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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을 앞두고 3박 4일 일정으로 23일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방카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같은 2박 3일간의 방한이 예상됐으나 한미 조율 과정에서 하루가 더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방카는 민항기로 23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방카는 한국에선 미국 측이 직접 준비한 방탄차량을 이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여정을 국빈급으로 환대한 우리 정부가 이방카를 어떤 수준의 의전으로 대접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우선 폐회식에서 이방카의 자리가 그렇다. 정부 관계자는 “이방카는 폐회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옆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 개회식에서 김여정은 문 대통령의 바로 뒷줄에 앉았다. 이방카는 청와대에서 식사를 겸해 문 대통령을 접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이 청와대에서 접견 및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한 것에 비춰 보면, 이방카도 청와대에서 어떤 식으로든 북-미 대화 및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워싱턴 정가의 목소리를 전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한미 공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김여정 때처럼 오찬이 아니라 만찬을 가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김여정을 방남 기간 4번 만난 만큼 이방카도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방카의 카운터파트 역할은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에서 직접 나서 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트럼프의 귀를 잡고 있는 이방카의 메시지에도 어느 때보다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방카가 북-미 대화 등 대북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진 않겠지만 북한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직접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평소 인권문제에 관심을 보여 온 이방카는 지난해 북한이 최악의 인신매매국이라는 국무부 보고서 발표 자리에선 “나도 엄마이기에 인신매매는 정책 우선순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 바 있다. 2011년 9월에는 김정일이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보는 모습 등 북한 관련 유튜브 편집 자료를 자신의 트위터에 링크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논평을 통해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다 준비되어 있다”며 “이에 대해 온 세계가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되어 유독 미국만 모르고 있는가”라고 주장했다.신진우 niceshin@donga.com·문병기 기자}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강원 평창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보다 북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북-미 대화가 우선되어야 하며 그전까지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미 대화 나서야 정상회담 가능” 메시지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할 생각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속담을 꺼내들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받은 지 일주일 만에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태도를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 속담을 인용한 것은 김여정의 평양 초청 제안에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일각에서는 6월, 8월 등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신중하다. 북-미 대화 진전 없이는 어떤 후속 조치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김여정이 평양으로 돌아간 뒤 일주일 동안 미국과 다양한 채널로 소통한 결과 어떤 형태로든 북-미 접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7일(현지 시간) “(국무장관으로서) 나의 일은 우리가 채널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반드시 알도록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나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이 아무리 워싱턴에서 대북 온건파라 하더라도 이는 ‘코피 작전’이 거론되던 최근 워싱턴 기류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맞춰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싸늘한 대북 스탠스에 우려하던 청와대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도 미국에 돌아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며 “북한과 미국이 한 번에 마주 앉기는 어렵지만 서서히 접촉과 대화로 돌아서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열병식 이어 김정일 생일에도 ‘로키’ 이 때문에 정부에선 북-미가 곧 ‘탐색적 대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는 김정은의 도발이 이어지던 지난해 말에도 비공식 채널을 유지해 왔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선 북-미 간 접촉이 시작된다면 시점은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이 끝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4월) 시작 전인 3월 초·중순이, 장소는 유엔본부를 중심으로 한 뉴욕 채널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정은 역시 ‘로키(low key)’ 행보를 이어가며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일 생일 하루 전인 15일 열린 ‘김정일 생일 76돌 중앙보고대회’에 김정은은 지난해와 달리 불참했고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대회를 주도했다. 평창 개회식 전날인 8일 건군절 열병식에 새 전략무기를 선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을 의식해 수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에는 김정일 생일 전후 도발을 이어간 것과는 달리 잠잠한 것도 눈에 띈다. 지난해엔 2월 12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2형을 발사했고 2016년 2월 16일엔 장거리미사일 광명성호를 발사하며 미사일 전력을 과시했다. 우리 군 역시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체제 비판보다는 평창 올림픽, 김여정 방남 소식 등을 주로 소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확성기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략 심리전 수단이다.한상준 alwaysj@donga.com·신진우·황인찬 기자}
