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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로 치면 이런 겁니다. 경영자가 되어 재계를 이끌어 갈 사람들이 학부 1학년 때부터 ‘호텔경영’ ‘기업경영’을 배우는 것보다 경영학 외에도 인문학과 사회학 기초를 배우는 게 낫다는 거죠.” 최근 서울 덕수궁 인근에서 만난 김도연 포스텍(포항공대) 총장은 내년부터 학부생 전원을 학과 구분 없이 선발하기로 한 개혁안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9월 1일 취임한 그는 임기 2년째를 맞아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학부생 무전공 선발 외에도 교수 중 약 50명을 기업이 추천한 인사 중에서 뽑는 ‘산학일체 교수’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안을 내놓은 상태다. 김 총장은 개혁안을 장기간에 걸쳐 구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대 학생부학장으로 재직하던 1990년대 초반에도 학과를 통합해 학부제로 개편하는 업무를 했다. 학부생들이 폭넓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스무 살 학생들이 자기 의지로 전공을 정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과 학생들은 공부 제일 잘하면 의대 가고 그 다음 공대 인기 학과를 가는 등 전공이 점수에 따라 정해지잖아요.” 전공 없이 학생을 뽑으면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학부 1학년 때부터 지나친 경쟁이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김 총장은 “전공을 결정할 때 320명 전원이 한 학과로 몰리더라도 모두 받아 줄 계획”이지만 “학생들 간의 무의미한 경쟁은 시키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세계적인 인재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학교 내 경쟁, 국내 경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앞으로 나가야 할 사람들이죠.” 다만 김 총장은 “세계와는 치열하게 경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을 3개월로 늘리고 해외 경험을 충분히 쌓도록 권장하는 이유도 앞으로 경쟁할 상대가 세계 대학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프랑스 유학을 갔던 김 총장은 “당시 프랑스 뉴스 중 국제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며 “그런 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뉴스를 접하면서 활동 무대를 세계로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포스텍 개혁 바람은 교수들도 피해 갈 수 없다. 김 총장은 “앞으로 교수들이 쓰는 논문은 영향력과 질로 평가할 예정”이라며 “교수들이 논문 편 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논문 쪼개 쓰기’를 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포스텍만 변한다고 대학이 바뀔까. 김 총장의 관심은 이제 한국 이공계 연구 풍토 전반에 대한 개혁으로 옮겨 가고 있다. 그는 다음 달부터 시간을 쪼개 최근 설립된 ‘여시재’의 이사로 참여해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한다. 여시재는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사재 4000억여 원을 출연해 만든 민간 싱크탱크다. 김 총장은 “시간은 전혀 빼앗지 않겠다고 해서 참여하겠다고 했다”며 “동북아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 발전 방향을 찾자는 취지에 동감했다”고 설명했다. 여시재에서 김 총장은 학생들에게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나 연구 주제를 제안받고 이를 발전시키거나 지원해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앞으로 한국 과학기술 발전 방향이 크게 바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과학기술은 선진 기술을 얼마나 잘 따라가느냐에 중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잘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뛰어넘을 때가 됐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고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숙제겠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야죠.”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미국의 유명 싱크탱크인 ‘카토(CATO) 인스티튜트’에서 연구원을 지낸 교육 정책 전문가 케이시 라티그 씨(사진). 연구소나 대학 등에서도 계속해서 ‘러브 콜’이 오지만 그는 한국에 남아 ‘북한 이탈 주민 글로벌 교육센터(TNKR)’를 운영하고 있다. ‘TNKR’는 탈북 뒤 남한에 온 새터민들에게 영어를 무료로 가르쳐 주는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운영 자금은 100% 후원금으로 마련하고, 영어를 가르쳐 주는 원어민 멘토는 모두 자원봉사자다. 운영이 될까 싶지만 2013년 3월 처음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새터민 250여 명이 영어 교육을 받았고 외국인 자원봉사자도 440여 명이 참여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독막로 TNKR 사무실에서 만난 라티그 씨는 “새터민은 계속 찾아오는데 자원봉사자가 부족해 지금도 새터민 90여 명 정도가 원어민 멘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 방식은 모두 ‘학생’인 새터민이 결정한다. 새터민은 자기를 가르쳐 줄 원어민 멘토를 자기가 직접 정한다. 공부할 교재나 수업 방식도 ‘학생 새터민’이 직접 결정하고, 원어민 강사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강사를 교체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을 만든 라티그 씨는 “새터민들이 큰 기관의 교육 방침을 따라가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후반에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온 적이 있는 라티그 씨는 2010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처음엔 저소득층 교육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다 북한의 실상을 담은 자료를 읽은 뒤부터 탈북자와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12년 2월 탈북자 31명이 중국에서 체포된 뒤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을 때는 아는 외국인들을 불러 모아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77일 동안 강제 송환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명문대 출신 외국인이 한국에서 소위 ‘돈벌이도 안 되는 일’을 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그에게 의심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라티그 씨는 “내 연구 분야인 ‘자유로운 교육’이 새터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것을 보는 게 최고의 보람”이라며 “미국에서는 안정된 삶이 보장되겠지만 지금 이 일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전·현직 서울대 교수들이 직접 만든 미술작품 60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21일부터 서울대 우석갤러리에서 열리는 ‘학자, 붓을 잡다’ 서화전에는 이미 ‘당대 학문의 고수’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들이 ‘취미’와 ‘일탈’로 완성한 글씨와 그림들이 전시된다. 서울시장·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서예 글씨를, 암 권위자인 박재갑 국립암센터 석좌교수는 새 한 쌍이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그린 동양화를 내놓았다. ‘고고학의 대가’로 불렸던 고 김원룡 인문대 교수가 그린 크로키(대상의 특징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서양화 기법)풍으로 그린 수묵화 ‘인문대 교수실 풍경’도 전시됐다. 한국 화학공학의 선구자로 올해 3월 타계한 고 이재성 전 공대 학장의 풍경화도 내걸린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 역시 법학 연구로 이름을 알린 최종고 법대 명예교수다. “작품 60점을 모으는 데 1년 반이 걸렸습니다. 