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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서울 마포경찰서 진술녹화실에서 박 씨(76)를 만났어. 영장에는 ‘다세대주택에 사는 이웃 할머니를 폭행해 숨지게 하고 이를 감추려고 불을 질렀다’고 적혀 있었지. 나만큼이나 형사들에게 인기 좋은 유전자검사 기기가 ‘할머니 손톱 아래에서 박 씨 유전자가 나왔다’는 결과지를 출력해 주자 박 씨는 살인 혐의를 인정하더라고. 하지만 불을 질렀다는 혐의는 계속 부인했어. 내가 나설 순간이 온 거야. 그의 손등과 눈썹을 크게 확대해 형사도, 그도 볼 수 있게 화면에 띄웠지. 불길이 순간적으로 확 치솟을 때 손등의 털과 눈썹 끝자락이 그을려 뭉툭하게 변한 게 확연하게 보였어. 눈으론 절대 알 수 없는 범행의 증거였지. 그제야 박 씨가 고개를 떨구더라고. 내가 누구냐고? 나는 명탐정 셜록 홈스 뺨치는 휴대용 영상 현미경이야. 사람이 맨눈으로 찾을 수 없는 미세 증거를 볼 수 있지. 바퀴 달린 커다란 여행가방처럼 생겼어. 가방을 열면 200배 확대가 가능한 디지털 현미경과 모니터가 들어 있지. 현장에서 촬영, 재생, 녹화가 가능해. 형사들이 내게 고맙다고 하는 이유야. 내가 없었을 때는 현장에서 얻은 미세 증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야 했거든. 하지만 이제 전국 200여 개 경찰서마다 나를 써서 0.001mm 크기의 미세 증거를 확인할 수 있게 됐지. 용의자 추적을 시작하는 시간이 그만큼 빨라졌단 뜻이야. 미세 증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 60대 식당 여주인이 신체 일부에 틀니가 박힌 채 사망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어. 형사들 손에 들려 현장에 가보니 범인은 부엌 나무문을 뜯고 들어와 범행을 저질렀더군. 사건 발생 10일 후 유력한 용의자가 붙잡혔어. 역시나 ‘식당에서 밥만 먹고 나왔다’며 발뺌했어. 하지만 그의 옷소매가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 눈엔 보이지 않던 식당 나무문 재질과 똑같은 목재 가루와 여주인이 입었던 빨간 스웨터의 미세한 섬유 조각이 선명하게 화면에 나타났어. 열흘 만에 형사들이 집으로 퇴근할 수 있었지. 내가 꼭 나쁜 사람만 잡아내는 건 아니야. 한 여고생이 50대 초반 남자에게 성폭행당할 뻔했다고 경찰에 신고했어. 여학생은 저항하다 얼굴을 맞아 코피까지 흘렸지. 신고 10분 뒤 근처에서 급하게 무단 횡단을 하던 중년 남자가 붙잡혀 왔어. 여학생은 보자마자 “바로 저 남자예요”라고 소리쳤어. 나도 화가 나 그 어느 때보다 정밀하게 눈을 들이대곤 남자의 손과 손톱, 옷가지에 여학생의 살점이나 혈액, 옷 섬유 조각이 없나 살폈지. 터럭 하나도 나오질 않더라고. 여학생이 당황해서 무턱대고 범인으로 지목한 사건이었어. 나는 억울한 사람 만들지 않는 데도 아주 요긴하다니까. 세상이 복잡해지고 범죄 수법도 교묘해지면서 내 인기는 갈수록 올라가는 중이야. 그러다 보니 살인이나 방화, 강도 같은 강력 범죄 현장에 과학수사요원 손에 들려 자주 출동하고 있어. 프랑스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란 명언을 남겼어. 미세 증거를 확보하면 범인이 현장에 있었고 피해자와 신체 접촉한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뜻이지. 미국 과학수사계에는 “수사란 체모와 섬유와의 전쟁이다”란 말까지 있어. 앞으로 영화에서처럼 즉시 정확한 성분까지 분석 가능한 내 후배 현미경이 나올 거야. 홈스의 돋보기는 이제 잊고 나와 내 후배들의 활약을 기대해 줘!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앤 일명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들은 수사기관이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 억울한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길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고 김태완 군 사건도 초동수사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면 일찍 해결될 수 있었다. 과학수사(CSI) 수준을 높여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를 특정할 증거나 단서를 확보하는 것이 공소시효 폐지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기획시리즈 ‘증거는 말한다’는 선혈이 낭자한 살인사건과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증거의 세계 등 한국 CSI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았다. 》손이 얼얼할 정도로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딸의 빌라 현관문은 열쇠공이 도착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철컥’ 소리를 냈다. 다급한 아버지가 내달리듯 들어섰다. 안방에선 거구의 남성이 배에서 피를 흘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연락이 끊겼던 딸은 작은방에서 시신으로 아버지를 맞았다. 바닥과 옷을 얼룩지게 한 피는 오래전에 굳은 듯했다. 숨이 붙은 남자는 “갑자기 강도가 들어와 우리 둘을 찌르고 달아났다”고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이재준 현장감식팀장과 감식요원 4명이 지난해 출동했던 살인사건의 개요다. 두 사람이 흘린 혈흔은 집 안 곳곳에서 확인됐다. 여기서부터 범인을 찾아야 했다. 푸른빛을 내는 특수 손전등(현장 감식용 법광원)으로 정밀 감식을 시작하자 단서들이 쏟아졌다. 혈흔이 이미 바닥에 쓰러진 몸에서 흘러나왔는지, 움직이는 도중에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낙하 흔적) 구분이 가능했다. 요원이 재구성한 사건은 이랬다. 쓰러진 여성은 출혈이 심했다. 한참이 지나 혈액이 굳었고 그 위로 남성의 혈액이 떨어졌다. 다른 사람의 혈액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남성이 흉기로 여성을 살해하고 자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 남성은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 있어 배나 손목에 난 상처가 타인의 흉기에 의한 것인지, 스스로 만든 것인지 각도를 살펴보지 못했다. 수술 뒤 이 부분까지 확인하고 추궁하자 죄를 털어놨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여자의 집에 갔다가 사소한 시비 끝에 20여 차례 찔러 살해했다고 했다. 여자가 숨지자 스스로 손목을 그었고 불안한 듯 집 안을 돌아다닌 탓에 방과 거실은 그의 혈흔으로 얼룩졌다. 긴 시간이 지나고 밖에서 문을 두드리자 강도로 위장하려고 그때서야 자신의 배를 찌르고 둘러댔지만, 증거 앞에선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재준 팀장은 “현장에서 중요한 증거를 놓치면 사건이 장기 미제로 빠질 수밖에 없어 늘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최근 범인들도 비닐장갑을 끼거나 신발에 테이프를 붙이는 등 지문과 족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현장감식요원의 과학적 근성에는 당해내기 어렵다. 3월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10대 여중생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범행했고 칫솔, 수건 등 자신이 모텔에서 쓴 모든 물건을 없앴다. 당연히 지문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욕조도 깨끗했다. 하지만 요원들이 욕조 배수구의 좁은 틈에서 찾아낸 몇 올의 몸털 앞에서 이 사건의 범인 역시 고개를 떨궈야 했다.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하지만 결정적 물증 앞에서는 무릎을 꿇기 마련이다. 과학수사(CSI)가 요즘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서울경찰청은 CSI 요원의 분석 능력을 드높이기 위해 지난달 9일 청사 지하에 현장실습장을 만들었다. 실습장은 60m²(약 18평) 크기의 아파트 내부를 똑같이 재현했다. 주부가 강도에게 저항하다 숨진 상황을 가정하고 ‘실습 수사’ 중인 CSI 요원들을 만났다. 