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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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호두까기 인형’ 공연시간이 짧은 이유

    연말이면 약속한 듯이 우리 곁에 다가오는 공연물 중에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빼놓을 수 없죠. 아름다운 선율과 찬란한 관현악, 동화 같은 줄거리 덕택에 어린이부터 온 가족이 함께 감상하기에도 적합합니다. 주인공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삼촌에게서 받은 인형이 멋진 왕자님으로 변신해 클라라를 동화의 성으로 초대한다는 꿈결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이 발레를 어린이가 감상하기 좋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공연에 한 시간 반이 채 안 걸리거든요.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가운데서도 두 시간을 훨씬 넘어가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미녀’보다 아주 짧습니다. 아이들이 몸을 비비 꼬지 않고 견디기에 적당한 공연 시간인 셈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짧을까요? 여기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라진 쌍둥이’ 얘기가 숨어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하룻밤에 발레와 오페라 한 편씩을 함께 볼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1892년 12월 18일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오페라 ‘욜란타’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함께 초연됐습니다. 하룻밤에 두 작품이니 각각의 작품은 당연히 짧습니다. 두 작품 모두 큰 인기를 끌지 못한 채 잊혀졌지만 이후 ‘호두까기 인형’은 전곡 주요 부분을 발췌한 모음곡이 인기를 끌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욜란타’는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또한 차이콥스키 특유의 빛나는 순간들을 가진, 아름다운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앞을 못 보는 공주 욜란타가 사랑의 힘으로 앞을 보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 주소와 QR코드를 통해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오페라 ‘욜란타’의 주요 부분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에 앞서 관현악 모음곡이 먼저 알려졌지만, 모음곡에 들어 있지 않은 ‘소나무 숲을 지나는 여행’ ‘눈송이의 춤’ ‘그랑 파드되(주인공들의 2인무)’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니 꼭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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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메시아’ 할렐루야 코러스 땐 일어서야 할까요?

    연말이면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는 명곡 중에 예수의 생애와 구원을 다룬 헨델(사진·1685∼1759)의 ‘메시아’가 있죠. 얼마 전 모임에서 연말에 가볼 만한 문화행사 얘기가 나오기에 이 곡 얘기를 꺼냈더니 친구가 아는 척을 합니다. “그거 헨델의 오라토리오잖아. 할렐루야 코러스가 나오지? 오라토리오는 종교적 내용을 가진 오페라고. 그런데 오페라처럼 무대 연기를 하진 않지. 할렐루야가 나오면 청중이 일어서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까요. 중학교 때 배운 걸 기억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선 참 많은 걸 가르친다 싶습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연 어디서나 할렐루야 코러스가 나오면 청중이 일어설까요? “한국과 일본에서만 그러는 거다”라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관습의 기원에 대해서는 “‘메시아’ 초연 때 영국 왕 조지 2세가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자 다른 관객도 모두 일어섰다. 이후 이런 전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지 2세는 초연에 오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독일어 자료에서는 “‘어떤’ 나라에서는 이 곡이 나오면 일어선다”라고 되어 있네요. 더 알아본 바는 이렇습니다. ‘영국 왕’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선 이 곡이 나와도 잘 일어서지 않습니다. 사실 ‘메시아’는 영어 가사에 곡을 입힌 곡이어서 영국에서 가장 자주 연주됩니다. 그렇지만 영국뿐 아니라 유럽 이외의 대륙에서도 대체로 이 곡이 나오면 일어선다는 공감대가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유튜브로 영국의 연주 실황을 보아도 때로 청중이 그대로 앉아 있는 경우가 보입니다. 지휘자 트레버 피녹은 아예 악단이 연주하도록 놓아두고 돌아서서 손짓으로 청중을 일으킵니다. 이 곡의 ‘일어서는’ 전통에 대해 영국 청중조차 우리나라 청중처럼 잘 알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어쨌거나 저는 ‘할렐루야’가 나오면 일어서고 싶어집니다. 너무도 장엄하고 격동적이라서 가만히 앉아 있기엔 몸이 들썩거리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아래 링크 주소와 QR코드를 통해 ‘할렐루야’를 비롯한 ‘메시아’의 주요 부분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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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라보엠 스토리는 세밑 슬픈 선율을 타고…

    12월이 코앞이군요. 매년 연말이면 돌아오는 ‘송년작품’들이 있습니다. 발레로는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오페라로는 푸치니의 ‘라보엠’입니다. ‘호두까기 인형’은 전막이, ‘라보엠’은 1, 2막이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펼쳐지죠. 오늘은 ‘라보엠’에서 여주인공 미미가 슬프게 죽어가는 마지막 4막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폐병에 걸려 로돌포와 헤어졌던 미미는 연인의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어 기진한 몸으로 로돌포의 하숙방을 다시 찾아옵니다. 하숙 친구들은 두 사람만 같이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죠. 그때 미미가 부르는 노래가 ‘다들 나갔나요(sono andati)?’입니다. “다들 나갔나요? 자는 척했어요. 둘만 있고 싶어서요.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하지만 바다처럼 커다란 얘기죠. 바다처럼 깊고 끝없는 당신은 내 사랑, 내 삶의 전부예요!” 어떤가요. 모처럼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찬, 밝은 선율이 펼쳐질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아닙니다. 푸치니는 이 노래에서 서글픈 정념을 펼쳐 보입니다. 먼저, 노래는 어두운 단조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한 마디 즉 네 박자마다 저음(베이스)이 한 음씩 떨어집니다. 라, 솔, 파, 미, 레, 도, 시, 라. 딱 한 옥타브가 내려갈 때까지. 선율도 거기 맞춰 똑같이 떨어집니다. 설계도를 그려놓은 듯이 정확합니다. 왜 이런 선율을 썼을까요? 여주인공은 연인과 둘이 있어 기쁘지만 몸은 죽음 일보 전에서 한 발자국씩 무너져 내립니다. 말 한마디 이어가기도 힘에 부칩니다. 한 음씩 가라앉는 이 노래 선율만 들어도 미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면서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주인공 미미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던 푸치니는, 이렇게 애처로운 여주인공의 상황을 정밀한 소리의 시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이 서글프고도 감동적인 선율은 작품 끝에 미미가 숨을 거둔 후 전 관현악의 총 합주로 다시 나옵니다. 올해 12월에도 전국 각지에서 ‘라보엠’이 공연됩니다. 큰 무대를 꼽으면 국립오페라단이 이 작품을 5∼8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립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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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는 ‘부기우기’를 닮았다?