모아 놓고 나니 한국 현대 학문의 주축을 이루던 교수들의 ‘뒷모습’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죠.” 최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 교수는 법대생이면 누구나 교과서처럼 공부했을 ‘법학통론’의 저자이면서 ‘법과 미학’이라는 책도 썼을 정도로 미술에 조예가 깊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작품집을 내거나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준비는 최 교수가 개교 70주년을 맞아 예술적 소질을 갖춘 서울대 교수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모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동이 걸렸다. 그는 “지금까지 서울대가 배출한 졸업생들이 총 33만 명이고 석·박사만 11만 명”이라며 “졸업생들이 70주년을 맞아 전시회를 핑계 삼아 학교에 한번 찾아오고 만날 수 있는 계기라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미 고인이 된 교수들의 작품을 찾기 위해 유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2011년 타계한 신광현 영문학과 교수의 절명시를 우연히 발견해 내고는 신 교수의 딸을 찾았다. “신 교수의 딸이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바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의 글이 작품으로 남을 수 있도록 붓글씨를 써 달라고 해서 그 글을 전시했죠.” 고인이 된 또 다른 교수의 서예 작품을 받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울먹이는 유족들을 달래기도 했다. 1947년생인 최 교수는 서울대와 나이가 같다. 최 교수가 입학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에 몸담은 기간은 50년. 학교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달 초에는 서울대의 1970년대 연건캠퍼스 시절 모습부터 현재 관악캠퍼스 모습까지를 두루 담은 시화집 ‘캠퍼스를 그리다’를 펴내기도 했다. 전시회가 서울대 출신, 그중에서도 서울대 교수들만의 행사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최 교수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고 지켜내는 ‘대학다움’을 전시하는 행사인 동시에 프로가 아닌 사람들이 정성으로 작품을 다듬어낸 ‘자기계발’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최 교수는 “학자들의 작품에서 문자향(文字香·글의 향기)과 서권기(書卷氣·책의 기운)를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아유 부끄러워요. 돈을 조금 보탰을 뿐인데…”아프리카의 갈증 풀어준 ‘우물 할머니’75세 기부왕 노국자 씨# 국제 구호단체 기아대책이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아시아 및 아프리카 10개국 어린이 100여 명을 초청해 ‘희망 월드컵’ 축구대회를 열었습니다.이 곳에서 유독 돋보인 사람은 푸근한 인상의 노국자 할머니(75).#. 그는 이번에 네팔 어린이 10명의 항공료 및 체류비 3300만 원을 전액 부담했습니다.그는 이 큰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요?#“절대 저 혼자 힘으로 한 게 아니에요.네팔 어린이들을 초청할 비용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니주변에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줬어요.원래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이 모였죠”-노국자 씨-#. 그가 기부에 관심을 가진 건 2006년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후입니다.“아이들이 물병 하나에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어요.헌 병을 주워 돈을 마련해야겠다 싶었죠”# 노 씨는 처음엔 길을 가다 보이는 폐품을 모아 팔았죠.이것이 폐품 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빈민에게 피해를 줄까 우려해이제는 자신과 지인 집에 있는 헌 옷, 빈 병을 모아 팝니다.이렇게 모은 귀한 돈을 저개발 국가에 기부하는 거죠.# 지난 10년간 기부한 돈은 1억 원이 넘습니다. 그의 기부로 만들어진 우물만 24개“우물 하나를 파는 데 600~700만 원이 들어요.아프리카 여성들의 직업교육을 위한 재봉틀, 아프리카 서민들이 최고 재산으로 인식하는 염소 등도 기부하고 있어요.”# 노국자 씨는 고액 기부자 모임 ‘필란트로피 클럽’의 최고령 회원입니다.그는 최근 북한 어린이에 관심이 많은데요.“기근 때문에 북한 어린이들이 무척 힘들잖아요. 작지만 도움을 주고 싶어요.”# 한 푼 두 푼 힘들게 모은 돈으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노국자 씨.그 따뜻한 희망이 빛이 세계 곳곳에서 빛나고 있습니다.한가위를 맞아 우리 모두 이 ‘나눔의 천사’를 본받아야겠습니다.원본/이원주 기자기획·제작/하정민 기자·조현정 인턴}

국제 구호 단체 기아대책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10개국 어린이 10여 명씩을 초청해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희망 월드컵’ 축구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유독 돋보인 사람은 70대 할머니 노국자 씨(75). 기업가도, 고액 자산가도 아닌데 어린이 대표선수의 교통비와 체류비를 후원한 구단주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평범한 ‘옆집 할머니’지만, 이번에 네팔 어린이들의 항공료와 체류비 3300여 만 원을 모두 부담했다. “저 혼자 힘으로 한 게 절대로 아닙니다. 주변에서 모두 힘을 모은 거죠.” 8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노 씨에게 수천만 원을 어떻게 기부할 수 있었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네팔 어린이들을 초청할 비용이 필요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광고하듯 얘기하고 다니다 보니 어느 새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이 모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 것은 남들이 기부하는 만큼 나도 기부하고, 폐품을 모아 판 돈을 합친 것밖에 없다”며 벙긋이 웃었다. ‘왜 하필 폐품을 파는 방법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노 씨는 “2006년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기부를 처음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물병 하나를 받아들고 무척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헌 병이라도 주워 팔아서 기부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길을 가다 보이는 폐품을 모아 팔았다. 그러다 길거리 폐품 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은 자신의 집이나 지인들의 집에 있는 헌 옷가지나 빈 병을 모아서 팔고 있다. 이렇게 모은 돈은 통장을 따로 만들어 기부금으로 보낸다. 가족부터 주변 지인들도 처음엔 모두 말렸지만 지금은 먼저 폐품을 가져다주고 좋은 데 같이 내 달라고 쌈짓돈까지 맡기고 있다. 10년간 노 씨가 모아 기부한 돈은 1억 원을 훌쩍 넘겼다. 그의 기부로 세계에 만들어진 우물은 지금까지 24개. 우물 하나를 파는 데 600만∼7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노 씨는 우물 외에도 아프리카 여성들의 직업교육을 위한 재봉틀이나 아프리카에서 재산으로 인식되는 염소 등도 기부하고 있다. 노 씨는 기아대책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필란트로피 클럽’의 최고령 회원이기도 하다. 노 씨의 관심은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쏠리고 있다. “기근 때문에 북한 어린이들이 무척 힘들어하고 있잖아요. 지금부터는 북한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국채보상운동은 단순히 일제가 떠안긴 빚을 갚으려 한 운동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운동, 학생운동, 대규모 언론 캠페인이 이 안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시티즌 오블리주, 그러니까 시민들의 솔선수범이라고 할 수 있어요.” 1907년 2월 일제가 침략 자금을 차관 형식으로 떠넘긴 돈을 갚기 위해 온 국민이 일어선 국채보상운동이 내년이면 11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앞두고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획전 ‘국채보상운동―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가 열리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이 전시를 기획한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76). 