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구자룡 기자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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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자룡 기자입니다.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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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2024-04-27
남북한 관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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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반7%
대통령3%
정치일반3%
기타60%
  • [횡설수설/구자룡]꽃가루

    인류가 식량으로 재배하는 작물 가운데 100여 종은 꿀벌이 꽃가루를 옮겨 열매를 맺게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꿀벌의 역할은 꿀 생산보다 꽃가루 이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 2016년 미국에서 꿀벌이 멸종 위기 곤충으로 지정되자 온갖 꽃을 옮겨 다니며 꽃가루를 묻혀 나르는 ‘드론’ 연구가 시작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만큼 꽃가루의 이동은 인류 생존에 필수적인데 동시에 꽃가루는 봄철 호흡기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거리를 하얗게 뒤덮은 꽃가루’라고 표현하지만 엄밀히는 맞지 않는 말이다. 버드나무 포플러 플라타너스 등이 내뿜는 것은 ‘종자솜털’ 혹은 ‘씨앗털’이지 꽃과는 관계가 없다. ‘하얀 꽃가루’로 찍힌 솜털 중 알레르기 항원이 되는 것도 많지 않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를 내보내는 나무는 참나무 삼나무 등 16종, 풀은 돼지풀 명아주 질경이 등 10종이다. 4월∼6월 초의 봄철에는 주로 나무 꽃가루가, 8월 말∼10월 초에는 잡초 꽃가루가 많이 날린다. 심폐 기능과 천식에 좋은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어 삼림욕 나무로 인기인 편백나무도 최근 꽃가루가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꽃가루 알레르기가 걱정거리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가로수나 산림녹화로 나무가 많이 심어진 1960년대 후반부터다. 꽃가루 경계심이 높아지자 기상청은 2010년 봄부터 꽃가루지수를 발표했고 지금은 ‘날씨누리’ 홈페이지에 참나무와 소나무 잡초류로 나눠 꽃가루농도오염지수를 매일 발표한다. 미세먼지(10μm)와 초미세먼지(2.5μm)는 입자 지름으로 구분하지만 모양이 다양한 꽃가루는 무게로 분류한다. 소나무꽃가루가 106∼127μg(마이크로그램)으로 가장 크고 낙엽송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삼나무 등의 순이다. 꽃가루의 무게와 유해성의 상관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과거 가로수 선정 기준은 빨리 자라고 대기정화 효과가 있는 나무들이었다. 그런 나무들이 꽃가루 공해 주범으로 몰려 대거 퇴출됐다.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베어진 나무 중 하나는 수양버들이고, 신작로 길가에 많았던 외래종 이태리포플러, 플라타너스 등도 크게 줄었다. 그 빈자리에 은행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등 꽃가루가 적은 나무들이 심어졌다. 중국 베이징시도 197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심었던 포플러와 버드나무 28만4000여 그루에 대해 최근 군사작전 하듯 가지치기와 벌목에 나섰다. 나무는 항상 같은 나무이거늘 시대가 달라져 용도가 바뀌면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는 운명은 나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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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中 5·4운동 100주년

    “조선의 독립선언문을 각 학교 교문이나 묘당에 붙여두고 자극을 받아 군벌이나 외세 등 압제자를 타도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중국 상하이(上海)시보는 1919년 5월 4일 사설에서 두 달여 앞서 일어난 3·1운동의 교훈을 이같이 피력했다. 오늘 100주년을 맞는 중국의 5·4운동과 한국의 3·1운동은 그렇게 항일 정신에서 맞닿아 있다. ▷5·4운동이 일어나기 전 중국인들은 일본인들을 ‘구이쯔(鬼子·귀신)’라고 부를 정도로 싫어하면서도 주눅 들어 있었다. 식민지 조선을 동정하면서도 부패와 무능 때문에 망했다며 무시하던 중국인들은 3·1운동을 보고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해 4월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 호의적이었던 것도 3·1운동의 영향이었다고 부산대 배경한 교수는 말했다. 후에 공산당 초대 총서기가 된 신문화운동의 기수 천두슈는 “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절실하며 민의에 의한, 무력에 의거하지 않는 세계 혁명사의 신기원”이라고 평가했다. ▷그렇게 깨어난 민중의 의지가 표출된 것은 5월 4일 베이징 톈안먼광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의 중국 내 이권을 일본에 넘긴 데 분노한 베이징대 학생을 주축으로 한 3000여 명의 시위대는 광장에서 시위를 벌인 뒤 ‘친일 매국노 3인방’ 중 한 명인 군벌정부의 교통총장 차오루린의 집으로 몰려갔다. 응접실에 걸린 ‘일본 천황’ 사진에 격분해 집을 불살랐고 군벌정부는 학생 32명을 체포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항일 및 반군벌정부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5·4운동은 중국 역사에서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사건이자 주권의식을 표출한 첫 시민운동으로 현대사의 출발점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도 5·4운동에서 싹튼 대중의 주권의식이 토양이 됐다. 그런데 막상 중국 정부는 5·4운동을 기리는 데 이중적인 모습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30일 5·4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애국’은 19번 언급했지만 또 다른 키워드인 ‘민주’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는 곧 30주년을 맞는 톈안먼 6·4시위를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광장에서 벌어진 시위는 5·4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도 있었으나 지금 중국에서 6·4는 금기어다.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두꺼워지고 ‘성장통’이 심화되면서 중국 당국의 정치적 경계심도 높아지고 있다. 5·4와 6·4의 성지였던 톈안먼광장도 ‘침묵의 봄’이다. 5·4운동의 주역들이 100년을 건너와 본다면 안타까워할 현실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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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 현장칼럼/구자룡]정권 바뀌자 애물단지로… 더 굳게 닫혀버린 개방형 투자병원

    ‘이렇게 큰 건물이 47병상 병원이야?’ 지난달 찾아간 제주 서귀포시 한라산 중턱의 복합의료관광단지 ‘헬스케어타운’ 내 3층 높이 녹지국제병원 건물의 첫인상은 웅장하고 럭셔리하다는 것이었다. 연면적 1만8200m²로 일반 병의원이면 200병상은 되지만 녹지병원은 병상이 모두 1인실이다. 하지만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778억 원을 투자해 지은 국내 프리미엄 ‘1호 개방형 투자병원(영리병원)’인 녹지병원은 출항도 못하고 좌초됐다. 녹지병원은 지난달 26일 병원에 남아있던 직원 50여 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지난달 17일 제주도가 병원 개원 허가를 취소해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다. 헬스케어타운 짓다만 건물 수두룩 한때 한중 경제 협력의 상징이었던 녹지병원 사업 좌초는 양국 갈등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고용을 창출하고 의료관광산업을 키우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할 기회도 사라졌다. 뤼디그룹의 대규모 투자는 신화역사공원 제주드림타워 등 제주 곳곳에 중국 자본의 투자를 이끄는 청신호였으나, 이제는 불투명한 행정과 여론에 의한 정책 뒤집기 등의 비판이 나오면서 제주에 투자할 때 조심하라는 경고등이 됐다. 상하이시 산하 부동산개발 전문 뤼디그룹이 제주도와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2011년 12월. 국토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개발하는 헬스케어타운 153만 m² 부지(약 1조5000억 원 규모)의 절반가량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금은 중국 내 70개 도시에서 랜드마크 건물을 짓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8개국에 진출한 뤼디그룹의 첫 해외 투자였다. 콘도 400채를 짓는 1단계는 완료돼 대부분 중국인들에게 분양됐다. 지난달 찾아간 콘도 입구에는 ‘한라산 두자춘(漢羅山 度假村·휴양촌)’이라는 중국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콘도 내부 안내문에 중국어와 한국어가 병기되고 프런트 직원도 중국인이었다. ‘제주 속의 중국 마을’이다. 그런데 255채가량의 추가 콘도 일부와 호텔, 쇼핑몰, 테마파크 등을 짓는 2단계는 공사를 진행하다 중단됐다. 헬스케어타운 내 이곳저곳에 짓다만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했다. 당초 2018년 말까지 끝내기로 했던 뤼디그룹의 개발은 공정 54%만 진행되다 멈췄다.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 외화 반출을 제한하고 한중 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도 터졌지만 녹지병원을 둘러싼 갈등도 한 요인이다. 문대림 JDC 이사장은 “녹지병원 (허가 지연 및 취소) 문제로 다른 투자를 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뤼디그룹의 당초 타운 개발 계획에 안티에이징센터는 있어도 병원은 없었다. JDC가 자체적으로 타운 내에 ‘메디컬 스트리트’를 6곳 조성해 병의원을 모으고, 의료 관광객을 겨냥한 병원은 또 다른 중국 기업 J사와 추진했다. 그런데 양해각서까지 맺었던 J사가 병원 설립을 포기하고 메디컬 스트리트 조성도 지지부진하자 JDC는 뤼디그룹에 병원도 지으라고 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후 외자 유치 등을 위해 김대중 정부 때 입법한 경제자유구역법과 노무현 정부 때 만든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외국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하는 조항이 마련되어 있었다.뤼디그룹은 병원 운영 경험이 없다며 병원 설립을 거부했으나 JDC는 2단계 개발 시설 부지 매각을 지연하며 압박했다. JDC와 뤼디그룹이 실랑이를 벌이며 1년 반가량을 보내는 사이 시진핑 정부의 외화 반출 제한이 나왔다. 뤼디그룹의 투자 타이밍이 꼬였다. 2015년 12월 뤼디그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첫 ‘영리병원’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JDC 이사장이 발 벗고 나섰다. 외국인 의료 투자 유치와 의료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개방형 투자병원’이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돼 박근혜 정부에서 결실을 맺는 듯했다. 元지사 “정부, 영리병원 태도 바뀌어” 녹지병원은 의사 9명, 간호사 28명을 포함해 134명(제주도민 107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2017년 8월 개원 허가를 신청했다. 진료과는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 등 4개. 그런데 통상 병의원 개원 허가는 신청 2주가량이면 나오는데 허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해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영리병원’에 대한 정부의 기류가 변해 제주도지사가 허가권은 있지만 선뜻 내주지 못했다. 일부 의료단체와 시민단체들은 국내 공공의료 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며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지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원자력발전소 건설 관련 여론 수렴에서 도입된 ‘숙의형 공론화’를 녹지병원에 적용했다. 지난해 10월 ‘제주 숙의형 공론조사위’에서 반대 권고가 58.9%나 나왔고 원 지사는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조건을 달아 지난해 12월 5일 개원 허가를 내줬다. 녹지병원이 복지부가 설립을 허가했고 의료진 등 요건을 갖춰 개원 허가를 신청했다는 점은 JDC 측도 인정했다. 허가를 내주는 데 특별한 하자가 없지만 여론의 반대압력이 높아지자 원 지사가 내놓은 절충 내지 고육책이 ‘조건부 허가’였다. 그런데 ‘외국의료 기관’은 투자자가 외국 자본 100%여야 한다는 조건은 있지만 ‘내국인 진료 제한’ 조항은 관련법 어디에도 없다. 원 지사가 조건부 허가를 내주면서 “행정신뢰도 및 국가신인도, 거액의 손해배상 등을 우려해 허가를 내준다”고 부연 설명한 것도 그런 점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 지사는 이어 뤼디그룹이 ‘내국인 진료 제한’에 대해 취소 행정소송을 내며 문을 열지 않자 지난달 17일 ‘정당한 사유 없이 개원 허가 후 3개월 내 개원하지 않았다’며 허가를 취소했다. 개원 허가 취소 발표 전날 도지사실에서 만난 원 지사는 “정부가 바뀌면서 영리병원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을 느꼈다”며 “허가 취소에 대해 소송이 들어오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가 소신을 지켰다면 일이 이렇게 무산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대외 신뢰도 하락 등 후유증 남겨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 대해 제주도가 녹지병원 허가를 취소하듯 중국 당국이 여론 변화 등을 이유로 조치를 바꾸면 어떻게 할 거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중국 선양에는 롯데가 백화점 호텔 테마파크 등 3조 원 규모의 복합쇼핑몰 사업을 추진 중인데 호텔과 테마파크는 건축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처음 투자할 때는 협조를 아끼지 않더니 일조권, 소방규정 등을 내세운다고 한다. 롯데가 사드 부지를 제공한 뒤 나온 보복의 뒤끝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투자 유치할 때와 그 후의 태도가 다르기는 장군 멍군이다. 복지부는 녹지병원 사태 후 영리병원을 더 이상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리병원’이 돈벌이를 위해 고가 진료를 부추기고 공공의료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반론도 많다. 제주의 원로 의료 전문가인 이유근 아라요양병원장(영상의학 박사)은 “녹지병원 규모의 영리병원이 개원해도 제주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을 것”이라며 “제주 의료계도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건강보험도 안 돼 내국인 환자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고, 한중 간 성형 수술 격차가 줄고, 중국인 관광객도 줄어 내국인 진료를 허용해도 녹지병원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개방형 투자병원 설립이 금지된 국가는 한국 일본 네덜란드 등 3개국이지만 일본은 의료특구에는 허용한다. 뤼디그룹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지난해 12월 원 지사가 조건 없이 개원 허가를 내줬으면 뤼디그룹이 가장 괴로웠을 것”이라며 “개원 허가를 15개월가량 지체하고 법적 근거가 약한 조건부 허가를 붙여 오히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식’이어서 병원 문은 안 열고 투자비 등 손해 배상 소송을 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녹지병원 허가 취소 사태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리게 하고 대외신뢰도를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국내 의료산업 발전도 역행하게 하는 등 후유증을 남기게 됐다. 서귀포=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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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복제견 ‘메이’ 학대 논란

