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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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중현 논설위원입니다.

sanjuck@donga.com

취재분야

2026-04-12~2026-05-12
칼럼100%
  • 文정부 부동산정책은 어떻게 離婚을 줄였을까[오늘과 내일/박중현]

    서구 여러 나라에서 이혼이 급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삶을 헤집어놓은 코로나19 탓이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외출까지 줄어 가족 간 대면접촉 시간이 길어졌다. 부부가 오래 집에 함께 있다 보면 ‘음식물 쓰레기를 누가 버릴 건가’ 같은 작은 문제도 큰 충돌로 번지기 쉽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 ‘코로나 블루’가 분노조절이 안 되는 ‘코로나 레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 “그럼 이혼해”란 말이 튀어나올 수 있다. 그래서 ‘코비디보스(Covid+divorce)’란 말까지 생겼다.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이 스트레스가 높아져 서로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인의 1인당 주거면적은 서구 선진국은 물론이고 일본에 비해서도 좁은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정 격리’ 스트레스도 더 높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방문해 “부부와 어린아이 같은 경우엔 2명도 가능하겠다”고 한 공공임대아파트 넓이는 44m²(전용면적 기준)로 주거기본법 4인 가족 최저주거기준 43m²가 넘지만 2011년 만든 이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돼 왔다. 좁은 공간과 스트레스가 문제라면 한국은 이혼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아야 한다. 집값 급등도 이혼을 부추기는 동인이다. 최석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3년 전 ‘전세 및 매매 가격 변동이 이혼율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냈다. 1997∼2014년 주택 실거래가와 이혼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 논문의 결론은 ‘한국인은 집값이 오를 때 이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집값이 상승하면 이혼해 나눠 가질 재산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자기 몫이 줄어 이혼을 늦추거나 보류하게 된다. 자산의 76%를 부동산, 특히 집으로 갖고 있는 한국인의 특성이다. “전처와 살던 강남 아파트 값이 20억 원을 넘은 뒤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지인의 얘기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값이 크게 오른 올해 한국에서 이혼이 줄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사건 건수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 넘게 감소했다고 한다. 성장률이 높은 시기엔 이혼이 줄고,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불황(不況) 이혼’이 증가한다는 통계와도 정반대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9만1160건이던 이혼 건수가 경제 충격이 본격화한 1998년 11만6294건으로 28%나 폭증했다. 밖으로부터 위협이 닥치면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한국인의 품성이 발현돼 이혼이 줄었다는 해석은 신빙성이 높지 않다. 2년 연속 증가하던 이혼 건수가 올해 줄어든 이유가 ‘전세대란’ 탓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기엔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집값과 전세가율이 동시에 높아지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임대차 2법 등의 영향으로 전세 매물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12월 수도권 전세가율은 67.1%로 치솟았고, 전셋값이 집값을 뛰어넘은 곳까지 나왔다. 집값이 올랐어도 이혼하면서 둘로 쪼개면 비슷한 수준의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혼 결정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집은 이렇게 한국인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긴밀히 얽혀 있다. 청년들이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일자리와 집 문제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란 구호만으로 국민의 생활 방식이 금세 바뀌진 않는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설 연휴 전 내놓겠다는 현 정부 25번째 부동산대책은 이런 복잡한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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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아들의 전시회[횡설수설/박중현]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자 미디어아트 작가인 준용 씨(38) 전시회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인터넷에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중구 회현동의 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시선 너머, 어딘가의 사이’란 그의 개인전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예술가를 위해 서울시가 배정한 추가경정예산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4월 예술인들의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65억4000만 원의 예산을 추가 편성했다. 시각 분야에선 281명이 지원해 46명이 선정됐고, “연초부터 전시, 기획들이 취소돼 피해가 크다”는 취지의 지원서를 제출한 준용 씨를 비롯해 36명이 1400만 원씩, 나머지 10명은 이보다 적은 지원금을 받았다. 서울시 측은 “당시 대통령 아들이 포함됐는지,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등 상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A4용지 1쪽 분량 ‘피해 기술서’만 보고 목돈을 지원한 절차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원자 이름, 경력을 가리지 않고 심사한 것도 문제다. 미국 뉴욕의 명문 미술학교 파슨스디자인스쿨 출신인 준용 씨가 이 분야 작가로 일한다는 건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5명의 심사위원이 준용 씨가 대통령 아들이란 걸 알아채지 못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서울시가 알고도 준용 씨를 지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가난한 예술인을 지원하려는 예산을 현직 대통령 아들이 받은 게 적절하냐는 문제가 있다. 온라인에선 “임대료 다 내면서 영업 못 한 노래방 주인에겐 (2차 재난지원금) 200만 원 주고 대통령 아들은 1400만 원 지원이라니…” 같은 불만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어제 준용 씨는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지원금은 작가에게 수익으로 주는 돈이 아니라 작가가 전시, 작품 제작에 사용하는 돈” “즉,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고른 것”이란 해명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하지만 지원금 20% 내에서 본인 사례비를 챙길 수 있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준용 씨는 같은 작품으로 5월에 민간 문화재단에서 3000만 원을 추가로 지원받기도 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에 따르면 준용 씨 부부는 2014년 3억1000만 원에 샀던 서울 구로구의 84m²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다가 올해 1월 5억4000만 원에 팔았다고 한다. 주거 문제가 없다고 해도 대학강사 수입으로 여유로운 생활은 어려운 만큼 이번 논란에 본인은 억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준용 씨는 자신의 ‘신분’을 고려해 지원금 신청 전 더 깊이 고민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꼼꼼히 살펴야 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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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 미군기지 반환[횡설수설/박중현]

