 농구를 하며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됐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한 친구는 지금까지 내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농구 축구팀을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생겼고 캐나다에서도 끼를 한껏 발휘한 것이다.“그때 만난 친구들이 제 인생의 큰 자산이 됐죠. 사실 저도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IT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때 IT가 붐을 이뤘죠. 기계공학을 공부하면서 컴퓨터 코딩과 웹 등 IT와 친숙해졌어요. 그렇다 보니 IT 관련 책도 썼고 자연스럽게 융합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죠. IT와 융합된 미래 사회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민했고, 지금은 제가 모 신문에 디지털 관련 칼럼도 주기적으로 게재하는 전문가가 됐습니다.”최 부총장은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평생 스포츠를 즐기다 보니 체력이 좋아 며칠씩 밤새며 책을 쓰거나 하루 10시간씩 강의해도 거뜬했죠. 병원 신세 한번 진 적이 없고, 코로나도 비껴갔죠. 체력은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가져다준 제 가장 큰 자산이라 자부합니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공부만 하지 말고 어떤 스포츠든 꼭 열정적으로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체력이 곧 경쟁력입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한때 농구와 축구광으로 학계에 소문이 자자했다. 어릴 때부터 축구 농구 야구를 즐겼고 농구 명문 홍익대사범대부속중고등학교를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농구에 천착했다. 캐나다 유학 때도 농구 축구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귀국해서도 코트와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런 그가 10여 년 전부터는 골프에 빠져들었다.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 겸 산학협력단장(58)은 골프 ‘핸디 3’(평균 3오버파)의 아마추어 골프 강자다. “농구와 축구를 즐기다 보니 어느 순간 무릎에 이상이 오더군요. 여기저기 잔부상도 생기고…. 그런데 승부의 세계를 떠나긴 싫었죠. 그때 다가온 게 골프입니다. 산과 들, 자연 속에서 라운드한 뒤 오는 상쾌함, 그리고 샷에 집중해 목표로 한 타수를 칠 때의 성취감은 농구와 축구를 하며 얻는 즐거움과는 좀 달랐어요.” 골프의 운동량은 농구 축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 부총장은 “골프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고 하면서도 “자연과 함께하며 신중하게 샷 하나하나에 집중해 플레이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특히 골프는 심신이 조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농구 등 단체 스포츠와 달리 내 신체와 정신이 동시에 반응하며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훈련하고 결과에 만족하는 게 골프의 매력”이라고 했다. “영국에서 대학 때까지 골프 선수를 하다 금융계에 몸담은 분과 골프를 자주 치는데 그분의 플레이에선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어요. 골프장에 와서 준비하고 샷 하나하나 신경 쓰는 모습에서 철저함이 묻어났죠. 주위에 보면 대충 치는 사람들도 있어요. 골프는 예절을 지키며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정신 수양 스포츠입니다.” 사실 최 부총장은 1990년대 중후반 캐나다 워털루대에서 유학할 때부터 골프를 쳤다. 그즈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등장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마스터스를 우승하는 등 잘나갈 때였다. 골프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친구들과 필드에 나갔다. 하지만 농구와 축구가 있어 골프에 ‘진심’은 아니었다. 귀국해서도 농구와 축구를 하느라 골프는 꼭 나가야 하는 자리에만 나갔다. “10여 년 전 고등학교 동기들하고 저녁 먹고 농구를 하는 객기를 부리다 친구 한 명의 다리가 부러졌죠. 그때부터 ‘우리도 이젠 조심할 나이’라고 생각해 거칠지 않은 운동을 찾았죠. 처음엔 트레킹이나 산책을 했는데 골프가 산과 들을 걸으면서 하는 스포츠잖아요. 이거다 싶었죠.”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하면서 다시 승부욕이 발동했다. 그는 “난 골프에 진심인 자칭 고수들과 자주 친다. 내기도 하지 않는다. 골프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멀리건, 퍼트OK 없이 속칭 ‘PGA 룰’로 친다. 최 부총장은 지인들과 ‘승죽회’(승리에 죽고 사는 모임)를 만들었다. 지나친 승리 지상주의를 감추기 위해 한자로는 ‘승죽(承竹)회’로 쓰면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1년간 성적표로 연말에 우승 트로피와 배지도 준다. 최 부총장은 벌써 우승 배지 2개를 모았다. “골프는 축적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 치는 사람도 있죠. 그래도 늘 잘 치지는 못합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요. 남자 테니스는 3, 4명이 우승을 번갈아 하지만 골프는 아닙니다. 우즈도 매번 우승은 못 했죠. 저도 10년 가까이 꾸준히 치면서 최근에야 골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최 부총장은 지난해부터 골프의 참맛을 알았고, 올 5월 13일 경기 용인 해솔리아 골프장에서 생애 최저타인 4언더파 68타를 쳤다. 그는 “스포츠는 승부의 세계다. 내가 지금 농구 축구로 어떻게 30대와 경쟁하겠나. 골프로는 언제든 경쟁할 수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제자들도 농구 축구는 다친다며 말리지만, 아직 젊고 생생하다는 자신감을 골프에서 느끼고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트레킹과 장거리 걷기로 체력을 키우는 그는 “보직을 맡으며 연구도 하다 보니 쉽지 않다”면서도 주 1, 2회 짬을 내 연습하고 주말엔 필드에 나가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 “평생 스포츠를 즐기다 보니 체력이 좋아 며칠씩 밤새우며 책을 쓰거나 하루 10시간씩 강의해도 거뜬했죠. 체력은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가져다준 가장 큰 자산이라 자부합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체육대학 교수로 재직했지만 운동에 진심인 적이 없었다. 가끔 산책이나 등산을 하고, 간단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지만 꾸준하진 못했다. 2017년 미국으로 연구교수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에 빠져들었고 지금은 운동 없이는 못 사는 마니아가 됐다. 한의사 출신 오재근 한국체대 운동건강관리학과 교수(62) 얘기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오 교수가 몸을 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했는데 통풍이 재발한 것이다. 연구를 해보니 통풍 해결 방법도 운동에 있었다.“연구교수로 떠난다는 말에 지인들이 환송회를 해 준다고 해 거의 매일 저녁 식사 자리에 간 게 화근이었나 봅니다. 체중이 늘어 운동하는데 발목이 시큰거렸죠. 2006년 미국 갔을 때도 통풍이 와 고생했었는데 재발한 겁니다.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는데 잘 안 낫는 겁니다. 그래서 논문을 보며 해결 방법을 찾았죠. 복부 체지방을 줄여야 했죠.”오 교수는 “그런데 너무 심하게 근육 운동한 게 오히려 통풍을 악화시켰다”고 했다. 주기적은 아니었지만 비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어 체지방이 그리 많진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웨이트트레이닝과 걷기, 달리기를 본격 시작해 체지방을 지나치게 낮추다 보니 역효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 몸은 지방이 적당히 있어야 하는데 너무 빼도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보디빌더의 경우 지나친 지방 감소 탓에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한다. 오 교수는 “미국엔 거의 모든 피트니스센터에 사우나가 있다. 운동하고 사우나까지 하다 보니 혈액 농도가 짙어진 것도 통풍을 악화시켰다”고 했다.“그때부터 저에게 적당한 운동법을 찾기 시작했죠. 저는 식스팩 복근 등 근육질보다는 어느 정도 지방이 있는 상태 때 몸 상태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맞는 3단계 운동법을 개발했습니다. 약, 중, 강으로 나눠 그날 제 몸 컨디션에 따라 운동을 했습니다. 저의 운동 목표는 혈액 수치, 근육량, 체지방 수치에서 정상 범위 내에 있게 하는 겁니다. 그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유산소 운동의 경우 시속 5km로 걷는 게 약, 시속 7km 달리기가 중, 시속 10km 달리기가 강이다. 웨이트트레이닝 레그익스텐션의 경우 체중의 절반(오 교수의 경우 약 35kg)이 중, 여기서 5, 10kg을 올리면 강, 5, 10kg 내리면 약이다. 근육 운동 모든 종목에 오 교수만의 계량법이 있다.“제가 이런 3단계 운동법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 보건복지부 암 환자 운동프로젝트 연구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암 환자들의 경우 항암 치료를 받고 오면 체력이 완전히 떨어집니다. 그럼 처음부터 천천히 체력을 끌어 올려줘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그 원리를 적용한 겁니다.” 그는 미국 연구교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주 6회 이상 운동을 하고 있다. 웨이트트레이닝은 주 2회, 유산소 운동을 3, 4회 하는 식이다. 근육 운동을 할 땐 유산소를 20~30분하고 웨이트트레이닝을 1시간 이상 하고, 유산소 운동을 할 땐 1시간 정도 걷거나 달린 뒤 가볍게 기분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제가 아시아배구연맹 의무위원입니다. 또 국제 학술행사가 있어 해외 출장이 많아요. 현지에서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못 할 때도 있어요. 그렇게 귀국하면 체력이 떨어져 있고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아요. 그럼 약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해 중, 강으로 올립니다.”오 교수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아파트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가 1시간 30분 이상 운동한 뒤 출근하는 게 루틴이다.“한때 체중이 65kg 이하일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67kg에 맞추고 있어요. 원래 체중에서 5kg 정도 뺀 겁니다. 더 빼면 몸이 안 좋아요. 저는 체지방을 20%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어요. 보디빌더들은 체지방이 5~10%인데 전 15% 이하로 내려가면 체내 균형이 깨져요.”운동을 꾸준히 한 뒤 아직 통풍이 재발하진 않았다. 몸도 날렵해졌다. 무엇보다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이제 아침 운동을 안 하면 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운동 한 날과 안 한 날 컨디션이 천양지차다. 잠도 잘 잔다. 저녁 9시, 10시면 잠이 쏟아진다”고 했다. 그는 ““몸이 건강하니 연구, 강의 등 일 처리 능력도 좋아진다. 쓰레기 분리배출, 청소 등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뭘 하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져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뭐 이런 게 있잖아요. 걸어 다니다 자전거 타고, 자전거 타다 차 타고. 차 타다 비행기 타면 이동거리가 달라지면서 삶의 폭도 넓어지잖아요. 운동을 꾸준하게 하면 삶의 활동 영역이 많아지고 넓어집니다.”오 교수는 경희대 한의대 다닐 때 친구인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진한 전 경남 감독에게 침과 뜸을 놔주면서 스포츠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진한이와 중학교 때까지 함께 공을 찼다. 다친 진한이를 치료하다 한의학을 스포츠의학에 접목하고 싶어 석사 박사를 스포츠로 전공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방 치료로 침을 놓거나 약을 썼을 때 근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관심이 많았지만 근육 세포를 떼어 분석하는 게 의학적으로 문제가 돼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스포츠 드링크를 연구했다.오 교수는 최근엔 근육형성에 도움이 되는 해조류 추출 드링크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해조류에서 추출하는 폴리페놀은 녹차에 든 카테킨 등 육지 식품에서 나오는 폴리페놀보다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폴리페놀은 우리 몸에 있는 활성산소(유해산소)를 해가 없는 물질로 바꿔주는 항산화 물질 중 하나다. 