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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권 독립의 선봉'인 황운하 경찰대 교수부장(54·경찰대 1기·사진)이 5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으로 내정됐다. 경찰청은 이날 수사권 조정업무를 책임지는 수사국 수사구조개혁팀을 수사구조개혁단으로 확대 개편하고 조직 책임자도 총경(팀장)에서 경무관(단장)으로 격상시켜 수사구조개혁팀장을 지낸 황 경무관을 내정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경찰조직 내부의 수사권 독립 요구를 적극 반영해 내린 조치로 보인다. 2일 경찰 내부게시판 '내가 경찰청장이라면'에는 "경찰관들의 가장 큰 숙원은 수사권 독립이다. 황운하 경무관이 이끄는 수사구조개혁단을 구성해 형사사법체계와 경찰조직 위상을 바로 세우길 기대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 청장은 내부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을 적극 청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황운하 카드가 여론 달래기용인지, 진짜 경찰 수사권 독립 추진인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권 독립은 경찰의 오랜 숙원이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2년 퇴임 직후 인터뷰에서 "2011년 초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키려 했지만 (검사가 대부분인) 민정라인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강경파인 황 경무관의 '귀환'에 따라 경찰 안팎에서는 검경이 대립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 경무관은 동아일보와 전화통화에서 "검찰이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최순실 게이트'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검찰은 개혁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경찰청 기자간담회에서 친박 인사인 서병수 부산시장의 동생 서범수 경찰대학장 승진을 두고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보은 인사가 아니다. 탈락한 치안감이 승진하면 야당에서 (항의하는) 성명서 준비했다는 말이 있다"며 "여기는 친박 비판, 거기는 그런(야당 반대) 문제가 있으니 누구를 시키느냐"고 반문했다. 이를 두고 경찰청장이 조직인사를 두고 지나치게 외부 눈치를 본다는 지적도 나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나쁜 사람’으로 지목해 좌천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에 대한 ‘윗선’의 감찰 지시를 2013년 당시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47·구속 기소)이 조응천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비서관 등 지휘체계를 거치지 않고 조 의원에게 곧바로 감찰 지시를 전달한 것은 ‘비선’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비선 통한 비정상적 감찰 지시 이날 정치권과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2013년 7월경 조 의원에게 노 전 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 등 2명을 지목해 감찰하라고 얘기했고, 조 의원은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을 동원해 감찰에 착수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했겠지만 ‘문고리 3인방’의 위상을 감안하면 조 의원이 그의 얘기를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로 정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의 메신저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을 고려하면 최 씨의 감찰 요구가 박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을 거쳐 조 의원에게 하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최 씨는 그해 4월 자신의 딸 정유라 씨(20)가 경북 상주에서 열린 승마대회에서 2등에 그치자 승마협회에 불만을 품었고, 청와대는 그 직후 문체부에 승마협회 감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노 국장 등은 승마협회 내부의 최 씨 측근파와 반대파의 비위 사실을 고루 보고해 “최 씨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이야기가 돌더니 결국 좌천됐다. 조 의원은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감찰 지시를 전달받은 사실이 있는지 묻자 “공직에 있던 때의 일은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응천, 문체부 간부 2명 전격경질 당시 靑감찰 주도’ 제하의 22일자 본보 단독 보도에 대해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사로부터 문체부 국장과 과장 2명의 인적 사항을 특정해 이들에 대한 복무동향을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감찰 보고서에 ‘친노 성향’ 딱지 조 의원이 작성한 감찰 보고서 내용도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본보 취재 결과 감찰 보고서에는 해당 문체부 공무원을 ‘친노(친노무현) 성향’이라고 정치적 낙인을 찍은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직복무관리관실 직원들이 두 사람의 사무실을 수색해 압수한 수첩 등에 정치 사안과 관련된 메모, 낙서를 근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보고서에는 “해당 공무원이 이권 개입을 많이 한다는 얘기가 있다”는 식의 세평(世評) 위주의 내용이 많은데, 두 사람의 비위 사실을 뒷받침하는 물증은 그들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공연 티켓 등이라고 한다. 조 의원은 감찰 보고서 종합 의견으로 ‘인사 조치함이 상당하다’고 적시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일부 직원이 두 사람의 좌천이 자기 성과라며 자랑하는 듯한 얘기를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서에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담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공무원 감찰 보고서엔 정치 성향을 적기도 하지만 ‘친노 성향’이라고 한 것은 다분히 ‘찍어내기’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도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지만 구속을 면치 못했듯이 상사의 불법 지시를 이행했다 해도 면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한상준 기자}

정부가 경찰청 치안정감, 치안감 승진 및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는 28일 경찰대학장에 서범수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53), 인천지방경찰청장에 박경민 전남지방경찰청장(53),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에 김양제 중앙경찰학교장(57)을 각각 승진 내정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가 거세지고 국회 탄핵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성급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 고위직 인사는 보통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이뤄지지만 지난해는 12월 22일에 발표됐다. 특히 친박(친박근혜) 서병수 부산시장의 동생인 서 경기북부청장을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인 치안정감으로 승진시킨 것도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재경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사의를 표명한 상태라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을 차질 없이 마쳤기에 인사를 발표했다”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경찰 본연의 업무를 위해서도 연말 정기 인사를 미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선 이철성 경찰청장의 재량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공무원법상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은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정자치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한다. 하지만 법적 절차일 뿐 사실상 대통령이 결정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조직의 신뢰가 두터운 이 청장에게 믿고 맡겼다”며 “청장의 인사추천안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고 밝혔다. 치안정감 6명 중 이 청장 취임 후 임명된 김귀찬 경찰청 차장과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 허영범 부산지방경찰청장은 유임됐다. 하지만 강신명 전 청장 시절 임명된 백승호 경찰대학장 등은 명예퇴직하게 됐다. 이번 인사로 치안정감 경찰 입직 경로는 경찰대 3명, 고시 특채 2명, 간부후보 1명에서 경대 출신이 1명 줄고 간부후보가 1명 늘어 각각 2명으로 바뀌었다. 치안감 인사에선 경찰 요직인 경찰청 수사국장에 원경환 경무관 등 6명을 승진 내정했다. 원 신임 수사국장은 간부후보생 37기로 이 청장과 동기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아들을 운전병으로 선발했던 이상철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은 대전지방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치안감 자리로 승격된 교통국장에는 남택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1부장이 승진 내정됐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그냥 신나게 탬버린 치고 노래 번호만 검색해 주면 돼. 한 시간에 3만 원은 줘.” 2013년 가을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한 살 위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놀면서 돈까지 많이 벌 수 있다니….’ 열여섯 경민(가명)은 호기심이 일었다. 그 언니를 따라 노래방에 갔다. “언니들 보면서 잘 따라 해.” 노래방에서 만난 ‘삼촌’이라는 사람이 친절히 말했다. 경민이는 처음 보는 20대 중반의 언니와 함께 어느 방에 들어갔다. ‘손님들이 만지려고 하면 안 돼요∼라고 해야지. 그리고 술만 따라야지.’ 순진한 착각이었다. 