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아이들이 오는 곳에 야생동물들을 울타리도 없이 풀어두다니… 아찔하네요.”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의 A실내동물원. 전시된 동물은 100종이 넘고 주말이면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 이곳에는 빈투롱(고양잇과 동물) 카피바라(설치류) 등 대형견 크기의 동물을 비롯해 카멜레온 왈라비 고슴도치 등의 야생동물들이 관람객과 채 1m도 안 되는 거리에 울타리조차 없이 전시돼 있었다. 관람객들이 동물을 만지고 쓰다듬었지만 제재하는 직원은 없었다. 서울의 B실내동물원에서는 손도 씻지 않고 긴코너구리 먹이주기 체험에 나선 관람객에게 ‘등을 쓰다듬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두 실내동물원을 둘러본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장병진 씨(32)는 “빈투롱 같은 동물이 시민을 공격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며 “특히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작은 동물에게 물려도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장 씨는 A동물원에서 관람객과 30cm 거리에 있던 카멜레온을 가리키며 “영아들은 파충류를 만지기만 해도 살모넬라균(식중독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대전에서 우리를 탈출한 퓨마 ‘뽀롱이’가 사살된 뒤 동물원 안전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실내동물원의 관리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실내동물원은 총 32곳. 대부분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야생동물 먹이주기, 만지기 체험을 할 수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임에도 안전장치가 미흡해 사고의 위험이 있다. 실내동물원 관계자들은 “울타리 없이 노출된 동물은 순한 동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 씨는 “온순한 동물이라고 해도 위협을 느끼면 갑자기 공격성을 띨 수 있다”며 “사람이 자신을 만지는 것 자체가 동물들에게 큰 위협이자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찾은 동물원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아 정형행동(우리를 빙빙 도는 등 이유 없이 반복하는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발견됐다. 실제로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5월 말 경기도에 사는 김모 씨(29·여)는 19개월 된 두 살배기 딸과 함께 C실내동물원을 찾았다. 김 씨의 딸은 먹이를 주려고 우리에 뚫어 놓은 구멍에 손을 넣었다가 토끼에게 물려 왼손 검지를 열 바늘 넘게 꿰맸다. 해당 동물원 관계자는 “토끼는 반려동물로도 키울 만큼 순한 종이고 구멍의 크기가 작아 사고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실내동물원에서 동물들에게 물리거나 할퀴었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영국 호주 등 동물원이 허가제로 운영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동물원은 등록제로 운영돼 일정 시설과 인력 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사육시설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시설 규제도 받지 않는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아이들이 오는 곳에 야생동물들을 울타리도 없이 풀어두다니…아찔하네요.” 28일 오후 경기도의 A 실내 동물원. 전시된 동물은 100종이 넘고 주말이면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 이 곳에는 빈투롱(고양이과 동물)·카피바라(설치류) 등 대형견 크기의 동물을 비롯해 카멜레온·왈라비·고슴도치 등의 야생동물이 관람객과 채 1m도 안 되는 거리에 울타리조차 없이 전시돼 있었다. 관람객들이 동물을 만지고 쓰다듬었지만 제재하는 직원은 없었다. 서울의 B 실내 동물원에서는 손도 씻지 않고 긴코너구리 먹이주기 체험에 나선 관람객에게 ‘등을 쓰다듬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두 실내 동물원을 둘러 본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장병진 씨(32)는 “빈투롱 같은 동물이 시민을 공격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며 “특히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작은 동물에 물려도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장 씨는 A 동물원에서 관람객과 30cm 거리에 있던 카멜레온을 가리키며 “영아들은 파충류를 만지기만 해도 살모넬라균(식중독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대전에서 우리를 탈출한 퓨마 ‘뽀롱이’가 사살된 뒤 동물원 안전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실내 동물원의 관리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실내 동물원은 총 32곳. 대부분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야생동물 먹이주기·만지기 체험을 할 수 있어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임에도 안전장치가 미흡해 사고의 위험이 있다. 실내 동물원 관계자들은 “울타리 없이 노출된 동물은 순한 동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 씨는 “온순한 동물이라고 해도 위협을 느끼면 갑자기 공격성을 띨 수 있다”며 “사람이 자신을 만지는 것 자체가 동물들에게 큰 위협이자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찾은 동물원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아 정형행동(우리를 빙빙 도는 등 이유 없이 반복하는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발견됐다. 실제로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5월 말 경기도에 사는 김모 씨(29·여)는 19개월 된 두 살 배기 딸과 함께 C 실내 동물원을 찾았다. 김 씨의 딸은 먹이를 주려고 우리에 뚫어 놓은 구멍에 손을 넣었다가 토끼에게 물려 왼손 검지를 열 바늘 넘게 꿰맸다. 해당 동물원 관계자는 “토끼는 반려동물로도 키울 만큼 순한 종이고 구멍의 크기가 작아 사고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실내 동물원에서 동물들에게 물리거나 할퀴었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영국·호주 등 동물원이 허가제로 운영되는 해외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동물원은 등록제로 운영돼 일정 시설·인력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사육시설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시설 규제도 받지 않는다. 장 씨는 “동물원 관리 소홀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수행비서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1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검찰이 21일 항소이유서를 서울고법의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본보가 입수한 항소이유서에 따르면 검찰은 1심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안 전 지사의 유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위력의 범위와 간음·추행죄의 성립 범위를 기존 대법원에 비해 좁게 해석했다는 점 △김 씨의 행동이 성폭력 피해자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잘못 판단했다는 점 등을 항소 이유로 언급했다. 특히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지켜야 할 법령을 어겼다고 지적하며 항소심 재판부에 “더 이상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엄정한 소송지휘권을 행사해 달라”고 촉구했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김 씨에 대한 변호인단의 부적절한 반대 신문을 방치한 점, 재판 과정에서 ‘정조’를 거론한 점, 재판 비공개 요청을 불허해 김 씨가 2차 피해를 겪은 점 등을 문제 삼았다. 검찰 관계자는 “항소심에서는 재판부가 성폭력 재판이 지켜야 할 법령을 제대로 지켜줬으면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법원이 심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직접 재판 절차를 문제 삼으며 재판부에 소송지휘권의 엄정한 행사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검찰은 1심 재판부가 김 씨의 ‘피해자다움’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합리적 의심이라 보기 어렵다’며 반박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 “원심은 김 씨가 안 전 지사의 비서로서 지시나 부름에 쉽게 거역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도 최근 한 기고문을 통해 “피해자다운 것이 업무를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사는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안 전 지사 측은 “1심 판결은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근거한 것”이라며 “재판부가 위력의 범위를 특별히 좁게 해석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안 전 지사의 항소심 재판은 성폭력 전담부서인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에 배당됐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11월 결혼할 예정인 권모 씨(26·여)는 최근 서울 중랑구의 ‘예비시댁’으로 이사했다. 