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44

추천

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3-01~2026-03-31
문학/출판31%
문화 일반23%
인사일반13%
언론10%
역사7%
사회일반7%
칼럼3%
바둑3%
기업3%
  • 53개 역사학회 “‘朴정부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해야”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학계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학자들을 정부 연구 지원사업에서 배제했다는 의혹에 대해 6일 역사학계가 진상 규명과 참여자 처벌을 촉구했다.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동양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를 비롯한 역사 관련 53개 학회와 학술단체는 이날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낸 성명에서 “청와대가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역사연구 지원 방침을 지시하면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이를 충실히 실행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성명에서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는 반헌법적, 반국민적, 반학문적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은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또 “학술 연구 지원 사업이 정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를 강구하라”고 덧붙였다. 최근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정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의 ‘역사 분야 학술연구 지원사업 공모 결과 검토’ 문건에는 “BH(청와대) 제안에 대한 검토 의견”이라며 “○○○ 교수의 경우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운동에 적극적이어서 배제 필요” 등이 명시돼 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11-06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메이지 일왕은 어떻게 근대화의 상징이 됐나

    고메이 일왕은 1863년 가모 신사와 이와시미즈하치만 신궁을 참배한다. 재난이 아닌 상황에서 일왕이 궁궐을 떠난 건 250여 년 만이었다. 일왕이 궐 밖으로 나가는 걸 막부가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근세 역대 일왕은 사실 유폐된 국사범 같은 신세였고, 대체로 나라의 발전이나 시대와는 무관한 존재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1862년 11월 7일 고메이 일왕이 쇼군에게 보내는 칙서가 에도성에 도착했다. “막부는 … 중지를 모아 올바른 정책을 정해서 ‘추이(醜夷·추한 오랑캐)’를 거절하라.” 원래 칙서는 칙사가 홀 상단에 앉은 쇼군에게 공손히 바쳤으나 이때는 상단에 칙사가 있고, 쇼군이 신호를 기다렸다가 나아가 칙서를 받았다. 존왕양이(尊王攘夷)파가 대두하고 일왕과 쇼군의 입장이 바뀐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책은 1852년부터 1912년까지 일본의 메이지(明治) 유신과 일왕, 그리고 근대화에 관해 썼다. 1867년 왕정복고가 이뤄지고, 이듬해 8월 메이지 일왕의 즉위식이 열린다. 메이지라는 연호는 일왕이 2, 3개의 이름 가운데 제비를 뽑아서 정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왕은 경험이 부족한 젊은 군주였다. 책은 일왕과 일본의 변화를 좇는다. 일왕은 언젠가부터 서양 요리를 먹었고, 양복을 입었다. 1871년 11월에는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와중에 일본에는 철도와 전신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갔다. 일왕은 전국을 순행하면서 특산물을 보고, 학교를 방문하고, 부대를 열병했다. 저자는 “일왕은 근대 국가 일본의 장래가 산업, 교육, 군대에 달려 있음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고메이 일왕은 서양 문명을 거부했으나, 그 아들은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 됐다. 유신의 주도 세력들이 어떻게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추구했고, 시행착오와 에피소드를 겪었는지 책은 소개한다. 근대화 정책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잇따르기도 했다. 저자는 18권에 이르는 ‘일본문학사’를 집필하기도 했고, 일본 문화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문예평론가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50여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미국인이지만 근래에는 아예 일본 국적을 얻었다. 책은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과 중국 침략을 비판한다. 그러나 왕정복고의 핵심 인물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征韓論)을 펼친 데서 보듯 유신이 이룩한 일왕제적 절대주의와 제국주의를 따로 분리할 수 있다고 보는 건 무리다. 또 “‘합병’이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 한국인은 이러한 (나쁜) 일을 예견했어야 한다”는 등의 서술은 조선 식민지화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다. “민비(명성황후)는 오만하고 부패한 여인”이라며 당대 일본의 왜곡된 시각이 그대로 노출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저자는 “안중근은 청나라와 러시아에 대한 일본의 전쟁 목적을 ‘한국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선전포고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안중근은 일본인이 한국에서 범한 모든 죄를 이토 히로부미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다른 모든 일본인의 죄를 용서했다”고 봤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이야기도 다루는 건 이 책의 장점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1-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中 “평창올림픽 성공 경험 배워갈 것”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경험을 배우겠습니다.” 2일 강원 강릉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13회 한중일 문화교류포럼’에서 왕신(王昕) 중국 베이징올림픽조직위 총괄기획부 종합처 부처장은 “평창 겨울올림픽이 홍보 분야에서 베이징을 많이 지원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포럼은 3국 지식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문화 교류 현황을 평가하고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번갈아 열린다. 올해의 주제는 ‘한중일 올림픽과 동아시아의 문화예술 교류’. 평창뿐 아니라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등 동아시아 3국에서 2년 간격으로 열리는 세계적 스포츠 축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왕 부처장은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친환경 녹색 올림픽’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당시 이전한 철강 공장을 외형을 그대로 두고 내부만 개조해 베이징 겨울올림픽조직위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것. 