같이 들어간 언니는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보는 앞에서 자연스럽게 윗옷을 벗었다. 경민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왔다. 언니는 “뭐 해, 애기야”라며 손짓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경민을 아래위로 훑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눈을 질끈 감고, 언니를 따라 옷을 벗었다. 방을 나와서야 알았다. 그곳이 ‘끝까지 가는 방’이었다는 사실을. 삼촌이 ‘설마 처음 일하는 애가 얼마나 버티겠느냐’는 생각에 시험 삼아 수위 높은 방을 골랐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았다. 그날 바로 ‘더는 못 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 말이 어려웠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가정폭력과 외로움 때문에… 열아홉 경민은 대전의 여성인권상담소 느티나무에서 활동하며 성매매 여성들의 탈업(脫業)을 돕는 현장 활동가를 꿈꾼다. 평일 낮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성매매를 하는 미성년자 아이들에게 멘토링을 하는 등 ‘반(反)성매매’ 활동에 열심이다. 기자는 얼마 전 느티나무 사무실에서 경민을 만났다. 건강한 피부와 큰 목소리, 부드러운 표정을 지닌 소녀였다. 느티나무의 소장은 경민이 걱정되는지 “인터뷰 동안 같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경민은 “가세요. 나중에 기사로 보세요”라며 웃었다.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언론에 밝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 한때 자신처럼 성매매 굴레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구해 내고 싶어서다. 어린 경민의 기억 속에 부모는 자주 다퉜다. 아버지는 3, 4개월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올 때마다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했다.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가 이혼했다. 경민은 아버지의 손에 넘겨졌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경민에게 화풀이를 했다. 조금만 집에 늦게 들어와도 “학교 끝났으면 바로 집에 와야지”라며 이유 없이 때렸다. 결국 1년을 참다가 가출했다. 한 달간 친구 집을 전전하다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매몰차게 경민을 내쫓았다. 학교도 그만두고 대전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다시 어머니 집으로 떠돌았다. 하지만 어머니 집엔 ‘새아빠’가 있었다. 새 가족을 꾸린 어머니는 경민이 없이도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낯선 동네에 마음 둘 곳이라곤 세 살 많은 남자친구밖에 없었다. 그는 어느 날 “내가 좋아한다면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느냐”라며 “내가 사고 싶은 게 있는데…”라고 말했다. 남자친구가 온라인 채팅사이트로 조건만남을 주선했다. 경민은 성매매를 하고 받은 돈을 10원도 남기지 않고 몽땅 남자친구에게 건넸다. 그게 성매매의 시작이었다. 경민은 “지금 생각해 보니 완전히 나를 이용해 먹은 것”이라고 했다. 그때 경민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공장에서 야간 일을 하던 어머니는 자기 한 몸 챙기기도 힘들었다. 일주일에 6차례 오후 8시에 삼촌이 모는 차를 타고 보도방(유흥업소에 여성 도우미를 공급하는 무허가 업체)으로 출근해 노래방과 주점을 옮겨 다녔다. 새벽 5시 일이 끝나면 삼촌 차를 타고 퇴근했다. 집에서 화장을 지우고 교복으로 갈아입으면 밖에서 기다리던 삼촌이 다시 학교에 데려다줬다. 학교에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경민은 “왜 너만 못 하느냐”란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경민은 ‘진상’ 손님을 만나도 “싫어요”라고 꺼리는 대신 “손님이 너무 진상인데 시간 조금만 빼 주세요”라고 주인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보도를 찾는 노래방과 주점에선 경민을 유독 예뻐했다. 책임감도 강했다. “오늘 손님 많을 텐데 내가 없으면 언니들이 힘들겠지”, “이 방을 박차고 나가면 언니들이 돈을 못 벌겠지”, “내가 가장 어리니까 더 참아야지” 하면서 버텼다. 그런 경민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었다. 손님들이 몰래 사진을 찍을 때가 그랬다. ‘찰칵’ 소리가 나면 화가 나야 하는데 경민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부터 숨겼다. 저항을 해도 도리어 “넌 술집 여자잖아. 내가 돈 줬잖아”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초저녁에 가게 문을 열자마자 경민을 찾는 손님도 있었다. 그는 경민의 몸에 손도 대지 않고, 술도 먹이지 않았다. 다만 노래방 화면 앞에 서서 춤추길 강요했다. 한 곡당 만 원, 옷가지를 하나 벗으면 5만 원짜리 지폐를 유리컵에 꽂았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소용없는 후회였다. 아버지 또래 성매매 남성들은 경민의 나이를 꼭 물었다. 거짓말로 “스물세 살”이라고 둘러대면 하나같이 경민의 몸을 만져 대며 “우리 딸이 열일곱인데”, “우리 아들이 스무 살인데”라며 자기 자식 이야기를 꺼냈다. 속으로 “어쩌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네네” 하고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쉬고 싶다” 한마디에 돌아온 폭언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2차를 나가서 성관계를 맺으면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했다. ‘제발 빨리 끝나라’고 기도했다. 너무 힘든 날은 모텔 현관문을 계속 바라봤다. 경찰이 저 문을 따고 들어와 이 생활을 끝내 주길 바랐다. 단 한 번도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일한 곳은 경찰 단속을 미리 알았어요. 삼촌의 누나가 여경이라고 했는데 꼭 단속할 날을 알려줬어요.”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졌다. 사무실 언니들과 콘돔 4000개짜리 한 박스를 사면 6개월도 가지 않았다. 질염은 감기처럼 사소한 질병이었다. 아래에서 까만 분비물이 나오거나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는 돼야 겨우 “아프다”는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오래 일한 언니들은 호르몬이 망가져 4, 5개월에 한 번씩 생리를 했다. 경민이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하면 삼촌은 “넌 왜 이렇게 자주 하느냐”라고 타박했다. 물티슈로 피를 막고 2차를 나갔다. 찬물로 아래를 씻어 내면 일시적으로 피가 멈췄다. 지난해 8, 9월에는 몸이 덜덜 떨려 패딩을 꺼내 입어야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이힐을 신다 보니 자주 넘어졌다. 발목은 늘 파랗게 멍들어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 유흥업소가 붐볐다. 하룻밤에 네다섯 곳을 돌았다. 10월에 시작한 생리가 끝나질 않았다. “꼭 유산한 것 같았어요.” 하혈이 계속되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삼촌한테 전화를 걸어 “몸이 너무 안 좋은데 일주일만 쉬었다 나오면 안 될까요” 간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이래서 어린 ×은 안 된다”였다. 일을 시키고 따르는 관계였지만 그래도 어느 땐 ‘가족’ 같다고 생각했던 삼촌이었다. 여름이면 짧게나마 언니들과 휴가도 같이 갔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다. ‘이래서 남은 남이구나. 더 있으면 안 되겠다.’ 경민은 휴대전화를 끄고 그날로 일을 그만뒀다. 연락을 안 받자 삼촌은 경민의 집까지 찾아왔다. 밖에서 문을 계속 두드렸다. 결국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집을 옮겼다. 그래도 가슴 철렁한 일은 자꾸 일어났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뒤에서 “보라야” 하고 불렀다. 술집에서 쓰던 가명이었다. 뒤돌아보면 안 되는데 순간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예전에 봤던 성매매 남성이었다. 경민은 모르는 사람처럼 앞으로 내달렸다.800만 원보다 소중한 80만 원 경민은 8월부터 집 대신 그룹홈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티움에서 만난 현장 활동가가 소개해 준 곳이다. 그곳에서 경민은 성매매를 했던 ‘경험 활동가’들도 만났다. 그들은 “괜찮아, 더 잘할 수 있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 돼”라고 용기를 줬다. 멋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며 돈의 소중함도 배웠다. 성매매 업소에선 한 달에 최고 800만 원씩 벌었다. 현금으로 돈을 받으니 씀씀이도 커졌다. 지금 경민은 80만 원을 받는 월급 날짜를 기다리며 ‘작은 것’ 하나 사는 즐거움을 맛본다. 가끔 생활비가 부족할 때 “딱 하루만 나가서 돈을 벌까” 하는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 생각에 꾹 참는다. 그는 “고등학생 딸이 밖에서 이런 일(성매매)을 한다는 사실을 엄마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라며 “엄마가 보내 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라’는 문자메시지도 잊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응원해 주는 수많은 선배 활동가들과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힘들게 일하는 그분들이 얼마나 회의감이 들겠어요.” 경민은 이제 몇 년씩 성매매의 늪에 빠져 탈출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과거의 저처럼 이 일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 사람들이에요. 똑같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마음속 진실된 이야기로 울림과 감동을 주고 싶어요.”박훈상 tigermask@donga.com·홍정수 기자 }

