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구자룡 기자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구독 29

추천

안녕하세요. 구자룡 기자입니다.

bonhong@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남북한 관계14%
국방13%
국제일반7%
대통령3%
정치일반3%
기타60%
  • 우크라이나서 제작 중인 항모 들여와 中 조선소서 개조

    ‘리가→바랴크→시랑→랴오닝.’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遼寧)함은 3차례 이름을 바꾸었으며 한국 러시아 일본 우크라이나와도 과거 인연이 있다. 옛 소련 해군의 주문으로 1985년 처음 건조될 때 이름은 ‘리가’였으나 1990년 바랴크(Varyag·‘발틱해의 전사들’이라는 뜻)로 이름을 바꿨다. 1991년 옛 소련이 해체된 후 바랴크를 넘겨받은 우크라이나는 제작을 중단하고 공정이 68%인 상태로 매각에 나서 1998년 중국에 팔았다. 랴오닝성 다롄(大連) 조선소에서 개조 작업을 벌인 뒤 청나라 초기 대만 정벌에 나선 수군 장수 시랑(施琅)으로 명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만과의 관계 고려 등으로 랴오닝함으로 정해졌다. 중국이 처음 구입할 때 이름 ‘바랴크’는 러일전쟁 때 침몰한 러시아 전함 바랴크함에서 따왔다. 러일전쟁의 첫 전투로 1904년 2월 9일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졌던 ‘제물포 해전’ 당시 바랴크함 장병들은 일본 순양함 아사마함의 포격을 받자 일본에 전리품으로 넘겨주지 않기 위해 전함을 자폭 침몰시켰다. 일본 해군은 잔해에서 군함의 깃발을 수거해 ‘인천 향토관(현 인천시립박물관)’에 보관했다. 바랴크 함기(艦旗)는 가로 257cm, 세로 200cm 크기로 ‘성 안드레이 깃발’이라는 별칭도 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러시아 중앙해군박물관에 대여한 적도 있으며 현재는 인천시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깃발에 난 파편 자국은 당시 전투의 상처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5-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 한반도 상황 변화에 대한 중국의 속내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 뒤 한반도 사태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자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잃는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2년 11월 집권 이후 김정은과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으나 최근 40여일 만에 두 차례나 만났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김정은이 4차례 핵실험과 수십 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적극 참여하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하지만 한반도 사태가 급변하자 3월 말 베이징(北京)에 온 김정은을 만난 데 이어 5월 7,8일 다롄(大連)에서 2차 회담을 가졌다. 한반도 사태 전개에서 주변화되지 않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한반도 상황의 전개에 대해 중국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지가 관심이다. 정지융(鄭繼永)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 한국조선연구중심 주임이 9일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반도 정세 변화와 중국’ 특별 간담회 발언에는 이런 궁금증을 일부 풀어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 주임은 최근 평양의 부동산 업자들로부터 많을 때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 건너편에 있는 중국의 접경 도시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의 땅값이 올랐는지 물어보기 위한 것이다. 그만큼 앞으로 북중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정 주임은 풀이했다. 정 주임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의 길로 나오게 된 이유로는 가장 먼저 북한 내부적인 요인을 들었다. 김 위원장이 권위와 집권 기반을 확립해 ‘톱 다운’식의 정책 결정 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가 원만히 마무리되기 위해서도 김위원장이 건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정 주임은 풀이했다. 북한이 지난해 말 핵무력을 완성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자신감,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로 전환한 것도 북한이 비핵화로 방향을 튼 요인으로 꼽았다. 정 주임은 김 위원장이 경제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북한 사람들이 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북한에서 만난 공무원 대학교수 심지어 군부 인사도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말 뒤에는 바로 돈 벌이 관련 내용 물어본다고 소개했다. 북한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과의 협상에는 익숙한 데 도널드 트럼트는 전혀 다른 방식인 것도 태도 변화의 한 요인으로 지목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무력을 행사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요인으로 꼽는다. 정 주임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 한국 정부와 달리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김정은의 비핵화 결단을 한 요인으로 지목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7일 비행기를 타고 부랴부랴 다롄으로 가 시 주석을 만난 것에 대해 “미국이 영구적이고 믿을 수 있으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PVID)를 강요하는 압박을 감당하지 못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관측했다. 정 주임은 ‘차이나 패싱’ 논란이 나오는 것에 대해 북한이 태도 변화를 보인데는 중국의 적극적인 제재 참여가 큰 역할을 했는데 이제와서 중국은 필요없다고 하면 ‘한국은 중국의 고마움 모른다’고 중국인들은 생각할 것“이라고 중국내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의 제재 참여에 대해 북한은 중국을 ‘큰 형님’이라고 믿었는데 (배신감에) ”중국에 원한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은 천장이고 중국은 바닥“이라며 ”한반도 비핵화 국면 돌파를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장애물 넘어야 하며 한반도 평화 안정 지키려면 중국 역할이 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정세를 좋게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도 나쁘게는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다“며 중국이 어떤 몽니를 부릴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정 주임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측 발표자가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하려고 하면 ‘재주는 중국이 부리고 돈은 미국이 챙기는 상황’으로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정 주임은 북핵 사태 전개에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지만 ”지난해와 같은 대결 국면으로 가지는 않고 북한 핵폐기 검증에 필요한 기술적 내용으로 깊이 있게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 입구에 들어가도록 한 미 중 러 일 등이 공동 협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중미 양국간 힘겨루기가 심해지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미국이 통상 문제 등으로 중국을 너무 압박하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안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중미 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5-10
    • 좋아요
    • 코멘트
  • 분단의 상징서 협력의 관문으로… 교동도의 꿈이 다시 들썩

    ‘바라보고도 못가는 고향일세…인간이 최고라더니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새들은 날아서 고향을 오고 가건만…. 목숨을 부지하려 허둥지둥 나왔는데 부모 형제 갈라져 반 백년이 웬 말인가…. 고향 친구들 뿔뿔이 흩어지고 백발이 돼 저세상 간 사람 많은데 남은 사람 발 디딜 날 그 언제일까.’ 3일 오전 찾아간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두 사람이 같이 지나가기 빠듯한 좁은 시장 골목 사거리의 단층 건물 벽 목판 위에 새겨진 시 한 편이 6·25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품고 있는 대룡시장과 교동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강화도를 서쪽으로 가로질러 2014년 7월 개통된 교동대교를 넘어서면 나타나는 교동도(喬桐島). 교동도의 인사리 북진나루에서 북한 황해남도 호동면까지는 불과 2.6km 떨어져 있다.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될 때 연백군(현재는 연안군과 배천군)의 남쪽은 경기도에 편입됐지만 1953년 7월 휴전 이후 바다가 휴전선이 되면서 길이 막혔다. 전쟁이 터지자 피란 온 3만여 명의 연백군 주민들은 고향의 연백시장을 그대로 본떠 전통시장 거리를 조성했다. 실향민 2세로 교동도에 살면서 ‘교동 평화의 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김영애 ‘우리누리 평화운동’ 공동 대표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대표했던 교동도가 분단의 상징에서 화해와 교류 협력의 관문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맞고 있다”며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남북 대치의 최전선’인 교동도 교동도에 외부인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교동대교를 지나기 전 두 차례 군 검문소를 거치고 허가증도 받아야 한다. 섬 둘레 약 37km 중 남쪽 해안 일부를 제외한 3분의 2는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인사리 군부대에는 휴전 이후 대형 확성기가 설치됐다. 2015년 8월 경기 연천에 북한이 포탄 1발을 발사한 뒤 이동식 차량 확성기와 서한리에 고정식 확성기가 추가됐다. 인사리 인현경로당에서 만난 박경임 할머니(70)는 “경로당 인근 군부대와 북한 확성기가 동시에 방송을 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며 “정상회담 며칠 전(4월 24일 0시) 양측에서 거짓말처럼 뚝 그쳐 이제는 살 것 같다”고 말했다. 고정식 확성기는 1일 두 곳 모두 철거됐다. 북한 해안을 마주 보는 고구리 해안에는 ‘UN8240 을지 타이거 여단 충혼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충혼탑에는 ‘군번도 계급도 없는 육군 을지 제2병단과 유격군 8240부대 타이거 여단 이름의 방공 유격대 용사들의 넋이 잠들어 있다’고 씌어 있다. 섬 곳곳에는 방공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다. 대룡시장 내 ‘교동다방’ 주인 전남수 씨(60)는 “2015년 연천 포격 이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 한두 시간도 자지 못한다. 김포의 큰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일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잊혀진 꿈 다시 살아날 기대 부풀어 교동초교 지석분교 1층 현관 통로의 게시판에는 ‘역사는 미래로!’라는 제목의 지도가 한 장 걸려 있다. ‘강화 교동에서 해주 연백으로 8차선 고속화도로 건설 예정 계획’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져 있다. 국도 48호선이 김포∼강화∼교동도를 거쳐 해주로 이어진 뒤 신의주까지 연결되는 것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졌다. 섬 중심 면사무소 근처 로얄공인중개사무소 사무실 벽에는 ‘강화군 종합발전계획도’가 걸려 있다. 역시 노무현 정부가 작성한 교동도 주변 개발계획이다. 여기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강화도를 거쳐 개성공단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있고, 한강 하구에 위치해 썰물 때마다 드러나는 모래사장인 ‘나들섬’을 남북 협력 교류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의도처럼 개발하는 계획도 담겨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잊혀졌던 이 계획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에 현지 주민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영애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회담 후 발표된 10·4 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5항에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며 “북핵 문제가 잘 풀려 남북 협력 시대가 되면 한강 하구 및 교동도 주변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거듭 역설했다. 로얄중개사무소 이상욱 대표는 “최근 3, 4년간 전답은 한 평(3.3㎡)에 7만 원, 택지는 30만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최근 하루 2, 3명씩 외지인들이 찾아와 가격 동향을 묻고 있다”고 전했다. 개발 기대감에 외지인들의 투자 문의가 늘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은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 철조망부터 철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섬 둘레에 철조망이 쳐진 것은 북한에서 군인이나 주민이 넘어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임진강 상류에서 떠내려 온 목함 지뢰가 터지는 사고가 이따금씩 발생하자 아예 해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3년엔 북한 주민 1명이 귀순한 적도 있다. 한석현 교동면장은 “철조망은 주민들의 생업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관광객을 막는 걸림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또 외부인이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 섬에 들어올 때 두 차례 군의 검문검색을 받도록 한 조치 등도 폐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과거와 현재,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 ‘나들섬’ 개발계획의 대상지인 한강 하구는 예성강 임진강 한강 등 남북 3개의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다. 밀물에는 해수가 되고 썰물에는 강물이 채워져 담수가 되는 곳이어서 숭어 실장어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지금은 휴전선이 중간을 가로질러 양측 모두 접근하지 못하지만 고려시대에는 국제무역항으로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드나들던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 입구다. 벽란도에 출입하려는 무역상들이 출입증을 받아야했던 남산포가 교동도의 남쪽 해안에 있다. 현재는 교동도가 남북 대치 상황으로 인적을 보기 어려운 후미진 곳이지만 남북 관계가 좋아진다면 남북을 잇는 해상요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룡시장에는 남과 북의 과거와 현재가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남아 있다. 단층 가게가 좁고 굽은 골목을 따라 형성되어 있고 이발관 다방 과자집 등의 간판 글씨도 예스럽다. ‘교동다방’도 60년째 같은 자리에서 주인만 바뀌며 이어지고 있다. 1950, 60년대의 시골 읍내 모습 그대로다. 6·25전쟁 때 연백군에서 잠시 피란 온 주민들이 휴전 이후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하나둘 모여들어 대룡시장을 만들었다. 피란민 1세대인 교동이발관 주인 지광식 씨(80)는 1950년 전쟁 발발 직후 12세에 내려와 17세 때부터 63년째 현재의 장소에서 일하고 있다. 대룡시장에서 피란민 1세대가 운영하는 가게는 지 씨 말고는 없다. 지 씨는 “초기에는 손님이 너무 많은데 밤에는 전기가 안 들어와 촛불로 비춰가며 머리를 깎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강화군청은 옛 풍경을 담은 벽화 그리기 등으로 옛 모습 보존을 지원하고 있다. 인사리 인현경로당에서 만난 서옥순 씨(80)는 “엄마가 교동도로 시집와 전쟁 전에는 세 번이나 나룻배를 타고 바다 건너 연백의 외가나 친척집을 갔지만 강화도는 가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교동도에는 연백군과 같은 생활권으로 묶여 있었던 탓인지 사투리 음식 문화 등에서 비슷한 것이 많다. 교동 주민들은 이미 꿈에 그리던 고향을 찾아가듯 옛 연백군을 방문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교동도=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5-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글로벌 이슈/구자룡]93세 마하티르의 총리 재도전