“김정은의 입이 바싹 마르고 있을 시점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3일 김정은이 잇따라 대남 유화 메시지를 내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1년 넘게 이어진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평양의 기름통을 비우고 달러 흐름을 옥죄면서 김정은의 태도 변화까지 유도하고 있다는 것. 외교가에선 경제제재 효과가 드러나는 데 6개월 정도 걸린다고 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제재결의 2356호(6월), 2371호(8월), 2375호(9월), 2397호(12월) 등을 연쇄 채택했다. 이게 올해 초부터 북한을 제대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제재의 칼날이 다가오자 ‘평창 공세’로 이를 쳐내려는 게 김정은의 노림수”라고 말했다. 대북제재가 먹혀든다는 증거는 최근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대중 수출액은 지난해 17억2000만 달러(약 1조8600억 원)로 2016년 대비 33% 줄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수출액은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83% 줄었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 전문가패널 ‘대북제재 이행보고서’에서도 북한의 지난해 대중 석탄, 광물 수출액은 1년 만에 30∼40%가량 줄었다. 북한의 생명줄인 기름 공급도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홍콩 매체 둥왕(東網)은 지난해 10∼12월 3개월 동안 중국이 석유제품으로는 유일하게 항공연료유 5t만 북한에 수출했다고 보도했다.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한 안보리 결의안 2397호의 영향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유류난으로 통상 매년 12월∼다음 해 3월에 실시하는 북한의 동계훈련 시작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북 압박 효과가 검증된 만큼 대화 모멘텀과는 별개로 한미 당국은 대북제재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최근 방한 과정에서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 조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북한은 남북 대화를 제재 회피의 지렛대로 활용할 듯하다. 중국에 SOS를 치고 있다는 정황도 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번 방남 기간에 중국의 한정(韓正)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나 북-중 무역관계 개선을 언급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대북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선에서 남북 대화를 지지하며 같은 조건에서 미국도 북한과 대화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현지 시간) 전했다. 12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기간 중 우리(미국)가 주목받는 일은 적을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수차례 언급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미 양국이 올림픽을 계기로 압박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최대의 압박과 관여 병행’ 정책으로 전환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펜스 부통령은 10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공군 2호기에서 가진 WP와의 인터뷰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한) 최대의 압박 작전은 지속될 것이며 더 강화될 것”이라면서도 “당신들이(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대한의 압박 정책이 지속 및 강화된다는 전제 아래 한국이 먼저 북한과 대화를 하고, 가능하다면 이른 시간에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이 같은 정책을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 병행(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at the same time)”이라고 지칭하며 “핵심은 (대화 중에도) 그들이(북한이) 동맹국들이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조치로 판단하는 일을 실행할 때까지 어떤 압박도 거두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WP는 “압박을 가해 평양이 실질적 양보를 한 뒤에야 북한 정권과 직접 만나겠다는 기존 방침과는 다른 중대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방남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어떻게 판단하느냐”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김여정의 계보 등과 관련해 추가 설명자료까지 우리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내 대화를 중시하는 ‘소수파’의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북한과 비공식 채널을 가동해 물밑 탐색전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WP는 펜스 부통령이 한국에 도착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 이후 대화 국면에 대해 양국이 의견을 조율하지 못한 상태였으나 문 대통령과 두 차례 논의 후 돌파구가 열렸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단지 대화만으로 경제적 외교적 이득을 얻을 수 없으며 (제재 완화는)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때 가능하다는 걸 북한에 말하겠다”며 펜스 부통령을 설득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창 겨울올림픽이 폐회한 후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이 12일 전했다. 구체적인 방북 일정은 아직 협의 중이라고 통신은 덧붙였다. 바흐 위원장은 “스포츠 측면에서 (남북) 대화를 지속시키기 위해 (방북에) 가장 적절한 시일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신진우·한기재 기자}

북한 노동신문이 1면에 북한 고위급 대표단 사진을 싣고 이들의 방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12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고위급 대표단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 내외 등과 함께 북한 예술단 공연을 관람한 소식을 8장의 사진과 함께 1면에 비중 있게 게재했다. 특히 신문은 문 대통령이 공연 도중 혼자 기립해 박수를 치는 사진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이 사진은 소녀시대 멤버인 가수 서현이 북한 단원들과 마지막 곡을 부르고 난 뒤 포착된 장면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일어선 뒤 북한 고위급 대표단 등 주변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 신문은 문 대통령만 기립한 사진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우리 예술인들이 남조선 노래들을 부를 때 관중들이 노래에 맞추어 손을 흔들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이 대대적인 환대를 받았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이번 대표단 방남으로 내부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전날에도 1면 하단 기사로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소식 등을 7장의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노동신문이 1면에 문 대통령의 사진을 이틀 연속 보도한 것은 처음이다. 신문은 또 김여정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평양 귀환 소식을 보도하며 “고위급 대표단의 이번 방문은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 데 의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 상임위원장이 공항에서 마중 나온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는 사진까지 함께 실었다. 