그는 “이 건물은 베이징 서부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됐다”며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올림픽 이후에도 사용 가능하도록 경기장과 인프라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측에서는 이배용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이 ‘평창 올림픽을 세계문화축전으로’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 그는 “평창에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었고, 강릉 단오제 역시 인류무형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사찰의 목조 건축, 신사임당의 예술, 비무장지대(DMZ)의 자연 경관 등 품격 있는 콘텐츠를 만들 소재가 많다”며 “이번 올림픽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올림픽을 소재로 한 한중일 차세대 화가들의 작품도 소개됐다. 작품들은 평창 올림픽 기간에 전시될 예정이다. 일본 측 대표인 미야사코 마사아키 일본 문화재보호·예술연구조성재단 이사장은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석불과 같은 손상된 벽화, 불상 등의 문화재를 디지털 기술로 복원하는 일본 도쿄예술대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번 포럼에는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권병현 전 주중 대사, 사와 가즈키 도쿄예술대 총장 등 각국에서 7∼10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한국 측 대표인 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동서대 석좌교수)은 “한중일 3국이 한자, 식문화, 연희 등 각종 문화 전통과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은 수천 년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서로의 우수한 유산을 나눴던 덕분”이라며 “소중한 전통과 동질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신혜 “최민식 선배에 기 안밀리려 얼굴에 힘 꽉주고 연기”

    야무지게 답하는 말투가 꼭 변호사 같았다. 2일 개봉한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에서 정의감 가득한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27·사진)를 만난 첫인상이었다. 그는 본보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대배우인) 최민식 씨와 함께 출연한다는 것에 긴장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부담감을 조금 덜었다”고 말했다. 영화 ‘침묵’은 대기업 회장 임태산(최민식)의 약혼녀(이하늬) 살해 용의자로 임태산의 딸이 지목되면서 펼쳐지는 드라마다. 진실을 두고 다투는 법정 장면은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야 하는데, 희정이 태산에게 일방적으로 기(氣)가 밀리는 것처럼 스크린에 비칠까 봐 걱정이 됐었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살면서 가장 화가 났을 때를 생각하면서 그 장면을 연기했거든요. 얼굴 근육이 굳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박신혜는 지난해 ‘닥터스’를 비롯해 TV 드라마에서는 당당히 주연을 했지만 그동안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극을 끌고 나간 적이 없다. “(그래도 단순히) 주인공 여자친구 같은 역할보다는 작지만 사건 전개의 주요 축 중 하나로 끼는 역할을 했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조금씩 출연 시간을 늘려 나가면서 ‘스크린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하는 인식을 주고 싶었어요. 다음 번 영화에서는 욕심을 내 ‘원톱’ 주인공에 도전해보고 싶어요.(웃음)” 박신혜는 의사를 비롯해 전문직을 자주 연기했다. 그는 “전문직 여성이 늘어난 만큼 그런 배역도 늘어난 것이고, 그 직업을 가진 여성의 삶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당돌하고 단단한 이미지의 배역이 많았지만 다소 ‘허당’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인터뷰 때는 숨기려고 하지만 사실은 빈틈이 많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 못 돼요.” 2003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으로 데뷔해 연기 경력이 14년이 됐다. “그동안 얻은 것요? 음…. 한류배우라는 타이틀과 커리어, 인기, 광고? 하하. 그리고 영향력요. 어떤 분이 삶이 힘들어서 고민하다가 작품을 보고 힘을 얻었다며 편지를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좋은 일에 제 인기를 ‘쓸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지요.” 박신혜는 “거리에서 반갑게 맞아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데, 무방비 상태로 끊임없이 휴대전화 사진기에 찍히는 건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했다”고 했다. “문자 보내는 척하면서 ‘도촬’하는 거 다 티나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TV가 보여주지 않는 전쟁의 진짜 얼굴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우리는 이라크의 사망자 수는 결코 알지 못했고, 각자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다.” 의사의 진단서를 위조하고, 폭설로 고립된 지역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회사를 결근하던 ‘나’는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1991년 TV가 프랑스군의 걸프전 참전을 알리지만 ‘요정 나라의 불꽃같은 초록빛 포탄’을 중계할 뿐이다. “그것은 살인자의 손에 어떤 얼룩도 남기지 않은 깨끗한 전쟁이었다.” 이 장편소설의 서두는 1991년 ‘걸프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를 쓴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현대사회는 가상과 실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했다. 소설은 TV가 중계하는 이미지 뒤편에 실재하는 전쟁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다 함께 불타 죽었고, 마피아의 난투극에서처럼 한꺼번에 수장당했고, 참호의 모래 더미에서 진압당했고, 벙커의 콘크리트 가루에 섞였고, 불이 나서 녹아 버린 그들 기계의 강철 더미 속에서 타 죽었다.…그들은 이름조차 없었다. 이 전쟁에서 비가 내리듯 죽었고….”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노인 살라뇽의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다. 살라뇽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고, 인도차이나전쟁(프랑스가 옛 식민지이던 인도차이나반도의 나라들을 다시 지배하려고 일으킨 전쟁)과 알제리전쟁(프랑스가 독립하려는 알제리와 벌인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리고 전쟁을 그림으로 그렸다. 살라뇽은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고, ‘나’는 살라뇽의 노트를 토대로 그의 일생을 정리한다. 소설은 프랑스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평범한 고교 생물교사이던 저자는 이 소설로 2011년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았다.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염물질의 결과처럼, 사막의 확장처럼, 채무의 지불처럼 더운 나라에 사는 이름 없는 다른 사람들이 그 책임을 감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종이비행기]살인자의 기억법과 확신범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이래서다. 노인과 경찰이 나오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주인공 각각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흠 없이 완결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은 트릭을 통해 모두의 관점에서는 모순 없는 서사가 성립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짜 놨다. 소설처럼 세계를 하나의 관점에서 온전히 서술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기 잘난 맛에 살다 가는 게 인생’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확신범’이다. 뇌 과학 관련 교양서에 자주 나오는 사례의 하나가 2015년 세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군 드레스 색깔 논쟁이다. 같은 옷 사진이 보는 사람마다 파랑과 검정 조합이나 흰색 금색 조합으로 달리 보였던 것. 사람들은 객관적이라고 믿었던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데 경악했다. 색깔 정도야 괜찮다. 문제는 인간이 세계를 선악 구도로 인식하는 일과 자신과 다른 집단의 악마화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십자군전쟁이 왜 일어났겠나. 확신범들이 무섭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옛백제 귀족들 지배층에 편입… 신라의 ‘동서융합’ 집중 조명

