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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이 올해 개발에 착수한 고전문헌 자동(인공지능) 번역 시스템의 번역 결과물들이 최근 전문 번역자 평가에서 평균 3점(5점 만점)을 맞았다. 개발 초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괜찮은 성과다. 어떤 번역을 틀렸을까? 일례로 승정원일기 영조 5년(1729년) 11월 26일 20번째 기사 “今月二十五日初覆入侍時, 捕廳罪人虎狼, 還發配所事…”는 이렇게 번역했다. “이달 25일 초복(初覆)했을 때, 포도청의 죄인 호린(虎麟)을 도로 배소(配所)로 보내도록….” ‘호랑(虎狼)’을 ‘호랑이와 이리’ 등이 아니라 사람 이름으로 맞게 옮겼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원문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기린 린(麟)’자를 추가해 가며 ‘호린’으로 틀리게 옮겼다. 이 인공지능은 사람이 잘 번역해 놓은 짧은 문장 35만 개를 원문과 함께 학습했다. 학습의 알고리즘은 사람이 짜지만 학습 결과 만들어진 ‘단어들의 좌표’는 사실 개발한 이들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인공지능에는 호랑이라는 사람이 기린과 비슷하게 느껴졌던 걸까? 인공지능을 의인화하는 건 여러 오해를 불러온다고 하지만 어딘가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와 닮은 듯해 웃음이 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31년 7월 만주를 침략하려는 일제의 음모로 중국 지린성 창춘현 완바오산에서 한중 농민들이 충돌하는 ‘만보산(萬寶山) 사건’이 일어났다. 진상이 와전되면서 조선에서 평양을 중심으로 중국인 보복 폭행과 학살이 벌어지자 동아일보는 ‘허무한 선전에 속지 말라’는 사설을 내고 “우리가 조선에 와 있는 중국사람 8만 명에게 하는 일은 곧 중국에 있는 100만 명 우리 동포에게 돌아옴을 명심하십시오”라며 폭행 중지를 호소했다. 중국 정부에도 조선인들은 일제의 간계에 휘말린 것뿐임을 알려 탄압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나라가 없으니 대사관도 외교관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당시 신언준 동아일보 상하이 특파원은 중국 국민정부의 왕정옌 외교부장을 만나 사태의 진상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한편으로 “만주의 한인들을 특별히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의 해외 특파원은 나라 없는 조선인들의 대사이자 영사였다. 같은 해 9월 만주사변이 터지자 동아일보는 서범석 특파원을 만주에 머물게 해 재만 동포들의 참상을 신속히 보도하면서 피란 동포를 위한 위문금품을 모집했다. 전 조선에서 6만여 명이 구호물품 1만7809점, 구호금 3만2714원20전을 보내왔다. 서 특파원과 양원모 영업국장은 만주 각처의 수용소를 찾아가 이를 전달했다. 회고에 따르면 당시 편집국장 춘원 이광수는 서 특파원을 보낼 때부터 “전황(戰況) 보도는 필요 없다”고 했다. 동포를 구호할 방책을 강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간토 대지진이 일어나고 조선인 대학살이 번져가던 1923년 9월 일본 도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일 중국 영사가 경찰서에 나타나 말했다. “여러분 중 중국인은 나오시오.” 수용된 한 조선인은 자신을 ‘주인 없는 개’와 같다고 생각했다는 기록도 있다. 얼마 뒤 당시 편집국장이기도 했던 이상협 동아일보 특파원이 경찰서에 나타나 조선인들을 석방시켜줬다. “무슨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으며, 그때의 우리들이 믿고 의지할 곳은 오직 신문사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꼈다.” 책 ‘신문야화―30년대의 기자수첩’(김을한·1971년)에 나오는 얘기다. 이 특파원은 빵과 통조림, 음료수 등 식량 2만2000점을 동포에 전달했다. “속히 물러가라”는 협박 속에서도 교포 구제에 온 힘을 기울이고, 생존자 명단을 작성하는 등 현장의 참상과 문제점을 보도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죽음보다 슬프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는 한편 언론 탄압도 극에 달했던 1939년 10월. 동아일보는 백제 멸망 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실존 영웅의 이야기 ‘흑치상지’를 소설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소설은 첫 장 제목부터 나라 잃은 백성의 참담함을 “죽음보다 슬프다”고 강조했다. “백제의 백성들이 뭉게뭉게 몰려나왔다. … 다 꼬부라진 늙은 한 할머니도 낑낑하며 … 원한과 분노에 차고 맺힌 돌팔매! 당병의 꼭뒤에 비 오듯 쏟아졌다.”(‘흑치상지’에서) 일제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얼마 못 가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연재를 강제로 중단시키지만 소설은 조선인들의 모습을 백제 유민의 현실과 투쟁에 투영하며 저항의식을 고취했다. ‘흑치상지’의 저자는 ‘빈처’ ‘운수 좋은 날’ 등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자로 익숙한 빙허 현진건(1900∼1943·사진)이다. 현진건은 시대일보 등을 거쳐 1927년 동아일보에 입사했고, 이듬해부터는 사회부장으로 일했다. 당대 대표적 문인답게, 사회면을 편집하면서 문장력이 뛰어나고 제목을 잘 붙이기로 유명했다. “내가 편집한 지면에서는 교향악의 황홀한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라고 했다는 회고도 전해진다. 