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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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colee@donga.com

취재분야

2026-05-24~2026-06-23
칼럼100%
  • “서울 강남 성형외과 절반은 전문의 없는 의원”[횡설수설/이진영]

    한국은 인구 대비 성형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성인 남녀 10명 중 1명, 30대 여성은 10명 중 3명이 성형수술 유경험자다. 눈 코 입을 포함한 15개 신체 부위에 134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부위별 시술법과 보형물의 종류에 따라 세분하면 시술 방법은 940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자기 몸을 맡기면서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의사를 고소한 최모 씨(44)도 그런 사례다. ▷최 씨는 올해 초 서울 강남 A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후 안면마비 증세가 나타났다. 원래 코 수술을 하러 갔는데 눈과 팔자주름 수술까지 같이 하면 효과가 좋다는 말에 그리했다가 부작용이 생겼다. 알고 보니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었다. 병원 내부에 ‘○○○ 성형외과’로 돼 있어 전문의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의료법에 따라 병·의원 외부 간판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으면 ‘홍길동 성형외과 의원’, 없으면 ‘홍길동의원 진료과목 성형외과’로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병원 내부 표기에 대해선 따로 규정이 없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의원은 약 1100곳, 없는 의원은 이보다 훨씬 많다. 우선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 다른 분야 전문의를 따고도 전공과목 간판을 포기하고 일반의처럼 ‘홍길동의원’으로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다른 과 진료를 보는 의원이 6000곳이다. 이 중 절반만 잡아도 성형외과 전문의 없는 의원이 3000곳이 된다. 여기에 일반의 신분으로 성형외과 진료를 하는 의원들까지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의료계에선 서울 강남 성형외과 중 절반은 전문의 없는 의원으로 본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성형외과는 25개 진료과목 중 분쟁조정 신청이 5번째로 많다. 흉터, 염증, 신경 손상, 비대칭 등을 호소하는 내용들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전문의가 아닌 경우 부작용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1년에 70명 남짓 배출되는 성형외과 전문의라야 얼굴 구조와 해부학에 익숙해 믿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고, 꼭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어도 손기술이 좋은 의사가 많다는 반론도 있다. ▷국내 의사 10명 중 8명은 전문의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의사들은 4, 5년 고생해서 전문의 자격을 따는 대신 미용 성형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올해 전문의 합격자는 2807명으로 10년 전보다 500명이나 줄었다. 성형외과 전문의 아닌 성형하는 의사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의원 외부 간판만 잘 봐도 전문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명찰로 확인해도 된다. 의료법에 따라 의사는 명찰을 달아야 하는데 ‘성형외과 의사 홍길동’은 성형외과 전문의만 달 수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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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과 영부인은 ‘제로섬 관계’[오늘과 내일/이진영]

    미국에선 퍼스트레이디 지지율 조사도 정기적으로 한다.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던 트럼프 시대를 제외하면 역대 영부인들은 임기 말에도 대통령 인기와 무관하게 높은 지지율을 누렸다. CNN과 갤럽이 닉슨 대통령 집권기 이후 역대 영부인들의 임기 말 지지율을 집계했더니 평균 50%였다. 유일한 예외가 힐러리 클린턴으로 고작 13%다. 백악관을 나와 국무장관으로, 유력한 대선 후보로 승승장구했던 그가 왜 영부인 시절 인기는 없었을까. 답은 잠시 접어두고 김건희 여사 얘기부터 해보자.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던 김 여사가 요즘 대통령 못지않은 강행군을 하고 있다. 이달 들어 17일간 공개 일정만 15개다. 같은 기간 대통령 공개 일정은 24개였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뉴스’를 보면 김 여사 사진이 229컷으로 대통령 사진(203컷)보다 많다.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 비공개 오찬을 하며 “개 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것이 저의 본분”이라고 했고, 납북자와 억류자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선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에 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김 여사의 대학원 최고위과정 동기가 의전비서관으로 기용됐다. 개고기 식용 금지는 대통령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의견 수렴을 하는 중이다. 민감한 정책과 인사 문제에서 김 여사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실에선 “대통령이 방미 준비 등으로 챙기지 못하는 일정을 김 여사가 대신 챙겨 주길 요청했다”거나 “국정 파트너로서 적극적 역할을 당부했다”는 해명이 나온다. 대통령의 업무가 대통령 개인기로만 수행되는 것은 아니며 영부인 역할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부란 한쪽의 존재감이 크면 다른 쪽은 작아지는 제로섬 관계다. 닉슨 대통령은 클린턴 부부를 보며 이런 말을 했다. “부인이 너무 강하고 똑똑하면 남편이 무기력해 보이기 마련이다.” 영부인의 정책 관여는 ‘선’을 넘는 일이어서 리스크가 훨씬 크다. 선출된 자리도 아니면서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정에 관여하는 건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것’이라는 게 민심이다(프랑스 정치학자 피에르마리 루아조). 힐러리 여사가 주요 국정과제였던 의료보험 개혁을 직접 챙기다 실패하자 대통령 지지율까지 추락했다. 대선에 처음 도전하며 똑똑한 힐러리를 앞세워 ‘하나 사면 하나는 공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클린턴 대통령은 재선에 나설 때는 ‘빌러리(빌+힐러리)’의 ‘ㅂ’자도 못 나오게 했다. 힐러리 여사에 대한 여론이 가장 우호적이었을 때는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다. 그는 “어떤 결혼이든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며 남편 곁을 지켰고, 대통령의 지지율도 거짓말처럼 올랐다. 시대착오적 여성관 아니냐고?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스스로 쟁취한 권력이 아니라 힘 있는 남자에 기대어 영향력을 갖는 영부인 제도가 굴욕적이라며 아예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로펌 변호사 시절 오바마 대통령의 멘토였던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 들어간 뒤론 건강 전도사 역할에 머물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로 한국의 영부인들 중 남편과 가장 동등한 관계였던 이희호 여사도 “대통령 부인이 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는 데 부정적인 시각이 많더라”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영부인은 대통령의 자산이자 위험 요소다. 대통령보다 한두 걸음 뒤에서 조용히 내조하면 자산이 되고, 대통령 앞에 서려 할수록 리스크가 된다. 힐러리 여사처럼 남편 임기 이후의 개인적 기획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면 정치 전문가들이 조언하듯 “이미지 메이킹엔 협조하되, 권력은 나눠 갖지 말아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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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해요 엄마, 2만 원만 보내주세요” [횡설수설/이진영]