    1882년 모래 섞인 쌀을 급료로 받은 구식군대 군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기화로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자 고종의 척족인 민씨 일파는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나라 정부는 오장경(吳長慶)을 지휘관으로 한 병력 4만5000명을 파견해 난을 진압했다. 사신, 상인을 제외하고 중국인이 근대 이후 한반도에 대규모로 진입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인천을 통해 조선 땅에 들어온 청군은 용산, 동대문 등지에 머물렀고 난이 진압된 뒤에도 3000여 명이 용산에 눌러앉았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잇따라 승리한 일본군은 청나라 군대가 차지했던 땅에 주둔군 사령부를 지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자 미군이 이 땅을 접수해 보병 제7사단을 주둔시켰고 한국전이 끝난 1953년 용산에 주한미군사령부를 창설했다. 군사독재 시절엔 ‘한국 안의 미국’인 용산 기지에 드나드는 것이 특권층임을 확인해주는 징표가 되기도 했다. ▷지난주 정부는 미국 측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용산기지 내 땅 2곳을 포함해 전국 12개 기지 터를 미국 측에서 돌려받기로 했다. 외국 군대가 138년간 상주해온 용산 땅이 국민 품으로 돌아오는 첫발을 뗀 것이다. 이번에 돌려받는 용산기지 터는 남쪽 스포츠필드 터와 동남쪽 소프트볼 경기장으로 용산기지 전체면적 202만1000m² 중 2.6%인 5만3000m²다. 미군이 평택기지로 완전히 옮길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먼저 비는 땅부터 순차적으로 돌려받기로 한 것이다. ▷올해 들어 서울 집값이 급등하자 국토교통부는 8·4 부동산 대책을 통해 미군에게서 돌려받는 용산기지 캠프킴 터에 공공주택 3100채를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역사적 상징성이 큰 땅을 단기 부동산 대책용으로 소모하지 말고 더 나은 개발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당초 정부는 2016∼2017년 용산기지 이전을 완료하고 2019∼2027년 공사를 진행해 뉴욕 센트럴파크에 비견될 도심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지만 기지 이전과 협상이 지연되면서 이 계획의 시간표도 늦춰지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의 ‘뜨거운 감자’인 환경오염 정화비용 문제는 우리 정부가 먼저 비용을 부담한 뒤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미군 측이 원상복구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지금까지 미군기지 반환 후 정화비용은 한국 측이 고스란히 부담했다. 용산은 100년 이상 군대가 주둔한 땅이다 보니 유류, 중금속 오염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토지 정화에만 2∼3년이 걸리고 비용도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흐지부지 넘어가선 안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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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첫 여성 재무장관[횡설수설/박중현]

    “역사상 제일 높은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깜짝 브리핑을 열어 123년 만에 처음 3만 선을 넘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를 자랑했다. ‘이런 경제 치적을 쌓은 내가 대선에서 졌다는 게 말이 되냐’는 속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장이 꼽은 주가 상승의 동력은 잇따른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초대 재무장관으로 내정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다. ▷월가가 환호한 건 옐런이 코로나19 충격에서 경제를 회복시킬 최적의 ‘구원투수’라고 봤기 때문이다. 2014년 오바마 정부 때 연준 의장이 된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과도한 유동성을 줄이는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공화당 쪽 인물로 교체를 원한 트럼프 때문에 ‘39년 만의 첫 연임 실패 의장’이 됐지만 시장은 그가 금리 인상 충격을 최소화하며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4년 재임 기간 중 주가가 100% 가까이 올랐고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4.1%)까지 떨어졌다. ▷겉모습은 온화한 은발 할머니지만 1946년 뉴욕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브라운대를 수석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노동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사람들의 삶에 직결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학문이 경제학”이란 소신을 가진 케인스주의자다. 남편은 중고차 시장에 ‘레몬’(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곯은 차)이 많은 이유를 ‘정보 비대칭 이론’으로 설명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 조지타운대 교수다. ▷옐런은 연준 설립 101년 만의 첫 여성 의장 기록에 이어 첫 여성 재무장관 기록도 갖게 됐다. 1789년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이후 231년간 유지돼 온 유리천장을 깨고 세계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제·금융 컨트롤타워를 맡게 된다. 미 재무부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달러의 국제 흐름을 감시하는 재무부가 2005년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자 북한에선 “피가 마르는 심정”이란 비명이 나왔다. ▷우선 옐런은 2조2000억 달러(약 2431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관철시켜야 한다. 상원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화당은 과도한 재정지출에 반대하고 있다. 바이든의 공약인 법인세, 소득세율 인상에도 공화당의 반대가 크다. 한국으로선 대규모 부양책이 현실화돼 달러가 풀리면 원화가치가 높아져 수출품 가격 경쟁력에 탈이 날 수 있다. 세율 인상은 미국인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역시 수출에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경제 전문가가 연말연시 개각에서 발탁되길 기대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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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로또는 사야 한다[오늘과 내일/박중현]

    믿음 깊은 청년이 있었다. 마음씨 착하지만 돈 버는 재주는 별로였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산에 올라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제발 로또 한 번만 당첨되게 해주십시오.” 1주일, 한 달, 반년이 지나도록 매일 기도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꼭 1년 되던 날 신이 나타났다. 답답하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신은 말했다. “네 마음은 잘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로또는 사야 하지 않겠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제시한 날 오래전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탄소중립 실천 의지를 강조했다. 진정성 넘치는 발언에서 답답증을 느꼈다. 30년 뒤라 해도 배출한 만큼 온실가스를 흡수해 순(純)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건 대통령 말처럼 “결코 쉽지 않은 무거운 약속”이다. 많은 선진국이 약속한 만큼 한국도 가만있을 순 없다. 걱정되는 건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에 한국의 자연 조건은 대단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의 요체를 ‘탈(脫)석탄’으로 보고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자력발전을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권한다.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마저 원전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감사 결과 발표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성역이 됐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을 예고하니 체증(滯症)을 느끼는 것이다. 신념이 굳은 사람은 매력적이다. 다만 눈앞에 해결할 난제를 놓고 파트너가 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신념의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상식과 차이가 크면 그렇고, 그 파트너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인 경우 더욱 그렇다. 최근 부동산 정책에 답답해하는 국민이 늘어난 게 이런 이유다. 6·17부동산대책의 핵심은 ‘갭 투자’ 규제였다.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 주범(主犯)으로 보고 추진한 대책들이 효과를 내지 못하자 정부는 전셋값과 집값 차이가 좁혀진 틈을 타 집을 산 갭 투자자를 종범(從犯)으로 간주해 대출을 억제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었던 건 갭 투자가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 내 집 마련 과정이어서다. 게다가 갭 투자자는 전셋집 공급원이었다. 틀어막으면서 전세 매물이 더 줄었다. 전셋값이 들썩이자 정부와 여당은 임대가격 규제를 시작했다. 임대차 3법 도입이 다시 전세대란으로 이어지자 여권은 ‘월세가 전세보다 나쁜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너에게 좋은 건 내가 더 잘 아니까 불편해도 참아라’는 식이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반성을 모르는 사람 곁에 있다 보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그릇된 믿음에서 출발해 기대와 정반대 효과가 났는데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정책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일자리 감소와 소비 위축 등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여권 내에서도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비정규직은 나쁜 것’이란 믿음으로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기업 정규직만 늘렸다. 집권 후반기 대통령 발언에 ‘기필코’ ‘반드시’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정책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자기 다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국민들은 3년 반의 경험을 통해 이미 무엇이 실패한 정책인지 판단을 내렸다. 국민의 답답한 속을 뚫어줄 성과를 내고 싶다면 줄곧 해오던 방식만 고집해선 안 된다. 절대 틀릴 리 없다고 믿어온 기본적인 신념까지 하나하나 뜯어봐야 한다. 거기에 문제와 정답이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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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중립[횡설수설/박중현]