대표단이 늦은 밤 귀환했음에도 다음 날 지면에 크게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만큼 북한이 이번 방남 성과에 주목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카메라가 링크 위 스케이트 선수들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 초점을 두고 있을 동안 놀라운 ‘장막 뒤’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 병행’ 정책 방침을 시사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인터뷰한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11일(현지 시간) CNN에 출연해 당초 평창 올림픽 후 대화 국면에 대해 이견을 보였던 한미 양국 대표가 합의점을 찾아간 과정을 두고 이같이 표현했다. 결정적 장면은 8일 회담이 열렸던 청와대와 10일 쇼트트랙 경기가 벌어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포착됐다. “미국이 대화 국면 확장(further engagement)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번 대북 관여 정책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펜스 부통령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 없는 보상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답하는 식으로 균열이 메워졌다는 것이다.○ 11월 선거 앞둔 백악관 “성과 내려 할 수도” 청와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핵 문제의 외교적 성과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미국을 설득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압박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군사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지, 아니면 대화를 통해 성과를 내는 쪽으로 승부를 걸지의 문제를 놓고 미국도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미 접촉을 이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중재자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북한을 만나는 채널로 우리를 통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우리 채널을 활용하는 것이 미국에도 훨씬 유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조만간 통화를 하고 김여정 특사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당장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신중한 대응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과 실무선에서부터 차분히 접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티스 “올림픽뒤 긴장완화 계속될지 지켜봐야” 펜스 부통령은 ‘어떤 조건에서 대북 제재가 완화되는가’라는 WP의 질문에 “나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대화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혀 북-미 대화가 성사되면 구체적인 제재 완화 요건을 들고 테이블에 앉아 북한의 의중을 탐색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펜스 부통령은 WP에 “(아시아 순방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과 매일 의견을 주고받았다”며 자신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음을 강조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에 북한과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다고 수차례 밝혔던 점을 거론하며 압박과 관여를 병행하는 기조가 지금까지의 트럼프 행정부 대북 정책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WP는 전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12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북-미) 대화 테이블 위에 무엇이 올라와야 할지는 그들(북한)도 알고 있다. 그런 진지하고 의미 있는 북-미 대화를 언제 시작할 것인지도 북한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11일(현지 시간) “긴장 완화를 위해 올림픽을 이용할 수 있을지,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그것이 견인력을 가질 수 있을지를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한기재 record@donga.com·신진우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필체에서도 김일성 일가임을 드러내고 있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김여정은 청와대 방명록에 독특한 서체로 글을 남겼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오른쪽 45도 방향으로 올라간 기울임체 글씨체( ④ ). 전문가들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려는 글씨체라고 보고 있다. 획이 오른쪽 위로 상승한다는 건 목표 지향적, 결과 중심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김여정의 서체는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태양서체’를 특히 닮았다. 북한은 김일성 필체( ① )를 ‘태양서체’로 부르며 김정일 필체( ② ), 김정일 모친 김정숙 필체와 함께 ‘백두산 3대 장군 명필체’로 칭송한다. 특유의 기울임체는 김일성은 물론 아버지 김정일, 오빠 김정은 필체( ③ )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김정은은 글씨 기울기가 용지의 양식이나 규격을 무시할 정도로 가파르고 파격적이다. 검사 출신으로 필적학(graphology)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는 “김여정의 글씨체는 전체적으로 반듯해 보이지만 ‘우’자에선 밑으로 떨어지는 획, ‘조’자에선 수평적인 획이 눈에 띄는 등 예외가 있다”며 “자유분방하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9일 북한을 겨냥해 “자국민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하는 정권”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계속할 최대의 압박 캠페인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오전 경기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탈북자 4명과 면담했다. 탈북자 가운데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언급해 화제가 된 지성호 씨도 있었다. 또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뒤 6일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도 함께했다. 탈북자들과 악수를 이어 가던 웜비어 씨는 지 씨와는 15초가량 꼭 껴안아 주변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수차례 언급했다. 