    영화 ‘황산벌’(감독 이준익)은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마주친 신라군과 백제군이 각각 진한 영호남 사투리를 쓰도록 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한을 통일했다(一統三韓)”고 자부했지만 후삼국 시대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이 건국의 슬로건으로 내걸린 사실은 당시에도 ‘지역감정’이 만만치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역사학계 최대 연례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가 27, 2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역사전환기 이상과 현실’을 주제로 개최된다. 대회 둘째 날에는 신라사학회와 백제학회가 공동으로 학술대회 ‘한국 고대 동서 지역 간 갈등과 극복’을 연다. 대회에서는 신라가 멸망한 백제 유민을 대상으로 편 융합정책이 조명된다. 최희준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원은 “백제 멸망 뒤 673년 유민들이 만든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의 명문(銘文)에는 조성한 이들이 신라의 관등으로 기록돼 있다”며 “옛 백제의 중앙 귀족들이 신라 지배층으로 새롭게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라가 효율적 통치를 위해 옛 백제지역의 지방 세력을 향리(鄕吏)나 촌주(村主)로 편제해 기득권을 인정하고 경제적 기반을 유지시켰다고 봤다. 전덕재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발표문 ‘통일전쟁기 신라·백제 지배체제와 수취체계의 변동’에서 “신라가 통일 이후 중간 행정단위로서 군(郡)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방 통치조직을 재편한 건 백제의 지방제도를 일부 반영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물론 융합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것만은 아니었다. 조인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발표문 ‘통일에서 분열로―후백제의 성립을 중심으로’에서 “문무왕이 유언으로 웅천주 출신의 백제계 승려인 경흥법사를 국사(國師)로 삼을 것을 부탁했는데, 아들 신문왕은 (그러지 못하고) 국로(國老)로 삼았다”며 “이는 신라 지배층이나 불교계의 반발 때문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사는 당시 나라에서 가장 높은 승직(僧職)이고, 국로는 일종의 특별직이다. 또 조 교수는 “경덕왕 대에 왕권 강화를 위해 전통적인 군현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바꾸자 지방 세력이 반발했을 것”이라며 “혜공왕 대에 다시 원래 지명으로 되돌렸는데, 이는 백제 고구려 유민들의 유민 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학술대회에서는 ‘7세기 중반 백제·신라의 정치체제와 대외정책’ ‘신라·백제의 문화적 특성과 융합’ ‘신라·백제 지역 간 교통로의 개설과 운영’ ‘백제 미술의 신라 전파와 수용’ 등이 발표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신 사무관 제도… 軍의 정치 개입 줄이려고 만들어”

    1970년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존속하며 군 장교의 공무원 전직을 유도한 ‘유신 사무관 제도’가 군의 정치 개입 소지를 줄이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의 서울대 연구단은 27일 열리는 이 사업 공동 워크숍 발표문에서 “이 제도의 최초 구상자인 당시 국군 보안사령부 연구발전실 연구 장교로부터 이 같은 구술을 들었다”고 밝혔다. 정식 명칭은 ‘사관특채 공무원 제도’로 1977∼1988년 이 제도에 따라 군 장교 784명이 공무원으로 전직했다. 제도 시행 당시에는 육사생도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 씨의 장래를 고려한 것이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연구단에 따르면 이 제도를 구상한 연구 장교는 1973년 ‘윤필용 사건’(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계기가 돼 군사 쿠데타의 발생 요인으로 군 인사 적체를 지적한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 제도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연구단은 또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군단장을 청와대로 불러 1000만 원을 주면서 군내 부재자투표 부정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려 했다는 구술도 들었다. 현대사를 당사자의 구술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43명으로부터 2950여 시간에 이르는 구술 자료를 확보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영화 ‘유리정원’ 주연 문근영 “아파보니… 하고 싶은 일 포기말아야”

    영화 속 캐릭터를 빌려 속내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영화 주인공을 설명하려는 걸까. 23일 배우 문근영(30)을 인터뷰하는 동안 생긴 궁금증이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유리정원’(감독 신수원)에서 순수하면서도 고지식한 과학도 재연 역을 맡은 그는 극 중 인물과 몹시 닮아 보였다. 그는 영화를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재연은 후배에게 연구 아이디어를 도둑맞고 연인까지 잃지만 자신의 믿음을 밀고 나간다. “재연이 상처를 받은 건 연인의 배신 탓이라기보다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배우라기보다 선승(禪僧)의 말처럼 들렸다. “약간 잔인한 말일까요? 전, 거리를 두고 영화를 봤더니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재연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위안을 받았어요.” 문근영은 올 2월 ‘급성구획증후군’(염증으로 근육에 압력이 증가해 조직이 괴사하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 최근까지 활동을 중단했다. 지금은 회복됐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상태였느냐고 묻자 그는 “얘기하면 (팬들이) 걱정하실까 봐…”라고 말을 흐렸다. “아프고 나니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살지는 말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영화 속 재연은 실험실 가운이나 펑퍼짐한 의상만 입는다. 스토리상 분장도 얼굴의 푸석푸석함이 강조되는 장면이 적지 않다. 영화를 고를 때 망설여지지 않았을까. “원래 메이크업도 별로 안 좋아하고,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지 않아요.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어요.” 아역부터 연기 생활을 시작해 선행에도 ‘악플’이 달리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그에게 “팬이나 대중으로부터 배신감을 느낀 적이 있느냐”고 묻자 곧바로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배신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마음과 다른 반응과 시선이 돌아올 때 상처 아닌 상처를 받지요. 