    ‘노욕(老慾)인가, 전설의 복귀인가.’ 올해 93세인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다음 달 9일 치러지는 총선(하원 222석 선출)에 출마했다는 소식에 “우리가 아는 그 마하티르 맞아? 아들이나 손자 아니고?” 하는 반응이 나왔다. 그는 15년 전인 200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는 올해 1월 7일 야당 연합인 ‘희망연대(PH·Pakatan Harapan)의 총리 후보로 선출됐다. 최근 자신의 고향이자 총리 시절 관광특구로 개발했던 랑카위 지역구 출마를 공식 선언한 그의 페이스북에는 어느 젊은 정치인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 내용이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3월 22일 자신의 건강을 주제로 한 포럼이 열리자 갑자기 나타나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먹는 물리적 나이와 신체적 나이가 있는데 두 가지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정신이 말짱하고 적어도 노망이 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마하티르는 1981년 7월 전임 후세인 온 총리가 건강 악화로 사임하자 총리직을 물려받은 뒤 연합 집권 여당인 ‘국민전선(BN·Baisan Nasional)’ 후보로 다섯 번의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22년간 총리를 지냈다. 외과 의사이자 아버지가 전직 교장인 첫 시골 평민 출신 총리였던 그는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총리와 함께 주목받는 아시아 지도자였다. 첫 총리 취임 3개월 만에 과거 식민 지배 국가였던 영국 제품 불매 운동을 전개하는가 하면 일본과 한국의 성공 경험을 배우자는 ‘동방 정책’을 펴 주목을 끌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서구의 헤지펀드를 ‘논밭을 습격하는 메뚜기 떼처럼 아시아 전역을 휩쓸며 주식과 통화를 단기 공습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아시아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한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조치를 거부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자진해서 물러났지만 ‘뒷방 원로’로 있지는 않았다. 퇴임 후 왕성한 블로그 활동 등으로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지도자 출신이면서 자신의 후임자로 발탁한 압둘라 바다위 총리에 대해 ‘무능하다’는 비판을 쏟아내 결국 물러나게 했다. 2009년 나집 라작 총리의 집권도 마하티르의 지지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2015년 나집 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로부터 테러 방지 지원 명목으로 거액을 받았다는 스캔들이 터진 뒤에는 퇴진 운동에 나섰다. 나집 총리가 2009∼2015년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45억 달러 상당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도둑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나집 총리는 “노욕에 휩싸인 마하티르가 정계 복귀를 위해 음모론을 조장하고 있다”고 맞섰다. 마하티르는 자신이 몸담으며 총리를 지냈고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줄곧 집권당이던 BN을 걷어차고 나와 2016년 8월 야당인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을 창당했다. PH는 PPBM과 다른 군소 야당의 연합이다. 이번 총선에서 PH가 과반을 획득해 마하티르가 총리에 복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13개 정당 연합체인 BN은 독립 이후 줄곧 집권해 왔다. 총선을 앞두고 나집 총리는 ‘가짜 뉴스 방지 법안’을 통과시켜 자신의 비자금 스캔들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3월 말 통과시킨 선거구 재획정안은 최소한 BN에 10석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게리맨더링(자의적 선거구 획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월 소득 700달러(약 75만 원) 이하의 가정에 대한 보조금을 약 200달러(약 21만 원)로 늘리는 등 전 국민의 절반가량이 보조금을 받는 정책도 선거를 앞두고 내놨다. 나집 총리는 부친(2대)과 삼촌(3대)이 총리를 지낸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그럼에도 여당 BN은 이번에 어느 때보다 힘겨운 선거를 치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집 총리의 부패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전설의 마하티르’가 뛰어든 데다 의석수도 2003년 총선에서 198석, 2008년 140석, 2013년 133석으로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 2018-05-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北 제대로 알자” 머리 맞댄 韓中학자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달 27일 판문점 회담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한중 학자들이 참가해 북한에 대한 대대적인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인천대 통일통합연구원(원장 박제훈)과 연변대 조선한국연구센터(센터장 박찬규)는 30일 인천대 교수회관에서 공동 주최 심포지엄을 열고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두 기관에 따르면 한중 학자 2명이 한 팀을 이뤄 남북 교류 확대 및 통일 이후를 대비한 북한 연구 과제를 선정해 진행할 예정이다. 연변대에서 10명의 학자가 참여하고 한국 측은 인천대 교수진을 중심으로 서울대 연세대 대구대 교수와 한국전력기술 한국교통연구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강원연구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의 연구원들이 참가한다. 인천대 박제훈 교수와 연변대 김철수 교수팀은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아갈 경우 예상되는 ‘주체 철학’의 변화와 중국의 경험과 대비한 전망 등을 연구한다. 인천대 정진영 교수와 연변대 최철호 교수팀은 ‘북한 관광 연구’와 관련해 북한의 관광 자원 조사와 북한 관광 수요 규모 등을 조사한다. 최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연구한 자료를 한국 학자와 공유하며 좋은 연구 결과를 내보겠다”고 의욕을 밝혔다. 인천대 이갑영 교수와 북한 에너지 수급 현황 등을 연구할 연변대 권철남 교수는 “북한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전력 상황 개선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2016년 북한의 전력 이용량은 한국의 3.2%에 불과해 노후한 전력시설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연변대 김광수 교수와 ‘통일 후 정보통신표준화 방안’ 연구를 맡은 인천대 박정훈 교수는 “남북한 관계 개선의 끝은 통신 개방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며 “남북통신이 연결되기 전에 통신용어나 표준을 통일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날 발표된 19개 연구주제에는 △통일 물류정책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 △북한 교통체계 분석과 발전 방향 △남북 기본합의서와 평화협정 체결상의 법률문제 △통일 한반도의 국토 인프라 마스터플랜 등이 포함됐다. 중간 연구 결과는 10월 옌지 ‘두만강포럼’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박제훈 원장은 “두만강포럼에는 북한 학자도 다수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소개했다. 연변대에서 2008년부터 매년 열리는 두만강포럼에는 한국 북한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학자들이 참가하고 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5-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25>‘역사를 만든 대화’로 본 문재인-김정은 회담 12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27일 판문점 분사분계선에서 오전 9시 28분 만나 오후 9시 26분경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12시간의 회담 및 관련 일정을 가졌다. 이날 만남이 주는 의미는 공식 발표된 ‘판문점 선언’뿐 아니라 두 정상이 나눴던 대화 및 각종 행사,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해독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이 직접 발언한 내용은 사료(史料)적 가치도 크다. 이번 ‘살롱’은 두 정상이 만남에서 헤어질 때까지 나눴던 대화를 시간 순으로 소개한다. ‘판문점 선언’문을 포함해 발언 내용도 많아 상황 이해를 위한 간단한 지문 외에는 발언 내용만 모았다. 발언 내용은 청와대의 브리핑, ‘정상회담 사이버 프레스센터’ 발표문, 공동취재단의 녹취 등을 모은 것이다. 식수 행사장에서의 대화 등 일부는 완전히 들리지 않아 불완전한 상태다. 사진은 정상회담 사이버 프레스센터에 올려진 것들이다. 두 정상은 기본적으로 ‘문’ ‘김’ 성(姓)으로 약칭했다. ①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의 첫 악수 후 김 : 반갑습니다문 : 오시는 데 힘들지 않았습니까?김 : 아닙니다.문 : 반갑습니다.김 : 정말 마음 설렘이 그치지 않고요,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서 만나니까, 또 대통령께서 이런 분계선까지 나와서 맞이해준 데 대해서 정말 감동적입니다문 : 여기까지 온 것은 위원장님의 아주 큰 용단이었습니다김 : 아니 아닙니다문 :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김 : 반갑습니다문 : (남쪽으로 넘어와 사진 촬영을 위해) 이쪽으로 서실까요 (위원장님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김 :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② 의장대 사열 중 문 : 외국도 전통 의장대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보여드린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습니다. 청와대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김 :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 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습니다김 : (사열 후 양측 수행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나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문 : (즉석 기념사진 제의하며)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었으면 좋겠습니다③평화의 집 1층 김 : (로비 전면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 그림을 보고) 이건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입니까문 :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입니다 ④평화의 집 1층 방명록 서명 문구‘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 김정은 2018. 4. 27⑤평화의 집 1층 환담장 문 : (환담장 뒷벽 김중만 작가의 ’훈민정음‘을 보고) 이 작품은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의 글씨를 작업한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서로 사맛디‘는 우리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미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맹가노니‘는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ㄱ‘을 특별하게 표시했습니다. 서로 통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사맛디‘의 ’ㅁ‘은 문재인의 ㅁ, ’맹가노니‘의 ’ㄱ‘은 김 위원장의 ’ㄱ‘입니다 김 : 세부에까지 마음을 썼습니다문 :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김 : 새벽에 차를 이용해 개성을 거쳐 왔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아침에 일찍 출발 하셨겠습니다문 : 저는 불과 52km 떨어져 있어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김 : (웃으며)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습니다문 : 김 위원장께서 우리 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습니다김 :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습니다. 불과 200미터를 오면서 왜 이리 멀어보였을까, 또 왜 이리 어려웠을까 생각했습니다. 원래 평양에서 문 대통령님을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 더 잘됐습니다. 대결의 상징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보면 (닳아) 없어지지 않겠습니까문 : 청와대에서 오는데 도로변에 많은 주민들이 환송을 해 주었습니다. 그만큼 오늘 우리 만남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대성동 주민들도 다 나와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어깨가 무겁습니다.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문 : (환담장 앞편에 걸린 ’장백폭포‘ ’성산일출봉‘ 그림을 가리키며) 왼쪽에는 장백폭포 그림이 있고, 오른쪽에는 제주도 성산일출봉 그림이 있습니다김 : 문 대통령께서 백두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문 : 나는 백두산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는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습니다김 :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습니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합니다.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문 :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6.15, 10.4 합의서에 담겨 있는데 10년 세월 동안 그리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달라져 그 맥이 끊어진 것이 한스럽습니다. 김 위원장께서 큰 용단으로 10동안 끊어졌던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습니다김 : 기대가 큰 만큼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큰 합의를 해놓고 10년 이상 실천을 못했습니다. 오늘 만남도 그 결과가 제대로 되겠나라는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짧게 걸어오면서 정말 11년이나 걸렸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습니다. 굳은 의지로 함께 손잡고 가면 지금보다야 못해질 수 있겠습니까김 : 대통령님을 제가 여기서 만나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친서와 특사를 통해 사전에 대화를 해보니 마음이 편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중요합니다문 : (배석한 김여정 부부장을 가리키며)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는 아주 스타가 되었습니다김 문 : (큰 웃음) (김여정 부부장 얼굴이 빨개짐) 문 : 오늘의 주인공은 김 위원장과 나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잘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정권 중간이나 말에 늦게 합의가 이뤄져 정권이 바뀌면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작한지 이제 1년차입니다.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김 : 김여정 부부장의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의 속도로 삼읍시다.(웃음)임종석 실장 : “살얼음판을 걸을 때 빠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문 :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김 : 이제 자주 만납시다. 이제 마음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습니다문 : 북측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수습하시느라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김 위원장께서 직접 나서 병원에 들러 위로도 하시고, 특별 열차까지 배려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김 :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들에 대해 대통령님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습니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문 : 한반도의 문제는 우리가 주인입니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⑥정상회담 모두 발언 문 : 멀리서 오셨으니 인사 말씀 먼저 하시죠김 :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200미터나 되는 짧은 거리를 왔는지 말씀드렸지만, 분리선도 사람이 넘기 힘든 높이로 막힌 것도 아니고, 분리선을 넘어서 여기까지 역사적인 11년이 걸렸는데 돌아오면서 보니까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랬나. 왜 이렇게 오기 힘들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역사적인 이런 자리에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기대하시는 분들도 많고 지난 시기처럼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되고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만남 갖고도 좋은 결과가 좋게 발전 못하면 기대 품었던 분들한테 오히려 낙심을 주지 않겠나. 앞으로 마음가지고 잘 하고 정말 이 우리가 잃어버린 11년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수시로 만나서 걸린 문제를 풀어나가고, 마음을 합치고, 의지를 모아서 그런 의지를 가지고 나가면 우리가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게 좋게 나가지 않겠나. 이런 생각도 하면서 정말 만감이 교차하는 속에서 200미터를 걸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평화번영 북남 관계가 새로운 역사 쓰여지는 그런 순간의 출발점에 서서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출발 신호탄을 쏜다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여기에 왔슴다. 이런 문제들을 관심사가 되는 문제들을 툭 터놓고 얘기하고, 그래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이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가 지난 시기처럼 또 원점에 돌아가고 이행하지 못하고 이런결과 보다는 우리가 마음가짐 앞으로 미래 내다보면서 지향성 있게 손잡고 걸어가는 계기가 돼서 기대하시는 분들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오늘도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오기 전에 보니까 저녁에 만찬음식 가지고 많이 얘기하는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 냉면을 가지고 왔습니다.(웃음) 그런데 대통령께서 좀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멀리온 게, 멀다고 말하면 안돼갓구나? (웃음)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를 허심탄회하게 진지하게 솔직하게 이런 마음가짐으로 문재인 대통령님과 좋은 얘기하고 반드시 필요한 얘기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을 문재인 대통령 앞에도 말씀드리고 기자 여러분들 한테도 말씀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박수)문 : 우리 만남 축하하듯이 날씨도 아주 화창합니다. 한반도의 봄이 한창입니다. 한반도의 봄, 온 세계가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눈과 귀가 판문점에 쏠려있습니다. 우리 남북의 국민들, 해외동포들이 거는 기대도 큽니다. 그만큼 우리 두 사람 어깨가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 넘어온 순간 이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들, 전 세계의 기대가 큰데 오늘 상황 만든 김정은 위원장의 용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대화도 통 크게, 대화 나누고, 합의에 이르러서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만큼 10년 동안 못한 얘기 충분히 나눌 수 있길 희망합니다. 김 : 얘기를 해야 하는데 (ㅎㅎㅎ) 기자분들이 문 : (취재진 퇴장 요청하며) 네 이제. 편하게 얘기 좀 하게 해주실랍니까⑦정상회담 마친 뒤 평화의 집 2층 회담장 김 : 내가 말씀드리자면 고저 비행기로 오시면 제일 편안하시니까, 우리 도로라는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편합니다. 제가 오늘 내려와보니까 이제 오시면 이제 공항에서 영접 의식을 하고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습니다. 문 : 그 정도는 또 남겨놓고 닥쳐서 논의하는 맛도 있어야죠김 : (웃음) 오늘 여기서 다음 계획까지 다 할 필요는 없지요 문 : 아주 오늘 좋은 논의를 많이 이뤄서 우리 남북의 국민들에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주 선물이 사람 될 것 같습니다.김 : 많이 기대하셨던 분들한테 물론 이제 시작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겠지만 우리 오늘 첫 만남과 오늘 이야기 된 게 발표되고 하면 기대하셨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만족을 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 : 감사합니다.김 : 감사합니다.⑧오찬 및 휴식 후 공동 기념식수 문 : 1953년이 내가 태어난 해인데 (웃음) 김 : (소나무에 흙을 뿌린 후)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이 소나무를…모두가 그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지만, 모두가 마음가짐을 이 뿌리를 덮어주는 흙이 되고 바람막이가 되고, 소중한 뿌리를 덮어주는 흙이 되면. 우리들 동포들이…어렵게 찾아온 북과 남의 새봄을, 그 이후를 소중히 하고 잘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문 : 소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을 심은 것입니다. 김 : 소나무는 사철 푸릅니다. 소나무보다 강해야 합니다. 강인한 소나무의 정기 만큼이나. 표지석 문구(’평화와 번영을 심다‘)가 아주 훌륭합니다⑨도보다리 산책과 도보다리위 밀담 대화 김 :(오후 5시 15분 도보다리에서 산책과 오후 회담을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에게) 많이 기다리셨습니까”(웃음)⑩’판문점 선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전문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 깊은 시기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1. 남과 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나갈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다.①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③ 남과 북은 당국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④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안으로는 6.15를 비롯하여 남과 북에 다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밖으로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ㆍ친척 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ㆍ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⑥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2.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해소하는 것은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며 우리 겨레의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관건적인 문제이다.①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당면하여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②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③ 남과 북은 상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이 활성화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쌍방 사이에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를 지체없이 협의 해결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을 자주 개최하며 5월중에 먼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①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하였다.②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였다.③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ㆍ북ㆍ미 3자 또는 남ㆍ북ㆍ미ㆍ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양 정상은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2018년 4월 27일판 문 점대 한 민 국대 통 령문 재 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무위원회 위원장 김 정 은▽’판문점 선언‘ 서명 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발언 문 : 존경하는 남과 북의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평화를 바라는 8000만 겨레의 귀중한 합의를 이뤘습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함께 선언했습니다. 긴 세월동안 분단의 아픔과 서러움 속에서도 끝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목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북측이 먼저 취한 핵 동결 조치들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위한 소중한 출발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남과 북이 더욱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는 또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합의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땅, 하늘, 바다, 어디에서도 서로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발적인 충돌을 막을 근본대책도 강구해나갈 것입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느 비무장 지대는 실질적 평화지대가 될 것입니다. 서해 북방 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남북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할 것입니다. 나는 대담하게 오늘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통큰 합의에 동의한 김정은 위원장의 용기와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주도적으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 나가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 회담과 직통 전화를 통해 수시로 논의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결코, 뒤돌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남북의 국민 여러분,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북 모두의 평화, 공동 번영, 민족 염원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남북 당국자가 긴밀하게 대화하고 긴밀하게 협력할 것입니다. 민족 화해와 단합을 위해 각계각층이 다양한 교류와 협력도 즉시 진행할겁니다. 더 늦기 전 이산가족 만남이 시작될 것이며, 고향에 방문하고 서신을 교환할 것입니다. 남과 북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것도 매우 중요한 합의입니다. 여기서 10·4 선언 이행과 남북 경협 추진을 위한 남북 공동 조사 연구작업이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여건이 되면 각각 상대방 지역에 연락사무소를 두는 것으로 발전해갈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 민족 공동번영과 통일의 길로 향하는 흔들리지 않는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김 위원장의 통큰 결단으로 남북 국민, 세계에 좋은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의 발표 방식도 특별합니다. 지금까지 정상회담 후, 북측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세계의 언론앞에서서 공동 발표 하는 것은 사상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담하고 용기있는 결정 내려준 김정은 위원장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김 : 친애하는 북과 남의 여러분, 비극과 통일의 열망이 있는 이 곳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첫 회담을 가졌습니다. 성공적 회담 개최를 위해 많은 노고를 바치신 문재인 대통령과 남측 관계자 여러분들께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또한 우리들을 위해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며 성대히 맞이해준 한 혈육, 형제 따듯한 남녘 동포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북과 남이 오늘 이렇게 두 손을 맞잡기 까지 참 긴 시간이 흘렀고 우리의 이 만남을 한마음으로 기다려왔습니다. 정작 마주서고 보니 북남은 서로 갈라져 살 수 없는 한 혈육이며 그 어느 비길 수 없는 동족이라는 것을 가슴 뭉클하게 절감했습니다. 이토록 지척에 사는 우리는 대결하고 싸워야 하는 민족이 아닌, 단합하고 화목하게 살아야 할 한 민족입니다. 하루빨리 온 겨레가 평화롭게 잘 살아갈 길을 열 우리 민족의 새로운 결심을 안고 오늘 판문점 분리선을 넘어 여기에 왔습니다. 저와 문 대통령은 오늘의 상봉을 열렬히 지지·지원해 준 북남 겨레의 성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의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온 겨레가 전쟁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 하고 실천적 대책에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채택된 북남 선언, 모든 합의를 철저히 이행해 나가는 것으로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저와 문 대통령은 오늘 회담에서 합의하고 반영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 합의가 역대 북남 합의서들처럼 불미스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두 사람이 무릎을 마주하고 긴밀하게 소통·협력해 반드시 좋은 결실이 맺어지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 내가 다녀간 이 길로 북과 남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가슴 아픈 분단의 상징이 평화의 상징이 된다면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남은 본래대로 하나가 돼 민족의 끝없는 번영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굳은 의지를 갖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닫힌 문도 활짝 열릴 것입니다. 북남이 이해와 믿음에 기초해 민족의 대의를 먼저 생각하고 그 외 모든 것을 지양하면 북남 관계는 더욱 가속화되고 통일과 민족의 번영도 앞당겨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는 저절로 창조되고 이룩되지 않고 그 시대의 뜨거운 노력과 성실한 노력의 응결체입니다. 이 시대 우리의 화해와 단합과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창조해 놔야 할 모든 것을 완전무결하게 해 놓음으로써 자기의 역사적 책임과 시대적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길에는 외풍과 역풍도 있을 수 있고 좌절과 시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고통 없이 승리 없고 시련 없이 영화 없듯, 언젠가는 힘들게 마련됐던 오늘의 이 만남과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민족의 진로를 헤쳐간 날들을 즐겁게 추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뜻과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 새로운 꿈과 희망이 나아가는 새 시대로 미래로 한걸음 한걸음 보폭을 맞추며 전진해 나갑시다. 오늘 판문점 선언이 지금 우리 회담 결과를 간절한 맘으로 지켜보는 여러분의 기대에 보답하고 새 희망을 주길 바랍니다. 북남 수뇌의 상봉과 회담이 훌륭한 결실을 맺도록 전적으로 지지하고 격려를 보내준 북남, 그리고 해외 동포들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인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 만남에 커다란 관심과 기대를 표해준 기자 여러분들께도 사의를 표합니다. ⑪만찬 전 리설주 도착해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1층 입구로 마중 나와 두 부부 4명 현관 입구에서 회동 문 : 네, 영광입니다. 두 분은 인사를 나눴습니까?김 여사 : 인사했습니다.리 : 저 깜짝 놀랬습니다문 : 우리는 하루 사이에 아주 친분을 많이 쌓았습니다. 리 : 아침에 남편께서 회담 갔다 오셔서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진실하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회담도 잘 됐다고 하셔서 정말 기뻤습니다.김 여사 : 두 분 아까 저쪽에 다리 걷고 하는 모습 오면서 위성으로 봤습니다, 얼마나 평화롭던지 그런데 무슨 말씀이 오가는지.김 : 벌써 나왔습니까?김 여사 : 오면서 봤습니다, 무슨 말씀 하는지. 가슴 두근두근 하며김 : 우리 둘이서 카메라 피해서 멀리 갔는데 나왔구만요김 여사 : 굉장히 좋았습니다.문 : 아주 진한 우정을 나눴습니다.김 여사 : 예 그래서 미래에는 번영만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도 심으시고. 리 : 이번에 평화의 집을 꾸미는 데 여사께서 작은 세부적인 것까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문 : 가구 배치뿐만 아니라 그림 배치까지리 : 그래서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이렇게 왔는데…(웃음)김 여사 : (리설주에 손뻗어 다독이며 ) 저는 가슴이 떨립니다.문 : 두 분이 전공도 비슷하시기 때문에 앞으로 남북 간의 문화 예술 교류 그런 것을 많이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리 : 두 분께서 하시는 일이 항상 잘 되도록 옆에서 정성을 기울이겠습니다.⑫만찬 환영사 문재인 대통령 네 김정은 국무위원장님과 리설주 여사 그리고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말(안 들림) 전 세계의 관심이 우리에게 모였습니다. 역사적 사명감으로 우리의 어깨는 무거웠지만 매우 보람있는 하루였습니다. 북측 속담에 ’한 가마 먹은 사람이 한 울음 운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찾아준 손님에게 따듯한 밥 한끼 대접해야 마음이 놓이는 민족입니다. 오늘 귀한 손님들과 마음을 터놓는 대화를 나누고 귀중한 합의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하게 돼 기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특별히 준비해주신 평양냉면이 오늘 저녁의 의미를 더 크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한 자리에 앉기까지 우리 겨레 모두 잘 견뎠습니다. 서로 주먹을 들이대던 때도 있었습니다. 헤어진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서러운 세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귀중한 합의를 이뤘습니다.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출발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회담의 성공을 위해 전력을 다해주신 남북 관계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하나의 봄을 기다려 오신 남북 8천만 겨레 모두 고맙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것을 보며 나는 1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렇게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고 넘어오며 남과 북을 가로막는 장벽이 점점 낮아지고 희미해져서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10년 우리는 너무나 한스러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장벽은 더욱 높아져 철벽처럼 됐습니다. 단숨에 장벽을 낮춘 김정은 위원장의 용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분단의 상징 판문점은 세계 평화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김 위원장과 나는 진심을 다해 대화했습니다. 마음이 통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평화와 번영, 공존하는 새 길을 열었습니다. 남과 북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해 나가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함께 받아 나가야 한다는데 함께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갈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귀빈 여러분,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남과 북은 오늘 대담한 상상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평창에서 화해의 악수를 건넨 북측 선수단과 응원단, 평화를 염원하며 뜨겁게 환영해주신 남쪽 국민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북측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 김영철 통전부장은 특사로 방문해 대화의 물꼬를 터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드립니다. 이제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오늘처럼 남북이 마주 앉아 해법을 찾을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로 대화하고 의논하며 믿음을 키워 나갈 것입니다. 남과 북의 발걸음을 되돌리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 만났으니 헤어지지 맙시다. 다시는 이 수난의 역사 고통의 역사 피눈물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맙시다. 또 다시 되풀이된다면 혈육들은 가슴이 터져 죽습니다. 민족이 죽습니다. 반세기 맺혔던 마음의 응어리도 한 순간의 만남으로 다 풀리면 그것이 혈육입니다. 그것이 민족입니다. 나는 오늘 우리의 만남으로 민족 모두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한 가마 밥을 먹으며 함께 번영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귀빈 여러분,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 이런 북측 속담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올해 신년사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어제를 옛날처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손잡고 달려가면 평화의 길도 번영의 길도 통일의 길도 성큼성큼 가까워질 것입니다. 이제 이 강토에서 사는 그 누구도 전쟁으로 인한 불행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영변의 진달래는 해마다 봄이면 만발할 것이고, 남쪽 바다의 동백꽃도 걱정 없이 피어날 것입니다. 이제 건배를 제의하겠습니다. 내가 오래 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래킹하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그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퇴임하면 백두산과 개마고원 여행권 한 장 보내주시겠습니까? 하지만 나에게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닌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북측에서는 건배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위하여‘라고 하겠습니다.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 날을 위하여‘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그리고 이 자리에 같이한 남측의 여러분들, 이렇게 자리를 함께해 감개무량함 금할 수 없습니다. 분명 북과 남이 함께 모인 자리인데 누가 북측 사람인지 누가 남측 사람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이 감동적인 모습들이야말로 진정 우리는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재삼 인식하게 하는 순간의 기쁨, 그리하여 이다지도 가슴이 몹시 설레입니다. 정말로 꿈만 같고 반갑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이 자리를 보고 계신 여러분들, 오늘 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역사적인 상봉을, 그것도 분단을 상징하는 여기 판문점에서 진행하고, 짧은 하루였지만 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뤘습니다. 오늘의 이 소중한 결실은 온겨레에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며 조선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력과 의지는 시대의 역사 속에서 높은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문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이 역사적인 상봉과 합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북과 남의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악몽 같던 북남 사이의 얼어붙은 긴긴 세월과 영영 이별한다고 선고했으며 따뜻한 봄의 시작을 온 세상에 알렸습니다. 오늘 4월27일은 역사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멈춰졌던 시계의 초침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오늘의 만남과 상황과 성과는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입니다. 우리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고, 우리 앞에는 대단히 새로운 도전과 장애물 조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소한 두려움을 가지면 안되고 안되면 외면하고 피할 권리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고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면 그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들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숭고한 사명감을 잊지 말고 함께 맞잡은 손을 굳게 잡고 꾸준히 노력하고, 꾸준히 걸어 나간다면 반드시 좋은 방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오늘 그런 진심을 다시 한 번 가지게 됐습니다. 나는 오늘 합의한 대로 수시로 때와 장소에 가림이 없이 그리고 격식 없이 문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갈 길을 모색하고 의논해 나갈 것입니다. (박수) 그리고 필요할 때에는 아무 때든 우리 두 사람이 전화로 의논도 하겠습니다. 평화롭고 강대한 나라라는 종착역으로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합니다. 이 땅의 영원한 평화를 지키고, 공동번영의 새 시대를 만들어 나가려는 나와 문재인 대통령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서로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으면 그 어떤 도전과도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꼭 보여주고 싶으며, 또 보여줄 것입니다. 온 겨레의 공통된 염원과 지향과 의사를 숨기지 말고, 불신과 대결의 북남 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함께 손잡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나가야 합니다. 오늘 내가 걸어서온 여기 판문점 분리선 구역의 비좁은 길을 온 겨레가 활보하며 쉽게 오갈 수 있는 대통로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많은 고심 속에 검토하시는 문 대통령님, 그리고 김정숙 여사님, 남측의 여러분들, 그리고 여기에 참가한 모든 분들의 건강을 위해서 잔을 들 것을 제안합니다. 감사합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4-29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트럼프의 대선 도전, 브랜드 가치 위한 전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탈적인 인물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전조로 나타났던 최악의 동향들이 혼합되어 만들어낸 논리적인 결과물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의 요지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트럼프가 보여주는 모습은 한 개인의 돌출적인 행동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위험한 흐름’이 한 개인에게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라는 진단이다. 트럼프를 정면 비판한 책 ‘화염과 분노’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는 트럼프 개인과 주변 인물 등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이 책은 트럼프가 지난 반세기 바람직하지 않은, 그래서 위험한 흐름이 집약된 인물이라며 트럼프의 출현이 예견되어 있었다고 해석한다. 한 예로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한 상품을 생산하기보다는 어느 문화 집단의 한 일원이 되는 욕망을 자극하는 흐름’으로 ‘브랜드’화를 규정하고 ‘트럼프 브랜드’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한다. 트럼프는 그의 부동산이나 예능 TV 프로그램을 통해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켜 사업을 번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보탠 것도 트럼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와 충격 정치’라는 책에서 전쟁, 테러, 시장 붕괴 등 충격으로 혼란에 빠진 현실을 이용해 친기업적인 조치가 나왔다고 비판한 것처럼 이 책에서도 트럼프가 취임 후 충격을 선호하는 것은 충격을 통해 뭔가의 이득을 노리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백악관의 트럼프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트럼프”라는 저자의 지적에 누구보다 트럼프가 섬뜩함을 느낄 것 같다. “내가 위험한 흐름의 결집체라니!”라고 생각하면서.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4-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교육정책 중간평가’ D-60… 막강 권한 ‘교육 소통령’ 자리 놓고 보수-진보 진영 대결

