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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칠십이 되니까 좋은 거? 연주를 점점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돼요. 요즘은 고민도 없어요. 하하.” 올해 한국 나이로 고희를 맞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사진)의 얼굴은 덤덤하면서도 훤해 보였다. 17일 시작하는 국내 리사이틀을 앞둔 그가 7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친분이 깊었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 얘기를 꺼냈다. “그와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데 자기 연주가 흘러나오자 기분 좋아하면서 ‘음악은 (연주한) 본인이 즐길 수 있어야 해’라고 말하더군요. 그땐 잘 몰랐는데 나이 들면서 정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보다 즐길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어요.” 예전에는 연주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남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이젠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어서 인생도 연주도 즐거워졌다는 뜻이었다. “아직은 체력적으로 연주에 아무 문제가 없고, 앞으로 새로운 곡, 예전에 연주했던 곡 가리지 않고 더 많은 곡을 연주하는 데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그는 “음악이란 긴 여정을 가는데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연습도 쉴 수 없다”며 “1960년대 유학 당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절실했던 기억이 지금까지 나를 이끈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과 스크랴빈 24개의 전주곡을 연주한다. 둘 다 국내에선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백건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이번 연주곡도 그가 평소 좋아하지만 한국에선 듣기 힘든 점을 고려해 골랐다고 한다. “러시아 곡은 투박하고 인간적이에요. 우리 정서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웬만한 러시아 악보는 다 구해서 봤을 정도로 푹 빠졌어요.” 그는 이번 라흐마니노프 곡처럼 45분이나 되는 대곡을 연주한 뒤엔 앙코르 곡을 고르는 것도 신경 쓰인다고 했다. “메인 연주곡과 앙코르 곡이 너무 다른 분위기면 메인 곡의 감동을 음미하면서 집에 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가급적 앙코르 곡은 짧게 가는 걸 좋아해요.” 요즘 음악계에도 쓴소리를 한마디 던졌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악기를 통해 나오는 음악은 속일 수 없어요. 그래서 음악에 대한 진심이 연주에 묻어나야 합니다. 진심으로 파고들고, 진심으로 메시지를 담고…. 근데 요즘은 너무 상업화되면서 보기 좋게 포장되기만 한 연주들이 많아요.” 그는 17일 충남 천안을 시작으로 경기 구리(18일) 군포(19일), 서울(22일), 인천(23일) 순으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11월 23일에는 내한 공연을 갖는 뮌헨 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귀에 쏙 들어온다. 편안히 몸을 내맡긴다. 흥겨우면 어깨를 들썩이고 애잔하면 조용히 눈을 감는다. 동요에 클래식이란 옷을 입혀 동요는 풍성해지고 클래식은 가벼워졌다. 최근 발매된 앨범 ‘누나야’를 들은 느낌이었다. 피아니스트인 박종화 서울대 교수(41·사진)가 연주하고 이영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광해, 왕이 된 남자’ 음악감독 김준성 씨, 작곡가 나실인 씨가 편곡한 크로스오버 앨범. 수록 곡목은 엄마야 누나야, 자장가(김대현 작곡), 꽃밭에서, 섬집아기, 산토끼, 새야 새야, 과수원 길, 아리랑(경기), 소녀의 꿈, 우리의 소원, 고향의 봄 등 11곡. 소녀의 꿈만 김감독이 작곡한 신곡이다. “멜로디야 쉽죠. 그런데 동요 속에 숨겨진 한국인의 감정을 최대한 끄집어내 표현하려고 하니까 애먹었어요.” 다섯 살 때 일본 도쿄로 피아노 유학을 간 뒤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보낸 박 교수에겐 ‘한국적’ 정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연주회 앙코르곡으로 동요를 클래식으로 편곡한 작품을 가끔 선보였는데 이번엔 동요 11곡을 편곡해 앨범과 연주회를 기획한 것. “전문 연주자로서 명곡을 깊게 파고들어 그 정수들을 뽑아내는 길을 계속 갈 겁니다. 하지만 넓게 옆으로 파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도록 하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은 20일 오후 5시 서울 LG아트센터를 시작으로 여수 예울마루(24일), 김포아트홀(30일), 제주아트센터(10월 1일), 서귀포 예술의전당(2일), 대전 예술의전당(7일)에서 열린다. 공연에선 동요 외에도 모차르트 ‘작은 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 베토벤 ‘월광’,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 빌라로부스의 ‘아기 인형 모음곡’ 등도 연주한다. “브라질 출신인 빌라로부스의 아기인형 모음곡이 이번 제 작업과 비슷해요. 