“태완아, 정말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1999년 5월 20일 여섯 살 김태완 군은 대구의 한 골목길에서 괴한으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했다. 두 눈이 실명되고 코와 입이 녹아내렸다. 태완이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49일을 버티다 7월 8일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16년 뒤 태완이의 ‘선물’이 도착했다. 지난해 7월 31일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됐다.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세상은 이를 태완이법이라고 불렀다. 태완이 어머니 박정숙 씨(52)는 “태완이가 해냈다”며 울먹였다. 하지만 태완이 사건은 법 시행 1년 전인 2014년 7월 7일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그래도 태완이법 덕분에 미제 살인사건 피해 유족의 응어리가 하나둘 풀리고 있다. 법 시행 후 경찰청은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을 정식으로 설치했다. 그러고 미제 살인사건 273건의 재수사에 착수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경기 용인시 대학교수 부인 살인사건(2001년) 등 3건이 극적으로 해결됐다. 오늘도 전국 미제수사팀 형사 72명은 5세 어린이부터 82세 노인까지 270명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범인의 ‘시그널’을 쫓고 있다. ● “49일을 버텨준 아들… 그놈 사과라도 받아야할 텐데”“태완이의 해맑은 꿈을 훔쳐간 그는 이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은 웃음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 세상엔 진실로 죄에 대한 하늘의 징벌은 없는 건가. 죄에 대한 벌은 어떤 형식으로든 받는다고 믿어 왔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대구 황산테러 피해자인 고 김태완 군(당시 6세)의 어머니 박정숙 씨(52)가 49일간 병상에서 고통을 겪던 태완이를 기억하며 쓴 병상일지 ‘49일간의 아름다운 시간’의 일부분이다. 박 씨는 1999년 5월 20일 사건 발생 후 범인을 잡아 아들에게 사과하게 하겠다는 사명만 갖고 살았다. “나쁜 사람 잡아서 엉덩이 맴매해줄게”라고 약속까지 했다. 2014년 7월 7일 공소시효 만료 3일 전 박 씨는 유력한 용의자인 동네 주민 A 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이 이를 불기소 처분하자 대구고법에 불기소 처분이 적절했는지 재정신청을 했다. 하지만 2015년 2월 대구고법은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같은 해 6월 대법원은 재정신청 기각 결정에 대한 박 씨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그렇게 공소시효는 만료됐다. ‘재항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짧은 문장이 적힌 대법원 결정문을 받아든 날, 박 씨는 “하늘이 우르르 무너진 날”로 기억한다. 그는 집 거실에 홀로 주저앉았다. 어둠이 깔려 사방이 캄캄해질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마지막 희망의 한 줄기마저 막혀 버렸다. 같은 해 7월 24일 형법상 살인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개정 형사소송법 일명 ‘태완이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태완이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태완이가 유족의 응어리를 풀어주길” 태완이법 시행 후 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이 정식 발족하고 전남 나주시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경기 용인시 대학교수 부인 살인사건이 해결되자 다시 태완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박 씨는 숨어 지냈다. 최근 대구 팔공산 근처에서 만난 박 씨는 “태완이가 누군가를 위해 큰일을 했다 싶으면서도 왜 우리 태완이만 안 됐나 생각하면 원통하고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라며 “태완이법도 가슴속에 넣어두고 외면하고 잊고 살았다”고 털어놨다. 법 통과 후 박 씨는 “고맙다” “수고했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적용 대상에 태완이가 빠진 사실에 “속상하겠다” “억울하겠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고맙다”고 답했지만 가슴속은 타들어 갔다. 미제 살인사건이 속속 해결되면서 박 씨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태완이가 의연하게 49일을 버텨준 덕분에 가능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살아남은 유족의 고통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죽은 가족이 세상에서 잊힐까 두려워 자살로 사건을 알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유족의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9일은 박 씨에게도 따뜻한 시간이었다. 태완이는 부모의 가슴속 한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듯 자신을 마음껏 사랑하도록 배려했다. 하루는 박 씨가 태완이를 업고 싶어서 “업어줄까”라고 말했다. 태완이는 불편한 몸으로 어머니의 등에 업혔다. 하지만 곧 “엄마 힘들다. 안 되겠다”고 했다. 다시 침대에 누운 아들은 “엄마가 왜 업어주는지 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 다 안다”며 도리어 박 씨의 미안함을 어루만졌다. 태완이에게 고통을 안긴 범인에게 공소시효는 만료됐다. 하지만 박 씨에게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부모에게는 공소시효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며 “새롭게 출범한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이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끝까지 추적해 범인의 사과라도 받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의 안정성, 형벌불소급원칙 등을 이유로 공소시효 만료 사건 소급 적용에 반대하는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왜 법이 범인을 용서하느냐. 우리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무참히 희생된 어린아이를, 국민을 지키는 것이 법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직접 찍은 무지개 사진이 저장돼 있다. 만화 ‘지구용사 선가드’ 주제곡 가사 중 ‘무지개다리 저편…’이라는 글도 올렸다. 노래는 “무지개다리 놓고 가고 싶어도 지금은 갈 수 없는 저 먼 우주를…”로 시작한다. 훗날 무지개다리를 건너 태완이를 다시 만나는 날,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마음으로 태완이를 안아주기 위해서라도 박 씨는 꼭 진범을 찾을 생각이다.“고맙다 태완아, 정말 고맙다” “김태완 군과 그 유족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15년 만에 아내를 살해한 진범이 잡히자 심모 씨(70)는 태완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태완이법이 없었다면 2001년 6월 28일 발생한 살인사건은 올 6월 공소시효가 만료될 뻔했다. 태완이법 통과 후 재수사에 착수한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올 9월 강도살인 혐의로 김모 씨(52)를 검거했다. 15년 전 그날 집에서 잠을 자던 심 씨는 아내 A 씨(당시 51세)가 “피, 피” 하고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깼다. 김 씨와 공범 B 씨(67·사망)가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 씨는 동네 사람들을 깨워야겠다는 생각에 고함을 질렀다. 김 씨와 공범은 심 씨에게 발길질하고 8차례나 칼로 찔렀다. 아내는 숨지고 심 씨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당시엔 경황이 없어 남자 2명이란 사실밖에는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했다. 심 씨는 아내를 잃은 집을 떠나 인근 작은 빌라를 얻어 혼자 살았다.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늘 불안 속에서 살았다. 사소한 일에도 의심을 품었다. 그는 “피해 유족은 주변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산다”며 “사건 당시 상황이 불쑥 생각나 잠을 못 이룬 적도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심 씨는 “혼자 살아남아 많이 미안했는데, 이제야 아내에게 조금 덜 미안하게 됐다”며 “아내도 이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안도 조금 해소됐다. 그는 “늘 긴장하며 살았는데 의심이 없어지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태완이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심 씨는 “범죄 피해를 당하기 전부터 공소시효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태완이부터 소급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통 속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살인사건을 영구미제로 남기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범인이 잡혀야 유족의 고통이 끝난다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피해 유족은 마냥 기다릴 수가 없다. 유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범인과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살고 있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2004년 당시 스물다섯 살 큰딸을 잃은 최남숙 씨(58·여)는 “가슴에 대못이 박힌 채, 그것도 수십 개가 박혀 살고 있다”며 고통을 토로했다. 그날 이후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망가져 버렸다. 최 씨는 “범인이 누군지만 알면 지금 당장 죽어도 한이 없다”며 “전 재산과 우리 부부의 시신까지 몽땅 기증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언제가 됐든 범인이 잡혀야만 미제 살인사건 가족은 온전한 삶을 되찾을 수 있다. 김홍열 서울동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은 “유족은 피해자의 원한을 풀어주지 못한 죄책감을 가장 힘들어한다”며 “미제 사건으로 남으면 유족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동혁 기자}