치솟는 서울 집값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예비신랑과 함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시부모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두 사람의 생각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는 방 한 칸을 내줬다. 권 씨는 “주변에서 시집살이를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서울 집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며 “1, 2년 정도 시부모와 함께 살면서 돈을 모으다가 주택 청약에 성공하면 분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단칸방 신혼’은 집들이 생략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결혼 문화가 바뀌고 있다. 자발적으로 시댁·처가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캥거루 신혼’이 늘어나는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12월 결혼 예정인 김모 씨(37·여)는 서울 동작구의 시댁에 신방을 꾸리기로 했다. 시부모와의 마찰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서울은 전세도 너무 비싸 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 결국 김 씨와 예비신랑은 무리하게 빚을 내 전세를 구하느니 부모 집에 얹혀살며 시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빨리 돈을 모으고 나간다는 조건으로 시부모에게서 허락을 받아 합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단칸방 신혼생활’이 흔해지면서 신혼 집들이를 생략하는 커플도 많아지고 있다. 서대문구의 33.3m²(10평) 규모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임모 씨(29·여)는 신혼 집들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임 씨는 “손님이 적어도 5, 6명은 올 텐데 집이 비좁아 집들이를 할 수가 없다”며 “친척, 친구들에게 ‘거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초대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혼자 자취하던 오피스텔에서 신혼을 시작하기로 한 A 씨(29)는 “새 집으로 이사하지 않고 살던 방에서 시작하는데 구태여 집들이를 하기가 머쓱해 생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금 예단=집값 10%’ 공식 깨져 ‘현금 예단=집값의 10%’라는 암묵적인 공식도 깨지고 있다. 신랑이 집을 마련하는 경우 신부는 집값의 10%를 현금으로 시댁에 전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집값이 치솟으면서 현금 예단비도 덩달아 오르자 ‘10% 룰’을 포기하고 적당한 선에서 돈을 준비하는 신부가 많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부 B 씨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시부모가 아들의 신혼집으로 내주려고 몇 년 전 3억 원대에 구입한 서대문구 아파트가 최근 6억5000만 원까지 오른 것. ‘집값 10%’ 공식대로라면 3000만 원 선이었던 현금 예단이 두 배가 넘는 6500만 원으로 불어난다. 고민하던 B 씨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4000만∼5000만 원 선에서 현금 예단을 준비하기로 했다. 예단, 예물, 웨딩 패키지 등을 간소화하는 ‘스몰 웨딩’은 더욱 보편화되고 있다. 부모가 먼저 스몰 웨딩을 권하기도 한다. 올 12월 결혼하는 이모 씨(26)는 “한 푼이라도 아껴 얼른 집을 사라는 양가 부모의 의견대로 예단, 예물은 생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웨딩 컨설팅 업체 ‘다이렉트 결혼 준비’ 장용준 대표는 “이전에는 양가 부모가 스몰 웨딩에 반대하는 일이 흔했지만 요즘은 ‘생략하고 집값에 보태라’며 먼저 권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부모 집 물려받으려 ‘효도 계약서’까지 이달 말 결혼하는 정모 씨(30)는 최근 전세계약 잔금을 모두 치렀다. 힘들게 전셋집을 구했지만 전세자금으로 대출받은 2억 원을 갚아나갈 생각에 막막하다. 정 씨는 “시작부터 빚을 깔고 앉은 듯한 느낌”이라며 “집값만 아니었어도 훨씬 풍족했을 텐데 빠듯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부모의 집을 물려받기 위해 ‘눈치 보기 효도’에 나서는 젊은 부부들이 종종 있다. 집을 물려받을 때 ‘한 달에 2회 이상 부모 방문’, ‘한 달에 2회 이상 부모에게 연락’ 등 조건이 담긴 ‘효도 계약서’를 쓰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박정국 KEB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세무사는 “법적 효력을 갖는 효도 계약서 작성에 대한 상담 문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부동산이 부모에게 환수된다”고 말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11월 결혼 예정인 권모 씨(26·여)는 최근 서울 중랑구의 ‘예비시댁’으로 이사했다. 치솟는 서울 집값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예비신랑과 함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시부모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두 사람의 생각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는 방 한 칸을 내줬다. 권 씨는 “주변에서 시집살이를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서울 집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며 “1, 2년 정도 시부모와 함께 살면서 돈을 모으다가 주택 청약에 성공하면 분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캥거루 신혼’… ‘단칸방 신혼’은 집들이 생략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결혼 문화가 바뀌고 있다. 자발적으로 시댁·처가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캥거루 신혼’이 늘어나는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12월 결혼 예정인 김모 씨(37·여)는 서울 동작구의 시댁에 신방을 꾸리기로 했다. 시부모와의 마찰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서울은 전세도 너무 비싸 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 결국 김 씨와 예비신랑은 무리하게 빚을 내 전세를 구하느니 부모 집에 얹혀살며 시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빨리 돈을 모으고 나간다는 조건으로 시부모에게서 허락을 받아 합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룸·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단칸방 신혼생활’이 흔해지면서 신혼 집들이를 생략하는 커플도 많아지고 있다. 서대문구의 33.3㎡(10평) 규모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임모 씨(29·여)는 신혼 집들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임 씨는 “손님이 적어도 5,6명은 올 텐데 집이 비좁아 집들이를 할 수가 없다”며 “친척·친구들에게 ‘거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초대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혼자 자취하던 오피스텔에서 신혼을 시작하기로 한 A 씨(29)는 “새 집으로 이사하지 않고 살던 방에서 시작하는데 구태여 집들이를 하기가 머쓱해 생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금 예단=집값 10%’ 공식 깨져 ‘현금 예단=집값의 10%’라는 암묵적인 공식도 깨지고 있다. 신랑이 집을 마련하는 경우 신부는 집값의 10%를 현금으로 시댁에 전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집값이 치솟으면서 현금 예단비도 덩달아 오르자 ‘10% 룰’을 포기하고 적당한 선에서 돈을 준비하는 신부들이 많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부 B 씨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시부모가 아들의 신혼집으로 내주려고 몇 년 전 3억 원대에 구입한 서대문구 아파트가 최근 6억5000만 원까지 오른 것. ‘집값 10%’ 공식대로라면 3000만 원선이었던 현금 예단이 두 배가 넘는 6500만 원으로 불어난다. 고민하던 B 씨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4000만~5000만 원선에서 현금 예단을 준비하기로 했다. 예단·예물·웨딩 패키지 등을 간소화하는 ‘스몰 웨딩’은 더욱 보편화되고 있다. 부모가 먼저 스몰 웨딩을 권하기도 한다. 올 12월 결혼하는 이모 씨(26)는 “한 푼이라도 아껴 얼른 집을 사라는 양가 부모의 의견대로 예단·예물은 생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웨딩 컨설팅 업체 ‘다이렉트 결혼준비’ 장용준 대표는 “이전에는 양가 부모가 스몰 웨딩에 반대하는 일이 흔했지만 요즘은 ‘생략하고 집값에 보태라’며 먼저 권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부모 집 물려받으려 ‘효도 계약서’까지 이달 말 결혼하는 정모 씨(30)는 최근 전세계약 잔금을 모두 치렀다. 힘들게 전셋집을 구했지만 전세자금으로 대출 받은 2억 원을 갚아나갈 생각에 막막하다. 정 씨는 “시작부터 빚을 깔고 앉은 듯한 느낌”이라며 “집값만 아니었어도 훨씬 풍족했을 텐데 빠듯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부모의 집을 물려받기 위해 ‘눈치 보기 효도’에 나서는 젊은 부부들이 종종 있다. 