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북한 비핵화를 놓고 담판을 벌이고 있는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8일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마주 앉았다. 회담 결과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 내로 두 사람이 합의한 초안을 갖고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미 워싱턴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각각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담판을 앞두고 각 정상에게 정상회담 진행을 위한 최종 결재를 추진하며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 대사를 대표로 한 미국 협상팀은 이날 오전 판문점에서 이틀째 최선희가 이끄는 북측 협상팀을 만났다. 청와대는 협상을 위해 방한한 미 대표단에 경호처 소속 차량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7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미국 협상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의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굉장한 잠재력을 갖고 있고, 언젠가 경제·금융 분야에서 훌륭한 국가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판문점 협상에서 북한에 핵무기 해외 반출을 통한 신속한 핵 폐기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비핵화에 상응하는 보상책으로 불가침조약 체결과 테러지원국 해제, 경제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문점 회동은 싱가포르 담판을 위한 1차전 성격이다. 복수의 한미 외교 소식통은 “김 대사와 최 부상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루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북-미 핵심 인사들의 상호 국가 방문이 될 것”이라며 “비핵화 로드맵은 북-미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미 평양을 방문했던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북측에서 비핵화 논의를 실무 총괄하는 김영철이 백악관을 방문해 마지막 합의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과 평양의 재가를 받은 합의문을 바탕으로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8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뒤 일본 기자단에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미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주필리핀 미대사가 이끄는 미국 협상팀이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측 협상팀을 만나 6·12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26일 전격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자마자 하루 만에 북-미가 본격 실무 접촉을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한미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 대사가 이끄는 협상팀은 27일부터 사흘간 판문점에서 최선희가 이끄는 협상팀과 실무 조율을 할 계획이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김 대사는 미 행정부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특히 최선희와 오랜 기간 6자회담 파트너로 함께해 서로를 잘 안다. 김 대사가 우리말에 능통한 만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 보인다. 이에 따라 북-미 간에 비핵화 방식과 보상 체계 등을 놓고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을 마치고) 서울에 와 있다”고 확인했다. 앞서 김정은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북-미 회담이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문 대통령에게 ‘원포인트 회담’이라는 SOS를 요청해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통해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단하고 실천할 경우 북한과의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김정은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그제(25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며 이번 회담이 김정은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25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다음 날이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에게 위임한 담화문에서 몸을 낮추며 미국과의 대화를 요청한 데 이어 곧바로 문 대통령에게 ‘깜짝 회담’을 제안하면서까지 회담 재개 의지를 밝힌 것. 김정은은 26일 문 대통령과 만난 직후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결과도 만들고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듣고), 북남관계 문제도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도 “(김 위원장이) 6월 12일로 예정돼 있는 조미 수뇌회담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시면서 역사적인 조미 수뇌회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북한 매체가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6월 12일로 보도한 것은 처음이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손효주 기자}
김정은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당시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대화를 주도했다. 화통하게 웃고 농담까지 섞어가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한 달 만인 2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재회에선 한층 차분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모두 발언을 보면 유머러스한 농담도 없었다. 검은 인민복을 입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김정은은 발언할 때나 들을 때나 진지한 표정으로 문 대통령의 눈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급박한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우리 대통령을 초청한 만큼 최대한 예를 갖춘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내가 경청할, 회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회동과 달리 대화 도중 눈을 자주 깜박이거나 시선 이동이 잦은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대신 꼼꼼하게 상황을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김정은은 배석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에게 “(회담 제안 후 열린 것이) 이게 하루 만이지?”라고 물어보기도 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가 매우 잘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싶다.” 26일(현지 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베네수엘라에서 풀려난 미국인 억류자를 환영하는 행사를 진행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회동이 끝나가던 무렵 기자들이 질문도 하기 전에 이 말을 불쑥 꺼냈다. 