    한 해를 정리하는 계절. 찬바람이 불면 베토벤(사진)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마음을 추스른다는 분이 많습니다. 특히 베토벤 작품번호 끝 곡인 소나타 32번(작품 111)은 후반부인 2악장이 명상적인 주제와 육중한 다섯 개의 변주로 돼 있어 심오하면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하는 마력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이 악장을 듣다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귀에 들어옵니다. 세 번째 변주의 통통 뛰어다니는 듯한 리듬이 듣는 순간 바로 오늘날의 대중음악을 연상하게 만들거든요. 일본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쓰코는 자신이 녹음한 베토벤 후기 소나타집 음반 해설지에 ‘이 부분은 부기우기(Boogie-Woogie)와 닮았다’고 써서 논란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부기우기란 1920년대 시카고 흑인 사회에서 비롯된 흥겨운 리듬의 재즈를 말합니다. 사실은 우치다에 앞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도 같은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는 “이 부분은 훗날 음악이 찾아낼 리듬의 자유를 베토벤이 미리 내다본 것”이라며 “재즈나 부기우기 ‘따위’는 아니다”라고 불쾌감을 표현했습니다. 이 얘기는 갖가지 생각을 불러옵니다. 미래의 음악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도 베토벤의 곡에서 그 시대 음악과 닮은 부분들을 찾아내며 신기해할까요. 후대 음악의 요소를 미리 갖고 있다는 점은 과연 한 작곡가의 남다른 위대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까요. 베토벤이 오늘날 대중음악의 격렬한 리듬을 듣는다면 어떤 느낌을 이야기할까요. 아래 QR코드와 인터넷 링크를 통해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에서 ‘부기우기’를 연상시킨다는 부분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비교를 위해 현대 작곡가인 리버만이 쓴 ‘부기우기’ 곡도 함께 넣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오늘(21일) 저녁 8시 LG아트센터에서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포함한 후기 피아노 소나타 30∼32번 전곡을 연주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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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영국이 낳은 대작곡가 벤저민 브리튼

    영국 주부들의 서툰 요리는 이 나라의 주된 코미디 소재입니다. 영국인의 가정음식 인기도 조사에서도 인도 카레가 수위를 차지합니다. 그런데도 영국은 제이미 올리버를 비롯한 ‘스타 셰프’가 큰 인기를 누리는 나라입니다. 런던에서는 세계 최고의 프랑스 음식, 최고의 이탈리아 음식, 최고의 인도 중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들 합니다. 영국 음악도 우연인지 상황이 비슷합니다. 런던에만 최상급 오케스트라 5개가 있고 영국 음반 산업은 세계를 이끌어 왔습니다. 최고 권위와 발행부수의 음악 저널이 자리를 잡은 곳도 런던입니다. 그런데도 영국 음악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해 왔습니다. 영국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퍼셀(1659∼1695) 이외엔 대작곡가라 할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이후 ‘사랑의 인사’ ‘위풍당당 행진곡’의 엘가, ‘푸른 옷소매 환상곡’의 본 윌리엄스, 우리나라 뉴스 시그널 음악으로도 쓰였던 ‘행성’의 홀스트가 나왔지만 역시 세계 톱클래스의 위상은 아니었죠. 그런 영국이 20세기에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 대가가 있습니다. 이름도 브리튼(Britain) 섬을 연상시키는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1913∼1976·사진)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소개하는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전쟁 레퀴엠’은 특히 유명합니다. 22일이 바로 그의 탄생 100주년입니다. 영국 각지에서 그를 기리는 음악회와 전시, 축제가 11월을 수놓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브리튼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아 16일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루체뮤직소사이어티가 여는 브리튼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 ‘솔 온 더 스트링스’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심플 심포니(간단 교향곡)’를 비롯한 세 곡을 연주합니다. 브리튼도 대음악가의 전통이 빈약한 영국 음악사의 약점을 의식했는지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서 대선배 퍼셀을 오마주했습니다. 퍼셀 ‘아브델라저’ 모음곡의 ‘라운드’ 주제를 따서 변주곡의 주제로 삼았죠. 아래 QR코드와 인터넷 주소 링크를 통해 퍼셀의 원곡과 브리튼의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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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브람스 선율속엔 엄밀한 논리가…

    음악가가 아니셨던 아버지는 종종 작곡가들의 선율 만들기에 대해 농담을 하셨습니다. “도화지에 오선지를 그리고, 콩나물을 확 뿌려. 읽어봐서 듣기 좋으면 작품으로 만들지.” 그러고는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짓고 한마디를 보태셨습니다. “현대음악에서는 듣기 안 좋아도 그냥 써.” 명선율을 만드는 것은 작곡가의 ‘영감’일까요, 아니면 ‘기법’일까요. 선율을 긴 구조로 펼쳐내는 것이나 화음을 넣는 일은 기법이 분명 중요할 겁니다. 반면 선율만은 기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영감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계산해서 만들어낸 멜로디도 있으니까요. 낭만주의 작곡가였던 브람스(사진)는 형식과 논리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음악 작품 속에 ‘감정’뿐 아니라 건축적인 엄밀성과 논리도 들어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4번 첫 악장은 b음에서 두 음씩 계속 떨어지는 선율로 시작됩니다. 계이름으로 풀면 미-도-라-파-레-시-솔-미죠. 계속 떨어지기만 하면 너무 낮아지니까, 중간에 두 번 위 옥타브로 건너뜁니다. 브람스가 이렇게 교향곡 4번의 첫 선율을 만들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얘기했으니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도 있습니다. 브람스에게 이런 기법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저녁, 머릿속으로 브람스의 교향곡 1번 4악장을 흥얼거리는데 뭔가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갔습니다. “두 음씩 떨어지는 게 열두 음이나 계속되는데! 이게 교향곡 4번보다 먼저 나온 거네!” 아래 악보 및 QR코드와 인터넷 주소로 링크한 두 번째 선율입니다. 브람스가 이런 방법을 오랫동안 머리에 넣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중에서도 마지막 곡인 4번은 많은 사람들이 ‘만추(晩秋)의 교향곡’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화장품 광고에도 쓰여 친근하죠. 아쉽게도 이 가을에 이 곡을 연주하는 콘서트는 눈에 띄지 않네요. 이 곡보다 먼저 두 음씩 떨어지는 선율을 선보인 교향곡 1번은 9일 평촌아트홀에서 디토 오케스트라가 여는 ‘오케스트라, 젊음을 입다’ 콘서트에서 연주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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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비창’교향곡, 3세기前 오페라와 닮았네