    인천 미추홀구 구도심의 나홀로 아파트와 신축 빌라에는 2030세대가 많이 산다. 인근 대규모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1억 원 미만의 전세보증금으로 새집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말고는 없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서 20, 30대 젊은이 3명이 줄줄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수도권 일대에 주택 2700채를 갖고 전세사기를 벌이다 구속된 ‘미추홀구 빌라왕’ 남모 씨(61) 피해자들이다. ▷17일 새벽 31세 여성 박모 씨가 집 안에서 유서를 남기고 쓰러진 채 남자친구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박 씨는 전세보증금 7200만 원에 사기범의 아파트로 입주했고, 2021년 9000만 원으로 올려줬는데 아파트가 통째 경매에 넘어가면서 보증금을 날리게 됐다. 박 씨가 숨지기 50일 전인 2월 28일에는 전세금 7000만 원을 떼인 38세 남성이 대출 상환일이 다가오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은행 대출로 마련한 빌라가 경매로 넘어간 것이다. 그는 유서에 “더는 못 버티겠다”고 썼다. ▷14일 숨진 채 발견된 임모 씨는 고작 스물여섯이다. 고교 졸업 후 인천 남동공단에 다니며 6800만 원짜리 빌라 전셋집을 마련했다. 2021년에는 전세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렸으나 경매에 넘어가 5600만 원을 날렸다. 매매가 2억 원도 안 되는 집에 1억8120만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고 한다. 신용불량자가 될까 무서워 7년간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았지만 대출금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숨지기 닷새 전 어머니에게 전화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미안해요 엄마, 2만 원만 보내주세요.” ▷‘깡통 전세’나 갭 투기로 인한 전세사기가 늘면서 지난해 전세보증 사고액은 약 1조2000억 원으로 전년도의 2배로 급증했다. 피해자 10명 중 7명이 2030세대다. 전세사기 매물들이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이 겨우 감당할 수 있는 금액대인 탓이다. 피해자 커뮤니티에는 “대출금 못 갚아 신용카드 거래가 정지됐다” “아이가 곧 태어날 텐데 한 푼도 못 건지고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는 피 말리는 사연들이 가득하다. ▷‘너희는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 ‘당신들은 기회겠지만 우리들은 삶의 꿈!!’. 어제 숨진 박 씨 아파트 현관문에 붙어 있는 전세사기 피해 호소문들이다. 숨지기 전날까지 피해 구제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같은 피해자들에겐 “버텨보자”며 웃어 보였다고 한다. 임 씨도 어떻게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피해를 만회하려 보험회사에 재취업도 했지만 수도요금조차 못 낼 처지가 됐다. 탐욕스러운 사기꾼들에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도 애써 당차고 의젓했던 청춘들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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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리 코로나때 결혼할걸”… 치솟는 웨딩물가[횡설수설/이진영]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가벼운 우울감인 ‘메리지 블루’를 겪기 마련이다. 익숙했던 일상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결혼 성수기를 맞은 요즘 커플들의 우울감은 더하다고 한다. 예식장부터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비용까지 왕창 오른 ‘웨딩플레이션’ 탓이다. “차라리 코로나 때 결혼할걸” 하고 후회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 신랑 예복을 포함한 스드메 가격은 500만∼600만 원으로 코로나 전보다 2배로 뛰었다. 서울 강남권 호텔에서 하객 300명을 초대해 결혼할 경우 5600만 원이 넘게 든다. 1년도 되지 않아 30%가 오른 것이다. 하루 이틀 망설이는 사이에도 값이 올라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매년 신혼부부 1000명을 설문조사해 발표하는 ‘결혼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커플이 신혼집, 혼수, 예식, 신혼여행 등 결혼에 쓴 총비용은 평균 3억3050만 원으로 1년 전보다 15% 증가했다. ▷결혼 시장은 원래 반복 구매가 없어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여기에 코로나로 미뤄둔 결혼 수요는 급증한 반면 코로나 불황을 못 견디고 상당수 업체가 폐업하는 바람에 공급 자체가 줄면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돼 버렸다. 수천만 원짜리 ‘마통’으로도 감당이 어려운 예비부부들은 다른 커플들과 같은 날 웨딩 촬영을 해 할인받거나, 관련 업체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부지런히 써 올려 적립한 마일리지를 현금화하고 있다. 하객들의 부담도 커져 축의금만 내면 5만∼10만 원, 식사를 할 경우 10만∼20만 원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도 웨딩플레이션이 덮쳤다. CNBC 보도에 따르면 올해 결혼식 평균 비용은 2만9000달러(약 3800만 원)로 코로나 이전보다 17% 올랐다. 다들 예식 규모를 줄이느라 평균 하객 수가 2019년 131명에서 2021년엔 105명으로 줄었다. 청첩장을 돌렸다가 취소하고 줌으로 결혼식을 중계하거나, 값이 싸고 하객 수도 줄일 수 있는 주중이나 일요일 아침에 식을 올리고, 생화 대신 조화를 쓰며, 중고 마켓에서 결혼용품을 고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결혼비용 절감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여름과 겨울 같은 비수기를 노린다. 웨딩플래너 대신 스스로 손품 발품을 팔아 계획을 짠다. 하객 수 오차를 최소화한다. 웨딩 촬영이나 신혼여행 등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에 집중하되 나머지는 과감히 줄인다. 마지막으로 결혼을 미루지 않는다. 내년이면 웨딩플레이션이 더 심해져 “차라리 작년에 할걸” 하고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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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어봤으니 이젠 늙고 싶다”[횡설수설/이진영]

    서른이 넘은 여배우에겐 ‘동안’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 문근영(36)은 ‘절대 동안’, 송혜교(42)는 ‘동안의 정석’, 고현정(52)은 ‘명품 동안’, 장미희(66)는 ‘미친 동안’이다. 의사들은 ‘여배우 주사’라며 샤넬주사와 한방 동안침을 홍보한다. 노화를 예방한다는 ‘안티에이징’에 이어 아예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주장하는 ‘디에이징’ 제품까지 나왔다. 모두가 기를 쓰고 젊어지려는 ‘동안 강박’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선언이 신선하다. ▷영화 ‘타이타닉’(1998년)의 케이트 윈즐릿(48)은 사진 보정을 하지 않는다. 잔주름을 싹 지운 홍보 포스터는 “내 눈가의 주름을 전부 돌려 달라”며 반려하고, 늘어진 뱃살을 후보정으로 잘라내겠다는 제안에 “절대 자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변하고 달라지는 얼굴이 아름답다”며 “젊은 세대는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왜 포기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에마 톰슨(64), 레이철 바이스(53)와 ‘영국 성형 반대모임’을 꾸려 활동 중이다. ▷미국에선 메릴 스트립(74)이 얼굴에 칼 대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는 “나이 먹는 건 억울하지만 성형으로 얼굴을 굳히는 건 우스운 일”이라며 “성형은 사람 간 소통을 가로막는 방해꾼”이라고 했다. 제인 폰다(86)는 “나이가 들어도 삶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 찬 왕국”이라며 시술을 거부하고, 드루 배리모어(47)는 두 딸이 외모 강박을 갖게 될까 봐 성형하지 않는다. 아역 배우 출신 저스틴 베이트먼(57)은 “폭삭 늙었다”는 악플에 “모든 나이엔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내가 멋지다”고 반박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년)에서 숱 많은 갈색 곱슬머리가 아름다웠던 앤디 맥다월(65)은 요즘 반백의 머리로 다닌다. 예순이 넘어서도 “세월이 비켜간 미모”라며 찬사를 늘어놓던 사람들이 이제는 “왜 염색 안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젊어 보이려면 많은 노력이 든다. 이제 그러기엔 지쳤다”고 했다. “늙어가는 일에 왜 그렇게 수치심을 느껴야 하나. 우린 끝을 향해 가는데 수치심을 느끼느라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래도 대세는 안티에이징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젊어지기 위해 아기 오줌 받아 목욕했듯, 샌드라 불럭과 케이트 블란쳇은 신생아의 포경 수술에서 나온 음경 꺼풀 추출물로 피부 재생 시술을 받는다. 전 세계 안티에이징 시장이 매년 5%씩 성장해 2027년엔 75조 원이 될 전망이다. 코코 샤넬은 “어려 보이려고 기를 쓸수록 나이 들어 보인다”며 “스타일은 애티튜드”라고 했다. 많이 웃고 살았다는 증표인 주름을 싹 지운 ‘충격 동안’보다 “젊어 봤으니 이젠 늙고 싶다”는 당당함이 아름다워 보인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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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진영]4·19세대와 6·3세대의 뒤늦은 깨달음