    2005년 4월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팀은 세계 첫 복제견 ‘스누피’(서울대와 강아지의 합성어)를 탄생시킬 때 2년 8개월간 대리모견 123마리를 투입했는데 한 마리도 희생시키지 않은 것에 자부심을 나타냈다. 당시까지 세계적으로 복제양 돌리 이후 동물 10여 종이 복제됐으나 개는 성숙한 실험용 난자를 얻기 어려운 등의 이유로 난공불락이었다. 팀원이었던 이병천 교수는 당시 실험동물도 보호하면서 큰 성과를 거둔 스누피 탄생의 주역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 교수가 2012년 10월 복제한 비글 품종의 ‘메이’가 공항에서 탐지견으로 5년간 활동하다 은퇴한 뒤 다시 실험동물로 쓰이다 폐사했다. ▷영국 로슬린연구소가 1996년 7월 체세포 복제 동물인 양(羊) ‘돌리’를 처음으로 탄생시키자 ‘세계 역사는 돌리 전후로 구분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는 흥분했다. 생명 창조에 관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우려도 나왔다. ‘돌리 이후’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기 이식을 하지 않고도 난치병을 치료할 수도 있게 됐지만 복제 인간 탄생 가능성 등 윤리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나를 보내지 마’는 기숙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장기 이식용으로 복제된 인간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겪는 절망과 아픔을 다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개는 영장류를 제외하면 사람과 공유하는 질병도 65가지로 가장 많다. 소 50가지, 면양 45가지보다 많은 데다 주요 질병 치료에 긴요해 실험용으로 많이 쓰였다. 1888년 광견병 백신이 개를 통해 개발됐고 인슐린과 인공심폐기 개발, 신경세포 기능 발견 등이 개를 통해 이뤄졌다. 최근 개의 복제 성공률은 50∼60%까지 높아졌고, 용도와 목적에 맞는 실험용 개도 복제할 수 있게 됐다. 이 교수팀이 메이를 실험에 사용한 것도 마약탐지 검역 기능을 고도화한 스마트 탐지견을 개발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사람이나 국가를 위하여 사역한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금지한다’는 동물보호법 규정 위반이라며 이 교수를 22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동물종의 생태, 습성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위하여 실험하는 경우’ 예외로 두는 규정도 있어 유무죄 판단은 이르다. 실정법 위반 여부를 떠나 복제견으로 태어나 인간을 위해 열심히 일한 뒤 다시 실험용으로 쓰이고, 최후엔 앙상한 몸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다 죽었다는 ‘메이’의 기구한 운명이 안쓰럽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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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체포된 어산지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는 1989년 톈안먼 사태 다음 날 아내와 함께 베이징 주중 미국대사관으로 들어가 13개월 만에 미국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왕리쥔 충칭시 공안국장은 2012년 신변에 위협을 느껴 쓰촨성 청두의 미국영사관까지 차를 몰고 들어갔지만 24시간 만에 중국 당국에 넘겨졌다. 외교 공관이 치외법권이어서 그곳으로 들어간 사람이 보호를 받는 것은 1961년과 1963년 체결된 ‘빈 협약’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련국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1급 수배자’로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운명도 그렇다. 그는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 망명 생활 7년 만에 11일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에 쫓기던 어산지는 2012년 2월 반미 성향 에콰도르의 대사관에 들어갔고 시민권까지 받았다. 그런데 2017년 친미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대사관 안에서만 지내면서도 발코니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감시를 받으면서 눈칫밥을 먹는 신세가 됐다. 11일 대사관에서 체포돼 나오는 어산지의 모습은 온통 백발에 수염도 하얗게 되어 47세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산지처럼 미국의 ‘1급 수배자’로 쫓기는 에드워드 스노든은 어산지 체포 소식이 알려진 뒤 트위터에 “자유 언론의 어두운 순간”이라며 동병상련을 나타냈다. 미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스노든은 2013년 미국 내 통화감찰 기록과 NSA 기밀문서 등을 폭로한 뒤 러시아에 망명해 머물고 있다. 그도 한때는 모스크바 공항 환승구역에서 쫓겨날 운명이었으나 간신히 망명객 신세가 됐다. 스노든은 어산지를 보면서 ‘정치적 기후’가 바뀌면 자신도 어떤 운명을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산지의 체포 소식이 전해진 뒤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법무장관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때 위키리크스의 힐러리 클린턴 관련 이메일 폭로 이후 “위키리크스를 사랑한다”며 내심 어산지 효과를 즐겼던 트럼프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군 헬기가 민간인을 살해하는 동영상 등 어산지가 폭로한 내용들은 공익적 폭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 국방부 사이트를 해킹하는 등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한 것이다. 어산지가 미국에서 재판받으면 군사 기밀 유출 혐의 등으로 5년형을 받을 수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이나 권력 국가와 맞서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백발의 어산지가 새삼 보여준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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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 현장칼럼/구자룡]盧정부때 시작했는데 ‘4대강 적폐’ 몰려… 세종보가 기가 막혀