그는 “우리는 6월 12일 싱가포르를 살펴보고 있다”며 “(회담을 추진 중인 날짜는)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놓고 당초 예정대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평가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남북 정상 간에) 대화가 매우 잘 진행됐다”는 말을 네 차례나 반복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긍정적인 대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12일 회담 강행이 불가능하다’고 보도한 뉴욕타임스(NYT)에 대해 “또 틀렸다”며 비난하는 글을 적었다. 6월 12일 회담 개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 김, 통일각 실무 협상 후 “서울로 돌아왔다”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임무를 맡은 미국 측 선발대도 기존 일정대로 싱가포르로 떠났다. AP통신은 26일 “아직 열릴 가능성이 있는 북-미 정상회담의 실무 협의를 준비하기 위해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이끄는 선발대가 27일 싱가포르로 간다”고 전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직원 30여 명이 함께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이긴 부실장은 약 2주 전 싱가포르에서 북측과 만나려다 바람을 맞은 적이 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24일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아 협상할 때 다루는 의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기 위해선 실무 단계에서의 실제적 대화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며 실무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대표였던 성 김 현 주필리핀 미대사가 이끄는 별도의 실무 협상팀은 남북 정상회담 다음 날인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측 실무팀과 전격적으로 만나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의제 등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희는 24일 담화를 내고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비난해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미 정상회담 취소라는 초강수를 두도록 유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최선희를 미 행정부 대표적인 북핵통인 김 대사가 만나 이젠 비핵화 의제를 논의하는 것. 주한 미대사를 지낸 김 대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지금 서울에 머물고 있다”며 통일각에서 북-미 실무회담을 마친 후 서울로 복귀했음을 확인했다. 김 대사는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태차관보, 앨리슨 후커 미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담당 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 내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를 이끌고 통일각으로 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에도 동행했다. 김 대사와 실무팀은 29일까지 판문점에서 실무 접촉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백악관 내 의견 통일’ 강조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 행정부 내엔 북한을 다루는 방법을 두고 조금도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대화파’ 폼페이오 장관과 ‘초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비핵화 문제로 심각한 의견 충돌을 빚고 있다는 등의 언론 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백악관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통보한 24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나서 논란이 된 볼턴 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발언을 적극 옹호하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이날 그는 “(리비아 모델과 관련된) 오해가 많다. 이는 재빠르고 결단력 있는 외교적 노력을 뜻한다. 카다피가 죽은 것은 관련 협상이 끝난 뒤인 2011년”이라고 주장했다. 핵무기와 관련 물질 등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것만을 ‘리비아 모델’로 봐야 하며 추후에 발생한 정권 붕괴를 이와 엮는 것은 곡해라며 볼턴 보좌관을 변호한 것이다. 한기재 record@donga.com·신진우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24일 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 후 원산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 밤 12시를 앞두고 한국공동취재단의 한 기자가 화장실로 이동할 때 닫힌 객차 문 너머로 북측 인사들이 다소 화난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트럼프가 회담을 취소했다”는 한 인사의 목소리도 들렸다. 통신 기기를 사용하지 못한 한국 기자단은 이렇게 우연히 북-미 정상회담 결렬 소식을 접했다. 미 CNN은 북측 관계자들이 회담 결렬 소식에 다소 ‘불편하고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분주하게 상부와 전화 보고를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윌 리플리 기자는 “(기자들 앞에선) 예상과 달리 절제된 모습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상부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는지 원산 호텔로 돌아와 한국 기자들 곁으로 왔다. 취재진이 호텔에 도착해 노트북을 켜고 관련 기사를 확인하자 모니터 앞에 다가와 기사를 함께 읽기도 했다. 다만 회담 결렬과 관련한 질문에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기자단은 애초 25일 오후 원산 갈마지구로 외출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취소 통보를 받았다. 원산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중 개발하는 곳으로 기자단에게 적극 홍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 일부 외신은 “호텔에서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창문 밖을 보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호텔 주변 경비가 강화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북측은 일정 취소 등의 상황 설명은 하지 않았다. 기자단은 26일 오전 원산을 떠나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귀국길에 오른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길주·원산=공동취재단}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폭파 쇼’에 나선 24일, 오전 폭파를 마치고 찾아온 점심시간 다국적 기자단의 눈에 군 막사 처마에 달린 제비집이 포착됐다. 한 기자가 “제비는 방사능에 민감하지 않은가”라고 묻자, 북측 관계자는 “그만큼 (이곳에) 방사능이 없다는 얘기다. 방사능에 민감한 개미도 여기에 엄청 많다”고 답했다. 3번 갱도 앞 개울에선 동행하던 북한 관영 조선중앙TV 기자가 한국 취재진에 개울물을 마셔보라며 얘기했다. “파는 신덕샘물은 pH(산도) 7.4인데 이 물은 pH 7.15라 마시기에 더 좋다. 방사능 오염은 없다.” 북측은 이날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과 관련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들의 질의에 “문제없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풍계리 일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귀신병’이 돈다는 소문을 의식한 듯했다. 