2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 전 장관은 국채보상운동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서구의 시민운동과 혁명은 대부분 시민의 ‘권리’를 강조한 운동이었다”며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민 스스로가 ‘책임’을 다하자며 일어난 운동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사(經濟史)를 연구한 김 전 장관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뚜렷했던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던 상인 출신인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키고 확산시킨 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라가 어려워졌다고 힘들여 번 돈을 덜컥 내놓겠다고 한 장사꾼의 속마음이 궁금했다고. 그는 1973년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 있는 경북대 교수로 발령받고 난 뒤 서상돈의 흔적을 찾으러 서문시장을 수시로 찾아갔다. 김 전 장관은 국채보상운동 기부금 영수증 딱 한 장만 들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영수증에 적힌 이름의 후손을 찾아 다른 자료 하나를 찾고 대한매일신보 등 당시 신문기사에 등장한 지역을 찾아 사료를 기부받거나 구입했다. 김 전 장관은 “사료가 한곳으로 모일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에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발굴한 사료는 1997년 9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대구에 지은 기념관으로 넘겨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국채보상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한 사람들이 여성, 학생, 상인 등 가장 천대받고 힘없는 계층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새삼 놀랐다. 예술의전당에서 그가 보여준 자료는 ‘앵무’라는 기명을 가진 기생이 돈을 내며 남긴 말이었다. 당시 18세였던 그 기생은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을 금액인 100원을 기부하며 거국적인 운동 참여를 촉구했다. 김 전 장관은 “기득권을 갖고 있었던 남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여성이었다”며 “앵무를 주인공으로 전기(傳記)라도 써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어린이와 학생들이 푼돈을 모아 기부하고, 도적 떼마저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돈을 기부했다는 내용이 숱하게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제의 방해로 실패했지만 당시 모인 돈이 나중에 학교 설립에 쓰이면서 국채보상운동은 민족 교육에도 큰 의미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110주년을 앞두고 당시 사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 심사는 지난해 통과했고 내년 가을 등재가 최종 결정되지만, 김 전 장관은 낙관하고 있다. 18일까지 열리는 예술의전당 전시회가 끝나면 김 전 장관과 사업회는 지방을 돌며 전시회를 계속 열어갈 계획이다. 사료들을 보관할 아카이브도 만들 예정이다. 김 전 장관은 “이름을 올리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국채보상운동 전체 참여자는 당시 인구의 20%에 가까운 350만 명으로 추산된다”며 “사료를 문화유산으로 올리고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것이 국채보상운동 참여자들에게 일부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1923년 9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본 총리 야마모토 곤노효에 앞으로 항의 공문을 발송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대신 조소앙의 이름으로 발송된 공문에는 ‘천재지변의 원인을 한인(韓人)에게 전가하여 방화를 하거나… 한인이 큰길에서 무자비하게 살해된 것이 매일 50명이나 된다’고 써 있었다. 이 공문은 간토(關東)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일본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일본인 자경단들이 조선인에 대해 광기 어린 살인을 저지른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일본인 자경단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했다. 일부는 총기를 소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불심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 없이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죽어야 할 이유는 조선인이라는 것 하나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나중에야 유언비어를 공식 확인했지만 참극은 이미 발생한 후였다. 조선인 무차별 학살에 대한 사법적 책임은 물론이고 도의적 책임을 진 일본인이나 기구는 전혀 없었다. 80년이 지난 2003년 8월 25일 일본변호사연합회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일본정부가 유발한 책임이 있다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에게 사죄와 진상규명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아직 없다. 일본 정부는 언급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시기에 한 차례 공문으로 항의를 한 것 외에는 한국 정부가 일본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한 적도, 증거 수집을 한 적도, 일본 정부와 공동조사를 한 적도 없다. 올해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93주년이다. 구천을 떠돌고 있을 조선인들의 넋을 생각한다. 억울함에 몸을 떨며 아우성치고 있을 그들이다. 역사에는 시효가 없다. 93년 전 9월 간토대지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연구실장}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은 22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 공연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자국의 컴퓨터 게임과 만화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가장 먼저 등장한 캐릭터는 일본 컴퓨터게임 기업 닌텐도사가 1981년 첫선을 보인 게임 캐릭터 ‘마리오’. 지금까지 관련 게임만 5억 장 이상 판매됐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캐릭터다. 1964년에 이어 두 번째 여름올림픽을 치르는 도쿄는 차기 개최지 소개 영상 ‘도쿄는 준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Tokyo Is Warming Up)’에서 마리오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캐릭터를 줄줄이 등장시키며 친근함을 앞세웠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폐막식 참가에도 캐릭터를 빌려왔다. 아베 총리가 리우에 오기 위해 마리오로 변신해 도쿄 한복판인 시부야 사거리에 배관 파이프를 뚫고 지구 반대편인 리우까지 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소개 영상이 끝날 무렵 실제로 배관공 옷을 입고 폐막식에 등장했다. 일본 인기 만화 주인공 ‘도라에몽’도 마리오가 지구 반대편까지 파이프를 뚫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나왔다. 도라에몽은 1977년 만화잡지에 처음 등장한 뒤 39년간 변하지 않는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다. 도쿄가 올림픽 유치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홍보 마스코트로 등장한 도라에몽은 타임스 아시아판이 ‘아시아에서 가장 끌어안아 주고 싶은(cuddliest) 캐릭터’로 꼽았다. 그 외에도 종목별 스포츠 스타들이 순서대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동그란 몸과 큰 입만 가진 게임 캐릭터 ‘팩맨’이 출연해 먹이를 먹어 치워가며 육상트랙을 달렸다. 