    19세기 영국은 템스강의 보가 오염물질을 가라앉히는 등 수질 개선 효과가 있는 것을 보고 하수처리장 원리를 개발했다. 이처럼 외국에서 주요 하천의 보는 홍수 조절 등 수량 관리 못지않게 환경 개선에서도 주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이후 한국 강의 보는 진보진영과 환경단체에 의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왔다. 올해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2월 금강과 영산강의 5개 ‘4대강 보’ 처리 방안을 발표했을 때 필자가 크게 놀라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4대강 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졸속으로 변형시켜 추진했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필자도 그 추진 과정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봐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도 ‘묻지 마 청산’처럼 성급하게 처리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환경부 발표에서 해체 대상 보 가운데서도 경제성이 가장 떨어지고 여론조사에서도 유일하게 해체 찬성이 많았던, 해체 1순위로 찍힌 세종보를 전문가들과 함께 찾았다. “보(洑)는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달 29일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필자는 당혹감부터 느꼈다.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금강 학나래대교 상류의 세종보는 불과 1km 남짓 떨어진 보 사업소 사무실에서 봐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보 높이가 2.8∼4.0m로 낮은 데다 다른 보와 달리 다리 등 상부 구조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7년 11월부터 개방한 뒤 강바닥이 드러나 바닥과 물막이 보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보 위를 타고 넘기도 했으나 이날 수위는 42cm, 약 500m 강폭 중 물이 흐르는 곳은 폭이 50m가 채 안 됐다. 세종보는 건설 배경과 목적이 다른 보와는 다르다. 세종보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7월과 11월 수립된 행정도시 기본계획에 따라 시작됐다. 논과 밭뿐인 허허벌판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인공호수를 파고,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건천(乾川)에 물을 공급하는 등 ‘친수(親水)’ 시설을 위해 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 이춘희 세종시장이 초대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청장 시절 기획됐다. 16개 4대강 보 중 유일하게 도심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와 동행한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장)는 “세종보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1년 9월 준공은 됐지만 ‘무늬만 4대강 보’”라고 설명했다. 세종보는 사실 2017년 수문을 연 뒤부터 비상이 걸렸다. 세종보 물은 정부세종청사 옆에 조성된 국내 최대 인공호수인 세종호수공원에 물을 공급한다. 이 호수공원의 과거 평균 수심은 1.5m였는데, 보의 물을 뺀 뒤엔 수위가 한 뼘 이상 낮아졌다.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건천인 제천과 방축천은 상류로 세종보 물을 끌어 ‘신행정수도의 청계천’으로 불렸으나 보 개방 이후 상황이 바뀌어 실개천이 되어 있었다. 손태청 세종바로만들기시민연합 대표는 “‘보가 없어도 물 이용에 어려움이 생길 우려가 크지 않다’고 한 말은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보 개방으로 물 공급이 어려워지자 보 상류에 지난해 3월 돌과 자갈을 철제 망태에 담아 막은 ‘자갈보’가 지어졌다. 기존 보의 물을 빼고 간이 보를 만들어 호수공원이나 제천 등에 보내고 있다. 앞으로 78억 원을 들여 자갈보를 개선하거나 크기를 키우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주민들은 “돈이 남아돈다”고 비판한다. 150억 원 들여 지은 보는 허물고 그보다 부실한 보를 짓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세종보 물이 없으면 보의 상류에 짓고 있는 랜드마크 ‘금강보행교’도 길을 잃는다. 1053억 원이나 들여 원형 다리를 지어 보행자와 자전거가 지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물이 없으면 강 위 관광명소 건설의 취지가 사라진다. 세종보는 해체 대상 5개 4대강 보 중 유일하게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보 관리 비용을 웃돈다. 발전 전기 판매만으로도 보의 유지 관리를 하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세종보 등 4대강 보의 해체나 상시 개방을 발표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오염도 증가와 경제성이었다. 하지만 환경부 자체 조사에서도 세종보 하류 금강의 녹조량은 보 수문 개방 전보다 수문 개방 후가 오히려 5배 이상 늘었다. 수량이 줄고 온도가 올라가 녹조류 번식이 늘어난 것이다. 금강 상류의 대전과 청주 도시하수처리장에서 나온 물을 받아 자연 정화하는 기능도 사라졌다. 정부가 유지 관리하는 것보다 부수는 게 낫다는 근거로 제시한 경제성 산출 방법도 납득하기 어렵다. 2017년 10월 수계별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보를 헐어 수질이 나아지거나 생태계가 개선되면 지금 내고 있는 수질부담금을 15% 혹은 30% 더 낼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금강 유역은 500명에게 물었는데 질문 자체가 ‘세종보를 막아 물이 차 있는 것보다 물이 빠져 모래톱이나 여울이 생기는 것이 생태계에 좋다’는 식으로 이미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가지 더 문제는 세종보 경제성 응답자 대부분은 ‘인근 주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응답자 500명은 대전 청주를 비롯해 금강 수계 전체에서 인구 비례로 뽑아 정작 인구가 적은 세종시 시민은 비율이 극히 낮다. 응답자 대부분이 ‘보 유역 주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를 연다고 생태계가 개선된다고 단정하고, 더욱이 경제적 가치도 엉뚱한 사람에게 물었다”는 주민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강에 물이 차 레저 활동이 이뤄지는 등 수변시설 이용 효과나 보의 물이 도시 열섬현상을 줄이는 가치 등은 전혀 반영되지도 않았다. 세종시가 조성되고 세종보에 물이 가득 차면서 강변 아파트 주민들은 강에 비친 아파트 사진 등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며 물과 어우러진 도시를 자랑하곤 했지만 이제는 물 빠진 황량한 강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환경부와 세종시 관계자들은 주민설명회에서 반발이 높자 “해체 여부는 의견 수렴과 문제점에 대한 보완 등을 검토한 뒤 6월 출범할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동안의 진행 과정을 보면 이미 ‘청산 대상’으로 정해놓고 절차를 밟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점수가 꼴찌로 나와 해체 대상 1순위인 세종보 한 곳의 속내만 살펴봐도 이렇게 불합리하고 억울한 게 많은데, 다른 보들은 또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 속전속결 같은 구시대적 슬로건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이 아닌 게 분명한데, 왜 이렇게 성급하게 불가역적인 결정으로 치닫는 걸까. 정치학에서 ‘거울 효과’라고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문재인 정부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과 이의 제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누렇게 메말라 있는 금강 바닥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세종=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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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중국의 고무줄 통계

    2007년 9월 ‘제1회 하계 다롄 다보스포럼’에서 중국 고위층과 미국 경제계 대표단의 회식 자리. 주최자인 리커창 당시 랴오닝성 서기(현 총리)가 “나는 중국 경제 통계를 전혀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3가지 수치뿐이다. 전력 소비량, 철도화물 운송량, 은행 융자액이다”라고 말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른바 ‘리커창 지수’는 중국 당국이 발표하는 통계에 대한 불신을 말할 때 단골 메뉴가 됐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짝퉁 통계 끝판왕’으로 불린다. ▷베이징대 교수인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는 지난주 상하이의 한 강연에서 “중국의 GDP가 과대평가되어 있다”며 “악성채무를 반영하면 실제 성장률은 발표의 반 토막이 될 것이다. 융자금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도 국유 은행을 통해 신용이 있는 기업이 된다”고 주장했다. 관변학자로 분류되는 런민대의 한 교수도 지난해 11월 “2018년 중국의 GDP 성장률은 1.67%이거나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발표된 지난해 성장률은 6.6%, 올해 목표는 6.0∼6.5%다. ▷중국은 1985년부터 지방정부들도 별도로 GRDP(지역내총생산)를 발표하는데 ‘물붓기’라는 통계 부풀리기가 심하다. 지방 GRDP를 다 합하면 GDP보다 5∼10% 많아진다. 해관(세관) 통계도 제멋대로다. 한 해 50만 t가량이던 중국의 대북 석유 수출량은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인 2014년부터 공식 통계상 ‘제로(0)’다. 그래서 2017년 대북 원유 공급 30%를 감축하는 유엔 제재 결의 당시 “중국은 이미 통계상 한 방울도 수출하지 않는데 뭘 줄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공산당 초기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지도를 받았던 중국이 ‘통계 조작’도 ‘조작 선배’ 소련에서 배웠다는 해석과 더불어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 체제 특성, 없어도 있어 보이게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통계 마사지’는 대표적인 후진국적 현상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오도된 통계는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 중국이 덩치에 걸맞은 평가를 받으려면 먼저 ‘통계 마사지 국가’ 오명을 벗어야 한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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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저비용항공사 난립(?)

    미국 퍼시픽사우스웨스트항공(PSA)은 1962년 미니스커트에 몸에 쩍 달라붙어 ‘바나나 스킨’으로 불린 여성 승무원 유니폼을 선보였다. 1949년 설립돼 1세대 저비용항공사(LCC)의 대표 주자인 PSA는 당시 승무원 대부분이 남성일 때 ‘미녀 군단’ 여성 승무원을 투입하는 마케팅으로 눈길을 끈 데 이어 또 한번 파격적인 시도를 한 것이다. 이처럼 LCC는 요금만 저렴한 것이 아니라 여객 항공 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기존 시장을 파고들었다. ▷국내 첫 LCC 운항은 2005년 8월 31일 ‘한성항공’이 청주∼제주 노선에 띄운 66석 규모의 경비행기 ATR 72-200 기종이었다. 이 회사는 항공기 한 대로 하루 왕복 2차례 운항했다. 항공료는 기존 항공사의 70%가량. 현재 국내에는 2005년 1월 인가받은 제주항공 등 LCC 업체 6개사가 운항 중이다. 여행 지출 항목 중 항공권과 숙박비가 가장 커 항공료 인하는 큰 호응을 얻었다. 자리가 조금 좁고 커피 등 기내 서비스가 없거나 공항에서 탑승구가 기존 항공사에 밀려 터미널의 끝에 있긴 해도. ▷5일 국토교통부가 여객 분야 LCC 3개사를 승인해 국적 LCC는 9곳으로 늘었다. 4개사가 신청했는데 한 곳만 탈락했다. 인구 3억2000여만 명인 미국이 9개, 1억2600여만 명인 일본이 5개인 것에 비하면 한국의 LCC 9개는 많고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정부는 LCC 이용객이 늘고 있어 경쟁을 통한 서비스 개선과 혁신을 위해 일정한 자격 조건만 갖추면 운항을 허락한다는 취지다. 운항해 보다가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 인수합병되면 된다는 설명도 있었다. ▷하지만 여객 항공업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가뜩이나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 숙련된 조종사와 정비사 등이 부족한데 3개사가 무더기 승인을 받아 인력 쟁탈전이 벌어지거나 출혈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 안전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질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민원을 해결해 주기 위해 이용객이 적은 지방공항을 거점으로 한 LCC를 인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승객의 안전이 걸린 문제에 정치적 의도가 끼어들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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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중월(中越)철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800여 km 기차 여정의 마지막 구간은 중국-베트남 국제철도(중월철로)였다. 중월철로는 중국 광시좡(廣西壯)족자치구 난닝에서 베트남 하노이에 이르는 392km 구간으로 2009년부터 하루 한 편씩 정기 여객 열차가 다니고 있다. 난닝에서 오후 6시 5분에 타면 다음 날 오전 5시 45분 하노이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자정경 국경을 넘을 때 출입국 수속을 위해 두 차례 하차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1000년 전쟁’의 역사를 가진 두 나라를 정기 열차 편으로 오갈 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 북부에 처음 철도를 부설한 것은 1904년 프랑스 식민 지배를 위해서였다. 산과 강이 많은 지형인 데다 운송 화물도 적어 “염소가 가는 곳이라면 철로도 부설한다”며 협궤(궤도 폭 1000mm)를 놓았다. 프랑스가 물러간 뒤 1955년 8월 베트남 동당과 중국 국경도시 핑샹 구간이 철도로 연결됐다. 중월철로 구간 중 핑샹에서 하노이까지는 복합 궤도다. 중국의 표준궤(1435mm)와 베트남의 협궤가 같이 깔려 열차를 바꾸지 않고 운행할 수 있다. 러시아 하산과 나진 구간이 복합 궤도인 것처럼 교류 의지를 담은 인프라다. 1960년대 중반 미군 폭격으로 베트남 철도가 부서지자 중국 공병대가 보수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2월 17일 새벽 중국 인민해방군이 베트남을 침공해 중월철로는 끊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라(殺鷄焉用牛刀)’는 전략에 따라 20만 명 이상을 투입했고 상당수가 하노이로 가는 길목의 전략요충지 동당으로 집중돼 격전이 벌어졌다. 끊긴 중월철로는 1996년에야 부정기 운행이 재개됐다. ▷김정은은 26일 동당역에 도착해 벤츠 마이바흐 S600 승용차로 갈아타고 하노이로 갔다. 적대관계였던 중국과 베트남을 이어준 중월철로가 북한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를 향한 여정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 유엔이 1992년부터 추진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철도 연결 프로젝트인 ‘아시아 철도구상(TAR)’대로라면 장차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신의주와 핑샹을 거쳐 하노이 그리고 호찌민까지 가는 날도 올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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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낙태

