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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 한창 집중해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선배 A가 말을 걸었다.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요즘은 다르다.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시간에는 흡연실이 폐쇄된다. 회의에도 시간 제한이 생겼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해보라’는 어색함과 대책 없는 ‘대책 회의’에서 해방됐다. 일부는 “좋은 시절 다 갔다”며 여유가 사라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 대리들은 바짝 일하고 빨리 가는 게 낫다. “야호!”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혁명’이 재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들은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늘어지는 회의를 없애고, 보고 단계를 줄여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군더더기 시간 다이어트’ 실험을 진행 중이다. 하루에 5시간 정도만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나머지 근무시간은 알아서 정하라는 ‘자율 근무제’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7월부터 최장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만큼 ‘일의 질’도 높여야 한다는 절박감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본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대·중소기업 336곳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봐도 상당수 기업이 워라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응답 기업의 44.6%가 ‘앞으로 워라밸 중심 조직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항목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6.7%에 불과했다. 응답 기업이 추진하는 워라밸 관련 제도로는 PC오프제 등 시간 단축(50.0%·이하 복수 응답), 회의 축소(48.2%), 회식 제한(43.4%), 보고체계 단축(37.3%) 등이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진행할 특별기획 ‘행복원정대 2020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 한 해 ‘워라밸을 찾아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1부에서는 무너진 워라밸 현장을 소개했다면, 2부는 일하는 방식을 바꿔 본 기업들의 워라밸 실험기다.》 ● 워라밸 실험소잃은건 ‘커피 한잔의 여유’… 얻은건 ‘아이의 환한 미소’3개월 만에 아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침마다 눈물로 엄마를 붙잡던 세 살배기가 웃으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퇴근 후 엄마를 봐도 ‘혼자 놀기’를 하던 아이가 어느새 ‘애교쟁이’가 됐다. 평소 입 밖에 내지 않던 ‘사랑해’란 말과 함께 스킨십이 잦아졌다. 포동포동 살도 올랐다. 워킹맘 차미경 이마트 품질관리팀 대리(32)는 “일하는 방식이 바뀐 후부터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놀란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도를 도입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 기본이다. 재계의 첫 파격 실험이다. 시행 후 두 달여가 지난 현재. 신세계의 ‘워라밸 실험’은 순항 중일까. 어떻게 퇴근 시간을 당겼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기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 대리의 일상을 쫓았다. 5일 오전 8시 30분. 차 대리가 사내 어린이집에 3세 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차 대리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아이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자 웃으며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린이집 앞에서 우는 아이를 한참 달래야 했어요.” 오전 10시. 사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는 집중근무 시간입니다. 오후 5시 정시 퇴근을 위해 집중근무 시간에는 회의, 흡연, 티타임 등 업무에 방해되는 행동을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일반 ‘착한’ 사내방송과 달리 단호하고 조금은 강압적인 말투였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 안팎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다른 부서에서 걸려오는 업무 협조 전화도 줄었다. 간간이 스탠딩 회의를 했지만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말없이 일하는 차 대리 곁을 떠나 6층 흡연실 앞으로 가봤다. “못 들어가요. 지금 잠겼어요”라며 청소 담당 아주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카페도 한산했다. 복도에서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차 대리도 점심시간인 오전 11시 30분까지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계속되는 정적 탓에 지켜보던 기자가 졸음이 올 정도였다. 오전 11시 40분. 메뉴를 정하고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 일반적인 회사 풍경과 달리 차 대리는 동료들과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식당은 북적였다. “점심 외출 시간을 줄여 일해야죠. 가끔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해요. 올해는 한 번도 밖에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없어요.” 차 대리의 말에 다른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에서 만난 한 대리급 직원이 말했다. “솔직히 진짜 집에 일찍 가게 될 줄 몰랐어요. 외부에 있는 맛집을 가도 상사와 함께라면 불편한데 그냥 빨리 먹고, 몰아서 일하고 집에 가는 게 좋아요.” 차 대리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업무가 시작했다. 오후 2시에 또 단호한 ‘집중근무 알림방송’이 나왔다. 오전 방송 때보다 차 대리의 손이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두 번째 집중근무 방송이 나왔다는 건 업무마감까지 3시간 남았다는 소리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웹 서핑을 할 시간이 없었다. 차 대리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키보드와 전화기도 오전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오후 5시. “시한폭탄이 떴다!” 차 대리가 말했다. 퇴근 시간 임박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모니터에 남은 시간 30분이 표시되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결승선을 앞둔 마라토너 같았다. 오후 5시 5분, 차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팀장이 아직 자리에 있었는데 그냥 나가도 되냐고 기자가 물었다. ‘퇴근할 때는 따로 인사를 안 해도 된다’고 팀장이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아침에 헤어진 모자(母子)가 다시 손을 잡은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아이는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와락 품에 안겼다. “엄마 오늘 어린이집에서 말이야….” 아이의 수다가 벌써 시작됐다. 손을 꼭 잡은 모자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소리 내어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회사의 워라밸 실험이 되찾아준 건 모자의 ‘환한 미소’였다.● How To하루 11시간 근무 김대리, 실제 일한건 5시간 32분뿐‘김 대리’가 회사에서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몇 시간일까. 오전 9시 회사로 출근해 오후 7시 58분에 퇴근한다.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 58분이지만 점심시간 등을 빼고 생산적으로 보낸 시간은 5시간 32분이었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략 컨설팅펌 맥킨지가 2016년 9개 기업 대리 4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보고서는 “야근을 할수록 생산시간은 줄어드는 야근의 역설이 만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무시간에 바짝 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이 기업과 임직원 모두 ‘윈윈’인 셈이다. 올 초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마트의 배광수 인사팀장은 “단축 근무 도입은 워라밸보다는 생산성 향상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몰입도를 높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처럼 근로시간 단축에 나선 기업들은 근태 정보 파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도 근무시간 입력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편했다. 기존에는 사원증을 게이트에 찍고 들어가거나 나온 시간만 기록됐다. 시스템 개편 후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와, 주당 근무시간이 자동으로 계산돼 분 단위까지 시스템에 나타난다. LG전자도 지난달 26일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개인이 자신의 스케줄을 관리하기 위해 출퇴근 및 비근로시간을 입력할 수 있도록 근태 정보 시스템을 개편했다.■ 경영잡학사전 : 컴퓨터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2009년 첫 시행… 퇴근시간 앞당기는데 한몫“오후 7시 30분이 되면 PC가 꺼집니다.” 2009년 IBK기업은행이 신기한 제도를 도입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업무용 PC가 꺼지는 ‘PC오프제’였다. 