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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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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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1~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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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메르켈 3기 출범… 유로존 위기탈출 본격시동

    ‘유럽의 여제(女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59)가 이끄는 3기 정부가 17일 공식 출범했다. 이날 오전 9시 독일 연방하원에서 메르켈 총리는 전체 의석(631석) 중 462석의 압도적인 찬성표(73.2%)로 3선 총리로 선출됐다. 이로써 2005년 처음 집권한 메르켈은 2017년 하반기까지 12년간 독일을 이끌게 됐다. 임기를 무사히 마치면 메르켈 총리는 헬무트 콜(16년)과 콘라트 아데나워(14년)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장수하는 총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기 집권에 이어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對)유럽 정책을 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독일 공영방송 ARD의 여론조사 결과 메르켈의 지지율은 68%, 사민당 전체 당원들의 대연정 찬성률도 78%에 달했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메르켈의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군소 정당과 합병해 추가로 5석만 확보하면 단독 과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민당과의 긴 협상 끝에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이고, 내각 14명의 국무위원 중 6개의 장관직을 야당에 내주며 대연정에 합의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위기 탈출을 위한 정책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그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 정상회담에서 유럽 단일은행감독기구(SSM) 설립을 논의할 예정이다. 독일은 유럽과 글로벌 안보정책에서도 강력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1기에 이어 3기 외교장관을 맡은 외교전문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장관(사민당)은 독일, 프랑스, 폴란드 간 ‘바이마르 트라이앵글’ 안보체제를 강화하고, 발칸 지역과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추진 등 적극적인 대외전략을 펼칠 예정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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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크라이나, EU와 협상 중단… 反정부 시위 다시 격화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의 협력협정 논의가 결렬되자 4주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다시 격화되고 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7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규모 시위도 예고됐다. 15일 슈테판 퓔레 EU 확대담당집행위원이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중단을 선언한 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독립광장에 시위대 약 30만 명이 운집했다. 광장과 인근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국기와 EU 깃발 등을 들고 EU와의 협력협정 체결 준비를 잠정 중단한 정부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와 EU의 협력협상 체결을 촉구하자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매케인 의원은 “우크라이나는 스스로의 운명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결정할 주권이 있다”며 “당신들이 좇는 운명은 바로 유럽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산 수입가스 가격을 낮추고 경제 원조에 관한 확답을 얻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대 측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모스크바가 주도하는 관세동맹에 참여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EU는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퓔레 집행위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세르게이 아르부조프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와 협력협정 체결 문제를 논의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해 협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말과 행동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가 EU와의 협정을 곧 체결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러시아와 옛 소련권 관세동맹 가입을 추진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 데 대해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반정부 시위는 지난달 21일 우크라이나가 EU와의 협력협정 체결을 맺으려다 러시아의 압력으로 무산되면서 촉발됐다. 10만여 명의 시위대는 EU와의 협정 체결 재추진과 함께 친러시아 성향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미국은 무력 진압 사태가 불거진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재를 검토해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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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장성택 처형 이후]김한솔 잠적?… 佛 기숙사 우편함 이름표 갑자기 사라져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 유학 중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조카인 김한솔(19·사진)의 기숙사 내 우편함 이름표가 14일 갑자기 제거돼 관심을 끌고 있다. 김한솔은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아들.13일 오후 2시경 프랑스 북부 오트노르망디 주의 항구도시 르아브르에 있는 파리정치대학 르아브르 캠퍼스 기숙사. 입구 로비에 있는 우편함 중에는 ‘237호 김한솔(Kim Han Sol)’이라는 이름표가 선명히 붙어 있었다. 우편함에는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배달원이 12월 12일 주문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 방에 들렀으나 사람이 없어서 되돌아갔다는 통고문(Avis de Passage)이 놓여 있었다. 또 2층에 있는 김한솔의 숙소 초인종을 여러 차례 눌러 보았으나 방안에서도 인기척이 없었다.14일 오후 다시 르아브르 기숙사를 찾았을 때 우편함에 ‘김한솔’이라는 이름표가 제거돼 있었고 우편함도 비워져 있었다. 이 이름표는 8월 말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이후 계속 붙어 있었다. 