    인류 역사에서 낙태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은 기원전 약 12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시리아 제국의 법전은 낙태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신체관통형(말뚝으로 신체를 관통시켜 처형)에 처하도록 했다. 낙태를 금지한 것은 어느 종교에서나 비슷하지만 생명과 양심의 문제로 다룬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 “세례 전에 생명을 말살하는 낙태 행위는 태아에게 천국의 문을 닫는 벌 받을 행동이다”는 말이 낙태 반대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가 금지해도 낙태는 비밀리에 행해져 왔다. 19세기에는 몸에 해로운 약을 먹이거나 심지어 배를 발로 차서 낙태시키는 행위도 자행됐다. 시술이 불법이다 보니 허가받지 않은 열악한 시설에서 수술을 받다 목숨까지 잃고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지금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그러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때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처음 제기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5∼44세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토대로 2017년 한 해 동안 약 5만 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 형법상 낙태 행위에 대해 임부와 의사를 모두 처벌한다. 임신 12주 이내 등 낙태 가능 기간 요건도 없다. 다만 모자보건법상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등 일부 예외를 인정할 뿐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어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사문화된 법 가운데는 그 법의 존재 자체가 대상 행위의 범람을 막는 예방 기능을 하기 때문에 존치의 순기능이 있는 경우도 있다. 헌재는 2012년 4(위헌) 대 4(합헌) 결정을 내려 낙태 처벌 조항이 유지됐고 올 4월 초 다시 결정을 할 예정이다. ▷낙태 논쟁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맞부딪쳐 결론을 내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사유가 어떠하든 낙태가 여성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다. 보사연 조사에서 낙태 수술 여성의 54.6%가 죄책감, 우울감, 자살 충돌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낙태 금지 찬반을 떠나 낙태를 줄이고 더 나아가 낙태가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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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中 ‘996룰’

    중국 저장성의 한 전자상거래 벤처기업이 최근 ‘996룰’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996’은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9시 퇴근하고 주 6일씩 일하는 중국 벤처기업의 문화를 말한다. 주 근무시간이 72시간에 달한다. ‘996’으로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직원 불만이 나오자 이 회사 사장은 “이혼하면 된다. 몇 년이 지나면 절대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회사는 인조이(enjoy) 문화다”라고 말해 기름을 부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897’(매일 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도 있고 ‘716’(하루 16시간씩 주 7일)도 있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996’은 징둥이라는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가 1996년 도입해 시행해 왔다. 알리바바, 샤오미, 둥청 등 업체들도 뒤따랐다. 과거 중국의 일부 스타트업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장시간 근무하며 회사 성공을 이끌었지만, 최근엔 벤처업계 채용이 줄면서 ‘996’을 강요하고 있다. 중국 노동법은 ‘근로자가 동의하면 초과 근무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반(半)어용 노조인 ‘궁후이(工會)’가 ‘996’에 제동을 걸었다는 소식은 없다. ▷중국의 장시간 노동은 오래전부터 악명 높았다. 애플 휴대전화를 주문 생산하는 대만 폭스콘의 중국 선전 공장에서는 2010년 불과 2개월여 만에 근로자 10여 명이 잇따라 투신자살했다. 장시간 노동과 감옥처럼 가둬둔 기숙사 등이 문제였다. ‘저임금 장시간 근로’는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경쟁력을 밀어올린 핵심 요소였는데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근로자 인권을 무시하고 진군하는 중국 IT 기업의 경쟁력은 위협적이다. 최근 발표된 세계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311개 중 중국이 85개로 미국(151개)에 이어 2위였다. 1, 3, 5위가 중국 업체다. 한국은 6개에 불과하다. 눈에 불을 켜고 신기술 개발에 나서는 중국 IT 기업이 반인권 논란의 ‘무자비한 초과 근무’ 갑옷으로 무장까지 하고 있다. 각종 규제의 ‘긴고아’(손오공 머리띠)가 씌워진 한국 IT 업계가 잘 당해내야 할 텐데….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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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중국의 ‘색깔혁명’

    중국의 자오커즈 공안부장이 17일 전국공안청국장 회의에서 “색깔혁명을 막아 정치 안전을 보위하는 싸움을 잘하라”고 주문했다. 하루 전날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가 정치 안전의 수호 임무’를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가 이처럼 ‘정치 안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안팎에서 위기의 징후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안부장의 ‘색깔’ 경보는 체코의 벨벳, 조지아의 장미,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키르기스스탄의 튤립 등 동유럽 정권들이 온갖 색깔의 꽃 혁명으로 무너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특히 중국당국은 2010년 12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계기로 ‘아랍의 봄’이 시작되자 극도로 긴장했었다. 이듬해 1월 21일 ‘재스민 시위’가 예정됐던 베이징의 명동 ‘왕푸징’은 정사복 경찰이 가득 차 ‘경찰 반 시위대 반’이었다. 시위는 무산됐지만 1989년 톈안먼 시위 이후 잠복했던 정치개혁 목소리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3월 중국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 종신 집권도 가능하게 되자 누리꾼 사이에선 ‘더 이상 우리의 주석이 아니다’는 글이 급속히 퍼졌다. 과거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개혁파 경제학자 우징롄은 최근 공개 세미나에서 “정부의 지나친 경제 개입이 옛 소련식 계획경제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의 아들 후더핑도 “소련 몰락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후야오방은 1987년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로 숙청돼 1989년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이 그해 6월 톈안먼 시위의 촉발 요인이었다. ▷중국은 빈부·지역·도농 격차에 소수민족 문제 등이 마른 장작처럼 쌓여 있다. 권력 부패도 심각하다. 그럼에도 공산당 1당 지배가 유지되는 가장 큰 명분은 “13억 인민을 굶기지 않고 경제가 급속히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6%로 2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더욱 내상(內傷)이 커져 체제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시 주석 스스로 21일 “공산당의 장기 집권이 복잡한 시련을 맞았다”고 할 정도다. 중국의 변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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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미중 수교 40년

    미국과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중국은 2차대전 때는 반(反)파시스트 연합국이었다. 하지만 종전 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돼 ‘죽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면서 냉전 상대방으로 바뀌었고 한국전쟁 때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다. 전환점은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1969년 남태평양의 괌에서 발표한 ‘닉슨 독트린’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닉슨의 이 말에 미국의 전략적 고려가 함축되어 있다. 두 나라 모두 소련에 공동 대응할 파트너가 필요했고 특히 중국은 문화대혁명 10년의 상처를 딛고 개혁개방의 길로 가는 데 미국이라는 경제 선진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핑퐁외교’를 거쳐 마침내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 협정이 발효됐고 덩샤오핑은 바로 미국을 방문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흡수하고 싶다”며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덩샤오핑이 1997년 2월 사망하기 전 생애 마지막으로 중국 밖으로 나갔던 미국 방문에서 하이라이트는 존슨우주센터의 우주왕복선 비행 시뮬레이터 체험이었다. 수행했던 부총리는 착륙 과정을 두 번이나 경험한 후에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던 중국인데,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3, 4일경 미국보다 먼저 달의 뒷면에 착륙할 예정이다. 중국 경제는 2010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나폴레옹 1세가 했다는 말에 빗대 중국 굴기의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을 ‘웅크린 호랑이’에 비유하며 “탐욕에 눈먼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면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고 경고했던 피터 나바로 교수가 현재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으로 대중 무역전쟁을 지휘하고 있다.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간 갈등)’은 없을 것이라 안심시키지만 나바로는 1500년 이후 15번의 세력 교체 중 11차례 전쟁이 발생했다고 경고했다. 수교 40주년인 1일 양국 최고 지도자는 ‘협력’의 메시지를 교환했지만 미중 관계는 험한 바다처럼 예측 불가하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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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방정부 셧다운 美, 공무원 80만명 無임금 38만명 무급휴가