요원들은 현장에서 빠르게 계획을 세우고 증거물 수집을 시작했다. 현장 감식은 CSI의 ‘시작과 끝’으로 불린다. 사건 현장에서 증거물을 빠짐없이 채취해 범인의 모든 행위와 동기까지 확인하는 ‘사건의 재구성’이 그들 손에 달렸다. 요원들은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림으로 스케치하는 요원도 있다. 안동현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증거물도 수사 중에 중요한 증거물로 변할 수 있어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감식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현장에서 6∼8시간 가까이 작업하기에 실습장에서 철저한 팀워크 훈련으로 기본기를 다진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경찰이 태국 현지에서 활동 중이던 전화금융사기범, 인터넷 도박 사범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인터폴을 통한 해외 검거작전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23일 경찰청은 태국에서 전화금융사기범과 인터넷 도박 사범 68명을 검거해 25명을 국내로 송환하고 나머지 43명도 곧 국내로 송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국내로 송환된 25명 중 17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번 수사로 전화금융사기범은 선모 씨(33) 등 모두 32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태국 방콕 등지에서 인터넷 전화, 컴퓨터 등을 갖춘 콜센터를 꾸리고 금융기관을 사칭해 국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돈을 송금 받았다. 선 씨 등 일당 7명은 지난달 3~12일 피해자 64명으로부터 119회에 걸쳐 8억2900만 원을 송금받아 가로챘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에 검거된 전화금융사기범들은 태국 현지에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등 화려하게 생활했다”고 전했다. 인터넷 도박사범은 박모 씨(40) 등 36명이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에서 전화금융사기 콜센터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활동무대가 태국 등 동남아로 이동하고 있다”며 “특히 태국은 무비자로 90일간 체류가 가능하고 현지 경찰이 적발해도 최장 3개월만 선고해 금융사기 등을 노린 범죄자가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형법상 살인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경기 포천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은 장기미제 사건 기록이 보관된 캐비닛을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캐비닛 안에는 2003년 11월 실종돼 2004년 2월 포천시 소흘읍의 한 배수로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된 엄모 양(15·당시 중학교 2학년) 사건의 자료가 가득하다. 당시 경찰은 6개월 이상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2018년 만료될 예정이던 공소시효는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여중생 사건을 잘 아는 형사는 포천서에 남아 있지 않다. 포천서 강력계의 한 경찰은 “공소시효 폐지는 분명히 형사의 집념을 일깨우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아무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 수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일명 ‘태완이법’으로 불린다. 1999년 황산테러를 당한 고 김태완 군의 이름을 딴 법안이다. 국민 여론은 흉악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크게 반기고 있다. 하지만 수사 현장의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 과연 얼마나 많은 장기미제 사건이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2011년 창설된 각 지방경찰청의 장기미제 사건 전담팀 사정도 포천서와 비슷하다. 장기미제 사건 전담팀은 수사본부까지 설치됐던 강력범죄 미제사건을 중심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 2004년 경기 화성 여대생 실종, 2008년 대구 초등생 납치 살인, 2009년 제주 어린이집 여교사 살해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 전국 16개 지방청의 전담팀 소속 형사는 모두 50명. 서울경찰청 소속 11명을 제외하면 각 지방청에 2, 3명 정도 근무하고 있다. 20대 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수사 중인 한 지방청 전담팀 형사는 “새로운 강력사건이 일어나면 지원 근무를 하다 보니 미제사건 해결에만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지방청 전담팀 형사도 “인사고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니 실적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다. 공을 들여 장기미제 사건을 해결해도 다른 사건과 동급으로 취급되니 힘이 빠질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2010년 이후 공소시효가 만료된 강력범죄는 매년 200∼300건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에만 101건이 만료됐다. 매년 200∼300명의 흉악 범죄자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소시효 폐지가 실제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잦은 보직 변경, 순환 근무로 경찰이 한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기가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충분히 수사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공소시효가 폐지돼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전담팀 형사들은 공소시효 폐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22일 만난 서울경찰청 장기미제 사건 전담팀 형사들은 표정이 밝았다. 최근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해 기술적으로 미제사건 해결 가능성이 커졌지만 공소시효 만료가 마음의 걸림돌이었다. 현재 전담팀은 가출이나 자살 정황이 없는 미제사건 중 타살로 의심되는 8건을 수사 중이다. 갑자기 사라진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며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못하는 피해 가족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정지일 전담팀장은 “공소시효가 폐지되면 범죄자는 끝까지 쫓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끝까지 수사하는 것만으로도 억울한 피해자 가족들에겐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 같은 전담팀의 필요성을 고려해 빠르면 9월 전국 전담팀 형사를 72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호경 기자}
