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

이원주 기자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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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가 되고 싶었는데 되지 못해서, 조종사 다음으로 비행기 많이 탈 것 같은 직업을 택했습니다. 비행기와 날씨에 대한 '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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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낡은 경유차는 무조건 죄인? 무분별 폐차가 더 문제”

    “미세먼지 주범으로 무조건 노후 경유차를 꼽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정확한 측정 시스템을 도입해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를 골라내는 겁니다. 연식이 오래됐다고 무조건 폐차를 유도하면 오히려 더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될 수 있어요.” 공기가 탁한 날이 늘어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노후 경유차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도 강조한다. 하지만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사무실에서 만난 임기상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연합’ 대표(59)는 ‘노후 경유차 책임론’에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임 대표는 “노후 자동차가 내뿜는 미세먼지나 오염물질의 양보다 새 차를 만들 때 배출되는 양이 훨씬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유럽에서는 새 차 한 대를 만들 때 배출되는 공기 오염물질의 양이 차를 약 6년 반 동안 운행할 때 나오는 양보다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임 대표는 “노후차 환경 대책이 성과를 보려면 폐차 지원금을 주고 새 차를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검사 때 시행하는 배기가스 측정 방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양을 ‘적합’과 ‘부적합’으로만 구분합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 등급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차량에 대해 교체를 유도합니다. 이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요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보통 100만 km까지 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제작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정비만 잘 받는다면 오래 타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 그가 지금 타고 있는 차량도 2000년에 만들어진 소형 ‘베르나’ 차량이다. 옛 차주가 폐차하려던 차량을 냉큼 인수한 뒤 3년째 타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새 차를 사 본 적이 없다는 임 대표는 자동차 검사 결과지까지 내보이며 “연식이 17년이나 됐지만 문제도 불편도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임 대표가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을 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1998년 서울 문래동에서 자동차 정비업소를 운영하던 임 대표는 정비소 고객들이 차를 고치는 비용을 아까워하면서 새 차 구입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전체 차량 중 10년이 넘은 차량 비율은 3%밖에 안 되더군요. 제 수명을 반도 못 쓰고 버려지는 차들이 아까워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년간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당시 3% 수준이던 ‘10년 차’ 비율은 지금은 30%를 넘겼다. 차를 오래 탈수록 자동차세를 최대 50%까지 감면해주는 정책도 임 대표가 주도해 이끌어냈다. 지속적으로 동일한 결함이 발견되는 차량이 있으면 앞장서서 리콜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전국 자동차 정비업체에 노후 차를 저렴한 가격에 정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는 임 대표는 “환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안전하게 준법 운전을 하겠다는 운전자의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에서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시동 꺼 반칙운전’ 캠페인을 응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환경도 사람이 지키고 새로운 자동차 문화도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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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우 “편안한 클래식 전도사 됐어요”

    “제가 출연한 영화 ‘겨울 나그네’ 마지막에 주인공 민우가 자살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때 흐르는 곡이 데미스 루소스 목소리의 ‘Follow Me’입니다. 이 곡의 원곡이 클래식 기타 협주곡으로 유명한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죠.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 영화의 곽지균 감독이 생각나네요.” 우리에게 영화배우와 탤런트로 잘 알려진 방송인 강석우 씨(60)가 최근 ‘강석우의 청춘 클래식’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은 2년 전부터 CBS 라디오에서 클래식과 가곡을 소개하는 ‘아름다운 당신에게’(오전 9시)를 진행하고 있는 강 씨가 프로그램에서 들려준 자신의 생각이나 추억을 클래식 음악과 함께 실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형식의 방송이죠. 클래식은 어렵고 경건하게 들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편하게 듣고 즐기는 방송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책은 보기에 따라 그 자신의 일기장이자 에세이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음악을 좋아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쇼윈도 너머 진열된 악기를 하염없이 바라만 봤던 사연, 인기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 열풍을 보면서 아버지와 자식 간의 세대 차를 느낀 사연 등 지극히 평범한 내용들을 담았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 느낌에 가장 맞다고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과 음반을 수록했다. 글의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도 덧붙였다. “클래식도 다른 음악과 똑같이 즐기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느낀 감성, 생각들과 맞는 곡들을 소개하고 스마트폰으로 바로 들을 수 있도록 한 거죠. 옛일을 추억하면서 클래식을 듣다가 곤한 단잠에 빠져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으로요.” “내 클래식 지식은 바다에 무릎을 담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가 이 프로그램에 들인 노력은 작지 않다. 수년 전부터 공부한 일본어로 일본 클래식 서적과 웹사이트를 매일같이 뒤진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도 시간만 나면 클래식 정보를 찾았다. 공부는 머리에만 그치지 않았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의 느낌을 보다 잘 느끼기 위해 아예 귀가 잘 안 들린 베토벤처럼 귀를 막고 거리를 걷기도 했다. 그는 영화배우, 탤런트, DJ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데 대해 “무대에서 쓰러지고 싶다며 한 우물만 파는 선후배들도 있지만 나는 여러 우물을 파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며 “배우도 하고, DJ도 하고, 책도 쓰면서 변해 가는 삶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면에서는 연기를 위해 인내를 해야 하는 배우 생활보다 지금이 훨씬 좋은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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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39년 벽 깬 셰프… “세계서 통할 ‘우리 맛 디저트’ 도전”