최근까지도 한국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하지 않던 그가 장성택 처형 이후에는 외부의 시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숙사에서 100여 m 떨어진 시앙스포 학교 건물에서 만난 같은 학년 친구 가브리엘 씨(19)는 “김한솔은 학교에도, 기숙사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르아브르 시내를 떠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음 주에는 시험기간이기 때문에 그가 학교에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경찰은 장성택 숙청 이후 김한솔의 신변 보호에 경계를 곤두세우고 있다. 13일 오후 3시경 경찰 5명이 출동해 “신고 전화를 받고 나왔다”며 기자에게 “북한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북한의 ‘넘버2’(장성택을 지칭)가 처형됐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며 “기숙사 근처에 김한솔의 거취를 묻는 동양인이 나타나면 학생들로부터 신고가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르아브르 시 경찰서에 불려가 2시간을 넘게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여권과 체류증, 프랑스 정부가 발급해준 외신기자증 등을 확인하면서 북한에서 온 공작원이 아닌지 점검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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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인’ 만델라, 고향서 자유의 여정 마치다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인류화합의 상징이 된 ‘역사의 거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15일 고향인 쿠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만델라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8시 남아공 이스턴케이프 주 쿠누에서 추도객 4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장(國葬)으로 거행됐다. 10일 요하네스버그 FNB경기장에서 열렸던 국가 추도식 때 하루 종일 비가 내린 것과 달리 이날은 쾌청한 여름의 태양이 만델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비춰 주었다. 장례식은 만델라의 고향 쿠누에 임시로 설치된 타원형 돔 모양의 초대형 천막에서 진행됐으며 TV를 통해 남아공과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장례식은 21발의 예포 발사와 함께 남아공 국기로 덮은 만델라의 관을 운구하면서 시작됐다. 만델라의 출신 부족인 코사족은 ‘당신은 약속을 지켰다’라는 찬송가로 그의 용기와 자유, 화해의 삶을 찬양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 조이스 반다 말라위 여성대통령,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자카야 키퀘테 탄자니아 대통령 등 아프리카 정상 10여 명과 미국의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부족 전통에 따라 진행된 매장 의식에는 만델라의 부인인 그라사 마셸 여사와 전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만델라 여사 등 친지 450명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헌사에서 “오늘은 자유의 투사(만델라)가 95년간 벌여왔던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여정을 마치는 날”이라며 “그의 삶은 전 세계 불평등과 차별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횃불이 돼 왔다”고 말했다. 만델라와 함께 로번 섬에서 27년간 복역한 친구인 아메드 카트라다도 “당신은 용서와 화해의 화신이었다”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달린 당신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은 데즈먼드 투투 전 대주교는 혼선 끝에 결국 참석했다. 만델라와 함께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투쟁 동지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그는 14일 “정부 초청명단에 없어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으나 정부 측이 “공식초청 명단에 있다”고 해명하자 이날 장례식에 참석했다. 한편 만델라 타계 이후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으며 수년 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가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전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선 차량 운전자를 상대로 만델라의 초상화를 팔고 있으며 고급 쇼핑몰에는 만델라의 수감 시절 죄수번호인 ‘46664’ 상표를 단 셔츠도 판매되고 있다. 이 신문은 만델라 타계 이후 넬슨 만델라 재단에 만델라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라이선스 신청이 주당 평균 10건에 이른다고 덧붙였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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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디바 얼굴 뵙고 마지막 인사” 새벽부터 수천m 늘어서

    ‘역사의 거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시신이 11일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만델라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인류에게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평온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이날 새벽부터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 정부종합청사 건물인 유니언 빌딩 앞에는 투명 유리관에 안치된 만델라 전 대통령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먼저 만델라의 유가족과 외국 사절단이 조문을 마쳤으며, 정오부터는 남아공 국민들의 참배 행렬이 수 km까지 이어졌다. 유니언 빌딩은 1994년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만델라가 일하던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곳. 만델라의 시신은 이날 오전 7시 국군병원에서 이곳으로 운구됐다. 대형 남아공 국기로 감싼 만델라의 관을 실은 운구차량 주위에는 경찰 오토바이가 호위했다. 거리에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고, 흐느끼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만델라의 시신을 배웅했다. 두 아이와 함께 2시간이나 기다렸다는 교사 타펠로 들라미니 씨(48)는 “이번이 만델라를 볼 마지막 기회”라며 “나와 아이에게 너무도 소중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62년 내란죄로 체포된 직후 머문 중앙교도소 앞을 지나고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프리토리아 대법원 앞을 통과했다. 이곳에서 만델라는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악명 높은 교도소 로번 섬에서 27년간 복역했다. 남아공 정부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하루 9시간씩 만델라의 시신을 공개할 예정이다. 1시간에 약 2000명씩 참배를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흘간 5만여 명이 조문을 할 것으로 보인다. 조문객들에겐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됐으며, 한 사람이 여러 번 참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문을 통한 신분확인 절차도 진행됐다. 이를 위해 선거에서 투표자 확인용과 똑같은 잉크가 사용됐다고 남아공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전날 추도식에서 “유니언 빌딩을 ‘넬슨 만델라홀’로 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종차별과 압제의 상징이었던 유니언 빌딩을 평화와 단합, 민주주의와 진보의 상징으로 바꾼 것이 만델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시신은 14일 남아공 국기에 덮여 고향인 쿠누로 이동하게 된다.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공군기지에서 추도식을 가질 예정이다. 15일 쿠누에서 열리는 장례식에는 가족 친지와 남아프리카 정부 요인 등 50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토리아=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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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스승과 아름다운 이별”… 100여국 정상 사상최대 조문