    러시아 과학연구선 ‘아카데미크 켈디시’에 탄 국제 연구진은 최근 러시아 북쪽 랍테프해(海) 350m 깊이 대륙붕에서 ‘북극의 방귀’를 발견했다. 오래전 퇴적된 동식물 사체가 분해되면서 발생한 메탄가스가 저온, 고압의 물속에 얼어붙어 있다가 수온이 높아지자 미지근한 사이다 병마개를 딸 때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높아진 기온이 북극 바닷속 메탄가스를 깨워 온실가스를 더 늘리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같게 해 순(純)배출량을 제로(0)로 맞추는 탄소중립 달성 시점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언급한 것이다. 2050년 탄소중립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권고한 목표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동의한 나라들은 올해 말까지 이와 관련한 비전 및 달성 방안을 내야 한다. ▷문 대통령에 이틀 앞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내놨다. 일본 언론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일본 전력 생산의 77%를 차지하는 석탄·석유·액화천연가스(LNG) 등 화력발전 비중을 낮추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6%까지 떨어진 원전 가동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이 유엔 연설에서 2060년을 탄소중립 실현 시점으로 제시한 중국도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하는 동시에 현재 48기인 원전을 10년 안에 110개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전을 늘리지 않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급속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이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가 어려운 과제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석탄발전, LNG발전 가동을 대부분 중단하거나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탈원전으로 원전 비중이 15%까지 떨어질 경우 수소발전 5%를 제외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80%를 채워야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태양광으로 이 정도 전력을 생산하려면 서울시 면적 7배 크기의 태양광 설비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탄소 감축은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앞으로 30년간 각국은 자국에 주어진 자연환경, 산업 경쟁력 등을 고려해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일 것이다. 현실적이고 치밀한 전략 없이 ‘착한 나라’ 되는 데에만 신경 쓰다간 산업 경쟁력 약화, 일자리 상실 같은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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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의 결정적 순간들[횡설수설/박중현]

    “회장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0년대 초 회사에 거의 나타나지 않자 임직원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졌다. 그렇게 몇 년을 ‘은둔’하던 이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출장 중 갑자기 사장, 임원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모아 비상벨을 울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동안 이 회장이 승지원에 머물면서 세계 각지에서 구해 온 다큐멘터리 등 비디오 수천 편을 보며 세계의 변화와 삼성의 미래를 고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삼성전자 소니 히타치 VTR를 동시에 쓰던 이 회장이 유독 자주 고장 나는 삼성 제품을 보며 ‘질 경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말도 나왔다. 장고(長考) 끝에 나온 신경영은 삼성이 ‘글로벌 일류’로 나아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보다 10년 전인 1983년 당시 부회장이던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를 설득해 반도체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일본이 까마득히 앞서가는 사업에 투자하는 건 무모하다는 사내외 반대가 컸다. 그해 64K D램을 개발한 삼성전자는 1992년에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내놨고 이후 29년간 세계 D램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마당에 쌓인 휴대전화 15만 대를 보며 임직원들은 ‘설마’ 했다. 애니콜 500억 원어치가 불길에 휩싸이자 직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애니콜 화형식’ 이후 휴대전화 품질은 비약적으로 개선됐고 5개월 후 애니콜은 모토로라 노키아를 누르고 한국 시장 1위에 올랐다. ▷2002년 조개 모양 ‘이건희폰’(SGH-T100) 성공 이후 삼성 휴대전화는 승승장구했다. 애플이 2007년 첫 스마트폰을 내놨을 때 삼성전자 안에선 “일시적 인기에 그칠 것”이란 안이한 판단이 있었다. 시장이 급격히 스마트폰 쪽으로 쏠리자 서둘러 내놓은 옴니아 1, 2는 ‘흑역사’가 됐다. 삼성 특검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 회장은 2010년 복귀하자마자 휴대전화 사업부를 뒤집어 놨다. 그해 3월 등장한 ‘갤럭시S’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 안착했다. ‘패스트 팔로어’로 출발해 세계 1위에 오른 삼성전자와 달리 피처폰 시대 최강자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을 접었다. ▷도약이 필요하거나 위기를 맞을 때 이 회장은 강렬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내놨다. 워낙 효과적이어서 “메시지 전담 조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관계자는 “이 회장에겐 사물의 핵심 이치를 찾아내고 이를 짧고 압축적인 언어로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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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反독점 제소된 포털 제국[횡설수설/박중현]