국제사회는 갱도 지하에 축적된 방사능 오염물질이 외부로 흘러나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북한은 풍계리가 안전함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했다. 북측 관계자뿐만 아니라 기자단에 방호복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나 쓸 법한 노란색 안전모만 하나씩 지급됐다. 그 대신 실제 위해성을 측정할 방사선량 측정기는 압수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이번 폭파로 인한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갱도 내부 암반에 구멍을 뚫고 폭약을 설치해 터뜨리는 내폭 방식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4번 갱도를 폭파할 때 중간중간 상세히 설명을 하며 기자단의 이해를 도왔다. 폭파 전 갱도 안을 공개하고, 폭파 이후 현장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당초 약속했던 전문가 참여를 거부한 것을 의식한 듯 ‘검증에 성의를 보였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25일 공개된 폭파 영상을 보면 북한이 핵실험장 내 갱도를 재사용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파하진 않았을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갱도 입구 폭파 수준으로 폐기 흉내만 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북한은 갱도 폭파에 앞서 전체 길이가 1∼2k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갱도 중 입구 주변만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1∼2km에 달하는 갱도 내부를 모두 폭파해 붕괴시켰다면 후폭풍이 너무 커서 기자단이 폭파 현장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관람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측 관계자는 “5차례 성과적 핵실험을 한 갱도”(2번 갱도) “핵실험을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된 갱도”(3번) “큰 핵실험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특별히 준비해뒀던 갱도”(4번) 등으로 각각의 갱도 폭파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비핵화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의미 있는 ‘폭파 쇼’를 보였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풍계리의 마지막 폭파가 있은 지 6시간여 만에 김정은에게 한껏 격식을 차린 공개편지를 보내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화약 냄새가 채 가시기 전에 풍계리 폭파 쇼는 빛이 바랬다. 길주=외교부 공동취재단 / 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지진이 난 듯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입구에 있던 흙과 부서진 바위 등은 물에 젖은 비누처럼 우수수 흘러내렸다. 굉음에 이어 하늘로 솟아오른 연기는 시야를 가렸다. 뿌옇게 사방을 둘러싼 연기는 해발 2000m가 넘는 만탑산의 자태까지 순간 가렸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24일 폭파했다. 폭파에 앞서 갱도 내부까지 전격적으로 다국적 기자단에 공개했다. 이날 오전 11시 폭파 작업에 나선 북측은 5시간 넘게 ‘불꽃 폭파쇼’를 이어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속한 비핵화 행보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란 평가와 함께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에 이은 ‘비핵화 쇼 2탄’ 아니냐는 말도 현장에서 나왔다. 전날 숙소인 원산에서 출발한 5개국 공동취재단은 기차로 10시간여를 이동해 이날 오전 풍계리 현지에 도착했다. 북한은 오전 11시 가장 먼저 북쪽의 2번 갱도를 폭파했다. 2∼6차 핵실험이 이어진 2번 갱도는 구조가 구불구불해 폭파하기 까다로운 곳이다. 북한은 폭파 전 취재진을 갱도로 데려가 갱도 안에 설치된 폭발물을 확인하도록 했다. 북한은 이날 3개 갱도 모두 폭파에 앞서 취재진이 갱도 내부를 보도록 했다. 미국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약 35m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설치된 축구공 모양의 폭발물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갱도를 본 취재진은 갱도에서 500m 이상 떨어진 안전지대로 이동해 폭발을 직접 지켜봤다. 2번 갱도에선 2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4명의 군인이 폭파 작업에 나섰다.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촬영 준비됐냐”고 물은 뒤 ‘하나 둘 셋’을 센 후 폭파 지시를 내렸다. 입구 쪽에서 첫 폭음이 들린 뒤 안쪽에서 2번 더 폭음이 울렸다. 폭파 후에는 취재기자들을 갱도 쪽으로 다시 안내해 갱도 입구가 완전히 붕괴된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도록 했다. 3시간 후인 오후 2시 17분에는 서쪽 4번 갱도로 이동해 단야장(제련시설)까지 함께 폭파했다. 이어 오후 2시 45분 생활건물 등 5개 지원시설 폭파 작업을 하고 오후 4시 2분 ‘하이라이트’로 꼽힌 3번 갱도를 폭파시켰다.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는 핵탄두 실험을 하는 가장 안쪽 실험실부터 ‘ㄱ’ ‘ㄷ’자 모양으로 쭉 이어가는 갱도에서부터 입구까지 차례로 폭파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을 지켜본 체셔 특파원은 “북측 관리자가 폭파 직전 ‘3, 4번 갱도는 핵실험을 위해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췄던 곳’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3번 갱도를 북한이 정리한 건 비핵화 카운트다운을 촉진시키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이번 폐쇄 작업에 최소 100kg 이상의 폭약을 쏟아부으며 취재진 눈앞에서 비핵화 의지를 선전하는 ‘불꽃쇼’를 선보였다. 기자단은 “(폭발 당시) 통나무로 만든 관측소가 엄청난 광경으로 산산조각 났다” “갱도 입구에 전선과 많은 양의 플라스틱 폭발물 등이 엉켜 자태를 뽐냈다”는 등 폭파 전후 상황을 묘사했다. 북측 인사는 1번 갱도는 이미 핵실험으로 2006년 무너져 이번에 따로 폭파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갱도 폐쇄에 이어 군인들이 거주하는 장소인 막사를 폭파시켰다. 취재진은 폭파 행사 후 풍계리를 떠나 원산으로 향했다. 25일 오전 6, 7시경 원산역에 도착해 취재한 내용과 사진 및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할 예정이다. 취재진은 이날 원산행 특별열차 안에서 직접 본 폭파 행사를 국제전화를 통해 속보로 전했다. 다만 북한이 이번 폐쇄 이벤트에 전문가들을 배제한 데다 기자들의 답사 기회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한 만큼 완전한 폐기를 검증받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결국 국제사찰단의 본격 검증 전에 핵실험 관련 증거를 ‘인멸’해 면죄부를 받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풍계리=외교부공동취재단 / 신진우·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국 취재진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행은 막판 반전으로 가까스로 성사됐다. 전날 외신 기자들만 원산에 데려간 북한은 23일 오전 9시경 판문점 연락채널이 열리자마자 취재진 명단을 수령하며 방북을 전격 허용했다. 취재진은 이후 급히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이동해 정부가 마련한 수송기에 탑승해 뒤늦게 풍계리 다국적 취재단에 합류했다. 북한의 기류 변화는 한국 취재진이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북측의 입국 허가를 기다리다 거부당한 뒤 비행기편으로 귀국하던 22일 밤 감지됐다. 통일부가 오후 9시 26분경 “북측이 23일 아침 명단을 수용하면 남북 직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린 것. 