그는 ‘고도 순례·경주’(1929년) ‘단군 성적(聖跡) 순례’(1932년) 등 국토 순례기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유려한 필치로 민족의식을 드높이기도 했다. 1936년 8월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 사회부장으로 구속돼 고초를 겪었다. 이후 일제의 강압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지만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이 해제된 뒤 그를 학예부장으로 복귀시켰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석가탑 전설을 소재로 소설 ‘무영탑’(1938년 7월∼1939년 2월)을 본보에 연재하며 민족혼을 고취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동아일보에는 100년 가까이 게재되는 코너가 있다. 1920년 4월 10일자에 처음 등장한 ‘휴지통’과 같은 해 7월 25일자(지령 100호)부터 시작된 ‘횡설수설’이다. 국내 언론사상 최장수 고정란, 칼럼으로 만 97년을 넘어 오늘도 연재되고 있다. 제목에 대해 ‘횡설수설’은 첫 회에서 “천언만어(千言萬語)가 횡설수설에 불과할 것”이라고 운을 뗐다. 휴지통은 마치 ‘휴지통에 버릴 만한 원고’ 같다. 그러나 실제로 두 코너는 당대의 권력에 정면으로 맞선 창(槍)이자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창(窓) 역할을 했다. 휴지통은 첫 회부터 1년 전 3·1만세운동 얘기를 꺼내며 조선총독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무총감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 씨는… 조선말을 배우려면 제일 먼저 ‘만세’가 어떤 말인지 투철히 궁리해야.” 횡설수설도 “인기(印機·인쇄기)에서 떨어지는 신문지를 산더미같이 실어서 경찰서로 잡아간다”며 ‘언론자유’가 유린되는 상황에 대해 총독부를 비판했다. 초기에는 이상협 편집국장이 두 고정란을 직접 썼다. 총독부는 촌철살인과 같은 단평(短評)에 아픈 곳을 계속 찔리자 무척 당황했다. 일본어 혼용을 비판한 1920년 4월 27일자 휴지통 때문에 발매 금지와 삭제 뒤 재발매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3·1운동 7주년 축전 게재로 무기정간을 겪고 난 뒤 “언론기관은 정지가 아니면 금지”라고 비판한 횡설수설 집필 기자 최원순이 징역 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광복과 6·25전쟁 뒤에도 두 코너는 권력을 비판한 정론, 세태를 응축한 기사로 오래도록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독자 조사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내용 3, 4위에 꼽히기도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50, 60년대 가수와 영화배우로 활약하며 전쟁으로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로했던 나애심(본명 전봉선·사진) 씨가 20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전쟁 중 오빠 전오승이 작곡한 ‘정든 화랑님’ 등의 노래를 부르며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대구로 피란해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했다. 1953년 데뷔 첫 앨범에서 전오승이 작곡한 ‘밤의 탱고’ 등을 불렀고,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이 ‘나애심(羅愛心)’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이후 ‘언제까지나’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맘보는 난 싫어’ ‘해 떨어지기 전에’ ‘아카시아 꽃잎 질 때’ 등 수많은 히트곡을 포함해 300여 곡을 불렀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로 영화배우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구원의 애정’ ‘물레방아’ ‘백치 아다다’ ‘쌀’ ‘감자’ 등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80년대 들어서 연예활동을 중단했다. 고인은 딸 김혜림이 1989년 ‘DDD’라는 노래로 데뷔해 인기를 얻는 등 연예인 집안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9시. 02-3410-3151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저는 미국의 제일인자 슈로더 선수와 병주(병走)하야 육초 팔의 차로 그만 패하엿읍니다. 저는 힘껏, 맘껏, 가슴이 아프도록 뛰엇읍니다. 뻬스트(베스트)를 다하엿읍니다. 조금도 후회가 없읍니다.” ‘오직 뻬스트를 다할 뿐’이라는 제목과 함께 동아일보에 실린 이 기고는 1936년 2월 제4회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겨울올림픽 빙속(氷速)에 출전한 김정연 선수가 전날의 5000m 경기 결과를 보내온 것이다. 동아일보는 17회에 걸쳐 김 선수의 ‘빙상 정도기(征途記)’를 연재했다. 빙상은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과 더불어 조선인의 자존심이 걸린 스포츠였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 최초의 빙상대회는 동아일보 평양지국이 1923년 1월 연 ‘대동강 빙상 운동대회’다. “관람자가 강 좌우와 성벽의 양편과 운동장에 무려 수만 명이나 되어 인산인해의 대성황을 이뤘다.” 본보는 1940년 마지막 대회까지 평양청년회, 관서체육회와 이 대회를 공동주최하거나 후원했다. 실내 경기장이 없었던 시절이라 얼어붙은 강 위에서 경기가 열렸다. 본보 주도로 결성된 조선체육회는 1925년 1월 제1회 전조선빙상경기대회를 한강에서 열었다. 대회 명칭을 ‘전조선빙상경기선수권대회’로 바꾸어 해마다 선수가 100명 넘게 참가했고, 1938년 마지막 대회까지 김정연 선수를 비롯한 당대의 빙상 스타를 여럿 배출했다. 최초의 여자빙상경기를 후원한 것도 동아일보였다. 