    5월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 선율에 죽음과 관련된 메시지가 있다”고 쓴 적이 있죠. 11월 유난히 이 ‘비창’이 자주 무대에 오릅니다.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유리 시모노프 지휘로 이 곡을 연주하고, 14일에는 김대진 지휘 수원시립교향악단이 같은 무대에 이 곡을 올립니다. 7일에는 박상현 지휘 모스틀리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비창’을 연주합니다. 이처럼 집중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있을까요? 쓸쓸한 늦가을 분위기에 ‘딱’이라는 것과 함께, 11월 6일이 차이콥스키의 서거 120주기란 점을 상기할 만합니다. 때맞춰 ‘비창 교향곡과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다시 한 번 논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합니다. 5월 칼럼에서는 1악장의 느린 제2주제를 놓고 차이콥스키가 비슷한 선율들에 달아놓은 가사 또는 표제를 통해 ‘죽음의 암시’를 찾아보았죠. 이번에는 작품의 시작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저음이 반음씩 내려가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바순이 라-시-도-시의 우울한 선율을 읊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과 닮은 작품이 있습니다. 영국 작곡가 퍼셀이 300여 년 앞서 쓴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의 아리아 ‘내가 땅 속에 누웠을 때(When I am laid in earth)’입니다. 마침 11월 15일 KBS교향악단이 백윤학 지휘로 서울 KBS홀 무대에 올리는 ‘클래식, 시를 읽다’ 콘서트에서 현악기만으로 이 곡을 연주합니다. 이 노래도 반음씩 내려가는 저음과 라-시-도-시 계이름으로 시작하는 선율을 갖고 있습니다. 가사를 살펴볼까요. ‘내가 땅 속에 누웠을 때/내 잘못이 그대를 괴롭히지 않기를/나를 기억하여 주오. 그러나 내 운명은 잊어주오.’ 어떻습니까. 죽음을 염두에 두고 대작을 쓰는 작곡가가, 그보다 3세기 전 ‘죽음’을 노래한 아리아를 변형해 작품의 시작으로 삼았다면. 물론 120년 전 죽은 차이콥스키의 마음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하나의 가정일 뿐입니다. 다음 QR코드 또는 인터넷 링크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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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가을에 꼭 듣고 싶다… 라흐마니노프 ‘2번’

    클래식 혹은 고전음악이 흔히 받는 오해가 있습니다. “변화 없이 늘 고정된 레퍼토리만 연주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맞는 얘기는 아닙니다. 항상 어디선가 창작곡이 발표되고 ‘표준’ 레퍼토리에 진입할 뿐 아니라, 과거에 발표됐던 곡도 끊임없이 그 인기와 위상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특히 발표된 뒤 60여 년이 지나 재평가됐다는 점에서 유별난 작품입니다. 연주에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 곡은 1908년 초연된 뒤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작곡가는 ‘지휘자가 마음대로 줄여도 좋다’고 말했지만 이후 잘린 형태로도 드문드문 연주될 뿐이었습니다. 이 곡의 재발견에 공헌한 사람이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입니다. 그는 1971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동반해 러시아와 아시아를 순회 연주하면서 이 곡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넣었고, 동아일보사 주최의 서울 연주를 포함한 당시 여정을 통해 이 작품의 가치를 재발견했습니다. 이후 그는 세계 곳곳에서 이 작품을 지휘했고 1973년엔 이 곡을 삭제 없이 전곡 녹음했습니다. 다른 지휘자들도 이윽고 이 곡의 연주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이 곡의 재발견에 공헌한 또 한 사람이 팝 가수 에릭 카먼입니다. 그는 이 작품의 느린 3악장 주선율을 1976년 팝송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으로 각색해 발표했습니다. 이 노래의 인기도 더해져, 오랫동안 무시됐던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오늘날 베토벤이나 말러, 차이콥스키의 주요 교향곡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또 있습니다. 이 작품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곡을 ‘가을에 딱 어울리는 교향곡’으로 꼽는다는 것입니다. 정작 이 작품을 쓸 당시 라흐마니노프의 개인사를 보면 ‘가을’과 관련되는 아무런 힌트도 없는데 말이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25일 부천시민회관에서 객원지휘자 긴타라스 린케비셔스 지휘로 이 작품을 연주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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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시칠리아 춤곡이 한국인에게 유별난 까닭