    전 세계 ‘인권과 화해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는 피부색도, 적국도, 우방국도 넘어섰다. 10일 새벽부터 하루 종일 폭우가 내린 가운데 요하네스버그 FNB스타디움에서 열린 만델라의 공식 추도식에는 100여 개국의 정상 등이 참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조문외교가 펼쳐졌다. 이날 요하네스버그 소웨토 지역에는 아침부터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부터 걸어서 경기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아프리카에서 지도자가 돌아가셨을 때 비가 오는 것은 행운의 징조”라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오전 6시부터 입장이 시작된 후 수천 명이 인종과 피부색을 넘어 함께 손뼉을 치고 노래하며 ‘무지개 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 만델라를 기렸다. 추모객들은 마치 월드컵 축제에 참가한 듯 국기를 온몸에 휘감거나 만델라 티셔츠를 입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추고, 부부젤라도 불어댔다. 8세 딸을 데려 온 콜레카 줄루 씨(31)는 “만델라와의 이별에 눈물을 흘리지만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라며 “그가 우리에게 준 자유를 축하하기 위해 춤을 춘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온 추모객 엘리나 크리스틴 씨(42·여)는 “믿을 수 없도록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한국 시간 10일 오후 7시)에 시작된 공식 추도식은 4시간가량 진행됐다. 추도식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전 세계 지도자들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것은 “아프리카 땅이 낳은 아들”이라고 소개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만델라와 오바마는 각각 남아공과 미국에서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데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만델라를 자신의 멘토라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만델라를 ‘역사의 거인’으로 칭하며 “만델라의 투쟁은 당신의 투쟁이었고 그의 승리는 당신의 승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만델라를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과 비교하면서 “우리에게 행동과 이상(理想)의 힘을 가르쳐 주었으며, 법을 넘어 사람들의 ‘심장’까지 바꾼 사람”이라며 “만델라가 가르쳐준 ‘자아 성찰’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전 미국과 아직 냉랭한 관계에 있는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악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추도사에서 “무지개는 비와 태양이 어우러져 탄생하듯이, 만델라와 남아공 국민들의 고통과 영광이 무지개 국가를 탄생하게 했다”며 “만델라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 이 시대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과 카스트로 의장도 추도사를 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와 딸 첼시 씨도 참석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정적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나란히 입장했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찰스 왕세자, 일본의 나루히토(德仁) 왕세자,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등 정치적 외교적 대립관계를 뛰어넘어 지구촌 지도자들이 총출동했다. 또한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록그룹 U2의 보컬 보노, 할리우드 영화배우 샬리즈 시어런 등 유명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날 추도식은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70여 개국 정상 참석)을 웃도는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이날은 만델라가 1993년 12월 10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행사가 열린 FNB스타디움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 당시 만델라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이다.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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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喪主’ 주마 대통령, 추모객들 야유에 망신살

    10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공식 추도식에서 제이컵 주마 현 남아공 대통령이 시민들의 야유를 수차례 받았다. 만델라 전 대통령을 추모하러 모인 전 세계 지도자들 앞에서 자국민에게서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날 시민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타보 음베키 전 남아공 대통령, 만델라의 전처 위니 만델라가 소개될 때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주마 대통령이 소개될 때는 두 차례나 야유를 보낸 데 이어 마지막 연설을 하러 다시 등장할 때도 ‘우∼’ 하는 함성을 보냈다. 만델라 전 대통령에 이어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을 맡아 이날 행사의 주빈인 주마 대통령은 가장 빛나야 할 순간에 참석자 중 유일하게 야유를 받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1년 반 동안 남아공은 광산업 근로자들의 지속적인 파업과 ANC의 지도력 부재 및 파벌 문제, 사회 지도층과 빈곤층 간의 분열 심화 등 사회적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 주마 대통령은 부패 혐의에도 휩싸였다. 2009년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부패 의혹을 받고 있었지만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바 있다. 주마 대통령은 지난해 줄루랜드에 위치한 자택을 개조하는 데 2700만 달러(약 285억 원)를 들인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남아공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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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커지는 경제적 불평등… 黑黑갈등도 깊어져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만델라의 꿈은 이제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해소로 완성돼야 한다.” 1994년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철폐한 이후에도 남아공의 경제적 불균형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9일 남아공 국회는 만델라의 정치적 유산을 기리는 특별 국회를 개최했다. 남아공 여야 정치인들은 만델라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적 통합을 넘어 경제적 불평등과 가난, 부패 추방에 힘을 쏟자는 자성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만델라 하우스’의 두 얼굴 9일 남아공의 경제중심지 요하네스버그의 명품 쇼핑몰인 샌드턴시티.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빛나는 쇼핑몰 내부의 만델라 광장에 설치된 6m 높이의 만델라 동상 앞에는 수많은 백인과 흑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명품 시계, 보석, 구두 매장의 쇼윈도에도 만델라 사진이 놓여 있다. 현재 남아공에서 만델라의 이름은 40개의 상표에서 쓰이는 ‘명품 브랜드’로도 통한다. 반면 만델라가 지냈던 요하네스버그 남서부 소웨토 지역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8일 ‘국가 기도의 날’에 찾아간 소웨토 주변 골목은 술에 취한 남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흑인 게토(집단거주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요하네스버그 북동쪽의 알렉산드라에 있는 만델라의 옛집 주변은 더 심각했다. 이곳은 만델라가 23세의 나이에 고향에서 상경해 처음 정착한 곳. 그는 당시 화장실도 없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집에서 변호사로서 본격적인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이곳의 풍경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델라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요하네스버그 하우턴 지역의 중산층 주택가나 프리토리아의 대통령 집무실 앞 빈소에서처럼 화려한 꽃다발도, 춤추고 노래하는 추모객들을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4년 취임 당시 “모두를 위한 정의와 평화”와 함께 “모두를 위한 일과 빵, 물과 소금에 대한 희망”을 약속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남아공에서는 흑인 중산층이 2배로 확대됐고, 평균소득도 169% 늘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백인가구 평균소득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소득 불균형은 오히려 확대됐다. 1994년 남아공의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55%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엔 상위 10%가 전체의 70%를 차지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특히 하루 1.25달러(약 1316원) 미만으로 연명하는 빈곤층도 26%에 이른다. 