남미 보사노바나 삼바 고유의 리듬과 화성을 넣은 곡이에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뭘 할 거냐고 묻자 “서울시향의 진은숙 같은 현대 작곡가에게 직접 곡을 의뢰해 새로운 콘텐츠를 찾는 협업을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의 왕성한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3만∼7만 원. 02-2005-0114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흑 61, 63은 좌변 신천지를 개척하는 큰 수지만 어쩐지 허한 느낌이다. A로 뛰어들어 상변 백의 근거를 빼앗는 것이 보다 능동적 구상은 아니었을까. 백은 66으로 A를 방비하며 한시름 놓았다. 흑이 69의 강수를 들고 나오자 백도 70의 강수로 응수한다. 참고 1도 백 1은 흑 4로 탈출하는 수가 있다. 중급 실력의 맥. 지금의 승부는 좌상에서 좌변으로 이어지는 흑 진이 과연 얼마나 집으로 바뀔 것이냐는 것. 흑은 75까지 좌변 흑 진을 조금씩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조한승 9단은 백 76으로 좌변 흑 진으로 풍덩 뛰어든다. 백 68의 후원군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흑은 77, 79의 이단젖힘으로 난폭하게 백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이곳이 첫 번째 승부처다. 백이 알기 쉽게 참고 2도 백 1로 둔다면 흑 6까지 좌변이 모두 흑 집으로 변한다. 이 변화는 백에겐 낙제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백은 어디에 둬야 하나. 잽만 날리던 두 사람이 이제 본격적으로 주먹을 낼 참이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시상식 때 말을 알아듣지 못해 제가 1등을 했는지도 모른 채 상을 받았어요. 무대에서 내려오고서야 제가 1등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6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는 아직 얼떨떨한 듯 수줍게 말했다.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20)는 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막을 내린 ‘제60회 부소니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는 물론이고 아시아 피아니스트로서도 처음이다. 한국인으로는 1969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금상을, 1980년과 1997년에 각각 서혜경과 이윤수가 ‘1위 없는 2위’를 했다. 부소니 콩쿠르는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페루초 부소니(1866∼1924)를 기리기 위해 1949년 창설됐으며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다. 특히 2001년 격년제로 바뀐 이후 지금까지 1위를 3명만 배출했을 만큼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제가 무대에서 좀 떠는 편이어서 첫 라운드에선 긴장을 많이 했는데 갈수록 편안해져서 마지막 라운드는 아주 기분 좋게 연주했어요.” 그가 최종 라운드에서 연주한 곡목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8년째 그를 가르치고 있는 김대진 교수(수원시향 상임지휘자)는 “외국 지인들로부터 제자가 엄청난 상을 탔다고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며 “지영이는 화려한 기교를 내세우기보다는 깊고 섬세한 연주로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연주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처음 접한 문 씨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로 불리기도 했다. 부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각종 피아노 대회에서 입상했고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이후 한국예술영재학교를 거쳐 지난해 한예종 음악원에 수석 입학했다. 문 씨는 국내외 무대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 2009년 폴란드 루빈스타인 청소년 국제 콩쿠르 공동 1위에 이어 독일 에틀링겐 청소년 콩쿠르 1위(2012년), 동아음악콩쿠르 2위(2013년), 다카마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2014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2014년)를 차지했다. 이번 콩쿠르에는 어머니 이복례 씨(52)도 동행했다. 문 씨는 “어머니가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1위 기념 공연을 마치는 대로 귀국할 예정이다. “선생님(김대진 교수)이 우승 후 축하해 주시면서 ‘이제 연주 인생의 50분의 1밖에 가지 않은 거니까 겸손하게 연습하자’고 하신 말씀을 듣고 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앞으로 좋은 연주자가 돼 어려운 형편의 지망생들을 많이 이끌어 주고 싶습니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백 46으로 석 점 머리를 두드릴 때 흑 47은 먼저 상대의 굴복을 요구하는 수. 