    시칠리아나 또는 시실리엔. 각각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로 ‘시칠리아 여인’이란 뜻입니다. 음악에서는 이 말이 ‘시칠리아 춤곡’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점음표가 있는 느릿한 6박자 리듬에 어딘가 애조를 띤 단조 선율이 특징이죠. 시칠리아노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갑자기 시칠리아 ‘남자’가 돼 버리네요. 이 춤곡은 유난히 한국인들의 마음에 착 달라붙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느릿한 3박자 또는 6박자 장단에 쓸쓸함이 묻어나는 가락을 좋아했죠. 서구인들은 우리 음악 교과서를 보고는 “유난히 3박자 6박자 노래가 많네요” 한답니다. 2박자와 4박자 노래가 주류를 이루는 일본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시칠리아나 또는 시실리엔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의 2악장, 레스피기 ‘옛 춤곡과 아리아’ 3번, 포레 극음악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나오는 곡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테마콘서트 ‘회상’에는 19세기 초 드문 여성 작곡가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의 시실리엔이 등장합니다. 모두 가슴 선뜻한 애조를 전해 주는 곡입니다. 유럽 춤곡 가운데는 이 시칠리아나처럼 지명을 딴 것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르가모에서 나온 ‘베르가마스크’, 폴란드 궁정의 대표 춤곡이었던 ‘폴로네이즈’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칠리아나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네요. 제주민요 ‘오돌또기’의 후렴구(둥그래 당실)는 점음표가 있는 느릿한 6박자입니다. 서구식으로는 단조로 해석되는 음계도 갖고 있습니다. 시칠리아와 제주도가 반도 남단의 큰 섬이라는 점도 같네요. 하지만 정작 시칠리아나는 시칠리아에서 고유의 춤곡으로 취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유럽 대륙으로 퍼져나간 뒤 정작 발생지에서는 잊혀진 듯합니다. 파라디스, 모차르트, 레스피기가 작곡한 대표 시칠리아나 또는 시실리엔을 아래 QR코드와 인터넷 링크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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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의 명곡은 늘 ‘새벽’에 울려퍼진다

    올해는 바그너와 베르디의 탄생 200주년이지만 푸치니(1858∼1924)에 대한 오페라 팬들의 사랑은 올해도 변함없습니다. 우선 10월은 체코 화가 알폰스 무하가 공연 포스터를 그리기도 한 ‘토스카’입니다. 12일 오페라단 청이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야외오페라 토스카’를 공연하고 10, 1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도 ‘토스카’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참가작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1970, 80년대에 성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은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토스카’의 테너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목청껏 뽑고는 했죠. 1986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맞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푸치니 ‘투란도트’의 아리아 ‘잠들지 말라’가 히트하면서 푸치니 최고 인기 아리아의 영예는 이후 ‘잠들지 말라’가 이어받은 듯합니다. 그런데 이 두 노래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새벽 장면에 테너 혼자 나와 부르는 아리아’라는 점입니다. 예전 이 코너에서 로시니가 유독 폭우 장면을 사랑했다는 얘기를 한 적 있죠. 푸치니는 새벽 장면을 사랑했습니다. 그것도 정해놓은 것처럼 대략 극의 3분의 2 정도가 진행된 시점에 배치했습니다. 첫 오페라인 ‘빌리’부터 그랬습니다. ‘라보엠’에선 두 쌍의 연인이 위기를 맞는 대목에, ‘나비부인’에선 허밍 코러스에서 새벽 장면이 등장하죠. ‘토스카’에선 남주인공이 새벽에 처형을 기다리면서 ‘별은 빛나건만’을 부릅니다. ‘투란도트’에선 남주인공이 구혼 도전의 승리를 예감하면서 역시 새벽에 이 노래를 부릅니다. 흥미로운 점이 또 있습니다. 푸치니는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이 연속으로 대성공을 거둔 뒤 이어지는 ‘서부의 아가씨’ ‘제비’에는 새벽 장면을 넣지 않았습니다. 두 작품은 오늘날 푸치니의 오페라 중 성공하지 못한 작품으로 취급됩니다. 마지막 작품인 ‘투란도트’에서 새벽은 당당하게 부활하고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단지 우연일 뿐일까요. 오른쪽 QR코드와 링크 주소를 통해 푸치니의 인상 깊은 새벽 장면들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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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풍 일으키는 오페라 ‘파르지팔’… 바그너 ‘로엔그린’의 프리퀄입니다

    국립오페라단이 1일에 이어 3,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바그너의 마지막 음악극 ‘파르지팔’이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주 들어본 제목은 아니죠? 이렇게 소개해볼까 합니다. “‘결혼행진곡’이 나오는 ‘로엔그린’의 프리퀄(prequel)이 ‘파르지팔’이다.” 프리퀄이라, 영화팬들에게는 낯익은 용어죠. 사전적 설명은 이렇습니다. ‘전편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으로, 본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 전편이 흥행해서 후편을 만들고자 할 때 만들기도 한다.’ 이 설명을 적용하자면 단언컨대 ‘파르지팔’은 완벽한 프리퀄입니다.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1850년에, ‘파르지팔’을 32년 뒤인 1882년에 발표했습니다. ‘로엔그린’의 주인공인 로엔그린은 성배(聖杯·holy grail)의 기사입니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성배의 왕 파르지팔이다’라고 노래하지만 성배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죠. 30여 년이 흐른 뒤 바그너는 로엔그린 출생 이전의 이야기를 ‘파르지팔’에서 들려주면서 자신이 유럽 설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 넣었습니다. ‘흥행한 전편의 후편’이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프리퀄 개념에 들어맞습니다. 성배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그의 피를 받은 잔을 말합니다만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전설 속의 얘기입니다. 성배를 둘러싼 모험과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로는 ‘몬티 파이선과 성배’ ‘엑스칼리버’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 ‘다빈치 코드’가 있습니다. 오페라 역사 속의 프리퀄을 들자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과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피가로…’는 1786년, ‘세비야…’는 1816년 발표됐지만 ‘세비야…’가 ‘피가로…’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작자인 희곡작가 보마르셰는 ‘세비야…’를 먼저 썼지만 오페라 발표 순서만 보면 ‘세비야…’가 프리퀄이 된 셈이죠. ‘피가로…’ ‘세비야…’에 이어지는 속편, 즉 ‘시퀄(sequel)’도 있습니다. 보마르셰가 두 작품에 이어 쓴 ‘죄 있는 어머니’입니다. 이 희곡은 1966년에야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가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파르지팔’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작품엔 중년 이상 세대에 친숙한 선율이 나옵니다. 1막 전주곡의 금관 선율이 1970년대 뉴스 시그널로 사용됐거든요. 궁금한가요? QR코드나 다음 인터넷 주소를 통해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무대는 단출했지만 주역들은 질풍노도 ▼전문가의 ‘파르지팔’ 평점 1일 오후 4시 시작된 공연은 두 차례의 인터미션을 지나 오후 9시 20분에야 끝났다.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한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은 주역 가수들의 빼어난 기량으로 빛났다. 단출한 무대와 어수선한 의상은 다소 아쉽지만 국내 오페라의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이 장대한 오페라를 ‘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서정원(한국바그너협회 실행위원) ★★★★★ 필리프 아를로 연출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무대를 경사 거울을 사용해 독특한 시각 경험을 안겨줬다. 전반적으로 아주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모범적인 무대였다. 조명 디자이너 출신답게 적절하고 다양한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지휘자 로타어 차그로세크는 장중하기보다는 깔끔한 연주를 들려줬다.○ 김원철(음악칼럼니스트) ★★★★ 외국 가수들이 내한공연에서 몸을 사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파르지팔 출연진은 하나같이 최선을 다했다. 쿤드리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본 네프가 발군이었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기대 이상으로 잘하기는 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송현민(음악칼럼니스트) ★★★★ 오케스트라가 잘 받쳐 줄 수 있을지 우려가 많았지만 초반부터 분위기를 잘 잡았다. 다른 파르지팔 프로덕션들이 주로 선악(善惡)을 백과 흑으로 표현한 반면 이번 공연은 파란색을 주 색조로 잡아 독특했다.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 201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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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휘영청 보름달 아래 월광 소나타 어때요