금융권 최초였다. 당시 은행권은 1997년 외환위기의 혹독한 구조조정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적은 사람이 많은 업무량을 감당해야 했다. 2008년 기업은행은 오후 8시 퇴근 캠페인을 벌였다. 지금으로 보면 오후 8시도 야근이지만 이때만 해도 ‘칼퇴근’에 해당됐다. 캠페인만으로 부족하자 이 은행은 오후 7시 30분에 PC가 종료되는 강제적인 조치에 나섰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평균퇴근시간이 2008년 오후 9시 12분에서 2016년 오후 6시 42분으로 150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해마다 PC 종료 시간은 앞당겨지고 있다. 기업은행은 2012년 오후 7시로 바꿨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14년부터 오후 6시에 PC가 꺼지고,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오후 5시 30분에 꺼진다. PC오프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은 그대로인데 PC가 꺼져서 카페에서 몰래 야근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이 없을 때도 상사 눈치만 보고 앉아 있던 문화는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김현수 kimhs@donga.com·이은택 기자·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김재희 기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사진)이 회장 취임 이후 첫 공식 외부 업무 일정으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참석한다. 손 회장은 취임사에서도 일자리 창출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힌 바 있다. 12일 경총과 재계에 따르면 손 회장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제5차 일자리위원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경총 회장은 일자리위원회의 민간 위촉위원직을 맡는다. 5일 신임 경총 회장에 취임한 손 회장은 그간 직원들과의 소통, 한국노총 등 노동계와의 교류 시작 등 기존 업무를 파악하는 기간을 가졌다. 박병원 전 경총 회장과 김영배 전 상근부회장이 동시에 퇴진한 터라 손 회장이 조직을 추스르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손 회장은 이번 위원회에서 경총의 존재감 회복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경총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협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일자리위원회 위원임에도 워크숍에 초청받지 못하기도 했다. 경총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손 회장은 현 정부와 경총의 관계를 재건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자리위원회는 현재 현안이 산적해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5월 대통령 직속으로 야심 차게 출범했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제4차 회의를 끝으로 올해 활동이 전무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업무를 총괄했던 이용섭 전 부위원장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부위원장에서 물러나 현재 공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계 관계자는 “손 회장이 민간 위촉위원으로서 후임 부위원장 인선, 위원회 활동 재개 등에 대해 논의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몰입-집중근무제 도입 이후3개월 만에 아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침마다 눈물로 엄마를 붙잡던 세 살배기가 웃으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퇴근 후 엄마를 봐도 ‘혼자 놀기’를 하던 아이가 어느 새 ‘애교 쟁이’가 됐다. 평소 입 밖에 내지 않던 ‘사랑해’란 말과 함께 스킨십이 잦아졌다. 포동포동 살도 올랐다. 워킹맘 차미경 이마트 품질관리팀 대리(32·여)는 “일하는 방식이 바뀐 후부터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놀란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대기업 최초로 주35시간 근무제도를 도입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 기본이다. 재계의 첫 파격 실험이다. 시행 후 두 달여가 지난 현재. 신세계의 ‘워라밸 실험’은 순항 중일까. 어떻게 퇴근시간을 줄였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기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 대리의 일상을 쫓았다. 5일 오전 8시 30분. 차 대리가 사내 어린이집에 3살 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차 대리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아이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자 웃으며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린이집 앞에서 우는 아이를 한참 달래야 했어요.” 오전 10시. 사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지금부터는 집중근무 시간입니다. 오후 5시 정시 퇴근을 위해 집중근무 시간에는 회의, 흡연, 티타임 등 업무에 방해되는 행동을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방송이 흘러나왔다. 일반 ‘착한’ 사내방송과 달리 단호하고 조금은 강압적인 말투였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 안팎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다른 부서에서 걸려오는 업무 협조 전화도 줄었다. 간간이 스탠딩 회의를 했지만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말없이 일하는 차 대리 곁을 떠나 6층 흡연실 앞으로 가봤다. “못 들어가요. 지금 잠겼어요”라며 청소 담당 아주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카페도 한산했다. 복도에서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차 대리도 점심시간인 11시 30분까지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계속되는 정적 탓에 지켜보던 기자가 졸음이 올 정도였다. 오전 11시 40분. 메뉴를 정하고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 일반적인 회사 풍경과 달리 차 대리는 동료들과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식당은 북적였다. “점심 외출 시간을 줄여 일해야죠. 가끔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해요. 올해는 한 번도 밖에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없어요.” 차 대리의 말에 다른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에서 만난 한 대리급 직원이 말했다. “솔직히 진짜 집에 일찍 가게 될 줄 몰랐어요. 외부에 맛 집을 가도 상사와 함께라면 불편한데 그냥 빨리 먹고, 몰아서 일하고 집에 가는 게 좋아요.” 차 대리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오후 12시 30분부터 오후 업무가 시작했다. 오후 2시가 또 단호한 ‘집중근무 알림방송’이 나왔다. 오전 방송 때보다 차 대리의 손이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두 번째 집중근무 방송이 나왔다는 건 업무마감까지 3시간 남았다는 소리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웹 서핑을 할 시간이 없었다. 차 대리 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키보드와 전화기도 오전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오후 5시. “시한폭탄이 떴다!” 차 대리가 말했다. 퇴근 시간 임박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모니터에 남은 시간 30분이 표시되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결승선을 앞둔 마라토너 같았다. 오후 5시 5분, 차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팀장이 아직 자리에 있었는데 그냥 나가도 되냐고 기자가 물었다. ‘퇴근할 때는 따로 인사를 안 해도 된다’고 팀장이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아침에 헤어진 모자(母子)가 다시 손을 잡은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아이는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와락 품에 안겼다. “엄마 오늘 어린이집에서 말이야….” 아이의 수다가 벌써 시작됐다. 손을 꼭 잡은 모자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소리 내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회사의 워라밸 실험이 되찾아 준 건 모자의 ‘환한 미소’였다.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워라밸로 가는 길, 짧고 굵게 일하자”▼한국 재계에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요구와 ‘일의 질’을 높여 혁신을 성취하자는 환경 변화가 배경이다. 전략경영 컨설팅 회사에는 ‘하우 투(how to)’를 묻는 기업이 늘고 있다. 강혜진 맥킨지 시니어 파트너는 “혁신 둔화의 원인을 조직문화에서 찾는 기업이 늘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의 새로운 직업관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본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대·중소기업 336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상당수 기업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관련 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응답 기업의 44.6%가 ’앞으로 워라밸 중심 조직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항목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6.7%에 불과했다. 