집을 물려받을 때 ‘한 달에 2회 이상 부모 방문’, ‘한 달에 2회 이상 부모에게 연락’ 등 조건이 담긴 ‘효도 계약서’를 쓰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박정국 KEB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세무사는 “법적 효력을 갖는 효도 계약서 작성에 대한 상담 문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부동산이 부모에게 환수된다”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서울에 사는 이모 씨(37)는 1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A백화점의 ‘VIP 주차 스티커’를 구입했다. 1년 이용권 가격은 45만 원.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씨가 구입한 스티커를 붙인 차량은 A백화점의 모든 지점에서 하루 5시간씩 무료 주차가 가능하고 대리 주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쇼핑과 외식을 위해 주말에 명동과 잠실 일대를 자주 찾는다는 이 씨는 “금액이 만만찮지만 도심 나갈 때마다 주차난에 시달리느니 주차 스티커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심한 도심 주차난에 일부 시민이 백화점과 시내 면세점의 VIP 주차 스티커를 사서 붙이는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백화점 주차 관리의 빈틈을 노려 VIP로 위장한 ‘주차장 카(Car)멜레온’들은 주로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통해 주차 스티커를 구입한다. 올해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주차 스티커 거래 게시물은 수십 건에 이른다. 주로 거래되는 A백화점의 주차 스티커는 등급에 따라 ‘특정 지점·일일 3시간 무료 주차, 대리 주차 미제공’부터 ‘전 지점·영업시간 내내 무료 주차, 대리 주차 제공’까지 4단계로 혜택이 나뉜다. 가장 낮은 등급은 5만∼10만 원, 가장 높은 등급은 75만∼10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주차권을 산 사람들은 ‘도심 주차 지옥 때문에 마지못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도심에 주차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주차요금 역시 만만치 않다. 백화점·시내면세점은 도심에 위치한 곳이 많고 VIP 주차 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어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요일인 16일 오후 서울 중구 A백화점 앞에는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만차 상태인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면 30∼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지하주차장 입구 옆에 위치한 VIP 주차장 1층은 곳곳이 비어 있었다. 또 백화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면세점 VIP 고객을 위한 주차장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은 줄을 설 필요 없이 바로 진입이 가능하고 주차 공간도 50대 이상 남아 있었다. 다른 대도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VIP 주차권을 사려다 실패했다는 부산시민 정모 씨(23)는 “도심부인 서면에서는 백화점 앞에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데 30분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A백화점은 홈페이지를 통해 2016년부터 ‘우수고객 주차권을 양도하면 회원 자격이 박탈된다’고 공지하고 있다. A백화점 관계자는 “주차권을 양도해선 안 된다고 해마다 알리고 있는데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서울에 사는 이모 씨(37)는 1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A백화점의 ‘VIP 주차 스티커’를 구입했다. 1년 이용권 가격은 45만 원.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씨가 구입한 스티커를 붙인 차량은 A백화점의 모든 지점에서 하루 5시간씩 무료 주차가 가능하고 대리 주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쇼핑과 외식을 위해 주말에 명동과 잠실 일대를 자주 찾는다는 이 씨는 “금액이 만만치 않지만 도심 나갈 때마다 주차난에 시달리느니 주차 스티커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심한 도심 주차난에 일부 시민들이 백화점과 시내 면세점의 VIP 주차 스티커를 사서 붙이는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백화점 주차 관리의 빈틈을 노려 VIP로 위장한 ‘주차장 카(Car)멜레온’들은 주로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통해 주차 스티커를 구입한다. 올해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올라 온 주차 스티커 거래 게시물은 수십 건에 이른다. 주로 거래되는 A백화점의 주차 스티커는 등급에 따라 ‘특정 지점·일일 3시간 무료주차, 대리 주차 미제공’부터 ‘전 지점·영업시간 내내 무료주차, 대리 주차 제공’까지 4단계로 혜택이 나뉜다. 가장 낮은 등급은 5만~10만 원, 가장 높은 등급은 75만~10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주차권을 산 사람들은 ‘도심 주차 지옥 때문에 마지못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도심에 주차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주차요금 역시 만만치 않다. 백화점·시내면세점은 도심에 위치한 곳이 많고, VIP 주차 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요일인 16일 오후 서울 중구 A백화점 앞에는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줄지어 서있었다. 만차 상태인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면 30~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지하주차장 입구 옆에 위치한 VIP 주차장 1층은 곳곳이 비어 있었다. 또 백화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면세점 VIP 고객을 위한 주차장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은 줄을 설 필요 없이 바로 진입이 가능하고 주차 공간도 50대 이상 남아 있었다. 다른 대도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VIP 주차권을 사려다 실패했다는 부산시민 정모 씨(23)는 “도심부인 서면에서는 백화점 앞에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데 30분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A백화점은 홈페이지를 통해 2016년부터 ‘우수고객 주차권을 양도하면 회원 자격이 박탈된다’고 공지하고 있다. A백화점 관계자는 “주차권을 양도해선 안 된다고 해마다 알리고 있는데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전봇대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태풍이라도 왔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 1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골목길. 주택과 식당, 호텔이 밀집해 있어 시민들과 외국인 여행객의 통행이 잦은 곳이다. 그런데 골목 길가에는 높이 6m, 밑지름 약 13cm의 전봇대가 오른쪽으로 10도가량 기운 채 서 있었다. 전봇대가 세워져 있는 콘크리트 바닥도 금이 가 있었다. 전봇대를 살펴본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이 전봇대에는 통신선이 마구 얽혀 있었고 통신선 뭉치는 골목 끝자락까지 100m가량 이어져 있다. 홍 교수는 “전봇대가 넘어지면 행인이나 차량을 덮칠 수 있고 100kg 넘는 선 무더기가 떨어져 골목을 걷던 사람이 다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봇대에서 각각 60m,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된 전봇대 2개도 통신선으로 연결돼 있다. 60m 떨어진 전봇대 역시 오른쪽으로 4.5도가량 기울어 있었다. 10도 기울어 있는 전봇대가 넘어진다면 다른 2개의 전봇대도 연쇄적으로 쓰러질 수 있다고 홍 교수는 분석했다. 100m 떨어진 전봇대에는 전기선도 연결돼 있다. 주변 건물의 지붕은 비닐 등 가연성 물질로 덮여 있어 전봇대가 넘어지면 대형 화재와 감전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홍 교수가 “미친 짓”이라는 격한 표현을 쓴 이유다. 골목 주민들은 지난해 4월경부터 지속적으로 중구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직접 중구에 민원을 넣었다는 50대 주민 오모 씨는 “전봇대가 너무 많이 기울어 있어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쉽게 쓰러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아무 조치가 없다. 상도유치원도 이러다 무너진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골목과 인접한 충무파출소는 주민들의 민원을 세 차례 구청에 전달했다. 파출소의 한 경찰관은 “특히 태풍 솔릭이 수도권을 지나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던 8월 말 주민들의 걱정이 커서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별 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중구는 지난해 1월부터 전봇대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봇대가 누구 소유인지 불분명하고 사유재산이라 강제로 조치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전봇대엔 여러 통신사의 통신 케이블이 거치돼 있는데 소유자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중구 관계자는 “민원을 접수한 이후 관내 모든 통신사에 ‘위험 전봇대의 정비 및 안전조치를 요청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지만 ‘전봇대가 우리 것’이라고 나선 통신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올 7월 A통신사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전봇대를 다시 세우겠다”고 나섰다. A통신사는 기울어진 전봇대를 뽑아서 다시 설치하고, 통신선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30m 거리에 전봇대를 하나 더 세우기로 하고 중구에서 굴착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 세울 전봇대 근처의 호텔이 반대하고 나섰다. 