소득 불균형은 흑인사회 내부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이웃 나라 짐바브웨에서 온 이주민에게 일자리를 뺏긴 남아공 흑인들이 지난해 170여 차례나 시위를 벌이는 등 ‘흑-흑 갈등’도 심각하다. 요즘 백인들은 수백 채의 고급주택 전체가 전기펜스로 보호되며 24시간 경비가 삼엄한 주거단지를 선호한다. 내부에 골프장, 수영장, 레스토랑 등 호화 시설을 갖춘 곳이다. 지난날 흑인을 격리시키려 했던 백인은 치안 문제 때문에 이제 스스로를 좁은 공간에 가두는 길을 택했다. 돈 많은 흑인들도 강도의 위험을 피해 백인들과 함께 이곳에 같이 살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저소득층 흑인들의 자활을 돕는 단체를 이끄는 도나 카친 사무총장은 “생전에 만났던 만델라가 해준 ‘가난을 만든 것도, 가난을 묵인해 온 것도 사람이다. 노예제도나 아파르트헤이트처럼 가난도 결국 사람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어 본다”고 말했다. 한편 10일 전 세계 70여 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하는 추도식을 앞두고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시내에는 호텔방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3인의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추도식에 참석하는 미국의 비밀경호국은 경호 준비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남아공 정부는 장례기간에 군인 11만 명을 동원해 안전 유지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끄는 한국 조문사절단은 9일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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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들도 춤출거예요… 고귀한 분이 막 도착했으니까요”

    “마디바(존경받는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만델라에 대한 애칭)는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당신 덕분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천사들도 춤을 추고 있을 거예요. 고귀한 분이 막 도착했으니까요.” “타타, 당신은 신께서 인류에게 내려준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국 곳곳의 교회에서는 ‘인종 화합의 성자(聖者)’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을 기리는 예배가 열렸다. 이날을 ‘국가 기도의 날’로 선포한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고인의 부인인 위니 만델라 여사와 함께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브라이언스톤 감리교회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했다. 주마 대통령은 이날 교회 연설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한 만델라의 발자국을 따라 ‘무지개 나라’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이날은 이슬람 사원과 유대교 회당에서도 기도회가 열려 종교를 초월해 만델라를 애도했다. 또한 요하네스버그 교외에 있는 만델라의 자택 앞에도 참배객들이 몰려들어 수천 송이의 꽃이 산처럼 쌓였다. 언덕 아래부터 손에 꽃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노란색 국화를 들고 온 백인 여성, 보라색 수국을 손에 든 흑인 남성, 들꽃을 꺾어 온 소녀들까지…. 그들은 커다란 만델라의 사진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썼다. 5일 세상을 떠난 ‘타타(아버지) 마디바’에게 쓴 글이었다. 특히 추모 장소마다 추모객 수백 명이 “넬슨 만델라”를 외치며 엉덩이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격렬하게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에게 슬픈 날에 왜 춤을 추느냐고 물었다. 헤이잘 마지무코 씨(45·여)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행복할 때도 춤추고 노래하고, 슬픔을 감당할 수 없을 때도 노래를 한다”며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시절에는 감정도 맘껏 표현을 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자유롭기 때문에 춤을 춘다”고 말했다. 이날 자택 앞에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손을 잡고 온 참배객들이 많았다. 이곳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용서와 화해를 가르쳐준 만델라를 기리는 거대한 교육의 장이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30년간 남아공에서 살아온 백인 세르히오 씨(56)는 “우리는 20년 전만 해도 내전 당시 유고나 르완다에서처럼 서로가 서로를 죽이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만델라를 함께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언론은 만델라 사후에 실업이나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불안과 폭동, 주식과 통화가치 폭락으로 남아공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만델라 크래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지 분위기는 만델라의 죽음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단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프리토리아 대통령 집무실 앞 추모장소에서 만난 버턴 조지프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대변인은 “남아공이 현재 빈부격차, 실업,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과거에도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왔듯이 곧 이겨낼 것”이라며 “우리 모두 만델라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면 전 세계에 다시 화합과 번영의 빛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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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묵념… Nelson Mandela 1918~2013

    넬슨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이 막을 내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 오후 8시 50분경(한국 시간 6일 오전 3시 50분경)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내고 “존경하는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가 떠났다. 만델라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으니 작별인사도 함께 보내자”고 애도했다. 롤리랄라는 그의 원래 이름이며 ‘장난꾸러기’라는 뜻이다.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다 투옥돼 27년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해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했다.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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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기와 용서… 350년 인종분규 끝낸 세계인권운동 큰별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습니다. 용감한 사람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입니다.”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나약한 인간이 용서와 화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직접 보여준 아름다운 지도자였다.