    4·19혁명 51주년이던 2011년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이 4·19묘지에 참배하려다 4·19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승만과의 화해는 4·19정신 폄훼라는 것이었다. 12년이 흐른 지난 26일 이번에는 4·19 주역들이 이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묘역을 찾았다. 대학 시절 “이승만은 하야하라”고 외치던 이들이 백발이 되어 “이승만의 공은 인정하자”고 했다. 참배객 중 한 명인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85)에게 단체 참배의 배경을 물었다. 그는 4·19 때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이었다. “이 대통령의 하야 성명을 들었을 땐 민주주의를 살려냈다는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살면서 그가 아니면 이 나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늦었지만 우리가 (이승만 재평가에) 솔선수범하자고 했다.” ―그에 대한 평가가 바뀐 계기는…. “솔직히 진짜 하야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국민이 원하면 내려가야지’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더라. 내심 그를 다시 봤다. 그 후 한국정치사를 연구하며 서울시 인구가 200만 명이던 해방정국에 정치 단체가 600개였고 그중 약 80%는 좌파 성향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대로 뒀으면 공산화됐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막아낸 것이다.” ―그의 공을 인정하는 건 4·19정신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4·19세대의 정치 이상과 이승만의 이상이 다르지 않다.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켰기에 4·19도 가능했다. 우리의 참배가 4·19정신 중 지금 가장 절실한 관용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4·19 주역들이 이 대통령 묘역을 찾던 즈음 1960년대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했던 6·3세대가 이를 재평가하는 칼럼을 일간지에 게재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과 주일 대사를 지낸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83)는 국교 정상화에 찬성했던 부친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인 백봉 라용균 선생으로 당시 야당 몫의 국회 부의장이었다. ―1960년대 한일협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함석헌 선생은 ‘이 나라의 政府냐, 일본의 情婦냐’라고 규탄했고,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지를 표했다가 ‘왕사쿠라’ 소리를 들었다. “부친에게 정부 편을 드는 이유를 따져 물었더니 ‘우리나라가 농업만으로는 살 수 없는데, 다른 선진국들은 한국 산업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유일한 기회가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전두환 정부 경제수석을 지낸) 김재익 수석과 학생 시절 친했는데 그땐 김 수석도 ‘우린 능력도 자본도 시장도 없어 자동차 공업 같은 건 못 한다’고 하던 시절이다. 결국 부친의 정치인생은 그걸로 끝이 났다.” ―언제 부친이 옳았음을 깨달았나. “6·3항쟁 20여 년 후 미국 외교문서를 연구하며 알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 3만 달러로 인하공대를 설립했는데, 당시 미 외교관들은 ‘벼 품종 개량에나 쓸 일이지’ ‘가당찮은 야심’이라고 했다. 우리가 산업화하는 길은 일본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친은 정치인이면 ‘지금 여기서(hic et nunc)’ 가장 요긴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은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얘기해도 정치인은 일단 맞서 싸우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4·19세대와 6·3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챈’ 정치인들을 생각했다. 그런 인물이라면 더더욱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뿐 아니라 저것 또한’이라는 원칙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나.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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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셋 아버지 군 면제’ 황당 아이디어 소동[횡설수설/이진영]

    대학마다 봄방학 신설해 연애 장려, 정자 기증받아 난임 여성들에게 제공, 아이 셋 낳으면 대출금 전액 탕감,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 저출산 현상으로 고민이 깊은 나라들이 생애주기별로 내놓은 각종 출산 장려 대책들이다. 정부는 16년간 280조 원을 쓰고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자 새로운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인데 최근 여당이 내놓은 대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30세 전에 아이 셋을 낳은 아빠의 병역을 면제하자는 아이디어는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에서 나왔다. 이번 주 대대적인 저출산 고령화 대책 발표를 앞두고 대통령이 “과감한 대책”을 주문하자 자녀 1인당 2억 원이 넘는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과 함께 문제의 대책을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에서 비판이 제기된 후 국민의힘은 “공식 제안한 바 없으며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우선 현실성의 문제다. 서른 전에 아이 셋을 낳으려면 20대 초반에 결혼해야 한다. 한국 남성이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는 평균 입직(入職) 나이는 26세가 넘고, 초혼 나이는 33.7세다. 20대 초에 결혼해 아이 셋을 키울 정도의 경제력이 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금수저 병역 면제법’이라는 조롱이 나온다. 군 복무 기간이 1년 6개월로 짧아져 셋 낳는 조건으로 면제받으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설사 서둘러 결혼해 부지런히 낳아도 셋째를 보기 전에 서른이 되면 아이 둘을 남겨두고 뒤늦게 입대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생긴다. ▷출산을 병역 문제와 연계하자 남녀 간 논쟁도 달아올랐다. “애는 여자가 낳는데 왜 혜택은 남자가 보느냐”는 주장에 “아이 셋을 둔 아빠가 군에 안 가고 일하면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냐”는 반박이 이어졌다.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운 뒤 첫째를 낳으면 엄마, 둘째를 낳으면 아빠의 병역 의무를 면제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기쁘게 감당해야 할 출산의 의무를 군 면제를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발상이 불편하다는 지적에는 의견이 모아진다. ▷예전에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이 휴학이나 연수로 늦게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채용 시 불이익을 주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불필요하게 스펙 쌓으면서 결혼 시장에 늦게 들어오는 현상을 막자”는 취지였다. 모 국회의원은 “여성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몸매 변화에 대한 우려”라며 출산한 여성의 유방 수술에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을 추진했다가 중단하기도 했다. 아님 말고 식 황당한 저출산 대책은 “이런 나라에서 애 낳고 싶겠나”라는 냉소주의만 부추기게 될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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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원의 행복[횡설수설/이진영]