나는 그게 아니었는데….” 극 중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재연의 순수한 캐릭터는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가 작품에서 이 이미지를 유지하면 ‘식상하다’, 변화를 시도하면 ‘안 어울린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라는 서운함은 없을까. “어느 장단이든 제가 만들고 찾아야 되겠지요. (다음 작품은?) 일단 밝고 따뜻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제 마음이 지금 그렇거든요.”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해외 미군기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1950년대 말 미국 해군 관리들은 인도양 한가운데 영국령 차고스제도의 디에고가르시아섬에 새로운 미군 기지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1968∼1973년 이 섬의 모든 토착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양 서부의 모리셔스섬과 세이셸섬으로 이주시켰다. 이주 지원금은 한 푼도 없었고, 이들은 이주한 섬에서 가장 가난한 빈민이 됐다.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가 끼치고 있는 폐해를 취재해 썼다. 이탈리아에서는 미군이 마피아와 연계됐다고 한다.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솔리니의 단속 표적이었던 마피아는 연합군의 시칠리아섬 공격을 도왔다. 상륙 뒤 연합군은 마피아 조직원을 시장으로 임명하는 등 마피아를 행정의 파트너로 사용했다. 나폴리 마피아는 연합국 군정청장을 등에 업고 세력을 확장했다. ‘카모라’라고 불리는 이 조직범죄 집단의 힘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배경에는 이탈리아에 대규모로 조성된 미군 기지와 휴양 시설 건설 사업이 있었다. 미국이 19세기 이래로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미군 기지를 통해 군사 개입을 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독재자나 반군을 지원했다는 익숙한 이야기도 책은 소개했다. 저자는 6년 동안 세계 60여 곳의 미군 기지를 찾아가 취재했다. 그는 “해외 미군 기지 이야기는 곧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연대기이며, 미군 기지로 인해 미국인은 ‘영구적인 군사 사회’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고 했다. 저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 미군 기지는 비용도 많이 든다’는 대목에서는 미군 병력을 일부 축소하는 한편 첨단 신속 기동군으로 재편하려는 미국 정부의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과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뚜렷이 구별되는지 물음이 생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부마, 조선 숨은 실세… 전시엔 경호실장 역할”

    “나는 이 원수 놈의 물건 때문에 대제학을 하지 못한다.” 조선 선조의 사위로 정숙옹주의 남편인 신익성(1588∼1644)이 어느 날 옥관자가 붙은 망건을 아내 앞에 던졌다. 옥관자는 정3품 이상이 망건에 달 수 있는 물건. 옹주와 혼인해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지만 과거 응시에 제한을 받고 보통의 관직에는 나아갈 수 없었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의 신세 한탄이다. 위(尉)는 부마에게 주는 작위다. 신채용 간송미술관 연구원(국민대 박사 수료·사진)은 부마와 그 가문에 주목한 신간 ‘조선 왕실의 백년손님’(역사비평사)에서 부마 12명의 일대기를 담았다. 부마의 처지는 ‘학무소용(學無所用), 재무소전(才無所展)’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학문이 뛰어나도 쓸 곳이 없고, 재능이 뛰어나도 펼칠 곳이 없다는 뜻이다. 성종대 경국대전이 반포되면서 부마의 정치 참여는 법으로 금지됐고, 부마는 의약을 담당하는 혜민서 제조(提調) 등 정치와 무관한 관직을 으레 맡았다. 그러나 책은 부마와 부마 가문이 왕의 최측근 근위 세력으로 정치에 음양으로 깊숙이 관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을 밝혔다. 책에 따르면 부마라는 용어는 한 무제 때 처음 설치된 관직명에서 유래했다. 원래 임금의 수레를 모는 말을 담당하는 관직이었으나 그 관직을 주로 공주와 혼인한 사람이 맡으면서 왕의 사위를 뜻하는 말이 됐다. 조선의 부마도 왕과 궁궐의 호위를 담당하는 도총부 총관(摠管)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신 연구원은 “전시에는 부마가 오늘날 대통령경호실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동양위 신익성도 이괄의 난 때 인조와 인목대비를 호위했다. 인조는 고모부인 신익성에게 보검과 궁시(弓矢)를 내려주면서 “곁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 신익성은 정묘호란 때도 소현세자를 호종해 전주로 피란을 갔고,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서 인조 곁을 지켰다. 선조의 또 다른 부마 해숭위(海嵩尉) 윤신지(1582∼1657)는 비빈과 왕손들이 피한 강화도로 건너가 청나라 군과 싸웠다. 평시에도 부마의 아버지나 자손 등 부마 가문이 왕의 정치적 후견인으로서 왕실의 근위세력이 됐다. 효종은 서인계 관료 가문에서 부마를 간택한 뒤 그 가문의 인사들에게 의정부의 삼정승을 독점적으로 맡겼다. 영조는 일곱 부마의 가문 인사를 모두 탕평파의 핵심 세력으로 양성했다. 이는 대군(大君), 군(君)을 비롯한 종친이 역모에서 새로운 왕으로 추대될 소지가 상존했기에 종친의 처가도 국왕의 은근한 견제를 받았던 것과 대조된다. 또 왕비 가문이 소수였던 데 비해 공주, 옹주의 수만큼 간택된 부마의 가문은 수도 많았다. 신 연구원은 “부마 자신은 벼슬이 제한돼 전해지는 사료가 많지 않고, 그 탓에 그간 연구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며 “조선 정국 운영의 숨은 실세인 부마 가문의 동향을 보면 정치사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종이비행기]‘길지’도 전쟁을 피해갈 순 없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흥기한 근본이 되는 땅이라며 중국 동북지방에 다른 민족의 출입을 금했다. 그러나 재해 등으로 생긴 유민이 흘러드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조선도 백성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는 걸 엄격히 처벌했지만 마찬가지였다. 1619년 조선과 명 연합군이 후금(청)에 패했을 때부터 패잔병들이 살았을 것이고, 뒤에도 사냥꾼이나 화전민들이 눈치 보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간도 개척과 이주가 본격화된 뒤 청나라와 조선(대한제국)은 간도의 영유권을 놓고 대립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가 최근 연 ‘지역사’ 관련 학술대회에서 ‘대한제국기 압록강 두만강 일대 변경의 장소성’(은정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발표문은 청조와 대한제국의 정규군, 민간 군사력이 서로 충돌하면서 보복의 악순환을 일으켰던 데 주목했다. 이 지역은 일종의 피난지이자 이상향 같은 곳이었으나 경계를 획정하려는 양국의 충돌로 주민들의 삶이 갈수록 악화됐다는 것이다. 실재했던 ‘우복동’(牛腹洞·풍수적으로 소의 배 속처럼 생겨 전쟁 등을 피할 수 있다는 길지)은 오래가지 못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영조 세제시절 비밀편지… “받는 즉시 불사르길”