‘송도순, 김병기, 전유성….’ 그가 건넨 중앙대 연극영화과 동창회 수첩에 적힌 67학번 이름들이다. 송도순 씨는 성우로, 김병기 씨는 탤런트로, 전유성 씨는 개그맨으로 전공을 살려 활약했다. 수첩을 건넨 그의 이름도 적혀 있다. 김원배(67). 그의 직업란엔 전공과 어울리지 않게 ‘강력계 형사’라고 적혀 있다. 지금은 경찰청 범죄수사연구관으로 일한다. 그는 동기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한 번도 연극판을 떠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도 한복판을 휘젓고 다닌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제복 입은 ‘딴따라’ “야, 너 지금 연극 하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베테랑 선배 형사는 가소롭다는 듯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연극 연출가를 꿈꾸던 그의 눈엔 사건 현장이 늘 무대처럼 보였다.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사건 현장이란 무대 위에서 사라진다. 형사인 그는 무대에 올라 범인이 남긴 흔적을 좇는다. 단서를 조합해 범인의 범죄 행위를 머릿속에 그린다. 곧 배우의 동작과 동선이 된다. 범죄 현장에 남은 증거품은 무대 위 소품처럼 하나하나 챙긴다. 연출자의 시각으로 연극을 만들듯 수사하다 보니 종합적으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그는 7남매 중 장남. ‘딴따라’ 기질을 숨길 수 없어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해병대 전역 후 복학했다가 아버지의 목재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졸업은 못했다. 돈이 없어 몸만 달랑 전북 무주 집으로 내려왔더니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볼 낯이 없었다. ‘나 같은 인간이 집에 있어선 안 된다. 돈만 쓸 줄 아는 딴따라인데….’ 가족에게 손 벌릴 수 없어 1973년 순경이 됐다. 충남 금산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 파출소의 신고전화는 좀처럼 울리지 않았다. 마을 청소년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치고 대민 봉사 활동만 즐겁게 했다. 신기하게도 주민과 살갑게 생활하다 보니 제보가 쏟아졌다. 친해지니까 제 발로 찾아와 수갑을 채워 달라는 절도범도 있었다. 검거 실적이 가파르게 올랐다. 1978년 강력계 형사로, 1980년 서울의 한 경찰서 강력계에 스카우트됐다.○ ‘연극유추법’ 형사 “저기 마네킹이 있다. 가 보자.” 한창 장난감 칼싸움을 하던 아이들 눈에 낙엽 밖으로 삐죽 빠져나온 팔이 보였다. 호기심에 달려간 아이들은 손으로 만져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거벗은 채 꽁꽁 얼어붙은 여성 시신이었다. 아이들은 가까운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했다. 1983년 1월 11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 중턱에서 발견된 시신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죽음 연출 살인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세상을 놀라게 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온 김 씨가 ‘연극유추법’이란 독특한 수사 기법을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 증거를 바탕으로 망자(당시 24세)의 신원을 확인하고 보일러 설비 기사 이동식(당시 42세)을 범인으로 붙잡았다. 이동식은 동네 이발소 면도사로 일하던 피해 여성과 사귀고 있었다. 이동식은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탄 실력 있는 아마추어 작가였다. 망자는 그런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다. 강력팀은 이동식이 아내와 자식에게 불륜 사실을 들킬까 걱정돼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했다. 하지만 김 씨의 눈과 머리는 더 깊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겨울이었지만 울긋불긋 고운 낙엽이 시신 주변에 놓인 점에 그의 시선이 꽂히면서 ‘예술 작품을 만들려는 장치’는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 순간 이동식의 카메라가 떠올랐다. 이동식이 아내, 전처, 불특정 여성들을 찍은 사진이 대거 발견됐다. 사진 속 여성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포르노 배우 같은 성적인 자세를 취했다. 밧줄로 목을 묶거나 칼로 가슴을 찌르는 흉내를 낸 괴이한 사진도 많았다. 낙엽 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망자의 사진도 딱 한 장 나왔다. 그는 작품에 욕심내는 사진작가가 한 장만 찍었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 끈질기게 추궁하고 탐문한 끝에 이동식이 끝까지 숨기려고 했던 사진 21장이 담긴 필름을 찾았다. 사진 속에는 숨진 여성이 청산가리를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담겨 있었다. 사진은 1982년 12월 14일 일어난 일을 증언했다. 그날 호암산에서 이동식은 “누드 사진을 찍기 위해 옷을 벗으면 감기가 들 수 있으니 감기약을 먹어 두라”며 청산가리가 든 약을 피해 여성에게 먹였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이동식은 여성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극치의 쾌감을 맛보려 했다”며 “과거 찍은 사진들은 연습 과정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동식은 1986년 사형당했다. ‘그(이동식)는 극약을 먹여 내연 관계 여인의 목숨을 끊고 그 순간을 카메라에까지 담는 ‘여유’를 보였다. 발작적이랄까, 도착적이랄까. 참으로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경악과 충격을 던져 준 살인사건이었다.’(1983년 1월 21일 동아일보)○ 한국에서 일어난 살인 총망라 형사는 오랫동안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 범죄분석관으로 일했다. 사건 현장을 연극 무대로 옮기는 ‘연극유추법’으로 사건을 종합적,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그의 보고서는 정평이 났다. 일선 경찰서에서 보내준 사건 기록만으로 무대가 잘 그려지지 않으면 직접 현장에 나가 자문과 수사를 했다. 그는 2005년 ‘한국의 살인 범죄 실태와 수사’란 책 5권을 만들었다. 경찰 내부용인 책엔 그가 수집하고 연구한 살인사건 1750여 건을 57개 유형으로 분류해 정리했다. 2010년 ‘살인사건 분석’이란 책 2권도 만들었다. 그 안에는 성공한 수사뿐만 아니라 1998년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같은 실패한 수사도 기록돼 있다. 과시용이 아니라 다음 무대에 설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만든 책이다. 실제로 2009년 강호순의 연쇄 살인을 밝혀내는 데 그의 자료가 큰 도움을 줬다. ‘여경의 전설’로 불리는 강서경찰서 박미옥 강력계장은 “선배는 치정 살인부터 ‘묻지 마 범죄’까지 한국 살인의 고전부터 현대까지를 기록으로 총정리한 분”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이 책엔 존속살인 무대에 오른 한국인의 모습도 담겨 있다. 친자식은 친부모를 살해할 때 칼로 여러 번 찌르고, 시신도 불태우거나 토막을 내는 등 심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친부모는 제 자식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려도 시신을 훼손하지 않는다. 시신을 유기할 때도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눕혀 줬다. 범죄 피해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다. 하지만 미제 사건 피해자는 여성이 더 많다. 여성이 범죄에 희생되면 치정에 의한 범죄라고 속단한 나머지 과거 남자관계를 밝히는 데 몰두하다가 초동 수사를 망치는 게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견 양성 교관 형사는 2005년 6월 경위 계급으로 퇴직했다. 