동의한다는 답변은 대기업이 56.5%로 가장 높았고 중견기업(48.8%), 중소기업(38.4%) 순이었다. 응답 기업이 추진하는 워라밸 관련 제도로는 PC오프제 등 시간 단축(50.0%·이하 복수응답), 회의 축소(48.2%), 회식 제한(43.4%), 보고체계 단축(37.3%), 자율근무제 도입(36.7%) 등이 거론됐다. 대기업들은 회의 축소(58.1%)를 워라밸을 위한 최우선과제로 꼽았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진행할 특별기획 ’행복원정대 2020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 한 해 ’워라밸을 찾아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1부는 무너진 워라밸 현장을 소개했다. 2부는 ’기업편‘이다. 일과 삶의 균형 속에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워라밸 실험기‘를 다룬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퇴근시간만 당겼다고 워라밸 달성 아니에요”▼‘김 대리’가 회사에서 실제 일하는 시간은 몇 시간일까. 오전 9시 회사로 출근해 오후 7시58분에 퇴근한다.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 58분이지만 점심시간과 오후에 커피 한 잔 등을 빼고 생산적으로 보낸 시간은 5시간 32분이었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략 컨설팅펌 맥킨지가 2016년 9개 기업 대리 4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보고서는 “야근 할수록 생산시간은 줄어드는 야근의 역설이 만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무시간에 바짝 일하고 일찍 퇴근 하는 것이 기업과 임직원 모두 ‘윈윈’인 셈이다. 올 초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마트의 배광수 인사팀장은 “단축 근무 도입은 워라밸보다는 생산성 향상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몰입도를 높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처럼 근로시간 단축에 나선 기업들은 근태 정보 파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각 개인의 현재 직무 리스트를 만들고 불필요한 것부터 없애지 않으면 ‘몰래 야근’만 는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도 근무시간 입력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편했다. 기존에는 사원증을 게이트에 찍고 들어가거나 나온 시간만 기록됐다. 시스템 개편 후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와, 주당 근무 시간이 자동으로 계산돼 분 단위까지 시스템에 나타난다. LG전자도 지난달 26일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40시간 근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개인이 자신의 스케쥴을 관리하기 위해 출퇴근 및 비근로시간을 입력할 수 있도록 근태 정보 시스템을 개편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 근무 도입 전에는 ‘오늘은 야근 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설렁설렁 일하는 날도 있었다면, 시범운영이 시작된 후부터는 하루에 최대 8시간은 넘기지 말자는 목표를 세워 놓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포스코와 삼성SDI 컨소시엄이 한국기업 사상 처음으로 칠레에서 대규모 리튬 프로젝트를 따냈다. 리튬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로 전 세계 매장량 중 절반이 칠레에 묻혀있다. 중국 일본 미국 등 각국이 확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기업도 산지 공략에 합류해 핵심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 의미가 크다. 포스코와 삼성SDI 컨소시엄은 9일(현지 시간) 칠레 생산진흥청(CORFO)으로부터 칠레 리튬을 원료로 현지에서 배터리 양극재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통보받았다. 양극재는 배터리 양극(+)을 이루는 부분이다. CORFO는 지난해 5월부터 자국 리튬 산업 육성과 확대를 위해 글로벌 사업자 선정을 진행해왔다. 칠레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중국, 러시아, 벨기에, 한국 등 총 7개 국가에서 12개 기업이 뛰어들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심사 끝에 한국 포스코-삼성SDI 컨소시엄, 칠레 몰리메트, 중국 쓰촨푸린산업 등 3곳이 최종사업자로 선정됐다. 한국 기업이 칠레에서 리튬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처음이다. 포스코-삼성SDI 컨소시엄이 선정된 이유로는 세계 정상 수준인 포스코의 양극재 생산기술이 꼽혔다. 또 유일하게 양극재 생산기업과 배터리 완제품 생산기업이 짝을 이뤄 응찰한 점도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는 국내 전기차 배터리 기업 중 생산규모 2위다. 1, 3위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지질조사국(USGC)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세계 리튬 매장량의 53%를 칠레가 차지한다. 포스코와 삼성SDI는 앞으로 575억 원을 투자해 칠레 북부 메히요네스에 합작법인과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르면 올해 착공해 2021년 완공, 그해 하반기(7∼12월)부터 칠레 현지에서 캐낸 리튬으로 매년 3200t 규모의 양극재를 생산한다. 이 양극재는 삼성SDI가 우선 공급받고 이후 생산 확대 여부에 따라 다른 판로도 개척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은 미래자동차 핵심 시장인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배터리 산업을 경쟁적으로 키우고 있다. 원료 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포스코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 양극재 시장은 2016년 연 21만 t에서 2020년 86만 t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BYD)는 이미 중국내 최대 리튬 산지인 칭하이(靑海)에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일본 도요타도 아르헨티나에서 리튬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고, 미국 애플은 리튬 배터리의 또 다른 핵심 소재인 코발트를 확보하기 위해 광산업체들과 계약을 늘리고 있다. 모바일 기기,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미래에 유망한 모든 산업에 배터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철강업체 포스코가 뛰어든 이유도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다. 포스코는 지난달에도 호주 리튬광산 개발업체 지분을 인수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산업은 안정적이지만 기술개발로 이윤을 극대화하기는 힘든 분야여서 배터리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도 안정적으로 원료를 확보해 놓아야 향후 생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원천기술을 가진 포스코가 주로 양극재 생산총괄을, 삼성SDI가 리튬 배터리 완제품 생산과 완성차업체 공급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래 배터리 시장은 현재의 반도체처럼 누가 생산량을 빨리, 효율적으로 늘릴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리튬 ::원소주기율표 3번, 원소기호 Li. 밀도가 낮고 반응성이 강한 특성이 있는 금속으로 재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만드는 핵심 원료.:: 양극재 :: 배터리의 양극(+)을 이루는 부분.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과 함께 리튬이온배터리의 4대 구성 요소로 꼽힌다. 보통 리튬,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망간 등을 조합해 만든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해 한국 진출 18년 만에 영업이익 1000억 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미국 스테이크 프랜차이즈 아웃백은 올해 한국 진출 21주년이 됐다. 이처럼 해외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한국에서 저변을 넓혀 가고 있다.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이 스타벅스처럼 해외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8일 서울 서초구 KOTRA에서 이 같은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열린 ‘프랜차이즈 해외 진출 전략 수립을 위한 전문가 좌담회’에서는 정부와 프랜차이즈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해외 성공 전략을 논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 프랜차이즈는 세계 50여 개국에 총 320여 개 브랜드가 진출해 있지만 전략 수립이나 시장 분석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성공 사례가 공유됐다. 베트남 진출 2년 만에 지점 50여 곳을 연 어학원 청담러닝은 현지 학생 수가 3만5000명이 넘는다. 문성현 청담러닝 글로벌본부장은 “물론 영국, 미국 어학 기업들도 있지만 원어민이 아니라 저희 같은 제3자가 외국어를 배우는 접근 방법이 더 실용적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강점으로 내세웠다”고 노하우를 말했다. 꿀닭, 스테이크보스 등 브랜드를 보유한 외식기업 푸디세이도 해외 5개국에 3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장우철 푸디세이 경영지원본부장은 “현재 인도네시아에 집중해 매장 26개를 운영 중이고 베트남은 직접 진출하기 위해 현지 파트너사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고 말했다. 맥주와 치킨을 주 메뉴로 하는 외식브랜드 청담동말자싸롱도 중국 진출에 성공했다. 2009년 사업을 시작한 최성수 금탑에프앤비 대표는 “제주 매장을 본 중국 관광객들의 권유로 베이징, 광저우에 진출했고 상하이,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에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해외 진출 성공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고 조언했다. 