1934년 열린 제1회 전조선여자빙상경기대회에서는 관객이 링크 주위를 스무 겹으로 에워싸고도 넘쳤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여성에게 완전히 문호를 개방해…빙반 상에서 진취적 기백을 함양할 것”이라고 했다. ‘빙속 여제’ 탄생의 뿌리인 셈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017년 문화계는 참으로 ‘오락가락’했다. 행복이 지나가면 슬픔이 왔고, 아픔이 아물면 기쁨이 돋아났다. 새로운 한 해 ‘오는 즐거움(樂)’을 맞아들이기 위해 2017년 한 해 문화계의 사연과 화제를 모아봤다.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집권 23일째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 6월 초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불쑥 꺼낸 ‘뜬금’ 없는 얘기는 올 한 해 문화재·학술계를 뜨겁게 달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지방 공약에 포함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과제에 꼭 포함시켜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문화재청은 내년도 가야유적 발굴에 32억 원, 보수정비에 145억 원을 투입하는 내용의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와 정비사업’을 최근 발표했다. 학계는 “신라사 연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가야사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환영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권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발굴현장을 방문한 이후 경주 월성 발굴조사가 속도전으로 흐른 전례가 있어서다. 가야유적이 있는 영·호남 지방자치단체들이 최근 정부에 요청한 가야사 관련 예산은 무려 3조 원에 달한다. 가야사 복원의 본래 취지와 무관하게 지자체 간 과열 경쟁과 예산 낭비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7년을 끈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 논란이 올해 일단락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문화재위원회는 올 4월 증도가자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을 전격 부결시켰다. 앞서 증도가자 재검증을 실시한 조사단의 ‘지정 보류’ 의견에서 한발 더 나간 예상 밖 결정이었다. 문화재위는 부결 사유에 대해 “증도가자의 출처와 구입 경로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증도가자 논란은 국가문화재 지정에서 출처 규명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올해 학술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과 인문학 연구의 결합이 주목받았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세계 최초로 AI를 이용해 한문 고전을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첫 대상은 ‘승정원일기’. 번역기간을 45년에서 18년으로 27년가량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일본 교토대 서고에서 추사 김정희의 친필 시첩을 비롯해 조선후기 문화의 정수가 담긴 희귀 고문헌과 서화 등 수천 점을 발견했다. 경주 석굴암의 원모습을 보여주는 논문도 나왔다.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19세기 말 석굴암 중수 공사를 기록한 상량문을 정밀 분석해 공사 이전에는 지금과 달리 목조전실(木造前室)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대사와 관련해서는 문 대통령의 “2019년 건국 100주년을 맞는다”는 8·15 경축사가 해묵은 건국 시점 논쟁을 다시금 촉발했다.김상운 sukim@donga.com·조종엽 기자}

‘동아일보(東亞日報)’라는 제호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민족이 발전하려면 시야를 넓게 해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 나아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식민지 현실임에도 제호부터 ‘글로벌’한 포부를 담은 것이다. 제호를 제안한 이는 1919년 3·1운동 뒤 한성 임시정부를 조직했던 석농(石농) 유근(1861∼1921)이다. 조선 말기 민중 계몽에 앞장섰던 황성신문의 창간 멤버이자 사장을 지내기도 했던 유근은 동아일보 창간 시 편집감독으로 참여했다. 독립 정신을 고취한 민간 신문의 정신을 동아일보가 이어 받은 것이다. 다른 한편 동아는 곧 조선을 뜻하기도 했다. “동방 해뜨는 곳의 주인은 조선됨(임)이 바꾸지 못할 것이요.” 창간호 5면에 실린 국어학자이자 사학자인 애류(崖溜) 권덕규(1890∼1950)의 기고 ‘동아해(東亞解)’에 담긴 표현이다. 이 글은 옛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를 북아시아에서 동아시아까지로 폭넓게 바라보면서 지난날 부강하고 찬란한 문명을 이뤘음을 강조했다. “‘동아’란 넓게는 조선,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모두 가리키는 것이지만 좁게는 만몽(滿蒙·만주와 몽골) 대륙과 조선반도의 옛 조선 땅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하는 목적의 역사관 아래 동아시아가 곧 조선의 옛 땅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글은 또 조선 민족의 사명은 ‘홍익인간’이며 세계를 구제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에 비춰도 장대한 포부를 담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은 6일 최근 일본 정부가 낸 ‘침략 전쟁의 역사 관련 조치’에 대한 재단 입장 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는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설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밝혔다. 