호텔 관계자는 “전봇대가 설치되면 미관상 안 좋은 데다 소음, 진동 때문에 영업에 방해가 된다”며 “충분한 설명과 설득 없이 건물 옆에 전봇대를 세우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A통신사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통신선을 땅 아래 매설하는 지중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A통신사는 “지중화는 최후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본보가 취재에 착수하자 중구 측은 11일 다시 현장을 둘러보고 새 전봇대를 설치할 다른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구가 전봇대를 강제로 철거하고 새로 세울 권한은 없지만 구에서 적극 나서서 인근 주민들과 조율하면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공간입니다. 개가 짖지 않도록 해 주세요!” 일요일인 2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한 주민이 소형 확성기를 들고 바깥으로 소리를 쳤다. 아파트 울타리 너머 ‘애견 동반 카페’에 모인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자 소음을 참다못한 주민 A 씨(35·여)가 카페를 향해 항의를 한 것. 이용객들이 자유롭게 애견을 데려 올 수 있는 이 카페에는 495m³(약 150평) 규모의 ‘애견 운동장’이 설치돼 있다. 이날 오후에는 개 10여 마리가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힘차게 짖으며 달리고 있었다. 이 카페는 애견 운동장이 있어서 개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났고, 수도권 각지에서 애견인들이 몰려든다.○ 주민들 “개 짖는 소리에 주말은 지옥” 애견 인구가 늘면서 도심에 애견 카페나 애견 호텔 등 애견 관련 시설물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소음과 악취 때문에 인근 주민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확성기 방송’을 했던 A 씨가 사는 아파트의 동과 해당 애견 카페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15m에 불과하다. A 씨는 “4개월 전 아파트 단지 앞에 애견 카페가 생긴 이후 올해 네 살인 딸이 자다가 개 짖는 소리에 놀라서 깨서 울곤 한다. 집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일부러 외출도 한다”고 토로했다. 같은 동 주민 김모 씨(41·여)는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더운 날도 방 창문을 닫아 둔다. 석 달 전에 이사를 왔는데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옆 동 주민 남모 씨(41)도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 층간소음만큼 심한 소음에 시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특히 주말에는 집이 휴식처가 아니라 지옥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애견과 함께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멀리에서도 찾아오기 때문에 평소보다 소음이 더 심하다. 주민들은 지난달 말 주민 공청회와 입주자 대표회의를 열고 카페 소음에 대한 항의 현수막을 걸기로 결의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애견 시설과 주민 간의 갈등은 종종 빚어진다.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는 330m² 규모의 야외 운동장을 갖춘 애견 카페와 인접해 있다. 아파트 가장 가까운 동과 카페의 직선거리는 50m 정도다. 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아 카페 측은 내부에 ‘개가 짖지 않게 말려 주세요’라는 내용의 안내판을 설치했다. 충북 청주시에서는 5월 주택가에 애견 호텔이 들어서자 주민들이 “소음과 악취가 심각하다”며 반발했다.○ 카페 측 “합법적 영업”…법 미비가 갈등 원인 제공 그렇다고 카페 측만 탓하기도 어렵다. 카페 업주 김모 씨(47)는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것인데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과 대화해 방음 시설 설치를 논의할 의향은 있지만 가게 이전이나 야외 운동장 철거는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들로서도 뾰족한 해법이 없다. 남양주시의 해당 읍사무소 관계자는 “애견 카페 관련 민원이 많지만 카페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난감해했다. 동물보호법에는 애견 호텔, 애견 미용실 등 ‘동물 관련 사업장’의 내부 시설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입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애견 카페는 동물 관련 사업장이 아닌 식품접객업소로 분류돼 아예 동물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애견 놀이터나 운동장 등 외부에 노출된 시설은 사업체를 등록해야 하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아무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 동물 울음소리는 소음진동관리법상 소음에 해당하지 않아 지자체가 관리하기 어렵다. 청주시 관계자는 “관련 법규가 없어 갈등 중재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현재로서는 업주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하는 정도”라고 말했다.남양주=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공간입니다. 개가 짖지 않도록 해 주세요!” 일요일인 2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한 주민이 소형 확성기를 들고 바깥으로 소리를 쳤다. 아파트 울타리 너머 ‘애견 동반 카페’에 모인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자 소음을 참다못한 주민 A 씨(35·여)가 카페를 향해 항의를 한 것. 이용객들이 자유롭게 애견을 데려 올 수 있는 이 카페에는 495㎥(약 150평)규모의 ‘애견 운동장’이 설치돼있다. 이날 오후에는 개 10여 마리가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힘차게 짖으며 달리고 있었다. 이 카페는 애견 운동장이 함께 있어서 개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났고, 수도권 각지에서 애견인들이 몰려든다.● 주민들 “개 짖는 소리에 주말은 지옥” 애견 인구가 늘면서 도심에 애견 카페나 애견 호텔 등 애견 관련 시설물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소음과 악취 때문에 인근 주민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확성기 방송’을 했던 A 씨가 사는 아파트의 동과 해당 애견 카페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15m에 불과하다. A 씨는 “올해 네 살인 딸이 자다가 개 짖는 소리에 놀라서 깨서 울곤 한다. 집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일부러 외출을 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같은 동 주민 김모 씨(41·여)는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더운 날도 방 창문을 닫아 둔다. 세 달 전에 이사를 왔는데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옆 동 주민 남모 씨(41)도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다. 층간소음만큼 심한 소음에 시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특히 주말에는 집이 휴식처가 아니라 지옥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애견과 함께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멀리에서도 찾아오기 때문에 평소보다 소음이 더 심하다. 주민들은 지난달 말 주민 공청회와 입주자 대표회의를 열고 카페 소음에 대한 항의 현수막을 걸기로 결의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애견 시설과 주민 간의 갈등은 종종 빚어진다.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는 330㎡ 규모의 야외 운동장을 갖춘 애견 카페와 인접해 있다. 아파트 가장 가까운 동과 카페의 직선거리는 50m 정도다. 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아 카페 측은 내부에 ‘개가 짖지 않게 말려주세요’라는 내용의 안내판을 설치했다. 충북 청주시에서는 5월 주택가에 애견 호텔이 들어서자 주민들이 “소음과 악취가 심각하다”며 반발했다.● 카페 측 “합법적 영업”…법 미비가 갈등 원인 제공 그렇다고 카페 측만 탓하기도 어렵다. 카페 업주 김모 씨(47)는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것인데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과 대화해 방음 시설 설치를 논의할 의향은 있지만 가게 이전이나 야외 운동장 철거는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들로서도 뾰족한 해법이 없다. 남양주시의 해당 읍사무소 관계자는 “애견 카페 관련 민원이 많지만 카페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난감해했다. 동물보호법에는 애견 호텔·애견 미용실 등 ‘동물 관련 사업장’의 내부 시설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입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애견 카페는 동물 관련 사업장이 아닌 식품접객업소로 분류돼 아예 동물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애견 놀이터나 운동장 등 외부에 노출된 시설은 사업체를 등록해야 하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아무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 동물 울음소리는 소음진동관리법상 소음에 해당하지 않아 지자체가 관리하기 어렵다. 