정부 관계자는 “22일 저녁 한국 기자단이 타고 갈 수송기를 준비해 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를 감안하면 남북 간에 22일 ‘한국 취재진 추가 합류’에 대해 일단 공감대를 형성했고, 북한이 23일 새벽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뒤 최종적으로 방북 허가를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 취재진이 타고 간 항공기는 ‘공군 5호기(VCN-235)’다. ‘VCN-235’는 기존 군사 작전용 공군 수송기인 CN-235의 좌석 방향을 개조해 만든 귀빈 수송용 항공기다. ‘V’는 VIP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VCN-235는 정부 내 총 두 대가 있는 ‘쌍둥이 비행기’이며 다른 하나는 공군 3호기다. 모두 공군 현역 장교가 정조종사와 부조종사를 맡는다. VCN-235의 개조 전 버전인 CN-235는 20여 대가 있다. 공군 5호기가 원산 땅을 밟으며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정부 수송기의 첫 방북 기록이 됐다. 올해 3월 대북특사단 등은 방북 당시 모두 대통령 전용기이자 여객기 형태인 공군 2호기(보잉 737-3Z8)를 이용했다. 정부는 이번 공군 5호기 운용비 부담에 대해 “향후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손효주 hjson@donga.com·신진우 기자}

한국 공동취재단이 방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23일 우여곡절 끝에 북한 원산에 도착했다. 이제 관심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에 집중되고 있다. 5개국(한국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기자단은 이날 오후 원산에서 풍계리행 특별열차에 탑승했다. 핵실험장 폐기는 이르면 24일 오후 전문가 없이 기자단 참관 아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열차 이동 중에 블라인드 걷지 말라” 한국 취재단은 23일 낮 12시 반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인 ‘공군 5호기’를 타고 출발해 오후 2시 48분에 원산 갈마비행장에 도착했다. 북측은 공항에서 짐을 꼼꼼히 뒤지며 방사능 측정기, 위성전화기, 블루투스(무선) 마우스를 압수했다. 마우스를 압수한 것은 혹시 있을 전파간섭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취재단은 갈마호텔에서 외신 기자단과 합류한 뒤 오후 7시경 원산역에서 특별전용열차를 타고 풍계리로 떠났다. 기자들은 왕복 열차표를 사는 데 75달러(약 8만1000원)를 냈고, 열차 내 매끼 식사비는 20달러(약 2만2000원)였다. AP통신은 “취재진에 침대 4개가 놓인 열차 칸이 배정됐는데,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도록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기자들에겐 ‘블라인드를 걷지 말라’란 지시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열차 출발을 저녁 시간으로 잡은 건 군사시설 노출을 감추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기자단은 풍계리에 인접한 재덕역에 24일 오전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원산∼풍계리 현장까지 직선거리는 270km 정도지만 철로와 도로를 통하면 437km에 달한다. 북한은 철로 사정도 좋지 않아 이동 시간만 최소 12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재덕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와 도보로 2시간가량을 이동해야 마침내 길주군 시내에서 약 42km 떨어진 만탑산(해발 2205m) 계곡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에 닿을 수 있다.○ ‘죽음의 땅’에서 야간 폭파쇼 펼쳐지나 풍계리에서 기자단 눈앞에 펼쳐질 첫 번째 광경은 ‘시꺼먼 입’을 벌린 갱도 입구일 것으로 보인다. 기자단은 북한이 마련한 4단짜리 전망대에 서서 풍계리 내 1∼4번 갱도 폭파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서 1차 핵실험을 진행한 1번 갱도와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는 물론이고 아직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까지 모두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핵실험장 폭파는 24일 오후에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북한은 23∼25일 중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했는데 하루 여유를 두고 펼칠 가능성이 크다. 일단 24, 25일 모두 구름만 조금 낄 뿐 대체로 맑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사이 구름이 많고 소나기가 내릴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3, 4번 갱도의 경우 갱도 맨 안쪽부터 순차적으로 재래식 TNT 폭약 등을 이용해 폭파할 것으로 보인다. 1번 갱도는 1차 핵실험 이후 이미 붕괴된 만큼 별도의 폭파 절차도 필요 없지만 2번 갱도의 경우 폭파 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조 자체가 구불구불한 데다 기폭실 주변 차단벽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게 정교한 사전작업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 폭파’를 감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08년 영변 냉각탑은 덩치가 커서 무너져 내리는 게 보이는데 이번은 동굴 폭파로 외부로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유일한 건 폭파로 인한 불꽃인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에 ‘폭죽놀이’를 하듯 폭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북측이 폭파 전 기자단에 갱도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북한에서 고위급 인사가 함께 참관할지도 관심사다. 방사능 누출 우려가 높은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찾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이미지 기자 / 원산=외교부 공동취재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달 12일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 비핵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을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회담이 지금 안 열리면 다음에 열릴 것이다. 열리면 좋을 것이고 안 열려도 괜찮다”고 말한 뒤 “6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안 열릴 수도 있는 상당한 변화가 있다”고 했다. 이런 언급들은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비핵화에 나서야 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일종의 ‘최후통첩’으로 해석된다. 이에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우리는 어렵게 마련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공식적으로 약속했고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를 공개하는 등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성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이 결국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에 한국 취재진만 초청하지 않았다. 북한은 23∼25일로 예고한 핵실험장 폐기는 일단 그대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외신기자단은 22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북한 원산으로 들어갔다. 방북 기자단은 미국(CBS, CNN), 영국(스카이뉴스, APTN), 중국(중국중앙·CCTV, 신화통신), 러시아(RT, 리아노보스티) 등 4개국 8개 매체의 22명으로 구성됐다. 전날 베이징에 도착한 한국 기자단은 22일 오전부터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나와 북한의 기자단 명단 수령을 기다렸지만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이날 밤 기자들에게 배포한 공지에서 “북측에 23일 아침 판문점을 통해 우리 측 취재단 명단을 다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워싱턴=한상준 alwaysj@donga.com / 신진우 기자}