최근 교도통신 보도로 내년 3월 도쿄의 한 공원에 이 같은 전시관을 연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동북아재단은 “독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이 같은 계획은 한반도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은 또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일본 근대산업시설을 등재하면서 산업시설의 한국인 강제 동원과 강제 노동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이를 이행하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 뒤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강제동원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으며, 공통 안내판은 물론이고 각 시설 안내판에도 거의 기술하지 않고 있다. 재단 측은 “이 같은 조치들은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해 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효꽈(효과·效果)’ ‘관껀(관건·關鍵)’ ‘교꽈(교과·敎科)’의 된소리 발음이 표준 발음으로 새롭게 인정됐다.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 수정 내용 40건을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안간힘은 ‘안깐힘’ 말고도 ‘안간힘’이라고 읽어도 되고, 순이익은 ‘순니익’ 또는 ‘수니익’으로 읽어도 된다. ‘반값’은 ‘반갑’뿐 아니라 ‘반깝’으로 읽어도 되며, 성적을 나타내는 숫자 ‘점수(點數)’의 발음 역시 ‘점쑤’와 더불어 ‘점수’가 새로 인정됐다. 새로 사전에 오른 단어도 있다. ‘기다랗게 되다’라는 뜻의 ‘기다래지다’가 표준어로 이번에 인정됐고 접두사 ‘기(旣)’도 ‘그것이 이미 된’ ‘그것을 이미 한’이라는 뜻과 함께 표제어에 더해졌다. ‘기구축’ ‘기출석’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노랫말을 고치거나 다시 짓다’라는 뜻의 ‘개사(改詞)’도 사전에 등재됐다. 듣는 이를 부르는 말 ‘이보십시오’가 새로 사전에 오르면서 ‘이보세요’ ‘이보쇼’ ‘이보시게’ ‘이봐요’ 등도 함께 등재됐다. 미망인의 뜻풀이는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에서 ‘남편을 여읜 여자’로 바뀌었다.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는 각주가 달렸다. 널리 쓰이지만 아직 뜻풀이가 없던 말도 뜻이 추가됐다. ‘줄’ ‘줄을 대다’는 말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될 만한 사람과 관계를 맺다”라는 풀이가 더해졌다. “관리자에게 줄을 대어 승진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예시 문장도 실렸다. ‘올라오다’라는 단어에는 “컴퓨터 통신망이나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 글이 게시되다”라는 풀이가 추가됐고, ‘잎’에는 ‘꽃잎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추가됐다. ‘잘생기다’ ‘못생기다’ ‘잘나다’ ‘못나다’ ‘낡다’ 등은 형용사에서 동사로 품사가 수정됐다. ‘잘생겼다’ 등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상태의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국립국어원은 설명했다. ‘빠지다’ ‘생기다’ ‘터지다’도 보조 형용사에서 보조 동사가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개봉 예정이라는 소식에 원작인 동명 TV 드라마를 만든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이 떠올랐다. 감독을 한국에 널리 알린 건 영화 ‘러브레터’. 국내 개봉은 1999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18년 전이다. 1999년에서 다시 18년을 빼면 1981년이고, 그해 국내 개봉한 해외 영화로는 ‘슈퍼맨2’ ‘13일의 금요일’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영화 ‘러브레터’에 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1999년 기준으로 그런 케케묵은 영화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실 ‘러브레터’는 국내에서 3번이나 재개봉됐고, 또다시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치 ‘오겐키데스카∼ 와타시와 겐키데스(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냅니다)!’라는 주인공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기억도 묵어가고, 사람도 묵어가는데 영화는 여전히 설원처럼 차가운 처음의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남기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부제를 보고 펠리페 2세 시대의 국제정치 변동만이 담겼다고 생각하면 낭패를 볼 것이다. 1권에 담긴 1부 제목은 ‘환경의 역할’이다. 산지, 고원, 평야, 바다, 연안, 사막, 기후, 계절 등에 관한 서술이 이어진다. ‘아날 학파’의 거두로 20세기 역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저자(1902∼1985)는 이 같은 지리적 환경을 인간 행위의 배경이 아니라 기초적인 인간 활동을 지배하는 또 다른 행위 주체로 봤다. ‘지리적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느리게 흘러간다. 