북한 인권 문제 등을 고리로 ‘최대의 압박’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펜스 부통령은 먼저 “북한 폭정 피해자들을 만나 영광이며 용기에 감사드린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어 “북한 폭정을 피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듣고 싶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독재정권은 (주민을 억압하는) ‘감옥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인권 실태를 고발할 땐 고개를 끄덕이며 수차례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북한 대표단이 이날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선 “전 세계가 오늘 밤 북한의 ‘매력 공세(a charm offensive)’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회담 이후 “북한의 ‘미소 외교’에 눈을 빼앗겨선 안 된다”고 표현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펜스 부통령은 탈북자 면담 이후 천안함을 둘러보며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을 당한 천안함이 내 뒤에 있다”며 “국제사회와 유엔조차 북한이 그 공격에 관여했음을 확인했는데도 북한은 여전히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한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은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참석 전 오산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을 만나 “(북한의) 비핵화는 (대화를 향한) 어떤 변화의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이라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완전히 새로운 범위의,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제재를 가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야) 전 세계가 협상이나 대북제재 관련 어떤 변화 조치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올림픽 참가로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한 것. 펜스 부통령은 전날 북한의 열병식을 두고는 “계속되는 도발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또 펜스 부통령이 “미국과 한국은 완벽한 공조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지만 전날 문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외교부공동취재단}

“북한에서 누가 내려올 때마다 그물코가 조금씩 넓어진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이후 촘촘했던 대북 제재망이 조금씩 헐거워지고 있다며 8일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말까지 팽팽했던 국제사회의 초강경 대북 제재 기조는 올림픽을 앞두고 제재 예외가 잇따라 인정되면서 느슨해진 게 사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7일(현지 시간)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된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해 달라고 회원국들에 제의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대북제재위에 최휘의 제재 해제를 요청했다. 한국 시간으로 9일 오전 5시까지 반대하는 회원국이 없으면 제재가 풀린다. 정부는 김여정이 미국 독자 제재 리스트에 있지만 미측에 예외 인정을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올림픽 참가 메시지를 밝힌 뒤 북한은 지금까지 여섯 차례 국제사회와 한미의 대북 제재망을 흔들거나 흔들려는 데 성공했다. 첫 논란은 금강산 문화 공연을 위해 우리 측이 경유(3만 L가량으로 추정)를 북한에 보내기로 하면서 불거졌다. 정유제품의 연간 대북 공급량을 50만 배럴(7945만 L)로 제한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북측이 일방적으로 공연을 취소해 없던 일이 됐다.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 훈련을 위해 우리 선수단을 태운 아시아나항공기의 방북도 ‘북한을 경유한 항공기는 180일 동안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미국 행정명령에 저촉되는 것이었다. 만경봉92호가 동해시 묵호항에 정박하며 우리 해역에 입항한 것도 제재 예외 조치를 받았다. 우리 정부 스스로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금지’를 규정한 5·24대북제재조치의 빗장을 푼 것. 북한은 이 선박의 유류 지원도 요청했는데 이 역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평창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기조를 잇달아 역행하는 것은 우리 정부에 고스란히 외교적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우리가 계속 제재를 무너뜨리면 이후 국제사회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일각에선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뚫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자체가 거꾸로 대북 제재가 김정은 체제를 제대로 압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달러가 바닥나고 기름 탱크가 비어 가자 김정은이 이를 타개하려고 여동생인 김여정까지 한국에 보내며 손을 흔들고 있다는 것. 이에 올림픽 후 다시 제재를 강화해 북핵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자는 말도 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타이루거(太魯閣)협곡의 절경이 유명해 한국인도 많이 찾는 관광지인 대만 동부 화롄(花蓮)에서 6일 밤 발생한 강진(규모 6.0)으로 빌딩 4채가 무너지거나 기울어지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빌딩 한 곳은 60도 이상 기울어져 있는 데다 기울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대만은 세계의 지진 활동이 집중된 환태평양 조산대를 가리키는 ‘불의 고리’에 위치하고 있다. 7일 오후 현재 대만 당국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6명이 사망하고 258명이 부상을 입었다. 기울어지거나 무너진 건물에서 나오지 못한 실종자가 67명이나 돼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2016년 2월 6일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에서 규모 6.4 강진이 발생해 117명이 사망한 지 꼭 2년 만에 다시 강진이 발생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1∼3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건물이 60도 이상 기울어 붕괴 위험에 처한 윈먼추이디(雲門翠堤)빌딩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 구조당국이 지지대를 설치해 붕괴를 막으려 하고 있으나 대만 언론들은 “1시간마다 5cm씩 기울고 있어 완전히 붕괴될 경우 안에 갇힌 실종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이 빌딩 1, 2층은 퍄오량성훠(漂亮生活·아름다운 생활)여관이고 3∼12층은 다세대주택이다. 이 건물에서 4명이 숨졌고 매몰된 약 50명이 아직 구조되지 못해 실종 상태다. 이곳에는 84가구 213명이 살고 있었다고 대만 매체들이 전했다. 화롄을 대표하는 11층짜리 퉁솨이(統帥·마셜)호텔도 1, 2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3층이 1층으로 주저앉았다. 6층짜리 바이진솽싱(白金雙星)빌딩, 9층짜리 우쥐우슈(吾居吾宿)빌딩도 무너지거나 기울어지면서 실종자가 발생했다. 빌딩 4채 이외에 90채의 일반 가옥이 붕괴됐다. 퉁솨이호텔 인근에서 공사 중인 호텔의 크레인은 엿가락처럼 구부러졌다. 윈먼추이디빌딩 9층에 거주하던 한국인 김모 씨(58·여)가 출구가 막혀 건물에 갇힌 지 10여 시간 만인 7일 오전 극적으로 구출됐다. 김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한국 외교부는 “별다른 부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대만당국은 한국인 부상자가 14명이라고 집계했다. 반면 한국 외교부는 “김 씨 외에 이 지역에 있었던 한국인 관광객 12명과 가이드 1명은 현지 임시보호소에 머물다가 이날 오후 기차를 통해 안전지역으로 대피했음을 대만 외교부와 구조당국을 통해 파악했다”고 밝혔다. 13명 중 관광객 1명이 다리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부는 “공관과 영사콜센터를 통해 접수한 한국민 피해 상황은 없다”고 밝혔다. 