육혜련 충남대 평생교육원 교수는 올 7, 8월 대전시 10대 가출 청소녀(靑少女) 1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실시한 뒤 ‘대전지역 위기 청소녀의 가출과 성매매 경험 실태 연구’ 자료를 펴냈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10대 가출 청소녀 102명 중 38%가 성매매 경험이 있었다. 첫 성매매 나이는 13∼15세가 48.6%로 가장 많았다. 종류도 룸살롱과 보도방, 조건만남, 안마방, 오피스텔 성매매 등 성인 여성과 다르지 않았다. 밤마다 공중화장실, PC방, 문이 열린 여관방 등을 전전하는 가출 청소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돈이었다. 가출 청소녀 A 씨(19)는 “밥 사줄 테니까 만나자”란 친구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투자하는 셈치고 100만 원 빌려줄게. 갚아”라고 했다. 결국 약속한 날까지 돈을 갚지 못하자 친구는 조건만남을 강요했다. 100만 원은 친절을 가장한 미끼였다. 또 대부분이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된다”, “공짜 술만 마시면 된다”란 거짓말에 속아 성매매에 발을 들였다. 성매매 업소에선 성구매자와 업주, ‘삼촌’으로부터 협박과 폭력, 성폭력에 시달렸다. 매일 밤 술 마시고 토하기를 반복하고 살이 찐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수 없었다. B 씨(19)는 폭탄주를 만들기 위해 머리부터 발까지 맥주를 뿌렸다. 머리카락에서 맥주가 뚝뚝 떨어질 때면 “엄마 생각이 나고 울컥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되나’ 후회했다”고 말했다. C 씨(19)는 피부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발랐지만 술 때문에 효과가 없어 흉터가 남았다. 지울 수 없는 성매매의 흔적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올 8월 전남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는 전남 여수입니다. 망자와 접신할 수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세요.” 전화를 받은 남설민 형사(35)는 동료 2명과 함께 여수로 달려갔다. 통화 속 ‘망자’는 2010년 목포에서 살해당한 조모 씨(당시 30세). 당시 간호학과 여대생이었다. 2013년 2월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으로 발령이 난 남 형사는 조 씨 살해범을 붙잡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찾을 각오로 일하고 있었다. 여수시 돌산읍에서 40대 무속인을 만났다. 그는 초와 향을 피운 뒤 종을 흔들고 징을 두드렸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으라고 했다. “범인이 누구인 것 같나” “살해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말은 허무했다. 무속인은 “이미 죽은 것 같다” 등 횡설수설을 이어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참 ‘밀당’을 벌였지만 형사들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시그널’ 잡기 위해 어디든 간다 2010년 10월 15일 밤 조 씨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평소에는 버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이날은 울적한 일이 있어 걸어서 집에 가고 있었다. 도보로는 30분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그는 집에 가면서 “곧 도착한다”고 가족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이날 밤 조 씨는 가족 품으로 가지 못했다. 조 씨의 언니와 남동생이 길을 헤매고 다녔지만 끝내 조 씨를 찾지 못했다. 그 대신 다음 날 새벽 실종된 장소 인근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두 가지 흔적을 갖고 범인을 쫓았다. 조 씨의 비명이 들린 곳에 주차된 차량을 봤다는 목격담과 조 씨 몸에 남은 용의자의 유전자(DNA)였다. 목포 시내 폐쇄회로(CC)TV를 샅샅이 살피고 목격된 차량과 비슷한 4000여 대 차주의 알리바이를 일일이 확인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의심 가는 사람 2000여 명의 DNA를 채취해 용의자의 것과 대조했지만 일치하지 않았다. 남 형사는 지금도 매일같이 사건 현장 주변을 탐문하며 범인이 남긴 ‘시그널’을 쫓는다. 그는 “사건 현장을 직접 걸어 보며 그날의 일을 재구성하고 흔적을 찾는다”며 “최근에는 사건 발생 직후 인근 지역 공단에서 일을 갑자기 관둔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 목포를 술렁이게 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결정적인 단서가 될 제보도 끊긴 지 오래다. 조 씨의 언니는 “형사님이 정말 열심히 하는데 결과물이 없으니 형사님도 우리도 정말 답답하다”며 “그래도 우리에게는 믿을 사람이 형사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 형사는 “범인을 붙잡아 유족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다”며 “믿고 기다려 주는 유족에게 죄스러운 마음뿐”이라고 했다.10년 만에 범죄 피해자 얼굴 복원 미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부산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2006년 8월 22일 부산 영도구 해양대 주차장 맨홀에서 발견된 변사자 얼굴의 몽타주를 10년 만에 복원했다. 당시 변사자의 얼굴은 마트 비닐봉지로, 몸통은 옥매트 가방으로 감싸인 상태였다. 살인사건이 분명했지만 시신의 부패가 심해 변사자의 신원조차 알 수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임시 매장됐던 피해자의 유골을 바탕으로 전문가에게 얼굴 복원을 요청했다. 서울성모병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문가들이 3차원(3D) 이미지 스캐닝 기법 등을 활용해 변사자의 얼굴을 복원했다. 변사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제보자 모집에 나섰더니 60여 건의 제보가 들어왔다. “군대 선임과 닮았다” “부산 어디에 산 거 같다” 등 사소한 제보도 일일이 찾아가 확인하고 있다. 범인을 붙잡아 달라고 애원하는 유족도 없지만 경찰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석완 팀장(56)은 “억울하게 죽은 변사자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가출, 실종 신고가 없는 것을 보면 가족과 유대가 없는 외로운 사람 같다”고 말했다.보이지도 않는 미세증거로 범인 추적 2008년 여름 경북 포항에서는 토막 난 시신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공포에 휩싸였다. 그해 7월 8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도로변 갈대숲에서 심하게 부패한 다리, 양팔 등 시신의 일부가 발견됐다. 같은 달 22일 이곳에서 1.2km 떨어진 도로변에서 머리와 몸통 부분이 추가로 발견됐다. 범인이 토막 낸 시신을 동해안 도로를 따라가면서 버린 것처럼 보였다. 6월 12일 실종된 뒤 소식이 끊긴 주부 현모 씨(당시 49세)의 시신이었다.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범인은 주부를 목 졸라 살해하고 쇠톱을 이용해 시신을 절단했다. 하지만 시신이 발견된 시점과 사망 시점의 차이가 커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범인의 DNA도 비에 씻겨 사라졌다. 그 대신 현장에 남은 포대와 비닐봉지 같은 유류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증거물에 기대를 걸었다. 경북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 강병구 팀장(47)은 “과학기술 발달로 현재 있는 증거물에서 새로운 기법으로 범인을 특정할 증거를 찾을 수 있다”며 “범인이 무심코 범행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 이를 입증할 증거물 분석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13년 전 뺑소니 사고의 진실이 치밀하게 계획된 청부살인 사건임을 밝혀냈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공범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지인에게 “청부살인 범죄를 한 사실이 괴로웠다”고 털어놓은 게 실마리가 됐다. 경찰은 재수사에 착수해 사망한 김모 씨(당시 54세)의 아내 박모 씨(65)와 박 씨의 여동생, 여동생의 애인 등이 사망 보험금을 노린 사실을 밝혀냈다. 강 팀장은 “13년이 흘러 살해 현장도 많이 바뀌었지만 폐기되지 않은 사망보험금 거래내용을 찾아내 피의자들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며 “범죄자들에게 ‘언젠가 반드시 잡힌다’는 경고 메시지를 주는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김동혁 hack@donga.com·박훈상 기자}
박근혜 정부의 정책 브레인 역할을 담당한 ‘박근혜 공부모임’의 초기 운영 관리를 최순실 씨(60·구속 기소)가 주도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4일 박근혜 공부모임에 참가했던 정치권 인사와 학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03년경부터 서울 강남구 사무실 등지에서 공부모임을 진행했다. 모임 장소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강남구 신사동 한국문화재단 사무실로 추정된다. 이 사무실에는 최 씨와 그의 전남편 정윤회 씨의 별도 공간이 있었다. 공부모임 참가자들은 두 사람을 각각 최 실장, 정 실장으로 불렀다.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47·구속 기소)과 고 이춘상 보좌관은 공동 공간에 책상을 두고 업무를 봤다. 한 공부모임 참가자는 “최 씨가 거마비 명목으로 봉투에 현금을 넣어 일일이 챙겨주고 ‘수고했다’고 인사하는 등 공부모임 살림을 맡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봉투에는 10만 원 안팎의 거마비가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해 계속된 공부모임에 최 씨는 상당한 금액을 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199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협소한 인재풀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모임을 만들려고 애썼다. 초기에는 이재만 전 비서관을 통해 동료 의원 등이 추천한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박 대통령의 1998년 선거를 도왔던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공부모임은 더욱 활성화됐다. 최 교수와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7·구속 기소) 등 경제 전문가 5명이 주도해 ‘5인 공부모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난 최 씨 부부를 대신해 주로 이 전 비서관을 대동하고 참석했다. 이때부터는 안 전 수석이 공부모임 운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소도 서울 강남 일대 호텔로 바뀌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안 전 수석이 최 씨처럼 봉투에 현금을 넣어 일부 참가자에게 줬다. 액수도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안 전 수석이 최 씨에 이어 공부모임을 챙긴 정황을 고려하면 그가 검찰에서 ‘최 씨를 모른다’고 진술했다는 게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공부모임에 참가했던 정치인과 학자들은 문고리 3인방과 최 씨 부부의 위세에 대해서도 목격담을 증언했다. 한 참가자는 “그들이 박 대통령 옆에 딱 버티고 있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도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면 바로 공부모임에서 쫓겨났다. 결국 충성심 강한 안 전 수석만 남아 모임을 주도했다”고 전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동혁 기자}