백도 거침없이 48로 끊어 흑의 응수부터 묻는다.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는 것. 조한승 9단은 백 50으로 잇는 수를 많이 망설였다. 참고 1도 백 1을 결행하면 어떻게 될까. 이 수가 성립한다면 백은 압도적 우세를 확보할 수 있다. 백 11까지 하변 백은 쉽게 죽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우변 백이 문제. 흑 14까지 끊기면 우하 흑과의 수상전 등 복잡한 상황이 벌어진다. 버틸 만한 싸움이지만 신중파에 속하는 조 9단은 후일을 도모하며 백 50으로 참는다. 흑은 55까지 선수했는데 여기서 흑도 고민이다. 좌우동형의 급소인 참고 2도 흑 1이 눈에 확 들어온다. 상하 백 연결을 끊는 맥점. 그러나 백도 2∼6으로 패를 만드는 비상수단이 있다. 백 ‘가’의 자체 팻감도 있어 흑이 장담할 수 없는 그림. 흑도 아쉽지만 일단 57로 물러서 역시 후일을 도모한다. 서로 멱살을 부여잡은 상태지만 먼저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는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한 종류의 권위가 약화되고 만사가 요동치는 가운데, 군 장교들은 당분간 불복종 상태에 머무르면서 심각한 내분에 휩싸이다가, 마침내 군인들을 회유할 줄 알며 진정한 지휘력을 갖춘 어떤 인기 있는 장군이 나타나 모든 이들의 주목을 함께 받을 것이다. 군대는 그의 개인적 능력 때문에 복종할 것이다.” 1790년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쓴 ‘프랑스혁명의 성찰’의 한 대목이다. 1790년이라면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를 함락한 직후로 루이 16세의 처형이나 자코뱅파의 공포정치 등이 나타나기 전. 버크는 프랑스의 혁명적 상황을 정리할 군인을 예언하듯 적었다. 그 군인은 바로 나폴레옹.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역사 원전 45권의 주요 대목을 보여주며 그를 바탕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부터 프랑스혁명까지 세계의 역사를 정리했다. 여기에 해당 역사적 사건과 엮여 있는 문학작품이나 에피소드 등을 넣어 이해를 돕는다. 예를 들면 8세기 서유럽을 통일한 샤를마뉴의 얘기를 하면서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시리즈 중 하나인 ‘하트의 세븐’이나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에 샤를마뉴가 나온다고 하는 식이다. 45권의 원전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원전 5세기 집대성된 인도의 국민 서사시 ‘마하바라타’,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사마천 ‘사기’ 등 역사책의 고전이 거의 망라돼 있다. 여기에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 일반 역사서도 포함됐다. 이해하기 쉽게 썼다는 의미에서 제목에 브런치라고 했지만 대충 씹고 삼킬 일이 아니다. 꼭꼭 씹어 먹을 만하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백 ○는 하변을 살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백 ○ 없이 그냥 백 26으로 밀면 ‘A’로 늘어 받는 게 싫다. 하변 맛을 모두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빼면 흑이 26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백의 입장에선 아프다. 그래서 백 ○가 등장한 것. 백 26으론 참고도처럼 패를 결행하는 수법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초반 팻감 부족으로 백이 이길 수 없다. 백 26 때 흑 27로 물러서서 확실하게 백 ○ 한 점을 제압한 것은 정수. 조한승 9단은 백 28로 뛰어 우변 백 모양을 넓힌다. 이렇게 한 칸 뛰면 프로기사들은 백이면 백 흑 29처럼 2선에 뛰어서 받는다. 실리로도 클 뿐 아니라 백 진영에 침입하는 수도 노리기 때문이다. 백 30으로 어깨짚은 것은 백 모양을 넓히면서 흑을 눌러 가겠다는 의도이다. 흑 33, 35가 강수. 박민규 4단도 이미 예상하던 수로 백 36으로 막아 일전을 준비한다. 흑 37로 늘어 상변과 우변 삭감을 맞보기로 한다. 백 38은 상변을 돌보면서도 귀의 흑을 노리는 수. 그렇다고 흑이 귀를 받고 있을 여가는 없다. 흑 39로 삭감한 뒤 흑 41로 중앙부터 두텁게 한다. 지금은 귀보단 중앙이 더 중요하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국수전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조한승 9단은 지난해 박정환 9단에게 1승 3패로 국수위를 빼앗겼다. 이번 기에 본선 시드를 받아 국수 탈환을 위한 장정에 나섰다. 박민규 4단은 한국바둑리그 티브로드 팀에서 주전으로 뛰며 착실히 활약하는 신예. 조 9단이 국내 기사 랭킹 14위이고 박 4단이 38위여서 경력과 수치 면에선 조 9단이 훨씬 앞서지만 박 4단의 기세 또한 만만찮다. 우하귀 정석은 요즘 유행하는 모양이다. 백 8이 유행의 시작인데 박 4단은 가장 간명하게 흑 9를 택했다. 이러면 흑 17까지는 예상된 길이다. 백 18은 손 뺄 수 없다. 참고도 백 1이 정말 두고 싶은 곳이지만 흑 2로 끊으면 백에게 대책이 없다. 흑 6까지 귀의 백 두 점이 크게 잡힌다. 백 6 한 점은 흑 19로 바싹 다가와도 탄력이 풍부해 쉽게 제압당하지는 않는다. 흑 19로 우하 정석이 마무리되고 흑백이 서로 큰 곳을 찾아 포석 경쟁을 벌이는데 백이 갑자기 ‘우하 정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24로 도발한다. 