    “받으신 편지는 즉시 불사르십시오(來札卽投丙丁矣).” 조선 영조(1694∼1776·그림)가 왕세제(王世弟) 시절 보낸 비밀 어찰(御札)이 최근 확인됐다. 수신자는 경종 비 선의왕후의 아버지 어유구(魚有龜·1675∼1740)다. 어유구의 8대 후손인 어환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가문 대대로 보관하던 어찰들의 내용을 확인하고 동아일보에 사진을 공개했다. 발견된 편지는 모두 4편으로 이 중 2편은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영조가 1724년(경종 4년) 쓴 친필일 가능성도 높다. 나머지 2편은 후대 인물인 홍직필이 문집 ‘매산집’에 전체 또는 일부를 베껴놓았다.   “소자(小子·영조)의 이 한 몸을 전적으로 경(어유구)에게 의탁합니다.” 영조가 어찰에 쓴 표현이다. 이는 ‘미래 권력’이지만 지위가 위태로운 세제 영조와 국구(國舅·임금의 장인) 어유구 사이의 ‘핫라인’을 보여준다. 세제 시절 영조의 입지는 매우 불안정했다. 노론은 경종을 압박해 동생 연잉군(영조)을 세제로 책봉하고, 나아가 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했지만 소론으로부터 역공을 당했다. 그 결과 노론 대신 4명을 포함해 약 60명이 목숨을 잃고 170여 명이 유배 등에 처해지는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났다. 영조를 지원하던 노론 세력이 거의 ‘싹쓸이’를 당한 것이다. 심지어 영조 자신도 ‘경종을 암살하려는 역적과 접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영·정조 시기 정치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성환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어찰 내용을 본 뒤 “노론 신하들이 참혹히 살해되자 극도로 근신하던 영조가 왕후와 국구 어유구를 최대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이근호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는 “어유구와 선의왕후는 애초 영조가 아니라 ‘종친의 아들로 나이 어린 자’를 세자로 세우려 했기에 왕세제 및 노론 주류와 불편한 관계였다”며 “하지만 영조와 어유구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 관계를 수습해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영조는 어찰에서 어유구에게 ‘모종의 행동’을 독촉하기도 했다. “국구의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을 내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방책을 말한다면, 일이 나의 몸에 관련돼 있으니 어찌 감히 입으로 발설할 수 있겠습니까? 국구께서 깊이 헤아려 충분히 알고 계실 것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 공께서 만약 나라를 위해 종묘사직을 부지하려면 잘 아뢰어 처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조선 후기 사상·정치사 연구자인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도 “어유구가 무언가 세제와 관련된 어려움을 알렸고, 왕세제는 이에 대해 어떤 처리나 결단을 촉구하는 입장이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이 어찰을 통해 영·정조 시기 정치사의 미스터리 하나가 풀렸다는 평가다. 신임옥사로 사형당한 노론 4대신의 후예들은 노론의 핵심 중 하나인 어유구가 경종 대에 과격파 소론과 결탁한 듯한 행적이 있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삼았다. 그때마다 영조가 어유구를 옹호한 이유를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경구 교수는 “왕세제의 과감한 편지는 이례적인 것”이라며 “성년이 되고 나서 갑자기 왕위 계승자가 되었던 영조의 정치력이 잘 드러난다”라고 평가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천재’ 아인슈타인도 실수를 했다

    천재도 실수를 한다. 사상 최고의 천재들을 꼽자면 빠질 수 없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도 그랬다. 책은 24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E=mc²’의 저자가 아인슈타인의 잘못된 결정과 오만에 초점을 맞춰 쓴 전기다. 저자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실수는 이른바 ‘우주상수’(우주를 불변의 것으로 서술하기 위해 방정식에 추가한 상수)를 도입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찾아낸 일반상대성 이론은 질량과 에너지가 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것. ‘사물(T)이 변형된 기하학적 구조(G)를 만들어낸다’는 걸 압축하면 방정식 ‘G=T’로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당대 천문학적 지식과 이 방정식이 배치된다는 데 있었다. 허블이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욱 빨리 멀어진다’는 걸 알아내기 전까지 천문학자들은 별들이 대체로 고정된 위치를 중심으로 회전할 뿐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헌데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별들은 공간을 휘게 만들어 점점 하나로 뭉쳐져야 했다. 자신의 이론이 당대의 지배적 지식, 관찰적 증거와 배치되는 걸 알고 아인슈타인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는 1917년 불만에 가득 차 자신의 아름답고 단순한 방정식을 ‘G-Λ(람다)=T’로 수정했다. ‘Λ’가 우주상수다. 별들이 뭉치게 만드는 인력의 일부를 제거하도록 방정식을 고친 것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다른 학자들의 지적을 받고 자신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했다. 그의 두 번째 실수이자 더욱 치명적인 잘못은 초미시 영역에서 발전한 물리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질서정연하고 논리적인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확신했고, 양자역학의 불확정성과 무작위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1933년 이후 그는 세계 물리학계에서 외면당했으며 스스로도 양자역학의 발전을 외면했다. 책은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자가 자신의 편협한 사고에 갇혀 버린 채 말년을 낭비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의 삶과 내면, 사고와 과학자들의 논쟁 과정이 흥미롭게 버무려져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실학, 당색과 무관하게 경세론 발전시켜”

    조선 실학의 비조(鼻祖)로 꼽히는 반계(磻溪) 유형원(1622∼1673)의 사상을 살피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실학학회(회장 하우봉 전북대 사학과 교수)와 실학박물관 등은 13,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국내 학자와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의 실학 연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반계 유형원과 동아시아 초기 실학’을 연다. 이번 학술대회는 근래 발견된 유형원의 저작 ‘반계일고’와 ‘반계잡고’를 역주해 올해 ‘반계유고’로 간행하는 것을 기념해 열리는 것이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발표문 ‘17세기 문명적 위기의식과 실학’에서 “유형원은 병자호란에서 국왕이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은 일에 대해 ‘천하국가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며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사고하고 변법(變法) 개혁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재야 학자였던 유형원의 대표적 경세서인 ‘반계수록’은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 윤증(1629∼1714)의 제자 덕촌 양득중(1665∼1742)이 영조에게 추천하면서 당대 주목을 받았다.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은 발표문 ‘반계 유형원과 덕촌 양득중의 실사구시’에서 “조선 실학은 성리학, 양명학 등 특정 학문과 배타적이지 않았고, 당색과 무관하게 경세론을 발전시켰다”며 “덕촌이 ‘반계수록’을 추천한 것도 실사구시의 정신이 발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조선 실학과 동아시아 각국 실학의 연관도 조명된다. 차이전펑 대만대 교수는 ‘동아시아 실학 속의 형이상학’에서 명말청초 중국의 자연철학자 방이지와 19세기 조선의 과학사상가 최한기의 사상을 살폈다. 