청주시 관계자는 “관련 법규가 없어 갈등 중재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현재로서는 업주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남양주=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이낙연 국무총리가 마셨던 ‘작두콩 커피’입니다. 비염 기관지에도 좋아요.”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8 A FARM SHOW(에이팜쇼)―창농·귀농 박람회’. 행사장에 마련된 작두콩 커피회사 ‘그린로드’ 부스에서 수십 명의 관람객이 줄지어 커피를 맛봤다. 지난달 31일 행사 개막식에 참석한 이 총리가 들러 커피를 마셨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부스는 행사 기간 내내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지난달 31일부터 3일간 열린 에이팜쇼 현장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대거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 개막식 최고 스타였던 20대 여성 농부 송주희 너래안 대표(29) 관련 기사에는 1일까지 약 1400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행사 현장과 온라인에서 관심이 뜨거웠다. 관람객 오현미 씨(43·여)는 “아이들과 주말농장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농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에이팜쇼에서 귀농 정보를 얻고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간다”고 말했다. ○ 방대하고 정확한 귀농·귀촌 정보의 바다 관람객들은 지방자치단체의 귀농·귀촌 상담 부스를 돌며 선배 농부들의 조언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진지한 모습이었다. “농촌에 집을 지을 때는 축사 주변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 “주소지를 최대한 빨리 옮겨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등 ‘귀농 멘토’들의 조언을 일일이 수첩에 적는 관람객도 많았다. 전북 김제시 부스를 찾은 심재훈 씨(29)는 “부모님이 김제에 있어 내려가 농사를 지어볼까 계획 중”이라며 “에이팜쇼에는 귀농 정보 외에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방문했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행사장에 마련된 귀농·귀촌 적합도 테스트를 받는 모습도 보였다. 김동술 씨(66)는 “귀농·귀촌 적합도 테스트를 했는데 나는 66점, 아내는 64점이 나왔다”고 말했다. 60점 이상이면 귀농·귀촌에 대한 적응력, 의욕, 준비 정도가 상당히 높다는 의미다. 김 씨는 “은퇴 뒤 꾸릴 제2의 삶으로 귀농을 꿈꾸며 전북 정읍시에 땅을 사 꾸준히 준비를 한 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 방문객 북적 귀농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낯선 곳으로의 이주와 정착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가족 전체가 함께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행사장에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20년 전 귀농해 경기 양평군에서 체험농장을 운영 중인 정경섭 씨(71)는 중학생 아들과 함께 행사장을 방문했다. 아들이 진로를 택할 때 자신의 농장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정 씨는 “에이팜쇼를 통해 귀농에 대한 세간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면 아들도 농업에 호기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요즘은 농업이 밭에서 호미질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기술, 생명공학 등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들인 정지안 군(15)은 “현장을 보니 농업 전망이 좋아 보여 농부가 되는 게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농산물 싸게 사고 즐길 거리도 풍부 행사장에는 은퇴 후 귀농을 준비하는 중장년층 외에도 부모 손을 잡고 박람회를 찾은 어린 관람객이 자주 눈에 띄었다. 지자체가 마련한 먹거리를 시식할 수 있고 곤충체험, 승마체험, 아이 직업교육 등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각종 행사가 마련됐다. 아내, 초등학생 두 딸과 행사장에 온 김성호 씨(42)는 “농업 쪽으로 전직할 생각이라 아내와 함께 정보를 찾다가 에이팜쇼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며 “아이들을 위한 체험관도 마련돼 있다고 해서 딸들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틈틈이 진행되는 무대 행사에도 많은 시민이 몰렸다. 2일 오전 열린 수박 빨리 먹기 대회에서는 이른 시간에도 수십 명이 참여했다. 오후 3시부터 진행된 지역 특산물 경매도 질 좋은 농산물을 구입하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김현태 전북 김제시 귀농귀촌협의회 부회장(58)은 “박람회에 오시는 분들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농촌에 향수를 갖고 언젠가 귀농하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며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신 귀농인들이 시골에 정착하면 지역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충현 balgun@donga.com·김은지 기자}

“명문대 나온 당신은 머리 좋은 조사관인데, 날카롭게 항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상사로부터 8개월간 성추행을 당한 P 씨(36·여)가 재판 과정에서 판사에게 들은 말이다. “머리도 좋은 편일 텐데 성추행 당했을 때 기록이나 메모를 안 남겼느냐” “처음부터 문제제기를 않고 몇 달 동안 왜 참은 것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분명 ‘질문’이었지만 그에겐 ‘질책’처럼 들렸다. P 씨는 고학력 여성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뒤 7급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2014년 2월부터 8개월간 직속 상사의 괴롭힘이 이어졌다. 그러나 P 씨는 항의하지 못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가해자는 직장 내에서 지위 등이 자신보다 우월한 상사였기 때문이다. P 씨는 “가해자는 나보다 더 학력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그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니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하며 8개월간 참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1심 무죄 판결 이후 고학력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폭넓게 인정하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특히 안 전 지사의 전 수행비서 김지은 씨(33)처럼 학력이 높고 장애가 없는 성인이 위력에 굴복해 성폭력 피해를 반복적으로 당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논리는 성폭력 피해자의 상담 사례나 통계와는 큰 차이가 있다. 피해자의 나이, 학력, 결혼 여부를 불문하고 성폭력은 무작위로 발생했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실시한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19세 이상 성인 피해자 중 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40.3%였다. 미혼(23.6%) 피해자보다 기혼(67.3%)이 많았다. 장애가 있는 사례는 1.3%로 대부분 장애가 없었다. 학력이나 지위가 낮은 약자(弱者)가 성범죄에 취약할 거라는 사회적 통념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고학력자가 왜 저항하지 못했느냐고 묻는 건 상하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성범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저항하라” “증거를 남겨라” 같은 조언들은 실제 상황에선 무력하게 느껴졌다고 입을 모았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계에 종사하는 K 씨(52·여) 역시 4년 전 술자리에서 선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을 때 아무 저항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K 씨는 “불쾌감과 모욕감이 밀려오지만 당시 나는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더욱 끔찍했다. 성추행을 하는 선배의 손을 아무도 보지 못하길 속으로 기도했다”고 했다. 남성 역시 직장 내 서열에서 발생하는 위력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대기업 3년 차 사원인 Q 씨(28)는 지난해 7월 15년 먼저 입사한 여자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자정 넘어 업무가 끝나자 선배는 Q 씨에게 “단둘이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했다. 선배는 웃옷을 벗고 Q 씨를 끌어안는 등 2시간 넘게 추행을 계속했다. Q 씨는 “(피해 상황에서) ‘성폭력을 당하면 항의하라’는 정언 따윈 생각나지도 않았다. 피해 다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 성폭력피해 상담 전문가는 “고학력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강자(强者)다. 수직적인 조직 분위기 속에서 강자가 휘두르는 위력에 굴복하지 않을 피해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은지 기자}