일본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등장한 인물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축구만화 주인공인 ‘캡틴 쓰바사’였다. 캡틴 쓰바사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인 남미와 유럽 등지에서 큰 인기를 모은 캐릭터다. 선수들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는 1974년 태어나 42세가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귀여운 모습으로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헬로 키티’가 맡았다. 이 밖에 도쿄는 폐막식 공연에서 캐릭터 외에도 첨단 영상기술을 활용한 홀로그램 공연을 선보이는 등 2020년 올림픽을 ‘첨단 문화산업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은 22일 리우 올림픽 폐막 공연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자국의 컴퓨터 게임과 만화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가장 먼저 등장한 캐릭터는 일본 컴퓨터게임 기업 닌텐도사가 1981년 첫 선을 보인 게임 캐릭터 ‘마리오’. 지금까지 관련 게임만 5억 장 이상 판매됐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캐릭터다. 1964년에 이어 두 번째 여름올림픽을 치르는 도쿄는 차기 개최지 소개 영상 ‘도쿄는 준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Tokyo is Warming up)’에서 마리오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캐릭터를 줄줄이 등장시키며 친근함을 앞세웠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폐막식 참가에도 캐릭터 이야기를 빌려왔다. 배관공인 마리오처럼 배관공 옷을 입은 아베 총리가 리우에 오기 위해 도쿄 한복판인 시부야 사거리에 배관 파이프를 뚫고 지구 반대편인 리우에 나타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소개 영상이 끝나는 무렵 실제 배관공 옷을 입고 폐막식에 등장했다. 일본 인기 만화 주인공 ‘도라에몽’도 마리오가 지구 반대편까지 파이프를 뚫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나왔다. 도라에몽은 1977년 만화잡지에 처음 등장한 뒤 39년째 변하지 않는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다. 도쿄가 올림픽 유치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홍보 마스코트로 등장한 도라에몽은 타임스 아시아판이 ‘아시아에서 가장 끌어안아 주고 싶은(cuddliest) 캐릭터’로 꼽았다. 그 외에도 종목별 스포츠 스타들이 순서대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동그란 몸과 큰 입만 가진 게임 캐릭터 ‘팩맨’이 출연해 먹이를 먹어 치워가며 육상트랙을 달렸다. 일본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등장한 인물은 실존인물이 아니라 축구만화 주인공인 ‘캡틴 츠바사’였다. 이 선수들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는 1974년 태어나 42살이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귀여운 외모를 유지하며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헬로 키티’가 맡았다. 이밖에 도쿄는 폐회식 공연에서 캐릭터 외에도 첨단 영상기술을 활용한 홀로그램 공연을 선보이는 등 2020년 올림픽을 ‘첨단 문화산업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4년 만에 다시 선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목에 걸 순 없었다. 동메달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선수가 연기를 마친 뒤 전광판에 기록된 자신의 순위는 4위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5위)보다 딱 한 계단 올랐다. 그러나 그는 눈물 대신 웃음을 지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밝게 웃으며 연기를 펼친 손연재(22·연세대)가 끝까지 우리를 향해 웃고 있다”고 말했다. 손연재가 참았던 눈물을 쏟은 것은 모든 경기가 끝난 뒤였다. 메달리스트들을 축하해 주고 자리에 앉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부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연재는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겨낸 내가 스스로 대견했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후련함 때문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손연재는 21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4종목 합계 72.898점으로 4위를 기록했다. 3위 간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73.583점)와는 0.685점 차였다. 손연재와 함께 훈련을 해 온 마르가리타 마문과 야나 쿠드(렵,엽)체바(이상 러시아)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손연재는 올림픽 메달 획득에 대한 압박감에도 실수 없이 4종목 모두 18점대의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리듬체조 강국’ 러시아와 동유럽 선수들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손연재는 “많은 분이 원하셨던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4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온 끝에 런던 때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말했다. 실수가 나왔던 예선(20일)과 달리 결선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친 것에 만족한 듯 손연재는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매트에 나가서 연습해 온 것을 다 보여주자고 다짐했는데 성공적으로 연기를 마쳐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메달리스트가 아니지만 조금 느려도 끊임없이 노력해서 발전해 왔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점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앞서 손연재는 리우 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일 수 있다고 밝혀 왔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일단은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아직 올림픽 이후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1시간여의 도핑 테스트를 마친 손연재는 경기장을 나가기 직전 ‘두 명의 엄마’를 꼭 껴안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장에 ‘올림픽 등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손연재가 되자’고 써왔던 목표를 이뤄낸 것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딸의 경기복을 손수 만드는 열정으로 손연재를 키워 온 어머니 윤현숙 씨(48)에게도 리우 올림픽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2년 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은퇴를 생각했던 딸의 마음을 돌려놓은 사람이 윤 씨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네가 보여주지 못한 것들이 많으니까 좀 더 노력해서 올림픽에서 멋지게 마무리하자고 설득했다. 내 말을 듣고 잘 따라와 준 딸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아시아경기 뒤 손연재는 목표의식을 상실해 고민에 빠졌었다고 한다. 손연재는 “내가 즐거워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주위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매트에 나선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올림픽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나를 붙잡은 어머니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울고 있는 손연재를 가장 먼저 품에 안고 격려해준 사람은 ‘리듬체조 엄마’ 옐레나 리표르도바 코치(42·러시아)였다. 손연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끝난 뒤부터 리표르도바 코치와 전담 계약을 맺고 함께 훈련을 해왔다. 