상대가 강한 곳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 기리(棋理)인데 무슨 뜻일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신구 신산(神算)끼리의 대결. 이창호 9단(40)과 박영훈 9단(30)은 끝내기와 계산력에서 당대 최고를 구가했다. 지금은 박 9단이 국내 기사 랭킹 4위로 여전히 상위권인데, 이 9단은 무려 37위까지 떨어져 있어 이 지표로는 박 9단이 우세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전설’ 이 9단의 대국은 언제나 관심거리로 이번 16강전에서 가장 흥미를 끌었다. 우선 참고 1도와 참고 2도를 비교해보자. 참고 1도는 흑의 두터움이 하변 흑을 응원하고 있어 흑의 운신이 편해 보인다. 그러나 참고 2도는 흑의 모양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 참고 2도가 실전 진행. 여기서 백은 일찌감치 승기를 잡고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중반에 한때 흑에게 역전 찬스를 내줬지만 흑이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흑 185가 마지막 패착이 됐다. 이후 좌상 귀에서 난 패는 흑이 이겼지만 그 대신 상변 흑이 온전히 살아갈 길이 없어 결국 박 9단이 항복하고 말았다. 135 143 149 171 177=41, 140 146 154 174 180=132, 203 209=197, 206=200. 222수 끝 백 불계승.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2013년 열린 제1회 멍바이허(夢百合)배의 8강전. 대진표에선 한국 선수의 이름을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16강에서 최철한 조한승 9단이 떨어지며 8강은 모두 중국 선수 일색이었다. 그해 한국 선수가 세계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못 했기 때문에 한국 바둑이 앞으로 중국세에 완전히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2년이 흘러 1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제2회 멍바이허배 8강전. 격년제인 이 대회의 이번 8강전에는 다행히 한국 선수 3명이 올랐다. 이날 대국은 이세돌 9단 대 탕웨이싱 9단, 박영훈 9단 대 저우루이양 9단, 안성준 6단 대 셰커 2단, 커제 9단 대 룽이 4단의 대결로 치러졌다. 가장 먼저 대국을 끝낸 것은 안성준 6단. 초반부터 셰 2단을 몰아붙여 우세를 확립했다. 셰 2단은 좌변에서 여러 수 늘어진패를 끈질기게 공략하며 추격했으나 안 6단의 대응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234수 끝 백 불계승. 이어 이세돌 9단이 중앙에서 화끈한 전투력을 보여주며 흑 말을 잡아 15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최근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컨디션 호조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이다. 이 9단은 특히 멍바이허와 인연이 깊다. 지난해 멍바이허 주최로 열린 구리 9단과의 10번기에서 6승 2패(10번기는 4승 이상 차이가 나면 종료)를 거두며 500만 위안(약 9억1000만 원)의 상금을 챙겼다. 마지막 승전보는 박영훈 9단이 전해 왔다. 박 9단은 평소 특기대로 차분한 집바둑으로 반면을 이끌어 상대를 반 발짝씩 앞서 가며 25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중국 선수끼리의 마지막 대국에선 커제 9단이 이겼다. 4강전은 이세돌-안성준, 박영훈-커제 대결로 이르면 다음 달 열린다. 우승 상금은 180만 위안(약 3억3000만 원)이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한국에 오니 실력이 센 상수와 마음껏 둘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국 오기 전엔 아마 초단이던 실력도 지금은 한 점 이상 는 것 같아요.” 미국 명문대인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3학년생 켈시 다이어(20·여).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에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앳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달 초 미국바둑협회 추천으로 대한바둑협회의 해외 바둑연수생 초청 사업에 참가했다. 독일 프랑스 호주 베트남 등에서 온 다른 연수생 10여 명과 함께 권갑용 국제바둑도장에서 숙식하며 한 달 가까이 바둑을 배웠다. “도장에서 프로를 지망하며 공부하는 한국 어린이들의 실력에 깜짝 놀랐고 그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바둑 공부에 매진하는 점에 다시 놀랐어요. 저와 연수생들도 그들과 똑같이 공부했는데 무척 만족스러워요.” 한국 음식도 생각보다 입에 잘 맞았다. 그는 “김치의 독특한 맛이 매력적이었고 오징어 고추장 볶음이 별미였다”며 “미국에선 꺼리는 오징어가 그런 맛이 나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11세 때 만화 ‘고스트 바둑왕’을 보고 바둑을 알고 싶었다. 주변에 바둑을 두는 사람이 없어 인터넷과 바둑 책을 보고 독학했다. 이듬해 집(워싱턴 인근)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린 ‘북(北)버지니아 바둑 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당시 실력이 12급 정도였는데 그 대회에서 75세 노인과 8점을 깔고 뒀다가 대패했죠. 