반복적이고 거의 영속적이다. 저자는 2차대전 중 독일군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이 책을 썼다. 훗날 ‘역사학의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역사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들을 통합하는 인간학 연구를 주도했다. 책은 역사를 3개의 시간대로 구분한다. 지리적 시간 다음은 ‘사회적 시간’이다. 이는 인간 집단 활동의 층위로, 넓은 의미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2부가 여기 해당한다. 경제, 제국, 사회, 문명, 전쟁 등의 주제가 각각 상, 하로 나눠 담겼다. 마지막으로 정치 투쟁과 같은 ‘사건들의 역사’가 담긴 3부는 향후 출간 예정이다. 역사적 시간의 3분(分) 구조는 ‘구조―국면―사건’으로 변형돼 저자의 또 다른 고전 ‘15∼18세기 물질문명, 경제, 자본주의’(‘물질문명과 자본주의’로 번역 출간)로 이어졌다. 끊임없이 정보들이 이어지는 연구서이기에 웬만한 서양사 지식이 없는 독자가 읽기에는 만만치 않지만 ‘고전이 왜 고전인지’ 보여주는 깊이가 담겼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직후 동아일보는 가장 먼저 호외를 내며 소식을 알렸고, ‘조선인 윤봉길’이라는 이름도 당일 호외를 통해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이는 당시 동아일보가 상하이의 통신원과 직접 교류하고 있었다는 걸 뜻하죠.” 독립기념관은 한국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린 윤봉길 의사의 순국 85주기(19일)를 맞이해 2, 3일 일본 가나자와대에서 ‘윤봉길 의거와 세계평화운동’을 주제로 한일 공동 학술회의를 연다. ‘윤봉길 의거에 대한 국내외 언론 반응’을 발표하는 홍선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상하이와 직통하지 않고서는 이처럼 발 빠르게 보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 의거 직후 첫 호외를 내고 “조선인이 폭탄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두 번째 호외에서는 머리기사 제목으로 “조선인으로 판명, 윤봉길, 연령 25세”라며 이름도 처음으로 밝혔다. 5월 1일까지 호외만 4번을 낸 신문도 동아일보뿐이다. 윤 의사의 사진을 처음으로 게재한 것도 동아일보 5월 3일자다. 윤 의사의 가족사진도 함께 실었다. 5월 4일자에는 윤 의사 체포 장면 사진을 실었고, 7일자에는 윤 의사와 가족의 근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8일자에는 일본 육군성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자 이를 토대로 임시정부를 비롯해 상하이의 독립운동 근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후 윤 의사 순국 때까지 의거로 체포당한 안창호 선생의 국내 압송, 윤 의사 군법회의, 일본 호송 등 속보를 이어갔다. 그해 11월 22일자 윤 의사의 사형이 오사카에서 집행될 예정이라는 기사에도 윤 의사의 사진을 실었다. 홍 연구위원은 “당시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뒤로 언론 통제도 극심했던 상황”이라며 “동아일보가 ‘목숨을 걸었다’ 싶을 정도로 통제를 비집고 계속 윤 의사 관련 기사와 사진을 올리면서 민족지로서 사명을 다했다”고 말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도 윤 의사의 의거 당일 바로 호외를 내는 등 보도를 했다. 그러나 ‘조선인 윤봉길’에 대한 보도를 애써 지우려 하면서 폭탄 폭발 상황과 일본인 부상자의 피해, 그리고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정에 무게를 뒀다는 게 홍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당시 미국을 제외하고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해외 언론은 대체로 윤봉길 의거를 ‘테러 사건’으로 규정하고, 부상당한 일본인에 대한 동정과 중일 간에 추진하던 정전협상에 주목했다. 한편 다무라 미쓰아키 전 일본 호쿠리쿠대 교수는 학술회의 발표문 ‘세계사적 저항운동의 관점에서 본 윤봉길 의거’에서 “윤봉길의 의거는 프랑스의 반(反)나치 레지스탕스 활동과 같다”고 평가했다. 다무라 교수는 “레지스탕스는 점령군에게 타격을 주는 모든 활동”이라며 “조선의 의병투쟁이나 윤봉길의 의거는 히틀러 암살 시도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열강에 저항한 세계 독립운동사에 큰 의의를 지닌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변호사, 광복 뒤 반민특위재판부장, 붓으로 대한민국 법률 초안을 써내려 간 법전편찬위원장, 정권의 독재화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지켜낸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1887∼1964) 없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역사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김병로의 법률가적 면모에 집중한 일대기 ‘가인 김병로’(박영사)가 최근 발간됐다. 저자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1995년까지 대법원이 있던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27일 만났다. “이승만 대통령의 진노를 샀던 판사들이 김병로 대법원장 재임 시기(1948년 8월∼1957년 12월)에는 자리와 소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 집권 연장 목적의 개헌에 반대하던 서민호 의원이 총격 사건으로 구속되자 안윤출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구속집행정지를 결정해 서 의원을 석방했다. 