    추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군요. 올해는 밝은 한가위 달을 볼 수 있을까요. 나라마다 산도 물도 다르지만 달의 모양만큼은 똑같죠. 예로부터 동서양을 통틀어 수많은 시인과 음악가들이 달에게 송가를 바쳐왔습니다. 서양 음악사의 페이지도 수많은 ‘달빛 클래식’으로 장식돼왔죠. 누구에게나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14번 ‘월광(月光)’, 그리고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월광’이겠군요. 그런데 베토벤 소나타 14번의 ‘월광’이란 제목은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닙니다. 베토벤이 죽고 나서 5년 뒤 시인 렐스타프가 “이 곡의 첫 악장은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달빛이 비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고 말해서 붙여진 별명이죠. 이 별명이 적절한지 아닌지에 대해 음악비평가들 사이에 논란도 오랫동안 무성했다고 합니다.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에 붙인 가곡에도 자주 달이 등장합니다.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곡을 붙인 슈만 ‘달밤’, 횔티의 시에 의한 슈베르트 ‘달에게’가 대표적이죠. ‘달밤’은 들판에 영그는 이삭들을 스치는 바람까지 묘사하고 있으니 추석에 듣기에는 매우 적당한 곡입니다. 이탈리아 가곡을 꼽아보자면 한때 중고교 음악 교과서에 실렸던 벨리니의 ‘은빛으로 빛나는 달’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달을 소재로 한 대작 중에서는 하이든의 오페라 ‘달의 세계’가 이색적입니다. 젊은이들이 천문학에 심취한 노인을 속여 그가 실제로 달에 온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이 작품처럼 달을 소재로 한 오페라가 아니라 오페라 속에 등장하는 노래만 한 곡 꼽자면 드보르자크 ‘루살카’ 중 ‘달에게 보내는 노래’를 떠올려볼 만합니다. 루살카는 슬라브권 사람들이면 누구나 아는 물의 정령이죠. 어느 날 루살카는 사냥을 나온 왕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밤마다 달에게 왕자님이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호소합니다. 그가 이 남다른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스포일러는 넣지 않겠습니다. 이 밖에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까지 언급하면 ‘너무 나가는’ 일일까요. 시적이고 고혹적인 달보다는 음울하고 기괴한 세계가 펼쳐지는 작품이니까요. 차라리 1986년 스페인의 ‘메카노’ 밴드가 발표한 노래 ‘달의 아들’을 꼽아보겠습니다. 대중음악 장르로 발표된 곡이지만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를 비롯한 성악가들도 콘서트에서 즐겨 부르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시대와 장르별로 다양한 ‘달 음악’ 중 세 곡을 다음 QR코드와 링크 주소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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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돌림노래’를 사랑한 작곡가 프랑크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리 리 리자(字)로 끝나는 말은, 개나리 보따리….’ 어릴 때 많이 불렀던 돌림노래들입니다. 앞 사람이 시작한 노래를 받아 한 마디 늦게 들어가면 예쁜 화음이 이뤄지니 재미있었죠. 이런 돌림노래가 어린이들의 놀이에만 쓰일까요? 아닙니다. 돌림노래를 즐겨 작품 속에 넣은 작곡가도 있었습니다. 벨기에 출신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1822∼1890)입니다. 프랑크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곡이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즐겨 불렀던 종교적 가곡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입니다. 중간 간주부를 지나면 독창자의 노래를 반주부(또는 합창)가 뒤쫓듯이 돌림노래 방식으로 따라갑니다. 독일 막스 로스탈 콩쿠르 우승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 씨(경희대 교수)가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는 독주회 ‘Consolation(위로)’에도 돌림노래가 나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뿐 아니라 첼리스트와 플루티스트들도 즐겨 연주하는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 4악장입니다. 이 곡들처럼 편성이 작은 곡뿐 아니라 프랑크가 교향곡 분야에 야심적으로 도전해 성공한 그의 교향곡 d단조 첫 악장이나 교향시 ‘속죄’에도 돌림노래가 등장합니다. 돌림노래는 사실 캐논이라는 더 큰 양식의 일부이며 ‘가장 간단한 형태의 캐논’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파헬벨의 캐논’으로 익숙한 그 캐논이지요. 한 주제가 나온 뒤 다른 사람들이 그 주제를 반복하거나 규칙에 따라 바꾸면서 화음을 맞춰 나가면 그걸 캐논이라고 하고, 주제를 바꿀 필요도 없이 그대로 뒤쫓아 가기만 하면 돌림노래입니다. 영어로는 ‘round(빙빙돌기)’라고 합니다. 이런 단순한 기법을 왜 프랑크가 애용했을까요. 프랑크는 캐논의 대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구사한 다른 다양한 캐논은 보통 사람의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게다가 다른 작곡가들은 단순한 돌림노래 기법을 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사용한 돌림노래가 유독 귀에 딱 들리는 것이겠죠. 프랑크가 당대를 대표하는 오르가니스트였던 점도 힌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오르가니스트들은 손 건반과 발 건반의 ‘대화’를 유독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이처럼 한 작곡가의 작품을 많이 들으면서 그 작품세계 속에 반복해 드러나는 특징들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도 클래식 감상의 묘미입니다. 세자르 프랑크의 작품 속 돌림노래들은 다음 링크와 QR코드를 통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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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작품 분위기 좌우하는 음반표지 그림들