    1870년 정유업체 ‘스탠더드오일’을 세운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철도회사와 협정을 맺어 운임을 낮추는 혁신으로 큰돈을 벌었다. 이어서 경쟁자들에게 합병을 권유하고 거부하면 자신이 장악한 운송망을 못 쓰게 하거나 덤핑을 쳐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석유왕국을 키웠다. 미국 석유사업의 90%를 장악했지만 반발도 커졌다. ‘셔먼 반(反)트러스트법’의 첫 적용 대상이 된 그의 회사는 1911년 법원의 해산 명령을 받아 34개 법인으로 쪼개졌다. ▷미국 법무부가 20일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의 반독점 행위에 대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년 전 혁신으로 사랑받던 구글이 지금은 검색서비스, 검색광고 시장에서 독점을 유지, 확장하기 위해 반경쟁적 전술로 제국의 초석을 쌓고 있다”고 법무부는 소장에 썼다. 미 검색시장의 80%를 차지한 구글이 크롬 등 자사 앱을 기본 탑재하도록 스마트폰 생산업체에 수십억 달러를 제공하고, 안드로이드폰에서는 앱 삭제가 불가능하도록 함으로써 경쟁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았다는 혐의다. ▷100년 이상 시차가 있어도 구글과 스탠더드오일은 닮은 점이 많다. 1998년 혁신적 검색엔진을 개발한 구글은 검색광고로 자금력을 확보한 뒤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2006년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플랫폼을 장악한 뒤에는 스탠더드오일이 그랬듯 경쟁자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이번 소송은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 소송 이후 정보기술(IT) 기업을 대상으로 한 최대의 반독점 소송이다. MS 소송은 기업 분할 없이 2001년에 합의로 끝났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만만찮다. 코로나19 속에서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이 좋지 않다. 일부 사업의 분할, 신규 M&A 제한 등의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록펠러는 돈 버는 일엔 독사 같았지만 대학 등에 막대한 돈을 낸 ‘기부왕’이었다. 구글의 모토도 초창기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부터 5년 전 바뀐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까지 늘 선한 의지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구글은 유럽, 한국에서 세금을 제대로 안 내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돈을 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도 인터넷 검색 시장의 70%가량을 네이버가 차지하는 등 포털 공룡의 독점적 지위에 따른 폐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내외 포털 공룡들의 몸 불리기와 탐식(貪食)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어떤 반작용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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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드노믹스[횡설수설/박중현]

    “미국에 반대하는 쪽에 ‘베팅’하는 건 결코 좋은 베팅이 아니다.” 2013년 12월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나온 조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의 이 발언 때문에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다. 중국을 가까이하려던 한국에 대한 경고로 해석됐다. ▷그 바이든이 18일 뒤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누르고 백악관의 주인이 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이 지지율에서 앞서지만 주별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선거제도 때문에 결과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치 지형 변화가 돈 문제로 직결되는 월스트리트에선 민주당이 대선과 상하원 선거를 싹쓸이하는 ‘블루 웨이브’(민주당 상징색인 푸른색 물결)에 올라타려는 투자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바이든의 경제정책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의 핵심은 증세(增稅)와 대규모 친환경 공공 투자다. 트럼프가 해외로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기 위해 35%에서 21%로 낮췄던 법인세율을 28%로 높이고 37%인 소득세율도 트럼프가 낮추기 전인 39.5%로 되돌린다는 계획이다. 오바마케어 확대, 노후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등 돈 쓸 데가 많아서다.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등 친환경 정책을 약속한 바이든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기차, 태양광 등 ‘바이든주(株)’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셰일오일, 방위산업 등 ‘트럼프주’는 약세다. 해외 수익에 물리는 세율을 갑절로 높이겠다는 공약은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주가에 부정적이다. ▷우리 경제에도 바이드노믹스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이든 당선으로 공화당보다 훨씬 규모가 큰 민주당의 2조2000억 달러(약 2514조8000억 원)짜리 코로나19 추가 부양책이 시행되면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원화 가치는 경제 회복세인 중국의 위안화를 따라 움직이면서 원-달러 환율도 최근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완화될지도 관심사다. 바이든이 집권하면 트럼프 식의 무리한 보복관세 등 국제 경제 질서를 깨뜨리는 과격한 공격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중국 지도층과 사회체제에 대해 깊어진 미국인들의 불신과 누적된 무역 불균형 불만을 고려할 때 중국을 대하는 전략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중국으로선 조건만 맞으면 거래가 가능한 ‘장사꾼’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더 까다로운 존재일 수 있다. 원칙을 중시하는 ‘대통령 바이든’이 7년 전처럼 “중국 말고 미국에 베팅하라”고 한국에 요구할 때에 대비해 면밀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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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 열공 ‘파이어族’[횡설수설/박중현]