대만 전문가들은 유독 빌딩 4채만 피해가 큰 데 대해 이 빌딩들이 지진활동이 일어나는 단층대에 위치해 있었음에도 부실공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만 롄허신원왕(聯合新聞網)은 토목기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4채 모두 ‘저층 허약 빌딩’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빌딩 1층에 벽이 적고 기둥이 많아 약한 1층 구조가 건물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는 것이다. “대만당국은 이 빌딩들의 건축 신청 당시 자료와 설계도면 등을 통해 부실공사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롄허신원왕이 전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도 토목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퉁솨이호텔이 외면이 불규칙한 형태로 안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강진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는 현지 보도에서 윈먼추이디빌딩 1, 2층에 있는 퍄오량성훠여관이 “여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방 벽들을 허무는 등 개조하면서 건물 중량을 견디는 힘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라는 주민들의 의혹을 보도했다. 6일 밤 지진 발생 당시 대만은 ‘국가급 경보’를 발령했다. 지진은 20∼30초간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퉁솨이호텔에 머물던 중국인 여성 여행객 쿵(孔)모 씨는 “호텔 5층에서 자고 있다가 지진에 놀라 남편과 함께 1층으로 탈출하려 했으나 3, 4층에서 건물이 뒤틀려 내려가지 못하고 다른 계단으로 기어가다시피 해 옆 건물로 탈출했다”고 중국 인터넷매체 펑파이(澎湃)에 전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강진 다음 날인 7일 지진 현장을 방문해 “구조 활동을 절대 포기하자 말라”고 강조했다. 대만 정부는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지진 피해 지역에 7일간의 휴교령 등 임시 휴일을 선포했다. 4만 가구가 지진으로 단수됐다가 4900가구가 회복했으나 아직 3만5100가구가 단수 상태라고 대만당국은 밝혔다. 지진 발생 이후 규모 5.0 이상 지진 9차례를 포함해 약 250차례 여진이 이어져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대만 기상당국은 “앞으로 2주간 규모 5.0 이상의 여진이 발생할 것이고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다시 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신진우 기자}

김여정이 예정대로 9일 방남하면 무엇을 타고 어디서 머물게 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김여정이 90세의 김영남과 함께 오기 때문에 고려항공 등 항공편을 이용해 올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부는 고위급 대표단에 대해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전용기’가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도 ‘실세 3인방’은 이 전용기를 타고 서해 항공로를 이용해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1960년대 옛 소련에서 만든 일류신(IL-62) 기종이었다. 어디에서 2박 3일을 보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 평양 귀빈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에 해당하는 시설이 서울엔 없는 만큼 이에 준하는 특급호텔이나 정부 기관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 현송월이 이끄는 예술단이 서울 공연 전에는 광진구 워커힐호텔에 머무는 만큼 이 호텔도 거론된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호텔에 비해 서울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경호가 용이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만큼 북한이 아직 우리 측에 공식 통지하지 않은 별도의 경호 인력이 내려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편 김여정의 방남을 계기로 그녀의 고속 출세 이력도 주목받고 있다. 김여정은 2014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고서 2년 뒤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1년여 만인 지난해엔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 김경희가 만 42세에 당 중앙위원에 오른 뒤 20여 년 후인 66세가 돼서야 정치국 위원이 된 것과 비교하면 파격 발탁이다. 우리 정부는 김여정의 나이를 31세(1987년생)로 보고 있다. 김여정은 지난해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르면서 선전선동부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7일 고위급 대표단원 명단을 통보하면서 김여정을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명시해 그럴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아직까지 확인된 김여정의 직책은 선전선동부 부부장이라고 밝혔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여성은 붉은 모직 코트에 검정 털모자, 남성은 코트와 모자를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7일 줄지어 남측 땅을 밟은 북한 응원단은 유니폼을 착용한 것처럼 차림이 비슷했다. 이들의 모습은 전날 묵호항에 도착한 북한 예술단 본진들의 복장과 같았고, 이날 응원단에 앞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북한 기자들도 남성은 검은색, 여성은 붉은색 코트를 맞춰 입었다. 여성 응원단 복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레드’였다. 이들이 끌고 다닌 캐리어도 자줏빛, 손에 쥔 ‘대성산’ 브랜드의 숄더 파우치도 주로 분홍색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아무래도 붉은 계통이 사회주의 국가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외모를 더 화사하게 보이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북한 여성 응원단은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때는 붉은 티셔츠를,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당시엔 꽃분홍색(진달래색) 한복을 입기도 했다. 현송월이 이끄는 예술단은 이날 강릉 공연을 하루 앞두고 밤늦게까지 리허설을 했다. 공연 레퍼토리에는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선희의 ‘J에게’ 등 우리 가요와 해외 유명 뮤지컬 테마곡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 예술단을 태우고 내려올 만경봉92호는 1992년 4월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의 80회 생일을 맞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상공인들이 40억 엔을 들여 건조한 화물여객선이다. 배 이름도 김일성의 생가인 평양시 만경대 구역의 만경봉(45m)에서 따왔다. 탑승 인원이 350명인 만경봉92호는 일본의 대북제재를 상징하는 선박이다. 일본 정부는 2006년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에 나서자 대북제재 조치로 이 배의 일본 입항을 금지시켰다. 이 배가 야채, 식품 등 생필품은 물론이고 자동차, 사치품까지 북한에 조달하는 운반선 역할을 수행했다는 게 이유다. 많게는 한 해 20억 달러에 달하는 총련계 교포의 돈을 북한으로 실어 날랐던 만경봉92호는 ‘북한의 생명선’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본의 입항 금지 조치 후 만경봉92호는 항구에 묶인 시간이 많아져 앉은뱅이 신세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선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동원될 것이란 말도 돌았다. 북한은 2002년 9월 부산 아시아경기 당시 만경봉92호에 북한 응원단을 태워 보냈다. 당시 북측은 부산에 입항해 북한 응원단 숙소로 사용된 이 배의 내부를 공개했는데 김일성, 김정일이 머물렀다는 특급 객실도 있었다. 사실 ‘원조’ 만경봉호는 따로 있다. 1971년에 건조된 3500t급 화물여객선이다. 이 배는 일본 니가타∼북한 원산을 잇는 북송사업 항로를 누비며 재일교포를 북한으로 이주시키는 주역으로 활동했다. 