언어부터 문화, 법률, 사업파트너 선택 등 단계마다 주의를 기울여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장 본부장은 “한국 영세기업들 중 상당수는 해당 국가의 법령을 잘 몰라 라이선스를 도용당하거나 현지 사업파트너가 변심해 간판을 바꿔 다는 낭패를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육 분야도 비슷하다. 문 본부장은 “현지 기업이 저희와 사업을 하다가 노하우를 쌓고는 자체 브랜드로 독립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데이터와 정보를 저희 서버에 넣어 두고 권한도 저희가 갖는 식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 투자가 있어야 장기적인 생존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 본부장은 “외국 기업이 넘볼 수 없는 기술이 있어야 수출과 현지 성공이 쉽다”고 말했다. 박훈 산업통상자원부 중견기업혁신과장은 “동선 최소화나 서비스 최적화, 매장 디자인 등에 대한 연구개발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재남 프랜차이즈산업연구원장은 “일본의 페퍼런치 같은 경우는 그 기업만이 가진 불판과 특허를 개발하고 해외 진출 경쟁력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서기웅 산업부 유통물류과장은 “평창 겨울올림픽이나 한류 등 해외 진출에 좋은 타이밍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이 함께 진출 전략을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면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묵 KOTRA 서비스수출지원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이고 최근 IT(정보기술)를 기존 사업에 접목한 새 비즈니스 모델도 나오고 있어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산업부와 KOTRA는 프랜차이즈 서비스 산업의 해외진출 지원을 논의하는 세미나도 열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지난달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컬링 신드롬’을 일으킨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을 뒷바라지해 온 것은 신세계였다. 2012년부터 총 100억 원을 쏟아부으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컬링이 은메달 신화를 일구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신세계는 대표팀 지원과 별도로 매년 전국컬링대회도 후원해 왔다. 7일 한국경제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국내 55개 기업(중복 지원 포함)이 겨울올림픽 관련 6개 협회와 연맹을 통해 15개 종목을 후원하고 지원해 왔다. 스포츠계에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기업들이 바짝 움츠려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종목들을 오랜 기간 묵묵히 지원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 점은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스키는 롯데 신동빈 회장이 2014년 대한스키연맹 회장을 맡은 뒤 전폭 지원해 왔다. 2020년까지 총 100억 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하고 전지훈련 확대, 코칭 스태프 충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대표팀을 돕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14년부터 봅슬레이 선수용 썰매를 제작해 지원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여자 2인승 팀은 현대차가 개발한 썰매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LG전자는 스켈레톤 국가대표팀의 메인 스폰서로 국내외 전지훈련과 장비를 지원했다. 윤성빈 금메달 신화의 숨은 주역인 셈이다. 포스코대우도 2011년부터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을 지원해 오고 있다. KB금융은 이번 올림픽에서 단일 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6개 종목을 후원했다.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컬링, 아이스하키, 봅슬레이, 스켈레톤이 그 대상으로 전지훈련이나 장비 구입을 주로 떠맡았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이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좋은 성적에 보탬이 됐을 것”이라며 일부 일방적인 반기업 분위기가 달라지길 기대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손경식 CJ 회장이 차기 한국경영자총협회장에 선임되면서 주요 경제단체들의 역할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안 보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정 등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달 정기 총회에서 연임을 앞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임기 중반을 지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등 주요 대기업 회장인 경제단체장의 스타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상의 회장을 지낸 데 이어 경총 회장을 맡은 손 회장은 디테일에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를 받을 때면 세부 사항을 꼼꼼히 챙겨 간부들이 진땀을 뺀다고 한다.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인사는 “나이에 비해 체력이 좋고 활동도 왕성하다”고 덧붙였다. 눈에 띄는 성격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 ‘할 말은 하는’ 성격이어서 조용한 카리스마로 불린다. 재계 관계자는 “의전과 격식을 다소 중시하고 명문대 등 엘리트 인재들을 아끼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새 회장을 맞는 경총 직원들은 대한상의에 전화를 걸어 손 회장의 업무 스타일이나 성격을 묻는 등 긴장하는 분위기다. 박 회장은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대한상의 여름포럼에서 반팔 티에 반바지 차림으로 기자들과 ‘호프미팅’을 갖는다. 또 페이스북에 요리, 여행, 출장, 영화감상 후기 등 근황을 자주 올린다. 업무스타일은 “아이디어가 많고 스마트하다”는 내부 평가가 많다. 꾸준히 최신 산업동향 보고서나 논문을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재계 맏형’으로 불린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부와 재계의 가교 역할을 한 덕분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봉사활동에도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허 회장은 2년 임기의 전경련 회장 직을 제33∼36대째 맡고 있다. 전경련 직원들은 “실무는 직원을 믿고 맡기고 굵직한 안건 위주로 챙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 시무식 때는 모든 직원들과 한 번씩 악수를 하고 덕담을 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지만 종종 지하철도 이용하고 한강변에서 산책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재계의 신사’로 불리는 허 회장은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성격으로, 전경련에는 한 달에 3, 4번 정도 출근해 보고를 받고 업무지시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의 당면 과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위기에 놓인 전경련을 살려내는 것이다. 전성기에 비해 현재 전경련은 인력, 자금이 반 토막 난 상태다. 박 회장은 점점 커지는 재계와 정치권의 기대에 부응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지가 관건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 단체장이 각기 다른 리더십을 지닌 만큼 조화와 협력을 통해 재계에 힘이 되어줬으면 한다”고 기대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창업이나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국내 기술금융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6일 현대경제연구원은 기술금융의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내고 국내 기술금융 규모가 3년 만에 500배 이상 급증했지만 내실이 부족하고 초기투자 규모도 낮다고 지적했다. 기술금융은 창업, 연구개발(R&D), 기술사업화 등 기술혁신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해당 기술의 가치를 평가해 지원하는 금융이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빈약한 작은 기업들이 커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양적으로 국내 기술금융은 팽창하고 있다. 기술신용대출은 2014년 7월만 해도 2000억 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6월 112조8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대출 건수도 2015년 6월 6만3203건에서 지난해 6월 25만2295건으로 늘었다. 기술을 담보로 돈을 지원받는 기업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벤처투자도 2013년 1조4000억 원에서 2016년 2조2000억 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질이다. 연구원은 “시중 은행이 기술신용대출 규모를 빠르기 늘리면서 기존 중소기업대출을 기술금융에 편입시키거나 담보, 보증을 요구하는 방식을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즉, 순수하게 기술금융을 늘린 것이 아니라 기존 대출제도를 이름만 바꾸거나 건물 및 자산 등 추가 담보를 요구해 기술기업에 부담을 전가했다는 지적이다. 