    힙합 가수 드레이크는 2011년 내놓은 모토(The Motto)라는 곡에서 가슴에 박히는 한 줄 가사로 미국 1020세대를 대변했다. “너는 딱 한 번 살 뿐이야, 그게 바로 모토야, 욜로(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YOLO).” 4년 후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오바마 케어’ 홍보 셀카 영상을 ‘욜로, 맨’이라고 끝맺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욜로는 2017년 한국에도 상륙해 바람을 일으켰다. ▷요즘 욜로를 대신하는 미국 청년들의 모토는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다. ‘재정 독립과 조기 은퇴’란 말이 보여주듯 젊은 시절 바짝 돈을 모아 30대, 늦어도 40대에 은퇴하는 걸 목표로 한다. 이전에 월스트리트 등의 고소득 청년들이 공유하던 사고방식이 전체 청년층으로 퍼진 것이다. 저축하는 것만으로 긴 은퇴생활 동안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만큼 핵심은 돈을 수십 배로 튀기는 재테크에 있다. ▷원격강의 탓에 한국의 대학 캠퍼스가 텅 비었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의 주식 투자 열풍이 거세다. ‘캠퍼스판 파이어족’의 등장이다. 증권사 개최 대학생 모의투자대회는 지원자가 갑절로 늘었다. 우울한 대학생활을 보내는 자녀들이 생활력, 사회성을 결여할까 봐 염려하는 부모 가운데 자녀의 주식 투자를 긍정적으로 보고 종잣돈을 쥐여주는 이들도 있다. ▷투자 대상의 재무제표를 깊이 공부해가며 투자 대상을 고르지만 일부에선 학자금 대출을 끌어들이는 등 위험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20대가 개설한 마이너스 계좌 수와 대출 연체금액도 빠르게 늘고 있다. 주식 투자를 현실과 동떨어진 게임처럼 인식해 위험한 ‘플레이’를 하다간 신용등급 하락으로 향후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청년들의 주식 열풍은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각국 정부, 중앙은행이 공급한 과잉유동성으로 주가가 급등하자 전 세계 파이어족들이 불나방처럼 증시로 뛰어들었다. 집값이 급등한 데다 일찌감치 부모에게서 아파트를 물려받는 부잣집 자녀들을 보면서 ‘주식 투자밖엔 길이 없다’는 청년들의 초조함도 커졌다. ▷‘인생은 한 번뿐, 지금 즐기자’는 욜로가 ‘빨리 왕창 벌고 일찍 은퇴해 길게 즐기겠다’는 파이어족으로 바뀌는 건, 성공과 부는 성실한 노동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란 전통적 가르침이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청년세대의 좌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품 낀 주가는 언제든 폭락할 수 있다. 청년들이 일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을 기회를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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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앱 장터 갑질[횡설수설/박중현]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정보기술(IT) 분야 ‘폐쇄적 생태계’의 최초 고안자로 꼽힐 만하다. 2000년대 수억 대가 팔린 MP3플레이어 ‘아이팟’이 노래 등을 내려받을 수 있는 ‘아이튠스’ 프로그램과 짝을 이뤄 생태계를 키웠고 ‘아이폰’ ‘아이패드’가 합류하면서 애플만의 생태계가 완성됐다. ▷‘폐쇄적 생태계’는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 즉 ‘애플리케이션(앱)’의 시대를 연 애플은 이듬해에 앱을 사고팔 수 있는 ‘앱스토어’를 선보였다. 소비자가 앱을 내려받을 때마다 애플이 30%를 떼어 갔지만 유일한 앱 장터라는 점 때문에 초기 개발자들의 불만은 크지 않았다. ▷애플에 맞서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내놓은 구글이 운영하는 앱 장터가 ‘구글플레이’다. 수수료는 게임 앱의 경우 애플과 같은 30%, 나머지 디지털 콘텐츠는 10% 정도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안드로이드폰을 많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한국에서 구글플레이 시장점유율은 70%나 된다. 작년 구글플레이 국내 결제금액만 6조 원에 육박했다. 나머지 시장은 애플 앱스토어와 국내 이동통신 3사가 만든 앱 장터 ‘원스토어’ 등이 나눠 갖고 있다. ▷어제 구글이 내년부터 구글플레이를 통해 배포되는 모든 앱과 디지털 콘텐츠 결제금액에 수수료 30%를 적용하겠다고 밝혀 국내 IT 기업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는 모든 디지털 콘텐츠를 30%의 수수료를 내고 사야 한다. 수수료가 올라 이익이 줄어드는 업체들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공산이 크다. ▷애플과 구글은 거의 동시에 전 세계에서 수수료율 인상을 진행하고 있다. 총 쏘기 게임 ‘포트나이트’로 유명한 미국 게임기업 에픽게임스는 지난달 벌레 먹은 사과 모양 머리의 독재자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자체 결제시스템을 통해 게임을 판매하려던 포트나이트를 앱스토어에서 퇴출시킨 애플에 항의한 것이다. 구글까지 같은 조치를 취하자 에픽게임스는 두 업체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 애플의 행태를 IT 업체들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라고 비판한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구글 같은 ‘플랫폼 기업’의 갑질에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로버트 라이시 전 미국 노동장관은 최근 실리콘밸리 대형 IT 기업들을 ‘19세기 말 강도귀족(Robber Baron) 시대에 철강 석유 철도 금융 등을 지배하던 (카네기, 록펠러 등) 몇몇 부자들’에 비유했다. 벤처 신화인 애플과 구글이 젊은 벤처에 갑질하는 공룡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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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장의 아들 딸[횡설수설/박중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1952년 3월 한국으로 떠나기 전 제임스 밴 플리트 주니어 중위(당시 27세)는 이런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 미 8군사령관인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이 있는 한국전선으로 전출을 자원한 그는 3월 19일 자신이 조종하는 B-26 폭격기 승무원들과 함께 아버지의 60세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보름여 뒤인 4월 4일 밴 플리트 주니어는 압록강 남쪽으로 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됐다. 네 번째 출격이자 첫 단독 비행이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얼마 안 돼 “그 정도면 충분하다”며 수색작전을 중단시켰다. 며칠 뒤 부활절에 장군은 한국군 실종 장병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벗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육군사관학교와 한국군 육성에 크게 기여해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군은 100세에 눈을 감을 때까지 평생 외아들을 그리워했다. ▷대를 이어 군복무하는 걸 명예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전사한 유력인 자제들이 적지 않다. 본인이 미-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남과 차남은 모두 프랑스 노르망디 미군 묘지에 묻혀 있다. 차남은 1차대전 때 전투기를 조종하다 전사했다. 장남은 전사하진 않았지만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2차대전 때 어뢰정 정장(艇長)으로 복무했고 조종사였던 맏형은 군용기 사고로 숨졌다. ▷벨기에 왕립육군사관학교 진흙탕에서 포복하며 훈련하는 왕위 계승 서열 1위 엘리자베트 공주의 모습이 화제다. 훈련 기간은 1년으로 호칭부터 일체의 ‘공주 대접’은 없다고 한다. 아버지 필리프 국왕에 이어 장차 군 최고통수권자가 될 인물인 만큼 필요한 일이지만 19세 딸을 군사훈련에 보낸 부모의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실종 후 전사로 처리됐던 밴 플리트 주니어가 실은 비행기 추락 후 북한군 포로로 잡혔다가 중국을 거쳐 소련의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가 최근 주로스앤젤레스 한국총영사관이 연 세미나에서 밝혔다. 육군 정보국 참모차장을 지낸 자기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밴 플리트 장군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목숨 걸고 전투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명예로운 가문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고 했다. 걱정을 숨기며 자식을 전장에 내보내고, 자식을 잃고도 눈물을 감추는 부모가 가문의 영예를 완성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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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택근무와 워라밸[횡설수설/박중현]