과학적으로 바다의 갈조류에서 추출된 타닌인 플로로타닌(Phlorotannins)을 바다(Sea)에서 온 폴리페놀(Polyphenol)이란 의미로 ‘시놀(Seanol)’로 부른다.오 교수는 “이 시놀을 노인들에게 복용시키는 실험을 했는데 근골격량 및 골밀도가 증가했고, 제지방량(체중에서 체지방량을 뺀 수치) 지수도 좋아졌다. 시놀이 체내에서 단백질 합성을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근육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시놀을 섭취할 경우 근육이 더 잘 생긴다는 얘기다. 오 교수는 시놀을 이용한 단백질 드링크를 만들 계획이다.오 교수는 근육운동을 하면서 근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나이 들수록 근육이 중요하다.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자세도 잡아준다. 잘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덜 다친다. 나이 들어도 근육을 키우면 젊어진다”고 했다. 그는 “평생 건강하려면 운동을 가급적 빨리 시작해야 한다”며 “특히 근육을 적당히 키워야 더 건강하다”고 강조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한의사인 오재근 한국체대 운동건강관리학과 교수(62)는 미국 오리건주립대에 연구교수로 간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체육대학에 몸담고 있었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진 않았다. 미국에서 몸을 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했는데 통풍 탓에 고생했다. 연구를 해보니 통풍 해결 방법도 운동에 있었다. “연구교수로 떠난다는 말에 지인들이 환송회를 해 준다고 해 거의 매일 저녁식사 자리에 간 게 화근이었나 봅니다. 체중이 늘어 운동하는데 발목이 시큰거렸죠. 2006년 미국 갔을 때도 통풍이 와 고생했었는데….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는데 잘 안 낫는 겁니다. 그래서 논문을 보며 해결 방법을 찾았죠. 복부 체지방을 줄여야 했죠.” 오 교수는 “그런데 너무 심하게 근육 운동을 한 게 오히려 통풍을 악화시켰다”고 했다. 주기적인 건 아니었지만 비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어 체지방이 그리 많진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웨이트트레이닝과 걷기,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체지방을 지나치게 낮추다 보니 역효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 몸은 지방이 적당히 있어야 하는데 너무 빼 혼났다”고 했다. 실제로 보디빌더의 경우 지나친 지방 감소 탓에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한다. 오 교수는 “미국엔 거의 모든 피트니스센터에 사우나가 있다. 운동하고 사우나까지 하다 보니 혈액 농도가 짙어진 것도 통풍을 악화시켰다”고 했다. “그때부터 저에게 적당한 운동법을 찾기 시작했죠. 저는 식스팩 복근 등 근육질보다는 어느 정도 지방이 있을 때 몸 상태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맞는 3단계 운동법을 개발했습니다. 약, 중, 강으로 나눠 그날 제 몸 컨디션에 따라 운동했습니다.” 유산소 운동의 경우 시속 5km로 걷는 게 약, 시속 7km 달리기가 중, 시속 10km 달리기가 강이다. 웨이트트레이닝 레그익스텐션의 경우 체중의 절반(오 교수의 경우 약 35kg)이 중, 여기서 5, 10kg을 올리면 강, 5, 10kg 내리면 약이다. 근육 운동 모든 종목에 오 교수만의 계량법이 있다. 그는 미국 연구교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주 6회 이상 운동을 하고 있다. 웨이트트레이닝은 주 2회, 유산소 운동을 3, 4회 하는 식이다. 근육 운동을 할 땐 유산소를 20∼30분 하고 웨이트트레이닝을 1시간 이상 하고, 유산소 운동을 할 땐 1시간 정도 걷거나 달린 뒤 가볍게 기본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오 교수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아파트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가 1시간 30분 이상 운동한 뒤 출근한다. “한때 체중이 65kg 이하일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67kg에 맞추고 있어요. 원래 체중에서 5kg 정도 뺀 겁니다. 더 빼면 몸이 안 좋아요. 저는 체지방을 20%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어요. 보디빌더들은 체지방이 5∼10%인데 전 15% 이하로 내려가면 체내 균형이 깨져요.” 운동을 꾸준히 한 뒤 아직 통풍이 재발하진 않았다. 몸도 날렵해졌다. 무엇보다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이제 아침 운동을 안 하면 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운동한 날과 안 한 날 컨디션이 천양지차다. 잠도 잘 잔다. 오후 9시, 10시면 잠이 쏟아진다”고 했다. 그는 “몸이 건강하니 연구, 강의 등 일 처리 능력도 좋아진다. 쓰레기 분리배출, 청소 등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뭘 하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져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오 교수는 경희대 한의대 다닐 때 친구인 국가대표 축구 선수 최진한 전 경남 감독에게 침과 뜸을 놔주면서 스포츠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진한이와 중학교 때까지 함께 공을 찼다. 다친 진한이를 치료하다 한의학을 스포츠의학에 접목하고 싶어 석사 박사를 스포츠로 전공하게 됐다”고 했다. 오 교수는 근육 운동을 하면서 근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나이 들수록 근육이 중요하다.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세도 잡아준다. 잘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덜 다친다. 나이 들어도 근육을 키우면 젊어진다”고 했다. 오 교수는 최근엔 근육 형성에 도움이 되는 해조류의 성분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평생 건강하려면 운동을 가급적 빨리 시작해야 한다”며 “특히 근육을 적당히 키워야 더 건강하다”고 강조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26년 국립스포츠박물관 개관을 준비 중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 이길용 기자(1899∼?) 유품 33점을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고 16일 알리면서 관련 사진 2점을 공개했다. 1933년 5월 30일자 동아일보(왼쪽 사진) 지면과 날짜를 알 수 없는 압록강 빙상 경기 대회 취재 현장 사진이다. 한국 최초의 체육기자로 인정받는 파하(波荷) 이길용 기자는 1936년 8월 25일 ‘일장기 말소 사건’ 이후 옥고를 치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생(1912∼2002)의 가슴팍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이다. 이길용 기자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는 등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한의사인 이강일 나사렛국제병원 이사장(80)은 7년 전 파킨슨병에 걸려 고생했다. 그는 “누웠다 앉는 게 힘들었다. 걷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세포들이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중추신경계 질환이다. 도파민은 운동 능력이나 감정 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 분비가 감소하면 무기력, 우울감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손발의 떨림, 몸의 경직, 불안정한 걸음걸이나 자세, 느린 동작 등과 같은 운동 능력 저하 증상이 따르게 된다.이 이사장은 지난해 9월쯤 지인으로부터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들은 뒤 원리를 공부한 뒤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누웠다 일어나는 것, 걷는 데도 큰 문제 없는 상태가 됐다. 정형외과 전문의 등 의사들은 “80세 노인이 파킨슨병에서 호전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인의 말을 들은 뒤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71)이 쓴 ‘맨발로 걸어라’란 책을 봤다.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해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 회장은 맨발 걷기로 건강이 좋아진 뒤 그 효과를 홍보하고 있다. ‘맨발로 걷는 즐거움’ ‘맨발로 걸어라’ ‘맨발 걷기의 첫 걸음’ ‘맨발 걷기가 나를 살렸다’ 등 책도 썼다. 2016년부터 서울 대모산에서 맨발걷기숲길힐링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박 회장은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와 접지효과(Earthing)로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이 이사장은 병원 근처인 인천 연수구 청량산의 황톳길을 매일 걷는다. 처음엔 제대로 걷지도 못해 양쪽에 목발을 짚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걸었다. 지난 11개월간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2시간 30분 이상을 걸었다. 지금은 안전을 위해 지팡이 하나 들고 걷고 있다.“도파민을 먹다 보면 변비가 생겨요. 그래서 증상이 심할 때 도파민 복용량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맨발로 한 달 정도 걸으니 변비가 없어진 겁니다. 잠도 잘 왔어요. 전 스트레스 받으면 잠을 푹 못 잤는데 맨발로 걸은 뒤엔 잠도 쉽게 들고 깨지 않고 끝까지 잘 잤어요. 다리 부종과 이명증도 사라졌어요. 다리가 자주 부어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봤는데 그게 호전된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알 수 없는 몸에 있는 문제점들도 해결된 것 같습니다. 물론 걷는 것도 편안해졌고. 손도 일절 떨지 않아요. 아직 약간 불편하긴 한데 누웠다 일어나는 것, 걷는 게 아주 좋아졌어요. 완전히 좋아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려야겠지만 맨발걷기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이후 이 이사장은 하루에 도파민 한 알만 정기적으로 복용하고 있다. 그래도 파킨슨병 증세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맨발 걷기를 환자들에게도 적극 권유하고 있다.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병을 접하고 걸리게 됩니다. 갑자기 오는 경우도 있죠. 특히 나이 든 분들에게는 언제 어떤 병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현대엔 질병을 예방하는 의학이 있고 치료하는 의학이 있죠. 크게 양의학과 한의학으로 나뉘어 있지만 우리가 굳이 민간 치료요법과 자연치료요법을 경시할 필요는 없어요. 현대의학인 양의학, 한의학으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면서도 민간요법과 자연요법도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학도 중요하지만 민간요법과 자연요법은 경험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겁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질병을 현대의학으로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민간요법은 경험의 산물이고, 자연요법은 자연의 섭리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이 이사장은 50년 전 한의원을 시작해 일찌감치 600병상 ‘양한방협진’ 병원으로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사람을 치료하는데 양의학과 한의학이 따로 없다. 병을 고치는데 도움이 된다면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연과 가까이 하면 자연이 치료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민간요법이든 자연요법이든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꾸 얘기해줘서 그 경험을 함께 나누다 보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맨발 걷기를 하면서 햇볕, 공기, 땅 등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자연이 몸의 면역력을 증강 시킨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면역력이 좋아지니 기억력도 좋아졌다. 과거 생각나지 않던 초중고교 동창 친구들의 이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이름들이었다”고 했다.이 이사장은 맨발 걷기를 치료에 활용하는 계획까지 밝혔다. 그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5800평(약 1만9200㎡) 부지를 마련해 일반치료와 함께 맨발 걷기도 병행할 수 있는 한방요양병원을 건설한다”고 했다. 