은퇴 후에도 범죄수사연구관으로 일하며 ‘연극판’을 떠나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곁에 늘 경찰 수사견 포순이(10년생·골든레트리버)와 포돌이(5년생·래브라도레트리버)가 있다는 점. 경찰 수사견 아이디어는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초동 수사를 해야 할 경찰이 실종자, 시신 등을 찾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직접 호주, 일본 경찰견 학교로 건너가 고유한 냄새로 범인, 실종자, 시신을 찾는 경찰견 양성 과정을 배웠다. 경찰견 연구학회까지 만들어 보급에 힘쓰고 있다. 그는 2013년 12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도권의 한 경찰서에서 사건 해결을 도와 달라고 했다. 포순이와 함께 도착한 빌라의 거실과 주방에는 밀가루와 소금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흔적을 지우기 위한 범인의 교란작전이었다. 범인은 30대 주부가 자녀를 학원에 보내려고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 사이 집안에 침입했다. 범인은 비열했다. 5시간 동안 집안에 머무르며 주부의 벗은 몸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죽은 척하라고 시킨 다음 사진도 찍었다. 주부의 친구가 빌라 문을 두드리자 칼로 피해자를 찌르고 도주했다. 피해자 옷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그는 범인이 주부를 폭행할 때 휘두른 골프채 손잡이를 포순이 코에 갖다 댔다. 잠깐 킁킁거린 포순이는 무대 밖으로 멀리 달아난 범인을 뒤쫓았다. 골목길을 한참 걷더니 어느 골목의 의류수거함 앞에 가만히 서서 형사를 올려다봤다.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범인의 흔적을 찾아 붙잡을 수 있었다.○ 에필로그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요.” 형사 수첩을 탁 덮으며 그가 말했다. 그는 자신의 40년 형사 인생을 들려주면서 일일이 기록을 찾아 보여줬다. 기억에 의존하는 법이 없었다. 각종 수사기록으로 꽉 찬 방에서 지금도 사건을 기록하고 수사 매뉴얼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책상 위에 담뱃갑이 보이기에 담뱃값 인상과 범죄율도 분석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는 ‘최고의 연극 연출가’가 되겠다던 청운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범죄 현장을 연극판 삼아 누비고 다니며 아쉬움을 달랬다. 딱 1년 대학로 파출소장을 지내며 연극 무대를 가까이한 것도 소중한 기억이다. 이곳에서 한국연극협회로부터 연극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 인터뷰 사진을 경찰청 대강당 무대에서 찍었다. 포순이와 나란히 서서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비록 연극 연출가가 되진 못했지만 사건 현장을 연극 연출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사하고 살았으니 원이 없죠. 그저 프로 경찰이었다, 진정한 짜부(형사)였다고 불러주면 만족합니다.” 이 말을 남기며 웃던 형사의 눈은 그윽하게 포순이를 향해 있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백승탁 전 충남교육감(80)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 둔산경찰서는 22일 백 씨를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백 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은 대전 지역의 모 골프장 경기보조원인 A 씨(여)를 두 차례 불러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백 씨와 A 씨 주장이 상이한 부분도 있지만 검찰에 송치할 때에는 혐의를 입증할만한 내용이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경찰은 A 씨가 녹취한 휴대전화 음성 파일과 일부 목격자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백 씨의 추행이 이어지자 견디다 못해 스마트 폰을 이용해 녹취한 것으로 안다. 백 씨 음성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대전지역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A 씨가 큰 충격을 받았으며 지역 유력 인사라는 점 때문에 경찰에 고소한 이후에도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관선·민선 충남도교육감과 충남지역 명문 모 고등학교 이사장을 지낸 백승탁 씨(80)가 골프장 캐디를 추행한 혐의로 최근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최근 요리방송 출연으로 인기를 모은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의 아버지다. 대전 둔산경찰서는 골프장 캐디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백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백 씨는 지난달 중순 대전 유성구의 한 골프장 20대 여성 캐디 A 씨를 골프장 근처로 불러내 가슴 부위 등을 강제로 만진 것으로 알려졌다. 충격을 받은 A 씨는 골프장을 그만둔 상태다. 백 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96.8dB(데시벨). 15일 오후 3시경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 노동자·서민 살리기 총파업 대회에서 측정된 순간 최대 소음 기록이다. 무대에서 80m나 떨어진 곳인데도 헬기 프로펠러 소리(100dB)에 육박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귀를 막은 채 행사장 주변을 지났다. 근처 식당에서 일하는 허모 씨(54)는 “모두 절박한 사정이 있겠지만 집회 때마다 소음 때문에 이런 불편을 겪다 보니 집회 참가자의 주장까지 공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은 현장 소음 관리에 나선 남대문경찰서 소음관리팀과 동행했다. 조합원 50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인 광장의 무대 양옆에는 대형 스피커 3, 4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대형 크레인 한 대에는 스피커 8개가 매달려 있었다. 일종의 ‘공중 스피커’인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중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주변 방해물이 없다 보니 더 크고 멀리 퍼진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무대에서 약 80m 떨어진 곳에서 소음을 측정했다. 집회 시작 30분 전 서울역광장 소음은 66.8dB이었다. 하지만 집회 시작 후 규정에 따라 10분간 평균 소음을 측정하자 기준치(75dB)를 넘는 80.4dB이 기록됐다. 경찰은 곧바로 주최 측에 소음을 기준치 이하로 유지하라는 유지명령서를 전달했다. 일부 참가자는 “정당한 집회 권리를 소음 측정으로 방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소음 기준 강화? “글쎄요” 지난해 7월 21일 강화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에 따르면 광장, 상가 지역 소음 기준은 주간 80dB, 야간 70dB에서 각각 주간 75dB, 야간 65dB로 낮아졌다. 소음 신고가 들어온 건물 외벽에서 1∼3.5m 떨어진 지점 1.2∼1.5m 높이에서 측정한다. 경찰이 강한 법 집행을 강조하면서 집회현장 소음 측정 건수도 지난해 상반기(1∼6월) 8443건에서 올 상반기 1만4147건으로 늘었다. 올 상반기 집회소음도는 평균 68.9dB로 지난해 같은 기간 70.3dB에 비해 1.4dB 정도 줄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소음도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야간에는 주거지역(60.8dB·기준 60dB)과 그 외 지역(66.8dB) 모두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 그만큼 불편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현장 경찰은 규정과 현실 사이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른바 ‘10분 딜레마’다. 