    한국 땅에서 한국인에게 39년간 허락되지 않던 자리가 있다. 그리고 39년 만에 금한(禁韓)의 벽을 깬 사람이 있다. 서울 중구 소월로 그랜드 하얏트서울 호텔이 개관한 이후 첫 한국인 셰프로 지난달 부임한 하형수 페이스트리 셰프(45)가 그 주인공이다. “셰프직 제안을 받고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부담이 됐었습니다.” 최근 초콜릿 향과 과일 향이 어우러진 호텔 페이스트리 코너에서 만난 하 셰프는 “처음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길을 잘 열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얏트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다국적 브랜드는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을 제외하면 한국인 셰프를 잘 두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접객 서비스와 음식 맛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선한 현지 식재료가 음식 맛을 좌우하는 다른 요리 분야에 비해 제과 부문은 요리사의 능력이 훨씬 더 부각되는 분야라서 더욱 엄격하다. 하 셰프는 이런 ‘유리벽’을 어떻게 깼을까. 스스로는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온 것이 좋은 결과를 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요리사 길을 걷기 시작한 것부터 도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성악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알 수 없는 허무함을 느꼈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여러 길을 찾다 대학 전공을 식품공학과로 하면서 요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제과 분야를 택한 이유도 밀가루와 물, 달걀과 우유 등 가루와 액체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제과제빵 분야에 매력을 느껴서라고 하 셰프는 설명했다. 하지만 처음 요리에 발을 디딘 1990년대에는 ‘한국 사람은 제 맛을 낼 수 없다’는 편견이 지금보다 강했다. 조리복을 입은 지 10년째 되던 2002년 하 셰프는 유학을 결심했다. 결혼 이틀 만에 신혼여행도 생략한 채 아내와 함께 프랑스 리옹으로 떠났다. “프랑스에서 10대 중반인 현지인들과 함께 급여도 거의 없는 스타주(수련 요리사)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어도 전혀 몰랐어요. 언어 장벽, 문화 장벽에 세대차까지 느끼며 힘들게 공부했습니다. 아내가 유일한 위로였어요.” 하루 15시간 넘게 조리대 앞을 떠나지 않았다. 다리에 무리가 와서 하지정맥류 수술까지 받아야 했지만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4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는 이곳저곳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왔다. 하 셰프는 주로 새로 개관하는 호텔에서 일했다.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과 분야 요리사에게 새로운 시도란 뭘까. 질문을 던지자 하 셰프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10여 분 만에 접시에 디저트 요리를 하나 담아 나왔다. 처음에는 어른 주먹 크기만 한, 하얀 생크림이 덮인 뭔가로 보였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요리를 탁 치자 ‘바삭’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겉껍질이 깨지고 안에 숨어 있던 화사한 색깔의 디저트가 드러났다. “화이트데이 때부터 새로 내놓을 디저트입니다. 예쁜 모양과 맛은 이제는 당연한 거잖아요. 먹을 때 손님들도 직접 참여하면서 맛, 멋 외에 다른 요소까지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어야죠.” 39년 만의 한국인 셰프에게 사람들은 ‘한국적인 디저트’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는 ‘감’에 주목하고 있다. “감이라는 과일을 의외로 해외에서 잘 모르더라”며 “감의 단맛을 이용한 디저트 등 우리나라 과일을 사용한 디저트를 시작으로 세계에서 통할 ‘우리 맛’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약 2시간 동안 주방의 요리사들과 매장의 직원들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 셰프는 이런 자신의 ‘부하’들에게 시종일관 존댓말을 쓰며 온화한 얼굴로 대했다. 드라마 속 ‘까칠하고 고집 센 셰프’와는 다른 인상이었다. 그런 드라마 속 셰프와 다른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5년 전까지는 호통을 많이 쳤습니다. 하하. 그런데 저도 기분이 안 좋으면 요리에 그게 드러나더군요. 손님과 후배들은 어떻겠어요. 지금은 혹 직원들에게 지적을 하더라도 반드시 웃으며 푸는 시간을 가집니다. 디저트는 그래야 달콤해지니까요.”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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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청전 50전… 영화 홍보물로 일제강점기 시간여행

    ‘조선영화상영회 상영작 낙화유수 장화홍련전 여명 심청전… 입장요금 상석은 50전 하석은 30전. 소인은 반값.’ 1920년대 일본에 소개된 한국 영화 상영회 홍보물이다. 이 같은 일제강점기 시절 영화 홍보 전단 100여 점과 1950년대 영화 포스터, 전단지 등 총 270여 점의 영화 사료가 전시되는 ‘한국영화·연극 희귀자료전’이 28일 동국대 문화관 동국갤러리에서 열린다. 행사를 기획해 준비하고 있는 안병인 한국애서가클럽 회장(55)은 “전시회를 한번 해보자고 회원들에게 연락했더니 옛 영화 인쇄물이 순식간에 3000점 넘게 모였다”며 “보존 상태도 무척 좋고, 자료 수집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애서가클럽은 고서 등 각종 책을 모으는 수집가들의 모임이다. 클럽 이름을 애서가클럽으로 정한 이유는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자 중심이 책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학을 전공하고 불교진흥원에서 약 20년간 근무한 안 회장은 현재 전시기획 등을 하는 한국박물관문화원 대표로 있다. 군 제대 후 인사동 고미술품 가게에서 우연히 눈에 띈 찻잔을 물어보기 위해 가게에 들어간 게 계기가 돼 수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사무실에는 회원들이 보내온 영화 관련 자료를 연대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안 회장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홍보물을 분류하다 보면 당시 사회 분위기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나라 영화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수입된 영화가 종종 상영이 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포스터는 ‘파라마운트’, ‘유니버셜’ 같은 해외 영화 배급사 이름을 제일 앞에 써서 강조하기도 했어요. 인기가 많은 영화는 서부 활극 영화였는데, 일제강점기 억눌린 마음을 서부 영화를 통해 잊으려 한 게 아니었을까요.” 안 회장은 또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단색 위주에 오탈자가 많았던 일제강점기 홍보물과는 달리 6·25전쟁 직후인 1950∼1960년대 영화 포스터는 화려한 총천연색을 활용했고, 논란이 될 정도의 파격적인 포스터도 있었다”고 말했다. 1956년에 만들어진 ‘자유부인’ 포스터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남녀 배우가 입을 맞추기 직전 장면이 그려져 있었고, 일부 외화 포스터는 제법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배우를 커다랗게 그려 넣기도 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독재정권의 억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의 과도기에 나타났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28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하지만 애서가클럽에서는 이 자료들을 계속해서 일반에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전주, 부천, 제천 등에서 영화제 개최 기간에 이 자료들을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충무로 등 한국 영화의 메카에 상설 박물관이 생겼으면 하는 꿈도 있다. “이런 자료는 찾기도 어렵지만 보존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개인이 보관하다가 그분이 돌아가시면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죠.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이런 사료들의 가치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안 회장은 “개막식에서 관람객에게 1980년대 영화 포스터 한 장씩을 선물할 계획”이라며 “혹시나 이런 행사를 계기로 누군가 수집가의 길에 들어선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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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칫덩이 뉴트리아, 웅담성분 덕에 金트리아 됐네요”

    몸길이 43∼63cm, 꼬리 길이 약 22∼42cm. 커다란 쥐처럼 생긴 뉴트리아. 국내에서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뉴트리아는 한 해 최대 15, 16마리의 새끼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좋은 데다 천적도 없어 골칫덩어리였다. 연성찬 경상대 수의대 교수(52)는 그런 뉴트리아를 하루아침에 멸종 위기를 걱정해야 할 동물로 바꿔버렸다. 국내에 서식하는 뉴트리아의 쓸개즙에서 곰보다 2∼3배 많은 웅담 성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뉴트리아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시작한 연구였으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하.” 연 교수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뜨거워 놀랐다”고 말했다. 동물 외과 분야와 함께 야생동물 행동학이 전공인 연 교수가 뉴트리아 연구를 시작한 것은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의뢰를 받은 2014년. 당시만 해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첫 연구 목표는 뉴트리아를 되도록 쉽게 잡고, 잡은 뉴트리아는 최대한 인도적으로 도살 처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뉴트리아를 틀에 가두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고통 없이 죽이는 장치였다. 이와 함께 서식지가 점점 넓어지는 뉴트리아가 질병을 옮길 위험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웅담 성분에 대한 연구는 우연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실험 과정에서 뉴트리아를 그냥 죽이기보다 뭔가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후 뉴트리아의 성분을 분석하던 중 담즙을 추출해 한국의약품시험연구원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의뢰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연구원에서 “곰 담즙보다 훨씬 센 웅담 성분이 검출됐는데 이게 도대체 뭐냐”고 물어온 것. 연 교수는 경상대 약대와 화학과의 도움을 받아 다시 검증에 나섰고, 학술적 근거를 찾기 위해 관련 문헌도 뒤졌다. 미국에서 나온 뉴트리아 담즙 성분 분석에 대한 논문에 관련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연 교수는 “검증을 반복하고 학술 자료까지 확인하면서 연구 결과가 맞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발표 이후 연 교수와 연구소에는 그야말로 뉴트리아에 대해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몇 마리만 보내 달라”는 부탁부터 “키우고 싶다”며 사육법을 알려 달라는 문의까지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조만간 환경부와 제약회사에서 주최하는 대책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국민들의 관심이 워낙 커지다 보니 무분별하게 뉴트리아를 잡거나 쓸개즙을 섭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회의다. “각종 연구서를 찾아보니 뉴트리아 기름 성분으로 동상 연고를 만들려고도 했더라고요. 동상치료제와 화상 치료제가 거의 비슷하니 화상 치료에도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죠. 또 고기는 맛과 영양이 풍부하니 환자 영양식으로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모피도 질이 좋으니 활용 방도가 많을 겁니다.” 연 교수는 “이 정도면 뉴트리아가 금트리아가 된 것 아니냐”며 “앞으로 뉴트리아를 소처럼 버릴 것이 없는 동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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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서 열리는 대보름 장승제, 나쁜 국운 날렸으면”