    “화상회의를 하려면 몇 시간 전엔 알려주셔야죠.” 재택근무 중인 외국계 기업의 남자 임원 A 씨는 이런 항의를 받고 나서야 노트북컴퓨터 앞에 앉기 전 여자 부하직원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 이후 화상회의 횟수를 줄이고 시간도 정례화했다. 코로나19로 갑자기 닥친 재택근무는 한국인들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던 많은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 ▷고용노동부가 그제 내놓은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에서 회사원들이 높은 관심을 보인 부분은 주로 근태 관련이었다. ‘회사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 PC 접속기록을 확인하겠다는데…’라는 질문에 매뉴얼은 ‘근로자 동의가 없으면 회사가 강요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입사 때부터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를 받고 있고, 그룹웨어를 통해 업무 시작과 끝 시간을 체크하고 있어 집에서 일해도 인사담당자들의 감시를 완전히 피하긴 쉽지 않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최근 미국 금융대기업 중 처음으로 재택근무 중단 결정을 내렸다.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직원 간 유기적 소통에 문제가 생겼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차단됐다”는 이유다. “신입 직원들은 선배들로부터 일을 배울 기회가 원천 봉쇄됐다”고도 했다. 초봉 10만 달러가 넘는 인력을 쓰는 월스트리트 금융권이라면 인건비가 더 아까울 것이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도 재택근무와 관련해 “아이디어를 놓고 토론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고 불평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기업 중 88.4%가 사무직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재택근무 생산성이 정상근무의 90% 이상이란 답이 절반 정도였다. 이렇게 미국 기업들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건 근무시간은 길어도 업무의 집중도는 낮았던 한국의 직장문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늘어지는 회의, 상사 눈치만 보는 퇴근시간 등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직원들 반응도 둘로 갈린다. “진정한 워라밸이 뭔지 알게 됐다”는 찬성파가 있고 “일과 개인생활의 경계가 무너져 엉망진창이 됐다”는 반대파도 적지 않다. 걱정되는 건 기업들이 기존에도 집에서 일했던 프리랜서와 출퇴근 정규직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인사권자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성과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work)과 생활(life)의 밸런스가 중요해도 언제 끝날지 모를 경기침체 속에서 일은 잃고 생활만 남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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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뺀 ‘클린 패스’[횡설수설/박중현]

    “화웨이와 ZTE 등 신뢰할 수 없는 판매자가 공급하는 어떤 5세대(5G) 통신 장비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올해 5월 미국의 ‘5G 클린 패스(Clean Path) 구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5G 장비 시장 점유율 1위와 5위인 중국 화웨이와 ZTE의 통신 장비를 통해 민감한 정보들이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는 만큼 세계 5G망에서 이들을 빼버리고 ‘깨끗한 통로’로 정보가 흐르게 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10일 온라인으로 열린 한미 정보통신기술(ICT) 정책포럼에서 미 국무부 국장급 참석자가 불쑥 ‘5G 안보’를 거론했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주제를 다루는 데 부정적이었지만 굳이 언급해 클린 패스 동참을 넌지시 독려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어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투자 비용 손실과 서비스 단절 가능성 때문에 장비 철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시동을 걸었다. 이 중 ‘5G 클린 패스’의 진행 속도가 특히 빠르다. 미국의 압박에 영국이 단계적 화웨이 퇴출을 약속했고 프랑스, 독일은 고민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는 인도도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기로 했다. 미국의 기술, 장비를 사용해 만든 반도체를 허가 없이 화웨이에 팔지 못하도록 한 미 상무부 조치까지 맞물려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화웨이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20일부터는 중국의 국민 앱 ‘위챗’의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까지 발효된다. 위챗 이용자 12억 명 중 미국 사용자는 화교 중심의 수백만 명뿐이지만 미국인의 정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게 이유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위챗을 금지한다면 우리도 애플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불매운동 가능성을 내비쳤다. 중국인들의 반발로 중국 내 아이폰 판매가 최대 30%까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와도 미국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회에서 EPN과 미국 중심 안보공동체 ‘쿼드 플러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방침을 묻는 질문에 “우리에게 동참하라든지, 논의하자는 요청은 아직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을 세계 첨단산업의 가치사슬에서 끊어내고 중국 안에 고립시키기 위한 미국의 세계 전략은 착착 진행 중이다. 미국이 ‘미국 편인지, 중국 편인지 정하라’고 대놓고 물어볼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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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부른 ‘디지털교도소’[횡설수설/박중현]