서울 광진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 씨(34·여)는 요즘 신경을 쓸 일이 부쩍 늘었다. 매장 내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손님 중 일부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일회용 컵)을 사용하겠다’며 고집을 부려서다. 정부 지침에 따라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업주에게 최대 2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도 “내가 일회용 컵에 먹겠다는데 왜 상관을 하느냐”며 짜증을 내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일회용 컵 가격만큼 음료 가격을 깎아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 씨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해도 손님들이 불쾌하게 여길 때가 많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2일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식품접객업소 내 일회용 컵 단속에 나선 지 약 한 달이 흘렀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잡음이 나온다.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업주와 손님들이 컵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내가 편한 대로 하겠다는데 왜…” 손님 갑질 지난해 작은 카페를 연 김모 씨(26·여)는 최근 난감한 일을 겪었다. “나가서 마시겠다”며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은 한 손님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 망설이던 김 씨가 어렵사리 다가가 “더 드실 거면 음료를 머그잔에 옮겨 드리겠다”고 권했지만 손님은 “잠깐 앉았다가 갈 건데 왜 그러느냐”고 퉁명스레 응대했다. 김 씨는 불안한 마음에 속이 탔지만 가게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다시 요구하지는 못했다. 손님은 1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카페를 벗어났다. 서울 마포구에서 한 대형 프랜차이즈의 카페를 관리하는 김모 씨(27·여)도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플라스틱 컵 대신 개인 텀블러에 음료를 담은 손님이 “커피가 꽉 차지 않았다”며 항의한 것. “정량을 담아 줬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김 씨는 결국 이 손님에게 음료를 더 담아줬다. 손님이 음료를 마시고 난 뒤 놔두고 나간 머그잔을 노리는 ‘머그잔 도난’도 부쩍 늘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머그잔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상표나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서울 광진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한 달 사이 10개가 넘는 컵을 잃어버렸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머그잔은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1개에 8000원에서 8500원 선이다.○ 손님들도 불편… “융통성 있어야” 손님들도 불편을 토로한다.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부산 동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향은 씨(26·여)는 지난주 동료와 함께 부산역 앞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았다. 먼저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은 김 씨는 아직 음료를 받지 못한 일행을 기다리는 사이에 잠깐 자리에 앉았는데 곧장 직원이 다가와 제재했다. 간신히 양해를 구했지만 당황스럽고 불쾌했다고 한다. 김 씨는 “점심시간에 카페를 찾은 직장인들은 잠시 앉았다가 나가야 하는데 음료를 머그잔에 받았다가 다시 일회용 컵으로 옮기는 건 오히려 낭비”라고 말했다.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집 앞 카페를 자주 찾는 주부 A 씨도 머그잔에 음료를 담는 게 불안하다. A 씨는 “아이들이 컵을 엎을 때가 종종 있는데 컵을 깨뜨려 다칠까 봐 걱정된다”며 “그런데도 무조건 머그잔을 이용하라고 하니 불편하다”고 말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계도 기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정부에서 적극 홍보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은지 eunji@donga.com·김자현 기자}

서울 광진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 씨(34·여)는 요즘 신경을 쓸 일이 부쩍 늘었다. 매장 내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손님 중 일부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일회용 컵)을 사용하겠다’며 고집을 부려서다. 정부 지침에 따라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업주에게 최대 2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도 “내가 일회용 컵에 먹겠다는데 왜 상관을 하느냐”며 짜증을 내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일회용 컵 가격만큼 음료 가격을 깎아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 씨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해도 손님들이 불쾌하게 여길 때가 많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2일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식품접객업소 내 일회용 컵 단속에 나선 지 약 한 달이 흘렀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잡음이 나온다.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업주와 손님들이 컵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내가 편한 대로 하겠다는데 왜…” 갑(甲)질 하는 손님들 지난해 작은 카페를 연 김모 씨(26·여)는 최근 난감한 일을 겪었다. “나가서 마시겠다”며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은 한 손님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 망설이던 김 씨가 어렵사리 다가가 “더 드실 거면 음료를 머그잔에 옮겨 드리겠다”고 권했지만 손님은 “잠깐 앉았다가 갈 건데 왜 그러느냐”고 퉁명스레 응대했다. 김 씨는 불안한 마음에 속이 탔지만 가게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다시 요구하지는 못했다. 손님은 1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카페를 벗어났다. 서울 마포구에서 한 대형 프랜차이즈의 카페를 관리하는 김모 씨(27·여)도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플라스틱 컵 대신 개인 텀블러에 음료를 담은 손님이 “커피가 꽉 차지 않았다”며 항의한 것. “정량을 담아 줬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김 씨는 결국 이 손님에게 음료를 더 담아줬다. 손님이 음료를 마시고 난 뒤 놔두고 나간 머그잔을 노리는 ‘머그잔 도난’도 부쩍 늘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머그잔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상표나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서울 광진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한 달 사이 10개가 넘는 컵을 잃어버렸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머그잔은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1개에 8000원에서 8500원 선이다.●손님들도 불편…“융통성 있어야” 손님들도 불편을 토로한다.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부산 동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향은 씨(26·여)는 지난주 동료와 함께 부산역 앞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았다. 먼저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은 김 씨는 아직 음료를 받지 못한 일행을 기다리는 사이에 잠깐 자리에 앉았는데 곧장 직원이 다가와 제재했다. 간신히 양해를 구했지만 당황스럽고 불쾌했다고 한다. 김 씨는 “점심시간에 카페를 찾은 직장인들은 잠시 앉았다가 나가야 하는데 음료를 머그잔에 받았다가 다시 일회용 컵으로 옮기는 건 오히려 낭비”라고 말했다.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집 앞 카페를 자주 찾는 주부 A 씨도 머그잔에 음료를 담는 게 불안하다. A 씨는 “아이들이 컵을 엎을 때가 종종 있는데 컵을 깨뜨려 다칠까 봐 걱정된다”며 “그런데도 무조건 머그잔을 이용하라고 하니 불편하다”고 말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계도 기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정부에서 적극 홍보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1차아파트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대낮부터 전기가 끊겨 주말 자택에 머물던 900여 가구가 온종일 불편을 겪었다. 26일 오후 1시경부터 한양1차아파트에서 변압기가 고장 나면서 정전이 발생해 오후 9시 30분에야 복구됐다. 변압기 관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주관한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정전 초기에는 아파트 측에서 다른 원인을 추정했으나 변압기를 통째로 교체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확인돼 사고 복구가 늦어졌다”고 밝혔다. 