    “각박한 요즘 세상에 장승제가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은 주변에 민가도 묘지도 없는 깨끗한 곳에 있는 나무를 찾아 제사를 올린 뒤 그 나무를 벤다. 그 사이 여자들은 각 집의 가신(家神)들에게 제사를 올린다. 그 다음 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모여 장승을 세운다. 그 옆에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긴 막대인 ‘솟대’를 세운 뒤 그 끝에 새 조각을 앉힌다.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늘새’다. 정성껏 세운 장승에 제사를 지낸 뒤 음식을 나누고 한 해를 시작하는 모임을 갖는 마을 공동체의 축제가 시작된다. 충남 공주시 신풍면 쌍대리에서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장승제’는 이렇게 치러진다. 올해는 9일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서 이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처럼 각 지역의 고유한 장승제를 서울에서 소개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정월대보름에 치르는 민속행사, 의례는 한국 전체 민속의례의 65%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장승제는 주민들이 참여해 장승을 직접 만들어 세우고 보존하는 만큼 민속학적 가치가 높다. 이 행사를 준비한 장장식 학예연구관(58)은 “설이 각 가정의 첫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마을 공동체의 첫 명절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행사를 위해 직접 마을을 찾아가 지역 어르신들을 설득해 제주(祭主)인 주민들을 서울까지 모셔 왔다. 행사 준비가 한창인 6일 민속박물관에서 만난 장 연구관은 “쌍대리 장승제는 장승제 전통을 지켜오는 마을 중에서도 전통 의식이 매우 잘 보존된 곳”이라고 말했다. 장승제는 마을에 깃든 액운을 쫓아내고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다. 장 연구관은 “쌍대리 주민들이 ‘요즘 같은 때 나라의 안정을 비는 건 좋은 일’이라며 서울에서 제사 의식을 재현하는 행사를 하는 데 흔쾌히 협조했다”고 말했다. 쌍대리의 장승은 일반적인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과 이름도 다르고 생김새도 조금 독특하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대신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이름을 쓴다. 대부분의 장승이 귀신을 쫓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무서운 표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면 쌍대리의 장승은 선비를 닮은 단정한 외모에 가깝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민속학에 빠진 것은 민요 조사를 위해 찾았던 한 마을 입구에서 장승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마을마다 각각 다른 장승이 서 있는 다양함에 매료돼 1982년 본격적으로 민속학 연구를 시작했다. “장승은 예술가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만듭니다. 한 마을의 고유한 전통이 온전히 그 표정에 나타나는 거죠. 전문 예술인이 장승을 만들었다면 이런 다양성은 보기 힘들었을 겁니다.” 장승제를 연구하면서 곳곳에서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쌍대리만 해도 그렇다. 2003년 이곳을 찾아 장승제 견학을 부탁했을 때 주민들은 장 연구관과 일행들을 마을에 들이려 하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기 전 금줄을 치고 잡귀와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전통 때문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을 겨우겨우 설득해 간신히 허락은 받았지만 ‘집에 나쁜 일이 있는 사람은 다 나가라’는 얘기를 듣고 연구팀 인원을 몇 번씩 바꿔야 했어요. 마을의 1년 평안을 비는 제사다 보니 액이 끼면 안 되니까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단지 입구 등 도심에서도 장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도시에 장승이 거의 없다. 공간도 마땅찮고 장승을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 연구관은 이런 분위기가 아쉽다. “장승과 장승제가 상징하는 것은 ‘공동체 정신’입니다. 옆집 사람 얼굴도 잘 모르는 요즘 같은 때 이웃을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장승 아닐까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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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상손님도 얘깃거리… 책 쓰는 택시기사

     “사는 동안 책 10권을 내는 게 목표죠. 그러면 택시 기사로서도 작가로서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하하하.” 보통 사람은 한 권 쓰기도 어려운 게 책. 하루 종일 저작에만 매달려도 쉽지 않은데 생업을 하면서 쓰기란 더 어렵다. 하지만 14년 차 택시 기사인 이창우 씨(64)에게 ‘책 쓰기’는 자신과의 싸움이자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한 과정이었다. 2014년 첫 작품인 ‘어느 지독한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출간한 후 2년여 만에 같은 제목의 두 번째 책을 낸 이 씨는 “책을 쓰기로 한 후부터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안 좋은 일조차 좋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강행군. 아무리 손님에게 친절하자고 생각해도 일에 지치다 보면 그렇게 되기 힘든 것이 일상사다. 그는 “책 쓰기 전에는 택시 안에 구토하는 손님은 하루 일을 공치게 한 진상일 뿐이었죠. 하지만 책을 쓰면서는 같은 일이 생겨도 ‘책을 위한 에피소드가 생겼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죠”라고 말했다. 책은 이 씨가 운전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경험을 모은 내용이다. 에피소드가 생기거나 느낌이 들 때마다 그때그때 메모지에 적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메모지는 며느리가 일정 분량씩 모아 컴퓨터로 작업해 출판사에 전달했다. 이 씨는 “내가 적은 메모지 내용을 보던 며느리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을 보고 독자들에게도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두 번째 책을 만드는 데 2년여가 걸렸다. 그가 택시 기사 일을 시작한 것은 2002년 사업 실패로 전 재산을 잃은 후. 사업으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 그야말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10여 년을 일하다 보니 어느 날 ‘평생 일만 하면서 살겠구나’ 하는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책을 준비하면서 처음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과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나이 든 사람의 구닥다리 조언일 수는 있겠지만 나처럼 고졸에, 사업 실패로 빈털터리가 되고, 당뇨까지 있는 사람도 즐겁게 살아 보려고 하니 어느 정도 되더라”라며 “그래서 비록 힘든 시대지만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책에 담았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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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스미 마리 “인천에 빠져 40번 찾아… 일본인들 반할 만해”