    《‘형평성에 무게를 둘 것인가, 수월성에 무게를 둘 것인가.’ 14일로 딱 60일 앞으로 다가온 6·13시도교육감 선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교육감 선거는 초중고교 교육 환경에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감은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 폐지 권한 등을 갖고 있어 초중고교생들의 진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선거는 2010년 이후 세 번째 치러지는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감 동시 선거’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도 있다. 2014년 선거에서 17개 광역지자체 중 13곳을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차지한 데다 진보 진영의 문 대통령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전 경기도교육감) 체제에서 치러지는 선거여서 진보 측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의 의미도 있다. 2014년 선거에선 보수 후보들이 난립한 반면 진보 진영이 단일 후보를 낸 것이 진보 진영 약진의 한 이유가 됐다. 이번에는 진보 진영이 단일화에 진통을 겪고 있어 판세에 영향을 줄지 관심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감 선거는 진영 논리를 떠나 교육의 본질적인 사명을 다하기 위한 적임자가 선출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육감 선거의 의미와 쟁점, 예비후보 동향 등을 소개한다.》 “일반고 전성시대 정책으로 교육 활동이 다양해지고 체험 참여형 프로그램과 수업이 늘어나 학생들의 자아 존중감이 크게 올랐다.”(조희연 서울시교육감실 자료) “진보 교육감 시대가 9년째 계속되면서 교실이 붕괴되고 교권이 추락했다.”(임해규 경기도교육감 예비후보) 올해 ‘6·13 교육감 선거’에서는 직선 교육감 선출 10여 년 동안 도입된 정책을 놓고 후보 간 열띤 공방이 예상된다. 전체적인 구도는 도전하는 보수 진영 후보들의 공격과 진보 진영 후보나 현직 교육감의 방어전 양상이다. ○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 중간평가? 보수 성향 교육감 예비후보들은 “이번 교육감 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대입제도 개편안을 놓고 벌어진 혼선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질 태세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 줄이기’ 기조를 강조했음에도 제대로 된 논의나 합의 없이 정시 모집 확대를 추진해 교육 현장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 나아가 교육부가 최근 다양한 조합의 대입제도 개편 시안을 제시해놓고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해달라고 한 건 무책임한 태도라는 게 보수 진영의 주장이다.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들은 또 진보 교육감들이 강조해온 ‘혁신학교’ 설립 및 확대 움직임도 주 공격 대상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경기도교육감으로 취임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설립이 추진됐던 혁신학교는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자율학교다. 교사와 학생이 자율적으로 교과과정 개발과 학교 운영을 추진하고, 토론 중심의 수업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중·장기적으로 공교육 정상화와 다양화에 기여한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 성향이 강한 교사들이 중심이 돼 운영한 경우가 많았고,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평교사 중심이라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체험 중심의 ‘혁신학교’ 때문에 기초소양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학력이 저하됐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임해규 예비후보는 “혁신학교는 예산 차별 문제를 불러온 열등학교가 됐다”고 주장했다.○ 뜨거운 감자 특목고 자사고의 존폐 혁신학교 논란의 기저엔 수월성과 형평성 중 어디에 중점을 둘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가 깔려 있다. 자립형사립고(자사고)나 특수목적고(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 등) 존폐 논란도 여기서 비롯된다. 서울의 경우 현재 공립 특목고 19개교, 자사고 23개교이고 일반고와 특성화고가 각각 188개교와 70개교다.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은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 혹은 대대적인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사고와 특목고가 실제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명문대 특수 학원’으로 변질됐다고 본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우수한 학생을 우선 선발해 상위권 대학에 많이 보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는 것. 특히 외고와 과학고 등은 교육과정 개편을 추진해 운영할 수 있지만, 사립고 중 교육과정, 교원인사, 학사관리 등에서 학교가 광범위한 자율성을 갖도록 한 형태인 자사고에 대해 부정적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측이 임기 중 성과로 유치원 공공성 강화, 일반고 전성시대를 제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 ‘서울형 혁신학교 확대’ 등도 교육기회 평등과 보편성 강화 교육의 일환이다. 그러나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들은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위해 자사고와 특목고의 필요성을 인정해 왔다. 이들은 자사고와 특목고를 지금처럼 유지하되 논란이 되고 있는 이 학교들의 ‘학생 우선 선발 특권’만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밝힌 조영달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는 “지금까지 서울 교육은 교육평등 학생창의 학교안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불평등 해소’에 몰입하다가 창의와 안전은 소홀히 했다”고 주장했다. 교육감 후보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놓고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추진해 일부 시도에서 도입된 학생인권조례는 △교내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참여 자율화 △두발·복장 전면 자유화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민주적인 학교운영과 시민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로 본다. 반면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실질적인 학생 지도를 방해하고, 교사들의 권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일부 후보는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 같은 조항이 ‘동성애 인정’ 같은 논란이 있는 가치를 학생들에게 전파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정치색 더 짙어진 교육감 선거 서울시교육감 투표용지의 특정 후보 기호는 25개 구(區)마다 다르다. 다른 시도도 마찬가지다. 특정 후보가 유리한 번호를 독식하는 것을 막는 것이 주요 이유지만 특정 정당과의 연관성을 제거해 정치색을 배제하려는 것도 한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2006년 관련법이 마련된 뒤 10여 년이 지난 교육감 직선제에 대해 김흥주 세명대 교수는 “직선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의 학교 행정 운영 참여가 늘어난 것이 성과”라면서도 “직선제 이후 실제로는 정치색이 더 짙어졌다”고 했다. 서경대 구자억 교수는 “교육감의 성향이 교육 내용과 방향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구자룡 bonhong@donga.com·이세형 기자}