2013년 최순실 씨(60)와 딸 정유라 씨(20)가 관련된 대한승마협회 감사를 한 뒤 갑자기 경질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의 좌천 구실을 당시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이 주도해 마련한 사실이 확인됐다. 21일 정치권과 문체부 전현직 관계자 등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3년 7월경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실과 국무총리 산하의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을 동원해 문체부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을 전격 감찰했다. 조 의원의 지시에 따라 공직복무관리관실 직원들은 두 사람의 사무실을 수색해 책상에서 공연티켓 등을 압수했다. 조 의원은 압수한 물품 및 두 사람에 대한 불리한 평가 등을 근거로 감찰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제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8월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나쁜 사람”이라고 이들 공무원을 지목했다. 청와대는 2014년 12월 두 사람의 경질 배경에 대해 “민정수석실로부터 체육계 적폐 해소가 지지부진한 원인이 담당 공무원들의 소극적이고 안일한 대처 때문이란 보고를 받았다”며 감찰 사실을 인정했다. 조 의원의 보고서가 두 공무원 좌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전직 문체부 관계자는 “이 잡듯이 강도 높게 감찰했지만 별다른 비위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소극적’, ‘안일한’ 등을 강조한 것 같다”고 전했다. 당시 감찰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사람은 허위 사실로 밝혀진 ‘정윤회 문건’ 작성과 유출을 주도했던 박관천 전 경정(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특별검사법 수사 대상엔 ‘관련 공무원을 불법적으로 인사 조치하였다는 의혹 사건’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조 의원을 포함해 두 공무원을 표적 감찰했던 지휘라인이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야당은 공무원들의 감찰과 좌천 인사에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 씨의 딸 정 씨가 2013년 4월 열린 승마대회에 출전해 2등에 그치면서 최 씨는 불만을 품었고 그 직후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문체부에 대한승마협회 감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 국장과 진 과장은 승마협회 내부의 최 씨 측근파와 반대파의 비위 사실을 고루 보고한 뒤 “최 씨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결국 경질됐다. 최근 조 의원은 “당정청 곳곳에 최 씨에게 아부하고 협조하던 ‘최순실 라인’이 버젓이 살아있다”고 하는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정권 초엔 최 씨의 사리사욕을 위한 찍어내기 인사에 관여해 놓고선, 지금은 남의 일인 양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 의원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문체부 공무원 감찰 보고서 작성 여부에 대해 “공직에 있던 때의 일은 말할 수 없다. 국가기밀 누설로 엮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전 경정 역시 “현직에서 수행한 업무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법률상에 위반되고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고만 답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동혁 기자}

올 들어 KT, 현대·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광고를 대거 수주한 광고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의 진짜 주인이 최순실 씨(60·구속)라는 정황이 확인됐다. 14일 정치권과 광고업계에 따르면 최 씨의 측근인 김성현 씨(43·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는 플레이그라운드의 이사를 맡아 60∼70%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는 최 씨가 김 이사의 이름을 빌려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나머지 지분도 대부분 최 씨의 또 다른 측근인 차은택 씨(47·구속)의 소유로, 플레이그라운드는 사실상 최 씨의 것이라는 얘기다. 차 씨는 검찰에서 플레이그라운드의 지분 구조 등을 밝히며 “최 씨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플레이그라운드는 차 씨가 광고업계 이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측근인 ‘광고 마스터’ 김홍탁 씨(55)를 대표로 내세워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 “최 씨가 플레이그라운드 회장” 플레이그라운드 관계자들도 “최 씨가 인사부터 일감 수주까지 운영을 도맡았다”라고 증언했다. 이 회사 직원 엄모 씨(28·여)는 최 씨의 서울 강남 카페 ‘테스타로싸’를 운영하는 ㈜존앤룩C&C에 이사로 이름을 올렸는데, 엄 씨의 지인은 동아일보에 “엄 씨가 ‘플레이그라운드 회장은 김 씨나 차 씨가 아니라 최순실 씨’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최 씨는 플레이그라운드를 통해 올해에만 수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해 10월 설립된 신생 업체지만 올 들어 9월까지 KT,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광고를 120억 원어치 이상 수주했다. 광고대행사는 통상 광고비의 10∼15%를 수수료로 챙기기 때문에 플레이그라운드는 최소 12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또 박근혜 대통령 해외 순방 당시 문화행사 공연을 수주하기도 했다. 검찰은 차 씨가 회사 설립 아이디어를 내고 김 씨와 광고 전문가 이동수 씨(55) 등 인맥을 동원한 뒤 최 씨가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영향력을 행사해 이권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 신용등급 바닥인데 광고 대량 수주 플레이그라운드가 광고 일감을 따낸 과정은 최 씨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기업 신용평가회사인 한국기업데이터는 플레이그라운드의 신용등급을 하위 등급인 ‘CCC’로 평가하며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광고업계에선 “신용등급이 낮은 영세 기업에 수십억 원어치의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상식 밖”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게다가 플레이그라운드는 현대·기아차에서 6건의 광고를 수주했는데 한 건을 빼고는 모두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광고업계 관계자 A 씨는 “현대·기아차 같은 대기업 광고에 응찰하려면 까다로운 자격을 갖춰야 하는데 신생 업체로서는 충족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측은 “전체 광고 예산 중 광고회사 몫은 10% 수준으로 적기 때문에 10억 원 미만 건은 수의계약이 더 효율적”이라고 해명했다. KT가 올 초 플레이그라운드를 새 광고대행업체로 선정할 때도 뒷말이 무성했다. 최종 후보에 플레이그라운드 등 5곳이 포함됐는데 이 중 2곳이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광고업계 관계자 B 씨는 “조직 구성도 제대로 안 된 플레이그라운드가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을 보고 나머지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박은서 기자}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구속)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KT 상무급 인사에까지 관여한 정황이 확인됐다. KT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구속)의 최측근 차은택 씨(구속) 측에 광고 일감을 몰아준 회사다. 복수의 정치권 및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안 전 수석이 지난해 12월 신모 씨(43·여)를 상무보에 앉히기 위해 KT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13일 동아일보에 증언했다. 앞서 안 전 수석은 차 씨의 지인인 광고 전문가 이동수 씨를 IMC(통합마케팅)본부장(전무)에 심기 위해 황창규 KT 회장에게 “VIP(대통령) 관심 사항”이라며 청탁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신 씨에 관한 청탁 역시 안 전 수석은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민간 기업의 상무급 인사까지 직접 챙긴 셈이다. 대기업에서 광고, 마케팅 업무를 맡았던 신 씨는 지난해 12월 KT IMC본부 상무보로 입사해 올해 3월 건강 등 ‘일신상의 이유’로 갑자기 퇴직할 때까지 광고 발주 업무를 맡았다. 그는 2014년 대통령뉴미디어정책비서관실 행정관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KT 관계자는 “복수의 헤드헌팅 업체로부터 10여 명의 후보를 추천받아 면접을 통해 뽑았다. 선발 과정에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광고업계는 올해 KT 광고 24건 중 차 씨의 ‘아프리카픽쳐스’가 6건, 차 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플레이그라운드’가 5건을 각각 제작한 데에는 이 씨와 신 씨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선 청와대의 KT 인사 개입 의혹이 ‘최순실 게이트’의 흐름을 잘 보여 준다고 입을 모은다. 차 씨가 문화·광고·체육계에서 최 씨와 함께 이권을 따내기 위해 정부 요직과 대기업 인사 청탁, 각종 정책 계획을 최 씨에게 전달하면 최 씨는 이를 박 대통령에게 전하고,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의 운영, 장차관 인사 등 일련의 국정 농단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은 검찰 수사 초기에 이미 나왔다. 