그러나 시위와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결정에 불만을 표하자 김병로 대법원장은 말했다.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시오.” 이승만 대통령은 김 대법원장이 못마땅해 장관에게 “요즘 헌법(김병로) 잘 계시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김병로가 대법원장이었다면 1959년 조봉암의 사형 판결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며 “김병로는 힘없는 신생 국가의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소신을 외풍으로부터 지킨 법조 윤리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그 바탕은 극도의 청렴함과 강직함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변호사 개업을 하려는 판사를 김 대법원장이 “나도 죽으로 살고 있어요. 서로 죽을 먹어가면서 일해 봅시다”라며 만류한 일화도 전해진다. 920쪽에 이르는 이 책은 법학 지식을 바탕으로 가인의 활동과 고뇌를 추적했다. 가인이 독립운동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론했는지도 세밀하게 담겼다. “가인은 일제강점기 내내 광복 뒤 법률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일례로 피고인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구속기간을 제한하는 한국 형사소송법은 일본 미국 독일 등에도 유례가 없다. “독립운동가들이 붙잡히면 판결 뒤 복역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무기한 연장되는 수사와 재판입니다. 2, 3년 구속돼 있는 동안 고문당해서 죽거나 몸과 마음이 상합니다. 그들을 변호했던 김병로 선생이 6·25전쟁 중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초안을 만들며 집어넣은 것이지요.” 한 교수는 인터뷰에서 가인과 동아일보의 깊은 인연도 소개했다.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하 송진우와 가인은 더없이 가까웠지요. 일본 유학 뒤 가인은 변호사, 고하는 언론에서 활약하며 상승작용을 했습니다. 언론은 독립운동가가 붙잡혀도 피고인을 직접 접촉 못 했지요. 가인이 변호하며 얻은 정보를 언론이 크게 보도하며 독립운동을 나라 전체에 알렸던 겁니다. 광복 뒤에도 헌법정신을 바탕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가인의 기고가 동아일보에 제일 많습니다.” 한 교수는 “가인은 안창호, 김성수, 이인 등 지도자는 물론이고 홍명희, 허헌, 여운형 등 우파 중도파 좌파와 두루 절친했다”며 “한결같이 정치적 좌우를 가리지 않고 통합노선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 자료 수집에만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방학 때만 되면 ‘20세기에 들어가’ 살았고, 일제강점기 고문 관련 기사를 하도 읽어 자신도 몸에 통증이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한 교수는 “김병로 선생은 한국 법제, 사법, 법률, 윤리의 초석을 놓은 법의 거인”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고종이 아관파천 뒤 러시아가 조선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도록 약속하는 ‘비밀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96년 고종이 보낸 러시아 특사단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모스크바 대관식에 참석해 외교 활동을 벌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특명전권공사 민영환(1861∼1905)이 로바노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벌인 비밀협상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김영수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장은 ‘역사와 현실’ 12월호 게재 예정 논문 ‘명례궁 약정과 한-러 비밀협정을 통해 본 모스크바 대관식’(1896년)에서 일본, 러시아 등의 사료로 이 협상을 살폈다. 논문은 주한 일본 공사 가토 마쓰오가 고종을 독대하고 ‘한-러 비밀협정’의 내용을 입수해 1897년 12월 일본으로 보고한 자료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영환은 1896년 8월 “…조선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러시아는 병력으로 도와주거나, 혹은 다른 나라가 조선의 자주독립권을 방해하면 러시아는 특별히 공평히 처리하여…”라는 서신(조선정부명령)을 전했다. 로바노프 장관은 “러시아 황제에게 윤허를 받아 러시아 정부의 명령을 귀 공사에게 통고한다.…당연히 공평하게 처리하여 도울 것”이라는 내용을 서신으로 답했다. 다른 러시아 사료에도 로바노프가 “러시아 정부가 조선 왕실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능한 협력과 행동을 제공한다”는 서신을 작성해 민영환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김 소장은 “이는 러시아의 군사적 조선 보호를 의미한다”며 “한-러 비밀협정은 러시아가 조선을 자국의 영향 아래 두려는 전략인 동시에 조선이 일본의 군사적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았던 러시아 정부가 조선 문제에서 이중적 입장을 취했으며 한-러 비밀협정은 체결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실제 러시아는 일본과 1896년 6월 ‘모스크바 의정서’를 비밀리에 체결하면서 필요하면 러시아와 일본이 공동으로 조선을 보호국화한다고 합의한 상태였다. 