일본계 여자아이들과도 뒀는데 승패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를 계기로 친해져서 바둑을 많이 뒀어요.” 이후로 인터넷 바둑 사이트와 지역 대회에서 대국을 하면서 독학을 계속했다. 하루 평균 2시간 정도는 바둑 공부에 썼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바둑을 잠시 떠나 있었던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아뇨. 오히려 바둑이 대학 진학에 큰 도움이 됐어요. 미국 대학은 성적만으로 뽑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보는데 제가 대학에 제출하는 에세이를 바둑에 관해 썼어요. 바둑을 배운 이유와 바둑 두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 그리고 바둑이 얼마나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을 길러 주는지에 대해서요. 이를 학교에선 대학 공부에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보고 좋게 평가했다고 해요.” 좋아하는 프로기사를 묻자 서슴없이 “세돌 리(이세돌)”라며 ‘와우’ 하는 감탄사를 냈다.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데 결국 이겨 가는 게 멋있어요. 지난달 초 전남 일대에서 열린 국수산맥배에 참가한 이세돌 9단을 직접 봤는데 사인을 못 받은 게 아쉽네요.” 그는 바둑의 장점에 대해선 “여러 전술을 한꺼번에 구사하면서 전체 형세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판단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업으로는 역사학 교수가 꿈이지만 학교 바둑 클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아마 5단까지 실력을 올려놓겠다는 것이 목표다. “내년 2월 열리는 뉴저지 주 바둑대회에 나가 톱10에 들고 수년내 우승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번 한국에서의 연수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한국에 오니 실력이 센 상수와 마음껏 둘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국 오기 전엔 아마 초단이던 실력도 지금은 한 점 이상 는 것 같아요.” 미국 명문대학인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3학년생 켈시 다이어(Kelsey Dyer·20).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앳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달 초 미국바둑협회 추천으로 대한바둑협회의 해외 바둑연수생 초청 사업에 참가했다. 독일 프랑스 호주 베트남 등에서 온 다른 연수생 12명과 함께 권갑용 국제바둑도장에서 숙식하며 한 달 가까이 바둑을 배웠다. “도장에서 프로를 지망하며 공부하는 한국 어린이들의 실력에 깜짝 놀랐고 그들이 하루에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바둑 공부에 매진하는 점에 다시 놀랐어요. 저와 연수생들도 그들과 함께 공부했는데 무척 만족스러워요.” 한국 음식도 생각보다 입에 잘 맞았다. 그는 “김치의 독특한 맛이 매력적이었고 오징어 고추장 볶음이 별미였다”며 “미국에선 꺼려하는 오징어가 그런 맛이 나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11세 때 만화 ‘고스트 바둑왕’를 보고 바둑을 알고 싶었다. 주변에 바둑을 두는 사람이 없어 인터넷과 바둑 책을 보고 독학했다. 이듬해 집(워싱턴 DC 인근)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린 ‘북(北)버지니아 바둑 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당시 실력이 12급 정도였는데 그 대회에서 75세 노인과 8점을 깔고 뒀다가 대패했죠. 일본계 여자 아이들과도 뒀는데 승패는 기억 안 나지만 그 때 계기로 친해져서 바둑을 많이 뒀어요.” 이후로 인터넷 바둑 사이트와 지역 대회에서 대국을 하면서 독학을 계속 했다. 하루 평균 2시간 정도는 바둑 공부에 바쳤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바둑을 잠시 떠나있었던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아뇨, 오히려 바둑이 대학 진학에 큰 도움이 됐어요. 미국 대학은 성적만으로 뽑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보는데 제가 대학에 제출하는 에세이를 바둑에 관해 썼어요. 바둑을 배운 이유와 바둑 두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 그리고 바둑이 얼마나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을 길러주는지에 대해서요. 이를 학교에선 대학 공부에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보고 좋게 평가했다고 해요.” 좋아하는 프로기사를 묻자 서슴없이 “세돌리(이세돌)”이라며 ‘와우’하는 감탄사를 냈다.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데 결국 이겨가는 게 멋있어요. 지난달 초 목포에서 열린 국수산맥배에 참가한 이세돌 9단을 직접 봤는데 사인을 못 받은 게 아쉽네요.” 