    미국 언론과 외신은 워싱턴 미 국회의사당과 국립공원 내셔널몰 등의 쓰레기통 옆에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는 사진을 보도하면서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인 업무정지) 이후 미국 내 풍경을 전하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과 야당인 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 중 국경장벽 건설 예산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22일 0시부터 셧다운에 들어갔다. 백악관은 50억 달러를 요청했지만 민주당은 13억 달러만 인정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1월 19일에는 3일, 2월 9일에는 5시간 반 만에 끝났지만 이번 셧다운은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해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셧다운으로 15개 부처 중 국토안보부 교통부 농무부 등 9개 부처가 영향을 받고 있다. 약 210만 명의 연방 정부 공무원 중 약 80만 명에 대한 임금 지급이 중단되고 38만 명은 ‘강제 무급 휴가’ 조치가 내려졌다. 부서별로 무급 휴가 인원은 달라 국토안보부는 23만여 명 중 13%만이 해당되지만 환경보호청은 1만3800여 명 중 95%에 이른다. 국방과 치안, 출입국, 교통 안전 등 필수 분야는 제외됐으나 국민들의 불편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셧다운이 장기화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정부 조직은 농무부 내의 유아와 어린이의 영양 지원 등을 관리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CNN은 전했다. 셧다운 첫 주에는 농무부 직원의 61%가 정상 출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휴업 직원 수는 늘어난다. 이때 어린이 영양 지원을 담당하는 프로그램(SNAP)과 여성, 유아, 어린이 영양 지원 프로그램(WIC) 등을 다루는 기관 업무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기관들은 전체 직원의 95%까지 강제 휴무하고 약 5%만이 정상 출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직원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8000명 정도가 출근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식품의약국도 전체 직원의 41%가 강제 휴무에 들어가 질병 등록, 독성물질 관리 등 일부 부서는 65%까지 출근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무부 관할의 전국 주요 관광지도 파업 영향권에 들어갔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은 셧다운이 시작된 뒤에도 문은 열었으나 이는 주 정부가 하루 6만5000달러가량의 임금을 대신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주의 그랜드 캐니언도 주 정부의 협조로 문을 열고 있지만 차량 대수별로 받는 입장 요금은 받지 못하고 있다. 안내센터도 문을 닫았다. 유타주의 아치스, 브라이스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 국립공원 등도 주 정부 지원으로 임시 운영 중이다. 펜실베이니아주의 게티즈버그 국립공원은 문을 닫았다. 콜로라도주 로키산맥 국립공원은 제설 작업 인원이 없어 도로가 폐쇄됐다.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셔틀 버스는 운행하지만 야외캠프장은 관리인 없이 운영되고 공중화장실 관리가 안 되고 있다. 국민 불편은 물론이고 셧다운이 2주 이상 지속되면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총생산(GDP)에는 정부의 재정 지출도 주요 요소로 GDP의 18%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주한 미국대사관은 비자 발급 등 영사 업무는 정상적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대사관 측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여권 및 비자 업무는 계속 진행한다”며 “앞으로 한국민에게 영향이 있을 수 있는 조치가 시행되면 사전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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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공들인 명예의 탑, 로힝야족 탄압으로 한순간에 ‘와르르’

    미얀마 ‘민주화의 꽃’으로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 겸 외교장관(73)에게 올 한 해는 악몽의 해가 됐다. 이슬람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주도한 인물로 국제사회에서 낙인찍혀 지금까지 그에게 주어졌던 각종 상과 명예시민증 등이 줄줄이 박탈, 철회됐다. 30여 년간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쌓아올린 명성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지 불과 2, 3년 만에 바닥에 떨어졌다. 5·18기념재단은 18일 수지 자문역에게 2004년 수여한 광주인권상을 철회하고 수상자에게 부여한 예우도 모두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광주시의회가 부여한 명예시민증도 취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말까지 수지 자문역에 대한 주요 상과 명예시민권 박탈은 줄잡아 10여 건에 이르고 있다. 10월 2일 캐나다 상원은 2007년 수여했던 수지 자문역의 명예시민권 박탈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캐나다가 명예시민권을 부여한 인사는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등 모두 6명이지만 박탈당하기는 수지 자문역이 처음이었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11월 “수지는 더 이상 희망의 상징이 아니다”며 2009년 가택 연금 당시 수여했던 최고상인 ‘양심대사상(Ambassador of Conscience Award)’을 박탈했다. 국제앰네스티 측은 수지에게 “당신이 더는 희망과 용기, 영원한 인권 수호의 상징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나큰 실망을 감출 수 없다”며 “국제앰네스티는 당신이 양심대사상 수상자로서 자격을 유지하는 것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해 침통한 마음으로 당신의 양심대사상 수상을 박탈한다”고 서신을 보내 통보했다. 수지 자문역에 대한 명예시민증 박탈은 지난해 11월 영국 옥스퍼드시가 처음 시작한 뒤 올해 3월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이 “폭력에 눈감는 이에게 명예는 없다”며 ‘엘리 위젤상’을 취소한 뒤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버마족 등 135개 다민족 국가이자 약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은 영국이 식민 통치를 위해 방글라데시로부터 이주시킨 불법이민자 취급을 받으며 시민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로힝야족 반군 단체인 ‘로힝야 구원군(ARSA)’이 서부 라카인주에서 경찰 초소 30여 곳을 습격했다. 정부군은 즉각 반격에 나서 소탕 작전을 벌여 두 달간 최소 97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72만 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란했다. 유엔 특별조사단은 8월 27일 ‘로힝야 사태 진상 조사 결과’ 발표에서 “미얀마군이 인종청소 의도를 갖고 대량 학살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규정했다. 노벨 평화상을 박탈하라는 국제사회 여론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8월 노벨위원회는 “수지는 1991년까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했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며 “규정상 노벨상 수상 철회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노벨위원회 측은 “노벨위의 임무는 상을 받은 후 수상자의 일을 감독하는 게 아니다. 수상자 스스로 명성을 지켜야 한다”고 해명했다. 2015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수지는 로힝야족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반감, 아직도 의회 의석의 25%가량을 차지하며 국방이나 치안 통제권을 쥐고 있는 군부 세력의 반발 등 때문에 현실 정치적으로 제약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냉혹한 정치권력가로 변신한 수지에게 더 이상 민주 인권 운동가로서의 명예는 인정할 수 없다는 비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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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에선 사람들이 사슴을 타고 다닌다고요?