원조 만경봉호는 ‘인민경제계획 수행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북한 최고의 영예인 김일성훈장까지 받았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측 예술단 140명을 태운 만경봉 92호가 6일 오후 5시경 강원 묵호항으로 입항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뱃길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북한 마식령스키장 공동 훈련을 위한 항공편 이용 때 미국 독자 제재의 예외를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돼 정부가 우리 독자적 대북 제재 조치까지 걷어낸다는 우려가 나온다.○ 뱃길 제재도 예외 만경봉 92호 만경봉 92호의 방남은 정부의 대북 제재망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논란을 빚는다. 이명박 정부에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단행한 5·24 대북 제재 조치가 대표적이다. 5·24조치는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을 전면 금지했다. 2016년 12월에도 독자 제재를 발표해 북한 선박의 영해 진입, 제3국 선박도 최근 1년 이내에 북한을 기항한 적이 있으면 국내 입항을 전면 허용치 않기로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어떨까. 외교부 당국자는 “통일부로부터 소식을 듣고 확인했는데 만경봉호나 배를 소유하고 있는 선박회사도 안보리 결의안에 지목된 것은 없다”면서 “미국의 독자 제재 역시 만경봉호가 미국까지 가거나 입항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만경봉 92호가 정박했을 때 기항지에서 제공하는 기름, 식료품들이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원유 제공이 금지된 것이 아니라 연간 50만 t이라는 상한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先) 지원 후(後)유엔제재위원회 통보’가 이뤄지면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다. ○ “모로 가도 평창 올림픽이면 된다”는 정부 만경봉 92호가 입항하면 북측의 방문으로 ‘육(육로)-해(만경봉 92호)-공(전세기 방북)’이 다 뚫린다. 북측이 묵호항을 택한 것은 여객선 비중이 작은 화물 위주 항구여서 일반인 접근 차단이 비교적 용이한 점이 고려된 조치로 보인다. 5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입경한 선발대 23명 외에 북측 예술단 140명이 그대로 오면서 예술단 관련 파견만 163명이 됐다. 정부가 제재 예외를 거듭 인정하면서 북측으로 하여금 또 다른 요구를 할 수 있도록 쉽게 길을 터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보리 제재 대상이 아니라서 항로 개방은 괜찮다”는 시각도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도 대북 압박 원칙을 희석시킨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 제일 중요하게 내세우는 평창 올림픽 관련 정신은 ‘올림픽 성공을 위해 미국 제재든 유엔 제재든 무엇이든 폭넓게 허용하는 분위기로 가자’는 것이다”라며 “정부의 독자 제재 예외 허용은 이번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열려 있는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제안으로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남 경로가 세 번째 뒤틀렸지만 정부는 그대로 제안을 수용했다. 북측은 지난달 15일엔 판문점 육로로, 23일 보낸 통지문에서는 경의선 육로를 제안했다가 돌연 뱃길로 오겠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얼마나 정박할지에 대해선 “(북측은) 강릉 공연 기간이라고 한정했다. 서울서 어디서 묵을지, 다시 배로 돌아갈지는 더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북의 연이은 ‘제재 예외 요구’에 점차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 북측은 4일 오후 ‘8일 강원 강릉 공연 기간 (예술단) 숙식의 편리를 위해’ 만경봉 92호를 내려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정부는 12시간가량 지난 후에 만경봉 92호 소식을 전하면서 “관련 부처 간의 협의 때문에 발표가 늦어졌다”고 밝혔다. 미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는 점도 덧붙여 강조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을 즉시 알렸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홍정수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 방한하는 외국 정상급 인사는 총 26명이다. 많은 해외 정상급 인사가 동시에 한국을 찾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6일 에스토니아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과의 회동을 시작으로 막이 오르는 ‘평창 외교전’은 한반도 문제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창외교 중심은 ‘북한’ 2일 청와대가 발표한 정상 외교 일정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가장 많은 VIP를 만나는 날은 개막식 전날인 8일이다. 대북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 중국과의 회동도 이날 열린다. 8일은 북한이 대대적인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을 열겠다고 예고한 날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고 부부동반 만찬을 갖는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여로 형성된 대화 기조와 미국 백악관의 대북 강경 기류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날 회동은 향후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해 “올림픽 납치(hijack)”라고까지 표현했던 펜스 부통령이 이날 열리는 북한의 열병식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또 차기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다가 낙마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에 대한 이야기도 대화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는 미국 대표단에 ‘친한(親韓)파’ 인사들이 포진됐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던 펜스 부통령은 “한미 간 파트너십은 가족, 그리고 내게 상당한 자부심”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대표단에 포함된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도 대표적인 친한파 의원이다. 펜스 부통령과의 회동에 앞서 문 대통령은 한정(韓正) 중국 상무위원과 만난다. 이 회동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막고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 내기 위한 한중 공조 방안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개막식이 열리는 9일 문 대통령은 평창으로 자리를 옮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함께 대북제재와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폐막식 참석 가능성에 대해 청와대는 “현재로서는 참석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과 함께 방한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족이 누구인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와인 대신 콜라’ 등 VIP 맞춤형 메뉴 제공 해외 정상이 대거 한국을 찾는 만큼 의전도 관심사다. 정부는 평창 올림픽 정상급 의전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당장 해외 정상들과 수행원들을 평창 올림픽 플라자까지 안내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개막식 당일 정상급 외빈을 위해 서울∼진부 간 왕복 무정차 특별열차를 운행한다. 정상 의전용 열차를 따로 운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VIP들은 현대자동차의 대형 세단인 에쿠스 4륜 구동 모델을 탄다. 