     “30분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게 인천의 가장 큰 매력이죠.” 지난해 12월 말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인천시 관광홍보대사로 위촉된 일본의 인기 블로그 운영자 요스미 마리(四角q理·41·사진) 씨는 인천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90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가 인천의 매력에 빠진 것은 2014년 11월 우연히 일본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한 인천 관광 팸투어에 참여하면서부터다. 1990년 이후 80여 차례 한국을 찾았는데 40여 차례가 인천이었다.  “강화도에는 마니산이나 강화산성같이 한국 역사를 알 수 있는 장소가 많습니다. 중구에 가면 ‘근대거리’ 등 해외 문물을 받아들인 근대 모습이 거리에 남아 있는 곳이 많고, 송도 빌딩을 보면 미래 도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는 “고향이 요코하마(橫濱)인 점도 인천을 좋아하게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수도인 도쿄에서 차로 30분 거리.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개항지. 인구도 300여만 명으로 비슷하고 두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차이나타운도 두 도시에 각각 있다.  그는 인천을 돌아다니면서 분위기 좋은 카페, 맛집, 숙소의 장단점 등 체험한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소개했다. 이 내용은 한국 여행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일본에 인천과 강화도를 사랑하는 모임인 ‘인강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블로그의 인기를 계기로 그는 ‘요스미 마리와 함께 가는 인천·강화 투어’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외부 도움 없이 코스와 장소 섭외를 모두 혼자 담당했다. 지난해 가진 세 차례 투어에는 100명 정도가 참가했다고 한다. 관광명소 외에도 쑥떡 만들기, 한지 제작 등 체험 프로그램을 포함시켜 인기가 더 좋았다. 요스미 씨는 “앞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며칠부터 며칠까지 인천 방문 예정이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인천역 앞에서 모입시다’ 같은 돌발성 투어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투어를 진행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여행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어요. 한국 사람들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어 하는 거죠. 저와 함께 투어를 한 일본인 관광객들은 한국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앗간 구경에 열광했습니다. 강화도 바닷가에서 맨발로 갯벌을 걸어보는 체험도 잊지 못하겠다고 말했어요. 일본은 섬나라지만 갯벌을 보기는 힘들거든요.”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인천시는 지난해 9월 관광확대회의를 열고 요스미 씨를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인천공항에 ‘인천행 리무진 버스’가 없어 불편해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인천 시티투어 버스에 인천공항 노선을 마련했다.  “언젠가 반드시 인천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요스미 씨. 하지만 일본에서는 최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문제나 촛불집회 분위기가 잘못 전달돼 ‘한국은 위험한 곳’이라는 오해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집회는 평화적인 분위기이고 정치 이슈와 상관없이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 관광객을 환대해주고 있다. 관광홍보대사로서 이런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알리면서 ‘와서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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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충으로 만든 비빔밥?…‘곤충음식’ 서울에서 맛 볼 수 있다

    서울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중구 동호로(신당동) 인근의 골목에는 6명이 앉으면 만석이 되는 작은 식당이 있다. 식당 메뉴에는 파스타나 고로케 등 평범해 보이는 음식도 있지만 이곳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요리를 판다. 식재료에 곤충을 활용한 '곤충 음식'이다. 평범한 듯 특별한 이 메뉴를 요리하는 '빠삐용의 키친' 셰프 박주헌 씨(28)는 이 요리에 매료돼 지난해 특급호텔 주방까지 박차고 나왔다. '곤충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중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야시장 등에서 보는 음식이다. 박 씨는 "처음 식당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음식에서 '곤충이 보이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웃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곤충이 아닌 곤충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요리에 활용합니다. 요리에 곤충이 보이는 건 전혀 아니죠. 야채에서 비타민을 정제해서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난해 2월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땐 곤충을 말려 곱게 간 가루를 썼다. 밀가루에 시금치 분말을 섞어 녹색 면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박 씨는 "곤충 가루가 물에 녹는 성질이 없어서 밀가루와 섞으니 반죽이 안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겨우 반죽을 만들어놔도 파스타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툭툭 끊어지는 등 원하는 재료를 전혀 만들 수 없었다고. 그는 "원하는 요리를 만들 수 없어서 주방에서 눈물을 줄줄 흘린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가루 대신 단백질 추출물을 쓰기로 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마음먹은 맛과 식감으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그는 여전히 메뉴 개발 때문에 잠을 줄이고 있다. 지금 연구 중인 요리는 한식 메뉴인 비빔밥이다. 덕분에 작은 요리점 주방은 새벽 두세 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날이 많다. 왜 호텔 요리사를 그만 두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젊은 혈기'였다. "대학 때 존경했던 은사이신 교수님이 곤충식을 연구하신다고 하셔서 저도 합류하게 됐습니다. 큰 조직에 속해서 계속 일하는 것보다 많이 배우고 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공짜로 배우고 클 수 없잖아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고요. 무조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박 씨는 그렇게 직원 여덟 명이 꾸려가고 있는 곤충식 연구 회사 '케일(KEIL)'에 합류했고 그 중 파일럿 숍 개념으로 오픈한 '빠삐용의 키친' 대표 셰프를 맡게 됐다. 후회는 없냐고 재차 물었더니 "아직 후회 할 틈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할 게 너무 많아요. 곤충 단백질을 요리에 더 활용할 수 있는 연구도 해야 하고, 회사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다른 상품도 개발해야죠. 회사의 주력 과제인 곤충 식용화 관련 각종 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소비자가 늘어나서 시장이 커지도록 하는 일도 저희가 선도해야 합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식용 곤충을 '아이'라고 불렀다. 젊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아끼는 반려동물이나 물건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저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기아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곤충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미래식으로 각광받고 있잖아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입니다. 기근 국가에 가 볼 생각이 있냐고요? 저희 회사 사람들 모두 기회만 생기면 조끼 입고 달려 나갈 준비가 돼 있는 걸요."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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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진 “종자닭 절반 사라져… AI 이렇게 심각한 건 처음”