초기투자가 저조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내 벤처기업에 지원되는 자금 중 창업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액은 2016년 기준 36.8%다. 나머지는 회사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중기, 후기 기업들에 돈이 몰린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투자액의 68.2%를 창업 초기 기업들에 지원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은 창업 초기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가장 크게 겪기 때문에 이 기간이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한국은 투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우려해 초기투자에 인색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정작 가장 큰 도움이 필요할 때 자금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성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실제 기술을 기반으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은행권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고 초기투자 규모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개헌안 중 경제 분야와 관련해 경제민주화를 강화하고 토지공개념을 명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사회 양극화와 부동산 투기 등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려면 이 같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노동계에 치우친 채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큰 정부’가 과도한 규제의 칼을 휘두르면서 경제적 자유를 옥죄는 개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시장경제의 핵심 주체인 기업 관계자와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경제 분야 개헌’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들었다.》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개헌안은 부의 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 정부가 친(親)노동, 친서민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추진하는 경제 분야 개헌안에 경제계의 심정은 복잡하다. 재계 관계자는 “친시장적 가치보다 규제를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기업인들로선 경제적 자유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6·13지방선거와 동시에 진행하려는 개헌 국민투표에 경제 관련 내용이 얼마나 담길지는 미지수다.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은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기본권, 지방 분권, 정부 형태, 국민 참여 등 네 가지를 개헌안의 핵심으로 꼽으며 경제 분야보다 정치 및 권력구조 위주로 개헌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제와 관련된 이슈가 전면에 불거지면 자칫 이념 논쟁 또는 진영 간 대립을 심화시켜 개헌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큰 정부’ 논란 구체적인 경제 분야 개헌 대상으로는 △경제민주화 강화 △토지공개념 도입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보호 △근로 대신 노동으로 용어 변경 등이 거론된다. 이 중 경제민주화는 현 정부의 경제 철학과 맞물려 있는 핵심 이슈로 꼽힌다. 경제민주화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119조 2항을 수정해야 한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선택사항으로 규정한 현행 헌법 조문을 ‘한다’ 또는 ‘해야 한다’로 바꾸는 안이 거론된다. 정부가 시장 실패 또는 대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규제와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논의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노동계에 경도된 정책을 펴면서 기업들이 위축된 상황에서 헌법마저 규제로 무게를 옮겨가면 자칫 자유시장경제 질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국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창의와 자유가 우선하는데도 현 정부와 여당의 분위기는 이와 다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현행 헌법을 유지하되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등 현행 법령을 통해서도 정부가 충분히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헌법이 정부의 규제를 강화하거나 구체적인 내용을 담으면 하위 법령들의 규제 수준은 지금보다 대폭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국회의장인 김형오 국민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 공동위원장은 보고서에서 “개인과 기업이 의욕을 잃고 국가 의존적 풍토가 조성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 잡으려 토지공개념 도입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해 토지에 대한 제한과 부담 부과를 골자로 하는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반영할지도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이 돼 헌법 제122조에 토지공개념을 반영해 국가의 부동산 투기 방지 의무화 및 공공주택 공급 등을 반영하는 헌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중 가구별 합산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향후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쓰기 위해서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놔야 위헌 논란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이미 많은 정책과 법령에 토지공개념이 반영돼 있다. 헌법에 이 같은 철학을 명문화하면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공개념이 도입되면 토지를 국유화하려 한다는 이념 논쟁을 피할 수 없어 논란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자유’ 지키는 개헌 돼야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에 경제 관련 사항이 개헌안에 포함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8일 상인단체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를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 청원 등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경제민주화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현재 개헌특위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는 ‘경제민주화 강화, 토지공개념 명시’에 대해서는 찬성 여론이 우세하다. 정부가 경제 분야 개헌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이를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개헌 기회는 흔치 않다. 나중에 경제 분야만 따로 개헌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다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큰 정부’를 지향하는 개헌으로는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특위 자문위 활동을 한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는 “한국의 경쟁력은 수출 기업 또는 한류 같은 민간 영역의 자율성에서 나왔다. 정부 개입이 의무가 되면 이것저것 손을 대면서 자율성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를 위한 개헌을 하려거든 미래지향적 산업경쟁력과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이은택 기자}

손경식 CJ그룹 회장(사진)은 제7대 한국경영자총협회장에 취임하며 경총의 변화를 예고했다. 손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고 빠른 시일 내에 노사정 대화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5일 손 회장은 서울 마포구 경총 회관에 처음 출근해 비공개로 직원들을 만나고 회관을 둘러봤다. 지난달 27일 경총 전형위원회의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될 당시 해외 출장 중이어서 이날 처음 출근했다. 손 회장은 회원사와 경총 직원에게 보낸 e메일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사정 대화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저출산과 고령화, 내수 부진, 신성장 산업 부재, 보호무역주의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을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손 회장은 “노사정 합의가 위기 극복의 시작이고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경총을 ‘대기업의 대변자’가 아니라 모든 기업의 대변자로 바꾸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손 회장은 “변화된 시대정신을 반영해 중소영세기업까지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경총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과거 경총은 ‘대기업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손 회장은 “경제성장의 최종 목표이자 핵심 가치인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겠다”며 “정부는 물론이고 노동계도 협력해 달라”고 호소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금호타이어 채권단이 상반기(1∼6월) 중 중국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계약이 체결되면 더블스타는 금호타이어 지분을 45%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KDB산업은행은 이번 매각이 무산되면 금호타이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며 배수진을 쳤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이날부터 광주공장 인근 송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채권단이 정한 노사 협상 시한인 이달 말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금호타이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더블스타로부터 금호타이어에 6463억 원의 신규 자금을 유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더블스타가 6463억 원(주당 5000원)을 투자하면 지분 45%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더블스타는 3년간 고용을 보장하고 지분을 매각하지 않기로 했다. 