그는 “17세기 초 동아시아 실학의 흥기는 유학 혁신의 시작”이라며 “서양 근대성의 측면에서는 그들의 유학 부흥운동이 근대화를 완성하지 못했으나 이들의 새로운 형이상학적 사유는 동서 융합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제31회 인촌상 시상식… 각계인사 300여명 참석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1회 인촌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렸다. 이 상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뜻을 잇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용훈)와 동아일보사는 매년 인촌 선생의 탄생일(10월 11일)에 맞춰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이날 시상식에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교육) △강효 줄리아드음악원 교수(언론·문화)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인문·사회) △김종승 고려대 교수(과학·기술)는 각각 상패와 기념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수상자 공적은 9월 5일자 A8면 참조 이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올해 복잡하게 얽혀가는 북핵을 둘러싼 혼란이 인촌 선생의 리더십을 더욱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축사에서 “수상자들은 공선사후(公先私後), 신의일관(信義一貫)으로 헌신한 선생의 유지를 이어 큰 성과를 내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인촌상운영위원회(위원장 한승주)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7월부터 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선정한 뒤 수상자를 확정했다. 교육 부문 수상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97)는 “6·25전쟁 시절 병상에서 일어나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인촌 선생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마음으로 가까이 모셨던 선생이 직접 상을 주시는 듯해 큰 영광”이라며 “제자와 함께 상을 받는 스승의 마음을 모르실 것”이라고 했다.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인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80)는 김 교수가 연세대 문과대에서 가르친 제자다. 몸이 불편한 이 교수를 대신해 부인 김정매 동국대 명예교수가 수상자로 참석했다. 부인이 읽은 수상소감에서 이 교수는 “말과 글에 대한 관심을 놓아본 적이 없다”며 “우리말 사전 편찬을 함께한 선배, 동료, 후배 학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인 강효 교수(73)는 “남은 삶의 기간 동안 무엇이든 더 잘해보고 싶은 의욕과 용기가 생겼다”며 “상금은 한국 음악계와 인재 양성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암 표적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공로로 과학·기술 부문에서 수상한 김종승 고려대 교수(54)는 “실험실에서 밤낮없이 함께 연구한 연구원들 덕에 보잘것없는 제가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과학 발전에 초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으며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와 바리톤 서정학 씨가 축하 공연을 펼쳤다.조종엽 jjj@donga.com·유원모·김민 기자 ● 주요 참석자 명단▽정·관·법조계=김수한 전 국회의장, 고건 노재봉 이홍구 한덕수 전 국무총리(이하 가나다순) 김종빈 전 검찰총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유성엽 국회의원,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 이진강 전 대한변협 회장, 장성원 전 국회의원, 정성진 대법원 양형위원장, 조영달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학계·교육계=강석중 한국세라믹기술원장, 국양 서울대 교수, 권순달 수원대 교수,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김광수 한신대 명예교수, 김기문 포스텍 교수, 김문석 과천여고 교사, 김병완 고대부고 교감, 김병휘 한양대 명예교수,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성우 연세대 명예교수, 김성진 한림대 명예교수,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영진 인하대 명예교수, 김용복 광운대 명예교수, 김용찬 고려대 연구기획본부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원희 고려사이버대 총무처장, 김재호 고려중앙학원 감사,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진성 고려사이버대 총장,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김흔 전 중앙고 행정실장, 나승일 서울대 교수, 나홍석 고려사이버대 교수, 남기심 연세대 명예교수,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문세준 고려중앙학원 사무국장, 박길성 고려대 교육부총장, 박길준 연세대 명예교수, 박명식 고려중앙학원 상임이사, 박순영 연세대 명예교수, 박연정 고려사이버대 교무처장, 박인서 연세대 명예교수, 박종훈 고려대 의무기획처장, 박찬욱 서울대 교육부총장, 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 서성규 고려대 기획처장,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송창범 고대부중 교감,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신현석 고려대 교수, 안동규 한림대 부총장,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 안정오 고려대 세종부총장,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 염재호 고려대 총장, 염철현 고려사이버대 학생처장, 유병현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윤성택 고려대 이과대학장, 윤영철 연세대 교수, 이관영 고려대 연구부총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기영 인천대 교수, 이동준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 이민영 고려사이버대 입학홍보처장, 이용균 중앙고 교감, 이원희 대원교육장학재단 이사장, 이주현 고대부중 교장, 이초식 고려대 명예교수, 이충환 인촌장학생동문,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이홍우 상명대 석좌교수, 임상호 고려대 대학원장, 장승문 중앙중 교장,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 정대현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 정재서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진곤 한양대 명예교수, 정진택 고려대 공과대학장, 조성규 연세대 명예교수, 조완규 서울대 명예교수, 진덕규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광식 고려대 교수, 최덕 명지대 교수, 최용석 중앙중 교감,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한금선 고려대 교수,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 허도영 고대부고 교장,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경제계=구자열 LS그룹 회장, 권영민 전 태영건설 상무, 권이상 전 경방 감사, 김명하 김앤에이엘 회장, 김선휘 삼양염업사 고문, 김양수 전 현대차 부사장, 김영 코나딥코리아 대표, 김재억 삼양홀딩스 고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김정환 호텔롯데 대표이사, 김창세 제일특허법인 대표, 김태희 삼표에너지 회장,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서정호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 안병모 유창건축사사무소 사장, 오세정 한국금융투자협회 본부장, 이기황 다음소프트 이사,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 이중홍 경방 고문, 정세장 면사랑 대표, 정종섭 다림바이오텍 대표, 홍성훈 삼양홀딩스 감사 ▽언론·출판·문화·체육계=고승철 나남출판 사장, 김광희 전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김기경 