    “인천의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러시아는 추워서 자동차가 다니지 못할 때는 사람들이 사슴을 타고 다닌다’고 학교에서 배웠다고 한다.” “중학생들이 레닌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러시아 역사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의 ‘러시아 아카데미 뉴웨이 어학원’. 전날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휴대전화 인터넷과 전화가 안돼 문자로 받아 놓은 길이름 주소를 보고 찾아간 이곳에서는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어권 각계 인사 10여 명이 모여 열띤 논의를 진행 중이었다. 프리마코바 타티야나 러시아 커뮤니티협회 회장은 “인천에서 친구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뒤 1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A 군 사건을 보고 러시아어권 커뮤니티 사람들의 불안감이 높아져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0월 20일 경남 김해에선 5층짜리 원룸에서 난 화재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4세 아이와 그의 누나(14)가 숨졌다. 이들은 화재 당시 2층에 있었고 불은 20여 분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집에 있던 남매가 ‘불이야’라는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제대로 대피하지 못하면서 참사가 발생했다. 국내 거주 러시아어권 외국인(고려인 동포 포함)이 최근 수년 사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 관심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두 사건은 웅변처럼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불러온 죽음 뉴웨이 어학원 모임은 국내 러시아어권 거주민(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모임 중 하나인 ‘러시아 단체 조정협의회’의 주최로 열렸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온 참석자들은 A 군이 ‘러시아 아이’라며 조롱당하다 목숨까지 잃게 된 일에 안타까운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A 군은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외모가 조금 달랐다. 이런 이유로 초등학생 때부터 ‘러시아 엄마랑 사는 외국인’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모임 참석자들은 학교에서 러시아어권 아이들이 학생은 물론 교사나 학교로부터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일이 적잖다며 앞다퉈 사례들을 쏟아냈다. “아이가 알레르기로 얼굴이 검붉게 변했는데 ‘외국인이라 그렇게 더럽게 하고 다니냐’는 핀잔을 받았다.” “대전의 어느 학교에서는 부모가 학교에 불만을 제기한 뒤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러시아 학생이 3분의 1 이상으로 늘어나자 한국 학부모들이 항의하고, 심지어 이사를 가는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가 폭행이나 괴롭힘을 당해도 학교의 누구와 상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 참석자는 기자에게 “한국 중학교의 청소년 폭력이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아는데 A 군이 러시아 사람이어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이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씩 의견을 교환하는 페이스북이나 단체 카톡방, ‘러시아 단체 조정협의회’ 홈페이지 등에서도 A 군 사건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글의 대부분은 안타까움과 우려를 토로하는 내용들이다. 예카테리나 포포바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는 “페이스북 등에는 A 군 사건으로 쇼크를 받았다. 어찌 이럴 수 있나. 한국 학교 보내기가 겁난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인천 A 군 사건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뉴웨이 어학원 모임의 한 참석자는 “중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중 러시아에 관한 것은 너무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대학생들도 러시아 문학가로 톨스토이(1828∼1910)나 도스토옙스키(1821∼1881) 이후로는 모른다. 가장 많이 알려진 푸시킨(1799∼1837)은 국민 문학인이긴 하지만 한 세기 훨씬 전 인물”이라고 말했다. 포포바 교수는 “러시아가 추운 나라지만 사계절도 있고, 제주도만큼 따뜻한 남쪽 지방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거주 러시아인들의 서툰 한국어 능력도 사태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잔나 발로드 서경대 국제비즈니스 어학부 교수는 “한국인과 결혼한 러시아인 엄마들은 한국어가 서툴러 학교에서 아이들 문제로 제대로 상담조차 못한다”며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강조했다. 뉴웨이 어학원 모임에선 옐레나 카시보마 러시아 단체 조정협의회장이 마련한 A4 용지 2장 분량의 건의문 초안을 놓고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확정하게 될 건의문은 러시아 학생 등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교내 폭력 방지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피사레바 라리사 중앙대 러시아어문학부 교수는 “건의문이 확정되면 언론에도 알리고 다문화 가정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에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한국어 서툴지만 고려인은 우리 동포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들도 마찬가지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말을 몰라 언어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많다. 그 결과 동포라기보다는 ‘외국인’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에 대해 고려인 4세인 김 알렉산더 러시아아카데미 안산어학원 원장은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에 오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대부분 한국말을 잘하는데 고려인은 잘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여기에는 역사적인 아픔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37년 스탈린 체제에서 고려인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뒤 △다른 지역 이주 금지 △현지인과 교류 금지 △조선어 사용 금지 등과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 김 원장은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려인이 한국말도 못해’라고 일방적인 편견을 가지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김 원장은 “고려인을 과거에 고착된 이미지로만 보려는 인식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상당수가 고려인을 만나면 ‘강제로 이주당해서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나’라는 식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각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을 고려인 전체로 여기는 것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오해라고 김 원장은 지적했다. 이는 한국과 중국 수교 초기 식당 종업원이나 공장 근로자로 한국을 방문하는 조선족 동포들을 보고 전체 조선족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던 상황과 마찬가지다. 김 원장은 “조선족 동포에 대한 인식은 이후 많이 바뀌었지만 고려인 동포는 여전히 ‘가난한 동포’라는 이미지로만 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고려인은 이미 3, 4세로 넘어가면서 ‘강제 이주’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지역 국가들에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많이 높아진 상태. 김 원장은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에는 크게 개선해야 할 점은 없다”면서도 “고려인 동포나 학생 초청 행사가 사할린에만 편중돼 중앙아시아 지역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 가까워진 이웃에 대한 부족한 이해 서울 중구 광희동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8번 출구 주변의 상가에는 러시아 간판이 다수 눈에 띈다. 여행사와 환전소, 휴대전화 대리점 등의 간판과 안내판에 러시아어가 가득 적혀 있다. 1990년 소련과 수교한 이후 ‘서울 속의 작은 러시아’라고 불리는 곳 중 하나다. 광희동의 우즈베키스탄 요리 전문점인 ‘사마리칸트’의 종업원은 “2014년 문을 연 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인 손님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한국인 이용객도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고려인 포함)은 2013년 1만2800여 명에서 올해 10월 말 기준 5만7300여 명으로 5년 새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러시아어권 중 가장 많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국내 거주자는 같은 기간 3만8500여 명에서 6만9600여 명으로 80%가 늘었다. 국내 거주 러시아어권 주민이 늘어난 것은 2014년부터 시행된 한국과 러시아 간 무비자 정책, 러시아 유학생들의 한국행 증가, 고려인 동포들의 입국 및 정착 증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거주 러시아 국적 고려인은 2013년 5051명에서 지난해 2만1264명으로 4배가량 늘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는 30만 명가량의 고려인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에 거주하는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4개국 출신 고려인은 모두 6만3900여 명. 조선족(70만2900여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외국인 거주자다. 러시아어권 국가 거주자들이 이처럼 ‘가까워진 이웃’이 됐지만 서로에 대한 인식과 이해 수준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는 2017년에 한국과 러시아에서 각각 1000명과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 ‘양국 국민상호인식 조사’에서 “상대국 국가에 대한 정보는 주로 국가 개황이나 지리적 요소와 같은 일반적인 정보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인식 차도 컸다. ‘남북한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5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러시아인 응답자의 59%는 “중재자로 남을 것”, 26%는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인들에게는 러시아가 여전히 ‘6·25전쟁을 지원한 소련’이라는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는 뜻이다.○ 국내 거주 러시아·고려인, 신북방 정책의 큰 자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9개 다리(나인 브리지)’를 제시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 정책에서 러시아가 핵심 대상국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난달에는 ‘한-러 지방 정부 포럼’도 발족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신북방 정책은 국내 거주 러시아어권 거주자들과의 원만한 소통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고려인들은 과거 중국 대륙에 진출할 때 조선족 동포들과 유사하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를 운영 중이고, 러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8년째 러시아 거주민 단체와 함께 ‘백만송이 장미’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에는 23개 나라 38명의 대표가 참가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으로 대표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투라예바 우르피야나 씨는 “러시아어권에서 5명이 대표로 참가해 제안한 내용들이 채택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한-러 양국 국민 상호인식 조사를 진행한 한국외국어대 김현택 교수는 지난달 한-러대화(KRD)와 외교부 한양대 공동 주최로 열린 ‘한-러대화 공공외교 세미나’에서 “상호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한 2020년을 러시아 문화외교를 고도화하는 등 양국 이해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2020년은 한-러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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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수번호 429번… “밤마다 카메라만 바라보는 ‘벌 아닌 벌’ 받아”