김 소장은 “한-러 비밀협정 뒤 조선은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의 삼림벌채권, 함경도 길주의 삼림자원 이권, 함경도 삼수와 담천 지역의 이권을 러시아에 주는 등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천주교는 청와대가 최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변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왜곡했다고 27일 항의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이날 공개 질의서를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며 사실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밝히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천주교는 “이는 마치 교황이 낙태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기본 입장 변화를 시사한 것처럼 발표해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사실을 호도한 것”이라며 “한국 천주교회는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또 “만일 청와대가 언급한 교황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의 ‘새로운 균형점’ 발언은 2013년 9월 예수회가 발행하는 잡지와 인터뷰에서 나왔다. 동성애자와 이혼자, 낙태한 여성에 대한 자비를 강조한 것으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뜻은 아니었다는 게 천주교계의 관점이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청원에 23만여 명이 동의하자 청와대는 “중단됐던 ‘인공임신중절 수술 실태조사’를 내년 재개하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해 사회적, 법적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유럽 급진주의 단체를 연구해 온 전문가들이 극우주의의 계보와 다양한 스펙트럼을 분석한 연구서다. 올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는 이민 반대와 유럽연합 탈퇴를 내세운 국민전선(FN) 후보 마린 르펜이 33.9%를 득표했다. 9월에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 연방 의회에 입성했다. 유럽에서 양당 체제가 무너지면서 극좌와 함께 극우의 부상이 심상치 않다. 책은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극우주의를 세 가지 모델로 분류한다. 네덜란드의 자유당은 이슬람 혐오주의를 바탕으로 엘리트주의를 규탄하는 한편 동성애자, 유대인, 여성 등 소수집단의 자유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 극단에는 그리스의 ‘황금새벽’이라는 운동이 있다. 이들은 파시즘의 민병대 형태에 영향을 받아 도시 폭동과 합법 선거운동 사이를 넘나들면서 사회주의적 투쟁을 한다고 여긴다. 나치즘의 영향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국민전선은 지지자들의 폭이 훨씬 넓다. 창립자 장마리 르펜은 민족주의적 포퓰리스트로 국내 엘리트와 외부의 침입자들이 국가를 쇠퇴시키고 있기에 구원자가 나타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딸인 현 대표 마린 르펜은 세계화로부터 자국민을 지키면서, 보호주의를 통해 기업의 이윤 창출을 최대한 보장하고 복지도 지키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여러 극우주의는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별로 없다. 저자들은 “최근의 극우주의는 1930년대의 그것과 다르고, 2008년 경제위기로 나타난 것도 아니다”라며 “급속한 세계화에 따른 사회 변동에 대한 적대적 반응”이라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수험표 가져가서 할인 받으세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수험표가 할인티켓으로 바뀐다. 시험 준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문화생활로 달래보는 건 어떨까. 23일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을 위해 공연계와 영화계가 할인 이벤트를 마련했다.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수험표와 신분증을 꼭 챙겨가야 한다. ○ 고가의 뮤지컬 티켓, 최대 반값 할인 7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광부들이 대파업을 벌이던 시기, 영국의 한 탄광촌에 살던 빌리가 우연히 접한 발레에 빠져들어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제작사 신시컴퍼니는 28일부터 12월 8일까지 수험생 본인에 한해 전석 티켓가의 40%를 할인해준다. 티켓 수령 시 수험표를 깜빡하면 할인받은 차액을 지불해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6만∼14만 원. ‘미친 가창력’으로 통하는 배우 홍광호와 고은성이 주인공을 맡은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도 수능 수험표를 제시할 경우 1인 2장까지 40% 할인해준다. 화∼금 평일 공연에 한해 수험생 할인이 적용된다. 단, 크리스마스인 25일은 제외된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6만∼13만 원. 추리소설 창시가로 알려진 실존 동명 작가의 삶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수험생 1인당 티켓 2장에 한해 반값 할인에 나선다. 