채권단은 2대 주주(23.1%)로서 채권 만기를 연장해주고 국내 시설투자용 신규 대출을 최대 2000억 원 규모로 내주기로 했다. 또 5년간 지분을 매각하지 않기로 했다. 채권단은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면 더블스타의 중국 내 영업망을 이용해 회사 부실의 주범인 중국 공장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봤다. 이대현 산은 수석부행장은 “더블스타 투자액과 추가대출을 합친 신규자금 약 8500억 원을 통해 약 5년간 국내 시설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합병(M&A) 계약 때 양해각서(MOU)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 상대방과 조건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산은이 이번 매각이 무산되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사 결과 금호타이어 청산가치는 1조 원으로 계속기업가치(4600억 원)보다 두 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단공동관리(자율협약)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P플랜(프리패키지드 플랜·법정관리+워크아웃)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채권단은 신규 자금을 8000억∼1조800억 원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경영정상화 효과는 미미하다. 법정관리로 가는 경우엔 청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수석부행장은 “(노조가) 마지막까지 (해외 매각을) 수용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은 노조로 넘어갔다. 지난달 28일 채권단은 채권 만기를 연말까지 연장해주기 위한 조건으로 노사가 자구안에 합의해야 하는 시한을 지난달 26일에서 이달 말로 미뤄줬다. 이 수석부행장은 “더블스타는 노조가 반대하면 들어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며 “노조는 인건비를 경쟁사인 한국타이어와 넥센타이어 수준으로 낮추는 자구 계획과 해외 매각에 동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회사가 외국에 팔리는 경우 대규모 정리해고 가능성을 우려해 해외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2일부터 노조 집행부는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인근 20m 높이 송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노조는 “채권단이 금호타이어를 해외에 팔지 않겠다고 밝히기 전까지는 고공농성을 풀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협상 시한을 무한정 미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호타이어 직원들이 두 달째 월급을 못 받을 정도로 유동성 위기가 목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강유현 yhkang@donga.com·이은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자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 제품에 일률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것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분명히 한 상징적인 조치라는 평가다. 미국의 이익과 일자리를 위해서는 동맹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경고로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일본 등은 허를 찔린 표정이다. 최소 53% 선별 관세 부과 대상으로 거론됐던 한국은 일단 우박은 피한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중국 제품의 대표적 우회 수출로로 보는 점은 앞으로도 각종 통상 현안에서 부담이다. ○ ‘아메리카 퍼스트’ 분명히 지난달 16일(현지 시간) 미 상무부는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를 공개했다. △모든 국가 철강 제품에 24% 관세(글로벌 관세) △한국 등 12개국에 53% 관세(선별 관세) △국가별 대미(對美) 수출액을 2017년의 63%로 제한(글로벌 쿼터) 등 세 가지 방안 중 선별 관세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한국 외 다른 동맹국은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국산 철강 제품을 견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뚜껑을 열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예외가 있으면 모든 국가가 이 국가를 수출 통로로 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우회 수출로를 활용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무역확장법 232조’의 효과를 극대화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동맹이라는 이유로 관세를 피해 갈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시장으로의 수출 1위 캐나다와 멕시코(4위)를 최대 피해자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부터 관계 강화에 공을 들여온 일본도 뒤통수를 맞은 표정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기 전 선택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관세를 면제받는 국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에서는 캐나다 등 주요 우방국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중견 철강업체 피해 커 최악은 피했지만 미국시장 수출 3위 한국도 충격을 피하기는 어렵다. 2일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 철강의 미국 시장 비중은 금액 기준으로 12.1%다. 중국(15%), 일본(12.2%)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국내 철강업계 중에서도 직격탄을 맞는 곳은 강관(철로 만들어진 파이프)을 주로 생산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이다. 강관은 전체 수출 물량의 56.1%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 수출용이다. 미국은 현재 셰일가스 시추 사업,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쓰이는 강관 수요가 많아 한국 강관업체들에는 가장 중요한 수출국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국내 강관업체 중 넥스틸의 유정용 강관은 기존 46% 관세에 25%가 추가로 붙어 총 71%의 관세가 매겨지게 됐다. 세아제강의 유정용 강관은 6.6%에서 31.6%로, 휴스틸도 19%에서 44%로 관세가 오른다. 이 업체들은 이번 관세 때문에 수출 물량이 얼마나 줄어들지 예상할 수 없어 손해액조차 산정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용 강판 등 고부가가치 비중이 높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주요 대기업은 이번 파장에서 다소 비켜 가는 분위기다. 포스코 관계자는 “글로벌 연간 판매량이 약 3800만 t 정도 되는데 미국 판매 물량은 100만 t 정도에 불과해 타격은 크지 않다”고 했다. 현대제철도 포스코보다는 미국 의존도가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 가능하다는 분위기다. 다만 시장에서는 철강업 전체가 침체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날 주식시장에서 동국제강(5.12%) 포스코(3.60%) 현대제철(2.99%) 휴스틸(2.54%)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중국 우회 수출로 인식 부담 백운규 장관 주재로 이날 내부 대책회의를 연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이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하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해 승소할 가능성이 떨어지는 만큼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로로 낙인찍은 점이 부담이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등 미국과 풀어야 할 통상 문제가 산적해 있다. 미국이 중국에 각종 무역 보복 조치를 단행하면 한국까지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에서 원재료를 들여와 가공 수출하는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수출 국가를 다각화해야 한다”고 했다.세종=이건혁 gun@donga.com·이은택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G90(국내명 EQ900)을 의전차량으로 제공한다. 1일 현대차는 G90 스페셜 에디션 차량 5종을 4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춰 현지 공개한다고 밝혔다. 제네시스는 시상식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할리우드 스타, 유명 인사 등에게 G90 스페셜 에디션 10대를 포함한 총 15대의 의전차량을 제공한다. 