북한이 23∼25일로 예고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틀 전까지 한국 취재진의 명단 수령을 거부했다. 북한이 한국 언론을 제외한 외신들에는 입국 비자를 발급해준 것으로 알려져 한국을 배제하고 행사를 진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1일 오전 판문점 연락 채널을 통해 다시 기자단 명단을 전달하고 판문점 연락 채널이 종료된 이날 오후까지 답을 기다렸지만 북한은 응답을 보내지 않았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북한은 우리 기자단 명단은 받지 않았지만 외신 취재기자들에게는 비자를 발급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소식통은 “한국을 제외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등 외신 일부는 22일 오전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으로 집결하라는 공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외신은 미국의 CNN과 영국 APTN, 중국중앙(CC)TV 등으로 알려졌다. 일본 NHK는 북한이 22일 오전 10시 원산 갈마비행장으로 가는 특별 항공편을 편성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으로부터 방문 허가를 받지 못한 한국 기자단은 이날 일단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해 북한대사관 근처에서 대기했다. 한국 기자단 일부는 이날 중국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별도로 방북을 위한 비자 신청을 할 계획이었으나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만류로 신청을 보류했다. 6·15 남북 공동선언 공동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북한을 방북하려던 민간단체 회원들의 방북도 무산됐다. 이날 통일부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후까지 남측위에 방북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북한은 이달 4일 남측위에 “6·15공동행사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해외 위원장회의를 23∼26일 평양에서 갖자”고 먼저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주 북한 당국에 방북 대표단 명단을 보낸 후 연락을 기다렸지만 공동회의 이틀 전인 이날까지 북한은 아무런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남측위 관계자는 “북측과의 구체적인 논의 과정을 밝히기는 곤란하다”면서도 “(초청장이 안 온 것은) 최근 남북 상황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황인찬 기자}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사진)가 “최선은 (한미) 동맹을 없애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을 다자안보협력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17일 보도된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중·단기적으로 (한미) 동맹에 의존하는 게 불가피하다”면서도 “장기적으론 동맹 체제에서 일정한 형태의 다자안보협력체제 형태로 전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한국의 상황을 ‘고래들(미중)과 나쁜 상어(bad shark·북한) 사이에 낀 새우’라고 표현하면서 “(동맹이 사라지면) 한반도는 지정학적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같은 공통의 적이 사라지면 동북아에 새로운 안보체계를 구축하는 데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안보공동체를 언급하며 “우리는 미국과 중국 중 한쪽 편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된다”며 “왜 서로를 준(準)적대국 또는 잠재적인 적으로 대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문 특보는 장기적으로 남북이 통일되는 시나리오를 가정하며 “그때 우리는 미국 편을 들지 중국에 가담할지, 아니면 홀로서기를 할지 등을 놓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주한미군에 대해선 “주둔이 계속돼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선 “그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평화협정이 무산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평화체제 구축 이후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 임무가 변화될 필요가 있다”며 주한미군 규모 감축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청와대는 한미동맹에 대한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내용을 알지 못한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그러면서 “흔들림 없고 굳건하게 지켜 나간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달 초 문 특보의 기고문으로 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문제로,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문 특보의 잇따른 논쟁적 발언에 대해선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학자로서의 개인 견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에 이어 이틀 만에 대외 선전매체를 동원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사진)을 겨냥해 비난을 쏟아냈다. 대외적으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8일 홈페이지에 올린 ‘볼턴의 정체’라는 글에서 “(볼턴은) 일정한 논리나 뚜렷한 이념이 아니라 단순한 사고, 인종주의, 협애한 ‘미국 제일주의’에 따라 움직이는 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이어 북한이 과거 볼턴 보좌관을 ‘인간쓰레기’ 등으로 맹비난한 것을 언급하며 “그가 내내 조선의 최고 영도자와 체제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 중상과 악담을 늘어놓으며 조미관계 진전을 집요하게 방해해온 전과가 있다”고 했다. 앞서 김계관은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내놓은 담화에서 볼턴 보좌관을 ‘사이비 우국지사’라고 비난하며 “핵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 노동신문도 이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미국이 치밀하게 꾸민 심리모략전의 산물”이라며 재차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와 리비아를 초토화했다. 만약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그 모델이 발생할 것”이라고 언급한 상황에서 이라크의 패배가 미국의 ‘심리모략전’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 노동신문은 이어 “미국의 ‘색깔 혁명’에 의해 여러 나라에서 비정상적인 정권 교체 현상이 일어난 것도 심리모략전의 결과”라며 “누구나 신념과 의지가 없으면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비극적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색깔 혁명은 2000년대 옛 소련 국가와 중앙아시아에서 번진 정권 교체 운동으로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7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김정은이 북한 매체에 등장한 건 8일 중국 다롄(大連) 방문 이후 열흘 만이다. 