시행령 개정으로 5분씩 2회 측정치의 평균값에서 10분씩 1회 측정한 평균값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측정이 2회에서 1회로 줄었지만 여전히 주최 측은 마음만 먹으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일부 집회 참가자는 측정 시간이 10분이란 걸 알고 소리를 키웠다가 줄이기를 반복한다”며 “이런 ‘소리 숨바꼭질’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주변 시민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소음 공해 해결을 위해서는 소리 크기에 큰 비중을 둔 현재의 소음 관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리 크기뿐 아니라 성분, 지속 시간 등 소리 3요소를 고루 따져야 한다는 것.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소음을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음질 나쁜 스피커, 확성기 같은 장비나 소음 지속 시간 등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괴롭히기식 소음 공해를 차단해 소음 감소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집회 자유 위축시킨다” 반발도 필요하면 처벌까지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광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 소음에 따른 시민들의 피해가 계속되는 만큼 기준 초과 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현재 처벌 기준(50만 원 이하의 벌금)은 한국 생활 수준에 비춰볼 때 매우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경찰이 소음 측정을 명목으로 소규모 집회까지 따라다니며 불필요한 갈등과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며 “소음 피해 민원이 발생하면 경찰이 주최 측과 협의해 음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권오혁 기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 개정으로 집회 소음 기준이 강화된 지 21일로 1년을 맞는다. 하지만 집회 현장의 소음은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경찰청이 작성한 ‘소음 기준 강화 집시법 시행령 개정 이후 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평균 집회 소음은 68.9dB(데시벨)로 기준 강화 이전인 70.3dB에 비해 1.4dB 줄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4dB 감소는 일반 시민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시민 불편이 큰 야간 시간 평균 집회 소음은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등 광장, 상가 지역 등이 66.8dB(기준 65dB), 주거지역과 학교 주변이 60.8dB(기준 60dB)로 측정됐다. 강화된 소음 기준치를 모두 초과한 것이다. 주간 시간 광장, 상가 지역 등은 71.5dB에서 69.7dB(기준 75dB)로, 주거지역은 63.6dB에서 63.3dB(기준 65dB)로 소폭 감소했다. 새로운 시행령은 3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쳐 지난해 10월 22일부터 시행됐다. 집회가 많은 광장과 상가 지역의 소음 기준이 주간 80dB, 야간 70dB에서 각각 5dB씩 낮아졌다. 주거지역, 학교 주변은 소음 기준이 주간 65dB, 야간 60dB로 변함이 없지만 종합병원, 공공도서관 주변이 소음 기준 적용 대상에 추가로 포함됐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국가정보원이 불법 사찰에 활용하기 위해 도청 및 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위키리크스가 8일 이탈리아 보안업체인 ‘해킹팀’에서 유출된 자료를 공개하면서부터다. 위키리크스는 각국 정부나 기업 등의 비윤리적 행위와 관련한 비밀문서를 폭로하는 웹사이트다. 위키리크스에 올라온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육군 5163부대’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9차례에 걸쳐 해킹팀에 도·감청 프로그램 구입 및 유지 비용으로 총 68만6400유로(약 8억5800만 원)를 지불했다. 5163부대는 국정원이 한때 대외적으로 사용한 위장 명칭 중 하나다. 국정원이 해킹팀에서 구입한 ‘RCS’는 PC나 스마트폰을 원격조종 및 관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스파이 프로그램이 설치된 PC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통화 내용을 녹음해 e메일로 전송하거나 기기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수차례 업그레이드돼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이나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도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킹팀은 자사가 판매하는 RCS의 구현 기능에 따라 ‘다빈치’ ‘갈릴레오’ 등의 별칭을 붙여 구분했다. 해킹팀의 홍보 브로슈어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OS)가 설치된 PC는 물론이고 애플의 맥도 해킹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역시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OS가 탑재된 ‘갤럭시’ 등에서 프로그램이 구동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이라는 비정부기구에 따르면 해킹팀은 35개국의 300여 개 업체 및 단체에 이런 도·감청 프로그램을 판매해 왔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청첩장 문자메시지에 포함된 인터넷주소(URL)를 클릭하거나 e메일에 첨부된 문서를 열었을 때 스파이 프로그램에 감염될 수 있다”며 “일단 PC나 스마트폰에 해킹팀의 RCS 같은 스파이 프로그램이 깔리면 기기 사용자는 그 사실을 알기 어렵고 백신으로도 탐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불법 사찰을 위해 RCS를 구입해 활용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유출된 해킹팀 자료에는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2011년 11월 21, 22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해킹팀 본사를 방문했고 2013년 2월에는 해킹팀이 서울에서 ‘SKA’(국정원의 위장 명칭) 요원들을 만난 사실이 담겨 있다. 당시 해킹팀이 국방정보본부 산하 대북 통신감청부대로 추정되는 ‘SEC’를 방문한 내용도 e메일에 들어 있다. 경찰청 역시 해킹팀과 접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강신명 경찰청장은 14일 “경찰이 해킹 장비를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현재 해킹 장비를 쓰고 있지 않을뿐더러 들여올 계획도 없다”고 해명했다.박창규 kyu@donga.com·곽도영·박훈상 기자}