제네시스는 지난해부터 미국 생활매거진 베니티페어와 파트너십을 맺고 아카데미 시상식 마케팅을 펼쳐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스페셜 에디션 차량은 고급 여성 주문복을 지칭하는 프랑스어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지난달 13일 군산공장을 폐쇄한 한국GM이 부평, 창원, 군산 공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희망퇴직 접수를 2일 마감한다. 퇴직 희망자가 사측이 기대하는 규모에 미치지 못할 경우 한국GM 직원 1만6000여 명에 대한 강제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희망퇴직은 군산공장뿐 아니라 사실상 한국GM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이미 노동조합원뿐 아니라 임원, 팀장급 이상 간부직원 등에게도 구조조정 방침이 통보된 상태다. 본사 출신 임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부사장 전무급 35%, 상무 팀장급 20% 감축이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해당하는 팀장급 이상은 약 500명이다. 일반직원 감축 목표는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GM에 따르면 폐쇄된 군산공장에선 1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자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공장 가동 재개에 대한 미련과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나중에 다시 회사 사정이 좋아졌을 때 복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부평, 창원 공장은 신청자가 많은 편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은 이번에 신청해 희망퇴직을 하는 정규직에게는 2, 3년 치 연봉을 위로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GM이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지난해 실적추정치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해 전년 대비 약 30% 늘어난 9000억 원의 순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순손실을 기록한 2015년(당기순손실 9868억 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적자 전환된 이래 지난해까지 누적 손실 규모가 총 2조900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영업손실 추정치도 8000억 원으로 유례없는 수준이다. 매출 추정치는 10조7000억 원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9조5325억 원 이후 최악이다. 정부는 2013년 쉐보레 브랜드 유럽 철수 등 GM 미국 본사의 글로벌 전략 수정 이후 수출이 줄어든 것을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높은 매출원가율(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도 한국GM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2016년 한국GM의 매출원가율은 93.1%로 현대·기아자동차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GM 본사가 한국GM의 차입금에 높은 이자(4.8∼5.3%)를 요구하고 연구개발비, 불명확한 업무지원비 등을 부담시킨 탓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GM은 이날 주력 판매차종의 보증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현금 할인 등을 실시하는 할인 정책을 내놨다. 국내 판매량을 반등시켜 회생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은택 nabi@donga.com·황태호 기자}

그간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수입차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최고급 럭셔리 세단 시장에 국산차들이 잇달아 파고들고 있다. 최고급 플래그십 대형세단 판매도 증가 추세다. 그간 국산차 중에서는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해왔다. 최근에는 기아자동차가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만든 신형 K9을 4월 출시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에 파장이 일고 있다. 그간 K9은 기대에 못 미치는 디자인과 성능으로 판매량이 미미해 제네시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기아자동차 관계자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소비자들의 기대도 큰 분위기다. 최근 기아차가 잇달아 내놓은 스팅어, K3가 하나같이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바야흐로 제네시스와 기아차의 피 터지는 플래그십 전쟁이 벌어질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다. 예고 이미지만 공개된 신형 K9은 구형 K9과 아예 다른 차다. 차체 크기, 디자인, 상품성 모두 확 바뀌었다. 볼륨이 커져 대형세단으로서의 위엄을 더했다. 기능도 업그레이드됐다. 주행에 불안요소가 될 것들을 차가 운전자에게 미리 알려주는 등 첨단 지능형 안전기술이 대거 들어갔다. 기존 기아의 ‘KIA’ 엠블럼도 다소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스팅어처럼 완전히 독자 엠블럼을 쓰지는 않겠지만 색상 등이 바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애정을 쏟았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제네시스를 잡기 위해 기아차가 독기를 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같은 현대자동차그룹 식구라고 해서 봐주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EQ900, G80으로 기존 고급 대형세단 시장을 쥐고 있는 제네시스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G80은 국내 대형세단 중 최초로 디젤 모델이 출시됐다. 차량이 진동을 줄여주는 진동 저감형 토크 컨버터, 실내 소음을 줄여주는 실내소음 저감장치 등을 더해 상품성을 높였다. 7500만∼1억1800만 원대 EQ900의 지위도 여전히 견고하다. 디자인, 성능, 상품성 등 어느 것 하나 수입 고급세단에 뒤지는 점이 없다. 캐딜락, 재규어 등 고급 수입브랜드의 동급 세단을 시승해 본 소비자들이 EQ900을 더 선호할 정도다. 이 때문에 여기에 신형 K9이 얼마나 치고 들어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국내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비교적 고부가가치 차종인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시장도 조금씩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만큼 그보다 고가의 상위 차종에서 앞으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차기 회장으로 손경식 CJ 회장(사진)을 유력하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27일 전후로 결론을 낼 방침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경총은 차기 회장 선출을 이달 내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 회장 후보 추대 절차에 참여하는 한 전형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단 27일 오전에 전형위원들이 모여 조찬을 나누며 회장 후보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전형위원은 “손 회장도 경총 회장직을 수락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아직 회의 전이어서 다른 후보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는 있다”고 했다. 재계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손 회장이 경륜을 갖췄고 문재인 정부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경총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위축된 가운데 대기업과 정부의 소통 창구로 외연을 확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21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박상희 미주철강 대표가 차기 회장으로 거론됐다가 선임이 무산되자 경제계 일각에서는 외압설이 제기되는 등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중소기업 대표 출신으로는 처음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 추대돼 관심을 모았던 박상희 미주철강 회장(대구경총 회장 겸임)의 경총 회장 선임이 무산됐다. 박병원 현 회장과 김영배 상근부회장도 이날 사의를 밝혀 경총은 사상 초유의 지도부 공백사태를 맞았다. 노사정 협의에서 기업을 대변할 ‘얼굴’이 사라진 셈이다. 경총은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제49회 정기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안을 논의했다. 이에 앞서 19일 열린 경총 회장단 모임에서 제7대 회장에 박상희 회장이 추대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열린 전형위원회는 이를 부결시켰다. 회장단 결정을 전형위가 부결시킨 것은 처음이다. 이동응 경총 전무는 “빠른 시일 안에 새 후보를 추대하기로 했고, 총회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차기 회장을 정하는 전형위원으로는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김영태 SK 부회장, 정지택 두산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조용이 경기경총 회장이 참여했고 박복규 경총 감사(전국택시연합회장)가 위원장을 맡았다.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박 회장은 반발했다. 그는 “전형위에 참여한 특정 대기업이 반대를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재계에서는 당시 회장단 모임에서 박 회장이 내정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19일 회장단 회의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박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형위원장인 박 감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손 회장의 의중은 확인하기 어려웠고, 박 회장은 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또 다른 전형위원은 “회장단 모임에서 박 회장이 공식적으로 추대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손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점쳤다. 김영배 상근 부회장이 이번 혼선에 책임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부회장이 박 회장을 내세웠고 이에 회원사가 반발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임기가 끝난 김 부회장은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비난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개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도 교체 가능성이 거론됐으며, 후임으로는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가 오르내리고 있다.이은택 nabi@donga.com·김현수 기자}