그는 바둑의 장점에 대해선 “여러 전술을 한꺼번에 구사하고 전체 형세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판단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업으로는 역사학 교수가 꿈이지만 학교 바둑 클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아마 5단까지 실력을 올려놓겠다는 것이 목표다. “내년 2월 열리는 뉴저지 주 바둑대회에 나가 여성부 우승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번 한국행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가을엔 클래식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유명 교향악단과 연주자들의 내한공연이 줄을 잇는다. 10월 21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영국 BBC 필하모닉이 7년 만에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예술감독인 스페인 출신 지휘자 후안호 메나와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가 함께한다. 물로바는 1988년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5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다. 당시 안네조피 무터, 정경화, 고토 미도리, 나자 살레르노소넨버그가 함께 꼽혔다. 연주곡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슈베르트의 대교향곡.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은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독특한 콘셉트의 내한공연을 펼친다. 핀란드 출신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는 서울시향의 객원지휘를 한 적이 있으나 자신의 교향악단을 데리고 한국 무대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10월 22, 2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10월의 마지막인 30, 31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호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4년 만에 두 번째 내한공연한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의 뒤를 이어 지난해 음악감독이 된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봉을 잡는다. 30일에는 브람스 교향곡 2번과 쇼팽 국제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던 중국계 피아니스트 윤디(리윈디)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준다. 31일에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과 역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래핀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연주된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2009년 이후 6년 만에 10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갖는다.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함께 오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표는 이미 매진됐다. 11월에도 교향악의 향연이 이어진다. 올해 466년의 역사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19일)가 예술의전당에서 수석 객원지휘자인 정명훈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2, 3번을 연주한다. 이 오케스트라는 방한 사흘 전인 16일 북한 공연도 추진 중이다.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러시아 출신 명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뮌헨 필도 각각 21일과 23일 같은 장소에서 방한 무대를 갖는다. 뮌헨 필 연주에선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협연한다. 그는 이에 앞서 10월 17일부터 23일까지 경기 구리와 군포, 충남 천안 등에서 순회 연주를 한다. 연주 곡은 스크랴빈 24개 전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1번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이다. 평소와는 색다른 그의 선택을 감상할 기회다. 음악평론가 박제성 씨는 “올가을에는 ‘대첩’이라고 할 만큼 교향악단의 공연이 몰렸다”며 “빈 필을 빼면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BBC 필하모닉의 젊은 지휘자 메나와 지휘계의 거목으로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을 이끄는 사라스테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좌상 백 진에 흑 ○로 들어간 이상 대형 패가 나는 건 불가피하다. 드디어 흑 197부터 백 200까지 패가 벌어졌다. 기본적으론 흑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패 자체는 백의 부담이 더 크다. 패에 지면 좌상 백이 모두 함락된다. 하지만 백은 204의 팻감이 있어 버틸 만하다. 