○ 아파르트헤이트로 갈라진 남아공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트란스케이 움타타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해 친구와 함께 요하네스버그로 피신한 그는 친절한 한 백인의 도움으로 포트헤어대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1940년 학내에서의 정치활동을 이유로 퇴학당한다. 1942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본격적으로 흑인 인권 활동에 나선다. 1943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한 그는 1944년 ANC 청년리그를 만들었다. 특히 1952년 백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법률상담소를 열고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반대 운동에 나서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 법률상담소는 흑인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권이 1948년 법으로 제정한 인종 분리 차별 정책을 뜻한다. 84%의 유색인종에 대한 16% 백인의 우월주의 정책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이주자의 후손들이 쓰던 네덜란드어가 변화해 남아공의 공용어가 된 아프리칸스어(語)에서 ‘분리, 격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사람을 백인 흑인 유색인 인도인으로 나눠 인종별 거주지 분리, 통혼 금지, 출입구역 분리 등을 하며 유례없는 백인지상주의 국가를 지향한 정책이었다. 심지어 성행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 골격은 영국이 케이프타운 식민지 등에 도입한 통행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려는 흑인에겐 통행증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무장투쟁을 이끄는 전사로 변신 만델라는 1960년 3월 통행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흑인 69명이 무차별 사살된 샤프빌 학살 사건을 계기로 평화적 시위운동을 중단하고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1961년 지하 무장조직인 ‘움콘토 웨 시즈웨’(민족의 창)를 결성해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하고 게릴라 활동에 나섰다. 흑인 해방을 위해 무기를 든 지 17개월 만인 1962년 8월 체포된 그는 1964년 6월 리보니아 재판소에서 국가 전복기도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4시간에 걸친 리보니아에서의 법정 진술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사회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이루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수감 기간 대부분을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있는 로번 섬에서 보낸 그의 명성은 점점 커졌다. 심지어 그의 죄수번호인 ‘46664’(1964년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라는 의미)까지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는 옥중에서 자와할랄 네루상(1979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르 국제상(1983년)을 받는 등 석방될 때까지 27년 넘게 복역하면서 세계 인권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남아공의 대표적인 아파르트헤이트는 ‘반투 홈랜드(Bantu Homeland)법’이었다. 백인 정권은 줄루, 코사족 등 약 10개에 이르는 흑인 부족에 명목상의 자치정권을 수립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체 영토의 약 13%에 불과한 데다 대부분 황무지였던 홈랜드에서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법으로 1960∼1994년 약 350만 명이 생활 터전을 잃고 극빈층이 됐다. 만델라의 석방 이후에야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의 전기가 마련된다.○ 화해와 평등의 ‘무지개 국가’ 건설을 슬로건으로 72세에 출감한 그는 정계에 복귀한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실용노선의 창을 들었다. 그는 수감 시절인 1985년 ANC와 별도로 정부와 흑백 갈등 종식을 위한 협상을 추진하기도 했다. 1990년 2월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정권이 탄생하면서 결정적 전기가 마련됐다.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만델라를 석방했다. 백인을 향한 무장 투쟁을 외치던 만델라는 수감생활을 마치면서 한 연설에서 “무기를 바다에 버려라”라고 촉구했다. 협상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만들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에 관련된 법들은 협상을 통해 평화로운 방식으로 폐지됐다. 만델라는 1993년 데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어 ANC 의장이었던 만델라가 1994년 5월 자유 총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다인종 의회에서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뽑히면서 350년 넘게 계속돼 온 아파르트헤이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만델라의 위대한 면모는 대통령에 선출된 다음에 드러났다. 만델라는 피로 점철된 과거에 대한 복수와 응징이 아닌 화해와 용서를 통한 국민 통합을 택했다.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만들어 과거 국민당 백인 정부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을 규명하되 그 가해자들을 용서했다. 만델라가 정권을 잡고 TRC를 출범시켰을 때만 해도 대부분 흑인은 과거에 대한 단죄를 요구했다. 극도로 긴장한 백인들은 흑인에 맞서기 위해 무장했다. 국제사회는 남아공에서 인종 간 유혈 참극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했으나 이는 기우였다. 만델라의 남아공은 다인종이 공존하는 ‘무지개 국가’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종신 대통령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단호히 뿌리치고 1999년 6월 퇴임했다. 건강 악화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 폐회식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올 6월 오랜 수감 생활의 후유증으로 인한 폐 감염증이 재발해 3개월간 입원했다. ‘마디바’(만델라의 애칭)는 그렇게 투병을 한 뒤 세계인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비운의 가족사 만델라의 가족사는 바람 잘 날 없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었고 두 아들과 큰딸 등 세 자녀를 먼저 떠나보냈다. 만델라의 장남 마디바는 만델라가 로번 섬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1969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트란스케이에서 차 사고로 숨졌다. 차남 마카토도 2005년 에이즈로 사망했다. 큰딸은 생후 9개월 만에 숨졌다. 남아있는 자녀들은 재산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장녀 마카지웨는 첫 부인 에벌린, 둘째 딸 제나니와 셋째 딸 진지스와는 인권 운동 동료이자 두 번째 부인인 위니의 소생이다. 마카지웨와 제나니는 올해 4월 만델라가 수감 시절 그린 그림 및 핸드프린팅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을 관리하는 신탁기금 두 곳의 경영권을 주장하며 맞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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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택앞에 모인 黑-白 청년들, 부둥켜안고 “굿바이 마디바”