손연재가 세계 최강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들이 가득한 노보고르스크에서 혹독한 전지훈련을 할 때 그를 지도한 사람이 리표르도바 코치다. 리표르도바 코치는 출산 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도 훈련장에 나와 손연재를 지도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손연재는 “6년간 코치님과 정말 많이 싸우면서 밉기도 했고, 다시는 보지 말자고도 했다. 하지만 코치님은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2등 한 나를 올림픽 4위로 만들어 주신 고마운 분이다”라고 말했다. 윤 씨는 “리표르도바 코치는 연재에게 ‘네가 없는 러시아는 이제 상상하기 싫다. 꼭 다시 돌아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손연재는 경기를 끝낸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후프 등 수구를 들고 걸어가다 뒤돌아보며 찍은 사진을 남기며 “진심을 다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경기를 끝냈다”며 “해 왔던 노력을 다 보여줬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었다”고 썼다. 또 “어떤 금메달보다 행복하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누리꾼들은 “최고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 노력과 도전 정신에 감사한다” “리듬체조에 바친 시간만큼 더 즐기며 지내길 바란다”는 글을 올리며 손연재를 응원했다. 외국인의 응원 댓글도 적지 않았다. 해외 누리꾼들은 “나에게 당신은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는 한국에서 온 빛나는 별이며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 등의 칭찬을 남겼다. 리우데자네이루=정윤철 trigger@donga.com / 이원주 기자}

“내가 없는 올림픽을 보고 있으니까 왠지 어색하네요. 하하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한국 여자역도의 꽃이었던 장미란(33). 16일 만난 장미란은 “올림픽을 선수가 아닌 관중으로 지켜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후배들이 하는 경기를 집 소파에 누워서 보다가 ‘이렇게 올림픽을 편하게 봐도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2013년 은퇴한 장미란은 현재 자신이 만든 ‘장미란재단’을 통해 비인기종목 선수들을 후원하거나 유소년 선수들을 지원하는 공익 활동을 하고 있다.“저 자리에 서 있는 것만도 대단한 거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장미란이 12년 만에 처음으로 주인공이 아닌 관중으로 지켜보는 올림픽이다. 그는 “선수 때보다 지금이 더 바쁘다”고 말했지만 올림픽만큼은 재방송이라도 꼭 챙겨 본다고 한다. “(선수가 아닌) 응원하는 위치에서 경기를 보니까 올림픽 메달을 딴다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한순간도 쉬운 게 없어 보여요.” 장미란은 “선수로 뛸 때는 배구 축구 등 구기 종목을 잘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경기를 보면서 구기 종목 후배들을 더 대단하게 보게 됐다”며 “역도는 그룹별 예선 경기를 뛰고 순위 안에 들면 바로 결승인데, 구기 종목은 메달을 따기 위해 32강, 16강, 8강 등 몇 번씩 경기를 치르지 않느냐. 메달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른 종목의 금메달 소식도 기뻤지만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윤진희의 동메달 획득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선수로 뛸 때보다 지금처럼 옆에서 보는 게 더 힘들다”며 “역도가 메달 획득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런 가운데 진희가 동메달을 따내니 더 반가웠다. 은퇴했다가 복귀해서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잘됐다”고 말했다.“제 칭찬과 격려가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장미란은 “아유∼ 전혀요∼”라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은 지금 할 일이 있다는 것. 장미란은 2012년 자신이 설립한 장미란재단의 이사장이다. 재단에서는 어린 비인기종목 선수 후원,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 멘토링, 탈북 청소년이나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과 함께하는 체육 활동 등 공익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비인기종목 선수들을 위한 후원과 멘토링 활동을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에게 받은 과분한 사랑 때문이다. “여자 역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됐어요. 그때까지 역도 선배들은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참 서러웠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과분한 사랑을 받았죠.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는데도 국민들이 정말 많은 박수를 보내주셨잖아요.” 장미란이 자신이 받는 인기를 피부로 실감한 때는 금메달을 딴 베이징 올림픽 다음 해인 2009년이었다고 한다. 경기 고양시에서 역도 세계선수권 대회가 열렸을 때다. 비인기 종목의 특성상 올림픽이 아니면 크게 주목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경기장 밖에까지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관중이 몰렸던 것. 그 장면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고 한다. “경기장에 못 들어온 사람이 꽤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도 못 들어오실 뻔했죠. 경기장엔 일찍 도착했는데 손님 모시러 밖에 나갔다가 못 들어오실 뻔했다더라고요. 하하.” 장미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300일이 힘들어도 60일이 기쁘면 아무리 힘든 훈련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게 다 많은 분들이 격려하고 칭찬하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었다”며 “비인기 종목에서 땀을 흘리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그런 응원과 칭찬을 제가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미란재단은 그가 은퇴하기 전해인 2012년에 만들어졌다. 아버지 장호철 씨의 권유가 큰 힘이 됐다. 재단 설립은 나이가 더 들면 할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등을 떠민 것.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더 주목받고 있을 때 재단을 세워야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도움도 줄 수 있다”고 장미란을 설득했다. 그는 “거창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보다 오늘 하고 있는 일을 10년 후에도 계속 해 나가고,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재단을 잘 꾸려 나가고 싶다”며 “순간순간 열심히 사는 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스포츠 외교? 한 걸음부터요” 결국 안 됐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했던 것도 재단 설립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지금도 국제역도연맹(IWF) 선수위원으로 있는 장미란은 역도 개발도상국의 주니어 대회를 주로 찾는다. 어린 선수들에게 롤 모델이자 인기 스타인 장미란은 가는 곳마다 셀카를 찍자는 요청을 수도 없이 받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말 한마디, 동작 하나 가르쳐 줄 때마다 눈빛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어린 선수들을 보고 더 많은 나라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IOC 위원에 도전했었다고 했다. 그는 또 “IOC 위원이 돼서 운동선수들의 좁은 시야를 좀 넓혀 주고, 분별력도 길러 줄 수 있는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리우 올림픽에서 유난히 금지약물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도 이런 점이 부족해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하루 대부분을 운동만 하면서 성적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받죠. 