최 씨의 측근인 고영태 씨(40)는 “최 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일 등을 챙기면서 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고 소통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안 전 수석과 최 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는데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에 박 대통령을 넣으면 의구심이 풀린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박은서 기자}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구속)이 ‘문화계 비선 실세’로 지목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20년 이상 알고 지낸 광고전문가 이동수 씨(55)를 KT IMC(통합마케팅)본부장(전무)에 앉히기 위해 황창규 KT 회장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안 전 수석은 당시 황 회장에게 “VIP(대통령) 관심 사항”이라며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본부장의 부인이 재직 중인 회사의 자회사는 KT의 광고 제작에도 참여했다. 8일 정치권과 통신업계 등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지난해 초 이뤄진 KT 인사를 적극적으로 챙기며 황 회장에게 전화를 해 이 씨를 본부장에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도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황 회장의 진술서를 받았으며 관련자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검찰은 안 전 수석과 차 전 단장에게 강요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본부장의 KT행에 청와대 인사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이는 최순실-차은택-안종범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밝히는 주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본부장은 1993년 설립된 CF프로덕션 ‘영상인’에서 차 전 단장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 본부장은 기획실장, 차 전 단장은 조감독을 맡았고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였다. 차 전 단장과 측근이 몸담은 회사가 올해 잇달아 KT 광고를 따내면서 차 전 단장이 이 본부장을 통해 광고 일감을 챙기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 본부장의 부인 이모 씨가 차 전 단장이 제작한 광고의 기획을 맡았던 기업의 모(母)회사 임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KT는 올 2월 광고대행사 입찰을 진행해 ‘오래와새’와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 등 두 곳을 새로운 광고대행사로 선정했다. 이 중 플레이그라운드는 차 전 단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홍탁 대표가 지난해 10월 설립한 곳이다. 신생 업체임에도 대형 경쟁사들을 제치고 현대자동차그룹, KT 등 대기업 광고를 연이어 따내 업계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래와새는 올 상반기 KT가 내보냈던 기업용 서비스 ‘비즈메카 이지’ 광고를 대행하면서 차 전 단장이 대표인 아프리카픽쳐스에 제작을 맡겼다. 이 광고를 기획한 헤일로에이트의 지분 60%는 모회사 ‘로커스’가 갖고 있다. 이 본부장의 부인은 로커스의 상무(본부장)로 재직하고 있다. KT의 올해 광고 24건 중 6건을 아프리카픽쳐스가 제작한 것을 두고 최근 논란이 일었을 때 이 본부장은 “차 전 단장과는 23년 전 한 해 동안 같이 작업했을 뿐 KT에는 다른 분이 추천해줘서 왔다”고 해명했다. 신은주 헤일로에이트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차 전 단장과 아는 사이고 이 본부장과도 2, 3년 전 술자리를 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만난 적이 없다”며 “광고 입찰 경쟁에는 공정하게 참여했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은 황 회장뿐 아니라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 설립과 자금 조달 과정에서도 ‘VIP 관심 사항’을 여러 차례 입에 올렸다.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은 “안 전 수석이 롯데, SK 자금 조달 문제를 논의하면서 ‘VIP 관심 사항’이라고 재단 관계자에게 자주 말했다”고 폭로했다.김성규 sunggyu@donga.com·박훈상·곽도영 기자}
최순실 씨(60·구속)가 지난해 말까지도 국정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무회의의 개최 여부와 내용 등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담긴 통화 기록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구속)이 최 씨와의 통화 내용을 여러 차례 녹음했고,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기록 복원 과정에서 최 씨가 국무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지시하는 내용의 녹음파일을 되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최 씨가 국무회의를 포함한 정책 현안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 등 자신의 요구를 휴대전화로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한 단서를 포착했다.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에는 그가 최 씨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르며 복종한 내용도 발견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부속비서관을 수족처럼 부리며 사실상 대통령 행세를 한 것이다. 최 씨의 국무회의 직접 개입이 수사를 통해 명확히 입증된다면 그동안 그가 대통령 연설문 등을 미리 받아보고 수정했다는 차원을 넘어 국정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정 전 비서관의 녹음파일 중엔 지난해 11월 열린 제51회 국무회의와 관련한 내용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왔다. 검찰은 또 최 씨가 본인 명의 또는 차명(대포폰)으로 사용한 휴대전화가 최대 10여 대에 이르는 정황도 포착했다. 이 중 5, 6대는 기기까지 확보했다. 검찰은 6일 새벽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을 직권남용과 강요미수 혐의로, 정 전 비서관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구속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부가 예산 20억 원을 신규 편성하며 만든 ‘스포츠 도시’ 사업 계획이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60) 씨의 개인회사 더블루케이가 수주하려 했던 연구용역 과제와 사실상 똑같은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최 씨 일가가 이권을 노리고 특정 도시 중심의 사업을 진행했고 정부 계획도 이에 발맞춰 추진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7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설명서에는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62개 시군구 중 2곳을 지정해 스포츠 도시로 육성한다는 계획과 함께 올해까지 책정되지 않았던 예산 20억 원을 추가했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더블루케이의 K스포츠재단 상대 용역과제는 ‘전국 5대 거점 지역별 각 종목 인재 양성 및 지역별 스포츠클럽 지원시설 개선 방안 연구’(3억700만 원)와 ‘시각장애인스포츠 수준 향상과 저변 확대를 위한 가이드러너 육성 방안 연구’(4억600만 원) 등 2건이다. 검찰은 연구 수행 능력도 없는 더블루케이가 K스포츠재단에 7억 원의 용역을 제안한 데 대해 최 씨에게 사기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문제는 이 중에서 ‘지역별 종목 양성과 스포츠클럽 지원’이라는 주제가 문체부 자료에 나온 “(지역별) 차별화된 스포츠 분야를 발굴하고 클럽 활성화”라는 스포츠 도시 추진 방향과 판박이인 점이다. 문체부는 스포츠 도시 한 곳당 3년간 최대 60억 원 지원을 목표로 내걸었다. 사업 추진 방안에 따르면 스포츠 도시 두 곳 모두 사업계획서와 정량 평가를 거쳐 공정하게 지정돼야 하지만 “강릉빙상장 사후 관리를 위해 강원 강릉시를 스포츠 도시로 내정했다”는 문체부 관계자의 증언도 있다. 이 때문에 김태년 의원은 “정부가 스포츠 도시라는 명분을 앞세웠을 뿐 최 씨 일가에게 이권을 몰아주기 위해 형식적인 예산 근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씨의 조카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37) 씨가 진행하는 사업과 강릉시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도 이런 의혹을 키우고 있다. 승마선수 출신인 장 씨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난해 6월 설립해 운영을 주도했다. 영재센터는 유망주 발굴이라는 목적 아래 강릉에 연고를 둔 빙상과 설상 종목 지도자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영재센터는 강릉에서 ‘빙상 캠프’도 열었다. 이런 가운데 ‘최순실 라인’이라는 의혹을 받는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지난해 12월 강릉을 연고로 한 스포츠토토 빙상단 창단을 유도했다. 문체부가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빙상단 창단 협조 공문을 보냈고 스포츠토토 운영 사업자 케이토토는 체육공단으로부터 39억 원의 운영자금을 받았다. 김 전 차관은 1월 창단식에서 “강릉이 빙상으로 특화된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면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원 체육정책실장은 “강릉을 세계적인 빙상 스포츠 도시로 육성하는 플랜을 수립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빙상단 감독도 장 씨와 친분이 있는 이규혁 영재센터 전무이사가 맡았다. 정부는 당초 평창 겨울올림픽이 끝나면 강릉빙상장 등을 철거하기로 했지만 올 4월 존치로 계획을 바꿨다.신동진 shine@donga.com·박훈상 기자}