    “아요 마타타(안녕 아버지).” “함바칼레 마디바(잘 가요 마디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5일 밤(현지 시간). 남아공의 경제중심도시 요하네스버그 북부에 위치한 만델라의 자택은 세계 각국의 취재진과 애도 인파로 가득 찼다. 남아공 국민은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국부(國父)급 지도자가 더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에 큰 슬픔에 잠겼다. 이들은 “친아버지를 잃은 것 같다” “만델라의 부재로 남아공의 사회 갈등이 격화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걱정과 슬픔을 내비쳤다. 사람들은 자택 주위에 만델라의 생전 사진, 남아공 국기, 꽃 등을 놓고 촛불을 켜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몇몇 흑인 청년과 백인 청년이 “만델라 만세” “마디바(존경받는 어른·만델라의 애칭)여 영원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부둥켜안는 모습도 목격됐다.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해온 만델라의 유지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일부 추모객은 남아공 특유의 추도 풍습에 따라 가무를 곁들여 그의 안식을 기원하기도 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응원도구로 쓰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부부젤라를 부는 사람도 있었다. 만델라가 27년간 복역했던 로번 섬이 보이는 남아공의 최대 도시 케이프타운, 그가 출소 후 잠시 거주했던 소웨토의 옛 집에도 추모 인파가 몰렸다.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만델라 본인은 생전 간소한 장례식을 원했지만 추모 열기가 뜨거워지고 세계 각국 지도자의 조문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내린 결정이다. 평생을 인권운동에 헌신한 그의 이력을 감안할 때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필적할 정도로 많은 국가의 정상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15일까지 10일 동안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공표하고 장례 일정도 공개했다. 10일 2010년 월드컵이 열렸던 요하네스버그 경기장에서 만델라의 영결식이 열린다. 이후 시신은 행정수도이자 1994년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취임 선서를 한 프리토리아로 옮겨진다. 추모객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유리관 안에 안치된다. 장례식은 15일 고향 쿠누에서 거행된다. CNN 등 주요 외신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그 가족은 물론이고 아버지 조지 부시와 아들 조지 W 부시 등 생존한 전직 미 대통령 대부분이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를 조문단장으로 보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영국 왕세자,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그룹 U2의 리드 싱어 보노 등 유명인사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만델라에 대한 존경을 피력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만델라를 추모하는 의미로 백악관은 물론이고 해외주재 미국 공관, 미군 주둔기지 등 공공건물에 조기를 달라고 지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내년 1월 열릴 국가대항전에서 만델라를 기리는 묵념을 진행한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 201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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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하원, 성매수 처벌법 통과

    프랑스 하원이 4일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처럼 성매수 남성을 처벌하는 ‘반(反)매춘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원은 이 법안을 찬성 268, 반대 138, 기권 79표로 가결한 뒤 상원으로 넘겼다. 새 법안에 따르면 성을 매수하다가 처음 걸리면 1500유로(약 216만 원), 두 번째 이상 적발 때부터는 3750유로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이 법안은 성 매수자를 가해자,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보고 성매매 여성이 재활을 선택할 경우 취업 알선과 주택 및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에 대해 나자트 발로벨카셈 여성부 장관은 “성매매 근절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환영했다. 반면 프랑스 ‘국경 없는 의사회’는 “음성적인 매춘이 더욱 늘어나 성매매 여성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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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존 무인기 vs 구글 로봇, 온라인 공룡들 ‘택배 전쟁’

    ‘무인기 vs 로봇’.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인 아마존이 ‘소형 무인기 택배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구글도 무인자동차와 로봇 기술을 결합한 자동화 택배 시스템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는 4일 구글이 최근 로봇기술 업체 7곳을 인수하고 관련 기술진을 대폭 확충하는 등 자체 로봇 생산에 시동을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앤디 루빈 수석 부사장이 로봇 생산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고 구글 대변인이 밝혔다. 루빈 부사장은 올해 초까지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계(OS)인 안드로이드 사업을 총괄해 왔다. 구글이 아마존이 선보이기로 한 ‘무인기 택배 서비스’의 대항마로 이 기술을 준비 중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현재 연구 단계인 무인운전 자동차와 로봇기술을 결합해 구글만의 ‘자동화 택배’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NYT는 구글이 최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일대에서 ‘당일 배송’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음을 지적하며 이같이 내다봤다. 이에 앞서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저스 최고경영자(CEO)는 2일 CBS방송 ‘60분’에 출연해 “무인기를 띄워 주문 30분 내에 구매자 집 앞까지 배송을 완료하는 무인기 ‘옥토 콥터’를 2015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아마존의 드론 배달 시스템은 2020년에도 미 연방항공청(FAA)의 승인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반면 구글의 로봇 무인주행 자동차 배달 시스템은 이미 몇몇 주에서 합법화되거나 입법이 진행 중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평가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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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치스코 교황 “젊을때 술집문지기로 일해”

    프란치스코 교황(76·사진)이 젊은 시절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술집 문지기(기도)’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3일 미국의 가톨릭뉴스서비스(CNS)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1일 로마 외곽 노동자 밀집지역인 산치릴로 알레산드리노의 한 성당을 방문해 4시간 동안 교구민들과 만나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교황은 젊은 시절에 술집 문지기뿐 아니라 마룻바닥을 쓰는 청소부로 일하기도 했으며 10대에는 화학연구소에서 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교사 시절에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이 경험은 사제가 된 후 많은 사람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술집에서 일했던 사실은 이전에도 소문으로 알려졌지만 교황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보도했다. 교황은 이날 신도들과의 대화에서 “위선은 중대한 죄악”이라며 “전도가 아니라 끌림(attraction)을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폭스뉴스는 “초대 교황 베드로가 천국의 문지기가 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술집 문지기로 일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런 일화가 평소 소탈한 그의 행보와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황’으로서 명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밤에 교황청을 빠져나가 노숙자들을 만나 돌본다는 소문이 사실일 수 있다고 4일 허핑턴포스트가 보도했다. 허핑턴포스트는 “근위대가 교황이 밤에 일반 사제의 옷을 입고 나가 노숙인들을 만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에도 밤에 몰래 나가 노숙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기도 했다고 허핑턴포스트는 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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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성매수자=가해자’ 스웨덴 모델 따르나