아직 분별력이 올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친 성과를 요구받다 보면 옳지 않은 것에 손을 대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 주고 싶었어요.” “IOC 선수위원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장미란은 “꼭 IOC 위원을 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니더라”며 웃었다. 한국은 리우 올림픽을 사실상 IOC 위원 없이 치르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와병 중이고, 문대성 선수위원은 논문 표절 여파로 직무 정지 중이다. IOC 위원이 있느냐 없느냐는 한 나라의 스포츠 외교력을 평가하는 기본 척도가 되기도 한다. 당장 리우 올림픽만 해도 레슬링에 출전한 김현우 선수가 심판진의 석연찮은 판정에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났지만 엄중한 항의는 하기 힘들었고, 감독은 관중석으로 쫓겨났다. 장미란은 “지금 당장 IOC 위원이 생긴다고 그런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 같다”며 “주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해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꽃·책·혼자 있는 시간 인터뷰 내내 장미란은 한 번도 말이 막힌 적이 없다. 말투는 단정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확실하게 했다. “책을 많이 읽은 탓이냐”고 물으니 “저한테는 쉬는 것”이라고 답했다. “선수 때부터 저한테는 휴식이란 게 여행을 가거나 기분전환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책도 봤죠. 책을 많이 보는 건 아닌데,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이 있으면 수도 없이 읽는 습관이 있어요.” 그는 이해인 수녀의 시집과 이지선 씨의 ‘지선아 사랑해’ 등 ‘일상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선아 사랑해’는 교통사고로 큰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가 장애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는 꽃꽂이를 했다고 한다. “선수 때 쉬는 날이 있으면 꽃을 꽂았죠. 예쁘게 장식해 놓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지금은 재단 이사장, 대학 교수, IWF 선수위원까지 명함이 세 개나 될 정도로 바빠서 언제 꽃꽂이를 했는지 잘 생각도 나지 않네요. 하하하.” 대단하고 거창한 포부가 있을 것 같은 그. 하지만 그의 답은 “그저 열심히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는 별로 잘하는 게 없으니까요, 그저 열심히 살고 싶어요.” “열심히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를 덜 남길 수 있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던 것 같아요. 큰 꿈이 아니어도 작은 꿈을 꾸고 그걸 이뤄내다 보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미란은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에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런던에서 4위로 메달을 못 땄지만 최근 IWF의 도핑 재검사 결과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던 흐리프시메 쿠르슈[(아르메니아)이 금지약물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재 IOC는 쿠르슈[의 동메달을 회수해 장미란에게 수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미란은 “아직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은 리우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고, 제 메달 소식보다는 땀 흘린 후배들이 더 주목받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역도 경기장은 키리바시에서 온 데이비드 카토아타우(32)에게 경기장일 뿐만 아니라 무대였다. 그는 15일(현지 시간) 경기를 끝낸 뒤 역기에 입을 맞추고 트위스트를 추며 경기장을 내려갔다. 남자 105kg급에 출전해 합계 349kg을 들어올린 그의 최종 성적은 14위. 하지만 그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왜 춤을 췄을까. 그는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가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호주 북동쪽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키리바시는 날짜변경선에 붙어 있어 ‘세계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나라’로 불린다. 국기도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섬이 33개나 되지만 전체 국토 면적은 810km² 정도로 대구보다도 작다. 그나마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국토 면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미 사람이 살던 마을 한 곳이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졌다. 카토아타우는 “사람들은 키리바시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고, 우리는 조국을 스스로 지킬 충분한 힘이 없다”며 “내가 춤을 추는 이유는 키리바시의 상황을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의 춤은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나라가 전 세계에 환경 파괴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가장 평화로운 경고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역도 경기장은 키리바시에서 온 다비드 카토아타우(32)에게 경기장일 뿐만 아니라 무대였다. 그는 15일(현지시간) 경기를 끝낸 뒤 역기에 입을 맞추고 트위스트를 추며 경기장을 내려갔다. 남자 105kg급에 출전해 합계 349kg를 들어올린 그의 최종 성적은 14위.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왜 춤을 췄을까. 그는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가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호주 북동쪽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키리바시는 날짜변경선에 붙어 있어 ‘세계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나라’로 불린다. 국기도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섬이 33개나 되지만 전체 국토면적은 730㎢ 정도로 대구광역시보다도 작다. 그나마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국토 면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미 사람이 살던 마을 한 곳이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졌다. 카토아타우는 “사람들은 키리바시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고, 우리는 조국을 스스로 지킬 충분한 힘이 없다”며 “내가 춤을 추는 이유는 키리바시의 상황을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의 춤은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나라가 전 세계에 환경 파괴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가장 평화로운 경고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나는 스웨덴 여자 축구 대표팀 골키퍼입니다. 그리고 백반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스웨덴 여자 축구 대표팀 헤드비그 린달(33)이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소개한 글이다. 백반증은 햇빛을 쬐면 피부 속 멜라닌 세포가 죽으며 피부에 하얀 반점이 생겨 점점 커지는 질병이다. 린달은 경기에 나설 때면 온몸에 선크림을 한 통 가까이 두껍게 바르지만 선크림은 땀으로 금세 씻겨 나간다. 축구 선수로는 치명적일 수 있는 병을 갖고 있는 린달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축구 8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인 미국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1실점만 했다. 