일각에선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 총력 노선을 채택한 김정은이 후속 조치로 군사전략과 노선을 재조정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18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정부가 발송한 방북 기자단 명단 수령을 거부했다. 북한은 미국과 영국 등 초청을 받은 일부 외신 기자들에게도 비자 발급 등을 위한 안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선전하기 위해 23∼25일 진행할 예정이었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일부는 18일 “북측의 초청에 따라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우리 측 기자단 명단을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전달했지만 북측이 통지문을 접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은 16일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한국과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기자단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21일 출발해 중국 베이징에서 전용비행기로 갈아타고 북한 원산 갈마비행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출발 3일 전인 이날 명단 수령을 거부해 방북 일정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외교소식통은 “일부 국가는 북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북한이 개별 접촉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 등의 언론사도 아직 비자 발급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명단 수령 거부 이유를 별도로 설명하진 않았다. 다만 최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이어 한국과 미국을 겨냥해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 만큼, 방북 기자단 명단 수령 거부 역시 한국과 미국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시험발사 중단 등 핵동결 조치를 선언한 바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정이 촉박하지만 일단 주말까지는 북한의 반응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17일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측 고위급 회담 대표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을 통해 “차후 북남관계의 방향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책임을 한국 정부로 돌리며 이틀 연속 한국과 미국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던 북한이 잇따라 으름장을 놓은 것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한국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며 한국에 미국을 설득하는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리선권은 “남조선 당국은 완전한 ‘북핵 폐기’가 실현될 때까지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미국 상전과 한 짝이 되어 최대 규모의 연합공중전투 훈련을 벌려 놓고 이것이 ‘북에 대한 변함없는 압박 공세의 일환’이라고 거리낌 없이 공언해댔다”고 맹비난을 쏟아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도 북-미 간 비핵화 조율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선(先) 핵 포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강조하며 강공을 주도하는 만큼 폼페이오 장관의 역할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6일(현지 시간) “우리가 따르는 것(비핵화 구상)은 트럼프 모델이다. 리비아식 모델은 어느 회의에서도 논의되지 않았다”며 북-미 회담의 판을 깨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청와대는 북-미 간 비핵화 해법 중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청와대는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북-미 정상회담이 상호 존중의 정신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미, 남북 간 여러 채널을 통해 긴밀히 입장을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신진우 niceshin@donga.com·한상준 기자}

올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와 존 볼턴을 각각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앉히겠다고 발표하자 현지에선 ‘전쟁 내각’을 구성했다는 우려 섞인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 모두 이란 핵 합의 파기를 찬성하고 북한의 정권 교체를 공공연하게 거론한 ‘초강경파’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두 달이 지난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파기를 결정한 이란 핵 합의를 둘러싸고 폼페이오는 이를 끝까지 살리려 백방으로 뛴 반면, 볼턴은 파기를 주도해 행보가 엇갈렸다. 폼페이오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차례 방북하는 등 미국 외교의 ‘얼굴’로 떠오른 반면, 볼턴은 매우 강경한 대북 협상 조건을 거론하며 ‘야성’을 뽐냈다. 북한은 볼턴의 이 같은 강경한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으며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힘을 통한 평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각 ‘굿캅(좋은 경찰)’과 ‘배드캅(나쁜 경찰)’의 역할을 나눠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주류의 평가다. 그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들이 역할 분담의 차원을 넘어서 각자의 오랜 ‘개인적 야심’을 펼쳐가는 과정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통령의 핵심 측근 ‘0순위’인 이들 사이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국제정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굿캅’ 폼페이오와 ‘배드캅’ 볼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아는 게 매우 많다. 내가 (주제에서) 약간 벗어난 질문을 해도 답을 했다. 메모지도 없었다.” 폼페이오는 13일(현지 시간) 미국 CBS 방송에 출연해 ‘방북 때 만난 김정은의 무엇이 인상적이었냐’고 진행자가 묻자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평가했다. 김정은을 7번 언급하면서 모두 ‘체어맨(위원장)’이라고 부르며 예우했다. 같은 날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나라와 주민을 위한 전략적인 변화를 만들길 열렬히 원한다”며 “그가 그렇게 할 준비가 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변화 이행 과정이 성공하도록 보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볼턴은 같은 날 ABC 방송에 출연해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즉답을 피했다. 진행자가 ‘김정은이 당신이 생각한 그 독재자가 맞냐’라고 묻자 “김정은을 두 번이나 만난 폼페이오 장관에게 물어보라”고 답했다. 대신 특유의 매서운 눈매로 진행자를 노려보더니 “북한 비핵화는 핵무기를 모두 미국 테네시주로 옮긴다는 뜻”이라며 북한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리비아식 해법’을 꺼내들기까지 했다. 북미 회담 의제로 대량살상무기(WMD)도 포함될 거라고 압박하더니 인권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치고 있다. 