    “평양에서 눈을 가린 채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달려 도착한 외진 산골의 이름도 없는 노동교화소에 갇혀 생활했습니다. 때때로 밤 10시까지 노동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통스러웠지요. 이렇게 밖에 나와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올해 5월 9일 북한에서 2년 7개월 억류됐다 석방된 한국 출생 미국 시민권자 김동철 박사(65)는 이달 3차례에 걸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북한에서 풀려난 뒤 언론 인터뷰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미국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안정을 취하다 지난달 자신이 살았던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를 들러 이달 초 서울을 방문했다. 김 박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첫 정상회담(6월 12일)을 싱가포르에서 갖기로 합의한 뒤 김학송, 김상덕 씨와 함께 풀려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박사 일행이 도착하기 전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부인 멜라니아 여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부 등과 함께 새벽까지 기다리며 대대적인 환영 이벤트를 펼쳤고 이 모습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북한이 파놓은 함정에 걸리다 2015년 북한으로부터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행사에 초대를 받은 김 박사는 나선경제특구에 위치한 두만강호텔에 머물며 행사 참석 준비를 하다 그해 10월 2일 체포됐다. “오전 일찍 시 인민위원회 해외동포사업처를 방문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사무실을 찾아가 평양에 가져갈 선물 등을 상의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8인승 밴을 몰고 사업처 구내를 벗어나려는 순간 평소 알고 지내던 퇴역 군인 남성 A 씨가 자전거로 차를 가로막더군요.” 인사를 하려고 운전석 유리창을 내리자 그는 느닷없이 휴대용저장장치(USB)와 서류봉투를 차 안으로 내던진 뒤 자리를 떠났다. 의아한 생각에 그를 따라가려는 순간 시 보위부 간부가 차 조수석에 뛰어오르더니 ‘차를 남산(호텔)으로 돌리라’고 외쳤다. 음모에 빠졌다는 생각이 김 박사의 머리를 스쳤다. 나선의 남산호텔은 보위부가 주요 인물을 조사할 때 사용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남산에 도착한 뒤 두 눈이 가려진 채 나선 연안의 비파섬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한 달가량 조사가 진행됐다. 이후 USB와 서류 봉투에 핵 개발과 군사 정보 등이 들어있다는 등의 혐의가 적힌 1000여 쪽 분량의 서류가 만들어졌다. “내용이 맞지 않다고 부인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다시 진술서를 쓰게 했고, ‘평양 가서 알아서 하라’며 조사서에 서명하라는 강요가 몇 차례고 반복됐습니다.” 조사 중 고문이나 심한 구타는 없었다. 대신 벽에 거의 얼굴을 붙이고 한 시간가량씩 세워두는 벌을 서야만 했다. “10년 넘게 대북 관련 사업을 하면서 많은 자선 활동을 했고 나선시 공무원이나 당 관계자들과도 두루 친밀하게 지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북한이 미국과 협상할 때 이용할 미국인 인질로 내가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양으로 이송된 뒤 국가보위부 제3국에서 조사를 받았다. 보위부는 이미 김 박사의 죄목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벽을 보고 서있기를 시키고, 진술서를 다시 쓰게 하는 일이 반복됐다. “차라리 구타해서 맞고 끝나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조사가 끝날 수 있게 죄를 만드는 일이 더 힘들었습니다.”○ 날조된 사실로 채워진 인터뷰 체포되고 3개월이 지난 2016년 1월 11일 아침. 김 박사는 갑작스러운 호출에 억류돼 조사받던 초대소 문을 나섰다. 그가 이송된 곳은 평양 인민문화궁전 내 한 회의실. 그곳에선 CNN 소속 미국인 기자와 카메라맨이 기다리고 있었다. 외신 인터뷰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고 그의 억류 소식도 이때 처음 외부에 알려졌다. 두 달여 뒤인 3월 25일 평양 주재 외교 사절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다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기자들이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은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주된 내용은 북한 체제와 최고지도자를 비방하고, 북한에 대한 기밀 및 군사 정보 등을 외부에 전한 혐의 등을 자백하고 참회한다는 것이었다. “CNN 인터뷰 때와는 달리 3월 인터뷰에선 어떤 질문이 나올지 미리 알려주고 혐의를 인정하는 내용을 말하라는 지시를 하더군요.” 김 박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주재 동아일보사 특파기자 소개로 서울에서 남조선 통일부 대북정책관을 만났다. 북한 정보가 담긴 SD 카드를 넘겨주고 대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과 다른 날조된 이야기였다. “조사받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한 말들입니다. 실명을 거론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외로움에 떨며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다 김 박사는 인터뷰가 진행된 2016년 4월 29일 열린 최고재판소에서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산골의 노동교화소로 옮겨졌다. ‘죄수 번호 429번.’ 외진 곳에 위치한 교화소 철조망 안에는 허름한 단층집 한 채가 전부였다. 집에는 감방 9개가 있었는데, 그가 수감된 4호실 외에는 모두 비어 있었다. 군인 2명이 2시간씩 교대로 감시하고 방과 화장실에는 감시카메라가 24시간 돌았다. 산비탈에서 땅을 개간하거나 농사하는 게 대부분이었던 작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정해져 있었지만 하루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밤늦게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저녁에는 식사가 끝나면 밤 10시 취침 때까지 나무의자에 앉아 카메라만 바라보는 ‘벌 아닌 벌’을 서야만 했다. 감방의 희미한 전등은 취침 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아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벽에는 ‘교화인 준칙 10가지’가 적힌 종이 한 장만이 붙어 있었다. 준칙 중에는 ‘성경책과 잡지를 볼 수 있다’는 항목도 있었다. “(이를 근거로) 성경을 요구했지만 ‘429번’에게는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더군요.” 김 박사를 가장 괴롭힌 것은 외로움이었다. “동료 죄수도 없어 감시병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외로움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도 했다. 수감 중 뇌혈전으로 세 차례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지난해 12월 연탄가스에 질식돼 의식을 잃은 게 가장 위험했다. 교화소 경비병은 그를 이불 등으로 둘둘 말아 교화소 외곽 철조망 근처에 던져뒀고, 그는 하루 반 만에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자선활동으로 목숨을 구하다 김 박사는 미국에서 조선족 처를 만나 결혼한 뒤 2001년 옌지에 왔다. 처가의 고향이 북한이고 자신은 미국 시민권자여서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나선에 호텔을 지은 것은 나선시 김모 인민위원장의 권유가 계기였다. “‘미국인으로서 처음 하는 일이 된다’라는 말에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중국인 사업가와 관광객 등을 겨냥한 호텔을 짓겠다고 하자 김 인민위원장은 원정리에서 나선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1만 m² 규모의 옥수수 밭을 내주었다. 밭을 갈아엎고 그 위에 지하 2층, 지상 3층, 객실 80개짜리 호텔을 지었다. “부속 건물 공사비까지 포함해 총 250만 달러를 투자했고, 직원이 많을 때는 68명에 달했습니다. 나선 일대에서는 가장 큰 호텔이었지요.” 김 박사는 시의 외국인투자유치위원장도 맡아 나선지역 양식장이나 봉제공장 등에 중국 자본을 끌어오기도 했다. 또 자신이 번 돈과 외부 자선단체 지원 등을 합쳐 각각 7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두만강 유치원’과 ‘굴포 유치원’을 지었다. ‘청학동 요양원’(수용 인원 200명)과 ‘나선 장애인 요양소’(450명)도 지어 시에 기증했다. 2011년에는 지린성 훈춘(琿春)에 국수공장을 지어 국수를 나선 및 인근 농촌의 탁아소 유치원 요양소 학교 등에 직접 차를 이용해 날라주기도 했다. “평양의 조사관들이 봉사 기증 활동이 있어 죄는 사형감인데 교화형으로 줄었다고 하더군요.”○ 석방 당일에야 석방 사실을 알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억류 미국 시민권자 3명의 석방 여부가 화두가 됐다. 하지만 정작 김 박사는 석방 당일까지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5월 9일 오전 사복을 던져주며 갈아입으라고 하더니 평양으로 데려왔습니다. 인민문화궁전에서 그날 오후 6시경 미국인 관리 3명과 재판관, 검찰 간부 등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야 석방 절차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재판관은 A4 용지 반 장 분량으로 사죄문을 쓰게 한 뒤 “공화국 관련법에 따라 신병을 미국 측에 인도한다”고 말했다. 평양 순안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한 미니버스에서 30분가량 앉아 있자 김학송, 김상덕 씨가 올라탔다. 김 박사가 그 둘을 만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김학송, 김상덕 두 사람은 이전부터 교류가 있던 사이였다. 둘은 평양의 고려호텔 맨 위층에 머물며 조사를 받았다는 등의 대화를 나누며 석방을 기뻐했다. 이들이 고려호텔에서 억류돼 조사 받고 있을 때 올해 3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수행했던 기자 등은 같은 호텔에 투숙했다. 평양과기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김상덕 씨와 김학송 씨는 각각 2017년 4월과 5월, 평양 순안공항과 평양역에서 긴급 체포된 뒤 적대행위 혐의 등을 이유로 조사를 받았다. “미니버스가 공항으로 출발하려 하자 저를 담당했던 조사관이 차창 밖에서 ‘나가면 여기서 있었던 일은 뭐든 공화국을 위해 좋은 말을 하라’고 하더군요.”○ “외국 자본 투자 원하면 두만강호텔 돌려줘야” 김 박사 일행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국무장관 전용기를 타고 이륙한 뒤 조금 지나 북한 영공을 벗어났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 기내에 있던 50여 명은 커다란 환호성과 함께 이들의 석방을 축하했다.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비행기 밖으로 나온 김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전용기에서 나와 마중 온 사람들을 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이제 미국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안도와 감사로 절로 두 손이 올라갔습니다.” 공항에서 곧장 메릴랜드 국립병원으로 이동한 김 박사는 10여 일간 검진을 받았고, 전에는 없던 척추협착증과 당뇨,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인터뷰 도중 두만강호텔을 되찾고 싶다는 희망을 거듭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이나 원산에 미국 등 외국 자본 유치를 원한다면 미국 시민권자의 첫 직접투자였던 두만강호텔을 돌려줘야 할 겁니다. 두만강호텔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미국 정부에도 건의할 예정입니다.” 김 박사가 석방된 뒤 지인을 통해 파악한 결과, 호텔은 나선시가 중국인에게 위탁운영을 맡기고 있다. 그가 중국과 북한을 넘나들며 운전했고, 때로는 구호 물품을 가득 싣고 다녔던 8인승 밴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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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대째 내려온 담백한 ‘탕국’, 폭염에 지친 심신 원기회복

    폭염을 이기는 데는 특색 있는 메뉴가 있는 음식점을 찾아 원기를 보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서울을 조금 벗어나 외곽으로 가면 한적하면서도 특색 있는 식당과 메뉴들이 적지 않다. 경기 고양시 서오릉 인근 ‘북촌 조선탕반’의 ‘특색 요리 4인방’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이석희 대표는 “대표 메뉴 ‘탕국’은 4대째 집안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제사 음식을 만들 때의 국물을 기본으로 했다”고 말했다. 식당 이름 ‘북촌’은 이 대표 집안이 대대로 서울 북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붙였다. 이 대표는 “무와 다시마, 쇠고기와 코다리 등을 주재료로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냈다”며 “제사 국을 응용한 메뉴인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생청국덮밥’은 밥에 낫토를 넣은 것이다. 다만 일반 백태뿐 아니라 소립종 백태와 렌틸콩 3가지에 청국종균을 넣어 발효시켰다. 이 대표는 “식당 개업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험적으로 만들면서 6개월가량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사용하는 생청국덮밥을 개발했다”며 “끈적거리는 실 같은 게 많이 나오고 목 넘김이 훨씬 부드럽다”고 말했다. 생청국균과 산우엉 죽순 파 조미김 생계란 등을 얹어 비벼먹는다. ‘명란찌개’는 명란을 싸고 있는 주머니가 터져 나온 알을 바지락 홍합 새우 등 해물과 함께 넣어 끓인 것이다. 해물탕의 시원함과 명란의 맛이 어우러진 특색 메뉴다. 밤을 주원료로 한 ‘밤 묵사발’은 밤 가루와 약간의 도토리 가루를 섞어 묵으로 빚은 것으로 밤 특유의 고소한 맛이 묵으로 변신했다. 교외 식당 중에는 해가 지면 인적이 적어 저녁 메뉴를 하지 않는 곳이 있다. ‘북촌 조선탕반’도 홀수 일요일에는 문을 닫고, 다른 날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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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3만㎡ 産學단지, 서부대개발 ‘성장 엔진’ 육성