덕분에 스웨덴은 1-1로 비긴 뒤 가진 승부차기에서 미국을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5세 때부터 병을 앓기 시작한 린달은 2014년부터 잉글랜드 첼시 레이디스에서 뛰고 있다. 한국 여자 대표팀의 주 공격수인 ‘지메시’ 지소연이 뛰고 있는 팀이다. 첼시 레이디스 경기가 열리면 지소연은 공격수로 린달은 골키퍼로 함께 출장했다. 린달은 “내 얼굴에는 흰 피부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며 “나와 비슷한 병을 앓는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다르게 보면 올림픽 1위는 피지, 2위는 북한. 올림픽 금메달을 기준으로 하는 종합 순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식 순위가 아니다. 하지만 각 대회 조직위원회는 대부분 이 순위를 제공한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조직위원회도 이 순위를 실시간으로 발표하고 있다. 14일 현재 이 순위에 따르면 1위는 미국(금 24개)이고 한국은 9위(6개), 북한은 24위(1개)다. 하지만 기준을 바꾸면 순위는 달라진다. ‘인구당 메달 수(Medals per capita)’라는 사이트는 참가국이 획득한 메달 한 개당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한 순위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남자 럭비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피지는 메달 1개당 GDP가 38억1000달러다. 가장 적은 GDP로 금을 따낸 국가 1위다. 2위는 북한. 금메달 1개를 포함해 총 5개를 따낸 북한의 메달을 GDP(220억 달러)로 나누면 메달 1개당 44억 달러다. 13개의 메달을 딴 한국은 메달 1개당 858억 달러로 33위다. GDP가 15조 달러 이상인 미국은 가장 많은 60개의 메달을 따냈지만 이 순위에 따르면 57위(1개당 2474억 달러)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태극 전사들이 경기는 지배했지만 온두라스 골키퍼의 신들린 방어를 뚫는 데는 실패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14일 한국의 온두라스전 패배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선에 참가한 아시아 세 팀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온두라스 골키퍼 루이스 로페스(23)가 ‘영감을 풍기는’ 활약을 했다고 평가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마치 고양이 같은 반사 신경을 보여준 로페스의 잇따른 선방에 한국이 무너졌다”며 “올림픽이 끝나면 로페스가 한국과의 경기 때 낀 장갑이 온두라스 박물관에 전시될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로페스는 리우 올림픽 조별리그 3경기 모두 풀타임을 뛰었고 5골을 허용했다. 무실점 경기는 한국과의 8강전이 처음이었다. 말 그대로 로페스에게 이날 경기는 자신의 선수인생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인생 경기’였다. 로페스는 이날 한국의 결정적인 슈팅을 여러 차례 막아냈다. 로페스의 신들린 선방은 전반 39분 손흥민의 프리킥을 막는 것으로 시작됐다. 로페스는 골문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서 손흥민이 오른발로 감아 찬 프리킥을 몸을 날려 걷어냈다. 5분 뒤인 전반 44분 류승우의 중거리 슛은 온두라스 선수의 몸을 맞고 방향이 틀리면서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듯했지만 로페스의 오른손 끝에 걸렸다. 손흥민이 전반 추가시간에 페널티지역 안에서 날린 강한 오른발 발리슛 역시 로페스의 펀칭에 막혔다. 로페스의 선방은 후반에도 이어졌다. 손흥민이 후반 2분 페널티킥 지점(골라인에서 11m 거리)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때린 슈팅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아냈다. 후반 10분과 26분 손흥민과 권창훈이 페널티지역 안에서 날린 결정적인 슛도 로페스를 뚫지 못했다. 호르헤 루이스 핀투 온두라스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특히 로페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온두라스 리그의 레알 에스파냐 소속인 로페스는 키 183cm로 골키퍼로서는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순간적인 반응 능력이 탁월해 23세 이하 대표팀뿐 아니라 온두라스 A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로페스는 후보 골키퍼이기는 했지만 2년 전 브라질 월드컵 때 이미 A대표팀에 뽑혔고, 온두라스에서의 인기는 웬만한 공격수 못지않다. 한편 한국과 조별리그에서 비긴 독일은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4-0으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고, 개최국 브라질도 콜롬비아를 2-0으로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이종석 wing@donga.com·이원주 기자}

세부 종목 47개, 총 메달 수 141개, 참가 선수 2389명, 전체 올림픽 경기 참가 선수(1만1325명)의 약 21%. 올림픽의 꽃, 육상이 12일부터 열전에 돌입한다.○ 인간 탄환 경쟁은 안갯속 육상의 꽃인 남자 100m에서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의 독주를 막을 새로운 강자가 나타날지가 최대 관심사다. 남자 100m와 200m, 400m 계주에 출전하는 볼트가 3관왕을 달성하면 올림픽 사상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3관왕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변이 일어날 여지는 있다. 볼트의 올해 100m 기록은 9초88로 예전 같진 않다. 올림픽 개막을 한 달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것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반면 경쟁자인 저스틴 게이틀린(34·미국)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림픽 일정에 맞춰 서서히 페이스를 올린 게이틀린은 올 시즌 최고기록에서 볼트에 0.08초 앞섰다. 하지만 볼트는 9일 기자회견에서 “200m에서 18초대 기록을 세우고 싶다”며 게이틀린을 자극했다. 남자와 달리 여자 100m는 절대 강자가 없다. 미국 스포츠전문방송 ESPN 등이 우승자 예측을 포기했을 정도다. 굳이 따지자면 동갑내기 라이벌 일레인 톰프슨(24·자메이카·시즌 1위)과 잉글리시 가드너(24·미국·시즌 2위)가 조금 앞서 있는 형세다. 그러나 다프너 스히퍼르스(24·네덜란드)와 셸리앤 프레이저프라이스(30·자메이카), 토리 보위(26·미국)도 언제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는 후보들이다.○ 미녀새 없는 필드의 여왕은 러시아의 도핑 파문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34)를 비롯해 러시아 선수가 사라진 장대높이뛰기에서는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러시아는 이 종목에서 2003년 이후 세계신기록이 19번 경신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 금메달을 내준 적이 없다. 그래도 금메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선수를 꼽는다면 샌디 모리스(24·미국)다. 2012년 4.15m였던 개인 최고 기록을 올해 4.93m까지 끌어올린 그는 파비아나 무레르(35·브라질), 에카테리니 스테파니디(25·그리스)와 금메달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이 선수를 주목 영국의 장거리 영웅 모 패러(33)의 2개 대회 연속 2관왕 도전은 중장거리 종목의 최대 관심사다. 패러는 런던 올림픽에서 육상 장거리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선수들을 누르고 5000m와 1만 m를 석권했다.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우승 이후 줄곧 성별 논란에 시달렸던 캐스터 세메냐(25·남아프리카공화국)도 33년 묵은 800m 세계기록(1분53초28) 경신에 도전한다. 메달권이 아니더라도 ‘인간 승리’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선수들도 눈길을 끈다. 인구 5만 명의 작은 나라 세인트키츠네비스 출신의 킴 콜린스(40)는 40대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00m를 9초대에 뛸 수 있는 사람이다. 리우 올림픽 출전 선수 중에서는 12위권 기록이다. 케냐의 콘세슬루스 키프루토(22)가 3000m 장애물에서 8분대 벽을 깨고 우승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케냐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3000m 장애물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다른 나라에 빼앗긴 적이 없다. 육상 선수로는 유일하게 러시아 국기를 달고 출전한 ‘트랙 위 바비인형’ 다리야 클리시나(25)가 멀리뛰기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정동연 call@donga.com·이원주 기자}

