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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좇는 자, 신념에 매몰된 자, 자신의 음악에 갇힌 자…. 뮤지컬 ‘파가니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저마다의 연주와 노래로 무대 위에 구현해냈다. 빼어난 바이올린 연주와 호소력 짙은 넘버는 관객의 ‘귀 호강’을 보장한다. 작품은 연주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던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일대기를 그렸다. 그는 세간의 질투를 받으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스스로 악마임을 고백하라는 교회, 자본의 강요에 시달린다. 어려서부터 불우한 환경 때문에 온전히 음악을 사랑할 수 없었던 그는 권력 집단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음악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지켜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고 울부짖으며 다시 바이올린 활을 잡는 그에게 궁극적 욕망은 오로지 음악이었다. 극 중 자본, 교회, 음악을 상징하는 배역 간의 대립 구도와 넘버가 몰입도를 높인다. 욕망을 위해 서로 뭉쳤다가도 금세 돌아서며 수시로 ‘적’을 만들어내는 전개가 흥미롭다. 무대 중앙에서 파가니니가 바이올린 연주를 펼칠 때면 수시로 무대 2층과 측면에서 다른 배우들이 복합적 장면을 연출한다. 파가니니를 악마로 몰아세우는 사업가 ‘콜랭’과 신부 ‘루치오’가 펼치는 호소력 짙은 넘버들이 듣는 재미를 더한다. 작품에선 ‘액터-뮤지션’으로 파가니니를 연기한 ‘KoN’(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홀로 배역을 맡아 공연 때마다 바이올린 연주와 안정적 노래, 연기까지 병행해야 하기에 우려도 컸다. 하지만 보란 듯이 록클래식 버전의 파가니니 곡을 완벽히 연주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파가니니와 콘 사이엔 재밌는 공통점도 있다. 실제 파가니니가 긴 손가락을 타고나 천재적 연주가 가능했던 것처럼 극 중 콘 역시 타고난 긴 팔을 활용해 ‘샬롯’을 뒤에서 감싸는 자세로도 바이올린을 안정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콘, 김경수, 서승원, 이준혁 출연. 3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3000원∼6만6000원. 8세 관람가.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늘 장엄한 무대 위에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역할이 많았어요. 이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때론 밝은 모습의 생활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하하.”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 배우 양준모(39)가 이런 농담을 던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그간 주로 맡았던 역할이 전봉준이나 고종, 흥선대원군 등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18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안 의사 역할을 위해 애지중지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저보다 어린 나이에 선조들이 나라를 걱정했던 마음을 떠올리면 늘 감격스럽다”며 “‘영웅’ 초연작을 보고 객석에서 눈이 붓도록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안 의사를 처음 맡은 뒤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단지동맹기념비 제막식에도 참석해 대표 넘버 ‘장부가’를 열창했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 그가 느낀 감격은 무대에 그대로 이어진다. 최근엔 공연 도중 울컥한 마음에 본인도 모르게 소소한 ‘애드리브 연기’를 하다 상대 배역을 당황케 한 적도 있다. “결사를 앞두고 ‘그날을 기약하며’라는 넘버를 부르는 장면에서 유독 짠한 마음이 들었어요. 노래하다 저도 모르게 상대 배우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예정에 없던 동작에 상대 배우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또 하루는 사형을 앞둔 장면에서 일본인 간수 ‘지바’가 너무 고마웠어요. 저도 모르게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노래했습니다. 나중엔 언제 손을 놓을지 애매해졌죠.” 정통 성악을 전공한 그가 뮤지컬 배우로서 마음을 굳힌 건 2005년 평양에서 열린 가극 ‘금강’ 공연 이후다. 당시엔 동학군 역할을 맡았다. 강신일, 오만석 등과 무대에 올랐던 감동을 잊지 못했다. 양준모는 “성악 공부를 위해 계획된 유학 비자와 대학도 다 취소했고 ‘난 무대에 남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털어놨다. 어느덧 16년 차 배우인 그는 무대 위 안 의사보다도 이름도 없이 사라진 무명 독립영웅들을 더 챙기게 됐다. 자신보단 동료, 선후배 배우들과의 ‘케미’에 더 신경 쓴다. 그는 “손가락을 자르며 결의를 다지는 ‘단지동맹’ 12인 영웅 중엔 실명이 밝혀진 이가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며 “‘나 안중근, 이 한 손가락’ 대신 ‘우리’라는 대사를 넣어 모두가 함께하는 행동임을 보여주자고 제작진에 건의해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양준모는 요즘도 관객들 반응을 살핀다. 다만 예전과 다르게 ‘양준모 잘한다’보다 ‘작품이 너무 좋다’는 후기에 더 눈길이 간다고. 그는 “제가 덜 돋보이더라도 관객들이 안 의사 주변의 수많은 영웅을 더 눈여겨봐 주셨음 한다”며 멋쩍은 웃음을 내비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함께 작업한 한국 무용수들의 기술과 표현력은 정말 뛰어납니다. 작품을 접하는 관객들은 색다른 무용 국제 교류의 일원이 될 겁니다.”(페르난두 멜루 안무가) “한국 전통 무용의 선을 기반으로 한 동작에 대한 스웨덴 무용수들의 호기심이 엄청났어요. 이들의 열의와 에너지 덕분에 훌륭한 무대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장혜림 안무가) 국립현대무용단과 스웨덴 스코네스 댄스시어터가 양 단체의 안무 교류 프로젝트인 ‘스웨덴 커넥션Ⅱ’를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스웨덴 커넥션은 양국에서 선정한 두 안무가가 상대 단체 무용수와 함께 신작을 제작하는 형식이다. 앞서 스웨덴에선 2일부터 12일까지 ‘코리아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공연이 진행됐다.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의 브라질 출신 안무가 페르난루 멜루는 국립현대무용단과 협업한 작품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를 선보인다. ‘두 점…’은 신체적, 정신적 장벽들을 없애고 인류의 연결 필요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한국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술적 역량에 매료됐다”며 “관객은 춤을 통해 언어 외적인 상상력을 발견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움직임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파견한 안무가 장혜림은 ‘제(祭)’를 무대에 올린다. 한국 춤 승무의 북 치는 움직임을 차용해 팔의 움직임을 작품에 녹여냈다. 안전모와 헤드램프, 목탄 등이 상징적 소품으로 사용된다. 그는 “스웨덴 무용단의 다국적 무용수들에게 내면의 호흡, 순환과 같이 보이지 않는 개념과 한국 무용의 움직임을 이해시키는 게 쉽진 않았다”면서도 “충분한 토의를 거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동작을 끄집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방인이 해석하는 자진모리, 휘모리, 타령장단과 한국 무용의 매력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과거 무용계에서 단발적으로 진행됐던 국제 교류 움직임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유럽 현대무용 플랫폼과 연계한 ‘스텝 업’ 프로젝트를 6월에 선보이고 브라질, 콜롬비아, 스페인 등 무용단과 공동 제작한 공연을 내년까지 올릴 예정이다. 