    음악과 미술. 인간의 오감 중 청각과 시각을 대표하는 예술이죠. 20세기에 이 두 장르는 ‘음반표지’라는 영역을 통해 새롭게 만났습니다. 30cm 사각형 LP 표지가 12cm CD로 줄어들고, 이어 다운로드 세상이 펼쳐지면서 음반표지는 위기를 맞는 듯했습니다. 그렇지만 음악파일을 재생할 때 휴대기기에 앨범 이미지가 뜨는 것을 보면, 이 장르의 미래를 안심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음악이라는 상품을 받을 때 사람들은 딱 맞는 이미지까지 손에 넣고자 하니까요. 특정 시대나 장르의 음악 앨범에 유독 잘 쓰이는 화가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19세기 초중반의 낭만주의 음악 앨범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화가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오늘(5일) 생일을 맞은 독일의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1774∼1840·사진)입니다. 그의 작품 중 특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그림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비롯해 ‘방랑’의 상념을 전하는 음악작품들의 표지로 잘 쓰여 낯이 익죠. 이 작품 외에도 그의 그림은 대부분 장엄하면서 어딘가 차갑게 느껴지는 자연을 그려냅니다. 인물이 등장할 때도 대부분 얼굴을 보이지 않고 등을 돌리고 서있습니다. 자연 앞에 인간은 주인이 아니며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19세기 낭만주의의 절정기 독일 작가와 시인, 음악가의 공통적인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이 신의 의도를 표현하며, 예술과 철학, 과학은 이를 표현하는 공통의 도구라고 여긴 점도 비슷합니다. 특히 이 시기의 독일 예술가들은 너나없이 방랑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대자연과 방랑을 사랑했던 화가 다피트 프리드리히는 1950∼60년대 LP 초기에 외면을 받았습니다. 나치 집권기간에 권력자들이 그의 작품을 ‘북유럽 아리아인의 특징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으로 선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다시 인정받게 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다행히 음반예술이 절정기를 맞는 시기였죠. 참, 이 화가 얘기를 하면 “아,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그린 화가요?”라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와 혼동한 거겠죠. 물론 다비드의 나폴레옹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의 수많은 표지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얘기가 딴 데로 샜지만 ‘가을 아이’인 다피트 프리드리히의 생일을 맞아 그의 그림이 표지에 있는 음악들로 가을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다음의 QR코드와 인터넷 주소 링크를 통해 그 일부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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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르티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이 명곡의 진짜 작곡가 누군지 아세요

    바로크 앙상블 ‘무지카 글로리피카’가 9월 3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콘서트 ‘코렐리 찬가’를 개최합니다.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의 서거 300주년을 기념해, 코렐리와 그를 사랑했던 동시대 음악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입니다. 독자 중에는 “잘 알려진 타르티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들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는 코렐리와 한 세대밖에 차이 나지 않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이며, 그가 코렐리의 주제를 변주곡으로 만든 작품이라면 이 콘서트의 주제에 딱 들어맞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이 콘서트에서 이 곡은 연주되지 않습니다. 무지카 글로리피카에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유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 곡은 실제 바로크 시대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작곡가이자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리츠 크라이슬러(1875∼1962)는 한때 쿠프랭, 바흐, 비발디의 알려지지 않은 악보를 발굴해 연주하며 ‘옛 바이올린 음악 발굴의 개척자’로 불렸습니다. 타르티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중반 음악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들 작품의 발굴 근거를 크라이슬러가 밝히지 않았으며, 스타일도 옛 음악으로 보기는 미심쩍은 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크라이슬러는 이 작품들이 실제로는 자신이 쓴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작곡가와 제목이 바뀔 뿐, 작품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왜 실제로 자신의 곡임을 감추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명곡 중에는 의외로 이처럼 알려진 작곡가와 실제 작곡가가 다른 경우가 적잖습니다. 특히 인기에 비해 남아있는 문헌이 많지 않은 바로크 작곡가들이 ‘이름 빌리기’의 표적이 됩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실제 알비노니의 곡이 아니라 이탈리아 음악학자 레모 자초토(1910∼1998)의 곡입니다.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는 오페라의 창안자로 알려진 카치니가 아니라 러시아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1925∼1973)의 곡입니다. 헨델의 ‘주께 감사를’도 헨델이 아니라 말러, 브루크너와 교분을 가졌던 오스트리아 작곡가 지크프리트 오크스(1858∼1929)의 곡임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직접 연주하는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비롯한 이들 작품을 다음 QR코드와 링크를 통해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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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19세기 변주의 시대 이끈 ‘내 모자 세모났네’ 선율