    • 2018-04-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교육감 권한은…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현장 교육행정 총괄

    이번 교육감 선거를 계기로 ‘교육 소(小)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교육감의 권한을 적절히 견제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교육감은 광역 시도의 유치원부터 고교에 이르는 초중등 교육행정을 집행하는 ‘지역 최고 교육 행정가’다. 서울시교육감의 경우 서울시교육청과 11개 교육지원청, 1195개 유치원 및 각급 공립학교 교원 5만5167명(2017년 7월 기준)에 대한 승진 전보 등 인사권이 있다. 올해 예산은 9조1512억 원에 이를 정도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한 고교 교장은 “교육청 안에서는 교육감의 지시를 어길 수 없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며 “중앙정부(교육부)의 견제 기능이 있지만 주민투표를 통해 선출됐고, 워낙 정치색도 강한 인사가 많아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지는 것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6월 교육감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일부 예비후보 사이에서도 교육감의 권한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다. 조영달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는 “교육감의 강력한 권한 견제를 위해 심의 의결권이 있는 독립기구인 ‘서울교육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권한의 분권화를 이루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바람직한 교육감 견제 방법으로 ‘제대로 된 투표’를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교육감의 실제 위상과 권한의 중요성에 비해 인물과 정책에 대해 잘 모른 채 ‘깜깜이 투표’가 이뤄지는 정치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희규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 후보들의 정책 발표나 TV 토론을 더욱 활성화해서 정책과 인물 검증에 대한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자룡 bonhong@donga.com·이세형 기자}

    • 2018-04-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구자룡]‘톈궁 1호’와 ‘우주 굴기’