    ‘지저분하게도 생겼네’ ‘쓰레기’…. A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 쇼핑몰에 올해 7월 이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유를 찾던 A 씨는 ‘디지털교도소’가 자신을 16년 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해 이름과 사진을 공개한 사실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강력히 항의하자 사이트 운영자는 “동명이인이었다”며 정보를 지웠다. 하지만 A 씨의 사회적 이미지와 사업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성범죄자와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사람 등의 개인정보를 공개해 온 개인 사이트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명문대생 B 씨(20)가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B 씨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통하는 이른바 ‘지인 능욕’을 누군가에게 요청했다”며 7월 그의 사진, 학교, 전공, 전화번호까지 상세한 정보를 사이트에 올렸다. B 씨는 대학 커뮤니티에 “모두 사실이 아니며 해킹당한 것 같다. 억울하다”고 해명했지만 악플, 협박에 시달려 왔다. ▷올해 6월 개설된 이 사이트 운영자는 ‘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라고 소개문을 올려놨다. 무기징역을 받아도 20년이면 모범수로 석방된다며 신상공개 기간은 30년으로 정했다. n번방 사건의 조주빈 등 150여 명이 ‘수감’돼 있고 하루 평균 2만 명이 방문한다.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그의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을 내린 판사의 신상정보까지 공개해 놨다. B 씨를 비롯해 20% 정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었는데도 제보 등을 자체 확인해 의혹을 제기한 경우다. ▷‘디지털교도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촌동생이 n번방 사건’ 피해자란 사실을 알게 돼 복수를 고민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분노할 공간이 필요해 디지털교도소를 열었다”고 했다. 한국의 법체계가 흉악범들에게 충분한 처벌을 하지 못하니 범죄자 신상을 공개해 댓글 등으로 응징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사이버 린치(사적 보복)와 인권 침해 소지가 커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이 접수됐지만 러시아 도메인(.ru)을 사용하고 운영자도 해외에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돼 수사가 쉽지 않다. ▷이 사이트를 두고 지나치게 너그러운 한국의 성범죄 처벌 수준에 대한 불만이 투영된 것이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개인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건 법치 사회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죽음까지 부른 사이버 자경단에 의한 피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수사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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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의 빚투[횡설수설/박중현]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엔 20여 년 전 졸업앨범 속에서 활짝 웃고 있지만 지금은 행방이 묘연해진 동기생을 발견하곤 한다. 이렇게 사라진 사람 가운데 일부는 김대중(DJ)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극복을 위해 썼던 두 가지 경기부양책의 후유증 탓에 친구들 주변에서 종적을 감췄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출범한 DJ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발급 조건과 현금서비스 한도 등을 완화하며 신용카드 사용을 권했다. 1998년 ―5.5%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이 1999년 11.5%, 2000년 9.1%로 급등한 데는 수출 증가와 함께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한 소비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 빚의 무서움을 모르는 젊은 직장인, 대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서명만 하면 발급해주는 신용카드 여러 장을 지갑에 넣어 다니며 펑펑 돈을 썼다. ▷또 다른 부양책인 ‘벤처 붐’은 신용카드가 생긴 청년 중 일부를 주식 투자로 끌어들였다. 대수롭지 않은 기술을 보유하고도 순식간에 수십, 수백 배 주가가 오르는 걸 본 청년들은 카드대출을 받아 벤처 주식에 ‘몰빵’했다. 2000년대 들어 버블 붕괴로 많은 주식이 휴지조각이 됐고 ‘카드 돌려 막기’로 빚을 갚던 다수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유동성 탓에 주가가 폭등하자 20대 청년들이 ‘빚투’(빚내 주식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20대가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돈인 ‘신용공여액’이 2년 반 만에 2.3배로 늘었다. 몇 달 만에 수십 % 이익을 낸 투자자들을 지켜보던 20대들이 빚을 내 ‘동학개미’에 합류한 것이다.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선 무료 주식 앱을 쓰는 청년 ‘로빈 후드’가, 중국에선 풀처럼 쑥쑥 잘 자란다는 뜻의 ‘청년 부추’들이 증시를 달구고 있다. ▷2030 개미들은 최근 정부가 주식 투자 수익에 양도소득세를 물리려 하자 온라인 공간에서 강하게 반발해 시행 시기를 늦추는 등 양보를 받아냈다. 면세점이 높은 한국에서 소득세, 재산세를 좀처럼 낼 일이 없는 청년 세대의 첫 번째 조세저항이라 할 만하다. ‘주식 자산’을 보유하고 세금을 내게 된 청년층이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의식과 권리를 각성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청년의 주식 투자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빚투는 위험하다. 청년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부모 세대와 같은 방법으로 부의 축적과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란 조바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우량주에 집중 투자한다는 점에서 벤처 버블 때보다 위험은 작다지만 다락같이 오른 주가는 실물경제의 작은 충격에도 언제든 급락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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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반지 30만 원 시대[횡설수설/박중현]