앞서 국립무용단도 프랑스 샤이오국립극장과 ‘시간의 나이’를 공동 제작해 선보인 바 있다. 장 안무가는 “무용에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세계 무용수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함께 표현해낸 춤은 더욱 다채롭고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이후에도 계속된 피해자와 유족의 현재진행형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무대에 섰습니다.” 연극 ‘고독한 목욕’의 남동진 배우(47)와 서지혜 연출(40)은 작품 대본을 처음 접한 순간 느꼈던 감정이 ‘부담감’이었노라 털어놨다. 이념 갈등으로 벌어졌던 이 실제 사건은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 배우는 “아픈 역사를 무대에 옮기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 처음엔 배역 제의를 거절했다”면서도 “대본을 계속 읽다 보니 오히려 이 아픔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8일 막을 올린 뒤 ‘고독한 목욕’은 관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작품은 표면적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슬픔”이라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극단이 올해 첫 창작극으로 선보인 ‘고독한 목욕’이 소재로 삼은 인혁당 사건은 1960, 70년대가 배경. 인혁당 당원이란 누명을 쓰고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뒤 이튿날 새벽 사형을 당한 희생자에게 초점을 맞췄다. 국가의 거대한 폭력 앞에 무너져버린 일상을 담으려 애썼다.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사건을 다룬 책과 자료를 읽고 치밀하게 공부했지만,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여건상 실제 피해자나 유족을 만날 수도 없었다. 서 연출은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쉽사리 접근할 순 없었지만 ‘예술인들이 이 이야기를 다루려 하는 점을 높이 산다’는 답변을 전해 듣고 힘이 났다”고 했다. 남 배우도 “뵙진 못했어도 ‘나중에 꼭 작품을 보러 오시면 좋겠다’는 배우로서의 바람을 전했다”고 밝혔다. 극의 제목에는 치유와 고통의 의미를 동시에 녹여냈다고 한다. 남 배우는 “고문으로 고통받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상처를 목욕물로 닦아 치유하지만, 상처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장면은 유가족의 계속되는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서 연출도 “고문, 꿈, 환상 등의 파편화된 기억으로 혼란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도 치유와 고통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고독한 목욕’은 제55회 동아연극상에서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남 배우와 ‘작품상’을 수상한 서 연출이 손잡고 내놓은 올해 첫 작품이기도 하다. 서 연출은 “수상 뒤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처럼 주변에서 절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제 마음가짐도 무거워져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했다. 남 배우는 “나이를 먹었어도 권위 있는 신인연기상을 받아 새롭게 출발점에 선 기분”이라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무대 위 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본다. 아버지가 위독해 119 구급 신고를 했던 한 래퍼는 “잠깐만!”이라며 구급대원을 멈춰 세운다. “주말에 입원하면 병원비가 비싸니 3분만 지나고 월요일 오전 12시가 되면 응급실에 아버지를 들여보내 달라”는 부탁. 아버지가 고비를 넘기자 구급대원은 “넌 미쳤다”며 래퍼에게 화를 낸다.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넌 날 이해할 수 없다”며 힙합 비트에 맞춰 랩을 쏟아낸다. 이 공연은 홍익대 앞에 있는 힙합 공연장에서 펼쳐진 게 아니다. 엄연히 짜인 대본과 서사에 맞춰 곡을 입힌 뮤지컬 ‘무선 페이징’이다. 최근 이처럼 뮤지컬 무대는 ‘혼합(하이브리드) 장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성악이나 가요 멜로디를 토대로 주요 넘버를 제작하던 틀을 깨고 힙합이나 민요, 재즈, 시조, 시 낭송 등과 결합하며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6월 두산아트센터에서 정식 공연을 앞둔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은 조선시대 시조를 기반으로 힙합 비트를 입혔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 등이 과거 어떻게 불렸을지 상상해 ‘랩 배틀’ 무대로 꾸민다. 뮤지컬과 랩을 결합한 라이브(주)의 ‘무선 페이징’은 해외 쇼케이스와 정기 공연을 논의 중이다. 22일부터 막을 올리는 뮤지컬 ‘아리 아라리’는 독특하게도 정선아리랑과 뮤지컬을 결합한 퍼포먼스 공연이다. 평생 뗏목꾼으로 살던 기목은 경복궁으로 정선의 목재를 싣고 떠난다. 그의 딸 아리는 한양으로 떠나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 소식을 15년 만에 듣는다. 성인이 된 아리가 아버지를 만난 순간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정선아리랑 곡조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창작 아리랑, 나무꾼들의 목도 소리, 지게 춤 노래 등 다양한 전통 가락이 펼쳐진다. 특수 제작된 북과 꽹과리, 장구, 북을 든 사물놀이패가 무대를 메운다. 이 밖에도 살인 추리극 내용을 담고 있는 뮤지컬 ‘아서 새빌의 범죄’는 재즈를 뮤지컬에 녹인 사례. 쇼케이스를 실제 재즈 바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요소요소마다 삽입된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가 극의 전개와 오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색다른 매력을 낸다. 대학로에서 흥행 중인 뮤지컬 ‘아랑가’ 역시 뮤지컬과 창극의 경계를 허문 장르 혼합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장르 혼합 실험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선 철저히 힙합과 랩으로 구현한 뮤지컬 ‘인 더 하이츠’가 대중의 큰 호응을 받고 있으며, 세계 전통음악과 종교적 소재를 혼합한 뮤지컬 등 끊임없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대중문화 트렌드를 따라 가요, 성악을 기반으로 했던 뮤지컬이 점차 다양한 장르로 확장할 것”이라며 “음악 장르뿐만 아니라 관객 참여형, 실험형 뮤지컬 등 형식도 다양하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시어마다 꾹꾹 눌려 담겨 있던 감정이 폭발한다. 일제강점기 한 청년이 쓴 시는 수십 년이 지나 무대 위에서 울부짖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는 조국의 참담한 현실에 괴로워하던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생애와 시적 고뇌를 춤과 노래로 풀어낸 작품이다.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비롯한 유명 작품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한 뒤 대중적 멜로디를 입혔다. 2012년 초연부터 사랑받고 있으며, 올해는 라이브 밴드가 넘버를 직접 연주해 울림을 더한다. 가장 몰입감이 넘치는 부분은 배우가 시를 토해내는 장면. 이 순간 모든 배경음악이 사라지고 배우는 ‘팔복’ ‘서시’ ‘별 헤는 밤’ 등을 원문 그대로 읊조리거나 소리친다. 