병원 부지 산에 맨발 걷기 길을 조성해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조만간 착공에 들어가 2025년 개원할 예정이다. 그는 “양의학적 치료는 현재 나사렛국제병원에서 계속하고, 한방요양병원에서는 한의학과 자연요법 치료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이 이사장은 파킨슨병이 걸린 뒤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있었지만 환자 진료는 계속해왔다. 맨발 걷기로 몸이 좋아진 뒤에는 오전 진료만 한다. 오후엔 맨발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매일 오후 2시간 30분 이상을 맨발로 맨땅을 걷고 있다. 인천 청량산은 어느 정도 올라가면 황금색을 띨 정도로 좋은 자연 황톳길이 조성돼 있었다. 흙 중엔 황톳길이 맨발 걷기 효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이 이사장은 맨발 걷기가 노인성 질환인 파킨슨병, 알츠하이머(치매), 뇌졸중 등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다. “이 질병들은 뇌신경 및 혈관에 이상이 있어 온다는 점에서 유사하죠. 그래서 맨발 걷기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치매도 호전될 수는 있는데 치매 환자의 의지가 발현되기 쉽지 않아 예방을 위해 맨발 걷기를 해야 합니다. 파킨슨병과 치매, 뇌졸중 예방엔 큰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저를 보십시오. 믿고 따라 해서 파킨슨병도 호전됐습니다. 특히 치매는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합니다.”박 회장은 맨발 걷기로 여러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지표면에 놓여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 다양한 물질이 발바닥의 각 부위와 상호마찰하고, 땅과 그 위에 놓인 각종 물질이 발바닥의 각 반사구를 눌러준다. 발바닥 자극은 오장육부 등 모든 신체기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고대 중국과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졌다.접지는 맨발로 땅을 밟는 행위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황톳길이 가장 좋다. 우리 몸에 30~60 밀리볼트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맨발로 땅을 만나는 순간 0볼트가 된다고 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화되는데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가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암 등 각종 질병이 활성산소의 역기능 탓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맨발 걷기를 하면 활성산소가 배출되고 면역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박 회장은 이 이사장의 사례에 대해 “맨발 걷기로 혈액이 뇌에 공급돼 뇌세포를 살려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2013년 미국 ‘대체 및 보완의학학회지’에 발표된 ‘접지는 혈액의 점성을 낮춰준다(스티븐 시나트라 등)’는 논문에 따르면 끈적끈적한 점성이 있는 혈액이 맨발 걷기 40분 뒤 깨끗해졌다. 또한 적혈구 제타전위(Zeta Potential·표면 세포간 밀어내는 힘)를 평균 2.7배 높여줘 혈류 속도가 2.7배로 빨라졌다. 박 회장은 이를 ‘천연의 혈액희석효과’로 불렀다. 박 회장은 “맨발 걷기는 우리 몸의 중요한 에너지인 ATP(아데노신삼인산)생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맨발 걷기는 스트레스 받으면 올라가는 호르몬 코르티솔 분비도 안정시켜준다”고 말했다.▶관련 동영상 보기 : 맨발 걷기가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박 회장은 “혈액 순환이 잘 돼 머리가 깨끗해진다. 일본에 있는 토리야마유치원의 경우 3살부터 6살까지 맨발로 뛰고 걷게 하는데 집중력이 엄청 좋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이들이 3년 동안 책을 2000권 씩 읽는다.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자신감도 상승한다”고 설명했다.‘100세 시대 건강법’ 시리즈를 통해 2020년 9월 박 회장의 사연이 전해진 뒤 맨발 걷기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소개된 전립선암 말기 환자였던 박성태 씨(74)도 맨발 걷기를 통해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의학적으로 100% 증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최근 맨발 걷기로 건강을 되찾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상파 방송 다큐멘터리에서도 맨발 걷기를 통한 긍정적인 신체 변화를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사실 이 이사장은 맨발걷기로 파킨슨병 증세가 호전됐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기 쉽지 않았다. 한의사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선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주위에서도 말렸다. 하지만 그는 “내가 효과를 봤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게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 난 사람을 고치는 의사”라며 사연을 공개했다.인천=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가정주부인 심연수 씨(46)는 2020년 4월 한 보디빌딩대회 여자부에서 2위를 한 뒤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근육을 키우며 6개월 지속한 극단적인 식이요법 탓에 몸에 이상이 와 결국 대상포진까지 앓게 됐다.“대회출전을 위해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고 단시간에 근육을 키우려고 선수들이 하는 극단적인 식이요법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문제가 된 것 같아요. 6개월간 지속했고 좋은 성과도 냈는데 대회 끝난 뒤 일반식을 먹었더니 몸이 붇기 시작했죠. 호르몬에 변화가 왔는지 몸에 이상이 생겨 고생했어요. 몸 좋아지라고 운동을 했는데 오리려 망친 셈이 됐죠. 지속가능한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운동했어야 했는데 너무 무리한 것 같습니다. 평소대로 운동하며 몸을 추스렸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대상포진까지 온 겁니다. 귀에서 진물이 나오고 잠도 못 이뤄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은 아주 늦게 알았죠. 골든타임을 놓쳐 고생했죠.”심 씨는 “어지러워 걷기 힘들었다. 소주 3병 마시고 걷는 느낌”이라고 했다. 병원에 2주가량 입원까지 하는 등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무조건 많이 움직여야 한다”며 권유한 게 걷기와 달리기다.심 씨는 평소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약 10년 전부터 인터넷 블로그 ‘낸시의 홈짐’을 따라 홈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었고, 전문적인 웨이트트레이팅 PT(퍼스널 트레이닝)까지 받고 보디빌딩대회에 출전해 입상까지 했다. 하지만 지나친 식이요법으로 체내 호르몬에 이상이 와 대상포진까지 걸렸고, 이를 걷고 달리기로 극복해 지금은 마라톤 42.195km 풀코스까지 완주하는 ‘철녀’로 거듭났다.“집에서 몸을 만들다 보니 더 전문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피트니스센터를 찾아가 전문가 PT를 받았죠. 근육을 키우면서 주변을 보니 크고 작은 보디빌딩대회가 많았어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다소 놀라면서도 ‘나도 출전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죠.”2018년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심 씨는 바로 재미를 붙였다. 그는 “저를 지도해주시는 트레이너가 ‘몸도 좋고 운동 잘한다’고 하니까 더 흥미를 가지게 됐다”고 했다. 1년여 뒤 대회출전을 도와주는 피트니스센터로 옮겨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었다. 근육을 키우며 보디빌딩 생활체육 2급 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그냥 보디프로필 한 번 찍는 게 아니라 대회출전이란 목표로 진심으로 열심히 했어요. 제가 처음 하고 싶은 도전이었죠. 그래서 정말 새벽에 눈 뜨고 아침 점심 저녁 운동을 했어요. 유산소로 지방을 태우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만들고…. 하루 6시간 넘게 운동한 것 같아요.”심 씨는 “가정주부로 가족들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식이요법을 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근육 키우는 게 재밌어 잘 참고 버텼다. 2020년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여파에도 열린 한 보디빌딩 대회에서 여자부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몸 상태는 오히려 나빠지게 된 것이다.“당시 몸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코로나 19로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도 참고 열심히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포기할 때 전 끝까지 남았죠. 준우승까지 하니 성취감과 자존감이 크게 상승했죠. 그런데 몸이 안 좋아지면서 좀 시련을 겪었어요.”심 씨는 의사의 권유대로 걷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홈트레이닝 때 ‘온라인’으로 만나다 오프라인으로 모여 함께 운동하던 멤버들도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집에서 운동하다 같은 지역에서 사는 여자들끼리 친해지면서 모이기 시작했죠. 집에서 혼자, 혹은 모여서 함께 운동하기도 했죠. 홈트레이닝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하는 근육운동이라 몸이 좋아지는 것을 함께 느꼈어요. 자연스럽게 동호회가 형성됐어요.” 2021년 말부터 함께 달렸다. 달리니 병이 호전됐다. 홈트레이닝 멤버 18명으로 ‘탑시아’ 러닝크루도 만들었다. ‘Top-Sia(Sisters in Arpia)’는 ‘경기 용인 죽전 아르피아스포츠센터에서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여성들’이란 뜻이라고 했다. ‘즐겁게 욕심부리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할머니가 돼서도 달리자’는 모임이다. 매주 토요일 새벽 만나 1시간 함께 달리고 커피 마신 뒤 헤어진다. 신 씨는 5km부터 시작해 거리를 늘려갔다. 올 3월엔 2023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4시간 21분에 완주했다. 첫 풀코스 완주다.“극한의 고통이 있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어요. 보디빌딩대회와는 완전 다른 느낌이었죠.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도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게 마라톤입니다. 제 스스로가 너무 대견스러웠죠.”달리면서 몸이 다시 살아났다. 그는 “아직 가끔 어지러움증세을 느끼기도 하지만 달린 뒤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3개월 전부터 제대로 달리는 법도 배우고 있다. 3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온라인 카페 ‘오픈케어’에서 제공하는 달리기 교실에서 배우며 달리고 있다. 오픈케어는 회원들에게 달리기와 마라톤 철인3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오프라인에서 체계적인 훈련도 시켜주고 있다. 심 씨는 7월 30일 새벽 열린 오픈케어 오프라인 훈련에 참가해 2시간을 달렸다. 그는 “잘못된 자세로 체력만 믿고 달리다 보면 다칠 수 있다. 그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아프면 운동할 수 없고, 운동 못하면 몸이 아프다. 평생 달리기 위해 제대로 달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살면서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하지만 심 씨에게 대회출전은 절대적인 목표는 아니다.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했다.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보디빌딩대회에 출전했고, 달리다 보니 마라톤대회에 나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는 게 즐겁다. 향후 해외 마라톤대회 출전까지 계획하고 있다. 심 씨는 같은 나이대 여성들에게 ‘동기부여’도 주고 있다. 심 씨가 몸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을 지켜본 주변 여성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전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게 좋아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운동하고, 친구들하고 만나고, 아이들 돌보고…. 