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 명예회장,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 김복수 전 동아일보 관리국 부국장, 김상준 울산김씨대종회 상근부회장, 김유리 인촌장학생동문,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재봉 지역신문발전위원장, 김정옥 전 예술원 회장, 김정일 전 동아애드넷 대표,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종태 평화의 마을 대표,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연합회장, 김태선 동우회 명예회장,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류재림 한국영상자료원장, 민경갑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박기정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박오학 전 동아일보 전무, 박진오 동아일보 감사, 박충서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배인준 EBS 감사, 성낙오 전 영남일보 사장, 양철화 전 동아일보 관리국장, 어경택 화정평화재단 감사, 오명 전 동아일보 회장, 이기웅 열화당 대표,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연택 동아마라톤 꿈나무재단 이사장, 이종석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장, 이종세 한국체육언론인회장,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임성준 전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임연철 서초문화예술회관 관장, 전만길 전 서울신문 사장, 전용호 한국어문언론인협회 부회장, 정준기 전 동아일보 광고국장, 조강환 동우회장, 조천용 동우회 이사, 최규철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최동욱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장, 최맹호 전 동아일보 부사장, 최명우 안전신문 주필, 한종우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 허승호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현재천 인촌기념회 이사, 홍공선 동우회 이사, 홍성훈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홍인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 2017-10-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에밀레 코드’속 비밀… “음양오행 맞춰 완공”

    미술 작품에 숨겨진 암호를 추적하는 소설 ‘다빈치 코드’처럼 국보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겉에 쓰인 명문(銘文)에 숨겨진 비밀을 밝힌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한국 고대 사상사 연구자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12일 신라문화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인 ‘신라성덕대왕신종의 명문 신탐(新探)’에서 명문을 새로 판독, 분석했다. ○ 코드1―종의 사주팔자(四柱八字) “유사(有司·실무부서)에서 일을 준비하고 기술자들은 밑그림을 그렸다(畵模). 때는 신해년(771년) 12월이었다.” 명문의 기존 번역 중 일부다. ‘종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표현도 어색하거니와 바로 뒤 “이때 해와 달이 서로 빛을 빌고 음과 양이 기운을 조절하였다”는 구절로 특별히 강조할 만한 일 같지도 않다. 실마리는 ‘그릴 화(畵)’자에 있다. 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기존 번역은 오역이다. 당시 ‘畵’자는 오늘날 ‘쪼갤 획(劃)’과 같은 뜻이 있었다. 바른 해석은 “장인들이 거푸집(模)을 떼어내니(畵)”가 된다. 종이 완공될 때 “음과 양이 기운을 조절하였다(陰陽調氣)”는 것도 의례적 수식이 아니라 숨겨진 비밀이 있다. 종의 제작일은 음력으로 771년 12월 14일. 논문에 따르면 연(신해·辛亥)과 월(신축·辛丑)의 간지(干支)가 모두 음에 속하고, 제작일(병인·丙寅)의 간지는 반대로 양에 속한다. 백제 칠지도 등의 사례에 비춰 보면 제작 시간의 간지 역시 양에 속하는 갑오(甲午)로 추정된다. 최 교수는 “간지 여덟 글자의 음과 양이 4 대 4로 양분됐고, 오행도 고르게 배열됐다”며 “완공 날짜를 음양오행에 맞춰 미리 정해 놓고 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코드2―풍류 사상 ‘성스러운 덕이 크다’고 번역돼 온 명문의 ‘원원성덕(元元聖德)’도 최 교수는 새로 해석했다. 원래 ‘현현(玄玄)성덕’이었으나, 당나라 현종(玄宗)의 시호 글자를 피해 ‘玄’을 ‘元’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현현은 노자에 나오는 ‘현지우현(玄之又玄)’의 줄임말이다. 또 뒤 구절의 ‘묘(妙)하고 묘(妙)하도다 맑은 교화여!’와 짝을 이루며 성덕왕의 덕을 ‘현묘(玄妙)’로 묘사한 것이 된다. 최 교수는 “최치원은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라고 해 신라에 현풍(玄風)이 있었음을 증언했다”며 “이 구절은 성덕왕(재위 702∼737년)의 통치 원리가 우리 고유의 풍류도(風流道)와 연결됐다는 걸 시사한다”고 밝혔다.○ 코드3―숨은 이념 갈등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는 이 종은 아들 경덕왕(재위 742~765년)이 시도했으나 종을 주조하지는 못했다. 결국 손자인 혜공왕(재위 765∼780년)이 완성했다. 명문은 경덕왕의 유교적 정치이념 등 한화(漢化) 정책에 대해 “속(俗)을 다스림에 고(古)를 따랐으니 풍조를 바꿈에 무슨 어긋남이 있으랴(治俗仍古, 移風易俗)”라고 칭송했다. 최 교수는 “명문은 또 한화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린 혜공왕 대를 ‘보배로운 상서(祥瑞)가 자주 나타나고, 신령한 영험(靈驗)이 늘 생겼네’라며 우회적으로 옹호했다”며 “이는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적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일제가 왜곡한 한글 맞춤법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는 최초의 성문화된 한글 맞춤법으로 평가되는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공포한다. 이 맞춤법이 사실은 조선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한글을 활용하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 일본인 경찰이나 교사의 한국어 습득을 염두에 두고 정한 것이어서 한글 표기법을 퇴보시켰다는 연구가 나왔다. 동아일보는 김주필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7)가 ‘국어사연구’에 투고한 논문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1912)의 특성과 문제점”을 게재 전 입수했다. 앞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이 맞춤법을 제정하기 위해 1911년 7∼11월 5차례 열린 ‘조선어 조사회의’ 회의록을 찾아내 2004년 공개했다. 권 교수는 당시 “한글을 일본어 50음도 틀에 맞춰 일본어의 발음기호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주필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회의록을 한글 표기 역사 관점에서 정밀 분석했다. 1911년 7월 28일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은 조선어 조사회의 첫 모임에서 “언문(한글) 가나 표기법 회의를 개최함에…”라며 인사말을 했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는 애초부터 일본어의 가나를 한글로 표기하는 법이 이 맞춤법의 핵심 목적이었음을 뒷받침한다. 또 도쿄외국어대 교수 가나자와 쇼자부로가 맞춤법 검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12년 펴낸 ‘일어유해’ 서문에서 “한마디라도 많은 국어(일본어)를 이해하는 조선인을 한 사람이라도 많이 양성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라고 강조한 것도 그 방증이다. 일제가 제정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은 ‘ㅱ치’(꽃이) ‘압흘’(앞을) ‘어덧다’(얻었다)로 표기하도록 규정했다. 