감옥 안에서 쓰러진 채 괴로워하며 시를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대본을 집필한 한아름 작가는 “윤동주 시인의 유족이 시에 곡을 붙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고, 저 역시 윤 시인의 시는 멜로디 없이 그대로 읽어야 서정성이 살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실존인물을 다룬 작품이 그렇듯, 긴 생애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주요 사실이 나열식으로 짧게 언급되거나 배우에 따라 일부 시어와 대사의 전달력이 떨어지는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감동이 짙은 때문인지 막이 내린 뒤 눈물을 닦느라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잊혀선 안 되는 일들을 예술과 감동으로 복습시켜 주고 싶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박영수, 신상언, 김도빈, 강상준 출연.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9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물론이고 지상파 TV 아나운서들까지 ‘유튜브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예능, 다큐 등에서 일반인 출연자의 강세가 계속되고, 다양한 방송 매체가 생겨나면서 이전에 비해 특정 방송에 전속된 아나운서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상파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들은 주로 출퇴근길, 사무실 모습,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다루는 ‘브이로그’(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 개인방송을 하고 있다. SBS 장예원 아나운서는 지난달 14일 ‘장폭스TV’를 개설해 콘텐츠 회의 모습부터 본인의 일상, 관심사 등을 담았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는 ‘임아나채널’에서 여행, 먹방 등의 콘텐츠를 방송하고 있으며, KBS 김지원 아나운서는 ‘KBS 아나운서 3분 지원’ 채널에서 아나운서 합격 팁, 대기업 합격 팁 등 정보성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경우 개인방송에서 보다 자유로운 소재를 택하고 있다. 서현진 전 MBC 아나운서는 ‘랜선 며느리’를 주제로 가족, 결혼 얘기와 함께 구독자의 연애 상담 콘텐츠도 다룬다. 차다혜 전 KBS 아나운서는 여행, 육아, 메이크업 등을 주제로 다수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1인 방송이 각광받고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이 영역을 넓히면서 특정 방송사에만 출연하는 아나운서들이 대중과 만날 기회가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MBC는 지난달 25일 미디어데이에서 이 같은 위기감을 밝히며 정규 방송 외적인 활로를 펼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SBS 역시 유튜브 채널을 ‘방송 플랫폼’으로 볼 것인지,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간주할 것인지를 놓고 논의 중이다. 권상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중이 지상파 방송 채널보다 모바일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길어야 1시간 정도만 TV에서 노출되는 아나운서들의 활동 범위가 축소됐기 때문”이라며 “시간, 채널에 구애받지 않고 아나운서들이 대중이 원하는 내밀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 같은 정책은 방송사 차원에서도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드르르륵, 드르르륵.” “위이이잉! 탕! 탕!”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 대신 금속과 나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귀에 박혔다. 한쪽에선 손님들이 치과에서나 사용할 법한 드릴을 잡고 ‘위이잉’ 소리를 내며 무언가에 열중해 있다. 이들 손에는 머그잔 대신 망치, 쇠막대기가 들렸다. 카페라기보다는 수공예 작업실로 보이는 이곳은 ‘반지 공방 카페’다. 직원 설명에 따라 기자도 반지를 만들어봤다. 손가락 둘레를 재고 얇고 긴 은막대를 고른 뒤 망치로 두드리며 동그란 모양으로 굽혔다. 평소 별로 써본 일이 없는 여러 공구를 들고 ‘나만의 것’을 만들다 보니 40여 분이 훌쩍 지났다. 모양이 잡히면 취향에 따라 세세한 장식이나 문구를 새기면 된다. 접착제와 은가루를 바른 양 끝을 가스 토치로 붙이면 끝. 욕심을 내 광까지 내면 1시간 만에 나만의 반지가 탄생한다. 취재차 해봤지만 생각보다 훨씬 뿌듯했다. 완성된 반지를 손에 끼웠다 빼 보며 자꾸 셔터도 누르게 됐다. 최근 ‘소만행(소소하게 만들며 느끼는 행복)’을 찾아 공방 카페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다. 공방 카페는 대략 4, 5년 전부터 조금씩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흐름을 타고 주목받고 있다. 1만∼3만 원 정도 비용으로 친구, 연인과 함께 또는 홀로 카페에서 뭔가를 만들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 카페 손님 임재훈 씨는 “본업과 무관하게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오히려 휴식이 된다”고 말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임익분 씨는 “과거엔 20, 30대가 주로 카페를 찾았다면 요즘은 40, 50대부터 부모님과 공방 카페를 찾는 아동 및 1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공방 카페에서 만들 수 있는 물건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간단한 팔찌 등 30분이면 만들 수 있는 장신구 위주였지만, 근래에는 도자기나 미니어처처럼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며칠씩 손님이 시간을 투자해 만들도록 하는 카페도 생겨났다. 대부분 고도의 기술은 필요 없어 어렵지 않게 따라 만들 수 있다.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옷감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사라져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재봉틀 카페’는 2시간에 1만 원가량 요금을 내면 마치 PC방처럼 친구들과 재봉틀 앞에 앉아 대화하며 각종 소품을 만들 수 있다. 천에 문양을 달아 에코백을 만들거나 아예 옷을 만들기도 한다. 매주 사흘은 재봉틀 카페를 찾는다는 최정선 씨는 “재봉틀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다. ‘재봉틀 카페’를 운영하는 김윤주 씨는 “재봉틀을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워하는 직장인들이 잠시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이곳을 찾아 1∼2시간씩 작업을 하고 간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재봉틀로 직접 옷이나 소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문화의 확산은 출판시장에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 공예·DIY 분야 도서 가운데 ‘옷 만들기’ 도서 매출의 비중이 2014년(7.2%)보다 두 배 이상(16.5%)으로 늘었다. 일본의 옷 만들기 강의를 정리한 번역서 ‘패턴 학교’(이아소) 시리즈 등이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물건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먹는 샌드위치에 넣을 상추 등 채소를 직접 재배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식물공방 카페’도 등장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카페가 단순히 사람들을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는 곳에서 머물면서 무언가 창작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숍인숍(Shop In Shop·매장 안에 매장을 여는 것)이나 상이한 공간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로 카페는 계속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김기윤 pep@donga.com·조종엽 기자}