     “40년 동안 닭과 오리를 연구하면서 이 정도로 심각한 것은 처음 봅니다.” 도살처분이 2700만 마리(28일 0시 기준)를 넘어선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세에 이상진 전 국립축산과학원장(61)은 “한마디로 큰일”이라고 했다. 1977년 축산과학원 연구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금 연구의 길을 걸어온 이 전 원장은 가금과장과 원장을 지냈다. 또 한국가금학회 회장, 단국대 초빙석좌교수로도 일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퇴임을 한 지금도 연구회에 몸담고 있거나 산업체 고문으로 일하는 등 ‘현직’을 놓지 않고 있다. 닭에 한평생을 바친 그가 그치지 않는 확산세를 우려할 정도로 현재 AI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이 전 원장이 특히 우려하는 점은 대를 이을 닭이 죽었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 AI로 도살처분 되는 닭의 대부분이 알을 낳는 ‘산란계’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닭들 중에 식용 달걀이 아닌 병아리를 키우기 위한 알을 낳는 ‘종자닭’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살펴보니 우리나라 전체 종자닭 중 40%가 이미 도살처분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알을 낳을 후손들이 갑자기 천재지변을 겪어 확 줄어든 거죠. 여파가 15개월 이상 갈 수 있고 달걀 품귀 현상도 같은 기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 전 원장은 또 “사상 최대 규모로 도살처분이 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침출수나 가스 등 환경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며 “사후 관리에도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닭 축산업은 AI 같은 전염병 외에는 외부 요인 때문에 생기는 걱정거리가 많지 않은 만큼 이 전 원장은 이번 사태가 근심스럽다. 그는 “축산과학원에 입사한 후 평생을 닭과 함께 지내왔다”며 “그만큼 애정이 있는 동물인데, 하필이면 닭의 해를 앞두고 이런 일이 터졌다”며 더욱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의 40년 닭 연구 인생을 돌아보면 힘든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은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자신이 연구해 출원한 특허를 꼽았다. “음식에 들어있는 오메가6와 오메가3의 성분이 5 대 1이 되면 몸에 가장 좋다는 황금비율이 되는데 달걀에는 이 비율이 30 대 1이 넘었어요. 이 비율을 사료만으로 조절해서 황금비율로 맞춘 ‘오메가3 달걀’로 1992년 축산과학원 설립 사상 두 번째 특허를 따 냈죠. 그 이후로 축산과학원에 특허 경쟁이 붙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전 원장이 축산과학원에 근무하던 시절 닭 축산업은 발전기와 안정기를 동시에 겪었다고 한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체결로 수입 닭 대란이 올 것에 대비해 국산 닭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닭 축산업은 고기 자급률 70%, 달걀 자급률 100%까지 올라갔다.  닭 덕분에 40년 동안 녹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잘 지낼 수 있었다는 이 전 원장은 앞으로도 닭 산업 발전에 좀 더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는 “현재 가금 사양 표준 개정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고 계란연구회 회장과 가금 관련 산업체의 자문역도 몇 군데 맡고 있다”며 “앞으로 닭 축산농가의 시설 환경 개선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수원=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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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왕비는 속옷만 6겹 입어 치마 맵시 살렸죠”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고즈넉한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가구박물관(관장 정미숙). 이곳에선 내년 1월 말까지 영조 정조 시대 왕비가 입었던 혼례복(혼인 등 가장 큰 행사 때 입는 예복)을 전시하는 ‘궁중 복식 특별전’이 열린다.  한국가구박물관은 한옥 건물이다. 한옥은 창경궁의 모습을 복원했거나 순종의 계비인 순정효황후의 본가를 그대로 옮겨온 건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 보니 전시된 왕비의 복식들은 조선 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구박물관 한옥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곳에서 궁중 복식을 감상한다면 조선 중·후기의 의식주 중 의(衣)와 주(住)를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는 셈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경실 한국궁중복식연구원 부원장(56)은 “이번에 전시된 영·정조 때의 왕비 복식은 조선시대 르네상스기의 왕비 예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하다”고 강조했다. “왕비의 예복을 보면 치마가 풍성하게 부풀어 있죠. 속옷에 해당하는 옷만 6겹을 입어서 자연스럽게 상체는 날씬해 보이게 하고 치마는 자연스럽게 부풀리는 방법을 썼습니다. 비슷한 형태는 다른 나라에도 있었지만 모양과 역할이 각각 다른 속옷을 껴입어 모양을 살리는 방식은 조선 복식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전시 동선을 따라가면 가장 처음에 마주하게 되는 의상이 바로 속옷들이다. 복식의 외형뿐만 아니라 입는 방식까지 관람객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김 부원장은 이 같은 전통 복식의 방식을 습의(襲衣)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껴입을 습(襲)’자를 쓴다. 그가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12겹을 껴입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궁중 예복 ‘주니히토에(十二單)’와 같은 기준으로 세어 보면 오히려 조선의 궁중 예복이 한두 겹 더 많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왕비의 복식을 ‘정교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다. 풍성한 치마와 넓은 소매, 옷감에 수놓은 수많은 무늬와 장식들을 보면 화려함을 절로 느낄 수 있다. 김 부원장은 여성들의 복식을 연구하면서 “품과 목둘레의 경우 입는 사람을 세워 놓고 옷감을 입힌 다음 바느질을 한 것처럼 주인의 몸에 한 치 오차도 없이 꼭 맞아떨어지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 복식 복원은 제작 방식까지 전통 기법을 따라야 하기에 쉬운 작업이 아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왕비의 복식도 재현에 20년이 걸렸다. 가장 겉에 입는 대홍적의(大紅翟衣·꿩이 수놓인 붉은 비단옷)에 쓰이는 비단만 해도 수작업으로 실을 자아내고 옷감을 짜내야 하는데 이런 방식은 이미 대가 끊긴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복원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기록과 유물에 근거해 최대한 비슷하게 기계로 짜고 있지만 한 번 옷감을 짜는 데 수천만 원 비용이 들어가고 고증도 그때마다 받아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 앞으로의 숙제도 산적해 있다. 김 부원장은 ‘남은 연구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답했다. 성과가 있는 복식도 조선 중·후기 때 옷이 대부분이고 수차례 난을 겪으면서 기록과 의궤가 소실된 조선 초기의 복식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있어 제작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왕실이 존재하고 있고, 복식 연구자에 대한 지원이 탄탄해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일본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그런데도 김 부원장이 복식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궁중 예복이 조선시대 미학의 총집합체라는 생각 때문이다. “왕실의 혼례 복식은 당대의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과 예식의 집합체입니다. 염색, 자수, 옥, 금속, 한지 공예까지 각 분야의 최고 장인들이 모여야 왕실 예복을 완성할 수 있어요. 복식을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의 극한을 찾아내고 보존하는 작업 아닐까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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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속서 치열한 해녀, 물밖선 경쾌하고 실리에 밝은 삶

     “해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하고 거친 어머니’로 굳어져 버렸어요. 그걸 깨고 해녀의 삶 자체를 담아 보고 싶었습니다.” 4년간의 작업 끝에 해녀를 주제로 한 사진집 ‘잠녀(潛女)’를 내고 전시회를 연 사진작가 박정근 씨(38)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기자를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때마침 유네스코는 제주 해녀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박 씨는 “선정 시점을 의식하고 사진집을 낸 게 아닌데 시점이 절묘하게 맞물렸다”라며 “그 덕분에 주목도 더 많이 받고 인사도 많이 받고 있다”라고 웃었다.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제주와 연관된 것을 정하기로 하면서 박 씨는 해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해녀라는 존재 자체가 사진작가들에게는 큰 매력이 있는 주제”라고 말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대상, 해녀들의 독특한 행동을 보면 절로 작품으로 다뤄 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해녀를 주제로 정하면서 박 씨는 그동안 해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덧붙였다. 어느샌가 해녀가 희생의 아이콘이 돼 버렸는데, 거기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자식들을 위해 위험하고 거친 물속에 들어가고, 나이가 들어 가고 해녀가 줄어 간다. 이런 이미지들이 해녀를 보는 선입견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건 모든 어머니의 공통점이고 나이가 들고 인원이 줄어드는 건 농부도 마찬가지죠.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해녀만이 가진 특징을 찾아보았습니다.” 박 씨는 해녀들과 친해지기 위해 해녀 마을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녀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여럿 찾아냈다. 그가 본 해녀의 삶에는 거칠고 희생적인 이미지가 아닌 경쾌하고 실리에 밝은 모습이 가득했다. 그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어떤 해녀는 악기나 춤을 배우러 가고 어떤 해녀는 부업으로 하는 부동산을 관리하러 간다”라고 전했다. 오히려 도심 직장인들에게서 보기 힘든 ‘저녁이 있는 삶’을 해녀들이 즐긴다는 것. 그는 또 “해녀들이 잡는 소라나 전복이 상당량 일본 등으로 수출되다 보니 해녀들은 환율에 굉장히 민감하고 그에 따라 채취량을 조절하는 능동적인 모습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속에서의 모습은 생존 본능 그 자체였다고. 동영상 촬영을 위해 소형 카메라를 해녀의 머리에 달아 주고 찍은 영상을 보면 자신도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박 씨는 전했다. “해녀가 한 번 잠수하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2분 정도 됩니다. 그 사이에 물속으로 들어가서 소라나 전복을 찾고, 바위에 단단히 붙은 해산물을 캐낸 뒤 올라와야 하죠. 필사적으로 상품성 있는 해산물을 찾고 캐내기 위해 머리와 손이 정신없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채취 본능과 ‘숨의 길이’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직업이 바로 해녀더군요.” 수중 촬영이 많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는 박 씨였지만 촬영은커녕 물속 해녀들의 날렵한 움직임을 쫓아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산소통과 카메라 방수 장비 등을 주렁주렁 달고 들어가야 했다. 물속에서 파도에 휩쓸려 부상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사진을 찍어도 하루에 한두 장 건지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해녀들이 박 씨에게 다가와서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사진 찍기 좋겠느냐”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박 씨는 “지금까지 사진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면 ‘잠녀’는 피사체가 된 사람의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수록 내 성격과 성향이 사진에 묻어나는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음에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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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 어느새 1000개… 시국에 지친 마음 달래기 좋죠