    1900년 프랭크 바움이 펴낸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의 1890년대 공황을 은유한 동화다. 당시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자 일부 정치가들이 금본위제 폐지와 은본위제 도입을 주장했다. 금보다 풍부한 은을 기초로 화폐 발행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던 것이었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을 경계한 동부 자본가들의 반대로 시행되진 않았다. 오즈(Oz)는 금, 은의 중량을 표시하는 트로이온스(31.1035g)의 단위기호다. ▷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이 온스당 2021달러(약 240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처음 2000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올해 들어서만 32% 올랐다. 어제 한국의 금값도 1돈(3.75g)에 29만1555원으로 세공비를 포함한 돌 반지 가격이 30만 원을 넘어섰다.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은 2500∼3000달러까지 금값이 오를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금의 가치는 부식되지 않는 특성과 희소성에서 나온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총량은 19만7576t이다. 한데 모으면 천장 높이 2.5m인 99㎡ 아파트 41채 안에 모두 넣을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이 중 47%가 장신구 등에 쓰이고 있으며 21.6%는 민간 투자용, 17.2%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보유량이다. 매년 2500∼3000t의 금이 새롭게 채굴된다. ▷미국 근현대사는 금과 함께했다. 미국 서부 연안은 1849년 캘리포니아 금광에 몰려든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가 개척했다. 1,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패전국에서 받은 금 배상금, 무기 판매 대가로 챙긴 금을 기초로 미국은 금본위제를 1971년까지 유지했고 달러화는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미국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8133.5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104.4t의 금을 12.5kg짜리 금괴 형태로 영국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맡겨두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 중 보유량 35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막대한 돈을 풀었다. 대공황의 교훈을 토대로 선제적으로 대응해 디플레이션은 피했지만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너무 많이 푼 탓에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절대 안전자산’인 금으로 자산가들의 돈이 쏠린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세계 금값을 더 끌어올린다는 분석도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금은 인간의 불안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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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벨트[횡설수설/박중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1999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규제 완화와 대규모 해제 계획을 발표한 뒤 환경단체가 반발하자 김대중 정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강조했다. 1970년대에 지정된 후 성역처럼 유지되던 그린벨트의 해제는 김 대통령의 1997년 대선 공약이었다. 재산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주목적은 경제 활성화였다. 박정희 정부가 남긴 그린벨트가 비상금을 모아 둔 돼지저금통처럼 외환위기 극복의 요긴한 수단으로 쓰인 것이다. ▷그린벨트는 49년 전인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처음 지정됐다.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 15km 선에 있는 도넛 모양의 서울, 경기도 땅 454.2km²가 녹지로 묶였다. 영국의 그린벨트가 모델이었다. 대도시가 급팽창하고 공해 문제가 심각해지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그린벨트를 만들고 개발을 통제한 것이다. 1977년까지 국토의 5.4%, 5397km²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88올림픽을 전후해 미사리 조정경기장 등이 일부 개발됐을 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 전체 규모가 유지되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대규모 해제가 이뤄졌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부턴 집값 폭등으로 아파트 공급 요구가 대두될 때마다 곶감 빼먹듯 그린벨트를 쳐다봤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경기 성남시의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반값 아파트’가 공약이던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지을 땅을 강남구, 서초구 그린벨트를 풀어 마련했고, 박근혜 정부도 민간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 토지를 그린벨트를 풀어 확보했다. 현재 전국의 그린벨트 면적은 3837km²로 1977년에 비해 29% 감소했다. ▷어제 발표된 문재인 정부 22번째 부동산대책은 서울에서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이 포함될지가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발표된 자료에 관련 내용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서울시에 그린벨트 일부 해제를 요청했지만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협의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고(故) 박 시장은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과 같은 곳”이라며 반대했지만 소속 정당의 요청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린벨트는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을 막고 환경을 보전하는 중요한 제도다. 하지만 도심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와 그린벨트 해제 외에는 수도권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곳에 주택 공급을 늘릴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수장이 공석이 된 서울시와 정부 여당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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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리콥터 머니[횡설수설/박중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양적완화가 헬리콥터로 돈 뿌리기라면 이번에는 ‘폭격기로 돈 폭탄 투하하기(money bomber)’다.” 올해 3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 1인당 1000달러(약 119만4000원)를 나눠 주겠다고 발표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자 미국 금융권에서 이런 평가가 나왔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은 연준이 국채 등을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1930년대 긴축정책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믿는 그는 “대공황을 다시 맞으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면 된다”는 말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었다. 현재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크본드까지 사들이는 더 과감한 조치로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고 있다. ▷연준과 트럼프 행정부가 2인 3각으로 돈을 풀면서 미국 증시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분기에 일본 도요타의 4%인 10만3000대의 차만 생산하고도 나스닥 시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실제 굴러가는 차를 아직 한 대도 만들지 못한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시총은 현대차를 넘어섰다. 전통적 분석 방법으로 설명의 한계에 부딪힌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꿈 비율(PDR·price to dream ratio)’ 같은 신조어까지 동원하고 있다. 분명한 건 ‘꿈’의 상당 부분은 헬리콥터 머니 영향이란 점이다. ▷각국 부동산 시장에도 과잉 유동성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4월 주택 가격은 작년 동월 대비 4.7% 상승했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27개 대도시 아파트 거래 건수도 3월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동시에 들썩이는 한국에선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또 한 번의 대규모 현금 유입이 예정돼 있다. 3기 신도시 등에 풀리는 50조 원 가까운 토지보상금이다. 2006∼2007년 토지보상금 60조 원이 풀렸을 때 서울 아파트값은 32%, 전국 아파트값은 20% 급등했다. ▷지난달 30일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값이 8년 9개월 만에 온스(약 31.1g)당 1800달러를 돌파했다. 달러화 가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금값은 급등한다. 최근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 등으로 조만간 달러가 주요 통화 대비 35% 절하될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을 경고했다. 헬리콥터 머니는 후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돈 풀기 후유증을 더 걱정해야 할 한국에서 부작용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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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휴수당 갈등[횡설수설/박중현]

    “점주가 주 70∼80시간 일해도 알바 월급만큼 못 가져간다. 최저임금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상태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자는 노동계 요구에 반발해 그제 기자회견에 나선 편의점주들의 주장이다. 올해 오른 2.87%만큼 내년에 최저임금을 깎자는 주장과 함께 이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주휴(週休)수당’ 폐지다. ▷주휴수당은 평생 봉급생활자로 일해 온 중장년층에겐 생소해도 편의점, 카페 등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은 청년층에겐 익숙한 용어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有給)휴일을 보장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에 따라 하루 3시간, 주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실제로 일하지 않은 하루치 ‘주휴시간’ 급여를 주도록 한 것이 주휴수당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때부터 있던 제도지만 현 정부 들어 새삼 논란이 커졌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나 가파르게 오르자 편의점, 음식점 주인과 중소기업 경영주들은 주휴수당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해 10월 대법원이 임금 계산 때 실제 일하지 않은 주휴시간은 빼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자 사업주들은 환영했다. 그러나 그해 말 정부는 주휴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도록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고쳐버렸다. ▷예를 들어 하루 4시간, 주 5일 20시간 일하고 주급 20만 원을 지급했을 경우 대법원 판결에 따른 시간당 임금은 1만 원이다. 하지만 시행령에 따르면 ‘20만 원 나누기 24시간(주휴시간 4시간 포함)’으로 시간당 임금 지급액이 8333원이 돼 올해 최저임금(8590원)을 어긴 게 된다.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처벌을 받게 된다. 대법원 판례대로 주휴시간을 빼고 계산하면 최저임금이 2019년에 이미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1만 원 선을 넘어섰다. ▷식당 주인 A 씨가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최근 헌법재판소는 “중소 상공인의 부담 증가는 부인하기 어렵지만 시행령 문제가 아니라 최저임금 결정의 문제”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주휴수당을 아끼기 위해 장시간 일하던 직원을 해고하고 15시간 미만 ‘쪼개기 알바’만 쓰는 업주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주휴수당은 돈 때문에 노동자가 휴일도 없이 일하는 걸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임금 수준이 낮고 노동 여건이 열악하던 시대의 잔재인 셈이다. 원조 격인 일본에선 1990년대에 폐지돼 그 제도를 베낀 한국, 대만 등에만 남아 있다. 주 5일 근무, 연봉제 확산으로 제도 도입의 취지는 퇴색했다. 이제는 근로기준법 자체를 손볼 때가 됐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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