“드르르륵, 드르르륵” “위이이잉! 탕! 탕!”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 대신 금속과 나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귀에 박혔다. 한 쪽에선 손님들이 치과에서나 사용할 법한 드릴을 잡고 ‘위이잉’ 소리를 내며 무언가에 열중해있다. 이들 손에는 머그잔 대신 망치, 쇠막대기가 들렸다. 카페라기보다는 수공예 작업실로 보이는 이곳은 ‘반지 공방 카페’다. 직원 설명에 따라 기자도 반지를 만들어봤다. 손가락 둘레를 재고 얇고 긴 은 막대를 고른 뒤 망치로 두드리며 동그란 모양으로 굽혔다. 평소 별로 써본 일이 없는 여러 공구를 들고 ‘나만의 것’을 만들다 보니 40여 분이 훌쩍 지났다. 모양이 잡히면 취향에 따라 세세한 장식이나 문구를 새기면 된다. 접착제와 은가루를 바른 양 끝을 가스 토치로 붙이면 끝. 욕심을 내 광까지 내면 1시간 만에 나만의 반지가 탄생한다. 취재 차 해봤지만 생각보다 훨씬 뿌듯했다. 완성된 반지를 손에 끼웠다 빼 보며 자꾸 셔터도 누르게 됐다. 최근 ‘소만행’(소소하게 만들며 느끼는 행복)을 찾아 공방 카페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공방 카페는 대략 4, 5년 전부터 조금씩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흐름을 타고 주목받고 있다. 1만~3만 원 정도 비용으로 친구, 연인과 함께 또는 홀로 카페에서 뭔가를 만들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 카페 손님 임재훈 씨는 “본업과 무관하게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오히려 휴식이 된다”고 말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임익분 씨는 “과거엔 20~30대가 주로 카페를 찾았다면, 요즘은 40, 50대부터 부모님과 공방 카페를 찾는 아동 및 1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공방 카페에서 만들 수 있는 물건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간단한 팔찌 등 30분이면 만들 수 있는 장신구 위주였지만, 근래에는 도자기나 미니어처처럼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며칠씩 손님이 시간을 투자해 만들도록 하는 카페도 생겨났다. 대부분 고도의 기술은 필요 없이 어렵지 않게 따라 만들 수 있다.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옷감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사라져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재봉틀 카페’는 2시간에 1만 원 가량 요금을 내면 마치 PC방처럼 친구들과 재봉틀 앞에 앉아 대화하며 각종 소품을 만들 수 있다. 천에 문양을 달아 에코백을 만들거나 아예 옷을 만들기도 한다. 매주 사흘은 재봉틀 카페를 찾는다는 최정선 씨는 “재봉틀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다. ‘재봉틀 카페’를 운영하는 김윤주 씨는 “재봉틀을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워하는 직장인들이 잠시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이곳을 찾아 1~2시간씩 작업을 하고 간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재봉틀로 직접 옷이나 소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문화의 확산은 출판시장에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 공예·DIY 분야 도서 가운데 ‘옷 만들기’ 도서 매출의 비중이 2014년(7.2%)보다 두 배 이상(16.5%)으로 늘었다. 일본의 옷 만들기 강의를 정리한 번역서 ‘패턴 학교’(이아소) 시리즈 등이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물건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먹는 샌드위치에 넣을 상추 등 채소를 직접 재배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식물공방 카페’도 등장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카페가 단순히 사람을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는 곳에서 머물면서 무언가 창작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숍인숍(Shop In Shop·매장 안에 매장을 여는 것)이나 상이한 공간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로 카페는 계속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동물들의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이 있다고? 한마디만이라도 동물의 말을 이해하는 박사님이라면, 우리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실 거야. 다 같이 큰 정원이 있는 박사님의 집으로 가보자!” 귀엽고도 따뜻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둘리틀 박사의 모험’ 시리즈 12권이 ‘둘리틀 박사와 초록 카나리아’ ‘둘리틀 박사의 퍼들비 모험’을 끝으로 국내에 처음 완간됐다.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시리즈는 저자가 본인의 자녀들에게 편지로 전하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가 단순하면서도 푸근한 느낌의 삽화를 직접 그렸으며, 모험 이야기에는 자녀들에게 전하고픈 동심과 애정이 묻어난다. 작품 속 둘리틀 박사의 동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초판부터 전 세계 독자에게 큰 공명을 불러왔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 경고하는 그의 부드러운 일침이기도 했다. 이 책을 보면서 자란 동물학자 제인 구달과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 시리즈를 인생의 책으로 꼽으며 ‘둘리틀 키즈’임을 자처하고 있다. 특히 도킨스는 “현재 내 영웅이 찰스 다윈이라면 어린 시절의 영웅은 둘리틀 박사”라고 말할 정도다. 초록 카나리아는 이전 시리즈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작은 카나리아인 ‘피피넬라’의 이야기다. 새가 박사를 만나 힘차게 울부짖고(노래하고) 마침내 오페라 공연까지 마친다는 내용이다. 한 마리의 새에서 시작된 상상력은 한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풍부하고 박진감 넘친다. 퍼들비 모험에서는 둘리틀 박사가 동물들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을 돌보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다양한 종의 동물에 대한 촘촘한 묘사와 에피소드가 흥미를 끈다. 유쾌하면서도 다소 엉뚱한 둘리틀 박사의 모험은 사실 저자 휴 로프팅이 겪고 목격한 안타깝고 비참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그는 1886년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공학 학위를 받은 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전쟁의 비참함을 겪으며 그는 인간들로 인해 아무 죄도 없이 더욱 비참한 상황에 놓인 동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군인이 다치면 치료를 받거나 적정한 보호 관리를 받지만 부상당한 말과 개들은 그저 길에 내버려질 뿐이었다. 그는 동물들의 눈에서 아픔을 읽었고, 아이들에게는 이 안타까움을 낙천적 이야기로 풀어내기로 했다. 모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은 건 작가의 자녀만은 아니었다. 독자들은 1928년 8번째 시리즈 이후 추가 연재를 요청했고, 결국 12권의 시리즈는 마무리된다. 둘리틀 박사의 이야기는 최근에도 끊임없이 모티브로 남아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2020년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참여하는 할리우드 영화로 재탄생한다. 