     “요즘 박물관을 찾으면 얻을 수 있는 장점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옛것에서 지금을 배우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고, 또 하나는 휴식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김쾌정 한국박물관협회장(69)은 “시국이 어지럽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지쳐 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박물관을 찾으면 숨 한번 고르는 ‘마음의 휴식처’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박물관협회가 올해 40돌을 맞았다. 협회 창립 당시에는 전국 박물관을 다 합쳐서 50곳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전국에 1000곳 이상 생겼다. 박물관협회는 김 회장이 직접 제안하고 키워 온 단체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육군3사관학교에서 국사 교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김 회장은 은사의 추천으로 한독 의약박물관에 학예직원으로 취직하면서 박물관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박물관장들의 친목 모임에서 김 회장이 “친목만 도모할 게 아니라 박물관 사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처우도 개선해 보자”며 협회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제안해 놓고 보니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이 나였다”며 “이 덕분에 정관 제정부터 시작해서 각종 업무를 다 처리하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까지 협회의 성과로 “박물관 업무 종사자들에게 가장 큰 국제행사인 세계박물관총회를 2004년 일본보다 앞서 개최하고, 학예사들에게 주는 정부 지원금이 늘어나도록 힘을 보탠 점”이라고 꼽았다. 그는 “이제는 각 박물관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국립박물관들을 비롯해 3대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리움 호림박물관이 지금까지는 소장품 수를 늘리는 데 치중했지만 지금은 전시 기획이나 전시 방법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박물관에서 소장품 목록을 책으로 펴내는 도록 하나를 만들어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이나 가독성, 기록으로서의 가치 등을 꼼꼼하게 따져 수준 높은 도록이 나오고 있더군요.” 박물관이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요즘의 추세다. “책에서만 배우는 것보다 체험학습을 강조하는 최근의 교육 흐름을 박물관이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어린이 박물관이 따로 생겼고, 많은 박물관에서 단순히 소장품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유물을 직접 만들어 보거나 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인들은 요즘 박물관을 ‘힐링’ 코스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주변 조경을 공원처럼 꾸민 후 용산가족공원과 연결해 놓았다. 박물관을 찾으면 자연스레 산책이나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폐교한 시골 분교 건물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 회장은 요즘 세계 어딜 가든 방문지의 박물관을 꼭 둘러본다.  “세계 어딜 가서 봐도 똑같은 유물은 단 한 점도 없습니다. 모든 게 달라요. 수많은 전시품이 또 각각의 역사와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앞으로 박물관이 ‘공감’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인천에 있는 이민사(移民史)박물관에 갔다가 당시 사람들의 처절함이 느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과거와의 ‘교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박물관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박물관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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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연 경의선 책거리 총감독 “흥청대는 홍대 앞? 조용히 책 읽는 숲길도 있죠”

     “언제부턴가 서울 홍익대 앞은 복잡한 밤 문화의 거리가 돼 버렸죠. 이곳에 밝고 조용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경의선 책거리’ 기획 책임자인 김정연 총감독(40)은 “예술의 거리에서 유흥가로 변한 홍대 앞에 공간의 정체성을 다시 심고 싶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의선 책거리는 지하철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시작해 길이 250m의 옛 경의선 철길 터에 들어선 공간이다. 공원과 서점 기능이 공존한다. 이곳은 책거리가 생기기 전까지 홍대 근처에서 가장 어둡고 으슥한 공간으로 인식됐다. 새로 조성된 책거리에는 문학부터 아동, 예술, 여행 서적까지 다양한 책이 9개 주제별로 분류돼 철길을 형상화한 가건물에 차례로 전시됐다. 가건물 안에서는 책을 읽거나 살 수 있다. 공간을 꾸미는 과정에서 김 감독이 우선 염두에 둔 것은 ‘지역 정체성’이었다. 특히 경의선 철길 바로 옆에 살던 주민들의 의견을 먼저 들었다. “경의선 철길은 과거에 살인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음침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밝고 개방된 분위기로 만드는 데 신경을 썼죠.” 김 감독은 내년에 책거리의 조명을 보강할 예정이다. 서울 마포구에 가장 많은 업종이 여행사라는 점도 공간 배치에 반영했다. 책거리 초입에서는 여행 관련 책들이 먼저 보이게 했다. 김 감독은 공연, 전시 분야에서 보기 드문 ‘책 행사 전문 기획자’다. 연극제, 페스티벌을 기획하다 2005년 경기문화재단에서 도서관전을 기획한 것을 시작으로 책 행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 뒤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 ‘서울국제도서전’ 등 굵직한 행사를 도맡아 왔다. 그는 “책은 정적인 매체처럼 보이지만 가장 빨리 트렌드를 흡수하고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가진 매체”라며 “이런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즐겁고 쉬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책 행사에서 필수인 ‘저자와의 만남’은 베테랑인 그에게도 아직 진땀 나는 일이다. 책을 쓰는 동안 외부와 연락을 끊는 작가도 많고 글로 소통하는 작가들의 특성상 독자를 직접 만나 말로 소통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저자도 적지 않다. 지금도 김 감독은 출판계 사람들과 수시로 만나 ‘얼굴 도장’을 찍으며 인맥을 쌓고 있다. 그는 책 행사 기획으로 전문 분야를 개척했지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왔다. 대학에서는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13년 전 우연히 배우게 된 살사·탱고 실력은 대학 강의까지 나갈 정도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은 행사 기획에도 반영된다. 그가 지휘하는 책 행사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경의선 책거리에도 디자이너들이 만든 책 디자인 전시회와 ‘팝업북’(책을 펼치면 모형이 입체로 펼쳐지는 책 공예) 만들기 프로그램 등 이색 행사들이 잇달아 진행된다. “경의선 책거리는 앞으로도 참가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변화할 예정”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가장 해 보고 싶은 책 전시는 어떤 것인지 물었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즐기고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어린이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할까요. 아이들 가족도 편하게 찾아와 머물 수 있는 공간이면 더 좋겠죠.”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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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일승 리더십의 첫째는 “상대 마음 읽는 것”