흑 ○를 잡으면 좌상 백이 살 수 있기 때문. 흑 205가 일단 버텨본 수. 참고도 흑 1로 받으면 ‘가’ ‘나’ 등 앞으로 이곳에 3개의 팻감이 나온다. 그래서 흑 205로 팻감 한 개라도 줄여보려고 하는 것. 그러나 흑의 팻감이 턱없이 부족한 터라 백 210의 팻감은 받을 수가 없다. 여기선 실전처럼 흑 211로 패를 해소하고 백 214를 당하는 것이 외길 수순. 이 교환만 보면 분명 흑의 성공. 흑 ○를 잃은 것보다 백 ◎를 잡은 게 훨씬 크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변 흑 대마가 위험하다. 백 216으로 두자 의외로 이 흑 대마가 아무 탈 없이 살길이 묘연하다. 흑 219의 맥점을 선보였지만, 백 222로 단수치자 흑은 항복을 선언했다. 흑이 단수를 받으면 백은 상변 흑을 잡으러 가 쉽게 흑 대마가 잡힌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우하 백이 교묘하게 살아가자 형세는 다시 백 유리로 돌아섰다. 하지만 느낌상 ‘백 유리’일 뿐 실제 차이는 아주 미세하다. 그런데 이창호 9단도 순간 마음이 놓여서일까. 백 172의 팻감은 위험했다. 흑이 이 팻감을 무시하고 참고 1도 흑 1로 두면 재역전당할 뻔했다. 참고 1도 백 2, 4는 흑 11까지로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백 4로는 ‘가’ ‘나’를 선수하는 정도인데 흑 1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나 흑이 173으로 덜컥 받아준 덕분에 백은 팻감 하나를 벌었다. 결국 흑은 181로 물러섰다. 박 9단은 초중반 불리를 딛고 ‘유리’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즈음에 다시 ‘박빙’으로 내려앉은 것이 못내 아쉽다. 번민과 자책이 머릿속을 교차한다. 반상 최대인 백 184를 본 박 9단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 여기서 뼈를 묻겠다고 선언하듯 흑 185로 막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참고 2도 흑 1로 참는 것이 정수. 백 2로 넘는 수가 크긴 해도 아직은 미세한 형세였다. 흑 189의 침입으로 건곤일척의 승부가 시작됐다. 174 180=○, 177=171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기계에 의한 인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대표적 영화는 ‘터미네이터’. 기계가 핵폭탄으로 인간을 거의 절멸시키고 남은 소수의 저항군도 없애려고 한다는 줄거리는 여러 속편에서도 변함없다. 그러나 인간의 편이 되는 구형 터미네이터 T-800이 없었다면 영화 속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기술의 발전은 이런 의구심을 낳는다. 현실에서 기계 혹은 기술의 발전이 이런 암울한 미래를 가져오지 않을까. 2045년 인간의 지능까지 뛰어넘은 기계가 무력한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저자는 현재의 인류(자연을 통제하는 3.0 시대)가 앞으로 맞이할 기계의 시대에 대해 무한 긍정의 설명을 내놓고 있다. 기계의 시대가 본격화하면 당장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 중국 베이징 음식점에는 국수를 가늘게 잘라내는 ‘누들봇’이 들어섰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병원에선 컴퓨터가 처방전을 받고 로봇이 약을 포장해 제공한다. 21세기 말에는 현재 일자리의 4분의 3이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속도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를 앞지른다. 결국 이는 중산층의 몰락과 부의 집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 같은 노동의 소멸을 창업이 대신한다고 본다. 창업이 첨단 아이디어를 가진 소수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가고, 지금의 노동처럼 보편화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과거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돼 온 것이다. 불평등이 급증하고 기업가들이 부를 독점하고 노동자들은 고통에 시달린다. 그에 대한 반발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정부는 교육과 복지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이 로봇과 창업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적용될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은 기술 진보와 관련해 일자리뿐 아니라 건강 예술 섹스 정체성 종교 행복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제시한다. 저자는 기술 발전에 의한 세계화와 개인주의가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공존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해진 길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달성된다는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백 ○의 후수 연결이 불가피해서 초중반 이어진 백의 우세는 어느덧 눈 녹듯 사라졌다. 흑 153이 반상에서 가장 큰 곳. 이젠 흑이 좀 낫지 않나 싶다. 박영훈 9단의 마음속에선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힘겨운 레이스였지만 드디어 백을 따라잡았다. 