다만 둘리틀 박사의 모험 중에는 아프리카 인종이나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시선이 있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편집자가 일러두었듯 “그 결점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해당 내용은 후대까지 감동을 전하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90년대 미국 인기 드라마 ‘베벌리힐스의 아이들’에서 주연인 딜런 맥케이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던 배우 루크 페리가 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52세. 미국 언론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뇌졸중으로 입원해 투병하다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페리는 1990년대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를 무대로 고교생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베벌리힐스의 아이들’에 출연하며 섀넌 도허티 등과 함께 세계적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드라마는 1990년부터 10년간 시리즈로 이어졌으며 한국에서도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고인은 2017년 미국 드라마 ‘리버데일’을 비롯해 ‘제5원소’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루크 페리의 별세 소식을 접한 배우와 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며 미국 전역에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유명한 노래로 구성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늘 위험부담이 따른다. 관객은 모든 넘버에서 원곡 가수와 배우의 가창력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노래를 소화하는 배우의 호흡과 감정 연기까지도 견주기 마련이다. 뮤지컬 ‘그날들’은 노련한 편곡에 맞춰 중후한 합창과 절도 있는 군무로 위험부담을 극복해냈다. 작품은 청와대 경호원들이 2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라진 ‘그날’의 기억을 좇는 내용이다. 사랑과 우정, 잊혀진 소중한 가치 등 보편적 내용을 고 김광석의 노래 20여 곡의 노랫말에 비교적 매끄럽게 맞췄다. 2013년 초연 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편곡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지만 점수를 줄 만하다. 대체로 구슬픈 감성을 바탕으로 읊조리듯 노래하고 이따금씩 감성이 폭발하는 김광석 노래를 스토리에 맞게 이어 붙였다. 슬픈 단조의 선율도 밝은 분위기의 장조 화음으로 바꿔 경쾌한 느낌으로 표현했다. 감성이 정점에 달한 순간에는 통기타로만 연주한 원곡에 강한 비트를 입혀 감성을 극대화한다. 뮤지컬 무대가 보여줄 수 있는 격정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배우들의 군무와 합창도 매력을 더한다. 무대 장치와 배경이 비교적 빠른 템포로 변하는데 그에 맞게 배우 10여 명이 나와 경호원, 군인 등을 연기하며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인다. 합창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사실 합창은 원곡과 비교될 수 있는 지점에서 위험부담을 상쇄하는 포인트다. 배우들이 무반주나 원곡대로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가창력이 아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을 2, 3명 이상이 합창으로 소화할 때는 웅장한 느낌을 준다. 시공간을 오가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배우와 무대효과로 이를 충분히 짚고 넘어가며 이해를 돕는다. 극 중간중간 공감할 수 있는 유머 요소도 넣어 눈물을 흘리다 다시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도 있다. 막이 내린 뒤에도 김광석 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든다. 유준상 엄기준 이필모 서현철 오종혁 등 출연. 5월 6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6만∼13만 원. 8세 관람가.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출산 뒤에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이전보다 수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발레리나로 무대에 오르면서 결혼과 출산은 결코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미국 현대무용의 대가 ‘마사 그레이엄’은 무용수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표현했다. 몸을 쓰는 무용의 특성상 그 죽음은 다른 장르에 비해 일찍 찾아온다. 발레리나도 마찬가지다.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지난달 22일 만난 황혜민(41), 강미선(36), 김유선(33)은 “결혼, 출산은 모든 발레리나의 공통적 고민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황혜민은 2017년 은퇴 후 현재 출산을 준비 중이며, 강미선은 결혼 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유선은 올해 7월 일반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이 마냥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결혼 후 집안일 등으로 이전처럼 연습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몸이 무거워지고 처지는 느낌’을 받는 건 한순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들은 발레 외에도 필라테스, 자이로토닉 등 운동에도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강미선은 “허리 꺾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던 저도 결혼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꺾는 각도가 이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근유연성 운동을 끊임없이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결혼=은퇴’가 관행이었던 발레계에는 현역 활동 중 결혼하는 발레리나가 점차 늘고 있다. 그럼에도 출산은 여전히 은퇴 이후의 고려 대상이다. 앞서 최태지 임성남 김순정 임혜경 박선희 발레리나가 출산 후 무대에 오른 적도 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은 “출산 후에는 골반을 비롯해 체형이 바뀌어 점프력이 낮아지고 다리를 길게 뻗는 동작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발레리나들 사이에선 “동작이 이전과 달라진 것 같다”며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모유 수유도 체형 변화 때문에 사실상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황혜민은 “먼저 출산을 경험한 선배들이 피눈물이 날 정도로 노력했다는 얘기를 듣고 쉽게 용기를 내진 못했다”고 밝혔다. 강미선과 김유선은 “아이를 낳고 나면 체력은 물론이고 몸의 선이 좋지 않게 변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평생 발레와 무대만을 바라보며 “은퇴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던 그들. 개인차가 있지만 대부분 결혼, 출산 시점과 맞물려 30대 후반부터 마흔 살 전후로 은퇴를 고려한다. 해외 발레단에는 정년을 정해 놓거나 ‘종신 무용수’를 두는 곳도 있다. 이들은 “여자 무용수로서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알기에 매번 눈물 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퇴 후 울적한 마음에 한동안 발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던 황혜민은 “여자 후배들에게 ‘결혼, 출산을 먼저 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도 하지만 저 역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대 위 매 순간이 소중해 지금과 동일한 선택을 했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발레리나에게 결혼은 힘들기만 한 걸까.