    성(性)에 대해 자유롭고 관대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성 매수자 처벌 여부를 4일 결정한다. 4일 하원 전체회의 표결로 결정될 이 법안의 골자는 성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다. 집권 사회당의 모드 올리비에 의원이 제출한 이 법안에 따르면 성 매수로 걸린 초범자는 1500유로(약 216만 원), 재범자는 최대 3750유로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법안은 또 성매매 여성이 직업을 바꿀 경우 취업을 알선하고 주택과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프랑스의 매춘 여성 규모는 2만∼4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중 90%는 해외에서 온 여성이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찮다. 프랑스 매춘 여성 노동조합인 STRASS는 “성매매 여성이 좀 더 음성적으로 활동하고, 건강과 안전 측면에서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화배우 카트린 드뇌브 씨, 자크 랑 전 문화장관 등 프랑스 유명인 70여 명은 “국가는 개인의 성생활에서 손을 떼라”며 반대 청원서에 서명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제를 다루는 청원서”라고 보도했다. 이 법안에 대한 의회 표결을 앞두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일 전 세계의 성매매 관련 법률 시스템을 조명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성매매와 관련한 법률은 금지, 규제, 허용 등 3가지 유형이 있다. 대표적인 금지국인 미국에서는 2011년 5만7000명의 매춘부와 성 매수자, 매춘업소 운영자가 체포됐다. 일리노이 주에서는 최고 2만5000달러(약 2652만 원)의 벌금형,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재범일 경우 징역 5년형에 처해진다. 북한에서 매춘부는 사형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중국에서는 매춘업소 운영자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태국은 성매매 금지 국가이지만,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업소는 거의 단속하지 않는다. 반면 독일에서는 2002년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 때 성매매를 ‘서비스업’으로 규정해 합법화했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성매매자도 세금을 내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는다. 스위스에서도 1942년부터 성매매가 합법화됐고, 1992년부터는 남성 매춘부도 합법화됐다. 올해 8월에는 취리히 외곽에 운전자들이 햄버거를 주문하듯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드라이브인 섹스’ 시설이 문을 열었다. 독일은 지금 동유럽 지역에서 온 성매매 여성 약 40만 명으로 인해 각종 범죄와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성매매 천국’이 됐다고 시사주간 슈피겔이 최근 보도했다. 세 번째 유형인 성매매 ‘규제’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발적인 성매매는 허용하지만 매춘업소 운영, 호객 행위, 미성년자 성매매 등을 규제한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이 스웨덴 모델이다. 스웨덴은 1999년부터 성 매수자를 처벌했다.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이며, 성 매수자들은 매춘업소나 범죄조직과 공모한 ‘가해자’로 판단한 것이다. 스웨덴에서 이 법안이 시행된 이후 2500명가량이던 성매매 종사자들이 절반으로 줄었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이어 프랑스도 스웨덴 모델을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법안 표결을 앞두고 프랑스의 정계는 분열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가운데 여야 정당 모두 개별 의원들에게 판단을 맡겨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인기가 최악인 올랑드 대통령이 격렬한 대중의 분노를 피하려 한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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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크라이나 35만명 “혁명” 구호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중단에 항의하는 우크라이나의 시위가 2004년 ‘오렌지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중심가인 독립광장에는 시위대 35만여 명이 푸른색 EU 깃발을 들고 ‘혁명’과 ‘대통령 하야’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시위대, 수도 키예프 시청 건물 점거 농성 1일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국민투표를 통해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결정한 날. 시위대는 이날 광장 인근 키예프 시청 건물을 점거하고 ‘혁명본부’라고 적힌 현수막과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걸었다. 대통령궁 인근에서는 불도저를 몰고 온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쐈다. 야권 일각에서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번 시위는 높은 실업률과 물가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 야누코비치 정부의 실정 때문에 벌어졌다. 서방에서는 2004년 친(親)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정권을 탄생시킨 ‘오렌지 혁명’이 이번 시위에서 재현될지 관심을 쏟고 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EU의 ‘동부 파트너십’ 확대 정책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8, 29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EU-동부 파트너십 정상회의의 결과는 초라했다. EU는 2009년부터 옛 소련권 6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등 포괄적 협력 협정을 추진해 왔으나 결국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4개국은 이를 거부했다. 소국(小國)인 조지아 및 몰도바와 협력 협정에 가조인한 것이 유일한 성과다. 러 위협에 EU ‘동부확대 전략’ 수정 불가피 이는 러시아가 옛 소련권 국가들이 EU와 통합할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EU와 협상 중이던 아르메니아는 올 9월 돌연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3국 관세동맹과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창설에 참여를 선언했다.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와 영토분쟁 중인 아제르바이잔에 1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협박한 것이 계기였다. 이번 회의에서 EU와 1년 뒤 정식 협정을 맺기로 가조인한 조지아와 몰도바도 좌불안석이다. 러시아는 몰도바산 포도주, 조지아산 광천수 수입을 금지하고 가스 공급을 차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러시아는 옛 소련 국가들에 매력적인 설득을 하지 못하고, 이빨만 드러내며 으르렁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러시아의 위협에 안이하게 대응해 왔던 EU 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EU가 옛 소련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인권 개선과 민주화 개혁을 요구한 것이 내정 간섭으로 비쳐졌다. EU는 우크라이나와 협정을 맺을 경우 무관세 이익이 연간 5억 유로에 이르고 국내총생산(GDP)이 6%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의 교역과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으로 인한 손실(약 120억 달러)을 메우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냉전 시대도 아닌데 옛 소련 국가를 놓고 승리자가 갖는 ‘트로피’로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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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멤버 포함 걸그룹 ‘더 글로스’ 루브르서 공연