외교가에선 폼페이오-볼턴의 이런 엇갈리는 메시지를 ‘굿캅(폼페이오) VS 배드캅(볼턴) 역할 분담론’으로 보고 있다. ‘최대의 압박’과 ‘최대의 관여(보상)’이라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을 두 핵심 인사가 역할 분담을 통해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상대방을 정신 못 차리도록 휘젓고 뒤흔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유의 협상 전략이 폼페이오와 볼턴 두 명에게 상반된 북핵 역할을 맡기는 전술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정치인’ 폼페이오와 ‘이념가’ 볼턴 하지만 ‘굿캅’과 ‘배드캅’이란 협업 이면에 라이벌 관계가 존재한다는 해석도 있다. 둘이 역할 분담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9일 “폼페이오와 볼턴은 동지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개인적 목표는 완전히 다르다”며 “그들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폴리티코는 “폼페이오는 대권이란 야심까지도 품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며 “그에게 있어서 국무장관직은 반드시 성공으로 끝나야만 하는 자리다”라고 분석했다. 폴리티코는 이어 “(그렇기에 그는) 볼턴에 비해 더 장기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며, 그 상대가 북한이든 이란이든, 이라크전이 재탕되도록 둘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치인으로 대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초강경파였던 그를 실용주의자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반면 볼턴은 선출직엔 관심이 없는 철저하고 유능한 ‘이념가’다. 폴리티코는 그의 목표가 “외교상의 다자주의자들과 맞서 싸워 전술적 승리를 거두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힘의 행사’ 뒤에 생겨날 수 있는 문제들은 그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볼턴에게 있어서 (국가안보보좌관 직책은) 그의 (이 같은) 이념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둘의 목표가 ‘정치적 승리’와 ‘이념적 승리’로 첨예하게 갈리는 형국인 가운데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대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비확산 국장은 “(폼페이오가) 실패한다면 득을 보는 사람은 볼턴”이라며 “둘 사이에 긴장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1승 1패’ 폼페이오와 볼턴 상충되는 목표를 품고 있는 둘은 이란 핵 합의 파기 국면에서 실제로 충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파기에 찬성한 볼턴이) 이를 논의하기 위한 국가안보회의(NSC) 확대회의를 한 번도 소집하지 않았다”며 “볼턴은 소규모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합의 파기와 관련한) 조언을 건넸다”고 12일 전했다. 같은 시간 “(폼페이오는) 유럽 외교관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합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9일 미국이 합의에서 끝내 탈퇴하기로 결정하자 NYT는 “볼턴은 대통령으로 향하는 분명한 소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보고받는 이야기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며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평소에 자신을 ‘친(親)미국주의자(pro-American)’이라고 지칭해온 볼턴이 ‘아메리카 퍼스트’란 표현을 즐기는 트럼프와 ‘편안한 관계’를 형성했다는 설명이다. NYT는 “(이란 핵 합의 국면을 통해) 트럼프 외교·안보팀 안에서 벌어지는 ‘힘의 균형’의 이동이 포착됐다”며 “(생각보다) 깊은 분열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트럼프팀’의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다”라는 해석이다. 반면 폼페이오는 북-미 정상회담의 물밑 협상을 주도하며 대통령의 확고한 측근으로 자리매김해 ‘1승’을 챙겼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각각 이란과 북한에서 승리와 패배를 나눠가지며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트럼프 백악관’에서 참모들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한 참모가 다른 참모를 완전히 가리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백악관에선 누가 뭐래도 대통령이 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참모들의 역학관계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끈질긴 조언에 끝내 마음을 바꾼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이 아닌 싱가포르를 택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NYT는 “참모들은 판문점이 ‘비핵화’ 보다 ‘평화의 가능성’에 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 같다며 그 상징적인 의미를 우려했다”며 “(싱가포르 선회는) 참모들의 작은 승리”라고 평가했다. 한기재기자 record@donga.com신진우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 회담 돌연 연기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접근법을 싸잡아 비난하며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하겠다고 한 것은 준비된 전술적 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핵무기를 미국에 가지고 와서 해체하라”며 비핵화 요구 수위를 높이자 회담 결렬 가능성을 거론하며 백악관에 기대치를 낮추라고 요구한 것. 외교가에선 비핵화 로드맵 채택을 놓고 양측의 본게임이 이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식 비핵화 드라이브에 김정은식 ‘옐로카드’ 이날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발표한 담화문에는 최근 미국의 비핵화 드라이브에 대한 김정은의 분노가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핵무기 종말처리장’으로 통하는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핵무기 반출을 요구하고, ‘리비아식 핵 포기’를 주장하자 강하게 받아쳤다. 김계관은 담화에서 “대국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볼턴 보좌관을 3번이나 특정해 비난하면서 ‘핵 개발 초기 단계’였던 리비아와 ‘핵보유국’인 북한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미국이 연일 쏟아낸 비핵화에 대한 경제 보상 제안도 일단 거절하는 듯했다. 김정은이 지난달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 총력 노선을 선언한 것을 무색하게 했다. 담화는 “(우리가) 언제 한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자존심 레드라인’ 넘지 말라는 북한 북한은 이날 한반도 비핵화 국면 이래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 ‘재고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북한은 김계관 부상의 담화문에 앞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날 오전 한미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선더’를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로 규정하고 “조미 수뇌상봉(북-미 정상회담)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김계관 담화를 오전 11시 18분 추가로 내며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강도를 높였다. 북한은 대화에 나선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아량 있는 노력’ ‘대범한 조치’ ‘평화 애호적인 노력과 선의’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대북 압박에 의해 떠밀려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화에 나섰음을 강조한 것. 