경찰이 올해 4월 18일 열린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 집회에서 불법 시위로 발생한 피해액에 대해 집회 주최 단체와 대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4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로 인한 경찰 피해액을 9000만 원으로 산정하고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 3개 단체와 박래군, 김혜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 등 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시위대의 폭력행위로 차벽, 경찰버스, 경찰 장구류 등이 파손돼 7800만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산정했다. 여기에 시위대에 맞아 부상한 경찰관 40명에게 1인당 위자료 30만 원씩 모두 12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채증 자료를 분석하면 피해액을 입증할 수 있다”며 “법무부와 협의해 이번 주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현장에서 부상한 경찰관 치료비 등을 물어내라고 주최 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2013년 1심에서 패소한 바 있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세월호 추모 집회를 불법으로 이끈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박래군, 김혜진 공동운영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이날 신청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경찰은 인터넷으로 교통사고 조사일정을 예약하는 교통조사 예약시스템을 13일부터 시행한다. 교통사고가 경찰에 접수된 민원인은 ‘교통범칙금 인터넷 납부·교통조사 예약 시스템’(www.efine.go.kr)에서 공인인증서로 본인인증을 한 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골라 신청하면 된다. 경찰에 접수된 교통사고뿐 아니라 단순 음주·무면허운전 사건도 포함된다. 경찰은 일선 경찰서 교통조사 경찰이 교대 근무를 하는 탓에 민원인들이 담당 조사관과 일정을 정하는 데 불편함을 겪자 이런 시스템을 마련했다.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민원인은 조사관이 조사 일정을 확인해 예약 등록을 돕기로 했다. 예약 후 급한 사정이 생기면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존나’ ‘자살’ ‘앰창인생’ ‘관심종자’…. 요즘 청소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다. 청소년이 인터넷 공간에 올린 게시글 13만 건을 분석한 빅데이터는 그들이 쓰는 언어뿐 아니라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마음속 고민과 상처는 무엇인지 솔직하게 드러냈다.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는 12일 ‘청소년의 언어 실태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위원회가 소셜분석업체 메조미디어와 함께 지난해 1월부터 올 4월까지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웹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 13만2244건을 분석한 자료다. 해당 사이트는 네이트 판 10대 게시판, 인스티즈, 앱짱닷컴 등이다. 위원회는 게시글을 주제별로 욕설(18.9%), 은어(10.2%), 상처(1.3%), 폄하·비하(1%), 왕따(0.9%), 기타(67.7%) 등으로 분류했다. 기타 글은 “게임하러 갈래”처럼 특정 주제가 없는 일상적 내용이나 짧은 단문이다.○ “문장 전체 읽어도 의미 해석 어려워” 청소년이 가장 많이 쓰는 비속어는 ‘존나’(6111건)였다. 이어서 ‘새끼’(5537건) ‘좆’(4767건) ‘씨발’(4031건) ‘시발’(3667건) 등 순이었다. ‘ㅁㅊ’(미친) ‘ㅂㅅ’(병신) ‘ㅅㅂ’(시발) 등 초성만 사용하거나 ‘씌바’처럼 맞춤법을 변형해 사용하기도 했다. 인터넷 업체의 욕설, 비속어 모니터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욕설의 대상은 친구(48%)가 가장 많았다. 이어서 불특정 여성(15%)과 남성(10%)이었다. 가족 중에선 엄마(5%)를 향한 욕이 가장 많았다. “시발 내가 우리 엄마 성격을 많이 닮아서 떽떽거리고 하는데 엄마는 나보다 훨씬 심함” 등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온 욕이 다수였다. 동생, 아빠는 각각 3%였다. 청소년이 쓰는 은어는 종잡을 수 없이 다양했다. ‘ㅂㄷㅂㄷ’(부들부들) 같이 초성만 사용하거나 ‘열폭’(열등감 폭발)처럼 단어나 문장을 줄여 썼다. 최근엔 ‘낫닝겐’처럼 영어 ‘Not’과 일본어 ‘닝겐(にんげん·인간)’을 합치는 외국어 조합 유형도 발견됐다. 위원회는 “영어 어그레시브(aggressive)에서 나온 ‘어그로’(관심 끌기)처럼 새롭게 만들어진 은어는 맥락을 모르면 그 뜻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며 “기성세대는 문장 전체를 읽더라도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찬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사무총장은 “청소년이 사용하는 언어 중 은어와 욕설이 30% 이상 차지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청소년 스스로 언어를 순화하고 올바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툰 감정 표현 ‘그냥 죽고 싶다’ 청소년의 언어 속에는 그들의 아픔과 고민도 진하게 묻어났다. 상처 관련 글에선 ‘자살’(692건)이 다른 표현에 비해 많이 등장했다. “자살하거파 짐 다 내려 노코” “자살하고 싶다 내년엔 죽어 있길”처럼 자살을 쉽게 입에 올렸다.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자살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살 다음으로 ‘ㅠㅠ’(436건) ‘싫어’(156건) ‘잘못’(145건) 등이 많이 등장했다. 한혜원 밝은청소년 부장은 “청소년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극심한데 가족과 소통이 잘되지 않아 풀기가 쉽지 않다”며 “소통이 잘되지 않으니 감정 표현도 서툴러 ‘그냥 죽고 싶다’란 표현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비하할 땐 ‘앰창인생’이란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 ‘앰창’이란 어머니를 성매매 여성에 비유하는 은어다.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직업을 폄하할 때도 ‘앰창인생’이란 딱지를 붙였다. 타인이나 자신을 폄하·비하하는 소재로는 ‘외모’(77.1%)와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돼지, 뚱뚱 등이 많이 등장해 비만에 대한 고민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왕따 관련 글의 40.6%에선 ‘괴롭히다’ ‘힘들다’ ‘무섭다’ 등 직접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표현이 확인됐다. “진정걸고 왕따 탈출하고 싶다. 제발 진짜 개절실”처럼 절박함이 묻어났다. ‘성격’이란 단어도 자주 등장해 청소년들이 왕따 문제의 원인을 성격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왕따와 관련해 주로 ‘엄마’와 ‘선생님’이 자주 언급된 것으로 볼 때 청소년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양측에 호소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 “관심종자가 싫어요” 청소년이 가장 ‘극혐’(극도로 혐오)하는 대상으론 ‘관심종자’가 꼽혔다. “관심종자는 극혐 오브 극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관심종자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번 조사에서 벌레, 오타쿠(마니아) 등보다 더 싫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철상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미성숙 단계인 청소년은 어른의 보호를 확인하기 위해 관심을 필요로 하니 ‘관심종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며 “그들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면 청소년들의 독특한 표현 양식을 적절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청소년들이 인터넷 공간에 올린 게시 글 13만 건을 분석한 빅데이터를 보니 욕설, 은어, 비속어 사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청소년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해 기성세대와의 ‘언어 장벽’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국민 3명 중 1명은 다른 세대와 대화할 때 서로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12일 공개한 ‘언어 사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보고서’와 ‘청소년의 언어 실태 빅데이터 분석’에 나온 결과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로 다른 세대와 대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소통이 안 된다’는 응답자가 32.2%였다. ‘소통이 잘된다’는 58.4%, ‘모르겠다’는 9.4%였다. 