단, VIP석을 제외한 R석, S석, A석만 할인 대상에 포함된다. 6만∼12만 원,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이외에도 창작 뮤지컬 ‘광화문 연가’(세종문화회관) ‘베어 더 뮤지컬’(백암아트홀)이 수험생 포함 1인 2장까지 40% 할인해 준다. 예술의전당도 나선다. 콘서트홀 무대에 오르는 ‘11시 콘서트’(12월 14일)와 ‘토요콘서트’(12월 16일)는 50% 할인하고, 1970년대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들의 세계 시민 성장기를 다룬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자유소극장)는 5만5000원의 정면석을 2만 원에 판매한다. 26일까지 열리는 전시 ‘무민 원화전’은 수험생 본인과 동반 1인에 한해 입장권 3000원 할인 및 오디오 가이드 무료 대여 혜택을 제공한다. ○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수험생 할인 CGV는 12월 15일까지 ‘청소년 브랜드 페스티벌’을 연다. 만 13∼18세의 중고교생이 수험표나 학생증을 제시하면 동반 1인까지 일반 2D 영화 표가 6000원이고, 일부 메뉴는 3000원을 할인해준다. 핫트랙스, 스무디킹, 교보문고, 디뮤지엄, 빕스, 계절밥상 등에서도 10∼80% 할인을 제공한다. 롯데시네마도 수능이 끝난 첫 주말인 25, 26일 수험생 본인이 수험표 지참 시 영화와 싱글콤보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ONEDAY PASS’를 1만5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12월 13일까지는 수험생들에게 일반 2D 영화가 6000원이다. 메가박스는 수험표나 학생증을 지참하면 영화 관람 티켓이 6000원이고 일부 세트 메뉴가 할인된다.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는 12월 6일까지 수험표를 지참하면 ‘땐뽀걸즈’를 무료로 볼 수 있다. 김정은 kimje@donga.com·조종엽 기자}

“각 개인 또는 집단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며 역사의 경로가 정해진다. … 어느 순간 떨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진실에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균열은 쉽게 봉합되지 못한다.” 올 4월 출간된 ‘민주주의 잔혹사’(홍석률 지음·창비) 1장 ‘우연과 우연의 연쇄반응: 박종철과 6월항쟁’에 나오는 구절이다. 1987년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이런 통찰에 썩 잘 어울리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 ‘1987’(12월 27일 개봉)의 제작보고회가 22일 열렸다. 광주의 아픔을 다룬 1000만 관객 영화 ‘택시운전사’에 이어 1980년대 정치적 격변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올겨울 극장가의 ‘빅 시즌’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87’은 고문치사를 은폐, 축소하려는 세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의 대결을 다루면서 여러 사람들의 용기 있는 선택이 사슬처럼 맞물려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그린다. 이날 제작진은 “릴레이로 바통을 넘겨가며 계속 또 다른 주인공이 나오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에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장 ‘박 처장’ 역은 김윤석이 맡았다. 김윤석은 “실존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며 “시대 속에서 어떻게 그런 인물이 생겨났는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부검 없는 시신 화장’ 요구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이는 서울지검 ‘최 검사’ 역의 배우 하정우는 “시나리오를 보니 시대적 아픔을 전달할 뿐 아니라 극영화로서도 재미가 있어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배우 이희준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끝까지 매달리는 신문기자 ‘윤 기자’ 역을 맡았다. 윤 기자의 실제 모델은 1987년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팀 고(故) 윤상삼 기자다. 윤 기자는 서울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응급조치한 의사 오연상의 용기 있는 증언을 특종 보도했다. 그는 “정의의 사도 같은 모습보다도 평범한 인간, 살아있는 진짜 기자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건의 진실을 담은 옥중 서신을 전달하는 교도관 ‘한병용’ 역은 유해진이 연기했다. 영화는 6월민주항쟁을 표현하기 위해 1987년의 서울시청 앞 광장과 명동거리, 연세대 정문 앞 등을 세트로 재현해냈다.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2003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년) 등에서 독창적인 서사와 긴장감 넘치는 캐릭터 묘사를 선보였다. 장 감독은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시고 6월민주항쟁이 일어나기까지 수많은 분들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면서 온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온 이야기를 담았다”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꼭 돌아보고, 다시 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해 연출할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