이런 삶이 즐거워요. 이렇게 살다 보면 앞으로 더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겨나지 않겠어요?”심 씨는 “언젠가 울트라마라톤, 트레일러닝도 하고 있을 수 있다. 즐거우면 도전하는 게 내 삶의 방식이다. 앞으로 재밌는 게 더 많이 생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성 전용 순환운동 인터벌트레이닝 센터에서 파트타임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심 씨는 웨이트트레이닝과 달리기, 등산을 번갈아 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주부인 심연수 씨(46)는 평소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약 10년 전부터 인터넷 블로그 ‘낸시의 홈짐’을 따라 홈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었고, 전문적인 웨이트트레이닝 PT(퍼스널 트레이닝)까지 받고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입상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식이요법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까지 걸렸다. 이를 걷기와 달리기로 극복해 지금은 마라톤 42.195km 풀코스까지 완주하는 ‘철녀’로 거듭났다. “집에서 몸을 만들다 보니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피트니스센터를 찾아가 전문가 PT를 받았죠. 근육을 키우면서 주변을 보니 크고 작은 보디빌딩 대회가 많았어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다소 놀라면서도 ‘나도 출전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2018년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심 씨는 1년여 뒤 대회 출전을 도와주는 피트니스센터로 옮겨 본격적으로 근육을 키웠다. 보디빌딩 생활체육 2급 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 몸이 급격히 변하는 것을 체감한 뒤 흥미를 느껴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2020년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에도 열린 한 보디빌딩 대회에서 여자부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몸 상태는 오히려 나빠졌다. 대회 출전을 위해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고 단기간에 근육을 키우려고 6개월 지속한 극단적 식이요법이 결과적으로 문제가 됐다. 그는 “대회가 끝난 뒤 일반식을 먹었더니 몸이 붓기 시작했다”고 했다. “몸에 이상이 생겨 고생했어요. 몸 좋아지라고 운동을 했는데 오히려 망친 셈이 됐죠. 지속가능한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무리한 것 같아요. 귀에서 진물이 나오고 잠도 못 이뤄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은 아주 늦게 받았어요. 골든타임을 놓쳤죠.” 심 씨는 “어지러워 걷기 힘들었다. 소주 3병 마시고 걷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병원에 2주가량 입원하는 등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무조건 많이 움직여야 한다”며 권유한 게 걷기와 달리기다. 마침 홈트레이닝 때 온라인으로 만나다 오프라인으로 모여 함께 운동하던 멤버들도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2021년 말부터 자연스럽게 함께 달렸다. 달리니 건강이 호전됐다. ‘탑시아’ 러닝크루도 만들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할머니가 돼서도 달리자’는 모임이다. 매주 토요일 새벽 만나 1∼2시간 달린다. 5km부터 시작해 거리를 늘려갔다. 올 3월엔 2023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4시간 21분에 완주했다. “극한의 고통이 있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어요. 보디빌딩 대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죠.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도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게 마라톤입니다. 저 스스로가 너무 대견했어요.” 3개월 전부터 전문가로부터 제대로 달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3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온라인 카페 ‘오픈케어’에서 제공하는 달리기 실기 교실이다. 오픈케어는 회원들에게 달리기와 마라톤, 철인3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오프라인에서 체계적인 훈련도 시켜주고 있다. 심 씨는 지난달 30일 새벽 열린 오픈케어 오프라인 훈련에 참가해 2시간을 달렸다. 그는 “잘못된 자세로 체력만 믿고 달리다 보면 다칠 수 있다. 그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아프면 운동할 수 없고, 운동 못 하면 몸이 아프다. 평생 달리기 위해 제대로 달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살면서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하지만 심 씨에게 대회 출전은 절대적인 목표는 아니다.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했다.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했고, 달리다 보니 마라톤 대회에 나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는 게 즐겁다. 향후 해외 마라톤 대회 출전까지 계획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 울트라마라톤, 트레일러닝도 하고 있을 수 있다. 즐거우면 도전하는 게 내 삶의 방식이다. 앞으로 재밌는 게 더 많이 생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성 전용 순환운동 인터벌 트레이닝 센터에서 파트타임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심 씨는 웨이트트레이닝과 달리기, 등산을 번갈아 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실내 체육시설이 문을 닫았다. 달리면서 잊어야 할 고민거리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설 이용에 제한이 생기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야외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김영수 차의과학대 생명과학과 교수(65)는 서울대 의대 교수 시절인 2020년 6월 서울대(SNU) 교수 건강달리기회(스누건달회)를 만들었다. 직접 달려보니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서울 뚝섬유원지 한강공원에서 만나 함께 달리고 있다. 큰비가 오거나 혹서, 혹한이 아니면 달린다.“2002년 서울대 의대로 왔는데 건물에 피트니스센터가 있었죠. 그래서 트레드밀에서 주 1, 2회 건강을 위해 달렸죠. 그렇게 15년 넘게 달렸는데 코로나19가 2020년 초 확산되는 바람에 실내 체육시설이 거의 다 문 닫았어요. 개인적으로 고민도 있었죠.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달렸는데 신세계를 만난 겁니다. 혼자 달리기 아까웠죠.”헬스클럽에서 길어야 10km를 달리던 김 교수는 야외로 나오면서 거리를 늘렸다. 실내에서 지루하게 달리다 야외로 나오니 달리는 게 상쾌하고 즐거웠다. 15km, 20km로 거리를 늘렸고 21.0975km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30km 이상 달리는 ‘장거리주’까지 소화한 뒤 42.195km 풀코스도 완주했다. 모두 혼자 이룬 것이다. 그는 “마라톤 칼럼 쓰는 ‘달리는 의사들’ 이동윤 전 원장 글을 다 읽었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 공부하며 달렸다”고 했다.풀코스 완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마의 30km’ 이후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 얘기할 사람 없지만 참고 끝까지 달려 완주했다는 성취감은 안 해본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김 교수는 “풀코스를 완주할 때마다 정신 근육이 하나씩 더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달리면 모든 고민도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올 초 2023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까지 3년도 안 돼 풀코스를 14회 완주했다.“교수들은 전반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아요. 그럼 제 나이쯤 되면 다 골골하죠. 조금이라도 일찍 달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달리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2020년 5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고, 한 달 뒤 스누건달회를 만들었습니다.”김 교수의 첫 풀코스 완주 기록은 5시간 8분대.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풀코스를 완주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했다. 마라톤의 진정한 의미는 풀코스를 완주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누건달회를 만든 목적도 서울대 교수들에게 풀코스 완주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였다.스누건달회 회원은 60여명. 김 교수는 “연구 때문에 시간 없는 교수들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운동”이라고 설득했다. 달리기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은 10명 안팎이지만 열성적인 교수들은 거의 매번 참석해 달리고 있다.특히 남효순 서울대 법학전문대 명예교수(67)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남 교수는 “달리니 건강해졌고 지금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기분”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당초 80세까지는 달리려고 했는데 이젠 100세까지 달려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남 교수는 2년 전 정년 퇴임한 뒤 책을 쓰면서 꾸준히 스누건달회에 나와 달리고 있다.김 교수는 교수들이 다 만족한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 7시 30분부터 2시간 정도 달리거나 걷고 커피 한잔하고 헤어진다. 집에 가면 오전 11시. 평소 같으면 아직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얼마나 건강한 삶인가”라고 했다.물론 마라톤이 쉽진 않았다. 스누건달회 회원들은 처음엔 3km도 달리기 쉽지 않았다. 훈련으로 5km, 10km, 20km로 늘렸고 이젠 풀코스를 완주한 교수들이 10명이 넘는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나를 포함 6명의 회원이 풀코스에 도전해 5명이 완주했다”고 했다. 건강 달리기만 하던 교수들에게 “풀코스를 달려야 진정한 마라토너”라고 설득해 이룬 결과다. 이 소식을 접한 뒤 그동안 스누건달회에 관심이 없었던 베테랑 마라토너 교수들도 합류하게 됐다. 마스터스마라토너의 꿈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 완주자도 있다. 올해부터 매년 봄과 가을 함께 대회에 출전하며 회원들에게 풀코스 완주기회를 주고 있다. 여자 교수들은 달리기보다는 걷는 것으로 대신한다. 2년 전 스누건달회에 가입한 채선미 최희승 간호대학 교수도 주기적으로 나와 걷고 있다.‘공부만 알던’ 교수들이 달리면서 삶의 태도도 바뀌었다. 김 교수는 “마라톤은 한마디로 정신 수양이다. 내가 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육체의 건강이 내 정신 건강하고 직결된다는 것을 체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풀코스를 완주한 뒤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 다소 곤란한 일이 벌어지면 두려운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젠 차근차근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평안함이 생긴다”고 했다.여재익 항공우주공학과 교수(53)도 달리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일찌감치 웨이트트레이닝 등 운동을 좋아했지만 달리진 않았다. 5km도 달려본 적이 없었다. 거리가 늘고 풀코스를 완주하자 많은 게 바뀌었다. 여 교수는 “근육운동과 전혀 다른 근육을 쓰다 보니 완전히 신세계를 경험했다. 더 건강해지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당연히 삶도 변했다”고 했다. 그는 “풀코스 완주 기록이 ‘서브스리’는 안 되지만 ‘서브 포(4시간 이내 기록)’에 만족한다”며 활짝 웃었다.박정민 사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53)도 혼자 15년 달리다 스누건달회가 창립되면서 함께 달리고 있다. 그는 “함께 하니 더 규칙적으로 달릴 수 있다. 함께 달리는 재미가 있다. 서로 응원하며 달리니 힘이 덜 든다”고 했다. 박 교수는 “마라톤을 통해 많이 배웠다. 