더구나 흑 153은 선수 아닌가. 백이 손을 빼면 우하 백은 전멸이다. 그런데 이창호 9단이 백 154로 좌변 패부터 건드린다. 이를 본 박 9단은 깜짝 놀랐다. 우하 백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이 9단이 왜 가일수를 하지 않고 좌변부터 뒀을까. 이리저리 수읽기를 해봐도 백이 사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박 9단은 흑 155로 두며 바둑이 끝났다고 자신했다. 뚝심 있게 흑 159까지 죽죽 이어가면 백이 살아갈 길이 없지 않나. 하지만 박 9단은 곧 착각을 깨달았다. 백 160이 있었다. 이 9단은 일찌감치 이 수를 보고 있었기에 느긋했던 것. 백은 164까지 선수한 뒤에 백 168, 170으로 이어갔다.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교묘한 수순. 참고도와 실전을 비교하면 흑이 얼마나 손해인지 금방 눈에 띈다. 더구나 좌변 패에서 흑은 팻감 부족으로 후수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 순식간에 재역전됐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흑 ○는 반상에 남은 유일한 공터를 공략한 수. 여기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더이상 비빌 언덕이 없다. 흑 ○에 직접 응대하는 것은 흑의 의도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백 126의 동문서답은 기세이자 정수. 흑은 127, 129로 좌변 백을 갈라놓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백도 130부터 좌변 흑을 공략하며 중앙과 쉽게 연결하는 길이 있어 타개가 어렵진 않다. 그런데 백 138로 지나가는 길에 가볍게 들여다본다는 것이 실착이었다. 흑이 이을 것을 기대했으나 139로 반발하자 딱히 응징할 길이 없다. 이런 응수타진에 정교했던 이창호 9단이 흑의 반발을 깜빡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국후 검토에서 백 138로는 참고도 백 1로 패를 계속해야 했다. 흑은 어차피 팻감이 부족해서 흑 4, 6으로 물러서는 게 최선. 이때 백 9까지 우변 실리를 챙기면 여전히 우세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흑 10 이하의 반격은 백 23까지 성립하지 않는다. 흑 139 때문에 좌변 패에 대한 백의 부담이 커져 결국 152로 중앙과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점이 백의 아픔이다. 어느덧 한참 뒤떨어져 있던 흑이 슬그머니 쫓아와 점점 거리를 좁히고 있다. 135 143 149=○, 140 146=132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방심이 부른 완착인 백 104부터 다시 보자. 이 수로는 참고도 백 1이 정답이다. 백 7까지 실리와 두터움을 동시에 챙길 수 있었다. 이후 백 ‘가’로 상변 흑 전체를 차단하는 수도 있어 흑의 근심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흑 105가 놓이자 상변 흑의 모양새가 확 피어난 느낌. 승리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수를 놓쳐 화가 난 탓일까. 이창호 9단은 백 108로 격렬하게 붙여간다. 흑 109로 물러선 것은 정수. 백 108 한 점을 잡으려 들면 화를 면치 못한다. 백은 108, 110으로 좌변을 응급조치하고 반상 최대의 곳인 112를 차지한다. 결정타는 놓쳤지만 백 우세. 그러나 백 108, 110 부근이 허약해 여기에 누가 손을 먼저 돌리느냐가 중요해졌다. 물론 흑은 당장 손을 댈 수가 없다. 좌변 흑도 아직 미생이기 때문. 그래서 흑 113부터 좌변 흑 보강하기에 나선다. 좌변 흑의 삶이 확실해지면 바로 좌변 백진에 손을 돌릴 태세다. 백도 선수를 뽑아 좌변에 가일수할 수 있다면 불안이 사라진다. 백 120, 흑 121이 선수를 잡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 백보다 더 절박했던 흑이 125로 좌변에 선착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권투로 치면 백이 흑을 코너에 몰아붙이고 신나게 주먹을 뻗고 있는 장면이다. 흑은 공격은커녕 가드를 올리기에 급급한 상황. 백 ○의 침입에 흑 93은 뼈아픈 후퇴. 백 ○를 잡으려면 참고도 흑 1로 둬야 한다. 이후 수순은 흑이 백의 노림에 걸려드는 사례 중 하나. 백 12 때 흑의 응수가 두절된다. 흑이 다르게 응수해도 결과는 참고도와 비슷하다. 흑은 상변에서 실리를 고스란히 내주며 그 대가로 흑 97부터 101까지 백 한 점을 때려내 흑 대마의 안정을 취했다. 일단 백의 공세에 숨죽여 참은 뒤 후일을 기약하겠다는 자세다. 백 102의 단수가 기분 좋다. 중앙을 두텁게 하면서 상변 흑에게 보강을 강요한다. 흑은 백의 요구대로 103으로 지킬 수밖에 없다. 국면의 흐름은 백의 뜻대로 척척 맞아떨어지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고삐를 죄면 결승선을 일찍 통과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백이 너무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자 방심의 싹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백 104의 빵때림이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방심의 그림자. 한없이 두터운 곳으로 백의 불안을 말끔히 씻어주는 듯하다. 그러나 흑 105가 놓이자 이창호 9단의 표정이 순간 변한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