    ‘내 모자 세모났네/세모난 내 모자/세모가 안 난 것은/내 모자 아니네.’ 가사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흥겨운 3박자 선율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선 ‘내 양말 빵꾸났네’라는 가사로 바꿔 부르기도 하죠. 이 노래는 원래 유럽 전래 동요입니다. 독일에서 부르는 가사(Mein Hut, der hat drei Ecken)는 우리의 ‘내 모자 세모났네’와 내용이 똑같습니다. 하지만 이 선율을 부르는 가장 보편적인 이름은 ‘베니스의 카니발’입니다. 라인하르트 카이저라는 작곡가가 18세기 초 이 선율을 음악극 ‘베니스의 카니발’에 집어넣어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이 선율이 유별난 것은 사랑받는 동요이자 수많은 음악 대가들이 이 선율을 주제로 자기만의 작품을 (주로 변주곡 형태로) 썼기 때문입니다. 바이올린의 귀신으로 불렸던 파가니니가 먼저 ‘베니스의 카니발 변주곡’을 작곡했고, 쇼팽도 ‘파가니니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변주곡을 썼습니다. 트럼펫의 대가 클라크는 트럼펫용으로, 기타 거장 타레가는 기타용으로 변주곡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1952년 나온 ‘창문에 있는 강아지 얼마죠?(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라는 노래도 이 선율을 변형한 것입니다. 19세기에는 유명한 선율을 변주곡으로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 이유로 이 시기에 악기의 연주 기법이 급속히 발달했고 수많은 명인이 출현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자신의 서커스적 기교를 널리 알리는 데 이 방법이 적합했던 것입니다. ‘베니스의 카니발 변주곡’을 앞장서 만들었던 파가니니도 그의 ‘카프리스 24번’이 수많은 변주의 대상이 됐습니다. 브람스, 리스트, 라흐마니노프와 그 밖의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이 이 작품을 주제로 변주곡과 광시곡을 만들었습니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첫날 연주회에서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이 제주도립 서귀포관악단과 협연하는 잠피에리 ‘베니스의 카니발 변주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9월 13일 같은 곳에서 열리는 ‘플래티넘 시리즈’ 콘서트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주제에 의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크와메 라이언 지휘, 조이스 양 피아노 협연으로 연주합니다. ‘내 모자 세모났네’에 의한 다양한 변주는 다음 QR코드와 인터넷 주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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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공산독재 治下 쇼스타코비치의 이중어법

    도시는 1년째 적군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보급로는 막혔고 사람들은 비둘기나 생쥐, 벌레 한 마리까지 눈앞을 스쳐가게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해골처럼 마른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져 죽어갔습니다. 그런 거리에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 동무들은 모이시오!” 앙상한 얼굴로 악기를 든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연주가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습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활을 든 손이 사정없이 떨렸고 관악기를 불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몇몇 연주가들이 “힘을 아껴뒀다 본 공연 때 써야 되지 않겠소?”라고 항변했습니다. 지휘자가 “연습 없이는 배급 없다”고 하자 연습은 재개됐습니다. 1942년 8월 9일, 쇼스타코비치(사진)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레닌그라드 시 초연은 도시 전체와 소련 전역에 생중계됐습니다. 1941년 나치의 소련 침공과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그린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독특합니다. 특히 1악장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습니다. 라벨의 ‘볼레로’처럼 단순한 리듬 속에 단순한 주제가 계속 반복되면서 변주됩니다. 음량이 커지면서 작은북이 기관총의 기총소사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금관의 빙빙 도는 반음은 전폭기의 공습을 연상시키죠. 엄청난 음향, 엄청난 소음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있습니다. 과연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을 통해 히틀러의 비인간적인 폭력만 그린 것일까요. 1980년대 후반 소련에서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진행되면서 다른 증언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나치 침공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 생전의 지인이 작곡가에게 작품의 뜻을 묻자 그는 “이 곡이 단지 파시즘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조국(소련)에 만연한 잔학한 독재와 반인간성에 대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살았던 쇼스타코비치가 예술적 양심을 지키면서 생존했던 비결은 음악적 중의법(重義法) 또는 이중어법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의 승리를 그린 것으로 비쳐 공식매체의 찬양을 받았던 교향곡 5번의 4악장도 그렇습니다. 승리를 그린 피날레 같지만, 작곡가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지인들의 증언입니다. “잘 들어봐. 등에 칼을 대고 ‘앞으로 가, 웃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땅에 묻힌 지 오래인 볼셰비즘을 새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는 어느 때나 권력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 승자인지는 한참 지난 뒤 가려질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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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감의 천재 작곡가들이 알게 모르게 공유했던 패턴

    하늘이 찌푸린 날, 모차르트(사진)의 ‘눈물 글썽한’ 교향곡, 40번 g단조(1788)를 듣습니다. “아, 천재의 영감이 가득 찬 곡이에요. 어떻게 이런 게 머리에 떠올랐을까요!” 이렇게 말하며 자신마저 눈물을 글썽이던 누군가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잠깐, 이런 슬픔과 애상이 단지 영감만으로 가능했을까요? 모차르트가 2년 앞서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케루비노의 노래 ‘어떻게 할지 몰라(Non so piu cosa son)’를 들어봅니다. 교향곡 40번 첫 악장 시작 부분과 리듬이 똑같습니다. 저미는 듯한 반주부 리듬도 같습니다. 음정이 6도 도약했다가 떨어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단조가 아니라 장조 선율인 만큼 절절한 슬픔의 표현은 아니지만, 이 노래도 교향곡 40번 첫 악장처럼 빠른 템포로 열정에 휩쓸리는 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사를 볼까요. “내가 누군지,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어. 한순간 마음이 불타오르는 듯하다가, 다음 순간엔 얼음처럼 차가워지니.” 많은 사람이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이나 피아노협주곡 20번처럼 열정에 불타는 작품에 대해 ‘시대의 천진함에서 동떨어진 천재의, 영감의 산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차르트 이전 전(前)고전파시대부터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계에는 이른바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양식이 유행했습니다. 문학 미술계의 ‘질풍노도’에 맞춰 뜨거운 열정과 솟구치는 슬픔을, 많은 경우 일정한 패턴에 따라,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모차르트 40번 교향곡에서는 마지막 4악장의 솟구치는 선율도 인상 깊죠? 이 선율도 하이든이 이미 그 16년 전 작곡한 교향곡 45번 ‘고별’의 마지막 악장과 비슷합니다. 모차르트가 ‘모방’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아니 음악사상의 여러 시대마다 작곡가들이 알게 모르게 공유하는 ‘패턴’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영감’은 없었던 걸까요? 완전히 ‘새롭게’ 정열적인 것으로만 알고 있던 작품들이 알고 보니 시대의 패턴과 경향을 따른 것이었다면 그의 독창성은 사라지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재와 독창성은 각각의 시대 속에서, 일정한 경향들 속에서도 발휘되어 평범한 것들을 뚫고 솟구쳐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25일은 모차르트가 교향곡 40번을 완성했다고 일기에 기록한 지 225년이 되는 날입니다. 다음의 링크와 QR코드에서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질풍노도’ 선율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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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후텁지근 여름 ‘로마 3부작’ 강추합니다