아직 풀코스를 5시간 정도에 완주하지만 만족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풀코스를 2회 완주했다. 교수들은 “건강하니 공부(연구)도 더 잘 된다”고 입을 모았다.김 교수는 ‘마라톤 전도사’가 됐다. 올 3월 병원을 옮긴 뒤 차의과학대에 마라톤동호회를 만들고 있고, 스누건달회와 함께 달릴 계획이다. 김 교수는 평소엔 주 2, 3회 피트니스센터에서 고정식 자전거를 1시간 타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80세 넘어서까지 풀코스를 완주하겠다”는 그는 “이 좋은 것을 난 예순둘에 처음 완주했다. 다른 교수들은 더 빨리 입문해 풀코스 완주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김영수 차의과학대 생명과학과 교수(65)는 서울대 의대 교수 시절인 2020년 6월 서울대(SNU) 교수 건강달리기회(스누건달회)를 만들었다. 직접 달려 보니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서울 뚝섬유원지 한강공원에서 만나 함께 달리고 있다. 큰비가 오거나 혹서, 혹한이 아니면 달린다. “2002년 서울대 의대로 왔는데 건물에 피트니스센터가 있었죠. 그래서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주 1, 2회 건강을 위해 달렸죠. 그렇게 15년 넘게 달렸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020년 초 확산되는 바람에 실내 체육시설이 다 문을 닫았어요. 개인적으로 고민도 있었죠.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달렸는데 신세계를 만난 겁니다. 혼자 달리기 아까웠죠.” 헬스클럽에서 길어야 10km를 달리던 김 교수는 야외로 나오면서 거리를 늘렸다. 실내에서 지루하게 달리다 야외로 나오니 달리는 게 상쾌하고 즐거웠다. 15km, 20km로 거리를 늘렸고 21.0975km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30km 이상 달리는 ‘장거리주’까지 소화한 뒤 42.195km 풀코스도 완주했다. 모두 혼자 이룬 것이다. 그는 “마라톤 칼럼 쓰는 ‘달리는 의사들’ 이동윤 전 원장 글을 다 읽었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 공부하며 달렸다”고 했다. 풀코스 완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마의 30km’ 이후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 얘기할 사람이 없지만 참고 끝까지 달려 완주했다는 성취감은 안 해본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김 교수는 “풀코스를 완주할 때마다 정신 근육이 하나씩 더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달리면 모든 고민도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올 초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까지 3년도 안 돼 풀코스를 14회 완주했다. “교수들은 연구에 집중하느라 전반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아요. 제 나이쯤 되면 다 골골하죠. 조금이라도 일찍 달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달리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2020년 5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고, 한 달 뒤 스누건달회를 만들었습니다.” 스누건달회 회원은 60여 명. 김 교수는 “연구 때문에 시간이 없는 교수들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운동”이라고 설득했다. 달리기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은 10명 안팎이지만 열성적인 교수들은 거의 매번 참석해 달리고 있다. 특히 남효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67)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남 교수는 “달리니 건강해졌고 지금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기분”이라고 했다. ‘공부만 알던’ 교수들이 달리면서 삶의 태도도 바뀌었다. 김 교수는 “마라톤은 한마디로 정신 수양이다. 내가 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육체의 건강이 내 정신 건강하고 직결된다는 것을 체득했다”고 말했다. 남 교수 등 다른 교수들도 같은 생각이다. 김 교수는 “특히 풀코스를 완주한 뒤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 다소 곤란한 일이 벌어지면 두려운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젠 차근차근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평안함이 생긴다”고 했다. 스누건달회 회원들은 처음엔 3km도 달리기 쉽지 않았다. 훈련으로 5km, 10km, 20km로 늘렸고 이젠 풀코스를 완주한 교수가 10명이 넘는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나를 포함해 6명의 회원이 풀코스에 도전해 5명이 완주했다”고 했다. 건강 달리기만 하던 교수들에게 “풀코스를 달려야 진정한 마라토너”라고 설득해 이룬 결과다. 이 소식을 접한 뒤 그동안 스누건달회에 관심이 없던 베테랑 마라토너들도 합류하게 됐다. 마스터스 마라토너의 꿈 서브스리(3시간 이내 완주) 완주자도 있다. 올해부터 매년 봄과 가을 회원들과 함께 대회에 출전하며 풀코스 완주 기회를 주고 있다. 김 교수는 이젠 ‘마라톤 전도사’가 됐다. 올 3월 병원을 옮긴 뒤 차의과학대에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고 있고, 스누건달회와 함께 달릴 계획이다. 김 교수는 평소엔 주 2, 3회 피트니스센터에서 고정식 자전거를 1시간 타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80세 넘어서까지 풀코스를 완주하겠다”는 그는 “이 좋은 것을 난 예순둘에 처음 완주했다. 다른 교수들은 더 빨리 입문해 풀코스 완주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한마디로 ‘맨발걷기 열풍’이다. 맨발걷기가 건강 회복 및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국이 맨발걷기로 들썩이고 있다.경기도 성남시는 최근 공원에 ‘100세 건강 맨발 황톳길’ 6곳을 조성해 9월 말까지 차례로 개장한다고 발표했다. 수진, 대원, 위례, 중앙, 율동공원과 구미동 공공공지에 조성되는데 총사업비가 34억5100만 원이다. 수정구 수진동 수진공원 내 맨발 황톳길이 7월 10일 개장했다. 수진공원 맨발 황톳길은 길이 525m, 폭 1.5m 규모로 조성됐다. 7월 11일엔 중원구 하대원동 대원공원 내 400m 길이의 맨발 황톳길이 시민에게 개방됐다.경기 하남시는 최근 미사 강변 뚝방길에 4.9km 모래 맨발길을 조성했다. 7월 15일 울산시에선 태화강 황토 맨발길이 개장됐다. 하늘과 땅, 사람이 맞닿는 생명의 땅 전남 무안의 황토갯벌에서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갯벌축제’를 벌이고 있다.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만들어 맨발걷기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전북 전주시의회는 2월 ‘전주시 도시공원 맨발걷기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서울시, 인천시, 경기 화성시 용인시, 전북 남원시 장수군, 광주시 서구 등도 비슷한 조례를 발의해 통과시켰거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회에서도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맨발걷기 활성화를 위해 대표 발의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심사를 받고 있다.맨발걷기는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2020년 9월 24일 ‘’를 시작으로 ‘(2020년 9월 26일 dongA.com), ‘’(2021년 5월 11일 dongA.com), ‘’(2021년 7월 3일 dongA.com). ‘’(2022년 9월 10일 dongA.com)….특히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쓴 칼럼 전립선암 말기 환자였던 박성태 씨(74)가 경기 남양주 와부 금대산을 맨발로 걷고 회복됐다는 소식이 dongA.com을 통해 알려진 뒤 전국적으로 맨발걷기 열풍이 시작됐다. 서울 대모산 맨발걷기숲길힐링스쿨엔 3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열리는 스쿨엔 평소 30~50여명이 참여하는데 기사가 나간 뒤 거의 10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곳이면 언제나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16년부터 서울 대모산에서 맨발걷기숲길힐링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71)은 “박성태 씨 소식이 알리지면서 주말 산행에 맨발로 걷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 수도권 북한산과 관악산은 물론 영남알프스, 제주도 한라산과 오름에서도 맨발로 걷는 인파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 소셜네트어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다.맨발걷기의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관련 책을 다수 출간한 박 회장은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와 접지효과(Earthing)로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지표면에 놓여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 다양한 물질이 발바닥의 각 부위와 상호마찰하고, 땅과 그 위에 놓인 각종 물질이 발바닥의 각 반사구를 눌러준다. 발바닥 자극은 오장육부 등 모든 신체기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고대 중국과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졌다.접지는 맨발로 땅을 밟는 행위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황톳길이 가장 좋다. 우리 몸에 30~60 밀리볼트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맨발로 땅을 만나는 순간 0볼트가 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성화되는데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가 빠져나간다. 박 회장은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암 등 각종 질병이 활성산소의 역기능 탓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접지가 활성산소 제거에 효과적”이라며 “박 씨도 접지의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했다.일부에서는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반박하지만 박성태 씨를 비롯해 최근 맨발걷기로 건강을 되찾은 사례는 많다. 박 씨는 지난해 1월 말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맨발걷기로 2개월 만에 건강을 되찾았다. 박 씨 스토리다.“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정밀조사 결과 PSA(전립선 특이 항원) 수치가 935 ng/ml라는 겁니다. PSA 4 ng/ml 이하가 정상인데…. 전이가 돼 흉추 9, 10번이 시커멓게 썩었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더 치료가 불가능하니 그냥 집에서 운명대로 살다 가시라고 했어요.”청천벽력이었다. 포스코에서 오래 일했고 서울교통교사 연수원에서 교수로 일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산을 찾았던 그였다. “대한민국에 내가 오르지 않은 산이 없다”고 할 정도로 등산에 열성적이었다. 충격에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딸 민정 씨(44)가 박동창 회장이 2021년 쓴 ‘맨발로 걸어라’란 책을 사다 줬다. ‘맨발로 걸으면 암도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박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고 집 근처 금대산을 찾아 맨발걷기를 시작했다.처음엔 맨발과 팔로 기어서 올랐다. “팔다리에 힘이 없어 한 100~200m 정도도 못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 기어오르니까 다리에 힘이 조금씩 생겼다. 그는“한달 정도 돼서는 왕복 4km를 걸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 2시간이면 다녀오는 길을 저는 4,5시간 걸었다. 그렇게 맨발로 걷고 2달여 만에 병원에 갔더니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지난해 4월 29일 검사에서 PSA 수치가 0.059ng/ml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MRI(자기공명촬영) 결과 새까맣던 흉추도 하얗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말기암 판정 5개월여 뒤인 7월 29일 검사에선 PSA 수치가 0.008 ng/ml였다. 그는 “그 때 의사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고 했다. 박 씨가 말기암을 극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금대산은 맨발걷기 명소가 됐다. 박 씨가 걷는 새벽에 100여명, 하루 전체적으로는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대산을 맨발로 걷고 있다. 지역주민 외에 타지에서도 찾고 있다. 