     프로농구 추일승 감독(53·사진)에게 지난해는 최고의 해였다. 그가 이끄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농구팀은 파죽지세로 승리를 챙기며 14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추 감독 역시 개인 통산 첫 프로리그 우승이라는 감격을 맛봤다.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했지만 지금까지는 순항 중이다. 올해 리그가 개막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리그 1위를 탄탄히 유지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팀은 올해도 우승 후보 1순위로 평가받는다. “사실 예전부터 책을 한 권 쓰고는 싶었는데, 우승 한 번 못 해본 감독이 무슨 책이냐 싶어서 참아 왔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자격이 생기지 않았나 싶었어요.” 추 감독은 최근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책 ‘심장을 뛰게 하라’를 펴냈다. 구상은 5, 6년 전부터 했던 책이다. 첫머리부터 그는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추젠틀’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작전타임 때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고 훈련 때도 선수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다. 소통의 중요성은 경험에서 배웠다. “안 겪어 본 게 없어요. 농구에 몸담은 사람 중 저만큼 많은 경험을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의 이력은 다양하다. 농구계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꼽히는 홍익대 농구부 창단 멤버로 뛰었다. 1985년 실업팀 기아에 입단했지만 허재, 강동희, 김유택 등 국가대표급 동료들의 활약을 보고 농구를 접었다. 이후 기아자동차 노무관리팀 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선수단 매니저로 들어가면서 농구와 인연을 다시 이어갔다. 이후 상무 감독을 거쳐 프로팀 감독이 됐지만 중간에 재계약 실패로 또 2년의 공백이 생겼다. 그 사이 방송 해설자, 스포츠의류 사업가, 농구 웹진 대표 등 명함을 수차례 바꿨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려면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게 우선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리더가 원하는 결과를 내려면 다양한 구성원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재적소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기본이더군요. 그러려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추 감독은 “모든 선수는 필요할 때 필요한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에이스라도 절대 기용하지 않는다”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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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대동법처럼… 공론의 장 열고 소통해야 現시국 해법 나와

     “법과 제도가 올곧게 서지 못하면 정치판이 사심과 불공정으로 물들게 되죠. 국가의 붕괴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지난달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를 펴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63·전 노동부 차관)가 쏟아낸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조선시대 실패한 제도를 오늘날에 비추어 봐도 별다른 시대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두루뭉술한 제도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약해진 조선의 상황은 지금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며 말을 꺼냈다. 정 교수는 노동경제학을 전공하고 30년 동안 노동부 주요 보직을 거쳐 노동부 차관을 지냈다. 그는 저서에서 조선시대 정치와 관료들의 행태가 당시 백성들의 의욕을 꺾었고 그로 인해 조선의 ‘국가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의 궁금증은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은 한중일 3국 중 왜 유독 한국은 국력이 다른 두 나라보다 약했는가에서 출발했다. 관직에 오래 근무한 경력을 살려 조선과 성리학의 원조인 중국의 국가제도를 면밀히 분석하다 ‘디테일’의 차이가 작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냈다. “조선시대 법과 제도를 분석해 보면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었다”며 “백성들이 납득할 만한 균형 있는 국가 운영이 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조세제도인 공물제만 봐도 국가에서는 어떤 물품을 납품하라고 군·현 단위로 배정만 했습니다. 군수나 현감이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내라고 하든 상관 안 했죠. 그러다 보니 양반은 납세 의무에서 쏙 빠지고 신분이 낮은 백성들만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제도가 명확히 정비되지 않은 이유는 조선이 중국에서 도입한 성리학이 본토와 다르게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정 교수는 분석했다. 도덕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던 조선 성리학자들이 법과 규정을 치밀하게 정비하는 것을 ‘성리학에 반하는 조치’라며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면서 적지 않은 관료들은 허술한 제도 아래에서 자신의 의무를 피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관료들 사이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법망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는 권력형 비리, ‘흙수저’로 표현되는 사실상의 계급 등 조선시대 문제는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해법을 찾았을까. 정 교수는 “우선 공론의 장에 모든 것을 열어놓고 소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100년에 걸쳐 완성된 조세제도인 대동법의 제정 과정을 보면 놀랍습니다. 왕부터 지방 향촌까지 조세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폭넓게 묻고 토론했습니다. 세금과 국가 재정담당자가 아니라도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었고, 그 시대에 17만 명분의 여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정 교수는 “이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통한 뒤 최고 권력층에도 성역(聖域)이 존재하지 않는 공평하고 강력한 법과 규정이 적용될 때 혼란스러운 질서가 다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치인과 관료의 책임을 강조했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결국 정치인과 관료들이기에 이들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책을 쓰면서 절감했습니다. 그들이 딴생각을 하는 순간 국가 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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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휠체어 장애인 안전 위해… 설계도 세 번 갈아엎었어요”

     “시중에서 파는 전동 휠체어는 300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 때문에 선뜻 구입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수동 휠체어에 부착하는 보조 전동장치는 휠체어 아래쪽이나 뒤쪽에 붙이게 되어 있어 오히려 장애인을 넘어뜨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단점을 모두 보완하기 위해 설계도를 세 번이나 완전히 갈아엎었습니다.” 대한기계학회가 주최하고 미래창조과학부, 경암교육문화재단,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제6회 전국학생설계경진대회가 12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렸다. 대상을 차지한 KAIST 팀은 수동 휠체어에 붙이는 전동 주행 보조기 작동 원리를 설명하면서 “몸을 굽히거나 틀지 않고 휠체어에 붙일 수 있도록 하면서 가격은 제작 원가 기준 20만 원대로 낮췄다”라고 설명했다. 심사를 총괄한 이재응 집행위원장(중앙대 기계공학부 교수)은 “비슷한 아이디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착안점이 좋았고 곧바로 상품으로 팔아도 될 정도로 완성도도 훌륭했다”라고 평가했다. 이 대회는 사회적 이슈를 공학기술과 접목한 설계 작품을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선보이는 행사다. 경쟁은 치열했다. 지난해보다 40여 팀 많은 170개 팀이 대회에 뛰어들었고 이 중 대학부 15팀, 고등부 15팀이 최종 본선까지 살아남았다. 올해 주제는 ‘안전’.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 버스 전복 사고 등 운송 수단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였다.  대학부는 ‘수송 수단 안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참가팀은 대부분 기존 상품의 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단가를 낮춘 작품을 선보였다. 아기가 타고 있을 때 보호자가 손잡이를 놓으면 유모차가 자동으로 멈추는 ‘유모차용 안전 제동 장치’를 설계한 유한대 팀(금상) 역시 “전자센서를 쓰면 훨씬 편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제작 단가를 고려해 와이어와 스프링만으로 동작하도록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고등부 주제는 ‘가정 안전사고 예방 기술’이었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고를 막기 위한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전시됐지만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철저히 연구한 흔적이 역력했다. 대상을 탄 군산기계공고 팀이 설계한 ‘빨래걸이 비상 알람 방범창’은 방범창과 경보 알람, 빨래걸이 기능을 창틀 하나에 모아 놓은 ‘아이디어 집약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팀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창문 낙상 사고나 허술한 방범창 때문에 생긴 범죄에 주목해 개선점을 찾아냈다.  정인곤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는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작품 완성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다”라며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기대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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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소리만 흉내냈다면 18년 못버텼죠