    요즘 1000원으로는 붕어빵도 못 사 먹는다. 두세 개에 2000원, 네댓 개에 3000원 달라 하지 1000원어치는 팔지 않는다. 편의점에 가도 크림빵이 1200원, 흰 우유 1100원, 삼각김밥이 1500원이다.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건 껌 한 통, 로또 복권 한 장 정도다. 그래서 요즘 대학가에선 든든한 한 끼를 단돈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학식이 인기라고 한다. ▷매일 아침 전국 곳곳의 대학교 구내식당은 1000원에 아침을 해결하려는 학생들로 붐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천원의 아침밥’ 사진들을 보면 잡곡밥과 계란국에 돼지불고기 묵무침 콩나물 김치까지 집밥보다 낫다 싶다. 학생이 1000원을 내면 정부가 1000원을 보태고 나머지는 학교가 부담한다. 정부 보조 없이 교수와 직원들이 모은 장학금으로 1000원에 아침밥을 주는 대학도 있다. 밥 한 끼 먹으려고 긴 줄을 선 학생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1000원의 행복’ 행정도 유행이다. 광주 서구는 양동시장에 고령자들이 시간제로 일하는 ‘천원 국시’집을 열었다. 노인 일자리 만들고 시장도 살려 보려는 시도다. 국수 한 그릇에 3000원이지만 시장에서 장을 본 사람들에겐 1000원만 받는다. 경북 영천시와 경주시는 교통이 불편한 지역 주민을 위해 ‘천원 행복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영천시 임산부는 출산 후 1년까지는 택시 요금이 1000원이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1000원에 감상할 수 있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천원의 행복’ 프로그램은 올해로 16년째를 맞았다. ▷1000원 행정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물가로 힘겨운 이들은 “생활 밀착형 행정”이라며 반긴다.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다 보니 1000걸음 걷고 퀴즈 풀 때마다 10원씩 포인트가 쌓이는 앱을 깔아 ‘앱테크’를 하고, 신규 발급 혜택을 노리고 수시로 새로운 카드를 신청하는 ‘카테크’를 하며, 개비당 10원을 주는 구청 담배꽁초 줍기 알바 뛰면서 끝 모를 불황을 견디고 있다. 10원도 아쉬운데 1000원은 오죽 크게 느껴질까. ▷“바람이 불 때는 그것이 곧 지나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 비가 올 때도 마찬가지다. 구름이 걷히면 곧 해가 나는 법이다.” 장석주 시인이 성인이 돼 독립하는 딸에게 쓴 편지 구절이다. 언젠가 찬 바람 지나고 비가 그치면 알게 될 게다. 가난한 나를 위해 많은 이들이 수고로움으로 따뜻한 아침밥을 짓고, 아름다운 공연으로 영혼의 허기를 달래 주었음을. 우리는 1000원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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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팬데믹에도 인류는 불행해지지 않았다 [횡설수설/이진영]

    코로나가 창궐한 3년은 21세기 인류가 맞은 최악의 시기였다. 6억8000만 명이 감염돼 680만 명이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인명 피해다. 경제는 뒷걸음질치고 기대수명은 짧아졌다. 그런데도 인류는 불행해지지 않았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20일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코로나 3년간 137개국 사람들의 행복도가 코로나 이전보다 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이 조사는 국가별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대 건강수명, 사회적 연대, 기부나 봉사활동 같은 자선행위, 정부에 대한 신뢰도,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자유도 등 6가지 항목을 종합해 산출한다. 그 결과 코로나 시기 1인당 GDP와 기대수명 부문의 감소를 사회적 연대와 선행활동으로 상쇄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8명이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었다”고 했고, 자선활동이 코로나 이전보다 25% 늘었다. 코로나 봉쇄 상황에서도 서로 안부를 물어가며 고립감을 이겨낸 것이다. ▷기부하고 헌혈하고 낯선 이를 돕는 이타적 행위는 수혜자를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사람과 선행을 목격한 3자 모두의 행복도를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팬데믹 기간 웃고, 즐겁고, 재미있는 감정을 느꼈다는 응답이 걱정되고 슬프고 화났다는 응답의 두 배나 됐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를 계기로 경제적 성공보다 이웃과의 유대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의 변화도 행복도에 영향을 주었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의 행복도가 젊은 세대보다 높게 나왔다. 치사율이 높은 만큼 생존의 기쁨도 컸을 것이다. ▷가장 행복한 국가는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핀란드다. 한국은 코로나 3년간 행복도가 코로나 이전 3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상대적 순위는 57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낮은 곳은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 등 세 나라뿐이다. 경제력이 상위권인 데다 기대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임을 감안하면 나머지 4개 항목의 낮은 점수가 행복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는 ‘아플 때 도움 받을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코로나 전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헌혈 참여율과 기부금품 모금 실적도 작게나마 코로나 타격을 받았다. 낯선 사람을 돕거나 시간 내어 봉사하는 일에는 금전적 기부보다 더 인색한 편이다. 위기가 닥치면 사회 역량을 한데 모으는 정부 리더십, 남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용기, 그리고 추울 때 더 추운 사람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세기적 위기 속에서도 우린 더 행복할 수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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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 출산율 1위국 사교육 참여율은 15%인데…[오늘과 내일/이진영]

    지난해 초중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41만 원으로 전년도보다 1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5.1%)의 두 배가 넘는다. 사교육 참여율도 역대 최고치인 78.3%이고, 사교육비 총액은 26조 원으로 삼성전자 연구개발비(25조 원)보다 많았다. 어느 나라에나 사교육이 있지만 한국의 사교육 현상은 이례적이다. 첫째 참여도가 매우 높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학회(IEA)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평균 사교육 참여율은 43.9%로 한국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이다. 둘째 사교육은 가난한 나라에서 많이 한다(공교육이 부실해서다). 그런데 한국은 잘사는데도 많이 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만 달러가 넘는 아일랜드는 사교육 참여율이 13.8%이고, 3000달러도 안 되는 이집트는 79%다. 사교육 참여율이 70% 넘는 나라는 이집트, 한국, 그리고 1인당 GDP가 6700달러인 남아공뿐이다. 셋째 다른 나라는 공부를 못할수록, 한국은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을 받는 경향이 있다(이화여대 2022년 박사논문 ‘사교육 활용의 국가적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분석’). 이처럼 한국의 사교육 현상이 일반적 추세와 다른 양상을 띠는 이유는 사교육을 받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학생들은 학교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keep in class) 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excel in class) 한다. 고교 수학을 중1 때 끝내고, 영어 회화는 초등학교 때 마스터하는 식이다. 취업과 지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교육 경쟁도 뜨겁다. 선진국 가운데 이례적으로 사교육 참여율이 높은 나라가 일본(51.2%) 싱가포르(55.4%) 대만(56.2%)이다. 아시아 특유의 교육열에 더해 소득 불평등이 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나라들이다. 덜 먹고 덜 입어가며 애들 공부시킨다면 좋은 일 아닐까. 아니다.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한 인공지능(AI) 시대에 GDP의 1.2%를 정답 찾기 능력 향상에 쓰는 건 투자가 아니라 낭비에 가깝다. 더구나 공교육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어 이중으로 헛돈을 쓰는 셈이 된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력을 좌우하게 되면 사회 역동성이 떨어지고 통합도 어려워진다. 과도한 사교육 부담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저출산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사교육 참여율이 높은 한국(출산율 0.78명) 일본(1.27명) 싱가포르(1.05명) 대만(0.87명)은 모두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들이다. 반면 사교육 참여율이 15.4%로 아일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출산율 1위국(1.79명)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등 출산율이 높은 서구 선진국들도 사교육 참여율이 10∼20%대로 낮다. 사교육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엇갈리지만 학교 교육이 충실하면 사교육을 덜 받는다는 사실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되고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기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3만∼24만 원 선에서 큰 변화가 없다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교체기인 2017년부터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사교육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시기엔 기초학력 미달자도 적었고, 사교육비가 오르는 시기에 맞물려 기초학력 미달자도 가파르게 늘기 시작했다. 부실한 공교육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졌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사교육비와 기초학력 관리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줬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이번에도 “이 정도면 애 키울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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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출산율 하락에 놀란 日中 “난자를 냉동하자”