    중국이 2011년 9월 쏘아 올린 첫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天宮) 1호가 2일 칠레 서쪽 남태평양에 떨어졌다. 지구촌에는 ‘중국의 고장 난 우주정거장 추락 위험 경보’가 며칠간 울렸다. 언제 어디에 떨어질지, 어떤 재난이 발생할지 등에 관심이 집중됐다. 통제 불능 ‘우주 쓰레기’를 방치한 중국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중국은 톈궁 1호가 2016년 3월 통신이 두절돼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가 됐는데도 지난해 말에야 유엔의 ‘우주 공간 평화적 이용 위원회(CUPOUS)’에 관련 사실을 통보해 비난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무게가 8.5t, 길이는 10.5m, 직경이 3.4m인 톈궁 1호는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발생한 엄청난 대기 마찰열과 충격으로 불에 타 분해된 뒤 바다에 떨어져 다행히 피해는 없었다. 조중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장은 “지금까지 우주 물체가 추락해 큰 인명 피해를 준 적은 없지만 1983년 1월 러시아의 ‘코스모스 1402호’ 위성이 추락할 때 전 세계를 긴장시켰고, 1969년 러시아에 정박 중이던 일본 화물선이 추락한 위성 파편에 맞아 선원 5명이 부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고대소설 서유기의 손오공이 누비고 다니며 소란을 피운 곳이 옥황상제의 하늘 궁전(天宮)이다. 추락했지만 톈궁 1호는 중국의 우주 개척 역사에서 맡은 역할을 다했다. 2012년 6월 18일 중국의 네 번째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9호와 도킹해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우주 도킹 기술을 확보했다. 톈궁 1호는 ‘선저우 8호’, ‘선저우 9호’, ‘선저우 10호’와 모두 여섯 번(세 번은 유인 우주선) 우주에서 도킹했고 6명의 우주 비행사가 톈궁 1호 내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2016년 9월 두 번째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2호가 올라가 톈궁 1호와 임무 교대를 했다. 중국의 우주 프로젝트는 크게 3가지로 우주정거장 건설, 달 탐사, 화성 탐사다. 미국과 러시아 등 16개국이 1998년부터 운용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은 2024년 퇴역할 것으로 전망된다. 계획대로라면 2024년 이후 중국이 유일한 우주정거장 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은 2013년 12월 세계 세 번째로 달 탐사선 창어(嫦娥) 3호를 달 표면에 착륙시켰다. 이때 실려 갔던 달 탐사로봇 ‘위투(玉兎·옥토끼)’는 2016년 7월 31일까지 972일이란 세계 최장의 달 탐사 기록을 세웠다. 중국은 올해 창어 4호를 발사해 인류 최초로 달 반대편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내년에는 창어 5, 6호를 보내 달 표면의 흙과 월석(月石) 2kg가량을 채집해 돌아오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2025년까지 달에 무인 기지를 건설한다는 목표도 있다. 화성에는 2020년 탐사선을 발사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에 맞춰 화성 표면에 착륙시킨다는 계획도 있다. 우주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는 위성 로켓 발사 기술이다. 중국은 해발 100km 이상 올라간 로켓을 1970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85차례 쏘아 올렸다. 한국은 아직 자체 제작한 로켓을 한 차례도 쏘아 올리지 못했다. ‘추락하는 위성’의 위험성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중국과의 우주 기술 격차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상황이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4-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경고음 요란한 ‘大豆전쟁’… 치킨게임 치닫나

    《2012년 2월 시진핑(習近平)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은 미국의 대표적인 ‘팜 스테이트(농업주·州)’ 중 한 곳인 아이오와주의 시골 마을 머스카틴을 찾았다. 그가 1985년 처음 지방 관리로 나간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서기 시절 콩(대두)과 옥수수 재배 기술 등을 견학하러 왔던 곳을 27년 만에 다시 방문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주중 대사로 임명된 테리 브랜스태드 당시 주지사가 시 부주석 일행을 맞았다. 그의 방문 기간에 중국 업체들은 1200만 t, 당시 가격으로 60억 달러가량의 대두 구매 계약을 맺었다.》 대두는 시 국가주석이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부터 미국과 우호 경제 관계를 맺는 데 가교가 된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그런데 중국이 4일 꺼내 든 25% 관세 부과 대상 품목에 대두가 포함됐다. 대두가 우호의 상징에서 미국, 그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겨누는 창이 된 셈이다. 유예 기간을 두긴 했지만 그만큼 양국 분쟁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국 농민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 모두에 고통스러운 결정이다. 누가 그걸 원하겠나.”(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4000에이커 규모 농장에서 대두와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부 크랜트 킴벌리 씨) 킴벌리 씨는 2012년 시 주석이 아이오와를 찾았을 때 만났던 농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중국이 미국 콩(대두)을 대체 수입할 곳을 찾을 수 없다. 그만큼 미중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중국 톈진에서 돼지 3만 마리를 기르고 있는 양돈 경력 20년의 톈자오집단 순차오 총재) 대두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가 즉각 시행되지는 않고 유예 기간 중 양국이 협상과 조정과정을 거치며 샅바싸움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대두 카드’를 둘러싼 양국의 복잡한 사정도 깔려 있다. ○ 정치적 민감 품목 건드리나 ‘글로벌 트레이드 아틀라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중국에 수출한 대두는 3199만7000t으로 123억5600만 달러어치였다. 미국의 전체 대중 수출액(1539억 달러) 가운데 8%가량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대두만 놓고 보면 중국이 57.2%(금액 기준)를 차지한다. 멕시코(7.4%), 네덜란드(5.1%) 등 다른 국가의 비중은 낮다. 미국은 세계 대두 생산의 35.1%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으로 한 해 생산량 1억1951만 t 중 47.0%를 수출한다.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농산물 중 대두의 비중은 58%가량이다.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 미국산 대두는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대두가 생산되는 지역이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텃밭이자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팜 스테이트’라는 점이다. ‘정치적 민감 품목’인 셈이다. 중국 궈타이쥔안(國泰君安)증권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미국 대두 생산 상위 10개 주(일리노이 아이오와 미네소타 네브래스카 인디애나 미주리 오하이오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칸소)에서 생산된 대두는 미국 전체에서 95%를 차지했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리노이와 미네소타를 제외한 8개 주에서 앞서며 승기를 잡았다. ‘대두 전쟁’이 발생해 가격이 폭락하거나 수출길이 막히면 농업주 민심이 돌아서 11월 중간선거(하원 전원과 상원의 3분의 1 선출)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 시간) 성명에서 “(소니 퍼듀) 농무장관에게 행정부 다른 각료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 농부와 농촌을 보호할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광범위한 권한을 활용할 것을 지시했다”며 ‘트럼프 컨트리’의 농심 달래기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다. ○ 콩의 나비 효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1일 “중국이 지난해 수입한 대두 139억6000만 달러어치 중 124억 달러어치는 돼지 사육용”이라고 보도했다. 90%가량이 돼지 사료용 콩깻묵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얘기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인 중국에서는 줄잡아 4억 마리 이상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수입 대두값이 오르면 사료 가격이 오르고 이럴 경우 일반 서민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인 돼지고기 가격도 오르게 된다. 돼지고기 가격이 중국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가량이다. 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5%, 2월은 2.9%였다. 비교적 안정적인 소비자 물가는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면 즉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두는 식용유 제조 원료로도 사용된다. 볶고 튀기는 음식이 많은 중국에서 식용유 가격 동향은 서민들의 체감 물가에도 큰 영향을 준다. 사실 중국은 1995년까지 대두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수입국으로 돌아섰다. 국내 생산량은 10년 이상 1500만 t 안팎에서 정체되어 있는 반면 소비량은 급증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수입량과 수입의존도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17년 중국의 대두 소비는 1억1080만 t으로 전 세계(3억4380만 t)에서 32%를 차지하는 최대 소비국이다. 생산은 한 해 1420만 t(4.2%)으로 세계 4위지만 9600만 t 이상을 수입해 수입의존도가 87.2%에 이른다. 2017년 기준 중국이 대두를 수입하는 국가는 브라질이 209억9600만 달러로 전체 수입의 52.8%를 차지해 가장 많다. 2위 미국이 139억6000만 달러로 35.1%였다. 양국 비중이 88%에 육박한다.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이 나도 대두 카드를 쉽게 쓰지 못한 것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양을 대체할 나라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3위 아르헨티나는 26억8400만 달러로 6.8%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는 수확기가 다른 것도 수입처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요인이다. 남미는 4, 5월에 수확하는 반면 미국은 9, 10월이 수확기다. 미중 갈등을 지켜보고 있는 브라질 등은 단백질 함량이 미국산보다 높다는 이유까지 들어 콩 가격을 크게 올릴 태세다. 미국 콩의 단백질 함량은 34.1%인 데 비해 브라질은 38.0% 이상으로 이에 상응하는 가치가 가격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미국 대두 수입량이 줄거나 관세가 부과되면 중국 내 가격이 크게 올라 또 다른 파장을 낳게 된다. 중국 정부가 최근 옥수수와 대두 농가에 보조금 지급 방침을 밝힌 것도 중장기적으로 국내 생산량을 늘려 미국 등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론 미국, 정치적으론 중국 유리? 대두를 포함한 미중 무역전쟁을 두고 WSJ는 경제적 측면에선 미국이, 정치적 측면에선 중국이 유리할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국내총생산(GDP)의 4%를 차지하지만 미국의 대중 수출은 GDP의 0.7%에 해당한다. 수출품에 대한 보복 관세의 ‘판돈’이 커질수록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이 타격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대두를 정면 겨냥했지만 이로 인해 대두값이 오를 경우 중국도 내상이 적지 않다는 게 단적인 예다. 반면 정치적 측면에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시 주석과 공산당의 결정에 반기를 들 내부 세력이 없는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1000억 달러 추가 관세 검토 지시와 관련해 벤 새스 상원의원(공화·네브래스카)은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가장 멍청한 미친 짓”이라며 “그는 미국 농업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2018-04-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중국판 계륵 ‘美 국채 투매’… 결행땐 中도 막대한 손해