박 씨는 요즘엔 매일 금대산 황톳길 8km를 맨발로 4~5시간 걷고 있다.박 씨와 거의 동시에 금대산을 걷기 시작한 74세 남성은 뇌경색 수술 후유증으로 온 마비와 언어 장애가 개선됐다. 만성 습진으로 머리에서 진물까지 흐르던 정영신 씨(80)는 맨발걷기 5개월 만에 정상 피부를 되찾았다.2006부터 대전 계족산 황톳길을 직접 깔아 거의 매일 맨발로 걷고 달리는 ‘마라톤 마니아’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4)은 “혈색이 좋아졌고 친구들로부터 젊어졌다는 소릴 듣는다”고 했다. 조 회장은 “술도 많이 마시는데 다음날 새벽 맨발로 달리고 나면 모든 피로가 날아간다”고 했다.이런 맨발걷기 열풍에 KBS는 7월 12일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맨발로 걸으면 생기는 일’을 약 50분간 다뤘다. KBS는 4주간 맨발걷기를 한 뒤 몸에서 생기는 변화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공격해 없애준다는 ‘NK세포가 20~30배 증가’했다는 결과까지 보여줬다.박동창 회장은 이런 맨발걷기 열풍에 “맨발걷기가 몸에 좋기는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며 주의 사항을 강조했다.먼저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 걷기지만 맨발로 산을 오르는 운동이기 때문에 스트레칭과 각 관절을 돌려주는 준비운동을 해야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시선을 항상 1m 앞을 주시하라. 맨발로 걷기 때문에 돌 조각이나 유리 조각 등 위험물을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요즘 가을이라 밤송이가 떨어져 있어 밤 가시에 더 유의해야 한다. 셋째, 발을 질질 끌지 말고 또박 또박 걸어야 한다. 피부 손상을 막을 수 있다. 넷째, 사람들이 걷는 길만 걸어라. 옆길로 새면 가시 등 위험 물질을 밟아 다칠 수 있다. 다섯째, 파상풍예방접종을 맞아라. 혹 쇳조각 같은 것을 밟을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는 게 좋다. 파상풍예방접종은 10년에 한 번만 맞으면 된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근육 운동으로 체중이 10kg이 넘게 늘었다. 44사이즈도 컸던 마른 비만의 몸매가 탄탄한 체형으로 바뀌었다. 6월 초 열린 미스터&미즈코리아 여자부 보디피트니스 –168c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유경희 제주스포츠클럽 총무팀장(43)은 근육 운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애들 키울 때 다들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애들 잘 때 한두 잔 마시던 맥주가 어느 순간 소주 두세 병으로 늘었어요. 그런데 체중은 40kg도 안 될 정도로 말랐죠. 배는 좀 나온 마른 비만이었습니다. 아동복 큰 사이즈를 입어야 맞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말랐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어요.”2016년이었다. 먼저 요가를 시작했다. 유 팀장은 “요가의 고난도 동작을 하려면 근력이 필요했다. 전 근육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고 했다. 근육 운동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나날이 몸이 바뀌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 너무 신기하면서도 좋았다”고 했다. 요가와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하다 이젠 근육 운동에만 집중하고 있다.난생처음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했다. 초등학교 때 잠시 육상선수 생활을 했지만 운동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유 팀장은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새벽과 퇴근 뒤 저녁, 2회로 나눠 운동을 하고 있다. 새벽엔 공복에 달리고 걷는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을 빼주고 저녁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웠다. 공복에 달릴 때 지방이 가장 잘 탄다. 평상시엔 새벽 유산소 운동 1시간, 저녁 근육 운동 시간이 2시간. 대회를 준비할 땐 새벽 유산소 운동 1시간 30분, 저녁 근육 운동 2시간 30분에 유산소 운동 1시간 30분 추가.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지방을 완전히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유 팀장은 무조건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운동을 쉬지 않는다. 그는 “휴일엔 피트니스센터 시간에 맞춰 늦잠도 자며 여유 있게 운동한다”고 했다. 집도 ‘작은 헬스장’처럼 꾸며왔다. 각종 덤벨에 벤치 등 근육을 만두는 기구가 있어 집에서도 틈나는 대로 운동하기도 한다.“어느 순간 몸이 완전히 탈바꿈했죠. 2018년 제주도 대회에 처음 비키니 부문에 출전해 2위를 했어요. 몸도 좋아지고 대회에서 입상도 하니 더 재미가 붙었어요. 그때부터 대회 출전도 꾸준히 했습니다.”초장기엔 근육을 집중해서 평가하는 피지크 부문에 나갔다. 그런데 제주도보디빌딩협회 회장이 보디피트니스 부문으로 바꾸길 권유해 바꿨다. 보디피트니스는 근육보다는 근육과 여성미의 조화에 비중을 둬 평가한다. 2019년부터 보디피트니스 부문에 출전했고 2020년도 미스터코리아&미즈코리아 +163c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1년 제51회 미스터 YMCA 대회에서 +163cm에서 우승, 지난해 제15회 미즈피트니스대회 +163cm에서도 정상에 올랐다.유 팀장은 한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많은 나이에 몸이 좋아지자 ‘약을 먹은 것 아니냐’는 등 황당한 댓글이 달린 것이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해외 사이트라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역으로 내 몸이 그만큼 좋다는 시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웃었다. 유 팀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도핑테스트를 받고 있는 대한보디빌딩협회 주최 미스터&미즈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며 ‘나는 약물 안 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는 요즘 상대적으로 상체보다 약한 하체 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유 씨의 목표는 미스터&미즈코리아에서 그랑프리인 미즈코리아가 되는 것이다. 각 부문 우승자들이 경쟁하는 파이널에서 올해도 고배를 든 그는 “내년이 있고, 내 후년도 있다. 언젠간 꼭 미즈코리아가 되겠다”고 말했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젠 보디빌딩계에선 ‘유명 인사’가 됐다. 피트니스센터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그 기분 알아요? 남들이 저를 인정해준다는 느낌…. 과거엔 ‘유경희’하면 그냥 ‘유경희’일 문이었는데 이젠 ‘유경희’ 하면 ‘아 그 사람’이란 평가가 나와요. 제가 근육 운동을 안 했으면 누가 절 알아보겠어요. 근육을 만든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직장 다니며 운동하기가 쉽진 않을 터. 유 팀장은 “회식 때 술도 마셔야 하고 과식할 때도 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반성하는 의미로 운동을 더 많이 했다”고 했다. 대회를 앞두고도 대부분 보디빌더들이 실행하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높이는 식이요법도 하지 않는다.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대신 운동 시간을 늘린다. “햄버거를 먹을 때 그냥 기본 두세 개 정도는 먹는다”는 그는 “차라리 먹고 운동하면 힘도 넘치고 활기차다. 안 먹고 운동하면 힘도 없어 힘들다. 잘 먹고 훈련을 더 많이 하는 게 제겐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술은 줄였을까? 유 팀장은 “막걸리는 가끔 마신다”고 했다. 하지만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금주라고.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집안일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운동 마치고 집에 가면 오후 11시에서 12시. 남편이 아이들을 다 봐준다고 했다. 유 팀장은 “큰 애가 중학교 1학년, 작은 애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남편이 잘 봐줬다. 너무 고맙다”고 했다. 주중 저녁엔 남편이, 주말엔 유 팀장이 아이들과 지낸다고. 그는 “집에 헬스 기구가 많아서인지 아이들도 제가 운동하는 것에 크게 불만은 없다”고 했다.유 팀장의 평소 체중은 50kg 후반대. 대회를 앞두곤 50kg 초반대를 유지한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우면 근육량이 증가해 체중이 증가한다. 물론 규칙적으로 근육 운동을 하며 적당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운동생리학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면 운동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와 근육량이 증가해 대사량이 높아져 다이어트 효과도 볼 수 있지만 마른 체형의 경우 꾸준한 근육 운동은 체중을 증가시킬 수 있다.유 팀장은 말했다. “제가 서른여섯에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해서도 우승했어요. 근육 운동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나이든 시작해 꾸준히만 하면 멋진 몸이 됩니다. 여러분도 시작해 보세요. 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죠. 시작이 중요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애들 잘 때 한두 잔 마시던 맥주가 어느 순간 소주 두세 병으로 늘었다. 그런데 체중이 44사이즈도 클 정도로 말랐다. 배는 좀 나온 마른 비만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달 초 열린 미스터&미즈 코리아 여자부 보디피트니스 168c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유경희 제주스포츠클럽 총무팀장(43)은 근육 운동의 매력에 빠져 있다. 그는 2016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해 지금은 보디빌딩계에서 알아주는 ‘몸짱’이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말랐어요. 아동복 큰 사이즈 입어야 맞을 정도였죠. 먼저 요가를 시작했는데 요가의 고난도 동작을 하려면 근력이 필요해요. 전 근육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죠. 근육 운동은 완전히 신세계였어요. 나날이 몸이 바뀌는 게 눈에 확 들어왔어요. 신기하고도 좋았죠. 이젠 근육 운동만 하고 있죠.” 난생처음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했다. 초등학교 때 잠시 육상선수 생활을 했지만 운동은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유 팀장은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새벽과 퇴근 뒤 저녁, 2회로 나눠 운동을 하고 있다. 새벽엔 공복에 달리고 걷는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을 빼주고, 저녁 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웠다. 공복에 달릴 때 지방이 가장 잘 탄다. 평상시엔 새벽 유산소 운동 1시간, 저녁 근육 운동 2시간. 대회를 준비할 땐 새벽 유산소 운동 1시간 30분, 저녁 근육 운동 2시간 30분에 유산소 운동 1시간 30분 추가.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지방을 완전히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조건 오전 5시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토·일요일에도 운동을 쉬지 않는다. 그는 “휴일엔 피트니스센터 시간에 맞춰 늦잠도 자며 여유 있게 운동한다”고 했다. “몸이 완전히 탈바꿈했죠. 2018년 제주대회에 나가 처음 비키니 부문에서 2위를 했어요. 몸도 좋아지고 대회에서 입상도 하니 더 재미가 붙었어요. 그때부터 대회 출전도 꾸준히 했습니다.” 초창기엔 근육을 집중해서 평가하는 피지크 부문에 나갔다. 그런데 제주도보디빌딩협회 회장이 보디피트니스 부문으로 바꾸길 권유해 바꿨다. 보디피트니스는 근육보다는 근육과 여성미의 조화에 비중을 둬 평가한다. 2019년부터 보디피트니스 부문에 출전했고 2020년도 미스터코리아&미즈코리아 +163c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1년 제51회 미스터 YMCA 대회 +163cm 부문 우승, 지난해 제15회 미즈피트니스대회 +163cm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유 팀장은 한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많은 나이에 몸이 좋아지자 ‘약을 먹은 것 아니냐’는 등 황당한 댓글이 달린 것이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해외 사이트라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역으로 내 몸이 그만큼 좋다는 시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웃었다. 