    코로나 이후 주요 선진국들의 출산율이 일제히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 위기로 출산율이 하락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 미국 영국 독일을 포함한 27개국의 출산율이 올랐다. 일하느라 임신을 미뤘던 여성들이 재택근무에 힘입어 출산에 나선 덕분이다. 반면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인 한중일의 출산율은 더 떨어졌다. 다급해진 일본과 중국이 동시에 꺼내든 대책이 ‘난자 냉동’이다. ▷일본은 저출산 극복에 연간 105조 원을 넘게 쓰고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27명으로 하락하자 비상이 걸렸다. 도쿄도는 난자 동결 시술을 받는 여성에게 보조금 30만 엔(약 29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출산율이 1.18명으로 집계된 중국에서도 온갖 제안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난자 냉동이다. 중국은 미혼 남성의 정자 냉동은 가능하지만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을 포함한 불임시술은 불법이다. 이참에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난자 동결은 허용하자는 것이다. ▷여성은 생식 기간 동안 400∼500개 난자가 배란된다. 이 중 일부를 채취·동결한 후 질소탱크에 보관했다 해동해 쓰는 기술이 1980년대 개발됐다. 원래 항암치료 등을 앞둔 환자들이 불임에 대비해 얼려두었는데 요즘은 일하는 여성들이 미래 출산을 위해 시술받는다. 미국 뉴욕대 연구팀에 따르면 출산 성공률은 약 39%, 난자 채취 당시 38세 이하이면서 동결 난자가 20개 이상이면 성공률이 70%까지 높아진다. 냉동 보관 연한은 따로 없다. 국내에선 백혈병 환자가 9년간 냉동 보관한 난자로 2011년 출산한 사례가 있다. ▷난자 채취부터 보관까지 한국은 300만∼350만 원, 미국은 1만 달러(약 1300만 원) 넘게 든다. 비용 부담이 커 고소득 여성들이 주로 활용한다. 코로나 시기 선진국에선 출산 붐과 함께 난자 냉동 붐이 일었다. 미국은 냉동용 난자 채취량이 코로나 이전보다 40%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재택근무로 상담과 시술을 받기가 쉬워진 덕분이다. 출산율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배경엔 냉동 난자의 증가도 있다. ▷한중일 3국도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었는데 출산 붐이 일지 않은 이유가 뭘까. 한국은 남편의 재택근무에 아이까지 재택수업을 하면서 ‘독박 육아’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 일본의 독박 육아인 ‘완오페(원 오퍼레이션) 육아’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선 남성의 육아휴직을 허용하는 곳이 드물다. 서구가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라고 지목한 성별 가사와 돌봄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난자를 얼려둔 여성도 쉽게 해동할 엄두를 못 낼 것 같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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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가해자들의 ‘학폭’ 승리 공식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상식적인 부모라면 피해 학생이 얼마나 다쳤는지부터 묻고, 가해 사실이 확인되면 아이와 함께 피해 학생과 부모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며 선처를 호소할 것이다. 더러는 피해 학생 탓을 하거나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정당화하는 몰상식한 부모들이 있다. 요즘은 변호사를 앞세워 법적 대응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법 기술자’들은 가해자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데만 집중한다. 우선 피해 학생 쪽에 연락하지 말라는 조언부터 한다. 섣불리 사과하거나 합의를 시도하면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면 9단계 징계 조치 중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지 않는 ‘3호(학교 봉사)’ 이하 처분이 나오도록 한다. 그 이상의 징계 처분이 나오면 재심을 청구하고, 그래도 안 되면 징계 처분 취소 소송으로 시간을 끈다. 그래야 특목고든 대학이든 입시 전형이 끝날 때까지 학폭 전과 기재를 미룰 수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도 이 공식을 따랐다. 정 변호사 아들은 고1이던 2017년 5월부터 동급생을 언어폭력으로 괴롭히다 2018년 3월 학폭위 심의를 받게 됐다. 당시 현직 검사였던 아버지는 “학교의 선도 노력을 많이 막았고”, 진술서 작성을 지도했으며, 전학 처분이 나오자 재심 청구, 가처분신청, 징계처분 취소 소송으로 1년 가까이 전학을 미뤘다. 결국 아들은 수능 성적만으로 서울대에 합격했고, 피해 학생은 징계 처분이 지연되면서 몸도 학교 생활도 만신창이가 됐다. ▷대구 중학생이 학폭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후 2012년 학폭 징계 기록을 생기부에 남기는 제도가 도입됐는데 이를 계기로 학폭 전과 세탁을 위한 소송 수요가 생겨났다. 증거가 남는 신체폭력에서 언어폭력이나 은근한 괴롭힘으로 학폭이 ‘진화’하면서 법 기술이 개입할 여지도 커졌다. 서울행정법원엔 학폭 사건 전담 재판부가 신설됐으며 학폭 전문 변호사 17명이 활동 중이다. 간혹 억울한 가해자도 있지만 많게는 1000만 원이 넘는 소송비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가 시간을 끌며 징계를 피하는 동안 피해자는 2차 가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학폭이 소송전이 되는 순간 ‘선도’ ‘회복’ ‘화해’ 같은 교육적 가치에서 멀어진다. 정 변호사가 법 지식이 아닌 상식으로 대응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합당한 책임을 지게 했더라면 피해 학생은 일상을 회복하고, 아들은 훨씬 나은 사람이 됐을 것이다. 법 기술자 아버지의 그릇된 자식 사랑이 남의 아이와 제 자식과 스스로가 달리 살아갈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렸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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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설악산 오색케이블카 41년 논란 끝에 설치된다는데

    설악산은 5겹 울타리로 보호받는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천연보호구역이자 자연공원법상 국립공원이다. 1982∼2005년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백두대간 보호지역 핵심구역으로 지정됐다. 이런 5겹 규제를 뚫고 인공 시설을 설치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오색케이블카 논쟁을 40년 넘게 끌어온 이유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어제 강원 양양군의 오색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에 조건부 동의 의견을 냈다. 오색리와 대청봉 왼쪽 봉우리인 끝청 하단 사이 3.3㎞ 구간에 1000억 원을 들여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마지막 관문인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 등을 통과하면 연내 착공해 2026년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1970년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직전에 사업 허가가 난 설악동 케이블카(권금성까지 1.1㎞ 구간)에 이은 두 번째 설악산 케이블카다. ▷외설악에 설악동 케이블카를 설치한 후 관광객이 몰려들자 강원도는 1982년 내설악 쪽에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했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자연경관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두 차례 불허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후엔 양양군이 사업 주체가 돼 재시동을 걸었다. 설악산을 끼고 있는 군은 양양 속초 고성 인제 4개 군인데, 강원도의 중재 끝에 경제 사정이 어려운 양양군을 사업 주체로 밀었다는 후문이다. ▷강원도는 오색케이블카로 연간 120억 원 이상의 수익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 노인과 장애인도 설악산 경관을 즐길 수 있고, 탐방객들의 등산로 훼손을 막아 생태계 보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반대쪽에선 케이블카 소음으로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상부 정류장에서 대청봉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도 결국 뚫리게 돼 대청봉이 권금성처럼 훼손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격렬한 찬반 논쟁과 수십 차례 행정 처분을 거치며 승인과 불허를 반복했던 사업이 이제 사실상 막바지까지 왔다. ▷강원도는 숙원을 이뤘다고 환호하지만 우려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지난 41년간 상부 정류장 위치는 중청→ 대청봉→ 끝청으로 바뀌어 왔는데 끝청에선 대청봉에 막혀 바다가 거의 안 보인다. 케이블카 설치 후에도 관광객이 기대만큼 오지 않으면 ‘전망의 한계’를 탓하며 대청봉 길을 열어 달라 할 가능성이 높다. 오색케이블카는 1989년 덕유산 케이블카 허가 이후 30여 년 만에 설치되는 국립공원 케이블카다. 지리산 북한산 속리산 등 다른 국립공원 지역들이 설악산만 보고 있다. 조건부 허가인 만큼 설악산 생태 보호를 위한 방안들을 끝까지 챙겨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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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진영]이러다 AI의 애완견으로 살아야 할까