    지난달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 500억 달러어치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上海) 증시에는 “올 것이 왔나” 하는 긴장감이 돌았다. 중국 재무부가 고위 당국자 회의를 열어 미국 국채를 매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도 다음 날인 23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양의 미국 국채 매각 또는 매입 축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엄포였다. 실제 미국과 중국이 이달 초 각각 1324개와 106개의 상대국 수입 품목에 대해 25% ‘관세 폭탄 카드’를 주고받은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5일 1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보복관세 검토를 지시하고 나서자 무역 전쟁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중국이 미국 국채 매각이라는 ‘최후의 패’를 꺼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이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다 팔면 자신도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더욱이 무역 전쟁이 화폐 전쟁으로 번져 양국 관계가 파탄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 투매는 부메랑이 될 수도 지난해 12월 말 기준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1조1849억 달러다. 해외에 판매한 미국 국채의 18.8%나 된다. 연말 기준으로 2016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미국 국채라는 ‘명줄’을 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이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려면 상당한 양의 국채를 투매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 1조1849억 달러 중 1000억 달러가량을 내다 팔아 달러 가치가 1% 떨어지면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1조 달러 국채의 1%인 1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다. 미 국채를 포함해 지난해 말 기준 3조 달러 이상의 중국 외환보유액 중 50∼60%가 달러화 자산이다.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중국 측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양평섭 선임 연구위원은 “중국이 채권을 내다 팔아도 일본 영국 등이 매입하면 미국으로서는 채권 보유국만 바뀔 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일본과 영국 등이 중국이 내놓은 채권을 매입해 완충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중국 언론에서는 중국이 국채 보유를 줄이면 바로 일본에 1위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자칫 미 국채를 팔아 적의(敵意)만 드러낼 뿐 미국에는 타격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양 연구위원은 “중국이 미국 채권을 판 뒤 확보한 자금을 투자할 다른 외환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달러만큼 매력적인 투자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미 국채 가격 하락으로 미국 내 금리가 오르면 미국 소비자와 기업의 투자 심리와 소비 위축이 초래될 수 있는 것도 중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인 미국 시장의 소비 위축은 대미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경제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 미국 국채 매입 외면? 중국은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개최하며 ‘중화부흥’을 선언한 2008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 국채 1위 보유국이 됐다. 2위 일본은 지난해 말 기준 1조615억 달러로 16.8%를 차지하고 있으며 1년 전에 비해 293억 달러가 줄었다. 중국이 무역수지 흑자 등으로 쌓이는 외환으로 미국 국채를 구매하는 것은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국으로 채권시장도 가장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 국채 등 거액의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달러화 가치 보호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다만 지난해 말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3조14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1294억 달러가 늘었는데, 흥미로운 건 중국이 보유한 외환 중 달러의 비중이 2010년경에는 90%가량으로 절대적으로 높았으나 최근에는 50∼60%로 낮아진 점이다. 점차 중국이 달러 의존도를 줄여 나가고 있다는 흐름으로 읽힌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미국 국채를 투매하지 않더라도 새로 발행하는 국채 매입을 외면하는 것으로도 미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 등 외국의 미국 국채 매입은 그동안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통과된 감세안 시행으로 세수가 줄어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감세 법안 통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는 앞으로 10년간 1조 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국채 발행 이외에 조달 방안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이 대규모 국채 투매에 나서거나, 투매는 아니더라도 신규 매입을 중단할 경우 국채 금리는 더욱 올라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와중에 국채 및 달러의 가치와 위신이 떨어지고 ‘달러 제국’의 위상도 하락하면서 화폐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 단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4-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中보복에 2배 보복… 트럼프, 100조원 추가 관세폭탄 장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5일(현지 시간) 1000억 달러(약 106조 원)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대한 추가 보복관세 부과 검토를 지시했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맞서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등 500억 달러어치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자 즉각 2배의 보복관세에 나설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중국은 자신들의 비행을 해결하기는커녕 우리 농부와 제조업자를 해코지(harm)하기로 했다”며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에 따른 1000억 달러의 추가 관세가 적절한지 검토하고 관세 부과 대상을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미국이 고율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인 품목은 3일 발표한 첨단산업 500억 달러를 포함해 1500억 달러로 늘어날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조치에도 미국은 자유롭고 공정하고 상호적인 교역을 달성하고 미국 기업과 미국인의 기술 및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지지하는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중국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주요 2개국(G2)의 관세 난타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미국산 콩(대두)과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2017년 기준 1조1849억 달러)의 운명이 주목받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미중 양국 모두에 피해가 가는 ‘양날의 칼’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4일 발표한 25% 관세 부과 품목에 대두를 포함시키면서 발효 시점을 유보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또 중국이 미국 국채 투매에 나설 경우 국채 가치 하락으로 중국도 막대한 손해를 볼 수 있다. ‘콩과 국채’만 놓고 보더라도 상호 이익과 손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미중 관세 난타전은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2018-04-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24>북한 핵은 어느 길을 가나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정상회담과 5월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처리방향에 대해 어떤 합의가 도출될 지 초미의 관심이다. 북한은 지난해 6차 핵실험으로 수소폭탄급 핵폭탄을 개발했고 탄도미사일은 사거리 1만km 이상으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 미사일 무력을 완성했다고 공언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5~28일 전격적으로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26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나 “한미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방법이 어떤 내용이 될 지는 남북 및 북미 회담을 거치면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최소한 ‘단계적으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진행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마크 내퍼 주한미국 대사 대리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미클럽 긴급 간담회를 갖고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가 북한과 만나는 목적은 바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필요하고 이것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대북 강경론자인 존 볼턴 신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최근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시간 벌기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이 1일(현지 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전했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탑재 미사일을 보유하려면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회담을 잇따라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퍼 대리 대사와 볼턴 보좌관의 발언 등은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가 북핵 문제를 속전속결로 끝내기를 바라고 있으며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선호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북한과 미국이 구상하는 북한 핵 처리 방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어떤 접점이 찾아질지 관심이다. 이처럼 북핵 처리 방안이 관심인 가운데 지금까지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했다가 중단 혹은 폐기했던 국가들의 경험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 핵 처리의 방향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 개발 단계나 보유 목적, 처리 방향 등이 각기 달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만 지구상에 등장했던 핵이 지금까지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인식이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했다가 중단 혹은 폐기한 대표적인 국가는 이란 리비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4개국이다.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중도에 포기 혹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폐기한 국가는 20여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산한다. 이란 리비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4개국은 핵보유 이유와 폐기, 폐기 후의 상황 등이 많이 달랐다. 이란은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시절을 운영하던 사실이 드러나 서방의 제재와 압력을 받다가 제제 해제 등을 조건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독일 등 6개국과 합의로 핵개발을 포기했다. 다만 핵무기를 보유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 핵시설과 핵물질 등을 폐기해 사실상 핵개발을 중단 포기한 것이어서 개발이 끝난 핵을 폐기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리비아는 오랜 기간 핵 제조기술과 핵물질을 도입해 핵무장을 하려다 유엔과 미국의 제재로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먼저 핵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고 철저한 이행 감시를 받고 경제제재 해제 등 보상을 받아 미국 보수파는 바람직한 핵처리 사례로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의 무하마드 카다피 국가 원수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발생한 내전에서 반군에 체포돼 처형됐다. 그가 핵을 포기한 것은 외부적인 압력에 의한 것이지만 내전에서 패한 데는 핵무기가 없었던 것도 한 요인이 됐다. 북한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로 ‘리비아 카타피 운명’을 사례를 든다. 핵은 외부로부터의 안전과 함께 국내적으로도 독재 권력을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뒤 독립할 때 많은 양의 핵 무기를 ‘물려 받은’ 우크라이나는 한 때 러시아의 위협 등을 이유로 계속 보유하자는 논의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영국 러시아가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이어 프랑스 중국까지 가세하면서 핵의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00개의 전략 핵탄두와 2300여기의 전술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거나 소련에 인계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국내 원전 15기에 사용하는 우라늄 연료를 모두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사용후 핵연료도 전부 러시아로 반출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등의 시설도 없다. 그런데 러시아는 안전보장 약속에도 불구하고 2014년 크림 반도의 크림공화국을 무력 합병했다. 미국과 서유럽은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맺었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휴지조각이 됐다. 영토 일부가 잘려 나가는 것을 지켜주지 못했다. 미 의회가 1991년 11월 27일 샘 넌 의원과 리처드 루가 의원이 발의한 ‘소련의 핵위협 제거 법안’을 토대로 수정한 ‘협력적 위협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CTR)’ 법안이 우크라이나에서 모범적으로 적용됐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대국이 ‘멋대로’ 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약소국이 언제든지 강대국 이해관계에 의해 희생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주변국 위협 등을 이유로 핵무기를 개발한 뒤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에 스스로 폐기했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체제에서 모범적인 국가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지만 개발과 폐기 등이 워낙 독특한 사례여서 북한 핵처리 등에 주는 시사점은 많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남아공은 두 차례의 핵실험까지 해서 핵을 개발했으나 드 클레르크 대통령이 스스로 폐기했다. 1980년대 말 안보위협이 감소하는 등 이유로 핵무기가 불필요하고 핵폐기로 NPT에 가입하는 등 정상적인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적인 이익에 더 부합된다는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있었지만 핵 보유에 대한 제재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된 핵으로 어느 국가도 위협하거나 무력 시위를 벌이지도 않았다. 남아공은 인종차별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핵폐기로 정상국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남아공의 핵보유 동기와 폐기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없지 않다. 다만 핵보유국 증가를 막아 핵전쟁의 가능성을 줄여 세계를 보다 안전하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져 1970년 발효된 NPT 체제하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참고 자료 : △‘핵 포기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개발 지원경험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조명철 김지연 홍익표) △‘핵폐기 사례 연구: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의 함의와 한계’(한인택) ‘한국과 국제정치’ 제27권 △‘북핵 2·13 합의와 평화적인 핵폐기 사례 분석’(전성훈), 통일연구원 △동아일보 2015년 4월 4일 1면 등 이란 핵폐기 관련 보도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4-04
    • 좋아요
    • 코멘트
  • [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김정은 3代 중국 방문의 각기 다른 이유

    ‘김일성은 6·25 전쟁을 일으키고 군사동맹과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 김정일은 한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낙후하자 개혁 개방의 모델을 찾아서, 김정은은 과속 핵 미사일 개발로 인한 제재 숨통을 풀기 위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011년 집권 이후 7년 만에 북한을 전격 방문해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중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3대(代)를 이어가게 됐지만 중국을 찾는 이유는 달랐다. 다만 자주노선이나 ‘주체’ 사상을 내세우며 중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북한이지만 급한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지에 몰리는 등 전환기를 맞으면 거의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을 찾은 점은 비슷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 한반도에서 물러간 후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북한에 온 김일성이 최고 지도자로서 몇 번이나 중국을 방문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공식발표는 없다. 다만 일본 히라이와 슌지 간세이가쿠인대 교수는 ‘북한 중국 관계 60년’ 저서에서 1991년 10월 마지막 방중 때 39번째였다고 적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1983년 당비서 시절 중국에 온 적 있으나 1994년 김일성 이 사망한 뒤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는 2000년 이후 모두 8번 중국에 왔다. 북한 정권이 들어선 뒤 김일성의 첫 방중은 1950년 6.25 전쟁 발발 12일전인 5월 13일로 베이징을 찾아 마오쩌둥(毛澤東)과 만나 전쟁 준비를 마무리하는 회담을 가졌다. 앞서 4월 10일부터 25일까지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과 만나 6.25 전쟁에 대한 협의를 한 뒤 베이징에 왔다. 마오는 “미국이 참전하면 중국을 부대를 보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1961년 7월 10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이른바 ‘전쟁 시 상호원조’를 규정한 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도 6월 29일부터 7월 10일 소련을 방문해 유사한 내용의 조약을 맺은 직후에 중국에 왔다. 김일성은 그후 미국 헨리 키신저가 방중한 후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후, 중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해 동북아 전략 지형이 요동칠 때 중국을 방문해 달라진 전략 환경속에서의 북중 관계를 점검했다. 특히 1979년 1월 1일 중국과 북한이 공동의 적으로 설정했던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뒤인 4월 19일에도 김일성은 부랴부랴 중국에 와 덩샤오핑(鄧小平)과 만났다. 김일성이 마지막 으로 중국은 온 1991년 10월은 구소련이 해체돼 한국과 소련이 수교(1990년 9월) 하는 등 냉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때였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후 6년 가량이 지날 때까지도 중국을 찾지 않은 냉전 붕괴와 개혁 개방으로 치닫는 중국이 북한의 세습 독재 정권 유지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도 한 요인이 됐다. 하지만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소련 중국 및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면서 활발히 북방 정책을 펴는 등 체제 경쟁에서 너무 뒤쳐진데 따른 위기감이 작용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2000년 5월 이후 중국을 방문한 것은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발전과 변화상을 보기 위한 것도 큰 요인이었다. 김정일이 2001년 두 번째 중국을 방문해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고 감탄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정일은 방문할 때마다 ‘베이징(北京)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 등 첨단 기술 집적지역과 발전된 도시들을 둘러봤으며 돌아간 뒤에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개혁 개방 조치를 취했다. 김정은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2년 12월 총서기에 당선된 이듬해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 시 주석 집권 5년 동안 4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국제 사회 대국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어 대북 재제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 전쟁’을 불사하고 압박해 오면서 중국이 대북 제재를 강화해 북중 관계도 악화 일로를 걸었다. 김정은의 방중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고립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6차 핵실험으로 수소폭탄 위력의 핵을 개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강행한 뒤 유엔은 10번째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한국 등의 단독 제재와 교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적극적인 제재 가담에 김정은이 손을 든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과 북한 미국 정상회담의 물꼬를 트자 김정은은 기민하게 시진핑 주석을 찾았다. 이번 김정은 방중 형식은 시 주석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서로의 필요성이 맞아 떨어졌다. 이번 북중 회담이 언제부터 추진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은 제재 강화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여기고 있는데 한국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발표되는 것에 ‘차이나 패싱’을 당했다고 여기고 “정말 다른 곳에 먼저 갈 거냐”고 김정은을 압박했을 수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기에 앞서 “나에게 중국 카드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 몸값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는 제재 완화의 명분을 줄 수 있는 ‘양수겹장’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는 이른바 ‘패싱’을 당하고 있는 형국에서 정상회담 등 북일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지구촌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적(公敵)’이자 ‘문제아’였던 김정은이 강대국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는 상황으로 반전이 일어났다. 다만 아직 김정은이 어느 정도까지 비핵화 의지가 있는 지가 핵심적인 관건이 될 전망이다. 그는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한미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과거처럼 시간 끌기를 하면서 실리만 챙기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스스로의 페이스를 유지할지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한국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이 중국으로 먼저 오자 중국은 철통보안으로 어느 국가 정상에 못지않은 예우를 했다. 시 주석과 김정은은 회담과 연회, 공연 관람 등 5시간 이상을 함께 하며 끊어졌던 정상간 교류 재개를 축하했다. 이번 김정은 방중점은 중국으로 달려가게 한 사정은 김일성 김정일 때와 달랐지만 북한이 큰 고비를 만날 때 중국을 찾은 점은 같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국은 대를 잇는 전통적 우의를 강조하며 김정은을 환영했다. 하지만 이번 김정은 방중이 주는 또 다른 시사점은 중국이 과거와 다름없이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서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준 점이다. 북한과 중국이 서로를 이런 시각에서 보고 있는 한 ‘한반도 분단 구조’는 변화가 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북중 관계가 냉랭한 상태에서 한국,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의사를 먼저 밝히자 이 참에 북한이 ‘친미반중(親美反中)’으로 방향을 틀어보라고까지 주문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이번 김정은 방중은 그 같은 희망사항에 ‘꿈깨라’고 일갈하는 셈이다.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 2018-03-28
    • 좋아요
    • 코멘트
  • [글로벌 이슈/구자룡]‘하나의 중국’에 도전하는 미국의 쌍칼