특히 60세 이상은 50.3%가 ‘소통이 안 된다’고 답했다. 은어 사용 문제로 세대 간 소통의 불편함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의 42.7%가 ‘불편하다’고 대답했다. 청소년과 함께 생활하는 부모가 아니면 은어의 뜻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이 주로 쓰는 ‘노잼’(재미 없다), ‘열폭’(열등감 폭발), ‘낫닝겐’(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다고 답한 10대는 각각 92.3%, 71%, 61.6%였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각각 41.9%, 35.4%, 13.7%로 10대의 절반 이하였다. 청소년들도 비속어, 신조어 사용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언어 사용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분야로 ‘청소년의 비속어, 신조어 사용’을 꼽은 응답 비율이 10대(64.8%)에서 가장 높았다. 전체 응답자 평균은 52.5%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은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청소년 스스로 그 해법을 고민하는 환경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미래창조과학부와 경찰청은 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국민 안전과 글로벌 과학 치안 구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최양희 미래부 장관(왼쪽)과 강신명 경찰청장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이 행복한 안전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활용이 중요한 만큼 서로 협력하고 교류를 활성화하자”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경찰이 창설 이래 최초로 외국 법집행기관과 현지 합동 작전을 펼쳐 도피 중인 범인을 검거했다. 경찰청은 필리핀으로 도피했던 ‘봉천동 식구파’ 두목 양모 씨(49)와 부두목 민모 씨(45)를 필리핀 이민청과 합동으로 최근 검거했다고 8일 밝혔다. 상대국 법집행기관과 범죄정보를 공유하고 수사 협조를 구하는 공조수사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경찰이 직접 현지에 나가 상대국 법집행기관과 검거 작전 수립부터 참여해 붙잡은 합동작전은 처음이다. 경찰에 따르면 양 씨 등은 2001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일대에서 활동하던 ‘봉천동 사거리파’와 ‘현대시장파’를 통합해 봉천동 식구파를 조직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1000억 원대 유사석유를 판매해 거둔 수익 등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2011년 10월 필리핀으로 건너간 이들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단체 등의 구성·활동)로 수배된 상태였다. 경찰청 인터폴과 서울지방경찰청 인터폴 추적팀은 지난달 29일 필리핀으로 건너가 필리핀 이민청, 한국 경찰이 현지에 설치한 필리핀 코리안 데스크(필리핀 내 한국인 대상 범죄 전담 부서)와 함께 양 씨 등을 추적했다. 양 씨는 검거망이 좁혀지자 지난달 30일 검거팀에 자수했고, 민 씨는 세부에서 100㎞ 떨어진 레이터섬에서 붙잡혔다. 경찰은 필리핀에서 도피 중인 조직폭력배, 동네조폭 등을 계속 추적해 검거할 예정이다. 현재 필리핀으로 도피한 용의자는 모두 486명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경찰이 10일부터 한 달간 ‘보복운전’을 집중 단속한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보복운전은 차량을 흉기로 활용한 불법성 강한 폭력행위인데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한 달간 보복운전 집중 신고 및 단속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8일 보복운전 행위에 대해 도로교통법이 아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흉기 등 협박죄를 적용해 단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보복운전 근절을 위해 일선 경찰서 강력팀에 전담팀을 설치할 계획이다. 스마트 국민 제보 애플리케이션과 홈페이지, 국민신문고 등에 보복운전을 신고하면 전담팀이 즉각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현장에서 112 신고를 하면 경찰이 출동해 영상물을 받아 수사할 계획이다. 강 청장은 “이번 집중단속으로 보복운전이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임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교통질서가 한 단계 더 선진화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메르스 감염 확산이 소강상태에 들어섰다고 판단해 10일부터 음주운전 단속도 정상화하기로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중국에서 연수 중인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을 태운 버스는 1일 오후 3시 반경(현지 시간)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과 단둥(丹東) 경계 지점 조선족마을 부근 다리에서 이동하던 중 추락했다. 버스는 강바닥에 거꾸로 뒤집힌 채 찌그러진 상태였다.○ 1시간 동안 오지 않은 구조대 당시 사고 버스에는 한국 공무원 교육생 24명과 행정자치부 산하 지방행정연수원 소속 인솔자 1명, 한국인 가이드 1명, 중국인(가이드, 운전사) 2명 등 모두 28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로 공무원 등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구조차량이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아 부상자 치료와 이송이 늦어졌다. 사고 직후엔 구조장비가 없어 나무막대기, 쇠막대로 부상자를 끄집어냈다. 뒤늦게 중장비가 와 버스를 들어올렸지만 부상자 대부분이 사고 충격으로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 구조대원 대신 현지 군인과 주민들이 먼저 출동해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출동한 중국 군인들이 사망자를 사고 버스 옆에 천으로 덮어 놓은 장면이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사고 버스에 앞서 출발한 버스에 탔던 공무원들은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돌아왔다. 