    “인간이 기계의 애완견이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2015년 9월 한국을 찾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인공지능(AI) 덕에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애완견처럼 편하게 사는 세상이 올 거라는 뜻이었다. 그는 AI가 인간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최근 AI 챗봇 챗GPT가 등장해 경이로운 능력을 뽐내자 8년 전 ‘애완견 낙관론’이 AI가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아 주인 행세 하려 들 거라는 비관론으로 바뀌어 회자되고 있다. AI가 보고서 쓰고, 여행 계획 짜고, 번역하고, 문법 교정까지 한다. 그것도 주문한 지 몇 초 만에, 24시간 지치지 않고, 어떤 불평도 없이, 헐값에 말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챗GPT의 놀라운 글솜씨를 확인하고는 AI에게 사무실을 내주고 애완견으로 전락할 날이 올 거라며 개 밥그릇을 준비해야겠다고 썼다. 진짜 그런 날이 올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기술 발전에 따른 구조적 일자리 감소에 대비하자는 기본소득 논쟁은 1960년대에도 뜨거웠다. 결과적으로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가 성장했으며 고용률은 잠시 출렁이긴 해도 장기적으로는 큰 변동이 없었다.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된 것 이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 덕분이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앗아갈 능력을 갖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AI는 어려운 수학 문제는 풀어도 얼굴 알아보기, 자전거 타기, 운전하기와 같은 쉬운 일은 어려워한다. AI가 작동하려면 정확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한다. 그런데 비슷비슷한 얼굴을 구별하는 법, 두 바퀴로 균형 잡는 법, 돌발 변수 가득한 도로에서 안전하게 운전하는 법을 어떻게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연구해온 영국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we know more than we can tell)”고 했다. 이른바 ‘폴라니의 역설’ 때문에 우린 AI에게 명료한 언어로 지시하지 못하고 AI는 인간이 하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AI는 대신 방대한 데이터와 통계에 의존해 암묵적 규칙을 추론하는 방식으로 폴라니의 역설을 극복한다. 사람이면 쉽게 하는 일을 ‘데이터 노가다’로 만회한다는 뜻인데 이게 또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 매사추세츠공대(MIT) 데이비드 아우터 교수는 의자 분류하기로 설명한 적이 있다. 무엇이 의자인가. 다리와 등받이와 앉을 판이 있으면 의자인가. 명확한 지시어를 받지 못한 AI는 등받이 없는 의자와 탁자를 구분 못 하고, 다리 없는 의자는 의자로 분류해내지 못한다. 사람도 설명 못 하는 의자다움을 기계가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AI 전문가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전후로 AI가 전체 인류의 지능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대략 20년 후의 일이다. ‘20년 후면 AI가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는 충격적 예언은 1950년대에도 있었다. 그때도 틀렸으니 이번에도 빗나가는 거냐고 따지려는 게 아니다. 칼 세이건은 “무(無)의 상태에서 애플파이를 만들려면 먼저 우주를 창조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한 파이 만들기도 축적된 지식 없이는 아득한 일이다. 하물며 수만 년 동안 변화무쌍한 환경과 부딪혀가며 직관과 유연함과 상식으로 체화해온 인간의 지적 능력을 따라잡기는 1초 만에 논문 써내는 AI로서도 버거운 일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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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이름은 출판기념회, 실상은 돈봉투 전달식… 이젠 끝내자

    책을 많이 내는 직업군으로 정치인이 있다. 국정감사와 정기국회로 바쁜 와중에도 부지런히 책을 낸다. 정치철학과 의정활동 홍보용이라지만 실은 출판기념회를 하기 위해서다. 무제한 돈봉투를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출판기념회다. 행사장엔 보험용 로비용 눈도장을 찍으려는 ‘을’들로 북적이는데 이들은 ‘책값’ 대신 ‘떡값’, ‘출판기념회’ 대신 ‘출금(出金)기념회’라고 부른다. 코로나로 뜸했던 출판기념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출판기념회 모금액은 정치자금과 달리 한도도, 회계 보고 의무도 없다. 선거일 90일 전 금지 규정이 있을 뿐 도서정가제에 따라 싸게 팔지만 않으면 책값으로 얼마를 받든 자유다. 변변치 못한 성의라는 뜻의 ‘미의(微意)’라고 적힌 봉투 안엔 많게는 수백만 원이 들어 있다고 한다. 중진 의원은 수억 원대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는데 공개 의무가 없으니 정확한 액수는 본인 외엔 알 수가 없다. ▷현역 의원은 보좌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이나 소셜미디어 게시글 등을 묶어 내는 경우가 많다. 대필 작가를 쓰는 정치인도 있어 선거철이면 대필 시장이 들썩인다. 출판기념회 일정에 맞춰 2주 만에 써 달라고 주문할 때도 있지만 정형화된 글이어서 쓰기가 어렵진 않다고 한다. 입지전적 인생 스토리, 지역구에 대한 애정, 의정활동을 적당히 짜깁기하면 된다. 업계에 따르면 대필 가격은 국회의원은 3000만∼5000만 원, 시장과 구청장 후보는 600만∼2000만 원이다. ▷출판기념회 ‘갑질’에도 등급이 있다. 선거 전에 했는데 선거 직후 또 하는 경우가 3등급, 연례행사로 하는 경우 2등급이다. 최악인 1등급은 예결위원장이나 상임위원장 신분으로 하는 행사다. 이 경우 출판기념회는 ‘입법로비’ 창구가 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2014년 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법안을 발의해준 대가로 출판기념회에서 유관 단체로부터 3360만 원을 받아 대법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계기로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법안까지 나왔지만 흐지부지됐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출판기념회가 논란이 되자 국민권익위가 입장을 발표한 적이 있다. 지자체장이나 현역 의원이 직무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의례적인 범위를 넘는 책값을 받으면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의례적인 범위’라는 표현이 모호해 하나 마나 한 유권 해석이었다. 중앙선관위는 출판기념회 금품수수를 금지하고 개최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 의견을 낸 상태다. 정치인이 낸 책의 유일한 독자는 약점 잡을 게 없나 뒤져보는 경쟁자라고 한다. 정치 혐오만 부추기는 출판기념회 갑질 문화를 청산할 때가 지났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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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진영]반값 등록금, 이주호 장관이 결자해지하라