신임 한국경영자총협회장에 박상희 미주철강 회장(67·사진)이 내정됐다. 중소기업 대표가 노사 관계에서 경영자 측 대표 단체인 경총 회장을 맡는 것은 1970년 경총이 설립된 지 48년 만에 처음이다. 경총은 21일 현 대구경총 회장인 박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박 회장은 1995∼2000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어 5대 경제단체 중 두 곳의 수장을 역임하게 됐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6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2∼2016년에는 새누리당 재정위원장을 맡았다. 중기회장 출신의 박 회장이 경총 회장에 오르면서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함께 대기업만 대변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경총이 변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 출범 초기 마찰을 빚었던 박병원 회장이 연임에 실패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박상희 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새로운 노사협력 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예전에 한 대기업 회장이 ‘노조 없는 기업’을 자랑하기에 면박 준 일이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이 무조건 노조를 부정해서는 안 되고 협력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나는 직접 노조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역대 경총 회장은 대기업에서 월급 받던 사장이나 공무원들이 했다. 아무래도 노사 문제를 가깝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진정한 (노사 문제의) 협상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중기만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기업 없이는 중소기업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강관 전문 중견기업인 휴스틸이 최근 전남 여수에 공장을 추가로 건립하려다 미국의 통상 압박 우려에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철강 통상 압박에 따른 국내 영향이 가시화한 셈이다. 21일 휴스틸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강관 등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53%까지 높이면 현재 공장 3곳의 가동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공장 추가 설립을 구상하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고 접기로 했다”고 밝혔다. 휴스틸이 구상 단계에서 접은 여수공장은 2000억 원을 투자해 지은 충남 당진공장 규모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휴스틸은 미국 건설사 벡텔, 에너지 기업 윌리엄스 등에 강관을 납품해온 강관 전문 기업이다. 휴스틸 관계자는 “보통 미국 거래처가 2, 3개월 단위로 주문한다. 4월에 미국이 정식 발표하면 4월 주문분이 취소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한국 강관을 주로 수입하는 미국 건설 및 에너지 기업들도 미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주지역 유전 개발과 셰일 자원 프로젝트가 늘면서 에너지 기업의 강관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 철강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을 미국 에너지 건설업계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납득 어려운 美 철강 압박 미국은 자동차, 기계, 항공기, 가전 등 자국 산업에 필요한 철강의 3분의 1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항공기 동체, 자동차 차체 등의 재료로 쓰이는 알루미늄은 연간 수요(약 550만 t)의 90%를 수입해서 쓴다. 알루미늄 수입관세가 오르면 맥주캔 제조비용도 올라 미국 전체 맥주가격이 뛴다. 미국에서 오히려 ‘철강장벽’에 대한 반발 여론이 높아지는 이유다. 한 철강업체 임원은 “항공, 자동차 등 미국 철강 고객사들은 최근의 철강제품 관세율 인상에 불만이 높다. 당장 자국 기업으로 거래처를 바꾸기도 어렵고 비용만 높아진다고 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 내 반대로 (한국 철강에 대한) 고관세율이 실제 어느 수준으로 적용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CNN머니도 최근 “의도치 않은 결과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미국 제품의 가격경쟁력 하락도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미국 철강업계 실적도 최근 상승세여서 국내에서는 칼을 꺼내든 타이밍에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2008년 중국이 철강제품 생산량을 무섭게 늘리면서 미국 철강업계는 2009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2008년 한 해 미국 철강기업의 총 순이익은 47억100만 달러(약 5조600억 원)였지만 이듬해 17억4600만 달러(약 1조8800억 원) 적자였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철강업계는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미국 경제 회복세와 건설경기 호조, 원유시추 증가, 에너지 분야 성장 등이 배경이다. 미국 최대 철강사 뉴코의 지난해 매출은 151억6000만 달러(약 16조2212억 원)로 전년보다 23% 늘었다.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39% 오른 14억4800만 달러(약 1조5494억 원)를 기록했다. US스틸도 2016년 영업손실 1억100만 달러(약 1080억 원) 적자에서 지난해 영업이익 4억6000만 달러(약 4922억 원)로 흑자 전환했다. 미국 철강업체의 피해를 거론하기에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美 가전도 소비자 피해 우려 이달 초 미국에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발동된 세탁기나 보복관세 부과 위기에 놓인 TV 시장에서도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피해 우려가 나온다. TV처럼 미국 내 메이저 업체가 없는 시장에 대해서까지 ‘보복관세’를 거론하는 건 지지율을 감안한 정치 이슈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북미 TV 시장은 삼성전자가 36.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가 17.5%로 2위였다. 일본 소니(12.3%)가 뒤를 이었다. 미국 제조사 중에는 비지오가 10.4%로 4위에 올랐지만 주로 저가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라 메이저 업체로 분류하긴 어렵다. 국내 TV업계 관계자는 “현지 TV 업체들의 경쟁력이 워낙 낮기 때문에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들이밀 수 없다”며 “무역 불균형 등을 근거로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소비자만 손해”라고 했다. 이은택 nabi@donga.com·김지현·변종국 기자}
정부가 가상통화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고 투자자 보호 대책과 과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요 선진국이 이미 가상통화 금지보다는 입법규제로 방향을 정한 만큼 한국도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20일 한국경제연구원은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콘퍼런스센터에서 ‘가상통화 규제 세제 회계분야 이슈점검 세미나’를 열고 가상통화 정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가상통화는 이미 일반인들의 실생활에 다가와 있는 만큼 거품 논란을 떠나 혼란을 줄이고 순기능을 이끌어 낼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통화를 전면 금지하기보다는 법 테두리 안에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가 이미 제도권에서 관리하고 있어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가상통화에 세금을 매기고 거래소에 대해서는 인가제나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주요 유럽 국가는 관련 협회 등을 통한 자율규제 쪽으로 정책방향을 정했다.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가상통화를 전면 금지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병일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도 “대부분 국가는 가상통화가 자산이자 결제수단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은 가상통화에 소득세와 법인세, 양도소득세를 매기고 있으며 독일은 부가가치세도 부과하고 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상통화 거래소에 감사보고서 제출 의무를 부과하고 지정감사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