정부는 눈이 오는 상황에 대비해 눈길에도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4륜 구동을 택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각국 VIP들의 기호를 고려한 음식 준비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일부 유럽 정상은 꺼리는 음식이 있어 정부는 맞춤형 메뉴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펜스 부통령은 와인 대신 콜라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만찬장에서 와인이 아닌 콜라를 잔에 담아 건배했다. 대통령은 물론 2인자인 부통령까지 모두 술을 꺼리는 ‘비주류(非酒流)’인 셈이다. 정부는 외국 정상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한국 전통의 맛을 가미한 퓨전 한식 메뉴를 고민 중이다. 특히 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의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선보일 계획이다. 개막식 방한(防寒) 대책을 놓고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개막식이 열리는 올림픽 플라자가 지붕이 없는 탓에 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의 VIP들이 고스란히 추위에 노출되기 때문. 청와대 관계자는 “외국 정상들은 VIP 박스 뒤편에 마련된 라운지에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개최국 정상인 문 대통령은 개막식 전부터 4시간 이상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전했다. 청와대 내에선 양복 코트 위에 ‘평창 롱패딩’을 입는 것은 물론 문 대통령의 별명인 ‘이니’를 따 “‘이니 비니’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한상준 alwaysj@donga.com·신진우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이 엿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평창 외교전’의 막이 오른다. 북한의 대규모 열병식 준비와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 작전 등 미국의 대북 강경 기류가 뚜렷해지면서 해빙 기류에 부풀었던 한반도 정세는 다시 출렁이고 있다. 평화 모멘텀을 되살리려는 정부는 다음 주부터 시작될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국 정상 및 고위급 대표들과의 연쇄 회담 일정을 공개하며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일 “문 대통령 내외는 평창 올림픽 관련 첫 일정으로 5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개회식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6일 에스토니아 대통령, 7일 캐나다 총독 및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상 외교 ‘빅데이’는 평창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8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정(韓正) 중국 상무위원과 만난 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만찬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한 상무위원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메시지를 갖고 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북핵을 놓고 간접적인 한미중 회담을 갖게 되는 셈이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올림픽을 납치할까 봐 걱정된다”며 속도를 내던 남북 화해 무드에 브레이크 메시지를 낸 바 있다.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직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와 대북 제재 이행 등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9일에는 북핵 중재 역할을 자임했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난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대화 분위기를 띄우던 정부는 최근 미국의 잇따른 대북 강경 발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코피 터뜨리기’ 작전은 실제로 북한을 타격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북한을 비핵화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한 또 다른 압박 전략”이라고 했다. 올림픽 기간에 이뤄질 다자 외교로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 비핵화 분야에서도 성과를 이끌어 내겠다는 얘기다. 관건은 북한의 태도다. 고위급 대표단으로 누굴 파견하느냐가 북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첫 시험대다. 다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대규모 열병식을 예정대로 강행하면 평창 올림픽 기간에도 분위기 경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 기자}

우리 정부가 지난달 적어도 두 차례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사진)의 주한 미국대사 부임 절차를 서둘러 달라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요청했지만 별다른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올해 초 워싱턴의 비공식 채널을 통해 차 석좌 내정과 관련해 부정적인 소식을 접했다. 지명 철회까지는 아니지만 백악관 내 일부가 반대하고 있다는 것. 이 소식통은 “당초 예정대로라면 부임 절차가 한창이어야 할 지난달 차 석좌의 검증 절차가 멈춰 섰다는 얘기도 돌았다”고 말했다. 차 석좌의 몇몇 지인도 이런 소식을 우리 정부에 전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 측에 차 석좌의 대사 부임 절차를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진행 상황도 문의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진행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는 것. 이후에도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추가 설명은 없었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차 석좌의 부임이 평창 올림픽 이후로 늦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지명 철회라는 결정이 나올 줄은 (정부 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의까지 했지만 미국이 차 석좌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창을 계기로 한미 공조에 불협화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편 지명 철회 배경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와 만나 “차 석좌가 백악관 일부 강경파와 대북 정책과 관련해 실제 이견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지명 철회 결정으로 이어지기까진 또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만큼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강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을 원하는 것 같다. 차 석좌는 이런 항목에서 의문부호를 받았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던 한국계 미국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사진)의 지명이 지난해 12월 말 사실상 철회됐고, 그 후 백악관은 이를 공개하는 방식에 대해 고심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 절차가 사실상 끝난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인사가 미 백악관에 의해 철회되는 한미관계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이런 중차대한 내용이 한미 양국 간에 한 달 넘게 공유되지 못한 셈이다. 