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하던 이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함께 호흡을 맞추던 파트너와 결혼한 황혜민, 강미선은 걱정했던 것보단 장점이 많다고 했다. “저와 파트너가 함께 돋보일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게 됐죠. 같은 동작을 해도 더 힘차게 점프하며 서로를 끌어줬어요. 감정 연기는 훨씬 수월해졌고요.”(강미선) “발레단에서 일상을 함께하고, 연습이 끝난 뒤에도 편하게 작품 얘기를 주고받으니 시너지가 생겼어요.”(황혜민)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출산 뒤에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이전보다 수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발레리나로 무대에 오르면서 결혼과 출산은 결코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미국 현대무용의 대가 ‘마사 그레이엄’은 무용수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표현했다. 몸을 쓰는 무용의 특성상 그 죽음은 다른 장르에 비해 일찍 찾아온다. 발레리나도 마찬가지다.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UBC)에서 지난달 22일 만난 황혜민(41), 강미선(36), 김유선(33)은 “결혼, 출산은 모든 발레리나의 공통적 고민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황혜민은 2017년 은퇴 후 현재 출산을 준비 중이며, 강미선은 결혼 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유선은 올해 7월 일반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이 마냥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결혼 후 집안일 등으로 이전처럼 연습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몸이 무거워지고 처지는 느낌’을 받는 건 한순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들은 발레 외에도 필라테스, 자이로토닉 등 운동에도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강미선은 “허리 꺾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던 저도 결혼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꺾는 각도가 이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근유연성 운동을 끊임없이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결혼=은퇴’가 관행이었던 발레계에는 현역 활동 중 결혼하는 발레리나가 점차 늘고 있다. 그럼에도 출산은 여전히 은퇴 이후의 고려 대상이다. 앞서 최태지 임성남 김순정 임혜경 박선희 발레리나가 출산 후 무대에 오른 적도 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은 “출산 후에는 골반을 비롯해 체형이 바뀌어 점프력이 낮아지고 다리를 길게 뻗는 동작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발레리나들 사이에선 “동작이 이전과 달라진 것 같다”며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모유 수유도 체형 변화 때문에 사실상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황혜민은 “먼저 출산을 경험한 선배들이 피눈물이 날 정도로 노력했다는 얘기를 듣고 쉽게 용기를 내진 못했다”고 밝혔다. 강미선과 김유선은 “아이를 낳고 나면 체력은 물론 몸의 선이 좋지 않게 변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평생 발레와 무대만을 바라보며 “은퇴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던 그들. 개인차가 있지만 대부분 결혼, 출산시점과 맞물려 30대 후반부터 마흔 살 전후로 은퇴를 고려한다. 해외 발레단에는 정년을 정해 놓거나 ‘종신 무용수’를 두는 곳도 있다. 이들은 “여자 무용수로서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알기에 매번 눈물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퇴 후 울적한 마음에 한동안 발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던 황혜민은 “여자 후배들에게 ‘결혼, 출산을 먼저 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도 하지만 저 역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대 위 매순간이 소중해 지금과 동일한 선택을 했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발레리나에게 결혼은 힘들기만 한 걸까.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하던 이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함께 호흡을 맞추던 파트너와 결혼한 황혜민, 강미선은 걱정했던 것보단 장점이 많다고 했다. “저와 파트너가 함께 돋보일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게 됐죠. 같은 동작을 해도 더 힘차게 점프하며 서로를 끌어줬어요. 감정 연기는 훨씬 수월해졌고요.”(강미선) “발레단에서 일상을 함께 하고, 연습이 끝난 뒤에도 편하게 작품 얘기를 주고받으니 시너지가 생겼어요.”(황혜민)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잠은 피로 해소, 체력 보충, 성장호르몬 분비 촉진 역할을 한다. 인간은 평생 3분의 1은 자는 데 시간을 보내고, 숙면은 삶의 질을 좌우한다. 잠을 방해하는 자기 전 스마트폰 검색은 지양하는 게 좋다는 정도는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세계적 신경 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저자는 잠에 대한 이 같은 상식이 오히려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한다. 잠을 인생 전체와는 무관한 별도의 시간인 것처럼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것. 잠을 줄이려는 현대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일단은 자는 게 맞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생에서 양적, 질적으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행위가 수면이라며 저자는 잠을 과학적으로 차근차근 풀어냈다. 수면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흔히 알려진 ‘취침 전 술 한잔’은 사실 잠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잠을 방해한다. 알코올이 뇌에 들어올 때 온몸에 나타나는 진정 상태는 수면 상태와 명백히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수면을 방해한다. 밤에 시시때때로 잠을 깨게 만들고 램 수면 단계를 차단해 버린다. 강제로 잠에서 깨는 행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인위적으로 수면을 중단하는 종은 동물 중 인간이 유일하다. 이는 산업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시간에 맞춰 공장에 가도록 만든 사회 규율 때문이라고 봤다. 자연스럽게 잠에서 깼을 때와 사이렌, 자명종 소리로 기상할 때 몸의 상태는 천지 차이다. 심지어 알람 소리는 사람의 심혈관에 무리한 충격을 반복적으로 가한다고 말한다. 