    교육감 직선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도입돼 진보 진영의 정책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도 여당과 합의안을 만들 정도로 직선제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명분은 주민 대표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지만 “교육은 선거하면 보수가 이긴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진보 색채가 짙은 반값 등록금도 실은 보수의 정책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이던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라고 제안한 후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돼 실행했다. 2011년 등록금 기준으로 가정 형편에 따라 학생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는 정책인데 2015년 그 목표에 도달했다. 4년제 국공립대 학생들은 등록금의 35%인 148만 원을, 사립대 학생들은 53%인 397만 원을 낸다(2021년). 월평균 12만∼33만 원이면 초등학생 사교육비(40만 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덕분에 봄이면 등장했던 등록금 투쟁 ‘춘등투’가 사라지고 대학 진학률도 74%로 높아졌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는 여기까지다. 우선 수혜 대상이 넓어 교육 재분배 효과가 미미하다. 지난해 월 소득이 1024만 원이 넘는 소득분위 8구간 학생이 최고 350만 원의 국가 장학금을 받았다. 고졸자가 낸 세금으로 중산층 자녀의 대학 학비까지 지원하는 것이 공정한가. 대학 문턱이 낮아진 대신 교육의 질이 떨어진 건 더 큰 문제다. 정부가 반값 등록금을 위해 대학에 등록금 동결과 장학금 확충이라는 ‘자구 노력’을 강요한 결과다. 여기에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충격까지 더해졌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매년 줄어드는 등록금 수입으로 장학금을 늘리다 보니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구입비가 2011년에 비해 22%나 급감했고 강좌 수도 10% 줄었다.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거점 국립대 조교수 연봉이 5000만 원으로 삼성 2년 차 전문 연구원의 절반도 안 된다. 그나마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는 국공립대는 형편이 낫다. 지방 사립대는 최저 시급 수준인 월 200만∼250만 원을 받는 교수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딴 졸업장이 제값을 할 리 없다. 고졸자의 고용률은 7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5%포인트 낮은데, 대졸자로 올라가면 그 차이는 7.3%포인트로 벌어진다. 고졸자가 100만 원 벌 때 OECD 대졸자들은 144만 원, 한국은 138만 원을 받는다. 그저 헐값에 졸업장만 내어주는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애초에 고등교육의 정책 목표를 대학 경쟁력 강화와 교육 기회 확대에 두었어야 했다. 부실 대학은 퇴출시키되 살아남은 대학엔 자율을 보장해 혁신을 장려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정부 지원을 집중했더라면 대학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대학 졸업장은 튼튼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됐을 것이다. 정부가 지원은 제대로 않으면서 300만 대학생 표심을 의식해 고소득층에까지 선심 쓰다 공멸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교육감 직선제 채택에 참여했고, 반값 등록금 도입은 주도했다. 교육감 직선제가 초중고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든 데 책임이 있고, 반값 등록금이 대학을 황폐화시킨 데는 더 큰 책임이 있다. 정부는 교육감 직선제 대안 찾기에 나섰지만 반값 등록금은 손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오랜 기간 보수 정부의 교육 정책을 이끌어온 이 장관이 보수 진영의 실책을 바로잡고 아사 직전의 대학을 살려내는 책임을 다하기를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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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썰렁한 경기에도 사랑의 온도탑 100℃ 넘었다

    설 대목 경기가 썰렁하다지만 서울 달동네 사람들에겐 말 그대로 냉골이다. 고물가에 경기 한파까지 덮치면서 한 달에 열흘은 연탄불 없이 시린 냉기를 견딘다. 사회복지 단체에도 불경기에 팔지 못한 식품 기부만 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매년 연말연시를 맞아 전국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15일 100도를 넘어섰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4040억 원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1일 모금을 시작했는데 어제까지 4201억 원이 모여 기부 실적을 나타내는 온도계가 104도를 기록했다. 모금이 끝나는 이달 말이면 전년도 모금액(4279억 원)을 웃돌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피해가 심각했던 2021년과 2022년에도 115.6도로 펄펄 끓었던 사랑의 온도탑이다. ▷올해 모금에선 금융권의 기부금 증액이 두드러졌다. 연예인 팬덤기부도 새로운 트렌드다. 큰손들의 통 큰 기부만 있는 게 아니다. 경기 안성의 노신사는 아내가 생전에 모아둔 동전과 장례비용을 합쳐 200만3550원을 내놓았다. 인천의 환경미화원은 지난 1년간 거리를 청소하며 주운 동전과 지폐 약 26만 원을 보탰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용돈을 모아서, 중년 부부는 아들이 무사히 전역했다며 감사 성금을 냈다. ▷팬데믹 이후 경기는 얼어붙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기부 인심은 오히려 후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자선지원재단 CAF가 매년 119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낯선 이를 도와준 적이 있는지 △돈을 기부했는지 △자원봉사를 했는지를 물어 산출하는 세계기부지수는 2022년 4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부지수 1위의 가장 관대한 국가는 5년째 인도네시아다. 상위 10위권 목록을 보면 미국(3위), 호주(4위), 뉴질랜드(5위), 캐나다(8위)를 제외한 6개국은 경제력이 중하위권인 나라들이다. ▷한국은 대만(91위), 프랑스(100위), 일본(118위)과 함께 88위로 여전히 하위권이다. 2014년 개인 기부금 공제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뒤 기부 증가율이 정체 상태다. 기부의 특징은 하는 사람이 계속 한다는 점이다. 마음은 있는데 선뜻 시작을 못 하는 이들에게 전북 익산의 ‘붕어빵 아저씨’ 김남수 씨의 조언을 공유한다. 매일 붕어빵을 구워 번 돈에서 1만 원을 떼어 모아두었다 연말에 365만 원을 내놓는 기부를 10년 넘게 하고 있다. “목돈을 내긴 어려워도 하루 100원, 1000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매일 서랍에 누군가를 위해 1만 원을 넣을 때마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며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건 덤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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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매 맞는 남편 위한 보호소 생긴다