“근혜 이모가 꼭 대통령이 돼야 해요.” TV 뉴스를 보던 20대 후반 여성과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대중 목욕탕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한창 당내 경선 경쟁을 벌일 때였다. 목욕탕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박 대통령의 동생 근령 씨는 자녀가 없어 이모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없었다. 9년이 흘러 3일 찾은 서울 서초구의 한 목욕탕.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20) 씨와 최 씨의 언니 순득 씨의 딸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37) 씨가 바라보며 ‘근혜 이모’를 외쳤던 TV에선 순실 씨가 고개를 푹 숙이고 검찰청사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목욕탕 직원은 “그땐 순득, 순실 자매가 최태민 씨의 딸인 줄 몰랐다”라며 “육영재단에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박 대통령과 친분만 있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최 씨의 일가친척과 지인, 이웃 주민 등을 만나 박 대통령과 최 씨 일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최 씨 일가가 사는 모습은 강남에 사는 교양 없고 기가 센 졸부의 모습이었다”며 “딱 하나 특별했던 것이 박 대통령과의 친분이었고, 그들은 그걸 훈장처럼 달고 살았다”라고 전했다. 시호 씨는 일부 지인들에게 박 대통령과의 집안 인연을 들려줬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인 육영수 여사를 잃고, 절친한 우리 할아버지를 불렀어. 할아버지에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딸을 잘 부탁한다’고 당부했어.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근혜 이모가 우리 엄마 집을 찾아왔어. 엄마랑 동갑이지만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의지했어.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돌봐 줬거든. 할아버지도 ‘우리 집에 딸이 하나 더 생겼다’며 무척 반겼어.” 시호 씨가 주변에 한 이야기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로, 순득 씨 자매가 과거를 미화해 들려준 것을 그대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순득 씨 이웃 주민들은 박 대통령이 순득 씨 집을 자주 방문하고, 밤에 찾아와 묵고 가곤 했다고 증언했다. 또 2006년 5월 괴한에게 문구용 커터로 습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 머문 사실도 목격했다. 박 대통령도 4일 대국민 담화에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 주었다”라고 인정했다. 2012년 12월 박 대통령 당선 후 ‘또 하나의 가족’이자 사실상 ‘진짜 가족’인 최 씨 일가는 환호했다. 시호 씨는 특히 순실 씨를 자랑스러워했다. 시호 씨 주변에서는 순실 씨의 이름은 몰랐지만 ‘박근혜 보좌관 이모’로 통했다. 순실 씨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일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제주에 자리를 잡으려던 시호 씨는 “서울로 올라와서 꿈을 펼쳐라”라는 순실 씨의 권유로 서울로 왔다고 시호 씨 측근은 전했다. 순실 씨는 “넌 꼭 나 같다”라며 시호 씨를 아꼈다고 한다. ‘대통령 이모’와 ‘비선 실세 이모’를 둔 시호 씨의 사업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측근은 “시호 씨가 늘 문화체육관광부와 통화 중이었다”고 말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삼성에서 5억 원을 지원받고, 누림기획이 문체부와 계약을 맺은 사실을 ‘뿌듯하다’고 자랑도 했다. 최 씨 일가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새드엔딩으로 끝나게 됐다. 최 씨의 한 친척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유라도 박 대통령의 딸이 아니냐는 루머에 친자 확인 검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라며 “주변에서 박 대통령과 관련해 이말 저말 하면서 떠드니까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신동진 기자}

#.1조카도 숨은 실세?최순실 조카 장시호문체부 K-스포츠타운 연루 의혹 #.2'비선 실세'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37) 씨가 문화체육관광부의 K-스포츠타운을 장악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3"장 씨가 운영하는 영재센터와 차명회사 더스포츠엠이 장기적으로 K-스포츠 타운 운영을 겨냥해 세워졌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시작으로 '평창 특수'를 챙기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4장시호 씨는 최 씨의 친언니 최순득 씨의 딸로스포츠 사업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해당 시설은 최 씨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사퇴한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직접 지시했다는 문체부 내부 증언도 나와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5"김 전 차관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 해서 만든 정책이다. 스포츠산업 투자활성화 방안에 급히 포함시켰다"-문체부 관계자 #.6김 전 차관이 기획한 문체부의 'K-스포츠 타운'은민간 투자를 받아 스포츠 교육·체험 목적의 K-스포츠 타운을 조성하고이를 위탁 운영할 스포츠 전문 마케팅 기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죠.#.7문제는 이 K-스포츠 타운과 장시호씨의 사업이 절묘하게 맞닿는다는 점입니다.장씨는 정부 발표를 예상한 듯 문체부의 발표 한 달 전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설립했고 얼마 후 더스포츠엠도 설립했습니다. #.8또한 장 씨의 영재센터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문체부의 문건과 똑같은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우수한 체육 영재를 조기에 선발·관리해 세계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영재 센터의 사업계획서 中 '글로벌 스포츠 유망주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육성·홍보'-문체부가 내부 문건으로 밝힌 K-스포츠타운 목적#.9영재센터는 뚜렷한 실적이 없는 신생 단체지만이미 문체부로부터 6억7000만 원의 예산을 따냈습니다. 더스포츠엠은 K스포츠재단의 국제 행사 용역을 유치했죠.#.10이 때문에 김태년 의원실은 최 씨와 김 전 차관, 장 씨로 이어지는'검은 커넥션'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장 씨가 김 전 차관을 '판다 아저씨'로 부르는 등 친하게 지냈다"는 스포츠업계 관계자들의 증언도 있죠. #.11장시호 씨의 차명회사 설립에 K스포츠재단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나옵니다.K스포츠재단 전 이사인 이철원 연세대 교수가 더 스포츠엠 설립에 관여했다는 것인데요 당사자인 이 교수는 회사 설립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부정했죠.#.12비선실세 의혹에 조카까지 포함되며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검찰은 그 검은 장막을 다 걷어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요?원본: 박훈상 기자·신동진 기자기획/제작: 김재형 기자·이고은 인턴}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37) 씨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스포츠 유망주 교육시설인 ‘K-스포츠 타운’을 장악하기 위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스포츠마케팅 회사 ‘더스포츠엠’을 세웠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2일 “장 씨가 운영하는 영재센터와 차명회사 더스포츠엠이 장기적으로 K-스포츠 타운 운영을 겨냥해 세워졌다”며 “평창 겨울올림픽을 시작으로 ‘평창 특수’를 챙기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장 씨는 최 씨의 친언니 최순득 씨의 딸로 스포츠 사업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해당 시설은 최 씨와 연루 의혹을 받고 사퇴한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직접 지시했다는 문체부 내부 증언도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 해서 만든 정책”이라며 “스포츠산업 투자활성화 방안에 급히 포함시켰다”고 의원실에 증언했다. 이날 동아일보가 김태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문체부의 ‘K-스포츠 타운 조성’ 문건에는 문체부가 민간 투자를 받아 스포츠 교육·체험 목적의 K-스포츠 타운을 조성하고 이를 위탁 운영할 스포츠 전문 마케팅 기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체부는 7월 7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스포츠산업 투자활성화 방안 중 하나로 K-스포츠 타운 조성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김 전 차관이 기획한 K-스포츠 타운과 장 씨의 사업이 절묘하게 맞닿는다는 점이다. 장 씨는 정부 발표를 예상한 듯 지난해 6월 주도적으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설립하고 업무를 총괄했다. 올해 3월에는 영재센터 직원 명의로 더스포츠엠을 설립했다. 영재센터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문체부 산하 기관 등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 ‘우수한 체육 영재를 조기에 선발·관리해 세계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사업 목적으로 명시했다. 문체부가 K-스포츠 타운을 계획하며 표방한 ‘글로벌 스포츠 유망주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육성·홍보’와 똑같다. 더스포츠엠은 종합 스포츠 스쿨 운영과 스포츠매니지먼트 기능을 강조했다. 영재센터는 뚜렷한 실적이 없는 신생 단체지만 이미 문체부로부터 6억7000만 원의 예산을 따냈고, 더스포츠엠은 최 씨를 지원하기 위해 급조됐다는 의혹이 있는 K스포츠재단의 국제 행사 용역을 유치했다. 이 때문에 김태년 의원실은 최 씨와 김 전 차관, 그리고 장 씨로 이어지는 ‘검은 커넥션’이 있다고 보고 있다. 스포츠업계 관계자들은 “장 씨가 김 전 차관을 ‘판다 아저씨’로 부르는 등 친하게 지냈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장 씨의 차명회사 설립에 K스포츠재단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스포츠계에선 “K스포츠재단 전 이사인 이철원 연세대 교수가 더스포츠엠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 이 교수가 더스포츠엠 이사로 이름을 올린 한모 씨(35)를 불러 ‘스포츠매니지먼트 업체를 크게 키우자’며 입사를 권유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연세대 출신은 영재센터에도 포진해 있다. 영재센터 회장인 전 스키 국가대표 허승욱 씨, 이사인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전이경 씨도 연세대 출신이다. 더스포츠엠은 소속 선수로 허 씨 이름을 올려두기도 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이 교수는 “회사 설립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신동진 기자}