그는 “건강과 활력을 주는 가장 강력한 묘약과 하나가 되면 낮에 깨어 있는 느낌마저도 새로울 것”이라며 독자들을 수면의 세계로 초대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배우 송혜교(사진)가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1859∼1907) 기념관’에 한글 간판과 안내판을 기증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역사적인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송 씨가 비용을 대 또 다른 의미 있는 일을 시작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서 교수는 또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에 제대로 된 한글 간판이 없거나 낡아서 교체가 필요한 곳이 꽤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은 ‘기획 서경덕, 후원 송혜교’ 협력 프로젝트를 지속할 계획이다. 2013년에도 이준 열사 기념관에 헤이그 특사 3인(이준 이위종 이상설)의 청동 부조(가로세로 1.7×1.2m)를 제작해 기증했다. 또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국어 안내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이를 ‘한국의 역사’ 홈페이지에도 게시해 왔다. 서 교수는 “우리가 유적지를 자주 방문하는 것이 독립운동 유적지를 지켜나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며 관심을 당부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후덜덜…, 이놈의 비루한 몸뚱이.”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 연습실. 어느새 주위 시선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홀로 벌이는 중력과의 싸움. 온몸의 경련을 느끼면서도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스텝을 계속 바꿔도 쉼 없이 흔들리는 무게중심. 머리로는 알겠는데, 팔과 다리는 영화 ‘그래비티’ 속 궤도를 이탈한 우주선이었다. 이따금 눈에 들어오는 연습실 거울 속의 나. 뻣뻣한 몸이 원망스러웠다. 서울시무용단이 봄 정기공연을 약 100일 앞두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무대 위 무용수의 우아한 동작은 언제나 찬사의 대상. 하지만 무대에 오르기까지 누구보다 격렬하게 땀을 흘리는 노력은 간과되곤 한다. 무용이 뭔지 ‘티끌’ 정도라도 맛볼 수 있다면. 25일 기자는 호기롭게 ‘일일 단원’으로 참여해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연습 1시간 전. 벌써 단원들은 검은색 연습복을 입고 스트레칭에 분주했다. 근데 왜 하나같이 검은색 옷을 입는 걸까. 어벙한 질문에 단원들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몸이 가장 슬림해 보이잖아요.” 오전 10시, 몸 풀기 수업인 ‘최현 기본’으로 연습이 시작됐다. 전통무용 대가인 최현 선생의 전통 춤 움직임을 응용해 만든 수업이란다. 이 과정을 도입한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은 “현대무용이 위로 솟는 느낌이라면, 한국무용은 중력에 따라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라며 “둘을 융합해야 다채로운 안무와 작품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음악 없이 가볍게”라더니, 몸 풀다 영혼이 빠져나갈 뻔했다. 5분도 안 돼 엄지발가락부터 경련이 일어났다. 쓰지 않던 신체 근육을 혹사한 탓일까. 괜히 미열도 났다. 뭣보다 쉬어가는 타이밍인 줄 알았던 ‘찰나의 정지 동작’이 죽을 맛이었다. 30분쯤 쭈뼛거렸을까. 갑자기 정 단장이 “이제 자진모리로 가자”고 외쳤다. 머릿속에서 꽹과리가 울리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역시나. 미친 장단을 따라 돌고 또 돌았다. 어지럼증을 느끼며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라는 후회가 위장을 타고 오르기 직전, 음악이 멈췄다. 한 단원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벼운’ 몸 풀기는 끝났어요.” 이후 김성훈 안무가 지도 아래 본격적인 팀별, 개인별 안무 연습이 진행됐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체험은커녕 흉내도 낼 수 없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동작인가 싶은 고난도 자세가 쏟아졌다. 김 안무가는 “무용은 몸으로 말하는 언어이니, 그게 한국어든 영어든 독창적인 외계어를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뭔 소린지 못 알아듣는 자신이 고마웠다. 그렇게 오후 5시까지 단원들은 쉼 없이 달렸다. 그러고도 몇몇은 오후 9시에도 연습을 멈출 줄 몰랐다. 눈길을 끄는 건 먹고 마시는 양. 쉬는 시간이면 정수기 앞에서 물을 몸에 쏟아 넣었다. 초콜릿도 자주 먹고, 식사량도 엄청 많았다. “끊임없이 수분, 당분, 에너지 보충을 안 하면 몸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서울시무용단은 지난달 정 단장이 새로 부임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는 작업”이 한창이다. 3월까지 대본 및 캐스팅 작업을 마치고, 새로 활용할 안무를 짠다. 4월부터 공연 안무를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인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모든 단원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연습 도중 여성, 남성 단원이 나뉘어 춤추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정 단장은 “남녀의 거리감으로 ‘미투 운동’을 표현해 봤다”고 귀띔했다. 동작 하나에도 현실적 고민을 담는 과정이리라. 하지만 솔직히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정 단장은 “설명 없이도 관객이 이해하도록 하는 게 바로 무용수들의 몫”이라 답했다. ‘창작무용의 산실’이라 불려온 서울시무용단의 하루는 그렇게 뜨겁게 흘러가고 있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후덜덜…, 이 놈의 비루한 몸뚱이.”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 연습실. 어느새 주위 시선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홀로 벌이는 중력과의 싸움. 온몸의 경련을 느끼면서도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스텝을 계속 바꿔도 쉼 없이 흔들리는 무게중심. 머리로는 알겠는데, 팔과 다리는 영화 ‘그래비티’ 속 궤도를 이탈한 우주선이었다. 이따금 눈에 들어오는 연습실 거울 속의 나. 뻣뻣한 몸이 원망스러웠다. 서울시무용단이 봄 정기공연을 약 100일을 앞두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무대 위 무용수의 우아한 동작은 언제나 찬사의 대상. 하지만 무대에 오르기까진 누구보다 격렬하게 땀을 흘리는 노력은 간과되곤 한다. 무용이 뭔지 ‘티끌’ 정도라도 맛볼 수 있다면. 25일 기자는 호기롭게 ‘일일 단원’으로 참여해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연습 1시간 전. 벌써 단원들은 검은 연습복을 입고 스트레칭에 분주했다. 근데 왜 하나같이 검은 색을 입는 걸까. 어벙한 질문에 단원들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몸이 가장 슬림해 보이잖아요.” 오전 10시, 몸 풀기 수업인 ‘최현 기본’으로 연습이 시작됐다. 전통무용 대가인 최현 선생이 전통 춤의 움직임을 응용해 만든 수업이란다. 이 과정을 도입한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은 “현대무용이 위로 솟는 느낌이라면, 한국무용은 중력에 따라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라며 “둘을 융합해야 다채로운 안무와 작품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음악 없이 가볍게”라더니, 몸 풀다 영혼이 빠져나갈 뻔했다. 5분도 안 돼 엄지발가락부터 경련이 일어났다. 쓰지 않던 신체 근육을 혹사한 탓일까. 괜히 미열도 지끈거렸다. 뭣보다 쉬어가는 타이밍인 줄 알았던 ‘찰나의 정지 동작’이 죽을 맛이었다. 30분쯤 쭈뼛거렸을까. 갑자기 정 단장이 “이제 자진모리로 가자”고 외쳤다. 머리 속에서 꽹과리가 울리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역시나. 미친 장단을 따라 돌고 또 돌았다. 어지럽다가 욕지기가 올라왔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후회가 위장을 타고 오르기 직전, 음악이 멈췄다. 한 단원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벼운’ 몸 풀기는 끝났어요.” 이후 김성훈 안무가 지도 아래 본격적인 팀별, 개인별 안무연습이 진행됐다. 