울산시 소속 공무원 김모 씨는 “사고가 났다고 해서 구조하기 위해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며 “내려가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경황이 없었다. 지금도 손이 떨린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씨는 “현재 공안의 통제를 받아 부상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 멀쩡한 다리 위 추락 왜? 정확한 사고 원인이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맞은편에서 오던 버스를 피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사고 차량 바로 뒤 버스에 타고 있던 김현 광주시 사무관(53)은 “바로 앞에 가던 5호차 버스가 직진하다 커브를 돌고 다리에 진입하고 나서 강바닥으로 추락했다. 버스가 뒤집혀 추락했는데 버스 밑 부분의 하중이 승객들에게 전해지면서 사고를 키운 듯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다리는 버스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가는 게 가능할 정도의 폭이라 정비 불량이나 운전 미숙 등 다른 이유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내 관광버스의 고질적인 과속이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목격자들은 다리 위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선양 총영사관 측에 따르면 사고가 난 왕복 2차로 도로는 2급 지방도로로 겨울에는 차량 통행이 제한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굽은 도로가 끝나자마자 교량이 건설돼 있어 평소에도 사고 위험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도 A 사무관이 탄 버스도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돌아갔다. A 사무관은 “다리 아래를 보니 구조장비가 아닌 중장비(불도저)가 찌그러진 차량을 옮기고 있어 일부 직원들도 내려가 구조작업을 도우려 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이 통제해 곧 현장에서 빠져 부상자와 대화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부상자 치료도 차질 우려 사고 버스를 뒤따르던 버스에 탔던 경남도 B 사무관은 “버스 출발 간격이 길어 사고 지점에 도착했을 땐 구조대까지 투입된 상황이었다”며 “현재 중국 공안의 통제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 부상자,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부상자들은 사망자와 함께 지안시의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난 지점은 백두산 관광 후 지안 시∼퉁화∼단둥으로 내려가는 300km에 이르는 코스로 버스로 4시간 반 이동하는 일정이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호경 / 광주=이형주 기자}

취업을 앞둔 청년은 누구나 좋은 일자리를 꿈꾼다. 그러나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정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은 아르바이트 같은 단기, 임시직의 불안한 일자리로 몰리고 있다. 일부는 ‘열정 페이’라는 이름으로 절박한 청년의 심정을 악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동아일보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아르바이트 전문 취업포털 알바몬은 1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2015 착한 알바 선포식’을 개최했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집중되는 알바 분야의 근로 여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모범적인 사업장을 발굴하고, 이러한 문화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이날 업체 5곳이 착한 알바 사업장으로 선정됐다. 선정된 사업장은 기업 2곳(롯데시네마, 이디야커피)과 자영업체 3곳(제주회&감포막회, 이디야커피 시흥시화점, 돈돈현수막)이다. 이 사업장들은 앞서 진행한 ‘착한 알바 수기 공모전’을 통해 발굴된 곳이다. 본보와 청년위원회, 알바몬은 앞서 접수된 300여 개의 사연 중 13개를 선정한 뒤 응모자가 추천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현장답사와 검증작업을 거쳤다. 이 업체들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 지급 △주휴일 보장 △초과근무 등 법정수당 지급 등을 준수해 청년 친화적인 사업장이 되겠다고 서약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여야 대표도 참석해 착한 알바 캠페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의 알바 시장은 저임금과 부당한 대우로 청년들의 절망과 좌절을 더욱 키우고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희망과 꿈의 인큐베이터’로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청년들의 노동을 헐값으로 사려 해서는 안 된다”며 “알바 하나를 해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주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새정치연합 박광온 김영록 의원도 착한 알바 캠페인에 공감하며 동참을 약속했다.박창규 kyu@donga.com·박훈상 기자}
“청년 아르바이트생(알바생)들이 꿈과 희망을 키워갈 수 있도록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등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청년 알바생들이 차별과 부당대우를 받지 않도록 인권보호에도 앞장설 것을 이 자리에 모인 청년과 내빈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1일 열린 ‘2015 착한 알바 선포식’에서 착한 알바 캠페인에 동참하는 이디야커피와 롯데시네마는 ‘청년 친화적인 착한 알바 사업장’ 만들기를 약속했다. 이디야커피는 청년 알바생의 자기 계발을 위해 ‘이디야 메이트 희망기금’ 사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이디야커피는 2013년부터 매년 400명의 이디야 메이트(직원)에게 50만 원씩 2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문창기 이디야커피 회장은 “직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기 계발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해 희망기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알바생의 의견을 경청하는 사업장을 만들어 상생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롯데시네마도 도전하는 청년들의 열정과 꿈을 응원한다. 유승철 롯데시네마 상무는 “착한 알바 선포식을 축하하며 롯데시네마는 청년 알바생 배려에 더욱 관심을 가질 계획”이라며 “청년 알바생들을 위한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회 공헌도 충실히 수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참여 기업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등과 함께 착한 알바 기업을 발굴해 착한 알바 문화를 전국으로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계절, 시기별로 알바생을 많이 고용하는 스키장, 놀이공원 등에서 ‘알바주간’, ‘알바축제’ 같은 다채로운 행사도 계획 중이다. 황호택 동아일보 상무는 “고용 없는 성장과 낮은 취업률 속에서 알바는 청년들의 상시적인 직업이 됐다”며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을 위해 착한 알바로 처우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