미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비핵화를 밀어붙였다간 언제든 대화판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이런 북한의 반발은 결국 미국의 요구치가 확대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핵과 미사일뿐만 아니라 생물, 화학무기의 폐기까지 언급하며 압박하자 “더는 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협상력 제고 위한 ‘공개적 신경전’ 가능성 커 하지만 북한은 이렇게 미국과 날을 세우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갖고 조미 수뇌회담에 나올 경우”라고 밝히며 회담 국면은 깨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북한의 이날 잇따른 엄포는 비핵화 논의가 절정에 치닫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공개 경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양측이 구체적인 합의문 작성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비핵화 수위 및 조건과 관련한 ‘디테일의 악마’를 놓고 수싸움이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에선 북한과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 시점 등 특히 비핵화에 따른 반대급부와 관련해서 의견 차가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북한이 특히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까지 건드린 게 반발을 불렀다는 전언도 있다. 김정은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다롄에서 만나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 협의 과정에서) 승전국처럼 군다”며 불만을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듯하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을 코앞에 두고 ‘싱가포르 회군’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시그너처 브랜드인 핵-경제개발 병진노선을 없애고 주민들에게 비핵화 원칙을 천명한 마당에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다는 얘기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은 결국 회담장에 나오기 전까지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들을 꼭 집어 비난하면서 미국 협상팀의 분열을 노리며 북한의 몸값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 기자}
북한은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 담화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이비 우국지사’로 부르는 등 세 번이나 언급하며 독설을 내뱉었다. 도널드 트럼프에겐 대통령이란 호칭을 붙인 것과 달리 유독 “볼턴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은 과거사를 망각했다”며 비난한 것. 이는 볼턴이 최근 북-미 정상회담 일정 발표 후 잇따라 리비아식 비핵화 등을 거론하며 대북 압박을 이끌자 ‘좌표 설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내 매파 발언을 계속 그냥 둘 경우 비핵화 협상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 대신 김정은을 두 차례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에겐 장관이라 칭하며 상대적으로 비난 수위를 낮췄다. 북한과 볼턴의 악연은 오래됐다. 2003년 볼턴이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 시절 북핵 6자회담에 미국 대표단으로 참여하자 북한은 “인간쓰레기에다 흡혈귀”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2008년에도 북한은 볼턴을 겨냥해 “미 강경보수 세력들이 6자회담의 파탄만 바라고 있다”고 비난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일본 외무성이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2018년판 외교청서(한국의 외교백서)를 15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외교청서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도 국제법상에서도 명백히 일본 고유 영토”라며 “한국이 국제법상 어떤 근거도 없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올해 외교청서는 동해 표기에 대해 “일본해가 국제법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라는 주장을 새로 넣고 “한국이 일본해라는 호칭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방적인 설명을 달았다. 한일관계에 대해선 “한일의 연대와 협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하다”면서도 지난해에 담았던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은 삭제했다. 이는 올해 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시정방침 연설에서 이 표현을 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용길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이날 오전 미즈시마 고이치(水嶋光一)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외교부로 불러 외교청서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신진우 기자}

“백악관에는 그가 사용하는 별도의 사무실이 있다.” 15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최근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막후 실무 조율자로 한국계 미국인인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산하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을 지목하며 이렇게 말했다. 앤드루 김 센터장은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회동에도 배석해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앤드루 김이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 한반도 비핵화 실무 조율 과정에 관여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앤드루 김은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내려온 맹경일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을 만나 그때 이미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4월 1일 전후로 추정되는 폼페이오 장관의 1차 평양 방문이 성사됐고, 앤드루 김 센터장은 이후 수차례 더 방북해 북측 고위급과 접촉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앤드루 김이 KMC에서 지휘하는 북핵 관련 인원만 600∼700명에 달한다”며 “KMC는 직제상으론 CIA의 신생 부서이지만 지난해 북-미 위기 고조를 계기로 입지가 공고해졌고 올해 그 영향력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앤드루 김이 이끄는 CIA 북핵 팀이 북-미 대화를 물밑 조율하고 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KMC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을 주도해 왔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앤드루 김을 만났는데 군사옵션이라는 게 그냥 강경론자들의 협박용 메시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준비되는 사안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어 “20여 개 군사 옵션 시나리오를 놓고 실행 방식은 물론이고 북한 반응에 따른 후속 행동까지 구체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고 말한 뒤 “앤드루 김 개인적으론 한국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