    미국은 중국과 1979년 1월 1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하는 대신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필요에 따라서는 대만에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 등도 포함돼 있다. 미국이 이런 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수교 협상에서도 큰 쟁점이 됐다.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대만에 무기를 계속 팔겠다는 것은 대만과 대화를 통해 국가 통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무력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반발했지만 양국의 수교와 미국의 ‘대만관계법’ 제정은 이뤄졌다.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명예교수는 “덩샤오핑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지할 수 있게 할 만큼 (중국이) 충분한 역량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를 허용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판단했다”(‘덩샤오핑 평전’)고 분석했다. 미국이 대만 안보 지원을 위해 무기는 판매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뜻에서 지켜온 것이 고위층 교류의 자제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서명한 ‘대만여행법’은 대만 총통의 워싱턴 방문 및 교류도 가능하게 한다. 실행 여부와는 별개로 미중 관계에서 또 하나의 ‘레드 라인(최저선)’을 넘어설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어떠한 분열 행위도 인민의 규탄과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1월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하자 “법이 발효되면 단교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얼마나 민감하게 여기는지는 1995년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모교 방문 반발 파동’에서 극명히 알 수 있다. ‘두 개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 독립을 주장한 리 총통이 모교인 코넬대 강연 등을 위해 1995년 6월 7일부터 12일까지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은 ‘개인 신분’으로 비자를 발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국은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인민해방군 제2포병 부대가 푸젠(福建)성에서 미사일 6발을 대만 쪽 바다로 발사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8월 15일부터 25일까지는 동중국해에서 해상과 공군 합동 훈련도 벌였다. 미국이 이듬해 3월 인디펜던스호와 니미츠호 항모를 대만 인근으로 파견하면서 일단락됐다. 미국은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최대 규모의 미군 병력을 서태평양에서 전개했다. 중국은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은 물론이고 수교국이 많은 카리브해 지역과 중남미를 방문할 때 중간 급유 등을 위해 거쳐 가는 것도 가만두지 않았다. 하와이나 서부 캘리포니아주, 알래스카주 등을 거치도록 했다. 리 총통은 1994년 5월 중남미를 순방할 때는 하와이를 경유하되 비행기에서는 내리지도 못했다. 역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출신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2004년 8월 중남미 방문을 위해 하와이를 잠시 경유했을 때는 비행기에선 내렸지만 그를 환영하는 대만 교민에게 접근하지 못했고 승용차 창문도 못 열었다. 친중파였던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도 ‘미국 경유’에서 수난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2008년 8월 첫 중남미 방문 당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을 거쳤지만 교민들과 일절 접촉하지 않아 ‘투명인간 방미’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 6월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방에서 나오지 않고 미국 내 인사나 교민들에게 전화만 돌려 ‘전화 외교’를 하러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2016년 5월 취임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은 2017년 1월 중남미 4개국을 순방할 때 뉴욕에 들러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만날지가 관심이었다. 트럼프가 당선 직후 미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과거 대통령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은커녕 미 동부 지역도 못 가고 휴스턴과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했다. 중국은 이제 30년 전 수교 당시의 중국이 아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해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다. 미국이 시 주석의 경고가 나온 20일 알렉스 웡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를 대만에 보내 잽을 날렸지만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5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 수입품 관세 폭탄에 서명했지만 ‘하나의 중국’에 정면 도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만관계법’에 이어 ‘대만여행법’이 가세된 미중 간 ‘하나의 중국’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 2018-03-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중국판 그린스펀’ 저우샤오촨 행장 퇴임과 새로운 美中간 ‘화폐 전쟁’

    올해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최대 화두는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을 없앤 헌법 개정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22년 이후에도 퇴임하지 않고 장기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 최대의 화두였다. 양회는 3일 개막해 20일 폐막했다. 하지만 이번 양회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지난 15년간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 행장을 지낸 저우샤오촨(周小川)의 퇴임이다. 2002년 임명된 저우 행장은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거쳐 시진핑(習近平) 주석까지 3명의 최고 지도자를 모셨고 이례적으로 3연임했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린스펀 의장(1987년 8월 ~2006년 1월까지 18년 재임)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게 주요국의 중앙은행장으로 재직해 ‘미스터 런민폐’라는 별명도 붙었다. 저우 행장의 재임 시기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2010년)이 됐다. 그가 국제 통화시스템 개혁의 하나로 내세웠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위안화도 포함(2015년) 됐다. 신흥국의 IMF 궈터(지분) 조정도 이뤄졌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출범(2016년)하는 등 금융분야에서도 많은 도약이 있었다.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위상이 높아진 만큼 위안화의 달러 제국에 대한 도전은 거세졌으며 그 선봉에는 저우 총재가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을 거쳐 올해 2월 5일 임명된 제롬 파월까지 4명을 거쳤다. 그의 후임에 궈수칭(郭樹淸)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과 장차오량(蔣超良) 후베이(湖北)성 서기가 발탁되거나 시 주석의 측근인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이 경제부총리와 인민은행 행장을 겸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빗나갔다. 저우 행장은 보아오포럼 부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3기 전국인민대회’(이하 전국인대) 제7차 전체 회의에서 이강(易綱) 부행장을 신임 인민은행 행장으로 지명한 후 표결을 통해 확정했다. 이강 행장 임명으로 시진핑 정부 2기의 경제 라인업은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류허 경제 부총리-이강 런민은행 총재로 구축됐다. 이강 행장은 대표적인 금융 개방론자로 알려져 앞으로 중국이 금융 분야에서 개방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강 신임 행장은 베이징(北京)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인디애나대에서 6년간 경제학을 강의했다. 그는 1997년 런민은행에 들어와 통화정책사(司) 사장, 행장조리 등을 거쳐 2008년 인민은행 부총재가 됐다. 그는 10년간 저우 전 행장과 함께 금융 개혁과 자유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미국 대학 강의가 가능한 영어 실력을 갖춘 것도 발탁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행사 등에서 중국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 분위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통’인 이강 행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미스터 런민비(인민폐)’로 불리는 인민은행 총재의 권한은 막강하다. 인민은행이 관리하는 외환은 지난달 말 기준 3조 달러가 넘는다.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 보유액이다. 이강 행장은 “비트코인은 매우 특색있고 오랜 기간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전임 저우 전 행장과는 시각을 달리해 가상화폐를 금지하고 있는 기존 정책이 달라질 지 주목된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3-22
    • 좋아요
    • 코멘트
  • 45년 걸쳐 240개국 여행… “투발루야 잘 있느냐”

    《45년간 세계 240개 국가와 자치령 등을 여행하고 최근 한국기록원의 공인 인증까지 받은 이해욱 전 체신부 차관(80). 납치 위험, 내란과 시위 사태 등도 그의 도전을 막지는 못했는데…. 세계 여행에서 그는 무얼 얻었을까.》 “나를 세계 여행으로 이끈 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이었습니다. 물론 오랜 시간에 걸친 대장정을 지속하고 끝을 낼 수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아내죠. 아내가 저를 지지하고 상당수 국가는 동행해 줬기에 가능했습니다. 혼자서는 외롭기도 하고 위험해서도 못합니다.” 2016년 한국인 최초로 240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세운 이해욱 전 체신부 차관. 그가 최근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섬나라 100개국 방문을 포함한 240개국 방문’ 공식 인증서를 받았다. 1938년생으로 올해 80세인 그에게 섬나라 100개국을 포함한 240개국 방문 도전은 무슨 의미일까. 무엇을 얻었을까. 서울 강남역 부근 20여 m²의 작은 사무실을 찾아 여행담을 들었다. 사무실은 각국 여행 자료와 사진, 중국에서 구입한 지구본 등으로 꽉 차 있었다. ―세계에 240개국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세상의 모든 나라를 다닌 것인가. “유엔 가입국은 193개국이다. 이 중 탈레반과 전쟁 등 폭력 사태가 끊이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은 끝내 가지 못했다. 나머지 48개국 중에는 유엔에 가입하지 않은 팔레스타인도 있고 자치령이나 통상적인 국가는 아니지만 세계표준화기구(ISO)가 ‘국가 코드’를 부여하고 있는 곳도 있다.” 그는 “북한은 2006년 8월 3박 4일간 금강산 여행을 다녀온 게 전부”라며 “평양을 가야 제대로 북한을 갔다고 할 수 있는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240개국’이나 다녔으니 10대 때부터 배낭여행도 다니고 한 줄 알았는데 33세 때 처음 해외에 나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체신부 사무관이던 1971년 5월, 간신히 출장팀에 끼어 나간 것이 첫 해외여행이다. 요즘 같은 배낭여행은 생각지도 못할 때다. 체신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치고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 등도 다 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여행에 나서 240개국을 마치는 데는 2016년까지 45년이 걸렸다.” ―해외여행에 대한 동경이나 꿈은 언제부터였는지….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취미가 영화 감상이었다. 1950년대 서울 ‘신촌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보며 이국적 풍경에 매료돼 일찍부터 유학을 꿈꿨다. 고2 때 주한미군이 가르치는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대학도 외국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해외로 유학하지 못하게 제도가 바뀌어 꿈을 접었다.” ―2016년에 ‘240개국 여행’을 마쳤는데 인증을 받는 데 2년이나 걸렸다. “출입국 도장이 찍힌 여권을 복사해 각 도장이 어느 나라, 어느 지역 것인지 하나하나 설명을 붙이고, 한 나라당 10장가량의 사진을 첨부하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어 힘들었다. 여행하면서 쓴 일기장도 보내라고 했지만 겉장만 보냈다. 세계 기네스북 기록에도 신청을 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싫다고 했다. 너무 번거롭고 비용도 적지 않은 데다 인증 기준도 뚜렷하지 않았다. 무슨 인증을 받으려고 다닌 것은 아니니까.” ―언제 어떤 계기로 전 세계를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전기통신공사 사장을 퇴직하고 한 달 남짓 지난 1993년 5월, 처음으로 북유럽 단체 여행을 가게 됐다. 중간에 우리 부부만 이탈해 스위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을 돌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도전 의식과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 후 약 2년간 유로 패스로 유럽 전역을 돌면서 다른 지역도 공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현역 시절 이 전 차관은 은퇴하면 산부인과 의사이던 아내(김성심 씨)도 진료를 중단하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로 서로 약속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고생스럽더라도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 일주 여행이 되리라고는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5대양 6대주를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물론이다. 나름대로 치밀한 작전이 있었다. 먼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먼 곳부터 다니자고 해서 중남미부터 시작했다. 한 대륙이나 지역을 잡으면 몇 개 블록으로 나눠 빠지는 나라가 없도록 동선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중남미는 40여 일 단체 여행을 다녀온 뒤 빠진 나라를 리스트업해 아내와 배낭여행을 3차례 더 다녔다. 1997년 1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을 도는 데 약 5년이 걸렸다. 남극 대륙과 남극 주변의 사우스조지아, 포클랜드 등은 남미와는 별도로 다녀왔다. 그 후에는 태평양의 섬나라, 중동과 아프리카 순이었다. 아시아 각국은 틈나는 대로 단체나 개별 여행을 다녔다.” ―가장 힘들었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아프리카 서부 지역 국가들이다. 아프리카 53개국 중 이곳은 교통편도 불편하고 내전에 풍토병도 걱정됐고 무엇보다 여행 정보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에 이곳으로 가는 단체 여행이 간혹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서부 아프리카는 일본으로 가서 일본 단체 여행팀에 끼어서 다녔다.” 그가 서부 아프리카 국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2010년 3월 7일 유엔 가입국 192개국 여행이 마무리됐다. 그해 10월 19일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공인인증서도 받았다고 했다. 그때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ISO가 국가라고 인증한 자치령이나 섬나라 등도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한두 나라만 다녀도 사연이 많은데…. “아제르바이잔은 기차에 탑승할 때 현금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가이드가 부주의로 얘기를 하지 않아 중간에 역에서 하차당해 수색을 받고 조사를 받았다. 가이드가 돈을 좀 집어주고 나서야 간신히 해결됐다. 아프리카 알제리에서는 도착하기 직전 독일 여성 한 명이 여행 중 강도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여행 기간 경찰 호위를 받으며 VIP 대접을 받기도 했다. 남태평양의 통가는 비자가 필요 없다고 해서 비자 없이 갔더니 입국 심사장에서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피지로 비행기 타고 나와서 비자를 받아 다시 들어갔다.” 이 전 차관은 2008년 1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는 공항에서 납치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말이 국제공항이지 베냉과 접경지역에 있는 공항 청사 마당에 화물 트럭이 어지럽게 세워진 곳을 지나서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화물 트럭 중간에 숨어있던 몇 명의 괴한이 다가와 “여권을 보자”며 시비를 걸어왔다는 것. 그는 멀리 공항 청사에 있는 일행에게 수건을 흔들고 소리치며 SOS를 요청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지부티와 수단 등을 여행하고 돌아오다 봉와직염(급성 세균감염증의 일종)에 걸려 응급실 신세를 진 얘기, 2010년 7월 인도 북부 카슈미르를 여행할 때 반정부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져 낭패를 봤던 얘기 등 끝이 없었다. 이 전 차관은 여행하는 동안 틈틈이 기록을 하고 사진 수만 장과 함께 동영상도 250시간 분량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는 인상 깊었던 여행지가 많겠지만 몇 곳만 꼽아 달라는 물음에 수만 마리의 펭귄이 가득했던 남극 대륙과 함께 바다에 잠기고 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를 들었다. 9개의 산호섬으로 구성된 투발루는 평균 해발고도가 3m 정도로 이미 2개는 바다에 잠겼다. 극지방 빙하가 녹아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해수면이 1961년부터 해마다 약 1.8mm씩 높아지고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약 40년 후 완전히 잠길 것으로 예상되는 투발루 섬 곳곳에 이미 물에 잠긴 곳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주민들은 순차적으로 뉴질랜드로 이주 중이다. 그는 2005년 피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투발루로 가던 중 비행기 고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는데 3년 후에 다시 갔다. 그곳을 가지 않으면 태평양의 섬을 다녔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240개국을 다니는 데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배낭여행이라고 하지만 기차에서 자고 노숙하고 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숙소는 비싸지 않으면서도 안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의외의 사건 사고가 나면 일정에 큰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이 전 차관은 “자식 3명 중 누구도 해외 유학을 가지 않아 교육 비용이 크게 안 들었다. 평소 골프도 안 하고 자동차도 안 굴리며 여행 경비를 틈틈이 모았다”고 했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240개국을 다녀온 뒤로는 국내 여행은 다녔지만 해외엔 나가지 않았다. 앞으로는 일본 중국 등 가까운 곳이나 다니려 한다.” 그는 3시간 이상에 걸친 인터뷰를 마칠 때쯤 “지난해 해외로 나간 한국인이 2649만 명에 이른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나보다 많은 국가를 가본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혼자 생각하면 괜히 뿌듯하고 1등을 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힘들게 많은 곳을 다녀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여행을 할수록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인다. 무엇보다 새롭게 꿈꾸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점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답했다. 이 전 차관은 ‘세계는 한 권의 책’(2011년), ‘이해욱 할아버지의 지구별 여행기’(2013년)라는 책도 펴냈다.▼5박 6일 뱃멀미 고통… 나폴레옹 혼 깃든 외로운 섬▼마지막 퍼즐 ‘240번째 국가’는 영국 자치령 세인트헬레나섬이해욱 전 차관이 ‘240번째 국가’로 간 곳은 프랑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이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뒤 영국군에 의해 유배돼 숨진 대서양의 고도이자 영국 자치령인 세인트헬레나다. 2016년 이 전 차관 부부는 오랫동안 마지막 방문지로 남겨둔 이곳 한 곳을 다녀오는 데 20여 일이 걸렸다고 한다. 이 전 차관과 부인 김성심 씨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인천공항에서 찍은 사진에는 활짝 웃고 있지만 사실은 녹초가 된 뒤였다. 세인트헬레나섬은 우편운송선 ‘RMS 세인트 헬레나호’를 타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편도로만 5박 6일이 걸리는 곳이었다. 그는 “승객 130여 명이 타는 배였는데 흔들림이 심해 미리 준비해 간 멀미약은 물론이고 배에서 돈을 받고 놔주는 주사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섬에 도착한 뒤 일주일가량 구경하면서도 돌아가는 배를 탈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이 전 차관은 “푸른 바다와 작은 산으로 이뤄진 섬은 나폴레옹에게는 유배지였으나 그야말로 천혜의 관광지였다”고 말했다. 면적 121km²로 주도 제임스타운 등에 약 4530명(2016년 기준·위키피디아)이 사는 곳이다. 나폴레옹 시신은 파리로 옮겨졌고 지금은 빈터에 무덤이 있었다는 표시만 남아 있다. 하지만 섬의 한 식당에 실물 크기의 큰 나폴레옹 조형물(사진)이 세워져 있는 등 나폴레옹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 전 차관은 말했다. 그는 “그곳은 여행 대상 섬들 중에서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자 배 운항 일정도 불규칙했지만 반드시 도전해야 했던 곳”이라며 세인트헬레나섬을 마지막 여행지로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3-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차화선’ 빛나던 해안도시… 산업구조 전환에 짙은 먹구름