이 아파트단지는 이달 2일에도 정전이 발생해 주민들이 피해를 봤다. 8시간 넘도록 교체 작업이 진행되는 사이에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밤까지 정전이 이어지자 일부 주민은 급히 랜턴 등을 구매하기도 했다. 주민 A 씨는 “엘리베이터가 멈춰 걸어서 건물을 오르내려야 했고 오후 4시부터는 물도 끊겼다”며 “서울 도심에서 ‘원시인 생활’을 체험한 셈”이라고 말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더 빨리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어머니….”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관. 한국계 프랑스인인 그자비에 모토(한국명 신동은·37) 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윤순예 씨(59)는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모토 씨는 1981년 1월 대전에서 태어났지만 구순구개열(입술 잇몸 입천장이 갈라진 기형) 장애가 있었다. 젖을 빨지 못해 입안으로 모유를 흘려줘야 했다. 병원을 여러 곳 찾아갔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로는 치료가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윤 씨 부부는 아들을 해외로 데려가 치료할 여력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차라리 아이를 해외 선진국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결국 한 달여 만에 첫아들을 입양기관으로 보냈다. 프랑스 가정에 입양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도 윤 씨는 수시로 입양기관에 아들의 행적을 물었다. 윤 씨는 “‘규정상 알려줄 수 없다’는 응답이 돌아왔지만 언젠가 연락이 닿으리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토 씨는 프랑스 중동부 디종의 의사 부부에게 입양됐고 수술을 받아 장애를 잘 치료했다. 그는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면서도 항상 모국인 한국이 궁금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에서 연 ‘차세대동포 한국어 집중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11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를 찾으려고 입양기관을 찾은 모토 씨는 깜짝 놀랐다. 장애 때문에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주기 위해 떠나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젖먹이 때 떠나보낸 아들을 성인이 돼서야 다시 만난 윤 씨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 씨는 남편과 2008년 사별했다. 이날 두 명의 남동생과 첫 만남을 가진 모토 씨는 “내가 형제들과도 많이 닮은 것 같다”며 웃었다. 모토 씨는 프랑스로 돌아간 후에도 한국의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했다. “다섯 살 아들이 있어요.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러 또 한국에 올 거예요.” 모토 씨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더 빨리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어머니….”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관. 한국계 프랑스인인 그자비에 모토(한국명 신동은·37) 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윤순예 씨(59)는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모토 씨는 1981년 1월 대전에서 태어났지만 구순구개열(입술 잇몸 입천장이 갈라진 기형) 장애가 있었다. 젖을 빨지 못해 입안으로 모유를 흘려줘야 했다. 병원을 여러 곳 찾아갔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로는 치료가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윤 씨 부부는 아들을 해외로 데려가 치료할 여력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차라리 아이를 해외 선진국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결국 한 달여 만에 첫아들을 입양기관으로 보냈다. 프랑스 가정에 입양됐다는 사실을 들은 뒤에도 윤 씨는 수시로 입양기관에 아들의 행적을 물었다. 윤 씨는 “‘규정상 알려줄 수 없다’는 응답이 돌아왔지만 언젠가 연락이 닿으리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토 씨는 프랑스 중동부 디종의 의사 부부에게 입양됐고 수술을 받아 장애를 잘 치료했다. 그는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면서도 항상 모국인 한국이 궁금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에서 연 ‘차세대동포 한국어 집중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11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를 찾으려고 입양기관을 찾은 모토 씨는 깜짝 놀랐다. 장애 때문에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주기 위해 떠나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젖먹이 때 떠나보낸 아들을 성인이 돼서야 다시 만난 윤 씨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 씨는 남편과 2008년 사별했다. 이날 두 명의 남동생과 첫 만남을 가진 모토 씨는 “내가 형제들과도 많이 닮은 것 같다”며 웃었다. 모토 씨는 프랑스로 돌아간 후에도 한국의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했다. “다섯 살 아들이 있어요.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러 또 한국에 올 거예요.” 모토 씨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김은지기자 eunji@donga.com}
검찰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53)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오정희)는 20일 법리 오해, 사실 오인, 심리 미진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서울고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안 전 지사와 수행비서 김지은 씨(33)가 위력관계에 있지만 성관계 당시 위력이 행사되지는 않았다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위력을 너무 좁게 해석했고 이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건보다 훨씬 더 성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법원이 유죄 판결한 사례가 많다”며 관련 판례를 언급했다. ○ “더 성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안도 유죄 판결” 이날 검찰이 제시한 4건의 판례를 보면 법원은 업무상 상급자의 위력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했다. 인천지법은 지난해 5월 한 방송 제작사 간부인 A 씨(49)가 자신이 부하직원 B 씨(26·여)를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추행한 혐의로 A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 씨는 사건 당시 피고인 A 씨의 지시에 따라 모텔방으로 들어갔지만 A 씨의 스킨십 요구를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A 씨는 재판에서 “피해자와의 합의 또는 묵시적 동의하에 몸을 만졌을 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추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 씨가 인사평가 권한을 내세워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과 3심 역시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A 씨의 항소와 상고를 기각했다. 또 검찰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김 씨의 행동이 성폭력의) 피해자로 보일 만한 행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한 것이 많다”며 “통화내역이라든지 김 씨의 피해 호소를 들은 증인 등 증거자료가 충분히 있는데도 배척했다”고 주장했다. 전주지법은 1월 전주의 한 장애인 지원단체 고위간부 C 씨(61)가 직원 D 씨(27·여)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간음한 혐의를 인정하면서 피해자의 평소 언행 중 일부 의심되는 정황에 대해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정도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D 씨가 피고인 C 씨와의 성관계 이후 C 씨에게 하트(♡) 표시가 들어간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런 정황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 검찰, 법원의 심리감정에 공정성 문제 제기 검찰은 안 전 지사 재판 과정에서 김 씨의 심리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절차적 하자로 인해 심리가 미진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판 초기 법원이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가 해촉한 사설심리상담소장 E 씨의 전문성과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E 씨가 전문심리위원에서 해촉되자 안 전 지사 측에서 E 씨를 다시 감정증인으로 신청해 지난달 16일 비공개로 진행된 안 전 지사의 6차 공판에서 증언했다. 이 자리에서 검사가 E 씨에게 ‘어떤 경위로 나왔느냐’고 묻자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 씨의 친구로 나왔다’고 답했고, 심리분석을 전문적으로 해 본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E 씨의 증언은 향후 재판에서 배제됐다. 안 전 지사 측은 “결론적으로는 피고인 측 감정증인의 증언이 누락된 셈이라 재판의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재판부가 검찰 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 씨가 그루밍(가해자에 의한 성적 길들이기)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힌 김태경 전문심리위원의 증언을 다른 전문심리위원에게 보내 판단을 받으려고 했던 점, 이 전문심리위원에게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만 전달하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보내지 않은 점 등에 대해서도 공정성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김은지 eunji@donga.com·김자현 기자}