    "전 세계를 휩쓴 '싸이 열풍'이 프랑스 소녀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나비효과'를 낳았다." (프랑스 민영방송 '까날 플뤼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반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로비에 있는 '카루젤 뒤 루브르'. 코트라(KOTRA)가 주최하는 '코리아 디자인-브랜드 엑스포' 전시장 내 특설무대에 300여 명의 프랑스 관객과 취재진들이 몰려 한국의 신인 걸그룹 '더 글로스(The GLOSS)'의 데뷔 무대에 뜨거운 박스와 환호성을 보냈다. 프랑스의 한류 팬들이 유독 뜨거운 응원을 보낸 이유는 최초로 프랑스 출신 멤버가 포함된 K팝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사인 TF1를 비롯해 카날+ 등 프랑스 방송사는 1년 전부터 한국에서 걸그룹 데뷔를 앞두고 맹훈련 중인 프랑스 여성을 한국 현지에서 취재해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었다. '더 글로스'는 한국과 미국, 프랑스 국적 멤버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 프랑스 출신인 올리비아 리트 양(23)은 2년 전 프랑스 TV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뒤 셀린 디옹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자키노 모리치로부터 가수 훈련을 받아왔다. 그는 한국에서 1년간 소속사(MGMC) 멤버들과 함께 오전 9시부터 12시간 이상을 노래와 안무, 한국어 수업을 받는 데 투자했다. 카날 플뤼스는 "K팝의 왕국에서 올리비에 양은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처럼 하루 종일 '불로(Boulot)-불로-불로'(일-일-일)의 일과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올리비아 양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년 전 친구로부터 우연히 K팝을 소개받았는 데 한국어 발음이 너무도 아름답고, 뮤직비디오의 컬러와 분위기가 밝고 매력적이었다"며 "K팝은 부를 때마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행복한 느낌을 준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데뷔하기 전부터 '판타스틱' 싱글 앨범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47만 뷰를 기록했다. 또 벌써 12개국에서 팬클럽이 만들어졌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가 유창한 멤버들은 주로 독일 벨기에 스페인 등 서유럽과 중남미를 중심으로 활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리비아 양은 "한국에서의 연습생 시절은 무척 힘들었지만,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멤버들이 서로 격려해주고 자극을 주는 도전정신을 보여준 점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raphy@donga.com}

    •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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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독, 부인과 염문설 블레어 前총리 회의참석 거부

    미디어계 거물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82)은 지난달 20일 이혼한 세 번째 부인 웬디 덩(44)이 남긴 메모를 발견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영국 데일리메일의 폭로에 따르면 이 메모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 메모는 덩이 머독의 집 두 곳에서 블레어 전 총리와 함께 주말을 보낸 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메일은 1일 블레어 전 총리가 당초 올해 7월 초 미국 아이다호 주 휴양지 선밸리에서 열린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덩과의 관계를 안 머독의 반대로 주최 측으로부터 회의 직전 ‘참석 불가’ 통보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고 추가 폭로했다. 앞서 데일리메일은 지난달 23일자 기사에서 머독과 중국 태생의 부인 덩의 결별 사유가 덩과 블레어 전 총리의 외도 때문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뉴욕 투자은행 앨런앤드컴퍼니가 매년 개최하는 미디어 관련 회의로, 블레어 전 총리 외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등 유명인사들이 초청됐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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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佛 공쿠르상 올해 수상작 ‘오르부아 라오’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 4개월간 지속된 제1차 세계대전.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탄, 비행기에서 뿌려대는 폭탄, 스멀스멀 퍼지는 독가스…. 900만 명이나 전사한 이 끔찍한 전쟁은 기존 전쟁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된 ‘오르부아 라오(Au revoir l`a-haut)’의 배경도 1차 대전이다. 작가인 피에르 르메트르(62·사진)는 유명 범죄 스릴러 작가. 그는 처음으로 장르소설에서 벗어나 순수문학 작품을 발표해 공쿠르상을 거머쥐었다. 6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반전과 서스펜스, 블랙유머로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시점은 종전이 며칠 남지 않은 1918년 11월 2일. 병사들은 더이상 싸울 의욕을 잃었다. 그러나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인 중위 프라델은 전쟁영웅이 될 마지막 기회를 찾고 있다. 그는 독일군을 일부러 자극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이 책의 첫 50페이지는 도살장으로 변한 참호전의 모습을 묘사한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세 사람. 은행원 출신 병사 알베르와 몽상가이자 화가인 에두아르, 그리고 프라델 중위다. 전쟁이 끝나고 작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쟁은 현재진행형보다 기억이 더 비극적인 법.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알베르와 에두아르는 파리로 돌아와 전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둘은 곧 깨닫는다. 전후 프랑스는 죽은 사람을 영웅화할 뿐 살아서 돌아온 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프랑스에서 1차 대전은 보불전쟁(1870∼1871)에서 독일에 당한 수모를 되돌려준 복수 전쟁이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전쟁영웅을 추모하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병사들의 시체 수만 구가 발굴됐고, 거대한 군인묘지가 조성됐다. 제대한 프라델 중위는 병사들의 시체를 발굴해 운반하고, 관과 묘지를 밀매하면서 막대한 돈을 번다. 그는 “전쟁은 진행 중이거나, 끝났거나 모두 돈이 된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여기에 주인공 알베르와 에두아르도 희대의 사기극에 뛰어든다. 작가인 르메트르는 수상 소감에서 “범죄소설, 대중소설의 문체가 인정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올해 110주년을 맞은 공쿠르상의 상금은 10유로(약 1만4400원)짜리 수표가 전부다. 그 대신 ‘올해의 공쿠르상 수상작’이란 빨간 띠지는 평균 40만∼90만 부 이상의 판매량과 함께 작가에게 커다란 명예를 안긴다. 이 책의 제목은 ‘저 높은 곳이여, 안녕’이란 뜻. 제목처럼 전후 프랑스 사회의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정치사회적 부패가 신랄하게 풍자된다. 내년은 1차 대전 발발 100년이 되는 해.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빠진 채 무한경쟁에 휩쓸려가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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