유 팀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도핑테스트를 받고 있는 대한보디빌딩협회 주최 미스터&미즈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며 ‘나는 약물 안 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유 팀장의 목표는 미스터&미즈코리아에서 그랑프리인 미즈코리아가 되는 것이다. 각 부문 우승자들이 경쟁하는 파이널에서 올해도 고배를 든 그는 “내년이 있고, 내후년도 있다. 언젠간 꼭 미즈코리아가 되겠다”고 말했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젠 보디빌딩계에선 ‘유명 인사’가 됐다. 피트니스센터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그는 “근육을 만든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했다. 직장 다니며 운동하기가 쉽진 않을 터. 유 팀장은 “회식 때 술도 마셔야 하고 과식할 때도 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반성하는 의미로 운동을 더 많이 했다”고 했다. 대회를 앞두고도 대부분 보디빌더들이 실행하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높이는 식이요법도 하지 않는다.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대신 운동 시간을 늘린다. 이렇게 하면서도 우승했다. 유 팀장은 말했다. “제가 서른여섯에 시작해서도 우승했어요. 근육 운동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나이든 시작해 꾸준히만 하면 멋진 몸이 됩니다. 여러분도 시작해 보세요.”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요즘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빠져 있는 장희주 씨(32)는 초등학교 시절을 중국 국제학교에서 보내면서 ‘운동 본능’을 키웠다. 수영과 테니스를 배웠고 학교에서 축구와 터치 럭비를 즐겼다. “축구팀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공을 차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축구와 럭비는 달릴 기회가 많아 좋았다”는 그는 “훈련 때 땀 흘린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찍 배웠다. 몸을 맘껏 움직인 뒤 오는 희열이 너무 좋다”고 했다.장 씨는 6월 3일 경남 거제시에서 열린 제10회 거제 100K 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km 여자부에서 우승했다. 최장 거리인 100km는 실제로는 106.9km인데다 누적 상승고도가 5900m인 지옥의 레이스다. 장 씨는 18시간 18분 19초의 사투 끝에 정상에 올랐다. 그는 “ 산을 달리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2021년 친구가 권해서 트레일러닝대회에 나갔는데 바로 그 매력에 빠졌어요. 첫 대회 뛰자마자 이건 오래 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바쁜 와중에도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는데 트레일러닝이 온 겁니다.”하와이 오하우섬 일대를 달리는 7마일(11.3km)에 참가했다. 5마일(8km)에도 나갔다. 하와이에서 100마일(160km)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는 HURT(하와이 울트라 러닝 팀)가 단계적으로 여는 대회다. 그해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 10월 강원 정선 하이원에서 열린 스카이러닝(현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42.2km도 완주했다. 6시간 8분 25초로 여자부 8위를 차지했다.“산 내리막을 달릴 때 가장 희열을 느낍니다. 내리막을 달릴 땐 5, 6걸음 앞까지 예상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온전히 제게만 집중할 수 있어요.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와요. 일상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장 씨는 국내 트레일러닝에서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열린 성남누비길 64k에선 11시간 32분 12초로 여자부 2위를 했다. 올 4월 열린 서울 울트라 랠리 22km에서는 3시간 18분 41초로 여자부 정상에 올랐다. 4월 말 열린 코리아 50k 52.5km에서 8시간 34분 1초로 3위를 했고 거제 100km에서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한 장 씨는 “학창 시절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피구였다”고 회상한 그는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습관들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그는 2019년 하와이대 대학원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야외 스포츠에 빠졌다. 바닷속을 탐험하는 프리다이빙을 가장 즐겼다. 그는 “바닷속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바다에 감싸져 지구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트레일러닝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 씨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든 산의 멋진 풍광 속에서 딴생각 없이 달릴 수 있어 좋다. 자유롭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 더 좋다”고 트레일러닝을 즐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결과도 따라온다”고 했다. 그는 “대회 출전 목표를 정하고 땀을 흘리니까 제가 성장하는 게 보인다. 그런 재미가 더 트레일러닝에 빠지게 만든다”고 했다.사실 장 씨는 한국에 온 뒤에 다이빙을 더 많이 했다. 그런데 다이빙을 하려면 바닷가로 나가야 해 시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쉽게 갈 수 있는 산으로 향한 것이다. 장 씨는 관악산 우면산 도봉산 북한산 등 수도권 인근 산은 다 달려봤다. “산의 푸르름 속에서 바위, 꽃나무 등을 보며 달리는 게 좋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지하철만 타면 언제든 산으로 가 달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0km도 훈련 삼아 달렸고, 북한산 한 바퀴 63km, 서울 한 바퀴 156km도 달렸다.초창기엔 혼자 달리던 그는 지금은 올댓트레일, 북한산통나무트레일러닝클럽이란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달리고 있다. 서로 응원해주며 달리는 게 즐겁고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제에서의 좋은 결과도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다”고 했다. 평일엔 틈나는 대로 10~20km, 주말에는 30~40km 장거리를 달린다. “거제 100km를 준비할 때 훈련을 가장 많이 달린 주에는 125km를 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대회 거리의 10~15%를 더 달리는 게 훈련 목표”라고 했다.국내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 조만간 중국 선전 국제 초등학교 교사로 떠나는 그는 오른쪽 팔에 도봉산을 타투로 그려 넣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중국 선전 국제학교를 택한 것도 트레일러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홍콩에 트레일러닝 대회가 많다. 선전 바로 옆이라 언제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했다.국내에서 영어 강사를 하던 장 씨는 무조건 외우기를 강요하는 한국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중국으로 떠나게 됐다. 그는 “교육이라는 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줘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질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데 전혀 바뀌지 않았다. 호기심은 없고 그냥 외우고 시험만 보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장 씨의 목표는 하와이 HURT 100마일 대회 완주. 그는 “이 대회는 99%가 산이고 1%만이 도로다. 온전히 산에서 그리고 처음 트레일러닝을 접한 곳에서 첫 100마일을 완주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HURT 100마일 대회는 신청한다고 다 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회 조직위원회 추첨에 당첨돼야 달릴 수 있다. 그는 “내년엔 친구들 달리는 것 지원해주고 그다음 해에 출전할 예정이다. 하늘이 도와줄 것”이라며 웃었다.그는 산을 잘 달리기 위해 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보디웨이트(몸으로 하는 근육운동)로 피워도 키우고 있다. 그래야 부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지난달 3일 경남 거제시에서 열린 제10회 거제 100K 국제트레일러닝대회. 최장 거리인 100km는 실제로는 106.9km인 데다 누적 상승 고도가 5900m인 지옥의 레이스다. 이 부문 여자부에서 18시간 18분 19초로 우승한 장희주 씨(32)는 요즘 산을 달리는 재미에 빠져 있다. 그는 “산을 달리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2021년 친구가 권해서 트레일러닝대회에 나갔는데 바로 그 매력에 빠졌어요. 첫 대회를 뛰자마자 이건 오래해 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바쁜 와중에도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는데 트레일러닝이 온 겁니다.” 하와이 오하우섬 일대를 달리는 7마일(약 11.3km)에 참가했다. 5마일(약 8km)에도 나갔다. 하와이에서 100마일(약 161km)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는 하와이 울트라 러닝 팀(HURT)이 단계적으로 여는 대회다. 그해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 10월 강원 정선 하이원에서 열린 스카이러닝(현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42.2km도 완주했다. “산 내리막을 달릴 땐 5, 6걸음 앞까지 예상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온전히 제게만 집중할 수 있어요.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와요. 물론 빨리 뛸 때 희열도 느낍니다.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장 씨는 초등학교 시절을 중국 국제학교에서 보내면서 ‘운동 본능’을 키웠다. 수영과 테니스를 배웠고 학교에서는 축구와 터치 럭비를 즐겼다. “축구와 럭비는 달릴 기회가 많아 좋았다”는 그는 “훈련 때 땀 흘린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일찍 배웠다”고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한 장 씨는 “학창 시절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피구였다”고 회상한 그는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습관들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19년 하와이대 대학원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야외 스포츠에 빠졌다. 바닷속을 탐험하는 프리다이빙을 가장 즐겼다. 그는 “바닷속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바다에 감싸져 지구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트레일러닝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 씨는 “산의 멋진 풍광 속에서 딴생각 없이 달릴 수 있어 좋다. 자유롭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 더 좋다”고 트레일러닝을 즐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관악산 우면산 도봉산 북한산 등 수도권 인근 산은 거의 다 달려봤다. 그는 “서울에서는 지하철만 타면 언제든 산으로 가 달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0km도 훈련 삼아 달렸고, 북한산 한 바퀴(63km), 서울 한 바퀴(156km)도 달렸다. 이런 열정 덕분일까. 장 씨는 국내 트레일러닝에서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열린 성남누비길 64K에선 11시간 32분 12초로 여자부 2위를 했다. 올 4월에 열린 서울 울트라랠리 22km에서는 3시간 18분 41초로 여자부 정상에 올랐다. 4월 말 열린 코리아 50K 52.5km에서 8시간 34분 1초로 3위를 했고, 거제 100km에서 다시 정상에 섰다. 초창기엔 혼자 달리던 그는 지금은 올댓트레일, 북한산통나무트레일러닝클럽이란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달리고 있다. 서로 응원해주며 달리는 게 즐겁고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제에서의 좋은 결과도 많은 분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평일엔 틈나는 대로 10∼20km, 주말에는 30∼40km 장거리를 달린다. “거제 100km를 준비할 때 가장 많이 달린 주에는 125km를 내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대회 거리의 10∼15%를 더 달리는 게 훈련 목표”라고 했다. 