    지난주 목요일인 11일, 이탈리아 유력지 레푸블리카 인터넷판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로마 남쪽 아피아 가도(街道)에서 전선 공사 중 땅 밑에서 2300년 전 고대 로마의 도로층 유적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새로 발견된 도로 유적은 오늘날 지표의 70∼140cm 아래에 있으며, 반듯한 돌이 깔린 깔끔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 연고가 있어 요즘도 이탈리아 뉴스를 읽고 있는 지인이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를 작곡한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사진)를 떠올렸습니다. 이 기사가 나오기 이틀 전인 7월 9일이 그의 생일이었습니다. ‘로마의 소나무’ 4악장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에서 레스피기는 원정을 승리로 이끈 고대 로마 병사들이 이 옛길을 통해 개선하는 모습을 화려한 소리의 회화로 그려냈습니다. 단지 7월에 그의 생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더운 여름에 듣기 좋은 음악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마다 저는 레스피기의 작품을 추천하곤 했습니다. 레스피기의 작품으로는 ‘로마 3부작’으로 불리는 교향시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영원의 도시’ 로마가 품고 있는 문화재와 아름다운 정경들을 관현악의 찬란한 시로 묘사했습니다. ‘로마의 소나무’ 중 3악장 ‘자니콜로의 소나무’도 근사합니다. 로마의 여름밤, 언덕에 서있는 소나무에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레스피기는 이탈리아 기악을 부흥시킨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20세기 초, 이탈리아는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가 유명했던 나머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유럽의 기악을 주도했던 역사는 잊혀지다시피 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레스피기는 옛 작곡가들의 기악음악을 모아 현대인의 귀에 친숙하게 들리도록 편곡했습니다. ‘옛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 1∼3집, ‘새(鳥·Gli Uccelli)’ 모음곡이 이런 재창작 작업의 대표적인 산물입니다. 어떤 곡들이냐고 물어본다면, ‘타일과 흰 석회만으로 장식된 지중해 변의 건물 안에서 꽃내음을 맡으며 잠시 쉬는 것 같은 향기가 이 작품들 속에 있다’고 설명하겠습니다. 유난히 습한 이 여름, 이 작곡가의 작품들을 들으며 뽀송한 햇살과 푸른 하늘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다음의 링크와 QR코드에서 레스피기의 대표작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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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벤저민 프랭클린이 발명한 ‘글라스 하모니카’

    이달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었습니다. 많은 미국인이 ‘건국의 아버지’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고 기념하는 날이죠. 7월이면 저는 특히 그중 한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사진)을 떠올립니다. 그가 발명한 악기 ‘글라스(유리) 하모니카’ 때문입니다. ‘유리잔 문지르기’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으십니까. 손가락에 물을 묻혀 유리잔 윗부분을 일정한 속도로 문지르면 ‘찌잉∼’ 하는 소리가 납니다. 진기명기 보유자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도 종종 등장하죠. 그런데 이 소리를 ‘악기’로 발전시킨 인물이 프랭클린이었습니다. 유리잔을 문질러 음악을 연주한 첫 인물은 아일랜드 음악가 리처드 폭리치로 알려졌습니다. 1740년대 영국 런던에서 유리잔을 여러 개 늘어놓고 물을 적당히 부어 ‘튜닝’을 한 다음 연주를 선보였던 거죠. 프랭클린이 이 소리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유리잔 연주를 독립된 악기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1762년 7월 13일, 그는 새로운 악기를 사람들 앞에 선보였습니다. 새 악기는 모양부터 유리잔과는 달랐습니다. 오목한 유리그릇 37개를 가로로 배열했습니다. 페달을 밟으면 유리그릇들이 한꺼번에 돌아갑니다. 이때 젖은 손가락으로 유리를 만지면 특유의 소리가 났습니다. 전통의 유리잔과는 달리 열 손가락으로 동시에 여러 음의 화음을 낼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부르는 ‘글라스 하모니카’라는 이름도 프랭클린이 붙인 ‘아르모니카’(armonica·이탈리아어로 조화롭다는 뜻)라는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소리는 어땠을까요? 아래 QR코드와 인터넷 링크를 통해 이 악기의 소리를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글쎄요, 제 지인들은 좋은 인상을 얘기한 경우가 드물었습니다만 프랭클린 자신은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악기는 한때 인기를 누렸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같은 대작곡가들도 이 악기를 위해 곡을 썼습니다. 그러나 19세기를 거치면서 이 악기는 혹평 속에 점차 잊혀졌고, 20세기 말에야 옛 악기 복원의 유행 속에 재발견됐습니다. 악기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벤저민 프랭클린. 그의 악기는 음악사 속에서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 외교관, 전략가, 비즈니스 활동가로 평가됩니다. 미국 독립에 기여했던 정치가로서뿐만 아니라 구름 속으로 연을 날려 번개가 전기의 일종임을 증명한 일도 널리 알려져 있죠. 말하자면 당대의 ‘다빈치적인 전인(全人)’이었다고 할까요. 지식이 전문화되는 한편 파편화되는 오늘날, 그의 이름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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