    《‘성동조선의 청산은 지진보다 무섭다. 정부와 통영시는 생존권을 보장해라.’(경남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 성동조선해양 정문 앞 도로 현수막) “아침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문을 열어 놓지만 한 달 임차료 100만 원 벌기도 힘들어 올해 초엔 아르바이트생도 내보냈다.”(전북 군산시 한국GM 공장 인근 편의점주 하소연)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견인해온 ‘특급 엔진’이었던 코스트(해안)벨트 지역 주력 업종들이 산업 구조 조정기를 맞아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의 ‘러스트벨트(Rust Belt·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주 등 미 북부와 중서부 지역 제조업이 경쟁력이 떨어져 쇠락한 것을 표현)’에 빗대 ‘해안벨트’가 한국판 러스트벨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전북 군산의 한국GM 자동차 공장 철수 논란과 경남 통영의 성동조선해양 법정관리, 거제의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절벽 등은 두드러진 몇 사례에 불과하다. 인천, 충남 당진, 전남 영암, 전남 광양·여수, 부산, 울산, 경북 포항 등 연해지역에 위치한 중후장대형 산업단지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해안벨트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군산과 통영·거제 등을 찾아 실태를 들여다보고 원인과 해법을 모색해본다.》코스트(해안)벨트는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지역이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 경기 침체와 주기적인 시황 악화,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 유형의 변화 등 이른바 ‘산업의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수년 전부터 예견된 변화였지만 호황에 취해 변신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소에 골리앗만 멀뚱히 서 있어’ 14일 낮 12시경 전북 군산시 소룡동 한국GM 공장 앞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넓은 직원 주차장에 차량 20여 대가 서 있고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7월부터 가동을 중단한 인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는 출입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25만 t급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다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독(dock)은 텅 비어 있었다.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군산공장 폐쇄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군산조선소와 한국GM 군산공장 인근 상가 지역인 오식도동 일대. 상가와 원룸, 상업시설 곳곳에 임대, 매매 문구를 써 붙여 놓았지만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 강광훈 씨(44)는 “조선소 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던 원룸 임대료는 7평 1인실 기준 25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떨어졌고 500여 채 가운데 절반이 공실”이라며 “그나마 찾는 사람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14일 오전 10시 경남 통영시 안정산단 내 성동조선해양. 한때 성동조선과 내부 협력업체 근로자 등 9000여 명이 근무해 북적였던 조선소 3개 야드는 100m 높이의 골리앗 5대만이 멀뚱히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배운용 총무홍보파트 차장은 “세계 최초의 ‘육상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잘나갈 때는 한 해에 40척의 배를 건조하던 곳”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성동조선해양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에는 ‘오후 3시 문 열고, 오후 7시에 문 닫습니다. 양해 바랍니다’는 게시문이 붙어 있었다. 통영 인근 거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고현동 중앙로 인근에 위치한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불과 2, 3년 만에 아파트 가격이 20% 이상 떨어지고 방 구하기가 어려웠던 원룸 공실률이 25%로 치솟았다”고 귀띔했다. 이어 “과거 수주 물량이 넘쳐 추석과 설날에도 쉬지 않고 조업했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라고 덧붙였다.○ 특정 업종 편중이 부른 부메랑 거제는 국내 두 번째 크기의 섬으로 6·25전쟁 당시 피란민이 몰려들고 전쟁 후 포로수용소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560m 거리의 바다를 노를 저어 오간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김의부 거제 향토사연구소장은 “물건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도 모르는, 육지와는 고립된 지역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1971년 구 거제대교가 건설돼 육지와 연결되고 1979년과 1981년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선박 건조의 메카로 변신했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위한 전진기지로 개발됐던 군산은 1980년 외항 건설, 1994년 군산국가산업단지 완공, 1997년 대우자동차(현 한국GM) 군산공장 가동 등의 호재가 잇따르면서 날개를 펼쳤다.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부평공장 터로는 생산 능력 확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군산공장 투자를 결정했다. 이 같은 해안벨트에 2, 3년 전부터 본격적인 찬바람이 불어왔다. 거제는 2016년 이른바 ‘수주 절벽’으로 조선업 불황의 한파가 지속되면서 조선에만 목을 맨 것이 발목을 잡았다. ‘거제 조선업희망센터’에 따르면 조선업에서 이탈한 뒤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퇴사 후 3∼8개월) 다시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약 30%. 이 가운데 90%가량은 조선업이었다. 조건은 열악해도 유사한 업종으로 간다는 뜻이다. 군산은 제조업 근로자 2만6000여 명 가운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GM 군산공장 근로자가 1만2000여 명으로 절반가량 된다. 두 회사가 잇따라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역경제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포스코 제철소가 있는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 현대제철 제철소가 있는 충남 당진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철강제품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철강 경기가 나쁘지 않아 당장 어려움을 겪지는 않겠지만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도 한국산 철강 제품에 최대 70%가량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어 해당 도시들이 긴장하고 있다. 울산도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조선업체들 때문에 부분적으로 지역경기가 위축됐지만 자동차나 정유 및 석유화학업체들이 건재해 다른 해안 도시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으로 대미(對美) 수출 환경이 악화되면 현대자동차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변해야 산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 주력산업의 미래 비전과 발전전략’ 보고서는 선진국에 치이고 후발국에 쫓기는 한국의 주력 산업으로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기계 등을 들었다. 바로 해안벨트에 들어선 업종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기업의 업종별 경쟁력지수를 100으로 보고 선진국과 후발국의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자동차는 선진국 106.3, 후발국 94.4로 분석됐다. 석유화학은 선진국 102.9, 후발국 97.9로 추정됐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25년 국내 주력 산업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한국 주력 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네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생산성 향상과 규제 등 생산 여건 개선을 통한 국내 생산 확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의 새로운 역할 모색 △신제품과 신산업을 중심으로 한 주력산업 변화 유도 △서비스 등 관련 산업으로의 사업 범위 확대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후발 개발도상국의 추격으로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만큼 한국 기업이나 도시들도 변신에 나서야 한다”며 “다만 한국은 스웨덴 말뫼처럼 경쟁력이 아예 없어진 상황은 아니어서 산업구조 개편과 함께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경남발전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의 김도형 연구원은 “전혀 새로운 업종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며 “거제의 경우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면서 다시 도약할 기회를 기다려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거제시 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통영이나 거제 모두 조선업 호황이 꺼질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수년 전부터 켜졌지만 관련 기업은 물론이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이제라도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쳐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통영·거제=구자룡 bonhong@donga.com / 군산=윤영호 / 송진흡 기자}

    • 2018-03-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화-관광-신산업’ 반짝이는 도시로… 미래형 산업지도 다시 그리자

    ‘한 우물 파기에서 벗어나자.’ 한때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던 ‘코스트(해안)벨트’ 지역들이 침체를 겪으면서 새로운 활로 모색에 나서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풍부한 근대문화유산을 앞세워 관광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경남 통영시는 한려수도라는 입지적인 장점에다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점을 활용해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국내 조선 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경남 거제시는 ‘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승부수를 띄웠다. 이 밖에 다른 해안벨트 지역들도 입지 특성 등을 고려한 대체 산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가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이나 관광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하면서 정부 지원에만 매달리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지역에 맞는 새로운 성장 산업을 찾아내고 중앙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해양·특화산업단지로 승부수 군산은 일찌감치 국제 관광기업도시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관광산업을 집중 육성해 왔다. 1899년 개항한 만큼 근대문화유산이 많아 콘텐츠가 풍부한 데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천혜의 해상관광공원인 고군산군도 등 관광 자원도 많기 때문이다. 성과도 있었다. 지난해 군산을 찾은 관광객은 370만 명. 올해 목표는 500만 명이나 된다. 지난달 말 새만금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새만금 개발의 전기가 마련됐지만 현지에선 크게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군산상공회의소 온승조 팀장은 “새만금에 기업 유치를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쉽지 않은데 특별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통영도 세계적인 해양문화관광지로 성장한다는 계획 아래 인프라 조성에 오래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다. 2008년 설치한 국내에서 가장 긴 1975m 길이의 케이블카가 대표적이다. 케이블카가 설치된 461m 높이의 미륵산 정상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이 있었던 한산도 앞바다를 포함한 300리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또 지난해 2월에는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미륵산 자락에 얼음 위가 아닌 육상에서 운행하는 ‘통영 루지’를 설치했다. 이후 통영시는 ‘하늘에는 케이블카, 땅에는 루지’를 모토로 관광객을 유치해 지난해 전년보다 13% 증가한 734만여 명의 관광객이 통영을 찾았다. 통영시는 또 2002년부터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하면서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 조선업 의존도가 특히 높은 거제시도 대체 산업 육성에 고심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부터 ‘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저탐사 굴착 설비의 모듈 생산거점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고현항 항만 재개발 사업은 기존 시설 개선 확장은 물론이고 고현동 장평동 앞바다를 2단계에 걸쳐 매립해 해양문화 관광산업 단지로 키우는 것이다. 2015년 시작해 2021년 완공 예정인데 현재 70%가량 진행됐다. 자연생태테마파크, 해양관광테마파크, 거제해양휴양특구 설치, 경북 김천과 거제를 잇는 남북내륙철도(총연장 181km) 건설도 추진 중이다.○ 정부는 뾰족한 대안 없어 고민 중 정부도 해안벨트의 주력 산업이 흔들리면서 대체 산업 육성에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뾰족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는 해당 지역 실업자 지원 등을 통해 발등의 불을 끄는 데에 급급하다. 정부는 지방정부가 지역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에 특화된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 줄 것을 요구한다. 과거처럼 중앙정부가 일방적이고 하향식으로 산업시설을 배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요즘 뜨는 신산업을 무조건 유치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전국에 똑같은 산업을 중복 배치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전제를 깔고 거제와 통영 등에서는 조선 부품업체를 기반으로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군산에서는 한국GM 군산공장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를 기반으로 전기차 및 자율차 부품산업을 육성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건수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하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지방정부 주도로 구성한 지역협의체에서 오랜 기간 논의를 계속해 신산업을 찾아내고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경우가 많았다”며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군산=윤영호 yyoungho@donga.com / 통영·거제=구자룡 기자}

    • 2018-03-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