워싱턴포스트(WP)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차 석좌의 대사 지명이 철회됐으며, 백악관은 새로운 후보를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도 동아일보에 지명 철회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워싱턴의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31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차 석좌와 1월 초 신년인사차 통화했는데 그때 차 석좌가 ‘(대사)후보에서 탈락했다(I was dropped from the nominee)’라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백악관이 이미 지난해 12월 말 차 석좌의 지명 철회를 결정했고, 한미관계에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번 사태를 어떻게 공식적으로 밝히느냐의 문제만 조용히 논의해온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차 석좌의 아그레망을 한국에 신청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승인하는 절차가 진행된 기간이다. 차 석좌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선제타격 방안인 이른바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전면전이 아닌 외과적 정밀 타격)’를 두고 반대의견을 펼치다 지명이 철회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소식통은 “차 석좌가 백악관 면접에서 대북 선제타격 방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력 사용이 미국에 이로운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오히려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차 석좌도 지명 철회 사실이 알려진 직후 WP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이 제언한 (대북) 군사 선제공격은 해법이 아니다”라며 “대사로 고려될 당시 이런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고 썼다. FT도 “차 석좌가 ‘어떤 형태의 대북 군사 공격도 위험이 크다’고 우려를 표명한 뒤 백악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제거하는 ‘외과적 타격(surgical strike)’을 트럼프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데, 차 석좌가 이에 비판적 태도를 보인 것이 낙마의 결정적 이유라는 설명이다. 워싱턴의 다른 외교소식통은 “한국계인 차 석좌가 한국과 너무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한미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제 역할을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백악관 내부에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명 철회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오늘(31일) 언론 보도를 접하고 알았다”고 말했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한기재·신진우 기자}
청와대는 31일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 철회 결정이 뒤늦게 알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재국 정상의 ‘아그레망(임명동의)’을 받은 대사 내정자가 지명 철회된 게 극히 이례적인 데다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 재확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날 공식적으로는 “타국 대사의 지명 철회 여부를 청와대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교부 역시 “미 정부가 확인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이날 미국 측에 지명 철회 경위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로선 황당하지만 일단 설명부터 들어야 우리 입장을 정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선 한 달여 전에 결정된 차 석좌의 내정 철회를 정부가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미국이 한국에 아그레망을 요청한 것은 지난해 12월 초. 정부는 주한 미국대사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를 신속히 승인했다. 그러나 이후 한 달이 넘도록 대사가 부임하지 않은 만큼 이미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이를 통보받지 못했다면 북핵을 놓고 어느 때보다 굳건해야 할 한미 공조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만일 이를 몰랐다면 그야말로 ‘코리아 패싱’이 아직 남아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정부가 북한의 금강산 공연 돌연 취소로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앞둔 공연장들도 애가 타고 있다. 2월 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지만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초청 규모는 물론이고 일반 관람객들의 입장 방식 등 기본 사항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릉아트센터 관계자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 사전점검단이 다녀가고 일주일이 넘었는데 객석을 전부 초청석으로 할 건지, 선착순으로 관객들을 입장시킬지, 시민들은 어떻게 초대할지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언질이 없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공연장 측과는 상의 없이 일반 관람객을 다 초청한다고 발표해서 당황스러웠다. 애초부터 유료화 검토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극장 측도 이번 기회에 대국민 홍보를 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현송월 등 북측 점검단은 방남 당시 남다른 공연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남북 실무접촉에 참여했던 정치용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30일 취임 기념 간담회에서 “(900여 석 규모의) 강릉아트센터를 우리 측에서 제의하자 현 단장이 ‘900석으로 뭘 보여줍네까. 남측에서 확실히 뭔가를 보여줄 만한 공간이 더 없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북측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140여 명 가운데 50∼60명이 무대 앞쪽에서 춤과 노래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평창 올림픽 기간 중 남측에 머물 북한 대표단에 대한 현금 지원 가능성을 두고 “우려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대화 국면이 시작된 이후 미 정부가 우리 측에 우려 섞인 의견을 전달한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대화 과정에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알려 달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 전후 펼치는 유화 공세를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30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주말 외교 채널을 통해 북한의 고위급 인사, 응원단이 포함된 대표단에 현금, 현물 등이 전달될 가능성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한 대표단의 예상 동선도 알아봤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형식은 문의에 가까웠지만 사실상 우리 정부의 평창 관련 행보를 지켜보다 브레이크를 한 번 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북측 대표단 방남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등을 위반했는지와 관련해선 “한국 정부의 판단이 우선”이란 취지의 메시지를 우리 정부에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이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