승패와 메달에 관계없이 박수를 받는 선수들이 있다. 1등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느껴지기 때문에, 관중은 경기 시작 전부터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올림픽이 아름다운 것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화려한 모습과 함께 이런 감동이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여자 럭비대표팀 주장인 질리언 포터(30)는 3기 암과 전신마비 직전까지 가는 척추 골절상을 딛고 올림픽에 출전했다. 포터에게 쏟아진 박수와 찬사는 올림픽 5위라는 성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예로운 상이다. 2014년 포터는 관절 부위 등에 생기는 암의 일종인 ‘활막육종’ 3기 진단을 받았다. 포터는 당시 항암 치료를 “지옥 같았다”고 회상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몸무게가 10kg이나 줄 정도. 의사가 10kg이 더 줄 수 있다고 하자 포터는 치료 기간 내내 되도록 피해야 할 고칼로리 음료를 마셔가며 체중 저하를 막았다. 1년여 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필드로 돌아온 포터는 이전에도 선수 생명이 끝날 뻔한 적이 있었다. 2010년 럭비 여자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구르는 볼을 다투다 상대 선수에게 깔려 목뼈가 부러졌던 것. 의사는 “5번 경추(목뼈) 골절에 인대도 찢어지고 디스크도 튀어나왔다”며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수술 후 1주일 만에 목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포터는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달려 6개월 뒤 필드에 섰다. 태국 복싱 대표로 출전한 암낫 루엔로엥(37)은 2005년 강도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복싱을 시작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수감 전 무아이타이 훈련을 받았던 그는 복싱에 빠르게 적응했고, 1년 반 만에 수감자 신분으로 출전한 태국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태국 정부는 그를 가석방시키고 국가대표 복싱 선수로 발탁했다. 그렇게 출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8강까지 올랐던 그는 8년 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리우 올림픽에서 1차전을 승리한 루엔로엥은 두 번째 경기에서 프랑스의 소피안 오우미하에게 패하며 올림픽 메달은 무산됐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루엔로엥은 “범죄자이던 나를 나라가 바꿔줬다”며 “이제는 내가 나라를 위해 지치지 않고 뛸 차례”라고 말했다. 콜롬비아의 역도 대표 오스카르 피게로아(33)도 차량 절도 혐의로 1년 6개월을 복역했던 전과자 출신이다. 그는 9일 리우 올림픽 역도 남자 62kg급 경기에서 합계 318kg을 들어 올려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직후 신발을 벗고 바벨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린 피게로아는 “내 삶의 일부였던 역기와 이제는 작별한다”며 은퇴를 선언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승패와 메달에 관계없이 박수를 받는 선수들이 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역경과 장애물을 뛰어넘은 선수라면, 경기장에 서기까지의 과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이 눈에 선히 보인다면, 관중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그 선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올림픽이 아름다운 것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화려한 모습과 함께 역경을 극복한 감동이 곳곳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92년 만에 리우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럭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타원모양의 공을 쫓아 달리는 선수들 중 가슴에 성조기를 단 여자 선수가 있다. 미국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질리언 포터(30)다. 3기 암과 전신마비 직전까지 가는 척추 골절상을 딛고 올림픽에 출전한 포터에게 쏟아진 박수와 찬사는 올림픽 5위라는 성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예로운 상이다. 올림픽 출전 2년 전인 2014년 포터는 병원에서 턱 쪽에 ‘활막육종’ 3기 진단을 받았다. 관절 부위 등에 생기는 암의 일종이다. 포터는 당시 항암 치료를 “지옥 같았다”고 회상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몸무게가 10kg나 줄 정도였다. 의사가 10kg 더 줄 수 있다고 하자 포터는 치료 기간 내내 되도록 피해야 할 고칼로리 음료를 마셔가며 체중 저하를 막았다. 체중이 무거워야 유리한 럭비에 복귀했을 때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1년여 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필드로 돌아온 포터는 이전에도 선수 생명이 끝날 뻔 한 적이 있었다. 2010년 럭비 여자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구르는 볼을 다투다 상대 선수에 깔려 목뼈가 부러졌던 것. 포터는 “상대 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뒤엉켰다가 내 목 위로 떨어졌다”며 “당시 귀에서 ‘뚝뚝뚝뚝뚝’ 소리가 들리고 쓰러진 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견은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5번 경추(목뼈) 골절에 인대도 찢어지고 디스크도 튀어나왔다”며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다행이 운이 따라 수술 후 1주일 만에 목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포터는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달려 6개월 뒤 필드에 섰다. 포터는 “대학 때 처음 하게 된 럭비는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놨다”며 “중병과 사고에도 희망을 놓지 않도록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럭비”라고 말했다. 한 때 잘못된 길을 걸었다가 스포츠를 통해 올바른 길을 찾고 나라의 명예까지 높인 선수들도 있다. 37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태국 복싱 대표로 출전한 암낫 루엔로엥이다. 그는 26세 때 2005년 강도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받고 수감됐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복싱을 시작하며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수감 전 무에타이 훈련을 받았던 그는 복싱에 빠르게 적응했고 1년 반 만에 수감자 신분으로 출전한 태국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태국 정부는 그를 가석방시키고 국가대표 복싱 선수로 발탁했다. 그렇게 출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8강까지 올랐던 그는 8년 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리우 올림픽에서 1차전을 승리한 루엔로엥은 두 번째 경기에서 프랑스의 소피아네 오우미하에게 패하며 올림픽 메달은 무산됐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루엔로엥은 “범죄자이던 나를 나라가 바꿔 줬다”며 “이제는 내가 나라를 위해 지치지 않고 뛸 차례”라고 말했다. 콜롬비아의 역도 대표 오스카 피게로아(33)도 차량 절도 혐의로 1년 6개월을 복역했던 전과자 출신이다. 그는 9일 리우 올림픽 역도 남자 62kg급 경기에서 합계 318kg을 들어올려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직후 신발을 벗고 바벨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린 피게로아는 “내 삶의 일부였던 역기와 이제는 작별한다”며 은퇴를 선언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