K스포츠재단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37) 씨가 차명(借名)으로 설립한 회사에 용역사업을 몰아준 정황이 1일 확인됐다. 공익 목적으로 설립했다는 재단의 자금을 최 씨가 허위 용역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유용한 정황이 드러난 데 이어 최 씨 일가는 차명 회사를 앞세워 ‘합법적으로’ 따낸 것이다. 장 씨는 최 씨의 언니 순득 씨의 딸이다. K스포츠재단은 6월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2016 국제 가이드러너 콘퍼런스’를 열었다. 1월 재단 설립 후 처음 주최한 이 국제 학술행사에는 9000만 원이 들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특수체육학회가 후원했다. 문제는 콘퍼런스 진행 용역업체로 3월 설립된 신생 스포츠마케팅 업체인 ‘더스포츠엠’이 선정됐다는 점이다. 등기이사 1명, 자본금도 1000만 원에 지나지 않는 더스포츠엠은 이렇다 할 경력도 없어 국제 행사를 치르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더스포츠엠은 두 장짜리 간단한 견적서만 제출하고도 경쟁 업체를 제치고 사업을 따내 약 5000만 원을 받았다. 발주처인 K스포츠재단에서는 최 씨가 실소유한 더블루케이를 오가며 일한 박모 과장이 계약했다. 그는 최 씨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으로 분류된다. 1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실과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더스포츠엠은 장시호 씨가 K스포츠재단 사업을 따내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차명 회사다. 작은 회사였지만 자사 명의로 대표의 운전기사 모집 광고를 내기도 했다. 더스포츠엠의 초대 등기이사로 등재한 이모 씨(29)는 지난해 6월 장 씨가 설립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직원이었다. 그는 영재센터가 동계스포츠 영재 육성사업 명목으로 2억 원을 지원받기 위해 문체부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담당자 이모 과장’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영재센터는 별다른 실적이 없던 신생 단체로는 이례적으로 올해까지 6억7000만 원의 예산을 따내 특혜 논란이 일었다. 영재센터 사무총장으로 불리며 행정을 총괄한 장 씨는 직원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차명 회사 설립을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영재센터 직원이 더스포츠엠에 가서 일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재센터 건물 관계자는 “영재센터 직원이 센터 사무실은 창고처럼 쓰고 정작 업무는 더스포츠엠 건물에서 봤다”고 증언했다. 두 회사의 사무실은 불과 9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두 사무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스포츠엠은 인터넷에 남은 회사의 기록마저 깨끗이 정리했다. 더스포츠엠은 이 씨의 후임으로 장 씨와 연세대 동문이자 K스포츠재단 전 이사인 이철원 연세대 교수의 제자인 한모 씨(35)를 내세웠다. 하지만 한 씨는 “후배 소개로 면접을 보고 입사했다. 이사로 이름을 올렸지만 그냥 직원일 뿐이지 주인이 누군지도 모른다”며 자신은 실제 회사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바지 사장’이라고 주장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신동진 기자}
국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60) 씨가 공익 목적으로 대기업들이 자금을 출연해 설립한 K스포츠재단의 자금 일부를 개인 회사로 빼돌린 정황이 31일 확인됐다. K스포츠재단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최 씨 지시로 K스포츠재단이 더블루케이와 두세 건의 용역 계약을 맺었는데 전체 규모가 총 8억 원 정도”라며 “더블루케이가 돈만 받고 용역 결과를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허위 계약”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용역 계약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검찰도 자금 추적 과정 등을 통해 이런 정황을 포착하고 재단 자금을 빼돌린 혐의 등을 최 씨에게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 씨는 K스포츠재단 설립 하루 전인 1월 18일 최측근인 고영태 씨(40)를 이사로 내세워 더블루케이를 설립했다. 최 씨는 더블루케이를 통해 재단의 수백억 원대 자금을 사유화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재단 관계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대기업이 공익 목적으로 288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재단의 자금을 최 씨가 빼돌린 것으로 횡령에 해당한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더블루케이가 허위 용역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빼돌린 횡령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횡령 금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일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그동안 최 씨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K스포츠재단 설립의 순수성, 자발성을 강조하며 자금 유용 의혹에 대해 계속 반박했다. 최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절대 자금 지원을 받은 것이 없다. 감사해 보면 당장 나올 것을 가지고 (돈을) 유용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적극 부인하기도 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도 “기업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논의를 시작해 자발적으로 설립한 재단”이라며 “내 아이디어”라고 강조하다 31일 검찰에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지시를 받아 모금하게 됐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날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 간 용역 계약은 확인되지 않았다. 재단 설립을 주도한 정경련도 “양쪽의 용역 거래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더블루케이 대표를 지낸 최모 변호사, 조모 전 대표도 동아일보에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이들은 “더블루케이는 최 씨가 실제 소유주고 자신은 ‘바지 사장’이다”라고 밝힌 인물이다. 현재로선 더블루케이와 K스포츠재단을 수시로 오가며 일했던 K스포츠재단 박모 과장과 고 씨 등 최 씨의 측근이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자금을 유용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최 씨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으며 재단 사업을 챙겼다는 고영태 씨 지인의 증언도 나왔다.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 거래 내용을 보고했는지 여부도 수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은 그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방 기밀, 경제정책, 대외비 외교 문서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해외 도피 중인 최 씨는 26일(현지 시간) 독일에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태블릿PC를 갖고 있지도 않고, 쓸 줄도 모른다”며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이 같은 최 씨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태블릿PC 이름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0)의 개명 전 이름(유연)을 딴 ‘연이’인 데다, 태블릿PC에서 최 씨의 셀카 사진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검찰도 문제의 태블릿PC 소유주를 최 씨로 보고 있다. 태블릿PC를 입수해 분석 중인 검찰은 27일 “(최 씨가 실사용자라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 씨가 사용했던 태블릿PC를 제3자가 입수해 보관하고 있다가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 관계자도 “태블릿PC는 최근에 사용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태블릿PC를 다른 사람이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별수사본부에 합류한 특수1부 검사들이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정 아래 태블릿PC를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로는 최 씨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사이가 틀어져 그의 국정개입 의혹을 폭로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고영태 더블루케이 이사 등이 거론된다. 최 씨는 태블릿PC에 들어있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근거로 24일 청와대 문서 유출의혹을 제기한 JTBC의 보도 경위에 대해서도 “남의 PC를 보고 보도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게 유출됐는지, 누가 제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검찰에서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태블릿PC를 누군가가 언론에 제공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최 씨가 독일에서 집을 옮길 때 ‘버리라’며 태블릿PC를 독일 경비원에게 주고 간 것 같다. 이것을 JTBC 기자가 쓰레기통에서 주운 것 같다”고 말했다. 컴퓨터 보안업계는 이미 검찰이 디지털포렌식(디지털 데이터 등의 정보를 과학적으로 수집 및 분석하는 것)을 통해 태블릿PC의 실사용자가 누구였는지 밝혀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디지털포렌식 업체 대표는 “태블릿PC로 e메일에 접속했다면 인터넷주소(IP주소)를 알 수 있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켰다면 사용자의 위치정보 이력까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현재의 기술로도 단 하루면 실사용자가 누군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준일·신무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