    진시황의 병마용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이 첨단 기술의 메카로 변신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시안자오퉁(交通)대 등 대학과 중앙 및 지방 정부, 기업들의 상생 협력이 있다. ○ ‘첨단 산학단지’, 시안을 넘어 실크로드 성장 동력이 목표 지난달 12일 시안 중심에서 서남쪽 외곽으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나가자 거대한 규모의 산학연구단지 건설 공사장이 나타났다. ‘시안 커지촹신강(科技創新港)’이다. 시안자오퉁대와 시안시정부가 합작으로 건설 중인 커지촹신강은 ‘대학을 키워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고 대학은 지역을 토대로 성장한다’는 취지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산학협력 프로젝트다. 성 교육청 청사에서 만난 류젠린(劉建林) 교육청 부청장은 “대학의 생명력은 지역과의 협력에 있다”며 “한국에서 대학과 지역 사회의 상생 모델을 찾는 것이라면 시안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커지촹신강에는 2020년까지 3조9600억 원가량이 투자돼 교육 연구 인큐베이팅 복합지원 등 4개 분야의 각종 시설이 333만 m²의 부지에 들어선다. 학생들은 석사 1만2000명, 박사 6000명 외에 유학생도 2000명가량을 받아들일 예정이다. 공학 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연구소는 23개가 들어설 계획이다. 교육과 연구, 산학 협력, 벤처 창업 등이 한 공간에서 종합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이곳이 커지촹신강 터로 선정돼 건설의 첫발을 디딘 후 주변 지역에 작은 규모의 하이테크산업구들이 속속 들어섰다. 시안시 서남부가 커지촹신강을 중심으로 거대한 과학기술 클러스터로 변하고 있다. 커지촹신강이 완공될 때쯤 시내 중심에서 약 32km 떨어진 이곳까지 전철 5호선도 연장 건설될 예정이다. 칸웨이둥((감,함)衛東) 커지촹신강 부총경리는 “커지촹신강은 사회와 학교의 벽을 허무는 것이 설립 취지 중의 하나”라며 “시안과 산시성뿐 아니라 서부대개발의 ‘성장 엔진’으로도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 중국 대학은 지역과 협력하는 ‘응용성 대학’ 산시성 교육청 원퉁(文通) 부처장은 “시안뿐 아니라 중국 주요 대학, 특히 이공계 대학의 운영 방침 중 하나는 ‘응용성 대학’”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홀로 상아탑에 갇히는 개념은 중국에는 없다는 뜻이다. 원 부처장은 ‘응용’은 크게 4개 부분으로 ‘교정(校政·대학과 정부) 교지(校地·대학과 지역 사회) 교기(校企·대학과 기업) 교교(校校·대학 간의 전문 분야 특화) 합작’이라고 말했다. ‘교교 합작’이란 시안의 경우 시안자오퉁대는 정보기술(IT)과 화공학 지질학, 시안전자과기대는 전자, 시베이(西北)공대는 무인 항공기 등에 특화해 중복을 가급적 피하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중국도 도시별로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시안 소재의 대학이 병마용 등 문화유산을 보존 관리 연구하고 졸업 후에는 바로 취업이 되는 문화유산보호과 등 지역 특성에 맞는 학과를 세운 것도 문화 고도의 장점을 살려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다. 대학과 지역 업체 간 산학협동도 활발하다. 시안자오퉁대의 경우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대학이 기업과 맺은 각종 산학 합동 연구 프로젝트가 1000여 건으로 70억 위안 이상의 직접적인 소득 증대 효과도 냈다고 말했다. 시안의 이공계 명문대인 시안시베이(西北)대에는 ‘고기술 전이 창신 연구원’이 있다. 이름이 연구원이지만 연구개발 성과를 사회와 접목시키는 것을 담당하는 부서다. 선화화(申華華) 원장은 “연구원은 사회와 연계된 대학 연구, 대학과 사회가 함께 가는 것을 보여주는 부서”라고 말했다. 선 원장은 “시안이 병마용 관광객으로만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라며 “대학과 사회 간의 협력에 미래 발전의 열쇠가 있다”고 말했다. ○ 대학-지역 잇는 또 하나의 가교 ‘교우(校友) 경제’ 중국 주요 도시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데 해당 지역 대학이 기여하는 방법 중 하나로 ‘교우회(校友會·동문회)’를 통한 투자 및 벤처기업 육성이 있다. ‘교우 경제’란 대학 동문 기업인이 자신의 모교가 있는 지역에 투자해 경제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시안시 옌샹(雁翔)로에 있는 ‘시자오(西交) 1896 인큐베이터’도 시안자오퉁대의 150여 개 교우회 중 하나다. 이 교우회의 이름만 봐도 ‘1896년 설립된 대학을 모체로 한 시안자오퉁대’ 출신을 우선 지원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주취안취안(祝全全) 총경리는 “모교 출신은 다른 벤처기업가와 조건이 비슷하면 인큐베이터 등록비를 면제해주고 ‘싹이 보이면’ 3∼6개월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에는 모교도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학교는 졸업생들이 벤처 기업을 차릴 때 교우회를 통해 네트워킹을 쌓아 사회에 진출하는 데 따른 리스크를 줄여준다. 주 총경리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로 있다가 시안으로 돌아와 개인 DNA 검사법을 개발하는 벤처회사를 세우려는 한 벤처기업인이 찾아왔을 때 유사한 연구를 하는 인력을 찾아주고 필요한 자본을 모아 창업을 도왔다”며 “‘동문 경제’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시안=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201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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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포커스]관세폭탄 때리고… 패권도전 응징하고… 무역전쟁 총사령관

    “웃음을 띠고 우리를 대하고 있으나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적이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탐욕에 눈먼 거대한 용(龍)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중국산 제품에는 징벌적인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USTR가 6일 340억 달러(약 38조 원) 규모의 818개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언론이 콕 찍어 ‘무역전쟁 도발의 원흉’이라고 지목한 3명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신념들이다. 부동산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가(트럼프), 경제학과 교수(나바로), 통상 전문 변호사(라이트하이저) 등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은 각 분야에서 중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제 미 정부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한 이들은 자신들이 골수에 맺힐 만큼 강하고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현실에 옮기고 있다. 미국이 대중(對中) 무역전쟁을 벌이는 등 국제 자유무역 질서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데는 ‘대중 강경 3인방’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제2의 플라자 협정’ 꿈꾸는 라이트하이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 후에 국무장관으로 발탁된 제임스 베이커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 미국 달러의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한 환율 인상(평가 절하)을 추진하는 ‘플라자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 약발은 미국의 기대 이상으로 2년 만에 달러는 50% 이상 절하돼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했다. 달러화 약세는 1987년 2월 22일 5개국이 다시 모여 ‘루브르 협약’으로 하락을 멈추게 하자고 약속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뉴욕의 고층 빌딩을 사들이는 등 호황을 누렸지만 독배를 마신 것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잃어버린 10년(1991∼2000년)’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위협적인 2위 경제국 일본을 ‘한 방’에 보냈다. 당시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로 플라자 협정의 주역 중 한 명이다. 33년 전 추격자 일본을 굴복시켰던 그에게 이제는 상대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경제 2위국의 도전을 뿌리치는 역할을 맡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환율 한 가지 수단으로도 큰 성과를 달성했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3월 미 재무부의 평가에서도 중국이 ‘환율 조작국’에 지정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대중 적자 누적의 요인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6일 340억 달러 고율 관세와는 별개로 10일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폭탄을 던지면서 라이트하이저는 “관세 부과 대상은 중국의 산업 정책과 강제적인 기술 이전 관행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제품들”이라고 했다. 환율만으로 일본 독일을 공격하던 때와는 상황이 다른 고민이 담겨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를 마친 후 대형 로펌 ‘스캐든’의 파트너 변호사로 미국 기업들을 위한 징벌관세 부과 업무를 맡아 30여 년간 일해 왔다. 주요 대상이 중국 철강으로 이번 대중국 관세 폭탄의 대표 품목이다. ○ ‘군복을 입고 벙커에서 무역전쟁 지휘’ 말까지 듣는 나바로 “중국 공산당식 변칙적인 국가자본주의는 세계의 자유 시장과 자유무역 원칙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하고 있다. 정부의 후원을 받는 ‘국가 대표 기업’은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결합한 정책을 무기 삼아 휘두르면서 전 세계 산업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백악관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일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하고 초대 위원장에 임명한 ‘초강경 반중 학자’ 나바로 어바인대 교수의 기본 생각이다. 그는 중국이 휘두르는 ‘일자리 파괴의 무기’로 △불법 수출 보조금 △지식재산권의 무분별한 위조 △느슨한 환경 법규 △업계에 만연한 노예 노동력 사용 △미국 기업에 대한 높은 중국 진입 장벽 등을 들고 “가장 뻔뻔한 것으로 환율 조작도 있다”고 했다(‘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2011년. 원제 ‘Death by China’). “중국이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미국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국의 8가지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창출되는 경쟁 우위가 50%가 넘는다”고 반박한다. 숫자를 동원한 논지 전개는 경제학자답지만 8가지 관행 표현에서는 뿌리 깊은 대중 반감과 ‘전사의 결기’가 느껴진다. △미국의 심장을 겨누는 교묘하고 불법적인 수출 보조금 △약삭빠른 환율 조작 △지식재산 위조, 침해, 절도 △원가 절감을 위한 기업의 환경 파괴 정부 묵인 △국제 표준에 훨씬 못 미치는 근로자 안전 보건 기준 △핵심 원자재 수출 제한으로 관련 산업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 강화 △약탈적인 덤핑으로 경쟁국 밀어내기 △‘보호주의 만리장성’으로 중국 시장 진입 장벽 구축 등이다. 나바로는 “세계사에서 1500년 이후 중국 같은 신흥 세력이 미국 같은 기존 강대국과 대치한 것은 15차례이고 이 중 11차례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확률이 70%를 웃돈다”(‘웅크린 호랑이’)며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이 전쟁 등 충돌하는 것)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경제적 이해를 넘어 패권 도전국 중국에 대한 견제 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뒤에 있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30년 전쟁 후유증으로 쇠잔의 길을 걸었다”며 양국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을 권고한다. ○ “미국이 중국의 봉이라니 기가 찰 노릇” 외치는 트럼프 트럼프는 대중 무역전쟁에서 현장 지휘관이다. 트럼프의 말과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중 피해의식과 보복 의지는 사업가로서 오랜 기간 쌓인 것이다. “중국은 환율 조작으로 우리 주머니에서 매년 1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빼내가고 있다. 내가 중국을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한 뒤 온갖 비난을 받았으나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트럼프는 중국을 △작정하고 미국을 파탄 내려고 덤비는 사람들 △일자리를 앗아가는 사람들 △기술을 훔쳐 가는 사람들 △기축통화 달러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들인데 ‘적’ 말고 뭐라고 부르냐고 반문한다. 트럼프는 “우리는 중국 일본 멕시코 같은 나라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만든 세계 최고의 시장을 그냥 내주고 있다”며 “미국의 노동력이 최고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단지 그들이 경쟁하도록 해주기만 하면 된다”(‘불구가 된 미국’)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일자리를 잃은 것은 중국 등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대응해 내놓은 것이 고율 관세 폭탄이다. ○ 안팎에서 부는 ‘보호주의 3인방’에 대한 역풍 이들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 및 보호주의 논리는 중국과 서방 각국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했던 자유무역 질서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관세 폭탄에 대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통령들이 도입한 가장 비합리적인 일”이라며 “멍청하고 미친 짓이다. 트럼프는 무솔리니처럼 독재자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국내로 가져오는 방법으로 ‘온 쇼어링(본국으로 제조 시설을 옮기는 것)’을 들면서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지만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상하이(上海)에 연간 50만 대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일부 기업의 탈미(脫美)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구자룡 bonhong@donga.com·이진구 기자}

    • 20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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