     44년 중 18년을 다른 사람처럼 살아온 사람이 있다. 자신의 본명도 감췄다. 하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인생’을 살며 식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타인의 이름이 진짜 내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성대모사의 달인 배칠수(본명 이형민·44) 씨를 서울 마포구 상암 디지털미디어센터(DMC)에서 만났다. “점심 먹으면서 인터뷰 하시죠.” 인터뷰 시간은 1시간을 넘길 수 없었다. 낮 12시에서 오후 2시까지 tbs라디오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를 진행한 뒤 오후 3시 MBC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사이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서울 중구 남산에 있던 tbs 사옥이 올해 7월 DMC로 옮겨오면서 겨우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1주일에 약 30건. 체력 부담을 느껴 예전보다 크게 줄였다. 전성기 때는 하루 7건 이상씩 스케줄을 소화했던 그다. 그의 목소리는 1999년 ‘FM 음악도시’부터 전파를 탔다. 그 후 ‘배철수의 음악캠프’ ‘와와쇼’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등 간판급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생의 4할을 ‘이형민’이 아닌 ‘배칠수’로 살았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곧잘 흉내 내긴 했지만 그게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프로 보디빌더를 꿈꿨고, 대학도 재능대학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잠시 헬스클럽도 경영하다 아내의 권유로 출전한 성대모사 대회 ‘슈퍼보이스탤런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타면서 인생 행로가 크게 바뀌었다. 정작 ‘자신’이 지워져 아쉽지는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딱 부러지는 답이 돌아왔다. “가끔은 본명을 저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다 서류 같은 데 서명할 일이 생기면 그때야 ‘아, 내 본명이 이형민이었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 목소리를 빌렸을 뿐 내 생각을 얘기하고 내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진행자, 담당 PD와 자신이 맡는 코너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도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프로’ 의식에 놀란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방송도 그 때문에 차질이 생긴 적은 없다. 그는 다음 날 일할 때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싶어서 뒤풀이나 술자리도 전혀 가지 않는다. 그래도 배철수 씨를 비롯해 최양락 전영미 씨 등 그와 일을 해봤던 사람들은 그와 무척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단순히 연기할 대상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투나 습관이 생긴 배경까지 철저히 연구한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준비하면서 ‘에∼’ 하는 추임새의 배경을 찾아봤더니 즉흥 연설이 많기 때문이었다. 가장 적절한 용어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것”이라며 “반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별로 막힘이 없었는데, 미리 작성된 연설문을 낭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는 “일단 방송인 생활 20년을 채운 뒤 다음 인생을 고민하겠다”고 말해 왔다. 2년 후면 20년이 된다. ‘제2의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형민의 목소리가 나왔다. “단종된 자동차를 새 차처럼 제작하는 자동차회사 ‘모헤닉 게라지스’의 톱 리더 직책을 9월부터 맡게 됐습니다.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는 책임 있는 자리입니다.” 그는 구형 자동차 모델 마니아였다. 지금도 1990년대 초 생산된 갤로퍼 승용차를 새 차처럼 만들어 타고 있다. “2년 뒤에도 방송 생활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마담’으로 자동차 회사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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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민 400명 美의회서 한복 퍼포먼스… 교과서 동해병기 일궈”

     “미국 교과서에 ‘East Sea(동해)’ 표기를 집어넣은 건 수많은 미국 교민들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를 책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14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미국 교과서 동해 병기 운동’을 주도한 린다 한 글로벌한인연대 회장(65)이 방한했다. 5일 서울 팔래스호텔 출판기념회 및 동해 병기를 추진하는 모임(동추모) 발대식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날 행사장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동해 병기 운동 당시 한인들의 열의를 떠올렸다. 워싱턴 한인 연합회가 주도한 이 운동의 결과, 미국 교과서 지도에 표기된 ‘일본해(Sea of Japan)’를 ‘동해(East Sea)’와 함께 표기하도록 버지니아 주의 법이 개정됐다. 이 법이 발효된 뒤 미국에서는 버지니아 주, 메릴랜드 주 등 7개 주 학교에서 동해 표기가 된 지도를 볼 수 있게 됐다. 한 회장이 쓴 책 ‘동해 병기’에는 2013년부터 약 1년간 교민들이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했던 노력들과 함께 옛 지도 70여 장이 첨부돼 있다. 모두 한 회장과 교민들이 버지니아 주 의회에 제출한 자료들이다. 한 회장은 “당시 동해 병기 법안 통과를 방해하려는 일본의 방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정확한 사료로 무장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은 대사관 차원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니 동해도 당연히 일본해로 표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로비스트까지 동원해 일본 사업체를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훼방을 놓았다. 일본의 조직적인 방해에 대응하려면 교민들이 최대한 힘을 합해야 했다. 한 회장은 워싱턴 한인협회와 함께 ‘교민 1명이 5달러 성금 내기 운동’을 벌여 활동 자금을 모았다.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해당 법안 통과를 결정하는 날에는 교민 400명이 한복을 입고 달려가 의회 안팎에서 동해 병기의 필요성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버지니아 주 의원들이 15만 명에 이르는 한국 교민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가 주도한 운동이 성과를 내면서 교민 사회도 크게 고무됐다. “만리타향에서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들고 외롭고 서러운 일이 많아요. 하지만 동해 병기 운동을 통해 ‘우리가 뭉치면 법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교민 사회에 생겼죠.” 한 회장은 이 여세를 몰아 모든 교민들의 목소리를 한곳으로 모을 수 있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글로벌 한인연대를 중심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교민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한 회장은 “여러 나라에 사는 교민들이 차별을 덜 받고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려면 이런 하나 된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응원도 부탁했다. “교민들은 스스로를 독립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교민들도 외국의 법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힘을 보태주면 교민들은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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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건 “한국의 세계 무형유산 보존 노력, 지구촌에 홍보”

     “단순히 세계의 무형유산을 주제로 한 영화를 상영하는 축제만은 아닙니다. 한국이 각국의 무형유산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엄청난 노력과 공을 들이고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는 작업이죠.” 30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전북 전주시에서 열리는 ‘국제 무형유산 영상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김건 집행위원장(전북대 기록관리학과 교수·51·사진)은 28일 이번 행사의 주안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제 무형유산 영상 축제는 세계 각국의 무형유산을 주제로 제작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축제다. 한국에서는 2014년 처음 행사가 열렸고 올해로 3번째를 맞았다. 조직위원회는 올해 16개 국가의 무형유산을 담은 영상 총 26편을 준비해 상영한다. 김 위원장은 “특히 올해는 지난 1, 2회 행사에서 일반 관람객들로부터 ‘작품이 너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점을 반영해 영상 상영 전에 5∼10분간 해설사들이 관련 내용을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을 추가했다”고 전했다. 어린 학생들이 접하기 쉽도록 애니메이션 상영도 늘렸다. 행사 중 상영되는 모든 상영물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축제에서 상영되는 영상물은 기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영상미에서도 비상업 영화로서 가치가 높다고 영화인들이 인정한 작품을 골라낸 수작들”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상 축제는 한국의 무형유산 보존 노력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다. 이번 행사가 끝나고 11월이 되면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지가 결정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 축제는 전 세계에 한국이 무형유산 보존 작업에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홍보 효과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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