수행비서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들여다본 것은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고 피해자가 제압당할 만한 사정이었다고 볼 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본보가 19일 입수한 114쪽 분량의 1심 판결문 전문에는 사건들의 내용과 재판부의 판단이 상세히 나와 있다.○ 재판부 “더 명시적으로 거절할 여지 있었다” 안 전 지사는 스위스 제네바로 출장을 간 지난해 9월 3일 오전 1시 반경(현지 시간) 호텔에서 김 씨에게 텔레그램으로 ‘담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담배를 가지고 객실로 간 김 씨를 안 전 지사가 성폭행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재판부는 객실로 온 김 씨에게 안 전 지사가 “침대로 오라”고 요구했고 김 씨는 거절 의사로 “아니요,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부분은 인정했다. 방으로 오라는 지시를 받은 뒤 김 씨가 전임 수행비서였던 A 씨에게 전화해 “(안 전 지사가) 부른다. 어떻게 하느냐”라고 물으며 우려한 사실도 인정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방으로 오라는) 요구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 더 명시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할 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위력이 행사됐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담배를 피고인의 방문 앞에 두고 텔레그램으로 방문 앞에 뒀다고 메시지를 보내기만 했어도 간음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의 옷차림도 쟁점이 됐다. 안 전 지사 측은 김 씨가 슬립 차림으로 객실로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씨는 “옷을 갖춰 입고 나갔던 것 같고 평상복이었던 것 같다”면서도 어떤 종류의 옷인지는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의상의 대략적인 종류조차 전혀 특정하지 못하는 취지의 증언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 측은 “지사가 시킨 일을 시킨 방식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수행비서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상화원리조트’ 사건에서 김 씨 진술 인정 안 해 지난해 8월 18, 19일 안 전 지사와 아내 민주원 씨(54)는 1박 2일 일정으로 주한 중국대사를 초청해 충남 보령시 상화원리조트에 묵었다. 안 전 지사 측은 19일 오전 4시경 김 씨가 부부의 침실로 몰래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이에 김 씨는 “같은 건물에 묵고 있던 중국인 여성이 안 전 지사에게 ‘2차를 기대한다. 옥상에서 만나자’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착신 전환된 휴대전화로 확인했다”며 “두 사람이 부적절한 만남을 가지는 것을 염려해 문 앞 계단에서 지키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을 뿐 객실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안 전 지사도 당시 중국인 여성을 만났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김 씨는 보름 전부터 2회에 걸쳐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수행비서의 업무를 철저히 행하고 한중 관계 악화를 막으려는 의도로 안 전 지사의 밀회를 저지하기 위해 침실 앞에서 밤새 기다렸다는 김 씨의 해명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후 김 씨가 민 씨에게 사과 전화를 한 점 등도 재판부 판단에 반영됐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지사의 여자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김 씨가 비서 업무로 인수인계받았던 내용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김은지 eunji@donga.com·이지훈 기자}

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재판부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법리를 엄격하게 해석한 결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33)가 위력에 못 이겨 억지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보기에는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다른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 떨어져” 재판부는 권력적 상하관계에 있는 남녀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범죄가 성립될 수는 없다고 봤다. 평소에도 상대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로 위력이 행사돼야 하고, 특히 성관계를 맺을 당시 상급자가 위력을 동원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김 씨는 검찰 조사와 공판 과정에서 “안 전 지사의 요구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고 수행비서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김 씨가 성관계 거부 의사를 충분히 표현하지 않았다고 봤다. 두 사람이 첫 성관계를 한 지난해 7월 안 전 지사가 “안아 달라”고 요구하자 김 씨는 바닥을 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안 전 지사를 살짝 안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음 달 서울의 한 호텔에 투숙하게 된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씻고 오라”고 했을 때 김 씨가 별다른 저항 없이 응한 점, 이후 스위스 출장 당시 김 씨가 전임 수행비서로부터 “안 전 지사의 객실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도 방에 들어간 점 등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건 이후 김 씨의 행동도 김 씨의 자유의사가 제압당한 상태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근거로 판단했다. 첫 성관계 몇 시간 뒤 김 씨는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한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려고 노력했고, 당일 저녁에는 안 전 지사와 함께 와인바를 간 점 등을 예로 들었다. 재판부는 “김 씨가 지인과 지속적으로 안 전 지사를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며 “피해를 잊고 수행비서 일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김 씨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마지막 성관계를 맺었던 올 2월, 대전에 있던 김 씨가 밤에 안 전 지사의 연락을 받고 바로 서울의 한 오피스텔로 찾아간 것도 의문이라는 게 재판부의 시각이다. 당시 김 씨는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가 아닌 정무비서 신분이었고, 당시 안 전 지사와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 대화 내용을 삭제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과거 안 전 지사의 운전비서로부터 성희롱을 당했을 때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는 등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안 전 지사와의 강압적인 성관계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동의 안 한 성관계라도 현행법상 처벌 어려워 재판부는 김 씨가 안 전 지사와의 성관계를 거절하려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유죄 여부는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아니라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는지에 달려 있어 가능성만으로 안 전 지사를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북미와 유럽 등 10개국에서는 상대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음에도 성관계를 맺은 경우 강간으로 간주하거나(No Means No rule), 상대가 적극적으로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은 경우까지 처벌하는(Yes Means Yes rule) 입법례가 있다. 독일에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황이라도 위계관계에서 발생한 성관계는 무조건 ‘비동의 간음’으로 간주해 처벌한다. 재판부는 “이 같은 새로운 처벌 규정을 도입할지는 입법 정책적 문제이고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