솔직히 털어놓는다면, 체험은커녕 흉내도 낼 수 없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동작인가 싶은 고난이도 자세가 쏟아졌다. 김 안무가는 “무용은 몸으로 말하는 언어니, 그게 한국어든 영어든 독창적인 외계어를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뭔 소린지 못 알아듣는 자신이 고마웠다. 그렇게 오후 5시까지 단원들은 쉼 없이 달렸다. 그러고도 몇몇은 밤 9시에도 연습을 멈출 줄 몰랐다. 눈길을 끄는 건 먹고 마시는 양. 쉬는 시간이면 정수기 앞에서 물을 몸에 쏟아 넣었다. 초콜릿도 자주 먹고, 식사량도 엄청 많았다. “끊임없이 수분, 당분 에너지 보충을 안 하면 몸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서울시무용단은 지난달 정 단장이 새로 부임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는 작업”이 한창이다. 3월까지 대본 및 캐스팅 작업을 마치고, 새로 활용할 안무를 짠다. 4월부터 공연 안무를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인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모든 단원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연습 도중 여성, 남성단원이 나뉘어 춤추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정 단장은 “남녀의 거리감으로 ‘미투 운동’을 표현해봤다”고 귀띔했다. 동작 하나에도 현실적 고민을 담는 과정이리라. 하지만 솔직히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정 단장은 “설명 없이도 관객이 이해하도록 하는 게 바로 무용수들의 몫”이라 답했다. ‘창작무용의 산실’이라 불려온 서울시무용단의 하루는 그렇게 뜨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여당 의원과 야당 총재의 비서가 왜 같은 방에 있죠?” 국회에서 여야 대립이 한창이던 어느 날, 런던 웨스트민스터 호텔 6층 13번 방에서는 때아닌 ‘여야 화합’이 이뤄진다. 아무도 몰래 방을 찾은 여당 유력 의원 ‘리처드’와 야당 총재의 비서 ‘제인’이 사랑을 속삭이는 순간, 제인은 방 테라스에서 한 남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들은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불륜 관계가 알려질까 두려워 알릴 수 없는 상황.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리처드의 직속 비서 ‘조지’가 나타난다. 하지만 리처드와 제인의 배우자까지 호텔에 깜짝 등장하며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간다.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코미디 코드’가 대학로 무대에서도 흥행을 이끌고 있다. 연극 ‘룸 넘버 13’은 영국 작품을 각색했는데, 극의 내용 자체가 흥미롭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배우들의 빠른 호흡과 유머 코드가 더 돋보이는 연극이다. 객석에선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막이 내린 뒤 “이것은 개그 프로인가, 연극인가”라는 영화 ‘극한직업’의 패러디 대사가 떠오를 정도다. 뭣보다 불륜 관계와 시체의 존재를 알고 있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웃음 포인트다. 수상한 낌새를 챈 호텔 직원이나 외부 사람에게 시체가 발각되면 “과음해서 잠이 든 형”이라고 둘러댄다. 위기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방 안을 뛰어다니며 시체를 숨기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일삼는 연기는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타율이 높다. 무대 공간을 활용한 구성도 돋보인다. 공연 내내 작품의 전체적 공간은 계속 13번 방이지만, 방에 설치된 옷장이나 테라스 등의 공간도 따로 설정했다. 이런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객석에선 보이지 않아 관객의 상상에 맡겨지는데, 방 안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다만 일부 상황이 반복되고, 슬랩스틱 동작은 부자연스럽다. ‘웃음을 위한 웃음’이 예상되는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식은땀을 흩뿌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웃음으로 극복해낸다. 잘되는 작품은 롱런하는 이유가 있다. 임수형 서지은 장민수 김용호 등 출연. 오픈런.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타시티 콘텐츠룸. 전석 3만 원. 13세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한류가 재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이나 국내 창작 뮤지컬의 라이선스만을 수출하던 방식을 넘어 공동 제작, 제작 투자, 케이팝(K-pop)과 뮤지컬을 결합한 마케팅도 등장했다. CJ ENM은 뮤지컬 본고장인 미국 브로드웨이를 겨냥했다. 6월 공연할 ‘물랑루즈’의 제작자로 참여했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투자해 한국 공연권은 물론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공동 제작 권리를 갖는다. 뮤지컬 ‘어거스트 러쉬’는 자체 제작해 올해 시카고에서 선보인 뒤 내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방침이다. 과거 한국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는 ‘훈장’을 달고 국내 관객들을 대상으로 실질적 수익을 냈던 방식과 차이가 있다. 뮤지컬 스타 발굴을 통해 해외 진출에 나서기도 한다. 오디컴퍼니는 케이팝과 뮤지컬을 결합한 ‘팝시컬(Popsical)’ 그룹 ‘티버드’와 ‘핑크레이디’를 선보였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팝시컬 프로젝트의 활동 영역이 해외 무대로 넓어지면, 팝시컬 그룹에 관심 있는 해외 관객이 한국 뮤지컬에도 관심을 갖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뮤지컬을 들여와 업그레이드한 뒤 해외에 역수출하기도 한다. EMK뮤지컬컴퍼니는 독일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헝가리 작곡가 레바이 실베스테르가 만든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다시 제작해 헝가리로 수출한 바 있다. 아서왕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엑스칼리버’는 국내 공연 후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EMK뮤지컬컴퍼니는 모든 작품을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다는 전략이다. 뮤지컬 ‘라이온 킹’과 ‘스쿨 오브 락’을 국내로 들여온 에스앤코는 아시아권 국가의 도시별 월드투어를 기획하는 ‘투어 프로듀서’로 나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미 해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국내 창작 뮤지컬의 경우, 완성도를 더 높이고 현지 관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빈센트 반 고흐’를 일본과 중국에 진출시킨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작품들이 더 흥행할 수 있게 계속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창구도 만들어 실시간으로 현지 공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사 ‘라이브’는 중국 배우와 제작진이 한국을 찾아 기획 단계부터 협업한 뮤지컬 ‘랭보’를 한국 초연 43일 만에 해외에 진출시켰다. ‘팬레터’, ‘마이 버킷리스트’ 역시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는 “초창기 국내 뮤지컬은 한류 스타에 의존하고 진출하는 지역도 일본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선공연 하고 콘텐츠 개발, 자본 투자를 하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며 “악보나 대본만 판매하는 식으로 수출 방식을 다변화하고 콘텐츠, 투자 등에 대한 새로운 실험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