    가정폭력 실태조사가 전국 단위로 시행된 첫해인 2004년 연구자들은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최근 1년간 아내의 폭력을 경험’한 남성이 10명 중 3명꼴(32.6%)로 집계된 것이다. 남편의 폭력을 경험한 아내는 37.3%였다. 이 조사는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라 3년 주기로 하는데 15년 후 조사에선 배우자의 폭력을 경험한 남녀 비율이 26% 대 28.9%로 성별 격차가 더 좁혀졌다. ▷아내가 남편에게 가하는 가장 빈번한 폭력은 ‘통제’와 ‘정서적 폭력’이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귀가 시간을 허락받게 하고, 본가 사람이나 친구와 못 만나게 하고, 누구와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는지 감시하는 행동이 통제의 폭력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 욕을 하고, 남편의 물건을 부수고, 남편이 아끼는 반려동물을 해치겠다고 위협하는 행동이 정서적 폭력이다. 가정폭력을 처음 경험하는 시기는 대개 결혼 5년 이후로 여성보다 늦지만, 결혼 전 사귈 때 처음 폭력을 경험하는 비율은 여성보다 높다. ▷성적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남편은 100명 중 1명이 넘는다(아내는 100명 중 6명이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촬영해 동의 없이 공개하는 식이다. 때리고 밀치고 꼬집고 차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고 흉기로 위협한다. 어떤 집은 장모까지 가세해 피해를 키운다고 한다. 남자가 왜 약한 여자에게 맞고만 있을까. ‘오죽 남자가 못났으면’ 싶어 수치스럽고, 아이들 생각해서 참는다. 때리는 아내를 말리려다 몸싸움이 나 경찰이 오면 남자가 불리하다. 아내가 때리기 전 남편이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경우도 적지 않다. ▷코로나로 부부가 집에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가정폭력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가정폭력상담소 128곳에 접수된 상담 건수가 2021년 하루 평균 722건이었는데 지난해엔 750건으로 늘었다. 상담 건수 10건 중 3건은 피해자가 남성이다. 아내의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온 남성들은 모텔을 전전하거나 노숙자 보호시설을 찾는다고 한다. 여성가족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 남성을 위해 첫 전용 보호시설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배우자 폭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는 남녀 모두 상대방에 극도로 의존적이고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성은 부모에게서 신체적 학대를 받은 경우가, 여성은 부모 사이에 심각한 폭력을 목격한 경우가 많다. 이들도 자녀 앞에서 서로 욕하고 때린다. 폭력은 대물림되는 것이다. 그러니 부부는 명심해야 한다. 아름다운 거리 유지하기. 아내를, 남편을 꽃으로도 때리지 않기.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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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진영]오둥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 낳지 않는 이유는 여럿입니다. 제 한 몸 건사하기 어렵거나 부부의 인생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을 겁니다.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어두워 낳기 싫다는 커플도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서른둘 동갑내기 김진수 서혜정 육군 대위 부부는 왜 둘도 셋도 넷도 아닌 다섯 쌍둥이를 낳은 걸까요. 국내에서 오둥이 보기는 34년 만입니다. 난임 시술 증가로 다둥이는 많아져도 오둥이는 귀합니다. 오둥이가 태어난 2021년 출생아 26만 명 중 다둥이는 1만4000명(5.4%), 삼둥이 이상은 5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0.2%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오둥이도 정상적으로 크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의료계에선 삼둥이만 돼도 선택적 유산을 한 뒤 둘만 낳게 하는 게 관행입니다. 삼둥이 이상은 받아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지요. 부모로서는 키우기도 버거우니 의사의 권유를 따르기 쉽습니다. 잔인한 선택에 합리적 기준이란 건 없습니다. 태아의 크기가 작은 순이 돼야 할까요. 아니면 선택적 유산을 하기 쉬운 곳에 자리 잡은 아이를 희생시켜야 할까요. 엄마 서 대위의 결정을 도운 건 배 속 아기들이었습니다. “다섯 개의 심장 소리를 듣는데 마지막 심장 소리가 엄청 컸어요. 그 소리를 듣고 나니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어요.”(채널A ‘금쪽같은 오둥이’) 부부는 국내에서 쌍둥이를 가장 많이 받은 전종관 서울대 교수를 찾았습니다. 삼둥이를 500번, 네둥이는 10번 받아본 전 교수도 오둥이는 처음이었습니다. 전 교수는 쌍둥이에 비해 삼둥이가 불리하지만, 삼둥이만 놓고 보면 하나를 희생시킬 때보다 셋을 모두 유지했을 때 생존 확률도 높고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얘들이 커서 뭐가 될 줄 알고 고릅니까. 어렵게 찾아온 애기들한테 기회는 줘야지요.” 임신 28주가 지난 2021년 11월 소현 수현 서현 이현 그리고 청일점 재민이가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까지 30명 넘는 의료진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몸무게는 850g∼1.05kg, 다 합쳐도 4.9kg입니다. 극소 저체중아로 태어나 80∼103일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다가 퇴원해 지금은 하루 분유 한 통을 싹 비우고 기저귀 50장을 쓰면서 잘 크고 있습니다. 아빠는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며 육아의 고단함을 전합니다. 육아휴직을 번갈아 쓰는 부모와 도우미를 자청한 할머니까지 어른 2.5명이 아기 5명을 상대로 매일 육아전쟁을 치릅니다. 아이들이 걷고 뛰기 시작하면 다른 다둥이 엄마들처럼 “교수님, 그때 그렇게 힘들게 받아주신 아이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요”라며 하소연하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 곳에서 양육비와 학비를 지원해 경제적 부담은 덜었지만 오둥이가 커가는 내내 맘 졸이게 되겠지요. 그래도 오둥이 부부는 다섯 아이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대가 없는 출산의 의무를 감내한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을 알게 될 겁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변화무쌍한 세상의 바다에 떠다니다 돌이킬 수 없는 ‘궁극의 사건’(출산)으로 단단한 닻을 내리는 것, 내가 죽은 후에도 세상은 지속되리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조심스러운 몸가짐을 하는 것 아닐까요. 다둥이 부모가 된다는 건 사랑의 마음은 하나 둘 셋 퍼주어도 마르지 않고 솟아오르는 샘물임을 새삼 깨닫는 것 아닐까요. 그런 부모 품에서 오둥이는 쑥쑥 자랄 겁니다. 올 한 해 힘들고 지칠 때면 제게도 그런 부모가 있었음을, 기적 같은 오둥이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려 합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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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흉악범 신상공개 사진, “같은 사람 맞나”

    요즘 누리꾼 수사대가 주목하는 인물 중 하나가 이기영(31)이다. 경기 파주시에서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그의 사진이 공개된 후 “실물과 다르다”는 증언이 이어지자 소셜미디어를 털어가며 최근에 찍은 사진들을 찾고 있다. 경찰이 공개한 사진은 단정한 운전면허증 사진인데 안경을 쓰고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지금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의자 전주환도 경찰이 처음 공개했던 선한 눈매의 증명사진과 포토라인에서 찍힌 사진이 달라 “같은 사람 맞느냐”는 말이 나왔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복역 중인 조주빈도 증명사진 속 앳된 얼굴과 실제 모습 간 차이가 컸다. 경찰이 공개하는 사진은 신분증의 증명사진이 대부분이어서 범행 시기와 시차가 나거나 보정 작업을 거친 사진일 경우 실물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경찰이 체포 후 촬영한 식별용 사진(머그샷)이 있지만 피의자가 원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머그샷 공개에 동의한 사람은 2021년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자친구의 가족을 보복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이석준이 유일하다. 구치소를 오가거나 검찰에 송치되는 과정에서 언론사 카메라에 얼굴이 잡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전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처럼 긴 머리로 얼굴을 덮는 ‘커튼 머리’를 하거나, 코로나를 핑계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 예방이라는 신상공개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머그샷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5년간 발생한 살인 인신매매 강간 추행 등 특정강력범죄는 2만8822건, 이 중 신상정보공개위원회에 상정된 건수는 49건,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건 28건에 불과했다. 신상공개 사례가 전체 흉악범죄의 0.1%도 안 되는데 이마저 실물과 동떨어진 사진을 공개하면 어떻게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재범을 막느냐는 것이다.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는 기본권 침해라는 반론도 만만치 많다. n번방 사건 피의자들 중 일부는 2020년 6월 이 제도 근거법이 무죄추정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2개월 후에는 경찰이 강간·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신상 공개한 ‘강간범’에 대해 검찰이 성폭행은 없었다는 처분을 내리는 일이 발생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엉뚱한 ‘낙인찍기’가 없도록 신상정보공개 심의의 전문성을 높이되 공개 결정이 난 경우라면 “누군지 못 알아보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머그샷 수준의 사진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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