장 씨의 목표는 HURT 100마일 완주. 그는 “이 대회는 99%가 산이고 1%만 도로다. 온전히 산에서 그리고 처음 트레일러닝을 접한 곳에서 첫 100마일을 완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산을 잘 달리기 위해 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보디웨이트(몸으로 하는 근육운동)로 파워도 키우고 있다. 그래야 부상을 막고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경기도 분당검푸마라톤클럽(이하 검푸)에서 만난 친구 3인방이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걸어서 돌았다. 지난해 1월 시작해 1년 반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강종수 박동근 씨(이상 69), 유병복 씨(70)는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약 36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걸었다. 동해안 해파랑길(750km), 남해안 남파랑길(1470km), 서해안 서해랑길(1800km), DMZ 평화의 길(524km) 등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조성한 코리아 둘레길은 4544km이지만 위험한 길, 통행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길 등을 제외하고 3600km를 걸었다. 하루 많게는 45km, 적게는 21km를 걸었다.이들은 6월 16일 경기도 문산을 출발해 열흘간 강원도 고성까지 약 350km를 함께 걷는 것으로 대한민국 한 바퀴를 완보했다. 지난해 1월 10일부터 24일까지 동해안길, 4월 11일부터 23일까지 남해안길, 11월 14일부터 23일까지 서해안길을 걷고 이번에 대장정을 마친 것이다. 사실 올 1월 마치려고 했지만 박 씨가 지난 겨울 추운 날씨에 운동하다 넘어져 오른쪽 발목 인대 파열과 정강이뼈 골절상을 당하는 바람에 늦어졌다. 박 씨는 “춥고 선선한 날씨에 걸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무더운 날씨에 걸어 미안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도 3인방은 “무사히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걸어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검푸 회장을 했던 창용찬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원장(68)도 3인방과 일부 구간을 함께 걸었다. 이들은 2021년 말 망년회를 겸해 막걸리를 한잔하다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건강과 우정을 다지며 ‘두 발로 한반도 둘레길 완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유 씨와 박 씨가 “어떻게 걷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강 씨가 “걸어야 대한민국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셋은 오랫동안 마라톤으로 단련된 체력이 바탕이 돼 거뜬히 대한민국 한 바퀴를 완보했다. 유 씨는 “어떻게 걸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걷으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자연을 제대로 느끼면서 걸었다”고 했다. 자전거 타고 돌자고 주장했던 유 씨는 “바다와 산, 들 등 대한민국 동해안을 그대로 보고 느꼈다. 자전거를 탔다면 못 느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박 씨도 “안 해보면 모른다. 걸어서 건강도 챙겼지만 같은 뜻을 가진 동년배와 함께 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았다. 누가 이렇게 함께 걸어주겠나?”고 했다. 강 씨는 체중감량을 위해 1999년 달리기 시작했다.“그해 9월 한 하프마라톤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그 대회 완주를 목표로 시작했어요. 체중이 84kg이나 나가서 살도 뺄 생각도 있었죠. 달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달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러너스 하이(고통스러운 순간을 참고 운동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를 마라톤 시작 몇 개월 만에 느꼈어요. 그러니 달리기가 더 재밌어졌고 어느 순간 일상이 됐습니다. 달리기는 무엇보다 시간 날 때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좋아요.” 2000년 검푸에 가입했고 그해 4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한 뒤 지금까지 풀코스만 100회 넘게 완주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013년 기록한 3시간11분. 마라톤 시작 1년여 만에 14kg을 감량했고 지금까지 70kg을 유지하고 있다.“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철인3종을 병행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킹코스(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3회 완주했죠. 그 이후엔 올림픽코스를 완주하긴 했지만 킹코스는 참가하지 않았어요.” 킹코스 최고기록은 13시간 30분. 강 씨는 2003년 세계 최고로 불리는 보스턴마라톤에도 다녀왔다. 100km 울트라마라톤에도 여러 차례 참가한 철각이다. 요즘은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서울 둘레길(157km), 북한산 둘레길(65km),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 경기도 주변 수도권엔 광교산과 청계산 등 달릴 수 있는 산이 많이 있어요. 시간만 나면 검푸 회원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달리고 있습니다.” 강 씨는 “80세까지는 풀코스를 제가 정한 기록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강 씨는 지난해에도 3시간 20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유 씨는 친구 따라 2002년 마라톤에 입문했다.“평소 건강을 위해 조깅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잘못할 것이라고 여긴 친구가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하는 겁니다. 명문고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였죠. 속으로 ‘쟤도 달리는데 내가…’ 하는 심정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좋았습니다.” 건강도 챙겼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 됐다. 검푸 회원들과 어울려 풀코스를 40회 이상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2006년 기록한 3시간19분. 유 씨는 2006년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도 완주했다. 유 씨는 철인3종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했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약 42km)도 했고 북수사도북 오산종주도 하는 등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박 씨도 건강을 위해 마라톤에 입문했다.“술을 좋아하다 보니 체중이 많이 나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부터 혼자 연습하다 2003년 한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출전해 고생한 뒤 2004년 검푸에 가입해 회원들과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체중은 10kg이 빠진 65kg.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7분이 개인 최고기록. 풀코스를 30회 넘게 달렸다. 그는 “330(3시간30분 이내기록)하려고 욕심 부리다 좀 무리했더니 고관절에 이상이 왔다. 그 다음부터는 건강마라톤으로 즐기면서 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씨는 환갑기념으로 풀코스를 달린 뒤에는 하프코스 등 짧은 코스를 즐겁게 달리고 있다. 2021년 1월 후두암 1기 판정을 받은 그는 수술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운동하고 있다. 박 씨도 강 씨, 유 씨와 함께 수도권 인근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전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 건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 다음 날에도 동네 뒷산을 올랐습니다. 전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육체가 버텨주지 못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이들 3인방은 100세 시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매일 운동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강 씨는 월 200~300km를 달린다.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포함한 거리다. 친구들과 등산도 한두 차례 한다. 유 씨도 매일 아내와 함께 10km를 걷거나 달리고 있다. 등산도 자주 한다. 박 씨는 매일 아침 10km를 달린다. 달리는 것을 포함해 하루 2만 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몸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몸이 건강해야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3인방은 “이제는 10일 이상 걷는 것을 자제할 생각”이라고 했다. 2박 3일, 3박 4일 섬이나 산에 가서 걷겠다고 했다. “우린 행운아입니다. 체력 되죠, 시간 되죠, 나이도 비슷합니다. 은퇴한 뒤 이렇게 어울려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 있나요? 100세 시대 이렇게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한 뒤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정년퇴직 제도에 따라 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일자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30~40년이나 남은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검푸 3인방이 펼치는 다양한 ‘걷기 프로젝트’가 관심을 끌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9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발탁된 장미란 용인대 체육학과 교수(39)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첫 차관이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된 건 박근혜 정부 때의 박종길(사격), 문재인 정부 때의 최윤희(수영) 전 차관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인데 박 전 차관과 최 전 차관은 아시아경기 메달리스트다. 장 차관은 1977년 당시 39세이던 서석준 경제기획원 차관 이후 최연소 차관이다. 선수 시절 ‘역도 여제’로 불렸던 장 차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4차례 우승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정상에도 오르면서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장 차관은 비인기 종목 선수와 스포츠 꿈나무를 후원하기 위해 2012년 ‘장미란 재단’을 설립했다. 장 차관 발탁은 대통령실 내에서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은 장 차관을 두고 “대학교수이고 재단을 통해 후학도 육성하며 현장과 이론을 겸비했다”며 “문화 쪽은 BTS 등이 휘어잡고 있는데 체육행정에 이런 분이 새바람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고 인선 취지를 설명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장 차관 인선에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추천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김 실장이 인선에 힘을 실었다는 게 더 적합한 표현 같다”며 “(장 차관이) 전문성뿐 아니라 소통 능력도 좋아 업무 수행을 잘할 수 있을 거라 (김 실장이)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장 차관은 4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참석한 국가보훈처 주최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 출범식에 참석한 바 있다. ‘히어로즈 패밀리’는 전몰·순직 군경 자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장 차관은 체육 분야 멘토를 맡았다. 장 차관은 “차관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체육인들의 복지를 살피고 위상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생활체육을 통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