주시경(1876∼1914) 어윤적(1868∼1935) 등 우리말 학자들이 이보다 앞서 1909년 형태소의 기본형을 밝히고 고정해 적는 ‘형태음소적 표기’를 원칙으로 ‘국문연구의정안’을 마련했지만 그보다 훨씬 퇴보한 것이다. 의미 단위인 형태소를 살리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 15세기 표기에 가깝다. 이는 일본인 경찰, 교사 등의 우리말 습득 편의가 맞춤법의 목적 중 하나였던 탓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우리말의 음운규칙을 모르는 일본인에게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적 표기’가 쉽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어윤적이 조사회의에 참여해 반대를 무릅쓰고 ‘형태음소적 표기’를 관철시켰지만 조선총독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며 “그럼에도 총독부는 철자법을 공포하면서 ‘조사촉탁원에게 명하여 조사 결정하게 했다’고 거짓으로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일제가 왜곡한 맞춤법은 한글학자들이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정정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10-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인공지능 시대, 창조하는 인간이 되라”

    인간이 하던 고차원적인 일을 사물이 해내고, 인간과 사물의 구별마저 점점 어려워지는 오늘날 ‘인간과 세계’를 연구하는 건 마치 과학자나 공학자들의 전유물처럼 돼 간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지만 적어도 평범한 이들의 눈높이에서는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질 들뢰즈(프랑스 현대 철학자)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모든 철학은 당대의 자연과학과 나란히 가야 한다”며 이런 세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컴퓨터와 마음’ 과목을 3년여 강의한 게 집필의 바탕이 됐다. 결론부터 보자. 가까운 미래,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인간을 지배할까? “아니다.” 인간은 목표를 스스로 정하지만 인공지능의 목표는 인간이 정해준다. ‘기계학습’이라는 말은 마치 기계가 인간처럼 공부한다는 오해를 만들지만 이 역시 인간이 정한 수행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새로운 작동 규칙을 스스로 생성하는 일 역시 저자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생명은 ‘버그’(결함)를 바탕으로 진화하지만 컴퓨터는 버그가 있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고장을 수리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한 단계 높은 층위의 컴퓨터 프로그램, 곧 ‘자의식’이 필요한데 이는 수학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계산과 관련된 인간의 일, 알고리즘으로 짤 수 있는 일은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에게 남은 건 문제를 제기하고 목표를 세우는 일, 즉 창조적인 일이다. 창조성을 어떻게 배우나? 예술가처럼 살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예술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창작이 학습의 핵심 활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책은 초인공지능보다 먼저 인간과 컴퓨터가 얽힌 ‘네트워크 마음’ 또는 ‘네트워크 지능’이 출현할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얽혀 들어갈 ‘인간이라는 버그’다. 네트워크 지능이 인간의 나쁜 특성도 지니게 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정부나 기업이 ‘빅브러더’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만약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완성된 제품을 분석해 작동 방식을 역으로 알아내는 공학) 방식으로 인간의 커넥톰(뉴런의 연결망)이 프로그램과 로봇으로 재현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인공지능을 처음 본격적으로 논의한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의 1950년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에는 참고문헌이 불과 9개밖에 없다고 한다. 참고문헌 중 하나인 새뮤얼 버틀러(1835∼1902)의 책 ‘Erewhon’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기계에 작용하고 기계를 만드는 것이 인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작용하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기계들이다.” 생물과 기계의 차이는 모호해진다. 튜링의 논문,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철학,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비롯해 책이 발췌해 안내하는 여러 고전과 관련 자료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대하고 다양한 쟁점을 압축해 다루다 보니 키다리가 겅중겅중 뛰어가는 듯 서술됐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독자가 생각할 거리를 잽처럼 날리는데, 저자 스스로 탐구한 발걸음에 힘을 실은 잽이 한 방 한 방 묵직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9-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인간다운 삶을 위한 지성들의 윤리 강연

    “고대 그리스에서는 공직 임명이 쉬웠던 만큼 공직 수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제도는 가히 징벌적이었다. …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출된 공직자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가 터무니없이 허술하다. … 공직자들이 서로 담합하거나,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일에 몰두할 때가 많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4월 강연한 내용 중 일부다. 최 교수는 강연에서 다원적 구조와 시민사회로부터 조직된 정당의 변화, 새로운 사회적 힘의 진입을 촉구한다. 책은 ‘문화의 안과 밖’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시리즈 강연 중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이상익 부산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강연을 비롯해 정치와 윤리 관련 강연 5개와 토론을 묶었다. 박성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었다. 그는 직접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작동한 기원전 4, 5세기 ‘데모스’(민중)가 실질적인 지배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도로 ‘도편추방’ 등을 꼽는다. 도편추방은 흔히 참주(독재자)가 될 위험이 있는 인물을 추방하는 제도로 알려져 있지만 참주 출현 위험과 별개로 철저히 엘리트를 견제하는 제도였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근대 세계의 희망과 불안’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통해 행복한 삶과 가까운 미래 사회의 전망을 묻는다. 토론자로 나선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진화의 관점에서 행복은 생존과 번식의 수단에 불과하며, 인간 본성에 관한 이해가 바뀐 이 시대에는 유토피아 논의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 논의가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채 끝나버리는 듯한 감도 없지 않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9-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